부처님 향기/가피와 영험록

지장보살님의 가피와 영험록 모음

慧蓮혜련 2009. 4. 11. 08:59


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


*이글을 쓰신 반야화님은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화산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은평구 역촌동 삼보사 합창단단장으로써
법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저의 하루는 지장보살님을 염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과 함께 시작한 하루하루는 늘 상쾌합니다.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할때는 물론
절에 와서 노래하고 차를 탈때 도 지장보살을 염하고,
지장보살님께 감사하면서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칩니다.

이렇게 지장보살님을 의지하면서 살게 된 것은
지장보살님의 큰 가피를 입고 자연스럽게 생긴 신행생활입니다.
불교를 믿고 부처님과 지장보살님께 귀의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직접 가피를 입고나서야 오늘과 같이 철석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으니 약간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지만,병고의 시련 속에서 "지옥중생을 다 건지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으리라"는 지장보살님의 대원력을 몸소 느끼게 되었고
나도 이제부터는 "지장보살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리라.."는
새로운 서원과 희망을 갖게 되니,
그또한 지장보살님의 크신 위신력이라 믿습니다.

몇 년 전 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픈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는게 나을 것 같단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과 함께
수술 날짜를 받고 나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수술을 한다해도 건강을 다시 찾을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사실 주사나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한 특이체질이고...
마이신 등 항생제에 대한 알러지가 있어 평소 감기에 걸려도
약도 못먹어 한약과 민간요법으로 이겨내곤 했는데,
대수술이라니...

그때 불현듯 수술하고 죽을바에야 죽을 힘 다해
기도정진이나하고 죽자는 생각이 들어 ,
스님께서하라는 대로 지장백일기도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수술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수술 일주일 전,그날도 전 삼보사 법당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불자님들과 함께 소리 높여 염불하는 고성염불의
지극한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갑자기 불단에 모셔진 지장보살님께서
다기 그릇을 들고 제 앞으로 오시는 것이였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선 다기물을 제게 주시면서 다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 무렵 목이 아파서 음식물을 넘기기 힘든 상태라 목은 말랐지만,
먹기싫다고 하니,

지장보살님께선 마치 어머니가 이제 갓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에게 밥을 떠먹여 주듯, 먹기싫어 뿌리치는 아기에게
다 먹이려고 애쓰는 어머니처럼 제게 다기물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
제가 다 먹을 때까지 자비로운 눈빛으로 지켜보시던
지장보살님께서는 제가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으시곤
다시 불단 위에 앉으시는 것이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주위를 보자
불자님들은 여전히 기도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물을 먿어먹은 다음 날부터
제 몸은 날아갈 만큼 가벼워졌습니다.
기도할 때도 몸이 아파서 몇 번이나 쉬어가며 했었는데,
마치 새 몸을 갖다 붙인 것 같았고,

그동안 저를 괴롭혔던 병마가 싹 빠져나간 것 같았습니다.
일단 수술 예정 날짜에 맞춰 병원에 가서 재진찰을 해봤는데
기적이라며 놀라워하시는 의사선생님을 뵈면서
저는 저절로 미소가 나왔습니다.

전 " 기적이 아닙니다. 불가사의하신 지장보살님께서
대자대비하신 위신력으로 저를 치유해주신 것입니다.
지장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이렇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답니다." 라는
답변을 마음속으로 하면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현대의학으론 수술을 해도 목숨을 장담못한다고 했는데
수술도 하지않고 지장보살님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살면서 저는 늘 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불자로써 부끄럼없는 삶,
지옥중생을 다 구제하기전에는 성불을 하지 않겠노라는
지장보살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절하게 들었습니다.

이제는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때도 모든 중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생활속에 실천하는 삶을 살아 너와 내가 모두
중생의 탈을 벗어 이땅을 극락세계로 만드는
큰 일꾼이 되길 기원하면서 하루하루 지장보살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영원히 이 땅이 불국토되기를 기원하면서
지장보살님을 염하고 찬탄하는 노래를 부르며
이웃에게 법음을 전하리라는 원력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지장보살님전에 서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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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 지장보살마하살

(법연 이광연님의 체험수기)

나는 언제부터인지 산을 좋아했습니다. 피아노를 다루는 사업을 하는
만치 음악에도 깊이 끌렸지만 말없는 자연이 더 마음을 당겼습니다.
산에 가면 대개는 절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산을 다니다 보니 어느덧 산의 핵심이 절 인듯 느껴졌습니다.
절이 없는 산에는 아예 갈 생각을 하지 않게도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절에 가서 염불 수행하는것도 아니고 그저 부처님앞에
가서 합장하고 절을 하고 나서 뜰 앞에 앉아서 멍청히 풍경소리를

듣거나 벽화나 단청한 귀퉁이에 눈길을 던지고 있는 그런 취미일
뿐이었습니다. 서울 근처 산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적으로 절도
어지간히 더듬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절과 친근해지고 스님들과
가까워지고 불법에도 슬그머니 들어와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한걸음 한걸음 산에 오르고 큰 나무 밑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멀리 꾸불꾸불 산길 끝에 펼쳐진 절의 모습 그것은
산의 경치라기보다 제 마음의 고요하고 신선한 구석이 되었습니다.

그러는동안에 경전을 대하고 염불을 하고 차차 산에 다니는 재미가
깊어 갔습니다. 그래서 몇번 법회에 나가 교리를 배우고 염불 수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10년쯤 전의 일이었던가 싶습니다.

그후 불광법회를 만나 부처님의 크신 은덕속에 내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저의 생활을 믿음의 생활로 차차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독경과 염불, 예불로 시작하여 회사에 가서도
반야심경 1편으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출근하려고 차에 올라서도
먼저 반야심경을 암송하였습니다.불광법회에서 공부하면서 과분하게도
법회의 임원이 되어 여러 불자님들과 함께 믿음을 전법을 위한 정진을

하게 되니 하루하루 기쁨을 나날이 새로울 뿐입니다.
몇번인가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부처님께 감사하면서 그 모든
고비를 넘겼습니다. 이제는 더욱 기도 정진하여 믿음의 힘을 키우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데 보탬이 되고자 하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으니 정말 감사한 나날입니다. 그런 중에 근래 기도를 통해서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실을 적어 보고자 합니다.


지장보살이 주신 아기

불광법회를 만나고서 비로소 부처님의 크신 위덕과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상님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조상님께서 극락왕생하시고

저의 누이동생도 보살펴 주시고 형제들을 돌보아 주시기를
기원하고 감사하였습니다.저는 9남매 중에 맏이인데 집안과 형제들에
대한 책임도 컸지만 그무렵 출가한 동생이 소생이 없어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아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개울에서 목욕하고 가까이 있는진관사를 찾아
갔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작은 정성이나마 부처님 앞에 공양올리고
지장보살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하였습니다.

진관사 부처님은 그전부터 자주 참배한 부처님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기도를 시작하는 날 법당 문앞에 서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쭈뼛쭈뼛해지고 머리카락이 하늘로 올라가는것
같았습니다. 몸은 굳어지고 어떤 전율같은 것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저는 손에 염주를 들고 단단히 마음먹고 법당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법당에 발을 들여 놓았을때 그때의 지장보살님과
시왕님의 무서운 상호를 지금껏 잊을 수 없습니다. 크게 노하신
것처럼 저에게는 느껴졌습니다.

어떤 힘이 저를 법당 밖으로 밀어내는 것같은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 첫날이니까 물러갈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에는
시험도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무서운 때는없었습니다.
저는 눈을 꽉 감고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께 예경드렸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지장보살경 1품 또는 2품을 읽고 지장예찬
문을 읽으며 백 오십 팔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30분간을 일심 염불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쫒기는 듯 법당에서 나오곤 하였는데 이러한
힘든 경계가 1주일 후에야 바뀌었습니다.

차차 그런 경계가 사라져 1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지장보살님이 반겨
주시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은 어찌 장부가
그런 요망한 말을 하느냐고 꾸지람 하시겠지만 저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표정이 나날이 반겨하시고 기뻐하시는
표정으로 바뀌었으며

법당 근처에 오기만 하여도 반겨주시는 것이 가슴으로 와 닿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백일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하였고 그 사이에는
오직 환희심과 감사로 나날이 지나갔습니다. 집안 이야기르 드리자면
제 여동생이 충청도 제천에 사는데 결혼하여 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한결같이 후사를 바랐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채 세월이
흐르니 어른들의 불만이 겹쳐서 불화가 빚어지고 마침내는 몇번이나
친가로 쫒겨 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차례 겪고 나니
친정의 큰 오라비라고 하는 책임에서 고민하다가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한 후 세달 가까이 되니 임신 소식이 들려욌습니다.
그동안 하도 걱정했던 일이라 믿기지 않더니 드디어 달이 차 금년
봄에 아들을 순산했습니다.병원에서 의사는 난산을 예고했습니다만
저는 부처님만 믿고 아들 순산을 선언하고 집에 왔더니 과연 꿈만
같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백일 기도를 마친 저는 계속하여 또 백일기도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희한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분은 또 꿈이야기냐 하시겠지만
이 꿈은 정말 꿈같지 않은 꿈이었습니다. 새벽녘인데 꿈 속에 어떤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키는 보통보다 약간 작은편이고 남루한 한복
차림에 아무렇게나 수염이 났으며 머리에는 갓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의 덕을 입어서 내가 좋은
데 간다. 그래서 인사하러 왔느니라.
나는 장호원 할아버지라고 한다." 저는 반문했습니다.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인사 받을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였더니 서울 장위동에 사시는 저의 아저씨를 모시고
왔습니다.그리고서는 "이 사람이 내 손자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역사물 TV에서 보던 포졸형식을 한 두사람이 나타나서
그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금방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
노인은 새옷으로 갈아 입었고 그것은 옛 장군복 같았습니다. 저에게
가까이 와서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포졸 형색을 한 사람도
합장하고 정중히 인사하고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실감있는 꿈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이 깨자 저는 이상한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그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진관사에 가서 기도하고 그 길로 사무실로 나가
당숙모댁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당숙모는 올해 83세이신데 16세에 시집오신 저희 집안의 산
역사이십니다. 전화로 "장호원 할아버지가 계셨습니까."하고 물으니
형상을 물으셨습니다. 제가 본 대로 형상을 말씀드리니, "내가
그 할아버지를 뵙지는 못하였지만 그러한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말은 들었다. 그런데 너는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느냐."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조상님을 위한 기도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당숙모는 "참 잘했다. 나는 천주교를 믿고 있지만 조상님을 위해서
그렇게는 해보지 못했다. 너는 참으로 잘했구나"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경전 말씀에 일체중생이
미혹하여 어둠을 방황하고 불보살님이 능히 이를 구원하신다 하였고
일심으로 염불 기도하면 모든것이 이루어진다고 한 것을 생각할 때

신기하기도 하지만은 우리가 알수없는 세계에서 일어난 현실의
한 단면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조상님은 확실히
이름모를 분까지 모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꿈에 본 무주고혼

그런데 저에게는 저의 생친이 계시고 또 큰아버님이신 아버님이
계십니다. 말을 바꾸면 큰아버님 앞으로 몫이 지어진것입니다.
두 어른 모두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신 지 오래입니다.

저는 편모 슬하에서 자란 까닭인지 아버님에 대한 사모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처님 법을 믿으면서부터 제사는 정성드려
올렸지만 그래도 모자라는 듯하여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개울에 가서 냉수욕을 하고 진관사에 참배하고 지장보살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불하며 예배하고
예배하며 염불하는 것으로 정근 일과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도에는 아버님을 위한 기도와 아울러 저의 기도인연
으로 무주고혼들까지도 모두 부처님 은혜를 입기를 기원했었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 일과를 정확히 지켜 나갔습니다.

그런데 100일 기도를 하면서 홀로 정근하고 부처님앞에 약간의
공양을 올렸을 뿐 무주고혼들을 위하여 시식은 8월18일 회향날로
잡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고 진관사 개울에는
빠알간 꽃물이 다 흘러가고 어느덧 여름이 한창인 때였습니다.

그때가 7월말 경이었는가 합니다. 새벽 늦게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낯익은 진관사 일주문 안에 서 있었습니다. 그건데 별안간 수십,
수백명의 낯설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저를 둘러쌌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진관사를 향하여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저를 둘러 싸며 "배가 고프오, 못살겠소. 어서
먹을 것을 주오."하고 일제히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오는 8월 18일까지 기다려 주시오. 그때는 소참이나마 준비해서
대접하겠오."하였으나 저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배가 고파 못견디겠오. 어서 밥을 주시오." 하고 외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난처해졌는데 순간 저의 곁에 위풍이 당당하고
키가 9척이나 됨직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대대장이오. 이대로 있어서는 아니니오. 우리 병력을
풀어야 하겠오. 객귀들 하나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오."
하더니 금방 일단의 병력이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군모와 군복이 배당되어 곧 입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팔짱을 끼어 스크럼을 짜고 빈틈없이 줄을 서서
전진하였습니다.그런데 여전히 저들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도 20일만 기다리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데
저 대대장이라는 사람을 말하기를

"저들에게 무엇인가 먹여야지 그냥 두면 안된다."하더니 어디서 날라
왔는지 큰 밥통에 밥과 나물이 운반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비빔밥을 만들어 군대용 반합에 담아서 우리 군인들이
숟가락으로 퍼서 저들을 먹였습니다.

수백명의 군인들이 한줄로 서서 그 앞에 밥을 먹겠다고 모여들어
웅성대는 군중들에게 큼지막한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쉴사이 없이
퍼먹이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한참동안 그러는 사이에
거기에 모여 있는 모든 객귀들을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앞서의 대대장이라는 9척이나 되는 사람이 앞에 나와
일장연설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좀체 들어보지 못한 훌륭한 법문을
설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너희들은 마음이 어두워 이런 고생을
한다. 마음을 밝히자면 부처님을 믿어라.

그리고 이제까지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라. 그리고 부처님 믿고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나아가라. 이번에 너희들이 배부르게 먹고
극락세계에 가는 것은 법연거사의 은덕이니 그 은혜를 잊지 말라"

이말을 들은 군중들은 일제히 저를 향하여 절을 하며 감사인사를 하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대대장이라는 사람은 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혹 기독교신지가 있으면 손을 들어라"하니 역시 여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법연거사의 은덕으로 하늘나라보다 더 좋은 극락세계로
가게 된다."

하며 앞서 말을 기독교적 표현으로 바꾸어 되풀이하고 나서
"법연거사에게 감사하라"하였습니다. 역시 그들도 앞으로 나와 저에게
각별한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눈으로 보는듯
생생한 것은 그들의 기쁨에 넘치는 얼굴입니다.

그것은 흡사 법회를 마치고 나오는 저희들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꿈을 꾸고 나서 '객귀'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듣는 말이라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무주고혼'이라는 말씀을 들었을때 저는 비로소 이번 기도의
목표인 선망부모와 무주고혼을 위한 기도가 성취됐음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다시 실감합니다.

분명히 인간은 육체나 현실생활이 다가 아니며 사후 영혼의 생활만도
다가 아닌 불멸의 세계가 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도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저와 같은 제가불자의
독경,염불의 공덕이 경전말씀 그대로 불가사의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지장보살은 절에서만 부르는 것이라 하는데 이 말은
정말 잘못된 말입니다 또 한가지는 중생세계에는 무주고혼과 같이
시장(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불쌍한 중생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누가 보살펴 주고 구재하여 밝은 길로 인도하여 주겠습니까?
불법만이 제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진정 우리 부처님만이
모든 생명을 밝히고 구원해 주는 영원한 광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효성을 일으키고 자비심을 일으켜 조상님과 무주고혼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출처: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곳에 (43인의 불교신행수기), 불광출판사
법연 이광연님의 체험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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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님께서 무거운 짐을 덜어 주시건만
글/ 손처사

칠팔 년 전쯤이라 기억된다

불심이 깊은 어느 불자 님께서
집안에 걱정이 있다고 찾아왔다

이야기인 즉 오라버니 되는 사람이
매일같이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고
자동차에 달려들어 자살을 하려하고 해서
식구들이 오라버니 때문에
근심 걱정이 끊어질 날이 없단다

어떻게 실성한 그 마음을
본 정신으로 돌려놓을 수 없냐는 내용이다

일단은 본인을 만나보기로 했다

며칠 뒤 그는 찾아왔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의 생각은 세상살이가 모두 불평이다
제대로 자기 맘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직장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이 직업 저 직업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런 분들에게
불법을 전하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았다

지장보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참회기도를 권하였지만
도통 마음이 동하지 않는 모양이다

3일간의 설득 끝에
그는 겨우 마지못해 승낙을 하고
기도를 해 보겠다고 했다

기도는 백일동안 절에서 하기로 하고
약간의 짐 보따리를 챙기어
남부지방의 어느 절로 향한다

절에 도착하여
주지스님께 사연을 설명하고
백 일 간의 나홀로 기도를 하기로 허락 받았다

절간의 생활이 처음인 그를 위해
며칠을 같이 절에서 묵기로 했다

첫 날 밤이었다

깊은 잠이들었는 듯 한데
갑작스런 이상한 소리에
두 사람은 잠에서 깨어났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보았지만
캄캄한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밤 열두시를 조끔 지난 것 같다

절간 생활이 익숙치 않은 그는
무언가 불안한 모양인지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기도를 포기하고
산을 내려가겠단다

나는 이런 저런 설명을 하며
낫선 곳이라 그러니 안심하라고 위로를 한다

또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살며시 들려 하는 순간
이번엔 요사채 기둥을
망치로 못을 박는 소리가 탕탕탕 울린다

불현듯 나의 머리를 스쳐 가는 것이 있다
업이 두터운 사람은 불법의 인연이 없어
지옥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어디선가 들은 소리이다

이런 분들은
절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신중들이 막아선다는 들은 이야기이다

둘은 자리에 앉았다
그의 몸은 사시나무 떨 듯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잠시 후 주지스님께서
방을 찾아왔다
이 야밤에 소란 스럽게
무슨 망치질을 하느냐며 . . . . .

주지스님께 설명을 한다
스님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돌아가신다

그에게 광명진언을 하라고 알려 준다
『광 명 진 언 (光明眞言)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 』

그는 더듬 더듬 광명진언을 해 본다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지장보살을 계속 염하며
이 지옥의 중생
이제 참회하고자 부처님 전에 왔으니
보살 님의 원력으로 도와 달라고
그리고 이 불쌍한 중생
부처님의 거룩한 말씀 듣게 하여 달라고
빌고 또 빌어본다

또다시 이번엔 지붕에서 기와장 깨지는 소리가 난다
"와지장창 와지장창. 쿠당당 와르르"

난 그에게 절대로 물러서지 말고
광명진언을 계속하라며 그의 손을 꼭 쥐었다

또 주지스님과 다른 스님들이
무슨 소리냐며 찾아왔다

이런 소동은 날이 밝자 끝이 났다

그 날 아침부터 백 일 간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그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기도 중에 어떤 일이 생겨도 포기하지 말라고 . . .
이 기회를 놓치면
어쩌면 몇 백년 몇 천년의 지옥생활이 계속될지 모른다고 . .
죽어서 나갈지언정
절대로 제 발로 절간을 나서지 말라고 . . . .

며칠 간을 절에 머물며
불안해하는 그를 위로하기로 했다

그는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백팔 참회문을 하고 지장경을 독송하고
마음 속의 삼독을 토해낼 듯이
지장보살을 큰소리를 내며 정근을 한다

하루 천 배씩 백일 동안 . . . .


지장보살님의 보살핌을 바라며
산을 내려온다

산을 내려오며 처음으로 겪어보는
이 절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업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

얼마나 업이 두터우면
부처님 전에 마저 발길을 못들이게 하는 것일까
몸으로 입으로 생각으로 지은 죄업이
눈송이 쌓이듯이 쌓이는 줄 모르고
희희낙락 애욕에 물들고
재물 욕에 눈이 멀어
업류의 탁한 물에 쓸려가
기약 없는 업의 되풀이를 계속하는 남 염부제 중생 . . .

지옥에서 허덕이면서 지옥인 줄 모르는
이 남 염부제 중생을 건질 길은
지장보살 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부처님도 말씀하셨다
남 염부제 중생은 그 성품이 억세고 거칠어
조복하기가 어렵고 어려워도
지장대 보살께서 백 천겁으로
그런 중생들을 하나하나 구해낸다고 . . . .

가끔씩 절간을 찾아
그가 열심히 정진을 하는지 보곤 하였다

스님들이 그랬다
저 사람 제대로 할 것 같지 않고
그냥 도망갈 것 같다고 . . . . .

그런 와중에도
아직까지도 불평이 살아있기는 하지만
예전보다는 조끔 덜한 감이 오니
자기 딴엔 이겨내려 무척 용을 쓰는 모양이다
. . .
.
'
'
어찌하든 그는 참기 어려운 절간 생활을
백일 동안이나 잘 견뎌 내었다
참 장한 일이었다

백일 뒤
그는 가벼운 맘으로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환한 웃음으로 스님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서울 집으로 향한다

백 일 간의 절간의 생활이며
기도한 뒤의 홀가분한 마음을
식구들에게 빨리 전하고 싶었으리라

그가 서울로 향한 지 하루가 지났다

서울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다
" 너 이 ××야 죽을 줄 알아라"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루 전 만해도
기도 시켜주어 고맙다고 하던 사람이 . . .

무슨 연유인지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고
무조건 꼼짝 말고 기다리란다
죽여 버린다고 . . . .

허-참 !
죽인다는데 꼼짝 않고 기다릴 사람
누가 있겠냐 만은
꼼짝 않고 기다릴테니 내려 오라 했다

늦은 밤 그는 술이 만취해 나타났다
아마도 전화를 끊자마자
열차를 타고 온 듯 했다

다짜고짜 멱살부터 움켜쥐며

"이 나쁜 놈들아 부처가 어디 있고
지장보살이 어디 있느냐?
이 놈아 !
너 놈들 시키는 대로 백일동안 기도했더니
돌아오는 복이란 것이
겨우 마누라 바람나 도망을 가게 해 !
이 나쁜 놈들아 ! "

주위 사람들이 말리고 달래어 보지만
그의 눈은 이성을 잃어 버렸다는 듯
살기가 돈다

참- 어이없는 일이다
백일 기도 동안에
마누라가 그 사이를 틈타
다른 놈한테 가버렸단다
이 무슨 날 벼락같은 소리인가

이 사람의 사연인 즉
백일 기도를 마치고
이젠 부처님께 백일 동안이나 기도도 했으니
우리 가정 행복하게 살 것이다 하곤
기분 좋게 서울 집을 들어섰는데
반겨 줄 마누라는 없고
무언가 허전하여 살펴보니
마누라 옷가지며 물건들이 사라지고 없고
달랑 남아있는 편지 한 조각
"헤어지자고 . . ."
이 사람 심정. . . 오죽했겠는가 . . . .
이해하고도 이해한다.

참 ! 난감하다.
이거 오늘 죽어도 단단히 죽게 생겼다
우째. 이런 일이 . . . .

그는 욱박지른다
내 마누라 내 놓으라고 . . . .

잠시 지장보살님을 생각해 본다
분명히 무언가
이 사람한테 짐을 덜어 준 게 맞는데
도대체 무언가.
이 사람한테 무어라 설명을 해야 되나. 하다가
이 분한테 한가지 물어 볼게 있다고 했더니
이 사람 신경질적으로 물어 보란다

" 마누라 당신 마누라 아니지?"

이 사람 무슨 말이냐 한다
마누라가 내 마누라 아니라니 . . . .
곧 한 주먹이 날아 올 듯 하다

솔직히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결혼식은 안 했지만
서로 몸 맞대고 산지 오 년이 넘었다 한다
그런데 식만 안올렸지
우째 내 마누라가 아니냐 한다

나는 또다시 물어 본다
그 여인은 남의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꼬임을 써서 같이 살지 않았느냐고 . . .

잠시 머뭇거리던 이 사람
꼬신게 아니고
그 여자의 신랑이 너무나 구타가 심하여
도망 나왔기에 이렁저렁 말동무하다가
정이 들어 그만 같이 살게 되었단다
그런데 그게 무슨 잘못이냐며 눈을 부라린다

이렁저렁 이야기로 그를 타일러 본다

서울 가서 그 여인을 만나보면 알겠지만
무언가 지장보살님이
당신을 보호해 주려 했을 것이니
마누라라는 사람 만나서
흥분하지 말고 어찌된 연유인지
확인을 해 보라고 했다

그는 서울로 향했다
며칠 뒤 그는 또 다시 내려 왔다

이번엔 얼굴색깔이 틀리니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다

그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 여인의 말에 의하면
백일 기도를 떠나고 난 뒤 며칠 후부터
마음이 뒤숭숭하고 꿈자리가 어지러워
점을 보려 갔단다

예전에는
두 사람 궁합이 맞다고 하던 점보는 사람이
이번엔 엉뚱한 말을 하더란다

두 사람 안 헤어지면 낭패수가 있다고 . . .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가 있다고 . . . .

이 여인이 설마 하고
서너 군데 점 집을 다녔는데
똑 같은 소리를 하드라나

그래서 보기 싫은 본 신랑이지만
다시 본래 신랑한테로 갔더니
아- 글쎄. 아들놈이 성장하여
엄마를 빼앗아 간 놈을 죽인다고
칼을 갈고 있었단다

이 이야기를 하며
후-유 한 숨을 쉰다
자칫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뻔했다고 . . .

이 사람. 이제야 마음이 돌아앉는가 보다

동업중생 !
같은 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중생 !
서로 좋은 듯 하다가 서로가 죽일 듯
어떤 때는 서로가 죽이고 잡아먹히는 동물의 세계 !

남의 마누라 빼앗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남의 마누라 빼앗은 날 강도였다니 하며
쪼끔씩 눈을 뜨는 것 같다

그렇다. 부처님 법을 만나기 전에는
어떤 것이 옳고 그름을 알 수가 없는
우리는 남 염부제(이 세상) 중생이다

지금도 가끔씩 이 분한테서 연락이 온다

예전엔 남의 탓으로 돌리던
매사의 일이
본인이 부덕의 소치이겠지 하며
지장기도를 하며 참회를 한다고 . . . .

그려 그려
지장보살이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는지
어리석은 눈으로는 알 수가 없제

진실로 목숨을 버릴 정도로
마음 공부를 한다면 모를까
어찌 남 염부제의 옷을 입고
지장보살님의 대원력을 알 수 있으리요


종이 울린다
사바세계 중생 뿐 아니라
지옥의 중생까지도 마음의 조복을 받으라고 . . .

- - - 아침종성

원하옵건데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하여
철위산 짙은 어둠 모두 다 밝아지고
삼도는 고통없고 칼의 산 부서져서
뭇 중생 남김없이 정각을 이루어지이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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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자비하심에 눈물을 흘리며
글/ 손처사


며칠 전
개인 적인 볼일이 있어 서울엘 갔었다

이 년 만에 서울을 가는 지라
가슴도 설레 이고
인연의 사람들과
차 한 잔 하는 설레 임도 가지고
서울 땅을 밟았다

개인적인 볼일이 있는 곳은
서울의 분당이란 곳
신문에서 TV에서 보았던
좀 있다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인가
길목에서부터 검문.
또 쪼끔 지나니까 검문
건물 안에서 검문

참. 불쌍한 사람들이 갇혀 있는 곳이구나 생각하며
낮 동안 그네들과의 시간을 보내었다

분당을 벗어나 지하철을 타고
몇 년 전 기도를 시켜 놓았던
어느 사람 집엘 가 본다

그 분의 집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삶의 집안 분위기였다

이 분과의 인연은 묘하다

지금으로부터 칠 팔 년 전인가 싶다
전남 어느 지방에 토굴 생활 때 이 분을 만났다

그 당시에 그분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병을 낫고자
토굴을 찾아 왔었다고 했다

아이의 병은
세계적인 어느 의료진도 낫을 수 없는
업의 병이란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 당시의 아이의 나이는 4살,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아이였다
나의 눈에 비친 아이는 부처님이었다
사지가 축 늘어진
뼈라곤 없어 보이는 아이가
어찌 내 눈에 부처님으로 보일까 . . . .

이 분들은 국내 의료진들이 포기를 하자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외국 어느 병원에 치료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전이 없자
유명하다는 무속인
유명하다는 스님 등등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러는 와중에
나의 토굴에 오게 되었다

나는 그 분에게 물어 보았다
혹 부처님 전에 잘못한 일이 없는지를 . . .
그 분은 처음엔 대답하지 않다가
첫날 기도를 하곤
저녁에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우리나라 불교의 치욕스런 사건에 동원된
주먹의 보스이었다
각목으로 부처님 전을 피로 얼룩지게 한 장본인 !

그 사건 당시에
산 속 토굴에서 노스님과 난 눈물의 참회를 하였었다
우리나라 불교가
이렇게 허무하게 깡패들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꼴을
공부인 들의 업이라고 말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인과응보. . . . .

인과응보를 가르치던 분들이
인과응보에 휩쓸려
마음을 볼 줄 몰랐으니 . . . .

부처님의 말씀은 거짓말이요
이 세상은 부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막행막식에
무슨 놈의 정법이란 구호아래
욕심을 버려야 할 사람들이
물욕에 눈이 어두워
스스로 두 팔 걷어 부치고
부처님 믿지 말라
온갖 신문에 TV에
마스크 한 얼굴 내보이며 . . . .

장본인들이여
먹고살기 힘들면
승복일랑 벗고
지하철 계단에서
머리 땅에 쳐 박고
두 손 하늘 향해 벌리시구려

가르침을 주시는 분들
이젠 진정 부처님 전에
참회는 하옵는지요 . . . .

오늘 난 이 글을 쓰면서
부처님이 어떻게 증명하시는지 보여주려 한다

그 분을 주먹아저씨라 칭하는 게 낫겠다
여하튼 주먹 아저씨와 나와의 인연.
부처님 전을 짓밟은 사람
묘한 인연이다

신장님들의 분노가 이글거렸지만 만류한다
이 분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부처님께 마음 속으로
자비의 손을 구한다

부처님이시여 !
님의 자비하심을 보여주소서 라고 . . . .

주먹 아저씨와 난 일년간의 약속을 하였었다
일년 안에 아이의 병을 완쾌시키겠다고 . . .
대신 내가 시키는 대로
참회의 기도를 하여야만 한다고 말이다
일행 중에 한 사람은
나의 목숨을 담보로 하라 욱박 지르기도 했다
(주먹아저씨는 지금껏 모르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그네들의 생태계로선
당연히 목숨을 내 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 분들은 처움엔
아이의 병을 낫기 위해
열심히 기도를 했었다

그리곤 서울로 올라가서
가까운 절에 가서 기도하게 된다

그 날도 같이 동참을 하였었지만
밤중에 법당에서
남자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장경 독송 소리가
울음과 함께
산 전체를 울린다
그는 자기의 죄 값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오욕죄!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고 . . . 등등

그 분이 눈물을 훔치며
법당문 밖을 나오자
내가 안고 있던 아이가 코에서 피를 쏟아낸다
드디어 아이가 제대로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변도 보고
원활한 생식기가 작동한다고
둘 부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그 분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경찰관이 염주와 다기를 사오고
어느 분은 외국에서 구한 불상이라고 가져오고
여하튼 많은 사람들이
이것 저것 챙기다 보니
가정 내에 기도방이 차려지게 되었다

이분은 조석으로 예불을 하고
또한 참회 기도를 하였었다

그리고 아이는 차츰 차츰 좋아지게 되었다

며칠 전
난 주먹아저씨가 어떻게 지내나 싶어
그 분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눈에 들어오는 부처님
많이도 성장했다
이제 장애인 학교에 4학년이라며
자랑이 늘어진다
그리곤 처사님 보는 앞에서
일어서는 것을 보여주라며
아이를 재촉인다

내 맘속에
부처님께 감사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 분들과 밤이 새는 지도 모를 이야기 이어진다
그리고 그 분들이 실토를 한다
솔직히 칠 팔 년 전에
서울대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그리고 외국 병원에서도
비슷한 진단으로 치료 불가능 판정을 받았다며
속인 것 같아 죄송하단다

그러나 이젠 아이의 가는 길엔
이상한 일만 벌어진단다
지금도 일년에 두 번씩 두 달간
외국에서 치료를 받는데
그 경비가 저절로 이루어 진단다
어떡해? ? ?
병원 갈 때 쯤이면
장사가 그리 잘 된다나 .. . . .

장애인 학교에서도 대단하단다
이 아이가 그 학교에 들어가고 부터
학교의 숙원 사업들이
아이의 부모를 통해 이루어 진다며
대접이 완전히 틀리단다

그려 ! 그려 !
두고보시구려 . . . .
당신의 참회가 깊어 갈수록
장애인인 그 아이가
우리들에게 아니
세계적인 인물이 될 거구먼 . . 하하하

주먹아저씨 한가지 궁금한 게 있다며
나의 손을 잡고
기도 방으로 안내한다

기도 방 불단엔
중앙에 아미타불
좌측엔 지장 보살
오른 쪽엔 빈자리이다

지난날에도 이분은 내게
이상하게도 다른 것은 제대로 채워진 것 같은데
오른쪽 자리만 비어 있어
짝이 맞지 않는다고 얘기했었다
그래서 목각이라도 사서 모실까 하는 것을
내가 못하게 했었다

오늘은 이야기해 줄 수 없느냐 한다

한참이나 침묵 끝에
난 그 분에게
그 자리는 당신의 자리라 비워 두었다고 말한다

눈이 휘둥그레진 그 분
가당치도 않은 말씀이라고
그런 말씀하지 말란다

난 그 분에게 말한다
당신의 진정한 참회가 이루어지는 날
당신은 부처님전의 빚을 갚기 위해
관음 행을 할거라고 . . . .
그래서 자리를 비워 두었다고 . . . . .

이른 아침 그네들의 집을 나서며
혼자 중얼대는
나의 두 뺨 위로 빗줄기가 쏟아진다

『죄의 자성 본래 없고
그 마음 사라지면
마음에서 일어난 것
죄업 또한 없어지고
죄와 생각 흔적 없이
모두가 공 하여야
이것을 이름하여 참회라 한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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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을 짚고 단을 내려와 제게로 걸어오시던 지장보살님” 저는 오늘도 그 모습을 뵙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빛과 색이 있습니다. 들에 핀 이름 없는 한 포기 들풀도, 작은 조약돌 하나도 그만의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닌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상의 어느 것에도 비교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과 색을 지장보살님 모습에서 보았습니다.

소리가 잠든 세계, 승화된 빛으로 다가서시던 그 모습은 천상의 재현처럼 성스러운 한줄기 찬란한 빛이셨습니다. 석장을 짚고 불단을 내려와 춤을 추듯 제게로 걸어오시며 손을 흔드시던 지장보살님을 친견하며 저는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지장보살을 염송했습니다.

탐욕으로 지친 병든 육신을 이끌고 능인 법당을 찾아와 두 무릎을 꿇고 오열로 참회했던 그날은 묵묵히 미소로 저를 지켜만 보시던 지장보살님이셨습니다. 아버님 위패를 법당에 모시고 작은 일부터 찾아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신문 접기, 교도소 봉사, 법당 청소 등을 하며 열심히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고향에 온 것처럼 법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져 집에 돌아 갈 생각조차 잊곤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기도 중에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보니 더욱 몸을 낮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위패들을 모셔 놓은 영가단에 초하루, 지장재일은 꽃을 사다 꽂기 시작한지 2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꽃을 꽂는 전날 밤 꿈에는 꼭 지장보살님이 매번 다른 색깔의 꽃을 들고 나타나십니다. 저는 지장보살님이 들고 계셨던 꽃을 사다 꽂습니다. 노란꽃, 빨강꽃, 국화, 백합 등등......

요즘은 상조회 시다림 봉사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원장스님 말씀처럼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망자를 위로하여 저승 먼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도리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불자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지난번 삼성병원 시다림 봉사를 나갔을 때였습니다. 어느 영가가 슬피 울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 시다림을 나간 상조회 법우20명이 열심히 영가천도를 해주고 마지막 목탁을 치고 나서보니 어제 본 그 영가가 영정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가 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실이었습니다.

요즘도 우리 능인 상조회에서는 조를 나누어 쉴 틈이 없이 시다림 봉사를 다닙니다. 법당에서도 천도재, 49재, 막재등을 지냅니다. 쉼 없이 기도하고 수행 정진해야 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영가들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참회가 필요합니다. 육신을 벗은 영가들에게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영가천도를 해주고 난 날은 가끔은 극락에 가는 꿈을 꿉니다. 온 천지가 보석으로 장식된 그곳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신비로웠습니다. 살갗을 스치는 감촉이 너무도 부드러워 꿈을 깨고 나면 화가 났습니다. 훗날 내가 육신의 몸을 벗으면 갈 곳이기에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곳이 그립기도 합니다. 지금은 지광스님 말씀 잘 듣고 부처님 법 따라 수행하며 열심히 봉사하고 살면 됩니다.

법당에 들어서면 하심하는 마음으로 청소하고 작은 물건 하나도 소중히 다루며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는 것, 이것이 바로 도 닦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자칭 법당의 왕언니입니다. 누구라도 초발심으로 우리 능인선원을 찾아오는 법우들이 있으면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항상 지광 스님 화이팅을 외치며 작은 힘이지만 부처님을 위해 쓰고싶습니다.

내일도 삼성병원에 시다림봉사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생명이 영가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연장일 뿐입니다.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精進行/28기 출처:능인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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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다나까 소재 지장사 ▣


1700년대 초반,21세의 요시꼬 (吉子)는 일본 다까다에사는 스즈끼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신방을 치르고 나서야 남편 집안의 젊은 며느리들이 나이 서른에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더욱이 그와 같은 일이 무려 2백년 동안 이나 계속 되었다는 것이다.
'나이 서른이면 무조건 죽게 되다니...'크게 상심한 그녀는 친정으로 가서 어머니에게 이야기 하였다. 그러자 친정어머니는 잠깐 생각하더니 단호하게 말하였다 "네가 서른살에 죽고 싶거든 10년 조금 못되는 기간이나마 마음껏 즐기면서 편안하게 살고,서른살을 넘기고 싶거든 오늘부터 지장 보살님께 매달려라 .

어떻게 하겠느냐?" "지장보살님을 부를께요" "집안 식구들이 방해를 하더라도 상관하지 말고 불러라.죽는 것은 너다" 그날부터 요시꼬는 쉬임없이 지장보살을 불렀다. 부엌에서 일할때도 빨래를 할때도 잠자리속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지장보살을 불렀다. 이염불 소리에 처음으로 역정을 내기 시작한 것은 시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그나마 시아버지는 이해를 해주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자 둘째부인과 하나가 되어 방해 하기 시작 했고 시부모가 함께 반대를 하자 마침내는 남편까지 염불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어느날 남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장보살 부르는 소리도 듣기 싫고 꼴도 보기 싫으니 친정으로 가벼려!" 요시꼬가 울면서 친정집으로 가자, 이번에는 친정어머니가 꾸짖었다.

"답답한 것도 너다.죽는 것도 너다 .남편이 대신 죽어 준다더냐,시부모가 대신 죽어 준다더냐?
서른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싶거든 네가 지장 보살을 불러야 한다. 어떤 방해에도 꺾여서는 안된다" 시집으로 다시 돌아 온 요시꼬는 가족들의 갖은 구박속에서도 지장보살 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서른 살이 되던 해봄 ,요시꼬의 꿈에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간되지 않는 여인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나는 2백년전,이집안의 남자들에게 깊은 원한 을 품고 있으면서 ,이집안 며느리들이 서른살이 되면 모두 죽여 버릴것을 다짐했다. 그결과는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네가 지장보살을 열심히 부르니 ,그 염불소리에 내 원한이 녹아 차마 죽이지를 못하겠구나. 나도 이제 이 원한의 몸을 벗고 싶다.

그러나 나의 죄업이 너무 깊어 이귀신의 몸을 나의 힘으로 벗을수가 없구나 너에게 부탁하노니 ,지장보살의 츰부다라니를 나무판에 새겨 10만장을 찍어라. 그리고 백중날(우란 분재:음력7월15일)음식을 만들어 배에 싣고 스미다가와 강을오르 내리며 음식과 츰부다라니를 강물에 넣어주도록 해라.

그렇게 하면 그공덕으로 나는 모든업을 면하여 좋은나라에 태어 날수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이 집안의 며느리들은 계속 서른이 되면 죽게 되는것이다. 이 집안의 잘되고 못되고는 너에 달렸으니 꼭 명심하기바란다" 백중까지 남은 날도 백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요시꼬는 밤잠을 줄여가며 츰부다라니10만장을 찍었으며 ,가족들의 도움으로 많은 음식을 장만하게 되었다.

백중날 그들부부는 꿈속에 나타난 영가의 부탁대로 강을 오르내리며 츰부다라니와 음식을 던져 주었고 그날밤 부부는 똑같은 꿈을 꾸었다. 스미다가와 강위에 공중에 광명을 발하는 구척장신의 노스님이 우뚝서서 손에 든줄을 강물위로 흔들자,물속의 귀신들이 그 줄을 잡고 따라 올라가는 것 이었다.

목이 잘린 귀신, 팔다리가 떨어진 귀신,아기를 안은 귀신,처녀귀신,총각 귀신등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은뒤 그 집안의 며느리들이 죽는 일이 없어졌고, 요시꼬는 아흔 살까지 장수하였다.

또 슬하에 십 여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들 부부는 보은의 뜻으로 집을 절로 바꾸어 지장사(地藏寺)라 하였다. 지금도 지장사에는 그때의 츰부다라니판이 보관되어 있으며 ,매일같이 많은 신도들이 영험 있는 이 절을 찾고 있다.

두손 모아 간절히 ...

지심귀명례 백천방편 교화중생 지장왕보살 마하살


( 출전: 영가천도, 우룡 스님, 효림, 1999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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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하루는 지장보살님을 염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과 함께 시작한
하루하루는 늘 상쾌합니다.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할때는 물론 절에 와서 노래하고, 차를 탈
때 도 지장보살을 염하고 지장보살님께 감사하면서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칩니다

이렇게 지장보살님을 의지하면서 살게 된 것은 지장보살님의 큰 가피를 입고 자연스럽게 생
긴 신행생활입니다. 불교를 믿고, 부처님 과 지장보살님께 귀의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직접
가피를 입고나서야 오늘과 같이 철석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으니 약간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지만,병고의 시련 속에서 "지옥중생을 다 건지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으리라"는 지장보살님의 대원력을 몸소 느끼게 되었고 나도 이제부터는 "지장보살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리라.."는 새로운 서원과 희망을 갖게 되니, 그또한 지장보살님의 크신 위신력이라 믿습니다.

몇 년 전 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픈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는게나을 것 같단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과 함께 수술 날짜를 받고 나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수술을 한다해도 건강을 다시 찾을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사실 주사나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한 특이체질이고... 마이신 등, 항생제에 대한 알러지가 있어 평소 감기에 걸려도 약도 못먹어 한약과 민간요법으로 이겨내곤 했는데, 대수술이라니... 그때 불현듯 수술하고 죽을바에야 죽을 힘 다해 기도정진이나하고 죽자는 생각이 들어 , 스님께서하라는 대로 지장백일기도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수술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수술 일 주일 전,그날도 전 삼보사 법당에서기도를 하였습니다. 불자님들과 함께 소리 높여 염불하는 고성염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갑자기 불단에 모셔진 지장보살님께서 다기그릇 을 들고 제 앞으로 오시는
것이였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선 다기물을 제게 주시면서 다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 무렵 목
이 아파서 음식물을 넘기기 힘든 상태라 목은 말랐지만, 먹기싫다고 하니, 지장보살님께선 마치 어머니가 이제 갓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에게 밥을 떠먹여 주듯, 먹기싫어 뿌리치는 아기에게 다 먹이려고 애쓰는 어머니처럼 제게 다기물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

제가 다 먹을 때까지 자비로운 눈빛으로 지켜보시던 지장보살님께서는 제가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으시곤 다시 불단 위에 앉으시는 것이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주위를 보자 불자님들은 여전히 기도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물을 먿어먹은 다음 날부터 제 몸은 날아갈 만큼 가벼워졌습
니다. 기도할 때도 몸이 아파서 몇 번이나 쉬어가며 했었는데, 마치 새 몸을 갖다 붙인 것같
았고, 그동안 저를 괴롭혔던 병마가 싹 빠져나간 것 같았습니다.

일단 수술 예정 날짜에 맞춰 병원에 가서 재진찰을 해봤는데 기적이라며 놀라워하시는 의사
선생님을 뵈면서 저는 저절로 미소가 나왔습니다. 전 " 기적이 아닙니다. 불가사의하신 지장
보살님께서 대자대비하신 위신력으로 저를 치유해주신 것입니다.

지장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이렇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답니다." 라는 답변을
마음속으로 하면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현대의학으론 수술을 해도 목숨을 장담못한다고 했는
데 수술도 하지않고 지장보살님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살면서 저는 늘 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불자로써 부끄럼없는 삶, 지옥중생을 다 구제하기전에는 성불을 하지 않겠노라는 지장보살님
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 이 절절하게 들었습니다. 이제는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때도 모든 중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가르침을 배우고, 생활속에 실천하는 삶을 살아 너와 내가 모두 중생의 탈을 벗어 이땅을 극락세계로 만드는 큰 일꾼이 되길 기원하면서 하루하루 지장보살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영원히 이 땅이 불국토되기를 기원하면서 지장보살님을 염하고 찬탄하는 노래를 부르며 이웃
에게 법음을 전하리라는 원력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지장보살님전에 서원드립니
다.

* 이글을 쓰신 반야화님은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화산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은평구 역촌동
삼보사 합창단단장으로써 법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원전: 지장보살 영험록 김 종매외 (불광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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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선운사 도솔암 지장보살 영험담


"보살님, 오늘은 3천배를 해보시지요."

부천에 사는 자비심(가명)보살은 가끔 고창 선운사 도솔암을 찾아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그날따라 내원궁에서 같이 기도하던 스님이 밑도 끝도 없이 3천배를 권하자 의아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라 손해볼 것 없다는 생각에 10시간에 걸쳐 비지땀을 흘리면서 3천 배를 마쳤다.

그 다음 날 부천으로 돌아간 보살은 주차장에 남편의 자가용이 없는 모습을 보고는 남편이 외출했나싶어 열쇠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집의 문은 열려있었다. 혹시 도둑이 들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보살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웬걸? 남편이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가 반갑게 아내를 맞는 것이었다.

"여보,여보. 나 정말 큰일 날 뻔했어.죽지않은게 정말 믿기지 않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던 보살은 남편의 말을 듣자 등골에 식은 땀이 흘렀다. 그러니까 어제 남편이 자가용을 몰고 나갔는데 아마 속도를 좀 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전봇대와 충돌해서 차가 전복되어 폐차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남편은 털끝하나 다친 곳이 없었다고 한다. 사건현장 주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기적이 아닐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자비심보살은 그 모든 게 도솔암 내원궁에서 3천배를 드린 덕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 그 때 힘들고 귀찮은 생각에 스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정말 어쩔 뻔했을까?

"부처님 고맙고 고맙습니다. 지장보살님, 살펴주신 덕분에 남편이 철갑옷을 입은 마냥 조금도 다친 곳이 없으니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보살은 그 일이 있은 후 형편이 허락하는 한 자주 도솔암을 찾는다고 한다. 하기야 남편의 목숨을 구해주신 지장보살님이 계신 곳인데 아무리 길이 멀다해도 어찌자주 찾아오고 싶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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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의 지장보살님은 특히 병고로 고생하는 불자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언젠가 대
구에 사는말기 유방암 환자였던 한 보살이 찾아와 지극 정성으로 기도한 지 23일 째 지장보살님이 방광하심과 동시에 그 보살은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 때 방광의 정도가 얼마나 휘황찬란했던지 새벽 도량석을 하던 스님들은 내원궁에 불이 난 불 알고 허겁지겁 뛰어올라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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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 사는 보광화 보살은 육순이 넘으면서부터 꺼림칙한 꿈에 시달려야했다. 꿈 속에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친구가 나타나 보살에게 항상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네, 갈 길이 먼데 뭘 그리 꾸물대는가? 빨리 나를 따라가세."

보광화 보살은 꿈 속에서 너무 피곤하니 5분만 더 잔 후 출발하자고 애걸했다. 그러나 친구는 흉흉한 기세로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그치기 일쑤였는데 그 옆에는 돌아서있는 탓인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여자가 보따리를 들고 서 있더란다. 딱 5분만 , 딱 5분만, 보살은 그렇게 친구와 실랑이를 하다가 잠에서 깨어나곤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꿈을 꾸면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 꿈을 꾼 후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졌고, 또 한번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보살은 잠자리에 드는 일조차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보살은 도솔암 지장보살님이 영험하시다는 말을 듣고 만사 제쳐좋고 달려가 기도를 하다가 쉬는 틈을 이용해 한 스님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스님은 지장경을 매일 독송하며 지극히 지장보살염불을 하고 정성스럽게 절을 하라고 가르침을 주셨다고 한다.

과연 도솔암에 다녀와 매일 지장경을 독송한 이후 보살은 다시는 그 꿈을 꾸지 않았을 뿐더러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도 전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영험도량에서 기도성취한 이야기 진 현종저 대원미디어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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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도림사 지장보살님의 영험담


1) 우물을 자리를 가르쳐 주신 지장보살님

도림사는 사찰의 위치상 상수도 시설을 하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물은 지하수에 의존하는데, 기존의 지하수로는 늘 물이 부족해서 물의 양이 많은 샘을 새로 파려고 했다.

90년 봄, 기술자를 데려다 여기 저기 적당한 곳 몇 군데를 파 보았는데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스님은 기술자에게 의지하지 말고 부처님께 의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지장보살님께 일념으로 [샘 자리를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드렸다.

어느 날 밤, 스님 꿈에 지장보살님이 나타나서, 스님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아무말 없이 산으로 올라가신다.

스님은 지장보살님께 합장을 한체채조용히 쳐다보다가, 따라 오라는 뜻이라는 것을 곳 알아차리고 뒤라 갔다.

산 7부 능선에 다다른 지장보살님은 손을 펴서 작은 거북이 한 마리를 땅위에 내려놓으니, 거북은 이리저리 한참 기어다니다가 땅에 구멍을 파고, 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스님은 꿈에 본 곳으로 올라가 보았다. 너무나 꿈이 생생해서 거북이가 파고 들어간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잡초를 헤치고 이리 저리 찾고 있는데, 풀숲에 놀랍게도 지난밤에 거북이가 파고 들어간 것과 비슷한 작은 구멍이 있지 않는가!

스님은 확신을 갖고 그 곳을 팠다. 그랬더니 거기서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좋은 물이 많이 나와서, 지금은 그 물로 식수, 생활 용수 ...... 등 모두를 충당하고, 물 걱정 없이 살고 있다.

우물이 완성되고 몇 달이 지나자, 스님 꿈에 지장보살님이 또 나타나서 이번에는 금붕어 3마리를 절 입구 잔디 위에 내려 놓고 가신다. 스님은 그 자리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서, 지금 금붕어를 기르고 있다. 물이 너무 좋아서 금붕어는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생기 있게 잘 살고 있다. )

2) 귀에 소리 나는 병을 고친 재일교포

재일 교포 차□식씨는 오래도록 일본에 살다가 90년도 봄 한국으로 돌아 와서, 지금은 부산시 동래구 명륜동에 살고 있다.

일본에서는 사업에도 성공해서 돈도 좀 벌었고, 한 때는 민단의 간부직도 지낸 유능한 사람이다. 7년전 본부인이 죽자, 한국에 나와 살고 있는데, 일본에 있을 때 노후에는 한국에 와서 살려고 부인을 시켜 일본의 재산을 미리 한국으로 갖고와서 적당한 곳에 투자를 해 놓았다. 그런데 부인이 갑자기 변을 당해 죽자, 부인이 일본에서 갖고 온 재산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차□식씨는 심증이 가는 곳을 모두 탐문 해보았으나 결국 재산의 행방은 알 수 없고, 이상한 병만 얻었다. 혼자서 살기가 불편해서 5년 전에 재혼을 했는데, 재혼한지 3달 뒤, 본부인이 꿈에 나타나서 차□식씨에게 욕을 하고 머리를 때리는 꿈을 꾸었는데, 그때부터 머리 위에서 이상한 잡음이 나며 두통이 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온갖 약을 다 써 보고, 여러 병원을 다 찾아 다녔으나 증상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그후에도 꿈에 본부인이 보이기만하면 이상하게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두통과 잡음은 더 심해지기만 했다. 절망에 빠진 차□식씨는 어느 날 도림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스님의 권유에 따라 지장기도를 시작했다.

파 마늘등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술과 고기를 삼가하고,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정성을 다 해서 스님과 함께 새벽예불를 올렸다. 어느 날 아침, 법당에서 혼자서 절을 하는데 그날은 기분이 좀 좋아서 절을 많이 하기로 결심하고 30번쯤 절을 하고 그만 두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뒤에서 [108배를 해라! 108번 절을 해라!] 하였다. 뒤돌아보니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놀라움과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열심히 108배를 올렸다.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스님은 그저 가만히 미소짓기만 하였다. 7일 기도를 마친 날 새벽, 차□식씨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의 본부인이 커다란 붉은 연꽃을 손에 들고 골프장 보다 더 널찍한 잔디밭을 천천히 걸어서 산 위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꾼 다음부터 두통도 없어졌고 머리 위에서 나는 소리도 없어졌다.

차□식씨는 모두가 도림사 지장보살님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매월 지장재일에는 도림사에 나가 지장보살님께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

원작성자: 권 영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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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멧돼지로 현신한 지장보살


우리나라 제일의 생지장도량으로는 보통 철원의 심원사를 꼽는다.

생지장이란 '살아계신 지장보살'이란 뜻이다.
심원사 법당에 들어서면 크기가 한 자 남짓한 지장보 살상을 뵈올 수 있다.
이 지장보살을 뵙고 있노라면 옛날 교복 자율화가 되기 이전의 단발머리 여고생이 연상된다.
꼭 단발머리를 빗어내린 듯한 모습의 지장보살은 수더분하기가 시골의 소녀를 빼다박은 듯해서,
거기에서 그 어떤 숭고미나 경건미는 찾기가 어렵다.
그만큼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는 분이 바로 생지장보살이다.

심원사는 신라 진덕여왕 I년(647)에 그 유명한 영원조사가 창건한 절인데,
한때는 수행하는 대중들이 천 명을 넘을 때도 있어서 중세에는 매우 큰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보개산 줄기 남쪽으로는 심원사가 있고 북쪽으로는 석대암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다.
현재는 민통선 안쪽이기에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인데,
석대암 뒤쪽으로 난 봉우리를 환희봉이라 부르고 있다.
이 환희봉을 대소라치라 하기도 하는데 그 대소라치 너머에는 수백 호의 화전민이 살고 있었다.

이곳은 워낙 산세가 험준한데다 땅이 척박하여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꾸려 가기가 어려웠다. 기껏해야 조, 옥수수, 콩, 기장 따위가 고작이었고
그나마 일조량이 모자랄 경우에는 냉해로 흉년이 들곤 했다.
그렇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레 사냥을 곁들이게 되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를 지었고 겨울 한 철은 사냥을 주업으로 삼았다.
특히 눈이 내리는 날이면 노루나 멧돼지 몰이 가 적격이었고
토끼나 족제비도 그런대로 수입이 짭짤했다.
사냥꾼들은 나름대로 수렵대라고 하는 조직을 형성하고 있었다.

수렵대 대장은 이순석이란 사람이었는데 그는 다섯 자 밖에 안 되는 작달막한 키였지만
담이 세기로 소문이 났다. 물론 힘도 장사였고 또 날렵했다.

하루는 이순석이 친구 한 명을 대동하고 사냥을 나갔다. 창을 들고 활통을 어깨에 메었다.
둘은 대소라치 깊은 골짜기에 이르렀다.
숲은 우거져 한낮인데도 침침했고 겨울이라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눈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이 골짝 저 골짝을 찾아 헤맸지만 다람쥐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즈음 들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개미 새끼 한 마리 구경할 수 없는 날은 아직까지 없었다.

"여보게, 대장. 오늘은 아무래도 허탕인 것 같네. 참 이상하군.
이렇게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적은 없었는데."

"친구, 둘이 있을 때는 대장이라 부르지 말고 그냥 이름을 불러 주게. 쑥스럽구먼.
그리고 사냥이란 게 꼭 잡히기를 바랄 순 없지.
어쩌다 운이 좋으면 큰 것이 걸려들지 누가 아는가?"

"그야 자네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하네. 하지만 요즈음 우린 먹을 양식마저 떨어졌다네."

"아니, 가을에 수확을 했을 게 아닌가.
이제 초겨울인데 벌써 양식이 떨어지면 보릿고개를 어찌할 셈인가"

"쉿!"

친구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짧은 파열음을 냈다. 순석이 얼굴을 돌렸다.

"저기, 저기 좀 보게. 저게 뭘까? 호랑이 같기도 하구 아니야 곰?
아니 아니, 저것은 돼지가 분명해."

친구가 소리를 낮추며 말하는 사이 순석의 손에는
이미 화살을 메긴 활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순석은 손에 땀을 쥐며 시위를 놓았다.

"표-!"

화살은 돼지의 왼쪽 어깻죽지에 정확하게 꽂혔다.
비틀거리며 달아나는 돼지는 노오란 털을 지니고 있었다. 아름다운 황금빛 멧돼지였다.
숲 사이로 언뜻언뜻 내리꽃히는 햇살을 받을 때는 더욱 아름다웠다.
두 사람은 핏자국을 따라 능선과 골짜기를 벌써 몇 개나 넘었다.
계곡에 이르렀을 때 돼지의 흔적은 더 이상 없었다. 그들은 목이 말랐다.
마침 그들이 앉아 있던 옆에 조그마한 웅덩이가 있었다.
타는 갈증을 적시기 위해 그들은 엎드려 한 참 동안 정신없이 마셔 댔다.
순석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어어!"

친구가 순석을 바라보았다.

"여기 물 속에 뭐가 있어. 물이 출렁이지 않게 잠시만 기다려 봐."

잠시 후 동그라미를 그리며 번져 가던 파장이 멈추고 물은 거울처럼 깨끗했다.
거기에 순석이 방금 전에 쏘았던 화살이 꽂혀 있었다. 순석은 화살을 잡아당겼다.
화살 끝에 돌 하나가 묻어 나왔다. 단발머리를 빗어 내린 것 같은 조그만 석상이었다.
손에는 조그마한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다. 순석은 그 석상이 지장보살임을 간파했다.
언젠가 어떤 스님으로부터 들은 지장보살을 생각해 냈다.

손바닥 위의 밝은 구슬은 너무나 영롱하여 얼음인 듯 비치는 대상에 따라 색깔을 바꿈이 자유롭네.
몇 번이나 분부했던가 오욕의 어둠을 뚫고 나오라고 하지만
그 속에 갇힌 중생 밝은 구슬을 보려 하지 않네.

"여보게, 이분은 지장보살님일세. 저 왼손에 들고 계시는 작은 구슬을 보게나.
지장보살은 명주를 들고 계시거든."

"그래? 우리 건져 올려 보세."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지장보살 석상을 들어 올렸으나 수면까지는 쉽게 떠오르는데
더 이상은 무게 때문에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석상은 크기로 보아
그 석상의 두세 배라도 장정 혼자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순석은 화살이 꽂힌 석상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합장을 했다.

"지장보살님! 저희가 어리석어 성상을 몰라뵙고 활을 쏘았습니다.
얼마나 어깨가 아프시겠습니까? 하오나 저희들의 어려운 생활 형편도 참작해 주옵소서.
저희들은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없어서 사냥을 하게 되었고
고귀한 생명을 수없이 빼앗았나이다. 보살님께서는 저회들의 잘못을 용서하옵소서.
만일 저희들을 용서하신다면 내일 다시 찾아 뵙겠으니 그 증거로 샘가에 나와 앉아 계시옵소서.
그렇게 되면 저희들도 당장에 출가하여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지성을 다해 수도를 하겠나이다."

그들은 그처럼 기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순석은 수렵대 3백여 명을 이끌고 지장보살이 잠겨 있는 샘으로 올라갔다.
과연 지장보살 석상은 웅덩이 가에 나와 앉아 계셨다.
이를 본 순석과 그의 친구는 그 자리에서 미리 준비해 간 배코칼로 삭발을 했다.
그리고 수렵대 3백여 명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그 자리에는 절이 세워졌다. 절 이름을 석대암이라 했다.

석대암에 모셔진 지장보살 석상은 2백여 년 동안 중생들의 귀의처가 되었다.
그러다가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민통선이 이어져 신도들이 참배할 수 없게 되자
석대암에 모셔져 있던 지장보살 석상은 보개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심원사로 이사를 하신 것이다.

지금도 심원사 지장보살상에는 그때 이순석의 화살을 맞은 자국이 왼쪽 어깨에 선명히 나 있다.

이는 지장보살이 살생을 업으로 하고 살아가는 대소라치 사람들에게서
산짐승을 보호하려는 자비심에서 현신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수렵이나 어업, 또는 정육점, 도살업을 주로 하는 신도들이 심원사를 찾아
지장보살께 참회기도를 올리고 나면 사업이 더욱 번성한다고 하여 연일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한 번은 지장보살을 모신 석대암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법당을 맡은 부전스님이 옥등잔에 불을 켜다가 잘못하여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옥등잔은 절반으로 쫙 갈라지고 못 쓰게 되었다. 부전스님은 송구하기 그지 없었다. 값을 떠나서 성보를 깨뜨렸다는 자책감에 몸둘 바를 몰라했다. 그는 다시 다른 등잔을 구하러 요사채로 내려오는데 갑자기 등뒤 법당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여보게, 부전. 내가 옥등잔을 붙여 놓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와서 불을 붙여라."

부전은 얼른 되돌아 법당으로 달려갔다.
불을 켜보니 옥등잔은 깨어진 금이 남아 있을 뿐 좀전처럼 불을 밝힐 수 있었다. 기름도 새지 않았다.
부전은 지장보살 석상 앞에서 무수히 절을 했다. 이 지장보살 석상은 청록색이다.
나중에 여러 번 개금불사를 했지만 며칠 안 가서 저절로 벗겨지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금은 아예 개금을 하지 않은 순수한 돌 색깔 그대로 모셔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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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서 주운 지장보살의 영험

당나라 간주(簡州) 금수현(金水縣)에 살던 등시랑(鄧侍郞)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사람
은 본래부터 부처님을 믿어왔다. 그는 어느날 길가에서 지팡이 머리 같은 것을 주웠는데 거기에는 스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등시랑은 그것을 주어서 집에 가지고 와 벽에 꼿아 두고, 二, 三년이 지나서 등시랑은 병
이 들어 죽었다. 염라청에 끌려간 그에게 염라대왕은 매우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았는
데 그때에 한 스님이 홀연히 나타나니, 형용이 매우 누추했으나, 대왕은 벌떡 일어나 자리에서 내려와 공경스러이 합장하며 그 앞에 꿇어앉아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더라.
스님이 답하기를
"이 사람은 나의 신도이니, 꼭 죄를 사하여 주기를 바라오." 하시는 것이었다.
대왕은 대답하기를

"이 사람은 죄업이 이미 결정되었고, 또한 수명과 식록까지 모두 다하였으므로 죄를 사해 주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했다.

스님이 다시 말하시기를

" 내가 옛적에 삼십삼천 선법당(善法堂)에 있을 때, 부처님께서 나에게 부촉하시기를 <죄업이 정해진 모든 유정 중생들도 구제하라>고 하셨으며, 내가 죄업 중생들을 제도코자 하는 것은 오늘 처음 시작하는 일도 아니니 이 사람은 그다지 중한 죄를 범한 것도 없는데 어찌 구제 하지 못한단 말이오?" 하셨다.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나더니, 공손스러운 말로 여쭙기를

" 대사님 원력이 크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으시니 마치 금강산과 같습니다. 대사님의 뜻이 그러하시니 이 사람을 곧 인간으로 내보내겠습니다." 하더라.

이 말을 들은 스님은 매우 기뻐하시면서 나의 손목을 잡고 오던 길로 다시 인도해 주셨다. 우리 마을 가까이 와서 헤어질 때 스님께 법호를 여쭈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장보살이니라. 네가 인간에 있을 때에 길가에서 나의 형상을 보고 잘 알지 못하면서도 소중하게 주어다 너의 집 벽에 꽂아둔 일이 있지 않느냐? 그것은 아이들이 장난으로 지팡이 머리에 내 얼굴만 새겨두고 그 밖의 나머지는 새기지 못한 것이니라.그래서 나의 형상이 이렇게 추하니라. 네가 나를 소중히 한 마음씨가 갸륵하다."

이 말을 마치다 문득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더라. 그리고 그는 이제 다시 살아날 수 있
게 되었다. 시랑이 깨어난 뒤에 생각이 나서 자기 집 벽에 꼿아둔 지팡이를 다시 보니, 과연 그 말씀과 같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팡이 가운데가 갈라졌으므로 전단향목을 구하여 다시 五촌 가량 크기를 보충하여 조성하였다.

시랑이 죽을 곳에서 살려준 지장보살의 은공을 생각하고 정성을 다하여 조성하였던 것
이다. 그 뒤로부터는 지장보살 형상이 때때로 광명을 놓아 집안을 밝게 비쳤다. 시랑은 크게 환희심이 나서 이번에는 아주 새로이 지장보살을 크게 조성해 모시고 자기집을 절로 만들었으며, 절 이름을 지장대(地藏臺)라 하고 작은 지팡이 등상까지 함께 모시고 예배 공양하며 염불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이 소문은 원근에 곧 퍼져서 예배 공양하러 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장대는 마침내
큰 절이 되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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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살의 홍서주 불자님의 이야기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서울의 홍서주 보살이 약 20년 전에 체험한 일이다. 당시, 그녀의 아들은 합판상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대리점으로부터 거래대금 300만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돈을 달라고 하자 대리점 사장은 묘한 제안을 하였다.
"지금은 나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한 건만 해결하고 나면 아주 괜찮아집니다. 1,500만원만 융통해 주십시오. 300만원도 바로 드리고, 1,500만원은 약속어음을 발행하여 500만원씩 세 달 동안 갚겠습니다."

아들은 300만원을 받을 욕심으로 누나의 남편인 매형에게 1,500만원을 빌려 대리점 사장에게 주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서주보살은 은행에 대리점의 신용을 알아보았더니 언제 부도가 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1,500만원은 매우 큰 돈이었고, 잘못되면 딸의 가정에도 큰 회오리가 몰아칠 판이었다.특별한 방법이 없었던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10시에 <지장보살예찬문>을 독송하며 158배씩의 절을 올리고, 지장보살염불을 하였다. 자비하신 지장보살님께서 이 어려움을 막아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마침내 500만원 1장의 기한이 돌아왔고, 그 전날밤 보살은 꿈을 꾸었다. 많은 조상들이 배를타고 떠나려고 하는데, 배가 진흙벌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가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한복차림의 키가 훤칠한 남자가 나타나 배를 밀었고, 배는 물에 떠 순조롭게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오후 5시 10분전까지도 입금이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보살은 지난밤의
꿈을 생각하면서 꼭 도와주실 것을 믿고 속으로 소리쳤다."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5시가 되자 은행원이 "현찰로 줄까, 수표로 줄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보살의 기쁨과놀라움과 감사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뒤에도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계속하였고 두번째 약속 날짜가 다가오자 또 꿈을 꾸었다.

아들이 큰 나뭇가지에 매여 있는 그네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 그넷줄이 끊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네를 멈추려 하였지만, 어찌나 힘차게 흔들리는지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그넷줄이 막 끊어지려는 순간, 지난 번 꿈에 배를 밀어주었던 분이 나타나 나무 위로 뛰어오르더니 말을 하였다.

"손에 쥐고 있는 밧줄을 던져라."
어느새 보살의 손에는 밧줄이 쥐어져 있었고, 그것을 던졌더니 곧바로 받아 끊어지려는 그넷
줄을 고쳐 매는 것이었다. 보살은 꿈 속에서도 조이던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좋아하고,
두 번째 약속어음 500만원도 마감시간이 다 되어 해결되었다.

세 번째도 서주보살에게는 현몽이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을 따라가자 법당과 비슷한 넓은 방이 나타났으
므로 거기로 들어가 대중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잠시 뒤 모습이 매우 수려한 스님 한 분이 나타나 문밖에서 안을 살피더니 보살을 보고 손짓을 하며 부르셨다.

"길을 잃어 집으로 갈 수가 없지? 이 길을 따라가라."
보살과 아들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조금 걸어 내려오자 아래쪽에 사는 동네와 빈집이 보이는것이었다. 물론 세 번째 약속어음도 잘 해결되어 1,500만원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 대리점은 그 후 곧 부도가 나서 망하였다고 한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출처/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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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에 걸린 불자님의 이야기


1996년 여름, 대구에 사는 40대 후반의 주부는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에만 몰두하다
가 자신이 유방암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병원을 찾아 진료를받았을 때에는 유방암이 이미 말기에 이르러 수술로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불자였던 그녀는 갑자기 찾아든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여 괴로워하다가 문득 결심을 하였다.
그래, 어차피 인생은 한 번 죽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의 고통이 나의 죄업 때문이 아니더냐.마지막으로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올리며, 업장을 소멸하고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자."

가족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힌 그녀는 선운사 도솔암을 찾아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365개의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식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므로, 하루 한두 끼
만 먹으며 도솔암의 내원궁에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힘닿는 데까지 절을 하였다.

"지장보살님, 이 중생의 죄업을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23일째 되는 날 밤, 땀과 눈물로 온 몸이 흠뻑 젖은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
다. 그때 어디에선가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정신 차려라.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잠만 자고 있어서야 되겠느냐?"그리고는
불단 위의 지장보살님께서 내려와 가슴 뒤쪽의 등을 어루만지더니 대침(大鍼)으로 세 번을
찌르는 것이었다. 지장보살님께서 세 번째 침을 빼는 순간, 그녀는 움찔하며 잠에서 깨어났
고, 갑자기 가슴주위가 시원해짐을 느꼈다.

같은 시각, 도량석을 하던 스님들은 내원궁으로부터 붉고 푸른색의 빛이 하늘로 뻗쳐오르는
것을 보고 환희의 예배를 올렸다. 그날 이후 그녀의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고, 예정했던 백일
기도를 마치고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암에 걸렸던 자취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이들 이야기에서 우리가 꼭 새겨야 할 것은 참회와 감사이다. 지장신앙의 근본경전인 ≪지장경≫은 지장보살을 중심에 놓고, 중생의 죄업과 고통과 참회와 해탈의 상관관계를 설하여 놓은 경전이다.

곧 중생의 그릇되고 고통스런 현실은 과거의 죄업에서 비롯되고, 참회를 통하여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으면 죄업이 녹아내리면서 원래의 편안함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장기도를 하는 이의 초점은 참회에 맞추어져야 한다. 지장보살을 생각하고 염불
을 하면서 참회를 다하다 보면, 그리고 한 배 한 배 절을 올리며 지장보살과의 인연에 감사를 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진한 눈물이 솟구치면서 업장의 밑바닥이 뚫어지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지장보살이 꿈속에 나타나 가피를 내린다.
그런데도 기도를 하는 많은 이들은 참회와 감사보다는 매달리기에 급급하다. 물론 간절히 매
달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받고 있는 고난의 원인이 죄업인 만큼, 참회하고 반성하고 감사하면서, 스스로가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기적인 기도보다는 참회하고 감사하고 새로운 원을 담아야, 새로운 삶이 싹트는 것이다.

정녕 기도하는 이라면 "잘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쉽게 나와야 한다. 그 다음에"∼하여 주소서" "∼살겠습니다"라는 기원과 맹세가 뒤따라야 한다.

이러한 기도 앞에는 어떠한 고난도 녹아 내리고, 어떠한 어려움도 자취 없이 사라진다. 정녕 "참회와 감사"가 기도성취의 비결이거늘, 지장기도를 하는 이들이 어찌 이를 마다할 것인가!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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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할 뿐"

선법경 임순빈


15년 전 직장선배가 “이번 일요일에 별일 없으면 아침 8시까지 동대 앞 태극당 앞으로 나오라”는 말에 아무 의심없이 따라 나선 것이 부처님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선배를 따라 간 곳은 한달에 한번 가는 ‘불교문화기행’이었는데 충북 보은의 법주사였다.

유교집안의 나와 형제들은 기독교 학교를 다녀서 성경이며 찬송가가 더 익숙한 편이었다. 불교교리는 물론, 부처님이 뭔지, 절3배 하는 것도 모르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법당에 들어가 좌복을 깔고 법사의 선창에 따라 ‘한글 108대참회문’으로 108배를 하는데 나는 한쪽 구석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로 하였다.

사람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정성껏 절을 하고, 그 내용은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잘못된 일과,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죄업을 참회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불교는 할머니들이 불상 앞에 쌀이나 초 등을 올려놓고 복이나 비는 기복종교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모든 죄업이 몸과 말과 뜻으로 지었다는 것과 다른 종교에는 없는 회향이라는 말이 참 좋았다.

진작 불교가 이런 종교인 줄 알았으면 ‘아까 나도 할 걸’하는 아쉬움과 매달 가는 불교문화기행이 기다려졌다. 나도 108대참회 하러.

더구나 사찰에 있는 모든 조형물들이 불교정신에 의해 세워졌다는 설명을 듣고는 불교문화를 배우는데 신이 났다.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불교공부도 하고 그런 신행생활을 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불교공부는 잘 할 수 없었지만 직장에서 가까운 조계사에서 108배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언제쯤 제대로 불교공부를 하고 신행생활을 온전히 해보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 후 퇴직을 하고 능인불교대학을 다니면서 교리공부를 하고 경전을 배우는 사찰을 찾아 경전공부를 하면서 집에서는 108배를 했다. 어느 해 겨울 나에게 불교가 무슨 종교인지 알게 해 준 분(불교문화기행 지도법사)이 “사람에게서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타고난 업보와 뜻하지 않은 장애들이 수시로 찾아들어 그렇다. 우리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공부를 잘하여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한차례 깊은 참회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신년들어 지장기도를 한번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씀에 그러겠다고 하고 이런 형식으로 100일간 해보라고 하셨다.

매일 108배를 하고 별 어려움없이 지내던 나는 “그래. 업장만 다 녹이면 내 앞날은 탄탄대로” 일거라는 생각이 들자 기도만 잘 회향하면 반드시 신천지가 열릴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에 기도를 많이 하신 보살님께 여쭈었다.

지장기도를 잘 하면 기도성취가 빠르지만 대신 마장도 많다는 얘기와 마장의 사례들을 들었다. 그런 점을 모두 감안하여 집에서 기도하기로 하고 절에 안오면 궁금해 하실 친한 도반 두분께만 말씀드렸다.

지장기도 요령은

1. 먼저 3배 올리고

2. 지장보살본원경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독송

3. ‘나무지장보살’ 천번 염송

4. 지장보살예찬문 외우며 158배

5. 지장보살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천번 염송

그리고 기도를 시작하기 전 스스로 다짐하기를

1. 기도시간에 전화기 코드 빼고

2.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전화 및 외출 절대 안함

3. 100일간 오로지 身口意 三業을 조심하고 지장보살님의 가피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지장경을 읽을 때에도 영가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하고 읽다가 잡념이 들면 읽은 기억이 나는 대목부터 다시 읽었다.

‘나무지장보살’과 지장보살예찬문을 외우면서 158배, ‘지장보살’ 천번 염송을 하는 동안에는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렇게 기도시작 1주일 후 꿈을 꾸었다.

기도당시 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내 옷을 입고서 우리집에 오셨다.

바쁘신 듯 현관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하고 좋은데 놀러 가는데 너한테만은 얘기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왔다. 사람들이 기다리니까 빨리 가야겠다’고 하시면서 총총히 가시는데 어찌나 섭섭한지 APT 11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까 햇빛에 빛나는 잔잔한 바다와 배 한척, 아무도 없는 깨끗한 백사장과 송림松林이 펼쳐져 있고 APT 주차장 앞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어머님은 그들과 같이 그 배를 타고 같이 가시는 모양이었다. 어머님과 다른 영가님들이 천도되었음을 알고는 ‘열심히 기도해서 어떻게든 기도성취해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고 더욱더 신심이 났다.

기도를 시작한 53일 뒤 또 꿈을 꾸었다. 지장기도를 하면 꿈을 많이 꾼다고 했다.

한옥집에서 의사같은 하얀 까운을 입은 거사가 사람들을 진료하고 있었는데 줄이 한참 길었다. 그집 안에서 큰언니가 나를 불렀다. 의사는 나를 보더니 옷을 다 벗고 엎드려 누우라고 하면서 목부터 허리까지 침을 꽂고는 허리를 문지르는데 허리가 지릿지릿 아픈 것이었다.

나는 아픈 데가 없는데 내가 모르는 병이 있었나 생각하고 있는데 다 됐으니 내려 오란다. 옆방으로 가서 내 몸을 보니 온통 생선가시같은 침이 꽂혀 있었다. 침을 빼고는 그 방을 나왔다.

그렇게 꿈을 깨고는 다음날 기도시간부터 단 5분을 앉아 있을 수 없이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장인가? 이 마장을 극복하지 못하면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낸다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허리가 아프면서 지장경을 읽는데 경전 위로 개미들이 줄을 지어 지나간다. 손으로 만져보니 아무 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

몇 년 전 집에 이유없이 개미들이 들끓었던 생각이 났다.

그때 개미에게 진심瞋心을 내고 억지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살생도 했었다. 아아! 그때 개미에게 화를 내고 개미를 죽임에 과보를 받는구나!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더니. 화를 내고 살생한 과보를 받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계속 개미영가에게 참회하고 허리가 아픈지 2주쯤 된 어느 날 기도시간에 지장경을 읽고 있는데 스르르 예전처럼 허리가 풀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번 기도로 모든 업장을 소멸케 해주십사 더욱 간절히 참회하였다.

그 후 80일이 조금 지나 다시 꿈을 꾸었다.

세면대에서 가슴이 답답해서 토하는 꿈을 꾸었다. 입에서 한참동안 피고름이 나오는데 새끼손톱만한 노란 근(종기의 근)이 튀어 나왔다. 종기처럼 근이 나오면 다시 진물이 날 때까지 짜야한다는 생각에 다시 토하는데 또 피고름이 나오더니 또 같은 크기의 노란 근이 나오면서 피고름이 멈추는 것이었다. 세면대에서 입을 씻고 나오니 만나는 사람마다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나를 반가워한다.

기도가 끝나갈 무렵 그동안의 기도생활에 대한 점검을 해 보았다.

70%정도만 만족할 뿐 100일 회향하고 그 다음날로부터 다시 7일을 하고 마지막 회향을 했다.

기도회향 후 도반보살님이 궁금하고 보고싶다고 전화를 주셨다.

전화 속에서도 느끼시나 보다. 목소리가 아주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졌다고 하셨다.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서 빛이 나고 맑아지고 편안해 보인다고 무엇을 했길래 그렇게 좋아졌느냐고 묻는다.

나의 업을 녹이고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여 시작했던 기도가 어머님과 영가님들의 천도와 身業과 口業을 소멸하는 가피를 입게 되었다.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어 연緣이 닿으면 과보를 받는다고 했다. 자기의 업을 녹이고 향상일로向上一路를 가고자 하시는 분은 한번 꼭 해보시기를 권해 본다.

가까이 사는 신심 깊은 후배가 가끔 집으로 놀러 온다.

서로 공부이야기도 하고 집안의 일상사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후배는 늘 나에게 “언니는 복이 많은 줄 알라”는 말을 한다.

하루는 후배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중에 금전으로도, 누구의 의지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이야기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고 그들이 도대체 무슨 업과 인연으로 그러한가 혼자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내가 지금은 그런 인연을 만나지 않았을 뿐 앞으로도 다음생에도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자 산다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졌다. 다시는 인간 몸 받지말고 성불해야지.(인간 몸 받아야 또 불법인연 만나겠지만)

왜 이제까지 성불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願을 크게 세워야 한다면서 기실 작은 소원에 만족해 하고 있었다.

‘성불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참선을 해야지.”

후배는 오래전부터 참선을 해왔고 나에게도 참선을 권해 왔었다. 때마침 참선공부 하느라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도반을 만나 힘을 얻은 것을 보자 더욱 더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수련회에서 배웠던 참선을 하기 시작하고 부처님께 ‘꼬옥 선지식 만나기를, 좋은 도반 만나기를’ 발원했다.

다행히 기도공덕으로 공부를 지도해 주실 큰 선지식을 만나 禪法門과 화두드는 법, 공부인의 자세등 자상한 가르침을 주셨다.

큰스님께서는 “무릇 생명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가장 두려워 한다. 우리가 죽는 순간 어떠한 마음상태로 가느냐에 따라 내생이 결정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수행하는 것은 임종 그 순간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화두잡고 간다는 마음으로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화두 놓지 말 것”을 당부 하셨다.

앞으로 나는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 깨친다는 조바심 버리고 “오로지 할 뿐” 죽음이라는 것도 그렇게 이겨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울러 초발심인 나를 따끔한 조언으로 일깨워 주시는 묘법륜보살님과 따뜻한 격려로 발심케 하는 법공심보살님께 감사드린다.

그동안 탐진치 삼독에 빠져 나라는 상을 버리지 못하여 헐떡이며 어리석게 살아 온 것 깊이 깊이 참회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 바른 행을 실천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본래 부처인 도리를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을 부처님께 발원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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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고 천상에 나게하다

당나라 무주땅에 살던 조씨 소녀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지장보살 앞에 지극 정성으로 염불하였다.

소녀는 무주 자사의 며느리가 되면서 지장보살을 향한 공경심은 더욱 더 간절하였으나, 그의 시부모들은 전혀 신심이 없었다. 조씨는 부모님 등을 위하여 자기가 가진 패물이며, 피륙을 팔아서 지장보살 존상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높이는 석 자이고, 금빛이 찬란한 금옷으로 모셔놓고 조석으로 지성을 바쳐 예배 공양하고 또한 염불하였다.

그 후 얼마 지나 그의 아버지는 일이 있어 외출하였는데 그의 집에 밤중에 도적이 들어와 집안을 엿보았다. 도적이 내실 문틈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니, 금빛이 찬란한 지장보살이 앉아 계셨다. 도적은 이를 보자 감히 도적질할 생각을 내지 못하고 담을 넘어 돌아갔다.

그 이튿날 도적은 의관을 점잖게 차리고 그 집에 다시 가보았으나, 안주인 혼자 있을 뿐 밤에 본 지장보살의 성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적은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기필 이 댁은 성인이 가호하시는 댁이라는 것을 느끼고 이제까지의 자기 과거를 다 털어놓으며 진정으로 참회하고 공경스런 인사를 드러며 물러갔다.

그 일이 있은 뒤에 조씨 아버지가 먼 길을 가던 도중에서 우연히 과거의 원적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원한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 다짜고짜 칼을 빼어 들고 "잘 만났다."하면서 덤볐다.

조씨의 아버지는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그 앞에 금빛 옷을 입은 스님 한 분이 나타나 원수가 내려치는 칼을 막았다. 원수는 몇 번이고 칼을 휘두르면서 그 스님을 치더니 스님이 머리에 칼을 맞아 땅에 쓰러지자 원한이 풀린 듯 가 버렸다. 원수의 눈에는 스님이 아버지로 보이는 듯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 도적이 떠난 다음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려 살펴보았지만, 쓰러져 죽은 스님도 보이지 않았고 피 한 방울 찾아볼 수 없었다. 하도 놀랍고 기이하여 그의 아버지는 가던 길을 멈추고 곧바로 염불 잘하는 자기 딸의 집으로 찾아가서 그날 당한 일의 자초지종을 딸에게 말하였다.

부녀가 지장보살 앞에 나아가 존상을 가만히 살펴보니, 지장보살 머리에는 세 군데나 칼맞은 것 같은 흔적이 보였고, 금빛도 변해 보였다.

부녀는 지장보살앞에 엎드려 지장보살님이 급할 때 나타나시어 대신 목숨을 구해주고, 묵은 원수의 원한을 풀어준 것을 깊이 감사하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의 부모님은 신심이 생기어 열심히 염불하는 지장보살 신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다음 조씨 아버지는 79세에 세상을 떠났다. 죽은 지 35일이 지나서 딸의 꿈에 아버지의 몸에서는 금빛 광명이 나며, 허공을 평지와 같이 자유자재하게 날으듯이 다니는 것이 었다. 하도 반갑고 신기하여 조씨는 아버지를 향하여 소리쳤다.

"아버지, 어디로 가십니까?"

그의 아버지가 가까이 오면서 딸에게 자상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제4천의 동사보처(同事補處)로 가는 길이다. 나뿐만 아니라 천상에 나는 사람들은 모두 지장보살님의 인도를 받아 가느니라. 너도 지장보살님을 더욱 잘 공경하라. 너의 어머니는 13년 뒤에 오며, 너는 25년 뒤에 오고, 너의 남편은 28년 뒤에 올 것이다. 다들 잘 있거라."이 말을 마치자 아버지의 자취는 알 수 없었다.

과연 그 뒤에 조씨의 어머니나 조씨 자신, 그리고, 조씨 남편은 아버지 말과 같이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부터 무주 고을 안에 지장보살의 등상이나 화상을 조성하여 예배 공양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며, 감응을 받은 사람도 또한 많았다.

출전: 고석훈번역 우리출판사 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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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을 조성하고 어머니를 지옥고에서 구하여 천상에 나게하다.


당나라 진도독의 딸은 어머니를 잃고 밤낮으로 식음을 전폐하며 울고만 있었다.
그대로 놓아두면 조만간 꼭 죽을 것만 같아 그의 아버지는 딸을 붙들고 백가지로 위로하며,

"네가 참된 효녀라면 너의 어머니를 위하여 부처님께 정성을 드리는 것이 좋겠다. 이제 집에 지장보살님의 성상을 모실터이니 네가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를 드리도록 하여라."고 하였다. 성상이 완성되지 그의 딸이 어버지 앞으로 나와 청하였다.

"아버지, 이번에 모신 지장보살님은 어머님께서 계셨던 자리에 모시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생각이 날 때마다 지장보살님을 우러러보고 지장보살님 염불도 하고자 합니다."

진도독은 딸이 마음을 돌린 것이 기뻐서 딸의 말대로 어머니 침실에 존상을 모시게 해주었다. 그 다음부터 딸은 지장보살님에게 밤낮으로 예배 공양하며 염불을 쉬지 않고,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딸의 마음도 안정되고 텅 비어 쓸쓸한 바람이 부는 듯했던 집안에도 차차 훈기가 도는 어느날 밤, 진도독의 효녀는 꿈속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갸륵하다, 효녀여. 너의 어머니는 생전에 지은 죄가 많아 지옥에 있느니라.

나도 옛날 너와 같은 딸이 되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나의 아버지는 이름이 시라선견이었고, 어머니의 이름은 열제리였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어 태어난 곳을 몰라 애태우다가 마침내 부처님의 자비하신 인도를 힘입어 어머니가 지옥에 빠져 한없는 고통을 받고 계시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발원하여 기도하며 어머니로하여금 천상에 나게 하였더니라.

그 때부터 내가 보리심을 발하여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기로 맹세하였다. 이제 너의 효심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너의 효성이 장하니 내가 지옥에 들어가 방광설법을 하여 너의 어머니를 죄고에서 건져내어 천상에 나게 하여주리라."

이 말씀을 마치자 스님은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더니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밝은 얼굴에 자비스런 웃음을 띠고 진도독의 딸 가까이에 오셨다. 도독의 딸이 얼핏 보니 스님의 옷자락이 불에 타 있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옥에 들어갔을 때 불꽃에 탄 것이다."라고 하자 스님의 모습은 다시 사라지고 꿈이 깨었다.

진도독의 딸은 꿈을 깨고 나서 어머니가 천상에 태어난 것이 기뻤다. 그리고 애달픈 마음, 그리운 마음, 안타까운 마음, 괴로운 마음, 가슴 터질 듯한 슬픈 마음 그 모두가 사라지고 가슴속이 환히 열리는 듯 하였으며 가슴에는 기쁜 마음이 잠잠히 피어올랐다.

출전: 지장경(고석훈 번역, 우리출판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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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 스님의 孝心


이천 - ·영월암

지금으로부터 6백여 년 전, 고려의 유명한 스님 나옹화상(법명 ??, 1320∼1376)은 춘설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길을 시자도 없이 혼자 걷고 있었다. 지금의 양주땅 회암사에서 설법을 마치고 이천 영월암이 있는 설봉산 기슭을 오르는 스님의 발길은 찌뿌듯한 날씨처럼 무겁기만 했다.

이때였다. 어디선가 가까이서 울리는 요령소리가 스님의 귓전을 울렸다.

『허, 또 누가 이생을 하직한 게로군.』

자신의 출가 당시 화두였던 사람이 오고가는 생사의 도리를 되뇌이면서 막 산모퉁이를 돌아
서려던 나옹 스님은 초라한 장의 행렬과 마주쳤다. 상여는 물론 상주도 없이 눌수그레한 영감이 요령을 흔들며 상엿소리를 구슬피 메기고, 그 뒤엔 장정 하나가 지게에 관을 메고, 무거운 듯 힘겹게 걷고 있었다. 바로 뒤엔 두 명의 장정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따랐다. 행렬은 스님을 보자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허리를 굽혔다.

『누가 갔는데 이처럼 의식도 갖추지 못하고….』

『예, 아랫마을 돌이어멈이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거참 안됐구먼. 얼마 전 아들을 잃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더니… 나무 관세음보살.』

스님은 마지막 가는 돌이어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염불을 하고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
다. 평소 마을을 지나다 몇 번인가 본 돌이어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아들을 잃고 난 뒤충격을 받아 남의 집 물건을 예사로 훔치고 자주 마을 사람들과 싸우는 등 포악해졌다.

처음엔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도 나중엔 하도 말썽을 부리니까 가두어야 한
다고 하여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그만 명을 달리하고 만 것이었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마음마저 착잡한 스님은 문득 출가 전 자신이 고뇌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스님이 스무살 때였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자고 약속한 절친한 친구가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비통에 잠긴 나옹은 「사람은 죽으면 어딛로 가는가」라는 물음을 어른들께 수없이 되풀이했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벗과의 사별을 인생의 근본문제로 받아들인 나옹은 그 길로 공덕산 요연 스님을 찾아갔다.

『여기 온 것은 무슨 물건이냐?』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으나 보려 하여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나이다. 어떻게 닦아야 하겠나이까?』 이 말에 요연 스님은 나옹의 공부가 보통 경지가 아님을 알았다.

『나도 너와 같아서 알 수 없으니 다른 스님께 가서 물어라.』 나옹은 그곳을 떠나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다가 1344년 양주 회암사에서 4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앉아서 용맹정진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스님은 더 높은 경지를 체험하기 위해 1347년 중국으로 구법(求法)의 길을 떠났다. 연경 법원사에 도착하여 그 절에 머물고 있던 인도 스님 지공화상을 만나 계오(契悟)했다.
2년간 공부하다 다시 남쪽으로 가서 평산 처림에게 법의와 불자를 받고 사방을 두루 다니며
선지식을 친견하던 스님은 어느 날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이 솟아올랐으나 스님은 출가사문의 본분을 내세워 멀리서 왕생극락을 기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어머니 생각을 모두 떨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스님은 선정에 들어 어머니의 행적을 좇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옹 스님의 어머니 정씨는 뜻밖에도 환생하지 못하고 무주 고혼이 되어 중음신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자신을 원망했다.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에 대해 그토록 무관심했던 자신의 불효가 한스러웠다.

「자식이 출가하면 구족이 복을 받는다는데 우리 어머님은 업장이 얼마나 두터우시길래 구천
을 맴돌고 계실까. 혹시 아들의 모습을 못 보고 눈감으신 정한이 골수에 맺힌 것인 아닐까?」

스님은 지옥고에 허덕이는 어머니를 제도한 목련존자를 생각하며 어머니를 천도하기로 결심
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 법당 뒤 설봉산 기슭 큰 바위에 모셔진 마애 지장 보살님 앞에서 어머니 천도 기도를 시작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옥의 한 중생까지도 제도하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나옹 스님의 독경은 간정했다. 그렇게 기도하기 49일째 되던 날, 나옹 스님은 철야정진에 들어갔다. 새벽녘 아직 동이 트기전, 나옹 스님은 지장보살님의 전신에서 발하는 환한 금빛 광채를 보았다. 그것은 눈부신 자비의 방광이었다.

스님은 놀라서 고개를 들고 지장보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지장 보살님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듯했다. 고통받은 지옥 중생 때문에 지옥 문전에서 눈물이 마를 새 없다는 지
장보살님이 어머니를 천도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았다.

「아, 지장보살님께서 내 기도에 감응하시어 눈물로써 현현하고 계시는구나.」 나옹 스님은
기도가 성취되어 기뻤다.

『어머니, 이제 아들에 대한 섭섭하신 마음을 거두시고 편히 극락에 드십시오.』 기도를 마친나옹 스님은 선실에 입정하여 이미 천도왕생하신 어머니를 보았다.

그 이후부터 영월암 지장보살님 앞에는 선망 부모의 왕생극락을 빌면서 자신의 업장을 소멸
하려는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에서 14안거를 성만하면서 후학을 제접하고 신도들을 교화했다. 이 마애지장 보살상은 지난 1984년 12월 보물 제822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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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송광사 명부전 지장보살 국가위기마다 땀흘려

전북 송광사 대웅전의 3불상에서도 눈물이 흐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밀양의 표충비가 임진왜란과 관계돼 있다면 송광사는 병자호란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조선조 중기 1620년에 인조대왕이 불력(佛力)을 빌려 외침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병자호란 때 중국 심양에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귀환을 빌기 위해 중창불사를 한 전형적인 호국사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절의 본당인 대웅전 삼존불상(석가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과 명부전의 지장보살 불상이 국가 위기시마다 어김없이 땀을 흘린다는 것이다.

이 절의 주지인 지원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93년 송광사 주지로 부임한 이래 내 눈으로 부처님이 땀을 흘리는 것을 4번이나 목격했다. 대웅전의 아미타불은 96년 11월경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아군과 공비가 사살되는 어지러운 시점에서부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는데 95년 말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무렵에는 명부전의 지장보살상이 엄청나게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고 93년 10월 서해페리호가 변산 앞바다에서 침몰했을 때는 대웅전의 약사여래불이 눈물을 흘렸다.

희한한 것은 대웅전에는 똑같은 조건의 부처님 3분이 모셔져 있는데 눈물을 같이 흘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따로따로 흘리니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대웅전의 아미타불과 석가불, 약사여래불에서 물이 흐른 자국이 선명하다. 그리고 대웅전 옆 한 귀퉁이에는 지금까지 땀을 흘린 불상 사진과 날짜를 기입해 전시해 놓고 있었다.

표충비와의 기록을 보면 어느 정도 일치성을 보여주는 것은 송광사 기록을 기준으로 5번(송광사에서 땀 흘린 기록은 8차례)이나 되었다.이와 같이 홍제사 표충비와 송광사 3불상에 물기가 흘렀던 시기가 같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볼 수만은 없는 무언가 있다는 설명이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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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 영험록


필자가(김현준씨-불교신행연구원 원장) 잘 알고 있는 이 스님께서
"현재 공부중이라, 이름만은 밝히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여기에서는 '운호'라는 가명을 쓰고자 한다.

어려서부터 몸이 유난스레 약하였던 운호스님은 주위로부터
나이 삼십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자주자주 병원 신세를 지면서 근근히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 적령기에 '영원 생명'을 찾는
공부를 하고 싶어 출가하였다.

출가 후 스님은 대만으로 유학을 가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다시 강원공부를 마쳤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전한 '나'의 것이 되기보다는 겉을
맴돈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공부를 더하고 싶었던 운호스님은 다시 대만으로 갔다.
그러나 약하기 그지없었던 몸은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내가 정녕 출가사문일진대, 내 모습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가 환희심을 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렇게 병약하고 무능한 나를 보고 누가 신심을 낼 것인가?
나는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치는 존재가 아닌가?'

이렇게 슬픈 생각에 잠겨 있던 스님은 때마침 대만에서 유행하고 있던
점찰법(占察法:십악과 십선을 적은 윷 같은 모양의 木輪을 던져
전생의 업을 알아보는 법)을 행하였다.

스님은 ≪점찰선악업보경≫에서 설한대로 지장보살의 명호를
열심히 부른 다음, 목륜(木輪)을 던졌다.
그러자 '살생업'이 많다는 괘가 나왔다.

'아, 살생을 많이 한 자는 몸이 약한 과보를 받는다고 했거늘,
나의 몸이 약하고 자주 아픈 것이 전생의 업보라는 것을 왜

깨닫지를 못하였던고?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도
죄업을 참회하여 업장을 소멸시키는 일이다.'

출가한 후 10년 동안 제대로 기도 한 번 못하였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스님은 지장기도를 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지장경≫ 전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1번 독송을 하고,
'나무지장 보살'을 천 번 부른 다음,
<지장예찬문>을 외우며 158배를 한다.

그리고 <지장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 천 번을 불렀으며, 기간을 21일로 정하였다.

스님의 기도 목적은 업장 참회에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기도를 시작하자 원래의 기도 목적과는 달리
집안의 조상들이 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스님은 7일 마다,
한 번씩 간단한 음식을 마련하여 불보살님과 조상님,
그리고 유주무주고혼(有主無主孤魂)들께 시식
(施食)공양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러자 첫 7일째,
조상들이 흰 옷을 입고 공양을 받으러 오는 것이었다.

이에 두 번째 7일과 세 번째 7일에는 '변식진언(變食眞言)'을 외우며
영가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관상(觀想)하였다.

음식을 적게 마련하였을지라도 진언을 외우며 관상을 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그 음식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관상을 하여서인지 스님은 공양이 차츰
뷔페식으로 바뀌는 꿈을 꾸었다.

조상님들은 상을 차려 놓은 특별실에서 공양을 들고,
유주무주고혼들은 아주 큰 홀에서 뷔페식으로
공양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7일날에는 모두가 음식을 먹고 천도가 되는 꿈을 꾸었다.
이렇게 스님은 영가천도라는 부수적인 가피를 입은 것이다.

가피를 입어 환희심이 가득하였던 스님은 기도기간을
백일로 늘여 잡고 더욱 마음을 모아 기도하였다.

30일째 되는 날 스님은 또다시 꿈을 꾸었다.
스님은 지장보살께서 머물러 계신다는 어느 절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자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긴 마구니, 요상하게 생긴 마구니,

심지어는 외국 비구니의 모습을 띤 마구니까지 입구에 일렬로
늘어서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장삼을 크게 휘둘렀고,
그 순간 모든 마구니들은 땅바닥에 엎드리며 항복을 하였다.

스님이 당당한 걸음으로 절문 안으로 들어서자,
허공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수각(水閣)에서 손을 씻어라."
말씀을 따라 수각에 들어가 손을 씻자,

오른손을 씻은 물은 새까맣게 변하였고
왼손을 씻은 물은 반쯤 까만 회색빛이 되었다.
'아! 몸으로 지은 신업(身業)이 소멸되었구나.'

살생 등의 나쁜 짓을 주로 저지른 것이 오른손이었기에
그 씻은 물이 새까만 색,
왼손은 오른손을 도와 나쁜 업을 짓는 보조역할을
하였기에 그 씻은 물이 회색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손을 씻고 신업의 소멸을 느끼고 나자
스님의 몸은 한없이 가벼워졌고,
꿈속에서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게 되었다.

또 며칠이 지나 35일째 되는 날,
운호스님은 한국의 여러 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고,
65일째 되는 날에는 비구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다.

이것이 자서수계(自誓授戒)이다.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는 스스로가 지극한 정성으로 참회하고

발원하여 꿈속에서 불보살님으로부터 직접 수계를 받는
자서수계법을 설하고 있는데, 운호스님은 이 법에 의해
수계를 받아 마친 것이다.

그리고 백일 기도를 회향하는 날,
스님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다며 노천온천이 있는 지하로 들어가고 있었다.
스님도 그곳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줄이 너무나 길어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며 서 있었다.

그때 마침 대만에서 함께 공부를 했던 비구니가 앞쪽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 비구니는 스님을 손짓하여 부르더니
자기 앞에 서도록 하였다.

마침내 노천온천으로 들어 순서가 되었을 때 대만 비구니는
온천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운호스님은 왠지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는 물 속으로 들어가기가 싫어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스님은 주위를 살피다가 조금 떨어진 반석 위에
까만 옷을 입고 앉아 계시는 아는 처사님을 발견하였다.

처사님은 8년 동안 지장기도를 한 분이었다.
스님은 그분 앞으로 가서 아래의 옷을 모두 벗은 다음 쭈그리고 앉았다.
처사님은 스님의 입 바로 밑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말씀하셨다.

"여기에 악귀가 붙어 있노라."

그리고 여드름을 짜듯 두 손가락으로 입 밑을 누르자,
고름이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것이었다.

"이제 되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되느니라."

운호스님은 그 말씀 끝에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었음을 느꼈다.

또한 '삿된 생각만 조심하라'는 것은
의업(意業)을 조심하면 된다는 깨우침이었다.

환희로움이 온 몸을 감싸고 도는 것을 느끼면서 스님은 벗어 놓은
옷을 입은 다음, 허공을 날아 2층 건물의 옥상에 올라섰다.

그곳에는 스님보다 키가 두 배나 큰 분이 넷이나 있었다.
그때 건물 아래로부터 스님을 찾는 대만 비구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운호스님, 운호스님…."
"저 여기 있어요. 잘 가요."
서로가 인사를 하며 헤어지는 순간 운호스님은 꿈에서 깨어났고,
백일기도 또한 마쳤다.

그런데 참으로 신통한 변화가 일어났다.
기도 전까지는 경전을 보고 있으면 내용이 분명히 다가오지 않았으나,
기도 후부터는 내용이 너무나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기도 후 스님은 아미타불의 정토신앙을 믿기 시작하였는데,
≪아미타경≫ 등을 읽으면 삽화가 그려져 있는 동화책을 보듯이
극락 세계의 여러 모습들이 그대로 펼쳐져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경전의 내용이 저절로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총명득력(聰明得力)! 총명의 능력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잔병치레를 많이 하였던 몸도 그 누구보다 건강하여졌다.

이후 스님은 '인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 인도로 떠났고,
그곳에서 도력이 매우 높은 티벳의 고승들을 만나
그 분들의 지도 아래 현재 용맹정진을 하고 계신다.

스님의 원래 목적은 업장소멸에 있었고,
처음에는 21일 동안만 기도를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자 생각지도 않았던 조상들이 나타났고,
이에 스님은 영가천도를 해주고자 하였다.

영가들이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관상 (觀想)하면서 시식을 행한 결과,
많은 영가들이 가피를 입어 삼칠일(21일)만에 모두 천도가 되었다.

신심이 크게 일어난 스님은 21일 기도를 백일기도로 연장하여
더욱 열심히 매진한 결과, 꿈에서 사미니계와 비구니계를 받는
자서수계를 성취하였으며, 몸으로 지은 죄업인 신업(身業)이 소멸되는
꿈과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는 가피를 입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된다'는 말씀과 함께….
이렇게 신업과 구업이 소멸되자 스님에게는 건강과 총명이 가득하여 졌고,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길도 저절로 열렸던 것이다.

곧, 백일지장기도를 통하여 영가천도, 업장소멸, 자서수계, 총명득력,
건강 및 새로운 스승을 만나 향상의 경지로 나아가는
가피까지도 모두 얻은 것이다.

출처:생활속의 지장기도/김현준(불교신행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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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청에서 만난 지장보살


당나라 옹주(雍州) 운현 땅의 李씨 부인은 신심이 두터워 부처님의 법을 받드는데 정성을 다하는 분이었다. 항상 재일(齋日)을 지키고 수행이 남달리 뛰어나 집에 나무로 조성한 "一지 六치"가량 되는 지장보살을 모시고부터 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씨 부인에게 50십 살 되는 한 여종이 있었다. 그는 소견이 삿되고 불법을 믿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는 이씨가 외출한 틈을 타서 지장보살 존상을 앞산 아래 풀숨에 버리고 돌아왔다.

이씨가 집에 돌아와 보니, 보살상이 보이지 않으므로 걱정을 하던 차에 누가 부르는 듯한 느낌이 있어 문밖에 나와 보니, 앞산 밑 풀숲에서 이상한 광명이 비치고 있었다.

느낀 바 있어 광명이 나는 풀숲으로 단숨에 달려 갔다. 생명 같이 모시던 지장보살 존상은 풀숲에 누워 있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빙긋이 웃어 보였다.

이씨 부인은 눈물과 웃음과 울음이 섞인 감동으로 지장보살을 다시 모셔다가 정성껏 봉안하고 예배하고 염불하면서도 그것이 여종의 소행인줄 몰랐다.

그때, 여종이 갑자기 쓰러져서 인사불성이 된 것을 발견하고, 즉시에 온갖 방법으로 구환하니 잠시 후 깨어나 통곡하며 말하였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가 조금 전에 누군가에 잡혀 정신없이 끌려갔는데 당도한 곳이 명부 였습니다. 거기에서는 말탄 관리들이 서첩을 읽는데
'너는 성상을 모욕하여 대죄를 범하였으니 결박지어 대왕 앞에 심판을 받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때 한 스님이 그 곳에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우리 신도 집에서 일하는 종이니, 비록 나의 형상을 보기 싫다고 내다버리기는 하였으나, 나는 그 사람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대왕은 이 사람을 불쌍히 보아 도로 살려주기 바랍니다'
하셨습니다.

염라대왕은 곧 저를 방면하여 주시니 저는 그 말을 듣고 곹 저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습니다. 제가 부처님을 좋아하지 아니했고, 지장보살을 내다버린 것을 뼈아프게 참회하면서 그 자리에 꿇어 앉아 <나무지장보살>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뉘우쳤습니다.

그랬더니, 그곳 명부에 있던 죄인들에게 채워있던 고랑쇠가 지장보살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까지는 전부 벗겨졌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저의 손을 이끌어 염라청에서 막 나오면서 어리론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마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여종은 계속 눈물을 흘리며 이씨 부인 앞에 엎드려서 일어날 줄 몰랐다. 이씨 부인은 그를 달래어 지장보살 앞에 예경을 드리며 참회하게 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그 고을 사람들은 불법의 신비한 영험에 놀랐고, 크게 신심을 일으켜 부처님 법을 받들며 지장보살 신앙이 높아졌다.
이씨 부인과 여종도 신앙이 몇배나 더 깊어졌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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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과야단법석(野壇法席 : 불교에서,야외에서 베푸는강좌)


얼마전 대학에서 정신건강에 대한 강의를 하시던 한 교수님이 '우리가 정신건강을 말할 때 일반적인 입장과 불교적 입장과는 많은 차이가 있 다'고 지적했다.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어서 정신병원에 가면 치료의 한계를 느끼는 경 우도 절에서 기도를 하면 종종 낫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필자는 정신적으로 이상이 온 분들을 기도를 통하여 해결했던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
다. 몇 년 전이었다. 하루는 외부전화를 받았다.

"법사님,큰일이 생겼습니다.글쎄 △△엄마가 정신이 잘못되어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 아무도 말릴 수 가 없습니다. 모두 법사님만 찾고 있으니 빨리 오셔서 해결을
좀 해주십시오."

수화기를 내려놓고 너무나 황당하여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일을 가지고 왜 나를 찾는단 말인가? 그러나 순간 어제 법회에서 『지장경』을 강설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장보살님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건지기 위하여 성불까지 늦추시고 누구라도 지장보살님을 찾으면 고통에서 건져 주신다"고 하지 않으 셨던가.환자는 지금 고통속에 잠겨있다.지장보살님이 아니고 누가 이 환자의 고통을 건져줄수 있겠는가? 법당으로 나아가 간절하게 지장 기도를 올렸다.

"지장보살님,지금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있어 저를 찾고 있습니다. 제가 지장보살님의 분신이되어 환자를 고통에서 건지게 하소서. 저에게 닥쳐온 이 일을 반드시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지장보살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마치고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처럼 전의를 가다듬어 환자
의 집을 방문하였다. 마당에 들어서자 근심에 쌓여 있던 동네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방안에서는 고함소리,휘파람소리가 들려왔다.마음을 다시한번 가다듬 고 방문을 열었다.환자
는 남편과 시아버님이 양쪽에서 한쪽 팔을 잡고 있었다.

환자나 보호자나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영가가 접신된 환자의 힘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조용히 다가가서 환자의 얼굴 을 바라보니 환자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손으로 환자의 이마를 짚었다.이마에는 열이 불덩어리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얼마나 고통 스럽습니까?"이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오 히려 원망하는 사람들만 있지요.가엾어라.이제 걱정하지 마세요.당신 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당신의 원을 들어드릴테니 우선 마음를 가라앉 히십시오."

환자가 광기 어린 눈이 점점 순해지더니 손을 잡고 울며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법사님, 배가고파요.법사님 ,어머니도 함께 오셨어요."환자의 목소 리는 평소의 아주머니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젊은 아가씨목 소리였다.환자에 접신된 영가의 이야기를 통하여 많은 것을알게 되었다.

영가(靈駕)는 환자의 시누이였다. 젊음나이에 세상을 버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사방을
헤매고 다녔다고 했다.배가 고파도 밥 한 그릇 얻어 먹을 곳이 없더라는 것이었다. 다른 친척집에 가면 방에 부처님(부처님사진)이 계시고, 염주가 있어서 감히 들어가지를 못했는데 이 집은 절에 다니지도 않아 편안한마음(?) 으로 수십 번 왔으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너무나 원통하다 는 것이었다.

사실은 이 집은 교회를 20여 년간 다니고 있었다. 모두하나님에 대한 신심이 가득한 집안이었다. 그래서 환자 가족들과 협의를 했다. 접신된 영가가 원한이 깊어서 마음을 돌리려면 일주일정도 시간이 소 요되고 ,앞으로 환자가병이 낫는다면 부처님의 가피이니 불자가 될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다. 가족들은 환자의 병만 낫는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냐고 말했다.

일주일간의 기도계획을 세워서 오늘은 먼저 영가에게 공양을 베풀기로 하였다.음식을 한 상
차려 영가에게 권하고 가족과 동네 사람들이 마다 에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마련하고 함께
기도를 봉행 하였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영가는 다름이 아닌 환자의 시누이와 그의 어머 니이니 정성스럽게 음
식을 권하십시오. 우리 인간은 한평생 자기 뜻대로 되지않으면 화를 내거나 욕심속에서 살다
가,이 세상을 하직할 때는 어리석어서 가야 할곳도 모릅니다.더구나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다 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떠나 가야 합니니까?

영가는 이 세상을 떠난 지 수십년이 되었는데 마음이 미혹해서 가야할길을 가지 못하고 아직 까지 이 세상에 애착을 가지고 잇는 것 입니다. 우리 모두 이 가엷은 영가을 위하여 볍회를 열고 며칠만이라도 열심히 기도하여, 영가가 참 마음을 깨달아 알고 착하고, 거룩한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 좋은곳으로 갈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법문을 마치자 참석한 동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환자는 일어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이렇게 해서 환자는 점점 호전 되어 갔다. 이튿날 새벽예불에 참석했고 아침공양을 함께 하기도 하였다.

또한 3일째 되는 날은 전국의 모든 일가친척이 함께모여 지장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환자가 일어나 기도하는 가족들의 등을 한번 씩 내리치며 울부짖자 가족들 모두 진실로 잘못을뉘우치고 참회하여 영 가의 마음이 풀어지기도 하였다.

4일째부터는 마음이 어느정도 안정되어 지장보살을 함께부르며 기도에 임했다. 그러나 어려
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영가는 아버지가 장롱속에 간 직한 성경책을 가리키며 결국 다른
사람에게 주도록 하였고,또 오빠 (환자의 남편)은 마음과 행동이 일치 하지 않아 위선자라고
몰아세웠 다. 조용히 남편을 불러 물어보았다.

그 이는 20여년간 교회를 다녔는데 갑자기 마음을 바꾸려고 하니 잘 바뀌지 않는다고 하소연
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법회가 끝날때까지 참회의 절을하게 했다. 그 이는 열심히 참회의 절을 하였다. 마지막 날 법문을 마치자 환자가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닌가. "법사님 ,너무나 아쉽습니다. 그동안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이 밝아졌습니다.이제 약속대로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법사님
과 춤을 추고 싶습니다." 영가의 청을 받아 들여 생전 처음영가와 춤을 추었다. 동참자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영가가 접신된 환자는 일주일만에 말끔 히 치료가 되었다. 가족들과 마을사람들이 야단법석에 모여 매일 저녁마다 영가를 위하여 지장보살님께 기도한 가피력이었다.

우리가 이러한 환자를 단순히 정신병자라고 병원에 보내 버린다면 영가의 원혼은
영원히 풀어줄 길이 없을 것 이다. 그리고 이번일은 20여년간 타종교를 믿던 사람을 불자로 교화하고 ,수 많은 마을사람들을 부처님께 귀의하게 했으니 포교와 성과 또한 컸다. 다시 한번 지장보살님의 서원을 되새겨 보게 된다.

나무 대자비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출전:이동성,기도가 간절하니 가피를 입지,2000년,정우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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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기도와 몽중가피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자란 왕순희 보살의 이야기이다. 그는 어린 시절고향에 있을 때부터 신심(信心) 깊은 불자였으며 ,피난 나와 신씨네 집안의 맏며느리로 출가한 후에도 변함없이 절에 다니며 기도 하는 자세로 살았다.

그런 까닭인지 왕보살의 7남매는 모두 대학을 나왔고 아무 탈없이 잘 자라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그런 행복 가운데도 불행은 있는 법인지 둘째아들이 병이나 병원에 나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니, 골수백혈병이라는 진단이나왔다.

왕보살은 정신이 아찔했다. 하지만 의사가 치료를 잘 받으면 전혀 가망성이없는 것도 아니니 열심히 치료에 힘써 보자고 하였다. 왕보살은 "아이고 ,부처님! 지장 보살님, 감사합니다. 이런 희망이라도 안게되어 감사합니다. 열심히 기도할 터이니 제아들을 버리지 마시고 살려주 십시오!"하며 기도에 전념하기로 다부지게 마음을 먹었다.

치료 도중 부작용으로 합병증이 생기면 생명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치료 도중에 죽게 될지라도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 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리며 세월을 보낼 수는 없으므로 기도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왕보살은 우선 50일 지장기도에 들어갔다.

(지장경)을 읽으면서 지장보살을 500번 염하고 매일 절을 50배씩 했다. 그런데 정성이 부족했던지 환자에게 이상이 생겨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것이 었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도 왕보살은 마지막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았다.

"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

왕보살의 입에서는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지장 보살의 염하는 소리가끓이질 않았다. 병실에 들어가 보니 아들이 달려들어 왕보살을 껴안으며 자기는 곧 죽을 것이 라며 울부짖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으니 가족들과 집에 있다가 죽겠다는 것이 아들의 호소였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가족들은 아무런 말도못하고 울부짖는 환자만 바라 보았다.

그러나 왕보살은 더욱더 마음을 가다듬고 '지장보살'을 염불하며 아들을 달랬다. 밤새도록 그렇게 몸부림치고 울부짖으며 야단을 치던 아들은 새벽되어서야 기운을 잃고 누웠다.

눈은 뜨고 있으나 말도 못하고 몸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이틀동안 물한 모금 못 마시고 가느다른 숨만 쉬는 아들 곁에서 왕보살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지장 보살께 매달렸다.

48시간이 지나고 다시 새벽이 되었을 때였다. 아들이 말했다. "엄마,좀!"물보살이 물을 먹여주니 다시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들은그 다음날 아침6시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아들은 며칠만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더니 염라대왕을 만나고 왔다고 했다. 의사는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어 정신과에 진단 의뢰를 하였고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병마와 처참하게 싸우던 한 청년이 실성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왕보살의 생각은 달랐다. 죽음의 문턱까지 갖다가 돌아왔다면 반드시 살아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행히 정신과 진찰결과 정상으로 돌아 왔고 ,몸도 신기하리 만큼 건강해져 퇴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완전 치료를 위한 2차 치료를 받기 위해 다시 입원을 했다. 주사를 맞자 열이 39도나 올라가고 백혈구가 300으로 떨어져 의사는 위험하 다며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게 했다.

하루에 적혈 혈소판 백혈 주사를 10대까지 맞아도, 백혈구 수치는 오르지 않았고 ,상태는 좀처럼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환자는 주사를 맞을때마다 괴롭다고 비명을 지르고 ,열내리는 주사를 맞아 도 펄펄 뛰며 못 견뎌했다.

그러나 그래도 왕보살은 눈물로 지장보살께 호소하며 매달렸다. 괴로워하는 아들을 위해 왕보살이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죄업을 모두참회하며 매순간을 염불로 지장보살 마하살의 가피를 기원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꿈에 아들의 혈관이 터져서 새빨간 피가 막 쏟아지는 것이었다. 꿈에 가족들은 쏟아지는 피를 보고 모두 펄펄 뛰고있는데 느닷없이 왕보살 눈에 밭이 보이고 그 밭에서 노란 콩이 통통하게 솟아나는 것이 보였다.

백혈구는 노란 색이다. 꿈에 노란 콩이 솟아났다는 것은 곧 백혈구가 생겨회복될 수 있다는 암시였던 것이다.

그날 이후 왕보살은 백혈구가 2배씩 올라 2차 치료를 위해 입원한 지 한달보름만에 퇴원 할수 있게 되었다.

병원에 가보면 왕보살의 아들처럼 고통을 이기지 못해 괴성을 지르고 울부짖는 환자를 더러 만나게 된다. 왕보살도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는 아들을보면서 뼈와 살이 녹는 지옥 같은 괴로움을 함께 느껴야 했지만,그런 와중에도지난 죄업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절실하게 지장보살 마하살께 기도를 하였다.

기도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멈춰서는 안되며,흔들림 없는 정진속에서 지장보살 마하살의 가피를 입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옴 프라 마니 다니 스바하!
옴 프라 마니 다니 스바하!
옴 프라 마니 다니 스바하!

나무 대자대비 대원본존 지장왕보살 마하살!!!!


『박삼중 스님,열매출판사,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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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극복한 지장기도


며칠 전 불성계발훈련이 실시되고 있을 때였다. 이날의 주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의 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자기 노출을 하는 것이었다. 법운(法雲)거사가 초대받자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지난 1년 6개월은 나의 생애 가운데 가장 힘들었지요. 그러나 그 고통이 끝나는 날은 생애 최고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법운 거사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포교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내 자비행 보살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지요. 아내는 열심히 절에 나가고 신심도 깊었지만 자신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기에 너무 힘이 들었던지 나에게 의논을 했어요. 글쎄, 그 고민이라는 것이 너무나 황당한 것이었어요. 매일 저녁 꿈에 저승사자가 나타나 날짜까지 정확히 알려주면서 1년 6개월후에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아내가 다니는 사찰 스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기도만 열심히 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기도는 되지 않고 고민만 점점 깊어 갔던 모양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신심이 너무나 약해서 걱정이 태산 같았어요. 그래서 법사님께 상담을 드렸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시기에 순간 무슨 해결방법이 있구나 하고 안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때 법운 거사의 모습은 너무나 근심스러워 보였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잘못 될 수도 잇다는 생각을 잠시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법운 거사님, 지금부터 아내를 끔직히 사랑해 주세요. 신혼부부 시절의 사랑으로 돌아 가세요. 아내를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공덕을 지으면 지금의 이 고통이 오히려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공(功)을 드려 덕(德)이 생기는 것 아니겠어요.

『지장경』「제6품 여래찬탄품」에보면 '만약 십재일에 불 ·보살과 모든성현의 존상 앞에서 『지장경』을 읽으면 모든 재앙과 고난이 없으며 ,그가 사는 집안에 어른이나 어린이가 현재 또는 미래 백천 세계에 영원히 악도를 여의게 될 것이다'하였지요 그러니 지금부터 십재일뿐만 아니고 매일 지장 보살의 말씀을 믿고 함께 기도해 나갑시다.

법운 거사님은 이 제의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다음날, 법운 거사의 자택에 방을 비워 작은 원불을 모시고 몇 사람이 모여 점안법회를 실시하였다. 법문을 통하여 지장보살의 원력에 대하여 설법을 하였다.

"지장보살님은 구원의 보살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힘들어 하실 때 지장보살님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믿는 마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불심은 믿는 이의 마음속으로 배어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마음으로 섞이고 ,그러함이 느껴져서 서로 통할 때 부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심으로 기도할 때 신앙의 힘은 솟아나고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화·복은 자재롭게 될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염부제 중생을 살펴보니,몸 움직이고 생각 일으킴에 죄 아닌 것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열반경』에서'온갖 제유(諸有)를 벗어남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 '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시는 제유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여러 가지 차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밝은 태양이 높이 떠오르고 대자연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데 유독 인간의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 차서 지옥을 떠도는 모습을 말씀하신 것 입니다. 지장보살은 인간의 고통의 세계를 절대로 피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고통받는 중생을 건져주시려는 지장보살의 원력을 믿고 나면 어떠한고난도 극복할 수 있을 것 있을 것입니다. 이날부터 법운거사 부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모시고 『지장경』을 읽었다.

부처님을 향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일관하게 생활했다. 법운거사를 아끼는 법우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한번씩 모여 『지장경』을 독경하며 ,강설을 들었으며 ,함께 기도하였다.

저승사자가 나타난다는 마지막 날 저녁에 많은 법우들이 가정법회를 열고 법우들이 돌아간 후 우리부부는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다렸어요. 그때 갑자기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지장보살 님이 구름을 타고 나셨어요. 금빛 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서서히 아내 앞으로 다가 오셨어요.

우리는 너무나 감격했어요. 지장보살 님을 친견(親見)하다니,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요. 지장보살 님의 입안에서 향내음이 넘쳐 나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온몸을 감싸니 1년 6개월 동안 긴장된 몸과 마음이 일시에 가벼워짐을 느꼈어요. 너무나 편안 했어요!

세상에 태어나 가장 환희로운 순간을 맞이했던 겁니다. 이곳이 극락이구나 생각하면서.'아!지장 보살님 감사합니다'하고는 눈을 뜨니 새벽이었어요. 온몸이 촉촉이 젖어 있었어요. 우리는 말없이 서로 마주 보고 빙그레 웃었어요. 살아 있구나 하는 확인이었지요. 나는 아내의 땀을 딲아 주었어요.

부부는 3천겁의 인연이라 했던가, 부부는 이생에서 인연맺어 살아 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맞이하게 된다.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고, 괴로움에서 구제하기 위하여 가정에 부처님을 모시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내를 위하여 기도하던 법운 거사님이 오늘은 왠지 존경스럽다.

1년6개월의 긴시간 동안 조금도 흔들림 없이 정진하던 법운거사 부부의 사랑은 불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온들 법운거사 부부처럼 깊은 종교적 믿음과 사랑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랴?

나무 지장 왕보살 마하살!
나무 지장 왕보살 마하살!
나무 지장 왕보살 마하살!

『출처:기도가 간절하니 가피를 입지,이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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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병을 고친 지장기도


조선 순조 때의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 석대 지장암(현재의 생 지장 도량 강원도 철원소재 의 심원사)에 문둥이가 구걸하러 떼거리로 몰려왔다.

암자의 주지 스님은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다가 10여 세 가량 보이는 어린아이가 문둥병에 걸려 다니는 것이 측은하여 문둥이 떼거리 중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이에게 말했다.

"이보게, 저 아이는 여기 두고 가시게. 이 겨울에 저 아이가 헐벗은 채 구걸을 다니는 것은 무리인 듯 싶으니 여기 두고 갔다가 봄에 다시 데리고 가시게."

"그렇게 맡아 주신다면 저야 고맙지요. 아이가 아직 어려서 데리고 다니다
보니 우리도 귀찮을 때가 많았습니다."

문둥이 떼거리는 어린아이를 두고 떠났다. 이 아이의 이름은 영기(永奇)인데 부모가 일찍 돌아간 뒤 문둥병에 걸려 돌아 다녔던 것이다. 이 아이를 제대로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안 스님은 아이에게 말했다.

"이대로 다녀서는 사람노릇을 못하겠구나. 너의 병을 낫게 할 방법이 있는데 한번 해보겠느냐?"

"이런 몸으로 살다 죽느니 스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보겠습니다."

주지스님은 아이의 결심이 굳음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법당에 계신 지장 보살 님께 청수를 떠놓고 절을 하면서 하루에 천 번씩 지장 보살 님을 부르고 병이 낫게 해 달라고 기원하거라."

영기는 추위도 피할 수 있고 먹을 것도 주리지 않게 주면서 기도하게 해주시는 스님이 너무 고마워 주야를 가리지 않고 법당에서 절을 하며 염불을 하였다.

이렇게 50일 가량 되었을 때였다. 그 날도 밤에 기도를 하는데 꿈에 어떤 노장스님이 나타나시더니 손자를 어루만지듯 만지시는 것이었다.

"불쌍한 아이구나. 아무 죄도 없는 것이 부모 탓으로 몹쓸 병에 걸려 고생이구나. 그래도 네가 과거에 불연(佛緣)이 있어 여기를 찾아 온 것이다. 잘 했다."

노장 스님은 머리끝에서 눈·코·입이 있는 얼굴 부위를 만지시고 ,등과 팔
어깨·다리 등 수족 전체를 어루만져 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영기는 몸이 아주 날아갈 듯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노장 스님은 영기를 고루 고루 어루만져 주시고는 이렇게 말씀 하셨다.
"네가 병이 낫거든 중이 되거라. 훌륭한 도승이 되어야 한다."

영기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런데 그 꿈을 꾼 후 영기는 하루 하루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 졌다. 결국 문둥병이 씻은 듯이 다 나았다.

전신에 퍼져 곪아있던 부스럼도 간 곳이 없고 ,맨송맨송하게 빠졌던 눈썹도 새까맣게 나고, 까마 잡 하던 살결도 아주 맑게 변했다.

자신의 모습이 전과 다르게 바뀌고 나자 영기는 자진하여 주지스님께 중이
되겠다고 지원하고는 머리를 깎았다. 이분이 바로 동방의 율사로 이름이 높은 남호(南湖)대사이다

스님이 어려서 이러한 가피를 받은 까닭에 남보다 부지런히 공부하여 경학 도 잘 배우고 글씨도 잘 익혔다. 그리하여 명필과 문장을 겸한 율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옴 프라 마니 다니 스바하
옴 프라 마니 다니 스바하
옴 프라 마니 다니 스바하

나모 대자비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출처: 가피,박삼중,열매출판사,』
『출처: 기도,일타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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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생으로의 환생을 막아주고 목숨을 연장해 주신 지장보살님

경북 점촌에 사는 임정□ 여인은
윗대부터 문경 김룡사에 다녔으며,
특히 지장 기도를 열심히 해 왔다.
지금 환갑이 지난 임여인은 약 10년 전 우연히 얻은
기관지 질환으로 무척 고생을 해 왔고,
지난겨울에는 증상이 너무 심해 중환자실에
입원까지 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었다.

병원 병실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밤 꿈에 저승사자 3명이
검은 옷을 입고 임정□여인을 찾아와서 무조건 따라가자고 한다.
꿈속에서도, 저승사자를 따라가면
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이고 죽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한마디 대항도 할 수 없고 또한 피할 수도 없는
절대 절명의 위엄에 눌려 가자는대로 따라갔다.

그런데 문밖에 나가 정신을 차려보니 거기에는
낯선 남자 한 사람과 여자 한 사람,
두 사람이 말없이 서 있었다.
임정□ 여인은 그 사람들과 함께 저승사자를 따라
어디론가 걸어갔는데, 이상하게도 천천히 걸어가도
몸이 공중에 떠서 날아가는 것처럼 잘 걸어갈 수가 있었다.

저승사자가 그들을 데려간 곳은 김천에 있는,
임정□ 여인의 동생 집이었다.
그리고 동생 집에 있는 개집 앞에 다다르자,
개집 속으로 들어가라 한다.
함께 간 두 남녀는 아무말 없이 시키는 대로 개집으로 들어가는데,
임정□은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나서,
"지장보살님 저는 싫어요. 지장보살심 저는 싫어요."면서
개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그랬더니 저승사자들은 임정□여인을 한참 노려보다가
어디론가 가 버렸다. 깨어보니 꿈이었는데
온 몸에 땀이 나서 이불이 흠뻑 젖어있었다.

며칠 뒤 꿈이 너무 이상해서 오랜만에 동생집에 가보기로 했다.
병고에 시달리느라 동생을 못 만난지도 1년이 넘는 듯 했다.
그래서 ,한마디 안부를 묻고나서
"혹시 너의 집에 개를 기르니?"하고 말하니
'암캐를 한 마리 기르는데, 며칠 전에 새끼를 세 마리 낳았어.
한 마리는 죽은 것을 낳고,
두 마리는 암컷 수컷인데 아주 귀여워.
언니 한 번 볼래?"하며 개집으로 언니를 데려간다.

그런데,이상하게도 그 개집이 꿈에서 본 개집과 꼭 같았고,
개가 새끼를 낳은 것도,
저승사자가 그들에게 개집에 들어가라고 말한 날짜와 꼭 같았다.

임정□ 여인은 겁이 났다.
그리고 만일 자기가 개집으로 들어갔더라면
지금 이 집 개로 환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그 강아지 두 마리는
꿈에서 본 두 남녀의 환생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임정□은 동생에게 그 강아지는 특별한 강아지니,
함부로 팔지 말고 언니에게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를 구해 주신 김룡사 지장보살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 생에 더 좋은 곳에 태어나기 위해서
더욱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영험이 많으신 김룡사 지장보살에 더 기도하고 살기로 맹세하였다.

-원작성자: 권 영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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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을 한 정처사 지팡이

(일타스님 글)

수십년 전 경북 예천에 장처사(張處士)라는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처사는 지팡이를 하나 짚고 다니면서 어디를 가든지 지극하게 '지장보살'을 염했습니다 어찌나 지극하게 불렀던지, 잠을 자면서도 지장보살을 염하였다고 합니다.

장처사가 죽고 난 뒤 가족들이 제상(祭床)을 차려 놓고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렸는데, 그 제상에 올려 놓은 지팡이가 밤만 되면 방광(放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팡이에서 뿜어 나온 빛이 온 방을 밝혀 불을 켜지 않아도 방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그 뒤 화장을 하면서 그 지팡이도 같이 불에 태웠는데,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까지 사리가 나오기까지 하였습니다.

세속에 살면서도 꾸준히 염불·기도·참선을 하면, 이 장처사의 경우처럼 마음이 크게 순화되어 특별한 이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옛날에도 그러했지만, 특히 요즈음 집에서 108배를 하거나 참선하고 염불하고 불경을 항상 읽는 사람이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불교가 융성해질 새로운 조짐으로,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든 불자들은 각자 어떠한 모습을 취하고 있더라도 기도 등의 수행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출가해서는 비구·비구니의 모습으로, 제가에서는 우바새·우바이로서, 각자의 형편에 맞게 끊임없이 수행하고 선행을 닦아야 합니다.

출가한다고 해서 도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세상에 있다고 하여 도가 달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세속에 있을지라도 기도 등을 통하여 마음을 닦아가면, 몸만 출가하고 마음은 출가하지 못한 승려보다 훨씬 나은 것입니다. 부디 마음 닦는 일에 게을리 말기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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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에서 만난 어머니



韋州(위주)땅에 등(鄧)씨라는 여인이 있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백부밑에서 자랐는데 장성 하면서 날이 갈수록 간절해 지는 것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돌아가신 분을 만나뵐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인데도 보고 싶은 생각을 누를 수가 없었다. 이것이 큰일이었다. 그는 일찌기 어머님을 여의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얼굴마져 기억할 수 없었으나 자기에게도 분명히 있었던 그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자나깨나 어머니 생각이 떠나지 않다가 한번은 가까운 절에 찾아가서 스님에게 여쭈었다.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하니 스님께서 알려 주셨다.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지장보살님을 공경하는 것인데 지장보살님은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하신 마음이 워낙 크시므로 당신이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생각하고 염불하면 지장보살님의 자비하신 힘을 입어 소원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등씨여인은 어둔 밤에 불을 만난것과 같았다.
그때부터 밤낮으로 일심으로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지장보살 염불을 계속하였다. 그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날 밤 등씨여인은 꿈에 염불을 가르쳐주신 스님을 만났다.
꿈속에서 그녀는 염불을 하고 있었는데 스님이 찾아와 하시는 말씀이 '당신 어머니를 뵈우러 갑시다.' 하는 것이었다.

여인은 하도 기뻐서 염불을 하면서 스님을 따라 집문을 나섰다.
그런데 어느듯 스님은 허공을 날고 있었고 여인은 스님 등에 엎혀 있었다. 스님은 순식간에 천상에 이르러 굉장한 큰 궁궐안에 이르자 스님은 앞에서 걷고 있었고 여인은 어느덧 그뒤를 따르고 있었다.

등천 하늘까지 솟아 올라보이는 높은 궁전이 있었는데, 거기는 형용할 수 없는 보배구슬로 장식되어 있었고 높이는 49층이나 되었다.

그 궁전은 마니보전이라 하였는데 그 안의 찬란한 장엄은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많은 천상사람이 한가롭게 즐기고 있었는데 거기서 꿈에도 잊지 못하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등씨여인은 너무도 반가워서 어머니 앞으로 달려가 절하다가 그만 엎드려지면서 통곡이 터져 나왔다.

한참만에야 눈물을 거두고 그의 어머니 얼굴을 자세히 우러러 보았다. 그리고 손을 만지면서 뼈속에 사무쳤던 그리움을 풀었다. 딸이 어머니에게 여쭈기를 '어머니께서 언제부터 이 천상에 와 계십니까?' 하니 어머니는 대답하였다.

' 네가 나를 위하여 지장보살님을 생각한 공덕으로 내가 여기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그렇게도 보고 싶던 네 얼굴을 지금 만나게 되는 것도 역시 네가 지장보살님께 기도한 공덕이다.

등씨 여인은 꿈을 깨니 천국도 어머니도 간 데 없고 평상시의 자기 집 처소였으나 그의 가슴속에는 분명히 깊은 소원을 성취한 만족감이 넘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간밤의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장보살님이 한없이 고마웠다. 그리고 생각하니 염불을 가르쳐 주신 스님 또한 하늘 같이 고마왔다. 날이 밝자 그녀는 집안 돈을 풀어 필육전에 찾아갔다. 그리하여 옷 한벌을 정성껏 만들어 스님께 갖다 올리며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 스님 덕분에 어머니 뵙는 소원을 이루었으니 이 은혜를 무어라 말 할 수 없읍니다. ' 하고 머리를 조아려 감사했다.
등씨여인은 전날 밤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을 자세히 말씀드리니 그제야 의혹이 풀렸다는 듯 큰 목소리로 도량이 떠나갈 듯이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셨다.

' 암 옷을 받아야지, 지장보살마하살'
두 사람 머리위에는 금방 구름에서 벗어난 햇살이 둥글게 감싸면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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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송으로 지옥을 깨트리다


송나라 王씨는 경사(서울)사람인데 스님이 되어 이름을 僧俊이라 하였다
출가는 하였다지만 공부다운 공부한 것 아무 것도 없었고 계율이란 전혀
지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살도를 닦거나 불사에 힘쓴 것도 없었다

말하자면 말이 출가지 세속 사람과 조금도 다름 없이 걸림 없이 살아갔던
것이다 그러는 중에 병이 들어 죽었다 . 삼일만에 다시 살아닸는데 깨어나자
크게 통곡하며 부처님 앞에 나와 무수배를 하면서 참회하였다
그가 말하는 사연인즉 이러하였다

제가 이번에 죽게 되었을 때 명부의 관리로 보이는 두 사람에게
붙잡혀 집에서 끌려나갔습니다 한참만에 큰 성문 앞에 이르렀을 때 문득
한 스님이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네가 나를 알아

보겠느냐 하는 지장보살이다, 네가 서울 있을 때 내 형상을 하나 조성하여
가지고 있다가 예배 공양은 하지 않고 큰절 뒤에 던져버리고 만 적이 있지
않느냐, 네가 나를 조성한 공덕이 있으므로 이제 그 은혜를 갚으로 온 것이니
내가 일러주는 게송을 잘 듣고 부지런히 외우도록 하라" 하시면서 게송 하나를
일러 주시고 사라졌습니다 그 게송인즉 다음과 같다

若人欲了知 만약에 어떤사람 시방삼세의
三世一切佛 일체의 부처님을 알고자하면
應當如是觀 마땅히 이와같이 관할지니라
心造諸如來 마음이 모든여래 짓는것임을

명부사자에게 끌려 성문을 들어가 몇 번인가 대문을 지나서 이른 곳이
염라대왕앞이었습니다 제가 그 앞에 이르니 대왕이 묻기를 "당신은 출가해서
한 것이 무엇이오? 무슨 공덕을 닦았소 ?" 화며 힐책하는 어조로 물어
왔습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하기를 "한가지 게송을 수지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 외워보시오 " 저는 게송을 외었습니다
"만약에 어떤사람 시방삼세의, 일체의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 하는 게송을 소리
높이 외었더니 염라대왕은 " 그만 두십시오 "하고 관인에게 나를 도로 돌려 보낼
것을 지시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이하였던 것은 내가 그 때 게송을 외울 때에
명부관원에게 물어서 안 일입니다 제가 외운 게송을 들은 공덕으로 모두

해탈을 얻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 승준 스님은 이와 같이 말하고 지난 일을 크게 참회
하면서 깨끗한 수행을 힘썼다 , 그리고 가는 곳 마다 지장보살 공덕을 찬탄하고
게송을 설하며 부처님 믿는 것을 권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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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을 모시고 어머니가 천상에 나다.



당나라 진도독(陳都督)의 딸은 어머니를 잃고 밤낮으로 식음을
전폐하며 울고만 있었다. 그대로 놓아두면 조만간 꼭 죽을 것만
같아 그의 아버지는 딸을 붙들고 백 가지로 위로 하며,

" 네가 참된 효녀라면 너의 어머니를 위하여 부처님께 정성을
드리는 것이 좋겠다. 이제 집에 지장보살님의 성상을 모실 터이니,
네가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를 드리도록 하라" 했다.

성상이 완성되자 그의 딸이 아버지 앞에 나와 청하였다.
" 아버지, 이번에 모신 지장보살님은 어머님께서 계셨던 자리에
모시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생각이 날 때마다 지장보살님을
우러러보고 지장보살님 염불도 하고자 합니다."

진도독은 딸이 마음을 돌린 것이 기뻐서 딸의 말대로 어머님 침실에
존상을 모시게 해주었다. 그 다음부터 딸은 지장보살님에게 밤낮으로
예배 공양하며 염불을 쉬지 않고,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딸의 마음도 안정되고 텅 비어 쓸쓸한 바람이 부는
듯했던 집안에도 차차 훈기가 도는 어느날 밤, 진도독의 효녀는
꿈속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 갸륵하다 효녀여, 너의 어머니는 생전에 지은 죄가많아 지옥에
있느니라. 나도 옛날 너와 같은 딸이 되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나의 아버지는 이름이 시라선견이었고, 어머니의 이름은
열재리라고 하였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어 태어난 곳을 몰라 애태우다가 마침내
부처님의 자비하신 인도를 힘입어 어머니가 지옥에 빠져 한없는
고통을 받고 계시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발원하여 기도하며
어머니로 하여금 천상에 나게 하였더니라.

그때부터 내가 보리심을 발하여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기로
맹세하였다. 이제 너의 효심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너의 효성이 장하니 내가 지옥에 들어가 방광설법(放光說法)을
하여 너의 어머니를 죄고에서 건져내어 천상에 나게 하여 주리라."

이 말씀을 마치자 스님은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더니 잠시 후
다시 나타나셨다. 밝으신 얼굴에 자비하신 웃음을 띠우시고
진도독의 딸 가까이에 오셨다. 도독의 딸이 얼핏보니 스님의
옷자락이 불에 타 있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 내가 지옥에 들어갔을 때 불꽃에 탄 것이다"
하시자 스님의 모습은 다시 사라지면서 꿈이 깨었다.
진도독의 딸은 꿈을 깨고 나서 어머니가 천상에 태어 난 것이 기뻤다.

그리고 애달픈 마음, 그리운 마음, 안타까운 마음, 괴로운 마음,
가슴 터질 듯한 슬픈 마음, 그 모두가 사라지고, 가슴속이 환희
열리는 것 같았다. 그의 가슴에는 기쁜 마음이 잠잠히 피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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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을 받들고 다시 살아나다.


당나라 종산(種山) 개선사(開善寺)의 지장보살 존상에 얽힌 실화이다
이 지장보살은 높이는 三척인데 그 둘레에서는 항상 큰 광명이 났으며
배광(背光)이 四척 五촌이나 뻗었다고 한다.

그런데 개선사가 있던 양주(揚州)의 도독 등종(鄧宗)이 나이 61세
되던 해, 가벼운 병으로 눕더니 갑자기 죽고 말았다. 그의 가족들은
너무 급히 당한 일이고, 또한 가슴이 따뜻하므로 염하지 않고
놓아두었다.

그랬더니, 하루를 지낸 다음날 밤중에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말없이 슬피 통곡하더니 이윽고 자손들에게
입을 열었다.
" 나를 개선사에 데려다 다오"
할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개선사에 도착한 등도독은 말없이 지장보살 앞에 나아가더니, 한번
쳐다보고는 그만 엎드려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한참동안 울고
나서 또한 여러번을 우러러보면, 예경하더니, 이윽고 주위
사람에게 말문을 열었다.

" 내가 죽을 때 四품 벼슬로 보이는 관인이 와서 나를 끌고 가더니,
마침내 당도한 곳이 염라대왕 앞이었습니다. 대왕은 나를 보시더니
말씀하시기를 <너는 아직 죽을 때가 멀었으니 다시 인간에 돌아가거라
그리고 부처님 법을 받드는 것으로 너의 집 사업을 삼도록 하여라.

이곳 지옥이라는 데는 세상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데 세상
사람들로는 전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네가 지옥을 한 번 구경하고
가겠느냐? 네가 돌아가서 지옥이라는 곳이 과연 무섭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좋겠다.> 하셨습니다.

관인을 따라 동북방 쪽으로 三--六리 가량이나 가니, 거기에는 쇠로
만들어진 큰 성이 있는데 쇠문이 꽉 닫혀 있었고, 성 안에 들어서니
맹렬한 불길이 솟아오를고 쇠 녹은 물이 강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를 자세히 살펴보니,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고초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쪽을 본즉, 맹렬한 불길을 헤치며
고초받는 사람들을 위로하여 교화하고 계시는 스님이 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스님이 가시는 곳은 금방 불꽃이 멎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서 지옥 구경을 하였는데 한 성에 이르니,
그 가운데는 또 무서운 지옥이 있어서 十八이나 되는 큰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양은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또 앞서의 스님이 보였는데 불길을 멎게 하고, 죄인을
교화하는 것은 앞서와 같았습니다. 내가 차마 볼 수 없는 지옥의
가지가지 광경을 낱낱이 구경하고 돌아올 때에 그 스님도
지옥에서 나오시며 나에게 말을 거셨습니다.

<네가 나를 알겠느냐?>
저는 사실대로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였더니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개선사에 있는 지장보살이니라. 옛날 智滿법사가 三도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해내기 위하여 나의 형상을 만들어 모셨으므로
내가 지만 스님의 청을 받아들여 매일 한 번씩 지옥에 까지 다니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에서 보면 지옥 속에서도 혹 선근이 남아 있어 착한 마음이
강한 자는 내말 한 번에 곧 발심하여 지옥고를 벗어나며, 사견만
많은 자는 고통을 벗어나기 어려우니라.

그 중 선근이 미약한 자는 오히려 교화하기 쉬우나, 한 번 지옥에
들어가기만 하면 좀체로 구제하기 매우 힘드느니라.

그런데도 세간에서 악한 업력만 기른 사람은 자기 허물을 깨달을 줄
모르고, 오직 고통받는 일과 빠져나올 것만 기다리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세상에 살면서 선근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뉘우치는 마음을
낼 것이니, 너는 부처님의 법력을 받아 세상 사람들이 지옥고를
받지 않도록 일러주고 힘쓰도록 하라.
어서 인간에 나가 여러 사람들에게 이 뜻을 전하여라.>

이 말씀을 듣고 고개를 들어 스님을 처다보니, 이제까지의 스님의
몸은 어느덧 적어져 키는 三척 정도로 보이고 이마에서 환하게
광명이 났으며 눈이 유난히 빛났습니다.

내가 공손히 예배를 드리고 돌아서려 하니, 스님께서는 이런 글귀를
일러주셨습니다.


인간에게 있어도 도 닦을 수 있나니

모든 선근 끊인 자도 발심하면 다 되네.

악도에 떨어져서 죄업이 익어지면

깨달을 맘 못내니 구원하기 어려워라.


노쇠한 사람들이 길을 가고자 할 때

팔다리를 부축하면 나아갈 수 있어도

누워서 부동하면 어찌 할 수 없나니

중생들이 지은 바 정업도 그같니라.


스님께서는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셨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그 스님이 일러주신 말씀을 잊을까봐 그것만을
생각하느라고 아무에게도 말못하고,

지금까지 와서 이제 여기 지장보살의 존상을 우러러 뵈오니,
지옥에서 보던 바와 똑같고 또한 그때에 말씀하신 것이 생생히
되살아납니다."

이 말을 들은 개선사 스님들과 자리를 함께 하였던 사람들은 모두가
놀라고, 또한 기이하게 생각하면서 다시 몇 번이고 지장보살을
우러러보았다.

그리고서 신심이 두텁고 솜씨좋은 화공을 청하여 앞서부터 모셔왔던
지장보살 탱화를 본떠서 다시 그리게 하고 앞서의 탱화와 함께
그대로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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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차의 불을 꺼주다


형주땅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글보다는 오히려 사냥을 업으로하는
사냥선비로. 그의 별명이 안웅 (기러기 영웅)인 것으로 보아 족히
짐작이 간다.

사냥을 즐겨 했지만 특히 기러기를 잡는데 명수였다 사냥을 즐기면서
이럭저럭 50살이 되어서 열병을 앓다가 죽었다.
그의 아내는 풍습에 따라 울면서 시체를 산에 내다버렸다.

그런데 삼일 만에 그는 살아나 자기 걸음으로 비실비실 집에
돌아온 것이다. 죽어서 산에 버렸던 사림이 걸어 들어오니
얼마나 놀라왔겠는가.

집안권속들은 깜짝 놀라(귀신이 돌아왔다)하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오들오들 떠는데 문제의 안웅이의 거동은 귀신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초최한 얼굴에 그 중에 화색이 돌고 거동이 정상적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겁에 질렸다가 놀라움으로 바뀌고 순식간에 기쁨으로
바뀌어 야단법석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안웅이 하는 말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앓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어서 가자고 소리치면서 집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그 형상이 우악스럽기가 형용할 수 없었다.
내 곁에 오더니 다짜고짜 어서 가자고 방망이로 울러댄다.

하는 수 없이 그에게 끌려 문밖을 나섰다. 문밖에는 수레가 한 대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그런데
방망이를 든 사나이는 나를 불수레에 타라고 호령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발 버둥쳐도 역부족하여 수레에 막 실릴 참인데 그때
어디서인지 한 스님이 나타나서 물을 불수레에 퍼붓는 것이 아닌가.
불길은 단번에 잡혔고 타서 죽는 것을 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스님은 곧 보이지 않았다. 방망이를 든 사자는 나를 데리고
몇 개의 대문이 달린 집을 지나 염라대왕 앞에 꿇어 앉혔다.
거기에는 멧돼지, 노루.염소.토끼.꿩 그밖의 여러 가지 새들이
수 천마리 모여 있었다. 또한 수 많은 기러기도 있었다

그런데 저들 짐승들은 일제히 목을 빼고 눈알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
보았다 그리고서 일제히 염라대왕에게 무엇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저 짐승들이 하는 말이 모두 사람의 말처럼 역력하게 알수 있었다

"대왕님, 저놈이 우리를 죽이고 우리 자식을 죽인 안웅이입니다.
저놈을 엄하게 다스려 주십시요"하고 있었다.

대왕이 그 말을 듣더니 하는 말이

"너희들 말이 맞다. 안웅이는 틀림없이 나쁜사람이다. 그러나 한가지
그의 조부가 지장보살님에게 귀의했느니라. 그러므로 나로서는
저 안웅이가 그 사람의 손자인 것을 아는 이상 고초를
면해줄 수 밖에 없다"하였다

나는 귀가 번쩍 뛰었다. 꼼짝없이 이제는 지옥으로 가나보다 하였더니
지장 보살님 공덕으로 살게 된 것이다. 나는 감격해서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소리높이 불렀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뜰 가운데 있던 모든 짐승들이 금시에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나를 놓아주면서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하는 말을 듣고 금방 돌아온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안웅의 생활은 일변하였다. 자칭 "나는 부처님의
종이다" 하면서 사방에 돌아다니며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그리고 여러사람에게 죽었다 살아난 경위를 말하면서 지장보살을
일심으로 생각할 것을 권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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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속에 모신 지장보살의 광명


당나라에 별가(別駕) 벼슬을 한 건갈(健渴)에 대한 이야기다.
건갈은 신심이 돈독하였고 그의 일상수행은 매우 청정하였다.

항상 지장보살을 받들어 모시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단향나무를 구하여 높이가 세 치되는 지장보살 존상을
조성하여 상투머리 속에 정중히 감추어 모셨다.

그러니 다닐 때나 머무를 때나 눕거나 앉거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나 생각에서 잊지 않았다. 가히 생각생각에 지장보살을 잊지
않고자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장흥년(長興 서기930년)에 건갈은 새로운 관명을 띠고
부임하는 중이었다. 어느 후미진 냇가에 다다르자 이상한 느낌이
들어 건갈은 더욱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생각하면서 다리를 건너
산 밑에 이르렀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바쁜 걸음으로 그를 부르며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일찍이 그에게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이었다.
건갈은 <이제 올 것이 왔구나>생각을 하였더니, 그 사나이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민망하리만치 정중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번에 당신이 이 길로 부임하는 것을 알고서 미리 다리 밑에
숨어 있었소. 멀리서 당신 혼자서 말타고 오는 것을 보았는데 다리
가까이 와서는 갑짜기 스님 한 분이 지나가실 뿐, 당신도 말도
보이지가 않았소.

이상한 일이다 생각하고 한참 지켜보았지만, 역시 당신은 보이지 않고
스님 한 분만이 다리를 건너가셨는데 다시 한참 있다 보니, 당신이
여전히 말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겠소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 하잖은 일 가지고 당신과 원한을 맺고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니, 이것은 잘못되었다 생각하오. 당신은 분명히
부처님이 도우시는 사람같소. 이제 내가 과거 일을 다 풀어버리니
당신도 마음을 놓으시오."

하는 것이었다. 건갈이 죽은 것은 청태(淸泰) 2년(서기935년), 그의
나이 78세 때인데 임종하면서 그는 단정히 앉아 합장하여 염불하고
있었다.

그의 상투에서는 유난히 밝은 광명이 퍼져 나와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그는 고요 속에 잠겨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