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결코 죽지 않는다 - 유승호(서울 공덕동)
(1) 죽음을 체험하다
8·15광복되기 1년 전인 갓 스무여살때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전주시에 있던 '전북여객자동차주식회사'에서 정비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공장 한 구석에 거의 폐차에 가까운 버스가 한 대 있었는데, 바퀴를 빼버려서 몸체만 놓여 있었다. 하루는 이 낡은 차를 재생시키는 일을 하게 되었다.
잭(Jack)으로 차체를 들어 올리고 바퀴를 끼우려 하는데, 작업이 용이하지 않았다. 그래서 차 밑에 들어가서 잭으로 차를 들어올리고 있는데, 갑작"딱!"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는데, 아주 절친한 친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전주 지역의 내가 잘 아는 장소를 돌며 친구를 찾아갔다. 드디어 맑은 시냇가에 다다랐는데, 온갖 풀과 꽃이 깔려있고 석양이 붉게 비춰주었다. 맞은편엔 기암절벽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으며, 아주 경치가 좋았다. 걷는 것도 아니고 달리는 것도 아닌 깡충 걸음으로 이리저리 뛰며 "성관아,성관아!"하고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한참 기분이 좋을 때 아이들이 깡충깡충 뛰듯이 하천 가를 뛰어다녔다.
냇가의 들국화 같기도 하고 코스모스 같기도 한 꽃을 손으로 훑어 꺾으며, 막연히 친구가 있다고 생각되는 곳을 향하여 이름을 불렀다. "여기 이렇게 놀기 좋은 데가 있으니 어서 와!"라는 기쁜 심정으로 뛰어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발밑에서 뜨거운 열기가 치솟아 올랐다. 그 화끈한 불기운에 깜짝 놀라서 그만 걸음을 딱 멈추었다. 그리곤 마치 우물 밑의 내가 우물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과 마주 보는 것처럼, 동그란 얼굴들만이 나를 둘러싸고 내려다보는 상황이 보이는 것이었다.
이때야 비로소 난 현실로 돌아왔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잭이 넘어진 것이다. 바퀴도 없는 차에 꼼짝없이 깔려버린 것이었다. 동료들은 창졸간에 닥친 일이라 어쩔 줄 몰라 당황하다가, 6명이 차를 들어올리고, 한 명이 나를 끌어냈다는 것이다. 그 차는 도저히 6명이 들어올릴 수 없는 것인데, 아마도 다급한 김에 초능력이 발휘되었던 모양이다.
여하튼 나는 다리하나가 부러진 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정신을 잃었던 시간은 약 13분 정도였다 하는데, 아프거나 괴로운 것은 전연 느끼지 않았다. 그냥 즐겁게 친구를 찾으며, 평소에 가서 놀고 싶던 장소에 가서 구김살 없이 뛰놀았던 것이다. 동료들이 보기엔 내가 완전히 죽었었다는 것이다. 그 뒤 약 6개월 간 입원해 있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생명이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어렸을 때 들은 외할머니에 대한 일을 다시금 음미하게 되었다.
(2) 외할머니의 저승여행
내가 철부지 때의 일인데, 다시 팔순이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전갈이 와서 어머니께서 황급히 친정으로 가셨다. 우리 집이나 외가집이나 같이 전북 완주군에 있었으며, 무슨 일이 있을 때면 30여리 길을 걸어서 왕래했다. 워낙 고령이신 데다 평소 가슴앓이가 있으셨기에, 위독하시던 전갈을 받고 바로 출발하셨으나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그래서 곡을 하고, 친척들이 모두 초상 치를 준비를 하였다. 그때까지 외할아버지께서도 살아 계셨으므로, 돌아가셔서 슬프긴 하지만 아주 호강스레 가셨다고들 말을 하였다. 시신도 거두어 모셔놓고 한참 문상객을 맞이하고 장례준비를 하는데, 숨을 거두신 지 8시간 여만에 꾸물꾸물 살아나시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반갑고 기쁘면서도 놀라 마지않았다. 부랴부랴 장례준비물을 외할머니 눈에 안 띠게 치우면서도, 연상 눈치를 보았다.
잠시 살아나셨지만, 언제 아주 운명하실 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의외에도 조속히 정신을 차리시더니 멀쩡하게 일어나시는 것이었다. 그리곤 "뭣들하고 있냐?" 물으시기도 하여, 식구들이 당황해 하기도 하였다. 그 뒤, 외할머니께서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시고 집안분위기가 안정된 후에,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하고 여쭈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가 어딜 간다고 집을 나섰다. 자꾸 가는데, 예전에 죽은 동네 사람 누구누구를 만났다. 가면서도 저승이라고 생각하고 가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더라. 한참 가다보니 강이 나오고외나무다리가 걸쳐 있었다. 언덕 외딴 집이 하나 있는데, 파란 치마에 붉은 저고리를 입은 여자가 나오더니 '노인네가 어딜 가시오?'하고 묻더라.
내가 '어딜 간다.'하니까,'혼자 가시기엔 길이 어려울 테니, 이 강아지를 따라 가십시오.'라며 강아지를 하나 내주었다. 강아지가 앞으로 쫄쫄거리며 외나무다리를 건너기에, 뒤를 따라 무사히 다리를 지났다. 그러자 강아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때부터 젊어서 요절한 아들(필자의 외삼촌)을 찾으며 길을 물었다. 아들인 최아무개를 찾는다고 하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 그러세요?'하며 친절히 길을 안내해 주었다. 마침내 궁궐같이 생긴 호화로운 큰집에 이르렀다.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사모관대에 울긋불긋한 색의 옷을 입고들 앉아 있었다.
누가 누군지 분간을 할 수 없어 실눈을 뜨고 얼굴들을 살펴보느라니, 문간의 한 사람이 대중에 고하기를 '이러저러한 분이 아들을 찾아왔오.'하였다. 그러자 아들이 둘째로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의상이 찬란한 아들은 문지기가 고하는 소리에 즉시 어머니를 알아보고 버선발로 뛰어 나왔다. '어머니가 여긴 어쩐 일로 오셨오?'하곤 반가이 맞이하며 '어머니는 아직 여기 오실 때가 안 되었는데, 어찌 이렇게 오셨오?' 하는 것이었다.
'네가 보고싶어 왔다!' 하니, '아이구, 때가 되면 다 만나게 되는데, 왜 이러세요? 어쨌든 오셨으니 구경이나 좀 하고 가시죠. 제가 지금 매우 바쁘니 수행원을 따라서 구경하고 오십시오.' 하니, 수행원이 하나 나서더니 안내를 잘 해주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창고가 여럿 있는 데를 갔는데, 광의 문을 열어보니 갖가지 생활이 보였다. 어떤 곳은 마치 유치장처럼 창살이 있는데, 사람들이 울며불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어떤 곳에선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또한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 있는가 하면, 곡식과 비단이 가득 차 있는 곳도 있었다. 꽃밭에서 놀고 호숫가에서 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험악한 환경에서 울부짖는 광경도 보였다. 수행원은 이것이 바로 인생에서 쌓은 복과 죄가 나타나는 것이라 하였다. 구경을 다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꼭 아들을 한번 더 보고 헤어졌으면 싶었다.
그런데 수행원은 '길은 이리로 가셔야 합니다.' 하며 먼저 지나온 외나무다리로 이끄는 것이었다. 그리곤 강아지를 한 마리 불러내더니, '강아지를 따라 가셔야 됩니다.'하곤 수행원은 강변에 그냥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아지를 따라 강을 다시 건넜다."는 것이다. 이렇게 외할머니께서 저승을 다니신 시간이 8시간이었는데, 그 후로 내내 건강하시다한 7년 더 사시고 9순이 다 되신 다음에 임종하시었다.
(3) 생명은 영원하다
이와 같이 자동차에 깔렸던 체험과 외할머니의 일을 생각해 보건데, 육신은 설령 죽어도 죽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경(佛經)에 나오는 극락과 지옥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확인하게 되었다.
종교의 가르침이 명시하듯, 생명은 영원한 것이다. 인생은 한번 죽으면 그만인 존재가 아닌 것이다. 생(生)을 이 세상뿐이라고 보는 짧은 견해 때문에, 무책임하고 찰나적인 행위를 하게도 된다 . 그러나 우리의 참 모습은 영원히 사는 생명임을 알 때에는, 결코 조그만 이익을 위해 악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이번 생애에선 과보를 안 받는다 하더라도, 선인선과(善因善果)와 악인악과(惡因惡果)의 법칙은 어김없이 적용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사회는 한결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근본 모습을 알려주는 것이 종교의 의무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생활 속에서 필요에 따라 이 옷 저 옷으로 갈아입듯, 우리 생명은 이 육체 저 육신에 깃들며 무궁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의 영원성을 깨달을 때, 고통은 끝난다고 하지 않는가? 나의 참모습이 영원생명이라는 진리가 널리 알려진다면, 우리 사회의 어둠도 말끔히 가셔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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