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제의 인과 이야기
남조의 양나라 무제(武帝:502~549)는 옹주의 장관이었는데 제나라의 혼란을 틈타 남중국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의 치세기간 중국 남조 문화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며 무제 스스로 유학이나 문학의 학식을 깊이 연마했고, 불교에 대해서도 깊은 신심을 가졌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1.양무제와 합두스님 이야기
이 내용은 조야첨재(朝野僉載)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며 일타큰스님의 윤회와 인과응보에도 나와 있는 내용인데 조야첨재에 실린것과 일타큰스님의 윤회와 인과응보에 실린 내용은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두 내용을 비교해 보면 조야첨재보다는 일타큰스님의 글이 훨씬 짜임새있고 상세하여 일타큰스님의 내용을 위주로 하여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글을 재구성 해보았습니다.
중국 남북조(南北朝)시대의 양(梁)나라 무제는 직접 4차례의 출가까지 시도하였을 정도로 불심도 높고 불사도 많이 하여 불심천자(佛心天子)라는 호를 얻은 분입니다. 그는 중국 제일의 신승(神僧)으로 전해지는 지공(誌公)화상을 지극히 존중하여 귀의하였고 많은 스님들을 스승으로 섬겼는데 그중 한 분이 바로 합두(榼頭)라는 스님 이였는데 어느날 양무제는 자문을 구할 일이 생겨 신하에게 합두스님을 모셔오라고 하였습니다.
신하가 합두스님을 모시러 간 사이 양무제는 다른 신하와 바둑을 두었는데 황제와 두는 바둑이라하여 일부러 져주면 아첨배라고 하여 욕을하고 소신껏 두는 신하에게는 칭찬과 함께 상을 내리는 양무제의 성품 때문에 바둑을 두는 신하들도 실력을 다해 승부를 가리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따라 신하의 바둑실력이 만만치 않아 양무제는 열이 오를대로 올랐습니다. 그리하여 한판을 지고 두판째 들어간 양무제는 바둑판이 자꾸 밀리다가 어쩌다 신하의 바둑알을 따먹게 되자 열이 올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에잇 죽어라"
그런데 중국어의 맹점이 우리말과 달라 <죽어라>라고 하는 용어인 쓰(死:죽을 사)발음이 우리말처럼 혼잣말<죽어라>, 명령어<죽여라> 형용사<죽다>명사<죽음>에 모두 한 글자(死:사)로 쓰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무제는 이 한마디 외침 "에잇 죽어라"라는 바둑알을 향한 한마디의 외침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존경해하는 합두스님을 죽음으로 몰아 넣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합두스님을 모시고 온 신하가 문 밖에서 배례하며 " 페하 합두스님을 모셔왔습니다."하고 아뢰자 바로 대전에서 진노한 양무제의 "에잇 죽여라"라는 소리를 듣고 신하가 평상시 성격이 불처럼 급하기로 유명한 무제의 외침을 무시할 수 없어 다시 진언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바로 합두스님을 형장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리고 합두스님께 " 스님 대단히 죄송합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오나 스님을 모시고 왔다는 말씀을 사뢰오니 폐하께서 크게 진노하시면서 "죽여라'라고 하였으니 어찌해야 하옵니까?" 라고 말하자,
합두스님께서 "걱정말고 어서 가세, 어느 명이라고 거역하겠는가."하면서
형장으로 가서 합두스님께서 스스로 단두대에 올라 앉아 가부좌를 틀고 게송을 읊었습니다.
사대본래공(四大本來空)
오온본비아(五蘊本非我)
이수전춘풍(以首前春風)
유여단춘풍(猶如斷春風)
사대육신 본래비어 공함이요
오온또한 본래내가 아니로다.
머리들어 봄바람에 나아가니
봄바람을 베는것과 똑같도다.
합두스님께서 읊으신 게송은
지수화풍 4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우리 우리육신은 본래로 공한 것이요,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정신적 작용과 물질적 요소를 다섯가지로 분류한 오온 또한 본래 내가 아니로다. 이제 이 머리를 가지고 봄바람 앞에 임하니, 날카로운 칼날이 머리를 베는 것이 마치 봄바람을 베는 것과 다름 없도다.
내 몸뚱이라고 할 것도 없고 산다, 죽는다고 할 것도 없으니 조금도 괘념하지 말라. 는 뜻으로 게송을 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태연한 자세로 웃으시면서 자신의 업보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먼 전생에 조그만 동자승으로 있었을 때 산골 밭을 매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괭이로 두꺼비 한마리를 찍어 죽인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죽은 두꺼비가 오늘날 양무제가 된 것이라네. 그 때 내가 일부러 죽일려고 해서 두꺼비를 죽인 것이 아니듯이, 오늘의 양무제 또한 스스로 조차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죽이는 것이니 이 모두가 전생의 과보를 받는 것일 뿐....."
이 말을 마치고 나서 합두스님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바둑을 다 둔, 양무제는 합두 스님이 생각이 나서 승지에게 말했습니다. “합두스님은 아직도 오시지 않았느냐? 스님을 모셔오라 했는데 어찌 소식이 없단 말이냐? 스님께서 어디를 가시기라도 하였느냐?"
그러자 승지가 아뢰기를“아니옵니다. 조금 전에 폐하께서 죽이라는 하명을 내리사와 분부대로 시행하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무제가 " 무엇이? 처형을! 짐이 언제 그런 명을 내렸단 말이냐?" 라고 하자
승지가 답하기를 "조금 전에 바둑을 두시면서...'죽여라'라고 크게 엄명하셨나이다....."
양무제는 그 소리를 듣고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존경하던 스님이었기에 충격이 더욱 클수 밖에 없었습니다. 양무제는 정신을 잃고 끝없이 뉘우쳤습니다. 땅이 꺼질 듯한 한숨과 함께 양무제가 정신을 차려 한탄조로 물었습니다.
"그래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없더냐?"
형장에서 남기신 합두스님의 말씀을 듣고 난 양무제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면 깊이 참회하고 그 이후로는 다시는 바둑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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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님께서 쓰신 윤회와 인과응보에서는 양무제의 실수로 희생된 분을 합두스님이라 하였는데 조야첨재의 기록에서는 법명을 거론하지 않고 그냥 선정을 많이 닦아 신통이 뛰어난 법사라고만 기록하였으며 일타큰스님의 글과 달리 자문을 구하기 위해 모시러 간 것이 아니라 법사의 뛰어난 이름을 듣고 처음로 모시러 간 일로 묘사하고 있으며 또 양무제의 전생또한 두꺼비가 아닌 지렁이였다고 기록되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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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돌부처님께 꽃을 공양올리고 임금이 된 양무제
어느 한 생애에 양 무제는 가난한 사냥꾼이었는데, 매일 매일 사냥을 하여 그것으로 연명을 해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산에 올라 사냥을 하려고 산천을 뒤지고 다니는데 날이 저물도록 짐승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몹시 지쳤습니다. 잠깐 쉬면서 물을 마시려고 개울이 있는 쪽을 향하여 가다가 옛 절터인 듯 한곳에서 고개 부러진 불상이 땅에 뒹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의식중에 발로 한번 차 보았으나 얼굴이 드러나자 죄송함을 느끼고 곧 불상을 안아 모시고 목을 맞추어 보니 아주 거룩한 부처님이었습니다. 사냥꾼은 얼른 물을 떠다가 깨끗이 씻고 부처님을 안아 가까운 동굴 속에 모셨습니다. 그리고 산에 핀 꽃들을 꺾어 부처님 앞에 올리고 엎드려 고했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 오랫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동안 배가 얼마나 고프셨습니까?가난한 이 사람은 먹을 것이 없으니 꽃이나마 올려 드립니다. 이 인연으로 내생에는 훌륭한 왕가에 태어나 많은 부처님들과 스님들을 마음껏 공양하여도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원하고 일어서서 돌아오는데 기분이 좋았습니다. 생전 처음 부처님을 뵙고 또 공양을 올렸으니 마음이 무척 흐뭇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집에 와서 잠을 자려 하여도 그 부처님의 모습이 무지개 빛처럼 환하여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이튿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목욕재계하고 다시 그 부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입니까? 깊은 산속, 사람이라고는 전혀 구경할 수 없는 그 곳, 부처님이 계신 동굴 속에 기이한 현상이 생겼습니다. 어제 자신이 올린 꽃이 동굴밖에 나와 있고 나무 열매가 부처님 팔위에 올려 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가? 「이게 누구의 짓일까? 이상도 하구나!」라고 생각하며, 사냥꾼은 밖에 나가서 탐스러운 꽃 몇 송이를 꺾어 또 부처님께 올리고 어제와 같이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서 산짐승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도 짐승은 한 마리도 구경을 하지 못했습니다.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동굴 속을 들어다 보니 한 마리의 원숭이가 자기의 올린 꽃을 내려놓고 또 빨간 과일들을 나뭇가지까지 꺾어 올리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 나도 사냥꾼과 같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게 될 때는 원숭이의 과보를 벗고 나라에 큰 재상이 되어 저 사람을 돕게 하여 주십시오.” 하지만 이러한 원숭이의 마음속 서원을 사람인 사냥꾼은 알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냥꾼은 그저 원숭이가 자신이 공양올린 꽃을 내려놓고 다른 과일을 올렸다는 것만 괘씸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요런 괘씸한 것, 원숭이 주제에 내가 올린 꽃을 내려놓고 네 것을 따로 올려.” 하고는 밖에나가 또 산에 올라가서 꽃을 꺾어다가 부처님께 공양올리기 위해 돌아와 보니 원숭이가 보이지 않자 즉시 원숭이가 올린 열매를 내려 두 발로 지근지근 밟아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번에도 자신이 따온 꽃을 부처님전에 올려놓고 내려왔습니다.
그 이튿날 또 가서 보니 원숭이도 화가 나서 사냥꾼이 올린 꽃을 온 몸으로 진탕을 만들어 버리고 다시 제 열매를 올렸놓았습니다. 화가 난 사냥꾼은 흥분한 가운데 열매를 올리고 기도하는 원숭이를 그대로 놓아두고 아주 큰 돌을 들어다가 누구도 밀고 들어갈 수 없도록 굴을 막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내려와서는 그 일을 잊어버리고 다른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그 후 약 16일이 지난 어느 날, 대낮에 방에 누워 있는데 원숭이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꽥 꽥꽥.」 하도 이상히 여겨 귀를 막으면 막을수록 더 큰소리로 들려왔습니다. 불현듯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서 산으로 뛰어올라갔습니다. 가서 보니 원숭이가 빈 동굴에서 몸부림치다가 그대로 쓰러져 죽어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원숭이를 가엾게 여기고 땅에 묻어주고 부처님께 사죄하였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잠깐 사이 흥분한 마음 때문에 한 생명을 굶어 죽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죄하고 돌아와서부터는 무엇인가 죄책감 때문에 사냥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오직 남의 농사일을 거들어 주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부처님 앞에서 서원한 대로 원숭이는 죽어서 생을 바꾸어 양씨 집안의 재상으로 태어나게 되었고 사냥꾼은 죽어서 양씨 집안의 왕자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태나면서부터 이 재상은 무제를 좋아하며 늘 보호하고 공경하였으나, 무제는 어려서부터 글공부는 좋아하지 않고 사냥을 즐겼습니다. 매일 산으로 쏘다니며 토끼, 꿩, 돼지, 노루 등을 잡아 포식하고 힘을 기르더니 마침내 임금이 되어서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서원에 따라 불법을 좋아하고 부처님과 절을 많이 건축하고 수 천 만 명씩의 스님들을 공양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깥경계의 형상과 현상적인 부분에만 마음이 팔려 복 짓는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달마대사 같은 훌륭한 조사스님이 인도로부터 와서 부처님의 법인을 전해 주려 하였으나 양무제의 마음 그릇이 비지 못하여 달마대사를 오히려 사마 외도의 취급을 하여 달마대사께서 양무제를 떠나가게 하고 말았습니다.
일생에 새로 모신 부처님이 3십 만구가 넘고 파괴된 부처님을 보수한 것은 백 만구가 훨씬 넘었으며, 많은 사찰을 짓고 수륙재, 방생재, 천도재를 매일매일 지내다 보니 말년에는 백성들의 원성이 치닫기 시작하여 마침내 궁중에서도 양무제를 정신 이상자로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러한 현상은 무제의 치세 말년시절에 두드러지게 드러났는데 어떤때는 스님들께 사시공양을 올리기 위해 절에 올라가면 시녀들이나 궁중 나인들과 신하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양무제 자신이 직접 스님들의 공양을 낱낱이 차려주고 또 후원에 나와 손수 설겆이를 하여 신하들이 어쩔줄을 모르고 쩔쩔 매고 있으면, 신하들을 향해서 "나를 돈을 주고 사가시오."라고 하여 신하들의 마음이 안정될 날이 없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신하들의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여 하는 수 없이 여러 사람들의 뜻에 따라 왕을 동굴 속에 연금(軟禁)하여 치료키로 하였는데, 그 뜻을 발의한 사람이 바로 전생에 원숭이였던, 양무재 집안의 재상이었습니다.
동굴에 연금당한 양무제는 동굴에서 어쩔수 없이 마음을 비우고 오로지 좌선수행을 하여 마침내 숙명통을 얻고 전생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으며 오늘날의 과보과 모두 전생의 인과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고 그의 자손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내가 내 전생을 알지 못함으로써 이런 슬픈 일을 당했는지라.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는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은 것이니 누구도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원숭이를 16일 동안 가두어 죽인 과보로 160일 만에 이곳에서 세상을 하직하지만 원망할 것은 도리어 이 어리석은 마음이니 조금도 그를 해치거나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명심하라.”
이 글을 본 자손들은 도리어 전생에 원숭이였던 그 재상을 부모 섬기듯 하고 잘 모셔 오래도록 화합하고 행복하게 세상을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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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제의 전생설화 사냥꾼이 꽃을 공양올리고 다음생에 황제의 과보를 받은 것을 보면 초발심 자경문에서 나온 신심감응이 불허하여 영향상종이니라라는 대목이 생각납니다. 지극한 믿음으로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하면 불보살님께서 감응(기도에 답하시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아서 마치 물체에 그림자가 뒤따르는 것과 같고 소리에 메아리가 따르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
그래서 위 전생인과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과응보의 우주법칙은 한치의 오차도 없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서 일으킨 한 생각이 다음생의 과보로 그대로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생명을 죽인 과보로 자신 또한 죽임을 당해야 하는 등....윤회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한 없는 비극과 희극이 교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선업은 선업대로 악업은 악업대로 그대로 우리의 함장식(불성 메모리)에 모두 남김없이 저장하여 윤회를 거듭하면서 모두가 서로 서로 주고 받으니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를 결코 주의하고 주의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생을 거듭하면서 때론 인간도 되고 인간중에 황제도 되고 더 나아가서는 마침내 모두가 부처님이 되지 않는 존재가 없나니 그 어떤 생명체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나온 유명한 게송이 있습니다.
과거전생을 알고자 하는가
현재 살아가는 네 모습이
바로 과거전생의 결과이니라.
미래후생을 알고자 하는가
현재 살아가는 네 모습이
바로 미래후생의 씨앗이니라.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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