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과 아미타불/극락왕생 사례

[스크랩] 금강경과 왕생실화 - 금강경 지험록 (金剛經 持驗錄)

慧蓮혜련 2011. 5. 28. 13:18

金剛經 持驗錄 - 금강경 지험록


                          수 티안 청(許添誠) 모음
                              석 영곡 한글 역

 


    제1편 극락정토에 왕생하다


  1, 보살의 계위를 증명하다

 

당나라 때에 징쩐(淨眞)이라고 하는 비구니 스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 분은 장안의 적선사積善寺라고 하는 절에 머물고 계셨는데 평소에 늘 걸식에 의지하여 세월을 보내시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일생동안 성을 내지 않으셨지요. 그것은 인욕바라밀을 깊이 체득하셨기 때문입니다. 징쩐스님께서는 금강경을 십만 편을 외우셨고 또한 오로지 염불정진을 하시어 마음은 이미 극락세계의 안양정토에 계셨습니다.


당나라 고종 5년 7월 어느 날에 스님께서는 약간의 질병에 걸리시자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내가 근자에 5달 동안에 10여 차례에 걸쳐 아미타부처님을 뵈었다. 또한 극락세계에 이르러 보배 연꽃 위에서 동자가 노니는 것을 두 번이나 보았다. 또 성인의 계위에 오르신 성스러운 스님 5분이 나를 향하여 이렇게 수기하셨다. <그대는 다가오는 세상에서 붓다가 되리라>”
비구니 스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서방극락세계의 상품에 왕생함을 얻었다.”
그리고는 이내 결가부좌를 하시고 생명을 마치셨습니다. 그런데 하룻밤을 세고 나자 놀랍게도 징쩐스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내가 이미 보살의 계위를 얻고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두루 다니면서 공양하였다.”
그분은 말씀을 마치자 곧 입적하셨는데 찬란한 광명이 절 안에 가득하였습니다.


『금강경』에 이러한 구절이 있지요.
“ 일체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이 모두 이 경을 좇아 나오느니라.”
『육조단경』에도 적합한 말씀이 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은 가장 존귀하고, 가장 위이며, 최고 제일이다. 오고 감도 없고 머물음도 없으며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그 속에서 나오느니라.”
이러한 것만 보아도 얼마나 금강경이 수승한 지 알 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2, 금강경 10만 번 독송하다

 

  당나라 영휘(永徽) 원년(元年)에 밍쭌(明濬)이라고 불리는 한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홀연히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곧바로 누덕누덕 기운 파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를 어디론가 끌고 갔는데 바로 염라대왕 앞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이 그 분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일생동안 어떻게 수행을 하였습니까?”


밍쭌스님이 답을 하였지요.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외쳤습니다.
“훌륭하십니다! 만일에 10만 편을 독송하셨다면 내년에 틀림없이 극락세계에 왕생하실 것입니다. 그 때는 제가 스님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회복하여 살아나게 하였습니다. 이러함을 겪고 나자 밍쭌스님은 마음에 용맹심이 솟구쳐 가행정진에 매진하였습니다. 그리고 과연 이듬해 3월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어느 날에 앉으신 채로 입적하시었는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코를 진하게 찌르는 신이한 향기의 상서로움에 젖어들었습니다.

 

  3, 서방에서 와서 영접하다

 

  웨이꽁(惟恭)은 당나라 때 찡쩌우(荊州)의 법신사法信寺의 스님이셨습니다. 그 분은 30년 동안 매일 50편씩 금강경을 독송하셨습니다. 어느 날 같은 절에 사시는 링뀌(靈歸)스님께서 일이 있어 외출하셨습니다. 길을 가시다가 몸이 날렵하게 생긴 5~6명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입은 옷이 평범하지 않고 매우 맑고 깨끗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악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링뀌스님을 향하여 물었습니다.


“웨이꽁어르신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링뀌스님께서는 그들에게 도리어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어느 지방에서 오는 것입니까?”
그들이 말했습니다.
“서방에서 웨이꽁어르신을 영접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품속에서 오므린 모양의 한 송이 연꽃을 꺼내었습니다. 그 연꽃의 이파리마다 각각 신비로운 광명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멀리 절이 보이자 한 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날 웨이꽁스님께서는 곧바로 입멸하셨는데 절에 있는 대중들이 모두 관현악기에서 울려나오는 오묘한 음악을 들었다고 합니다.


    4, 칼을 내려놓고 보리의 길을 가다

 

송나라 때의 일입니다. 후쩌우청(胡州城)의 남 쪽에 리우웡(陸翁)이라고 하는 도살업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23세 되던 해에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다니는 운수행각 스님 한 분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문 앞에서 외쳤죠.
“인연있는 자를 교화하리라!”


리우웡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운수행각 스님은 리우웡을 때마침 보고는 곧바로 질문을 했습니다.
“그대가 도살한 돼지와 소와 양의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구나. 어찌하여 그대의 업을 바꾸려고 하질 않는 것인가?”
리우웡은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조상대대로 이어받아 익힌 습이라 한꺼번에 버릴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자 운수행각 스님은 이렇게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대가 살생업을 버리지 못한다면 내세엔 결정코 짐승의 몸을 받게 될 터이다. 그리하여 그대가 죽인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몸을 난도질 당하고 갈기갈기 찢겨져 죽임을 당하리라. 그러면 그대도 원한을 품게 되고 결국 원한과 원한이 서로 보복을 불러오게 되어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기약이 없다. 내가 그대를 잘 들여다보니 과거 언젠가 선근을 쌓은 적이 있도다. 그러하니 금강경과 묘법연화경을 부지런히 지니고 외우라. 그러면 업장이 녹아 없어지고 복과 지혜가 늘어나게 되리라.”


말씀이 끝나자 그 운수행각 스님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고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리우웡은 그 자리서 즉각 깨달았습니다. 이로부터 살생업을 짓지 않고 몸을 마칠 때까지 채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화공에게 청하여 서방극락세계에 계시는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 등의 세 분 성인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세 분 성인 앞에서 아침저녁으로 지극정성으로 예배하고 공양하였습니다. 또한 매일매일 부처님 전에 금강경과 법화경을 독송하며 지성으로 간절하게 지난 악업을 참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죽인 중생들이 모두 제도되고 해탈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하였습니다.


채 5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리우웡은 금강경을 다 외워버렸습니다. 이렇게 정진하길 오래하다가 81세가 되기 보름 전 쯤에 친한 친우들에게 초청장을 보내었습니다.
“오는 11월 9일에 맛있는 음식을 잘 장만하고 그대들과 장차 고별인사를 나눌까 하니 두루 참석하여 주길 바라네.”
그날이 오자 친한 벗들이 모두 리우웡의 집에 모였습니다. 리우웡은 그들과 낱낱이 이별의 인사를 나누고 나서 목욕을 마치고 노래 한 수를 읊었습니다.

 

“오십년 전에 익혀왔던 도살업 그만두고
  손에 익은 칼과 저울 던지고 그윽히 닦아서
  오늘 아침 보리의 길에 척 나서노니
  물속에 피던 연꽃 불속에 만발하였구나”
  五十餘年離殺業,手提刀秤暗修行,
  今朝得赴菩提路,水裏蓮花火裏生

노래를 마치고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나니 거기 모였던 사람들 누구나 우러러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5, 138분의 수보리존자

 

씨쫑춘(襲仲淳)은 중국 명나라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인인 쭈쓰(祝氏)는 위앤홍따오(袁宏道)의 남동생에게 있으면서 정토법문을 듣곤 했습니다. 그녀는 매우 신심이 깊어서 마음 속에 부처님 명호를 지니고 외우고 금강경을 독송하는데 전념하였습니다.


어느 날엔가 쭈쓰 부인이 그녀의 아이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3일 후에 나를 맞이하러 오겠다고 나에게 말씀하셨단다.”
이틀이 지나니 쭈쓰부인은 목욕을 정갈하게 하고나서 마루청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집안의 권속들이 빙둘러 모시고 앉았습니다. 한참이 지나자 쭈쓰부인이 말했습니다.
“스스로를 수보리라고 하시는 부처님 한분이 오셨는데 부처님의 위대한 모습은 장엄하기 그지없어 무엇과도 비할 수 없구나.”


그리고나서 또 말하였습니다.
“맞이하여 이끌어주시는 한 부처님이 오셨는데 미간의 백호白毫에서 한 줄기 은빛광명을 놓아 내신다. 그 빛은 마치 춤을 추듯 이리저리 구르면서 드날리는데 길이가 자그마치 몇 미터나 되는 듯하구나.”
말씀을 끝내고 쭈쓰부인이 손을 펴서 백호를 잡자마자 부처님이 곧바로 그녀를 손바닥 속으로 거두어 들이셨습니다.


찰나에 그녀는 수보리존자가 일백부처님으로 화현함을 보았는데 장엄함이 비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어떤 사람이 옆에서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금강경에 나오는 138수보리존자일 것입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권속들이 모두 향을 사루고 함께 부처님 명호를 외우니 쭈쓰 부인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적멸에 들었습니다.


그 때, 아홉 살 쯤 되는 한 계집종이 홀연히 땅위로 나뒹굴었습니다. 그러나 곧 일어나서 선채로 말하기를,
“내가 몇 명의 금으로 된 갑옷을 입은 거인들이 당번幢幡을 잡고 부인을 위하여 앞길을 이끄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당번의 자루에 내 얼굴이 부딪쳐서 땅에 거꾸로 쳐박히고 말았어요. 깨어나 보니 이렇게 많이 아파요.”하였습니다. 집주인이 계집종의 얼굴을 살펴보니 과연 확실히 상처가 있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상처는 점점 치유가 되었습니다. 쭈쓰부인의 몸을 염을 하여 관에 넣으니 관속에서 기이한 향기가 퍼져 나왔습니다.

 

    6, 명부의 관리를 사임하다

 

  유창(于昶)은 당나라 때 사람이었습니다. 일찍이 칭쪼우(慶州)에서 쓰마(司馬)로 부임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측천무후가 집권할 때에는 삥쪼우(幷州)로 부임하여 문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는 매일 밤 11시 이후에야 잠이 들었는데 가슴 속이 답답하여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 지고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밝아오면 곧 정상으로 회복되곤 하였습니다. 비록 매우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몸이 특별히 허약해서 그러한 듯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면 매일 거의 얼굴에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고 기색이 초췌하여 모두가 기괴한 일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가 하고 물으면 유창은 아무 대답없이 그저 묵묵할 뿐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유창의 부인인 류쓰(柳氏)는 그냥 보기엔 비록 남편이 장부의 몸을 갖추고 있지만 이처럼 허약하니 좋은 의사를 청하여 병을 치료해 보는 것이 어떠할 지 남편에게 떠 보았습니다. 하지만 유창이 단번에 거절해버리자 류쓰가 남편더러 남에게 말못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캐물어보니 남편이 부득이 못이겨 겨우 털어놓았습니다.
“기실은 내가 무슨 병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낮에는 공무를 처리하지만 밤이 되면 명부(저승)에 들어가서 관리가 되어 일을 하다 보니 이로 인해 체력이 조금 지탱해주지 못해서 그럴 뿐이오.”


류쓰 부인은 매우 놀랍기도하고 기이하기도 하여서 명부의 일을 계속해서 캐어 물었습니다. 유창은 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말만 할 뿐 다른 말은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류쓰 부인은 재삼 붙들고 물어보았지만 더 이상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유창은 재해가 발생할 것을 미리 알 수 있었기에 은근히 대처할 준비를 하게 하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습니다. 류쓰 부인이 혹 남편의 친형제들로 하여금 묻게 하여도 그는 요지부동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럭저럭 5,6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여전히 매일 낮에는 공무에 힘쓰고 밤에는 명부에 들어가서 일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비록 힘들게 일하지만 스스로가 주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뒤에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부지런히 회향공덕을 닦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길러주신 은혜에 조금이라도 갚아보려 한 것입니다. 그 이후 생각지도 못하였는데 다시는 명부에 들어가 관리의 일을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때, 유창은 금강경의 공덕이 불가사의함을 갓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금강경이야말로 모든 경전 가운데 최대의 복력을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에게도 금강경을 지송하게 하였고 널리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였습니다.


그의 나이가 50세에 이르자 관리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조정에 있던 유창의 사돈인 좌상左相 쑤량쓰(蘇良嗣)와、우상右相 웨이따이쨔(韋待價)와,대장군大將軍 리총쓔안(李沖玄)의 세 사람이 그에게 관직을 사임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유창은 완곡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조정에서는 간사하고 잔인한 신하들이 충성스럽고 선량한 신하들을 모함하였습니다. 그 때 유창은 비록 이미 관직에서 물러나 전원에 살고 있었지만 저러한 몹쓸 무리들의 모함을 받게 되어 결국은 감옥으로 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유창이 비록 감옥에 갇혔으나 내심으로는 터럭만큼도 슬퍼하거나 개탄하지 않고 한마음으로 열심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금강경을 지송하였습니다. 오래지않아 과연 찬란하고 밝은 서설이 쏟아지매 친한 벗들이 모두 불법의 가없음을 찬탄하였습니다.


유창이 평생에 비록 곤액을 여러 번 만났으나 금강경의 공덕을 인하여 위험을 도리어 평온함으로 돌리게 된 것입니다. 그가 84세 되던 해에 중병에 걸렸으나 여전히 병을 안고서도 금강경을 독송하였으며 거의 죽음에 이르러도 그의 정신은 여전히 매우 맑았습니다. 한 때, 홀연히 신이한 향기가 실내에 꽉차고 아름다운 향연기가 자욱하였습니다. 유창이 말하였습니다.


“화신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서방극락세계로 데려 가려 하신다.”
이윽고 친한 벗들에게 잘 있어라 말을 하고 생을 마쳤습니다.


7, 피로써 사경하여 부모님의 은혜를 갚다

 

  명나라 신종神宗 만력황제萬曆皇帝 때의 일입니다. 오동나무가 무성한 한 마을(桐鄕)에 우쭌핑(吳君平)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매우 효성이 지극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부모님은 너무나 일찍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우쭌핑은 과거시험에 도전하여 보았으나 여러 번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공부를 핑계삼아 영은사靈隱寺의 밀폐된 방에서 잠시 머물고 있었습니다. 

 

<자식은 봉양코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으시네>하고 벽에 써 붙여놓고 늘 부모님의 은혜를 갚지 못하였음을 생각하고 슬퍼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올릴 것이 아무 것도 없음에 애탄해 하며 슬피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통곡하기를 멈추지 못하고 순수한 한 조각 효심의 성품을 온 우주에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쭌핑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바로 그 때에 어떤 한 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아들 되는 자가 만일 부모님의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불경을 베끼는 공덕이 최고라네.”
우쭌핑은 그 말씀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어 곧 49일간을 채식을 하며 피를 내어 금강경 1권을 사경할 것을 발심하였습니다.

 

그가 피로써 사경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소식이 밖으로 퍼져나간 후, 멀고 가까운 곳의 승속이 모두 지켜보기 위해 모여 들었습니다. 우쭌핑은 양팔과 앞가슴에 한꺼번에 11군데를 찔러서 몸 위에 고인 맑은 피로써 사경을 하였습니다. 사경이 끝나고 나자 이 광경을 본 모든 이들이 찬탄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한 스님이 말했습니다.


“선생의 이와 같은 정성스런 마음의 고행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반드시 감동시킬 것이며
이와 같은 수승한 공덕은
양친의 은혜에 능히 보답한 것이 될 것이며
공명功名을 세상에 드날려 조상과 문중을 영광스럽게 함보다
천만 배나 훨씬 더 수승하리라.”


  한편 어떤 사람이 보궐진언 (옴 호로호로 사야목계 사바하)을 가리키며 아직 다 베끼질 못했다 하니 우쭌핑은 또 가슴팍을 찔러 피를 내어 보궐진언을 완성하게 하였습니다.
그날 밤에 우쭌핑의 꿈에 부모님이 구름 끝자락에 선채로 나타나시어 말하였습니다.


“네가 피를 내어 사경을 한 그 효심이 하늘과 부처님이 감동케 하고야 말았구나. 우리가 금강경의 위대한 법력에 의지하여 덕분에 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되었다. 너의 운명에 본래 아들이 없게끔 결정되었었지만 부처님께서 이미 훌륭한 아이를 보내시어 너의 씨앗을 계속 잇게 하셨느니라.”

 

그 해에 우쭌핑의 아내는 과연 남자아이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기를 때에 과일과 함께 비릿내 나는 음식도 함께 먹이려 하니 굳이 입을 닫고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쭌핑이 그것을 보고 깨우친 바가 있어 그 자리에서 서원을 세우고 죽을 때까지 채식을 하며 아울러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8, 금강경과 지장경을 지극정성 외우다.

 

  후앙뚜안빠이(黃端伯)은 명나라 짼창(建昌) 사람입니다. 일찍이 나찡(南京)에서 의제儀制를 주로 하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리쓰는 금강경과 지장경을 특히 지극정성으로 지송하였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자기가 산꼭대기에서 결가부좌하고 있는데 부처님의 광명이 몸 위로 쏟아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남편인 뚜안빠이에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서방극락세계를 가 보았더니 날씨가 매우 상쾌했어요.”
그리고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그녀는 몸이 점점 불편해짐을 느끼더니 염불하면서 임종하였습니다.


9, 염라왕이 보궐진언을 주다

 

송나라 소흥紹興 9년에 밍쪼우(明州)에 왕쓰부인이 살았습니다. 그녀는 평상시에 늘 금강경을 지송하였습니다. 왕쓰부인은 남편을 뒤따라 왔다가 치쪼우(岐州) 임지에는 먼저 가게 되었습니다. 왕쓰가 임신을 한 이후 28개월이 지나도록 아이가 여전히 태어나질 않았습니다. 또한 분만할 때엔 난산이 걱정되었습니다. 전 가족이 이로 인해 근심 걱정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은 왕쓰가 집대문의 문설주에 기대어 서 있었는데 때마침 만행을 하시는 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은 집집마다 다니면서 탁발을 하시는 중이었습니다. 스님이 왕쓰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시하면 공덕이 한량없습니다.”
왕쓰는 출가인을 매우 존경해 왔으므로 이에 공경히 보시하고 공양을 올렸습니다.


스님은 공양을 손으로 받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숙세에 선근을 심어 놓았었는데 지금 큰 곤란을 만나서 어찌하여 금강경을 인쇄하여 보시하지 않습니까? 만일 기꺼이 발심하여 금강경 일천 권을 인쇄하여 보시한다면 이 곤란을 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울러 복과 수명을 늘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손들이 모두가 늘 단란하고 화목하게 지낼 것이며, 이별의 고통을 만나지 않게 되며, 일체의 구하는 바가 그대로 보상을 받을 것이고, 7대 조상과 권속이 함께 선도善道에 뛰어 오를 것입니다.”

 

왕쓰가 숙세의 근기가 깊고 두터워 말씀을 듣고 열심히 반성하여 즉시에 스님의 신신당부를 그대로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금강경을 일천 권을 인쇄하여 보시하고 스님들 일천 분을 모셔서 재를 베풀어 드리고 아울러 스님들께 금강경 일천독을 청하였습니다. 왕쓰는 또 직접 천녕사天寧寺에 가서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께 예배드리면서 숙세의 나쁜 악업을 참회하였습니다. 그리고 분만할 때에 삼보의 보호하시고 도와주심으로 모자가 함께 평안하기를 기원드렸습니다.

 

그날 밤에 그녀는 꿈속에서 금강신을 뵈었는데 손에 금강저를 지니고서 그녀의 복부를 짚었습니다. 그녀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을 느껴 깜짝 놀라 깨어났으나 다행히 편안하게 쌍둥이 남자아이를 분만하였습니다. 두 아이의 용모는 매우 아름답고 흠이 없어서 사람들이 보는 이마다 저절로 기쁨을 일으켰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모자母子가 평안하고 걱정거리가 없었으니 전 가족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왕쓰는 이로부터 다시 재계하고 채식을 하며 일심으로 금강경독송을 끊어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61세가 되던 해에 왕쓰는 아무런 병도 없이 죽게 되었는데 두 사자가 명부로 데려 갔습니다. 거기서 염라대왕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생전에 일찍이 어떠한 선업을 지었소?”
왕쓰가 답하여 말하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부터 금강경을 지송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염라대왕이 한 번 듣고는 매우 공경하여 금으로 된 탁자를 하사하여 왕쓰로 하여금 앉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명부전 한 쪽에서 금강경 일편을 낭송해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녀의 경전 독송하는 낭랑한 소리는 지옥에 매여 고통 받는 중생들 모두에게 은혜와 이익을 입게 하였으며 일체의 쓰라린 고통을 잠시 멈추어 쉬게 하였습니다.

왕쓰가 독송을 마치니 염라대왕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진언을 외우지 않습니까?”
그녀가 답하였습니다.
“세간에서는 진언본이 없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진언본을 취하여 그녀에게 줄 것을 명하였습니다. 아울러 간곡한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대가 인간세상으로 돌아간 후에 이 진언본을 온 세상에 유통시킬 것이며 결코 유실치 말게 하여주십시오.”


그리고 또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수명이 다하게 되면 서방극락세계로 곧바로 왕생할 것입니다. 그러니 두 번 다시 이 속에서 만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보궐진언 <옴 호로호로 사예목계 사하>

1,회향: 진여실제에 마음과 마음이 계합함
2,회향: 위없는 부처님보리에 생각생각 원만함
3,회향: 법계의 일체 중생이 함께 정토에 왕생함


    10, 청량수

 

  첸삥(錢炳)은 명나라 때 사람입니다. 일찍이 푸양썐(富陽縣)에서 관리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사직을 하고 매일 금강경을 지니고 외우는 수행에 매진하였습니다. 임종할 때에 주변 식구들에게 청량수를 가져다가 마시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식구들이 물었습니다.
“청량수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말하였습니다.
“방생한 연못의 물을 가져오면 된다.”
식구들이 이 말을 듣고 연못의 물을 떠다 주니 맛있게 들이키고 나서 합장하고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부처님의 힘으로 직접 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되었다.”  이 말을 마치고 나서 흔연히 기뻐하는 모습 그대로 앉은 채 생을 마쳤습니다.


    11, 염라왕이 돌려보내어 경을 지송케 하다

 

쨩아이(張愛)는 명나라 만력萬曆 때에 환관의 벼슬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년에 그가 꾸준히 매진하던 일은 바로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병을 얻어 죽기 전에 가솔들에게 부탁하였습니다.
“경을 독송하고 잘 알아차리는 일을 반드시 잊게 해서는 안된다.”


쨩아이가 비록 그렇게 믿음이 깊고 마음에 두어 잘 새기고 했으나 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쨩아이가 두 명의 파란 옷을 입은 저승사자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말하였습니다.
“그대를 데려가서 산동에 이르게 되면 여자의 자궁에다 반드시 던져버릴 것이오.”


그들이 한 길로 나는 듯이 그를 데리고 달려갔습니다. 쨩아이가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가서 도착하니 몸을 받을 부모가 있었습니다. 쨩아이가 일심으로 금강경을 지송하면서 동악의 궁전에 이르러 묶여 있는데 위에서 근엄하게 앉아 있던 왕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응당 이곳에 이르러 태에 들어가리라.”
쨩아이가 말했습니다.


“제가 금강경을 지송하면서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였지 태에 들어가길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대의 금강경 지송한 공덕의 힘이 적었기 때문이다.”
쨩아이가 말하였습니다.


“제가 일찍이 듣기로는 십념을 성취하면 즉시에 왕생할 수 있다하였는데 하물며 제가 이미 수년간을 금강경을 지송한 공덕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왕이 말했습니다.
“잠시 그대를 놓아주어 다시 금강경을 지송할 기회를 주겠다.”


그리고는 곧 사자들에게 명을 내려 쨩아이를 세상으로 돌려보내었습니다.

쨩아이가 다시 살아 난 이후 집을 떠나 서쪽 산에 있는 벽운사碧雲寺에 머물면서 마음을 오로지 금강경을 지송하는데 매진하였습니다.


다시 11년이 지난 어느 날 모두들 모아 놓고 외쳤습니다.
“내가 금강경을 지송한 공덕의 힘으로 지금 바로 서방극락세계로 간다.”
말을 마치고 나서 단정히 앉아 생을 마쳤습니다.


    12, 벽에서 부처님형상이 출현하다

 

쎤춘쨔오(沈春郊)는 명나라 때 후쪼우(湖州)의 썅린쩐(雙林鎭)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벼슬길에 오른 후에야 페이쓰(費氏)에게 장가를 갔습니다. 그녀는 애석하게도 어렸을 적에 과부가 되어 직물 짜는데 의지하여 자급자족하며 살았습니다. 40여년을 재계하며 살면서 한 폭의 부처님형상과 단향목檀香木으로 새긴 관세음보살님의 성상에 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매일 새벽마다 반드시 금강경 1권을 독송하였고 부처님명호를 일천 번 외웠는데 춥거나 덥거나 결코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숭정崇禎 무인년戊寅年에 이 땅에 급성 전염병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위 쨩쓰마오(張世茂)의 집으로 이사를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녀는 누각 위에다 관음보살님의 성상을 겨우 모셔놓고 공양하고 받들었습니다. 그러나 불상은 여전히 옛 살던 집에 모셔져 있었으므로 그녀는 매일 불상을 향하여 향을 사르고 경전을 독송하였는데 이 향기가 부처님 계신 곳에 직접 이르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순식간에 3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러 신사년辛巳年 봄이 되었습니다. 홀연히 허공에서 기이한 향기가 퍼져 내려와서 누각을 며칠 동안 에워싸고 돌았습니다. 그리고 하얀 벽 위에 부처님형상이 솟아 나타났는데 장엄하기 그지없고 정미롭고도 미묘하였습니다. 이러한 소식이 멀고 가까운 곳으로 퍼져나가자 우러러 친견하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천으로 금방 닦은 것처럼 색채가 더욱 밝고 빛났습니다.

이윽고 4년이 지난 을유년乙酉年 봄 2월에 페이쓰는 딸과 사위에게 말하기를, “내가 반드시 옛집에 돌아가서 곧 서방정토극락에 왕생하려 한다.”하였습니다. 그녀는 옛집에 도착하여 청소를 하고 불상에 향을 사르고 예배하며 경전을 지송하였습니다. 그러다가 3일후 아침 일찍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 염불하였는데 오시午時가 되니 홀연히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내가 이미 극락가는 연꽃배에 올라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이다.”
그리고는 곧 식구들과 이별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나이는 73세였습니다.

 

  13, 기이한 향기가 실내에 가득차다

 

쩌우팅쨩(周廷璋)은 호를 추펑(楚峰)이라고 하였는데 명나라 정덕正德과 가정嘉靖 때에 윈난(雲南)에서 살았습니다. 사람됨이 순박하고 솔직하며 충직하고 인정이 두터웠습니다. 평소에 부처님과 진리에 대한 믿음이 매우 정성스러웠습니다. 그는 매일 맑은 새벽에 일어나서 금강경과 아미타경과 관음경 그리고 여려 경전을 반드시 지송하였습니다.

 

그가 평소에 보시하기를 매우 좋아하여 항상 궁핍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어떨 땐 비록 남들이 항상 그를 놀리더라도 그는 터럭만큼도 마음에 담아 두지 않고 여전히 <무아상無我相 무인상無人相>의 뜻에 잘 계합함을 스스로 만족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가 87세 되던 그 해에 아내와 자식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장차 죽게 되면 아미타부처님께서 나를 영접하러 오실 것이다. 또한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도 모두 함께 오실 것이다.”
잠시 후에 또 말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5일 동안은 비릿내 나는 음식을 멀리하면 서방극락세계에 곧 왕생하리라고 하셨다.”

그날로부터 그는 매일 죽 한 그릇에 나물 한 그릇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면서 재계를 깨끗이 지니었습니다. 드디어 5일이 지나자, 그는 목욕을 하고 단정히 앉아서 자제들에게 칠보여래七寶如來의 명호를 외우게 하며 스스로는 경전을 외우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곧 몸에서 기이한 향기가 뿜어져 날리었으며 용모는 마치 살아있는 듯하였으니 주위에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의 극락왕생성취를 칭찬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14, 연꽃이 피다

 

쭈쓰(朱氏)는 송나라 때 쨔추안(霅川)에 살았습니다. 그녀는 30년 동안 부처님명호를 외우고 금강경을 지송하였습니다. 경전을 펼 때면 매번 많은 성인들께서 왕림하시어 살펴보시는 듯 하였기에 감히 높이 앉지를 못하였습니다. 어떤 날은 홀연히 하루 종일 음식을 끊다가 그 이후론 매일 물 몇 잔만 마시면서 40일이 지났습니다. 꿈을 꾸는데 손에 연꽃을 든 스님이 세 분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대를 위하여 연꽃을 심었었는데 오늘에야 활짝 피었도다. 그래서 그대를 맞이하러 가겠노라.”
잠에서 깨어난 추쓰는 염불하기를 더욱 열심히 하여 잠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단정히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5, 관불삼매를 이루다

 

탕쓰(唐時)는 명나라 때 후쩌우(湖州) 사람입니다. 럔츠따쓰(蓮池大師)의 가르침을 따라 염불과 법문을 받아 지녔습니다. 그의 권속들도 또한 모두 다 능히 금강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줄줄 외울 정도였습니다. 낮부터 각자 염불하고 경을 외우다가 밤이 되면 전 가족이 모두 모여 부처님 전에서 예불하고 경을 외웠습니다. 탕쓰는 거기에다 더 관불삼매觀佛三昧를 닦았는데 부처님께서 상서로운 모습을 나투심을 자주 친견하였습니다. 임종할 때엔 바르게 삼매에 든 채로 생을 마쳤습니다.

 

    16, 염불 속에서 앉은 채로 입적하다

 

후이안(慧安) 비구니스님께서는 송나라 때 밍쩌우(明州)에 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작은 냇가에 세워진 양쓰楊氏의 암자에서 수행을 하였는데 오로지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할 인연을 닦으면서 금강경을 지송하였습니다. 춥거나 덥거나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정근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자주 촛불 속에서 부처님형상이 출현함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몸이 좀 불편하여 정신을 집중하여 단정히 앉고는 모두들에게 시끄럽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잠시 후에, “부처님께서 오셨다!”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크게 염불하니 오래지 않아 후이안스님은 앉은 채로 입적하셨으니 세속나이로 96세 였습니다.


    17, 결가부좌한 채로 세상을 떠나다

 

쎤삥(沈炳)의 자字는 찡푸(敬孚)이고 청나라 때 챵쩌우(長州) 사람입니다. 그가 20세 때에 천식병을 얻어 30세엔 병의 증세가 더 심해지고 50세가 되자 더욱 더 심해졌습니다. 이에 심병은 염불을 시작하고 아울러 재계를 지키면서 생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친한 벗인 양꾸앙먼(楊廣文)이 그에게 금강경을 독송할 것을 권하니 이에 매일 3편씩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자 병의 증세가 점점 호전되는 것이었습니다.

 

건융乾隆 46년 한 해가 저물어 갈 때에 몸이 점점 불편해짐에 따라 그믐이 다가오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목욕한 후에 서쪽 극락정토를 향하여 결가부좌하고 염불하였습니다. 당시에 부인과 자식들이 그의 곁에 있었는데 손을 내저으면서 밖으로 나가라고 외쳤습니다. 조금 있다가 곧 적연히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8,부처님께서 큰 몸을 나투시다

 

왕양취앤(王仰泉)은 청나라 때 항쩌우(杭州) 사람입니다.
그의 직업은 양을 도살하는 일입니다. 어느 날 그가 병들어 누워 있는데 꿈에서 수많은 양들이 그를 향해 다가와서 목숨을 애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꿈을 깨고나서 그는 도살업을 던져 버리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습니다. 아울러서 오래오래 재계를 지키면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이렇게 금강경  천 편을 독송하고 나서 법화경에 절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81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명부의 사자가 와서 그를 데려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에 저항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부처님이 오셔야만 갈 수 있다!” 하였습니다. 과연 5일이 지나자 부처님께서 크신 몸을 나투셨습니다. 그리고는 왕양취앤을 인도하려 하시니 그는 흔연히 따라 갔습니다.


    19, 도심에서 물러나지 않다

 

명나라 때의 일입니다. 쨩위앤(張元)은 바닷가에서 소금을 만들고 고기를 잡는 가문 사람으로서 그의 아우인 쨩쩐(張貞)과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배를 저어 돌아오다가 긴장을 풀고 푸른 소나무가 서 있는 둑에 배를 대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 수면위로 기이한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그는 물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 한 개의 돌상자를 건져 올렸습니다. 뚜껑을 열어 보니 금으로 새긴 금강경 한 본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날 밤에 쨩위앤의 꿈에 금으로 된 갑옷을 입은 신장이 나타나서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전생에 챵수이(長水)법사였다. 불법 강의에 힘을 쏟았으나 도심(道心)이 견고하지 못하여서 이곳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도 옛 경전을 강의한 인연이 남아 있었기에 특별히 그대에게 큰 법을 내려줄 것이니 응당 부지런히 정진하고 지송할지어다.”


쨩위앤이 말하기를, “전 글자를 읽지 못합니다.”하니 금갑신장이 그에게 입을 벌리라고 하고는 환약 1알을 그의 입속에 넣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쨩위앤이 잠에서 깨어나 금강경을 펴들었는데 읽기가 매우 쉬운 것이 마치 오래오래 읽어서 잘 익힌 것만 같았습니다.

 

 쨩위앤은 한달음에 근처 소경사로 달려가서 추안루(傳如)스님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습니다. 추안루스님은 이를 들으시고 나서 그에게 서방정토에 회향할 수 있도록 힘쓰라고 쨩위앤을 독려했습니다. 3년이 지난 후, 쨩위앤은 친척과 친구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습니다.
“연화대가 이미 나타났다.”
그리고는 단정히 앉아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만력萬曆 정축년 7월의 일입니다.

 

      20, 복력을 타고서야 왕생할 수 있다

 

팡쭈(房翥)는 당나라 때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을 불법을 숭상하고 믿으며 살았는데 매일 염불하며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팡쭈가 돌연 갑자기 죽었습니다.  저승에 도착하니 염라왕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금강경을 지송하고 아울러 또한 일찍이 한 노인에게 염불하기를 권하여 극락정토에 왕생케 하였으니 그대는 이러한 복력을 타고서 당연히 극락왕생할 수 있음이로다.”


팡쭈가 말하였습니다.
“제가 일찍이 금강경 1만독을 발원하였었는데 아직까지 다 읽지 못하였습니다.”
염라왕이 말하였습니다.


“경전을 독송하려는 발원을 완성하려는 의지가 가상하구나. 지금 정토에 왕생하기는 좀 이른 감도 있으니 잠시 미루어도 좋겠지.”
염라왕이 팡쭈를 위해 특별히 결정을 내리어 명부의 관리를 파견하여 그를 세상으로 돌려보내었습니다.


      21, 경전독송으로 삼보정재를 함부로 쓴 죄를 녹이다

 

  파창(法藏)은 당나라 때 푸쩌우(鄜州)에 위치하고 있는 보실사(寶室寺)의 스님입니다. 계행을 잘 지니고 성품이 고상하며 심원했으며 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웠습니다. 그리고 널리 자비를 베푸는 실천을 하셨습니다. 그가 일찍이 수나라  개황開皇 13년에 루어쨔오썐(洛交縣)의 웨이추안(葦川)강변의 성조사城造寺에 줄곧 머물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법당과 강당을 여러 채 지었고 스님들이 머무는 승방도 20여칸이나 지었습니다. 그가 조성하여 법당에 모신 불상은 높이가 무려 1장6척이나 되었고 다른 불상에 비한다면 몇 배나 훌륭하게 장엄되었으며 관세음보살님의 성상도 특별히 정교하고 아름답게 조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파창스님은 여기서 불경을 800여권이나 사경하였습니다.

 

당나라 무덕武德 2년에 파창스님은 그만 중병에 걸려서 정신이 혼미해져 업무를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손에 부처님경전을 든 금강신이 나타나서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일생동안 절을 짓고 경전을 사경한 공덕이 비록 크다하나 삼보의 재물을 넘나들며 써버린 죄가 한량없다. 그래서 내가 지금 그대에게 금강경 1권을 줄 터이니 만일 능히 실컷 사경하고 독송하며 널리 유통시킨다면 그대의 죄가 소멸될 것이며 몸의 질병도 낫게 될 것이다.”

 

파창스님은 이에 발원하여 금강경을 사경하여 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병이 위중함을 알게 되자 제자들에게 교대하게하고 그의 옷과 발우를 팔아서 돈으로 바꾸어 금강경 일백 권을 찍어내어 널리 일체의 세상 사람들이 독송할 수 있게 유통시키라고 말하고나서 곧 입적하였습니다. 

명부에 도착하니 염라대왕이 그에게 질문하였습니다.


“그대는 일생동안 무슨 공덕을 지었습니까?”
파창스님이 회답하였습니다.
“일찌기 탑과 절과 불상을 조성하였으며 금강경 100권을 서사하여 세상에 유통시켜 독송케하였으며 아울러 다른 경전도 800여권을 사경하였습니다.”

 

염라왕이 그 말을 듣고 합장하고 칭찬하여 말하였습니다.
“스승이시여! 당신의 공덕이 지극히 크며 불가사의합니다.”
염라왕은 곧 좌우의 신하들에게 공덕장부를 가져오게 명한 후, 친히 상세히 살펴보더니 과연 파창스님이 말한 것과 딱 들어 맞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스승이시여. 당신의 공덕이 완벽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세상으로 도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당신께서 대중들에게 금강경독송을 많이많이 권하여 널리 일체공덕을 닦게 하소서.”

파창스님이 99세 되던 해 정월 15일에 대중들을 청해다가 묘법연화경과 금강경을 각 7편을 함께 독송하고 법상에 올라서 단정히 앉아 게송을 읊었습니다.

 

“금년에 99라(今年九十九)
  보고 또 보아도 가진 것 없도다(看看無所有)
  어떠한가라고 다신 묻지 말아라(更莫問如何)
  허공에 의지하여 곤두박질친다네(憑空打筋斗)”

 

게송을 읊고 나서 대중들에게 잘들 있어라 하고는 홀연히 입적하였습니다. 이 때 절 안에 있던 승속의 모든 이들이 아미타부처님께서 파창스님을 서방극락세계로 영접하여 인도하심을 함께 보았습니다.


    22, 가부좌하고 고요히 참구하다

 

명나라 때에 루싼(廬山)에 한 스님이 계셨는데 법명을 푸찡(普靜)이라고 불렸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뜻하는 바가 범상치 않았는데 10살에 벌써 출가하려는 지극한 생각을 내었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꾸는데 금강신이 나타나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이후에 장차 선지식을 이루어서 바른 과보를 이루리라.”

스님께서 꿈을 꾸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스승을 찾아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습니다. 내전內典(부처님 경전)을 점점 배우고 익히며 아침저녁으로 금강경을 지극정성으로 독송하기를 10년을 하루같이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스님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경전을 독송하는 방법이 결코 이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신인은 스님을 향하여 게송을 설하였습니다.

“모양있는 모양은 참이 아니요(有相相非眞)
  법없는 법도 또한 떨어지고야만다(無法法亦墜)
  옛 보금자릴랑 냅다 던져버리면(撇卻舊窠臼)
  즉각 큰 뜻을 요달하리라(卽已了大意)”

 

푸찡스님은 게송을 듣자마자 활연히 깨달았습니다. 이로부터 매일 금강경을 1편씩만 낭랑하게 독송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가부좌를 틀고 고요히 참구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40년이나 방석에서 내려오지를 아니하였습니다.

어느 날 밤에 신인이 다시 꿈 속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이미 닦음을 벗어나 중도를 얻음에 이르렀다.”
90세에 이르러 스님께서는 원적圓寂에 들어가시려고 할 즈음 밤새도록 아름다운 향기가 흩어지지 아니했으며 절 안의 승속 대중이 모두 당번幢幡이 스님을 인도해 가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푸찡스님의 몸에는 보랏빛 가사가 저절로 입혀졌고 손에는 목환자(木槵子)를 쥐고 하늘 높이 올라 서쪽으로 가셨습니다.

 

    23, 붉은 노을이 지붕 위를 덮다

 

후앙포(黃婆)는 송나라 차오싼(潮山)사람으로서 늘 부처님 명호를 외우며 법화경과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설사병을 얻었는데 스스로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문득 음식을 끊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단지 물 몇 잔만 마실 뿐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에 상린암上鄰庵에 계시는 싼씨우(善修)스님의 꿈에 후앙포가 와서 하는 말이 장차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려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고나서 이틀 후에 과연 후앙포는 서방을 향하여 염불하면서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붉은 노을이 찬란하게 빛나면서 지붕 위를 덮는 것을 이웃사람들이 모두 보았습니다.

 

    24, 왕쓰의 딸이 천지를 감동시키다

 

왕쓰(王氏)는 송나라 때 찌안(吉安)사람입니다. 그녀의 딸은 매일 아미타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과 금강경 등을 독송하였습니다.
왕쓰가 죽기 며칠 전부터 몸 전체에서 피가 흘러나오자 이를 마음 아파하던 딸이 발원하였습니다.
“만일 저의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진실이라면 원컨대 어머니의 신체에 더럽고 냄새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딸은 발원을 마치고나서 피를 낭자하게 흘리며 서있었습니다.


하루는 왕쓰가 병든 채 침대에 있는 누워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상서로왔습니다. 이윽고 손에 관세음보살님의 보배 깃발을 쥐고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화장을 한 연후에 뼈를 수습 하였는데 식솔들이 재를 체로 칠 적에 연꽃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25, 길상스럽게 누운 채 가다

 

천쓰(陳氏)는 송나라 때 사람입니다. 그는 계를 잘 지키면서 평소에 매일 참선하고 경을 독송하는 것으로 낙을 삼았습니다. 30년을 부처님 명호를 염불하였으며 아울러 법화경을 5000편 독송하고 금강경과 아미타경을 각각 5048편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음식을 끊었습니다. 식구들이 놀라서, “왜 음식을 드시지 않습니까?”하니, 그가 말하였습니다.
“부처님을 뵐 것이기 때문이다.”
말을 마치고 나서 길상스러운 모습으로 누워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26, 염불하여 왕생하다

 

리우따오롱(劉道隆)은 명나라 때 사람입니다. 그의 어머니 리쓰(李氏)는 40살에 발심하여 계를 지키고 부처님을 받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글자를 읽지 못하였으므로 경을 독송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방을 한 칸 마련하여 거기에다 관세음보살님과 금강경을 모셔놓고 공양올리며 받들어 모셨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향을 사르고 예배를 올렸는데 1000번씩 염불하는 것으로 과업을 삼았습니다.

 

 그녀의 정성은 겨울에 매서운 한파가 닥치거나 한여름에 폭염이 내려쬐어도 그칠 줄 몰랐습니다.

동짓달 매서운 혹한이 찾아오면 식구들이 그녀가 동상이라도 걸릴까 염려되어 탄불을 탁자아래 놓아두고 가면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물리라고 하였습니다.


리쓰가 비록 그렇게 글자를 몰라서 능히 경전을 독송하지는 못하였으나 거액을 내어 금강경을 새기고 인쇄하여 부처님께 인연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자주 수지독송할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녀의 생일이 다가와서 아들과 딸들이 그녀를 위하여 생일잔치를 벌리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딸과 며느리들에게 술자리를 벌여서 손님에게 대접하지 말라고 경계하였습니다. 그리고 전 가족이 채식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더욱 하루 혹은 사흘 동안을 예참禮懺하곤 하였는데 이러한 생활양식이 25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그녀가 임종하기 1년전 쯤 보관하고 있던 돈을 내어서 대중스님들을 청하여 모시어 금강경을 염송케 하여 공덕을 널리 닦았습니다. 그녀의 꿈속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한 꾸러미의 염주를 그녀에게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이 염주의 숫자를 셈하여 보아라. 이것이 그대가 서방정토에 왕생할 날을 기약하리라.”
그녀가 꿈속에서 한 번 세어보니 153과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해 경자년 5월 3일이 되자, 그녀는 갑자기 가솔들을 불러놓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한다. 너희들은 큰소리로 염불하여서 나의 극락행을 도와다오.”
말을 마치고 단정히 걸상위에 앉으니 아들과 딸과 며느리 등이 모두 그녀의 주위에 모여 앉아 열심히 염불하였습니다. 그녀는 이 염불소리를 듣는 가운데 행복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7, 기이한 향기가 실내에 가득하다

 

쑤쌰오크(徐孝克)는 수나라 대에 국자감國子監의 박사博士였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불법佛法을 돈독하게 믿었는데 경론經論을 풀어 해석하여 널리 펴는데 진력하였으며 다른 일에는 공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남북조시대 진나라 천가天嘉 때에 이안(剡)의 관리직을 받았습니다. 태건太建 4년에 조정에서 그에게 비서직을 맡기려고 불렀으나 그는 그 직에 부임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후경侯景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 쌰오크는 아내를 팔아 모친을 봉양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재계를 지키고 채식을 하였으며 아울러 보살계도 받아 지녔습니다. 이때 모든 관청에 자주 도깨비가 출현하였습니다. 쌰오크는 이미 살다 떠난 후라 요괴들을 전혀 보지 못하였습니다.

 

진나라가 망한 후에 쌰오크는 창안(長安)으로 갔습니다. 수나라 황제인 문제文帝는 그의 덕높은 명성을 오래 전부터 들었던 터라 특별히 칙령을 내려 그를 청해다가 상서성尙書省에서 금강경을 강설하게 하였습니다. 개황開皇 12년에 쑤쌰오크가 이미 73세가 되니 죽음을 맞이하는 염불을 하였는데 실내에 기이한 향기가 났습니다. 이에 이웃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경이롭게 여기면서 아울러 불법의 위대함을 찬탄하였습니다.

 

  28, 비구스님이 경을 독송케하다

 

  쑨따깐(孫大玕)은 명나라 때 사람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습니다. 12세에 아버지 찡우(鏡吾)거사를 따라 아미타부처님의 48대원을 받들었습니다. 운서사雲棲寺에 가서 오계를 받아 지니고 집으로 돌아온 후 모든 비릿내 나는 생선과 누린내 나는 육고기를 끊고 사람들과 서로 교유하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이로부터 말을 적게하거나 침묵하면서 일심으로 염불하였습니다. 신명을 아끼지 않고 정근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반드시 극락세계에 들어가 상품에 왕생하겠다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오래 되지 않아 2명의 비구스님이 손에 연꽃을 들고 나타나더니 그에게 금강경을 하루낮 하룻밤을 독송하라고 하였습니다. 쑨따깐이 그대로 열심히 하였더니 과연 얼마 후 홀연히 일어나 말하였습니다.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께서 함께 나를 영접하러 오신다.” 
쑨따깐은 손으로 금강권인金剛拳印을 맺고 큰 소리로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여러 번 외친 후 단정히 앉아 원적圓寂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만력 신해년(서기1611년) 11월 11일의 일입니다. 쑨따깐은 「정토십이시가淨土十二時歌」라는 노래를 남겼습니다. 상세한 것은 우타이쓰(吳太史)의 「서생전西生傳」을 보시면 됩니다.

 

    29, 금강경을 독송하고 서방에 회향하다

 

  우(吳)모某는 청나라 쯔쨩(浙江)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남아 있질 않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상생庠生이 되었습니다. 순치順治 원년에 수많은 군대가 성을 포위하게 되자 그는 부모와 이별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곧 붙잡혀서 짱(張) 장군의 휘하에서 복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그의 나이가 겨우 13살이었을 때입니다.


그는 스스로 슬프게 탄식하기를, “내가 본래 이 선비 집안의 아들인데 어쩌다가 이러한 지경에 떨어졌을까? 필시 이것을 과거 숙세의 죄업이 불러온 것일 것이다.”하고는 부처님 앞에서 서원을 하였습니다. 곧 재계를 지키고 염불을 하면서 매일 금강경 1편을 독송하면서 서방극락정토에 회향함을 발원하였습니다.

 

이윽고 삼년이 지나 우모는 양식과 은銀을 내어 향을 사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아울러 장궤합장하고 아미타부처님의 성스러운 명호를 외우는 정진을 끝없이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10년이 지나 정유년 10월 2일에 우모는 갑자기 짱 장군에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서방극락세계로 가게 되었습니다.”


짱 장군은 그 말을 믿지 않고 요사스런 말로 미혹하고 어지럽히려 하느냐고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다음 날, 우모는 상관에게 찾아가서 휴가를 청했는데 상관은 크게 화를 내고 짱 장군에게 보내었더니 장군이 매를 15대 때리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우모는 터럭만큼도 원망하지 않고 군영으로 돌아와서 모든 장교와 사병들에게 앞으로 11월 1일에 서방극락세계로 왕생할 것이다라고 이별을 고하였습니다.

 

그날이 다가오자 우모는 오전에 일찍 일어나 목욕을 한 후, 향을 사르고 부처님전에 예배를 한 후, 평소처럼 여전한 몸가짐으로 배위로 올라가서 짱 장군에게 절을 올리고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짱 장군은 크게 노하여 우모가 막 몸을 태우려는 곳으로 부하들을 시켜 그를 잡아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며 우모는 서방극락세계를 향하여 3번 절하고 단정히 앉아서 게송을 읊었습니다.

 

“몸은 철갑을 입었고
  발밑은 금연꽃
  모든 장교와 사병들이여,
  각자 채찍 하나씩 들어라.”
  身披鐵甲,足步金蓮,
  願諸將士,各着一鞭

 

게송을 마치고나자 모두들 보는 가운데 우모의 입에서 삼매의 불이 솟구쳐 나와 스스로의 몸을 활활 태웠습니다. 군영에 있던 모든 장교와 병사들이 이러한 광경을 보고는 둘러싸고서 예배를 올렸습니다. 이로부터 짱 장군의 전 가족들도 재계하면서 부처님을 받들었다고 합니다.

 

 

        제2편 임종 때의 상서로운 모습들

 

    1, 외눈금강비구니

 

명나라 만력萬曆 때의 일입니다. 꾸이떠푸(歸德府)의 성 외곽에 수정암水晶菴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암자에는 연로하신 비구니스님 한 분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 분은 항상 금강경으로써 일상생활을 하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적부터 한 쪽 눈을 잃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 분을 외눈금강비구니(獨目金剛尼)스님으로 불렀습니다.

 

그 분은 천성이 담백하시고 거친 잡곡으로 대충 지은 음식으로 하루끼니를 때우셨습니다. 혹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갖다 드리면 스님은 그것을 가져다 어려운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시곤 하셨습니다.

한 번은 스님이 경전을 강의하면서 설법하시는데 선남자들과 여신자들이 둘레에 모여서 듣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한 선비가 물었습니다.


“금강경은 어째서 32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까?”
스님이 답하셨습니다.
“하나로써 꿰뚫는 것입니다.(一以貫之) 유가儒家와 불가佛家를 따지지 않고 모두가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 속에서 어찌 많은 단락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스님은 이어서 게송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 금강경 설하시매 미묘하게도 여럿 출현했다네
  한 마디에 여러 성문끊고 깨달아 들어갔으니
  만일 어떤 이가 금강경의뜻 알아버린다면
  어찌 32로 나뉜 것 쫓아다닐까!”
  佛說金剛妙出群,一言了悟絶聲聞,
  有人解得金剛意,四八何須逐段分

 

또 어떤 스님이 여쭈었습니다.
“어찌하여 금강이라고 하였습니까?”
비구니스님께서 답하셨습니다.
“금강은 사람 사람마다 모두가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찾아 묻는 것입니까?”
스님께서 또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금강이여. 참으로 이 금강을 믿으라
  백 번 다듬고 천 번 두드려도 항상 그대로이네
  허공을 부순다한들 그냥 그 자리
  다만 지금 여기서 부처님 광명을 보네”
  金剛果信是金剛,百鍊千錘永不傷,
  粉碎虛空些子在,祇今惟見佛毫光

 

또 어떤 사람이 여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 뜻을 깨달으셨습니다. 한데 어찌하여 남자 몸으로 바꾸지 않으십니까?”
스님이 답하셨습니다.
“형체는 비록 남자와 여자의 분별이 있으나 불성은 이것저것 분별이 없습니다. 분별하여 보는 마음을 짓지 마세요.”
스님이 또 게송을 설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여. 어찌 거짓과 진실을 가리랴.
  관음보살이 정말로 어떤 사람으로 나투실까?
  가죽껍데기 벗어 다하면 전혀 쓸모없다.
  시험삼아 묻노라. 이 남자 몸인가, 여자 몸인가?”
  男女何須辨假眞,觀音出現果何人?
  皮囊脫盡渾無用,試問男身是女身?

 

묻는대로 척척 답하시는 스님의 변재는 걸림이 없으셨으며 영민하시고 특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멀고 가까운 곳에서 스님에게 귀의하는 사람들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스님께서 세수가 70을 훌쩍 넘기자 왕생하시기 전에 미리 가시는 날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날에 스님의 코끝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스님은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다비하여 한 번 가면 영원히 공空으로 돌아가네
  거기서 공을 찾으면 문득 공이 아니라네
  내가 가고 내가 오지만 여전히 이 ‘나’라네
  번갯불과 물거품, 그림자와 한가지로구나”
  荼毗一去永歸空,着處尋空便不空,
  我去我來仍是我,電光泡影一般同

 

게송을 마치시고 곧 단정히 앉아 눈을 감으신 채로 원적에 드셨습니다.
이것은 허난(河南)의 썅꾸앙(祥光)스님께서 직접 눈으로 보시고 저에게 그대로 전해 주신 것입니다.


    2, 개의 몸을 면하다

 

송나라 때의 일입니다. 쑤쩌우(蘇州)에 살던 쭈(朱)진사進士는 평생을 단지 유가儒家의 서적만을 읽었지 부처님 법은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우연히 어느 날 호구산虎丘山에 놀러 갔다가  포인싼쓰(佛印禪師)께서 금강경 가운데 “일체의 유위법은 꿈,환영,물거품,그림자와 같고 또한 이슬같고 번개같다.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어다.”라는 사구게 등을 강의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쭈진사의 마음에 이렇도록 특별히 경이롭고 기쁨을 주는 것을 들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이에 전체 경전의 뜻을 참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오후에 잠을 자는데 꿈에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5사람을 잡아 가는 것을 보았는데 쭈진사가 가만히 뒤따라 가 보았습니다. 약 2리 길을 따라가니 큰 길이 하나 나왔는데 거기서 다시 골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골목 안에서 파란색 커튼을 친 한 집으로 들어갔는데 주방 안에 한 개의 나무통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통 안에는 끓인 물이 있었는데 그 5사람은 모두 마셨습니다. 쭈진사도 마시려고 하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큰소리로 막으면서 말했습니다.


“불법을 들은 사람은 마실 수 없소.”
쭈진사는 놀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쭈진사가 꿈을 믿는 바가 생겨서 가만히 큰 길로 나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꿈에서 본 것과 형태가 완전히 일치하는 인가를 한 채 발견하였습니다. 쭈진사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서 주인에게 주방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었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방금 마침 주방에서 강아지 6마리가 태어났는데 그중에 한 마리가 죽어버렸지요.”
쭈진사는 이 말을 듣고 놀랍고 두려워 식은 땀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만일 불법을 듣지 못하였다면 나는 벌써 개의 몸을 받았을 겁니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마음을 오로지 금강경을 독송하는데 전념하였습니다. 89세 되던 해, 8월 15일에 벗들을 초청하여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러한 연후에 후원에 있는 나무에 올라 가지에 걸터앉아 게송을 읊었습니다.

 

“팔십구 년의 주공朱公이여,
  양손으로 허공을 비틀어 부숨이며
  뜬구름 발로 밟아 부숨이로다
  선채로 보리수 동쪽으로 가리라.”
  八十九年朱公,兩手擘破虛空,
  脚踏浮雲粉碎,立化菩提樹東

 

게송을 마치고 땅 아래로 뛰어내리더니 다시 말위에 올라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긴 말이 있습니다.
“한 번 사람 몸을 잃으면 만 겁이 지나도 다시 얻기 어렵다.”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는가?”


쭈진사가 <일체의 유위법은 꿈,환영,물거품,그림자와 같고 또한 이슬같고 번개같다.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어다.>는 사구게를 듣고 마음속에 일찍이 없었던 환희심을 느낀 것은 마치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과 같은 것입니다.


“이 장구章句에 능히 신심을 내어 이로써 참다움을 삼는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한 부처님 두 부처님 셋 넷 다섯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 처소에 모든 선근을 심은 것이 되며 이 장구를 듣고 한 생각의 맑은 믿음을 낸 자에 이르기까지 수보리여, 여래는 이 모든 중생이 이와 같은 무량공덕을 얻은 것을 다 알며 다 보느니라.”

 

경을 지니고 외우는 것은 다만 죄가 멸해질 뿐만 아니라 또한 반야의 씨앗을 심은 것이 되며, 이를 의지하여 점점 수행하면 인과가 원만해짐에 도달하여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질 않고 한 번 이 사람 몸을 잃어버린다면 고통 받는 것이 한이 없을 것이며 큰 업의 덩어리가 꽉 차버림을 당할 때 또한 생을 굴려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을 지니고 외우는 공덕은 죄의 과보를 돌려 부처님의 과위를 얻게 하니 금강경에는 실로 수승하고 비할 수 없는 불가사의가 있는 것입니다. 


    3, 하늘에서 꽃덮개를 내리다

 

짱위앤쑤(張元素)는 당나라 때 루오양(洛陽)사람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금강경을 지니고 독송하였습니다. 천수天授 초년에 후앙매이(黃梅)에서 읍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짱위앤쑤의 집안에 액난이 들면 반드시 가라앉기를 염원하였습니다. 나이가 70세에 이르자 몸이 점점 불편해졌는데 문득 공중에서 꽃덮개가 내려 왔습니다. 그러자 짱위앤쑤는 몸을 깨끗이 씻고 가족들과 이별을 고한 후, 홀연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4, 혀의 사리가 금석과 같다

 

명나라 때의 일입니다. 썅청(相城)지방에 위안쨩(嚴江)이라고 하는 가죽공예가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중년에 이르자 절에 들어가 오후 불식하면서 오로지 금강경을 독송하고 아미타부처님을 염불하는데 전념하였습니다. 그의 독송하고 염불하는  소리가 끊임이 없었습니다.


그의 나이가 60대에 들어서자 홀연히 음식을 끊었는데 단지 물만 몇 잔 마실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아무 날 아무 시에 갈 것입니다.”


과연 그 때가 이르자 그는 목욕한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결가부좌 한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식구들이 화장을 하고 사리를 수습하였는데 여러 과顆가 나왔습니다. 한데 수습하는 중에 혀가 불에 타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혀가 단단해져 마치 금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손으로 두드려보니 아주 낭랑한 소리가 들려나왔습니다.
이것은 정덕正德 3년의 일입니다.


      5, 공경대부의 부귀와 비교할 수 없다

 

명나라 때 천계(天啓) 초년에 뻬이찡(북경)의 남쪽 정문인 쩡양먼(正陽門)에 한 연로하신 군인이 한 분 있었습니다. 한 칸의 배가게(船舖)를 지키며 자식도 없이 홀로 살았습니다. 매년 양식을 10말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중 4말은 일상에 먹을 양식으로 남겨 두고 나머지 6말은 돈으로 바꿔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땔나무와 채소 등을 사곤 하였습니다. 한가하게 살면서  매일 향을 사르고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당시 조정의 재상은 한꾸앙(韓爌)이었는데 몸에 비단옷을 입고 큰 가마에 올라타고 수행원들이 앞길을 열어 주면 호호탕탕하게 지나갈 때에, 문득 노군인의 경전을 독송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재상이 개탄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은 경전을 독송하면서도 매우 편하게 사는데 나는 사는 게 이 모양이냐. 나의 지위로도 저 한 사람만큼의 행복에 미칠 수가 없구나.”

 

노군인이 후에 73세에 이르자 아픈 데도 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비록 햇볕이 작렬하는 6월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시체에서 터럭만큼도 썩은 냄새가 나지 않았으며 다시 파리 같은 벌레 들도 날아들어 모이지 않았습니다. 뻬이징에 사는 귀족들이 모두 보고는 놀라고 기이하게 여겨 찬탄하지 않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집안사람들이 그를 위해 기꺼이 돈을 내어서 땅을 택하여 안장을 했습니다.


한꽁쑤(韓公素)는 현명하고 유능한 분이었는데 그의 말은 진실되고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하였습니다.
“태평성세에 처하여 듣고서 통달함을 구하지 않고 또 일없이 한 몸을 가볍게 여겨 자유의 몸을 얻었으며, 얻은 것으로 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신선과 같은 복을 누림이 아니겠는가. 거기에다 더하여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최상승의 법을 닦아 세속을 벗어날 바른 인연을 만들었으니, 이 어찌 한 세상의 공경대부들의 부귀와 서로 능히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6, 당번이 내려와서 영접하다

 

쉬에이안(薛嚴)은 당나라 사람입니다. 쫑쩌우(忠州)에서 사마司馬로 부임하였습니다. 평소에 채식을 하며 재계를 잘 지켰습니다. 그리고 매일 금강경 30편을 독송하였습니다.


72세가 되어 임종이 다가왔을 때, 당번과 꽃양산 내려와서 영접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인 추이쓰(崔氏)는 어사御史인 안이안(安儼)의 고모입니다. 그녀는 남편인 쉬에이안이 당번과 꽃양산에 둘러싸여 천천히 하늘하늘 날아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남편을 큰 소리로 불러 보았으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떠나간 그곳으로 전 가족이 모였는데 거기서 신비한 향기가 가득함을 보고서 모두가 상서로움에 전율하였습니다. 그리고 금강경 독송의 공덕에 깊은 신심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7, 금강반야의 공덕

 

이안꾸앙이우(顔光裕)는 명나라 때 사람입니다. 대대로 유교를 집안에서 숭상하여 내려왔습니다.
하루는 그 마을의 세도가 어르신이 금강경 법회를 열었는데 꾸앙이우가 경을 듣고는 매우 경탄하고 공경스러움이 일어나 금강경의 뜻을 지극히 참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과거시험에 응시할 여유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뒤에 타이허쏀(太和縣)에 부임하였을 때, 하루는 병을 얻어 꿈을 꾸게 되었는데 파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명부로 끌고 갔습니다. 주변 환경이 깊이 어둡고 경계는 삼엄하고 분위기는 처참하였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염라대왕에게 고하여 말하였습니다.
“꾸앙이우의 세상 수명이 이미 다하였사온데 생전에 살생을 좋아하고 소고기와 개고기 등을 즐겨 먹었사오니 그 죄업이 매우 무거운 축에 속하옵니다.”

 

이 때, 무수한 생령生靈들이 앞에 와서 자기들의 운명이 들춰질 것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이 꾸앙이우의 형벌로 기름이 펄펄 끓는 솥에 넣어 튀기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러자 소머리형상의 귀졸들이 갈고리칼을 써서 꾸앙이우를 콱집어서 기름이 팔팔 끓고 있는 솥 안으로 넣어버린 순간! 꾸앙이우의 온몸이 연꽃으로 돌돌 감싸지고 부글부글 끓던 기름도 순식간에 얼어 굳어버렸습니다.

 

염라대왕이 깜짝 놀라서 합장을 하고는 명부의 관리에게 선악의 장부를 가져오게 하여 자세히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꾸앙우이에게 공손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대가 금강반야경을 독송한 공덕으로 이러한 금강불괴의 몸을 얻으셨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그대의 수명이 더욱 늘어나게 되셨습니다. 바라건대 돌아가시거든 세상 사람들에게 경전을 많이 독송하게끔 많이 권해주십시오.”

꾸앙우이가 죽은 지 7일 만에 세상으로 돌아온 후 매일 금강경독송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강경 6000권을 인쇄하여 널리 배포하였습니다. 관직에 오른 후 어느덧 늙어 나이 70세에 이르니 임종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거리에 사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신비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꾸앙우이가 사람들에게 거듭거듭 당부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최상승의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게끔 반드시 널리널리 유전시키는데 힘쓰시고 대대로 자손들에게도 부탁하셔야합니다.”
말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꾸앙우이의 66대손인 빠이리안(伯廉)박사博士가 직접 전해준 것입니다.


    8, 물고기가 과보에 응하다

 

리위앤쫑(李元宗)은 송나라 때 찡쩌우(荊州)의 쨩링쌴(江陵縣) 사람입니다. 그의 딸이 13세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한 분의 인도스님이 그녀에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선근이 매우 많은데 어찌하여 금강경을 독송하지 않는 거냐? 세간의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매일 만약 마음을 깨끗이 하고 금강경1권을 독송한다면 현세에 복덕과 수명이 증가하여 100세까지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숨을 마치면 곧바로 천상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 만일 능히 반야를 끝까지 궁구하면 곧바로 열반의 저 언덕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만일 경의 뜻을 통달하지 못한다면 죽은 후에 명부에 가더라도 갇히질 않고 다시 부귀한 집에서 태어나서 인간의 복을 잘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위앤쫑의 딸이 이 말을 깊이 믿고서 이로부터 매일 금강경을 3회씩 독송하였습니다. 

그녀는 꽃다운 나이 24살이 되어도 여전히 시집을 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장티푸스에 걸려서 3일 만에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죽은 후 명부에 잡혀갔는데 염라대왕이 그녀를 심문하여보니 그녀가 일찍이 죄를 지은 적이 없고 오히려 머리 정수리에서 부처님의 상호가 나타나 상서로운 광명을 뿜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속히 그녀를 놓아주어 세상으로 돌려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보내기 전에 염라대왕이 그녀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에게는 반야般若의 공덕이 있다. 그러므로 그대를 세상에 도로 보내는 것이다. 그대의 아버지가 지은 살생업이 막중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그대의 수명이 24년이나 짧아진 것이다. 오래지 않아서 대조하여 보아라. 그대의 아버지가 자주 살아 있는 물고기로 회를 쳤으니 지금 이미 7000여 마리가 원망을 호소하며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그대가 돌아가거든 아버지에게 밤에 꿈을 꿀 때 스스로가 그물 속에 갇혀 있다가 날이 밝아 잠에서 깨어나면 머리가 아픈지 아닌지 한 번 물어보아라. 머리가 아프다면 이것은 바로 물고기가 갚음을 구하는 것 때문이다.”

그녀가 살아난 이후 곧 아버지에게 이러한 일을 보고하였습니다. 위앤쫑은 크게 놀라 말하였습니다.


“확실히 그러한 일이 있다. 마음 속이 특별히 두렵구나.”
곧 부녀는 함께 천녕사天寧寺로 가서 참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재齋를 베풀어 100여명의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었습니다. 아울러 또한 비릿내 나는 음식과 술을 금하고 직접 손으로 금강경 49권을 공경히 사경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위앤쫑의 꿈에 수천 명의 파란 옷을 입은 동자들이 나타나 그를 향하여 절을 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그대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서 명부에서 원한을 호소하며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가 현재 그대가 금강경을 사경한 그 공덕으로 인하여 이 선업의 힘을 빌려서 이미 고통의 갈래 길에서 멀리 벗어나게 되고 막 좋은 길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대와의 구원仇冤을 이미 다 풀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대가 금강경을 사경한 그 공덕 때문입니다. 당신은 가히 오래 사실 것입니다.”
이 이후로 위앤쫑은 더욱 정성스럽게 금강경을 독송하고 사경하였습니다. 수명은 120세까지 살다가 아무런 병 없이 목욕을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9, 죽을 날을 미리 알다

 

명나라 쭈원커(朱文恪)공은 국왕이었습니다. 만력萬曆 때에 책을 편찬하는 직에 부임하였습니다. 천계天啓 때에는 대학사大學士에 임명되었습니다. 스스로 무심히 지내는 것을 좋아하면서 매일 반드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가 일찍이 자녀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을 영화롭고 쇠퇴함에 대해 비교하여 따져 본 적이 없다. 인생에 순조로움과 역경이 둘이 아니다. 이렇게 내가 말하는 것은 금강경의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다>는 두 구절의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자주 이웃 사람들에게 금강경의 큰 뜻을 해설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천계天啓 갑자년甲子年 10월 5일에 마칠 것을 미리 알고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고 나서 그의 콧속에서 옥으로 된 힘줄이 쌍쌍이 아래로 드리워져 몇 시간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

 

    10, 몸이 썩지 않다

 

탕우쓰(唐吳氏)는 청나라 때 찌닝(濟寧)사람입니다. 그는 쏭쨩(松江)에서 객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성정이 본래 매우 포악하고 조급하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43세 되던 해에 오래 재계를 지키고 매일 작은 누각에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6년이 지나, 49세가 되던 해에 갑자기 다른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제가 아무 날에 가려고 합니다. 경전에 금강불괴신金剛不壞身이라 하셨는데 제가 죽은 후 몸이 3년 동안 머물 것입니다. 그리하여 경전의 말씀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능히 증명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바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년이 지나 관을 열어보니 과연 몸이 그대로 있었으며 조금도 부패하거나 손상됨이 없었고 머리카락은 15센티미터나 자라 있었습니다. 이를 살펴본 량꽁(梁公)이 그를 위하여 암자를 짓고 공양하며 받들었습니다.


      11, 명부의 관리에게 단속을 받지 않다

 

명나라 숭정崇禎 때에 쨔씽푸(嘉興府)의 쨔오리쨰(角里街)에 쓰이양(施嶧陽)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동탑사東塔寺의 요우헝(有恒)스님과 개인적으로 교분이 두터워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양의 나이가 65세에 이르자 신체가 허약해지고 병이 많아 졌지만 매일 장궤하고서 금강경 여러 편을 독송하였습니다.

 

병자년丙子年 1월 8일에 경을 읽다가 채 다 읽지도 못한 채로 갑자기 쓰러져 죽었습니다. 3일 후에 곧 관을 닫으려고 할 때에 홀연히 혼이 돌아와서 말하였습니다.

“내가 금강경을 독송한 공덕으로 명부 관리들에게 단속을 받지 않고 지장보살님의 처소에서 머물렀는데 지장보살님께서 금강경독송을 아직까지 마치지 못하고 여기 왔으니 특별히 나를 놓아 주어 돌려보내 독송을 보완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숨쉬기가 매우 어려워 스스로 읽지 못하니 반드시 요우헝스님을 모셔다가 대신 독송케 요청할 것이요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게 하면 절대 안됩니다.”


그러나 때마침 요우헝스님은 일이 있어 외출하였는데 반나절이 지나서야 돌아오셨습니다. 이양은 자신을 대신한 요우헝스님의 독송이 완전히 마칠 때까지 무릎 꿇고 듣고 있었습니다. 독송이 끝나자 스님을 향하여 합장으로 감사를 드린 연후에 한 번 크게 웃고 떠났습니다.


    12, 옷을 짜면서 경을 외우다

 

첀이엉밍(錢永明)은 명나라 때 씨우쑤이(繡水) 사람입니다. 부인인 짱쓰(張氏)는 늘 정성스럽게 부처님을 믿었습니다. 매일 물레를 잣고 옷을 짜면서도 금강경을 10편씩 외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짱쓰(張氏)가 <한 부처님, 두 부처님 셋, 넷, 다섯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께 모든 선근을 심었다.>는 구절을 외우고 있을 때, 홀연히 하던 일을 멈춘 채로 합장하고서 꿈쩍도 않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들들과 딸들, 그리고 며느리들이 이 특별한 광경을 기이하다고 여겼습니다.

 

 식구들이 그녀를 불러보고 흔들어 보고 하였으나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한 번 둘러 본 후 눈을 감고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만력萬曆 경신년庚申年 7월 4일의 일입니다.

 

    13, 소원과 같이 수명을 늘리다

 

허쩐(何軫)은 당나라 때 사람입니다. 그는 26살의 아름다운 여인 리우쓰(劉氏)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들 부부는 서로 사랑이 깊어 금슬이 아주 좋았습니다. 슬하에 1남1녀를 두었습니다. 아들이 3살, 딸이 2살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밤에 리우쓰가 꿈을 꾸는데 자기가 명부에 들어갔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그녀를 판결하기를 내년 봄 3월까지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후 손가락을 꼽아 셈을 하여보니 살날이 겨우 6개월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슬프고 두려움을 어찌 할 수 없어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남편과 집안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별일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곡을 하면서까지 우느냐?”


그녀가 눈물을 훔치더니 말하였습니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명부에 갔습니다. 거기서 명부의 관리가 나를 판결하기를 수명이 겨우 반년 밖에 없다는 거예요. 도대체 나에게 무슨 유감이라도 있는지 나에게 마음을 찢어놓는 이러한 애통함을 크게 주는지 모르겠어요. 만일 그렇게 되어 내가 죽게 되면 저 어린 우리 아들과 딸은 장차 누구를 의지하겠어요?  이러니 내가 어찌 마음을 놓고 한가하게 있겠느냔 말이에요.”


남편과 가족들은 그녀가 이렇게 설명했지만 마음 한 구석엔 미심쩍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단지 애정만으로는 도울 수 없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리우쓰는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비릿내와 누린내 나는 음식을 금하고 화가를 청해다가 불보살님의 성상聖像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 성상聖像에다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게 예배하고 공양하였습니다. 그리고 밤낮으로 열심히 부처님 전에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매번 독송을 마치고 나서 이렇게 회향축원迴向祝願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부처님과 보살님의 자비를 구하노니 저에게 부디 수명을 늘려 주옵소서. 만일 저의 수명을 45살까지 늘려 주시어 아들과 딸아이를 잘 키우겠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결혼만 시킨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다음 해 3월이 이르자 리우쓰는 마음이 편안하고 근심이 없어졌습니다. 이에 더욱 가행정근加行精勤하며 독송하며 예배공양하였습니다. 그녀가 38살에 이르자 아들이 결혼하였고 43살이 되자 딸이 출가하게 됨으로써 그녀의 마음 속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태화(太和)4년 겨울에 45세가 되자 리우쓰는 여러 해 동안 쌓아 모은 재산을 전부 절에다 시주하였습니다. 선공덕善功德을 마치고 나서 친한 벗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기약했던 죽음이 임박했다.”


이 어찌 도깨비에게 걸려서 슬퍼했다고만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그러한 것은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해 섣달 그믐 날에 리우쓰는 직접 큰스님들을 집에 모셔다가 삼보三寶 앞에서 팔관재계八關齋戒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목요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홀로 한 방에 들어가 가부좌하고 앉았습니다. 곧 크고 낭랑한 소리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독송이 끝나자 고요히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딸과 거기 있던 친족들이 들어가서 살펴보니 이미 앉은 채로 세상을 뜬 후였습니다. 그러나 얼굴은 마치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 하였고 머리 정수리는 손을 데일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이러한 광경을 보려고 모여든 스님들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모두 그녀를 숭고하게 여기며 공경치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한결같이 희유하며 얻기 어려운 일이다라고 찬탄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삼보께 귀의하였습니다. 장례는 스님께서 이끌어 주시는대로 치루고 잘 안장해 주었습니다. 그녀의 탑은 형주성荊州城의 바깥으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4, 『금강반야바라밀』만 외우고도 악도를 면하다

 

왕떠용(王德用)은 명나라 샤오씽(紹興)의 티앤러(天樂)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아내 따오쓰(陶氏)는 평소에 불법佛法을 믿지 않았습니다.

융경隆慶 기사년己巳年에 어느 날 따오쓰가 병이 들어 위중해진 상황에서 저승의 귀졸鬼卒이 그녀에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그대의 이승에서의 수명이 이미 다했다. 평생 동안 착한 일을 별로 짓지 않았으니 응당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이다.”
귀졸의 말이 막 끝나자마자 따오쓰의 앞에 지옥의 여러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극심한 형을 받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으며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각종 참상에 그녀는 모골이 송연하여 마음이 덜덜 떨렸습니다. 그러다 겨우 남편에게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지옥이 바로 내 앞에 있어요. 당신은 저를 위해 구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제발 빨리 좀 찾아 주세요.”

그러면서 순간, 따오쓰는 인근 절에 계시는 장로스님께서 매일 경전을 독송하던 것을 기억해내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읽으시던 경전의 말씀 가운데 희미하게나마 『금강반야바라밀』이라는 일곱 글자가 겨우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맹렬하게 이 일곱 자를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외우기를 수천 번하자 부지불식간에 지옥의 여러 광경이 싹 사라져버리고 두 번 다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집안사람들이 모두 찬란한 오색광명이 따오쓰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엄하고도 상서로운 광경을 모두 목격하고 환희심에 가득 차 어쩔 줄 모를 정도였습니다.


따오쓰는 이윽고 눈을 감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때 허공 속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따오쓰는 지옥의 고통을 면하였다. 그리고 이미 고통없는 좋은 길에 태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있고나서, “『금강반야바라밀』이란 경전의 제목만 외워도 나쁜 길을 벗어날 수 있다.”하고 소문이 크게 나서 급속도로 멀리 퍼져 나갔는데 듣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누구나 다투어 외웠다고 합니다.

 

    15, 경전 독송을 게을리 하다가 노예가 되다

 

명나라 때의 일입니다. 가흥부嘉興府에 왕짜이썽(王載生) 거사居士가 살았습니다. 거사가 어렸을 적에 일찍이 보충報忠이란 관청(坊)에 성이 판(范)씨인 하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깨에 채소를 잔뜩 메고 시장으로 가곤 하였는데 걸어가면서 늘 입속으로 무언가를 중얼중얼 하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반드시 먼저 부처님 앞에서 향을 사르고 금강경을 몇편 무릎꿇고 독송한 다음 바깥으로 나가서 작업을 하였습니다. 저녁에는 반드시 금명사의 법당으로 가서 예불하고 하루 일을 회향하여 마쳤습니다.

 

판씨 성을 가진 하인은 생활이 근검하였으며 자비심이 가득하여 길을 가다 혹 물고기나 새 등의 동물을 팔려고 나온 것을 보면 호주머니를 털어서 모두 살려주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걸식하는 이나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만나게 되면 힘을 다해 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결혼을 하라고 돈을 주려고 하면 번번이 거절을 하였습니다. 주인이 그가 머리를 깎고 출가하게 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에 결국은 허락하고야 말았습니다. 그가 절에 머물면서 매우 고생하면서 일을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선방을 짓는 괴로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힘을 다해 일을 하였으며 조금도 힘들다고 불평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문득 몸이 불편해짐을 느끼게 되자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과거생에 금강경을 읽었는데 너무 게을러 읽는 둥 마는 둥 하였더니 금생에 그 벌로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야 그 과보가 다 끝나서 좋은 곳으로 몸을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라라라.”
말을 마치고 나자 곧 세상을 떠났습니다.


    16, 흰오리가 경을 듣다


명나라 만력萬曆 초년의 일입니다. 시중侍中 쫑푸씨우(鍾復秀)와 쑤쭌쏘우(徐遵壽), 두사람은 찡청(京城)의 루오쨔(羅家)의 거리에 살았습니다. 그들은 한 쪽에 별원을 지어놓고 깨끗한 방 여러 칸을 만들어서 거기서 함께 앉아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쫑푸씨우(鍾復秀)의 집에서 두 마리의 흰오리를 길렀는데 그들이 경을 독송하고 염불할 때마다 흰오리 두 마리가 두 사람 뒤에서 소리를 내었습니다. 내쫓아도 가지 않고  둘 다 머리를 쳐 들었습니다. 독경소리를 듣는 듯 하였는데 목탁소리에 맞추어 머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였습니다.


몇 년 이후에 두 마리의 흰오리가 경전을 독송하는 책상위에 선채로 함께 죽었습니다. 쫑푸씨우鍾復秀와쑤쭌쏘우徐遵壽 두 사람이  흰오리 두 마리의 장례를 치러주고 정업사淨業寺의 뒤 쪽에다 무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의 이름을 <경을 들은 오리 무덤聽經鵝塚>이라고 불렀습니다.

 

    17, 번뇌가 본래 없거늘 누가 아상이 있단 말인가.

 

  명나라 만력萬曆 때의 일입니다. 왕팡루(王方麓)는 찐탄(金壇)사람으로서 관직이 우도어사右都御史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때 병이 심해져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니 정신이 매우 괴롭고 조급증이 났습니다. 그의 아들 컨탕(肯堂)이 이러한 상황을 보고는 아버지 팡루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께서 평소에 본심本心을 보존하고 본성本性을 기르는 양생의 공부를 하셨으면 바로 이럴 때 힘을 얻으셨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제가 독송하는 금강경을 들으시면서 마음을 맑혀보십시오.”
팡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마고 했습니다. 컨탕이 금강경을 독송하기 시작하여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고>하는 구절에 이르자, 팡푸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습니다.


“번뇌가 본래 없거늘, 누가 아상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는 합장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덕古德이 말하였습니다.


“지극한 사람(至人)은 생각생각 정혜定慧에 들었거니와, 범인凡人은 생각생각 산란하다.”
팡루선생은 오래 수행했지만 본래 마음을 지키기 위해 본성을 기르는 양생의 노력이 부족하여서 병이 깊어 임종에 다다라서는 오히려 번뇌의 고통을 면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단번에 제거하여 문득 돌이키기는 하였으나 평소에 치밀하게 노력하여 심성을 닦아야 함을 이로 말미암아 가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의 일은 하루아침에 단박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때가 이를 때까지 노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응당 간절히 기억해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늙음을 기다려 비로소 도를 배우려 하지 말라. 저 외로운 무덤은 대부분 어린 사람들의 것이니라.莫到老來方學道,孤墳多是少年人”


컨탕이 부친의 임종 때에 조급증이 나서 손발을 어디 둘 지 몰라 허둥댈 때에 침착하게 부친에게 경전 독송하는 것을 듣게 압박하여 권하지 않았다면, 즉 이와 같은 수승한 인연이 없었다면 어찌 이 <저승이 문득 나타나면, 언뜻 보고 저를 따라 감>이 아니었겠습니까?

 

세속에서 부모가 임종할 때에 자주 대성통곡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다만 돌아가신 분께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손해를 끼치며 탄식을 일으킬 뿐입니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부처님 법을 깊이 밝히지 못한데 기인한 까닭인 것입니다. 컨탕이 부처님 법의 이치를 꿰뚫어 밝혀 실로 사람의 아들 되는 이들이 본받을 바가 된 것입니다.

또 송나라 때의 오우양씨우(歐陽修) 우언쫑꽁(文忠公)이 임종할 때 모든 제자들을 앞에다 불러놓고 그들에게 경계하여 말하였습니다.


“너희들이 잘 알다시피 내가 어렸을 적부터 문장으로써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불교를 극력히 배척하였었다. 근래에 불법을 연구하여 보니 자못 능히 깊이 오묘함에 들어간 바가 있었다. 바른 법을 부지런히 연구할 때 뜻밖에 ‘나’가 ‘나’가 아니었다. 돌연히 복잡함이 다 사라졌다. 하마터면 아쉬움을 품고 몸을 마칠 뻔하였다.


너희들은 반드시 서로서로 힘쓰고 격려해서 절대 나의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라. 후회막급이리라.”
그리고는 제자들과 함께 부근의 절에 가서 화엄경을 빌려가지고 우언쫑꽁이 직접 8권을 독송하였습니다. 마치고나서 편안하게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8, 기러기가 노파의 장례를 치루어주다

 

랴오떵꾸안(廖等觀)이 싼후아쯔씨앤(善化知縣)에 부임하였습니다. 씨앤 안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부인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녀는 매일 금강경을 독송하였는데 낮에는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을 향하여 걸식을 하고 해가 저물면 산자락으로 가서 머물렀습니다.

 

한 번은 꽤 며칠 동안 그녀의 행걸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러기 큰 무리가 끼룩끼룩하면서 그녀가 머물던 곳으로 모여드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급히 달려가서 보니 그 노부인은 경전을 가슴에 꼭 껴안고 이미 세상을 뜬 후였습니다.

 

매우 많은 기러기들이 입에다 흙을 물고 와서 그녀의 몸 위에다 덮어주고 있었습니다. 기러기들이 노부인의 장례를 치러주는 것을 보고 칭찬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습니다.
이 일화는 「호광통지湖廣通志」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9, 단정히 앉은 채로 천화遷化하다

 

당나라 때의 일입니다. 보광사普光寺의 치쑤앤(栖玄) 법사法師스님께서는 어렸을 적부터 부지런히 고행을 닦으셨는데 자주 금강경을 강의하시고 또 독송하셨습니다. 용삭龍朔 2년 겨울에 그분은 절 안에서 단정히 앉아 입적하셨는데 안색이 근엄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이 황궁에 계시는 천자님에게까지 전하여졌습니다.

 

천자님은 특별히 그의 성취를 칭찬하시고 칙령을 내려 그의 공적을 천하에 드날리게 하였습니다.
“보광사의 치쑤앤 법사는 덕행이 고결하시어 도속道俗이 모두 다 함께 흠모하였다. 이제 이미 입적하셨으니 마땅히 3품 관원의 장례 예법으로써 후하게 장례를 치르고 아울러 그 일부를 고취하여 주노라.”
  온 나라의 선남 선녀가 모두 모여와서 이것을 보려고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20, 가부좌하고 세상을 뜨다

 

  명나라 숭정崇禎 때에 일입니다. 탄꽁뿌(譚工部)인 쩐모(貞黙)의 어머니 이안타이(嚴太) 부인夫人은 법도 있게 가정을 지켰는데 모든 자식들을 잘 살피고 독려했으며 이치를 밝히고 뜻을 숭상하였습니다. 그녀가 비록 부귀한 집안의 귀부인이었으나 무명옷을 입고 채식을 하였으며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불법을 돈독하게 신봉하였으니, 아침저녁으로 금강경과 묘법연화경을 예배하고 독송하였습니다.

 

그녀의 말년에는 화엄경을 매일 한권씩 읽었으며 아울러 아들과 딸들을 위해 화엄경의 큰 뜻(大意)을 풀이하며 강의하였습니다. 그녀는 평생 동안 병에 걸린 적이 거의 없었다가 어느 날은 우연히 작은 질병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스스로 갈 때가 되었음을 감지하고 곧바로 임신년壬申年 더운 여름날에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하고나서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아울러 축원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제가 일생을 부처님을 공경하였사온데 과연 부처님과의 인연 덕분으로 응당 몸의 냄새가 깨끗하옵니다.”
하고는 드디어 가부좌하고 앉은 채로 합장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은 지가 7일이 되었는데도 얼굴에는 아직도 오히려 살아있는 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시신을 둔 곳에서는 한 마리의 파리도 날아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향기가 펄펄 날려서 거기 모인 조문객들 가운데 그녀의 소원을 성취함과 불법의 신령하고도 기이함을 찬탄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탄꽁뿌는 그녀의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하여 손수 한편의 전기傳記를 찬술하고 베껴 두었습니다.

천하에서 가장 진귀하고 기이한 보물은 몸이 아닌 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길이가 몇 자 안되는 이 신체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꾸며보려는 의지를 제한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물로 깨끗이 씻고 향수를 뿌리고, 고운 꽃으로 장식하고, 금장신구를 머리에 꽂고, 비단옷을 걸치고 이 색신을 극진히 번지르르하게 꾸미면서도 전혀 돈을 낭비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조금도 싫증을 못 느낍니다. 만일 이 몸뚱아리가 세상에 오래 머문다면 거의 초심을 짐지지 못할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문득 무상無常이 닥치게 되면 순식간에 더러운 냄새를 감당치 못하게 될 것이니 어찌 가히 슬퍼하고 애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탄꽁푸의 모친이 임종할 때에 남긴 몇 마디의 말은 몸을 사랑하는 본보기이지만 여기서 말씀드린 것은 유독 규방의 여인네들만 응당 봉행해야 할 것이 아니라 곧 이는 남자 대장부들도 마땅히 받들어 예배할 법의 본보기입니다.

 

    21, 대인의 모습을 나투다

 

마찌창(馬其昶)의 자字는 통빠이(通白)인데 안후이(安徽)의 사람입니다. 그는 민초들을 다루는 문학의 대가로서 한평생 많은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유학儒學을 연구하는데 치중하면서 불법佛法을 모르다가 근 10여년이 지나서야 부처님법의 정미로우면서도 깊고 넓고 큰 이치와, 불법 속의 숱한 불가사의한 일들과 자취를 갓 알게 되면서 이로 인하여 불법에 귀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불경을 연구하고 익히면서 매일 금강경을 독송하고 아울러 부처님 명호를 외우고 서방극락세계에의 왕생을 발원하였습니다. 그의 셋째 딸인 쭌깐(君幹)은 매우 총명하였으며 글의 이치를 잘 통달하여 자못 옛 재녀才女의 풍모가 있어서 그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쌍하이(上海)에서 여인네들의 글방을 만드는 데에 힘을 썼고 여학女學을 이끌고 장려하는데 여력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북양대신北洋大臣 위앤꽁(袁公)의 초빙을 받아 턘찐(天津)에 있으면서 여자사범학교를 창설하였습니다. 뒤에 견문을 더 넓히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러나 오직 부처님법에 대해서는 털끝만큼의 신앙도 없었습니다.

 

그 후에 그녀는 팡쓰쨴(方時簡)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곧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하여 병을 얻었는데 전신의 통증이 극심하여 참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아버지 통빠이는 딸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가슴아파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마찌창이 그녀 앞에서 금강경을 염송하였더니 그녀가 경을 독송하는 소리를 한 번 듣자마자 곧 몸과 마음이 바로 그 자리에서 편안하여졌으나 경을 독송하는 소리가 멈추면 그녀의 고통도 다시 전신에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서 철야로 염송하니 고통이 모두 가라앉았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쭌깐은 돌연히 몸을 일으켜 단정히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경전 독송을 정지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녀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니 이미 병이 완치되고 건강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말하였습니다.
“제가 금강경에서 설한 도리를 대하여서 이미 능히 완전히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가 대인의 모습(大人相)을 나투어서 널리 무생법無生法을 설하고자하오니 바라옵건대 일체의 보고 듣는 사람들 모두가 능히 저와 같은 선근을 심기를 희망합니다.”

 

그녀는 또 말하기를 집안이 지나치게 좁아서 병원에 가서 요양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당시에 통빠이와 그 사위는 수도 찡쓰(京師)에서 전세를 내어 살고 있었습니다. 살고 있는 집은 그다지 넓진 않았지만 그윽하고 우아하였습니다. 통빠이는 그녀가 환경을 바꿀 생각인줄로 잘못 이해를 하였습니다. 곧 사위인 팡쓰쨴에게 쭌깐을 덕국德國병원으로 보내어 그녀를 위하여 그윽하고 우아하며 편안하고 조용한 병실 하나를 구하라고 일렀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일체 수속을 밟은 연후에 쭌칸은 곧 남편과 병원측 간호사에게 입원실에서 나가게 하고서 합장한 채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쭌칸의 좌탈坐脫하는 방법을 보았는데 과연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이토록 소탈하고 자연스러우며 여여한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일은 마치 저 방거사의 따님이신
링짜오(靈照)가 일식이 있다고 속여 아버지를 밖으로 나가게 한 연후에 그녀가 아버지의 자리에 들어가 합장한 채 입적한 것과 더불어 임종하는 모양이 서로 어떠한 구별이 있을까요?

 

통빠이의 문하생 가운데 리무꽁(李木公)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평소에 부처님을 믿지 않고 있다가 통빠이가 딸의 좌탈입망하는 소식을 설명하여 주자 듣고 나서 곧 온 가족이 삼보에 귀의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저『법화경』의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나오는 다음의 말씀과 같을 것입니다.


“어떠한 몸으로 제도해야하는가에 따라 응당 그러한 모습으로 설법하신다.”
이러한 법문을 통해 우리도 자세히 사유하여보면 저 마쭌칸이 일찍이 우리를 위해 관세음보살님처럼 이러한 모습을 나투어 설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22, 가부좌한 채로 입적하다

 

  루이쒸에이아(瑞雪崖)는 명나라 때 후앙이안(黃嚴)사람입니다. 어린 나이에 치우쨩짠꽁(秋江湛公)에게 가서 삭발하고 출가하셨습니다. 씬청싼(新城山) 리우칭위앤(留慶院)에서 수행하셨으며 계율을 엄격하게 잘 지니셨습니다.

 

스님은 매일 금강경을 독송하셨으며 요가를 잘 하셨습니다. 만일 일반스님들과 신도들이 스님께 예참법禮懺法을 청하면 스님께서는 반드시 공경하게 정성껏 해주시었으며 시주로 들어온 공양을 낫다 못하다 재어서 생각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공양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도 마음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물러나라고 스님께 요청하면 스님께서는 여전히 즐겁게 가셨으며 털끝만치도 불쾌한 표정을 짓질 않으셨습니다.

 

홍무洪武 신해년辛亥年 5월에 더운 여름이 다가오자 스님께서는 우연히 미질을 앓게 되셨는데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으신 후에 게송을 써놓으시고 가부좌하고 앉으신 채로 입적하셨습니다. 스님의 세수 83세 때의 일입니다. 스님의 다비를 할 때에 불꽃 속에서 연기도 하나 없는 가운데 미묘한 광명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뼈에서 다수의 사리를 수습하였습니다.

 

 

제3편 장수를 얻음

 

1, 오로지 금강경수지를 권하신 큰스님

 

명나라 정덕正德 때에 난위에(南嶽)에 추쓰(楚石)이라고 하는 큰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경經율律론論의 삼장三藏에 박통하셨으며 평소에 늘 금강경을 독송하셨습니다. 만일 어떤 이가 와서 법을 구하면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가리지 않고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금강경을 수지하도록 노력하시오!”
추쓰스님은 171세에 앉으신 채로 원적에 드셨습니다. 큰스님과 동시대의 스님으로 빠이떵(白藤)스님과 우찌(無極)스님 등도 금강경 수지독송을 전문적으로 권하신 분들입니다. 빠이떵스님은 130세, 우찌스님은 124세까지 사셨습니다.


    2, 등촉불이 땅에서 3자 떠오른 채 날아가다.

 

  천꾸어빠오(陳國寶)는 당나라 때의 사람입니다. 그의 부인은 루이꽁쿠안(芮公寬)의 누이였습니다. 부인은 늘 부처님과 부처님의 진리에 정성으로 믿고 받들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도 항상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한 번은 그녀가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거의 다 읽고 한두 페이지만 남았는데 갑자기 두통이 일어나서 독송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밤이 되어도 통증이 더욱 심해지니 그녀의 생각에 이러다가 죽어버리면 금강경 독송을 마치지 못할 것 아닌가 하고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하녀에게 일러서 등촉불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불을 구하러 갔던 하녀는 불씨가 다 사그라진 바람에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인이 상황을 지켜보며 탄식을 금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전 가족이 보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주방에서 등촉불이 누가 이끌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바닥에서 3자정도 뜬 채로 저절로 움직여서 홀을 지나 곧바로 부인이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인의 방이 일순간 대낮처럼 밝아졌습니다. 부인은 무척 놀라우면서도 기뻐서 재빨리 금강경을 들고 마저 독송해 마쳤습니다. 잠시 후, 집안사람이 성냥을 가져와 불을 밝히자 밝았던 등촉불이 곧 사그라졌습니다. 동시에 부인의 병도 치유되었습니다. 이로부터 부인은 매일 정성껏 금강경을 5회 독송하였습니다. 루이꽁이 임종할 때 누이인 부인이 보러 갔더니 루이꽁이 말하였습니다.


“누님은 경전 독송 덕분으로 당연히 오래 사실 것이고 좋은 곳에 태어나실 것입니다.”
과연 뒤에 부인은 80여세를 살았으며 아무런 병도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3, 저승사자가 묘책을 알려주다

 

  당나라 린덕麟德 원년元年에 또우떠위앤꾸안(竇德元官)은 종정경(宗正卿)에 임명되어 양쩌우(揚州)의 안찰사按察使로 파견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쭌허(淮河)를 건너가는데 배가 항구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우떠위앤(竇德元)은 해안에 한 사람이 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이미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진 후였고 해변에는 이미 배들이 다 항구로 들어간 후였습니다. 떠위앤이 살펴보니 그 사람의 안색이 매우 창백하고 초췌하여 연민스러운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사공에게 일러서 뱃머리를 해변으로 돌려 그를 태워가게 하였습니다.

 

항해하는 도중에 떠위앤은 밥을 먹다가 그에게도 일부분을 나눠주었습니다. 해변가에 도착한 후 떠위앤이 말을 타고 가는데 그 사람이 몇 리 길 정도를 뒤따라 왔습니다. 떠위앤이 그를 보니 떨어지고 싶지 않은 듯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의 갈 길을 왜 가지 않는것인가?”    그 사람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저승사자인데 명을 받들어 양쩌우에 도착하면 또우떠위앤을 데려가려고 합니다.”
떠위앤이 그 소리를 듣고는 크게 놀라 곧바로 말에서 내려 땅에다 무릎을 꿇고는 저승사자를 향해 머리를 숙이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바로 또우떠위앤입니다. 나를 위하여 삶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힘써 주십시오.”
떠위앤은 한편으로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 울면서 거듭거듭 요청하였습니다.

저승사자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윽고 말을 하였습니다.


“조금 전에 당신이 나를 배에 실어 건너게 하여 준 은혜를 입었고 먹을거리를 나눠 준 은혜 또한 입었습니다. 이러한 깊은 정이 나를 감동시키고 말았으니 그대에게 한 가지 방법을 일러주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금강경을 1천회 읽는다면 가히 이러한 액난을 면제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가 독송해서 1천회를 완성하면 내가 다시 와서 통지하겠습니다.”

 

떠위앤이 양쩌우에 도착하자 생사의 관문이 걸려 있는 문제라 감히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고 곧바로 금강경을 독송하기 시작하였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였습니다. 한 달 하고도 며칠 정도 지나자 떠위앤은 결국 금강경 1천회독송을 마쳤습니다. 그러자 저승사자가 다시 와서 떠위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금강경 독송 1천회를 마쳤으니 이제는 두 번 다시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내 이제 바로 그대를 데리고 염라대왕께 가겠습니다.”

 

떠위앤이 저승사자를 따라 명부에 들어서니 보랏빛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는데 계단 아래로 달려 내려와서 떠위앤을 향하여 합장하여 예를 짓고는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금강경 1천권을 독송하여 위대한 공덕을 지었으니 지금 여기에 있을 시기가 아닙니다.”
이윽고 떠위앤은 세상으로 돌려졌습니다.

 

떠위앤이 살아난 후에 자기가 만하룻동안 죽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저승사자가 다시 와서 떠위앤에게 음식물과 종잇돈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떠위앤이 곧 사람에게 명하여 밥과 반찬을 가져오게하여 그를 대접하고 아울러 종잇돈을 태웠습니다.

 

떠위앤이 저승사자를 향하여 앞으로 자신의 관직이 어찌 되는 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승사자가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이후로 관직이 바뀌는데 먼저 전중감殿中監이 되고 다음으로 대사헌大司憲이 되고 그 다음엔 태자단윤太子端尹이 되며 그 다음에 사원태상司元太常으로 부임하고 마지막으로 좌상左相이 됩니다. 그리고 세수는 64세까지 누릴 것입니다.”


뒤에 과연 그 말과 같았습니다. 떠위앤이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고종황제에게 알렸더니 황제가 칙령을 내려 군신들이 모두 금강경을 독송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떠위앤의 증손자인 쯔쩌우(梓州)에 있던 멍씨안쫑(孟獻忠)이 직접 손수 서술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4, 한 생각의 측은지심이 수명을 연장할 방법을 만들다

 

  당나라 천보天寶 때에 짱(張)씨 성을 가진 이우쓰(御史)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쭌난(淮南)으로 파견되면서 쭌허(淮河)를 건너가려고 계획하고 배를 타고 강변을 막 벗어나려고 하는데 뒤에서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황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급한 일이 있어 그러니 배에 타게 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뱃사공은 승낙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밀쳤습니다.

 

짱이우쓰가 이 상황을 보자 즉시 제지하고 뱃사공에게 말하였습니다.
“늙고 힘없는 불쌍한 백성 한 사람인데 배에 태워서 건너게 해드린다고 무슨 방해가 되는가?”
이렇게 해서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배에 올라타게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음식물까지도 대접하였습니다.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은 얼굴에 미안한 기색을 띠며 짱이우스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쭌허를 건너가서 강 건너에 도착한 연후에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은 짱이우쓰를 향해 이별을 고한 후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얼마 후, 짱이우쓰가 말을 갈아타는 역에 도착했는데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이미 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약간의 미운 생각이 마음 속에 일어나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막 그대를 배에 태워서 쉽게 건너게 하여 주었는데 또 무슨 용무라도 있습니까?”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짱이우쓰에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당신과 상의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 일은 다른 누가 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짱이우쓰가 주변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자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말하였습니다.


“저는 명부의 사자입니다. 명부의 명을 받들고 당신을 붙들어 가려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는 강을 건널 때에 배를 뒤집어서 당신을 강물 속에 익사케하여 데려가려 하였으나 당신의 두터운 호의를 대하고 보니 감히 은혜를 저버릴 수가 없어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그냥 강을 건너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가 아무리 봐주어도 당신의 생명을 하루 더 연장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짱이우쓰가 이 말을 듣고 나서 놀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 자리서 무릎을 꿇고 노란 옷을 입은 사람에게 자신을 구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정 그렇다면 만 하루 만에 속명경續命經 일천 권을 독송한다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는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문입구에서 돌아보며 짱이우쓰를 향하여 한마디 더 던졌습니다.
“속명경續命經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인간세상에서는 금강경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짱이우쓰가 물었습니다.
“하루 밖에 안 되는데 내가 어찌 금강경 천 번을 독송하겠습니까?”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말했습니다.


“다만 사람이 하고자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짱이우쓰가 곧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향하여 거듭거듭 감사를 드렸습니다.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가고 나자 짱이우쓰는 곧장 자신의 아랫사람들과 임지 부근의 백성들을 최대한 모았는데 수십 명이 모였습니다. 모두가 함께 모여서 금강경을 전심전력으로 독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음 날 저녁이 되자 마침내 금강경 일천 독讀이 완성되었습니다.

 

 독송하기를 마치고나자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다시 돌아와서 짱이우쓰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이미 죽음을 면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를 따라 명부에 가셔서 염라대왕을 알현해야합니다.”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짱이우쓰가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따라 갔습니다.

 

짱이우쓰가 들어가서 명왕을 뵙고 보고하여 말하였습니다.    “제가 이미 속명경 일천 권을 독송하였습니다. 이로써 수명연장이 가능한 것입니까?”
이에 명왕이 기록을 관리하는 관리에게 검증을 하게하고 사실에 부합된다는 말을 듣자 곧 합장하고 찬탄하면서 말하였습니다.
“공덕이 불가사의합니다. 수명이 10년이나 연장되셨습니다.”  짱이우쓰가 드디어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5, 저승사자를 물리치고 수명을 연장하다

 

  왕투오(王陀)는 당나라 때 사람입니다. 응양부(膺揚府)의 과의(果毅)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부처님법을 잘 익히고 신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중병에 걸리게 되자 이것은 필시 전생의 죄업 때문이라 생각하고 육식을 끊어버리고 발심하여 금강경을 매일 5편씩 독송하였습니다. 뒤에 풍토병까지 걸리게 되자 저승사자가 그를 붙잡아 가려고 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왕투오가 재빨리 금강경을 독송하자 저승사자는 그의 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고 물러가버렸습니다. 투오가 계속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으려니 저승사자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염라대왕께서 그대를 모셔오라고 명을 내려서 내가 온 것이니 경전 독송을 잠시만 그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듣고 왕투오가 독송을 잠시 그치자 이내 혼미해져서 가슴이 답답하고 곧 숨이 멈출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때 또 한명의 저승사자가 나타나서 외쳤습니다.
“잠깐만! 이 사람을 놓아주시오. 염라왕께서 그를 6개월만 더 놓아주라고 하셨소.”


이렇게 해서 왕투오가 다시 살아난 이후 조금도 게을리 않고 몇 배나 더 정진하였습니다. 금강경독송을 밤낮으로 열심히 하기를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저승사자가 오는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 무렵에 하늘에서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왕투오여! 그대는 경전을 독송한 공덕으로 수명을 90세까지 누릴 것입니다.”

한 편 왕투오의 형님이 병을 얻어 임종이 다가왔는데 며칠 후에 형님의 문상을 가서 뵈었더니 형님이 말하였습니다.
“아우야. 금강경을 독송하도록 노력해서 나의 지옥고를 구해다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자가 그의 형을 지옥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왕투오가 매우 놀라 집으로 달려가는데 여섯 마리의 양이 가는 길을 막아서서 못 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가 없어 왕투오가 그 자리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자 양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더니 금강경독송을 마칠 때 쯤해서는 모두 다 사라지고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즉시 형의 지옥고통을 면하게 하려는 발원으로 금강경을 5천편을 독송하였습니다. 왕투오는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금강경을 독송하라고 널리 권하였습니다. 물론 스스로도 금강경 독송을 끊이지 않게 하였는데 뒤에 과연 90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6, 속명경

 

명나라 가정嘉靖 때에 꾸이안(歸安)의 마오루먼(茅鹿門)에게 고용된 하인이 있었는데 이름이 삥친(馮勤)이었습니다. 삥친이 어느 날 한 관상가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관상가가 예언을 하기를 삥친이 일찍 요절할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삥친은  깊은 근심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스님을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지 가르쳐달라고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노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라면 ‘불에 탄 글자 씌여진 종이’를 줍고 아울러 속명경續命經을 염송하여라. 이렇게 해야만 요절함을 면할 수 있다.”
삥친이 여쭈었습니다.
“속명경이 무엇입니까?”
노스님이 그에게 일러주었습니다.


“금강경을 속명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삥친은 그 말씀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노스님을 향해 큰절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도로변에서 글자종이를 줍기 위해 대나무 집게와 대나무 상자를 준비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그는 대낮에 큰길과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 길 위에 떨어진 더러워진 글자종이를 주워서 상자 속에다 넣었습니다.

 

그것을 가져다 세척하고 말려서 깨끗이 한 후 불에 태웠습니다. 태우고 남은 종이의 재를 싸서 맑게 흐르는 물에다가 잘 띄웠습니다. 그는 매우 세밀하여서 설사 글자 하나 종이 한 조각이라도 감히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면 무릎을 꿇고 금강경 1편을 독송함으로써 하루 일을 회향하였습니다.

 

삥친이 매일매일 이와 같이 하여 습관이 되다보니 점점 글을 알게 되면서 글의 뜻을 대략 통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마오루먼이 그를 대할 때에 존경하고 예를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삥친의 집안 살림살이도 점점 풍요로워지고 슬하에 아들 둘과 손자 넷을 두어서 잘 키웠습니다. 향년 95세까지 누리다가 아무런 질병도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7, 선신이 옹호하다

 

  웨이쑨(魏恂)은 당나라 때 쭈루(鉅鹿)에 살던 사람입니다. 일찍이 뻐쩌우(博州)의 사마司馬로 부임하였습니다. 신룡神龍 때에는 벼슬이 3품이 더 올라 관직이 우감문右監門 대장군大將軍에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평소에 꾸준히 하는 일과 중 하나는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수도인 찡청(京城)에  점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갑자기 죽고 나서 며칠 있다가 다시 살아나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명부의 관리에게 심문을 받을 때에 한 저승사자가 명부의 관리에게 보고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붙잡아 오라는 사람을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명부의 관리가 사자를 때리려 하자 사자가 말하길, ‘장군 웨이쑨(魏恂)은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어 많은 선신들이 옹호하면서 거듭거듭 둘러싸서 경호를 하기 때문에 그를 데려오지 못한 것이지 일부러 놓아준 것이 아닙니다.’하였습니다.

 

그러자 명부의 관리는 이번에는 다른 사자로 바꾸어 웨이쑨(魏恂)을 붙잡아오라고 보내었는데 한참 후 돌아와서 보고하는 말이 여전히 앞의 사자 말과 같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명부에서 웨이쑨(魏恂)을 붙잡아 오는 일이 취소되었으며 명부의 관리들과 여러 저승사자들이 함께 웨이쑨(魏恂)을 찬탄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이 알려지고 난 이후에 이로부터 웨이쑨(魏恂)은 더욱 가행정진하면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8, 계단아래의 형벌을 정지시키다

 

당나라 때 짱링(江陵)의 개원사開元寺의 반야원般若院에 스님이 한 분 계셨는데 법명이 파쩡(法正)스님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매일 금강경을 21편을 독송하셨습니다.

장경長慶 초년初年에 스님의 연세가 이미 육순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이 들어 숨을 거두시고 명부에 들어가셨습니다. 염라대왕이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평생에 어떠한 공덕을 지으셨습니까?”
파쩡스님이 답하셨습니다.
“자주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말을 듣자마자 염라대왕이 숙연히 일어나 공경하는 마음으로 스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예를 지어 스님을 꽃자리에 모시고 금강경 7편을 독송해주십사 청하였습니다. 스님께서 독송하는 동안 명부의 시위侍衛들이 모두 합장한 채로 가만히 들었으며 계단 아래에서 집행되던 형벌들이 모두 정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특별히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말하였습니다.


“큰스님의 수명이 30년 연장되었습니다. 스님께서 금강경 독송을 끊어지지 않게 하신다면 입적하실 때에 반드시 생사生死를 벗어나실 것입니다.”

염라대왕이 명부의 관리 하나를 시켜 스님을 세상으로 안내하도록 하였습니다. 수십 리를 달려가자 앞에 그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큰 구덩이가 나타났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스님을 뒤따라오다가 스님을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이에 깨어난 스님이 날짜를 살펴보니 죽은 지 7일 만에 깨어난 것이었습니다. 얼굴을 만져보니 아직도 얼굴의 온기가 식지 않고 따뜻하였습니다.
찡쩌우(荊州)의 창칭(常淸)스님이 파쩡스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직접 뵌 것인데 80세를 훨씬 넘겨 사셨다고 합니다.


    9, 조그만 공덕을 명부의 사자에게 회향하다

 

  똥찐짜오(董進朝)는 당나라 때의 사람입니다. 그는 항상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늘 이렇게 축원을 하였습니다.
“원컨대 이 조그만 공덕으로 명부의 사자에게 보호가 있기를 회향하옵나이다.”

 

  어느 날 밤은 깊어가고 달빛은 사방으로 흩어져 교교한데 그가 옛 성 위에 가만히 서서 밤의 정취를 완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 밑에서 도란도란 얘기 소리가 들려 슬며시 내려다 보니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 4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나 엿들어 보니 자기의 이름-똥찐짜오-이 제일 먼저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얘기의 분위기가 자기를 붙잡아 가려는 의도가 분명하였습니다.

 

그들이 서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똥찐짜오는 평상시에 금강경을 독송하였고 아울러 조그만 공덕으로 명부사자에게 보호가 있기를 축원하였다. 이렇게 한 지가 오래 되었다. 우리들이 그에게서 이러한 은혜를 입었는데 지금 차마 어찌 냉정하게 그를 죽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 집 건너 편에 성이 같고 나이도 같은 사람이 한 사람 있는데 어차피 수명도 다해서 곧 데려가야 한다. 그 사람으로 대체해서 이 일을 처리하자.”
그들이 논의를 끝내고는 눈 깜짝할 사이 모두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었습니다. 맞은 편 집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습니다. 찐짜오가 왜 우는지 연유를 물어보니  죽은 사람의 부모가 말하였습니다.
“우리 아들이 어젯 밤에 갑자기 죽었다네!”


찐짜오는 그 집의 아들 시신을 바깥에서 장사 지내주는데 도와주고 나서  그의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잘 봉양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깎고 산속으로 출가하였는데 법명이 후이통(慧通)스님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씽위앤(興元)의 당안사唐安寺에 오래 사셨습니다.

 

    10, 나이를 2배로 늘리다

 

  쯔짱(智藏)스님은 양나라 무제武帝 때 우쭌(吳郡)의 사람입니다. 쫑싼(鍾山)의 개선사開善寺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관상쟁이가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스님께선 비록 세상을 압도할 정도로 총명하셨으나 애석하게도 수명이 오래지 못하십니다. 겨우 31세를 넘기지 못하실 듯합니다.”

 

이 때 쯔짱스님의 연세가 29세였습니다. 이에 경전 강의를 그만 두시고 오로지 금강경을 독송하며 예불하고 참회하는데 밤낮없이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그리하여 31세가 되자 어느 날 홀연히 허공 속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본래 그대의 수명이 다하였으나 반야般若의 공덕력功德力으로 인하여 세수가 2배 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앞전의 그 관상쟁이가 다시 들렀는데 쯔짱스님을 보고 깜짝 놀라며 말하였습니다.
“아니, 이럴수가! 요절할 상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쯔짱스님께 이렇게 된 이유를 여쭈었습니다. 쯔짱스님께서 반야경을 독송한 인연을 설명하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경전의 힘이 불가사의함을 크게 찬탄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과연 쯔짱스님께서는 60세를 훌쩍 넘기고 입적하셨습니다.

 

    11, 선신의 옹호로 부인을 못 붙들어가다

 

  창우쓰(張無是)는 당나라 때 사람입니다. 그는 뿌쩡팡(布政坊)에 살았습니다. 천보天寶 12년 겨울이었습니다. 그가 멀리 볼일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데 밤이 깊어 성문이 이미 닫혀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리 밑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말을 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다리 곁에 멈추어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말을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들 중 한 사람을 뿌쩡팡에 보내어 창우쓰의 부인과, 같은 마을의 부자노인인 왕모를 붙잡아 오고 그 밖에 또 한 사람은 모처에 가서 모모 등 몇 사람을 붙잡아 오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창우쓰는 크게 놀랐습니다.

일순간에 붙잡으러 갔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 왔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습니다.


“붙잡아 와야 할 사람들을 대부분 잡아 왔지만 오직 창우쓰의 부인만은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어서 선신들이 곁에서 옹호하니 그들을 데려오지 못했다.”

계속해서 그들은 붙잡아 온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창우쓰는 왕모를 부르는 소리와 왕모가 ‘예’하고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창우쓰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부인이 단정히 앉아서 경전을 독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돌아 온 것을 보고 반가워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당신을 기다렸기 때문에 당신이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때맞춰 돌아오실 것을 알고 있었어요.”  날이 밝은 후, 이웃 근처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퍼졌습니다. 알고 보니 부잣집 왕모가 지난 밤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창우쓰가 다리 밑에서 들었던 일을 부인에게 다 얘기하여 주자 부인은 크게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재齋를 길이 지키기로 맹세를 하고 매일 금강경을 49편이나 독송하였습니다. 창우쓰의 부인이 죽음을 한 번 면하고 나서 부부가 함께 금강경을 열심히 독송한 그 공덕으로 오래오래 장수하였다고 합니다.

 

    12, 뜨거운 불이 재가 되어버리다

 

당나라 때에 이쩌우(易州)에 참군參軍 턘(田)모 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시에 사냥하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흉맹하기 그지없는 사냥개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번 사냥을 나갈 때마다 이 사냥개를 이용하여 사냥물을 쫒게 하였습니다.

 

천보天寶 첫 해 어느 날에 턘모는 사냥개를 또 데리고 사냥을 하러 외출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들판에서 개가 한 권의 책을 물고 왔습니다. 턘모가 받아서 보니 금강경이었습니다. 그는 그날은 사냥을 그만두고 그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부터 매일 금강경을 독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년 동안을 이렇게 하여 2천편 이상을 독송하였으나 아직도 여전히 사냥을 즐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턘모가 갑자기 죽어서 명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새들과 짐승들이 그의 주변을 에워싸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데, ‘내 목숨 내놔라’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턘모 말고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으며 염라대왕이 낱낱이 하나하나 이들을 직접 심문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을 보니 심문이 끝나자 명부의 관리가 그에게 강제로 입을 벌리고 둥근 덩어리 한 개를 입속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그것이 뜨거운 불덩이로 변하여 그 사람을 순식간에 태워버리니 곧바로 재와 찌꺼기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그 사람의 몸이 원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6~7명을 심문하고 나니 턘모가 심문 받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둥근 환 3개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벌써 환은 불에 타서 사그라져버렸습니다.

 

염라대왕이 이러한 기이한 상황에 느끼는 바가 있어서 턘모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 있을 때 어떤 복업을 지었소?”
턘모가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일찍부터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금강경 1권을 얻었기에 그것을 2천편 이상 독송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합장하고서 칭찬하면서 말하였습니다.
“훌륭합니다! 금강경을 독송하게 되면 한량없는 죄업을 소멸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명부의 관리에게 턘모의 복덕 장부를 검사해서 살피게 하였습니다. 과연 턘모가 말한 것과 일치하다는 보고를 받고 염라대왕은 턘모에게 그 자리서 금강경을 외워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턘모가 금강경을 외우기 시작하자마자 염라궁전의 뜰 앞에 모여 있던 수많은 새들과 짐승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그 자취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염라대왕이 턘모에게 말하였습니다.
“금강반야바라밀의 공덕이 불가사의합니다. 그대의 수명이 지금부터 15년이 연장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관리에게 명하여 턘모를 세상으로 돌려보내게 하였습니다.

 

    13, 우리 부처님의 장생법

 

명나라 정덕正德 때에 촨씨(川西)의 학명관鶴鳴觀에 한 도사道士가 살았는데 이름을 천루쏸(陳入玄)이라고 불렸습니다. 그가 일상으로 하는 일은 오래 사는 법을 신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스스로 금강신이라고 하는 분이 와서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오래 사는 법을 구한다고 하니 민싼(岷山)으로 가서 쯔롱(智融)스님께 예배하라. 그분이 그대에게 법을 전해 줄 것이다.”

루쏸은 금강신이 지시한대로 민싼으로 가서 쯔롱스님께 간절히 장생법長生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쯔롱스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금강경의 게송에 이러한 구절이 있습니다. 「일체의 유위법은/ 마치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거품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같고 또한 번갯불과 같다./ 응당 이와 같은 관觀을 지어라.」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오래 사는 법입니다.”
루쏸이 여쭈었습니다.
“이미 환상이나 꿈과 같다면 무엇이 오래 사는 것입니까?”


쯔롱스님께서 즉각 “억!!”하고 할喝을 내지르시고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님이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은 단멸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 자리서 크게 깨달은 루쏸은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 갔습니다. 그로부터 와우싼(瓦屋山)의 호거암虎踞巖에 은거하면서 매일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을 끊어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루쏸은 98세까지 살았는데 하루는 도반들을 불러 놓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뜻을 세워 신선도神仙道의 장생법을 구하였는데 전혀 얻지 못하다가 뒤에 다행히도 부처님의 장생법을 얻어 영원히 사는 법을 완전히 터득하였다. 그대 나의 벗들이여. 오직 원컨대 그대들도 내가 얻은 것을 능히 얻을 수 있으니 열심히 노력하라.”
말을 끝내고는 이내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14, 경을 지송하고 장수를 얻다

 

  양나라 천감天監 때에 이안(琰)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일찍이 11세에 출가하여 사미스님이 되시고 나서 짱안(長安)의 초제사招提寺에 주로 머물고 계셨습니다.

 

당시에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이 있었는데 얼굴모양과 기색만 보고서도 길흉사를 잘 판단할 줄 알았습니다. 그에게서 관상을 본 사람들은 그의 말대로 기특하게도 맞아 떨어짐을 자주 겪어 모두 다 그의 실력을 잘 인정해 주는 터였습니다. 한 번은 이안 스님께서 그를 청해다가 관상을 보게 하였는데 관상쟁이가 정신을 집중하여 잘 들여다 본 후에 이안스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스님의 관상을 보니 특별히 총명하시고 지혜가 범상치 않습니다. 하지만 다만 애석한 것은 요절할 상이라 18세를 넘기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안스님께서 이 말을 듣고 매우 근심이 깊어서 사방으로 다니면서 ‘결국엔 어떠한 공덕을 닦아야 수명을 늘릴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조언하기를 부처님법의 도리에 의지해야 되는데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것이 최대의 공덕이 되며 반드시 장수를 누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안 스님께서 그들이 가르쳐준대로 모든 인연을 제켜두고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고 금강경을 수지독송하였습니다. 어느 날 한 밤중에 이안스님은 방안에서 오색광명이 찬란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광명 속에서 아주 키가 큰 인도스님 한분이 나타나서는 이안스님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본래 스님의 세속 수명이 겨우 18세에 끝나게 되었었지만 지금 일심으로 정성껏 금강경을 수지독송한 수승한 공덕을 빌려서 장수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이 끝나자 곧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안스님은 다시 더욱 정진하여 금강경을 수지독송하였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이안 스님은 이전에 그 관상쟁이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현재의 모양으로 결국 어떻게 될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관상쟁이가 스님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크게 놀라며 말하였습니다.


“이전에 스님의 관상을 볼 때에 분명히 18세에 요절할 것이 틀림없었는데 오늘 스님의 얼굴을 뵈니 지난 번엔 참으로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선 도대체 어떠한 음덕을 쌓으셨기에 이토록 요절할 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은 장수할 상만 드러난 것입니까?”

이안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다만 마음을 오로지 하여 금강경만 수지독송하였을 따름입니다.”
그리고는 아울러 오래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며 겪었던 일을 상세히 설명하여주었습니다. 관상쟁이가 듣고 나서 매우 찬탄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제가 티끌에 매여있는 세속에서 관상을 보면서 삶을 도모하였습니다. 비록 덕을 쌓아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은 부처님법의 공덕이 이와같이 수승하고 엄청나게 불가사의한 줄은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이안스님께서는 92세까지 수명을 누리시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셨는데 그 때에 신비한 향기가 실내에 가득하였으며 사람마다 우러러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15, 경을 지니고 장수하다

 

수나라 때의 일입니다. 개선사開善寺에 비구니스님이 계셨습니다. 모두들 그분을 짱쓰(藏師)스님으로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스님께선 경전의 강의를 매우 잘 하셨고 설법 또한 일품이셨기 때문에 ‘대장경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스승’이라 해서 아마 그렇게 불렀던 것 같습니다. 경전에 해박하시다 보니 멀고 가까운 곳에서 스님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당시에 흐인(何胤)이라고 하는 관상쟁이가 있었는데 특히 얼굴의 관상을 잘 보았습니다. 어느 날 그 관상쟁이가 짱쓰스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스님께선 이토록 훌륭하신 법사이시지만 애석하게도 오래 사시진 못할 듯 합니다.”


짱쓰스님이 이 말을 듣고 나니 황망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곧 경전강의와 설법하는 것을 그만두고 부처님경전을 독송하는데 전념하기로 발원하셨습니다. 스님께서 손이 가는대로 경전 가운데 하나를 잡으셨는데 빼내어 보니 바로 금강경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금강경을 독송하기 시작하셨으며 아예 건물 바깥출입을 삼가시고 다른 잡무도 힘쓰지 않으셨습니다.

 

3년이 지난 후 스님께서 관상쟁이를 다시 찾아가셨습니다. 스님을 보자마자 흐인이 매우 놀라 말하였습니다.
“지난 번에 저의 관상술이 영험스럽지 못하여 제가 잘 못 보았던 것 같습니다. 스님의 관상이 완전히 변하여 장수하실 상으로 변하여져 있습니다.”

 

짱쓰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의 관상술은 틀림없이 고명하십니다. 다만 이렇게 된 것은 부처님법의 영험이 불가사의한 것인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습니다. 흐인이 듣고 나서 스님을 크게 찬탄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수행이 한 개인의 수명을 확실히 고쳐놓는구나!”


뒤에 과연 흐인이 말한 바와 같이 짱쓰스님은 90세의 고령으로 입적하셨습니다.

속담에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각기 다르고 그 얼굴도 또한 각기 다르다.”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중생들은 과거세에 지은 각종의 선업과 악업으로 말미암아 각각 그 모양에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운명가와 관상가들이 근거로 들이대는 관상학적 모양의 짜임새와 격식에 있어 부귀빈천이나 수명의 장단, 인생의 궁하고 통함, 이러한 것들을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가히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온전히 미신만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운명학과 관상학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바로 “생김새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겨난다.”는 이것입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생김새는 선악의 행위에 따라서 고쳐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에 선량함을 두어서 널리 음덕을 쌓는다면 설사 나쁜 생김새의 격식이라 할지라도 좋은 생김새의 격식으로 돌려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因果報應>의 법칙에 딱 맞는 것입니다.

 

예부터 지금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다 운명에만 구속되어 하늘에서 내려 준 명운만 따르려하고 스스로가 주인이 되려고는 하질 않습니다. 오직 대선인大善人과 대악인大惡人만이 제한을 받지 않을 뿐입니다. 위앤러판(袁了凡)이 윤꾸(雲谷)선사를 만나기 전까지 가지고 있던 공덕과 허물의 짜임새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마침내 운명은 바뀌어질 수 있다는 확신으로 전회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운명은 자기 스스로의 창조에 달려있는 것이니만큼 응당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의 운명은 단지 자기의 마음이 어떠한가라는 물음에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른바 “좋은 일을 하였으면 앞길을 묻지말라.”하는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정확한 처세의 길인 것입니다.

 


            제 4 편 회생을 얻다

 

    1, 지계하고 수명을 늘리고 파계하고 벌을 받다

 

왕리꾸(王立轂)는 명나라 때 턘타이(天台)에 살던 사람입니다. 그의 자(字)는 빠이우(伯無)였습니다. 만력萬曆 병오년丙午年에 향천鄉荐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밤에 그가 꿈을 꾸는데 돌아가신 아버지 왕쓰씽(王士性)이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네가 앞으로 10년 안에 5차례에 걸쳐 위험한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과연 아버지가 일러 준대로 10년 동안에 낱낱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꿈을 시詩로 지어서 그 신비롭고 기이함을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일찍이 찌아허씨안(嘉禾縣)에 있을 때 삼보三寶의 앞에서 오래오래 재계를 지키기로 발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살생하지 않을 것, 도둑질하지 않을 것, 삿된 음행하지 않을 것, 거짓말하지 않을 것>의 4계를 받아 지녔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쨩쓰씽(江西省)의 씬깐씨안(新淦縣)에 부임한 이래로는 받아 지니던 계율을 더 이상 지키지 않았습니다.

 

무오년戊午年에 그가 서울로 가게 되었는데 떠나기 전날 밤에 또 꿈속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서 그가 파계한 일을 거듭거듭 꾸짖으며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경계하였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리꾸는 마음이 매우 우울하였습니다.


서울로 가는 도중에 그가 탄 배가 띠깡(荻港)에 도착할 무렵이 깊은 밤인 2경(二更) 무렵이었습니다. 갑자기 두 명의 파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손에 명령을 받은 패를 가지고와서 리꾸를 데리고 한 궁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 궁전을 보니 매우 웅장하고 장관이었습니다. 그 장엄함은 마치 천자가 계시는 황궁과도 같았습니다. 리꾸와 같은 시기에 함께 잡혀 온 사람들도 수십 인이 궁전 뜰 앞에 있었습니다.

 

리꾸는 궁전의 뒤쪽 문을 통해서 끌려갔는데 염라대왕이 한 가운데 높다란 곳의 책상이 놓여진 곳에 앉아 있고, 좌우로는 두 명의 재관宰官이 양옆으로 자리를 나누어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근에 기립하여 왕을 모시는 시자들도 매우 흉악한 모습으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면서 서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돌아본 리꾸는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는 매우 힘차게 꾸짖으며 말하였습니다.
“그대의 세상에서의 수명이 본래 병진년丙辰年에 응당 마땅히 끝나야 하였지만 그대가 재계를 수지하였으므로 수명이 늘어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대가 참지 못하고 파계하여 지니지 않으므로 그대를 붙잡아 여기로 오게 한 것이다.”


그리고는 계속하여 시자에게 명령하여 생사의 장부를 리꾸에게 주어서 스스로 직접 보게 하였습니다. 리꾸는 자기의 이름 밑에 이미 년월年月이 기재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병진년 8월 그 이하로는 완전히 공백으로 되어있었습니다.

 

리꾸는 그의 수명이 겨우 병진년 8월 까지였으며 계를 지킨 인연의 공덕 때문에 그나마 지금까지 수명이 연장되었음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가 후회하기를 그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며 말하였습니다.
“제가 직책이 바뀌어 전근을 가면서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이와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발 너그러이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물론 그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대의 수명은 이미 다하였다.”
그리고 리꾸를 지옥으로 데려가서 형벌을 받게 하라고 영을 내렸습니다. 좌우의 흉맹한 모습의 귀졸들이 지시를 듣자마자 재빨리 준비하여 리꾸를 데리고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이 때, 좌우의 재관들이 몸을 일으키며 말하였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리꾸가 파계한 후의 지은 바와 행한 바를 주의하여 보아 주십시오.”

잠시 후, 시자가 두 개의 커다란 대나무 상자를 어깨에 메고 왔습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니 많은 분량의 서류가 들어있었습니다. 이것은 리꾸가 평일에 한 자, 한 구절 그리고 잘 정리해 놓은 문장들을 쓰고 베껴놓은 것들이었습니다.

 

혹은 마음이 동할 때마다 모두 다 상세하게 일기를 쓰듯이 기재해 놓은 것입니다. 각 세트마다 명부의 관리들이 위쪽에다 색깔을 칠해 체크를 해 놓았는데 검은 색과 파란 색과 붉은 색과 그리고 흰색 등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시자에게 명령하여 같은 색깔끼리 찾아서 한 곳에다 모아 두게 하였습니다.

 

먼저 검은 색과 파란 색을 찾아내서 한 곳에 놓아두게 하고 다음으로 붉은 색과 흰색의 것을 모아서 한 곳에다 두게 하였습니다. 잠시 후, 파란 색의 서류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검은 색의 것도 점점 축소되어 젓가락 모양으로 변했습니다. 오직 붉은 것만이 특별히 밝게 빛이 나서 현란하게 눈이 부셨습니다.

 

리꾸는 곁에 있다가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잘 보지 못하고 시선을 비스듬히 땅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새긴 금강경이 책으로 잘 만들어져 서류와 함께 상자 속에 곱게 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 조그마한 곳에서 선명한 붉은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염라대왕이 전부 다 보고 나더니 얼굴색이 비교적 온화해 졌습니다. 그리고 좌우로 서있는 재관宰官을 향하여 의견을 물어 보았습니다.
“저 사람이 덕을 심고 복을 늘려 놓는 길을 알았으니 잠시 저 사람의 생명을 살려주되 다만 그의 오관五官만 조금 훼손시키려 하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양쪽 재관들이 아무런 이의가 없자 염라대왕이 흉악하게 생긴 귀졸들에게 리꾸의 눈알을 후벼내어서 염라대왕 앞 단상에 놓아두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리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만일 나의 눈알을 빼내어 버린다면 사물을 어찌 분간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순간, 리꾸가 눈앞에 한조각 어두움과 부딪침을 느끼자마자 궁전 안의 관리들과 귀졸들이 모두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 그의 등을 치며 “빨리 가라! 빨리 가!” 하는 소리만 들었을 뿐입니다. 잠시 후, 리꾸가 발이 한 번 걸려 넘어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때가 바로 닭이 홰를 치며 꼬꼬댁 울고 먼동이 막 터오르려는 새벽녘이었습니다. 그의 주변에 집안사람들이 빙 둘러앉아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부인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께서 이경二更이 지난 후에 한 번 가위에 눌리신 듯하셨다가 깨어나시지 못하고 지금까지 손과 발이 냉랭하고 입과 치아가 굳게 닫혔습니다. 의사가 오셔서 한궐寒厥에 걸렸다고 진단하고서 이미 7차례에 걸쳐 약을 드시게 하였습니다.”


말을 듣고 나서 리꾸가 눈을 크게 뜨려고 생각하였으나 다만 등불이 특별히 눈을 찌르듯 부시는 것만 느껴지며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이 되자 의사가 또 와서 그에게 눈을 밝힐 수 있는 약을 복용케 하였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 리꾸의 꿈에 어떤 사람이 못을 가지고와서 그의 눈알에다 못을 박았습니다

 

. 그는 어제처럼 통증을 느끼면서 이것은 업보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때부터 리꾸는 매일 금강경과 법화경을 독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애욕을 버리고 선업을 부지런히 닦았습니다. 경신년庚申年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리꾸의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셔서 아름답고 섬세한 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드시고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달콤한 감로수를 뿌려서 그의 눈을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나 부처님께 예불을 올릴 때 문득 활연히 사물이 보이면서 새롭게 찬란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리꾸가 뒤에 이운치(雲棲)의 뽀싼(博山)의 문하에서 지낼 때는 벌써 다시 살아난 지 20여년이 넘었습니다. 모두들 그를 삐루따쓰(璧如大師)라고 불렀습니다.

마오쫑치(冒宗起)가 평하여 말하였습니다.
“이 일은 모두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훌륭한 전례로서 3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파계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선근을 심는 사람은 틀림없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요, 셋째는 관직에 있는 사람이 써놓은 글자 하나하나와 한 마디의 말,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명부의 관리들이 붉고 흰색으로 기록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늘 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전생의 사경 덕분에 금생에 다시 살아나다.

 

  원빠이런(文伯仁)은 명나라 때 쑤쩌우(蘇州)의 사람입니다. 그의 호는 우펑(五峰)이라 하였는데 시를 아주 잘 읊었고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그는 원쩡밍(文徵明)의 조카였습니다. 한 번은 그가 달아난 하인을 고소하기 위해 살고 있는 현縣의 관아로 가다가 어느 민가에 방을 빌려 하룻밤을 청하였습니다.

 

그날 밤 그의 꿈속에서 두 명의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와서 그를 붙잡자 그는 관아에서 파견된 병사들인 줄 알고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들과 한참을 가니 웅대한 궁전이 한 채 나타났습니다. 그가 보기에 마치 인간세계의 건물이 아닌 듯 하였습니다. 이 때 빠이런은 내심으로 해를 당할까 두려움이 점점 밀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니 염라대왕이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습니다.
“여기에 그대에 대한 고발이 매우 많은데 그대가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빠이런 대답하여 말하였습니다.


“저는 다만 한낱 책이나 읽고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이러한 저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염라대왕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미소를 짓고 말하였습니다.
“아니! 그래, 그대가 전생에 지은 것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말을 마치고 저승판관에게 명령하여 파르스름한 구리거울 한 개를 가져다가 빠이런의 정수리를 문지르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빠이런은 한 줄기 차가운 기운이 심장과 폐부를 깊숙이 파고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동시에 홀연히 전생이 기억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정통正統 때에 왕릉을 지키는 관리들의 책임자였습니다.

 

어느 해 겨울에 연못을 팔 때에 겨울잠을 자기 위해 땅 밑에 엎드려 있던 뱀을 한꺼번에 백여 마리를 죽였습니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는 순간, 수많은 뱀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서 빠이런을 물려고 덤볐습니다.

염라대왕이 다른 한 판관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한 목숨이 어찌 저리도 많은 생명에게 빚을 지고 있는가? 자세히 살피고 조사해 보라. 저 사람이 많은 윤회를 하면서 선한 일 한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없는지 찾아보라.”
판관이 매우 많은 서책을 찾아서 특별히 자세하게 살펴보더니 한참이 지난 후에야 말하였습니다.


“있습니다. 그가 영락永樂 때에 일찍이 계명산雞鳴山의 기다란 절벽에다가 두 분의 나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한 금강경을 한 권 사경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충분하다. 그 정도면 충분히 되었도다.”


그리고는 빠이런에게 부탁하였습니다.
“그대의 수명이 아직 조금 남아 있소. 어서 빨리 돌아가서 금강경을 사경하여 그대가 죽인 저 불쌍한 생명들을 건져주도록 해주시오.”

 

빠이런이 곧 다시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는 본시 부처님을 믿지 아니하였는데 이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사경하고 염불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덕으로 인하여 과거 숙세에 자신이 살해하였던 많은 생명들을 제도해서 고통을 벗어나게 하려고 발원하였습니다. 또한 지극정성으로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거나 가리지 않고 게을리 않고 숙세의 업장을 참회하기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꾸런니안(顧仁念)이 평하여 말하였습니다.
“우펑(五峰)이 지난 과거 생에 겨우 금강경 1권을 사경하였던 것이 여러 생이 지난 후에 다시 살아나게 되는 공덕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아도 과연 부처님의 경전에 공덕을 쌓으면 그 과보가 불가사의하며 참으로 헛된 것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무롱원처(慕容文策)가 지옥을 노닐다

 

  무롱 원츠(慕容文策)는 수나라 때 타이쩌우(泰州)의 쌍뀌(上邽)사람입니다. 대업大業 7년에 그의 나이 17세 때의 일입니다. 그는 평소에 재계를 지키면서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해 4월 15일에 원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저승의 사자들에게 이끌려 명부로 들어갔습니다.

 

성안으로 들어가서 으리으리한 한 채의 궁전에 도착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남녀노소와 승려들과 도사 등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궁전의 관리가 명단을 들고 나와서 낱낱이 이름을 불렀는데 생전에 쌓아놓은 복업이 있는 자는 서쪽에 서게 하고 복업이 없는 사람은 조사하여 동쪽에 서게 하였습니다. 원츠는 마지막으로 불려져서 염라대왕 앞으로 갔더니 왕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일생동안 어떤 복업을 지었소?”
원츠가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금강경과 법화경을 밤낮으로 반복하며 독송하였습니다. 또한 재계를 열심히 지켰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공경히 합장하고 찬탄하며 말하였습니다.  “공덕이 엄청납니다. 엄청납니다!”
곧 주관하는 관리를 바꿔서 장부를 다시 자세하게 검사하게 하니 관리가 조사를 마치고 돌아보며 말하였습니다.
“원츠가 말한 바와 일치합니다.”


염라대왕이 원츠를 세상으로 돌려보내라고 판결하면서 그를 서쪽편의 맨 앞에서 때를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이때, 대략 15,6세 쯤 되는 사미스님이 손에 횃불을 들고 원츠의 앞을 지나가시고 뒤쪽에서 또 한 명의 나이가 비슷한 사미스님이 손에 횃불을 들고 원츠의 앞을 지나치셨습니다.


원츠가 두 분의 출가하신 사미스님을 뵈니 마음이 기쁨에 벅찼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두 분의 가사를 붙들고 구원을 청하였습니다.
“스님들께서 이 제자를 구해주시기 바랍니다. 명부의 사자들의 잘못으로 인해 제가 여기로 잡혀왔으나 염라대왕님의 은혜를 입어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을 알지 못하오니 스님들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방법을 찾아 제발 저를 구하여 주십시오.”

 

그 가운데 한 사미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시주께서는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금강경을 독송하셨고 재계를 잘 지키셨으니 우리가 정성을 다하여 당신을 구해드릴 것입니다.”
다른 사미스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횃불을 들고 앞길을 열 것이니 당신은 저의 뒤를 바짝 따라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두 분의 사미스님께서 손에 횃불을 들고 한 분은 앞에, 한 분은 뒤에, 그리고 원츠는 가운데에서 달렸습니다. 그들이 함께 성문을 달려 나가서 달려가다가 한 분의 사미스님이 원츠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옥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원츠가 모른다고 답하자 다른 사미스님께서 손가락으로 성城의 서북방을 가리키면서 원츠를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4리 길을 가면 한 개의 큰 성이 있는데 이것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모시고 가서 보여드리지요.”

 

큰 성이 자리잡고 있는 곳에 도착하여 보니 성곽이 매우 높고 험하였고 성문에는 쇠로 만든 그물이 드리워져 있었으며 네 명의 흉악하게 생긴 나찰들이 손에 쇠갈퀴를 쥐고 성문의 양쪽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미스님께서 원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지옥의 문입니다. 일체의 모든 죄인들은 이 문을 통하여 지옥으로 들어갑니다.”

두 분의 사미스님께서 원츠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서 2백여 보를 걸어 들어가니 한 줄기 회색빛의 큰 강물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 있는 형을 받는 사람들은 몸 전체를 강물 속에 담그고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수면위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였습니다.

 

거기에다가 치열하고 맹렬한 불길이 조금도 멈추지 않고 그들을 덮쳐서 태워버렸습니다. 이러한 죄인들이 고통을 못이겨 애절히 통곡하며, 처절하고 비참하게 울부짖고 절규하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4방면에도 쇠로 된 상과 칼숲과......등등이 첩첩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도 4명의 옥졸들이 손에 예리한 쇠갈고리를 들고 잠시도 멈추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면서 지키고 있었는데 저러한 종류의 참상들도 사람으로 하여금 보기만하여도 몸서리쳐지게 하였습니다. 옆에 서 있던 두 분의 사미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8지옥이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원츠는 너무나 놀랍고 공포스러워 염불을 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차마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빨리 그곳을 벗어났으면 하고 원하자 두 분의 사미스님께서 상태를 파악하고 곧바로 그를 데리고 성 밖으로 빠져나가서 원래의 가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한 10여리를 달려가자 길이 끊어지고 하나의 커다란 대문이 나타났습니다. 사미스님들께서 손에 쥐고 있던 석장으로 문을 두드려 여시고는 원츠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여 나가시면 그대는 집으로 곧장 돌아가시게 될 것입니다. 가시더라도 그대는 계속해서 금강경을 부지런히 독송하시어 공덕을 널리 닦으시어서 반드시 오래 장수하시길 바랍니다.”
원츠가 스님들께 절을 드리고 이별한 후 문 안으로 들어갔더니 곧바로 살아서 깨어났습니다.


    4, 런이팡이 지옥의 그림을 그리다.

 

  당나라 쿠오쩌우(括州)의 자사刺史인 런이팡(任義方)은 러안(樂安)사람입니다. 무덕武德 때에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었어도 가슴에 따뜻한 온기가 여전하였으므로 집안 식구들이 스님들을 모셔다가 그를 위하여 금강경독송을 청하였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그가 다시 살아나서 명부에 다녀 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런이팡이 저승사자들에게 붙잡혀서 염라대왕에게 인도되어 갔습니다. 염라대왕이 관리들에게 시켜서 그를 데리고 지옥을 참관하게 하였습니다. 그가 실제로 지옥을 직접 보니 과연 부처님께서 경전에 설하신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옥의 세계는 밤낮이 따로 없고 항상 어두컴컴하고 침침하였는데 이것은 마치 안개가 꽉 낀 것과 비슷하였습니다.

 

런이팡이 지옥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 은은한 경전 독송소리가 지옥 전체에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이 되어 흘렀습니다. 염라대왕이 독경소리를 듣자 곧바로 런이팡에 관한 장부를 가져 오게 하여 직접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승사자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의 수명이 아직 다 끝나지 않았는데 어째서 네가 착오로 여기 데려왔느냐?”
그리고 명을 내려 그를 인간세상으로 되돌려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명을 받고 런이팡에게 세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독경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가기만 하면 그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윽고 회생하여 다시 살아난 런이팡은 집안 식구들과 스님들이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자기가 직접 본 지옥의 세계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울러 한 폭의 지옥도를 그려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수입인 봉록을 대부분 불상을 조성하는데 시주하였으며 스님들을 청해다가 금강경을 1000여부를 사경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법보시를 하였습니다.

 

    5, 갑자기 죽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다

 

왕총꾸이(王從貴)는 당나라 때에 꽁안(公安)의 찬링춘(潺陵村) 사람입니다. 정원貞元 때에 그의 여동생이 평소에 금강경을 독송하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들어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3일 후에 가족묘지에 매장을 하고 가족들이 분묘를 빠져 나가려는 때에 묘지 속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려나왔습니다. 사람들이 황급히 묘지문을 열고 관뚜껑을 부숴보니 그녀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에 그녀를 들쳐 업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가 기운을 차린 후 가족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내가 경전을 독송한 공덕을 아시고 나를 다시 세상으로 놓아 보내 주신 것입니다.”


    6, 경전을 사경함을 인해 살아나다

 

당나라에 라오쩌우(饒州)의 사마司馬벼슬을 하던 리위앤이(李元一)라고 하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원화元和 5년에 별채에 살던 그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시신의 얼굴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하여 차마 입관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그녀의 남편인 이안느(嚴訥)는 싼쓰(陝西)로부터 창후(蒼湖)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얼떨결에 보니 자기 아내가 물위로 걸어서 자기 앞으로 왔습니다. 이안느가 매우 놀라며 그녀에게 무슨 일인가하고 물었습니다. 아내가 슬프게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습니다.
“제가 이미 죽었어요.”


이 말을 듣자 이안느의 마음 속에 두려움이 크게 일었습니다.

그녀가 또 말하였습니다.
“여기를 떠나 머지않은 곳에 찌앤푸춘(薦浦村)이 있어요. 그 마을에 이안(嚴)선생님이라고 계시는데 그가 신기한 비술을 가지고 있다하니 당신이 거기 가셔서 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간절히 청해 주세요.”

 

이안느가 찌앤푸춘을 찾아 갔더니 과연 거기에 이안선생이 있었습니다. 이안느가 아내의 이야기를 하면서 구해달라고 청을 하자 처음에는 응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안느가 간곡하고도 애절하게 매달리자 견디지 못하고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그대의 아내를 죽게 한 사람은 필시 왕장군王將軍일 것이오. 그는 자기를 모셔놓은 사당의 서북 쪽 기둥 밑에 있소. 그대는 금강경을 사경하고 또 스님들을 모셔다가 사당 안에서 독송을 청하시오. 그러면 그는 틀림없이 그대의 아내를 보내 줄 것이오.”

 

이안느가 자신의 아내를 살려낼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준 엄선생에게 거듭거듭 감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재빨리 라오쩌우(饒州)에 가서 장인을 만나 뵙고 여태껏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였습니다. 장인인 리위앤이는 직접 금강경 1권을 사경하고 이안느를 불러서 함께 왕장군의 사당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함께 금강경을 7편을 독송하였습니다. 독송이 끝나고 집으로 가보니 그의 아내의 눈이 열리면서 눈동자에서 생기가 돌았습니다. 한참을 지나자 그녀가 입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당의 기둥 아래에 왕장군의 뼈가 묻혀져 있는데 그 옆에 한 자루의 단검이 있답니다. 왕장군이 당신에게 부탁을 하나 하였어요. 자기를 위해 개장改葬을 하여달라고요. 그리고 단검은 당신에게 증정한답니다. 당신이 금강경을 독송해 주신 공덕에 감사한다고 전해달랍니다.”


이 말을 듣고 나서 사당으로 가서 서북쪽 기둥 밑을 파보았더니 과연 사람의 뼈와 단검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안느는 단검을 소중히 잘 간직하고 왕장군의 유해는 별도로 좋은 자리를 택하여 잘 안장해 드렸습니다.
리위앤이는 그 후에도 금강경 수백 권을 사경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법보시하였다고 합니다.

 

    7, 가장 수승하고 제일의 공덕

 

  리치우이(李丘一)은 당나라 때의 사람입니다. 그가 평소에는 사냥을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만세萬歲 통천通天의 첫해에 양쩌우(揚州)의 까요우(高郵)의 승사丞史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그리고 곧장 저승사자에게 이끌려서 명부에 들어갔습니다. 염라대왕이 매우 화를 내면서 그를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그대, 사냥하고 살생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다니... 그런 짓을 하면서 즐거움을 삼으면서 조금도 참회할 줄 모르다니!”

또한 명부에 모여있던 수많은 새와 짐승들이 사람의 말을 사용하면서 그의 죄상을 염라대왕에게 낱낱이 고발하였습니다.


“저 자는 우리를 잔인하게 죽인 원수입니다. 지금 마침 잡아 오셨으니 제발 우리가 시원하게 처분하게 해 주십시오.”

바로 그 때, 치우이를 붙잡아 온 쨔오츠(焦策)이라고 불리는 명부의 관리가 염라대왕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습니다.
“리치우이는 아직 죽을 차례가 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에게 살해된 수많은 원혼들이 하도 애절하게 살고싶다고 부탁하여서 대질하여 증명하기 위해 임시로 붙잡아 온 것입니다.”  염라대왕이 치우이에게 물었습니다.


“흐음. 그러한가. 그러면 그대가 평생 동안에 혹시 조금이라도 선업善業을 지은 것이 없느냐?”

이 말씀을 듣고 치우이가 기억을 아무리 열심히 더듬어 보아도 생전에 지은 공덕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사냥개를 데리고 열심히 사냥한 것만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도 뭐라도 생각해 내려고 세심히 찾아보다가 문득 생전에 금강경1권을 사경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습니다.

 

 이러한 일이 생각난다고 보고를 하니 염라대왕이 듣고 나서 안색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일어나서 합장을 하고 칭찬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이 명부에서는 금강경을 가장 수승하고 제일의 공덕이 있는 경전으로 삼는다. 그대가 능히 사경했다고 하니 비록 한  번뿐이라 하여도 그 공덕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염라대왕은 곧바로 쨔오츠(焦策)에게 명을 내려 그의 행적 가운데 경전을 사경한 것이 남아 있는지 실사를 해서 증거를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쨔오츠가 치우이를 데리고 웅장한 궁전의 대청 한쪽에 있는 아름다운 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방안에는 부처님의 경전이 엄청나게 많이 모셔져 있었는데 모두 다 칠보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었습니다. 챠오츠가 치우이에게 직접 경전 하나를 뽑아보게 하였습니다. 치우이가 그저 손을 내밀어 경전 하나를 뽑아들자 바로 그것이 그가 생전에 사경하였던 그 금강경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에서는 그냥 종이에다 베껴 썼지만 명부에서는 아름다운 보석에 새겨져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챠오츠가 그와 함께 원래 궁전으로 돌아와서 염라대왕에게 치우이가 사경한 금강경이 있다고 사실을 보고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치우이에게 죽음을 당한 각종의 새와 짐승들을 불러 치우이에게 감사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철천지 원수이지만 엄청난 공덕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라 그 공덕을 찬탄함으로써 원결으로부터 해탈케 하려는 염라대왕의 배려인 것입니다. 새와 짐승들이 치우이에게 감사를 드리자 치우이가 말하였습니다.


“제가 금강경 일백 권을 사경하여 그대들에게 회향할 것을 발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새와 짐승들이 매우 기뻐하며 흩어져 사라졌습니다.

염라대왕이 챠오츠에게 명을 내려 치우이를 인간세상으로 돌려보내게 하였습니다. 챠오츠가 치우이를 데리고 성문 밖으로 달려 나가서 한참을 가다가 말하였습니다.


“내가 그대를 위해 이만큼 노력을 했는데 그대는 무엇으로 갚을 생각이오?”
치우이가 말하였습니다.
“당신에게 300 관의 돈으로 갚으면 되겠습니까? 나의 능력으로 갚을 수 있는 것은 겨우 이것 밖에 안됩니다.”
챠오츠가 말하였습니다.


“설사 그대가 나에게 일만 관의 돈을 준다해도 나에겐 실익이 없소. 내가 그대에게 참으로 원하는 건 그대가 나를 위해 금강경 20부를 사경해 주는 것이오. 우리들은 몸이 명부에 사는 관리인지라 고통이 매우 극심하오. 만약 복력의 도움이 없다면 다른 생을 받는 것이 참으로 곤란하오. 그러기에 나를 위해 경전을 사경해 달라고 그대에게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이오.”
치우이가 흔쾌하게 그렇게 해드리겠다고 답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던 길을 계속하자 앞에 갑자기 깊은 낭떠러지가 나타났습니다. 그 낭떠러지는 매우 어둡고 깊어서 그 밑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챠오츠가 치우이와 난간에 서 있다가 갑자기 치우이의 등을 밀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이윽고 치우이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보니 자신의 몸이 관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관 밖에서는 통곡하는 소리가 가만가만 실낱같이 들려왔습니다. 치우이가 크게 외쳤습니다.    “곡하지 마라. 내가 살아 왔다!”

무덤 곁에 있던 집안 사람들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처음에는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재빨리 손발을 다 동원하여 분묘를 헤집고 관을 열어젖혔습니다. 그러자 거기에는 치우이가 팔팔 살아 있는 모습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집으로 데려오니 치우이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그동안 명부에서 있었던 일을 낱낱이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가족들은 놀랍고 감탄하여 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가지고 있던 옷가지와 패물 등을 다 팔아서 스님들을 모셔다가 금강경을 사경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백 권은 치우이가 살해한 생명들을 위해 회향하였으며 이십 권은 저승의 관리인 챠오츠를 향해 회향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느 날 밤에 챠오츠가 또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나를 위해 사경을 해준 덕분에 좋은 곳에 가서 몸을 받게 되었소. 그래서 감사드리려고 이렇게 온 것이오.”
말을 마치고 이별을 고하고 사라졌습니다.

 

양쩌우의 장이長吏인 쒸에후아이위앤(學懷遠)이 치우이가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그를 불러다가 명부에서의 일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황제에게 올렸습니다. 뒤에 리치우이는 황제로부터 진관5품晉官五品의 벼슬을 하사 받았습니다.

 

아울러 쨔쩌우(嘉州)의 초토사招討使로 파견되어 부임하였습니다. 그가 부임하러 가는 길에 찌쩌우(梓州)를 지나갈 때에 시원한 바람을 쐬러 야오따이(姚待)의 정자에 올랐다가 직접 야오따이에게 이 일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8, 염라왕으로부터 스승님이라고 불려진 루씨

 

당나라 개원開元 때에 루(盧)모씨가 후아쩌우(滑州)에서 임시로 머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두 명의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따라 가다 보니 명부로 들어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루씨를 데리고 염라대왕을 뵈러 가는 길에 한 채의 퇴락한 고택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루씨가 명부의 관리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집입니까?”
명부의 관리가 답하였습니다.
“이것은 어사대부御史大夫의 집이오.”
명부의 관리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루씨가 또 물었습니다.


“그 대부의 성명이 어찌 됩니까?”
명부의 관리가 답하였습니다.
“리(李)모라 하오.”
루씨가 그 이름을 듣자 매우 놀랍고 기뻐서 명부의 관리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대부는 분명 저의 외종사촌형입니다. 좀 번거로우시겠지만 큰 소리로 불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명부의 관리가 안으로 들어가 불러보니 어사대부가 곧 밖으로 나왔습니다. 루씨와 대부가 서로 보자마자 매우 기뻐서 함께 얼싸안았습니다. 대부는 곧바로 루씨를 집안으로 데려다가 서로 회포를 풀었습니다. 서로 평생 동안의 일을 대략 이야기하다가 루씨가 금강경을 독송한 얘기를 하는 대목에서 대부가 매우 칭찬을 하며 말하였습니다.


“아우가 금강경을 독송한 공덕은 매우 매우 크고도 넓다네. 금강경은 여래의 성스러운 가르침 가운데서도 골수이기 때문에 여기에 깊고도 깊은 불가사의의 공덕이 있는 것이라네.”

 

그날 밤 9시 쯤 되자 루씨 앞에 수십 명의 사람이 의관을 갖추고 나타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이 사람들 뒤로 약간의 사람들이 그물 속에 갇혀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옷을 입지 않고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겨우 머리만 내어놓고 있었습니다. 루씨가 외종사촌형에게 물었습니다.


“저들은 누구인가요?”
대부가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만일 선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의관을 갖추고 있을 것이며 그물 속에 갇혀 있다면 죄업이 매우 깊은 사람일 것이네. 아우가 만일 저들을 위해 기꺼이 법을 베풀어 준다면 저들 모두가 하늘로 승천할 수 있을 것이네.”


루씨가 쾌히 응락하자, 대부는 아랫사람들에게 명을 내려 높은 자리를 마련토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루씨를 자리에 올라 앉게 하고 법을 베풀도록 청하였습니다. 루씨는 곧바로 금강경을 외우기 시작하였는데 그가 막 금강경의 이름인 『금강반야바라밀경』하고 외우는 순간! 그물 속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한 찰나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금강경을 계속 외워 반쯤 독송하였을 때 어떤 이들은 비단옷을 입고 어떤 이들은 수레모양의 구름위에 올라 앉았습니다. 이윽고 금강경 외우기를 완전히 마치자 모두가 하늘 세계로 승천하였습니다.

대부가 이러한 상황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면서 찬탄하였습니다.


“금강반야바라밀의 공덕이 깊고도 깊도다. 아우의 공덕이 불가사의로구나!”
두 사람은 거듭 거듭 기뻐하며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윽고 대부가 루씨를 데리고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니 염라대왕이 루씨를 ‘법의 스승님’이라고 존칭을 쓰면서  그에게 예배하고 공경히 우대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스승님의 공덕은 불가사의합니다. 그리고 수명은 아직 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거듭 금강경을 염송한 공덕을 칭찬하였습니다. 이윽고 명부의 관리를 한 명 파견하여 그를 세상으로 돌려보내게 하였습니다. 집에 거의 다다르자 명부의 관리가 루씨를 한 번 밀치니 그는 문득 다시 살아났습니다.

 

    9, 수명을 10년 늘리다

 

  당나라 정원貞元 때 찡쩌우(荊州)의 천숭사天崇寺에 찌뜽(智燈)이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늘 금강경을 독송하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들어 그만 입적하시고 말았습니다. 제자가 스님의 손을 만져보니 살아계신 듯 따뜻하여서 차마 입관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7일 후에 찌뜽스님께서 다시 살아나시더니 명부에 들어갔던 일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셨습니다. 찌뜽스님께서 명부에 막 들어가자 염라대왕이 계단을 황급히 내려와 스님께 합장하고 공경히 영접하였다고 합니다. 염라대왕이 스님을 찬탄하면서 말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 금강경을 독송하신 그 공덕이 불가사의합니다. 큰스님의 세수가 10년 더 남으셨습니다. 만약 능히 부지런히 금강경을 수지독송하신다면 반드시 생사를 벗어나 해탈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말하였습니다.


“인간세상의 스님들이 정오가 지나서 율무와 약식藥食 등을 드신다는데 그것은 계율에 맞지 않은 일입니다.”
찌뜽스님이 답을 하셨습니다.
“「등보燈報」에 이르기를 계율 가운데 허가가 된 법조문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후대의 사람들이 첨가한 것이지 본래 부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지금도 찡쩌우의 스님들은 정오가 지나면 약석藥石을 드시지 않습니다.

 

    10, 말린 연꽃이파리 3말

 

당나라 소종昭宗 때에 닝쓰(寧師)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 어느 날 홀연히 돌아가셨습니다. 3일 후, 다시 살아나시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명부에 들어가서 재판을 받았는데 판관이 말하기를 내가 수명이 좀 남아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복록이 별로 없고 다만 마른 연꽃이파리 3말이 있다고 하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평소에 내가 연꽃차를 늘 마시었는데 그게 3말쯤 되었던 것 같다. 그가 나에게 세상으로 돌아가면 마땅히 금강경을 많이 독송할 것을 권하였다. 왜냐하면 이 금강경은 명부나 인간세상에서나 고통에서 해탈하고 윤회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공덕이 무량무변한 경전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닝쓰스님께서 살아나신 이후 매일 연꽃 차를 늘 달여 드셨습니다.


    11, 경전의 힘을 의지하여 세상으로 돌아오다

 

당나라 때의 일입니다. 관직이 급사중給事中인 리꽁쓰(李公石)가 태화太和 7년의 겨울에 태원부太原府에 있는 행군行軍의 사마司馬로 임명되어 갈 때쯤이었습니다. 관직이 공목孔目으로 있던 까오쓰(高涉)에게 한밤중에 한 사람이 다가와 그의 등을 떠밀고 명부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명부의 어느 한 지방에 도착하여보니 수백 명의 사람들과 돼지들과 양들이 아무데나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그를 데리고 어느 한 사람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원래 그의 매부妹夫인 뚜쯔(杜則)였습니다. 뚜쯔가 말하였습니다.
“처남은 이전에 일찍이 나에게 양을 사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못하십니까? 내가 지금 이 때문에 고통을 몇 배나 받고 있습니다.”


까오쓰가 말하였습니다.
“그건 자네가 오해한 것이야. 당시엔 내가 자네에게 시장에 가서 다만 양고기를 사라고 한 것이지 양을 사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네.”
뚜쯔가 더 할 말이 없어 그냥 있었습니다. 이 때, 양 한 마리가 나타나 어금니를 드러내어 뚜쯔를 물려고 하자 뚜쯔의 얼굴에 놀랍고 두려운 기색이 역력하였습니다. 이때 명부의 관리가 그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잠시 후, 까오쓰가 또 한 곳에 도착하였는데 대들보 위에 커다란 쇠고리가 박혀 있었습니다. 그 주변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형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옥졸이 죄인들의 머리를 포승줄로 묶어 그 쇠고리에다 매달았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가지고 살을 후벼내고 뼈를 발라내었습니다. 이것을 본 까오쓰는 황망하고 두려워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다가 급히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까오쓰는 온통 두려움에 휩싸이자 눈을 딱감고 금강경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그가 일찍부터 잘 알고 지내며 의형제를 맺은 사이인 뚜안이씨안(段怡先)이 나타났습니다. 뚜안이씨안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자네가 금강경을 외우니 이것은 결코 잊혀져 없어질 일이 아니라네. 자네가 방금 전에  보았던 극심한 고통을 받는 곳이 깨끗이 없어져 버렸다네.

 

양에게 시달리던 자네 매부와 살이 도려내지던 사람들이 괴로움으로부터 해탈되었단 말일세. 이것은 자네가 금강경을 외워 널리 선업을 쌓기를 힘쓴 때문이지. 이제 자네는 곧 세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일세. 이것은 자네가 금강경을 외운 엄청난 공덕 때문이라네.”

 

뚜안이씨안이 까오쓰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잘 배웅해주었습니다. 까오쓰가 다시 살아나서 날짜를 보니 겨우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문득 등 뒤가 아파서 만져보니 앞전에 명부에 들어갈 때 떠밀렸던 바로 그 부위였는데 파랗게 멍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멍은 며칠이 지나자 저절로 나아버렸습니다.

 

    12, 개의 몸을 면하다

 

짱우(張玉)는 싼쓰(山西)사람입니다. 그의 딸은 이름을 포얼(佛兒)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일은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이었는데 읽을 때마다 기쁨으로 꽉 차서 노래하듯이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채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다시 살아나서 사후의 체험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두 명의 저승사자에게 붙잡혀 끌려가다가 차링(叉嶺)고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승사자가 갑자기 검은 이불로 두 사람을 싸서 천(陳)씨네 집으로 보내고, 화려한 꽃이불로는 그녀를 덮어씌웠습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저 천씨에게 빚이 1500전 있다. 지금 저 사람에게 갚아야 할 때다.”

이 때, 홀연히 한 명의 푸른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와서 말하였습니다.
“이 여인이 평소에 금강경을 독송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소.

 

 우선 그녀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오.”  저승사자가 그녀에게 사과를 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라고 놓아주었습니다. 그녀는 혼자 어두운 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뎌 땅밑으로 떨어졌는데 깨어보니 다시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녀의 아버지 짱우가 차링고개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과연 거기에 천(陳)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 가서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더니 며칠 전에 개가 새끼를 3마리 낳았는데 두 마리는 검은 색 털을 가지고 태어났고 한 마리는 화려한 색깔의 털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화려한 털을 가진 강아지는 이내 죽어버렸다고 하였습니다.

 

    13, 금강경을 듣고 소의 몸을 면하다

 

쪼우위에(鄒軏)는 명나라 때 쿤싼(昆山)에 살던 사람입니다. 그는 배우질 못해서 글자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사람 됨됨이가 의젓하고 솔직하며 정성스러웠고 후덕하였습니다. 그는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베푸는 것을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병이 들어도 치료할 수 없는 사람이나 먹지 못해 굶주린 사람들을 보기만하면 그는 모두 돈을 주거나 음식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금생에는 자기가 조금 넉넉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돕는다는 생각으로 그러한 선행을 하는 것이지 아깝다는 생각은 털끝만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가 길을 가다가 화주하러 다니는 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께서는 길을 따라 거닐면서 금강경을 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쪼우위에가 짐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을 집중하여 잘 들어보았습니다. 그 외우는 경전의 구절 가운데 자주 나오면서도 귀에 솔깃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다.”는 4구절을 그의 마음속에 잘 기억하여 잊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 뒤로 쪼우위에가 중병에 걸리자 스님들을 모셔다가 금강경독송을 청하였습니다. 그의 아우인 쪼우쩐은 매우 총명하고 영민하여 문장으로 자못 그 이름을 날렸습니다. 다만 평소의 행위가 좀 제멋대로이며 인정이 각박한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귀신 따위는 믿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형을 대신하여 예배하고 참회를 하는 동안에 억지로 무릎을 꿇고 독경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강경의 「제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을 읽어 내려갈 때에 그 내용을 듣고는 그의 내면으로 마음이 홀연히 깨우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합장하고 찬탄하였습니다.


“이 경전의 불가사의여. 우리들 유가儒家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음이로다.”
이로부터 이후로는 쪼우쩐이 부처님의 법을 대하여 점점 신심이 늘어나서 삼보를 깊이 받들었습니다.

만력 11년 10월 10일에 쪼우쩐이 역병에 걸리어 혼미해지며 인사불성이 되었으나 유독 가슴만은 따뜻하였습니다. 10여일이 지나자 그의 병이 신속하게 깨끗이 나아 자리로부터 벌떡 일어났습니다.

 

말끔히 쾌차한 그는 식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아팠던 것은 나의 세상살이가 다하였기 때문이었다. 염라대왕이 나를 소의 자궁에 던져 넣어 13년을 살게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래서 억지로 호송되어 궁전 외곽지역으로 끌려 나갔다. 가다가 리쭈오팡(李作坊)의 집으로 가서 그 집의 늙은 암소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송아지로 태어났다. 그런데 송아지의 몸색깔이 온통 흰색이었다.


그 때 금강신이 나타나서 말하는 것이었지. ‘쪼우쩐이 최상승법을 들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크게 신심을 내었었다. 한데 어찌하여 이러한 축생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는가?’ 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금강저金剛杵로 흰송아지의 머리를 두드렸다. 동시에 나의 머리를 누군가에게 세게 얻어맞는 듯 느꼈다. 지금 깨어나 보니 내 머리 꼭대기가 매우 아프구나.”

 

쪼우쩐과 그의 형 쪼우위에가 함께 천자가 사는 궁궐 밖으로 나가서 리쭈오팡(李作坊)의 집을 찾아보았습니다. 과연 리쭈오팡이 사는 집이 있었고 쪼우쩐이 말한 것과 같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흰색송아지 한 마리가 외양간에 너부러져 있었습니다.

 

쪼우쩐은 이것을 보고 매우 놀라서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만일 저 번에 금강경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미 나는 소의 몸을 받은 그대로 죽을 때까지 쟁기를 끌고 무거운 것을 죽어라고 싣고 다녔을 것이다’하였습니다. 이로부터 부처님과 진리에 대한 신심이 더욱 공고해졌으며 친형인 쪼우위에와 함께 재계를 잘 지키며 금강경을 열심히 독송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후, 쪼우쩐은 미질도 하나 보이지 않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어느 날에 쪼우위에가 집안식구들을 모아놓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내일 정오 쯤에 성인들께서 나를 서방정토극락세계로 영접하러 오신다.”
과연 다음날 정오가 되니 신비한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함을 온가족이 환희에 차서 느끼는 가운데 쪼우위에가 목욕 후 옷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14, 빛이 여러 자(尺) 돌다

 

유완잉俞萬盈은 당나라 때 찡쫑(京中) 사람입니다. 그는 성정이 매우 거칠고 맹목적이었습니다. 원화元和 7년의 일입니다. 하루는 집안에 한 마리의 큰 독사뱀이 나타나서 가족들이 해를 당하지는 않을까하고 모두가 매우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자 완잉이 크게 분노하여 손에 커다란 막대기를 들고 독사를 때려 죽여버렸습니다. 게다가 그 죽은 뱀을 삶아서 잘라 먹었습니다.

 

독사뱀을 죽여서 삶아 먹은 후로 완잉은 곧 깊은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오래되지 않아서 전신에 통증을 앓으며 고통스럽게 죽어갔습니다. 죽었어도 가슴 쪽이 따뜻하였기 때문에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었더니 7일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완잉이 깨어나 몸을 추스르고 나서 사람들에게 사후의 일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가 처음에 명부의 사자에게 붙잡혀 갔는데 칠흙같은 어둠 속을 10여리를 달려가다가 혼자 가고 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의 뒤쪽은 둥근 빛이 둘러싸여 있었고 빛의 넓이가 4척이나 되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달려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입을 중얼중얼 하면서 경전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가 완잉을 불러서 자기의 빛의 범위 안에서 근접하게 달리게 하면서 자기소개를 하였습니다.


“저는 성이 짜오(趙)라고 합니다. 저는 자주 금강경을 외우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의 몸 곁을 벗어나지 않으셔야합니다. 그래야만 저승사자가 당신 곁을 감히 접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시키는대로 하고 둘러보니 어느새 저승사자가 사라지고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함께 열심히 한참을 달려갔더니 완잉의 집이 보였습니다. 완잉은 그를 향하여 절을 하고 감사의 말을 드렸습니다.
“만일 당신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결코 돌아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진정 감사합니다.”


짜오가 그 자리에서 완잉에게 금강경을 따라 외우게 하였습니다. 완잉이 거의 짜오만큼 익숙하게 금강경을 외우게 되자 그는 이내 떠나갔습니다.완잉이 다시 살아난 후, 금강경 1권을 구해다가 거듭거듭 염송하였습니다. 걸렸던 병도 시원하게 확연히 치유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살생도 다시는 하지 않았으며 매일 금강경 50편을 독송하였습니다.


    15, 다행히 증명해주는 스님을 만나다

 

당나라 무덕武德 때에 창안(長安)에 쑤원쫑(蘇文忠)이라고 하는 한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부자이긴 하였지만 어질고 자비롭지를 못하여서 위세를 부리고 사람들을 업신여기기 일쑤였습니다. 살생을 밥 먹듯이 쉽게 하였고 털끝만치도 선행을 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하루는 화장실에 들어가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넘어져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들인 런친(仁欽)의 행실도 그의 아버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 제멋대로 돼지와 염소 등을 함부로 죽이곤 하였습니다. 그에 의하여 살해되어 명부로 가게 된 수많은 동물들이 그의 죄상을 낱낱이 염라대왕에게 고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명부에서 그의 혼백을 꽁꽁 묶어 결박하여 지옥으로 데려다 달라고 염라대왕에게 청을 올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런친이 무거운 병이 걸려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병이 쾌차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의 나이가 30세가 채 되지 않았는데 그에 의해 죽은 많은 짐승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내 목숨 내놔라’하는 환상에 사로잡히다가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죽어서 명부에 도달하여 보니 염라대왕이 그를 크게 꾸짖었습니다.
“그대는 보라. 그대가 이미 전생에 선행을 닦고 복을 쌓아서 그 인연으로 금생에 재물도 많고 풍요롭게 살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런데 상상외로 그대는 복덕을 아낄 줄 모르고 일시에 입과 배를 채워보려는 탐욕을 크게 부려 마음대로 살생을 자행하였다.

 

 그대가 죽인 생명들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데 그들이 나에게 와서 그대의 죄상을 낱낱이 고하고 그대를 처벌해 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래서 곧바로 그대의 수명을 줄이고 전생에 지었던 복록도 다 지워서 여기로 붙잡아 오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 그대는 재판받을 것도 없이 곧바로 칼숲칼산(劍樹刀山) 지옥으로 보내져서 그대가 스스로 지은 악업의 빚을 낱낱이 갚아야 할 것이다.”

 

런친이 듣고나서 마음속으로 놀라고 심장이 떨려서 털썩 주저앉아 자신을 구해 줄 것을 애절하게 청하였습니다.
“제가 생전에 비록 선행을 한 번 한 적 없고 덕을 쌓은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하여보니 예전에 한 번 금강경 1권을 사서 안국사 절에 계시던 썬찡(神敬)스님께 보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스님께선 이미 돌아가셨겠지만 혹여 이것이 저의 죄를 조금 감면해 줄 수 있는 것일까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명부의 궁전위에서 신비한 향기가 코를 찌르도록 퍼지더니 양손에 책 한 권을 받쳐 들고 한 스님께서 나타나시더니 계단 아래로 걸어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염라대왕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바로 썬찡입니다. 내가 받들고 나온 이 책은 바로 런친이 일전에 보내 준 바로 그 금강경입니다.

 

내가 이 경전을 가지고 열심히 독경한 덕분에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런친을 위해 증명을 해주려고 이렇게 온 것입니다. 대왕께 청컨대 자비를 베푸시어 그를 세상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틀림없이 허물을 고치고 선행을 많이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난 염라대왕이 공경하게 합장하고 칭찬하였습니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반야의 공덕이 불가사의 합니다! 그의 죄업이 소멸되었을 뿐만아니라 수명이 한층 50년이나 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명을 내려 런친을 인간세상으로 돌려보내게 하였습니다.

 

런친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여러 마을에 널리 퍼졌습니다. 멀고 가까운 동리에서 그를 보려고 몰려와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는 경탄해 마지않았습니다. 특히 런친이 살생을 하여 생명을 해쳤다가 중병이 온 몸에 걸려버렸다는 얘기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그 자리서 앞으로는 살생하지 않고 방생하면서 선업을 짓고 덕을 쌓겠다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금강경 단 1권을 보시하였을 뿐인데도 죄업을 몽땅 소멸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명까지 늘려주었다는 얘기에 또다시 모두들 경탄하면서 불가사의하다고 크게 찬탄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금강경을 독송하기로 발심한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런친이 반야의 힘을 의지하여 다시 살아나고 나서부터 지극정성으로 허물을 뉘우치고 선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크게 발심을 하여 금강경 1000권과 법화경 100권을 인쇄하여 널리 보시하였으며 스님들 100명을 청하여 공양을 드렸으며 아울러 수륙재를 베푸는 등 여러 공덕을 닦았습니다.

 

어느 날 밤에 런친의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에게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내가 살아 있을 때 여러 가지 악업을 지었다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았다. 그런데 네가 지은 공덕 덕분에 내가 너의 7대 조상들과 함께 천상계로 승천하게 되었다. 그리고 네가 만일 다시 밭100묘를 절에다가 시주하여 부처님께 공양하고 스님들께 재를 베풀어 준다면 너의 자손에게까지 그 혜택을 입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 아비의 한 가지 바램이다.”


런친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을 받들어 마음속으로 더욱 발심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선행하기를 즐기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여 복덕을 널리 쌓았습니다.

 

    16, 금강경을 자수로 놓다.

 

  탕쓰(唐時)는 명나라 때 후쩌우(湖州)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조카 딸은 하이닝(海寧)의 양윤호우(楊雲後)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남편이 세상을 떠나버려서 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천계(天啓) 갑자년甲子年에 그녀는 펑양(鳳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자수를 즐겨하면서 여가를 보내었는데 특히 꽃과 새를 수놓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재계를 지키면서 금강경을 수로 놓으려고 발원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이행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해 1월에 그녀가 병을 얻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몸 전체에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땅위에 그냥 눕혀 놓았습니다. 그런데 홀연히 큰 소리가 들려오기에 그녀가 눈을 들어보니 손에 석장을 들고 금으로 된 갑옷을 입은 큰 신장神將이 앞에 나타나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일찍이 금강경을 수놓겠다고 서원을 세웠던 일을 기억하겠느냐?”
그녀가 답하였습니다.
“기억납니다.”


금갑옷 신장이 손에 든 석장을 한 번 흔들고 나서 물었습니다.
“수를 놓겠느냐, 그만 두겠느냐?”
그녀가 말했습니다.
“수를 놓겠습니다.”


그러자 생각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러한 일을 겪고 나서 그녀는 두 번 다시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으며 곧장 금강경을 수놓은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를 놓는 그녀의 몸이 본래 매우 약했었지만 맹렬한 의지 때문인지 병이 도리어 침범하지 못하였습니다.


숭정崇禎 임신년壬申年에, 마침내 금강경의 전문을 수놓는 작업이 완성됨으로써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수로 놓은 금강경을 보니 마치 명필가가 붓으로 잘 쓴 것과도 같아서 그녀의 솜씨는 정교하면서도 세밀하여 쓴 것인지 수를 놓은 것인지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17, 웨이민이 수명 90세를 누리다.

 

  웨이민(魏旻)은 당나라 때 수이쩌우(遂州) 사람입니다. 정관貞觀 원년元年에 그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는데 며칠이 지난 후에 다시 살아나서 그의 가족들에게 명부에서의 일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자마자 저승의 사자가 와서 그를 명부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와 함께 명부에 잡혀 온 사람들이 수십 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스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명부전의 뜰 앞에 많은 사람들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염라대왕이 제일 먼저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은 일생동안 무슨 공덕을 닦으셨소?”
  스님이 회답하셨습니다.
  “제가 평생동안 한 것이라고는 금강경 읽은 것밖에 없습니다.”
  염라대왕이 이 말을 듣자마자 합장하고 매우 공경하면서 찬탄하였습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스님께서 금강경을 수지독송하신 일이 매우 훌륭하십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당연히 하늘 나라에 계셔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이곳으로 오신 것입니까?”
  바로 그 찰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하늘의 천신들이 명부 가득히 꽃을 뿌리고 향을 흩으면서 나타나 스님을 하늘로 모셔 갔습니다.

 

  한편 차례차례로 판결을 받아 드디어 웨이민 차례가 되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생사의 장부를 검사하다가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저승사자를 매우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오늘은 왜 이리도 실수가 많은 것인가? 이 웨이민도 잘못 데려왔구나.”


  하고는 명을 내려 저승사자에게 곤장 50대를 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웨이민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평생에 어떠한 공덕을 닦으셨소?”
  웨이민이 답하였습니다.
  “제가 평생에 경전을 읽지는 못하였으나 오직 유신(庾信)의 저술을 많이 읽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유신을 알아 볼 수 있겠소? 그는 대죄인이오.”

  염라대왕이 명부관리로 하여금 웨이민을 데리고 유신이 과보를 받고 있는 곳으로 안내하게 했습니다. 웨이민이 따라가 보니 한 마리의 검은 거북이가 있었는데 몸은 하나이지만 머리가 여러 개 달려있었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웨이민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거북이가 바로 유신입니다.”
  그곳을 떠나서 그들이 10여보를 달려가니 자신이 바로 유신이라고 밝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평생에 경전을 인용하고 근거를 가져다가 글을 지으면서 불법을 폄훼하고 비방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이렇게 죄의 댓가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갖가지의 형벌을 받으니 그 고통이 차마 감당키 어렵습니다! 방금 전에 그대가 본 검은 거북이가 바로 나의 몸입니다.”하였습니다.

 

  저승의 사자가 웨이민을 데리고 다시 명부의 궁전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웨이민이 염라대왕을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제가 이미 유신을 보고 왔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유신이 생전에 부처님과 진리를 폄훼하고 비방하였다가 갖가지의 형벌을 받으면서 지금 거북이의 몸을 받았소. 이것을 그대의 눈으로 직접 보았겠지요. 지금부터 그대를 세상으로 돌려 보내드릴 터이니 절대로 대승경전을 폄훼하거나 비방하지 마시오. 반드시 복과 지혜를 힘써 닦아야만 겨우 좋은 과보를 받을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는 명부의 관리에게 명하여 웨이민을 세상으로 보내주게 하였습니다.

  웨이민이 다시 소생한 후에 염라대왕이 부탁했던 일이 뚜렷이 기억이 났습니다. 또한 스님께서 금강경을 독송한 과보로 천상계에 태어나는 것을 직접 본 것도 기억이 났습니다. 이에 각 절을 다니면서 금강경을 구하다가 어느 절에 이르러서 어떤 스님 한분께서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그 대승경전을 가지고 있소.”

  웨이민이 그 말씀을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즉시에 공경하면서 무릎을 꿇고 스님께 머리 조아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제가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이 경전을 얻었으면 하고 바라옵니다.”


  스님께서 그의 지극한 마음을 애민히 여기시고 그에게 금강경 1권을 주셨습니다.

  웨이민은 지극한 보배같이 여기면서 금강경을 수지하고 돌아온 후에 밤낮으로 염송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곧 경전을 능란하게 다 외워버렸습니다. 이렇게 수지독송하기를 열심히하여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웨이민은 일찍이 명부에 들어가서 직접 한 스님께서 금강경을 읽고 천상에 태어나신 것을 목격한 일과 또 유신이 불법을 비방하여 지옥의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던 일을 수이쩌우 사람들에게 잘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수이쩌우의 사람들은 예전에는 야만적이고 의식이 뒤떨어졌는지라 사냥하고 살생하는 죄업을 짓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웨이민이 겪은 명부의 일을 들은 인연으로 모두들 크게 보리심을 발하여 누구도 감히 사냥하거나 살생하지 않았으며 아울러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기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4월 15일이 되자 문득 어떤 한 사람이 흰말을 타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웨이민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이 그대를 데려가야 하는 날이오. 그대가 명부에서 겨우 2년의 수명을 더 연장했었소. 하지만 그대가 세상으로 돌아온 후부터 금강경을 1만 편이나 수지독송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악을 끊고 선을 쌓게 권하여 널리 큰 공덕을 심었으니 이러한 한량없는 공덕 덕분에 수명이 또 연장되어 90세까지 사시다가 목숨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날 것이오.”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히 생사의 고통을 요달하여 육도윤회를 벗어나게 함이니 이것이야말로 최대의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하는 자들이 적으니 그 이유가 어찌된 것일까요? 세간에서는 도덕을 높이 숭상하고 학문에 조예가 깊으나 불법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자기의 견해만 고집하면서 스스로 자기의 견해를 고명한 것으로 삼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몸소 설하신 진리를 대하여서는 오히려 비평하고 검토하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세속의 지혜요 변재요 총명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생의 팔난 가운데 하나가 됨이니 실로 가장 불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경전 1권을 얻으려해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인쇄술이 잘 발달하여 경전뿐만 아니라 각종 서적들이 정미롭고도 완전하게 잘 만들어져 읽거나 열람하기가 아주 용이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오히려 그럭저럭 세월만보내고 게을러지게 하기가 쉬워져서 그러다가 순식간에 숨 한 번 그쳐 세상과 이별해버리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왕찌이王志一거사님의 시에 이러한 구절이 나옵니다.
“고향을 잊고서 타향을 연모하지 말지니라.
  쾌락이래야 잠깐 흡족을 줄 뿐
  만일 염라왕의 서신을 기다린다면
  거듭 생각하여 황망치 않도록 수행할지니.”

  원컨대 대중들은 이 시를 잘 참고하여 수행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18, 지옥의 형이 멈추어지다.

 

  링유법사는 당나라 때의 사람입니다. 서울에 살다가 대흥사로 출가하였습니다.

  장경 2년에 링유법사는 아무런 이유없이 갑자기 입적하셨는데 몸의 온기는 마치 살아있는 듯 따뜻하였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이 염을 하지 않고 있다가 7일이 지나자 과연 다시 예전처럼 살아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스님께서 죽었던 체험을 말씀하셨습니다. 숨을 거두자마자 스님께서는 2명의 명부의 관리들을 따라가서 명부의 성에 도달하였습니다. 거기서 스님은 염라왕을 만나게 되는데 염라왕이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세상에서 어떠한 행업을 익히셨소?”


  링유법사께서 답하셨습니다.
  “빈승은 일생동안 늘 금강경을 익혔소이다.”
  염라왕이 듣자마자 얼굴에 기쁜 빛을 가득 들어내고 매우 공경하며 합장하고 찬탄하였습니다. 아울러 당신의 자리를 내어 드리면서 금강경 1편을 독송하여주기를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링유법사께서 금강경 독송을 시작하자 돌연히 각 지옥에서 형을 받아 지져지고 묶여 고초를 받던 일들이 일시에 멈추어버렸습니다. 금강경 독송을 마치자 염라대왕이 찬탄하여 말하였습니다.    “스님의 공덕이 한량없습니다. 그대의 수명이 이미 다하였으나 부지런히 금강경 독송하신 인연으로 특별히 10년이 연장되었습니다. 세상으로 돌아가시게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금강경 독송하기를 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링유법사께서 이야기를 마치시자, 곁에서 듣고 있던 모든 이들이 모두 합장하고 금강경의 수승한 공덕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라왕이 고구정녕히 간곡하게  금강경독송을 권하였음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19, 죄업도 소멸하고 수명도 연장하다

 

  당나라 인덕麟德 때의 일입니다. 쏭이룬宋義倫은 괵왕부虢王府의 전첨典籤으로 부임하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망하였는데 3일이 경과하여 문득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는 명부에서의 일을 가족들에게 설명하였습니다.

 

  이룬은 명부의 사자들에게 붙잡혀서 명부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염라대왕이 이룬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일찍이 개와 토끼, 비둘기 등의 짐승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기에 수명이 단축되어 여기에 오게 되었다. 하지만 잘 살펴보니 그대가 평소에 금강경을 독송하였다는 것을 그대의 스승이 증명하여 준 바 있다. 그러므로 금강경을 독송한 인연으로 인하여 그대의 죄업이 소멸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명도 다시 연장되었다. 내가 그대를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 줄 터이니 다시는 짐승을 잡아 술안주로 먹지 말고 금강경 독송을 게을리 말아야 한다. 알겠는가?”

 

  이룬이 염라대왕을 향하여 감사의 절을 올리고 말씀드렸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룬의 눈에 몸에 가사를 두른 한 분의 스님이 보였습니다. 스님의 연세는 약 5,60세 쯤 되어 보였으며 명부의 궁전 안에 놓여 있는 좌탑위에 단정히 앉아 계셨습니다.
  스님께서 입을 여셨습니다.


  “내가 바로 그대의 스승이다. 특별히 생각하여 그대를 구해주었으니 그대는 염라왕의 말을 잘 되새기어 힘쓰도록 하라.”
  이룬이 매우 공경하면서 말씀드렸습니다.
  “결정코 잘 명심하겠습니다.”

 

  염라대왕은 특별히 이룬을 위하여 명부관리에게 명하여 지옥을 둘러보게 배려를 하였습니다. 그들이 먼저 확탕지옥을 들렀는데 거기에는 커다란 쇠가마솥이 한 줄로 죽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 가마솥의 아궁이마다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르면서 솥을 데우고 있었습니다. 한편 형을 받은 사람들이 그 가마솥에 넣어져 삶아지고 있었는데 고통에 몸부림치며 외치는 절규는 차마 듣기 어려운 소리라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니 널따란 쇠로된 평상위에 수형인들이 눕혀져 있었는데 온 몸이 불에 굽혀져 시커멓게 타 들어가면서 외마디 소리를 슬프게 질러댔습니다. 이 때 이룬이 서쪽 편을 돌아보니 얼굴이 깡마르고 까무퇴퇴한 사람들 3명이 곁에 서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여인네의 차림새였습니다. 그녀들은 이룬을 향하여 자기들 머리를 때리면서 이렇게 하소연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수백년동안 아무것도 먹질 못하였습니다!”
  이룬이 답하였습니다.
  “나에겐 그대들에게 나누어 드릴 음식이 아무것도 없구려.”
  이룬이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으론 그녀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으로 무언가를 찾아보려 하였지만 사실상 불가능하였습니다.

 

  또 계속해서 지옥을 다니다가 어느 한 곳에 이르렀을 때, 이룬이 생각하기를 ‘시간이 많이 지나서 혹시나 가족들이 자신의 시신을 처리해 버리지 않았을까’하고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자에게 이젠 집으로 가봐야겠다고 말하고서 서남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뒤에서 사자가 급히 부르며 다가왔습니다.
  “증서를 가져가는 걸 깜박하셨소. 그것이 없으면 지옥문을 통과하지 못하오.”


  그렇게 말하고는 그 자리서 종이에 글을 석 줄을 써서 이룬에게 주고 갔습니다. 하지만 이룬은 그 글을 보아도 무슨 뜻인지 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덧 지옥문에 다다라 문지기가 통과증을 요구하길래 주었더니 읽어보고는 곧바로 허가를 해주었습니다. 이룬은 지옥을 나오자마자 힘껏 달리다가 다시 깨어났던 것입니다.

 

 

 


 

출처 / 천불동 http://buddhasite.net/dharmadhatu/bang.php?table=pdspre&query=view&l=9467&p=1&go=8#view_first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향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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