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향기/윤회와 인과법

전생(前生)을 실증하는 세 가지 방법

慧蓮혜련 2009. 4. 17. 09:35

 

전생(前生)을 실증하는 세 가지 방법 

 

 

현대에 와서 윤회(輪廻)를 증명해 주고 있는 경로는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이 있다.

 

① 전생(前生)을 스스로 기억하고 있는 경우.


② 최면술(催眠術)·자유연상(自由連想)등과 같은 심리학적 기법(技法)으로

    연령을 역행(逆行)시키는 방법.


③ 투시(透視)의 방법으로 현생(現生)의 상황이 벌어진 원인을 전생에서 찾아내는 것.

 

이러한 세 가지 방법이 있지만, 어떠한 방법이 되었건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방증(傍證)이 그 사실을 입증(立證)해 주는 경우에 한하여 학계는 그것을 전생의 실증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1) 전생기억의 경우


다시 말하면 '전생기억'의 경우에는 본인을 직접 전생(前生)의 현장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 사람들을 분간하게 하기도 하고 토지와 가옥들을 설명하게 한다. 또한 전생 시절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하여, 그러한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인정받게 하는 것이다.

 

 이 '전생기억'의 연구로서 가장 유명한 학자는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의 '이안 스티븐슨(Ian Stevenson)'이라고 하는 분인데, 의학박사이자 심리학박사인 이분은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이가 있으면 찾아가 만나겠다고 하였던 바, 수많은 곳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그분들을 만나보고, 그 기억 내용의 방증을 수집하는 과학적 입증작업을 전개하였다.

 

 그래서 그 중 20명의 두드러진 실례를 책에 수록하여 간행하였다. 이 <Twenty Cases Suggestive Reincarnation>란 책에 수록된 내용은 모두 객관적인 증인과 물증들이 증명해 주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 진실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2) 심리적 기법에 의한 경우


다음의 심리학적 기법을 통한 연령 역행에 의해서 전생이 밝혀진 경우 역시, 객관적  입증 자료가 있는 경우에만 그 진실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그 중의 가장 두드러진 예는 미국의 콜로라도주에 살고 있는 '모레이 번스타인(Morey Bernstein)'이라고 하는 사람의 <브라이디 머피를 찾아서(The Search for Bridey Murphy)>라고 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번스타인이 밝혀 낸 것은, 현생을 미국 사람으로 살고 있는 어떤 여성의 전생을 최면술에 의한 연령역행으로 조사하였던 바, 그것은 아일랜드에서 <브라이디머피>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생애였다는 것이다. 번스타인은 여러 번에 걸친 최면실험을 통해 브라이디 머피의 생애에 관한 진술을 받고 그것을 그대로 자료로 해서 신문사 지국에 의뢰해서 사실 여부를 조회(照會)하였던 바,

 

 너무도 정확하게 일치하였다고 하여 본인조차 크게 놀란 것인데, 그 사실을 그대로 책으로 내 놓은 것이 이 책이다. 전생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자, 미국내의 기독교 목사들은 크게 반발하고 일어나서 이 책이 진실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내놓으면서 전생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야말로 참으로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져, 이 번스타인의 저서는 완전히 그 진실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1957년에 초판됨)

 

(3) 투시(透視)의 경우


 
투시에 의한 전생 증명은 미국의 특출한 영능자(靈能者)'에드가 케이시'가 가장 유명하다. 1877년에 미국에 태어나서 1945년 67세로 세상을 떠난 케이시는 금세기최고의 영능자일 것이라고 일러지고 있다. 이 사람에게는 남의 전생을 투시해 볼 수있는 묘한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의학적으로 치료 불가능한 병에 걸려있는 어떤 사람의 경우, 그 원인을 전생에서 찾아서 그것을 제거하니 병이 치유되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소문은 미국 내에 크게 퍼지게 되어 불치의 병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인산인해(人山人海)로 모여들었다.케이시는 전생 투시를 통해 육체에 있는 병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운명상의 여러 문제까지를 밝혀 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것들도 물론 그것이 진실하다는 증거의 뒷받침을 받게 되었다. 케이시의 전생 투시의 건(件)수는 실로 30,000건 이상 이르고 있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그 기록은 미국'버지니아 비치'에 보관되어 있어서 학술적 연구를 위해 어느 때든지 열람할 수 있도록 제공되고 있다. 이 사람의 기록은 여러 학자들이 면밀히 검토하여 재미있고 유익한 결론을 얻어내고  있는데, 특히 미국의 여류 심리학자인 '지나 써미나라'박사는 이 기록의 검토를 통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업(業)'의 문제를 해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1) 현생(現生)과 전생(前生)의 연결


'써미나라'박사가 연구해 본 결과는 인간들의 현생의 여러 가지 상황은 그것이 금생에 새로이 시작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생으로부터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생에 하던 일을 계속하는 사람은 그 일을 더욱 잘 하게 될 것이고, 전생에 하지 않던 일을 하기는 무척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는 갓 태어난 어린 아기의 경우, 그의 전생을 투시하는 것은 금생의 앞날을 예언(豫言)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태어나서 3주가 갓 넘은 아기의 전생을 투시하였다. 이에 대한 대답은 커서 뛰어난 의사(醫師)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아이는 크면서 무척 생물(生物)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는데, 8살 때에는 벌써 해부(解剖)를 하기까지 한 것이다. 10살이 되면서부터는 의학 사전을 탐독하게 되고, 12살 되면서는 홉킨스 대학에 가서 의사 되는 공부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뉴욕의 유명한 실업가였으므로, 의사 되는 것은 찬성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아이의 결심이 강해서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의학을 전공하게 되어, 현재 동부의 의과 대학에 재학 중에 있다. 이러한 것은 전생에 발달되어 온 재능의 잠재능력에 대한 투시의 결과일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비슷한 일은 어른의 경우에도 있었다. 뉴욕에서 전화기술자로 일하고 있던 어떤 젊은 여성은 케이시에게 전생 투시를 의뢰하였던 바, 통신업무에 종사하는 것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는 대답을 받았다.

 

 "당신은 몇 회의 전생을 유능한 예술가로 살아 왔으므로 미술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 하는 것이었다. 당사자로서는 미술가로 전직하는 일은 생각도 안 했던 일이지만, 한 번 시험해 보리라 하고 미술학교에 입학해 보았다. 학교 다니는 동안 놀라운 재질이 발견되어 현재 유명한 상업미술가로 활약하고 있다.

케이시의 투시를 기록한 것을 '영독(靈讀,Reading)'이라고 하는데

 

 이 영독에 의하면 재능의 문제만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에서도 절대적인 지배의 원리는 '인과의 법칙'이라고 한다. 인간들이 경험하여야 하는 고생은 단순히 물질적 결함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생에서의 '업'에 원인이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업은 행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태어나는 조건이나 그 재주가 고르지 못한 것은 조물주가 제 멋대로 그렇게 해 놓은 것이라거나 유전에 의한 것이라고만 볼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의 참 원인은 과거 생의 '업'의 '공과죄(功과 罪)'에 따르는 것이 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고통 또는 부자유도 그것이 형벌(形罰)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목적이 있다고 한다. 병신으로 태어나거나 큰 재앙을 만나는 것도 도덕적인 책임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의 괴로움은 인생의 지혜를 환성 시키고자하는 '장기대학(長期大學)'에서의 교과 과정이라고 써미나라는 결론짓고 있다.

 

2) 죄(罪)와 고(苦)의 상관관계


인생이 경험하여야 하는 괴로움이 '죄'에 원인이 있다고 하는 말을 현대인들은 한갓 미신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케이시의 영독을 연구한 결과로 보면, 비록 그 원인이 현세 에세 발견되지 아니하는 경우라도 인생의 중대한 괴로움의 원인은 죄에 대한 엄격한 인과관계에서 찾아진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행동에 대한 책임을 금생에만 지는 것이 아니라 내생에 대하여도 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배내 장님인 어느 대학 교수가 있었다. 이 사람의 전생 영독은 과거 4생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번은 남북전쟁시의 미국에서, 두 번째는 십자군 시대의 불란서에서, 세 번째는 BC1000년경의 페르시아에서, 그 전은 침몰되기  전의 아틀란티스 대륙에서 살았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이 장님인 것은 페르시아에서 살았을 때의 죄에 대한 보답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때에 야만족이었는데, 그 종족은 적군은 잡으면 인두로 눈을 태워 버리는 습관이 있었다고 하며, 이 사람은 그 일을 담당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뿌린 씨를 꼭 거두게 마련이고 뿌리지 않은 열매는 결코 거두는 법이 없다고 한다.

 

 써미나라 박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인생이란 영원한 연속이다. 그리고 육체는 영혼을 깃들여 주고 있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인생의 경험은 나의 과거 생의 결과이며, 현재의 나의 행위는 내생을 규정짓는다. 인생은 영원히 밝은 것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절망하거나 슬픔에 잠겨 있을 이유가 없다. 인생은 영원히 성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