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가피
정목(正牧) 스님
염불수행구도기 『신앙의 빛』中
가을은 짧고 어느덧 겨울이 방안까지 찾아 들어왔다. 춥고 배고픈 자에게 겨울은 더욱 길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것은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세간에서는 행복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출가자들은 깨달음의 삶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삶을 보낸다. 이런 일들은 모두가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죽음도 삶을 동반하고 있지만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 그 기막힌 죽음이라는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갓 해를 넘기자 내 바로 위의 형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큰 슬픔을 느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서른아홉이지. … 음 … 그 놈의 아홉수를 넘기지 못하였구나. …’비통한 마음으로 속가로 향했다. 그 곳에서 아픈 삶의 모습들을 실컷 체험하면서 장례를 마치고 돌아왔다. 느닷없는 형의 죽음은 염불정진에 큰 충격요법으로 작용하여, 그해 겨울은 참으로 간절하고 절절하게 용맹정진으로 보낸 한철이었다. 동안거는 해를 넘어 입춘(1992년)을 지나고 해제 일을 맞이했다. 기다림의 봄을 맞이하면서 생각난 것은, 자연의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인생의 봄은 스스로 만들어야 온다는 인과법이었다. 공덕을 쌓지 않고 과보를 바랄 수 없는 것처럼, 수행 역시 닦지 않고 단박 깨달음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지나온 세월은 출가할 때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초심을 잊어버리고 느슨하게 보낸 것이 안타까웠다. 세간에서 이 나이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불철주야 육체적 고통에 근심 걱정이 떠날 날이 없을 텐데 사지가 멀쩡한 장정이 지금 무슨 도를 찾는다고 이 야단인가? 그러나 기왕 삶의 방향을 결정하여 늦게라도 발심하고 공부에 전념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여러 계기를 접하면서 지난 동안거 동안은 원효 성사의『기신론소』를 차근차근 보아 넘기며, 시간이 날 때마다“나무아미타불”염불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는 불법의 바다가 아무리 넓고 깊다할지라도 믿음으로 능히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으니 바른 믿음, 결정된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른 믿음이란 부처님의 지혜를 믿는 것이요, 결정된 믿음이란 설령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정토에 왕생하여 마침내 생사윤회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나는 비록 일체가 공(空)하여, 번뇌도 실체 없음을 믿고 있지만, 고뇌의 현실을 부인할 수 없으니 끝없이 정진해야 했다. 끊을 것 없음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닦을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부처님의 원력을 진실로 믿고 행하여 공덕을 성취해야 했다. 이는 인과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염불로 왕생하여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으면 믿기라도 해야 하는데 믿음조차 일으키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체가 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여전히 번뇌를 만들고 그로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몸소 깨닫고 닦지 않고는 관념의 뿌리를 뽑아버리기 어렵기 때문에 진실한 믿음 속에서 끊고 닦아야 함에도 많은 이들은 이것을 건너뛴다. 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을 본 나로서는 더 이상 남을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신심을 더욱 굳건히 하고 믿음의 공덕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기로 마음먹었다. 번뇌는 실체가 없지만 방일하면 곧 악도에 떨어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염불정진이 깊어지면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아미타 부처님, 저의 결정된 믿음을 증명하여 주소서!’ 라고 기원하였다. 그러면서 법당에서, 산에서, 공양 짓는 시간, 잠자리에 들면서까지, 때로는 소리를 내어서, 때로는 마음속으로 아미타불을 염하였다. 나는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그때서야 비로소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안거를 해제한 소위 선객스님들이 만행삼아 찾아와서 차를 마시며 담소하게 되었다. 사실 선방에 다니는 선객스님과 불사에 종사하는 사판스님은 그 내면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묻기 전에 이미 외모에서부터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의복과 자세, 말투가 다르다. 때로는 일부러 근엄한 채 하기도 하고, 안거 몇 철 지나고 나면 도인이 다 되어 말마다 선문답을 던지기도 한다. 그것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진 습(習)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스님들은 나에게는 일부러 근엄한 자태를 보이려 하거나 선문답을 던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별 말없이 차를 마시는 동안 자연히 분위기도 부드러워졌다.
그때 한 스님이 점잖게 물으셨다. “스님, 염불하면 윤회를 벗어날 수 있습니까?” 내가 대답하기를, “믿음으로 벗어나지요 .” 그러자, 그 스님이 다시 말씀하시기를, “어떻게 믿음으로 벗어납니까, 그러면 수행이 필요 없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대답하기를, “스님께서는 깨달아서 벗어나시고자 애쓰시지만, 저는 믿음으로 벗어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스님은 약간 흥분된 어조로, “불교가 어디 믿음의 종교인가요, 깨달음의 종교이지.”하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스님께서 참선하는 것도 믿음으로 하는 것이고, 제가 염불하는 것도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스님이 대뜸, “아니, 강사라는 스님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오!”라고 큰 소리로 쏘아댔다. “그래서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지금 논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진이 더욱 더 시급하니, 우리 그만 하고 열심히 정진합시다.” 나는 결말이 빤히 보이는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밖으로 나와 드높고 푸른 하늘을 맘껏 안으며 기지개를 한번 켜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저녁 공양시간이 되어 함께 부엌에 들어가 공양 준비를 하였다. 반찬이야 김치 산채에 된장국이 전부였다. 스님들은 먹을 만한 것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찾았지만 있을 리가 없었다. 사실 대중생활 할 때는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이 없지만 독살이 하면서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신도들과 정(情)을 붙여야 공양물이 들어오는 법인데, 그러면 시간이 필요하고, 잡담이 섞이고, 이래저래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생활이야 조금은 불편하지만 가난하게 사는 것이 마음은 편안했다. 찬이 넉넉지 못해 스님들에게 미안했지만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틀 후 스님들은 모두 떠나가고 나는 여전히 독경과 염불정진을 계속했다. 그런데 염불하는 가운데 한 스님이 쏘아대듯 던진 한 말‘불교가 어디 믿음의 종교인가요, 깨달음의 종교이지.”하는 말이 자꾸 뇌리에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그 소리를 지워버리기 위해 더욱 힘차게 목탁을 치고 큰소리로“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 봄바람이 산등성이를 감아 돌고 대지에는 연한 초록빛이 돋아나는 따스한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환희심이 일어나 염불을 많이 하였는데, 그날은 온종일 정진하였다.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잠이 드는 줄도 모르게 쓰러졌는데, 꿈속에서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크신 황금색 부처님이 내 머리 위 공중에 나타나셨다. 나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그저‘아미타 부처님인가보다!’생각하며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때 부처님이 또렷하게 말씀하셨다. “너의 말이 옳다. 믿음으로 정진하라!”하시고는 천천히 사라지셨다. 나는 그때서야 놀라서 벌떡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생각하기를, ‘참으로 묘한 일이다. 이런 현상을 감응이라 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아침을 맞이하였다. 그 다음날도 여전히 정진하고 밤늦게 잠이 들었는데, 꿈에 역시 부처님이 출현하셨다. 그날은 전날보다는 형상이 작아 보였는데 가만히 서 계시고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다. 나는 꿈 가운데서 출현하시는 부처님의 상호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틀에 걸쳐 연거푸 일어난 꿈은 참으로 묘하였다. 그런데 사흘 째 되는 날도 똑같이 부처님이 출현하셨다. 이틀간에 걸쳐 친견한 부처님보다는 형상이 더 작아 보였다. 대낮같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똑똑히 바라보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는 낮은 목소리로 “무생생(無生生)이라!” 하시면서 사라지셨다. 나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면서, ‘앗! 왕생의 도리로구나! 음… 내 믿음이 틀림없었어.’ 정신을 가다듬고 희유하고도 묘한 꿈을 돌이켜 회상하였다. 날은 훤히 밝아졌으나 나는 아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지난 꿈속의 일들만을 더듬었다. “아! 무생생 … ” 참으로 묘하고 감동적인 꿈이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더욱더 믿음을 굳건히 하고 금강석 같은 진실한 믿음으로 발심(發心)하였다. 그리고‘꿈은 꿈이고 더욱 정진하자!’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법당에 들어가, ‘비록 꿈에서 친견한 부처님이시나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수없이 예배드렸다. 그 후 나는 변함없이 일상적인 공부를 계속했고, 일심으로 염불하면 반드시 감응(感應)이 따른다는 믿음으로부터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방일하지 않고 쉼 없이 정진하여 스스로 깨닫고, 그 공덕을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회향하리라고 다짐했다. ‘반드시 정토문을 세상에 훤히 열어 보이리라.’ -『신앙의 빛』 中 일부 - 출처 :아미타파
정목(正牧)스님
1987년 금정산 범어사에서 벽파(碧坡) 대선사를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90년 자운(慈雲) 대종사를 계사로 비구계 수지
1991년 범어사 승가대학 수료, 강원 강사 역임
1992년 정토문으로 회심하여 정진 중 염불삼매를 얻음
1998년 중앙승가대학교 졸업
1998년 하안거 정진 중 관불삼매를 얻음
1999년 2월~2004년 4월 소양 강변에서 전수염불과 저술
2004~ 현재 한국 정토학회 이사
현재 은사스님의 생전 수행터 양산 오룡산 정토원(淨土圓)에서 전수염불로
정진하여 번역 저술 및 인터넷 전법에 전념하심
2006년 6월 18일 몸소 극락전과 아미타불을 조성
저서
『 바라밀 』『 붓다의 대예언 』『 염불신행의 원리와 비결 』『 도로아미타불(아미타경소) 』『 윤회는 없다 』『 원효의 새벽이 온다 (무량수경종요)』『 한국인의 염불수행과 원효스님 』『 신앙의 빛 』 등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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