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며 지성껏 살아라
‘나’ 의 업을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로 살고,
남을 부처님 대하듯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행복을 이끌어내는 지름길이요, 지혜롭게 사는 첩경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용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 에 사로잡혀 사는 중생이기 때문에 용이하지만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이렇게 사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 살기를 포기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 하는가?
아닙니다.
바로 그때 필요한 것이 기도(祈禱)입니다.
마음을 잘 모아 기도를 하며 지성껏 살아야 합니다.
왜 기도를 하라고 하는가? 무엇보다도
기도가 ‘나’ 의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번뇌를 따라, 이기심을 따라 흘러다니는
‘나’ 를 바로잡아 안정된 자리에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실로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거나 방황을 할 때
기도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면,
결심을 한 그 자체만으로도 중심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마치 의존할 데 없이 두려움에 떨면서 방황하던 이가,
자신을 잡아주고 구해 줄 존재가 옆에 있다고 확신을 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줄어들고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시작하면 흔들림 없는 신심을 지니고 해야 합니다.
신심(信心)의 주춧돌.
주춧돌이 흔들리면 행복의 법당을 지을 수 없습니다.
신심의 주춧돌이 올바로 놓여 있지 않으면 기도성취가 요원해집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심의 주춧돌!
정녕 흔들림 없는 신심으로 지성껏 기도하면
소원을 성취하지 못할 까닭이 없고,
행복의 법당을 짓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대구 약전골목에 가면 대남한의원이 있습니다.
대남한의원은 대한불교조계종 경북신도회 회장을 지낸
여동명 거사가 경영했던 한의원으로,
여동명 거사의 생존시에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런데 이 여동명 거사의 뒤에는 어머니의 큰사랑이 숨어 있었습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읜 어머니는
외아들 여동명을 한의사로 만들 작정을 했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지 않고 한약방(당시에는 한의원이 없고
한약방만 있었음) 종업원으로 보내 한의학을 익히게 했습니다.
첫 한약방에서 더 배울 것이 없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다른 한약방으로 아들을 보내 의술을 익히게 하였으며,
그곳에서 배울 만큼 배운 다음 또다른 한약방으로 보내었습니다.
“이제 독립을 하여 한약방을 차려도 되겠다.”
세 번째 한약방의 스승이 아들의 의술을 인정하자
어머니는 아들을 개업시켰습니다.
그러나 충청도 연기군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낸 한약방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잘 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남들이 모두 자는 한밤중에 일어나 차가운 물로 목욕을 한 다음,
우물물을 떠서 집 뒤뜰의 판판한 돌 위에 놓고
아들 잘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정화수를 떠서 뒷뜰로 가는데 물 사발이 손에 붙는 듯 하였습니다.
깜짝 놀란 그녀는 순간적으로 그릇을 놓았는데,
사발이 손가락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발을 잡은 자리에
손가락 자욱이 나서 푹 파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손가락이 딱 붙었던 그 자리만 잡고
정안수를 떠서 기도를 올렸으며,
마침내 백일기도가 끝났을 때 계시가 있었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가서 큰 ‘대(大)’ 자가 든 고을에 머물러라.
그곳에 가면 너의 아들이 성공하리라.“
아들과 함께 고향인 연기군을 떠난 어머니는
대전을 거쳐 대구(大邱)로 왔고,
그 대구에서 아들 여동명 거사는 크게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대구로 내려온 뒤,
여동명 거사의 어머니는 반원당에 있는 보현사에 다녔습니다.
이 절 저 절을 다니지 않고 보현사만 다녔습니다.
그 당시 나는 가끔씩 보현사에 가서 법문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절에 와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잡담을 하지 않고,
법당으로 생긋 웃으며 들어와서 뒷자리에 않아
법문을 듣거나 조용히 있다가 생긋 웃으며 돌아갔습니다.
미소로써 ‘저 왔습니다. 잘 계셨어요?’ ,
‘먼저 갑니다. 뒤에 오세요’ 라는 인사를 대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홀로 ‘나무아미타불’ 을 염하시다가
임종을 일주일 앞두고 말문을 닫았습니다.
다만 가족들에게 스님을 모시고 오라고만 하셨습니다.
가족들은 보현사 주지스님을 모셨습니다.
“아니다.”
가족들은 할머니와 인연이 있는 여러 스님들을 차례로 모셨습니다.
“아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할머니 곁에 갔습니다.
할머니는 고새를 끄덕였고,
나는 단주를 돌리며 할머니 곁에서 이틀 밤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비몽사몽 간에 할머니 집 대문 쪽으로 꽃가마가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스무살 전후의 아름다운 아가씨 20여 명이 깨끗하면서도
화려한 꽂가마를 들고 와서 집앞에 놓고는,
할머니를 모시고 나가 꽃가마에 태워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순간, 순을 떠보니 손 안의 단주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고,
할머니는 숨을 거두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가족들을 불러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시켰습니다.
울지 말고 염불을 하도록 했습니다.
30분 가량 침착하게 ‘나무아미타불’ 을 부르던 가족들의 염불소리는
차츰 울음소리로 바뀌었고, 마침내는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절대로 나뿐 데 안 가셨다.
틀림없이 좋은데 가셨다.“
그때가 벌써 4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지혜가 뛰어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이
①모란꽃에는 향기가 없음
②적군이 몰래 침략한 사실을 알고 섬멸함
③죽을 날을 알고 묻힐 곳을 지정한 세 가지 예언을 남겼듯이,
여동명 거사의 어머니도 사후에 특별한 이적을 남겼습니다.
첫째가 산소입니다.
여동명 거사는 대구 불로동에 태국식 절을 창건했습니다.
그리고 그 절
담밖의 2백평 가량되는 밭을 어머니 산소터로 점을 찍었습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터를 사서 어머니께 확인을 시키고 싶었던
거사는 밭 주인에게 땅을 팔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밭주인은 거절했습니다.
시세의 몇 갑절을 준다고 하여도,
더 좋은 밭 2천평과 바꾸자고 하여도 거절을 했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말문을 닫기 직전에 여쭈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다음 어디에다 모실까요?”
“내가 숨지면 산소터가 생긴다.”
참으로 묘하게도, 어머니가 밤중에 숨을 거두었는데
첫 새벽에 그토록 땅을 팔지 않겠다든 밭주인이 뛰어와
‘제발 밭을 사달라’ 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49재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여동명 거사는 물었습니다.
“어머니 49재는 어디 가서 모실까요?”
“오대산에 가면 복 지을 일이 있다.”
여동명 거사가 49재를 지내러 오대산 상원사로 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가 방한암스님께서 거처하셨던
상원사의 요사체가 완전히 타버리고 난 직후였습니다,
거사는 어머니께서 예언한 ‘복 지을 일’ 이
요사체 중건임을 깨닫고 불사를 하였습니다.
셋째는 집에 불이 났을 때의 일입니다.
여동명 거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몇 년 동안 집에 위패를 모셔두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나무로 지은 그 집에 불이 나,
집이며 가재도구며 깡그리 타버렸는데,
종이로 만든 어머니의 위패는
불에 타지 않았을 뿐더러 불에 눋지 조차 않았습니다.
여동명 거사의 어머니느 아들을 성공시켰고, 평온한 말년을 보내다가
좋은 세상으로 갔으며, 죽어서까지 기적을 남겼습니다.
과연 이것이 무엇의 힘인가?
바로 기도의 힘입니다.
어떤 기도의 힘인가?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한 힘입니다
결코 잊지 마십시오.
누구라도 지극히만 하면, 영험은 언제나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흔들림없는 신심으로 지성껏 기도하면
소원도 성취하고, 현재의 행복도 미래의 행복도 보장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여동명 거사의 어머니처럼 무한한 지혜까지 샘솟게 됩니다.
갖가지 얽힌 인연과 업보 때문에 고통 받는
이 사바세계에서 잘 살기를 바란다면 정성껏 기도해 보십시오.
이 기도 속에 평온과 행복과 지혜의 길이 있습니다.
만약 이제까지 정성껏 기도하지 못하였다면 지금부터라도 좋습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십시오.
정성껏 한다는 것은 기도 중의 어려움,
게으른 생각 등과 타협하지 않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경우에 처하여 기적 같은 성취를 바란다면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자세로 기도에 임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받드시 기도의 원이 이루어집니다.
부디 믿음의 주춧돌을 견고히 놓아,
일어나는 번뇌를 좇아가지 말고 정성껏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시간의 길고 짦음보다,
절을 하는 횟수의 많고 적음보다,
마음을 모아 염불(念佛)을 하거나
정성을 다해 한배 한배 절을 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안될지라도 열심히 하십시오.
처음부터 일념을 이룰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고,
기도하는 시간 내내 마음을 잘 모을 수 있는 사람도 드뭅니다.
그리고 여러 날 기도를 하도보면 기도에 대한 회의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히고해야 합니다.
몰러서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억지로라도 하십시오.
‘나’ 스스로 ‘나’ 를 결려하면서 꾸준히 나아가면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정성을 다해 꾸준히 나아가면 차츰 익숙해지고,
머지않아 일념의 차원을 이루어 원을 성취하고
지혜롭게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업 · 불성 · 기도의 세 가지 주제를 통하여
평온과 행복과 지혜를 이루는 법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내가 지은 업을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로 살아가고,
불성을 지닌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대하며,
정성을 다한 기도로써 고난을 극복하여
해탈의 삶을 이루어가자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불자들이여.
‘나’ 의 평화, ‘나’ 의 행복, ‘나’ 의 지혜는
‘나’ 스스로가 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정녕 그러할진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겠습니까?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불자의 살림살이 중에서 우룡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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