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영혼의 성숙

여고생 영혼의 어리광 / 어느 ROTC장교의 영혼 부탁

慧蓮혜련 2009. 4. 14. 22:17

1.어느 ROTC장교의 영혼 부탁

(광덕스님 글)


이것은 필자가 봉은사를 맡아 있던 1965년 여름의 일이다. 그 해 홍수가 났다. 신문에는 피 해복구공사 중에 장교(중위) 한 분이 순직했음을 알았다. 그 얼마 후 한 노신사 부부가 봉은사를 찾아왔다. 신문에서 본 그 군인의 천도를 의논해 온 것이다. 노부부는 망인의 부모님었다. 7재를 올리기로 한 그 얼마 후 노신사의 이야기다.

"얼마 전 점심을 먹고 잠깐 앉아 있다가 아마 잠깐 졸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역 력합니다. 내 곁에 죽은 자식이 찾아오지 않았겠어요. 나는 멍청히 그 애의 얼굴만 쳐다 보았어요. 그 애는 평상시와 같이 활달했어요.

나에게 하는 말이 '아버지, 어머님을 위로 해 주십시요. 어머님은 제가 죽었다고 저렇게 슬퍼하고 계시는데 조금도 그러실 것 없습 니다. 아버지 저기를 보십시요.' 합디다.

그래 손으로 가르키는 곳을 보니 좀 떨어진 멀 지 않은 곳에 한 세계가 벌어져 있지 않겠어요. 자세히는 못 보았어도 아름다운 동산에 거루고각이 대궐같이 솟아 있었어요.

자식이 하는 말이 '저 집이 멀지 않아 제가 가서 살 집입니다. 이 세상 즐거움이란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아버님 어머님 부디 제 걱정을 하지 말아주십시요.

그리고 아버님은 이제 좀 한가로우시니 어머님을 위로해 주십시요. ' 하지 않겠어요. 사 실 저는 얼마 전까지 시골에서 공직생활(면장이었다)을 하며 살아왔고, 우리집 사람은 아이가 대학에 다니면서부터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서울에 와 있었어요. …"

노부부에게는 아들이란 이 하나뿐이었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ROTC장교로 입대했었다.
그런데 7재가 지난 후 다시 그의 어머니에게도 나타났다. 현몽이었다. 안락처로 간다는 인사였다.



2. 여고생 영혼의 어리광

(광덕스님 글)


그 때는 필자가 범어사 선원에 있던 1951년 여름의 일이다. 산 너머 양산군 동면 내송리 사 베부락에서 중년 부부가 찾아왔다. 맏딸이 갑자기 죽어서 서러워서 왔다.

딸은 동래여고 3년,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두고 바깥마당에 나가더니 차에 밀려 쓰러졌다. 외상 하 나 없는데 혼은 떠나고 없었다고 한다.
그 여학생의 7재는 올려지고 위패는 지정전 한 모퉁이에 안치되었다.

그런데 절에 재식이 겹치는 날이면 병풍이 여럿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쉬울 때 나는 여학생 영단에 펼쳐 있 던 병풍을 다른 곳으로 가져다 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님이 왔다.

망인의 현몽을 전해 온 것이다.
"어제 낮 방에서 비몽사몽간에 애가 보였어요. 그리고 생전에 어리광 부리듯 내 두 무릎에 매달리면서 '스님들 정성으로 제가 아주 좋은 데로 간답니다. 그런데 내 곁에 병풍은 왜 자주 가져가지요?' 하며 못마땅해 하더군요."

이 사실은 필자만이 아는 사실이다.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학생 영단에 놓으려고 다 홍빛 산리라를 몇 번이고 꺽어왔다. 그 후 7재를 마친 후에도 부부는 오래도록 절에 와 서 염불을 하고 설법을 들었다.

7재 후에 죽은 딸이 부모에게 기쁜 얼굴로 현몽하며 '이제 저는 아주 좋은 곳으로 태어납니다. 엄마 아빠 안녕'하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