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시 조념에 대한 질문과 답변 - 임종조념문답 (臨終助念問答)
정공법사(淨空法師) 강설.
화정정종학회(華藏淨宗學會)의 경전 강설을 기록하는 팀에서 정리
서
임종 시의 보살핌은 옛날부터 불문(佛門) 정종(淨宗)의 조사와 대덕들께서 조념(助念)하여 왕생하도록 할 것을 제창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이미 점점 사회 대중들의 중시를 받고 있습니다. 현재 대만에는 대만대학의원, 장경의원 등 큰 의원들 안에 조념하는 장소(助念室)가 마련되어 있고, 중국의 많은 도량에서 역시 오로지 임종을 맞이한 사람을 위해 조념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평소에 청정한 업(淨業)을 닦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며, 설사 공부가 아직 효과를 얻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임종할 때 선지식이나 정토법문을 함께 닦은 동참(同參)이나 도우(道友)를 만나 법에 맞고(如法) 이치에 맞게(如理) 조념하게 되면, 순조롭게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 또한 정토를 수행하지 않는 일반 사람도 역시 그 사람을 위해 조념해주면, 업장을 소멸하고,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선도(善道)에 왕생하는 이익이 있습니다.
조념에 관한 주의사항이나 이론방법은 《어떻게 염불하여 왕생하여 물러나지 않고 부처가 되는가?(怎麽念佛往生不退成佛)》라는 책 속에 이미 매우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왕생하는 사람들마다 각자의 인연이 서로 같지 않아 천차만별이어서 많은 의문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임종할 때 밀종(密宗)의 대덕이 그를 위해 조념해 주는 일을 만나기도 하며, 또는 지견(知見)이 서로 다른 법사나 대덕의 경우에는 조건이나 요구가 같지 않으며, 또는 어떤 가족의 경우는 왕생하는 사람이 정말로 서방정토에 왕생하는지 왕생하지 않는지를 알고자 하기도 하며, 또는 무슨 공덕을 지어서 회향해야 하는 등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은사(恩師)이신 정공화상께서 자비심을 베풀어 강설하는 법석(法席)에 많은 해답이 있습니다. 지금 화장(華藏)의 경전 강의를 기록하는 팀의 동학(同學)들이 발심하여 이를 위해서 수집하고 정리하였으며, 아울러 질문의 명제(命題)를 분명하게 표시하여 독자들이 한번 보면 바로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갖가지 가지고 있던 의문을 이 글을 읽은 순간에 그 자리에서 바로 풀어지게 하였으므로, 진실로 왕생하도록 조념해주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서(序)를 써서 삼가 몇 마디를 서술하여 동륜(同倫)들에게 바칩니다.
기축년(己丑年) 12월 초 7일 밤
오도(悟道)가 산동(山東) 경운(慶雲) 금산사(金山寺)에서
목록
1. 조념의 의의와 중요성
2. 조념의 시기와 안전한 시효
3. 임종 시의 처리방법과 주의사항
4. 조념의 내용과 방법
5. 조념의 인원수와 반을 편성하는 방법
6. 조념할 때에 배치해야 하는 관련된 법보
7. 임종 시 가르쳐주어야 하는 시기와 내용
8. 조념의 효과와 마땅히 갖추어야 할 태도
9. 중음의 의의와 제도방법
10. 중음기간과 간 후에 망자를 위해 복을 닦아주는 방법
11. 왕생과 상서로운 모습
12. 도와 조념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는 영향
13. 임종 시 자재한 왕생과 장애 제거
14. 조념단의 성립과 망자에 대한 이익
15. 기타
편집후기
임종조념문답 (臨終助念問答)
임종 시 조념에 대한 질문과 답변
정공법사 강설.
화장정종학회 강기팀 정리
1. 조념(助念)의 정의와 중요성
질문: 조념은 무슨 뜻이며, 왜 조념해야 하며, 어떤 사람들이 조념을 필요로 합니까?
답변: 조념이란 염불이 완전히 익지 않은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염불이 성숙된 사람의 경우에는 조념을 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가야지 하고 생각하면, 바로 그때 가며, 자재하게 왕생합니다. 염불이 완전히 익지 않았으며, 그 뿐만 아니라 평소 믿는 마음(信心)과 원하는 마음(願心)이 어느 때에는 있다가 어느 때에는 없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임종할 때에 미혹되고 전도(顚倒)되어, 혈육 간의 정에 연연하기가 아주 쉬우며, 혹 집안의 재산이나 사업을 생각하면 바로 자신의 업에 따라 윤회합니다.
그러므로 임종할 때 동수(同修)가 염불하여 도와주고, 일깨워주며, 이는 바로 그로 하여금 절대로 생각을 잘못 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가 만약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서 진정으로 분발하고, 또 아미타불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대단히 운 좋게 왕생할 수 있습니다. 임종할 때에는 진정으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서 반드시 조연(助緣: 도와주는 인연)에 의지해야 하며, 이때 어느 선지식이 와서,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 안 있어 곧 죽게 되면 어차피 어느 것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이제 그만 다 내려놓으십시오!라고 이렇게 일깨워주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를 일깨워줄 선지식도 없고, 여전히 근심하고 있으면, 왕생할 수 없으며, 이번 생 동안 한 염불 또한 헛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임종 시의 조념은 아주 대단히 중요하며, 한번 아미타불을 부르면 정토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염불하는 사람은 임종 시에 부처님께서 자신을 극락세계로 인도(接引)하려고 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염불공부가 충분해야 가능하며, 염불공부가 충분하지 않으면 임종 시에 원수나 채권자가 자신 앞에 나타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임종하는 사람에게 조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조념은 임종하는 사람이 바른 생각(正念)을 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조념(助念)」이 두 글자는 바로 이러한 뜻이며, 임종하는 사람이 염불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종할 때 조념이 임종하는 사람이 왕생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가장 중요한 관건이며, 어떠한 의식도 필요 없습니다.
질문: 임종 시의 조념은 매우 중요합니까?
답변: 역대 조사와 대덕들께서는 모두가 임종 시의 조념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셨습니다. 조념은 한 사람이 왕생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극락세계에 왕생하면 부처가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조념은 한 사람이 성불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니, 이 공덕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인정과 도리에 근거하여 생각하면, 만약 자신이 많은 사람들을 도와 염불하여 왕생하게 해준다면, 자신이 임종할 때 염불공부가 설령 좀 부족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도움으로 극락세계에 왕생한 사람들이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함께 자신을 극락세계로 인도(接引)하려고 올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인정과 도리에 맞는 일은 사람들의 생각이 다 같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왕생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어느 것보다 중요합니다.
질문: 어째서 많은 염불단체들이 한결같이 모두 조념할 것을 제창합니까?
답변: 《화엄경소(華嚴經疏)》에 보면,『겸하여 함께 향을 사르고 경쇠를 울려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도록 돕는다.』(兼與燒香鳴磬, 助稱佛名)고 한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부처님 명호를 부르도록 돕는 것이 바로 조념입니다. 그러므로 임종조념은 염불하는 사람이 반드시 닦아야 할 첫 번째 공덕입니다. 한 사람이 왕생하도록 돕는 일은 그 사람이 성불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중생을 제도하는 일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일은 다른 사람을 성불하도록 제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진정으로 부처가 된다면, 여러분은 이번 생에 큰 인연을 지은 것이며, 한 사람이 부처가 되도록 도왔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습까! 대자보살(大慈菩薩)께서 조념에 대해 아주 잘 강설하셨습니다. 만약 두 사람이 왕생하도록 도울 수 있으면, 자신이 정진(精進)한 것을 뛰어넘으며, 만약 열 명이 넘는 사람을 왕생하도록 도울 수 있으면,
복의 과보가 한량이 없으며, 만약 백 명에 달하는 사람을 왕생하도록 도울 수 있으면, 진정한 보살이라 하셨습니다. 조념은 염불공부가 완전히 익지 않은 사람에게 큰 이익과 큰 도움이 있으므로, 많은 염불단체들은 한결같이 조념단(助念團)을 조직하여 조념할 것을 제창하고 있습니다.
2. 조념하는 시기(時機)와 안전한 시효(時效)
질문: 조념은 언제부터 시작합니까?
답변: 병이 위중하거나, 사경(死境)에 이르렀을지라도, 의식이 여전히 매우 맑고 분명하면, 이때가 바로 그 사람을 도와 조념해 주어야 하는 때입니다. 숨이 끊어진 후에 조념을 하되, 12시간 동안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으며, 적어도 8시간 동안은 조념해야 합니다.
병자가 집안에 있다면 그의 집에 가서 조념을 하며, 그가 병원에서 왕생하였으면, 병원에 가서 조념을 해야 합니다. 조념은 병자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을 때 하며, 매우 중요한 이 때에 선지식이 곁에서 그가 바른 생각(正念)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또 일심으로 사람들을 따라 염불하여, 오로지 한 마음 한 뜻으로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도록 잘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질문: 법사님께서 일찍이『경전이나 왕생주는 때가 되었을 때에는 모두 필요 없으며, 단지 아미타불 한 구절뿐이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신데, 법사님께서 말씀하신 때란 어느 때입니까?
답변: 임종하여 왕생할 때, 그리고 왕생한 후 8시간, 혹은 10시간 12시간, 이때에는 오로지 부처님 명호 한 구절뿐이며, 다른 어떠한 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사람이 병이 위중할 때 역시 오로지 부처님 명호 한 구절만이 필요할 뿐, 어느 경전이나 주문도 모두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명호 한 구절에만 마음을 전념하게 하면 왕생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다가 때 도중에 샛길로 빠져서도 안 되고, 다른 잡념을 일으켜서도 안 됩니다. 이 한 구절의 부처님 명호는 극락세계와 아미타불과 감응교도(感應道交)하는 작용을 일으킵니다.
질문: 조념을 얼마나 오랫동안 해야 안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답변: 경전에서는 사람이 비록 숨이 끊어졌을지라도, 神識(중생의 心과 識이며, 일반적으로 八識, 즉 眼、耳、鼻、舌、身、意、末那、阿赖耶 등의 識을 가리킴.)은 아직 몸을 떠나지 않으며, 대체로 8시간이 되어야 비로소 떠나는데, 이때 하는 염불의 감응이 특히 강렬하므로, 이때에 조념해주는 것이 가장 수승(殊勝)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8시간이 되었어도 신식(神識)이 여전히 몸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12시간에서 14시간까지 조념해줄 수 있으면 더욱 안전합니다.
질문: 사람이 왕생한 후 보통 24시간이 되면 신식(神識)이 떠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한 거사가 24시간이 지났는데도 온몸이 여전히 뜨거웠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만났을 때에는 조념하는 시간을 더 길게 해야 합니까?
답변: 맞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조념하는 시간을 더 길게 합니다. 몸이 여전히 뜨겁다는 것은 바로 아뢰야식이 아직 몸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사람마다 신식이 몸을 떠나는 시간이 다르며 같지 않습니다. 대체로 8시간이면 몸을 떠나지만, 그러나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조념하는 시간을 12시간이 넘게 연장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그렇게 하면 더욱 안전합니다. 신식이 떠난 후에는 온몸이 아주 차갑게 식을 수 있는데, 그러나 만약 여전히 열기가 있으면 신식은 떠나지 않은 것이니, 이럴 경우에는 염불하는 시간을 더 길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 정토를 공부한 한 동수(同修)가 왕생하였을 때, 12시간 동안 부처님 명호를 불러 조념한 후에 집안에 이틀이나 삼일을 관을 놓았다가 화장한 다음에 안장(安葬)하였습니다. 이러한 경우 여전히 계속해서 그를 위해 염불해야 합니까?
답변: 당연히 해야 합니다. 이틀 집안에 놓아두었으면 이틀 동안 염불하며, 삼일 집안에 놓아두었으면 삼일 동안 염불하며, 안장(安葬)하거나 화장할 때까지 염불을 계속 이어지게 하며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이익 되게 하고 남에게 이익 되게 하는 것입니다.
질문: 왕생한 49일 동안에도 역시 계속해서 조념해야 합니까?
답변: 물론 염불해야 합니다. 왕생한 49일 동안 부처님 명호를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설사 왕생한 사람이 이미 염불공부가 한 덩어리가 되었거나(功夫成片), 혹은 마음이 하나가 되어 산란하지 않은 경지(一心不亂)에 이를 수 있을 정도까지 염불하였다 해도, 이 49일 동안은 그를 위해 염불하여 회향하면, 틀림없이 그가 왕생하는 품위(品位)를 더욱 향상하게 합니다. 혹 이 사람의 공부가 모자라서 왕생할 수 없어 육도(六道)에 가서 다시 다른 몸을 받을 지라도, 조념해준 이 공덕은 그를 악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선도(善道)에 왕생한다면, 선도(善道)에서 그의 복과 지혜를 늘어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한 이익입니다. 좋은 예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불교를 접한 적이 없어서 염불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죽은 후에 49일 동안 조념해준 공덕이 매우 수승(殊勝)함으로 인해, 그가 이를 느껴서 함께 따라서 염불하였는데, 49일째 되는 마지막 날에 뜻밖에 정말로 왕생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음신(中陰身)이며, 사람이 비록 이 세상을 떠났지만, 영혼은 아직 떠나지 않고서 여전히 도량의 대중들과 함께 염불을 닦음으로 인해 그는 왕생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없습니다.
질문: 축생이 죽은 후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축생 역시 12시간 조념하고 난 다음에 옮겨야 합니까?
답변: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사람은 몸에 대한 집착이 매우 심각하다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신식(神識)이 몸을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8시간 동안은 움직여서는 안 되지만, 그러나 축생은 아마도 사람처럼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보통 축생 중에서도 특히 작은 동물일 경우, 작은 동물일수록 신식이 몸을 떠나는 시간이 더욱 빠릅니다. 그러므로 모기나 개미, 혹은 날아다니거나 꿈틀거리는 이러한 몸집이 작은 동물들의 경우는 10분 좀 넘게 염불해주며, 기꺼해야 30분 동안 염불해주면 충분합니다. 만약 소, 양, 돼지, 개와 같은 이러한 몸집이 좀 큰 동물의 경우는 한 시간 동안 염불해주면 그런대로 충분합니다.
3. 임종 시의 처리방법과 주의사항
질문: 동수(同修: 함께 염불법문을 닦은 수행자)가 왕생할 경우, 마땅히 어떻게 그를 도와야 하며, 어떻게 그를 성취시켜야 합니까?
답변: 모두가 함께 염불법문을 닦는 그 목적은 왕생을 구하는 데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왕생할 때, 처리할 줄을 알아야 하고, 그를 도울 줄 알아야 하고, 그를 성취시켜 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 고덕들께서 임종할 때의 이러한 절차들을 우리에게 이미 남겨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칙종진량(飭終津梁)》이며, 고대의 서면언어(書面言語)인 문어문(文言文)으로 쓴 것입니다. 근대의 대덕들께서는 사람들이 혹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하시어, 이를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중국어로 쓴 것이 바로 《칙종수지(飭終須知)》입니다.
이 글 가운데에 중요한 부분은 제가 전부 붉은 붓으로 줄을 표시해 놓았으며, 새롭게 다시 칼라 판으로 인쇄 제작하였습니다.《칙종수지(飭終須知)》란 이 명칭을 많은 이들이 기피하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책의 명칭을 《어떻게 염불하여 왕생하여 물러나지 않고 부처가 되는가?(怎麽念佛往生不退成佛)》라고 바꾸었습니다. 이 책은 불법을 함께 배우는 학인(同學)들이 항상 열독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 만일 조념하는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의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후사(後事)는 완전히 이 책에 적혀 있는 방법에 따라 그대로 행하였으며, 한(韓)관장이 왕생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이 책의 방법에 따라 행하였으며, 대단히 여법(如法)하였습니다.
질문: 만약 도량에서 어떤 사람이 왕생할 경우, 불칠법회(佛七法會)를 행하는 동수(同修)들을 동원하여 조념해도 됩니까? 또 마땅히 어떻게 안배해야 쌍방이 모두 좋을 수 있습니까?
답변: 염불당에서 어떤 사람이 왕생하였다면, 절대로 염불당(念佛堂)을 방해해서는 안 되며, 평소에 조념할 것을 발심한 사람이 그에게 가서 도와야 합니다. 만약 염불당의 동수(同修)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가 가서 조념하게 되면, 마음이 곧 어지럽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오로지 열중할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 왕생하다고 해서 오히려 다른 사람이 염불하는 것을 무너뜨린다면, 이러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왕생을 돕는 사람들은 전문적인 조념팀이 있어야 하며, 이 조념팀이 임종 시에 보살펴야 할 일과 조념하는 일을 맡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옳습니다.
질문: 어떤 수행한 사람들의 경우, 그가 왕생한 후에 곧 바로 그의 자녀들이 그를 냉동 궤(冰櫃)에 놓아두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그가 왕생하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까?
답변: 이러한 처리는 너무 경솔하며, 그렇지만 영향을 끼칠 수는 있습니다.
질문: 병자가 산소 호흡기에 있다가, 혹은 링거주사를 맞다가 숨이 끊어졌을 경우, 그 자리에서 바로 산소 호흡기나 링거주사를 빼내야 하는지, 아니면 12시간 조념을 하는 것을 기다린 후에 다시 처리해야 합니까?
답변: 사람이 병이 위중할 때에는 곁에서 보살펴주는 사람들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병자가 이미 병세가 호전될 기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 이러한 것들은 모두 뽑아야 하며, 이러한 것들은 뽑고 나면 병자는 고통이 없어서 몸이 매우 가볍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것들을 뽑기 전에 숨이 끊어지게 되면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뽑아도 고통스러울 수 있고 뽑지 않아도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것은 병이 위중할 때 그것들을 뽑아낸 다음 조념을 시작하여 병자로 하여금 따라서 염불하게 하면 고통이 없게 됩니다.
질문: 조념할 때 무엇 때문에 망자(亡者)의 몸을 건드려서는 안 되며, 또 언제 비로소 망자의 몸을 만져도 됩니까?
답변: 불가(佛家)에는 임종한 후 8시간 동안은 절대로 망자의 몸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망자가 분노하는 마음을 일으킬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때에는 망자의 몸뿐만 아니라, 그가 누워있는 침대 또한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가장 안전한 것은 12시간 내지 14시간까지이며, 신식(神識)이 떠났을 때에는 만져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만약 신식(神識)이 떠나지 않았는데, 망자를 만지면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으며, 게다가 몸을 만진 사람과 원수를 맺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성내는 마음이나 원망하는 마음을 내면 망자는 틀림없이 악도(惡道)에 떨어집니다.
질문: 망자가 선도(善道)가 갔는지 아니면 악도(惡道)에 알기 위해 몸의 어느 부위에 따뜻한 기운이 남아있는지를 살펴보는데, 이렇게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까?
답변: 사람이 임종할 때의 마지막 한 번의 호흡이 끊어지고 육도(六道: 천상,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 중 어느 도(道)로 가서 다시 몸을 받아 태어났는지는 호흡이 끊어지는 그 순간의 마지막 한 생각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경전에서는 신식(神識)이 몸을 떠나지 않는 상황을 비유하길 마치 「살아있는 거북이의 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망자의 몸을 건드리지 말아야 하며, 건드리게 되면 그가 분노하는 마음을 일으키기가 매우 쉽습니다. 바로 이처럼 중요한 순간, 마지막 한 생각이 분노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러니 이는 망자에게 대단히 이롭지 못한 일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 간혹 어떤 사람들은 그가 선도에 갔는지 아니면 악도에 갔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따뜻한 기운이 몸의 어느 부위에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망자의 몸을 건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식(神識)이 아직 몸을 떠났는지 떠나지 않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식이 떠났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반대일 경우에는 망자에게 이롭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어느 곳에 갔는지 알고 싶다면 8시간을 기다린 후에 하며, 가장 안전한 것은 숨을 끊어진 후 12시간이 지났을 때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망자를 보호하고 망자를 돕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식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남을 도와줄 수 있고, 남을 성취시킬 수 있으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남을 해치게 됩니다.
질문: 망자가 왕생한 후에 8시간이 되기도 전에 어떤 사람이 내공(內功)으로 망자의 발밑에서부터 머리 정수리까지 계속 밀어 움직이게 하는데, 이렇게 하는 뜻은 망자의 신식이 빨리 몸 안에서 벗어나가기를 돕는 것이라 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까? 또 이것이 망자에게 영향이 있습니까?
답변: 가장 좋은 것은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며, 이는 반드시 망자가 기공(氣功)을 배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망자가 이렇게 하는 것을 몹시 싫어할 수 있으며, 싫어하게 되면 분노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분노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악도(惡道)에 떨어집니다. 임종할 때, 그를 평온하도록 해주고, 사람들이 옆에서 염불하여 그를 돕고, 그를 일깨워주어서 그가 따라서 염불하기를 희망하고, 그가 정토 왕생을 원하기를 희망하고, 그가 아미타불을 친근하는 것을 원하기를 희망해야 합니다. 조념을 하는 뜻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질문: 사람이 숨이 끊어진 후에 살리려고 응급조치를 하는 것 또한 효과가 있습니까?
답변: 의사들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고 응급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다 압니다. 숨이 끊어졌을 때, 의사들은 환자의 측근에게 응급조치를 원하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응급조치는 망자에게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며,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사는 환자의 상황을 말하여 측근의 사람들이 원하면 의사는 바로 응급조치를 하지만, 만약 원치 않는다고 말하면 의사 역시 흔쾌히 찬동합니다. 응급조치를 할 때에는 분명하게 심각한 상해(傷害)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자는 대단히 고통스러우며, 고통을 느끼면 성내는 마음을 내게 되며, 성내는 마음이 한번 일어나면 틀림없이 악도(惡道)로 가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지(無知)하여 이러한 심각한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질문: 임종하는 사람을 간호할 때 어떠한 일들을 주의해야 합니까?
답변: 임종할 때, 가족들은 망자(亡者)에게 긍정적인 언행을 보여주어야 하며, 부정적인 언행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것이란 무엇이냐 하면, 애정이 바로 부정적인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척들은 모두 망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임종할 때 망자를 보고 눈물을 흘리게 되면, 망자는 본래 극락세계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눈물이 망자를 아래로 끌어내려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여 극락세계에 갈 수 없게 되니, 이는 대단히 두려워할만한 일입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것은 임종할 때에는 가족과 친척들을 망자를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연우(蓮友: 정토법문을 수행하는 도반)로 하여금 망자를 도와 조념하게 하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죽은 후에 보통은 8시간이 되어서도 신식(神識)이 아직 몸을 떠나지 않았을 경우에는 몸이 감각(感覺)이 있을 수 있고, 망자는 여전히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때에 감정을 건드리게 되면 부처님께서는 그를 인도(接引)하러 오시지 않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정말로 매우 큰 장애입니다. 그러므로 임종 시에는 그를 건드려서는 안 되며, 그가 누워있는 침대조차도 건드려서는 안 되며, 그의 곁을 지나갈 때에는 약간이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그의 몸과 침대를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그가 괴로워하고, 고통을 받으며, 고통을 받으면 성내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으며,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면 틀림없이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까 두려워서입니다.
질문: 조념할 때에 어떠한 상황에서 망자를 가족들과 격리시켜야 합니까?
답변: 염불한 사람이 설사 살아있을 때에 염불공부가 괜찮았다고 할지라도, 왕생할 때 가족이나 친척들이 왕생의 도리를 잘 알지 못하고서 옆에서 큰 소리로 울고 부르며, 그를 부여잡고서 그의 감정을 움직이게 하거나, 혹은 그를 어루만지고, 그를 밀고 하면, 이것은 그야말로 일을 완전히 그르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족들을 격리시켜야 하며, 그에게 조념을 해주어 그가 듣는 것은 전부 부처님 명호이도록 해야 합니다. 그의 감정을 움직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우는 소리를 듣고서 가족과 친척들에 대한 탐애(貪愛)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왕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탐욕(貪)과 성냄(瞋)과 어리석음(痴)이 망자에게 끼치는 영향이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탐애(貪愛)는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지고, 성냄(瞋恚)은 지옥도(地獄道)에 떨어지고, 어리석음(愚癡)은 축생도(畜生道)에 떨어지기 때문에, 망자의 마음을 어지럽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질문: 임종할 때 자식이나 손자가 와서 큰 소리로 부르고 소란을 피우면 왕생할 수 없는데,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변: 재가(在家) 염불하는 사람이 명이 다해 얼마 안 있으면 곧 떠나려 할 때, 자식이나 손자가 와서 큰 소리로 부르고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보고서 미련이 남아 헤어지기 아쉬워하게 되면, 아미타불께서 그를 인도(接引)하러 오셨다가 이러한 상황을 보고서는 되돌아가시며, 그렇게 되면 그는 극락세계에 갈 수가 없게 됩니다. 《칙종수지(飭終須知)》에서는 왕생을 전송할 때, 가족과 친척들은 망자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정이라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사리(事理)에는 어긋나는 것이지만, 그러나 불법의 입장에서 논하자면, 이러한 행위는 망자를 혼란시키고 망자를 해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친척이 어느 때에 망자의 얼굴을 보아야 하느냐 하면, 숨이 끊어진 후 8시간이 되었을 때 얼굴을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또 원수나 채권자의 경우, 그들을 보면 싫어하여, 성내는 마음이 즉시 일어나며, 이들은 모두가 장애가 되는 인연(障緣)이므로, 아미타불께서 그를 인도(接引)하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을 놓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생하도록 보낼 때에는 그의 마음을 침착할 수 있도록 해주고 또 냉정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어야 하며, 또한 망자의 곁에는 모두가 불우(佛友: 불법을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뿐이어야 하며, 이들이 모두 염불하여 그를 보내고, 그가 듣는 것은 온통 부처님 명호이도록 해주고, 눈을 떠서 보는 것 역시 아미타불의 모습이도록 해야 합니다.
질문: 저희 부친께서 왕생하실 때에는 분명히 바른 생각(正念)이셨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의 꿈에 부친께서 어머니가 부친의 관 뚜껑을 덮을 때 크게 소리 내어 우시어 부친으로 하여금 연연해하는 마음을 일어나게 하여 왕생하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반년이 지난 후로는 모친께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를 듣기만 하면 한 차례 큰 병을 앓으십니다. 법사님께 여쭙겠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어느 곳으로 왕생하신 것일까요?
답변: 지금 말한 이러한 상황을 들어보면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않았으며, 또한 자주 집으로 돌아온다면, 아마도 귀신도에 있을 것입니다. 지금 말한 이러한 경우는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교훈입니다. 왕생하도록 보낼 때에는 반드시 《칙종수지(飭終須知)》에서 강설하고 있는 방법에 의거하여 그대로 행해야 하며, 또한 반드시 임종하는 사람이 바른 생각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설사 숨이 끊어졌을지라도, 부처님께서는 경전에서 8시간 동안이 아주 중요한 때라고 말씀하셨으며, 일심으로 염불하여 그를 도와야 그가 8시간 안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임종한 후 8시간 동안은 절대로 고통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설사 염불할지라도, 만약 신식(神識)이 아직 몸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의 몸을 건들면 그는 그 순간에 바로 번뇌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아내가 소리 내어 울면, 그 즉시 바로 그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며, 이 때문에 왕생할 수 없습니다. 임종할 때 비록 정신이 맑고 분명하였을지라도, 그의 감정을 움직이게 하여 여전히 미련이 있으면 갈 수 없습니다. 이는 매우 좋은 예입니다.
질문: 부모는 이슬람교입니다. 그분들이 임종할 때, 불법을 배우는 사람이 응당 어떻게 해주어야 그들에게 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까?
답변: 만약 경건하고 성실한 이슬람교의 신도라면, 임종할 때 이슬람교의 전교사(傳敎師)를 청해 이슬람교의 규정에 따라 장례를 치를 것입니다. 우리는 불교도이니, 그의 옆에서 소리를 내서는 안 되며, 염불하고 경전을 송독하여 그에게 회향하는 것은 대단히 여법(如法)합니다. 그가 경건하고 성실한 이슬람교의 신도일 경우, 임종할 때 불법을 배우게 하여 그가 마음으로 달가워하지 않고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다면 번뇌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를 기쁜 마음으로 천국에 태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질문: 훈채(葷菜)를 먹고서 다른 사람을 도와 조념해도 됩니까?
답변: 지금 사람들은 훈채(葷菜)를 먹는다.는 말을 할 때, 그 뜻이 매우 모호합니다. 훈(葷)은 채소이며, 육식이 아니며, 육식은성(腥: 비린내 나다)이라 말합니다. 훈(葷)은 다섯 가지 채소로, 파, 마늘, 달래, 부추, 양파를 가리킵니다. 이것을 다섯 가지 매운 야채(五葷)라 말하며, 반드시 분명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고기를 먹고서는 남을 도와 조념해도 되지만, 그러나 이 다섯 가지 매운 야채를 먹었을 경우에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들 야채가 풍기는 냄새가 좋지 않아 귀신들이 모두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능엄경(楞嚴經)》에서 매우 자세하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질문: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서 대중을 이끌고서 염불해도 됩니까? 또 망자에게 개시(開示: 설법)해도 됩니까?
답변: 조념(助念)하는 이 날에는 채식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이는 망자에 대한 경건과 정성과 공경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렇게 해야 공덕이 더욱 큽니다. 혹 조념을 다 마치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가 먹으며, 조념하는 장소에서는 먹어서는 안 됩니다. 조념할 때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등, 이렇게 하는 것은 좋지 않으며, 망자에 대해서도 공경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질문: 조념할 때 몸이 자연스럽게 좌우로 흔들리는데, 이는 태도가 점잖지 않을 수 있습니까? 특히 혼침(昏沈)이 올 때, 몸을 좀 흔들면 마치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조념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까?
답변: 이는 조념할 때의 환경을 보아야 합니다. 만약 동작이 그다지 크지 않다면, 옆에 앉은 동수(同修)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만약 동작이 너무 빈번하거나 너무 많아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였다면, 이때에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 밖으로 나와서 잠시 걸으면서 마음을 조절하고 몸을 조절한 후에 다시 조념하는 자리로 돌아가 계속해서 조념하면 됩니다.
질문: 홍콩의 법률은 왕생하면 곧 바로 영안실로 보내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쭙겠는데, 무슨 보완하여 구제할 방법이 있습니까?
답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숨이 끊어지면 심장 박동은 멈추지만, 그러나 신식은 여전히 몸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8시간 후에 이동하며, 가장 좋은 것은 12시간 내지 14시간이 지나서 옮기는 것이며, 이렇게 하면 더욱 안전합니다. 이곳의 법률은 이를 허용하지 않으며, 병원 역시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며, 숨이 끊어진 후 10분이면 반드시 옮기려고 합니다. 함께 수행하는 많은 동수(同修)들 역시 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현재 홍콩은 의원(議員)을 개선(改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의원들을 찾아가서 이러한 의원들이 당선되기를 지지하고, 그들에게 이러한 법률조항을 고쳐서 10분을 8시간으로 연장해줄 것을 청하여, 숨이 끊어진 후 병원에 8시간 안치해둔 후에 옮길 것을 허용한다면, 그렇게 한다면 공덕이 무량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법률이 개정되기 전에는 어떻게 하느냐 하며, 중국 대륙으로 가면 됩니다. 대만 역시 가능하며, 홍콩과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으므로 매우 편리합니다. 심천에 있는 한 병원의 경우, 원장이 불교신자이어서 임종 시의 보살핌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있으므로, 만약 그의 병원에서 왕생하면 8시간 내지 10시간 조념할 수 있습니다.
질문: 홍콩병원에서는 사망한 후에 바로 시신을 싸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홍콩에는 조념하여 왕생하도록 보낼 수 있는 미타촌(彌陀村)이 없는데, 마땅히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답변: 당연히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홍콩에 미타촌(彌陀村)을 건립하여 염불하는 사람이 임종할 때 조념하여 왕생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만약 홍콩에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면, 더욱 좋은 방법은 스스로 염불공부가 성숙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임종할 때 후사(後事)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진정한 왕생은 숨이 끊어지자마자 바로 극락세계로 가는 것이며, 이렇게 하면 중음(中陰)이 없습니다.
이는 진정으로 염불공부가 한 덩어리(功夫成片)가 되는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으며, 염불공부가 좀 부족한 사람은 조념을 해주어야 하며, 사람마다 각자 연분이 서로 같지 않습니다. 국내의 일부 도량들, 예를 들면, 동천목산사(東天目山寺), 백국흥륭사(百國興隆寺) 등 적지 않는 도량에서 모두 임종 시의 보살핌을 중시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참고할 가치가 있습니다.
질문: 노법사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길, 사람이 숨이 끊어진 후에 12시간 내지 14시간 조념을 하였으면, 그 지역의 풍속과 예절과 관습에 따라 화장하거나 냉동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어떻게 염불하여 왕생하여 물러나지 않고 부처가 되는가?(怎样念佛往生不退成佛)》라는 책에서는 화장은 7일 이후에 하여야 하며, 혹은 적어도 3일 동안은 안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답변: 3일이나 7일 동안 안치해 놓는 것은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허가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에서 법률을 개정할 것을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개정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이 국가의 법령규장에 따라야 합니다. 오늘날의 병원에서는 사람이 숨이 끊어진 후 10분이면 곧 바로 영안실로 보내어 냉동시키는데, 이는 불문(佛門)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매우 두려워할 만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숨이 끊어진 후 신식(神識)이 아직 몸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일이나 혹은 7일 그대로 안치해 놓을 수 있으면 가장 좋으며, 이것이 그에 대한 보살핌이며, 이것이 바로 사람의 도리이며, 그렇게 빨리 그를 매장(埋葬)하는 것은 사람의 인정상 차마 하지 못할 일입니다.
이 3일에서 7일 동안, 만약 불법을 배운 사람의 몸이 여전히 부드러울 경우, 이러한 변화를 보게 되면,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의 신심(信心)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당시 한(韓)관장이 왕생한 후, 그를 입관(入棺)한 것은 7일 이후에 하였으며, 그의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힐 때 한관장의 온몸은 부드러웠으며, 용모는 변하여 더욱 젊어졌으며, 모습이 변할수록 더욱 좋았습니다. 이는 확실하게 마치 잠을 자는 모습과 같았으며, 병이 있는 모습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큰 신심(信心)을 증장(增長)시켜줍니다.
질문: 반드시 3일, 내지 7일 이후에 반드시 화장을 해야 합니까?
답변: 언제까지 화장을 해야 한다는 그 기간은 확정된 것은 아니며, 각각 그 지역의 풍속습관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북방은 날씨가 한랭하므로, 좀 더 오래 안치해놓아도 관계가 없지만, 반대로 남방은 날씨가 뜨거우므로, 시간이 오래되면 몸에서 온통 나쁜 냄새를 풍길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 지역의 풍속습관에 따라 행하면 됩니다.
질문: 가까운 벗이 불치병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경우, 그에게 그의 병세를 사실대로 알린 후에 그에게 세상의 인연을 다 내려놓고서 염불하여 정토에 왕생할 것을 구하게 권해야 합니까? 아니면 그의 병의 증세를 숨겨야 합니까? 어떻게 돕는 것이 이치에 맞고 법에 맞습니까?
답변: 불치의 병을 앓는 친구에게 병의 증세를 알리느냐 알리지 않느냐는 상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이 사람이 염불법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양(修養)이 있고, 또 평소에 마음이 확 열린 사람이라면 그에게 알려도 됩니다. 그러나 만약 목숨을 중히 여기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절대로 알려주지 않아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에게 「산서소원(山西小院)」,《요범사훈(了凡四訓)》,《유정의공우조신기(俞淨意公遇竈神記)》등의 인과(因果)에 대한 교육적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를 보도록 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였을 경우, 이후에 설령 병명(病名)의 결과가 나올지라도, 그는 이러한 영화들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마음속에 이미 기반이 다져져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서, 그를 돕고자 할 때 비교적 용이하고, 그 또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혹 가족들이 전부 와서 그를 돕는다면 더욱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질문: 사람을 왕생하도록 보낼 때, 7일 동안 전송을 받는 사람이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실 수 있습니까?
답변: 일반적으로 왕생하는 사람이 병이 위중할 때 7일 동안 음식은 먹지 않아야 하지만, 물은 반드시 마셔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몸을 청정하게 하고, 몸 안의 더러운 것들을 전부 배출시켜서 자신으로 하여금 이 세상을 떠날 때 몸이 매우 청정하여 오염이 없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질문: 어떤 사람이 평소에는 몸이 매우 정상이었는데,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땅에 넘어지고 난 후, 몸이 매우 불편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의 병의 증세가 가벼운지 무거운지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즉시 정토를 함께 닦는 동수(同修)에게 그를 위해 염불하라고 해야 합니까? 아니면 먼저 병원에 보내어 응급조치를 해야 합니까?
답변: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만약 불법을 배운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도 괜찮으나, 만약 불법을 배운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하였을 경우에는 그의 가족들이 와서 해결하기 힘든 복잡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의 가족이 그를 즉시 병원에 보내 응급조치를 하지 않는 바람에 응급조치하는 시간을 지연시켰다고 말하면서 배상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스스로가 해결하기 힘든 복잡한 상황을 자초한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써야 합니다. 정토를 함께 닦는 동수(同修)들이 그를 도와 조념을 하고, 동시에 또한 그를 병원에 보내면, 병원에서 그를 보살필 것이니, 이것이 바로 두 가지를 다 원만하게 하는 비교적 안전하고 타당한 방법입니다.
4. 조념의 내용과 방법
질문: 조념하는 과정 중에 쇄정(灑淨: 불교의식으로, 향수를 뿌려서 물건을 깨끗하게 하는 의식)의식을 행해야 합니까? 만약 이를 행한다면 숨이 끊어지기 전에 합니까? 아니면 숨이 끊어진 후에 합니까? 어느 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까?
답변: 쇄정(灑淨)의식은 반드시 조념하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에 해야 하며, 이 의식은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좋으며 복잡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조념장소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며, 이곳에 형상(形象)이 없는 중생에 대한 공경의 표시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을 왕생하도록 돕고, 또 그가 능히 원수나 채권자와의 원한 맺음을 풀어서, 그들이 함께 그를 돕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질문: 조념하는 과정에서 쇄정(灑淨)하는 의식을 해야 합니까? 만약 할 경우에는 어느 때가 적당합니까? 만약 병자가 이미 숨이 끊어졌다면, 다시 쇄정(灑淨)의식을 행해야 합니까?
답변: 임종할 때에는 어떤 의식도 모두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불국토가 깨끗합니다(心淨則佛土淨). 따라서 몇 방울의 물을 뿌리지 않아도 청정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청정하지 않으면 물을 아무리 많이 뿌린다고 해도 여전히 깨끗하지 않습니다. 쇄정(灑淨)은 법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러한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임종 시에는 어떠한 의식도 필요 없으며, 또한 어떠한 가르침도 필요 없으며, 어떠한 경전이나 주문도 필요 없습니다. 바로 한 구절의 아미타불만을 끝까지 생각하고 부르면 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칙종교량(飭終津梁)》과 《칙종수지(飭終須知)》에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질문: 남을 위해 조념할 때 네 글자 명호(아미타불)를 사용해도 됩니까?
답변: 남을 위해 조념할 때, 네 글자(아미타불)가 표준이 되는 염불방법입니다. 사람이 병이 위중할 때에는 부처님 명호가 간단하면 할수록 좋으며, 여섯 글자(나무아미타불)는 너무 많습니다. 연지대사께서는 《죽창수필(竹窗隨筆)》에 기록하길, 어떤 사람이 연지대사에게화상께서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염불하도록 가르치십니까?라고 묻자, 연지대사께서 대답하시길,나는 사람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도록 가르치네.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또 묻기를,화상께서는 자신은 어떻게 염불하십니까?하니, 연지대사께서 대답하시기를,나는아미타불이라 부르네.그러자, 그 사람이 또 묻기를,어째서 다른 사람에게는 나무아미타불여섯 글자를 부르도록 가르치시면서 화상 자신은 아미타불네 글자만 부르십니까?연지대사께서 말씀하시길,나는 이번 생에 다시는 육도를 윤회할 생각을 하지 않으며,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그래서 단지 아미타불네 글자만을 부르네.라고 하셨습니다. 《아미타경》에서 말한 부처님 명호를 꽉 붙잡다(執持名號)는 이 명호는 단지 아미타불네 글자이며, 이는 여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남에게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를 부르도록 권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직 왕생할 것을 발심하기 않았기 때문에, 나무(南無)를 보탠 것입니다.
나무(南無)는 예의를 갖추어서 하는 인사말이며, 공경과 귀의의 뜻입니다. 이는 아미타불과 인연을 맺는 것이지, 반드시 진정으로 왕생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왕생하고자 한다면, 인사말은 하지 않으며,나무(南無)는 필요 없습니다. 이러한 뜻을 알면, 임종 시 조념할 때 단지 네 글자인 아미타불만을 부르며, 여섯 글자인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임종하는 이렇게 긴급하고 중요한 순간에 인사말이나 예의를 차린 말들은 다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성실하게 이 부처님 명호만을 끝까지 부르며, 그렇게 해야 비로소 자신에게도 이익이 있고 남에게도 이익이 있는 것입니다.
질문: 평소 염불할 때에는 노법사님께서 보여주신 부처님 명호를 다섯 번 부르고 한 번 숨을 바꾸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임종 시 기운이 쇠한다면, 이때에 조념할 때에도 여전히 계속해서 이 방식을 채택해야 합니까? 아니면 박자가 비교적 느린 방식으로 바꾸어야 합니까?
답변: 가장 좋은 것은 그 사람과 상의하여 그로 하여금 좋아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강하게 집착하면 그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가 어떤 방식으로 염불해도 다 괜찮다고 말한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그가 완강하게 고집한다면, 그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가 부르는 방식에 이미 습관이 되어있으면, 그를 따라야 합니다.
질문: 조념할 때 어떤 사람은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염불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혹 이렇게 해도, 망자가 진실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답변: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염불할 때에는 단지 귀신만이 알 뿐이지만, 그러나 소리를 내어 염불하면, 망자를 제도할 뿐만 아니라, 부처님 명호를 들을 수 있는 중생들 역시 제도하게 되며, 곁에서 날아다니는 벌레나 꿈틀거리는 벌레까지도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소리를 내어 염불하는 것이 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염불하는 것보다 좋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주거형태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큰 소리로 염불하면 옆집이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국외의 법률은 이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만약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나면 곧 바로 경찰에 신고하며, 경찰이 와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고할 수도 있는데, 이는 조념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작은 소리로 염불하는 것이 좋으며, 이웃을 방해하는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합니다. 작은 소리로 염불하거나 금강지(金鋼持)를 하는 것은 그때의 상황을 보고서 결정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임종하므로, 병원에서 염불할 때에는 음조(音調)가 낮아야 하며, 옆의 병실에 방해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세심하게 살펴 고려해야 하는 점들입니다.
질문: 천천히 걸으면서 염불하는 요불(繞佛)방식을 채택하여 조념을 해도 됩니까?
답변: 천천히 걸으면서 염불해도 되며, 이러한 방법은 매우 좋습니다.
질문: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는 어떻게 조념합니까? 임종 전에 《대비주(大悲咒)》를 염송하거나 혹은 《지장경(地藏經》을 염송해주어도 괜찮습니까?
답변: 만약 정토를 닦은 동수(同修)라면 어떠한 경전도 읽을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아미타불만을 불러야 합니다. 특히 병이 위급할 때에는 어떠한 경전이나 주문도 염불 사이에 끼워 여러 가지를 함께 읽어서는 안 되며, 《왕생주(往生咒)》조차도 사이에 끼워 섞이게 해서는 안 되며, 바로 한 마디의 아미타불이며, 그렇게 하면 매우 효과를 얻습니다.
임종 시에는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를 생각하고, 이 부처님 명호를 부르고, 진정으로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발원이 있으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공덕입니다. 만약 이미 왕생하였으면, 《칙종수지(飭終須知)》의 방법에 의거하여 8시간 내지 12시간 염불하며, 왕생을 기다린 후에 시간이 있으면 다시 경전을 염송하여 그에게 회향합니다. 임종하는 이 시간 동안은 절대로 다른 것들을 중간에 끼워 섞어서 함께 행해서는 안 됩니다.
질문: 임종 시 염불할 때 관상(觀想)해야 합니까?
답변: 관상(觀想)할 필요가 없으며, 일심으로 오로지 염불하면 자연히 감응이 있습니다. 만약 평상시에 관상하지 않다가 이 때 관상까지 보태어 함께 하면 도리어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평소에 공부한 것과 완전히 상응하게 해야 마음이 안정될 수 있으며, 임시로 다른 것들을 첨가시키게 되면 자신을 혼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질문: 망자를 위해 임종조념과 화장을 할 때, 아미타불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신 모습과 연꽃의 모습을 매우 분명하게 관상(觀想)하였다면, 망자는 왕생할 수 있습니까?
답변: 조념은 망자에게 증상연(增上緣: 주된 원인을 돕는 보조적인 원인)을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념의 효과가 있고 없고는 그가 능히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를 보아야 하며, 만약 망자가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인도해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성취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임종 시에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고, 또 혈육의 정을 그리워한다면 갈 수 없습니다. 조념하는 사람은 정성을 다해 사람으로서 해주어야 할 것을 다할 수 있어야 하며, 이렇게 하면 틀림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쌍방이 합작하여 내가 상대를 돕고, 상대가 기꺼이 받아들여야 비로소 효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질문: 조념이나 화장할 때 분명한 관상(觀想)을 하여 망자가 간 곳을 관상(觀想)하였다면, 이러한 관상의 결과는 믿을 수 있는 것입니까?
답변: 관상(觀想)은 개인 자신의 공부이며, 왕생한 사람의 수행한 상황과 상응해야 그것이 진실한 것이지, 만약 상응하지 않았다면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만약 어떤 사람이 불법도 믿지 않고, 염불도 하지 않았으며, 삿된 지식(邪知)과 삿된 견해(邪見)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 자신이 훌륭한 수행인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임종할 때 그가 연꽃에 앉아서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을 관상(觀想)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만약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염불할 필요도 없고, 불법을 믿을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께서 크게 자비(慈悲)를 베푸시어 때가 되면 우리를 위해 관상(觀想)을 해주어 모든 사람들을 전부 다 성취시켜 주신다면, 이는 이치상 통하지 않는 말입니다. 관상(觀想)은 자신에게 이익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특히 착한 생각(善念)은 선근(善根)을 증장시키도록 도와줄 수 있으나, 망자에게 반드시 진실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망자가 만약 진정으로 공부가 깊어서 염불하여 왕생하였다면, 나 자신이 관상(觀想)하여 본 것은 역시 나 자신이 관상(觀想)한 것이 아니며, 나 자신의 그 당시의 마음이 청정하여 그의 경계를 본 것일 뿐입니다.
질문: 임종하는 사람을 위해서 조념할 때, 《지장경》을 반드시 송독해야 합니까? 또 부처님 명호를 반드시 불러야 합니까?
답변: 임종하는 사람을 위해 조념할 때에는《지장경》을 읽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사람은 임종하는 그 찰나가 가장 관건이 되는 중요한 때이므로, 어떤 경전도 독송해서는 안 되며, 망자가 경전을 들을 무슨 여유가 있겠습니까? 바로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이어야 하며, 또한「아미타불」네 글자만 부르며,「나무」는 부르지 말며, 간단하면 할수록 힘이 더욱 강해지고 커지며, 또한 더욱 수용(受用)하게 됩니다.
숨이 끊어진 후, 12시간 조념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으며, 적어도 8시간을 조념하여 신식(神識)이 떠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지장경》이나 《아미타경》을 독송하고자 한다면, 왕생한 후 7일이 지나서 해야 하며, 만약 진정으로 왕생하였으면, 《지장경》을 독송하여 망자를 위해 공덕을 짓고 복을 받도록 기도하여 왕생하는 품위(品位)를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왕생하지 않았으면, 《지장경》을 독송하여 망자의 고통을 없애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질문: 망자가 숨이 끊어진 후, 그를 위해《삼시계념(三時繫念)》을 독송해주는 것이 더 적합합니까? 아니면 아미타불을 불러주는 것이 더 적합니까?
답변: 망자가 숨이 끊어진 후에는 당연히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이 중요하며,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이《삼시계념(三時繫念)》을 독송하는 것보다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때에는 정신과 뜻이 하나로 집중해야 하며, 망자에게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삼시계념(三時繫念)》의 불사(佛事)는 처음 7일째 되는 날, 두 번째 7일인 14일, 세 번째 7일인 21일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의 7일 동안에는 매일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이 가장 좋으며,《아미타경》역시 송독해서는 안 됩니다.
질문: 《중봉삼시계념법사(中峰三時繫念法事)》로 조념할 수 있습니까?
답변: 인광(印光)대사께서는 《문초(文鈔)》에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중봉국사의《삼시계념(三時繫念)》으로 조념해도 되는 지를 여쭈었는데, 대사께서는 찬성하지 않으셨다고 적혀있으며, 저 역시 찬성하지 않습니다. 임종 시의 조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 해 동안 왕생하도록 보낼 때 언제나《칙종수지(飭終須知)》에서 적혀 있는 방법에 따라 그대로 행하였고, 경전조차도 독송하지 말고, 설법도 할지 말며, 바로 한 마디의 아미타불을 끝까지 부를 뿐입니다.
정종(淨宗)을 수행하는 사람은 부처님 명호를 부를 때마다 정종(淨宗)과 상응해야 합니다. 중생을 고해(苦海)에서 벗어나 피안(彼岸)에 이르도록 하는 불사(佛事)의 의규(儀規)는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종과 가장 상응하고 가장 계합하는 것은《중봉삼시계념(中峰三時繫念)》입니다. 이 속에는 《아미타경》을 독송하고, 왕생주(往生呪)를 염송할 뿐만 아니라, 가르침(開示)이 상당히 훌륭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불칠법회(佛七法會)를 원만하게 한 후에《중봉삼시계념(中峰三時繫念)》을 독송할 것을 제창하여, 매우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불칠법회(佛七法會)는 자신을 이익 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행하는 동안에는 어떠한 법사(法事)도 없으며, 매일 오로지 염불하여 회향할 뿐입니다. 이 7일 동안 법회를 원만하게 마친 후에는《삼시계념(三時繫念)》을 독송하여 불칠(佛七)법회를 행하는 중에 동수(同修)나 가족과 친척들을 위해 세워놓은 위패를 천도하므로, 저승과 이승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참으로 이익이 됩니다. 그렇지만《중봉삼시계념(中峰三時繫念)》을 가지고서 임종조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질문: 횡사(橫死)한 동수(同修)나 동물들을 위해 10시간 조념을 한 후에 몸이 여전히 뻣뻣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다시 계속해서 삼시계념(三時繫念)을 하였는데, 법회가 다 끝난 후에 온몸이 부드러웠습니다. 이는 조념을 하고 다시 계념을 함께 한 결과입니까? 아니면 계념의 역량이 조념의 역량보다 큰 것입니까?
답변: 둘 다 똑같은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이 첫 번째 먹은 한 그릇의 밥은 조념입니다. 밥을 먹었으나 배가 부르지 않아 다시 두 번째 그릇의 밥을 먹으면 배가 부릅니다. 이 두 번째 그릇의 밥이 바로 계념(繫念)입니다. 그렇다면 계념의 공덕이 조념보다 크겠습니까? 아니면 조념의 공덕이 계념의 공덕보다 크겠습니까? 이 두 가지의 공덕은 평등한 것이며, 이것에 대해 의혹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 《어떻게 염불해야 왕생하여 물러나지 않고 부처가 되는가(怎樣念佛往生不退成佛)》라는 책 속에 보면, 어떤 한 병자가 임종할 때 부처님 명호를 듣기를 싫어하여 조념단(助念團)이 즉시 바로《지장경》으로 바꾸어 독송하여 그를 대신해 참회하였으며, 이렇게 한 후에 이 병자가 부처님 명호를 듣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출현하였을 때, 다른 경전, 예를 들면,《반야심경》,《관세음보살보문품》등을 독송해주어도 되는지요? 아니면 단지《지장경》만을 독송해야 효과가 있습니까? 이러한 원인은 무엇입니까?
답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비록 「법문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法門平等, 無有高下)」고 말씀하셨지만, 그러나 중생의 근성(根性)이 결코 서로 같지 않으며, 더욱이 시작이 없는 겁(劫) 동안 가지고 온 업장(業障)과 습기(習氣)의 차이가 대단히 큽니다. 이러한 상황을 만나면, 분명히 마장(魔障)이 앞에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수나 채권자가 장애하러 온 것으로, 그들은 망자로 하여금 부처님 명호를 들으면 바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지장경》은 원결(寃結)을 풀어주는 데에 확실히 매우 효과가 있으며, 그 이유는 근기에 상응하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는 열반에 드신 후, 불법이 세간에 머물게 하는 이 대사(大事)를 확실하게 지장보살에게 맡기셨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자면,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시지 않을 때에는 지장보살이 대리불(代理佛)이며, 따라서 지장보살의 신분은 다른 보살과는 다릅니다. 우리는《지장보살본원경》의 서분(序分)에서 지장보살의 수승한 장엄을 볼 수 있는데, 불가사의(不可思議)하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 경전을 강설하는 법회 가운데에 어느 법회에서의 청중이 모두가 다 제불여래였던 적이 있었습니까? 설사《화엄경》이라 해도 이러한 수승함이 없으며, 오직《지장경》에서만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 여래께서 모두 청중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장엄은 희유(希有)한 일이며, 이 경전의 효과 역시 당연히 희유한 것이기 때문에, 《지장경》을 독송하면 불가사의한 효과가 생기는 것은 일리가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다른 경전을 독송하였는데 효과가 있다면, 이는 바로 그 경전이 망자와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따라서《지장경》을 독송하지 않고《관세음보살보문품》을 독송하여도, 그 효과는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병이 위중한 사람에게 《지장경》을 독송할 것을 추천하여, 만약 병의 증세가 더욱 악화된다면, 그의 가족들은 혹 불법이 영험하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르며, 이렇게 된다면 다른 사람이 불법을 비방하는 일을 초래하지 않겠습니까?
답변: 분명히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는 마땅히 주의해야 합니다. 병이 났을 때,《지장경》을 독송하는 것은 그의 업장을 없애주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지장경》을 독송한 공덕을 회향하여 정토에 왕생할 것을 구하는 것은 불법에 맞는 것이며, 《대승무량수경·삼배왕생품》에서 이것에 대해 강설하고 있습니다. 이 품(品)은 크게 네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의 세 단락은 상배왕생(上輩往生), 중배왕생(中輩往生), 하배왕생(下輩往生)이며, 마지막 한 단락은 일체 대승경전을 독송하는 것에 대해 강설하고 있습니다.
정토를 닦은 사람이거나 닦지 않은 사람이거나 모두 상관없이 임종할 때, 오로지 마음이 진실하고 간절하며, 대승경전을 독송한 공덕을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는 데에 회향하기만 하면, 부처님께서는 여전히 인도(接引)하러 오십니다. 그러므로 정종법문(淨宗法門)은 대단히 광대(廣大)하며, 단지 임종할 때 믿기만 한다면, 어떠한 법문을 닦았거나, 어떠한 경전을 독송하였거나 상관없이 모두 다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임종할 때 만약 믿지 않는다면 방법이 없게 됩니다.
질문: 왕생하도록 보내고, 조념하는 일을 맡은 지 이미 3년이 되었는데, 언제나 조사(祖師)의 의규(儀規)에 따라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사람이 저에게 오로지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로 왕생하도록 보내야 한다는 말을 제시하였습니다. 저희들은 불사(佛事)를 할 때, 맨 먼저 연지찬(蓮池讚)을 부르고, 두 번째로《아미타경》을 독송하며, 세 번째는《반야심경》을 독송하고, 네 번째는 왕생주(往生呪)를 염송하고, 찬불게(讚佛偈)를 부르고,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데, 매일 20시간이 넘도록 부처님 명호를 부르고, 그렇게 한 후에 삼보에 회향하는데, 이렇게 해도 되는지 여쭙겠습니까?
답변: 이렇게 하는 것은 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 대덕들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길, 「경전을 독송하는 것은 주문을 염송하는 것만 못하고, 주문을 염송하는 것은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만 못하다(念經不如念咒, 念咒不如念佛)」고 하셨습니다. 중요하고 긴박한 순간에는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역량이 있습니다. 반대로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역량은 분산되어 없어지게 됩니다.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순간에는 오로지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를 붙잡아야 하며, 다른 것들은 모두 필요하지 않습니다.
석가모니불께서 49년 동안 강설하신 일체 경전은 이 부처님 명호 한 마디 안에 전부 다 들어 있습니다. 부처님 명호는 대(大) 총지(總持: 일체 법을 총섭하고 일체 뜻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범어 다라니를 해석한 말이다) 법문이며, 불법의 총 강령이며, 부처님 명호 속에는 어느 것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이면 충분합니다.
저의 스승이신 이병남거사께서 왕생하실 때에도 바로 이 한 마디의 「아미타불」이었으며, 왕생하신 후 49일 동안 중간에 끊어짐이 없이 계속 하였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다시는 이러한 장면은 없을 것입니다. 대북(臺北) 경미(景美)의 「화장도서관」의 한(韓)관장이 왕생할 때 역시 49일 동안 이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를 밤낮으로 끊이지 않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희유(希有)한 인연이며, 참고로 소개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복잡하게 해서는 안 되며, 가장 좋은 것은 49일 동안 오로지 이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이며, 이 공덕은 진실로 한량이 없고 끝이 없습니다.
질문: 염불기(念佛機)를 틀어서 부처님 명호를 듣게 하거나 경전 독송을 듣게 하는 것이 망자가 이익을 얻고 수용(受用)할 수 있습니까?
답변: 이것은 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염불기에는 단지 음향과 형식만이 있을 뿐, 그 안에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전을 독송할 때에는 지성으로 해야 만이 감응이 있습니다. 염불기는 마음이 없으며, 감응할 수 없습니다. 염불기를 사용하는 것은 부득이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는 방법이며, 사실은 여법(如法)하지 않습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함께 조념할 때, 염불기로 조념을 돕게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괜찮으나, 만약 오로지 염불기만 틀어놓고 조념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아마도 효과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질문: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는 혼자 사는 거사가 자신이 왕생하려고 할 때, 염불기나 혹은 CD를 사용하여 조념한다면, 이렇게 해도 그를 염불하여 정토에 왕생하도록 이끌 수 있습니까?
답변: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신을 도와서 조념해줄 사람을 청할 수 없으면, 이렇게 하는 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며, 반드시 염불하는 소리, 「아미타불」명호를 밤새도록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이 임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그에게 염불하도록 일깨워주어 부처님 명호를 중간에 끊어지지 않게 하고, 망상이 있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정토를 함께 닦은 동수(同修)가 있어서 그를 도와 조념을 한다면 매우 좋은 일이지만, 만일 없다면 염불기를 사용해도 매우 좋습니다. 어느 때에는 저는 염불기가 사람보다도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망상이 있으나, 염불기는 망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느 때에는 여전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일 수 있지만, 염불기는 오로지 염불하도록 도와줄 뿐이지, 마음을 일으키거나 생각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질문: 일심으로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는 환자가 병이 위중하여 정신이 혼미하여 깨어나지 못할 때에는 어떠한 방법으로 환자가 왕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까?
답변: 이러한 때에는 염불기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어폰을 그의 귀에 꽂아주면 딴 사람을 방해하지 않으며, 또한 부처님 명호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만약 가족들은 환자 곁에서 염불기의 음조(音調)를 따라 작은 소리로 조념하면, 그가 수용(受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질문: 제 남편이 19년 동안 몸이 반신불수로 지냈습니다. 그는 병이 위중할 때 두 차례 병원에 가서 응급조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의식이 혼미한 상태 속에서 지옥을 본 적이 있으므로, 의식이 깨어나서는 말하길, 「나는 극락세계에 가고 싶어. 지옥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몸이 쇠약하기 때문에 염불이 뒤로 물러나니, 노법사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답변: 그가 이미 지옥의 보아 지옥의 고통을 보았으므로, 지옥에 가기를 바라지 않고, 극락세계에 가고 싶다고 한다면, 그가 염불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몸이 쇠약하여 염불할 수 없어도 상관없으며, 부처님 명호를 듣기만 해도 됩니다. 염불기는 매우 훌륭한 조념도구입니다. 만약 딴 사람을 방해할까 걱정이된다면 그에게 이어폰으로 듣게 해도 됩니다.
만약 의식이 쉽게 혼미해진다면, 그럴 경우에는 소리를 좀 더 크게 해주면 의식이 혼미해지는 증상을 빨리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염불할 수 있으면 따라서 염불하게 하고, 염불할 수 없으면 듣게 하되, 중간에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왕생할 수 있습니다. 신심(信心)이 있으면 의심하지 않으며, 다른 것들이 섞이게 하지 않고, 망상하지 않고 온갖 인연을 다 내려놓고서 일심으로 염불에만 전념한다면 효과는 똑같습니다.
질문: 망자와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집에서 염불하여 회향해도 효과가 있습니까?
답변: 친구가 매우 멀리 떨어져있을지라도, 그가 왕생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바로 매일 집에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염불하여 그에게 회향하면, 이러한 염력(念力)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아무리 먼 곳이라도 전달될 수 있으며, 이는 참으로 불가사의하답니다. 《화엄경》에서 여기에 대해 부처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강설하시길, 「모든 법은 다 마음속의 생각으로부터 생긴다(一切法從心想生)」고 하셨습니다. 마음속의 생각은 공간과 시간의 제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공간이 없으면 멀고 가까운 곳이 없으며, 시간이 없으면 앞과 뒤가 없습니다. 이곳에서 경전을 독송하고 염불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그 사람에게 회향하면, 곧 바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 사람 강본승(江本勝)박사가 하신 물의 결정체(結晶體) 실험을 통해서도 그 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떠난 후에 그가 도대체 어느 곳으로 갔는지는 모를지라도 만약에 항상 그를 생각하고, 항상 경전을 독송하고 염불하여 그 사람에게 회향하면 그에게 틀림없이 도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진실한 마음으로 해야 하며, 이는 절대로 미신이 아닙니다.
질문: 제자가 막 숨이 끊어진 망자를 위해 조념하는데, 아무개 동수(同修)가 망자에게 설법(開示)하면서 망자에게 미간 부위에서 나오라고 청하였으며, 그 뿐만 아니라 또 한 남자 대중을 청해 손으로 높이 솟게 하여 망자의 발아래로부터 얼굴 부위까지 쓸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여법(如法)한 일인지를 여쭙겠습니까?
답변: 이렇게 하는 것은 어느 종족의 풍속습관일 가능성이 있으며, 불법에는 이러한 설법은 없습니다. 불법에서는 망자를 보낼 때, 근대의 대덕들은 모두가《칙종수지(飭終須知)》에 적혀 있는 것을 표준으로 삼을 것을 제창하였으며, 이는 정종 13대 조사이신 인광대사께서 감정(鑑定)하신 것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왕생한 사람을 보낼 때, 우리는 모두 이 책에 의거하여 행하고 있습니다.
질문: 제자는 평소에 법사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학(修學)합니다. 그러나 망자를 위해 조념할 때 밀종의 중음신(中陰身)을 제도하는 방법을 참고하여 따라도 됩니까?
답변: 만약 지도할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지도할 사람이 없다면 하지 말아야 하며, 정종의 방법을 사용하면 매우 효과가 있습니다. 동시에 또한 좋은 표본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법문만을 오로지 깊이 공부하여 오랫동안 훈습(薰習)하면, 진정으로 의심하지 않고, 다른 것이 섞이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질문: 어떻게 동물을 도와 조념하고 설법합니까?
답변: 진정으로 불법에 통달하였다면, 동물을 만나면 그 동물을 위해 염불해주고, 그 동물을 위해 회향해주고, 그 동물을 위해 조념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항상 반드시 마음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아미타불을 불러서 그 동물에게 회향하는 것이며, 만약에 삼귀의(三歸依)를 염송할 수 있으면 삼귀의를 염송하지만, 그러나 일반 삼귀의를 염송하는 방법과는 다릅니다.
즉, 「부처님께 귀의하오니, 지옥에 떨어지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오니, 아귀에 떨어지지 않겠습니다. 승가에 귀의하오니 방생에 떨어지지 않겠습니다.」방생(旁生)은 바로 축생(畜生)입니다. 삼악도의 중생에게는 우리는 이러한 삼귀의를 염송해주며, 일체 동물을 만나면 염불하여 그 동물에게 회향하고, 그 동물에게 삼귀의를 염송해주면 됩니다.
질문: 조념할 때 대(大) 회향을 합니까? 아니면 오로지 망자만을 위해 회향합니까?
답변: 왕생하도록 조념하는 것은 반드시 오로지 망자 한 사람에 대한 것이므로, 대 회향을 해서는 안 되며, 대 회향은 법회 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5. 조념 인원수 및 팀 배치방법
질문: 조념하는 사람의 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까?
답변: 조념하는 사람의 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며, 진실한 마음과 정성스런 마음과 청정한 마음, 그리고 자비한 마음으로 이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자장(磁場)이 수승(殊勝)하여 저 악도의 귀신들을 감히 가까이오지 못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조념하는 사람의 수가 적고, 그 뿐만 아니라 성의가 없으면 악도의 귀신이 그 기회를 틈타서 들어오게 됩니다. 간혹 사람들이 만일 조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으면 염불기로 해도 됩니까? 하고 묻는데, 이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사람이 가서 조념을 해주는 것이며, 그 효과는 같지 않습니다.
질문: 조념하는 사람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혹 청정하기를 바란다면, 단지 몇 사람에게만 통지해도 가능합니까?
답변: 왕생하도록 염불할 때 사람이 너무 많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사람이 많을 경우에는 팀을 나누십시오. 불법에서는 네 사람을 하나의 중(一衆)이라 부르며, 이것은 바로 하나의 단체입니다. 임종을 맞이한 병자 앞에 네 사람이 가장 좋으며, 너무 많은 것은 적당치 않습니다. 혹 사람이 너무 많으면 질서를 어지럽게 할 수 있어서, 자장(磁場)이 좋지 않습니다. 만약 사람이 많다면, 염불당에 가서 염불하여 그에게 회향해도 되며, 그의 방에 있지 말아야 합니다.
예전에 이병남 스승이 왕생하실 때, 단지 항상 스승을 돌보던 몇 학생만이 그의 곁에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염불당에는 6백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있었으며, 게다가 49일 동안 염불하여 밤낮으로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광경을 보고서 대단히 기뻤습니다. 대만에서는 아마도 이러한 모습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보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이는 정말로 복의 과보가 있는 것입니다. 스승의 학생은 몇 만 명이나 되지만, 염불당에는 단지 6백 개의 좌석만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혹 염불하다 지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면 곧 들어가 좌석을 채웠습니다. 이것은 스승께서 대중에서 38년 동안 교학하신 과보이며, 더할 나위 없이 수승한 과보입니다.
질문: 임종할 때 어떤 사람들은 조념해 주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자기 집에 사람들이 출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또 자신이 죽은 후에 다른 사람이 자신을 만지고, 자신의 머리와 발을 더듬은 다음, 죽은 후에 간곳이 어디라고 이런저런 말들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혼자서 집에서 왕생하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과연 바른 생각입니까?
답변: 만약 스스로 왕생할 자신이 있으면 올바른 생각이지만, 왕생할 자신이 없다면, 올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만약 이러한 염려가 있으면, 자신의 상황에 맞는 적당한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즉 두 세 사람이 교대로 보살피고, 망자를 도와 조념을 하되, 24시간 동안 중간에 끊어지지 않도록 하고, 방안에 있는 사람이 많지 않도록 이렇게 하면,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좋습니다.
6. 조념할 때 봉안해야 하는 관련 있는 법보(法寶)
질문: 임종조념을 할 때 목어(木魚)를 쳐야 합니까?
답변: 조념할 때에 인경(引磬)은 치지만 목어는 치지 않으며, 보통 4사람이 한 팀이 되어 교대로 번갈아 가며 염불을 합니다. 네 사람이 병자의 침상 앞에 둘러서 조념을 하는데, 그가 만약 정신이 호전되었으면 바로 따라서 함께 염불하며, 정신이 좋지 않으면 염불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24시간 동안 중단하지 않습니다.
질문: 임종 시 조념할 때에 반드시 불상을 걸어놓고, 향을 피우고, 물을 공양해야 합니까?
답변: 만약 이러한 환경이라면 가장 좋습니다. 임종할 때 부처님 명호를 듣고, 불상을 본다면, 이러한 것들은 모두 망자의 머릿속에 인상으로 남아있을 수 있어서 망자에게 매우 도움이 됩니다.
질문: 조념할 때, 불상은 어떻게 걸어야 합니까?
답변: 병이 위중할 때에는 불상은 그의 침대 다리가 있는 쪽에 봉안하되, 너무 높게 걸어서는 안 되며, 베개를 베고 누운 상태에서 눈을 뜨면 바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불상을 머리가 있는 쪽에 놓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불상을 왼쪽과 오른쪽 두 곳에 놓을 수 있으면 가장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눈을 뜨면 바로 머리를 어떻게 움직여도 불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귀로는 염불하는 소리를 들어서 그의 바른 생각(正念)을 일으키게 하며, 그의 정집(情執)을 일어나게 해서도 안 되고, 그의 번뇌를 일어나게 해서도 안 되는데, 이는 어느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질문: 조념할 때 망자는 왕생 이불(往生被: 陀罗尼被라고도 한다.)을 덮어야 하며, 그리고 금강광명사(金剛光明沙) 등을 사용해야 합니까?
답변: 왕생이불을 덮고, 금강광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수지(修持)한 공부입니다. 왕생이불을 덮어야 왕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덮지 않는다고 해서 왕생할 수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만약 왕생이불을 덮어야 왕생할 수 있다고 한다면, 더 많은 왕생이불을 만들면 누구라도 다 왕생할 수 있을 것이니, 구태여 힘들게 수행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왕생이불과 광명사는 부차적인 것이며, 중요한 것은 반드시 이치에 맞게 불법에 맞게 수학(修學)하는 것입니다. 염불하여 왕생하는 이론과 방법은 《무량수경》에 다 있으므로, 《무량수경》을 자세히 독송하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질문: 다른 사람을 위해 조념할 때에 어떤 사람이 밀종(密宗)대덕을 오시도록 청하여 왕생하는 사람의 머리 위에 금강사(金剛沙)를 놓았으며, 제자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불법에 맞습니까? 또 금강사가 진정으로 육도(六道)를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까?
답변: 금강사는 대비수(大悲水)와 마찬가지로, 진실로 도행(道行)이 있는 사람이나, 수행(修行)이 있는 사람이 와서 가지(加持)해야 비로소 도움이 있으며, 만약 그렇지 않는 사람이라면 효과가 크지 않습니다. 만약 다라니를 염송하는 사람이 입으로만 하고 마음이 없으면 조금의 효과도 없습니다. 중국 선조들께서 가르치시기를,「어떤 일을 하고서 예상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마땅히 돌이켜서 자기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行有不得, 反求諸己」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외부의 역량에 의지해서는 안 되며, 외부의 힘은 대다수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힘이 가장 믿을 수 있으며, 자기 스스로 확고한 신심(信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산두(汕頭)에 사는 한 동수(同修)가 암에 걸려 상태가 매우 심각하였지만, 그의 신심(信心)이 암을 극복하여 암세포를 다 없앴습니다. 이는 참으로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의 두 장의 사진을 아직도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으며, 항상 사람들에게 보게 합니다. 한 장은 그가 병원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이고, 한 장은 그가 자신의 신념으로 스스로 화해하여 암세포가 없어진 후에 찍은 사진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자신을 믿어야 하며, 남을 믿는 것은 잘못입니다. 만약 그가 의사가 수술하는 것을 믿었다면 틀림없이 목숨조차도 보존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참회하는 방법을 쓴 것이며, 참회하고 발원하면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질문: 왕생이불(往生被)을 태워도 되는지 여쭙겠습니다.
답변: 이 일은 저는 잘 알지 못하니, 왕생이불을 만든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십시오.《금강경》에서 말하길,「모든 형상이 있는 것들은 다 허망한 것이다.(凡所有相, 皆是虛妄)」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태워도 되고, 태우지 않아도 됩니다.
질문: 사람이 숨이 끊어졌으나, 아직 출관(出棺)하지 않았을 경우, 각미등(脚尾燈: 長明燈이라고 한다.)을 켜야 합니까?
답변: 이 등은 세간의 풍속습관입니다. 불법에 의거하여 행할 경우에는 각미등을 켤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불법에 따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이 세간의 법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집에 형제가 많을 경우에는 가족들이 전부 반드시 불법을 배운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불법에 따라 행하려고 한다면, 다른 형제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니, 불법에 따라 행할 방법이 없습니다. 집안이 화목해야 만사가 형통하는 것이니, 이럴 경우에는 인연을 따를(隨緣) 도리밖에 없습니다.
7. 임종 시 개시(開示)의 시기와 내용
질문: 임종을 맞이한 병자에게 어떻게 설법해야 합니까?
답변: 가장 먼저 왕생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보살펴야 합니다. 그의 가족과 친척에게 평소에 그가 어떠한 것들을 생각하는지,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의 일상생활의 습관은 무엇인지 등을 물어서 전부 다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그의 병실에 있을 때 응당 어떤 태도를 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떠한 일들을 해야 하는지 등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상황에 맞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며, 혹 자신은 호의(好意)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병자 곁에 있는 가족이나 친척은 악의(惡意)라고 생각할 수 있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면 힘들어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더욱이 환자 자신이 불법을 믿지 않고, 그의 가족들이 전부 불법을 믿지 않는다면, 제도하기가 가장 용이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럴 경우에는 진정한 지혜와 진정한 선교방편(善巧方便)이 필요합니다.
환자가 생전에 좋아하던 것이나 하고 싶었던 것들을 알아서 그가 좋아하던 것이나 하고 싶었던 것들을 따라서 그를 일깨워야 합니다. 일깨우는 말은 간단하고 명료해야 하며,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더욱 좋습니다.「자신이 좋아하는 것, 가지고 싶은 것을 부처님께서는 도와줄 수 있습니다. 아미타불을 보면 어떤 소망이 있든지 전부 다 원만하게 이룰 수 있습니다.」「부처님께서는 진실로 구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에 응답하십니다.」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설사 그가 불법을 배우지 않았다 해도, 이러한 몇 구절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가피를 받을 것이라 말한다면, 그는 오히려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좋아하는 것에 맞추어 그에게 듣게 한다면, 매우 기뻐할 것이고, 매우 위로가 되어 자신의 앞날에 희망이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극락세계에 가면 부처님께서 세세생생(世世生生)의 좋은 친구, 가족과 친척들을 모두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그들 중에는 많은 이들이 아마도 이미 서방 극락세계에 가서 편안하게 지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말들로 그를 일깨워주고 인도해야 합니다. 만약 그 사람 자신이 불법을 믿고, 가족이 전부 불법을 믿는다면, 이는 하기가 쉬우며, 《칙종수지(飭終須知)》에 의거하여 하면 사람들이 전부 다 협조할 수 있습니다. 행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가족과 친척이 불법을 알지도 못하고, 불법을 믿지도 않는 것이며, 이러한 경우에는 함께 협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때에는 진실한 지혜를 보여주고 선교방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질문: 임종 시의 개시(開示)는 어느 때에 하며, 어떻게 개시(開示)해야 합니까?
답변: 사람은 생명이 끝날 때에 자신이 일생동안 지은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앞에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많은 환자들이 병이 오래 동안 지속되어 낫지 않은 상황일 때나, 또는 바로 임종하기 며칠 전 혹은 일주일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많은 가족이나 친척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자가 아무개가 와서 문 앞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거나, 또는 어떤 사람이 어디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경계는《지장경》에서 자세하고도 분명하게 강설하고 있는데, 이를「저승세계가 앞에 나타난 것(陰境現前)」이라 말하며, 이는 매우 좋지 않은 경계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원수나 채권자들이 가족이나 친척의 모습으로 변하여 나타나서 그를 유혹하여 그를 데리고 가려고 하는 것이며, 그를 데리고 간 후에 결판을 내거나 보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때, 선우(善友)가 그의 곁에서 바로 즉시 그를 일깨워주어야 하며, 어떤 사람이 나타났건 간에 아랑곳하지 말고, 상관하지 말고서 성실하게 염불하도록 해야 합니다. 생각이 한번 바꿔지면 이러한 경계들은 곧 바로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임종할 때 경전을 독송해서는 안 됩니다. 경전의 문장은 너무 길기 때문에, 독송하면 할수록 그의 머리는 더욱 어지러워진다면, 일을 그르치게 되니 큰일입니다.
이때에는 무엇을 보았든지 간에 그에게 상관하지 말고, 오로지 일심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여, 아미타불께서 오시면 아미타불을 따라가라고 해야 하며, 아미타불이 아니면 어떤 불보살님이건 간에 아랑곳하지 말고, 상관하지 말도록 해야 합니다. 임종 시의 개시(開示)는 바로 이 몇 구절의 말뿐이며, 다른 말은 강설해서는 안 됩니다. 병자를 지키는 여러 날 동안 밤낮으로 중단하지 말고, 시시각각 그를 이렇게 일깨워주어 그의 바른 생각(正念)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선지식은 그의 곁에서 일깨워주고, 그의 망념(妄念)을 끊어주고, 원수나 채권자의 유혹을 끊어주고, 그가 바른 생각(正念)을 일으켜 사람들을 따라 함께 염불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혹 그의 체력이 약해졌을 때에는 소리 내어 염불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염불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이때에 그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임종 시의 개시(開示)는 다른 것을 말해서는 안 되며, 다른 것은 말해주어도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그가 바른 생각(正念)이 또렷하게 분명하여 일심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을 불러서, 절대로 저승의 경계(陰境)가 앞에 나타나는 것에 흔들리지 않도록 보살펴야 하며, 이는 무량한 공덕입니다. 한관장이 왕생할 때 두 차례나 저승의 경계(陰境)가 앞에 나타났었으며,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횟수가 가장 적은 것입니다.
단지 한관장이 말을 하기만 하면, 우리들이 그 즉시 바로 끊어주었으며, 한관장에게 전혀 관계하지 말고 우리를 따라 염불하게 하였으며, 나타난 사람이 착한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원수이건, 아니면 친척이건 간에 일체 아랑곳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한관장이 만약 말을 하지 않고, 이러한 경계를 보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바로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를 끝까지 불렀으며, 더 이상 다시 개시(開示)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 정토를 함께 배우는 동수(同修)가 조념할 때 일정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서 계속해서 망자에게 중음(中陰)에 대한 개시(開示)를 해주어야 합니까? 만약에 개시(開示)를 해주면, 망자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답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념은 보통 숨이 끊어진 후, 의사가 사망을 선포한 때부터 시작하며, 12시간에서 14시간동안 조념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이 시간 동안 바로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를 가지고서 그를 도와 조념합니다. 임종하기 전과 병이 위중할 때에는 절대로 개시(開示)해서는 안 되며, 경전을 강설해서도 안 되며, 창념(唱念)해서도 안 되며, 이러한 것들은 모두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한 마디의 아미타불뿐이며, 이때에는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십시오.」라는 이 한 마디만을 말하며, 이것이 가장 수용(受用)하는 것이며, 그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갖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때에 그가 전생의 가족이나 친척을 보아도 그가 그들을 따라 가지 않도록 하고, 아미타불이 오시면 그때 비로소 아미타불을 따라 가야 한다는 것을 각성시켜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오든지, 어떠한 불보살님께서 오시든지 전혀 상관하지 말라고 일깨워주어야 하는데, 이 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른 것들은 말하지 말고, 바로 이 한 마디의 아미타불을 끝까지 부르도록 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수용(受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飭終須知(칙종수지)》와《飭終津梁(칙종진량)》에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망자를 도와 임종조념을 발심한 사람은 반드시 이러한 상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했을 경우에는 망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부정적인 작용을 일으키게 됩니다.
질문: 많은 사람들이 임종하려는 사람, 혹은 이미 왕생한 사람을 제도할 때 개시(開示)해주어야 하며, 또 망자와 그의 원수나 빚쟁이에게 개시(開示)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개시(開示)해줄 필요가 없으며,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를 끝까지 부르면 된다고 주장하는데, 어느 것이 불법에 맞습니까?
답변: 사람이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지만, 의사가 치료를 포기하였을 때에는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가 중요하며, 이때에는 개시(開示)는 샛길로 빠진 것(打閒岔)이라 말하며,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가 이런 사람이 오고, 저런 사람이 오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거나, 혹은 어떤 불보살님을 보았다고 말한다면, 그에게 상관하지 말고,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를 끝까지 부르라고 말해주어야 하는데, 바로 이 한 마디의 개시(開示)뿐입니다.
만약 이미 숨이 끊어져 중음(中陰)에 있으면 간단하고 요점을 잡아서 개시(開示)해도 됩니다. 이때에는 그에게 염불의 장점은 진정으로 괴로움을 떠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또 그에게 극락세계의 비할 데 없는 수승(殊勝)한 점, 극락세계의 무량한 수명을 말해주어 그가 정토에 왕생할 것을 구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집(情執)이 매우 깊고 무거워서 가족이나 친척들과 헤어지지 아쉬워 떠나지 못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서방 극락세계에 가면,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신족통(神足通) 등의 신통이 모두 갖추어지게 되므로, 가족이나 친척이 어느 곳에 있는지 모두 훤히 알아 그들이 어떤 고통이 있으면 전부 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영원히 가족과 친척과 헤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혹 극락세계가 아닌 다른 도(道)에 가게 되면, 지은 업에 따라 윤회하게 됩니다.」이는 일반 사람들이 누구나 다 듣기 좋아하는 말입니다. 이때의 개시(開示)는 말하기 쉬운 어떤 도리가 없으며, 그가 잘못 길을 갈까 걱정이며, 어긋났으면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반드시 그에게 아미타불을 따라 가고, 다른 사람을 따라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당부해야 합니다.
질문: 조념 기간 동안 병자나 망자에 대한 개시(開示: 가르침)가 똑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토를 닦는 동수(同修)들이 참고하기 편하도록 개시(開示)의 내용을 하나의 규범으로 만들어주시기를 법사님께 간곡히 청합니다.
답변: 개시(開示: 가르침)에 관해서는 옛날부터 조사들께서 이미 정해놓으신 규범이 있으므로, 다시 세워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임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의 망념도 일으켜서는 안 되며, 오로지 하나의 생각만을 가지고서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개시(開示: 가르침)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때에는 개시(開示: 가르침)를 말하는 것도 잘못이고, 그에게 경전을 듣게 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48대원(大願)중에 열 번 부르고 한 번 불러도 틀림없이 왕생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때에는 바로 한 마디의 아미타불만이 요긴합니다.
임종할 때의 마지막 한 생각이 부처님 명호이면 틀림없이 왕생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마지막 한 생각을 보살펴주어야 하는데, 생각 생각이 온통 다 아미타불뿐이고, 다른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때 개시(開示: 가르침)하느냐 하면,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난 친척을 보았다고 말할 경우, 이때에 바로 「아미타불을 부르고, 다른 것들은 상관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며, 이것이 임종하는 사람에게 가장 훌륭한 한 구절의 개시(開示: 가르침)입니다.
어떤 경계가 앞에 나타나든지 전부 상관하지 말며, 아미타불께서 오신 것을 보면, 그때 비로소 아미타불을 따라서 가며, 어떤 불보살님을 보거나 전부 상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는 것이 중요한 개시(開示)입니다. 그러므로 쓸데없는 말이 한 구절도 있어서는 안 되며, 중간에 끼어들어 섞인 말이 한 구절도 있어서는 안 되며, 이때는 경전을 말하거나 개시(開示: 가르침)를 말할 때가 아닙니다.
질문: 만약 임종하는 사람이 세 살이 안 된 중병을 앓는 영아라면, 이 어린아이를 위해서도 임종 시 개시(開示: 가르침)를 해야 합니까? 또 영아를 위한 조념은 성인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답변: 그렇습니다. 세 살 이하의 영아는 사리를 분간하지 못하므로, 단지 아이에게 염불하고 불상을 생각하고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면 부처님을 따라 가라고 할 뿐이며, 이렇게 개시(開示: 가르침)하기만 되면 됩니다. 따라서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되며, 말을 많이 하면, 영아가 받아들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잘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불상을 영아의 얼굴 앞에 놓고, 부처님 명호가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질문: 재가거사가 출가 스승을 위해 조념하는데, 왕생의 조건이 구비되어 있지도 않고, 또 개시(開示)할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발견하였을 때, 재가거사가 출가 스승께 온갖 인연을 다 내려놓고서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을 구하는 신심을 확고히 하여 일심으로 아미타불 명호를 부르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은 여법(如法)한 일입니까?
답변: 이렇게 하는 것은 대단히 여법(如法)합니다. 재가자가 조념할 때 역시 출가자를 일깨워주어야 하며, 출가자를 일깨워줄 수 있으면, 바로 불보살이며, 진정으로 그를 도와준 것입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며, 만약 그의 의지와 정신이 집중하지 못함을 보았으면, 이 몇 마디의 말은 어느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절대로 출가의 형상에 놀라서는 안 되며, 만약 놀란다면 불법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불법의 경전에서는 어디에서나 한결같이 불법은 평등한 법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치(理)로도 평등하고, 현상(事)으로도 평등합니다. 사중(四衆: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니) 동수(同修)는 서로 도와야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이렇게 세상이 혼란한 시대에서는 출가자는 매우 힘들며, 매우 불쌍합니다. 비록 출가하였지만, 진정으로 바른 법(正法)을 듣고, 바른 법(正法)을 이해하고, 바른 법(正法)을 닦아 지닐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그야말로 많은 물음표가 남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연(機緣: 기회와 인연)을 만나면 반드시 출가자를 도와야 하며, 절대로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질문: 만약 어떤 사람이 병으로 혼미한 상태에 있는데, 병자 자신과 가족이 전부 불법을 믿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 명호로 조념할 수 없을 경우에는 병자 앞에서 《지장경》을 독송해주어도 됩니까? 그리고 또 경전을 독송하기 전에 병자에게 어떻게 개시(開示: 가르침)해야 합니까?
답변: 가족들이 전부 불법을 믿지 않을 때에는 이 일은 참으로 난감합니다. 정토를 믿지 않고 다른 법문을 믿는다면, 그것은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병자가 어떤 법문을 믿는다면, 바로 그가 믿는 그 법문의 의규(儀規)와 경륜(經倫)으로 하면 됩니다. 일생동안 불법을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임종 시에 그에게 왕생을 권하고, 그를 위해 서방 극락세계의 의정(依正)장엄을 말해주면 이따금 환희하는 마음을 낼 수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의 한 거사가 임종할 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불법을 들었으며, 후에 그는 왕생하였습니다. 임종할 때 부처님 명호를 한 번 부르거나 열 번 부르거나 모두 왕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수승(殊勝)한 인연이 전생에 심은 선근(善根)을 건드려 움직이게 하였기 때문이며, 그래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공부를 끊어지지 않게 할 수만 있으면 성취가 있습니다. 이는 《무량수경》48원(願) 중 제18원의 내용입니다.
보통 임종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업과 가족과 친척을 내려놓지 못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매우 큰 장애입니다. 임종하는 사람에 대한 개시(開示: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에게 온갖 인연을 내려놓고서 일심으로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부처님을 따라 왕생하게 하는 것이며, 이것이 최상승(最上乘)입니다. 임종하는 사람을 위해《지장경》의 가르침을 개시(開示)하여 그가 가장 아끼는 보물과 가장 좋아하는 물건을 팔아 돈을 만들어 그를 위해 복을 닦게 하는 것입니다. 복을 닦는 것 중에 가장 수승한 복은 삼보에 공양하는 것이며, 이러한 공덕을 그에게 회향하는 것입니다.
삼보에 공양하는 방법으로는 불상을 조성하는 것이며, 만약 재력이 부족하면 불상을 인쇄해도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불보에 공양하는 것입니다. 경서를 인쇄하거나 시디(CD)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독송하도록 보내준다면, 이것이 바로 법보에 공양하는 것입니다. 출가자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바로 승보에 공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시(開示)는 그에게 재물은 몸 밖의 물건이라 가지고 갈 수 없지만, 공양한 공덕은 가지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그로 하여금 아무런 걱정이나 염려 없이 일심으로 왕생을 구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망자의 재산이 아주 많아 부유하다면, 큰 공양을 닦을 수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 중에는 어떤 이는 자신이 살던 집을 보시하여 도량으로 삼게 하였는데, 이러한 공덕은 더욱 큽니다. 현재 남경에 있는 「금릉각경처(金陵刻經處)」는 원래 양인산 거사가 살던 집이었는데, 그가 왕생한 후에 집을 보시하여 삼보에 공양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매우 수승한 일이며, 이것은 재물보시, 법보시, 무외보시가 다 구족한 것입니다. 「 모든 공양 중에 법보시가 최고입니다.」이것은 가장 좋은 모범입니다. 양인산 거사는 염불하여 왕생하였으며, 그가 만약 왕생을 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공덕의 복의 과보는 인간 세상에 있지 않으며, 반드시 천상에 가서 천상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
8. 조념의 효과 및 마땅히 갖추어야 할 태도
질문: 어떻게 조념해야 효과가 있습니까?
답변: 조념을 만약 입으로는 하지만 마음에 없으면 당연히 효과가 없습니다. 조념하는 사람이 만약 조념하는 중에 염불공부가 한 덩어리가 되는 경지(功夫成片)에 이를 수 있고, 마음이 전일하여 산란하지 않은 경지(一心不亂)에 이를 수 있으면, 망자가 제도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이 도리를 스스로 세심하게 체득하여 알아야 합니다.
임종하는 사람을 일깨워 염불하게 하고, 부처님 명호를 듣게 하여, 만약 그가 깨달을 수 있고, 참회할 수 있으면 「다섯 가지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죄(五無間罪: 五逆罪)를 소멸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병자가 부처님 명호를 듣고서 참회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이익은 단지「부처님 명호를 한 번 귀로 들으면 영원히 부처가 될 종자가 되는 것(一歷耳根, 永爲道種」일뿐입니다.
만약 병자가 불법을 알고 있어서, 임종할 때 어떤 사람이 그를 일깨워주자, 그가 진정으로 참회하는 마음을 내어 악을 끊고 선을 닦는다면(한 생각 참회가 바로 선입니다.),「다섯 가지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죄(五無間罪: 五逆罪)를 소멸할」수 있습니다. 또 만약 참회하는 역량이 강하면, 천상과 인간 세상에 태어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질문: 조념하는 사람이 만약 마음이 전일(專一)하지 않을 경우에도 망자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러한 경우에는 조념하는 장소에서 응당 물러나 나와야 합니까?
답변: 조념하는 사람의 마음이 전일하지 않으면 망자가 이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는 조념하는 사람이 특히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만약 마음속에 망념이 많아 염불에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없으면, 조념하는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서 물러나 나오는 것이 가장 좋으며, 조념에 참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성심(誠心)과 성의(誠意)로 염불하고 있는데, 그 중 어떤 한 사람이 성의가 없으면, 조념하는 장소의 자장(磁場)이 좋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자장(磁場)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촉(感觸)은 망자가 특히 민감하게 잘 알기 때문에 좋지 않은 자장(磁場)은 멀리 보내는 것이 가장 좋으며, 이렇게 하는 것이 망자에게 이롭습니다.
질문: 중생을 도와 조념하려면 반드시 청정한 마음과 좋은 덕행을 갖추어야 합니까? 만약 수행하여 청정한 마음을 아직 얻지 못하였으면, 중생에 대한 도움이 매우 작습니까? 비록 이렇게 작을지라도 조념에 참가해야 합니까?
답변: 맞는 말입니다. 공부(功夫)가 완숙하지 않고, 마음이 청정하지 않으면, 염불의 공부와 공덕이 매우 작습니다. 그러나 비록 매우 작기는 해도 충분히 도울 수 있으며, 도와주는 것이 돕지 않는 것보다 좋은 일이며, 천천히 돕는 가운데에 자신을 배양하고 자신을 향상시킨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질문: 왕생할 때 병이 나 이따금 정신이 혼미해지면 부처님 명호를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어떻게 예방해야 합니까?
답변: 왕생할 때 병이 나서는 안 되며, 한번 병이 나서 간혹 정신이 혼미해져 부처님 명호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조념을 해주어도 부처님 명호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럴 경우에는 전혀 어떠한 방법도 없습니다. 예전에 이병남 스승에게 항상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상황일지라도 조념을 하는 것이 조념을 하지 않는 것보다 좋으며, 다만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할 뿐이며, 그가 왕생할 수 있는지 없는 지는 반드시 그 자신에게 달려 있으며, 그가 남이 도와주는 것을 받기를 원한다면 매우 좋으나,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도와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질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임종할 때, 그를 위해 조념해도 효과가 있습니까?
답변: 이는 귀머거리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의 이근(耳根: 귀)에는 장애가 있지만, 그러나 신식(神識)은 장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임종할 때 그의 신식이 맑을 경우에는 그를 위해 염불하면 틀림없이 효과가 있습니다.
질문: 평생 악업(惡業)을 지은 사람을 위해 조념을 해도 효과가 있습니까?
답변: 연지대사께서 이에 대해 잘 말씀하셨는데,「과거에 처음에 지은 악이 죽을 때 마지막 행하는 선을 방해하지 않는다(始惡不妨終善)」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젊었을 때 악을 짓고, 중년에 악을 지었는데, 노년에 이르렀을 때 후회하여 뉘우쳐, 선을 행하기만 한다면 늦지 않았으며, 충분히 왕생할 수 있으며, 또한 착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아사세왕과 같은 사람도 임종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뉘우쳤으며, 참회할 줄을 알았으니, 또한 늦지 않은 것입니다. 설사 악인이라 할지라도, 단지 한 호흡이 끊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가 이 도리를 분명하게 설명해주는 말을 그가 듣고서 만약 활연히 깨달아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선을 행할 수 있으면, 모두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악을 지은 것이 많다고 해서 임종할 때 내버려두고 그를 상관하지 말자고 말해서는 안 되며, 이렇게 하면 잘못입니다. 그가 임종할 때 역시 그를 도와 조념해야 하며, 또한 항상 그에게 권해야 하고, 그를 일깨워야 합니다. 그가 한 생각 고개를 돌려 뉘우친다면, 그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성불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한량없는 공덕입니다. 한 사람을 왕생하여 부처가 되게 보낼 수 있다면, 세간의 어떠한 좋은 일도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질문: 광주(廣州)의 어떤 사람이 임종할 때, 그 지역의 한 거사가 자신의 공부가 아직 힘을 얻지 못함을 매우 두려워하여 싱가포르의 한 법사를 공경히 청하여 조념하였습니다. 이렇게 해도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까? 아니면 혹 모순이 생길 수 있습니까?
답변: 사람마다 각자의 연분이 다르기 때문에, 조념하는 사람이 재가자이거나 출가자이거나를 막론하고 만약 진실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조념할 수 있으면, 망자는 이익을 얻습니다. 진실한 마음과 정성스런 마음, 청정한 마음이면 틀림없이 이익을 얻습니다. 수행하여 만약 공부가 깊다면 얻는 이익은 더욱 크며, 이는 틀림없는 도리입니다.
질문: 조념을 한 후에 망자의 얼굴이 보기 좋은 모습으로 변하고, 몸 또한 부드럽게 변하였습니다. 이는 조념을 한 원인입니까?
답변: 염불하는 사람은 망자를 보낸 경험이 많습니다. 보통 망자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처음에는 얼굴이 보기가 좋지 않고, 몸도 천천히 조금씩 굳어가지만, 그러나 10시간 혹은 12시간 동안 조념을 한 후에는 얼굴이 매우 보기 좋게 변하고, 몸도 부드럽게 변한 것을 항상 봅니다. 이런 까닭에 조념의 공덕이 불가사의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을 보고서 왕생한 것인가 아닌 것인가 하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설사 왕생하지 못하였다고 치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와 염불하였을 경우, 만약 그가 선근이 두텁고, 이번 생에서 어떠한 무거운 업도 짓지 않았다면,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소리마다 모두 그를 불러 돌아오게 하여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이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의 고통을 줄여줍니다. 설사 악도에 그의 원수나 채권자들이 매우 많을지라도, 한 마디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를 모두 그에게 회향하면, 그와 원수나 채권자들과의 원결(怨結)을 풀어주어 원수와 채권자가 다시 그를 귀찮게 하러 오지 않으며, 그는 다시는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얼굴과 몸이 전과는 달라지게 됩니다.
질문: 어떤 한 망자가 생전에 불법을 믿고 염불을 하였지만, 그러나 권속과 자녀가 모두 불법을 잘 알지 못해 조념단(助念團)의 권유도 듣지 않고, 염불에도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가 그에게 가서 조념하는 것은 단지 그의 시신을 지키는 일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또 저희들이 떠난 후에는 그들은 여전히 술자리를 벌려놓고, 살생을 하고, 몹시 떠들썩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조념단은 가서 조념해야 합니까?
답변: 조념은 자비심입니다. 설령 그의 가족들이 불법을 믿지 않을지라도, 그가 보고 듣게 되면, 역시 이익이 있습니다. 불가(佛家)에서 말하길, 「한번 부처님 명호가 귀에 들어가면 영원히 성불하는 씨앗이 된다.(一歷耳根, 永爲道種)」고 하였습니다. 가족들이 여법(如法)하지 않은 일을 하여 그것에 대한 과보를 받을 수 있겠지만, 죄의 과보를 다 받고 난 뒤에는 부처의 종자가 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이번 생이 아니고, 다음 생 그 다음 생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여전히 이익이 있습니다. 이미 이익이 있다면, 우리는 시간이 있고 기회가 있으면 그래도 가서 조념하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질문: 정토를 함께 공부하는 동학(同學)이 남을 위해 조념할 것을 발심하였지만, 서로의 지견(知見: 견해)이 반드시 같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임종하는 사람의 생사(生死)가 긴박한 중요한 순간에 어떻게 해야 서로의 견해가 같아 서로가 이해하고, 말이 화합하여 서로가 다툼이 없을 수 있는지를 여쭙겠습니다. 만약 모두 자신들의 견해를 버린다면, 또 어떻게 계속해서 조념합니까?
답변: 자신들의 의견을 버린다면, 이 한 마디의 아미타불에는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서 한편으로 피차가 어떤 고정된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 염불 공부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조념할 때에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부처님 명호를 꽉 붙잡고서 왕생하는 사람을 돕고, 왕생하는 사람을 일깨워주며, 피차가 절대로 각자의 의견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각자의 의견이 있으면, 이 의견이 자연히 염불하는 자장(磁場)을 무너뜨리는데, 이는 그를 해치는 것입니다. 그를 해치게 되면, 장래에 자신이 왕생할 때, 또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게 됩니다. 인과응보는 바로 이러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조념할 때는 반드시 자신의 고정된 관념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질문: 한 도량에서 왕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각자의 견해들이 서로 같지 않을 경우, 망자의 영혼을 제도하는 일에 불리합니까?
답변: 각자의 견해가 서로 같지 않으면, 확실히 제도 받는 망자의 영혼에 이롭지 못하며, 이로 인한 해가 매우 큽니다.
질문: 제자가 조념단(助念團)을 조직할 때, 단지 어떤 사람이 청하기만 하면, 망자가 불법을 배운 사람이거나 배우지 않은 사람이거나를 막론하고 언제나 갔습니다. 어느 때에는 하루에 세 사람이 동시에 왕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전부 안배(安排)하여 조념할 방법도 없고, 더욱이 조념의 질을 보증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어떻게 조념을 원만하게 할 수 있는지를 여쭙겠습니다.
답변: 조념의 원만은 자신의 수행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종(淨宗)의 경전의 가르침을 이해해야 하며, 이치(理)를 알아야 하고, 현상(事)을 분명하게 알아야 하며, 방법 또한 알아야 만이 망자에게 도움이 있습니다. 염불단의 동수(同修)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들 이러한 점들을 명확하게 알고서 염불하는 사람을 도와야 하며, 반드시 염불당이 있어서 항상 함께 염불해야 누군가가 찾아왔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그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단지 형식만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면, 실질적으로 말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바로 질문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조념의 질은 그다지 이상적인 것이 못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먼저 자신이 진정으로 수행해야 만이 비로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왕생하는 사람이 만약 자신이 진정으로 염불하여 왕생을 구하고, 또 조념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는 자연히 상서로운 모습을 나타내어 조념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심(信心)을 증장(增長)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일은 실제로는 피차가 서로 돕는 것이며, 이는 틀림없는 분명한 도리입니다.
질문: 홍콩의 어떤 한 도량은 한 분의 스승이 경전을 강설하고, 대중을 이끌어 수행하는데, 저희의 교재에 의거하여 학습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이 도량에는 어떤 한 도우(道友)가 1년 전에 왕생하였는데, 그때 몇 몇의 동학(同學)들이 조념에 참가하려고 하였으나, 그 스승이 청정한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모두 조념하러 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여법(如法)한 일입니까?
답변: 도량들마다 각자 자기 도량의 작풍(作風)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조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조념은 왕생하는 사람이 이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조념하는 사람 자신도 이익을 얻습니다. 임종 시 왕생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바로 이때에 결정됩니다. 따라서 이때에 그를 한 번 도와주는 것은 평소에 도와주는 효과보다 백배나 더 크기 때문에, 공덕은 매우 수승합니다. 항상 남을 도와 조념하면, 장래에 자신이 왕생할 때 조념하러 오는 사람 또한 매우 많을 수 있습니다.
남에게 조념하지 못하게 하고, 남에게 조념하지 말라고 권하면, 장래에 자신이 왕생할 때 나를 위해 조념해 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업의 인과응보는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도가(道家)의 인과경(因果經)에서도 모든 업은 자신이 짓고서 자신이 받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항상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인(因)을 심으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모두 반드시 좋은 과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조념할 것을 권해야 하며, 기회와 인연이 닿으면 자신 또한 가서 조념해야 합니다.
질문: 늘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서 불사(佛事)를 해달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죽은 사람의 불사나 병 든 사람의 불사로,《지장경》이나《삼시계념》을 독송해달라고 찾아오는데, 독송해도 됩니까? 또 돈을 받아도 됩니까?
답변: 이는 좋은 일이며, 해도 괜찮습니다. 사람은 병이 들었을 때에는 위로가 필요하고, 사망했을 때에는 도움이 필요하므로, 조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심과 성의를 다해 그를 돕고, 그에게 이익이 되게 하되, 이러한 일을 행할 때에는 명예나 이익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는데, 이것이 좋은 일입니다. 만약 경전을 독송하고서 돈을 받고자 한다면, 부처님 법을 상품으로 삼아서 판매하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죄과(罪過)가 있는 것이니,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질문: 일찍이 말기 암에 걸린 병자에게 정토에 왕생할 것을 구하도록 권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조념은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라 생각하고는 정토에 왕생할 것을 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만났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마땅한지를 여쭙겠습니다.
답변: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중생을 따르고,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라.」(恒順衆生, 隨喜功德)고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그가 여전히 세간에 미련이 많아 차마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의 건강을 축복하십시오. 이 세계는 매우 고통스럽고,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실제로 재미가 없으면서도 왕생을 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주와 인생의 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며, 또한 미혹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인연이 있는 사람을 제도하신다.」(佛度有緣人)고 한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임종할 때 그에게 염불하여 왕생을 구하도록 일깨워 그 사람이 만약 좋아한다면, 이 사람은 인연이 있는 것이지만, 만약 좋아하지 않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여전히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인연이 없으며,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는 많은 사람들이 평생 염불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임종 시에는 왕생도 바라지 않고, 염불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관세음보살을 불러 달라고 도움을 청하면, 그것도 좋은 것이니, 그를 도와 관세음보살을 불러주고, 또 지장보살을 불러 업장을 없애주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거나 지장보살을 부르거나 모두가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며, 이처럼「한번 귀에 들리면 영원히 부처가 되는 씨앗이 되긴 하지만」, 그러나 이번 생에는 성취할 수는 없습니다.
질문: 두 분의 동수(同修)를 도와 20시간이 넘도록 조념을 한 후, 한 가닥의 흰 연기가 망자의 정수리에서 올라와 약 10 여 분 동안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무슨 현상입니까? 그가 왕생하였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이러한 현상을 보고서 만약 사실은 왕생하지 않았는데, 법을 널리 알리거나 법을 설하는 사람이 신도들에게 그가 이미 왕생하였다고 말하였다면, 법을 널리 알리는 그 사람에게 죄과나 허물이 있는 것입니까? 만약 이 말에 허물이 있다면, 이미 녹음테이프를 만들어서 유통한 것을 어떻게 바르게 수정하여 보완해야 합니까?
답변: 이러한 설법은 究竟(최고의 경계)이 아닙니다. 구경법(究竟法)은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의론할 것이 없어졌고, 마음이 가는 곳이 없어져 생각할 것이 없어진」(言语道断, 心行處滅)것입니다. 세존께서 49년 동안 말씀하신 일체 법은 전부 방편법(方便法)이라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사의법(四依法) 속에서 우리를 가르치고 이끄셨습니다.
즉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며」(依法不依人),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며」(依義不依語), 「지혜에 의지하고 식(識)에 의지하지 말며」(依智不依識),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라」(.依了義不依不了義) 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들에게 가장 수승(殊勝)한 원칙을 제공한 것이며, 자신이 수학(修學)하여 혹 남을 위해 법을 설할 때, 이 원칙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만약 순선(純善)한 마음이라면, 남을 도와 그 사람이 정종(淨宗)에 대해 신심(信心)을 세우고, 일심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할 것을 원하도록 하며,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사 왕생하지 못하였을지라도, 이 마음이 사람들에게 신심을 일으키도록 도와 장래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다 성취할 수 있도록 한다면, 또한 공덕이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현상은 또한 많은 이들로 하여금 신심을 일으켜 왕생하도록 하며, 그렇게 하게 되면 틀림없이 왕생합니다. 우리의 몸속에는 약간의 기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에는 기체가 몸의 어느 한 부위로부터 밖으로 새어나옵니다. 만약 현대의학의 안목으로 본다면, 그들은 이는 일종의 상서로운 현상이라 인정하지 않고, 단지 일종의 물리현상이나 물질현상이라 여길 것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해석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그들은 그들의 근거를 가지고 있고, 또한 그들의 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법에는 고정된 법이 없으며, 중요한 것은 설법하는 사람의 마음 씀입니다. 만약 그의 마음 씀이 순수하고 바르다면, 중생에게 정종에 대해 신심을 일으켜 정토왕생을 구할 것을 결심하도록 권하고 이끌어야 하며, 이러한 설법이 허물이 없습니다.
9. 중음(中陰)의 뜻과 제도방법
질문: 중음신(中陰身)은 무엇이며, 어째서 주칠(做七: 사람이 죽은 뒤 7일마다 49일 동안 죽은 혼령을 위해 기도하는 일)해야 합니까?
답변: 부처님께서는 경전에서 가족이나 친척이 세상을 떠난 후 49일 동안이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을 접하게 되는데, 새로운 환경이 그에게 몹시 낯설어 장애와 어려움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7일이 될 때마다 경전을 독송하고 염불하여 그에게 회향하여 그에게 복이 늘어나게 해줄 것을 가르치고 이끄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중음신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중음신은 지금의 몸을 떠나서 아직 다른 태속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며, 이 기간의 시간을 불법(佛法)에서는 중음(中陰)이라 부르며, 중국에서는 보통 영혼(靈魂)이라 부릅니다. 이 영혼이 흩어지지 않아, 칠일이 될 때마다 한 번씩 죽는 상황이 또 다시 한번 연출됩니다. 특히 자살한 사람의 경우, 그가 만약 목매달아 죽었다면, 7일마다 한 번씩 또 다시 한번 목을 매달며,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라면, 칠일마다 한 번씩 또 다시 한번 물에 빠지니, 참으로 대단히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간에는 경전을 독송하고 염불하여 그에게 회향하여 그의 고통을 줄여주며, 매우 효과가 있습니다.
질문: 주칠(做七)을 행하는 것은 어느 경전에 나오며, 무엇 때문에 49일 안에 「널리 많은 선을 지어야(廣造衆善)」합니까?
답변: 《지장경》에서 말하길, 「만약 또 죽은 후 49일 안에 널리 많은 착한 공덕을 지어 줄 수 있으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악도를 여의고 인간세상이나 천상에 태어나 뛰어나고 미묘한 즐거움을 받을 수 있고, 현재의 권속은 이익이 한량없다.」(若能更爲身死之後, 七七日內, 廣造衆善, 能使是諸衆生, 永離惡趣, 得生人天, 受勝妙樂, 現在眷屬, 利益無量.)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주칠(做七)을 행해야 하는 내용은《지장경》에 나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중음에 있는 기간이 있는데, 대개가 49일 동안입니다.
이 기간을 지난 후에 다른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날 수 있는데, 망자가 지은 업에 따라 어느 도(道)에 떨어졌으며, 바로 그 도(道)에서 자신이 지은 과보를 받습니다. 중음에 있는 기간에 7일째 되는 날마다 한 번씩 죽은 과정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망자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므로, 49일 동안에 「널리 많은 선을 짓고」그를 위해 불사(佛事)를 하여 복을 닦는 공력(功力)을 증장(增長)시키고, 고통을 줄어주어야 합니다.
49일 동안 가족과 친척이 만약 매일 망자를 위해 경전을 독송하고 염불하여 회향한다면, 망자의 복의 과보는 매우 커지며, 이는 저승과 이승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입니다. 「널리 많은 선을 짓는」것은 일체 선법(善法) 중에서 경전을 독송하고 염불하여 회향하는 것을 주(主)로 삼되, 만약 능력이 있으면 망자가 남겨놓은 재물을 가지고서 널리 보시를 행할 경우, 그의 복의 과보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질문: 중음신의 칠기(七期: 49일)는 어느 때부터 계산하기 시작합니까?
답변: 중국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망자가 숨이 끊어진 그 날부터 49일을 계산합니다.
질문: 중음신으로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되며, 반드시 중음신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 또 언제 태속에 들어갑니까?
답변: 중생과 불보살의 차이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불보살은 어느 곳에서 태어나고, 또 죽어서는 어느 곳으로 가는지를 알지만, 범부는 태어남이 어디에서 오는지, 또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범부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불보살은 이에 대해 분명하고 훤히 알기 때문에, 이곳에서 죽었어도 그것을 죽었다고 말하지 않으며, 몸을 버린 것입니다. 몸은 내가 아니며, 몸은 바로 마치 몸에 걸치는 옷과 같습니다.
옷이 오래 입어서 다 떨어지고, 더러워지고, 망가지게 되면 옷을 벗어버리고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다시 새 옷을 입습니다. 육도를 윤회하는데, 몸을 버리면 보통 49일 안에 다른 태속에 들어갈 수 있으며, 또 새로운 몸을 받기 때문에 죽지 않았습니다. 이 49일 동안이 중음신입니다. 그러나 큰 선행을 한 사람이나 큰 악을 지은 사람은 중음을 거칠 필요가 없습니다. 불교 경전에서는 이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강설하고 있습니다. 큰 선행을 한 사람은 숨이 끊어지자마자 곧 바로 천상에 태어나며, 큰 악을 지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는데, 숨이 끊어지자마자 곧 바로 갑니다. 그러나 작은 선이나 작은 악을 지은 사람들은 염라왕과 판관과 얼굴을 마주해야 합니다.
태속에 들어가는 것을 불가에서는 왕생이라 말하며, 시간의 장단(長短)은 제각기 달라 똑같지 않습니다. 가장 긴 사람은 49일이며, 이 49일 안에 대체로 모두가 태속에 들어가며, 또 다시 지금의 몸이 아닌 다른 몸으로 바꿉니다. 심행(心行)이 착한 사람은 몸이 바꾸어질수록 더욱 좋아지지만, 심행(心行)이 착하지 않은 사람이나 악을 지은 사람은 몸이 바꾸어질수록 더욱 좋지 않아서, 축생의 몸으로 바꾸기도 하고, 아귀의 몸으로 바꾸기도 하며, 사람의 몸보다 더욱 형편없습니다.
절대다수는 49일 안에 모두가 다른 몸으로 바꾸어 다시 태어나지만, 그러나 윤회하여 어느 도(道)에 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또한 소수의 사람들은 49일 안에 태속에 들어가지 않는데, 심지어는 몇 년, 몇 십 년이 되어도 태속에 들어가지 않고서 중음의 상태에 있기도 합니다. 이는 특히 몸에 집착하여 몸에 대한 미련이 남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며, 그들은 태속에 들어가지 않아 시체를 지키는 아귀로 변하여 대다수가 무덤 안에 삽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집에 대한 미련이 많아 떠나지 못하여 왕왕 태속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자신이 살던 집이 아귀의 집으로 변합니다.
질문: 중음신의 기간에 어떠한 상황들을 만날 수 있습니까?
답변:《지장경》에서 말하길,「어둠 속을 헤매는 혼령은 자신의 죄와 복을 알지 못하여 49일 동안 바보와 같고 귀머거리와 같다」(冥冥遊神, 未知罪福, 七七日內, 如癡如聾.)고 하였습니다. 「어둠 속을 헤매는 혼령」(冥冥遊神)은 바로 불법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이며, 세속에서 말하는 영혼입니다. 불가에서 헤매는 혼령(遊神)이라 말하는 것이 정확하며, 영혼(靈魂)이라 말하는 것은 공손하게 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결코 신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령하다면, 어떻게 악도에 갈 수 있겠습니까? 공자는《주역》에서 유혼(遊魂)이라 말하였는데, 이 유혼과 불가에서 말한 유신(遊神)은 매우 일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속도가 매우 빠르며, 정처 없이 떠다니며, 분명하고 확실하게 유혼(遊魂: 떠다니는 혼령)이기 때문입니다.《주역》에서는「떠다니는 혼령은 변하는 것이다.」(遊魂爲變)고 말하고 있는데, 이 변한다(變)는 것은 바로 태속에 들어가 몸을 바꾸는 것을 말하며, 이때에는 정말로 「바보 같고 귀머거리와 같아서」우둔하고 멍청하게 49일 동안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 있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중음신은 정신이 매우 혼미하여 바깥의 공간을 보면 마치 안개가 잔뜩 낀 것과 같아서 까맣고 어둡고 또 보는 것이 또렷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어느 곳에 연분이 있으면, 그곳에 빛이 있는 것을 보며, 그러면 바로 그 빛을 따라 연분을 찾아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 빛의 색채와 크기는 모두 같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육도(六道)의 차별입니다.
물음: 신식(神識)이 육체를 떠난 후에도 고통, 쾌락, 배고픔, 추움 등의 감각이 있습니까? 또 어떤 사람이 중음신을 가지지 않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이 중음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답변: 신식이 완전히 육체를 떠나면 이러한 감각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신식이 막 육체를 떠나려고 할 때에는 있기 때문에, 이때가 바로 아주 중요한 때입니다. 과거에 조사과 대덕들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치시길, 연우(蓮友)를 도와 조념할 때에는 특히 주의해야 하며, 그의 몸을 만져서는 안 되며, 심지어는 그가 누워있는 침대조차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를 건드리면 그가 고통스러울 수 있으며, 고통스러우면 바로 성내는 마음을 낼 수 있으며,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 사람에게 대단히 이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염불하는 사람이 성내는 마음이 한번 일어나면 왕생하는 인연이 끊어져버리며, 보통 사람이라면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바로 그의 업력을 보아야 하는데, 만약 업장이 무거운 사람이라면 지옥에 떨어지며, 설사 업장이 무겁지 않을지라도 축생도에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내는 마음을 품고서 태속에 들어가면 독사나 맹수와 같은 축생에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임종한 후 8시간 동안에는 절대로 몸을 건드려서는 안 되며, 가장 좋은 것은 12시간에서 14시간까지이며, 그렇게 하면 비교적 안전하며, 그 후에 그에게 옷을 입히고 입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경전에서 세 종류의 사람은 중음신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염불하는 사람으로, 이러한 사람은 왕생할 때에는 숨이 끊어지자마자 곧 바로 극락세계가 갑니다. 둘째는 천상에 태어나는 사람으로, 그는 천복(天福)이 대단히 커서 숨이 끊어지자마자 곧 바로 천상에 태어납니다. 셋째는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으로, 이러한 사람은 숨이 끊어지자마자 즉시 지옥에 떨어지며, 지옥의 고통은 사대(四大: 흙과 물과 불과 바람)가 흩어지는 고통보다 얼마나 더 심한지를 알지 못하므로, 이러한 사대가 흩어지는 작은 고통을 그는 당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서 지옥에 가서 더욱 더 큰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세 종류의 사람 외에는 모두가 중음을 가지게 되며, 숨이 끊어진 후에 신식은 결코 곧 바로 당장에 육신을 떠나지 않고서 반드시 사대(四大)가 흩어지는 고통과 중음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물음: 만약 마지막 한 번의 숨이 염불하고 있었다면, 그러나 숨이 끊어진 후에 또 신식이 언제 몸을 떠나지를 알지 못하는데, 그래도 극락왕생을 보장할 수 있습니까? 염불하는 동수(同修)는 왕생할 때 중음이 없는데, 어째서 여전히 조념을 해야 합니까?
답변: 이것은 그의 연분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조념은 대단히 중요하며, 어떻게 그를 도와야 하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염불하는 동수(同修)는 왕생할 때 중음이 없지만, 그러나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여전히 8시간, 혹은 12시간, 혹은 14시간 염불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경우 단지 이익이 있을 뿐 나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왕생할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조념을 해주면 그가 극락에 왕생하는 품위(品位)가 높아질 수 있어서 극락세계에 가면 영화스러우며, 그의 뒤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옹호(擁護)하고 있으므로 혼자 외톨이가 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진정한 왕생은 숨이 끊어지자마자 바로 가는 것이지만, 그러나 옛날 대덕들께서는 여전히 염불을 8시간, 12시간, 혹은 더 긴 시간 동안 염불할 것을 제창하셨습니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이렇게 하면 저승에 있는 사람이나 이승에 있는 사람이나 모두가 다 이익이 되며, 염불하는 시간을 길게 하면 할수록 좋고, 염불하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망자가 보여주는 모습 또한 더욱 좋습니다. 따라서 설사 1주일 혹은 2주일 그대로 안치해있다가 옷을 입힐지라도, 온몸은 여전히 부드러우며, 일반 사람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렇게 하면 염불하는 사람의 신심을 일으키게 할 수 있습니다.
질문: 중음신 또한 염불하여 왕생할 기회가 있습니까?
답변: 총간사인 호(胡)거사는 불법을 배운 지 10 여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모친은 아주 선량하신 분이시지만, 생전에 불법을 접하지 않았으므로, 딸이 불법을 공부하는 것이 언제나 미신이라 생각하셨습니다. 호거사의 모친이 병이 위중하실 때, 정종(淨宗)을 함께 공부한 도우(道友)들이 병원에 가서 그녀의 모친을 위해 조념을 하였습니다. 당시 그녀의 모친 역시 함께 따라서 염불하기는 하면서도 여전히 반신반의(半信半疑)하였으며, 또한 자주「정말입니까? 이는 진짜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러한 때에는 도와주는 인연(助緣)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때 한 법사가 그녀의 모친에게 개시(開示: 가르침)하여 조념하는 사람들을 따라 함께 염불하도록 일깨웠으며, 그녀의 모친은 이렇게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호거사는 대만선과림(臺灣善果林)에서 모친을 위해 불칠(佛七)과 삼시계념(三時繫念)을 행하였으며, 49일 동안 3백 명이 넘는 동수(同修)들이 밤낮으로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염불하였습니다. 당시에 모친의 영구는 염불당의 옆방에 안치하였습니다. 그녀의 모친은 자신이 이미 세상을 떠난 것을 알고서 한 영매(靈媒)의 몸에 붙어서 말하길,「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나에게 이렇게 잘하는 것입니까? 나는 정말로 매우 놀랐습니다. 제 딸과의 관계 때문입니까?」고 하였는데, 이것이 첫 번째로 그녀의 모친이 전해준 소식입니다.
우리들은 모친의 중음신에게 염불할 것을 권하였고, 또 정토에 왕생할 것을 구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그때 그녀의 모친은 많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무엇이 부처인가? 어째서 염불해야 하는가? 염불하면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 그래서 당시에 한 젊은 법사가 모친이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더니, 다 들은 후에 매우 기뻐하면서「불법은 너무나도 훌륭합니다.」고 말하였으며, 또 「이렇게 훌륭하니, 나는 경전을 듣겠습니다.」고 말하였습니다.
모친이 경전을 듣기를 요구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 즉시 텔레비전을 모친의 관 옆에 놓은 후 틀어서《지장경》을 보게 하였습니다. 모친은 또 저녁에 동영상이 들어 있는 브이시디(VCD)를 틀어줄 것을 요구하였으며, 다 본 후에 다시 보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사람이 가서 다시 브이시디(VCD)를 교체해야 하는 것이 너무 수고로운 것을 보고서 그 모친은 당장에 호거사를 시켜 가라오케 기기를 한 대 물색하게 하였습니다. 이 기기에는 400장의 브이시디(VCD)를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매일 밤낮으로 끊임없이《지장경》을 틀어서 보게 하였는데, 그 후로는 다시 모친이 영매의 몸에 달라붙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약 2주가 좀 더 지나서, 다시 모친은 영매의 몸에 달라붙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에 갔었느냐고 물었더니, 모친은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서 밤낮으로 경전을 듣고 있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또 말하길,「지금은 경전 듣는 것은 됐습니다. 염불을 하려고 하고, 왕생을 구하려 하는데, 아미타불께서 어째서 아직까지도 나를 접인하러 오시지 않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마지막에는 염불을 하였습니다. 마지막 7일 그 날은 바로 49일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삼시계념(三時繫念) 법회 때에 모친은 또 다시 영매의 몸에 달라붙어 모두에게 알리길,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증상연(增上緣)을 해주어서 매우 감사하며, 극락세계에 왕생하였고, 하품중생(下品中生)이라 하였습니다. 생전에 불법을 접한 적이 없는 사람이 중음신으로 제도를 받았으며, 이는 우리들이 직접 우리 눈으로 목격한 첫 번째 사람입니다.
질문: 중음신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불법을 만나 왕생할 수 있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답변: 이는 과거 생에 이 법문을 닦는 적이 있지만, 그 생에는 닦아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이번 생에 임종할 때 이 법문을 듣고서 숙세의 선근(善根)을 이끌어내어 용맹정진하고 모든 인연을 다 내려놓고 조금의 미련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순조롭게 성취한 것입니다. 더욱 희유(希有)하고 얻기 어려운 것은 일생동안 불법을 믿지 않았고, 죽어서도 불법을 믿지 않았는데, 죽은 후에 중음신이 불법을 듣고서 불법의 이치를 분명하게 안 후에 조념하는 동수(同修)를 따라서 염불하여도 왕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의지와 신심이 매우 확고하여, 마(魔)의 자장(磁場)이 그에게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단지 그의 숙세의 선근(善根)의 생각이 한 번 움직이기만 하면 바로 아미타불의 백호(白毫) 광명의 가피를 얻을 수 있으며, 또 바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응은 실로 불가사의합니다.
질문: 중음신에 들어간 망자에게 가까운 벗이 불사(佛事)를 하여 그를 제도하고, 그리고 49일 동안 망자를 위해 염불하면, 중음신을 제도하여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중음신이 스스로 염불하여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을 구해야 부처님께서 인도(接引)하시는 가피를 받을 수 있습니까? 또 중음신이 또한 스스로 염불하여 왕생을 구할 수 있습니까?
답변: 중음신은 염불하여 왕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매우 희유(希有)한 일이지만, 분명하게 있습니다. 호거사의 모친이 바로 이러한 예에 속합니다. 그녀의 모친은 생전에 불법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죽은 후에야 비로소 불법을 공부하였으며, 진실로 왕생하였습니다. 49일 동안 많은 사람들이 매일 염불하고 경전을 독송하여 호거사의 모친에게 회향하였고, 모친의 중음신은 떠나지 않고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의 모친은 경전을 듣기를 요구하였고, 발심하여 염불하여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구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그의 모친은 다른 사람의 몸에 붙어서 사람들에게 말하길, 아미타불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셨으며, 하품중생(下品中生)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숨이 끊어진 후, 49일 동안의 조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의 모친은 왕생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대로 말하자면, 과거 생에 심은 선근(善根)이 깊고 두터우며, 일찍이 이 정토법문을 공부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번 생에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소홀히 하였던 것이지만, 그러나 임종할 때 그래도 자신의 숙세에 심은 선근이 있어서 이번 생에 선연(善緣)을 만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만났습니다. 그 당시 염불당에는 3백 여 명이 그의 모친을 도와 49일 동안 염불을 하였으며, 이는 만나기 매우 어려운 법연(法緣)입니다.
질문: 모친이 세상을 떠날 때, 자녀가 만약 모친이 중음신에 있을 때에 진실한 마음과 정성스런 마음으로 염불하면 모친이 틀림없이 왕생하도록 도와서 다시는 환생할 필요가 없게 할 수 있습니까?
답변: 할 수 있습니다.《지장경》에 보면, 바라문의 여인과 광목(光目) 여인은 진정으로 자신의 모친을 제도하였습니다. 자녀가 서방의 극락세계를 알아서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친을 위해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할 경우, 만약 모친의 중음신이 함께 할 수 있으면 왕생할 수 있지만, 만약 모친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방법이 없으며 왕생할 수 없습니다. 함께 협력하는 사람도 있고, 기꺼이 함께 협력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질문: 중음신이 본 부처님의 광명은 부드럽고 온화한 금색의 광명입니까? 아니면 마치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번쩍 치는 것처럼 두렵고 눈이 부신 빛입니까?
답변: 불교 경전에서는 이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강설하고 있습니다. 불보살의 광명은 부드러우며, 이 광명을 접촉하게 되면 아주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매우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魔)의 빛은 눈이 부실 수 있으며, 마치 한낮에 태양을 쳐다보는 것과 같아서 눈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마(魔)의 빛과 부처님의 광명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질문: 《도망경(度亡經)》에는 부처님의 광명은 강렬하여 눈을 부시게 하는 빛이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사님께서는 오히려 부처님의 광명은 부드러우며, 접촉하게 되면 아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답변: 강렬하여 눈이 부신 빛은 마(魔)의 빛이며, 부처님의 광명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광명은 부드러운 것입니다. 《능엄경》에서는 50가지의 음마(陰魔)에 대해 강설하고 있는데, 부처님과 마(魔)를 분명하게 구별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자장(磁場)은 매우 편안함을 느낄 수 있지만, 마(魔)의 자장(磁場)은 매우 긴장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약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하면, 왕왕 마(魔)를 부처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魔) 또한 금색의 몸을 가지고 있고, 또한 금색의 광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魔)의 빛은 두려운 감정을 가지게 할 수 있어서, 마(魔)에 대해 공경하기도 하고 두렵게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불보살은 자비하신 마음뿐이어서 부처님의 광명 아래에서는 공포나 불안한 느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질문:《도망경(度亡經)》은 망자에게 개시(開示: 가르침)하기를,「그대들은 강렬하고 눈이 부신 빛을 만나면 바로 즉시 용감하게 들어가야 하나니, 그것은 아미타불께서 인도(接引)하시는 부처님 광명이다. 그대들은 부드럽고 어두운 빛을 만나면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되나니, 그것은 삼악도의 빛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정확한 것입니까? 아닙니까?
답변: 삼악도의 빛은 부드럽지 않으며, 그러나 어둡고, 강렬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불보살의 광명은 매우 강하고, 매우 부드럽습니다. 이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어떤 경전에 의거하여 수행한다면 바로 그 경전의 이론방법에 의거해야 합니다. 만약 《서장도망명(西藏度亡經)》에 의거하여 수행한다면, 완전히 그 경전의 의규(儀規)에 의거하며, 상사(上師)의 지도를 청해야 합니다. 현교(顯敎)와 밀교(密敎)에서는 서로 의거하고 있는 이론과 방법은 서로 같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구학(求學)하는 것과 같아서 자신의 스승의 가르침을 다른 스승의 가르침과 한데 섞어서는 안 됩니다. 스승마다 자신만의 교학방법이 있고, 자신만의 사로(思路)가 있기 때문에, 강설하는 것이 각자 서로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동시에 두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면 어지럽게 되며, 성취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질문: 제자는 《서장도망경》에 의거하여 중음신을 위해 제도하고, 조념하고, 개시(開示: 가르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치에 맞고 법에 맞는 것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답변: 경전에 의거하여 하는 것은 모두가 이치에 맞고 법에 맞는 것입니다. 다만 이때 중요한 것은 마음이 청정해야 하고, 경건하고 정성을 다 해야 합니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감응이 있을 수 있으며, 정성을 다하면 영험이 있습니다.
질문: 어떤 한 조념단에서 《중음자구(中陰自救)》라는 책에 사람이 숨이 끊어지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설법은 정확한 것입니까?
답변: 왕생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여전히 그 자신의 뜻과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임종할 때 미혹하여 왕생하기를 구하는 이 일을 잊어버렸을 경우, 그를 일깨운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교경전에서 말하길, 사람이 비록 숨이 끊어졌을지라도, 8시간 안에는 신식(神識)이 떠나지 않는데, 이때에 다른 사람이 와서 조념을 해주면 그는 들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8시간 안에 그가 만약 깨우쳐서 발심하여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구한다면, 진정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조념할 때에 그를 일깨주어야 합니다.
질문: 《중음신자구법(中陰身自救法)》에 보면, 사람이 죽은 후에 4일째 되는 날에 아미타불께서 붉은 광명을 놓아 망자를 인도(接引)하신다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책에서는 아미타불께서 흰 광명을 놓아 인도(接引)하신다고 적혀 있습니다. 과연 아미타불께서 어떠한 광명을 놓아서 인도(接引)하시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물론 염불을 한 공덕의 힘이 완전히 무르익었다면 숨이 끊어질 때 그 순간에 바로 부처님의 인도(接引)를 받아서 가기 때문에 중음신이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공부가 부족하다면, 이러한 문제는 반드시 분명하게 알아야 비로소 가능하므로, 사부님께 개시(開示)해주실 것을 청합니다.
답변: 평소에 열심히 공부해야 하며, 반드시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반드시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칭념해야 합니다.「보리심을 일으켜 하나의 방향과 하나의 목적을 향해 오로지 염불해야 합니다.」(發普提心, 一向專念) 공부가 힘을 얻지 못하는 첫 번째 원인은 바로 내려놓을(放下)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모든 인연을 다 내려놓을 수 있다면, 어디에 힘을 얻지 못할 도리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선 이 세간의 일체가 다 허환(虛幻)하여 진실이 아니며 조금도 미련을 가질 가치가 전혀 없음을 간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 후에야 진정으로 내려놓을 수 있으며, 공부가 자연히 힘을 얻는데, 이것이 가장 믿음직한 방법입니다. 중음을 기다려서는 안 되며, 중음은 대단히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밀종에 비록 이러한 설법이 있지만, 그러나 현교에서는 이러한 설법을 취하지 않습니다. 불법을 배울 때에는 조사와 대덕들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근대의 인광대사가 바로 최고의 선지식이시며,《문초(文鈔)》에 보면 인광대사께서 사람들의 물음에 대해 대답해주시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매우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질문: 어떤 동수(同修)들은 재난이 닥쳤을 때에는 염불하여 왕생할 수 없다고들 염려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중음신구도(中陰身救度)」VCD를 대량으로 녹음하여 사람들에게 보내 중음신의 환경을 인식하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중음신에 있을 때 서방에 왕생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의 설법에 따르자면,「중음신구도(中陰身救度)」의 동영상을 많이 보게 되면, 팔식(八識) 속에 깊이 각인이 되어서 스스로 자신을 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법에 맞는 것입니까?
답변: 현재 의식이 분명하여도 신심(信心)이 없는데, 중음신에 이르면 아마도 지금의 상황보다 훨씬 좋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이러한 것들을 본다한들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믿을만한 것이 못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방법은 진정으로 믿을만한 것입니다. 현재 한번 부처님 명호를 부르거나, 혹은 눈을 떠서 불상을 한번 보기만 해도, 부처님께서는 「부처님 명호가 한번 귀를 스치면 영원히 성불의 씨앗이 된다.」(一歷耳根, 永爲道種)고 하셨으므로, 장래에는 반드시 제도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뢰야식 속에 부처의 종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제도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자신의 연분에 달려 있습니다. 아마도 몇 만 년 후일 수도 있고, 또 몇 만 겁 후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번 생에서 제도를 받기를 원한다면, 중음신에 가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음신에 가려고 생각한다면, 이는 바로 신심(信心)이 없는 것이며,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현재 신심이 없고 자신이 없으면, 중음신에 이르렀을 때에도 역시 신심도 없고 자신도 없는 것이며, 믿을만한 것이 못됩니다. 신심이 부족할 때에는 경전을 많이 들어야 하고,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질문: 사람이 이미 죽었다면, 그의 업보 역시 끝이 난 것인데, 어째서 이승에서의 병의 고통을 저승까지 가지고 가서 받을 수 있습니까? 또 중음신이 태속에 들어갔다면, 생전의 일은 모두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답변: 병으로 괴로울 때, 병에 집착하여, 비록 이미 죽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내가 아직도 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여전히 고통스럽다고 느낍니다. 만약 「나의 몸은 이미 없어졌다. 그 병은 내가 몸이 있음으로 인해 생겼던 병인 것이니, 지금은 병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한번 생각하는 사이에 곧 고통은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집착이 있어야 이러한 일들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중음신이 태속에 들어가서, 태속에 자리 잡고 앉아 있을 때나 태속에서 나올 때 참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워 전생의 일을 완전히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격음지미(隔陰之迷: 범부는 죽은 후에 신식이 태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나는데, 자신의 전생의 인연들을 전혀 알지 못하며 멍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이를 격음의 미혹이라 이름 한다.)」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전생의 일을 완전히 아는데, 이는 소수이며, 이러한 상황은 탈태(奪胎)에서 온 것입니다. 무엇을 탈태(奪胎)라 하는가? 비유하자면, 모친이 이 아이를 잉태하였는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죽었고, 이 영혼은 떠났는데, 또 다른 영혼이 이를 보고서 그가 대신 그 막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이의 몸속에 뚫고 들어갔을 경우, 이 영혼은 태속에 앉아있고, 태에서 나오는 이러한 고통들을 거치지 않고서 한 번에 이 몸을 얻었기 때문에, 전생의 일에 대해 분명하고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질문: 지성(至誠)으로 조념을 해주고 알맞은 개시(開示)를 해줌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사망한 사람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습니까? 전하여 들은 말대로 라면, 반드시 대체할 몸을 찾을 수 있어야만 비로소 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이로 인해 그가 왕생하였다면, 전생에 닦은 선근과 공덕이 깊고 두텁다고 할 수 있습니까? 또는 불성은 본래 갖추고 있는 것이니, 단지 지극한 정성이 감응하여 통하기만 하면 망자로 하여금 집착을 내려놓고 부처님을 따라 왕생하게 할 수 있습니까?
답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능히 남의 권고를 받아들여 즉시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받들어 행하여(依敎奉行) 염불하여 왕생을 구한다면, 이는 과거 생에 정토를 닦는 인(因) 매우 깊어서 누군가가 일깨워주기만 하면 곧 바로 전생의 선근을 이은 것이며,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습니다. 대체할 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업장이 깊고 무거운 것이며, 이것이 바로 여전히 윤회하는 마음이 윤회하는 업을 짓는 것이라 말하며,
이럴 경우에는 반드시 대신할 몸을 찾아야 비로소 자신이 있는 곳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심하게 관찰해야 발견할 수 있으며, 차사고가 난 곳에는 항상 차사고가 날 수 있는데, 그것은 대체할 몸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혼이 자기 마음대로 대체할 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혼의 눈에 띠어 발견된 사람은 분명히 과실이 있으며, 원혼은 그곳에서 자신이 대체할 몸을 만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질문: 사람이 차에 부딪쳐 죽었다면 곧 바로 귀신으로 변해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지지 않고서, 어째서 큰길에서 자신이 대체할 몸을 기다립니까? 혹은 방안에 목매달아 죽으면 간혹 방안에서 이상야릇한 일들을 벌이는데, 그는 어째서 업을 따라 아귀도에 가지 않습니까? 이는 불학(佛學)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과 아귀가 함께 있는 공간(人鬼空間)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섞여서 어지러워진 것입니까? 이럴 경우에는 세속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법사(法師)를 찾아서 길 제사(路祭)를 지내어 혼령을 인도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다른 더욱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답변: 이러한 일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중국이나 외국이나 모두가 다 있으며, 저 역시 이러한 일을 적지 않게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반드시 바로 귀도(鬼道)에 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도 아직 어느 도(道)에도 가지 않으며, 이 기간을 중음신이라 칭하며, 중국의 통속적인 말로는 영혼이라 칭하며, 이는 아직 태속에 들어가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귀도(鬼道)에 들어갔다면, 이미 어떠한 하나의 도(道)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보통 횡사한 사람의 경우나 자살한 사람의 경우에는 어느 하나의 도(道) 속으로 들어가기가 매우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경에서 이에 대해 분명하게 강설하고 있듯이, 그는 자신이 대체할 몸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체할 몸을 찾을 때에는 모두 중음신에 속하며, 일반적으로 이를 귀혼(鬼魂) 또는 혼백(魂魄)이라 부르며, 그는 귀도(鬼道)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대체할 수 있는 몸을 찾은 후에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다시 어느 도(道)에 들어가며, 그가 만약 귀도로 갔다면, 사람과는 서로 왕래할 수가 없습니다.
10. 중음 기간 및 중음 기간을 지난 후 망자를 위해 복을 닦는 방법
질문: 중음 기간에 망자를 위해 복을 닦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습니까?
답변: 《지장보살본원경》에는 복을 닦는 몇 가지 방법에 대해 강설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망자의 몸을 장엄하는 하는 도구」(若以亡者嚴身之具)입니다. 이는 바로 함께 수장(收藏)하는 장신구나 보석을 말합니다. 또「옥택과 원림(屋宅園林)」입니다. 옥택(屋宅)은 가옥을 말하고, 원림(園林)은 토지를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을「삼보에 보시함으로써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以施三寶, 可拔地獄之苦)」
망자가 일생 동안 설령 지극히 무거운 죄업(罪業)을 지었을지라도, 목숨이 끝나기 전에 만약 자신의 모든 재물을 삼보에 공양한다면, 이 복은 지옥에 떨어지는 죄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 많은 거짓 도량에서는 불교의 명의(名義)를 빌려서 불타의 가르침과는 위배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도량에 보시하고 공양한다면, 죄업을 소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욱 깊이 떨어집니다. 이것은 반드시 분명하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혹은 불상(佛像)과 모든 성상(聖像)을 공양합니다.(或供養佛像及諸聖像)」성상(聖像)은 바로 보살상(菩薩像)입니다. 불보살님께 공양하는 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마치 조상의 위패에 공양하는 것처럼,「부모의 상사(喪事)를 신중하게 처리하고, 먼 조상에게 경건하게 제사를 지내며, 은혜를 받았으면 갚을 것을 생각하여, 자신이 태어난 근본이 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둘째는 「어진 사람을 보면 그 사람과 똑같아 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자신을 일깨워 불보살에게 배우려고 해야 합니다.
불보살님께 공양하는 것은 사상(事相: 형상이 있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말함.)에서 공양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법을 나타내는 뜻을 알아야 합니다. 법에 맞게(如法) 공양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봉행하며(依敎奉行), 나아가 대중들에게 법에 맞게(如法) 수행하도록 권하고 이끈다면, 이러한 공덕은 대단히 커집니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죄업이 소멸될 수 있습니다. 광목 여인과 바라문 여인이 바로 좋은 본보기이며, 세심하게 관찰하고 스스로 체득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또 「내지는 불보살과 벽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입니다.(乃至念佛菩薩及辟支佛名字)」불보살의 명호가 내포하고 있는 뜻은 한 없이 깊고 넓으며, 명호의 공덕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합니다. 부처님의 명호는 성덕(性德)이며, 보살의 명호는 수덕(修德)입니다. 성(性)과 수(修)는 둘이 아닙니다. 석가모니불의 명호는 인자(仁慈)와 청정(淸淨)의 뜻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생각 생각마다 인자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대하고, 일체 경연(境緣) 중에서 청정한 마음을 잃지 않아야 비로소 진정으로 석가모니불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미타불은 무량한 깨달음이란 뜻입니다.
깨달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서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바로 일심으로 칭념(稱念)하는 것입니다.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 지극한 곳에 이르면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를 얻을 수 있으며, 일심(一心)은 바로 움직이지 않는 마음(不動心)입니다. 육근(六根)이 육진(六塵)경계를 접촉하여도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분별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야만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부를 수 있다면, 임종하는 사람의 귀에 부처님 명호가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부처가 되는 종자가 되는 것이며, 그 공덕은 매우 큽니다.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를 때에는 자비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켜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이며,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를 때에는 효순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켜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지장보살을 부르는 것입니다. 문수는 지혜이며, 보현은 실행입니다. 보살의 명호를 부를 때, 명호가 내포하고 있는 뜻을 생각하면서 불러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공덕이 있습니다.
「혹 들은 것은 모두 본식(本識: 아뢰야식)에 있습니다.(或聞在本識)」사람이 비록 죽었지만, 그러나 아뢰야식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가 아뢰야식 속에서 부처의 종자를 뿌리도록 도와줍니다. 종자의 역량의 강약(强弱)은 염불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염불하는 사람이 이러한 이치를 분명하게 알아 생각 생각마다 상응하면 종자의 역량은 대단히 강하고 큽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도리를 알지 못하면, 비록 아미타불께 합장하고 공경할지라도, 역량은 비교적 약합니다.
「목숨이 다한 후에 친척과 골육은 그를 위하여 재식을 마련하여 業道(苦樂의 과보를 감수하게 하는 선악의 업. 身口意의 3업. 이것은 사람을 6취(趣)의 윤회 세계로 가게 하는 길이 되므로 업도라 한다. 근본업도(根本業道)의 줄임말.)를 도와주며, 재식(齋食)을 마치기 전이나 재를 지낼 때에는 쌀뜨물·채소 잎사귀 등을 땅에 버리지 않으며, 더 나아가 모든 음식을 부처님과 승가에 올리기 전에는 먼저 먹지 말아야 합니다.(命終之後,眷屬骨肉,為修營齋,資助業道,未齋食竟,及營齋之次,米泔菜葉,不棄於地,乃至諸食未獻佛僧,勿得先食。)」
이것은 만약 가족이나 친척이 목숨을 마친 사람을 위해 복을 닦으면, 그가 복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모두 「정성과 공경(誠敬)」에 달려 있으며, 지극한 정성의 마음과 공경하는 마음이 없고 단지 형식만 있으면, 또한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영재(營齋)」를 말하고 있는데, 이 영재(營齋)는 바로 재식(齋食)을 마련하는 것으로, 불문에서는 정오에 공양하는 것이 바로 영재(營齋)입니다. 재반(齋飯)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귀신에게 공양하는 것을 말하며, 재식을 마련할 때에는 반드시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재식(齋食)을 마치기 전이나 재를 지낼 때에는 쌀뜨물·채소 잎사귀 등을 땅바닥에 버리지 않도록」주의해야 합니다. 쌀뜨물은 쌀을 씻은 물을 말하며, 재식을 공양하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쌀을 씻은 물을 마음대로 쏟아버려서는 안 되며, 재식을 공양하는 일이 원만하게 마쳤으면, 그때 비로소 쓰레기들은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물건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재식을 마련하는 사람들 중에 이러한 이치를 아는 사람이 매우 적어서, 쌀뜨물이나 채소 잎사귀 등은 필요치 않는 것들이니, 바로 그냥 버려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
「더 나아가서는 모든 음식을 부처님과 승가에 올리기 전에는 먼저 먹지 말라야 합니다.(乃至諸食未獻佛僧,勿得先食)」먼저 먹는다는 것은 음식의 맛을 보는 것입니다. 공양간에서 음식을 만들 때 먼저 맛을 보고, 먹은 후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은 크게 불경(不敬)한 행위이며, 부처님과 보살님께 공경하지 않고, 귀신이나 사람에 대해서도 공경하지 못한 행위입니다.
만약「정성을 다해 힘쓰지 않고(不精勤)」, 성실하지 않고, 성의가 없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망자는 이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약 정성을 다해 힘쓰고 음식을 보호하여 깨끗하게 하고(如精勤護淨)」, 정성과 진실과 공경의 마음으로 도리에 맞고 법에 맞게 재식을 마련하고, 도리에 맞고 법에 맞게 수행한다면, 모든 부처님의 호념(護念)을 얻고, 용천(龍天)이 존경합니다.「부처님과 승가에 공경하게 올립니다.(奉獻佛僧)」여기에서의 「僧」은 단지 출가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광의(廣義)인 화합 대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불제자는 재가자이거나 출가자이거나를 막론하고 네 사람이 함께 있으면서 함께 닦고, 육화경(六和敬)을 따르면, 바로 승단(僧團)입니다. 이렇게 할 경우,「목숨을 마친 사람이 그 공덕의 7분의 1을 얻게 됩니다(是命終人七分獲一)」칠분(七分)은 공덕으로, 망자는 단지 그 중의 1분(分)을 얻습니다. 정성과 공경의 마음으로 재식을 마련하여 공양하여 복을 닦으면, 그 공덕은 매우 큽니다. 그렇지만 만약 법에 맞게 하지 않는다면 망자가 1분(分)조차도 얻을 수 없습니다.
망자를 위해 복을 닦는 방법은 매우 많아서 이루 다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으므로, 여기에서 하나의 중요한 강령으로 총결하자면, 바로 「정성과 공경(誠敬)」입니다. 어떠한 복을 닦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정성을 다해 힘쓰고, 음식을 보호하여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精勤護淨)」「精」은 순수하여 섞이지 않은 것이며, 「淨」은 청정하여 물듦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청정한 재물로 보시해야 만이 공덕이 있으며, 만약 의롭지 않는 재물이나 청정하지 않은 재물로 복을 닦는다면, 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질문: 어떻게 제도해야 망자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할 수 있습니까?
답변: 만약 망자가 생전에 염불한 사람이고, 또 불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떠난 후에 경전을 독송해주는 소리를 들으면, 그를 일깨워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게 할 수 있으며, 망자가 염불하면 결정코 왕생할 수 있습니다. 제도하는 모든 불사(佛事)는 망자를 위해 증상연(增上緣)이 되는 것이지만, 단지 그가 염불하는 것을 잊어버릴까 두려우므로 특별히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만약 망자가 생전에 불법을 접하지 않았다면, 그 이익의 정도는 똑같지 않습니다. 어떻게 제도해야 망자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할 수 있는가 하면, 망자의 목숨이 다하였기 때문에, 가족과 친척이 복을 닦고, 삼보에 예배하고 죄를 참회하고(禮懺), 경전을 독송하고, 부처님께 예배하면, 망자는 가족과 친척이 복을 닦는 증상연(增上緣)이 됩니다. 이 때문에 망자가 7분의 1의 복의 과보를 얻게 됩니다. 따라서 가족과 친척이 닦은 복이 크면 클수록 망자가 얻는 복도 더욱 많아집니다.
질문: 친인(親人: 직계 친속이나 배우자) 임종하여 상사(喪事)를 치룰 때, 가까운 친구를 불러서 함께 모여서 살생하고 고기를 먹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절하는 것이 효과가 있습니까?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은 온당합니까?
답변: 지장보살께서는 크게 자비하시어 염부제의 중생들에게 친인(親人: 직계 친속이나 배우자)이 임종할 날에는 근신하여야 하며, 절대로 살생해서는 안 되며, 악업을 짓지 말라고 권하셨습니다. 친인(親人: 직계 친속이나 배우자)이 세상을 떠나 상사(喪事)를 치룰 때, 가까운 친구를 불러서 함께 모여 살아 있는 생명을 죽여 고기를 먹고,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은 모두가 죄업을 짓는 일입니다.
망자를 위해 복을 기원해야 하는데, 도리어 살아 있는 생명들을 살해하여 그것으로 제사를 지낸다면, 이것은 다만 망자가 살아 있을 때 지은 살생한 업이 모자라서 다시 거기다가 좀 더 보탤까 두려울 뿐입니다. 또 망자가 떨어지는 것이 별로 깊지 않다고 해서 다시 그를 더욱 아래로 떨어지게 할까 두려울 뿐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망자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이는 대단히 큰 잘못입니다.
중국 고서(古書)에서 말하길, 「총명하고 바르고 곧은 사람을 신이라 말한다.(聰明正直謂之神)」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망자를 위해 귀신에게 제사지내 귀신의 비위를 맞추고, 귀신에게 아부하여 귀신이 망자의 죄과(罪過)를 용서해주고 사면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데, 이것은 일종의 잘못된 심리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분명하게 알아, 세간의 결혼, 상사(喪事), 경사(慶事), 연회에서 절대로 살생해서는 안 됩니다. 살생은 바로 「오직 죄의 인연만을 맺어, 죄를 더욱 늘어나게 하고 깊어지게 하고 무거워지게 할 뿐입니다.(但結罪緣 轉增深重 )」
생일을 축하하고 생신을 축하하는 것은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인데, 그날 살아있는 생명들을 살해한다면 장수하는 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임종할 때 고통이 있습니다. 이는 일생 동안 중생과 죄의 인연을 맺은 까닭입니다.「만약 다음 세상(假使來世)」, 죽은 후는 내세(來世)에 속합니다. 「혹은 현재의 세상(或現在生)」 이는 사람이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살아 있을 때 착한 사람이어서 어떠한 죄업도 짓지 않았는데, 병이 무겁거나 병이 위태하기 때문에 가족과 친척이 살생하여 귀신에게 제사하고 요괴(魍魎)에게 도움을 구한다면, 이것은 죄업을 짓는 것입니다.
따라서 망자가 본래 「인간세상이나 천상에 태어날(生人天中)」수 있었으나, 오히려 가족과 친척들이 이러한 죄업을 지었기 때문에, 망자가 도리어 이 죄업을 떠맡아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미 숨이 끊어졌다면, 염라대왕이 있는 곳에서 또 변론해야 하기 때문에 선도(善道)에 태어날 시간을 늦추게 되며, 만약 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면, 병상에서의 갖은 고통은 바로 신귀(神鬼)가 저승세계에서 변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 현대인들은 상사(喪事)를 치루는 기본적인 의식과 규칙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때때로 악대를 청해 악기로 유행하는 가요를 불거나, 혹은 출가자를 청해 경전을 독송하고 염불하게 하고는 가족들은 오히려 웃으면서 가정의 일상생활을 가지고 잡담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망자의 분노하는 마음을 야기시킬 수 있습니까?
답변: 이러한 일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곧 바로 알게 됩니다. 만약 자신이 죽었을 때, 나의 가족과 친척이 이러한 행동을 한다면, 과연 기분이 좋겠습니까? 좋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마치 매우 기뻐하는 것 같이 보일 것입니다. 이는「잘 죽었어. 너무나도 잘 죽었어!」하는 바로 이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한다면 중국의 옛 예절은 완전히 상실해버리게 됩니다.
질문: 망자가 세상을 떠난 후 1주년 안에 6월 6일은 다리를 건너는(過橋: 이는 아마도 중국의 풍속습관의 일종인 것 같습니다.) 날인데, 이러한 일은 여전히 행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바로 도리에 맞고 법에 맞습니까?
답변: 사실상, 세상을 떠난 후 1년과 3년은 대체로 기념적인 성격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를 행하는 진정한 뜻은 돌아가신 부모의 상사(喪事)를 신중하게 행하고, 세월이 오래 지난 후에도 제사를 지내 늘 추억하여, 사회의 풍속과 도덕을 돈독하게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의식과 규정은 세속의 관습을 따라야 하겠지만, 너무 번잡해서도 안 되고, 낭비해서도 안 됩니다. 일체를 간략하게 하며, 가장 좋은 것은 사회자선이나 중생에게 이익 되게 하는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이며, 이러한 좋은 일을 모두 망자에게 회향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질문: 부친이 세상을 떠나신 후 사원에 부친을 위해 위패를 세웠고, 또 항상 좋은 일을 행하여 회향하기를 지금까지 1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여전히 자주 부친이 누군가에게 쫓겨 매를 맞는 광경을 봅니다. 제자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여쭙겠습니다.
답변: 이러한 상황을 만나면 부친을 위해 착한 일을 해주어 회향하되 중간에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부친을 대신해 재앙을 없애주는 일입니다. 재앙을 없애는 것은 바로 공덕을 부친의 원수나 빚쟁이에게 회향하여 그들이 부친과의 나쁜 감정을 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는 자손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오로지 마음을 이 일에만 힘써야하며, 그렇게 해야 통할 수 있고, 감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한 달을 기한으로 정해, 매일 한 번 오로지 부친과 부친의 원수와 빚쟁이만을 위해 《지장경》을 독송하고, 이 공덕으로 그들의 원결(怨結)을 화해하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혹은 매일 오로지 그들을 위해 부처님 명호를 만 번 불러도 또한 큰 효과가 있습니다. 만약 진정으로 발심하여 진실한 마음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른다면, 한 달 내지는 두 달이면 화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이 화해한 후에는 대단히 좋은 상서로운 감응이 있을 수 있으며, 또 부친이 와서 고맙다고 말하는 꿈을 꿀 수 있으며, 그렇게 성가시게 괴롭혔던 원수나 빚쟁이 또한 없게 됩니다.
질문: 사람이 죽은 후 49일 동안 중음신일 때에 제도하면 효과가 있으나, 그러나 중음신이 지난 후에 매년 제사지내어 공덕을 짓는다면, 세상을 떠난 사람이 어떻게 이를 받을 수 있습니까?
답변: 이것은 《지장보살본원경》에서 매우 분명하게 강설하고 있습니다. 49일 동안에 그가 반드시 태속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음신은 7일째 되는 날마다 한 번의 변역생사(變易生死)가 있어서 그가 고통을 받기 때문에, 이때에 그에게 경전을 독송하여 제도해주면 그의 고통을 줄게 하고 그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태속에 들어가 다른 도(道)로 갔다면, 매년 지내는 제사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가 어느 도(道)에 있건 상관없이 회향하는 공덕을 모두 조금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더욱 중요한 뜻은 우리의 덕행을 배양하여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상사(喪事)를 신중하게 행하고, 먼 조상에게 공경히 제사를 하여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매우 먼 조상일지라도 우리가 그분들의 은덕을 잊지 않고, 가장 가까운 부모나 형제들에 대해, 또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에 대해 당연히 더욱 잊지 않을 수 있다면, 흔히 말하는 「돌아가신 부모의 상사(喪事)를 신중하게 행하고, 날이 오래 지난 후에도 제사를 지내 늘 추억한다면, 사회의 풍속과 도덕이 점차 돈독해질 수 있는(愼終追遠, 民德歸厚)」이러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매우 의의가 있는 일입니다.
11. 왕생과 상서로운 모습
질문: 임종 시 한 번 부처님 명호를 불러서 왕생하려면, 반드시 어떠한 조건들을 갖추어야 합니까?
답변: 옛날 대덕들께서 이 점에 대해 분명하게 강설하셨습니다. 임종 시 한 번 부처님 명호를 불러서 왕생하려면 최소한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는 임종할 때 의식이 분명하고 맑으며,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임종 시에 미혹되면 염불할 수가 없으며, 게다가 누군가가 일깨워주어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둘째는 절박하고 중요한 이 순간에 선지식이 일깨워줌을 만나,「빨리 아미타불을 불러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고, 모든 인연을 내려놓을」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셋째는 누군가가 일깨워주면 그 즉시 받아들여 생각을 바로 바꾸어 사바세계에 대해 다시는 조금의 미련도 가지지 않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해야 합니다.
세심하게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이 세 가지 조건 중에 한 가지도 꽉 잡지 못하였다면, 어디에 이처럼 때 마침 운 좋은 일이 있어서 임종할 때 이 세 가지 조건을 전부 다 갖출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사람은 그야말로 너무나도 흔치 않고 너무나도 흔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되며, 평소에 염불을 하여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평소에는 훈련하는 것이고, 임종 시는 바로 싸우는 것입니다.
평소에 염불하는 목적은 바로 임종 시에 어느 한 생각도 미혹되지 않고, 전도(顚倒)되지 않고, 잃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며,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이 길을 가고자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평소에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도 다 내려놓아야 하며, 마음에다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 세간은 일체를 다 인연을 따르며(隨緣), 「한번 물을 마시고 한 번 밥을 먹는 이러한 작은 일도 전생의 인연으로 인해 결정되지 아니한 것이 없다.(一飮一啄, 莫非前定)」는 것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믿어야 합니다. 운명 속에 있는 것이라면 틀림없이 있으며, 운명 속에 없는 것이라면, 구하여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을 믿으면 마음이 곧 안정됩니다.
질문: 생전에 살생하는 업을 지었어도 임종할 때 부처님 명호를 한 번 부르고 열 번 부르면 왕생할 수 있습니까? 왕생하려면 어떠한 조건이 필요합니까?
답변: 당(唐)나라 때 장선화(張善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소를 죽이는 백정이었습니다. 그가 임종할 때 지옥의 형상이 앞에 나타났는데, 소 머리의 형상을 한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자, 그는 몹시 두려워 살려달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때 마침 공교롭게도 어떤 한 출가자가 그의 집 문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가 그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 그의 집에 들어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가「많은 소들이 몰려와서 나에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합니다.」하고 소리쳐 말하였습니다.
이 출가자는 곧 향을 불에 붙여서 그에게 주면서 말하였습니다. 「어서 빨리 아미타불을 불러서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시오.」그가 이 말을 들은 후에 그 자리에서 바로 큰 소리로 아미타불을 불렀습니다. 그는 열 몇 번 아미타불을 부르고 나서는 말하길, 「소 머리를 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저를 인도(接引)하러 오셨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임종할 때 아미타불을 한 번 부르고 열 번 불러 왕생하였으며, 그는 48원(願) 중의 열여덟 번째의 원(願)이 사실임을 증명하였습니다.
장선화의 예는 우리의 신심을 증장시킬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설사 지극한 무거운 죄업을 지었을지라도, 단지 기꺼이 마음을 돌려 업장을 참회하여야 하며,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바로 피안(彼岸)이며, 또한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혹 장선화가 임종할 때 왕생할 수 있었다고 해서 지금은 좀 더 많은 죄업을 지어도 상관없으며, 임종할 때 다시 장선화를 본받으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만약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장선화는 임종할 때 왕생하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었지만, 자신들이 임종할 때 확실하게 이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을지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첫째는 임종할 때 의식이 혼침하지 않고 머리가 맑아야 합니다. 병이 위중한 사람이나 곧 세상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머리가 여전히 그렇게 맑고 분명할 수 있는지 자세히 관찰해보십시오. 이것은 매우 드물고 만나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둘째는 임종 시에 선지식이 일깨우면서「무엇이든 남김없이 전부 다 내려놓고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불러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십시오.」라고 해주는 말을 만나는 것입니다.
만약 임종할 때 마음속으로 여전히 가족과 친척들을 염려하고, 아직 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걱정한다면, 삼도육도(三途六道)에 갈 수 있습니다. 셋째는 누군가가 일깨워주는 말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믿으며, 조금도 의심이 없이 즉시 가르침에 따라 봉행(奉行)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출 수 있다면, 임종할 때 한 번 부르고 열 번 부르면 틀림없이 왕생합니다.
질문: 악업을 지은 사람이라도 참회하고 염불하면 왕생할 수 있습니까?
답변: 설사 다섯 가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는 죄업, 즉 부친을 살해하고, 모친을 살해하고, 아라한을 살해하고, 부처님의 몸에 피가 나게 하고, 화합하는 승단을 깨트리는 죄업을 지었을지라도, 임종할 대 만약 의식이 맑고 분명하여 참회하고 염불할 수 있으면, 역시 왕생할 수 있습니다. 《관무량수경》에서 말하길, 아사세왕이 다섯 가지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죄를 지었으나, 임종할 때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염불하여 왕생하였으며, 게다가 왕생한 품위(品位) 또한 상등중생(上等中生)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업을 지은 사람에 대해 절대로 얕보아서는 안 되며, 그가 참회한 후에 왕생하는 품위가 우리들보다 더 높을 수도 있습니다. 죄업을 지은 사람이라도 단지 임종할 때 아직 끊어지지 않은 한 번의 호흡이 있기만 하면 모두 구할 수 있으며, 그가 진정으로 참회하여 염불하여 왕생을 구할 것을 발원하도록 권할 수 있다면 제도될 수 없는 사람이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일생동안 작고 작은 악업들을 지어서「마땅히 악취(惡趣)에 떨어질지는 자(合墮惡趣者)」즉, 축생에 떨어지고, 아귀에 떨어지고, 작은 지옥에 떨어지는데, 이러한 죄업을 지은 사람일지라도 선을 닦으면「곧 바로 악취에서 벗어납니다.(尋卽解脫)」심(尋)은 매우 짧은 시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명호를 듣는 공덕은 불가사의합니다.
질문: 현재 죄를 지었지만, 임종 시 마지막 한 호흡일 때에 염불하면 업을 가지고 왕생할 수 있습니까?
답변: 《무량수경》제18품(品)에 보면, 임종할 때 한 번 부르고 열 번 부르면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고 강설하고 있으며, 이 말은 정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잘못 이해하고서 지금 염불하지 않는 것은 그다지 중요치 않으며, 임종할 때 그 때 가서 다시 염불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잔꾀로 잇속을 챙기고자 하는 마음을 쓰는 사람이 분명히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렇게 할 경우 임종할 때에 이르러 진정으로 염불을 꽉 잡을 수 있겠습니까?
조사와 대덕들께서 업을 가지고 왕생한다고 하신 말씀은 예전에 지은 업을 가지고 가는 것이지, 새로 지은 업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업을 가지고 가는 것이지, 눈앞의 업을 가지고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점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현전(現前)에 여전히 업을 짓는다면, 어떻게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지금은 좀 더 업을 많이 지어도 괜찮으며, 임종할 때에 가서 그때 다시 최후의 한 생각을 잘 보호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론상으로 말하면 이러한 것이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행하기기 매우 어렵습니다.
임종할 때 자신의 머리가 맑고 깨끗하다고 어느 누가 감히 자신할 수 있겠으며, 또 마지막 한 번의 호흡이 아미타불을 부를 것이라 보증할 수 있겠으며, 또한 임종할 그 때에 가서 진정으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왕생하는 그 찰나에 만약 이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에 의해 번뇌가 확실하게 제어되어 일어나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때에 바로 부처님과 감응도교(感應道交)하여 부처님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시겠지만, 그러나 만약 번뇌가 여전히 일어나 나타나 움직인다면, 부처님께서는 자신 앞에 나타나실 수 없으며, 원수와 빚쟁이가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질문: 어째서 오역(五逆)과 십악(十惡)을 지은 사람이 열 번 염불하면 업을 가지고 정토에 왕생하여 하하품(下下品)에 거하며, 모두가 삼불퇴(三不退)를 얻는다고 말합니까? 임종할 때 열 번 부르고 한 번 불러 업을 가지고 왕생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은 어떤 것에 근거하여 지침을 삼는지를 법사님께서 가르쳐주시기를 청합니다.
답변: 이 이치는 매우 깊으며, 눈에 보이는 현상(事)은 불가사의한 경계가 있으므로, 마땅히 깊이 믿고서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임종 시에 장선화와 같은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나, 《관무량수불경》에서 말한 아사세왕은 오역죄(五逆罪)와 십악죄(十惡罪)를 지었지만, 모두가 열 번 염불하여 왕생하였습니다. 이는 참회하여 왕생한 예에 속합니다. 진심으로 참회하되, 참회하는 힘이 크면 클수록 품위는 더욱 높아지며, 반드시 하하품(下下品)으로 왕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아사세왕이 왕생한 품위는 상품중생(上品中生)이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악업을 지은 사람을 경시해서는 안 되며, 어쩌면 그의 선근(善根)이 나타나 임종할 때 한 번 부르면 왕생하며, 그 사람의 공부가 우리가 일생에 수행한 공부보다 더욱 높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48원의 제18원에 근거한 것이며,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의 가피이기 때문에 성취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질문: 87세의 간암말기인 한 노인께서 이전에는 염불한 적이 없었으나 그 노인은 임종할 때 고통이 없었고, 의식이 맑고 또렷하였습니다. 임종하기 약 2시간 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조념하는 연우(蓮友)를 따라 아미타불 명호를 불렀으며, 마지막 아미타불의 불(佛)자를 부르면서 마지막 한 호흡을 삼켰습니다. 기색과 자태가 인자하였는데, 노인께서 극락세계에 왕생하신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까? 만약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않았다면, 어느 곳에 왕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답변: 이러한 상서로운 모습은 좋은 것입니다. 그 노인의 연분은 좋아서 마지막에 한 번 불렀는데, 그 부른 것이 아미타불입니다. 만약 노인께서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구하는 마음이 있으셨다면, 조금도 의심할 여지없이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을 따라 염불하였으나 극락세계에 왕생을 구하는 마음과 원이 없었다면, 왕생할 수 없기 때문에, 노인의 원(願)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단지 부처님을 부르는 마음과 원(願)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 극락세계에 왕생을 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천상에 태어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전히 항상 인간세상에서의 부귀를 생각하고 있었다면 인도(人道)로 갔으며, 절대로 삼악도에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기연(機緣)은 매우 얻기 어려운 일이며, 이는 임종할 때 만난 인연이 수승한 것입니다.
질문: 만약 임종할 때의 한 생각이 염불하면서 여전히 망상을 한다면, 왕생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답변: 이는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임종할 때에는 절대로 망상이 있어서는 안 되며, 망상이 있으면 어긋나게 되며, 특히 성내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임종할 때, 그를 성내게 해서는 안 되며, 왜냐하면 그때의 신식(神識)이 한창 몸을 떠나려고 할 때에 대단히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때 그의 몸을 부딪치기라도 하면 그는 대단히 고통스럽게 느낄 수 있고, 또 성내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성내는 마음이 한 번 일어나면 악도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는 매우 두려워할만한 일입니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이 도리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임종할 때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대성통곡하여 헤어지기 어렵게 하여 그로 하여금 혈육 간의 정에 대한 미련을 일어나게 하여 그의 일생의 공부를 완전히 다 무너뜨려 그가 왕생할 수 없도록 해를 끼칩니다.
질문: 왕생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는 반드시 마지막 한 생각이 부처님 명호를 부르느냐 부르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마지막 한 생각이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것이라 보장합니까?
답변: 왕생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반드시 마지막 한 생각이 아미타불을 부르느냐 부르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지막 한 생각이 아미타불을 부른다면 이 사람은 틀림없이 왕생하게 되며, 이 한 생각은 평소의 배양에 의지해야만 임종할 때 비로소 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대체로 왕생하는 사람은 큰 선(大善)과 큰 복(大福)이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선과 복이 있어야만 비로소 왕생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생각이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큰 선이고 큰 복의 과보이며, 그는 극락세계에 가서 부처가 될 것입니다.
어떻게 마지막 한 생각이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을 보장합니까? 우리는 염불당에서 밤낮으로 염불을 하는데, 염불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는 훈련하고, 연습하여 임종할 때 쓸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실들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임종할 때 병이 들거나 혼미하여 인사불성일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이 가장 위험한 중요한 순간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조념을 해도 그를 도와줄 수 없으므로, 복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복은 평소에 닦아 쌓아야 하며, 덕을 쌓고 공을 쌓아야 합니다. 덕을 쌓는 것은 바로 좋은 마음을 지니는 것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이 모두 중생에게 이익 되게 하고, 사회에 이익 되게 하는 것입니다. 공을 쌓는 것은 바로 좋은 일을 행하고, 좋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네 가지 좋은 것(四好)을 제창합니다. 성실하게 힘써 일하여 중생을 위하고, 자신을 위하지 않으며, 역량이 있으면 마음과 힘을 다해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무엇을 구합니까? 어느 것도 구하지 않으며, 단지 임종할 때 맑고 분명하고 또렷하여 의식이 뒤바뀌지 않고, 미혹되지 않기를 구할 뿐입니다. 이것은 큰 복의 과보입니다.
왜냐하면 정신이 매우 맑고 분명하면 스스로가 십법계(十法界)를 선택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미혹되고 뒤바뀌어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면 선택할 능력이 없어서 반드시 업력에 끌려가 윤회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을 복의 과보가 없다고 말합니다. 살아있을 때,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복의 과보를 다 누려 다 없어지게 되면, 세상을 떠날 때에 복의 과보가 없습니다. 이러한 도리를 분명하게 알고, 사실의 진상(眞相)을 명확하게 안다면, 반드시 큰 성인과 큰 현인을 본받아야 하며, 생활은 검소하고 절약하고 소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쌓아 축적한 복의 과보는 임종할 때 그때에 누려야 합니다.
질문: 마지막 한 번의 호흡이라 말하는 것은 바로 숨이 끊어지는 그 찰나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아니면 신식(神識)이 사람의 몸을 떠나는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답변: 숨이 끊어지는 그 찰나를 가리키는 말이며, 이때에는 숨은 비록 끊어졌지만, 신식(神識)은 아직 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숨이 끊어진 후 8시간이 되어야 신식이 비로소 몸을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조념하는 시간은 가장 좋은 것은 두 시간이나 네 시간을 더 연장하여 10시간, 12시간, 혹은 14시간까지 염불할 수 있는 것이며, 그렇게 하면 매우 안전한 것입니다.
질문: 임종할 때 마지막 한 생각은 아미타불이면 곧 바로 왕생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가리키는 것은 임종할 때의 마지막 한 호흡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신식이 몸을 떠날 때의 마지막 한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까?
답변; 신식(神識)이 몸을 떠날 때의 마지막 한 생각이 참된 생각이었다면, 당연히 마지막 한 호흡 또한 아미타불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충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 어떻게 염불을 하거나를 막론하고, 망상이 여전히 있습니다. 이렇게 염불해도 임종할 때가 되어 누군가가 조념해주고 부처님 명호를 일깨워줄 수 있으면, 왕생할 수 있습니까?
답변: 왕생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반드시 자신의 신심(信心)에 달려 있습니다. 염불하면서 여전히 망념이 일어난다면,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염불하면서 만약 망념이 없다면, 그런 사람은 불보살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며, 일반 범부는 절대로 망년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망념이 설사 일어날지라도 부처님 명호를 성실하게 부르기만 하면 괜찮습니다. 오로지 부처님 명호에 온 정신을 쏟을 뿐이고, 망념에는 신경 쓰지 않으면 됩니다.
일반 사람들의 경우, 염불한 공부가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은 망념을 내려놓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항상 「나의 망념이 이렇게나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하면할수록 망념은 더욱 많아지고, 망념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망념을 더욱 많아지는데, 망념을 어떻게 끊을 수 있겠습니까? 망념이 일어나도 상관하지 않으면 망념은 갈수록 차츰차츰 줄어들 수 있으며, 공부가 자연히 힘을 얻게 되며,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로지 성실하게 염불하기만 하면, 반드시 아미타불의 본원의 위신력의 가피를 받습니다.
질문: 어떻게 왕생하였는지 왕생하지 못하였는지를 인증(印證)합니까? 조념과 관련된 서적들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에 근거하면, 숨이 끊어진 후 12시간이 되었을 때 정수리를 만져서 따뜻한 기운이 있으면 서방에 왕생하는 것이라 하는데, 이 점에 대해 설명해주시기를 청합니다.
답변: 정수리가 뜨거운 것은 사람이 갈 때, 그의 신식(神識)이 정수리로부터 나가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가장 수승한 것입니다. 천상(天上)의 복의 과보는 대단히 크기 때문에, 그래서 왕생할 때 또한 정수리로부터 나갑니다. 일반적으로 모두 무릎으로부터 나가면 바로 아귀도에 간 것이고, 발바닥으로부터 나가면 바로 지옥에 간 것이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육도(六道)에 환생하는 것이 더욱 낮아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것은 망자의 몸을 만져보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식이 떠나지 않았을 때 만지게 되면 망자가 고통스러울 수 있고, 참기 어려워할 수 있으며, 성내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왕생한 많은 사람들은 조념한 후에 모습이 아주 자상한 모습으로 변하며, 얼굴색이 불그스레하고 윤기가 흘러 병든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변합니다. 이러한 변화로부터 본다면, 이는 모두 좋은 모습이며, 이는 인간세상과 천상의 과보 이상인 것이 분명합니다.
진정으로 왕생하였는지 왕생하지 않았는지는 평소에 수행한 공부와 이 세상을 떠날 때의 서상(瑞相)이 상응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설사 화장(火葬)한 후에 사리가 남아있을 지라도, 이것으로 왕생하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임종할 때 곁에 있는 사람에게 「부처님께서 나를 인도(接引)하러 오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진짜 왕생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수행한 공부가 더 훌륭한 사람들이라면, 임종하기 며칠 전에 이미「3일 후에 부처님께서 나를 인도하러 오실 것이다.」혹은「일주일 후에 부처님께서 나를 인도하러 오실 것이다.」는 것을 알며, 이렇다면 틀림없이 왕생합니다.
왕생하는 조건은 다른 것이 없으며, 바로 한 마음 한 뜻으로 극락세계에 가기를 원하는 것이며, 아미타불을 친근하기를 원하고, 세간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전부 다 내려놓고서 다시는 마음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틀림없이 왕생합니다. 왕생하고자 하면서 내려놓지 못한다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버리고자 하면 완전히 깨끗하게 버려야 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순정(純淨)과 순선(純善)을 제창하였습니다. 순정(純淨)하고 순선(純善)한 생활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모두 인연을 따르고, 절대로 반연(攀緣)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어떻고 어떻다는 이러한 생각을 하면, 반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연(隨緣)은 어느 것이나 다 좋으며, 좋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어서 늘 기뻐하며, 마음속에 오로지 아미타불만이 계실 뿐이고, 오로지 서방극락세계의 의정(依正)장엄만이 있을 뿐이며, 기타 나머지 어떤 것도 마음에 놓지 않는 것입니다.
경전을 만약 완전히 익숙할 정도로 독송하였다면, 항상 서방의 극락세계의 경계를 관상(觀想)해야 합니다. 그러나 관상(觀想)할 수 없으면, 오로지 아미타불만을 부르고, 오로지 아미타불만을 생각하여 마음속에 아미타불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없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만 사람이 염불 수행을 하면 만 사람이 다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으며, 어디에 왕생하지 못할 도리가 있겠습니까!
질문: 어떻게 임종한 사람이 틀림없이 왕생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까?
답변: 가장 확실한 것은 그가 스스로 「아미타 부처님께서 오셨습니다. 서방의 세 분의 보살님들이 오셨습니다. 저를 인도(接引)하러 오셔서 저는 지금 그분들을 따라 갈 것입니다.」라고 말을 하고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조금도 거짓이 아니며 진정으로 왕생한 것입니다. 이것은 업장이 소멸되어서 갈 때 의식이 맑고 분명하고 또렷또렷하여 조금의 고통도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갈 때에 의식이 아주 맑고 분명하지만, 몸이 허약하여 입 밖으로 말을 나오게 할 수 없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도와 조념을 해주며, 그가 갈 때에 비록 말을 해도 소리가 나오지 않지만 입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였지만, 그는 따라서 함께 염불하고 있었던 것이며, 그는 진실로 부처님을 보았고, 또한 부처님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셨으니, 부처님을 따라 가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가는 그 순간에 매우 기뻐하고, 그의 모습은 편안하고 인자하고 자재합니다. 만약 갈 때에 모습이 몹시 슬프고 고통스럽다면,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왕생할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다.
질문: 평소에 아미타불을 불렀는데, 임종할 때 다른 부처님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셨을 경우, 그 부처님들을 따라서 가야 합니까?
답변: 평소에 아미타불을 불렀다면, 임종할 때 틀림없이 아미타불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십니다. 그러나 만약 석가모니불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시거나 약사불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셨다면, 이것은 정상이 아니며, 진짜가 절대로 아닙니다. 만약에 이러한 상황을 만나다면, 전혀 상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잠시 후에 이러한 모습은 곧 없어지며, 반드시 아미타불께서 오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왕생을 보낼 때, 왕생하는 사람이 「아미타불께서 오셨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짜이며 조금도 거짓이 아니니, 이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조념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왕생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대로 잡념이 있게 하거나 환상이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경계를 만나거나, 혹은 어떠한 소리를 들어도 모두 전혀 아랑곳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설사 지장보살을 만나고, 약사불을 만날지라도, 오직 아미타불이 아니면, 그를 일깨워서 전혀 상관하지 말고서 계속해서 아미타불을 부르게 하며, 아미타불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시면 그때 비로소 아미타불을 따라 가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사한 마귀나 온갖 사악한 무리들이 다른 불보살로 변하여 나타나서 그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변하여 나타난 불보살은 모두가 불보살의 이름을 도용(盜用)한 것이며, 본존(本尊)이 아닙니다. 호법신은 이들이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을 허용할 수는 있지만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로 변하였다면, 그것은 본존(本尊)이며, 호법신은 간섭할 수 있기 때문에,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로는 감히 변하지 못합니다.
염불하는 많은 사람들이 평생 동안 염불을 하고서 임종하는 그 중요한 순간이 되어서 오히려 미혹되어 실수를 한다면, 이는 참으로 너무나도 애석한 일입니다. 이러한 마경(魔境)이나 마장(魔障)은 모두가 자신의 업력이 변해 나타난 허환(虛幻)한 경계입니다. 이때에는 오직 아미타불만을 보고, 서방의 세 분의 보살님만을 보고, 서방의 극락세계의 의정장엄(依正莊嚴)만을 보아야 상응한 것이며, 바른 생각(正念)인 것입니다.
질문: 아미타불은 고정된 형상이 없는데, 임종할 때 나타나는 아미타불의 형상은 진짜입니까 아니면 가짜입니까? 혹 원수나 빚쟁이가 변화하여 나타난 것과 어떻게 구별해야 합니까? 특히 임종할 때 의식이 아주 분명하고 또렷하지 않는 상태에서 응당 어떻게 구별해야 합니까?
답변: 이는 분명히 구별해야 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그러나 마음을 푹 놓아도 됩니다. 임종할 때 부처님께서 나타내신 형상은 반드시 알아야 하며, 절대로 잘못 알아서는 안 됩니다. 염불하는 사람, 더 나아가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임종할 때 부처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은 본존입입니다. 매일 아미타불을 부르면 아미타불께서 오시며, 절대로 틀릴 수가 없습니다.
불법에는 하나의 규칙이 있는데, 본존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만약 온갖 사악한 짓을 하는 요괴나 원수나 빚쟁이들이 부처의 본존으로 변화하여 나타나 우리를 속인다면, 호법신이 그를 용서할 리가 없습니다. 만약 나타난 형상이 석가모니불이라면 호법신은 간섭할 수가 없으며, 그 이유는 본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석가모니불을 따라서 간다면, 그것은 자신의 잘못입니다. 염불하는 사람은 임종할 때 만약 아미타불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신 것이 아니면, 어떠한 불보살이 앞에 나타나더라도 상관하지 않으면 아무 일이 없습니다.
질문: 아미타불께서 왕생하는 사람을 인도(接引)하실 때, 먼저 광명을 놓으시는데, 이때 왕생하는 사람이 부처님의 광명이 비쳐주심을 입어 공부(功夫)가 한 덩어리가 되었던(成片) 경지에서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까지 향상됩니다. 그러나 아미타불의 상호(相好)는 장엄하여 같은 것이 없는데, 아미타불을 보고서 어찌 깨닫지 못할까 걱정하겠습니까? 그런데 무엇 때문에 어떤 사람은 아미타불을 보고서 무서워하며 감히 가지 않습니까? 또 무엇 때문에 아미타불을 보았어도 이익을 얻지 못합니까?
답변: 여기에는 두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세간에 미련이 많아 생존에 연연하여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극락세계에 왕생하라는 말을 들으면 자신이 얼마 안 있어 곧 죽는 것이라 생각하여, 임종할 때 두려움을 냅니다. 이러한 상황은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염불하는 사람은 절대로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출가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실제로 이러한 상황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대북(臺北) 원산(圓山) 임제사(臨濟寺)에는 염불회(念佛會)가 있었습니다.
그때 부회장을 맡은 임(林)거사가 유나(維那: 절의 사무를 맡아 지휘하는 소임)를 맡아서 항상 대중을 이끌고 염불하며 함께 닦았습니다. 그는 임종할 때 두려운 마음을 일으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 조념해주는 것을 반대하면서 조념하는 동수(同修)를 내쫓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업장이 앞에 나타난 것이며, 그는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신 기회를 놓쳤습니다.
또 다른 한 부류는 다른 법문을 수학(修學)한 사람들로, 그들이 본 아미타불은 진짜가 아니고, 마(魔)가 나타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대단히 자비하신 분이시지만 마(魔)는 자비심이 없기 때문에, 마(魔)가 아미타불로 변해 나타낸 보인 진짜가 아닌 아미타불을 보면 두려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질문: 왕생한 후에 매우 좋은 상서로운 모습이 있으면, 왕생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답변: 반드시 왕생하였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상서로운 모습(瑞相) 중에는 오직 그가 스스로 아미타불이 오셨고, 아미타불을 보았고, 아미타불께서 나를 인도(接引)하러 오셨다는 말을 해야만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왕생한 것입니다. 만약 조념하는 기간 동안에 한 번도 「부처님께서 오셨다.」 「부처님을 보았다.」 「관세음보살을 보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으면 왕생하였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는 절대로 삼악도(三惡道)에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내생에 인간세상이나 천상의 복의 과보를 누리는 사람 역시 상서로운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체로 좋은 모습이 있으면 절대로 악도에는 떨어지지 않으며, 악도에 떨어지는 사람의 모습은 좋지 않습니다.
질문: 조념하는 중에 간혹 어떤 사람은 망자가 연꽃 위에 왕생하는 것을 봅니다. 이렇다면 진정으로 극락세계에 왕생하였다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답변: 왕생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왕생하는 사람이 아직 숨이 끊어지지 전에 곁에 있는 사람에게「부처님께서 나를 인도(接引)하러 오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로 100% 왕생한 것이며, 조금도 틀릴 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러한 말들은 없었지만, 그러나 상서로운 모습을 보았다면 역시 왕생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가 부처님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셨다고 말하려고 하였지만, 이미 숨이 끊어졌거나 혹은 몸의 힘이 없어서 말하지 못한 것으로, 이러한 상황은 늘 있습니다.
질문: 어떤 한 동수(同修)가 건강이 좋지 않고, 병약하여 병에 자주 걸립니다. 그는 불법을 만난 후에 부처님의 명호를 꽉 붙잡고서 염불하여(持名念佛)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구하라는 가르침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병이 위중하여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임종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 염불하여 극락에 왕생하기를 구하겠다는 뜻을 굳히어 치료를 중단하고서 일심으로 염불하였으며, 그 뿐만 아니라 몇 명의 동수(同修)들이 그를 도와 조념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혼미해지기 전까지 끊임없이 계속해서 염불하였으며, 조념 역시 계속 지속되었습니다.
그는 정신이 혼미해진 후 여덟 시간이 되어서야 명을 마쳤습니다. 12시간 후에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혔는데, 그의 몸이 부드러웠습니다. 명을 마치고 20시간이 되었을 때 영안실로 보냈으며, 그 후에도 계속해서 3일 낮 3일 밤 조념을 한 후에 화장하였습니다. 화장한 다음 날 새벽 2시가 좀 넘어서 그의 가족이 별안간 잠에서 깨어나서 집안 안팎에 붉은 빛이 떠서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20 여 초 정도 있다가 비로소 사라졌습니다. 이 붉은 빛이 나타나는 것은 그가 이미 부처님의 인도를 받아 극락세계에 왕성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까?
답변: 이것은 분명히 상서로운 모습입니다. 그가 염불에 확고한 신심이 있었으면 반드시 정토에 왕생할 수 있으며, 이는 《무량수경》48원 가운데에 설명이 있습니다. 왕생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마지막 한 생각에 달려 있으며, 마지막 한 생각이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한다면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임종할 때 조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를 도와주고 그를 일깨워주어서 그로 하여금 의식이 혼미하지 않도록 하며, 그의 극락왕생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무량하고 무변한 공덕입니다.
한 사람을 왕생하도록 보내는 것은 바로 한 사람이 부처가 되도록 돕는 것이니, 그 공덕이 매우 큽니다. 그의 상서로운 모습은 대단히 좋은 현상이며, 그의 온몸이 부드러웠다는 것은 그가 갈 때 매우 편안하였으며, 고통이 없고 공포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임종할 때 두려워하고, 생존에 대해 지나치게 연연하여 죽음을 두려워하면 몸은 딱딱하게 굳습니다. 그러나 만약 갈 때 매우 자재하고 조금의 공포도 없었다면 몸은 부드럽게 되며, 이처럼 나타나는 현상으로부터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질문: 최근 한 달 동안에 연속해서 두 명의 동수(同修)가 숨이 끊어지기 전에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보았으며, 게다가 자신들이 이미 수행하여 공을 이루었고, 마음이 전도(顚倒)되지 않고,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병으로 고통스런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숨이 끊어진 후 10시간 조념을 하고 난 다음에 보니, 얼굴색이 편안하였고, 온몸이 부드러웠고, 정수리가 따뜻하였습니다. 그가 반드시 서방에 왕생하였다고 확정할 수 있습니까?
답변: 만약 이러한 상서로운 모습(瑞相)이 진실하다면, 서방에 왕생하였다고 확정할 수 있습니다. 그가 스스로 임종할 때 부처님을 보았으며, 부처님을 따라 간다고 말하였다면, 이것은 확실히 왕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부처님을 보았고, 보살을 보았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비록 몸이 유연하고 정수리가 뜨거워지는 상서로운 모습이 있었을지라도, 반드시 왕생하였다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상에 태어날 경우에도 이러한 현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떠난 후에 온 몸이 유연하였다면, 그는 떠날 때 공포가 없었고, 매우 편안하였으며, 절대로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긍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 아래의 염불방식으로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지 없는지를 가르쳐주시기를 청합니다. 염불할 때 혼침한 상태에 있지만, 그러나 마음은 불타에 의지하고, 마음속으로 염불기(念佛機)를 따라 부처님 명호를 속으로 분명하게 부르면 왕생할 수 있습니까?
답변: 지금 질문한 이 말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혼침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한다면 마음은 당연히 미혹한데, 어떻게 마음으로 미타에게 의지할 수 있으며, 어떻게 부처님 명호를 따라서 염불할 수 있겠습니까? 몸이 매우 쇠약하고 호흡이 매우 미약한 상태에 있지만, 그러나 머리는 매우 맑아 부처님 명호를 따라 염불할 수 있고, 마음속에는 여전히 부처님이 계시어 정신이 분명하고 또렷하다면, 이러한 경우에도 왕생할 수 있느냐고 물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머리는 맑지 않고 미혹되어, 임종할 때 가족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혼침(昏沈)이라 말하며, 마음속에 여전히 번뇌가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설사 누군가가 그를 위해 조념을 해줄지라도 염불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또한 혼침(昏沈)이라 말합니다. 혼침하면 왕생할 수 없습니다.
질문: 사리(舍利)란 무엇입니까? 사람이 죽은 후에 불에 태워서 사리가 나왔다면, 그가 극락에 왕생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해야 왕생했다는 것을 판별할 수 있습니까?
답변: 사리(舍利)는 범어(梵語)이며, 중국어로 번역하며 견고자(堅固子)입니다. 사리는 일종의 감응(感應)이며, 대체로 정공(定功: 선정의 공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염불하는 사람을 놓고 말한다면, 청정한 마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마음이 청정하면 할수록 정력(定力: 선정의 힘)은 더욱 깊어지며, 사리는 정력(定力: 선정의 힘)이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욱 좋습니다. 그렇지만 불에 태워 사리가 나오는 것은 왕생과는 관계가 없으며, 왕생하였다고 증명할 수 없습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왕생할 때에 부처님을 보고, 서방의 세 분의 보살을 인도하러 오신 것을 보고, 그가 스스로 「부처님께서 나를 인도하러 오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신빙성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생은 일생의 품행(品行)과 도의(道義), 그리고 평소에 수행한 공부와 상응합니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왕생한 것이며, 이것은 진정으로 왕생하였다는 증명입니다. 혹 다른 사람이 무엇을 보았다고 하는 다른 것들은 전부 다 믿을 수 없습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말법시기에는 괴이한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사리(舍利) 또한 모조하여 사리라고 사칭할 수 있으며, 육신(肉身)조차도 모조하여 사칭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는 모두 진짜가 아닙니다. 만약 사리가 보기에는 매우 아름답지만 손으로 한번 힘껏 눌러서 부서진다면 그것은 진짜 사리가 아닙니다. 진짜 사리는 쇠망치로 두드려도 부수어지지 않습니다. 지금의 많은 사리들은 대부분 실험을 거치지 않은 것들입니다. 실험을 거친다면 가짜인 것들이 너무나도 많으며, 진짜 사리는 정말로 희유(希有)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마(魔)가 와서 어지럽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리를 좋아하니까, 마(魔)가 이 기회를 틈타 속임수를 써서 물건들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게 하고, 사람들을 미혹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성적으로 대해야 하며, 감정으로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수행자의 절대다수는 자신의 사리를 남기기를 원하지 않으며, 또 자신의 육신을 남겨 사람들에게 기념으로 삼게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리가 있고 없고는 왕생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질문: 어떤 사람이 숨이 끊어진 후에 빈의관(殯儀館: 喪事를 대신 맡아 해주는 기관)에 보내서 냉동시킨 후, 조념단(助念團)이 하루 낮과 밤 동안 조념을 한 다음에 화장을 하였는데, 그에게서 60알이 넘는 사리가 나왔습니다. 망자는 생전에 불법을 접한 적이 없는데, 무슨 이유로 이렇게 수승할 수 있는 것입니까?
답변: 여기에는 두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하나의 경우는 진짜인 것입니다. 설사 이번 생에 비록 불법을 접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과거 생에 정토를 수행한 바탕이 대단히 두텁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김선일(金善日)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과거 생에 수행한 기초가 매우 심후(深厚)한 사람입니다. 과거의 인(因)이 깊을 경우, 연(緣)을 만나면 곧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이번 생에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생 동안 불법을 만나지도 않았고 염불을 알지도 못하지만, 임종할 때 가족이 염불하는 사람을 청해 그를 위해 조념해주면, 이 연(緣)이 성숙한 것이며, 이렇게 하여도 또한 사리가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는 가짜인 것입니다. 손바닥에 사리를 놓고서 시험할 때, 만약 손을 꽉 쥐자마자 사리가 부수어진다면 이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만약 진짜 사리라면 쇠망치로 부수어도 문드러지지 않습니다.
담허(倓虛)법사가 홍콩에서 왕생하셨을 때, 외국인이 그의 사리를 보고서 매우 희귀하게 여겨져서 그의 사리를 가져다가 실험을 하였습니다. 쇠망치로 두드렸으나, 사리는 매우 견고하여 말 그대로 문드러지지 않았으며, 쇠망치가 도리어 움푹 안으로 패여 들어갔습니다. 외국인은 이를 보고서 비로소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짜 사리인지 가까 사리인지는 손에 힘을 주어 한 번 꽉 움켜잡아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질문: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은 후 두 세 시간이 지나면 온몸이 굳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염불하는 사람은 죽은 후 며칠이 지나도 어떻게 온몸이 그대로 유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까?
답변: 사람이 죽으면 대체로 한 번 숨이 끊어지고 두 시간이 되면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집니다. 그러나 염불하는 사람이나 진정으로 수양(修養)을 한 사람이라면, 죽은 후 심지어 7일, 14일까지도 온몸이 여전히 부드럽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도리는 매우 간단하고 명료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임종할 때 만약 생명에 대해 지나치게 연연하여 죽음을 두려워하면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무서움과 두려움을 느끼면 온몸이 곧 바로 딱딱하게 굳어지는데, 바로 이러한 도리 때문입니다. 간 후에 온몸이 부드럽고, 또 갈 때 매우 편안하고, 매우 자재하여 조금의 공포도 없었다면, 그 사람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임종하려는 아주 중요한 그 순간에 만약 당황하고 놀라면, 힘든 골치 아픈 일이 더욱 커지게 됩니다. 임종하려는 이때는 육도(六道) 중에서 어느 도(道)로 가느냐 하는 실로 아주 중요한 순간입니다.
이미 왕생한 후 몇 시간이 되었는데, 몸이 딱딱하게 완전히 굳고, 얼굴은 몹시 고통스러웠고, 보기가 흉한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연(緣)이 수승(殊勝)하여 동참불우(同參佛友)가 그를 위해 조념해주었습니다. 7,8시간 혹 10 몇 시간 동안 염불하였는데, 딱딱하게 굳어 있던 그의 몸이 부드러워졌으며, 얼굴도 보기 좋은 모습으로 변하여, 조념한 효과가 매우 수승하였습니다. 이러한 광경은 망자를 보내고 조념을 해주는 많은 학불동참(學佛同參)들이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목격한 것이며, 조념은 진실로 영향이 있습니다.
물음: 망자가 생전에 반드시 염불을 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죽은 후 그를 도와 조념을 해주었으며, 조념을 한 후에 그의 몸이 매우 유연하였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그가 서방에 왕생하였는지, 아니면 천상에 태어났는지를 어떻게 판단합니까?
답변: 생전에 염불을 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임종할 때 그에게 염불할 것을 권해 그가 기꺼이 염불하였고, 또 매우 좋은 상서로운 모습이 있었다면, 왕생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생전에 염불도 하지 않았고, 임종할 때 또 기꺼이 염불하지도 않았으며, 서방에 왕생하는 것을 믿지도 않은 사람이라면, 그가 죽은 후에 그를 위해 몇 시간 동안 부처님 명호를 불러주고 나니, 그의 몸이 유연하였다면, 이는 그의 업장을 소멸시킨 것이며, 그가 왕생할 수 있는 지의 여부는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가 반드시 악도에는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물음: 지금까지 불법을 접한 적도 없고, 불법을 믿지도 않았으며, 심지어는 불법을 반대하였던 사람이 어떻게 조념한 후에 얼굴색이 좋게 변할 수 있고, 몸이 부드러워질 수 있는 것입니까?
답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우리 몸 전체가 다 물질이며, 물질에는 영지(靈知: 신령스럽게 아는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 명호의 가피를 받은 후에는 마치 물을 가지고 시험하여 나타난 결과와 마찬가지로 매 세포의 결정체가 모두 아름답게 변화합니다. 그래서 본래의 얼굴색은 보기가 힘들 정도로 흉한 모습이었지만, 두 세 시간 부처님 명호를 부른 후에는 보기 좋은 얼굴로 변하고, 용모가 마치 살아 있는 사람과 같게 됩니다.
비록 숨이 끊어졌어도 몸은 여전히 부드러운 것은 바로 이러한 도리이며, 이는 조금도 미신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몸이나 죽은 몸이나 모두 다 물질입니다. 물질의 세포, 분자, 원자, 전자, 입자는 모두 영지(靈知: 신령스럽게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과학자가 물과 밥을 가지고 시험을 해본 결과, 물과 밥은 들을 줄 알고, 볼 줄 알며,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부처님 명호는 가장 선한 마음의 감화이며, 부처님 명호는 응답이 있습니다.
이 응답한 결정(結晶)은 매우 아름답고, 매우 선(善)한 것은 바로 이러한 도리 때문입니다. 티베트 라마가 경전을 독송한 VCD를 가지고 물에게 들려주는 시험을 한 일이 있었는데, 두 세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물의 결정(結晶)을 보니 대단히 아름다웠습니다. 이는 경전을 독송한 감응이 반응하여 나온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임종 시의 조념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음: 말학(末學: 자신을 낮추어서 하는 말. 後學과 같음)이 일찍이 축생, 예를 들면 전갈과 작은 새들을 위해 조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참 동안 조념한 후에 그것들의 몸과 사지가 부드럽기가 실과 같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은 왕생한 상서로운 모습입니까?
답변: 온몸이 부드러운 것은 상서로운 모습이지만, 왕생하였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축생도(畜生道)에서 벗어나 선도(善道)에 태어난 것은 분명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질문: 어떤 사람은 임종하기 며칠 전에 처음으로 불법을 접하자마자 왕생할 수 있는데, 이는 무슨 인연입니까?
답변: 오래 전에 미국 워싱턴에 있을 때입니다. 어떤 한 제과점을 경영하는 주광대(周廣大)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는 종교는 없었지만 매우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심각한 암에 걸렸으며, 병원에서는 이미 치료를 포기하여서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그분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가족들은 부처님께 빌고, 신에게 묻고 하면서 가는 곳마다 절을 하였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분을 살릴 방법이 없음을 알고서 워싱턴에 있는 정종학회를 찾아왔습니다.
학회 안에 대단히 열심인 동학(同學)이 있었는데, 그가 주광대 선생을 만났을 때, 그분에게 몸에 대해 연연하지 말 것을 권하였고, 또 서방극락세계의 좋은 점들을 이야기하면서 일심으로 염불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그분은 정말로 인연이 있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서 그 자리에서 바로 그 동학의 말을 받아들였으며, 약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 다시는 어떠한 의사도 찾지 말라고 말하고는 전부들 와서 염불하여 자신을 도우라고 하였습니다. 정종학회에서도 몇 동학을 청하여 교대로 그를 도와 조념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매우 열심히 염불하였으며, 염불할 때에 고통이 없어졌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3일 있다가 왕생하였습니다. 그는 불법을 배우지도 않았고, 귀의도 하지 않았으며, 계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사실상 그는 한 번 발원하여 아미타불을 불러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아미타불에게 귀의하였습니다. 임종하기 3일 전에 불법을 들었으며, 3일 낮과 밤 동안 염불을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는 바로《무량수경》에서 강설하고 있는 「보리심을 내어 하나의 방향을 향해 오로지 염불하라.(發菩提心, 一向專念).」는 말에 계합됩니다.
이처럼 하나의 방향과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서 오로지 염불하였으며, 가족과 친척, 그리고 몇 분의 불우(佛友), 단지 이 열 몇 사람만이 염불하여 일을 성취하였으며, 이는 매우 좋은 예입니다.
짧은 시간에 불법을 접하여 성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그가 듣자마자 그 즉시 바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의심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과거 생에 이 법문을 닦은 적이 있었어도 그 생에서는 닦아 성취하지 못하였지만,
이번 생에 임종할 때 이 법문을 듣고서 숙세의 선근(善根)을 이끌어내어서 용맹 정진하고, 모든 인연을 다 내려놓고 조금의 미련도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매우 순조롭게 성취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희유(希有)하고 얻기 어려운 것은 일생 동안 불법을 믿지도 않았고, 죽어서도 불법을 믿지 않았는데, 죽은 후 중음신에 있을 때 불법을 듣고서 조념하는 사람을 따라서 염불하여도 왕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 머리가 맑지 않거나 혹은 임종할 때 인사불성(人事不省)이어도 왕생할 수 있습니까?
답변: 오늘날과 같은 이러한 사회에서 세상을 떠날 때 몇 사람이나 머리가 맑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왕생한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치매 증세가 있었습니다. 치매 증세가 있으면, 사실상 왕생은 불가능하며, 확실히 업을 따라 윤회합니다. 치매 증세는 어떻게 오는 것입니까? 의학에서 말하는 치매 증세가 오는 원인은 매우 많습니다. 현대인들이 말하는 우울증에는 근심이 있고, 걱정거리가 있어서 마음이 불안하고 공포가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치매 증세를 야기하는 주요한 원인입니다.
불법(佛法)의 입장에서 설명하자면, 치매 증세의 진정한 원인은 악업을 지은 것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정상적이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숨이 끊어지지 전에, 이미 인사불성이고, 가족과 친척들조차도 모두 알아보지 못하여서 조념을 해주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 나 자신도 늙을 수 있고, 죽을 수도 있으며, 죽을 때에 또 저 사람의 모습과 혹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질문: 현대는 노인치매증에 걸리거나 식물인간인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만약 이러한 사람들이 임종할 때, 그들을 위해 조념해주면 왕생할 수 있습니까?
답변: 이러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왕생할 수 없습니다. 왕생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는 바로 임종할 때 의식이 맑고 분명한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업에 따라 윤회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의식이 분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왕생할 수 있다고 한다면, 염불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아미타불께서 크게 자비심을 베풀어 사람들을 남김없이 전부 다 데리고 간다면 좋은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병을 업장병(業障病)이라 하며, 이러한 병을 얻으면 참으로 상당히 힘들며, 유일한 구제방법은 병의 증세가 가벼울 때 그에게 진정으로 참회하고 악을 끊고 선을 닦도록 권해야 그가 비로소 고개를 돌려 참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이 위중할 때 이미 치매 증세가 있으면, 권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며, 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해 공덕을 닦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반드시 광목 여인이나 바라문 여인처럼 그렇게 수행하여 과(果)를 증득할 수 있어야만 이러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발분(發憤)하고 노력하고 성실하게 수학(修學)하였으며, 그것은 바로 그러한 사람을 위해 닦은 것이기 때문에, 과(果)를 증득한 것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 도와준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사람들이 만약에 병에 걸리지 않았고 타락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는 수행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과를 증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만약에 이러한 공부가 없고, 그저 몇 권의 경전을 독송하고, 몇 번 부처님 명호를 불렀을 뿐이라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며, 스스로 자신을 안위할 뿐이고, 그들에 대해 효과가 생길 수 없습니다.
질문: 어떤 한 연로한 거사께서 왕생을 구하면서 21일 단식하고, 몇 십 명의 사람이 조념을 하다가 큰 연꽃을 보았는데, 밑 부분에 나온 뿌리가 땅과 연결되어 있어서 연꽃이 위로 올라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연로한 거사는 비록 아직 왕생하지는 않았지만, 예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지금은 오히려 대단히 건강하십니다. 몸을 바꾼다는 말(換體之說)이 있는 것입니까? 혹 만약 있다면 그 중의 도리는 무엇인지를 여쭙겠습니다.
답변: 그 거사께서 염불하신 공부는 틀림없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좋은 감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왕생할 수 없었다면,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세간의 인연을 다 끊지 못한 것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공부와 이러한 현상이 있고, 게다가 땅위에 연꽃이 생겼다면, 비록 왕생할 수는 없을지라도 내생에 틀림없이 악도에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연꽃이 땅을 떠나지 못한 것은 육도윤회를 떠나지 못함을 나타냅니다. 그러니 그 거사에게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또 다시 내려놓도록 권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왕생할 수 없습니다.
업을 가지고 가는 것은 숙업(宿業: 과거 생 중의 업)을 가지고 가는 것이며, 현재의 업을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업이 장애가 될 수 있으므로, 남김없이 전부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과거 생 중의 아뢰야식의 종자는 숙업(宿業)입니다. 비록 숙인(宿因)이 있을지라도, 전부 다 내려놓을 수 있고, 연(緣)이 다 끊어져 연(緣)이 없어 업이 장해가 되지 않으면,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 거사가 분명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곳이 있으며, 그래서 바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현재 그의 몸이 대단히 건강하다는 것은 몸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해도 역시 통하는 말입니다. 이는 일본의 강본승(姜本勝)박사의 물에 대한 실험을 보면 곧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몸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꺼이 바꾸려고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몸을 어떻게 바꿉니까? 그것은 바로 착한 마음(善心)과 자애로운 마음(愛心)입니다. 진실로 인자한 마음과 박애의 마음을 행하였다면, 몸의 각 세포들마다 모두 따라서 개선(改善)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속담에서 하고 있는 말이 매우 일리가 있는데,「사람이 기쁜 일을 만나면 마음이 상쾌하다(人逢喜事精神爽)」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경전에서 강설하고 있는 말과 강본승박사의 과학적 실험과 모두 상응합니다. 모습은 마음을 따라 바뀝니다(相隨心轉). 사랑하는 마음이 나타나면 당연히 기쁘고, 건강하고 장수하며, 체질을 바꾸면 용모 또한 변합니다. 근심은 사람을 늙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번뇌가 매우 많고, 망상이 매우 많으면 온몸의 세포의 결정(結晶)이 좋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러한 도리입니다.
질문: 조념할 때 상서로운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는 부처님께서 이 망자의 영혼(亡靈)을 거두어 받아들이지(攝受) 않은 것입니까?
답변: 부처님께서는 섭수(攝受)하고 섭수(攝受)하지 않음이 없으십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섭수하고 섭수하지 않음이 있으시다면, 부처님께서 분별이 있고 집착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는 이치에 닿지 않는 말입니다. 중생과 불보살은 단지 감응(感應)만을 말할 뿐입니다. 중생이 감(感)이 있으면 부처님께서는 바로 응(應)함이 있으며, 섭수(攝受)는 바로 감응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부처님이시든지 중생을 인도(接引)하러 오시는 것은 완전히 중생 자신의 염력(念力)과 원력(願力)이 성취한 것이며, 마음 밖에 부처님이 계셔서 그 부처님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신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미타가 오셨다면, 이는 자성(自性)의 미타이며, 관음이 오셨다면, 이는 자성의 관음(觀音)입니다. 왕생한 곳은 오직 마음이 정토(唯心淨土)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바로 정확한 것입니다. 심성(心性) 밖에 달리 정토(淨土)가 있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며, 이러한 일은 없습니다.
12. 남을 도와 조념해 주었을 때 자신에게 미치는 효과
질문: 임종 조념을 할 때, 왕생하는 사람의 원수나 채권자와 조념하는 사람 사이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까? 혹 심지어 조념을 해줌으로 인해 악연을 맺을 수도 있는 것입니까?
답변: 이러한 일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임종할 때 임종하는 사람에게 염불하여 왕생을 구하는 것을 잊지 말 것을 일깨워주는데, 이는 그의 일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때이므로, 따라서 조념은 진실한 공덕입니다. 임종할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세상의 인연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간에 대해 여전히 연연하는 것이 있고, 또 인계하지 않은 일이 많이 남아있으면 왕생의 기연(機緣)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를 도와서 그가 모든 인연을 내려놓고서 일심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도록 일깨워야 합니다. 조념하는 사람이 마음이 삿되어 바르지 않으면, 귀신의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마음이 청정하고 정대(正大)하고 광명(光明)하면, 반드시 불보살님의 가피를 받으므로, 귀신도 이 모습을 보면 존경할 수 있으며, 절대로 성가시게 하지 않습니다.
질문: 조념은 자신의 수행(修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까? 또 인과(因果)에 어긋날 수 있습니까? 서방의 극락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만, 그러나 서방 극락세계가 어느 곳에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답변: 남을 도와 조념하고, 남을 왕생하도록 보내는 이 일은 좋은 일입니다. 이는 자기에게 틀림없이 수승(殊勝)한 공덕이 있게 할 뿐, 왕생한 사람의 악인(惡因)이나 악과(惡果)가 절대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대자보살께서 말씀하시길,「진정으로 두 사람이 왕생하도록 도울 수 있으면, 이는 자신이 수행 정진한 것보다 더 낫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바로 사람들에게 반드시 남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격려한 말입니다.
남을 돕는 첫 번째 수승(殊勝)한 일은 바로 남이 임종할 때 그를 도와 조념하여 왕생하게 하는 것이며, 왕생하면 부처가 될 것이니, 그것은 한 사람이 부처가 되도록 돕는 일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남을 돕는다면, 자신이 임종할 때 많은 이들이 와서 나를 도울 것입니다. 그러나 기꺼이 남을 돕지 않고, 남을 싫어하여 내팽개친다면, 자신이 임종할 때 조념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는 업인(業因)의 과보(果報)입니다.
경전에서 서방의 극락세계는 이 세계의 서방에 십 만 억 불국토가 지난 곳에 있다고 아주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지구에서 서쪽으로 가도 전혀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이를 의심합니다. 경전에서 말한 서방이란 바로 사바세계의 서방입니다. 사바세계는 석가모니불의 보토(報土)이며, 또한 이 대천세계의 서방인 것이지, 지구의 서방이 아닙니다. 석가모니불의 보토(報土)에는 십 억 개의 은하계가 있습니다. 이 대천세계는 오늘날의 과학자들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설명해도 아마도 여전히 의심을 끊지 못할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극락세계에 어느 곳에 있거나를 막론하고 신호(信號)가 있으면 아미타불과 통할 수 있습니다. 신호는 바로 「아미타불」이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입니다. 이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바로 마치 전보(電報)를 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극락세계가 어느 곳에 있거나 회로는 반드시 통하는 것입니다. 성실하게 염불하면 임종할 때 방향을 가릴 필요 없이 아미타불께서 인도(接引)하러 오시므로, 반드시 신심이 있어야 합니다.
질문: 조념에 매우 참가하고 싶지만, 제 자신의 염불공부가 부족해서 혹 망자의 영혼이 몸에 붙을까 두려운데,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답변: 조념에 참가하는 것은 왕생하도록 보내는 것이며, 이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항상 다른 사람이 왕생하도록 보내면 장래에 자신이 임종할 때 많은 이들이 나를 왕생하도록 보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항상 다른 사람을 왕생하도록 보내면 왕생하는 상서로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고, 자신의 신심을 증장시킬 수 있어서, 장래에 자신이 병이 위중할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익 되는 점이 매우 많습니다. 단지 의심하는 마음이나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고자 한다면, 기연(機緣)이 있으면 마땅히 참가해야 하며, 염려하지 마십시오.
망자의 영혼이 몸에 붙거나, 영혼이 몸에 붙는 것은 그 사람과 인연이 있어야 하며, 동시에 또 귀왕(鬼王)이 허락해야 만이 몸에 붙을 수 있습니다. 귀왕(鬼王)이 허락하지 않는데, 영혼이 몸에 붙으면 그 영혼은 죄를 범하게 되며, 바로 사람을 해치는 것이므로, 그 영혼은 과보를 받을 수 있고, 징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영혼이 마음대로 몸에 붙을 수가 없습니다. 설령 영혼이 몸에 붙는다고 해도 사실은 상관없으며, 그 영혼은 사람을 해칠 수 없습니다.
질문: 하얼빈에 어떤 한 출가자가 말씀하시길,「남에게 조념을 해주면,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원수와 채권자들이 훗날 우리가 임종할 때 우리와 결판을 내려고 할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감히 조념에 참가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는 맞지 않는 말이라 생각하지만, 어디에 근거하여 이를 설명할 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답변: 이 도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만약 남을 도와 조념하여, 그가 서방 극락세계에 가서 부처가 된다면, 장래에 자신이 임종할 때 그의 원수와 채권자가 와서 자신을 성가시게 한다면, 그 부처가 자신을 도우러 올 것이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애를 태웁니까? 이것에 대해 대자보살께서 매우 잘 말씀하셨습니다.「두 사람을 왕생하도록 도우면, 이는 자신이 정진한 공덕보다 크며, 열 몇 사람을 왕생하도록 도우면, 복의 과보는 무량하고 무변하며, 백 사람을 왕생하도록 돕는다면, 이는 바로 진정한 보살이다.」고 하셨습니다.
조념은 남을 도와 왕생하여 성불하게 하는 것이므로, 세간에서의 첫 번째의 공덕입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것도 이 공덕보다 더 수승(殊勝)한 공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출가자에게「그의 원수와 채권자가 우리를 찾아온다는 증거를 꺼내어 보여 주십시오. 만약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이러한 유언비어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믿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대답하십시오. 일체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네 가지 의지해야 하는 법(四依法)」에 따라야 합니다.
즉,「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아야 하며」(依法不依人),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아야 하고」(依義不依語), 「지혜에 의지하고 識(인식과 감각)에 의지하지 말아야 하고」(依智不依識),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依法不依人) 이지(理智)에 의지하고, 감정에 따라 처리하지 않아야 정확한 것입니다.
질문: 제가 염불회를 조직한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현재 한 동수(同修)가 저에게 여러 번 권하길, 먼저 자신을 성취해야 하며, 그런 후에 다시 남을 도와 조념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몇 몇의 동수(同修)와 친구들은 저에게 조념을 해달라고 찾아옵니다. 제가 마땅히 어떻게 해야 옳은지를 모르겠습니다.
답변: 조념은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며, 나 자신이 염불하고, 동시에 또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대자보살께서 잘 말씀하신 것처럼「두 사람을 도와 염불하여 왕생하게 할 수 있으면 자신이 수행한 공덕보다 크며, 열 몇 사람을 도와 염불하여 왕생하도록 할 수 있으면 복의 과보는 대단히 큰 것입니다.」열 몇 사람을 도와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하였다면, 자신이 임종할 때 틀림없이 왕생합니다.
왜냐하면 임종할 때 그들이 극락세계에서 반드시 아미타불을 잡고서 말하길,「우리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의 덕분이니, 지금 함께 그를 인도(接引)하러 가야 합니다.」고 할 것입니다. 정리(情理)에 합당한 일은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 똑같기 때문에, 성실하게 하면 나와 남이 다 이로우며, 결코 자신이 염불하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질문: 조념하는 팀은 최근에 법기(法器: 불법을 배우고 법을 널리 알릴만한 선근을 갖춘 사람을 말함)가 될 만한 인원들이 부족하여 예전처럼 조념할 방법이 없습니다. 집에서 일심으로 오로지 염불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원래처럼 저를 필요로 하는 중생이 있으면 가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원융(圓融)한 것인지 가르쳐 주시기를 청합니다.
답변: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수연(隨緣)하고 반연(攀緣)하지 말하고 가르치셨습니다. 만약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가야 하며,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왕생하도록 보내주는 일은 진실한 공덕입니다.
질문: 제자가 매번 발심하여 조념하고서 집에 돌아온 후에는 남편이 병이 납니다. 그런데 한번은 103세가 되신 할머니가 왕생하셨습니다. 그때 한 출가법사가 먼저 쇄정(灑淨: 불교의 의식으로, 향수를 뿌려 물건을 깨끗하게 하는 의식)을 하고나서 다시 개시(開示)와 귀의를 한 후에 돌아갔으며, 저희들은 계속해서 조념하였으며, 그렇게 한 후에 집에 돌아왔는데, 그날은 남편이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저희들이 조념하는 효과가 혹 법사의 개시(開示)만 못한 것인지 가르침을 청합니다.
답변: 이것은 법사의 개시(開示)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조념할 때에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진정으로 남을 위해 조념하여 그가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보내야 합니다. 만약 조념할 때 마음속에 다른 생각들이 끼어들어 섞이거나 망상이 있으면 힘을 얻지 못하며, 힘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죄과(罪過)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질문: 남을 위해 조념을 한 후 집에 돌아와서 몸을 씻거나 옷을 갈아입어야 됩니까?
답변: 제 생각은 그럴 필요 없습니다. 만약 돌아와서 몸을 씻어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망자에 대해 의심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돌아온 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편안하고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망자에 대한 공경입니다. 진실한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돕는다면, 설사 그가 왕생할 수 없을지라도, 감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임종할 때 경전을 독송하는 소리와 부처님 명호를 들으면, 틀림없이 고통을 줄어들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 현재 조념단은 두 분의 거사가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갑이란 거사가 이끌어갈 때에는 중생이 몸에 달라붙는 현상이 매우 적은데, 그러나 을이란 거사가 이끌어갈 때에는 자주 중생이 몸에 달라붙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일부 조념하는 사람들은 무서워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을이란 거사가 지장보살님과 인연이 깊다고 말합니다. 법사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답변: 만약에 지장보살님과 인연이 깊다고 한다면,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얻을 수는 있어도 이러한 상황은 발생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을이란 거사가 몸에 달라붙는 중생과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러한 중생들이 쉽게 그를 찾아온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는 흔히 몸에 붙는 현상과 같습니다. 몸이 건강한 사람이나 지견(知見)이 바르고 분명한 사람이라면, 귀신이 감히 몸에 달라붙지 못합니다.
대체로 원수나 채권자가 몸에 달라붙는 사람은 틀림없이 몸이 허약하여 바람조차도 견디지 못하며, 평소에 정신과 의지가 한 곳에 집중할 수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원수나 채권자가 와서 몸에 달라붙는 것을 아주 쉽게 느낍니다. 염불당의 조념을 이끄는 두 거사는 건강 상태가 분명히 서로 같지 않을 것입니다. 갑이란 거사는 분명히 원기가 왕성하고, 몸이 건강하기 때문에, 몸에 달라붙은 귀신이 감히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지만, 을이란 거사는 몸이 아마도 좀 건강하지 못할 것입니다.
질문: 몸에 병이 많고 또 허약하고 겁 많은 거사라고 해도, 그가 남을 도와 조념하여 왕생하도록 하고 화장하도록 할 수 있습니까?
답변: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조념은 공덕이며, 좋은 일입니다. 조념할 때에는 진정으로 불법을 믿어야, 삼보(三寶)의 위신력이 가피를 내립니다. 귀신이 염불하는 사람인 것을 보게 되면, 존경하며 절대로 해칠 리 없습니다. 이러한 신심(信心)이 있으면, 두려워할 수 없으며, 담력도 점점 커질 수 있습니다.
13. 임종 시에 자재하게 왕생하는 방법과 장애를 없애는 방법
질문: 임종할 때 돌보아 조념해 줄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어떻게 스스로 자신을 돕고 구제해야 합니까?
답변: 스스로 성실하게 열심히 하여 임종할 때 병이 나지 않도록 하면, 다른 사람이 돌봐줄 필요가 없으며, 어느 날 간다는 것을 알고서 갈 때에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또 언제 떠날 것이라 말한다면 얼마나 자재하겠습니까! 이러한 광경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광경을 보고서 염불하지 않던 사람도 염불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경전을 강설하거나 법을 설할 필요도 없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고 교화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한편으로는 자기 스스로 수행하고, 또 한편으로는 남을 교화하는 자행화타(自行化他)인 것입니다. 이병남 스승께서 일찍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동(何東)작사(爵士: 유럽군주국의 일종의 작위)의 모친께서 왕생할 때에 왕생할 때가 왔음을 미리 아시고서 왕생을 위한 큰 모임을 열어 기자들을 초대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그들 가족들은 전부가 경건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동작사는 매우 효성스러운 사람이어서 모친을 위해 집안에 불당을 만들었답니다. 그들 가족은 각자가 서로 다른 종교를 믿었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고서 화목하게 잘 지냈답니다. 노부인께서 임종할 때 아들과 며느리를 불러서 말씀하시길, 「집안의 종교는 자유이니, 피차 서로 방해하지 않는 것은 매우 좋다. 그렇지만 내가 오늘 왕생하니, 너희들이 마지막으로 부처님 명호를 몇 번 불러서 나를 보내주기를 바란다.」고 하셨답니다. 이에 아들과 며느리가 모두 모친의 말에 동의하였답니다.
왕생하던 그 날, 노부인은 가부좌를 하고서 가셨으며, 이날 이후로 그의 전 가족이 모두 불문(佛門)에 귀의하였고, 또 자신들의 집을 희사하여 불교(佛敎)에 공양하였답니다. 이것은 바로 지금의 동연각원(東蓮覺苑)입니다. 노부인은 일생 동안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으나, 임종할 때 왕생하는 모습을 나타내 모두에게 보여 주여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고 교화하셨으며, 대만까지도 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남이 조념해줄 필요도 없고, 남이 보살필 필요도 없습니다.
당시 노부인이 이를 실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뿐입니다. 세상의 인연을 내려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불법조차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최대의 골칫거리는 바로 내려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염불하는 사람은 아미타불 이외에는 어느 것에 대해서도 모두 반연(攀緣)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간의 일이나 출세간의 일에 조금이라도 염려하는 마음이 있으면 왕생할 수 없습니다.
자재하게 왕생하는 사람은 복의 과보가 가장 큰 사람이며, 일생 동안 공덕을 쌓고 악을 끊고 선을 닦고, 또한 복의 과보를 평소에 누리지 않고 남겨 두었다가 임종하는 이 순간에 다 향수(享受)한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복을 닦으면 서둘러서 그 복을 다 누려 써버리며, 다 누려 써버릴 뿐만 아니라 게다가 미리 복을 당겨서 누려 써버려 적자가 되게 합니다. 임종할 때 고통이 있는 것은 복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임종할 때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자 한다면, 반드시 악을 끊고 선을 닦고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질문: 임종할 때 선연(善緣)을 만나지 못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바른 생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까?
답변: 사실상 임종할 때 선우(善友)가 조념을 해주는 것을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미지수입니다.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임종할 때 선연(善緣)을 만나지 못하면, 일생의 기연(機緣)을 놓쳐버리게 되며,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임종할 때 바른 생각을 유지하고자 생각한다면, 평소의 염불은 바로 훈련하는 것입니다. 평소는 병사를 훈련시키는 것이고, 임종은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패는 임종 때의 마지막 한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잘 양성해야 만이 스스로가 진정으로 왕생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게 됩니다. 최근 20년 동안 염불하여 왕생한 많은 좋은 본보기가 있는데, 이들은 다 우리의 학습의 대상입니다.
질문: 진정으로 왕생하기를 매우 바라지만, 그러나 왕생할 때 조념해 주는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변: 염불기를 사용하여 밤낮으로 끊이지 않고 자신을 일깨워도 됩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진정으로 왕생하기를 바란다면, 오로지 「진정으로 믿고(眞信), 진정으로 원하고(眞願), 진정으로 기꺼이 염불하고(眞肯念佛), 아미타불을 뵙고자 하는(想見阿彌陀佛)」이러한 조건들을 갖추고, 동시에 세간의 인정과 세상일을 전부 다 내려놓아야 하며, 이렇게 하면 갈 수 있습니다. 비록 진정으로 믿고 간절하게 원할지라도, 만약 세간의 한 가지 일도 내려놓지 못한다면, 이는 마치 새끼줄로 자신을 묶고서 잡아당기고 있는 것과 같아서 갈 수가 없습니다.
세간에서 가장 헤어지기 어렵고 버리기 어려운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혈육의 정과 재산입니다. 이 두 가지를 남김없이 깨끗하게 내려놓고 조금도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왕생할 수 없습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왕생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느 때에 내려놓아야 하느냐 하면, 현재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내려놓아야 하며, 임종할 그때 가서 내려놓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내려놓지 못한다면, 죽음에 임했을 때에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합니다.
질문: 임종할 때 조념하러 와 줄 사람도 없고, 가족과 친척도 불법을 믿지 않을 경우, 이 믿지 않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답변: 우리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정토에 왕생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이번 생에서 첫 번째의 대사(大事)로 삼고 행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현재의 사회상황을 이해해야 하며, 병이 나서는 안 됩니다. 일단 병이 나면 자기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어서 의사나 간호원, 또는 원수나 채권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아야 하니, 대단히 번거롭고 성가신 일입니다. 이때에는 나 자신을 보호해주고, 나 자신을 돌보아줄 좋은 동참(同參)이나 도우(道友)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에 임종할 때 나 자신을 도와줄 이러한 사람들이 없고, 게다가 가족과 친척이 불법을 믿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대단히 성가시고 번잡한 일이 됩니다. 최근 반세기 동안 우리 눈으로 직접 보았고, 우리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많은 재가자나 출가자가 염불하여 왕생하였고, 왕생할 때가 이르렀음을 미리 알고 병의 고통이 없이 가겠다고 말하고는 곧 갔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들에게 좋은 본보기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시범을 보여주어, 우리에게 결심이 있어야 하고, 신심이 있어야 하며, 이렇게 하면 어떠한 장애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임종할 때 만약 병이 나 미혹하고 전도(顚倒)되면, 사람들이 와서 조념을 해주어도 아무 소용이 없으며, 서방 극락세계 역시 갈 수가 없으며, 여전히 업에 따라 윤회하게 됩니다. 고도의 경각심이 있어야 하며, 더 이상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바로 내려놓고서 성실하게 염불하며, 열불을 일상생활 중에서 가장 큰 일(大事)로 삼으며, 기타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은 언급할 가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한량없는 겁(세월) 동안 육도(六道)를 윤회하는 속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지냈습니다. 동학(同學)들이 성실하게 노력하여 이번 생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질문: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자재하게 왕생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또 어떠한 사람이 왕생할 때 다른 사람의 조념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답변: 이번 생에 진정으로 성취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가장 온당(穩當)하고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서방 극락세계에 가서 아미타불을 친근(親近)하는 것입니다. 선도(善導)대사는 아미타불의 화신(化身)으로 이 세상에 오셨던 분입니다. 선도대사께서 말씀하시길,「만 사람이 염불법문을 닦으면 만 사람이 다 왕생한다.(萬修萬人去)」고 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아미타불께서 자신의 입으로 직접 선양(宣揚)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사람의 몸을 얻었고, 불법을 만났으며, 또 정토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믿을 수 있고, 마음을 오로지 할 수 있고, 이 하나만을 굳게 지킬 수 있기만 하면, 이번 생에 틀림없이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병이 나지 않고, 서서 가고, 앉아서 가며, 다른 사람이 도와줄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재이며, 이러한 사람들은 왕생할 때 자신을 조념해줄 사람이 없어도 사람을 찾지 않습니다. 단지 공부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남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선연(善緣)을 만난다면 사람들이 나를 왕생하도록 돕겠지만, 만약 악연일 경우에는 와서 조념하는 사람들이 의견이 제각기 분분하면 아주 번잡하고 성가시게 되며, 왕생하는 데 장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실하게 힘써 수행하여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이 일을 이번 생에서 첫 번째의 대사(大事)로 삼아야 하며, 그 나머지 일들은 다 중요하지 않는 작은 일이니, 인연을 따르면 됩니다.
질문: 집안에 오직 저 자신만이 수행하는데, 지금 어떻게 인(因)을 닦아야 임종할 때 남의 구속을 받고서 자재하게 왕생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십시오.
답변: 매우 좋은 질문입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러한 포부(志向)가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공부하여 힘을 얻은 많은 사람들은 임종할 때, 왕생할 때가 온 것을 미리 알아서 자재하게 왕생하였습니다. 근대에도 이러한 사람들은 있으며, 이 일이 진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성취한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야 하며, 그들이 수행한 본보기는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인상이 가장 깊게 남아 있는 몇 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체한법사의 염불한 제자입니다. 그는 공부를 한 적이 없으며, 글자를 알지도 못하며, 출가하기 전에는 직업이 과루장(鍋漏匠: 솥이나 냄비 등 구멍 난 곳을 땜질해주는 땜쟁이)이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힘든 중노동을 하였기 때문에, 인간 세상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마을에서 함께 자란 어릴 적 같이 놀던 동무인 체한법사를 가까스로 힘들게 찾아서 자신이 출가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체한노화상은 그가 글자를 알지도 못하고, 게다가 매우 우둔하여, 아침과 저녁에 하는 공과(功課)를 배워도 그 뜻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그를 사원의 도량에 살게 했다가는 번뇌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간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머리를 깎아준 후에 그에게 계를 받지도 말고, 경전의 교의(敎義)를 배우지도 말고, 또 경참법사(經懺法事)를 배울 필요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로 하여금 영파의 한 시골에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사당을 찾아서 머물게 한 후, 단지 그에게 한 마디의「나무아미타불」만을 부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성실하게 부르고, 부르다가 지치면 쉬고, 다 쉬었으면 다시 이어서 부르면, 장래에 반드시 이익이 있을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어떤 이익이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하였지만, 성실하고, 말을 잘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체한노법사는 명성도 있었고, 또 도행(道行)도 있어서 그를 흠모하는 신도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래서 노법사는 마을 인근에서 신도 몇 사람을 찾아서 그에게 밥을 날라다 주고, 기름과 소금을 날라다 주면서 그의 생활을 돌보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나무아미타불」을 불렀으며, 부르다 지키면 쉬고, 다 쉬고 나면 다시 불렀습니다. 그는 이렇게 한 법문에 깊이 들어갔으며, 3년을 불러 성공하여, 왕생할 때가 이르렀음을 미리 알았습니다. 작은 사당 안에는 한 분의 호법(護法)이 있었는데, 할머니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를 위해 점심과 저녁 두 끼의 밥을 해주었고, 아침밥은 그가 스스로 지었습니다. 하루는 그는 이 작은 사당을 떠나 도시에 가서 친척과 친구들을 만났으며, 돌아온 후에 할머니에게「내일은 저를 위해 밥을 지으러 오시지 마십시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할머니는 마음속으로 「스님이 보통 문밖을 나서지 않는데, 내일은 아마도 스님과 식사를 같이 하자고 청한 친구가 있어서, 그 때문에 나보고 밥을 지으러 오지 말라고 하다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 정오가 다 되었을 때, 할머니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사당에 가서 살펴보았습니다. 스님이 그곳에 서 있는 것을 보고서 큰 소리로 불렀으나 답변이 없어서 스님 앞으로 걸어가 자세히 살펴보니 왕생하였으며, 서서 왕생한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급히 서둘러 다른 호법(護法)을 찾아서 상의한 후, 「관종사(觀宗寺)」에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없었으므로, 걸어서 왔다 갔다 하려면 3일이 걸립니다. 그는 이렇게 3일 동안 서 있었습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망상이 없고, 잡념이 없이 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칭념하였기 때문이며, 업장이 소멸되어 3년 만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는 진정으로 능력이 있는 것이고, 진정으로 공부가 있는 것인데, 이유는 바로 모든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염려가 있으면 방법이 없으며, 그렇게 되면 자재할 수가 없습니다. 왕생할 수 있는 도리는 바로 이처럼 간단하며, 다름 아닌 스스로가 기꺼이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얼빈의 「극락사(極樂寺)」의 수무(修無)법사입니다.《영진회억록(影塵回憶錄)》에 보면, 그는 글자를 알지 못하고, 출가하기 전에는 니수장(泥水匠: 미장이)이었습니다. 그는 출가한 후에 사원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대중을 위해 노역을 하였으며, 평소에는 오직 나무아미타불만을 불렀습니다. 담허법사께서는 북방에 사묘(寺廟)를 여러 개 세웠으며, 극락사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사묘가 다 세워진 후에 한차례 전계법회(傳戒法會)를 거행하였으며, 당시 체한노화상을 청해 계화상(戒和尙)을 맡게 하였습니다. 계를 전수하는 기간에 수무법사는 발심하여 도와주겠다고 극락사에 오자, 담허화상과 당가사(當家師)인 정서법사(定西法師)가 그와 만났습니다. 정서법사가 그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그가 전계하는 기간 동안 병자를 돌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2주일을 지낸 후, 그는 담허노화상을 찾아가 휴가를 청하면서, 일이 있어 떠나려고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담허노화상은 수양(修養)이 깊으시고 또 자비하신 분이어서 결코 그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정서법사는 곁에서 듣고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그를 야단치면서 말하길,「전계하려면 두 달이 걸리는데, 그대는 이곳에 와서 병자를 돌보겠다고 발심하고서는 겨우 2주일 만에 떠나려고 하는가? 어떻게 이렇게 인내심이 없는가?」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수무법사가 말하길, 「저는 다른 곳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는 것입니다.」그러자 그에게 어느 날 가느냐고 물으니, 그가 아마도 보름은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정서법사에게 왕생한 후에 화장에 쓸 장작을 백 근이나 이백 근을 준비하여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 그는 다시 노화상을 찾아와서「노법사님, 저는 오늘 가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사묘(寺廟)의 뒤에 한 칸 자리 집을 찾아 임시로 침상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 위에 가부좌를 하고는 정서법사에게 말하길,「몇 분의 법사를 찾아서 저를 도와 조념하여 저를 보낼 수 있으십니까?」당시에 기쁜 마음으로 그를 도와 조념할 사람은 당연히 아주 많았습니다. 조념할 때, 조념하는 사람이 그에게 말하길,「이전에 왕생한 사람은 모두가 몇 수의 시나 몇 수의 게송을 지어 뒷사람에게 남겨 기념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수무법사, 법사 또한 반드시 저희들에게 기념으로 삼을 만한 것을 남겨 주십시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수무법사가 말하길,「저는 공부를 배운 적도 없고, 글자도 알지 못하고, 시를 지을 줄도 모르고, 게송을 지을 줄도 모릅니다.」그리고 나서, 그는 마지막에 성실한 말을 한 마디 하였는데, 그 뜻은 수행은 반드시 성실해야 하며, 이 일은 절대로 거짓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개시(開示)는 비록 매우 간단하지만, 이 말을 받아들여 행한다면 모두가 이익을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후에 그들은 그에게 염불을 해주었으며, 15분이 채 되지도 않아서 그는 곧 바로 왕생하였습니다.
근대, 약 30년 전에 저는 불광산에서 개최한 대전불학강좌(大專佛學講座)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저녁에 열 사람이 넘는 동학들이 방생지(放生池) 옆에서 불법을 토론하였습니다. 당시 불광산은 공사가 매우 많았으므로, 1년 동안 고용된 장기 근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근로자가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더니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가 사는 장군향(將軍鄕)에 한 노파가 있었는데, 그 노파는 마음이 매우 선량하고 자비하여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셨답니다.
그 노파는 살아있을 때에 무엇이 부처인지 무엇이 신이지를 분간할 줄 몰라 사묘(寺廟)가 있는 곳에 가기만 하면 늘 언제나 향에 불을 붙이고, 신에게 절하고 부처님께 절하였답니다. 3년 전에 불법을 아는 며느리를 얻었는데, 그 며느리가 집에 불당을 마련해놓고는 노파에게 집에서 성실하게 아미타불을 불러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라고 권하면서, 앞으로는 여기저기 아무 곳에나 절하지 마시라고 하였답니다. 이 노파는 매우 선량한 분이어서 며느리의 말을 들은 후로는 아무 곳에나 여기저기 절하지 않았으며,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불렀으며, 3년을 염불하였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밥을 먹을 때, 노파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말하길,「나 기다리지 말고 너희들 먼저 저녁 먹어라. 나는 우선 목욕을 하련다.」노파가 비록 그렇게 말했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대단히 효성스러운 사람들이어서 그래도 노파가 밥을 먹기를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서 살펴보았답니다. 노파는 목욕을 한 것은 분명하였지만, 욕실에는 사람이 없었으며, 방안에도 사람이 없었답니다. 마지막에 노파가 작은 불당에 계시는 것을 보았는데, 해청(海靑: 법복)을 입고 계셨고, 손에는 염주를 들고 있었으며,
얼굴은 불상을 향한 채 그곳에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으며,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아 자세히 살펴보니, 이미 서서 왕생하였답니다. 염불하여 왕생할 때가 이르렀음을 미리 알고, 서서 가고, 앉아서 가고, 자재하게 왕생할 수 있는데,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모든 인연을 내려놓고, 일심으로 부처님을 흠모하면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이는 마장(魔障)입니다. 마장은 염불하는 것을 방해하고 왕생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처럼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귀로 직접 들은 왕생한 예는 열 분이 넘게 있지만, 그러나 남이 전해준 말을 들은 왕생한 예는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질문: 임종하기 전의 시간은 매우 짧은데, 어떻게 해야 조연(助緣)이 없는 속에서 자재하게 왕생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답변:《대지도론(大智度論)》제28권에 보면 하나의 개시(開示)가 있습니다. 「임종할 때의 짧은 시간이 평생 동안 수행한 힘을 뛰어넘을 수 있는데, 이는 사납고 날카롭기 때문이며, 이는 마치 불과 같고 독과 같다(臨終少時, 能勝終身行力, 以猛利故, 如火如毒.)」이는 일생 중에 비록 진정으로 열심히 하지 않았고, 수행하지 않았을지라도, 임종할 때 시간이 비록 많지 않지만, 이때에 만약 진정으로 기꺼이 한다면, 일생의 수행을 뛰어넘는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밤낮으로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정력을 집중하여 진정으로 하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事實)의 진상(眞相)을 분명하게 알면, 평소에 공덕을 쌓아야 하고, 자신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조념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에게 의지하여 성취한 예는 대단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체한노화상의 과루장(鍋漏匠: 땜쟁이)은 조념해 준 사람이 없이 서서 간 것입니다. 수무법사는 왕생할 때가 이르렀음을 미리 알고서 자신을 조념해 줄 몇 사람을 찾았던 것은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공부가 성취되었습니다.
장군향의 노파는 3년 염불하였으며, 조념해준 사람 없이 서서 왕생하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감(甘)부인의 옛 친구는 저녁에 앉아서 왕생하였는데, 그 부인 역시 조념해 준 사람이 없습니다. 최근에 심천(深圳)의 황충창(黃忠昌)거사 또한 조념해 준 사람이 없습니다. 싱가포르의 거사림(居士林)의 임장(林長)이었던 진광별(陳光別)거사는 병이 나서 집에서 요양하였습니다. 그는 일이 없을 때에는 경전을 들었는데, 하루에 8시간 경전을 들었으며, 4년을 들었습니다.
이 4년이 그의 일생을 보완해주었으며, 그는 진정으로 분명하게 알게 되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서 한 마디 부처님 명호를 끝까지 불렀으며, 그는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임종하기 전의 시간은 비록 적지만, 만약 기꺼이 열심히 공부하기를 사납고 날카롭게 하고, 용맹하게 정진한다면 일생의 공부를 뛰어넘습니다.
질문: 노법사님께서 대만의 한 거사가 일찍이 염불당에서 유나(維那)의 직책을 맡은 적이 있었지만, 임종할 때에는 오히려 부처님 명호를 듣기를 좋아하지 않아 조념하는 사람을 내쫓았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응당 어떻게 이러한 장애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까?
답변: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비록 일생을 염불하였을지라도, 그러나 만약에 세상에 연연하는 마음이 있고, 가족과 친척과 차마 아쉬워 헤어지지 못하고, 또 재산을 내려놓지 못하면, 임종할 때 생존을 지나치게 욕심내고 죽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평소에 생사에 대해서나 세간의 인연에 대해서나 담담하게 보아야 하며, 세간의 어떠한 것도 다 거짓이니, 결코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노년이 되었을 때에는 자신이 얼마 안 있으면 곧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니, 후사(後事)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가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후사(後事)를 다 처리한 다음에는 그 즉시 마음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떠나는 것이 자재할 수 있으며, 염불 공덕 또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두려운 것은 집착이 있어 내려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말로 매우 큰일입니다. 불법을 널리 펴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 또한 진짜가 아니며, 그것을 무슨 대단한 일이라 생각지 말고, 내려놓겠다고 말을 하였으면 그 즉시 바로 내려놓아야 비로소 자재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연(隨緣)하라고 하셨지, 절대로 반연(攀緣)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수연(隨緣)은 항상 중생을 따르는 것입니다.
기연(機緣)이 있으면 성실하게 힘써 행하되, 인연이 없으면 생각조차 일으키지 않는다면 얼마나 자재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기회가 없으면 새로운 조건을 다시 만들려고 하고, 또 다시 새로운 기회를 만들려고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반연(攀緣)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연(隨緣)하라고 말씀하신 뜻은 현전에 이미 이루어진 인연을 따르는 것이며, 자신의 생각을 조금도 보태지 않는 것, 이것을 진정한 수연(隨緣)이라 말합니다.
질문: 이번 생에 염불법문을 매우 잘 닦았지만, 그러나 임종할 때 업장이 앞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와서 조념하지 말라고 한다면, 이럴 때에는 응당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변: 이럴 경우에는 그가 하자는 대로 따를 도리밖에 없습니다. 저 또한 일찍이 이러한 일을 본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 염불을 하였으며, 염불을 매우 잘 하였는데, 그러나 임종할 때 삶을 지나치게 욕심내고 죽기를 두려워하여 사람들에게 조념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그 뿐만 아니라「아미타불」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곧 싫증을 내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죽은 후에는 여전히 육도를 윤회합니다. 그러므로 염불하는 사람은 교리(敎理)를 통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생사(生死)는 일종의 자연현상이며, 바로 오늘날 말하는 자연의 신진대사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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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절대로 오로지 이번 한 생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과거도 있고 미래도 있습니다. 이러한 우주와 인생의 진상(眞相)에 대해 분명하게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산다고 해서 무슨 대단히 즐거울 것이 없으며, 죽는다고 해서 또한 무슨 대단히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알면 생사가 바로 마치 우리가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이 자재하며, 조금의 두려움도 없습니다. 몸을 버리고 몸을 받는 일은 옷을 벗고 옷을 입는 일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평소에 분명하게 숙지(熟知)하고 있어야 하며, 임종할 때에 비로소 깨닫게 되면 이미 늦어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질문: 70세가 되신 연로한 거사가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은 매우 성실하지만, 불법에 귀의한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지금은 뇌가 수축되어 음식을 먹고 마시는 일조차 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병이 걸리지 않았을 때에는 저에게 자신이 임종할 때 조념해 달라고 말씀하시어, 제가 두말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현재 그분의 병이 위중합니다. 저는 불상과 염불기를 모두 놓아드렸더니,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나 한참 시간이 지나자, 병의 증세는 더 이상 호전되지 않았으며, 그 분 또한 염불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가 찾아뵈러 가서 염불을 해주면, 그 염불소리를 들으면 짜증을 내고 듣기를 싫어합니다. 저는 성내는 마음을 일으킬까 걱정이 되어서 그 후로는 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마땅히 어떻게 그 거사를 도와드려야 합니까?
답변: 정말로 말한 대로라면 가지 않고서 혹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 거사의 근황이 어떠한 지를 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예전에 원산(圓山)에 있는 임제사염불회(臨濟寺念佛會)의 부회장이었던 임거사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임종할 때 지금 말씀하신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부처님 명호를 들으면 싫어하고 짜증을 내었으며, 남들이 자신을 위해 염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업장이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듣거나 보면 이를 불보살이 나타나 보이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평소에 업장을 소멸하는 일을 반드시 성실하게 힘써 하여야 하며, 임종할 때 업장이 앞에 나타나면 어떠한 조금의 방법도 없으며, 그야말로 신선(神仙)조차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업장의 뿌리는 바로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고, 나와 남을 분별하고, 오욕(五欲)과 육진(六塵), 탐욕, 성냄, 어리석음, 오만 등입니다. 만약 이러한 뿌리들이 끊어지지 않았고, 그것들을 뽑아 없애지 않으면, 염불할지라도 왕생할 수 없습니다.
설사 임종할 때 이러한 마장들이 앞에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단지 삼선도(三善道)에 태어날 수밖에 없으며, 삼계(三界)를 벗어나 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랄지라도 매우 어렵습니다. 염불당(念佛堂)의 당주(堂主)의 구두선(口頭禪)은「몸과 마음의 세계를 내려놓고 성실하게 열불하십시오!(放下身心世界, 老實念去!)」입니다. 이 말을 절대로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되며,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진정으로 염불하여 정토에 왕생하길 구한다면, 이 말을 마음속에 단단히 새겨야 합니다.
질문: 조념해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는 평소에 어떻게 해야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답변: 옛날 대덕들께서는 항상 삼배구품(三輩九品)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만약 《무량수경》에서 강설하고 있는 도리를 100% 전부 실천한다면, 틀림없이 상상품(上上品)으로 왕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단지 80% 실천할 수 있으면, 바로 상품하생(上品下生)일 것입니다. 이렇게 한 등급 한 등급 아래로 차례로 줄여나가되, 줄여서 마지막 하하품(下下品)으로 왕생하는 데까지 이르려면, 적어도 20%는 실천해야 합니다.
만약 20%도 실천하지 못한다면, 왕생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이는 완전히 임종할 때의 운명에 맡겨야 합니다. 혹 운이 좋아서 선지식이 도와서 조념을 해주고, 일깨워주는 상황을 만난다면 혹 왕생할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임종할 때의 인연이 만약 좋지 않다면 왕생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없습니다. 만약 조념할 사람이 없고, 또 도와줄 사람이 없는 속에서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자 한다면, 반드시 염불법문의 뜻을 깊이 이해하여 가르침에 따라 봉행(奉行)해야 합니다.
질문: 《지장경》에서 말하길,「선남자, 선여인이 임종할 때에도 모두 한량이 없는 귀신들이 와서 장애할 수 있는데, 하물며 업을 가진 중생이겠는가!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는 것은 죄 아닌 것이 없고, 업 아닌 것이 없으니, 작고 작은 죄업을 가볍게 보지 말며, 이는 능히 성도(聖道)를 가로막는다.(善男子, 善女人臨終都會有無量鬼神來障碍, 何况带業衆生! 起心動念無不是罪、無不是業, 不要輕視小小罪業, 能障聖道.)」고 하였으며,
또「만약 어떤 사람이 매일 지장보살의 명호를 천 번 부르되, 불러서 천 일을 채우면 귀신이 옹호함을 얻을 수 있어 임종할 때 장애가 있을 수 없다. (若有人每日念千聲地藏名號, 念滿一千天, 能得鬼神擁護, 臨終就不會有障碍.)」고 하였는데, 염불법문을 닦으면서 임종할 때 귀신이 와서 장애함을 받지 않기 위해, 매일 지장보살을 부르되, 매일 천 번을 불러서 천 일을 불러도 됩니까? 혹 이렇게 하는 것은 잡수(雜修)인지 아닌지 가르침을 청합니다.
(주: 잡수(雜修): 선도(善導)는 정토에 왕생하기 위한 행업(行業)을 정행(正行)이라 하고, 정행 이외의 여러 선한 일인 잡행(雜行)을 닦는 것을 잡수라 한다.)
답변: 이러한 방법은 괜찮으며 상당히 적전(的專)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조수(助修)이지, 잡수(雜修)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한은 3년이며,「매일 천 번 부르고, 불러서 천 일을 채우기」때문입니다. 발심하여 처음 불법을 배울 때에는 이 방법으로 조수(助修)를 삼고, 염불을 정수(正修)로 삼되, 정수(正修)는 이생의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이며, 바로 일생 동안 공부하며 하루도 빠트리지 않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지 않고 오로지 아미타불만을 불러도 됩니다.
귀신은 아미타불을 존경하므로, 임종할 때 와서 방해할 수가 없습니다. 싱가포르의 불교거사림(佛敎居士林)의 임장(林長)이었던 진광별(陳光別)거사가 왕생할 때, 그 거사의 원수와 채권자가 대단히 많았습니다. 그들은 진거사가 염불하여 왕생하는 것을 보고서 마음속으로 매우 찬탄하였으며, 조금의 장애도 없었습니다. 진거사의 원수와 채권자들은 법사들을 따라 거사림에 와서 불법에 귀의할 것을 청하고, 경전을 듣기를 청하였습니다. 진거사는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지 않았으며, 오로지 아미타불만을 불렀습니다. 이것 또한 좋은 본보기입니다.
14. 조념단(助念團)의 성립과 망자에 대한 이익
질문: 무엇 때문에 일반 사원과 도량에서는 모두 조념단이 있는 것입니까?
답변: 《대방광불화엄경》에서 말하길,「임종하는 사람을 보면 염불할 것을 궈하고, 또 존상을 보여 그에게 우러러 공경하게 하라(見有臨終勸念佛, 又示尊像令瞻敬)」 고 하였습니다. 이 게송은 특히 임종조념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청량(淸凉)대사는 주해(註解)에서 임종 조념은 비할 데 없이 수승한 공덕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일반 불교의 사원이나 도량에는 모두 조념단이 있습니다. 일찍이 이병남스승께서 힘쓰신 대중불교연사(臺中佛敎蓮社)에는 조념단이 있었으며, 오직 임종할 때에 보살피는 일을 하였으며, 열의가 있는 사람은 지원하여 참가할 수 있었으며, 한밤중에 전화를 해도 조념에 참가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질문: 어떻게 진정으로 여법(如法)한 조념단을 결성해야 합니까?
답변: 조념단에 대해서는 이전 사람이 제정하신 규칙이 이미 있습니다.《인광대사문초(印光大師文鈔)》를 보아도 되고, 인광법사께서 제정하신《영암산지(靈巖山志)》나 혹은 영암산로(靈巖山老)의 과송본(課誦本)을 참고해도 됩니다. 대만 이병남 거사께서 창립하신 대중연사에서는 완전히 인광법사께서 정하신 규칙에 따라 조념을 행하며, 매우 여법(如法)하므로, 대중연사의 염불당을 참방(參訪)하여 그들이 실제로 활동하는 모습을 참관하여도 좋습니다.
질문: 어떻게 해야 이치에 맞고 법에 맞으며, 진정으로 망자로 하여금 진실한 이익을 얻게 하는 조념단을 결성할 수 있습니까?
답변: 조념단 안에 수행하여 도를 증득한 사람이 단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망자는 이익을 얻습니다. 담허(倓虛)법사는 《영진회억록(影塵回憶錄)》에서, 유(劉)거사의 예를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담허화상은 출가하기 전에, 몇 명의 친구와 동업하여 한약방을 열었는데, 그 친구들 중에 유거사라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유거사는 8년 동안 두문불출하고서《능엄경》만을 읽었답니다. 그는 매일《능엄경》을 읽었으며, 8년을 읽었으니, 그야말로 오로지 하나의 문(門)에 깊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오에 손님이 없이 한산하여 그는 계산대 위에 엎어져 잠을 잤는데, 꿈에 두 명의 원수와 채권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답니다. 이 두 사람은 재산문제로 유거사에게 소송을 걸었는데, 유거사가 소송에서 이겼답니다. 그들은 이 일로 인해 목을 매달고 자살하였답니다. 유거사는 자신이 조금의 돈 때문에 두 사람의 목숨을 해쳤기 때문에, 그 역시 그 일을 후회하였답니다. 그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유거사는 자신을 성가시게 하려고 왔다는 것을 알고서 마음속으로 두려움을 느꼈답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의 태도는 의외로 매우 선량하였으며, 유거사의 앞으로 걸어와 무릎을 꿇고서는 유거사에게 말하길, 자신들은 자신들을 천도해달라고 온 것이지, 성가시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답니다. 그래서 유거사가 어떻게 천도해야 되느냐고 물으니, 그들은 단지 천도해주겠다고 대답만 하면 된다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후에, 그들 두 사람이 유거사의 무릎을 밟고, 어깨를 밟고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답니다.
두 사람이 간 후에 잠시 있다가 또 꿈에 세상을 떠난 아내가 죽은 아들을 데리고 앞으로 와서는 앞의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또 천도해줄 것을 청하였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후, 아내와 아들 또한 그의 어깨를 밟고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답니다. 그러므로 조념단 안에 단지 진정으로 수행하고, 공부가 있고, 감응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어 참가한다면, 틀림없이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조념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입은 있으나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입으로는 미타를 부르지만 마음은 산란하다면, 망자는 혹 조금의 고통은 줄어들 수 있겠지만, 도움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15. 기타
질문: 사람이 왕생하기 전에 무엇 때문에 업력이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또 무엇 때문에 원수나 채권자가 찾아올 수 있으며, 그들은 게다가 왕생하는 이 찰나를 선택하는 것입니까?
답변: 세간법이나 출세간법이나 정리(情理)는 모두가 같습니다. 원수나 채권자가 많이 있는데, 그들이 현재 건드리려 오지 않는 것은 바로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며, 아직 출세하지 않았기 때문에 찾아와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돈이 있을 때가 되면 그는 찾아서 빚을 갚으라고 요구할 것이며, 만약 출국하여 이민가려고 한다면, 이미 떠난 후에는 다시는 찾을 수 없으므로 그들은 당장에 바로 올 것입니다.
극락세계에 왕생하려고 하는 것이 극락세계로 이민 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이후에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아직 떠나기 전에 한꺼번에 전부 다 찾아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치입니다. 이러한 도리를 분명하게 알고서 평소에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과 원수가 되는 일을 적게 해야 하며, 이속에는 동물도 포함됩니다. 혹 모기나 개미를 작은 동물이라 생각하여 그것들을 죽여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 또한 하나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왕생할 때 그것들은 찾아올 것이며, 절대로 기꺼이 용서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많은 사람들은 왕생할 때, 아주 편안하게 떠나며, 원수나 채권자가 와서 지나치게 성가시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거사림(居士林)의 임장(林長)이었던 진광별거사가 바로 이러한 경우에 속합니다. 진광별거사가 왕생할 때, 원수나 채권자가 대단히 많았지만, 어째서 그를 장애하지 않았느냐 하면, 그 이유는 그가 매일 경전을 독송하고 부처님께 절을 하여 그 공덕을 원수와 채권자에게 회향하였으므로,
그래서 그들의 맺혔던 마음이 풀어졌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발원하면, 이러한 사람들은 안위를 얻을 수 있어서,「가시요! 서방극락세계에 가서 부처가 되면 다시 돌아와 우리들을 제도해주시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해야만 성가시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원수나 채권자는 그냥 봐주어 용서하지 않습니다.
질문: 불법에서는 열 가지 법계(十法界)를 말하는데, 십법계는 바로 열 가닥의 길입니다. 임종한 이후에 어디로 가게 됩니까?
답변: 임종한 후에 어느 도(道)로 갈 것인지는 반드시 마지막 한 생각에 달려 있지만, 마지막 한 생각이 어떠할 지는 분명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을 닦아 복을 모으고, 공덕을 쌓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목적은 다름 아닌 임종할 때 복의 과보가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복의 과보가 있고, 미혹하지 않고, 전도(顚倒)되지 않고, 의식이 맑고 분명하고, 선지식의 도움이 있다면, 이는 큰 복의 과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복의 과보가 없고, 임종할 때 미혹하고 전도되며, 의식이 맑고 분명하지 않으면, 설사 선지식을 만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며, 틀림없이 악도(惡道)에 떨어집니다. 이번 생에 닦고 쌓은 공덕이 수승(殊勝)하면 내생(來生)의 생활환경은 틀림없이 대단히 수승합니다. 그러나 만약 죄업을 짓게 되면, 내생의 생활환경은 틀림없이 금생보다 못하며, 더욱 고생스런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도(道)에 가서 몸을 받고, 어느 도(道)에 가서 다시 몸을 받아 태어나느냐는 반드시 자신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은 뜻이 같고 도가 부합됨으로 인해 서로가 모이고, 사물은 종류가 서로 같지 않음으로 인해 나누어진다.(人以類聚, 物以群分)」고 하였습니다. 무량하고 무변한 법계에서 어느 법계와 상응하고, 의기가 투합되고 지향하는 바가 같다면, 바로 그 법계에 들어갑니다. 염불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염불당에 오고,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박장에 가며, 춤추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도장에 갑니다. 이것이 바로 가서 몸을 받고, 가서 다시 세상에 태어날 때, 자신이 좋아하는 곳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다르며, 과보 역시 같지 않습니다.
세간에는 확실히 재물(財)과 이성(色)과 명예(名)와 음식(食)과 잠(睡)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탐하고 좋아하는 마음(貪愛心)이 무거운 사람은 귀도(鬼道)와 상응하여 아귀도에 가며, 질투와 성내는 마음이 무거운 사람은 지옥과 상응하며, 어리석어 지혜가 없고, 시비(是非)와 사정(邪正)과 선악(善惡)을 분별할 줄 모르면 축생도와 상응합니다.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알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덕행을 지키면 사람의 몸을 잃지 않으며, 내생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만약 도덕과 이념(理念)이 높으면 천도(天道)에서 가서 태어날 것이며, 염불의 도리를 알아 한 마음 한 뜻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으며, 이것이 가장 수승한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 다시 몸을 받아 태어난다 해도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과는 전부 비교할 것이 없으며,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들이 모두 찬탄하십니다. 불법에서는 십법계(十法界)를 말하고 있으며, 우리는 불법계(佛法界)를 선택할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부처님의 찰토(刹土)는 무량하고 무변한데, 어느 부처님의 찰토(刹土)에 가겠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미타불의 정토(淨土)를 선택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우리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봉행하면, 설사 재난이 앞에 닥치고, 핵이 공중에서 핵폭탄이 공중에서 터질지라도, 마치 연기를 보는 것과 같으며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부처가 있어서 죽은 후에 서방 극락세계에 갈 것이라는 분명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공포와 망상을 멀리 여위고」재난이 앞에 와도 두렵지 않을 수 있어야만 스스로가 마음대로 주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재난이 앞에 나타날 경우, 놀라서 허둥지둥하고, 두려워하기만 하면, 바로 삼악도에 갑니다. 불법을 배우는 사람은 이러한 공부를 연습하고 훈련하여 어떤 재난이 앞에 닥쳐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이 안정되고, 주재가 있으면 틀림없이 가기에 좋은 곳이 있습니다.
질문: 어떻게 연로하신 부모님을 도와 불교에 대해 바른 믿음을 일으켜 임종할 때 선연(善緣)을 만나 염불하여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시도록 할 수 있습니까?
답변: 부모님을 서방 극락세계에 보낼 수 있다면, 이것은 큰 효도이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 중에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습니다. 부모님이 서방 극락세계에 가시어 부처가 되신다면, 영원히 윤회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또한 영원히 십법계를 벗어나게 됩니다. 염불하는 동학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노인에 대해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이것은 큰 효도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모님께 영향을 주어야 하느냐 하면, 반드시 스스로가 진실로 행하되, 자신부터 행하고, 내 마음부터 행하고, 내 몸부터 행하여 부모님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특히 기회를 잘 잡아야 합니다.
부모님이 좋아하는 때나, 혹은 식사를 하실 때나, 한가하여 여우가 있을 때에 염불하여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는 도리와 왕생한 수승한 과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드려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정토성현록(淨土聖賢錄)》이나《왕생전(往生傳)》은 당연히 근대에 염불하여 왕생한 서상(瑞相)이 희유(希有)한 예로 가장 좋으니, 이러한 것들을 들려주면 매우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많이 들려주어 그분들이 염불하여 왕생하는 것이 어느 것과도 비할 데가 없는 수승한 것임을 알도록 권해야만 그분들이 비로소 모든 인연을 내려놓고 일심으로 오로지 염불만을 할 수 있습니다.
질문: 부모님께서 연세가 많으시며, 게다가 노인치매 증세와 비슷한 증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 경우에는 어떻게 화해(和解)시켜야 합니까?
답변: 이런 경우는 매우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반드시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며, 공덕을 쌓아서 부모님께 회향해야 합니다. 평소에 회향할 때 만약 구체적인 공덕이 없으면 이러한 회향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며, 공연히 몇 구절의 경전의 문구를 독송하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으며, 회향한다 해도 모두 헛수고일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공덕은 바로 경전의 가르침에 따라 봉행하는 것입니다.《지장경》의 바라문 여인이나 광목 여인이 바로 좋은 본보기이며, 이 여인들은 진정으로 닦고, 진정으로 행하여, 진정으로 공덕이 있었습니다.
바라문 여인은 염불한 시간이 단지 하루 밤과 낮이었을 뿐이지만, 그녀는 염불하여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에 이르러 선정 속에서 귀왕(鬼王)이 그녀를 보살이라 부르고, 뿐만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가 이미 천상에 태어났다고 전해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만약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지옥은 볼 수가 없으며, 단지 보살만이 지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의 진실과 정성을 알아야 합니다.《아미타경》에서 말하길, 「혹은 하루나, 혹은 이틀이나, 혹은 삼일이나(若一日, 若二日, 若三日)」라고 하였습니다. 진실한 마음과 정성스러운 마음은
하루 밤낮 동안에 범인을 바꾸어 성인이 되는(轉凡成聖)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공덕을 모친에게 회향하여, 그녀의 모친이 천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광목 여인은 꿈속의 경계에 있었으며, 공부는 약간 모자랐는데,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공부성편(功夫成片)의 경지이었으며, 일심(一心)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일심(一心)을 얻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보살입니다. 그러므로 광목 여인의 모친은 여전히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왔으며, 빈천한 집안에 태어났고, 수명은 겨우 13살이었으며, 다시 몸을 받아 태어났으나, 바라문 여인의 모친처럼 그렇게 수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회향은 진실한 공덕이 있어야 하며, 진실한 공덕이 없는데 무엇을 가지고 회향하겠습니까? 마음이 진실하고 정성스러워야 하며, 절대로 조금의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진실하고 정성스러운 마음(眞誠心), 청정한 마음(淸淨心), 평등한 마음(平等心)으로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진정한 무량한 공덕입니다. 지금부터는 정법(正法)이 오래 머물도록 하기를 위해, 또 고통 받는 중생을 두루 제도하기 위해, 남들을 위해 일하고, 절대로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이러한 공덕은 매우 큽니다.
그러나 만약 여전히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고,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오만하다면, 어떻게 행하든지를 막론하고 공덕은 말할 것이 못되며, 단지 조금의 복덕이 있을 뿐입니다. 《육조단경》에서 이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강설하였는데,「이 일은 복으로는 구제할 수 없습니다.(此事福不能救)」생사의 대사는 복덕으로는 구제할 수 없으며, 공덕에 의지해야 하며, 공덕은 모든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질문: 귀의증(歸依證)이 망자를 따라 국토에 들어갈 있는지에 대해 가르침을 청합니다.
답변: 귀의증(歸依證) 위에 불상(佛像)이 찍혀 있지 않으면 되지만, 만약 불상을 찍어놓았다면 안 됩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선조(先祖)의 귀의증이 남아 있다면, 또한 가장 좋은 기념입니다. 만약 자손들 역시 불법을 공부한다면, 귀의증을 불상의 옆에 봉안해도 좋으며, 이것이 바로 효도하는 마음이고, 효도하는 생각입니다. 항상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고, 자신이 닦아 쌓은 공덕을 그분들에게 회향하고, 또 항상 자신을 일깨워 악을 끊고 선을 닦게 할 수 있습니다.
질문: 망자의 관속에 약간의 향탑(香塔), 침향시(沈香柴), 선화(鮮花)를 놓거나, 혹은 고사지전(庫私紙錢)을 놓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이치에 맞고 법에 맞는 것입니까?
답변: 관속에는 지전을 놓을 필요는 없으며, 약간의 건시(乾柴)와 침향(沈香)을 놓는 것은 매우 좋습니다. 출가법사가 세상을 떠날 때에는 관목 속에 모두가 이러한 것들을 넣으며, 지전은 필요 없습니다.
질문: 내몽고에서는 망자를 화장터로 보낼 때, 번개(幡蓋)를 들고 있는데, 그 위에는 불보살의 명호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법에 맞습니까? 응당 어떻게 해야 망자의 가까운 사람이나 친구들로 하여금 신심을 일어나게 할 수 있습니까?
답변: 각지의 풍속습관은 다르며, 친척과 친구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면, 그 지역의 예속(禮俗)으로 해야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모두 좋아합니다. 만약 다른 방식을 쓰고자 한다면, 우선 반드시 설명을 해주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언짢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친척이나 친구로 하여금 신심을 일어나게 할 수 있으려면, 망자의 영향이 매우 큽니다. 만약 망자의 수행이 법에 맞으며, 세상을 떠날 때 상서로운 모습이 희유(希有)하였다면, 사람들이 이를 보고서 곧 신심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 만약 감응하는 사건이 있었다면, 이 역시 사람들로 하여금 신심을 일어나도록 하기에 충분합니다.
질문: 죄를 범한 사람이 임종하기 전에 자신의 기관(器官) 팔아서 받은 돈을 가족에게 남기었고, 그의 기관(器官)이 생존에 필요한 사람에게 사용되었다면, 이러한 행위는 마땅한 것인지 어떠한 지를 가르쳐 주시기를 청합니다.
답변: 임종할 때 자신의 기관을 팔아서 그 돈으로 가족을 돕겠다고 생각하였다면, 이러한 마음을 내는 것은 좋은 마음이며, 착한 마음이며, 찬탄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몸이 갈라지고 끊어지는 고통을 생각한다면, 어찌 견딜 수 있겠으며, 또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다음 생에 어느 도(道)에서 몸을 바꾸어 다시 태어나는 것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신중해야 합니다.
불교 경전에는 사람이 목숨이 끊어진 후에 신식(神識)은 대체로 8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몸을 떠난다고 하였습니다. 신식이 떠난 후, 몸은 완전히 물질에 속하는 것이어서 아프고 가려운 감각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만약 신식이 떠나지 않았다면, 비록 이미 숨이 끊어졌고, 심지어 뇌가 죽었다고 선포하고, 맥박과 호흡 또한 멈추었을지라도, 여전히 고통을 압니다. 이때 기관(器官)을 가르고 끊는다면 후회하면서 성내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성내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반드시 악도에 떨어질 것이니, 중요한 것은 이점에 있습니다.
편집 후기
이 책은 도사(導師) 정공(淨空) 노법사(老法師)의 강연내용에서 절록한 것입니다. 강연한 내용들을 모아서 정리한 후에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을 채택한 다음, 대중들에게 공양하기 위해 인쇄하여 유통하였습니다. 개시(開示) 중에서 도사(導師)께서는 임종할 때의 보살피는 방법과 조념하는 방법은 마땅히《어떻게 염불하여 물러나지 않고 부처가 되는가?(怎樣念佛往生不退成佛)》하는 책속에 적혀있는 방법을 준칙으로 삼을 것을 재삼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발심하여 조념하는 정종동수(淨宗同修)는 이 책을 열독하는 것 이외에도, 반드시《어떻게 염불하여 물러나지 않고 부처가 되는가?(怎樣念佛往生不退成佛)》를 참고하여 자세히 열독하셔야 합니다.
화장정종학회강기조(華藏淨宗學會講記組)는 삼가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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