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암(上耳庵)과 나
한 사람의 생애를 바꾸어 놓는 큰일도 때로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우연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렇다. 전라북도 임실군에 있는 상이암(上耳庵)이야말로 실로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변곡점이 된 특별한 장소였다.
2001년 2월 나는 전라북도 완주군 동봉읍 심학산과 옥녀봉 자락에 있는 군단 사령부 작전 과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1980년 임관 이후 청운의 꿈을 품고 열심히 군 생활을 했던 나는 모처럼 조금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어 나 자신을 재충전할 기회를 얻고자 전라도와 충청도의 사찰과 명소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고려를 세운 왕건과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기도했던 도량이 있다 하여 수소문해 찾아간 것이 전북 임실군 성수면 성수산(聖壽山) 산자락에 있는 상이암(上耳庵)이란 암자였다.
성수산 계곡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하여 어느 곳이건 쉽게 찾아가고 교통 또한 잘 정비되어 있지만, 당시 상이암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외진 곳이었기에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해발 876m의 험하고 경사진 산길을 한참이나 올라가 도착해보니 깎아지는 듯한 성수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조그만 암자였다. 몸통은 하나인데 중간부터 아홉 가지로 높게 뻗어 나간 큰 화백(化柏) 나무가 법당 앞에 솟아있었고 경내 전체에는 왠지 모를 상서로운 기운이 어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눈에 범상치 않은 고찰(古刹)의 느낌을 받았다.
여의봉에서 바라본 상이암
몸통은 하나인데 중간부터 아홉 가지로 높게 뻗어 나간 큰 화백(化柏) 나무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스승이신 상이암 주지 동효(東嘵)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대면한 스님의 얼굴은 소년처럼 천진난만했는데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스님께서는 이곳은 좋은 기가 많이 흐르는 명당이라 하시면서 경내를 안내하셨다. 마침 상이암을 찾아온 대여섯 명의 손님들과 나를 요사채로 데리고 가 녹차를 끓여주시면서 상이암의 역사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상이암(上耳庵)을 감싸고 있는 성수산(聖壽山)은 장수 팔공산(八公山)의 세 가닥의 맥 중 하나인데 호남의 미목(眉目)으로 여덟 왕이 나올 길지(吉地)라 일러온 명산이라 했다. 신라 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이 산을 둘러보고 임금이 나올 지형이라 탄복해 도선암(道詵庵)을 세우고 왕건에게 백일기도를 드리면 대망을 성취할 것이라고 권하였다고 한다. 왕건은 그 예언대로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리고 나서 고려 건국의 대망을 이룬 후 이곳 바위에 ‘환희담(歡喜潭)’이라는 세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이성계도 무학대사(無學大師)의 권고로 바로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후 큰 공을 세우고 조선 건국의 대업을 성취한 후 ‘삼청동(三淸洞)’이라는 친필을 비석에 새겨 어필각에 보관하게 하면서 도선암의 이름을 상이암(上耳庵)으로 고쳐 불렀다고 하였다.
왕건이 바위에 직접쓴 환희담(歡喜潭)
이성계가 비석에 세긴 삼청동(三淸洞)
나는 우연히 찾아온 이 조그만 암자에서 고려와 조선을 건국한 두 명의 왕이 나왔다는 사실에 놀랐으며 그들이 친필로 쓴 환희담과 삼청동이란 비석을 직접 본 것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상이암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신 후, 동효스님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당시 동효스님이 약 3시간 30분에 걸쳐 쉼 없이 말씀하신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모두 똑같이 소중하며 귀한 존재이다.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 대개 학벌이나 지위, 재산의 많고 적음 등 몇 가지만 가지고 평가하지만, 사람을 평가하는 요소는 수천 가지가 있다. 사람이 일생을 수천 가지 요소로 평가해서 평균을 내보면 모든 사람이 똑같다. 즉, 동일하게 귀한 존재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이 하나의 소우주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똑같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살면 인생이 행복하고 즐겁다.
둘째, 계곡이 깊을수록 물이 많이 고인다. 사람이 겸손하고 자기 자신을 낮출수록 많은 사람이 따르고 자기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어있고 큰 인심을 얻을 수 있다. 낮추면 낮출수록 그렇다. 이는 만고의 진리이다. 그러나 이 평범한 진리를 거스르고 교만하다가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셋째, 시소 논리를 말씀하셨는데 시소를 탈 때 내가 앉아 있는 쪽이 위로 올라가려면 상대방 쪽이 무거워야 한다. 상대방 쪽을 무겁게 해주는 방법은 상대방에게 늘 멋있다, 예쁘다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상대에게 사랑도 주고, 물건도 주고, 마음을 주면 저절로 내가 위로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시소이론을 말씀하시면서 늘 상대에게 무슨 덕을 끼치고 무슨 이익을 죽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하였다.
동효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앞으로 1년간 매주 이 절에 오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을 하였다. 이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총 60주에 걸쳐 매주 상이암을 방문하여 삼청동비(三淸洞碑) 비각 뒤 바위(여의봉)에 올라가서 기도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 대견하다할 정도로 열심을 내었다.
삼청동비(三淸洞碑) 비각 뒤 여의봉
그렇게 상이암을 찾게 된 지 약 6개월이 지난 이후부터 나는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게 되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귀하고 우리의 인생이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것이라고 느꼈다.
통상 사람들이 잘된 일은 자기가 잘해서 된 것이고, 잘 안된 일은 남 탓으로 돌리는데 결국 자기가 행한 말과 행동의 결과로 평가받는다. 나는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말과 행동 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덕(種德) 즉 덕으로 씨를 뿌리며 호과(好果) 즉 좋은 열매를 얻게 된다는 이치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이후 나는 말과 행동을 늘 밝고 맑으며 꿈과 희망이 넘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렇게 하니 열정도 생기고 도전 정신도 생겼다. 나 자신이 놀랄 정도로 내가 많이 변화되어 있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군문을 나서면서 섭섭함도 있었지만, 애국의 길은 다양하다는 생각으로 어느 곳에서든지 나를 바쳐 헌신할 각오로 새롭게 했다. 그 결과 나는 국회의원도 되었고 현재는 공기업 사장으로 열과 성을 다해 근무하고 있다.
상이암 대웅전에서
지금도 나는 매일 명상을 한다. 마음이 번다해질 때마다 그 옛날의 그 상이암을 떠올리며 모든 일에 감사하려 한다. 그러면서 나와 인연을 맺었던,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도 빌고 살아계신 분들의 발전과 성공을 기원하는 기도를 한다. 아직도 나는 일 년에 대 여섯 번 인생의 스승인 동효스님을 찾아뵙고 있다. 그 옛날 우연히 찾아갔던 상이암은 그토록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2015. 4. 김성회
'마음의 향기 > 향기로운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스승과 제자 이야기 (0) | 2015.12.13 |
---|---|
[스크랩] 중생이 아프니 보살도 아프다 (0) | 2015.11.19 |
[스크랩] <MBC 특집다큐> 말의 힘 (0) | 2015.08.11 |
[스크랩] 기뻐하면 운명이 열린다 (0) | 2015.06.19 |
감사하는 마음, 세 개의 손가락, 생각하는 머리 (0) | 2015.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