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혹문 (淨土或問) 1.
정토염불만 있으면 극락에 간다
천여 노인이 와운실(臥雲室)에서 고요히 계실적에 문을 열고 들어 오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참선하는 상인이었다. 얼마후에 저녁 볕이 창에 비치고 향연이 사라지려 할 때에 상인이 옷깃을 바로하고 들어서서 조용히 물었다.
■ [문]영명연수 선사는 덕소국사에게 법을 배워 법안종의 3조가 되고 제자가 수천명이며 빠른 변재와 훌륭한 지혜가 우뢰같이 울리고 바람같이 날리어 사해 선림에서 큰 종장으로 추대되는데 어찌하여 스스로 정토를 닦고 또 정토의 글을 지어 세상에 널리 선전하며 또 사료간에 참선만 하고 정토가 없으면 열 사람에 아홉은 길이 미끄러지고 선은 없어도 정토만 있으면 만인이 닦아서 만인이 다 극락에 간다하여 참선을 누르고 정토를 찬양하니 어찌된 일입니까?
■ [답]좋은 물음이로다. 영명화상은 종교에 큰 공이 있는데 가석하게도 그 대강만을 말하고 끝까지 발명치 아니하여 참선자의 의심을 다 끊지 못하셨도다.
나는 참선을 약간 배웠을 뿐 정토를 모르거니와 여러 경전을 보아 그 대강을 아나니 본래 행하기 쉽고 들어가기 쉬운 방편이면서도 말하기 어렵고 믿기 어려운 법이다.
석가여래께서 말법 시대의 중생들이 믿고 행하는 이가 적을 줄을 아시었으므로 여러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의 의심을 풀어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오탁 악세에서 이 믿기 어려운 법을 말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하셨으니 이것은 고구정영히 사람을 권하여 믿게함이니라.
또,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는이가 없는데 이 정토에 대하여 의심이 있는 것은 무슨 일인가?
이것은 정토에 들어가는 문이 매우 넓고 매우 큰데 닦는 법은 너무 간단하고 너무 쉬운 까닭이다. 크다는 것은 모든 근기를 다 포섭하여 위로는 일생보처까지 다 왕생하고 아래로는 5역과 십악을 범한 이라도 임종때 염불하여 죄를 참회하는 이는 다 왕생하느니라.
또, 간단하고 쉽다는 것은 다못 아미타불 명호만 염하면 이것 만으로 사바 세계를 떠나 극락에 왕생하여 물러가지 않고바로 성불하는 것이다. 들어가는 문은 저렇게 넓고 수행법은 이렇게 쉬우므로 지혜있는 이도 의심이 없지 않으니 그대가 만일 이런 줄을 알면 영명화상의 칭찬 하심에 깊은 뜻이 있음이 과언이 아닌 줄을 알 것이다.
정토혹문[淨土或問] 2.
견성하고도 다시 정토 나기를 구하겠는가
천여(天如)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선종의 깨달은 사람이 이미 견성 성불하고도 다시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겠는가?
■ [답]깨달은 사람이라야 바로 왕생하기를 구하리니 고인의 말에 정토에 나지 않고 어느 국토에 나겠는가? 하였으니 그대가 깨닫지 못하였을지언정 깨닫기만 하면 정토에 가는 것을 만 마리 소의 힘이라도 막지 못할 것이다.
정토혹문[淨土或問] 3.
고통이 싫어서 낙도에 나아간다는 것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공부하는 이가 대사(大事) 밝히지 못함을 근심하나니 대사를 밝히기만 한다면 생사를 돌보지 않고 중생을 제도할 것이니라. 이제 고통이 싫어서 낙도에 나아간다는 것은 나로서는 원하지 않노라.
■ [답]알을 보고 닭을 찾는 것은 너무 급하지 않는가?
그대는 생각하기를 한번 깨달은 뒤에는 익혀온 번뇌가 영원히 없어져서 퇴전치 않는다 하는가?
다시 불법을 두루 배우며 수행하여 과를 증득하는 일이 없으리라 하는가? 문득 위로 부처님과 같아서 생사에 들고 나는데 장애되는 인연의 시끄러움을 받지 않는다 하는가?
진실로 그렇다면 여러 대보살들이 六도 만행을 닦으면서 걸핏하면 항하사 겁을 지내는 이는 도리어 그대에게 부끄러운 일이 되겠다 하리라. 경전에는 성문이 태에서 나오면 혼미하여진다는 말과, 보살도 생을 격하면 어두워진다는 말이 있는데, 하물며 요사이 조금 알고 옅게 깨달은 이가 자기의 몸도 구원하지 못하고 있음에랴.
비록 깨달은 바가 깊고 멀고 소견이 밝고 높아서 수행과 지혜가 서로 응한다 하더라도 불퇴전하는 자리에 오르지 못하여 힘이 충실치 못하니 어찌하랴.
五탁악세에 있어서 강건한 중생을 교화하는 일은 예전 성인들도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마치 완전하고 견고하지 못한 배를 가지고 험악한 바다에서 많은 사람을 건네려는 것과 같아서 너와 내가 함께 빠질 것은 당연한 일이니라.
그러므로<왕생론>에 말하기를, 지옥문에서 유희하려거든 반드시 정토에 나서 무생법인을 얻은 뒤에 도로 생사에 들어가 괴로운 중생을 제도하라 하였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느니라.
옛날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불퇴전하는 자리를 얻지 못하고는 세속에 섞이어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여 무생법인을 얻지못하였으면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하였다. 어린 아기는 어머니를 떠나지 말아야 하고, 연약한 날개로는 가지에서 오고 갈 뿐이니라.
지금 석가여래는 열반하셨고 미륵부처님은 탄생하지 않으셨는데, 네 갈래 나쁜 곳에서는 인과에 속박되고 외도와 사마들은 시비를 어즈러이 퍼뜨린다. 여자의 음란한 소리가 나를 의혹케 하고 나쁜 인연의 더러운 모양이 서로 침로하는데, 귀의할 부처님은 계시지 않고 환경과 이연이 시끄럽게 하나니,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이 낭패하지 않을 이가 없다. 세존께서 간절하게 극락세계를 지도하심이 진실로 이유가 있느니라.
저 아미타불께서 현재 법을 말씀하시고, 극락 정토의 좋은 환경이 갖가지 청정하니, 만일 저 부처님께서 귀의하면 법인의 힘을 성취하기 쉬우니라. 부처님의 경지를 증득하고 수기를 받은 뒤에 나와서 중생을 교화하면 오고가기에 장애가 없으리니, 그러므로 상품(上品) 근기도 빨리 왕생하기를 원하거든 하물며 중하품들로서 처음 발심한 사람일까보냐.
<관불삼매경>에는 문수보살이 이 염불삼매를 얻고 항상 정토에 나거늘,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는 마땅히 극락 세계에 왕생하리라 하였고, <화엄경>에는 보현 보살이 선재동자와 많은 대중을 권하되 열가지 원왕으로 극락세계에 가도록 지도하였는데, 그 게송은 이러하다.
바라건데 내 목숨 마치려 할 때 여러가지 장애들을 없애고 아미타 저 부처님 만나뵈오며 훌륭한 극락세계에 가서 나리라.
저 부처님 주시는 수기 받잡고 수없는 백 구지의 화신 나투어 광대한 지혜의 힘 시방에 가득 모든 중생세계를 이익하리라.
〈능가기 〉에서는 말하기를
이름 높은 큰 비구 그 이름이 용수보살 이 세상에서 나에게 대승법을 나타내 보여 환희지를 얻고서 극락세계 왕생케 하네.
또 〈기신론〉에는 마명보살이 왕생하려는 원을 세웠고, 〈무량수론〉에는 천친 보살의 왕생하려는 뜻을 말하였으며, <대보적경>에는 정반왕과 七만 석가종성이 극락세계에 함께 왕생한 일을 기록하였고, <관경>에는 위제희 부인과 오백 시녀가 아미타불을 뵈었다 하였으며, 또 정반왕과 위제희 부인은 현세에서 무생법인을 얻었다고 하였다.
인도의 이러한 이들은 이루 셀 수가 없으며, 중국에서도 여산 혜원법사의 백련 사원들과 천태의 지자선사와 현수대사등 여러 존자와 같은 스님과 거사로서 왕생한 이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지 아니한가.
저 문수와 보현은 대 보살이요, 선재동자와 많은 대중은 여러 선지식을 참배하여 깨달음이 여러 성인과 같은 이들이며,
마명과 용수등은 보살이면서 선종에서 대 조사로 모시는 이들이다. 이 여러 성현의 깨달고 증득하심이 지금의 깨달았다는 사람들에 비해서 어떻다 하겠는가?
저들도 오히려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아미타불께 친견하였는데, 그대가 한번 깨달은 뒤에 다시 왕생하기를 원하지 않느다면 용수, 마명과 보현, 문수가 도리어 그대만 못하단 말인가.
어찌하여 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며 제 힘을 요량하지 못하는가?
닦은 바와같이 증득한 바가 두 보살과 두 조사보다 지나간단 말인가.
참배한 선지식과 깨달은 불성이 선재동자와 많은 대중보다 지나간단 말인가.
얻은바 무생법인과 부처님의 인증을 받은 것이 정반왕이나 위제희부인보다 지나간단 말인가.
정반왕은 부처님의 아버지요, 七만 석가종성은 부처님의 친척인데, 정토에 왕생이 이익이 없다면 부처님께서 그 아버지와 친척을 그르쳤단 말인가. 또 말하기를 무생법인을 얻고는 세속에 섞임을 허락한다 하였는데 이제 정반왕과 친척이 무생법인을 얻고도 왕생하는 수기를 받았으니, 여래께서 보호하신 뜻이 깊고도 먼 것이 아니겠는가?
요새 참선하는 이들이 대개 여래의 요의를 연구하지 않고 달마의 현묘한 이치를 알지 못하여 배는 비고 마음만 높은데 허탕하고 미친 것만 익혀서 정도문을 닦는 것을 보고는 어리석은 남자나 여자가 부질없는 일을 배우는 것이라 비웃는다. 나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어리석은 남자 ' 여자를 비웃는 것이 아니고 문수, 보현, 마명, 용수를 비웃는 것이니라
다만 정도를 모르고 선근을 잃으며, 지혜의 몸을 잃어버리고 부처의 종성을 없이 할뿐 아니라, 또 불법을 비방한 업과 성인을 비루하다고 한 재앙을 이루게 되는 것이므로 부처님과 조사들이 가련하다고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영명화상이 간담을 들어내어 정토를 주장하면서 스스로 수행하고 세상 사람도 교화 하였으며, 임종시에 때가 된 줄을 미리 아시었으며,여러가지 훌륭한 상서가 나타나고 사리가 몸에서 많이 나왔었느니라.
무주(無州)의 어떤 스님이 여러해 동안 영명화상은 탑을 돌았는데, 누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병을 앓다가 명부에 들어갔더니 전각 왼쪽에 어떤 스님의 탱화가 있는데 염라대왕이 무수히 예배함을 보고 물으니 맡아보는 관리가 말하기를 그는 영명 연수선사로서 부지런히 수행하여 극락세계 상품연화에 왕생하였느니라 하셨소.」
영명화상은 달마조사의 직지인심하신 선(禪)을 잘 깨달고 또 극락 상품에 왕생하였으니 이 일로써 참선하는 이의 국집하는 뜻을 풀어주고, 말법 시대를 위하여 믿음을 권하는 것인즉, 종교에 깊은 공이 있다고 내가 말하는 바이니라. 어찌 영명화상만이 그러하였으랴.
사심 신선사<권수정토문>에 말하기를
「아미타불은 염하기 쉽고 정토에는 왕생하기 쉽다」하였고, 또 말하되 참선하는 사람이 염불하기 쉬우니 근기가 둔하여 금생에 크게 깨닫지 못할까 두렵거든 아미타불 원력으로 이끌어 왕생하기를 구하라 하고, 또 가로되 「그대가 염불하고도 정토에 왕생하지 못하면 이 중이 발설지옥에 떨어지리라.」하였느니라.
진헐(眞歇)선사의 〈정토설〉에는 「조등종의 스님들이 모두 비밀하게 수행하기를 힘썼으니 무슨 까닭인가?
진실로 염불하는 법문이 지름길을 수행하는 것이라, 바로는 대장경을 의지하여 상상 근기를 접인하는 것이요, 겉으로는 중품 하품 근기를 접인한다 하였고, 또 말하되 종문의 큰 스님들이 공도 아니고 유도 아닌 법을 깨닫고도 뜻을 세워 정토사업에 힘쓰는 것은 정토에 가서 부처님 뵈옵는 것이 종문에서 보다 더 쉬운 것이 아닌가 하였다.
또 말하기를 부처님이나 조사들이 교에서도 선에서도 모두 정토법을 닦아 한 근원으로 돌아가셨으니, 이문에만 들어가면 무량법문을 모두 증득할 수 있다 하였으며, 내지 천의 회, 원조 본, 자수 심, 남악 사, 법조 정애, 정자 대통, 천태 희옥, 양나라 도진, 당나라 도작, 비룡 법진, 고소 수눌, 북간 간, 천목 례 여러 분들이 다 선문의 종장들로서 비밀히 수행하고 드러나게 교화하여 정토를 선양한 뜻이 약속한 일 없이 같았느니라.
어찌 여러분 큰 스님뿐이랴, 일찍 노덕 스님께 들으니, 五종의 종파와 천하의 선승으로서 깨달은이나 깨닫지 못한 이가
한 사람도 정토에 돌아가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하였다.
백장 회해선사는 마조의 적자로 천하의 총림에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가지도 그의 법을 어기는 이가 없지마는, 그가 병난 스님을 위하여 염송할 적에 한 게송을 선양하여 아미타불을 칭찬하고 다시 같은 음성으로 백번 천번 염불하고는 회양하여 말하기를, 모든 인연이 다하지 못하였으나 일찍 부터 경쾌 안락할 것이며, 천명을 도망하기 어려우니 곧 안락국으로 돌아가라 하였느니라.
또 죽은 스님을 봉송할 적에 「신혼이 정토에 초월하면 얻은 번뇌를 하직하나니, 상품 연꽃이 피고 부처님의 수기를 받으리라 하고, 다비할 적에 소리를 높여「 나무 서방 극락세계 대자대비 아미타불」을 제창하며, 이렇게 열번 제창하여 열번 화답하였다. 회향할 때에 말하기를, 위에서 일컬은 열마디의 염불로써 왕생을 돕노라 하였으니, 이것이 정토를 가르켜 인도함이 아닌가?
백장선사로부터 지금까지 다 이법을 의지하였으니 선승들이 정토에 돌아가지 않은 이가 없다 함이 어찌 사실이 아니겠는가?
내가 노덕스님의 말씀을 살피건데 참으로 증거가 충분하니 더 변명할 것이 없으며, 따라서 백장 스님의 법을 마련한 의지가 없지 아니함을 아노라. 그대도 총림에 있으면서 고혼을 봉송함이 몇번인지 알 수 없으며, 이렇게 회향하면서 십념하는 것을 입으로 부르고 귀로 듣은 것이 또 얼마인지 알 수 없느니라.
그대가 조사의 뜻도 모르고, 또 견성할 생각을 내지도 않으면서 말하기를, 깨달은 이는 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리라 하니, 온천하 선객들의 국집은 그대와 같은 이가 없도다.
정토혹문[淨土或問] 4.
마음이 극락 정토요, 본 성품이 아미타불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마음이 극락 정토요, 본 성품이 아미타불이란 말을 듣고 기뻐하였더니, 경과 논을 본즉 정토는 十만억 세계 밖에 있는 극락 국토요,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의 교주라 하였으니, 그와 내가 분명하여 마음과 본성품의 밖에 있으니 웬 일인가?
■ [답]그대의 말이 국집하여 그대의 마음이 넓고 크고 밝고 묘한 줄은 모르는구나.〈능엄경〉에 말하기를, 몸과 산과 강과 허공과 땅이 모두 묘하고 밝은 참 마음 가운데 있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모든 법이 생기는 것이 오직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하였으니, 어느 국토가 마음이 아니겠는가?
정토가 오직 마음인지라 마음 밖에 국토가 없나니, 큰 바다에서 물거품이 나타남과 같아서 어느 물거품도 바다 아닌 것이 없으며, 오직 마음이 정토인지라 정토 밖에 마음이 없나니, 마치 모든 티끌이 땅을 의지함과 같아서 어느 티끌도 땅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한 마음에 네가지 국토를 갖추었으니,
一 은 범부와 성인이 섞여 사는 국토요,
二 는 방편이요. 번뇌 남은국토요,
三 은 진실한 과보로 장애 없는 국토요,
四 는 항상하고 고요하고 빛난 국토다.
一, 범부와 성인이 섞여 사는 국토는 예토 ' 정토로 나누는데, 섞여 사는 예토는 사바세계와 같은 곳이다. 그 가운데 범부가 사는 데는 네 나쁜 갈래와 인간과 천상이요. 성인이 사는 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참말 성인이니, 성문의 四과 ' 벽지불 ' 통교의 七지 ' 별교의 十주 ' 원교의 十신의 후심으로서 공통한 번뇌는 다 하였으나 보신이 아직 남았으므로 참말이라 하고, 둘은 권도성인이니, 방편의 국토, 진실한 과보의 국토, 항상 고요한 국토의 보살과 부처님이 인연있는 중생을 이익하려고 응하여 나서 섞여 사는 것이므로 권도라 한다.
섞여 사는 정토는 극락세계 같은 데니 여섯갈래는 없으나 범부가 있으므로 인간 ' 천상의 이름을 빌린 것이다. 경에 말하기를, 중죄를 범한 이가 임종시에 참회하고 염불하면 왕생한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번뇌를 구족하고도 섞여 살 수 있음을 알 것이다. 권도 성인과 참말 성인의 사는 것은 앞에와 같거니와 나쁜 갈래가 없으므로 정토라 하느니라.
二, 방편이요, 번뇌 남은 국토는 二승과 세가지 보살과 방편도를 증득한 이가 사는 데니, 두 가지 관을 닦아서 공통한 번뇌는 끊어 진사 번뇌가 다 하였으나 따로의 무명번뇌는 끊지 못하였으며, 분단생사하는 몸은 버리고 三계 밖에 났느나
법성신을 받아 변역 생사하는 몸이 있으며 번뇌 남았다는 것은 무명을 끊지 못함이니라.
〈석론〉에 말하기를 三계 밖에 정토가 있으니 성문고 벽지불이 그 가운데 태어나며 법성신을 받았으므로 분단 생사가 아니니라.
三, 진살한 과보로 장애 없는 국토는 순전한 법신보살이 사는 데니, 무명을 깨뜨리고 법의 성품을 나타내어 진실한 과보를 얻었으나 무명이 다하지 못하며, 무루의 업을 축이어 법성의 보신을 받으므로 과국토라고도 하나니,〈인왕경〉에 말한 三현과 十성이 과보토에 머문다 한것이 그것이다.
실상을 관찰하고 참된 무루를 발하여 얻은 과보이므로 진실이라 하고, 인행을 닦음이 일정하지 않고 물질과 마음에 걸림이 없으므로 장애 없다 하나니,〈화엄경〉에 말한 인다라망 세계가 그것이니라.
四, 항상하고 고요하고 빛난 국토는 묘각의 지극한 지혜로 비추어보는 여여법계의 이치를 국토라 하며 법성신이라고도 하거니와, 진여인 불성은 몸도 아니고 국토도 아니지마는 몸이라 국토라 하나니, 몸을 떠나서 국토가 없고 국토를 떠나서 몸이 없느니라.
몸이라 국토라 하는 것은 하나는 법이요, 둘은 뜻이니, 〈보현관경〉에 「비로자나불의 머무는데는 항상하고 고요하고 빛난 국토라 이름하라」는 것이 그것이니라.
앞에 둘은 응화 국토이니 응화불이 있는 데요, 제三은 응화국토며 과보국토니 보신불이 있는 데요, 제四는 참되고 청정한 국토이고 응화도 아니고 과보도 아니니 법신불이 있는 데이니라. 항상함은 법신이요. 고요함은 해탈이요 빛남은 반야이니, 세간의 이(伊 .'.) 짜의 세 점이 세로도 아니고 가로도 아니고 가지런하지도 않고 따로 있지도 않는 것 같음을 비밀장이라 하나니, 여러 부처님 여래의 노니시는 데로 참되고 항상하고 구경이어서 지극한 정토라 하느니라.
위에 말한 三신' 四토로 본다면 十방의 티끌같은 국토도 오직 내 마음의 국토요, 三세의 항하사 같은 부처님들도 오직 내 마음의 부처님이니, 어느 국토도 네 마음을 의지하여 세워지지 않은 것이 없고, 어느 부처님도 내 성품으로 말미암아 나타나지 않은 것이 없거니, 어찌 十만억 세계 밖에 있는 극락만이 마음의 정토가 아니며, 극락세계의 교주만이 본 성품의 아미타불이 아니겠는가?
또 이 한 마음이 九계를 포함하였는지라, 몸과 국토가 융합하여 중중으로 걸림이 없으며, 또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셋이 차별이 없는지라, 중생과 부처가 서로 나타나서 생각생각에 서로 어울리느니라. 그러기에 부처님의 마음속 중생이 티끌마다 극락이요, 중생의 마음속 부처님이 생각마다 아미타불니라 하느니라.
또 말하기를 十방의 정토와 예토를 말아 품으로 함께 찰나에 있고, 일념의 물질과 마음도 버려 놓으면 법계를 두고 거둔다 하였으니, 모두 천진으로 본래 갖춘 것이고 인연으로 새로 이루는 것이 아니니, 한 생각이 그러하면 한 티끌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낱낱 티끌 속마다 모든 세계가 있고, 낱낱 마음 속마다 온갖 마음이 있으며, 낱낱 마음과 티글이 또 다시 서로 두루하여 중중으로 다하지도 않고 장애되지도 않느니라.
한꺼번에 몰록 나타나서 숨지도 드러나지도 않으며, 모든 것이 원만히 이루어져 낫고 못함이 없나니, 그렇다면 정신이 백억만 세계로 옮아가더라도 실로는 자기의 마음속에 나는 것이요,몸이 九품 연대에 나더라도 어찌 찰나 동안에 도망하겠는가?
또 말하기를 극락세계가 모든 곳에 두루 있어서 하나를 들면 모두 거두어지나니, 마치 제석천왕의 전각에 있는 천개의 구슬로 된 보배 그물과 같아서 천 구슬의 그림자가 한 구슬에 들어가고 한 구슬의그림자가 천 구슬에 두루하느니라. 비록 구슬마다 서로 두루하더라도 이 구슬은 저 구슬이 되지 못하고, 저 구슬은 이구슬이 되지 아니하여, 어울리면서도 복잡하지 아니하고 여의 면서도 나누이지 아니 하는지라, 하나하나가 두루 드러나면서도 있는데가 없느니라.
극락정토도 천 구슬의 하나요, 十만억 국토도 천 구슬의 하나이며, 三승 ' 인간 ' 천상으로 내지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가 모두 천 구슬의 하나이고, 아미타불도 천 구슬에서 하나를 보인 것이니, 한 부처님을 보는 것이 十방의 모든 부처님을 보는 것이며, 十방의 九계 중생을 보는 것이어서 티끌같은 세계와 열 세상의 옛과 지금이 한꺼번에 원만하고 다시 남는 법이 없느니라.
그렇다면 다만 극락세계만이 아니라, 여러 세계 티끌이 티끌마다 모두 마음의 극락이요, 한 티끌과 한 부처님이 부처마다 모두 본 성품의 아미타불이니라. 위의 말은 모두 부처님과 조사와 성현들께서 번갈아 서로 발명하신 교훈이니 어찌 다시 의심하리요.
정토혹문[淨土或問] 5.
어찌하여 사바세계만이 예토인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그와 같이 정토와 예토가 융통하여 티끌마다 극락이라면 어찌하여 사바세계만이 예토인가?
■ [답]범부의 업으로 보면 정토이면서 곧 예토이거니와, 부처님 눈으로 보면 예토 그대로가 다 정토이니라.
어찌 석가여래의 과보로 되는 국토가 예토이겠는가?
정토혹문[淨土或問] 6.
마음이란 국토가 어찌하면 깨끗하겠는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모두 포섭하여 남음이 없다 하니 나는 마음이 큰 것을 믿고, 원만 융통하여 걸림이 없다 하니 내가 마음의 묘함을 믿거니와, 아직도 아득한 생각에 걸리어 예토의 업을 여의지 못하였으니, 오직 마음이란 국토가 어찌하면 깨끗하겠는가?
■ [답]마음이 때묻으면 국토도 때묻고, 마음이 깨끗하면 국토도 깨끗하느니라.
〈유마경〉에 말하기를, 깨끗한 국토를 얻으려거든 마음을 깨끗이하라. 그 마음을 깨끗해짐을 따라서 부처의 국토가 깨끗하니라 하였으니, 마음을 깨끗이 하려는 이가 국토를 깨끗이 하는 수행을 버리고 무엇을 능히 하겠는가.
정토혹문[淨土或問] 7 - 1
정토의 업을 닦는 법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가 1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정토의 업을 닦는 법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가?
■ [답]정토는 닦을 것이 없는데 닦는 것은 아득함을 인하여 있고, 법은 높고 낮음이 없는데 높고 낮음은 근기를 말미암는 것이니라. 근기가 여러가지이므로 닦는 것도 여러 종류로 나뉘거니와, 그 여러 종류를 포섭하여 모두 세가지 문이 있으니,
一은 관찰하여 생각함,
二는 기억하여 생각함,
三은 모든 행이니, 극락세계와 아니타불을 의지하여 주인을 삼는 것이니라.
一, 관찰하여 생각함이란,
{관경}에 말하기를 여러 부처님은 법계의 몸이니 모든 중생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들어가느니라. 그러므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할 때에 그 마음이 곧 三十二상과 八十종호이니, 이 마음이 부처를 짓고 이 마음이 곧 부처니라. 부처님들의 정변지해가 마음의 생각함으로부터 나는 것이니, 마땅히 일심으로 생각을 매어 저 부처님을 자세히 관찰할 것이라 하였다.
천태(天台)의 소(疏)에 말하기를, 법계의 몸이란 것은 과보불의 법성신이요, 중생의 마음이 깨끗하면 법신이 자재하는 것이므로 「들어간다 」하였으니, 마치 해가 하늘에 뜨면 그림자가 모든 강에 비치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 몸이 자재하여 물건을 따라 나타남을 밝히었느니라.
또 법계의 몸은 이 부처의 몸이니 두루하지 않은 데가 없어서 법계로 자체를 삼나니, 이 관불삼매를 얻으면 이해와 들어 감이 서로 응하는 것이므로 마음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들어간다 하였느니라. 이 마음이 부처를 짓는다 함은 부처는 본래 없지마는 마음이 깨끗하므로 있는 것이라 함을 듣고,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였기에 「곧」이라 하느니라.
묘종초에는 말하기를, 부처의 몸을 생각하려면 관찰하는 자체를 밝힐지니라. 자체는 본각인데 일어나서 능히 관창함이 되나니, 본각이 곧 여러 부처님의 법계의 몸이라 부처님은 따로 중득함이 없고, 중생의 본성품을 온천히 증득하는 것이니라. 만일 시각이 공이 있으면 본각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법신이 마음의 생각으로부터 나는 것이라 하였느니라.
또 아미타불이 모든 부처님으로 더불어 한 몸이요 한 지혜며, 응용하는 것도 그러하여, 아미타불의 몸이 나타나는 것이 곧 모든 부처님의 몸이요, 모든 부처님의 상호가 명백함이 곧 아미타불의 자체니라. 그러므로 대개 모든 부처님이라 하여서 아미타불을 관찰하는 자체를 삼았느니라.
(법계의 몸이란 것은)으로부터 아래는 감동하고 응하는 도가 어울림을 가지고 해석하였고, (또 법계의 몸은)으로부터 아래는 이해하고 들어감이 서로 응함을 가지고 해석한 것이니라. 융심해에 말하기를 만일 첫 해석이 없으면 관찰하여도 부처를 관찰함이 아니고, 둘째 해석이 없으면 중생과 부처님의 자체가 다른 것이나 두 해석이 서로 이루어서 지금의 관찰하는 법이 된다 하니라.
초에 말하기를 지금의 마음으로 관한다 함은 五음의 마음에서 본성품의 부처를 관찰할 뿐만 아니라, 다른 부처님을 의탁하여 본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응화불이나 나의 생각하는 마음에 드는 것을 밝히고, 다음에 부처님의 몸이 전혀 이 몸각임을 밝히었나니,그러기에 응화불이 드러남에 본 성품이 밝은 것을 알고, 밖엣 것을 의탁하는 뜻이 이루매 오직 마음이란 관찰이 성립되느니라.
만일 (지음)과 (곧)을 말하면 곧 부사의한 三 관이니, 파하거나 세우는 것으로 (지음)이라 하면 공관과 가관이요, 파하지도 않고 세우지도 않음을 (곧)이라 하면 중도 관이니, 전혀 (곧)이면서 (지음)은 三제를 함께 파하고 함께 세움이요, 전혀 (지음)이면서 (곧)임은 三제를 파하지도 세우지도 않음이며, 중도관에 즉한 공관 ‘ 가관을 (지음)이라 하면, 三혹을 능히 파하고 三법을 능히 세움이다.
그러므로 다른 부처의 三신이 원융함을 감하여 내 마음의 三신의 당래 과보를 이룸이요, 공관 ’ 가관에 즉한 중도관을 (곧)이라 하면, 전부의 혹이 그대로 지혜요, 전부의 장애가 그대로 덕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곧 응화불이며 마음이 (곧) 과보불이니라. 그러므로 (지음)과 (곧)인 일심으로 이 삼관을 닦는 것이 모든 관의 온 자체요, 한 경전의 묘한 종취이니라.
또 말하기를, 이 관이 네가지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하면 이 경의 종취가 되리니, 진실로 관이 묘함으로 능히 三혹을 파한다면 홀로 섞여 사는 국토만을 깨끗하게 할 것이 아니라, 그 혹을 끊는 것이 깊고 옅음을 따라서, 자연히 번뇌 남은 국토등의 두 국토도 얻게 되리라.
위제희가 본래 예토를 버리고 정토를 얻으려 하므로, 부처님이 관찰하는 법을 보여서 예토는 모두 버리고 정토는 남김없이 드러내려 함이어니와, 번뇌를 파하지 못하고 섞여 사는 국토에 태어난 이가 훌륭함을 의탁하여 더 닦는다면 세가지 정토도 바라볼 수 있으리라.
또 교에소 말하기를, 다섯가지 흐림이 가볍고 무거룸으로 섞여 사는 데가 깨끗도 하고 더럽기도 하거니와 원만하게 관찰하는 가벼운 흐림으로 얻어지는 섞어 사는 국토는 의보와 정보가 가장 깨끗하여 다른 선근으로 얻는 국토에 비하면 엄청나게 다르니라.
<一은 관찰하여 생각함에 대하여>
정토혹문[淨土或問] 7 - 2
정토의 업을 닦는 법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정토의 업을 닦는 법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가?
■ [답]二, 기억하여 생각함이란 것은 혹 성호를 반연하거나 혹 면호를 엄함을 다 기억하여 생각함이라 하거니와 이로 생각함도 있고 사로 생각함도 있느니라. (화엄경)에서 해탈장자가 말하기를, 안락세계의 무량수여래를 보고자 하면 뜻을 따라 곧 보게 되느니라.
내가 능히 모든 여래의 국토가 장엄함과 신통한 일들을 아노니, 어디로부터 온데도 없고 가는데도 없으며, 있는 처소도 없고 머무는 곳도 없는 것이 마치 내 몸이 온데도 없고 가는데도 없고 다니고 머무는 데도 없는 것 같느니라.
그러나 저 여래께서 여기 오지도 아니하고 내가 저기 가지도 아니하는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과 내 마음이 꿈과 같음을 나는 연고니, 꿈에 보는 것이 분별로부터 생기는 것같이 모든 부처님을 보는 것은 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느니라.
나의 마음은 그릇 가운데 물과 같고, 모든 법은 물 속에 그림자와 같으며, 나의 마음은 환술과 같고 모든 부처님은 환술로 만든 물건과 같으며, 매 마음과 부처님과 보살이 모두 메아리와 같나니, 마치 빈 골짜기가 소리를 따라 메아리를 내듯이 내 마음이 생각함을 따라 부처님을 보게 됨을 깨닫을지니라.
나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생각하노니, 내가 보는 부처님은 모두 내 마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니라.
정원소에 말하기를(어디로부터 온데서도 없고)의 아래는 오직 마음 뿐임을 말한 것이니, 마음에 즉하여 마음이 없으면 문득 진여에 들어가나니, 저 모습이 허망하여 오직 마음으로 나타남인 줄을 아는 연고니라. 오직 마음뿐인 줄을 안다면 마음이 곧 부처인지라, 그러므로 생각함을 따라서 부처 아닌 것이 없다 하였느니라.
(반주경)에 말하기를, 불립삼매를 닦는데는 오로지 아미타불을 염할지니 마치 꿈에 금은이나 친척을 보고 서로 기뻐하는 것 같다 하였다.
영명 스님이 말하되 이것은 오직 마음으로 짓는 것이어서 있으면서도 공함을 비유한 것이니, 환술이 실제가 아닌 줄을 알면 마음과 부처를 둘다 잊을 것이나, 환술 모습이 없는 것 아니므로 마음과 부처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며, 공과 유가 거림이 없어서 가고 옴이 없으면 서로 두루 보는 것이 방해되지 않나니, 보면서도 보는 것이 없으므로 항상 중도에 합하느니라.
(아미타경)에는 명호를 염하여 가지고 한결같은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 것이 이와 사가 있으니, 만일 이 염불하는 마음에 四성이 생기지 않는 줄을 통달하면 이는 이의 일심이요, 만일 마음을 생각에 두어 생각생각이 새가 나지 않는 것은 사의 일심이라 했다.
진헐은 말하기를 사의 일심은 사람마다 행할 수 있나니, 명호를 가져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 연고다. 마치 용이 물을 만난듯, 호랑이가 산에 의지하듯 함이요, 이의 일심도 다른 법이 아니라, 아미타불 네 글자를 十二시 중에 바로 염하면서, 능히 염하는 마음이 본래 염이 있지도 않고, 염이 없지도 않고, 염이 있기도하고 없기도 하지 않으며, 염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음도 아닌 줄을 알아야 하나니, 능히 염함이 그러할진대 염할 바도 그러하니라.
또 어려 경에 말한 것이 혹 일생동안 생각을 두라, 석달 동안 생각을 두라, 이른 새벽에 十념 하라, 七七일을 염하라, 十일 十야에 六시로 염하라, 一일 一야에 끊이지 말도록 염하되 깊이 믿는 힘과 깨끗한 서원의 힘과 부처님의 가피력을 더한다면 모두 극락에 날 것이요, 아래로 五역 十악의 범부라도 임종시에 열 번만 염하면 곧 왕생한다 하였느니라.
<둘째 기억하여 생각함에 대하여>
정토혹문[淨土或問] 7 - 3
정토의 업을 닦는 법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정토의 업을 닦는 법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가?
■ [답]三, 모든 행이란 것은 (화엄경)에 열 가지 큰 원을 발하였으니, 여러 부처님께 예경한는 원, 여래를 칭찬하는 원, 공양을 널리 이바지하는 원, 업장을 참회하는 원, 공덕을 따라 기뻐하는 원 법륜 굴리기를 청하는 원, 부처님이 세상에 머물러 계시기를 청하는 원, 부처님을 따라서 배우는 원, 항상 중생을 수순하는 원, 모두 다 회향하는 원이다.
낱낱 원마다 말하기를,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야 나의 원이 다할 것이지만, 허공과 중생과 업과 번뇌가 다할 수 없으므로 나의 이 원도 다함이 없고, 생각생각에 서로 계속하여 새가 뜨고 않지마는,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이 고달프거나 싫어짐이 없다.
목숨이 마치려 하는 회후 찰나에 모든 기관은 다 무너져 흩어지고, 모든 위엄과 힘이 다 싫어지고, 보필하는 대신과 궁전과 코끼리 ‘ 말 ’ 수레 ' 보물 ‘ 창고들이 따르는 것이 없지마는, 오직 이 원왕만이 서로 떠나지 아니하고, 어느때에나 앞에서 인도하면서 한 찰나 동안에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아미타불을 뵈옵거든, 그 사람이 연꽃 위에 왕생하여 부처님의 수기를 받게 됨을 볼 것이며, 무수겁을 지나면서 널리 시방세계에서 지혜의 힘으로써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서 이익케 하며, 내지 번뇌의 고통의 바다에서 중생들을 건져내어 벗어나게 하되, 다 극락세계에 왕생케 하느니라.
(대보적경)에서는 열가지 마음을 발하였는데,
一은 여러 중생에게 크게 인자함을 일으켜 손해됨이 없으려는 마음이요,
二는 크게 가엾이 여김이 여김을 일으켜 못견디게 함이 없는 마음이요,
三은 부처님의 바른법에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수호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이요,
四는 모든 법에 대하여 훌륭한 지혜를 내되 집착함이 없는 마음이요,
五 는 이양과 공경함과 존중함을 탐하지 않고 뜻을 깨끗하게 하는 마음이요,
六은 부처님의 일체 종지를 구하되 어느 때에나 잊지 않는 마음이요,
七 은 모든 중생을 존중하고 공경하여 못났다는 생각이 없는 마음이요,
八은 세상 언론에 집착하지 않고 보리분법에 결정함을 내는 마음이요,
九는 모든 선근을 심되 물들지 않고 청정한 마음이요,
十은 모든 여래께서 여러 가지모습을 버리고 따라 생각함을 일으키는 마음이니,
이 열가지 마음에 일심을 이루어 극락세계에 왕생하려 하면서도 왕생하지 못한다면 옳지 아니하니라.
(관경)에는 세 가지 복을 닦게 하였으니,
一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잘 섬기고 자비한 마음으로 살생하지 말아소 十선을 닦음이요,
二는 삼귀의를 받아 가지고 여러계율을 구족하여 위의를 범하지 않음이요,
三은 보리심을 내어 인과를 믿으며 대승경을 독송하여 행자를 권장함이니,
이 세 가지 업은 과거 ‘ 미래 ’ 현재의 여러 부처님의 깨끗한 업을 닦는 바른 인이니라.
또 대본에는 세 종류 사람이 보리심을 발하며, 또 여러 경과 존에서 말한바 경을 외우고, 주문을 가지고 탑을 세우고, 불상을 조성하고 예배하고, 찬송하고 재계를 지니고 향을 사루고, 꽃을 흩고, 증개와 당번을 다니는데 한 가지 한 가지 행과 한 가지 일에 믿고 원하고 회향하는 힘으로 돕는다면 왕생하지 못할 이가 없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원력과 수행의 크고 작음이 같지 않고, 이와 사도 같지 않으니 그 얻게 되는 의보 ‘ 정보와 보게 되는 부처님과 듣는 법문도 반드시 엄청난게 다를 것이니라.
<三은 모든 행이니, 극락세계와 아니타불을 의지하여 주인을 삼는 것에 대하여>
정토혹문[淨土或問] 8.
선재동자는 일생에 닦아 마치면서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선재동자는 일생에 닦아 마치면서도 화장세계에 나지 아니하고 극락세계에 나기를 권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 [답](화엄경 소)에 이렇게 물었는데, 대답하기를 인연이 있는 연고며, 사정이 한결 같은 연고며, 화장세계를 여의지 아니한 연고며, 스승인 연고라 하였다.
또 말하기를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와 많은 대중을 위하여 극락세계로 돌아가게 한 것은 대개 원종에서는 문수보살의 지혜에 들어가서 보현보살의 행을 닦게 하는데, 복과 지혜의 사와 이를 모두 법계라고 일컫나니,
이 큰 마음 가진 사람이 비록 묘하게 깨달음이 본래부터 밝아서 단박에 성인들과 같지마는, 힘이 부족하여 여래께서 중생들을 널리 이익케 하는데는 미치지 못함므로, 정토를 의지하고 아미타불을 가까이 모시면서 바로 성불하는 데까지 이르게 한 것이니 그 뜻이 여기 있느니라.
정토혹문[淨土或問] 9.
두 문으로 닦는 일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관찰하여 생각함과 기억하여 생각하는 두 문으로 닦는 일이 같지 않거니와, 그 얻게 되는 모양은 같은가 다른가?
■ [답]다 같지 아니하니라. 영명이 말하기를 九품으로 왕생하는 일이 한결같지 않으니,
혹은 응화국토에 가서 부처님의 응신을 보고,
혹은 실보국토에 나서 부처님의 진신을 보고,
혹은 하루 저녁에 상지에 오르고,
혹은 몇겁을 지나서 소승을 증득하며,
혹은 근기가 영리하기도 하고 둔하기도 하며,
혹은 뜻이 선정에 들기도 하고 산란하기도 하며,
혹은 도를 깨달은이 더디기도 빠르기도 하여 근성이 같지 않고
혹은 연꽃 피는 일이 이르기도 늦기도 하여 시기가 다르다 하였다.
자운은 말하기를,
九품은 대강으로 나눈 것이니 세밀하게 나누면 한량이 없으리라 하였다.
정토혹문[淨土或問] 10.
국토 밖에 실보국토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극락세계는 다만 섞여 사는 국토인데, 어찌하여 혹은 실보국에 나서 부처님의 진신을 본다 하였는가?
■ [답]섞여 사는 국토 밖에 실보국토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 국토가 섞여 사는 국토를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몸과 경계의 수용함이 각각 다를 뿐이니라.
형계 스님이 말하기를,
이 국토에 네 국토가 구족한 줄로 관찰할 것이니, 마치 화엄회해가 서다림을 떠난 것 아니지마는 여러 성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 함이 이러한 것이니라.
정토혹문[淨土或問] 11.
여기에서 이리저리 수행해도 무방한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이 국토에 네 국토가 구족하였다면 다만 여기에서 이리저리 수행해도 무방한가?
■ [답]예토의 업은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니, 예토의 업을 제하고 정토의 업을 닦으려면 사세가 저 국토에 가서 나야 하느니라.
사명이 말하기를,
이 국토는 五극탁이 무거워 十신에 이르러야 괴로운 윤회에서 벗어나거니와, 저 국토는 경계가 훌륭하여 九품마다 불퇴위에 이른다 하였고, 또 대통부처님 세상에서 교화를 받는 이는 미진 겁을 지나면서도 오히려 성문대로 있는 것은 모두 퇴전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지나게 되며, 사리불이 제六주를 증득하였다가도 다섯갈래에 떨어졌거든 하물며 멀고 오랜 이들일까 보냐.
대개 이 국토는 물러가는 인연을 만나기 쉬우므로(고기 새끼와 암마라화가 처음 날 적에는 많으나 결과는 적다) 하는 것이니, 만일 극락에 왕생하면 그 수승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박지범부라도 불퇴위에 이를 수 있으므로 거기 나기를 구하느니라.
정토혹문[淨土或問] 12.
극락정토만을 훌륭하다 칭찬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섞여 사는 정토도 매우 많은데, 지금 극락정토만을 말하고, 또 그 정토가 경계도 훌륭하고 인연도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 [답]경계와 인연이 훌륭함으로 거기만을 말하느니라.
경에 말하기를, 그 국토에는 여러 가지 괴로움이 없고 낙만 받는다고 했다.
이제 사바세계와 비교하면, 여기는 살과 피로된 몸이라 나는 것이 모두 고통이지만,
저기는 연꽃 속에 화생하므로 나는 고통이 없으며,
여기는 사시가 번갈아 흘러서 노쇠함이 날마다 침로하지만,
저기는 봄과 가을이 없어서 늙는 고통이 없으며,
여기는 四대가 고루지 못하여 질병이 많지만,
저기는 목숨이 한량없어 죽는 고통이 없느니라.
여기는 친족의 정리가 연련하여 사랑을 여의게 되지만,
저기는 부모 처자가 없어서 사랑을 여의는 고통이 없으며,
여기는 원수와 대적이 얽히어서 미운 원수를 만나게되지만,
저기는 상품 선근들이 모이는 데라 원수간에 만나는 고통이 없으며,
여기는 곤궁하고 기한이 심하여 구하여도 부족하지만,
저기는 의식과 보물이 간데마다 쌓였으며,
여기는 형체가 주추하고 불구자가 많지만
저기는 용모가 단정하고 모두 광명이 있으며,
여기는 생사에 윤회 하지만, 저기는 무생법인을 증득하며,
여기는 네 나쁜 갈래의 괴롬이 있는데 저기는 三악도의 이름도 없으며,
여기는 언덕과 구렁이 많고 가시덤불과 석벅으로 생긴 산에 더러운 것이 가득한데,
저기는 황금으로 땅이 되어 보배나무가 하늘에 닿았다.
七보로 누각이 되어 여러 가지 꽃이 만발하느니라.
여기는 쌍림에서 석가세존이 열반하시고 용화세계는 아직 멀었거니와,
저기는 아미타불이 지금 계시어서 설법하시며,
여기는 관세음보살 ‘ 대세지보살을 이름만 듣고 앙모하거니와,
저기는 한량없는 보살들이 좋은 벗이 되었으며,
여기는 모든 마군과 외도들이 바른 수행을 시끄럽게 하거니와,
저기는 부처님이 통솔하고 교화하시어 마군과 외도는 흔적도 없으며,
여기는 아리따운 여색과 요망한 음부들이 수행하는 이를 유혹하거니와,
저기는 정보가 청결하여 여인이 없으며,
여기는 흉악한 짐승과 도깨비들이 삿된 소리를 지껄이거니와,
저기는 물과 새와 숲이 모두 묘한 법문을 연설하나니,
주 국토를 비겨보면 경계와 인연이 동뜨게 달라서 극락정토의 훌륭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느니라.
훌륭한 경계는 정토를 구하는 중생의 마음을 거두어 줄 수 있고, 썩 좋은 인연은 왕생하는 이의 수행하는 힘을 도울 만하여 원교의 세가지 불퇴위를 정토로 인하여 바라볼 수 있나니, 다른 정토에 비하면 엄청나게 다르니라.
정토혹문[淨土或問] 13.
오직 나무아미타불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십방 부처님을 다 친근할 수 있거늘 오직 아미타불을 염함은 무슨 까닭인지요?
■ [답]그 까닭이 셋이니
첫째는 서원이 매우 크고 ,
둘째는 사바세계와 인연이 있고,
세째는 교화하는 길이 서로 관계가 있다.
아미타불의 인행 시에 큰 우원을 세우되 내가 성불할 적에 어느 중생이나 내 국토에 나기를 원하여 나의 이름을 열번 불러서 나지 못한다면 나는 맹세코 성불하지 않으리라 하였고, 또는 내 국토에 나서 퇴전하여 성불하지 못한다면 맹세코 성불하지 않으리라 하였다.
그러므로 <화엄경 초>에 아미타불의 원력이 지중하여 치우쳐 사바세계 중생을 접인한다 하였으니, 석가여래가 세상에 계실때에 부처님의 교화를 듣고 아미타불께 귀의한 이가 많았고 말세 중생도 승속 남녀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믿고 숭배하지 않은 이가 없으며 부처님의 교법을 듣지 못한 이도 다 염불할 줄은 알고 악하고 신심없는 사람도 위험할 때를 당하여서는 저도 모르게 아미타불을 부르나니 이것이 다 가르치지 않아도 능히 하는 것이다.
무량수경에는 이 다음 말세에 모든 경전이 다 없어지더라도 나의 자비로써 이 경을 백년 동안 더 머물게 할 것이니 중생이 이 경을 만나는 이는 원하는 대로 제도를 받을 것이라 하였고, 또 대 아미타경에는 무량수경이 없어질 때에는 <아미타불> 네 글자만 남아있게 중생을 제도하나니 어떤 중생이 믿지 않고 훼방하면 지옥에 들어갈것이라 하였다.
정토혹문[淨土或問] 14.
취하고 버림이 극치에 이르면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기뻐하고 싫어하며 취하고 버리는데 사랑하고 미워하는 주관과 객관의 허물이 없겠는가?
■ [답]이것은 세속에서 사랑하고 미워하는 주관 객관이 아니고, 十방 여래께서 범부를 고쳐 성인이 되게 하는 공통한 법이니라. 싫어하여 버리지 않으면 어떻게 범부를 고치며, 기뻐하고 취하지 않으면 어떻게 성인이 되겠는가.
범부로서 성인의 지위에 참여하고 성인의 지위에서 등각에 이르나니, 같은 데서부터 올라 가는데는 기뻐하고 싫어하지 않음이 없거니와, 묘각에 이르러서야 취하고 버림이 비로소 없어지느니라. 그래서 말하기를, 취하고 버림이 극치에 이르면, 취하지 않고 버리지 않음과 다르지 않다 하느니라.
하물며 정토의 법은 오직 한 가지 교화하는일뿐이라, 여기서 왕생을 가리키면 만 가지 갈래의 소리가 스러지고, 거기서 오는 것을 받으매 조수의 소리가 비로소 일어나느니라.
그러므로 싫어서 버리는 것은 진공에 합하고, 기뻐서 취하는 것은 묘유를 세우는 것이니, 기뻐하고 싫어하면서 사정이 없어지고, 취하고 버림이 없으면서 수행이 일어나면, 원융한 중도에 합하여 연꽃이 피어 부처님을 보게 되나니, 그렇다면 사랑하고 미워하는 주관 ‘ 객관을 허물이라 하겠는가.
정토혹문[淨土或問] 15.
왕생하는 것이 무생에 어긋나지 않겠는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왕생하는 것이 무생에 어긋나지 않겠는가?
■ [답]천태 지자대사가 말하기를,
부산하게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면서도 자체를 얻어 볼 수 없는 줄을 아는 것이 참으로 무생이라 하였다. 이것이 곧 마음이 깨끗하면 불국토가 깨끗하여진다는 뜻이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생에 속박되어, 생이란 말을 들으면 생이라는 견해를 짓고 무생이란 말을 들으면 무생이란 견해를 지어서, 생이 곧 무생이요, 무생이 곧 생인 줄을 알지 못하느니라.
장로 선사가 말하기를, 생을 생이라고 하는 것은 상견이요, 무생을 무생이라고 하는 것은 단견이다. 그러나 생이면서 무생이고, 무생이면서 생이라야 제일의라 하였느니라.
내가 다시 성품과 모양의 이치로 해석하리니, 묘한 진여의 성품은 본래부터 무생인데, 인연이 화합하여 생하는 모양이 있나니, 성품이 능히 모양을 나타내는 연고로 무생이 곧 생이요, 모양이 성품을 말미암아 나타나는 연고로 생이 곧 무생이니라. 이런 줄을 알면 정토에 나는 것이 오직 마음으로 나는 것임을 알 것이어늘, 이치가 무엇이 어긋나겠는가.
정토혹문[淨土或問] 16.
가려는 마음만 먹는다면 결정코 에누리가 없으리라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왕생한다는 말이 이치가 분명하지만, 지금의 학자들이 능이 깨닫지 못하고, 十만억 국토 밖에 있다고 의심하니 죽을 때에 왕생하기 어려울까 하노라.
■ [답]마음 밖에 국토가 없고, 국토 밖에 마음이 없다는 말을 그렇게 말하였건마는 여태도 깨닫지 못하겠다 하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오직 자기의 마음이 물질로 된 몸속 염통 안에 있는 줄로 허망하게 생각하고, 마음의 자체가 형상이 없어 본래부터 광대한 줄을 알지 못함이니라.
또 시방 허공의 항하사 같은 세계가 한량없고 그지없거늘 나의 마음이 낱낱이 두루 가득하였나니, 이렇게 본다면 모든 국토가 다 나의 마음 속에 있어서 지극히 가깝거늘 무엇이 멀다 하며, 목숨이 마칠 때에 나의 마음 가운데 태어남이 매우 용이하거늘 무엇을 어렵다 하는가?
십의론에 十만억 국토라 한 것은 범부의 육안과 생사하는 마음을 대하여 한 말인데, 중생으로서 정토의 업이 성숙한 이라면 임종할 때에 정중에 있는 마음이 곧 정토에 태어나는 마음이니, 한 생각 동하는 때가 곧 정토에 태어나는 때니라.
그러므로 (관경)에 말하기를, 아미타불의 세계가 여기서 멀지 않다 하였고, 또 업의 힘이 부사의하여 한 생각에 곧 왕생하는 것이매 멀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였으니, 마치 꿈꾸는 사람이 몸은 비록 침상에 있으나 마음과 뜻은 다른 지방으로 두루 다니듯이, 정토에 왕생하는 것도 이와 같나니 의심할 것이 아니니라.
경에 말하기를, 손가락 한번 튕기는 동안에 왕생한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팔 한번 굽히는 동안이라 하고, 또 잠깐동안이라 하였느니라.
자신록에 말하기를 十만억 국토를 잠깐동안에 이르는 것은 마음이 본래 묘한 까닭이니라 하였으니, 이렇게 여러 가지로 비유한 것은 오직 자기의 넓고 큰 마음 가운데 나는 것이므로 지극히 가깝고 매우 용이한 것을 말한 것이니라.
비유컨데, 여기서 천축까지는 十만 여리여서 여러 나라를 지나가야 한다고 하거니와, 어떤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 속에 기억 하였다가, 그 뒤에 한 자리에 앉아서 문득 생각을 내어 그 나라를 생각할 적에 천리라 생각하면 문득 천리를 가고, 만리라 생각하면 문득 만리를 가고, 천축국이라 생각하면 문득 천축국에 이르나니, 정토에 왕생함도 곧 이런 이치일 것이다.
정토업을 닦지도 않고는 가기가 극히 어렵지마는 정토업이 이루었으면 가기가 매우 쉬운 것이니, 가려는 마음만 먹는다면 결정코 에누리가 없으리라.
정토혹문[淨土或問]17.
五역의 나쁜 범부들도 임종시에 갈 수 있다 하는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정토업을 닦지 않고는 가기가 극히 어렵다면, 무슨 까닭으로 五역의 나쁜 범부들도 임종시에 갈 수 있다 하는가?
■ [답](관경)에 이르되 하품하생에 나는 이는 착하지 않은 업과 五역죄와 十악업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여러겁을 지내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지만, 임종할 때에 선지식을 만나 여러 가지로 위로하고 묘한 법문을 말하여 주며 염불하라고 가르친다.
이 사람이 고통에 부대끼어 염불할 형편이 못되더라도, 선지식이 말하기를 그대가 혼자서 염불할 수 없으면 내가 하는 대로 (나무아미타불)하라. 이리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소리가 끊이지 않고 구속하게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만 부르면, 한 생각마다 八十억겁의 생사할 죄를 없앨 것이다.
해바퀴 같은 금련화가 그 사람의 앞에 있는 것을 보고, 한생각 동안에 극락세계에 왕생하고, 十二대겁이 만족한 후에 연꽃이 핀다.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크게 자비한 음성으로 모든 법의 참된 모습을 연설하여 죄업을 제멸케 하리니, 그 법문을 듣고 환희하여 보리심을 내게 되느니라.
관경소에는 염불함으로써 죄업을 제멸하는 연고로 염불이 훌륭한 인연이 된다고 하였느니라.
다시 관경 소와 십의론을 참작하여 밝히건대
一,은 잠깐 동안 염하는 마음의 세력이 일평생 지은 악업을 이기나니, 마음은 비록 잠깐이라도 그 세력이 맹렬하니라. 이렇게 용맹한 마음을 큰 마음이라 하나니, 몸을 버리는 일이 급한 연고니라. 마치 전장에서 생명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을 용맹한 사람이라 함과 같느니라.
二,는 이것이 혹 계는 느리고 법은 급하여 임종시에 염불을 권함을 듣고 선정의 마음이 쉽게 성취함이거니와, 비록 이 세상에서 삼매를 닦지 않았더라도 전세의 종자가 금세에 성숙한이니, 전세의 선한 업이 강한 연고로 임종시에 선지식을 만나서 열 번 염불하는 공덕이 성취됨이니라.
三,은 염불할 때에 소중하게 뉘우치고 깨달은 연고니, 영명선사가 말하기를, 선과 악이 일정하지 않고 인연의 자체가 공하여 자취로는 오르고 내림이 있고 일에는 낫고 못함이 있나니, 순금 한냥중이 목화 백냥중보다 귀하고 햇불 같은 작은 것이 만길이나 쌓인 풀을 태우는 것이니라.
정토혹문[淨土或問] 18.
참회하여 소멸하지 않고도
임종시에 염불한 공덕으로 왕생할 수가 있겠는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다섯가지 흐린 나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죄가 있을 것이며,
비록 오역죄는 짓지 않았더라도 다른 죄업이야 누구에겐들 없겠는가. 그런데 참회하여 소멸하지 않고도 임종시에 염불한 공덕으로 왕생할 수가 있겠는가?
■ [답]그런 이도 왕생할 수 있으니,
이것은 아미타불의 부사의한 대원력에 의지함이니라.
(나선비구경)에는 큰 바윗돌 백개를 배에 실어도 배의 힘을 의지하여 돌이 물에 빠지지 않지마는 만일 배가 없으면 작은 돌도 빠진다 하였다.
배는 부처님 원력에 비유하고 돌은 나쁜 죄업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업을 가지고도 왕생한다는 말이 있나니, 번뇌와 업을 갖춘 이도 섞여 사는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니라.
웅준대사는 본래 분주 사람으로 소잡는 직업을 하였더니, 임종할 때에 여러소가 와서 받으며 핍박하여 고통이 막심하였다. 장종규는 닭 잡는 직업을 하였더니 임종시에 여러 마리 닭을 몰고 와서 두 눈을 쪼아 피가 흘러 자리에 가득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의 명호를 일컽고 모두 정토에 태어났으니 이것이 부처님의 원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시 비유로 말하되, 어떤 사람이 법을 범하고 마땅히 옥에 갇힐 것이나 임금에게 의탁하여 임금의 부르심을 받으면 관청에서 구속하지 못할뿐 아니라 서울에까지 보내주느니라.
또 (서자초)에 말하기를, 정토에 왕생함은 다른 이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니, 아미타불이 원력으로 섭수하고 석가여래가 권하고 찬탄하며 여러 부처님이 호념하시면, 마치 큰 바다를 건널 적에 큰 배를 얻어 좋은 길잡이도 있고 순풍까지 불면 빨리 저쪽 기슭에 이르게 된다.
만일 배에 오르지 않고 나쁜 국토에 머물러 있으면 누구의 허물이라 하겠는가?
정토혹문[淨土或問] 19.
죄업을 가지고 왕생하여도 물러나지 않는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죄업을 가지고 왕생하여도 물러나지 않는가?
■ [답]물러나지 않나니, 경에 말하기를, 가서 나는 이는 다 아비발치라 하였느니라. (십의론)에는 다섯가지 인연으로 물러나지 않는다 하였으니,
一,은 아미타불의 큰 자비와 원력으로 붙들어 줌이요,
二,는 부처님의 광명이 항상 비치고 보리심이 항상 증장함이요,
三,은 물 ‘ 새 ’ 나무 ‘ 숲 ’ 바람소리 ‘ 음악소리가 모두 괴로움과 공함을 말하여 듣는 이가 항상 불을 염하고 법을 염하고 승을 염하는 마음을 이르킴이요,
四,는 순일한 보살만으로 좋은 벗을 삼고 나쁜 경계가 없으며, 밖으로는 귀신이나 삿된 마가 없고 안으로는 세가지 독한 번뇌가 없어 끝끝내 일어나지 않으며, 또 항상 시방의 부처님과 보살들을 친근하며 공양함이요,
五,는 수명이 한량없고 보살과 부처님과 함께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다 하였느니라.
정토혹문[淨土或問] 20.
일생동안 나쁜 짓만 하다가도 임종시에 염불하면 어떠한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일생동안 나쁜 짓만 하다가도 임종시에 염불하면 악업을 가지고 왕생할 수 있고, 또 물러나지 않는다 하니, 그렇다면 내가 우선 세상일만 하다가 임종시에 염불하면 될 것이 아닌가?
■ [답]참, 딱하여라! 자기를 속이고 또 온 천하의 수행인과 세상의 남녀를 그르치는 것이 모두 이런 말이니라. 역적죄나 나쁜 짓을 저지른 범부가 임종시에 염불하는 것은 전생에 선근이 있으므로 선지식을 만나서 염불하게 되는 것이니, 이렇게 요행한 것은 만 사람 중에 하나 있기도 어려우니라.
(군의론)에는 열 가지 사람이 임종시에 염불하지 못한다 하였다.
一, 은 선지식을 꼭 만나게 되지 못하여 염불을 권하는 이가 없음이요,
二, 는 업으로 받는 고통이 몸에 얽히어 염불할 겨를이 없음이요,
三, 은 반신 불수로 말을 못하게 됨이요,
四, 과는 정신없이 미쳐서 마음이 온전하지 못함이요,
五, 는 수재나 화재를 만남이요,
六, 은 이리나 호랑이에게 물림이요,
七, 은 나쁜 친구의 꾀임으로 신심이 없어짐이요,
八, 은 까무라쳐 죽음이요,
九, 는 전장에서 죽음이요,
十, 은 높은데서 떨어져 죽음이니라.
이런 일은 흔히 듣고 보는 것이니 승속을 물론하고 당하는 일이라, 전생의 업으로나 금생의 업으로 받게 되어 갑자기 당하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다가 한 가지를 만나면 손발을 놀릴 수 없으며, 대선지식인 부처님이라도 구제할 도리가 없나니, 할 수 없이 업을 따라 三악도나 八난 중에 가서 고통을 받게되매 부처의 이름을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느니라.
설사 이런 나쁜 인연을 만나지 않고 좋은 병으로 죽게 되더라도 업보의 칼이 몸을 오리고 사대가 흩어지게 되어 산 거북의 껍데기를 발기 듯하면,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어쩔 줄을 모르리니 어느 겨를에 염불을 하겠는가. 또 설사 죽기 전에 사소한 병이 들게 되어도 고통을 참지 못하여 끙끙거리고 소리지르며, 의사를 부르고 약을 구하고 기도를 하고 참회를 하여 생각이 복잡하거늘 어느 겨를에 염불을 하겠는가.
또 설사 병나기 전에라도 나이 늙어 기운이 쇠하면 비틀거리고 쓰러지고 걱정하고 한탄하면서 안절부절하나니 어느 겨를에 염불을 하겠는가? 또 늙기 전에 젊었을 때라도 혹 미친 마음이 쉬지 않고 세속일이 서로 얽히어 여기 참여 하고 저기 관련되며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느라고 업에 얽힌 마음이 망망하리니, 어느 겨를에 염불하겠는가.
설사 한가하고 자재하여 생각이 있어 수행하더라도 조금도 세상 일에 대하여 비추어 보지 못하고 놓아버리지 못하고 일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끊지 못한다면, 조금마한 경계가 앞에 나타날 때에 한개의 주인이 그것을 따라 뒤바뀌게 되리니 어느 겨를에 염불을 하겠는가.
그대는 보라.
늙고 병들었을 적에나 젋어서 한가할 때에도 한가지 일만 마음에 걸려도 벌써 염불할 수가 없거든, 하물며 운명하려 할 때일까보냐. 우선 세상 일을 하겠다고 하니, 그대는 진실로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바보의 말만 한는 것이니 잘못된 생각이라고 단언하노라. 또 세상 일이란 꿈과 같거니 무슨 실효가 있으며, 어느 한가진들 생사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
가령 절을 짓고 재산을 보시하고 명예와 지위 있는 이를 사귀고 관청과 호걸들과 결탁하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한다더라도,그것이 도리어 (도의 근본을 모르고 절만 많이 짓는다)는 경계를 범하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옛사람의 말에, 하염있는 공덕은 허물이 많은 것이니, 천당이 미처 오기도 전에 지옥부터 나타나는 것이며, 생사를 밝히지 못하고 괴롬의 근본이 생기는 것이니, 숨을 거두고 고통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평생에 한 일이 모두 다 오랏줄과 고랑틀(족쇠)을 더하는 것이며, 끊는 기름가마에 장작을 집히는 것이요, 검수 도산에 칼날을 더 하는 일인 줄을 알게 되리라.
가사 밑에 사람의 몸을 잃어버리면 일만 겁에도 회복하지 못한다 하였으니, 무쇠 같은 사람이 듣더라도 반드시 눈물을 흘리리라. 조사께서 이렇게 말씀하였거늘 어느 겨를에 임종시에 염불할 것을 기다리겠느냐.
사심 선사는 말하기를,
보배가 산같이 쌓이고 처첩이 앞에 가득하여 밤낮으로 즐긴다 하더라도, 앞으로 갈길 바쁘고 모르는 결에 재촉하나니, 영장이 오면 가는 것이매 지체 할 수 없느니라. 염라대왕은 인정이 없나니 무상한 귀신이 무슨 면목이 있으랴.
또 그대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거니와, 앞집에 살고 뒷집에 있던 정든 권속과 친한 벗과 다정한 형제로서 건장한 젊은이들이 얼마나 죽었는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늙으면 염불하겠다 하거니와, 그대에게 말하노니 황천길에는 노소가 없느니라.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늙은 뒤에 염불한다고 바래지 말라. 쓸쓸한 무덤에는 젉은이가 많으니라)하였고, 또 말하기를 (젊었을 적부터 아내를 맞아 아기를 낳으며 집안 일을 경영하느라고 천신만고를 다 하였으나, 목숨만 끊어지면 모두다 허사니라. 만일 효성 있는 자손이 있어 봄에는 三가월 가을에는 九에월에 몇 그릇 밥과 국을 떠놓고 애고애고 몇마디 운다면 부모를 생각이나 하는 것이지만, 만일 불초한 자식이면 부모의 살이 식기도 전에 재물을 물쓰듯 하며 마음대로 즐기나니, 이렇게 생각하면 애쓸 일이 무엇인가.
옛 스님이 말씀에 (부자집 늙으니 화살같이 바쁘지마는 쌀에는 좀이 생기고 돈 꿴 끈이 썩는 것이며, 저울로 달고 불켜서 계산하더라도 꼭두각시 노끈을 끊게 하지 말라)하였느니라 사심선사께서 이렇게 말씀하였거늘, 어느 겨를에 임종시에 염불할 것을 기다리겠느냐.
사람의 한평생이 얼마나 되는가.
눈깜짝할 동안에 번개불처럼 지나가느니라. 늙지 않고 병들지 않았을 적에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세상 일을 떨쳐버리고 하루 살면 하루동안 부처님을 염하고, 한시간 겨를이 있으면 한시간 깨끗한 업을 닦으라. 그러다가 목숨이 다하면 나의 노자는 이미 마련되었으니 앞길이 편안하려니와, 만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후회하여도 쓸데 없느니라.
정토혹문[淨土或問] 21.
문득 장애를 만나면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사람의 마음은 나아가기도 쉽고 물러나기도 쉽나니, 한번 경책하는 말을 듣고 용맹하게 정진하다가도 문득 장애를 만나면 생각이 달라져 말하기를, 정토의 사업은 죽은 뒤에 일이니 현재에는 아무 이익도 없다 하리니, 역시 그럴 듯한 일이 아닌가?
■ [답]그대의 소견이 넓지 못하도다.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는 것은 열가지 좋은 이익이 있느니라.
一, 은 밤낮으로 모든 천인들과 기운 센 신장들과 항하사 권속들이 형상을 숨기고 수호함이요,
二, 는 관세음보살과 같은 二十五 대보살과 여러 보살들이 항상 따라다니며 수호함이요,
三, 은 여러 부처님이 밤낮으로 호념하고 아미타불이 광명을 놓아 붙들어 주심이요,
四, 는 모든 악귀가 해하지 못하고 독한 용, 독한 뱀, 약에 중독되지 않음이요,
五, 는 수재 화재와 원수 도적의 칼과 살과 감옥과 오랏줄과 고랑과 횡액을 모두 받지 않음이요,
六, 은 전세의 죄업이 소멸되고 언수에게서 해탈하여 다시 대적이 없어짐이요,
七, 은 꿈이 바르고 혹은 아미타불의 훌륭한 모습을 보게 됨이요,
八, 은 마음이 항상 환희하고 얼굴이 윤택하고 기력이 충실하여 하는 일이 길상함이요,
九, 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항상 공경하고 공양하며, 부처님께와 같이 환희 예배함을 받음이요,
十, 은 임종시에 두려움이 없고 바른 생각이 앞에 나타나거든,
아미타불과 대해중보살들이 금련화를 가지고 와서 영접하여 왕생하면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훌륭한 쾌락을 받게 되느니라.
이 열가지 이익은 경전에 갖추어 있고 부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이라, 금생과 내세에 이익이 있으리니 마땅히 정진할 것이요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정토혹문[淨土或問] 22.
만일 세상 일을 떨쳐 버릴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세상 일을 떨쳐버리는 것은
반드시 경계와 인연이 순조롭고 몸과 뜻이 편안한 이라야 행할 수 있는 것이니, 만일 세상 일을 떨쳐 버릴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 [답]만일 무상함을 뼈저리게 생각하고 간절하게 마음을 먹은 이라면 괴롭거나 즐겁거나 거슬리거나 순조롭거나, 고요하고 시끄럽고 한가하고 바쁜 것을 막론하고 공사와 사사를 만나는대로 치르고, 오고가는 손님을 맞고 보내며, 여러 가지 사연이 분주하더라도 닥치는 대로 응접하여도 염불하는일과는 방해되지 않느니라.
이런 말이 있지 않는가.
(아침에도 아미타불, 저녁에도 아미타불, 비록 화살처럼 바쁘더라도 아미타불을 여의지 말라)하였고, 또 말하기를 (대숲이 아무리 빽빽하여도 흐르는 물은 통과할 수 있는 것이요, 산이 높다 하더라도 구름이 지나감을 막지 못한다)하였느니라.
비록 세상일이 무겁고 힘이 가벼운 사람이라도 모름지기 바쁜 속에서 짬을 내고 분주한 가운제서 고요함을 얻어서 날마다 三 만번, 一천번씩 염불하기로 일정한 과정을 마련하고 하루라도 그냥 지내지 말 것이다. 또 아무리 바빠 겨를이 없더라도 아침마다 열 번씩 염하여 오래되면 공적을 이루리니 헛되이 지내버리지 말 것이니라.
염불하는 외에 경을 읽고 부처님께 예배하며, 참회도 하고 발언도 하여 여러 가지로 인연을 쫓고 복을 지으며, 힘을 따라 선한 공덕을 닦아 도울 것이니라. 털끝만한 선이라도 서방 극락세계로 회향할 것이니, 이렇게 공력을 들이며 결정코 왕생할 뿐만 아니라, 또한 상품에 오를 수 있느니라.
정토혹문[淨土或問] 23.
十념하여 회향하는 법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범연히 염불이라 하지마는 그 방법을 알지 못하겠고, 十념하여 회향하는 법도 자세히 알수 없으니 자세하게 일러 달라.
■ [답]염불한다는 것은 오로지 三十二상을 따라서 마음에 두고 정력을 얻으면 눈을 뜨거나 눈을 감거나 상상 부처님을 뵈옵게 되며, 혹은 명호만 일컽어서 굳게 지니고 산란하지 아니하면 역시 이 몸으로 부처님을 뵙게 되는데, 요사이에는 흔히 부처님의 명호를 일컬음으로써 으뜸을 삼느니라.
부처님 명호를 일컫는 법은 모름지기 마음을 가다듬어 산란치 않게 하며, 생각이 서로 잇달아 부처님 명호에 일단 정신을 두고 마음으로 반연하면 글자마다 분명할 것이며, 이름을 일컬을 적에 많고 적음을 관계하지 말고 한결 같은 마음과 한결 같은 정성으로 마음이 서로 잇달으게 하라.
이렇게 해야 한번 염할 적에 八十억겁 생사할 죄업을 소멸하게 되려니와, 그렇지 못하면 죄업을 소멸하기가 진실로 어려우니라.
十념 한다는 것은 아침마다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서서 합장하고, 아미타불을 자꾸 일컬어서 한 숨이 다할 때까지 하는 것을 一념이라 하나니, 이렇게 열번 숨 쉬는 것을 十념이라 한다.
숨이 길고 짧음을 따르는 것이요, 부처님 이름을 세지 아니하고 숨이 다함으로 한도를 삼으며, 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게 하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하며 알맞게 할 것이며, 열번 숨을 쉬는 동안 계속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니라.
十념이라고 이름함은 숨을 의지하여 마음을 단속함이니, 한 평생동안 하루도 걸르지 말며, 염불을 마치고는 이렇게 축원하느니라.
「제자 아무개는 극락세계 아미타불전에 일심으로 귀의하옵나니, 바라옵건데 깨끗한 광명으로 비춰주시어 자비하신 서원으로 섭수하소서. 제가 지금 올바른 생각으로 여래의 명호를 일컫사오며 十념을 하는 동안에 보리도를 구하려고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나이다.
부처님께서 과거세에 서원하시기를,
만일 어떤 중생이 나의 국토에 와서 나기 위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좋아하여 내지 열번을 염불하고도 와서 나지 못한다면 정각을 취하지 아니할 것이다. 다만 오역죄를 지은 이나 바른 법을 비방한 이는 제외한다고 하였나이다.
제가 지금 생각컨대 금생에는 오역죄를 짓지 않았고, 대승을 비방하지도 않았사오니, 바라건대 이 열번 염불한 공덕으로 여래의 큰 서원바다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자비한 힘을 받자와 모든 죄가 소멸하고 깨끗한 인이 증장하오며, 목숨이 마치려 할 적에는 때가 된 줄을 스스로 알고, 몸에는 병고가 없고 마음에는 탐심이 없으며,
마음이 뒤바뀌거나 산란치 아니함이 선정에 든듯 하오며, 부처님과 보살들이 금련대를 들고 와서 저를 영접 하면 잠깐 동안에 극락세계에 왕생하였다가 꽃이 피거든 부처님을 뵈옵고, 부처님의 법을 듣고 지혜가 열리어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며 보리의 원을 만족케 하여지이다.」
이렇게 염원하고 곧 그칠 것이다.
이것은 예전 스님들이 간절하게 가르치신 방법으로서 세상에 전한지 오래 된 것이니, 마땅히 이대로 수행할 것이니라.
정토혹문[淨土或問] 24.
어떻게 해서 그 공부를 더할 것인가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우리는 세상 밖에 사람이라, 어떻게 해서 그 공부를 더할 것인가.
■ [답] 전에도 말하지 않았는가. 닦는 데 여러가지가 있으나 모두 거두어 세 문을 이룬다 하였느니라.
一, 은 관찰하여 생각함
二, 는 기억하여 생각함
三, 은 모든 행.
이 세가지 문은 어느 문으로나 들어갈 수 있나니, 혹 한 문만 닦든지 겸하여 닦든지 마음대로 행할 것이니라.
정토혹문[淨土或問] 25.
오로지 명호를 지니면서 예배하고 참회하며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원융한 관찰로 닦는 것이나, 오직 마음으로 염하는 것은 상 근기가 행할 문인가 싶고, 〈화엄경〉의 열가지 원과 〈보적경〉의 열가지 마음도 큰 근기로나 행할 공부인 듯하니, 근기가 상대되지 않고 공행도 이루기 어려울 듯하도다. 지금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나의 좋아함으로 보건대 오로지 명호를 지니면서 예배하고 참회하면 좋을 듯한데,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답]좋은 일이다. 그대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며, 그대는 선도화상의 오로지 닦아 간단함이 없으라는 말에 합당하다. 오로지 닦는다 함은, 중생의 업장은 무거운데 환경은 미세하고 마음은 거칠어서, 의식이 날리고 정신이 산란하여 관행을 이루기 어려운매 큰 성인이 가엾이 여기사 오로지 명호만을 일컬으라고 권하였느니라.
명호를 일컫기 쉬우므로 마음이 서로 계속되고, 염하는 일이 서로 계속되어 목숨이 마칠 때까지 기한을 삼는다면, 열이면 열이 왕생하고 백이면 백이 왕생하리라.
무슨 뜻인가.
밖으로 복잡한 인연이 없어서 바른 생각을 얻게 되는 연고며, 부처님의 본원과 서로 응하는 연고며, 교법에 어기지 않는 연고며, 부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연고니라. 만일 복잡한 업을 닦아 왕생을 구하면 백에 하나 둘도 드물고, 천에 셋 넷도 드물 것이다.
잡된 인연이 난동하여 바른 생각을 잃게 되는 연고며, 부처님의 본원과 서로 응하지 못하는 연고며, 교법과 어기는 연고며, 부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연고니라.
생각을 거는 것이 서로 계속되지 못하는 연고며, 마음이 계속되지 못하여 부처님의 은혜나 갚는 연고며, 비록 업행이 있더라도 항상 명예와 이끝으로 서로 응하는 연고며, 복잡한 인연을 가까이하여 정토에 왕생하는 일에 스스로 장애도 되고 남도 장애케 하는 연고니라.
간단없이 닦는다 함은,
몸은 오로지 아미타불께 예배하고 업을 오로지 아미타불을 일컫고, 뜻은 오로지 아니타불을 생각함이니라. 또 성내는 일, 탐하는 마음, 어리석은 생각이 나더라도 범하는 대로 곧 참회하여 날을 지나거나 밤을 지나지 말며, 시간을 지나지도 말게하여 항상 깨끗하고 간단함이 없게 할 것이니라.
선도화상을 〈천축전〉에서는 아미타불의 화신이라고 하였는데, 그의 한 것을 보건대 중요함이 생각생각이 서로 계속함에 있다.
영명선사는 말하기를,
모름지기 일심으로 귀의하고 이 몸이 다하도록 정진하되 앉거나 눕거나 항상 서쪽을 향할 것이며, 도를 행하고 예배할 적에나 염불하고 발원할 때에 간절하게 정성을 다하여 다른 생각이 없게 하되, 사심으로 구원함을 바라듯, 고통바다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며, 속히 무생법인을 중득하고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며, 三보의 대를 잇고 네가지 은혜를 갚기로 서원하되,이렇게 정성을 다하여야 비로소 헛되이 버리지 아니하리라.
만일에 말과 실행이 같지 아니하고 신심과 원력이 경미하여 생각마다 서로 계속하려는 마음은 없고, 자주 간단하는 생각이 있으며, 그 게으름만 피우다가 임종시애 왕생하기를 바란다면, 업장에 막히어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며, 풍대 화대의 핍박으로 바른생각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지금 하는 것은 원인이요 임종하는 것은 결과이니, 원인이 진실하여야 결과가 헛되지 아니하리라.소리가 화평해야 메아리가 유순하고, 형상이 곧아야 그림자가 단정하니라.
정토혹문[淨土或問] 26. <終>
공부하는 이의 공통된 병
천여 노스님이 와운실에 계실적에 한 선객이 들어와서 묻기를
■ [문]생각생각이 서로 계속함이 어찌 소원이 아니리요마는 선정의 힘이 성숙되지 못하고 마음에 줏대가 없으며, 혹 예전 버릇을 잊지 못하거나, 삿된 생각이 어지럽게 일어나거나, 경계와 반영이 서로 부닥쳐 살펴보는 일이 견고하지 못하며 혹 인정과 사상이 분주하게 일어나 확고하게 누르지 못하면, 모르는 동안에 생각이 동서로 분주하며 눈 한번 깜짝하는 사이에 천리 만리로 멀어지며,
또 어쩌다가 조금이라도 세상 일에 부닥치면 문득 닷새 ' 열흘 ' 보름 '한달이 되도록 벗어나지 못하나니 어찌 끊어질 뿐이리요. 말을 할수록 부끄럽고 생각할수록 가통하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답]아, 그것은 공부하는 이의 공통된 병이니라. 끊어질 때에 아프게 책려하지 않으면 오로지 닦는 일과 간단없이 닦는 일을 영원히 성취하지 못하느니라. 옛사람이 세가지 아프게 책려해 놓은 것이 있으니,
一, 은 은혜를 갚음이요,
二, 는 뜻을 결정함이요,
三, 은 영험을 구함이라.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기왕 정토의 업을 닦을진댄 마땅히 은혜 갚을 생각을 해야 하느니라.
부모께서 낳아 길러주심이 어찌 중대한 은혜가 아니며, 스승의 가르쳐 주심이 어찌 중대한 은덕이 아니겠는가. 그대가 처음으로 출가할 적에 은혜를 갚으려 하였고, 그 다음 행각 (선지식을 찾아서 다니는 일) 할 적에도 은덕을 갚으려 하였느니라.
고향을 떠난지 이미 二, 三十년인데, 부모와 스승의 어려움과 곤고함을 돌아보지 않았고, 늙고 병들어도 가 보지 않았고 죽어도 돌아가지 아니하였으니, 지금에 혹 세가지 나쁜 갈래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그대가 구해 주고 제도해 주기를 고대할지고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그대의 공부가 생각생각에 끊어진다면 정토를 성취하지 못할 것이요, 정토를 성취하지 못하면 제 몸도 구원하지 못하리라.
서로 구원하지 못하면 이는 은혜를 잊어버리고 의리를 저버리는 것이니 크게 불효한 사람이니라. 경에 말하기를, 불효한 죄로는 지옥에 떨어진다 하였으니, 한 생각이 끊어지는 것은 곧 지옥의 업이 되리라. 또 누에를 치지 않고 옷을 입으며 농사를 짓지 않고 밥을 먹으며, 절간에 살고 깔고 덮는 일이 모두 훌륭하게 마련되어 있지 않는가.
조사가 말하기를 시주가 그 처자의 몫에서 덜어내어다가 보시하는 것이므로, 도의 눈이 밝지 못하면 한 방울 물과 한 치의 실이라도 모름지기 보섭을 당기고 쟁기를 끌어 갚아야 한다고 하였거늘, 그대는 생각이 끊어지니 정토를 이루지 못할 것이요, 정토를 이루지 못하면 빚을 갚아야 하리라.
그렇고 보면 한 생각이 끊어지는 것은 곧 축생의 업이 되리라. 뜻을 결정한다는 것은 오로지 닦음을 배우려면 뜻이 결정되어야 하나니, 그대는 일생동안 참선한다면서 그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교법을 공부한다면서 교리도 분명치 못하고, 이제 와서는 생각은 아직 죽지 아니하여서, 또 몇마디 선도 말하려 하고 몇 귀절 교리도 말하려 하고 몇 자 글씨도 쓰려 하고, 몇 수 시도 지으려 하여, 마음이 두 곳으로 갈리고 생각이 네 길로 나누이도다.
조사가 말하기를, 털끝만치 생각이 걸려도 삼악도의 없이 되고 잠깐만 망정이 생겨도 만겁동안 굴레를 쓴다 하였는데, 그대의 뜻이 결정되지 못하고 생각이 여러가지니, 이여러가지 망념으로 바른 생각이 끊어지는도다. 그렇다면 한 생각 끊어지는 것이 곧 삼악도의 굴레를 쓰는 업이 되리라.
또 계율을 보호한다면서 뜻이 결정되지 못하고, 혹 몸과 입으로 인하여 생각생각에 분주하게 구한다. 교에 말하기를, 차라리 끊는 구리물을 입에 붓고 뜨러운 쇠로 몸을 감을 지언정 파계한 몸과 입으로 시주의 의복과 음식을 받지 말라 하였거늘, 그대는 계율을 엄하게 가지지 못하여 삿된 마음이 허망하게 생기고, 허망하게 생기는 탓으로 오로지 닦는 일은 끊어졌으니, 그러한즉 한 생각 끊어지는 것이 어찌 뜨거운 쇠와 끊는 구리물 뿐이겠는가.
또 미워하고 사랑함을 끊는 뜻이 결정하지 못하므로 헛된 명예와 부처한 이익을 뚫어보지 못하여, 명예와 이익이 내게 속하였으면 탐심과 애욕을 내고, 명예와 이익이 남에게 속하였으면 질투를 내느니라. 고인이 말하기를, 명예를 탐하고 이익을 탐하고 이익을 탐함은 다 같이 아귀를 따라가는 것이요, 사랑을 쫓아가고 미움을 따름은 다 같이 불 구렁에 들어감이라 하였거늘, 그대가 이렇게 사랑하고 미워함을 인하여 정토의 업을 끊고 있으니 한 생각 끊어짐이 곧 아귀와 볼 구렁의 업이 되리라.
영험을 구한다 함은, 기왕 오로지 닦는 공부를 한다면 마땅히 영험을 구해야 하느니라. 그대는 지금 머리카락이 세어지고 얼굴이 쭈그러져서 죽음에 당도하였으니, 임종할 날이 얼마나 남았는가. 모름지기 목전에 부처님을 보아야 할 것이니라. 여산의 혜원법사는 부처님이 정수리 만져 주심을 세번 받았고, 회감법사는 부처님을 일컬을 적마다 부처님을 뵈왔으며, 소강법사는 부처님을 한 마디 부르면 부처님 한분이 입으로부터 나와서 구슬 꿰듯 하였다 하니 이런 영험이 얼마든지 있느니라.
그래도 생각이 끊어지지 않으면 부처님을 뵈옵기 어렵지 않으리라. 끊어지는 마음이 생기면 부처님을 뵈옵지 못할 것이요, 부처님을 뵈옵지 못하면 부처님과 인연이 없으니 정토에 왕생하기 어려울 것이요, 정토에 왕생하지 못하면 결정코 나쁜 갈래에 떨어지리라. 그 렇다면 한 생각 끊어짐이 곧 삼악도의 업이 되리라.
이러한 세가지 책려함을 뼈아프게 느끼고 힘써서, 생각이 부처님을 떠나지 않고 부처님이 생각을 떠나지 않게 하라. 감동하고 응하시는 도리가 나타나면 목전에 부처님을 뵈옵게 되리니, 이미 극락세계의 부처님을 뵈오면 곧 시방의 부처도 뵈옵고, 제 성품에 본래 있는 부처님을 뵈옵게 되어 큰 작용이 앞에 나타나게 되리라.
그러한 뒤에 자비와 원력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하면 이것을 정토의 참선이라 하고 참선하는 정토라고도 하리라. 영명선사가 말하기를, 참선도 하고 정토도 하면 뿔난 범과 같아서 금세에는 남의 스승이 되고 내생에는 부처와 조사가 되리라 하였으니, 어찌 좋은 영험이 아니겠는가.
이 때에 참선하는 상인이 기쁘고 경탄하여 오래동안 말이 없이 무엇을 잃은 듯하였다. 천여노인이 다시 말하기를, 참선과 정토가 깨치는 것이어서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나니, 잘못 알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상인이 머리를 조아려 재배하고, 다행히도 이제 돌아갈 바를 알았노라 하면서 하직하고 물러가니라.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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