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자살하면 사후가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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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젊은이가 전화가 왔습니다.
20대 초의 남자인데 지적장애인 이었습니다.
“스님 질문이 있습니다.
자살하여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질문은 정말 자살하면 사후가 궁금하다는 것 보다
현재 자신의 괴로움을 표현하고
괴로움의 탈출구를 찾는 마음이 강합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먼저 많은 질문을 되묻는 것이 좋습니다.
“전화 주신 분은 어디에 사세요?”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소득이 얼마이요, 누구와 살고 있지요?”
“현재 사는 것이 힘이 많이 드는가요?”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세요?”라고
되묻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이나 처지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자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 위 사례 주인공은 어느 지방에 살고 있는
20살의 지적장애인으로 청년입니다.
그는 도서관에서 하루 4시간 근무로 한 달 60만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장애인을 대하는 세상의 눈길이 따갑고
사는데 허무감을 느껴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신도 돈을 많이 벌고 가정을 이루고 살고 싶은데
자신의 처지로는 불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종교단체가 자살을 하여도 하느님만 믿으면
천국에 태어난다는 말을 듣고 그것이 사실인지
필자에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필자가 자살에 대한 내용을 게재한 것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전화가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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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장애인이라 너무 어려운 이야기는 할 수 없었습니다.
“법우님 지금 많이 괴롭지요?”
“네, 스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습니까?”
“네, 스님”
“그러면 매일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세요.”
“??”
“아미타불은 극락에 계신 부처님 이름입니다.
아미타불의 뜻은 한 없이 밝다는 뜻입니다.
지금 법우님의 마음은 괴롭고 어둡습니다.
그래서 아미타불을 계속 외우면
내 마음이 밝아져 괴로움도 저절로 사라집니다.
한 번 따라해 보세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잘 했습니다. 법우님
그래서 누가 나를 괴롭혀도 ‘나무아미타불’
내 마음이 우울해도 ‘나무아미타불’
내 마음이 슬퍼도 ‘나무아미타불’
부모님이 나를 나무라도 ‘나무아미타불’
직장에서 사람들이 나를 무시해도 ‘나무아미타불’하세요.
걸을 때도 ‘나무아미타불’
차를 타도 ‘나무아미타불’
아침에 눈을 ‘나무아미타불’
밤에 잠을 자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세요.
그러면 틀림없이 괴로운 마음이 사라질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할 수 있겠어요?
한 번 따라해 보세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잘 했습니다. 법우님
이렇게 아미타불을 부르다가
만약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서
숨이 넘어갈 때도 아미타불을 부르세요.
10번 힘차게 불러 보세요.
그러면 아미타불이 많은 성중을 거느리고
나타나 법우님을 극락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제 잘 알겠지요?”
“네 스님, 나무아미타불”
“법우님 이렇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지 않고
그냥 자살을 하면 지금 법우님이 받는 고통보다
천 배 만 배 더 큰 고통을 사후 세계에서 받게 됩니다.
그러니 더 이상 자살하려고 하지 마세요.
불교에서는 살생이 가장 나쁘다고 합니다.
이보다 백배 천배 더 나쁜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이제 자살할 생각을 절대 하지 마세요.
잘 아시겠지요?
네, 스님. 잘 알겠습니다.
다음에 마음이 힘들면 또 전화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법우님
항상 나무아미타불을 외우세요.
나무아마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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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업業[karma]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업에도 세 가지 업이 있습니다.
몸으로 행동하는 것, 입으로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몸으로 좋은 행동을 하고, 입으로 좋은 말을 하며,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은 선업(善業)이라 합니다.
그러나 신체를 이용해 사람을 해치거나 때리는 것,
입으로 악한 말을 하거나 이간질 하는 것,
생각으로 좋지 않은 것을 마음에 품는 것은
나쁜 업[惡業]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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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의 법칙 중에 인과의 법칙이 있습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법칙입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착한 업을 지으면 선한 과보를 받고
악한 업을 지으면 악한 과보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나쁜 행동을 삼가고,
좋은 업을 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불교에서는 계율로 제정해 놓고,
착한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혹 사람이 나쁜 악업[행동]을 지었다고 가정해봅시다.
다른 종교에서는 ‘신이 용서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불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곧 ‘나쁜 악업을 지은 만큼 그 당사자가 과보를 받는다.’는 진리입니다.
이를 업보라고 합니다.
곧 행위만큼 과보가 따르는 인과응보입니다.
악업으로 지은 업보는 절대로 피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고의로 업을 지을 때는
반드시 그 보를 받나니 현세에 받을 때도 있고,
내세에 받을 때도 있다.”
- 중아함 3권 『사경(思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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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업보에 의해 윤회하는 것입니다.
곧 현세의 좋은 행동을 하면, 다음 생에 좋은 곳이나
경제적 요건을 갖춘 곳에 태어남이요,
그렇지 못하면 축생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현 삶도
과거 자신이 지은 것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업과 윤회 사상이 함께 설명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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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종교에서도 ‘뿌린 만큼 거두리라
[As you sow, so you shall reap].’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불교적인 진리가 아니더라도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원리가 세상의 법입니다.
봄에 장미 꽃씨를 뿌리면 여름에 장미꽃이 피어나고,
호박 씨앗을 심으면 반드시 호박이 열리고 호박꽃이 핍니다.
그런데 나쁜 행동을 했는데도 떵떵거리고 잘 사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착하게 사는데도 늘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과응보 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이 들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선악이나 악업으로 인한 과보는 어느 시간,
어느 생에서도 반드시 받게 되어 있습니다.
<법구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악의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에는 악한 사람도 복을 받는다.
그러나 악의 열매가 완전히 익었을 때 악인(惡人)은 반드시 죄를 받는다.”
“선의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에는 선한 사람도 재앙이 따른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완전히 익었을 때, 선인(善人)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
“ ‘그것을 해도 화가 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조그만 악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비록 한 방울 한 방울이 적을지라도
그 물이 고여 큰 항아리를 채우나니,
이 세상의 큰 죄악도 작은 악이 쌓여서 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자비불교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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