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과 아미타불/극락에 관한 장

[스크랩] 유심정토 자성미타의 만용

慧蓮혜련 2009. 4. 19. 10:21

서산대사(西山大師)



육조 혜능스님께서는
"부처는 자기 성품 속에서 이룰 것이지
자기 밖에서 구하지 말라"
고 가르치신 바가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본심(本心)을 바로 가르친 것이다.
이치대로만 말한다면 참으로 그렇지만,

현상으로는 아미타불의 사십팔원(四十八願)이 분명히 있고,
극락세계가 확실히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일심으로 열 번만 염불하는 이도
그 원의 힘으로 연꽃 태속에 가서 나고

쉽사리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삼세의 부처님들이 다같이 말씀하시고,
시방세계의 보살들도
모두 그 곳에 태어나기를 발원했던 것이다.

더구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한 사람들의 행적이 분명하게 전해오고 있으니
공부하는 이들이 잘못 알아서는 아니된다.

아미타(阿彌陀)란 우리말로 '끝없는 목숨(無量壽)'
또는 '끝없는 광명(無量光)'이란 뜻으로,
시방삼세에 첫째가는 부처님의 명호이다.

수행시의 이름은 법장비구였다.
세자재왕(世自在王) 부처님앞에서
마흔여덟 가지 원을 세우고 말하기를

"제가 성불할 때에는
시방세계의 무수한 하늘과 인간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작은 벌레까지도 일심으로 제 이름을 열번만 부를지라도

반드시 저의 세계에 와서 나게 하여지이다.
만약 이 원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저는 성불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옛 어른이 말씀하기를
"염불 한 소리에 악마들은 간담이 서늘해지고,
그 이름이 저승의 문서에서 지워지며

연꽃이 금못에 나온다"하였으며,
또한 "어린애가 물이나 불에 쫓기어 큰 소리로 부르짖게 되면
부모들이 듣고 급히 달려와 구원하는 것과 같이,

사람이 임종할 때에 큰 소리로 염불하면,
부처님은 신통을 갖추었으므로
반드시 오셔서 맞아갈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는 부모보다 더 지극하고,
중생의 나고 죽는 고통은 물이나 불의 피해보다도 더 심하다."
라고 하였다.

만일 누가 말하기를
"자기 마음이 정토 (淨土)인데
새삼스레 정토에 가서 날 것이 무엇이며,
자기 성품이 아미타불인데
따로 아미타불을 보려고 애쓸 것이 무엇인가?"
라고 한다면,
이말이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저 부처님은 탐하거나 성내는 일이 없는데,
그럼 나도 탐하거나 성내는 마음이 일지 않는가?
저 부처님은 지옥을 연화세계로 바꾸기를
손바닥 젖히듯 하신다는데,

나는 죄업으로 지옥에 떨어질까 오히려 겁을 내면서
어찌 그걸 바꾸어 연화세계가 되게 한단 말인가?
저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세계를 눈앞에 놓인 듯 보시는데,

우리는 담벼락 너머의 일도 모르면서
어떻게 시방세계를 눈 앞에 본단 말인가.
그러므로 사람마다 성품은 비록 부처이지만
실제 행동은 중생이다.

그 이치와 현실을 말한다면
하늘과 땅 사이처럼 아득하다.
규봉선사가 말하기를

"가령 단박 깨쳤다 할지라도
결국은 점차로 닦아가야 한다."
고 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그러면 다시 자기 성품이 아미타불이라는 사람에게 물어보자.
어찌 천생으로 된 석가여래와
자연히 생긴 아미타불이 있는가?
스스로 헤아려 보면 그냥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임종을 당해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큰 고통이 일어날 때에
자유자재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한 때에 만용을 부리다가
길이 악도(惡道)에 떨어지는
후회막급의 누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마명보살이나 용수보살이 이미 다 조사이면서도
분명히 말씀하여 왕생하는 길을 간절히 권했거늘,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왕생을 부정하겠는가?'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 법문은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세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똑똑히 불러
산란하지 않아야 한다.
이와같이 마음과 입이 서로 합치되는 것이 염불(念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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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대사의 염불관


염불에 무슨 이익이 있나이까?


옛적에 한 사람이 육조대사에게 묻기를 "염불에 무슨 이익이
있나이까?" 하고 묻는 말에 육조대사 답하기를


"일구(一句),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것이 만세의 괴로움을
뛰어 나는 묘도(妙道)요, 불(佛)을 이루고 조사가 되는
정인(正因)이요, 삼계 인천(人天)의 안목이요, 마음을 밝히고
성(性)을 보는 혜등(慧燈)이요, 지옥을 깨뜨리는 맹장이요,
많은 올바르지 못한 것을 베는 보검이요,

오천대장(五千大藏)의 골수요, 팔만총지(八萬總持)의 중요한
길이요, 흑암(黑暗)을 여의는 명등이요, 생사를 벗어나는
방방(良方)이요, 고해를 건너는 배요, 삼계를 뛰어넘는
지름길이요, 최존최상의 묘문이며 무량무변의 공덕이니라.

이 일구, 나무아미타불을 기억하여 염념(念念)이 항상 나타나고,
시시로 마음에 떠나지 아니하며, 일이 없어도 이와 같이
염불하고, 일이 있어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안락할 때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병고가 있을 때에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살았을 때에도 이렇게 염불하고, 죽어서도 이렇게 염불하여,
이와 같이 일념이 분명하면 또 무엇을 다시 남에게 물어서
갈 길을 찾으랴.

이른바 오직 아미타불 지니고 다른 생각 없으면 손 튀길 수고도
없이 서방극락 가리라" 하였다.<禪淨雙修集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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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룡서(王龍舒)


일부 혹자들이 유심정토(唯心淨土) 자성미타(自性彌陀)를 주장하여
극락세계를 부인하려는 이가 있으나 그것은 크게 그릇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서방정토가 이치도 있고 사실의 형적도 있는 것이니
그 이치로 말하면 능히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므로
일체가 모두 청정하니 진실로 유심정토가 되는 것이요.

사실의 형적으로 말하면 실로 극락정토가 있어서 부처님께서 틀림없이
자세히 말씀하셨으니 어찌 헛된 말씀이라 하랴. 사람마다 성불할 수
있는 것이며 또 자성미타란 말도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나

갑자기 이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니 마치 불상(佛像)을 조각할 만한
좋은 재목이 있더라도 불상을 조각한 연후에야 비로소 불상이라
칭할 것이요

재목을 그대로 두고 불상이라고 예배공양 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니 소위 유심이 정토이니 따로 정토가 없고 자성이 미타니
따로 미타가 없다는 것은 옳지 못한 주장이다.

또 어떤 이는 정토가 있는것을 믿으면서 유심설에 구애되어 서방에
왕생 할 것이 없다 하거나 참선은 직접으로 견성 성불하는 것이므로
아미타불을 볼 것이 없다는 말은 모두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저 서방정토는 탐,연,진,치,(貪,戀,瞋,痴)가
없거니와 우리의 마음에도 탐,연,진,치,가 없는가?

또 서방 정토에는 옷을 생각하면 옷을 얻고,음식을
생각하면 음식을 얻으며,고요하고자 하면 고요해지고,
가고자 하면 가는 것 이지마는

내가 옷을 생각하여 얻지 못하면 찬것이 마음을 고달프게 하며
음식을 생각하여 얻지 못하면 주림이 마음을 고달프게 하며

고요하고자 하다가 고요할수 없으면 흩어져 움직이게 하는 것이
마음을 고달프게하며 가고자 하다가 갈 수 없으면 얽매인 것이
마음을 고달프게 하니소위 유심정토라 함은 진실로 이르기 쉽지
못할 것이다.

아미타불은 복혜가 충분히 갖추시고 신통이 광대하여
지옥을 변하여 연화를 만드시는 일이 손바닥을 뒤집기
보다 쉽고,끝이 없는 세계를 보시는 것이 눈앞에 있는것
같거늘

나는 항상 숙업이 깊고 무게가 있어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 하거늘
어떻게 연화로 고쳐 만들수 있으며또 벽 사이의 거리의 일도 알지
못하거늘 하믈며 한이 없는 세계를 볼 수 있으랴.

소위 자성미타라 함은 참으로 이루기가 어려운 것이므로
나의 마음이 정토가 될 수가 있다고 하나 갑자기 될 수는 없는 일이고

나의 성품이 가히 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 하나 벼란간에 될 수는 없는
것이어늘 어찌 정토를 소홀히 생각하여 닦지 아니하며 아미타불을
버리고 뵈옵기를 원치 아니하리요.

정토의 업을 닦아서 아미타불을 뵈옵고 깨닮음을 이루기는 어렵지
않거니와 만약 이 세계에서 참선하여 견성성불하기는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정토를 수행하는 것이 참선에 방해되지 않거늘 어찌하여
참선하는 이는 정토를 소홀히 여기고 닦지 아니 하겠는가.

대아미타경에 말씀하시기를 "시방의 한량없는 보살이 있어
아미타불국에 왕생 하였다."라고 하였거늘
나는 어떠한 사람인데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치 아니하랴
내가 과연 모든 보살보다 뛰어 났다고 생각하는가.

통틀어 말하면 유심정토 자성미타란 말은 많은 사람을 그르치는
것이니라

즉 정토법문을 지송(持誦) 수행하면 사람마다 반드시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속히 윤희를 벗는 것이니

저 거짓과 불성실한 마음이 있는 이로부터
그 거리의 먼 것이 천지(天地)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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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대사>

누가 묻기를 즉심시불(마음이 곧 부처)인데 어찌하여
다시 아미타불을 보려고 하는가 하였더니


답하기를

즉심시불이란 말은 얼음을 가리켜 물이라 하는 것과 같다.즉,얼음이 비록 물이기는 하나
물이 얼어 붙었으므로 태양의 열을 빌려서야 비로소 녹아야 물이 되는 것과 같이

마음이 佛이기는 하나 전체가 어지럽고 어두움속에 있으므로 佛日의 힘을 빌려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어늘 어찌 사리에 어두운 마음만을 고집하고 부처님을
뵈옵기를 원하지 아니하리오.

또 묻기를 즉심정토(마음이 곧 정토)라 하는데 어찌하여
다시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가 하였더니


답하기를

즉심정토라 함은 나무를 가리켜서 기둥이라 함과 같다. 즉
나무가 기둥이 될 수는 있거니와 나무 그대로가 기둥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마음이
비록 정토를 지을 수는 있으나 마음 그대로가 정토는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24시간 일체의 경계(境界)에 대하여 한 털끝 만치라도 잡념,염오심
(染汚心)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곧 예상(穢想:부정한 생각)이 공(空)하지못한
것이어늘 어떻게 즉심정토라 하겠는가.

이와같은 말은 모두 스스로가 속는 것이니 만일 정토에 왕생치 아니하면 유심정토가
끝끝내 드러나지 못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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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파스님)


사람들은 정말 희한하게도 극락세계를 말할 때는 너무나 인색한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즉, 그 세계를 현실적으로 인정해 주려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극락세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찬탄하고자 하면 즉시에 “그 세계는 다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반색하며 한사코 그 세계를 있는 그대로 감격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이상한 일이다. 그들은 분명 현실적으로 이 사바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극락세계만 자꾸 그들의 마음 속으로 끌어 넣으려하고 있는 것이다. 사바세계의
존재는 현실로 인정하면서도 극락세계의 존재는 왜 현실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국을 이야기하면 “그 미국은 다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유독 극락세계만은 자꾸 혼탁한
중생심의 한편에 가둬두고자 하는 그 심술궂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란 말인가.

자기가 힘들게 노력해서 집을 사고 가족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기 집은 현실로 인정
하면서도 법장 스님이 힘들게 공을 닦아 일구어 놓은 극락세계가 현실로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인색한 마음으로 사실대로 믿으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말장난으로 그 존재를 은폐해 버리고자 하는 그 못된 심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지구 안에도 잘 사는 나라가 있고 못 사는 나라가 있으며, 장수하는 나라가 있고
단명하는 나라가 있으며,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가 있고 교육환경이
좋은 나라가 있다는 것은 모두 다 한결같이 잘도 인정하면서도,

우주 가운데서 가장 궁색한 삶을 살아가는 고통의 세계가 여기에 있다면 가장 장엄스런
극락의 세계가 또 다른 곳에 분명히 있다는 것은 왜 그리도 등한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녕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역사 일로 대승의 조사스님들과 수많은 고승석덕들이 한결같이 극락세계를 찬탄하고
그곳으로 왕생하기를 가르치고 있는데도 어설픈 선종의 영향과 유심의 논리로
희론과 궤변의 말장난만 계속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것이다.

선정에는 들지 않으면서 선종의 영향을 받아 “이 마음을 깨치면 바로 극락이라”는
논리와, “극락세계는 다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라는 유심의 희론과, 그것은
근기가 낮은 중생들을 이끌기 위한 방편설에 그친다는 궤변 따위는
이제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여기보다 더 좋은 세상,

더 수행하기 좋은 세상, 부처님께 더 많은 공양을 올릴 수 있는 복덕의 세상, 고통과
괴로움이 끊어진 그 안락의 세상인 극락세계에 반드시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라야만이
법장 스님이 우리 중생들을 위해 힘들게 쌓아오신 그 본원에 미력이나마 보답하는
대승의 겸손한 불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극락세계는 다 마음에 있는 것이다.”라는 시시한 말장난은
이제 제발 그만두어야 한다. 만약에 어느 누구든 책임없이 이 따위 말장난을
계속한다면 나는 그의 코를 사정없이 한 대 쥐어박아 버릴 것이다.

그래도 그는 나에게 아프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니 조금도 나를 원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아픔이 분출되는 그 몸 역시 다 그의 마음이 지어낸
유심소작의 한 단편이 되니까 말이다.

부지런하고 결단력 있는 이 만이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 게으른 자들은 언제나 머뭇
거리고 내일로 미룬다. 그들이 빨래를 하면 비가 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처럼 서투른 말재주로 오늘 내일 미루다가 공덕을 닦고 염불할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되면 정말 천추의 한이 되고 말 것이니 젊은 시절, 그것도 골절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젊은 시절에 열성을 다하여 왕생할 수 있는 공덕과 염불삼매를 닦아 놓아야 할 것이다.

그 누구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아미타불의 본원력을 깊이 믿고 그분의 가없는 자비에
지성으로 감사하면서 극락세계에 반드시 태어나 그 곳에서 깨달음을 이뤄야 되겠다는
견고한 발심을 용기있게 일으킨다면

이 번다한 졸고가 깜깜한 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한 줄기의 밝은 빛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무 아미타불!

공파스님 저서(극락세계)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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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참선을 조금 하거나 참선을 통해서 조금 경계를 본 사람들은 흔히 얄팍한 지혜로 "마음이 정토인데 마음 밖에 무슨 정토가 따로 있으며, 성품이 미타인데 성품 밖에 무슨 아미타불이 있는가?"라고 염불하는 사람을 폄하 하려듭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릇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자신이 정토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공부를 하게 된다면 염불왕생을 닦는 사람들을 비하하던 마음이 단박에 사라지고 정 반대로 왜 이제야 정토에 대해 알게 되었던가 후회하면서 정토를 널리 펴게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치로 말하자면 마음이 청정하면 일체 모두가 청정하므로 '마음이 정토'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로 말하자면 극락정토가 분명히 있다고 정토삼부경만 아니라 화엄경 등 여러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어찌 허튼 말씀이겠습니까? 그리고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여래는 진어자(眞語者)요, 실어자(實語者)요, 여어자(如語者)며, 불광어자(不 語者)요, 불이어자(不異語者)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어찌 참된 불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성품이, 우리 자성이 미타이며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말도 허망한 말은 아니지만, 그러나 갑자기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없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가령 아무리 좋은 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실로 베를 짜고 다시 재단을 하여 옷을 만든 뒤에야 비로소 옷이라고 할 것이며 입고서 돌아다닐 수 있을 것입니다. 천을 짜고 옷을 만들기 전에는 아무리 곱고 부드러운 실일지라도 실오라기를 옷이라고 몸에 두르고 다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정토니, 극락정토가 따로 없고 성품이 아미타불이니, 아미타불이 따로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참으로 시궁창의 썩은 물을 극락정토의 팔공덕수(八功德水)와 같다고 들이마시며, 실오라기를 훌륭한 옷이라고 몸에 걸치고 다니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정토를 믿으면서도 마음이 정토라는 말에 구애되어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이 없다거나, 참선은 직접적으로 견성성불 하는 것이므로 아미타불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말은 모두 잘못된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극락정토는 탐욕과 분노, 애욕, 어리석음이 없는 세계인데 우리 자신의 마음도 그와 같은가? 말입니다. 그리고 극락정토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일이 모두 뜻대로 이루어져서 밥을 생각하면 밥이 나타나고 옷을 생각하면 옷이 생기며 다른 불국정토에 계신 부처님을 뵙고자 하면 순식간에 다른 불국토에 가서 모든 부처님들을 마음대로 친견하고 올 수 있는 세계이지만,

유심정토를 주장하시는 분들 스스로를 돌이켜 보십시오. 지금 당장 먹을 것을 생각하면 먹을 것이 나타나고 옷을 생각하면 옷이 나타나는가, 생각대로 얻지 못하고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마음자리가 고통으로 얼룩지므로 부처님께서 이 세계를 구부득고(求不得苦)의 세계라 하신 것입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자 하다가 고요해지지 않으면 산란심이 마음을 시끄럽게 하고 원하는 일이 뜻대로 성취되지 않으면 번민이 마음을 시끄럽게하니, 어떻게 '마음이 정토'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복과 지혜가 구족하시고 신통과 위신력이 한량없어 지옥을 연화대로 바꾸는 일도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쉽게 하시고 끝도 갓도 없는 우주 법계를 보시는 일도 마치 눈앞에 손바닥을 보듯이 하시는데, '자성미타'를 외치는 분들은 스스로를 돌아 보십시오. 자신은 수업(隨業:업에 끌려 몸을 받아 태어난)중생인지라 지옥은커녕 이 사바세계안에서 자신의 가정 자신의 잘못된 습관 하나 변변히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감히 '자성미타'를 주장한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정토가 될 수 있고 나의 성품이 아미타가 될 수는 있다하지만 단박에 될 수는 없는 일이거늘 어찌 함부로 극락정토를 가볍게 생각하고 염불하는 수행자를 비하하면서 정토왕생의 대업(大業)을 닦지 않는단 말입니까?

시방세계의 불국토에서도 수많은 부처님들께서 이구동성으로 극락정토를 찬탄하며 모든 보살, 아라한에게까지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라고 가르치셔 수많은 성문, 연각 보살들이 극락정토에 왕생하고 있다는데, '자성미타 유심정토'를 주창하면서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하지 않는 분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경계에 이르렀기에 보살보다 수승하다고 생각하시고 극락정토 왕생발원을 하시지 않는 것입니까?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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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미타 유심정토"에 관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팔만사천 법문입니다.
그래서 염불의 종류만 해도 실로 여러 가지입니다.
부처님도 셀 수 없이 많으니 부처님 명호만큼 염불종류가 있고, 염불 방법도 여러 가지입니다.

실상을 관하는 실상염불實相念佛, 부처님의 공덕을 관하는 관상염불觀想念佛, 부처님의 상호를 관하는 관상염불觀相念佛,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는 칭명염불稱名念佛, 그리고 칭명염불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마음속으로 부처님명호를 끊임없이 부르는 묵념默念, 입술만 움직이고 소리는 내지 않는 금강염金剛念과 자신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염불하는 저성염불低聲念佛, 그리고 혼침과 번뇌를 내쫓기 위한 큰소리의 고성염불高聲念佛 등...

여기서 우리 불자님들은 여러 염불수행 방법에 관해서 혼돈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수행방법은 모든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생겨난 것입니다.

인연에 의해서 사대가 화합되고 허망한 정신이 깃들어 존재가 생겨나듯이 중생들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 갖가지 수행방법들이 파생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이 옳네, 저것은 그르네, 이것은 참이고 저것은 거짓이네, 하고 시비하고 상대를 폄하하거나 헐뜯을 필요가 없습니다.

각기 자신의 근기를 냉정하게 관찰하여 자신의 그릇에 맞게끔 수용하고 열심히 수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칭명염불을 하는 사람에게 어떤분이 "극락세계는 방편가설이요 자성미타 유심정토만이 진실이다"라고 주장할 지라도 우리는 시비하거나 마음이 흔들릴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주장은 틀린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시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극락세계뿐만 아니라 삼계육도가 실은 모두 진실상이 아닌 중생의 업력으로 생겨난 허망상이며 그러한 허망상에서 우리는 인간세계 속에서 이 세계를 실존하는 진실상처럼 수용하며 살아가고 삼계를 벗어나지 못해 계속 윤회의 바다에 침몰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삼계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영원히 윤회를 끊고 마침내 무생법인을 이루어 부처를 증득하기 위해 칭명염불을 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것이니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의 근기가 불보살님의 가피력을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삼계를 벗어날 수 있거나 삼계에 윤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굳이 칭명염불을 통하여 극락왕생을 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겠지요.

그러한 분은 기꺼이 자신의 마음대로 마음에 드는 법문을 열심히 수행해 나가면 마침내 기약하기는 어렵지만 언젠가는(??) 자성미타유심정토를 깨우치고 수용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간세계에서 자신이 슬픔과 기쁨, 사랑과 분노 등을 실상관을 통해서 모두 허망상으로 직시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마음으로 울고 웃고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이 인간세계를 실존하는 것처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인간세계가 실존하는 것처럼 수용되어지듯이 극락세계도 실존 그 자체로 수용되어지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입니까?

실로 섣부른 지식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분별하여 감히 "자성미타유심정토"를 들먹이니 자신을 삼계의 바다로 부침하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까지도 윤회하게 만들어서 그 업장까지 함께 짊어지는 수고로움을 감당해 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성미타유심정토"는 범부의 경지에서 함부로 주장할 수 있는 법문이 아니며 성인의 경지에 오른 다음에 근기가 수승하고 수행단계가 높은 차원까지 올라간 수행자를 위해서 설해야 할 법문이 아닐까 생각되어집니다.

실로 부처님의 불안佛眼으로 관할 때는 삼계육도와 온 우주법계가 불국토 아님이 없으며 불성으로 가득차지 않은 곳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중생의 업력에 의해서 각기 업력의 경중輕重에 따라 달리 수용할 뿐, 그래서 업장이 아주 무거운 자는 지옥으로 가는 것이고, 업장이 가벼운 이는 천상과 불국토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과거 부처님당시에도 부처님께서 아난과 여러대중을 위해서 부처님세계를 보여주겠다고 하시며 발로 모래땅을 비볐을 때 온 대지가 진동을 하며 모래흙이 금모래로 바뀌며 이 사바세계가 금색광명으로 빛나는 불국토로 바뀌며 시방세계의 불보살님들이 출현을 하는 것을 모든 대중들이 보았다고 하는 기록이 경전에 나옵니다.

이러한 기록은 정말 부처님의 말씀처럼 이 모든 세계가 불국토 아님이 없고 불성이 없는 곳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지혜로운 이는 단박에 알아차릴 것입니다.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이 흙모래로 이루어진 인간세계를 변화시키신 것이 아니라 중생의 업력을 거두어 이 인간세계 그대로 불국토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우리 인간과 한 공간 안에 사는 하루살이나 개미는 인간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의 업력으로는 도저히 우리 인간세계를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존재들은 오직 자기들과 비슷한 업력을 지닌 곤충들의 세계를 인식하면서 함께 공존한다고 느낄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인간들이 개미나 하루살이와 전혀 다른 시공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듯 불보살님과 불국토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개미들이 만약 그들의 식별수준이 인간 수준으로 비약한다면 그 때는 우리 인간세계를 알아 볼 수 있듯이 우리 인간들도 업력에 가리워 마치 저 하루살이나 개미처럼 불보살님들의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다가 부처님께서 업장을 잠시 거두어 주셨을 때 불국토와 불보살님들이 출현하신 것처럼 인식되어 진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실로 "자성미타유심정토"는 부처님의 말씀이며 방편가설이 아닌 실상법문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본래성품이 아미타불과 다르지 않고 오직 우리 자신의 마음이 탐진치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업장의 구름이 사라지면 무시겁으로부터 본래 존재한 정토가 드러날 것이니 어찌 유심정토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 법문은 마치 화두선처럼 본래의 불성자리에 마음을 안주하고서 스스로 부처님행을 구족해 나가면서 항상 정토세계를 마음에 여의지 않는 상상근기의 수행자라야 기꺼이 감당해 낼 수 있는 염불선법문인 것입니다.

갓난아이는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젖을 먹고 자라야 하는 것인데, 만약 어른이 먹는 딱딱한 음식을 먹는다면 어찌 감당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의 근본경전 중에 칠조도품七助道品을 보면 도를 이루기 위한 일곱가지 법문 중에 가장 처음 택법각지擇法覺支가 나옵니다. 자신에게 맞는 선법을 잘 골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지혜로운 불자님들의 신행생활에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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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스님)

...분명히 정토삼부경에 서방으로 십만억국토를 지나 극락세계가
존재한다고 했는데, 이를 있다없다고 하는 것은 대망어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심정토 자성미타도 본원적인 입장에서는 같으나
중생의 입장에서는 어찌 유심정토가 되고 자성미타가 된다는 것입니까?

정토의 세계는 다시 지옥이 되지 않습니다.
서산대사도 중생들이 말로는 유심정토를 말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내 마음이 정토라고 하지만,
항상 자신의 마음이 극락이 됩니까?

때로는 극락처럼 즐거울 때도 있으나 그 마음이 금방 지옥으로도 변하지요.
극락에는 삼악도가 없으므로 다시 지옥같은 마음이 되어서는 않되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정말 항상 극락과 같은지 물어보세요.
정말 그러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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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이가 말하기를 부처님이 경전에 극락세계를 말하신 것은 방편 가설이라 내 마음에 정토가 있고 자성에 아미타불이 있는데 마음 밖에 무슨 극락 세계가 있겠는가 한다.


내가 답 하되, 이말은 매우 틀리는 것이다. 이치로써는 유심정토와 자성미타가 있고 사실로써는 서방정토에 아미타불께서 설법 하고 계시다.

경전을 인용하여 증명하고져 한다. 대승 경전이 육백이십 여불인데 그 중에 염불과 정토법문 하는 것이 이백칠십부가 되니 거이 경전의 반수를 찾이하는 것이다. 그 중에 털끝만큼 뽑아서 말 하려 한다. 경전에 세계의 이름과 사람 사는 형편을 소상히 말씀 하셨는데 어떤 국토는 사람의 눈썹은 길고 눈은 하나만 있는데도 있고 어떤 국토는 사람이 먹지 않고 입지도 않고 잠만 자는되 한번 잠들면 오십년 동안 깨지 않는데도 있고 어떤 국토는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데도 있다고 하셨다. 예로써 해인사에 휘낭조사등상은 가슴에 구멍이 있는데 이것은 휘낭조사가 손수 조성하면서 당신이 전생에 흉혈국(胸穴國)사람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화엄경에는 연화장 세계가 二十중(重)으로 되어 제십삼층에 사바세계가 있는데 십삼불찰(十三佛刹)미진수 세계로 들렀으며 사바세계 서쪽으로 십만억 불토를 지나 극락세계가 있다 하였다. 무량수경에는 세자제왕불이 법장비구에게 이백십억 세계를 보이시였고 관무량수경에는 석가모니불이 미간(眉間)에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 불국토를 위제희왕비에게 보이셨는데

어떤 국토는 칠보로 되였고 어떤 국토는 순전히 연꽃으로 되었고 어떤 국토는 대자재천(大自在天)과 같고 어떤 국토는 수정의 거울과 같은것도 있었다. 이와 같은 국토의 모습을 위제휘가 보고 극락세계 가기를 발원 하였으며 아미타경에는 여기서 서쪽으로 십만억불토를 지나서 극락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 아미타불이 설법하고 계신다 하셨다.

경전에 나오는 세계도 무수하며 허공중에 미진수 세계가 있다고 하셨다. 요사이 천문학자들도 월세계에 이미 같다 왔으며 공중에 반짝이는 별을 세계로 추정하는데 그 숫자가 수십억에 이른다 한다. 이렇게 많은 세계중에 하필 극락세계가 없단 말인가 부처님은 불안으로 시방세계를 두루 보시고 여러세계를 말씀하였으며 역대 조사들도 혜안으로 지옥과 극락을 두루 보시고 글을 지어 많이 선전하였는데 자기눈이 어두워 멀리 보지 못하고 도리어 극락은 없다하니 그것은 우물안 개구리를 면치 못한 것이고 도리어 정법 비방한 죄를 범한 것이니 참으로 슬픈 것이다.

다음에는 극락세계 가기를 권하는 법문을 소개하려한다.

무량수경에는 삼품의 왕생을 말하셨는데 여러 가지 복을 짓고 보리심을 내어 전심으로 염불하라 하였으며 관무량수경에는 정토삼복을 말하셨는데 부모와 사장에게 효순하고 살생하지 말고 십선을 닦으며 모든 계행을 가지고 행동을 올바르게 가지고 대승 경전을 읽고 인과를 깊이 믿고 보리심을 발하고 다른 사람에게 염불을 권하라 하셨으며

십삼관법과 세 가지 마음[(1)지성심 (2)깊은 마음 (3)회향발원심]을 말씀하셨으며 대보적경에는 극락에 가는 여덟 가지 마음을 말씀 하셨는데 설사 목숨을 잃는 일이 있더라도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고 중생에게 권하여 삼보에 귀의케하고 계행을 가지고 중생을 사랑하라 하였으며 미륵소문경에는 정토에 가는 열 가지 마음을 말하셨는데 중생을 사랑하고 괴롭히지 말며 정법을 수호하고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고 모든 집착을 없애며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세속문자를 탐하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행하며 결정코 성불하기를 원하라 하였으며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는 정토에 가는 십중 대원을 말씀하셨는데 모든 부처님께 예경하고 부처님을 칭찬하고 삼보에 공양을 많이 올리고 업장을 참회하고 부처님께 오래 세상에 계시기를 청하고 부처님께 법문 하시기를 청하고 다른이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고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고 중생을 수순하고 널리 회향한다.

이 십중 대원을 행하는 사람은 임종할 적에 목숨은 끊어지고 친족도 떠나고 보물과 세력과 모든 것은 하나도 따라 오는 것이 없고 오직 이 원왕은 앞을 인도하여 잠깐동안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아미타불과 문수보살, 관음보살, 미륵보살등을 본다 하였으며 회향계에 이르데 나의 보현의 좋은 행의 한량없는 복을 회향하오니 고해에 빠진 모든 중생들 빨리 아미타불 세계에 갑시다 하셨으며 십왕생경에는 정토에 가는 열 가지 마음을 말하셨는데

부처님과 스님께 공양 올리고 중생을 교화하고 보호하며 중생을 괴롭히지 않으며 스승께 받은 계율을 잘 지키고 부모와 스승께 효순하고 팔관제 계를 지키고 제일에는 안방을 떠나 스승의 법을 행하며 항상 염불과 좌선하고 정법을 수호하고 정법을 전하라 하였으며 문수발원경에는 내가 임종시에는 모든 장애 없어져서 극락세계에 왕생하며 모든 소원 성취하고 부처님께서 수기(授記)를 주옵소서 하였으며

대보적경에는 대승심을 내여 임종에 아미타불 열 번만 부르면 꿈에 부처님을 뵙고 왕생한다 하였고 관경에는 오역죄를 지은이가 임종에 지옥불덩이가 보이더라도 용맹심을 내어 열 번 아미타불을 부르면 나무아미타불 한 소리에 팔십억겁 생사 중죄가 없어지고 정토에 왕생한다 하였다.

경전에 정토왕생을 권한 것이 무수히 많으며 역대 조사들도 왕생을 권하는 문자가 산더미 같고 많으며 왕생전에는 극락에 갔다가 다시와서 극락세계 형편을 말하는 이도 혹 있다

예로써 송나라 위세자의 딸이 나이 열네살에 죽었는데 몸이 식지 않고 향취가 나머로 장사를 하지 않고 두었더니 칠일만에 다시 깨어나서 법상을 차려 달라하여 아버지가 이상히 여겨 그 말대로 하여 주었더니 목욕 재계하고 법상에 앉아 무량수경을 읽고 나서 말하기를 내가 극락세계에 가서보니 무량수경의 말과같이

온세계가 광명이 찬란하고 칠보로 장엄되었으며 큰 연꽃에 사람이 화생하는데 아버지와 오빠와 나는 연꽃에 이름이 있고 어머니는 이름이 없어서 그 말을 전하려 왔으니 어머니도 지금부터 부지런히 염불하라고 말하고 방바닥에 내려와서 조용히 갔는데 향취가 삼일동안 난다 하였다.

위에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을 살펴보면 극락세계가 분명히 있으며 수백 경전에 소상히 왕생을 권하는 것이 무수하다. 만일 극락세계가 없다면 경전은 모든 거짓말이고 불조는 모두 망어인이니 그럴 이치가 있겠는가 우리 중생이 자력(自力)으로 이 사바오탁악세계에서 번뇌를 완전히 끊고 성불하기를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려운 것이다.


유심정토와 자성미타는 마음을 깨쳐야 보는 것이니 중생들도 부처될 성품은 있지만 삼독번뇌가 곽 덮여 있는데 자성미타를 어찌 볼 수 있겠는가 마치 전단향나무를 조각하여 불상을 조성해 놓으면 거기에 예배공양을 할 수 있지만은 나무 증치를 보고 예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심정토와 자성미타를 집착하지 말고 부처님 말씀에 따라 극락세계가 실지로 땅이 있고 아미타불이 현재도 설법하심을 깊이 믿고 왕생의 원을 세워 부지런히 염불하면 임종시에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면 자성미타를 볼 것이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모든 불자들은 깊이 생각해 볼지어다.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불제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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