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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가 모친을 극락정토로 보내드리며 (혜산스님)

慧蓮혜련 2020. 4. 21. 20:39


속가 모친을 극락정토로 보내드리며 – 글을 시작하며

(혜산스님 글)


나무아미타불_()_

오늘이 벌써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3일 전인 2019년 328일 목요일, 저는 서울 종로에 위치한 법련사에서 속가 모친(곽순영/천수화 불자)49재 막재를 마치고 오늘 새벽에 일어나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약 한 달 전에 이 카페 (나무아미타불 http://cafe.daum.net/amtb)에 첫 글을 올렸을 때 막재를 마친 후 제가 어떻게 모친의 임종을 지켰으며, 기도를 했는지 글을 올리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또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글을 올립니다.

 

방대한 양이기에... 부득이 시간 순서대로 나누어 핵심만을 간략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속가 모친을 극락정토로 보내드리며 – 1. 임종 전(前)


1. 모친께서는 서울대병원에서 약 1년간 백혈병 투병을 하셨습니다. 저는 2017년 가을 티베트 사자의 서를 그림으로 그려서 쉽게 풀이한 죽음에 부치는 편지를 엮어서 책으로 내면서 죽음에 임박하여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등의 그 중요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2. 작년 가을 의료진으로부터 치료가 힘들다는 진단이 나오자 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말고 극락왕생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고 모친과 속가 부친 및 형을 설득하여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고 임종이 다가올 때 중환자로 옮기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기로 의료진에게 서약을 했습니다.


3. 그리고 그때 저는 모친께 극락왕생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쉽게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대학원(동국대 불교미술) 수업과 간병을 제외한(부친과 형, 그리고 제가 교대로 간병을 하였습니다) 모든 시간을 그림 작업에 몰두하여 10점의 그림을 완성하였습니다.

 

4. 그리고 10개의 그림들이 완성 되는대로 하나하나 간략한 설명(정토로 가는 열걸음)과 함께, 왕생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강조하였습니다. 모친께서는 금생의 마지막 힘을 다하여 발원문을 따라하고 염불하는 등, 저와 함께 극락왕생의 정업(淨業)을 쌓았습니다.

 

5. 이와 더불어 모친께서 믿음과 발원을 일으키는 데 큰 힘이 된 것을 대표적으로 꼽자면 가장 먼저 인광스님의 가르침인 임종삼대요의 가르침, 그리고 이 카페의 여러 자료들(왕생담, 영상, 음악 등)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6. 특히 광흠스님께서 연꽃을 나투신 서상과, 201751일 중국 항저우 미타촌에서 서서 왕생하신 노보살님의 이적. 그리고 유소청 보살님의 임종 시 왕생을 증명하신 영상(특히 마지막에 손으로 연꽃을 만드시는 모습과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이 어머니께 큰 환희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들(극락세계는 나의 집, 아미타부처님 접인하시니, 아미타부처님께 올리는 참회가 등)은 모친께서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속가 모친을 극락정토로 보내드리며 – 2. 임종 시(時)


앞서 <1. 임종 전()>에 이어 이번에는 시간 순으로 <2. 임종 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작년 가을 이후와 연말을 힘겹게 넘기시고 올해 초 이제는 정말로 임종을 준비해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 병원 내 호스피스 상담실을 가서 물어보니 일반 병실(모친께서는 1년 내내 6인실에서 투병 생활을 하셨습니다.)에서는 사망 선고 후 1시간 이내에 영안실로 보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2. 사망 선고 후 최소한 8~12시간 정도 망자를 움직이지 않고 조념염불 등 임종자를 극락왕생으로 인도하는 것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인광스님의 임종삼대요등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3. 이에 저는 1월 말부터 모친께 조금이라도 상태가 안 좋아지면 1인실이나 특실로 이동해서 그 곳에서 임종을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야지만 사망 선고 후 영안실로 바로 보내지는 것을 막고 최대한 조념염불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리고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한 2/8 금요일. 저는 밤새 간병하신 아버지와 교대하기 위하여 오전에 병실에 도착하였고, 의식이 분명한 모친과 점심 무렵에 단 둘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속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 하였습니다. 모친께서는 이미 사바세계에 대한 미련을 놓으시고 마음의 준비를 하신 상태였습니다.

 

5. 이때 특히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꼭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호스피스 상담사로부터 조언을 받은 것인데, 투병 끝에 임종하는 환자들은 대개 자신도 모르게 무력해지고 지쳐가게 됩니다. 이때 가족들로부터 어머니(혹은 아버지, , 누나 등)의 삶은 너무도 훌륭했고 가치 있었으며, 우리 가족 모두 당신으로 인해 행복했습니다.”와 같은 말을 통해 임종자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 역시 이러한 말을 모친께 들려드렸을 때 모친께서 행복해하신 얼굴과 제게 하신 말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6. 모친께서는 저와 마지막으로 대화(사실상 이 대화가 유언이었습니다.)를 나누시고 제게 병실을 옮겨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오늘을 넘기지 못하실 것을 예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달라고 하시더니 그 중에서 영정사진으로 이 사진을 하라며 직접 골라주셨습니다. 1인실이 만실이어서 특실 가운데 가장 싼 병실로 오후 3시경 모친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7. 특실로 옮긴 후 모친은 사자의 서에서 설한 임종중음의 단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모친은 처음에 덮여 있던 이불을 걷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돌연 춥다고 이불을 덮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불을 덮고 걷고를 반복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이 사대(지수화풍)가 소멸될 때의 증상이었습니다.

 

8. , 지대가 소멸될 때에 몸이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불을 걷으라는 것이었고 다음 단계에서 수대가 분해될 때에는 몸이 추워지기 때문에 이불을 덮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조념염불 때 제가 만든 책(죽음에 부치는 편지)을 모친의 귀에 대고 읽어드릴 때 해당 페이지(정확히 47페이지)에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9. 그 순간에 부친과 의료진은 계속해서 산소 수치를 높이고 이불을 덮거나 걷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었으나, 저는 마침내 때가 왔음을 직감하였습니다. 급히 근무 중인 형에게 무조건 오라고 연락을 하였고, 30~40분 후 형도 병실로 도착을 하였습니다. 모친은 도착한 형의 얼굴도 알아보시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10. 이처럼 모친은 추위와 압박을 느끼시고는 곧 호흡이 약해지고 이내 더욱 깊은 임종의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친의 생전 마지막 육성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꼬마아이가 산수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선생님을 빤히 보면서 이 문제 어떻게 풀어요?” 라고 묻듯이 저를 보면서 딱 네 마디를 하셨습니다. “... 어떡해..?!”

 

11.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제게 도움을 청하는 그 음성을 듣는 순간에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이 모친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슬픔이나 당황 등의 감정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제가 그린 그림 중에서 모친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그림(연화생)을 모친께 보여드리며 오직 정토왕생만을 기억하라고 강조하였고, 모친은 그 그림을 응시한 채 눈을 스르륵 감으셨습니다. 이후 눈의 초점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음을 확인하고 저는 그림을 모친의 배개 맡(정수리)으로 옮기고 모친의 귀에 대고 오직 나무아미타불만을 염불하였습니다.

 

12. 임종의 순간 부친께서도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신 상태였기에 체념한 듯이 멍한 상태로 멀찍이 서 계셨고, 형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특실 안의 화장실로 몸을 피한 상태였습니다. 주치의는 간단한 확인 후 사망 선고(1804)를 하고는 병실을 나갔습니다. 부친과 형도 장례식장 준비 등의 일을 진행하기 위해 병실을 나갔고, 이제 병실에는 오직 저와 모친의 시신만이 남은 상태였습니다.



속가 모친을 극락정토로 보내드리며 – 3. 조념(助念) 염불



앞서 <1. 임종 전()><2. 임종 시()>에 이어 시간 순으로 <3. 조념(助念) 염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지금 생각해봐도 그 날 오후에 6인실에서 특실로 옮긴 것은 가장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주치의에게 사정을 말하고 18시부터 다음날(2/9 토요일) 06시까지 12시간 동안 아무도 병실에 들어오지 않을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습니다. 그렇게 제가 12시간 동안 모친의 시신을 눈앞에 두고 행하였던 일들을 말씀드립니다.

 

2. 우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발원문을 읽었습니다. 이 발원문은 모친께서 투병 중에 제가 직접 간략하게 만들어서 함께 낭송했던 발원문입니다.

 

3.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계속해서 귀에 들려드렸습니다. 염불의 운곡 역시 투병 중에 가장 좋아하신 운곡을 중심으로 염송하였으며, 부득이 화장실을 가거나 할 때에는 핸드폰 유투브 속에 염불을 틀어서 한 순간도 귓가에서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장시간 한 후에는 모친께서 생전에 좋아하신 광명진언을 중간 중간 하기도 하였습니다.

 

4. ‘티베트 사자의 서의 가르침 가운데 임종중음의 내용과 망자를 위한 기도문 등을 읽어드렸습니다.(이 부분을 읽으면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머니께서 보이셨던 증상 이불을 덮고 걷었던- 이 임종에 들어온 순간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와 더불어 아미타경을 독송해 드렸습니다.


5. , 정리하자면 우선 A. 극락왕생 발원문 후에 B. 염불 및 광명진언 / C. 사자의 서 및 아미타경 독송입니다. 12시간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BC를 반복해서 할만큼 여유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12시간 동안 모친의 몸에서 제가 직접 체험한 서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6. 우선 모친께서는 (대게 그러하듯이) 임종의 순간 숨을 입으로 얕게 쉬셨기에 사망 선고의 순간 입을 살짝 벌린 상태였습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입을 닫게 해드리기 위해 턱에 살짝 힘을 주었는데 움직이지 않기에 이내 포기하고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귀에 대고 위에서 말씀드린 기도만을 오직 일념으로 행하였는데, 3~4시간 정도가 지나 무심결에 입을 보니 미소 지은 모습으로 스스로 다물고 계셨습니다.

 

7. 다음으로 체온의 변화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종자를 사망 선고 후 즉시 움직이지 않고 최소한 8~12시간 정도를 두고 염불만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그 시간 동안 임종자 몸 안의 숨이 서서히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흔들거나 이동하거나 하는 등의 방해를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빠져나갈 때 중요한 것이 바로 나가는 장소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사자의 서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8. 이처럼 망자의 근본적인 아주 미세한 숨’, 이것을 흔히 마음, 영혼, 또는 불성이라고 해도 됩니다. 지금 여기서 그러한 것을 상세히 따지지는 않겠습니다. 이처럼 그 이 나갈 때 최상의 출구가 바로 정수리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는 발바닥과 항문, 소변 구멍 등입니다. 대체적으로 나가는 방향이 아래에서 위(정수리)로 나갈수록 좋다고 하고, 위에서 아래로 나갈수록 좋지 않다고 합니다.

 

9. 모친의 시신에 손을 대고 아주 조심히 체온을 느껴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식은 곳이 발바닥과 무릎, 손바닥 등이었습니다. 이윽고 배, 심장, 이마 등이 식었고, 가장 최후까지 정수리에 열기가 머무름을 확인하였습니다.

 

10. 이때 또한 신기한 것은 정수리의 열기가 자칫 식어가는 것이 느껴질 때, 모친의 귀에 대고 몸 안의 모든 의식과 숨을 정수리로 보내세요. 정수리에 어머니께서 좋아한 그림이 있어요. 정수리로 나가셔서 제가 그린 그림 그대로 정토에 연꽃 속에서 왕생하세요.” 라고 간절히 속삭이면, 실제로 정수리에 다시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1. 모친은 아침 6시까지도 오직 정수리에만 열기가 살짝 남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12시간이 마치 찰나와 같이 지나가고 아침 6시가 되자 문이 열리고 영안실 직원이 이제는 영안실로 옮기셔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제는 충분히 잘 인도했다고 확신하였기에 알았다고 동의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식 침대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2. 바로 그때, 제가 12시간 동안 귀에 대고 기도할 때 지금까지 멀쩡하던 귀와 코에서 노란 액체(황수)가 흘러내렸습니다. 정말 기도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내리는 황수를 보고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왜냐면,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임종중음에 해당하는 부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13. “당신(임종자)의 몸에서 누런 액체가 흘러나올 때까지, 첫 번째 청정한 빛을 일깨워주는 이경전의 가르침을 반복해서 정성껏 독송해 드리겠습니다.”(제 책의 38페이지 번역문) 그 경전의 가르침 그대로 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부처님의 가피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14. 이렇게 12시간의 조념염불을 마치고 제가 직접 직원과 함께 모친의 시신을 이동식 침대에 옮긴 후 영안실로 이동해서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11번 영안실에 모셔드리고 확인 서명까지를 마쳤습니다. 그 시간이 정확히 2/9일 토요일 0630분입니다.


속가 모친을 극락정토로 보내드리며 – 4. 49일 극락왕생 기도



앞서 <1. 임종 전()><2. 임종 시()>, 그리고 <3. 조념(助念) 염불>에 이어 마지막으로 <4. 49일 극락왕생 기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2/9일 토요일 9시 경 빈소가 마련되고 저는 꼬박 밤을 샌 상태로 조문객들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모친의 인연들 및 부친과 형의 문상객이었기에 저는 저와 인연 있는 스님들과 신도분들이 오실 때를 제외하고는 빈소 구석에서 기도를 하거나, 기도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빈소 한 켠에 노트북을 놓고 항상 염불 등을 틀어서 월요일 아침까지 한 순간도 빈소에 염불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였습니다.(이는 12시간의 조념염불과 마찬가지의 원리입니다.)

 

2. 특히 문상객들이 오지 않는 23시 이후부터 아침 6시까지 마치 하루 전 모친의 주검을 앞에 놓고 조념염불을 하였던 것처럼 홀로 (부친과 형은 뒷방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빈소에서 간절한 기도를 행하였고, 2/10일 일요일 아침 6시 경 1시간 남짓 너무도 피곤하여 의도치 않게 살짝 잠이 들었는데, 모친께서 투병하실 때의 삭발을 하시고 아픈 모습이 아닌 예전의 건강하신 모습 그대로 하얀 옷을 입으신 채 공중에 살짝 뜬 상태로 벽 혹은 나무 같은 것에 기대신 채 누워 있는 저를 지긋이 바라보는 모습을 꿈속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3. 꿈에서 깨어난 순간 그 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혼자서 텅 빈 빈소에서 한참을 흘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임종의 순간부터 12시간의 조념염불까지 단 한 방울의 눈물이나 슬픔 등의 감정이 없이 어떻게 그렇게 집중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사망 후 8~12시간 이내)에 간절히 극락왕생을 발원하면 다른 생각과 감정 등은 사라지는 것이 분명합니다.

 

4. 정신을 차린 후 모친께서 차디찬 영안실의 그 몸뚱이 속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를 벗어버리시고 극락으로 가시기 전에 빈소에서 저를 보고 또 제가 하는 모든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에 월요일 아침에 고향의 납골당으로 가기 전까지(발인) 또 다시 밤새 기도를 하였습니다.

 

5. 그리고 월요일 새벽 5시 경 발인 전에 짐을 싸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밤을 샌 상태이고 쪽잠을 자고 나오신 부친과 형님도 짐을 싸기 시작하였습니다. 빈소의 영정 위에 평소 제가 그린 그림 가운데 모친을 떠올리며 그린 '연화생'을 포함하여 모친께서 좋아하셨던 3점의 그림을 놓았습니다. 다른 짐들보다도 가장 먼저 그림을 정성스레 포장지로 싸는데 제 왼쪽 어깨 뒤에서 앞쪽으로 서늘한 기운이 몸을 통과하여 지나가는 것이 느껴지면서 왼쪽 귀에 약간의 사투리가 섞인 모친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지금도 생생한 그 다섯 마디. “잤나.. 안 잤나...?”

 

6. 제가 또 다시 잠을 자지 않고 기도하자 염려가 섞인, 그러나 아주 평온하고 낮은 음성으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딱 1시간 눈붙이고 기도한 것을 내내 지켜보시고 빈소에서 짐을 싸는 그 순간에 바로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7. 49재를 모시기로 한 서울 종로에 있는 법련사의 스님들이 오셔서 월요일 아침 발인제를 마치고 모친의 관을 운구차에 싣고 모친의 고향인 대구의 화장터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대구까지 3~4시간 동안 잠깐 눈을 붙일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신기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8. 이번에는 오른쪽 귀 속에서 계속 염불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입 밖으로 염불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저절로 귀 속에서 염불소리가 정말 이어폰을 끼고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계속 맴도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다른 염불소리도 아니고 투병 중에 저와 함께 염불했던 가장 좋아했던 그 염불소리가 말입니다. 저와 함께 화장터로 가고 계시다는 생각이 나자 도저히 잠들 수가 없어서 버스에서 이동하는 내내 귀 속에서 들리는 염불을 마음의 귀로 들으며 염불을 하였습니다. 이런 경험은 지금껏 10년 넘게 나름 정토행자라고 염불을 해왔지만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9. 그렇게 화장을 마치고 저는 3/28일 막재까지 매일 법련사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는 조념염불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A. 극락왕생 발원문 이후에 B. 염불 및 광명진언 / C. 사자의 서 및 아미타경 독송. 이것을 시간과 체력이 버티는 한 영정사진 앞에서 쉼 없이 하였습니다.

 

10. 제가 딱 하루 빠진 날은 2/22일 금요일 제 본사인 송광사 방장 보성 큰스님의 다비식에 운구를 하기 위해 참여한 날이었습니다. 제가 2002년 송광사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늘 뵈었던 가장 큰 어른스님이셨으며, 방장스님께서 평소 율원에 매우 애정이 많으셨기에 유언으로 율원스님들한테 운구를 부탁하셔서 송광사 율원 졸업생인 저는 운구를 하기 위해 가야만 했습니다.(나중에는 선방스님 10분과 율원 졸업생 10분 총 20명의 스님들로 운구조가 구성되었습니다.)

 

11. 운구조는 키 순서로 정해져서 공교롭게도 저는 앞에서 두 번째의 안쪽에 서게 되었는데, 어깨로는 끈을 짊어진 채 한 손으로는 관을 덮는 방장스님의 가사가 날아가지 않도록 잡고 가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이렇게 영결식을 마치고 다비장으로 가는 약 30분 동안 운구를 하며 속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방장스님.. 부디 10일 전에 먼저 운명하신 저의 모친이 혹시라도 중음계에서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계시거든.. 큰스님 법력으로 함께 손 잡고 극락으로 같이 모셔가 주세요...”

 

12. 제가 고개만 오른쪽으로 돌리면 바로 30cm 이내에 방장스님의 오른쪽 귀가 있기에 저는 분명히 듣고 계시다고 믿고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운구를 마치고 저녁 늦게 서울로 올라와 잠에 들었는데, 그 날 꿈에 방장스님께서 꿈에 나오셔서 그 특유의 사투리 섞인 음성으로 껄껄 웃으시고는 환한 미소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 모친 49재 잘 하그래이~!”

 

13. 꿈 속에서 방장스님까지 친견한 후 저는 더욱 발심하여 계속해서 기도를 하였고, 특히 잠들기 전 제 이부자리 서쪽 벽에 걸어 놓은 아미타불 앞에 매일 무릎을 꿇고 발원하였습니다. “부디 49재 막재를 마치기 전에 꿈속에서라도 모친을 만나 잘 계시냐고 한 번만, 부디 한 번만 대화하게 해주십시오...”


14. 아미타불께서 감사히도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어 저는 49재 동안 모친을 총 7번 동안 꿈 속에서 만나는 희유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2002년에 출가하였으니 올해로 출가한지 17년 정도가 되었는데, 지난 2018년까지 약 16년 동안을 통틀어도 모친의 꿈을 꾼 것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49일 동안에 앞서 말씀드린 빈소에서 꾸었던 꿈 속에서 뵌 것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초재(2/14.) 이후 막재 당일(3/28.)까지 7번이나 보았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미타불의 가피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15. 하지만 저의 기도와 수행력이 부족한 탓으로 꿈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고픈 말은 전혀 하지 못한 채 깨고 나서야 후회하고 또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3/27 수요일 저녁, 즉 막재 전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저녁까지 기도를 마친 후, 문득 종로(안국역)에 위치한 법련사에서 멀지 않은 혜화역에 있는 서울대병원을 가야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친께서 1955~2019년까지 약64년을 사시면서 마지막 1년을 보낸 곳이 바로 서울대병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16. 암병동 10층에 도착해서 백혈병 환자의 병실은 보호자 외에 면회금지 구역임을 익히 알고 있기에 저는 모친과의 마지막 추억이 깃든 병원 10층 복도를 하염없이 걸으며 나무아미타불 염불과 광명진언을 외웠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발원하였습니다. “어머니... 이 곳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아닙니다. 내일이 막재인데 혹여라도 마지막 숨을 거두신 이 병원 그 어디에라도 애착이 있거나 나아가 이 사바세계에 미련이 있다면 부디 다 놓아버리시고 반드시 극락왕생하십시오.”

 

17. 그렇게 병원에서 49재의 마지막 기도를 회향한 후 수요일 밤, 아미타불께 발원을 올린 후에 잠이 들었고 그 날 꿈 속에서 7번째 마지막 꿈을 꾸게 됩니다. 꿈 속에서 모친은 신기하게도 제가 기도한 서울대 병원의 그 병실 침대에 편안히 앉아 계시었고, 병실에는 오직 모친과 저, 그리고 의사 이렇게 세 사람만 있었습니다. 장소만 병실 침대일 뿐 침대 주위에선 밝은 빛이 나고 있었으며, 모친께서는 건강한 모습으로 새하얀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18. 지금도 눈에 보이듯이, 귀에 들리듯이 생생히 기억합니다. 의사가 모친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더 치료하고 싶으신지요..?” 이에 제가 모친께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의견을 여쭈니 모친은 천천히 손사래를 치면서 저는 더 이상 치료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시고 환히 웃으시며 손으로 인사를 하시고 기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갈 때가 되었네요.”


속가 모친을 극락정토로 보내드리며 – 글을 마치며


막재 날 아침에 깨어나 꿈 속에서 모친께서 전해주신 마지막 말을 한참을 다시 떠올리며, 기쁜 마음으로 막재에 임하였습니다. 멀리 불일암에서 제 은사스님께서도 참석을 하시고 또한 49일 동안 세심히 살펴주신 법련사 주지이신 진경스님의 정성스러운 집전 속에서 여러 신도분들의 기도와 함께 막재를 여법하게 모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미타부처님께 매일 밤 잠들기 전 간절히 기도를 올려서 그 기도에 감응해 주시어 7번이나 기회를 주시고 마침내 정확히 49재 당일 모친을 현몽하여 꿈에서 대화를 나누고 정토에서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작별의 인사를 한 것은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전생의 인연으로 인해 고등학교를 마친 해에 일찍 출가(2002)를 하였고, 출가 후에도 비교적 일찍(2007) 정토불교에 귀의하였고, 이후 줄곧 나무아미타불을 놓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을 염하고, 한 손은 정토를 그리고, 다른 한 손은 정토 책을 만드는 것이 제 수행의 전부이고 이 밖의 다른 수행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이러한 원력을 가지고 2017년 가을에 죽음에 부치는 편지 그림으로 엮은 티베트 사자의 서라는 책을 출간하였는데, 이 책에 담긴 가르침을 임종의 순간부터 49일 동안 간절히 독송해준 첫 망자가 바로 모친이라는 사실이 제게는 참으로... 뜻깊게 다가옵니다.

 

또한 예전부터 정토 그림 전시회를 계획하면서 모친의 막재 전후(3/20~4/2)로 영정을 모신 법련사 내의 불일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막재를 마치고 이렇게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것이 아미타부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의 글을 올리는 것이 당연히 누구도 알 수 없는 저 혼자만의 체험이기에 조금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좋은 자료들을 정성스레 올려주신 이 카페의 여러 정토행자 분들께 받은 은혜를 저 역시 나누기 위해서 지금껏 말씀드린 일들을 알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을 하였고, 아미타부처님과 이제 극락에 계시는 모친께서도 이해하시리라 믿기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진실로 이 모든 것을 제가 직접 겪고서 쓴 것이며, 혹여라도 본의 아니게 제가 지은 허물이 있다면 참회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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