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향기로운 삶

[스크랩] 행복을 기원합니다

慧蓮혜련 2010. 5. 27. 22:55

 

로또에 당첨되었습니다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해 마음고생 해본 경험들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겁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라서 까마득히 오랜 전 그런일이 있었습니다.

 

함께 일을 했던 형님인데 결혼을 일찍해서 세 살인지 네 살정도 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형님이었지만 형수님이 저의 형편을 알고 가끔씩 밑반찬 같은것을

갖다 주셔서 저희들과는 다소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며칠동안 심각한 고민이 있는 사람처럼 줄담배를 피기도 하고 수척해 보이더니

죄인과 같은 얼굴로 저에게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치료비가 없어.

한달만 쓰고 줄테니 돈 있으면 빌려다오” 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당시 자투리 돈을 동생들 몰래 모아서 넣던 만기가 가까워진 적금이 있었고 당장은

필요한 돈이 아니었기에 “오죽 했으면 내게까지 부탁을 했을까” 싶어서 돈을 선뜻 빌려줬습니다.

그런데 한달, 두달이 지나도록 갚아주지 않다가 급기야 그 형님은 아무런 말도 없이

연기처럼 뽕~~ 하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알고 있을 형님인데....

갚아주시겠지... 하며 기다렸는데도 소식도 없고 찾을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돈 떼먹고 날랐구나”  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지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때부터는 밤에 잠도 안오고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얼마후엔 막내가 간밤에 기침이 나고 열까지 오르는데 어떻게 손을 쓸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응급실에 가면 될텐데.... 사실 그때만 해도 제가 병원이라면

돈 잡아먹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수밖에 없었고 또한 반지하에 살면서 병원에 간다는건

죽어서나 가면 모를까.....여하튼 그 빌려준 돈이라도 있었으면 당장이라도 병원에

갈수도 있는데...어리석은 형때문에 동생까지 죽는건 아닌가....

 

문득 신문에서 읽었던  "목감기나 기침에는 귤껍질을 달여먹으면 좋다" 라는 글귀가

떠올라 새벽 한시인가 두시즘에 바깥에 나가 쓰레기통을 뒤지다시피 해서 간신히

귤껍질을 구해 씻어달여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 일 이후 더더욱 그 형님이 미울뿐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반드시 찾아 빌려간 돈을 받고야 말겠다고 수십차례 다짐하곤 했습니다.

 

이후 노점을 할때 일부러 시장입구쪽에 위치해있는 쪽을 선택해서 혹시나 싶어서 오가는

사람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영업 때문에 외부로 나갈 기회가 있으면 자원해서 돌아다니기도 하고......

"오십만원 찾아 삼만리" 라도 할 자세였고 꽤나 집착을 했었습니다.


몇 년이 흐른후 주택가 단지 안에 맛있게 하는 가정집식의 추어탕집이 있다고 해서

납품을 하러가던 길 들렀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와 걸어가는데 저만치에 걸터 앉아서

담배를 피는 꽤나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긴가 민가 해서 보니

초췌하게 페인트가 벗겨진 대문앞에 세상의 모든 걱정을 혼자하고 있는듯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바로 그 형님이었습니다.


“드디어 찾았다“ 라는 기쁨도 잠시 갑작스레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까지 부르르 떨리며

식은땀까지 흐르는데......혹시라도 내가 먼저 부르면 도망갈까봐 정말 살금살금 발자국

소리도 죽여가면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다가가는 그 몇초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떼먹을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오늘 피같은 내돈 못 받으면 가만두지 않을거다... 라는 식의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자객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가, 내가 돈 오십만원 때문에 이렇게 될 수가 있나....

아무리 돈돈돈 하지만 내가 너무 추해지는것 아닌가......돈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싶은 고뇌에 찬 철학자 같은 모습이 되기도 했다가,


그 돈 때문에 내 동생 목숨까지 뺐겼으면...이란 얼토당토없는 비약에 이르자 부글부글

타오르는 가슴속의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내 가슴속에서 이토록

속상해하는 그 분노는.....단지 돈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형편을 뻔히 알텐데, 뭣보다 부모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내가 형님을 믿고

순수한 마음으로 빌려준 것인데.....그깟 돈 때문에 아들을 팔아 나를 속였다는 배신감,

그 배신감 때문에 내가 이토록 화나고 분노하며 집착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돈이 없다면 아들이라도 대신 데리고 가야겠다” 는 위험한 생각까지 하며 거의 이성을

잃은채로 형님을 부르려던 순간...... “아빠” 하고 달려 오던 어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바퀴가 두 개정도는 빠진 낡은 장난감을 들고 그 아이는 형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저는 동상처럼 얼어 붙었고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의 어머니도 암투병하실 때 병원비 때문에 고생을 했고 급기야 집까지 경매로 넘어갔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팠다고 하면 울 엄마는 저를 위해 심장이라도 팔았을겁니다.

어쩌면 그 오십만원이 저 아이를 살려내는데 도움이 되었을수도 있고

설령 형님이 다른 목적으로 돈을 빌려갔다고 하더라도 저는 더 이상 부자간의 행복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 형을 애써 모른척 하고 지나갔습니다.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 사람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복수는 바로 그 사람을 용서해 버리는 것이다.... 라는 어디선가 읽은 글귀를

떠올리며 그때부터 그 돈을 완전히 잊고 저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지도 빌리지도 않았습니다.


어제였습니다.

전화가 온겁니다.

저를 찾느라 너무 고생했다며 나를 기억하느냐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하는데.....

바로 그 형님이었습니다.

“이거 또 돈 빌리려 온것 아니야” 라며 마음속에서 외치더군요.

순간 뜨끔했습니다.


그 형님을 만났습니다.

다음달에 입대한다는 아들에게 “너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다” 라며 저에게 인사를 시켰습니다.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그간 살아온 이야기,  얼마전부터 홍삼관련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그리고 너무 미안하다.  이제야 빚을 갚게 되었다며....

봉투를 건네 주었습니다.


집에 왔는데 제법 봉투가 두툼해서 만원짜리로 백만원을 넣었겠구나... 싶었습니다.

봉투에서 돈을 꺼내는 순간...

신사임당이 그려진 오만원권이었습니다. 오만원권 백장 오백만원이었습니다.

신사임당을 보고 있노라니 엄마 생각은 왜 또 나는지요?

 

너무 많은 돈이라서, 혹시 배달사고가 난것은 아닐까... 싶어서 전화를 했는데 돈을 너무

적게 준것 같다... 미안하다...꼭 부자되라... 기분좋은 덕담만 듬뿍 들어야만 했습니다.

 

살다보니 이런일도 있습니다. 아니 이사를 가고 난 다음부터 좋은일들만 계속 일어납니다.

세입자분들과 지난 주말 집들이도 했는데 옥상의 지붕 슁글이 뒤틀려지고 아무튼

공사를 하려고 했는데 마침 세입자분중에 그쪽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분이 계시는데

그분께서 재료비만 받고서 맡아서 하시겠다고 합니다. 또한 옥상에 판넬로 자그마한

창고까지 만들기로 했습니다.


분명히 제가 행복한것 맞지요?  과연 지금의 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까...

 

그저 "로또 당첨된 기분" 이 이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십만원은 공부하는 동생 보약지어 주려하고 오십만원은 남동생들 용돈줬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백만원!!!  오늘 기부했습니다. (제 능력에 맞게 기부하는 것이니 야단치지 마세요^^)

이제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수 있는 그 형과

다음 달 입대하는 아들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그분들의 성공을 빌어봅니다.

 

 

  - 부모의 사랑과 효 게시판에서 모셨습니다 -

 

 

출처 :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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