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를 보호하여 령혼을 천도 하는 것
객이문왈 생사는 인간에 큰일이다 부모 친척이 병이 들어 사망 할 적에 어떻게 하는가? 룡성왈 첫째 병인의 거처하는 방과 온 집안을 청결히 하고 일주청향(一炷淸香)을 피우며 어육초와 오순채를 엄금하고 대승성전을 독송하며 세간에 흔한 잡담을 하지 말고 항상 대각의 성전에 말씀을 병자의 귀에 들여 주되 일정히 슬픈 기색과 우는 기색을 보이지 말 것이니라. 세상 사람의 인정으로 보면 울지아니하면 인자의 도리가 안이라고 할 것이나 그 사실에 들어가 보면 불효막대한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하냐 하면 환자가 병이 중하여 감에 사지백절이 동통(疼痛)하며 호흡이 천촉하여 마음에 죽을 각오가 들어가는 중에 병자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쓸 대 없는 말과 슬픔이 락누하는 기색을 보이여 병자의 심사를 도와 애연한 정과 슬픔마음이 심간에 사무치게 하니 이것이 불효를 끼치는 것이니 아무쪼록 세상이 무상함을 말하여 애착심을 버리고 청정한 도심이 발하게 하며 성호를 생각하여 안락국토에 왕생하게 할 것이지 도리어 애착심을 내게 하여 악도에 떨어지게 하니 이것이 불효막대한 것이다 객이왈 설사 애착심을 내거나 변뇌심을 내기로서 악도에 타락 할 것이 무엇인가? 룡성왈 그대가 참으로 알지 못하는 말이다 허공에나 난 새와 물에 노노는 고기라도 조금 거리낀 것이 있으면 자유롭게 날고뛰지 못하는 것 같아 처자권속과 금은옥백과 좋은 친구를 다 버리고 영원히 홀로 떠나 갈 때에 조금이라도 걸림이 있으면 좋은 곳을 못가는 것이다 마음이 천정하고 고요하여 산란심이 없으사 령혼이 바로 왕생 할 것이거늘 령혼의 사정을 알지 못하고 한갓 우치하여 칠통같이 어두운 소견으로 애고엄언 임에 고아 번임을 버리고 어디로 가시며 슬 피우는 소리에 령혼역시 애착번미에 걸리여 앞길이 막막하여 어디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혹 거리 중천에 귀신이 되거나 그렀지 아니하면 삼악도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니 그 령혼의 자체에 앉아보면 자손이 아니라 큰 원수가 될 것이다 그러함으로 부모나 혹 누구나 든지 병이 들어 쓸 때와 임종 할 때에 대각의 성전에 있는 말씀과 마음을 도록키며 대원각본성으로 반본환원(返本還源)하는 것을 역역히 설명하여 줄 것이니라. 세상 사람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임종일로부터 조석상식과 내지 삼년상까지 단지 우는 것으로 능사를 삼는 것이다 명종한 후에 한 시간이나 더 지나가던 세상 사람의 체면으로 또 망극지통을 표시하기 위하여 곡을 할 것이니라 우리의 교에서는 부모의 령혼을 영원히 안락국토로 왕생하기를 소원하는 고로 절 때로 주육과 오신 체와 일체 부정지물을 쓰지아니하니 하며 살생을 엄금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은 초혼을 부르며 혼백을 집으로 모셔다가 조석상식과 삼년상을 지내되 곡성으로 만판을 짜거니와 우리 교에서는 부모의 영혼이 갈 곳을 못가고 자손의 집에 와 있는 것은 아주 좋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그러함으로 우리 교에서는 부모가 명종하실 때에 대선전을 외무며 미타성호를 지성으로 부르며 명이 마친 뒤에는 시달림 을하고 금강경이나 원각경을 독송 할 것이며 절대로 곡성을 많이 내지 아니한다. 칠칠이 사십구일과 삼년상에도 청정히 재계을하고 승경 전을 독송하며 영혼을 천도하기로 만 목적하고 영혼이 집에 있써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객이문왈 사람이 죽은 뒤에 영혼이 있다고 하는 것은 미신이 아닌가? 룡성왈 그대는 어찌 영혼이 없는 줄만 자세히 아나요 뀌신 없는지 있는지 자세히 모을진댄 부모의 영혼에게 좋다고 하는 것은 인자의 도리에 하는 것이 좋을듯하다
제14, 中陰神을 辨明함
객이 문왈 중음신(中陰神)이 있다하나 그 말이 옮은 가요? 용성이 답왈 우리의 본원각성은 본래 중음신이 없다 유정동물이 낱낱이 업혹(業惑)의 습기(習氣)가 맺이어서 중음신이 있게 되었다 비유하면 강물이 본래 얼음이 아니 것만은 낭의 찬(寒)기운을 인하여 얼음을 일우는 것과 같다
어찌하여 중음신이라고 하는고?
답왈 유정동물이 다 죽을 때에 이 육체는 버리고서 저 새로운 육체를 받지 못하였을 때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은 중음신이라고 하나니
음(陰)이라고 하는 말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묘명진성을 그늘하여 가리울 때
이름을 음이라 하는 것이니 이것을 통히 합하여 중음신이라 한다.
중음신의 모양이 어떠한고.
답왈 중음신이 두 가지로 대개 구분할 것이니
하나는 용모가 단정(端正)하고 하나는 용모가 추악(醜惡)한 것이니
지옥 중음신은 느티나무(楡木)를 불에 사른 빛과 같고
축생(畜生) 중음신은 연기 빛과 같고 욕계 중음신은 금빛과 같고
색계(色界)에 모든 중음신은 빛이 선명하고 좋으며
무색계(無色界)에는 중음신이 없고
공(空)과 식(識)과 비상(非想)과 비비상(非非想)에 머무르며
또 육취에 중음신은 손과 발이 각기 둘이 되는 자도 있으며
다 현세업력(現世業力)을 따라서 사람은 사람의 생각을 내고
축생은 축생의 생각을 내는 것이니
비유하면 사람이 몽중에 행주좌와 함에 생시(生時) 자기 몸이요
다른 것은 없다 문왈 사람이 죽은 뒤에 낱낱이 중음신이 있는 것인가
답왈 악업이 중한 자는 곧 악취로 가서나고 선업이 중한 자는
선도에 가서 나고 악과 선을 닦지 못한 자는 중음신의 보(報)를 받는 것이니
그 보(報)받는 것이 혹 십년이나 내지 백년을 받는 자도 있으니
정하여 말하기 어렵도다.
문왈 사후에 천도를 한다하니 이 말이 허황한 말이 아닌가
답왈 그러하지 아니하다 사람이 죽은 뒤에
귀신(鬼 神)의 보를 받은 자가 수가 없이 많은 고로
그들을 관리(管理)하는 자가 있어 통치(統治)하는 것이니
인간사(人間事)와 다르지 아니 할 것이다
혹 사후에 자손(子孫)이 삼단보시(三壇布施)를 베풀어서 선법을 지어
죽은 영혼(靈魂)을 도아주면 그 음덕으로 천도되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그 천도하는 인유(因由)가 네 가지 있으니
하나는 시방일체성현의 위력이요
하나는 법을 가진 집사자(執事者)의 법력(法力)과 관력(觀力)이요
하나는 법으로 시방에 우주무주(有住無住)고혼(孤魂)에게
법식(法食)을 보시하는 것이요
하나는 법으로 유주무주고혼에게 보시하여 주는 것이니
이와 같은 재물과 법으로 보시하여 주는 음덕으로
천도가 되는 것이나 이것이 다 사람마다 효순심(孝順心)에 있을 것이니
나는 힘써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세상이 알지 못하고 다 미신이라고 할 것이다
중음신도 생사가 있는가.
답왈 생사가 있는 것은 인간 사람과 같다 중음신이 업보를 벗고
타처에 가서 날 때에 귀신 가운데에서 곧 없어 질 때에
귀신 중에서는 죽은 곳이 되고 옮겨가는 곳은 나는 곳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로써 앉아 보면 나는 것이 꿈이요 나는 자로 앉아보면 죽는 것이 꿈이니 삼계육
도(三 界 六 途)가 도시몽환이다
문왈 중음신의 형체가 없으니 어찌하면 볼 수 있는가?
답왈 중음신과 귀신이 다르니 죽은뒤
사십구일전(四十九日前)에는 중음 신으로 있고
사십구일 뒤에는 귀보를 받아 인간 사람과 같이
남녀(男女)가 배필(配匹)하여 자식 났고 사는 것도 있고
거리 중천에 떠돌아다니는 것도 있으니
그들의 형용정상을 다 말 할 수 없다
이것은 귀신 편으로 앉아보면 자기들의 형용이 분명하나
흡사히 바람과 같아서 있기는 분명하나 형상이 없는 고로 볼 수 없다
사람은 양계(陽界)요 귀신은 음계(陰界)라
음양(陰陽)이 서로 상적(相敵)지 못할 때 보지 못하나니
비유하면 태양이 비추는 곳에는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현세에 공중이라고 하며 명두라고 하며 태주라고도 하나니
지방을 달아 이름이 다르다
그것을 접한 여자나 남자나 점을할 때에 휘-하면서
말소리가 분명하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다
이 모든 귀신을 부리는 술법이나 혹 양기가 허하여 보는 것도 있으며
성인이 대정(大定)에 들어가면 일체귀신을 사람 보는 것과 같이
역역 분명하니라
중음신이 육도로 갈 때에 어떻게 가는가.
답왈 중음신이 각기 업을 따라가나니 업력(業力)으로 천당(天堂)으로 갈 자는
머리가 문득 우로 향하여 날아 올라가고
방생(傍生)으로 가서 날 자는 중음신이 우마축생(牛馬畜生)과 같이 가로누어 가고
지옥으로 가는 자는 중음신의 머리가 꺼구러 져서
아래로 향하여 가니
무슨 중음신이 던지 다 신통이 있어서
허공으로 쫓아 마음대로 날라서 순식간에 천리만리를 가는 이라
제15, 일체유정동물은 반듯이 식(識)이 있는 것을 변명함
문왈 일체유전동물이 다 식(識) 있다하나 그 형체를 볼 수 없으니 어느 것이 식의 형체가 되는고.
답왈 비유하면 바람형체가 없어 불 수 없으나 나무를 맛나면 흔들흔들하나니 이것을 보면 바람의
모양은 없으나 확실히 바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과 같아서 식체(識體)는 볼 수 없으나 경계를
따라가 ㅇ다니니 미운 곳에는 미워하고 사랑 할 때는 사랑하는 것이 식이라 할 것이며 몸이 물건에
대이면 아는 것이 달아나고 눈이 물건을 대하면 아는 것이 달아나는 것이니 바람에 비유를 자세히
보면 알 것이다 대저 식이 능히 보고 들으나 그 식을 사람이 능히 보지 못하나니 눈이나 귀나 정신
을 그 식을 사람은 능히 보지 못하나니 눈이나 귀나 전신을 물론하고 해부해 보아도 식의 결정체는
볼 수 없느니라.
제16, 因果를 변명함
객이문왈 대각성인이 인과(因果)를 말씀하셨으나 금생에 인(因)을 지으면 태생에는 과(果)를 받는다는 말은 알 수 없소
용성답왈 그대는 어찌 인과를 이상하게 아는고. 천지만물과 사시절서(四時節序)와 인생의 일용동정(日用動靜)이다 인과에 초월한 자가 하나도 없다 봄으로 인하여 여름이이 된 결과(結果)가 있고 여름으로 인하여 가을이 된 결과가 있고 가을 으로 인하여 겨울이 된 결과가 있고 겨울 으로 인하여 봄된 결과가 있는 것이며 사람은 앉으면 설 것이며 섰으면 누울 거이며 누우면 반듯이 일어날 것이니 그것이 다 인과며 내가 착하게 하면 저가 착(善)하게 되는 것이며 내가 미워하면 저가 미워하는 것임이 비유하면 밭에 다가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것과 같으니라. 그대가 세상에 귀신 부뜰린 사람을 보았는가. 어떠한 사람이 묘한 술법을 성취하기 위하여 혹 천신이나 건달바신(乾闥婆神)을 지극히 위하다가 그 신들이 감응(感應)함을 어떤 사람은 눈과 얼굴이 변하여 그 전과 봄 달라지고 성미(性味)도 달라져서 청청히 하기를 좋아하며 항상 좋은 향(香)을 피우기 좋아하며 음식(飮食)과 거처(居處)와 모든 것을 청정히 하기를 좋아하나니 그 사람에게 천신(天神)이 붙은 곳을 마무리 살펴보아도 도무지 형적이 없을 것이며 내지 왼 몸과 수족을 해부하여 미세히 살펴보아도 천신이 붙은 곳이 없을 것이다 선심을 닦은 자라도 이와 같아서 자연히 심기(心氣)가 화평하며 얼굴에 악한 기운이 없고 덕기(德氣)가 있어서 모든 사람이 다 보기를 좋아하며 즐거워하나니 그 사람에게 착한 형적이 붙은 곳이 없으나 현세(現世)에도 이와 같아서 좋은 것으로 변하였다 이것은 형체 없는 심식(心識)이 자선심을 닦은 것으로 인하여 복덕종자를 마음밭(心田)에 심은 것이니 이 사람은 후세에 가서 좋은 과보(果報)를 자연히 얻을 것은 지혜 있는 사람은 다 증명할 것이다 비유하면 동산에 계수나무(桂木)나 전단향나무가 많이 섯는대 그대와 나와 이 끝에 있음에 맑은 바람이 저 향수풀(香林)로 지내옴에 기이한 향취가 우리의 코에 촉비하니 저 형체 없는 바람이 형체 없는 향내를 맡을 것이고 이곳까지 왔도다. 이와 같아서 형체 없는 식(識)이 형체 없는 선업을가저 후세로 옮겨가서 무한한 복락(福樂)을 받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혹 어떤 사람이 망양(魍魍(부리는 술법(術法)을 성취하기 위하여 지극히 주문(呪文)을 외우다가 그 주술(呪術)을 성취한자는 얼굴이 높으고 몸에 노린내 암내가나며 또 부다나(富多那)라는 악한귀신이 붙으면 부패하고 부정한 물건을 좋아하니 그 사람의 몸을 해부하여 보아도 형적을 보지 못하며 또 악형(惡刑) 구실단이는 사람이 그 구실단이기 전에는 얼굴에 악기가 없다가 점점 그 사람의 마음이 악화 짐에 눔 자위가 변하고 살기(殺氣)가 있어서 덕은 추호도 없고 악기가 가듯하여 사람마다 보고자 아니하니 그 악업이 형적이 없으되 나타남이 분명하다 사람의 심식은 형적이 없으되 그 악업을 인(印)처 어뢰야식에 간직하여 두었다가 후세로 옮겨가는 것이 비유하면 그대와 내가 이곳에 있는데 앞동산에 묻은 부정한 물건이나 혹 썩은 송장이 있어서 마침 바람이 그곳으로부터 불어와서 이곳에 악취가 촉비하니 바람은 형체가 없는 식에다가 비유하고 악취는 악업에다가 비유한 것이니 일생에 지은악업이 형적은 없으나 형체 없는 식이 형체 없는 악업(惡業)을 가지고 후세에 옮기어 악도에 수생하여 고(苦)받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제17, 情 과 想두가지 경중으로 三界에 昇降함을 변명함
객이문왈 삼계에 수생하는 것이 무슨 이유가 있는고
용성이 답왈 사람마다 마음에 정(情)과 상(想) 두 가지가 무겁고 가벼움에 말미암아 선도악도(善道惡途)가 달라지는 것이니 본래 명한 것이 아니라 모든 욕심과 음심에 관계가 많을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우리 마음이 본래 청탁이 없으되 그 지은 바로 쫓아 청탁이 있게 된 것이다 대범향취가 있고 맛이 좋은 것은 사람에게 유익하고 내음 새가 악하고 맛이 독한 것은 사람을 중독 시키는 것이다 혹 어떤 물건은 먹으면 정신을 상쾌하게 하고 어떤 물건은 먹으면 정신이 둔탁하게 하니 우리의 청정한 마음은 구속이 없다하나 술 먹으면 취하고 비상(砒霜)을 먹으면 죽고 선약(仙藥)을 먹으면 오래사나니 그러함으로 대각께서 술과 오신채(五辛菜)를 금지(禁止)하신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술을 많이 먹으면 정신이 혼탁(渾濁)하니 그 뜻이 둔탁하여 점점 무거워지는 것이요 오신채를 많이 먹으면 심경(心經)에 상화(相火)를 많이 돕는 것이다 진심(嗔心)을 도웁는 것이요 익혀서 많이 너으면 음심(淫心)을 도웁는 것이니 음노치(淫怒痴)가 승함을 딸아 뜻이 중탁하여 짐으로 삼악도로 가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비유하면 맑은 물을 한 그릇 떠다놓고 그 물에다가 흙을 풀어서 매우 저으면 그 물이 혼탁하니 그 탁한 것은 정(情)에 비유하고 그 맑은 것은 상(想)에 비유한 것이니 그 그릇을 동치 말고 가만히 두면 탁한 것은 점점 아래로 까라않고 맑은 물은 점점 위로 뜨니 맑은 것이 많으면 인간으로부터 천상에 가서 수생하는 것이요 탁한 것이 많으면 인간으로부터 삼악도에 수생하는 것이다 또 비유하면 새발에 다가 실을 매워 둔 것과 같이 새는 상(想)에 비유하고 실은 정(情)에 비유한 것이니 실이 길다라면 새가 날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이다 삼악도로 가는 비유이고 실이 없고 새가 자유로이 날아간 것은 인간으로부터 천상으로 가는대 비유하노라
제18 사람이 現今 肉身을 버리고 새로 몸을 받는 것을 변 명함
객이문왈 사람이 육신(肉身)을 버리고 래생((來生)에 몸을 받고자 할 때에 그 형용이 어떠한고. 용성이 답왈 사람이 죽을 때 에 사대로 조직된 이 육체가 움직이어 운전하는 바람기운과 따뜻한 불기운은 위로 떠서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차고 찬 몸뚱이만 남이 있어서 석음에 물이 되고 흙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때는 싱그러운 심식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신식(神 識은 비록 형체가 없으나 정묘색근(淨妙色根)이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범부가 대단히 알기 어렵다 모든 귀신이 다 정묘색근을 의지하여 보고 듣고 아는 것이다 비유로 말하리라 그대가 필시 꿈을 꾸어 보았으리라 몽중(夢中)에 견문각지(見聞覺知)와 언어동작(言語動作과 일체가 생시와 어떠하던고. 객이 답왈 생시와 다른 것 없소
용성왈 그것이 정묘색근을 가자하여 보고 듣고 언어 동작하는 것이다 대각께서는 이것 보기를 현재에 우리가 사람 보는 것과 같이 한다 이 신식의 자체가 바람과 같아서 분명히 있으되 형체는 없는 것이니 산하석별(山下石壁)이 걸림 없어서 순식간에 천리만리를 가는 것이다 새로운 몸을 받기 전에는 이 신식이 법계체(法界體)에 머물러 오직 생각하는 힘만 있다 이 신식이 인연(因緣)을 따라 수생(受生)하는 것이니 내지 십만이라도 수생할 인연이 있으면 순식간에 당도하는 것이다 대저 아는 것을 식(識)이라 하는 것이니 비유하건대 종자(種子)가 있음에 능히 싹이 나는 것과 같아서 식이 있음으로 육체를 내는 것이다 지혜로 쫓아 식이 나는 고로 이름을 생각이라 한다. 신신의 자체가 뚜렷이 섬에 자타(自他)의 구별이 있게 되었다 고(苦)와 락(樂)과 선(善)과 악(惡)과 모든 경계를 아는 고로 식이라고 한다. 종자로 쫓아 움이나 서 큰 나무를 성취하는 것과 같이 식(識)으로부터 사람의 몸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신식이 이 몸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사람이 거울 가운데에서 얼굴이 나타나 있다가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사람이 거울 가운데에서 얼굴이 나타나 있다가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다시 강물 가운데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 신식과 부모와 인연이 합한 것은 거울에 비유하고 신식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강물에서 다시 얼굴을 나타내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아뢰야식 이 왼 갓 변화가 있는고로 만물이 발생하되 세상 사람은 식으로 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인도나라에 지적초(知跡草)라는 풀이 있는데 꽃이 피면 크고 아름답고 맛이 최상 가는 것인데 사람의 발자취 소리를 능히 아는 것이다 사람이 그 꽃을 꺽어려가면 그 꽃이 발자취 소리를 알아듣고 곧 움치려지는 것이니 식이 포함된 것이 아닌가. 또 나무가 있으되 혹 새(鳥)나 거미(蛛)나 그 나뭇잎에 앉으면 곳 나뭇잎이 급히 오무라저서 그 물건을 흡수(吸受)하여 먹으니 비록 무정한 물건일지라도 아뢰야식이 포함되어 있거든 사람이야 말한 것도 없다 대저 신식은 분명이 있으나 알 수 없는 것이 마치 여자가 아희를 인태 함에 자기 배 가운데에 아희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희가 배 속에서 굼실굼실 노는 것은 알 수 있다 신식은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다 비유하면 태양광명이 우주에 찬란함에 송장이나 더럽은 똥에 비추 워도 태양광명은 더럽지 아니하고 깨끗한 유리(琉璃)에 비추 우나 태양광명은 더 정한 것이 없느니라. 식이 인상(印像)을 잘 받아서 자체 안에다가 하나도 유실함이 없이 잘 간직하여 두었다가 인연을 만나면 무두 나오는 것이다 종자(種子)를 밭(田)에 묻음에 그 종자의 업성(業性)을 따라 형상(形相)이 나옴에 맵고 쓰고 단 것이 다른 것과 같이 선업을 지은 자는 얼굴이 단정하고 모든 복이 자연히 일으 모여 악업을 지은 지는 얼굴이 법도(法度)를 일어서 혹 단정치 못하거나 혹 자비덕상(慈悲德相)이 없어 아름답지 못하여 복이 자연히 없는 것이다 신식이 몸을 버리고 갈 때에 눔 구멍이나 귀 구멍이나 콧구멍이나 입구 멍이나 털구멍이나 무슨 구멍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요 나가는 곳이 없이 나가는 것이며 들어 갈 때에도 모든 구멍으로 찾아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몽중에 마치 물건을 보며 인축의 소리가 역역히 들리며 천리만리를 다니며 놀더니 잠을 깨고 보니 하나도 없으며 식이 옮겨 갈 때에도 몽중에 보는 것과 같음이라 그대는 식을 자세히 알 지어다 아뢰야식의 자체가 광대하고 큰 것이 진성(眞性)괴 비등하며 허공전체와 같아서 들어가지 아니한 곳이 없으며 맑고도 항상 유동력(流動力)이 강하며 모든 만물의 종자를 머금고 있으며 모든 선 악업을 받아서 인(印)처서 천진화학적작용이 구족함으로 산하대지 삼라만상이 형형색색으로 업을 따라나는 것이니 이것이 천진본연성에 묘용이며 아뢰야식의 천진화학적작용이니 그대가 자세히 깨일지어다. 그대가 계란(鷄卵)을 보는가. 그것이 둥글둥글하여 눈도 귀도 없으며 두리움수리라 아무 지각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당히 산 물건이니 이 게란전체가 아뢰야식으로 갖어저 있는 것이니 만일 아뢰야식과 분리되면 곧 썩고마는 것이다 이 계란을 따뜻한 곳에 두면 꼬끼오 우는 산(生) 물건이 그 가운데서 나온다. 소나 무씨가 비록 적으나 낙락장송이 그 가운데서 나오고 고기 알이 비록 적으나 장강대해(長江大海)를 툭툭 쳐서 파도를 일우는 큰 고기가 나오고 매알이 비록 적으나 창공(蒼空)을 능멸이 하는 송골매가 나오니 알(卵)로 있을 때에 보면 무정지물과 같으나 당당히 산(生)물건이 아닌가. 참외(진(眞苽)나 가지등 물이 비록 무정한 물건이나 부인이 그 밭 가운데 들어서 오줌을 누면 딱딱 벌어지니 어찌 단순히 무정지물이라고 만 보리요 만물이 서로 상생상극(相生相克)이 있으니 무엇이 있어서 상생상극 하는고. 다 아뢰야식의 작용이다 그러함으로 천지 만물이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요 오직 아뢰야식이 지은 것이다 인도 국에 향초가 있으되 이름이 천바리화라 하니 그 꽃과 흑임자(黑荏子)와 한태 혼합하여 잘 쪄서 익힌 뒤에 기름을 짜면 향취가 아름다우니 이것이 옮겨가는 것이 없이 곧 옮겨가는 것이니 식이 옮겨가는 것도 이와 같음이다
객이문왈 생시에는 육안이 있는 고로 능히 보거니와 사후(死後)에는 눈과 귀와 코가 없으니 볼 이치가 만무하도다. 용성 답왈 눈 먼 장님(盲人)은 어찌 보는가. 객이 답왈 장님이 본다는 것은 참 거짓말이다 용성 답왈 그대가 칠야삼경(漆夜三更)에 무엇을 보는고. 답왈 오직 어두운 것만 보노라 용성왈 그 어두운 것을 보는 것은 장님과 일반이니 그것이 곧 보는 것이다 장님이 밤에 꿈을 꿈에 몽중에 일월(日月)이 명랑(明朗)하고 만물이 분명한 것을 보니 그것이 육안으로 보는 것인가 그 보는 것은 밝은 마음이 보는 것이다 사람이 비록 몸은 죽을 지라도 밝은 마음은 죽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신식을 어떻게 알고 용성왈 신식은 저장(貯藏)하여 둔 곳도 없고 형체도 없음도 능히 종종 형상을 짓는 이라 비유하면 종자를 쫓아 움이 나오는 것이니 만일 종자가 썩어지면 움이 나지 못하는 것이다 종자를 쫓아 움이 나서 큰 나무가 된 것이요 또 다시 나무 끝에 꽃이 피고 과실이 맺히어 종자가 익었으나 그 나무 전체를 해부하요 보아도 그 종자가 어디로 붙어온 곳도 없으니 이와 같아서 신식으로부터 사람의 육체가 되었으나 육체를 해부하여 식을 찾아보아도 식이 있는 곳이 없고 또 식을 여의고는 이 몸도 없다 또 비유하면 저 과실이 나무로 쫓아 익기(熟也)를 맞침내 과실 가운데에 씨가 있나니 과실과 종자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그러하여 명을 맞칠때에 신체 가운데로 식만 또렷이 나서서 떠남에 형체를 볼 수 없으니 부모처자 권속과 금은옥백(金銀玉帛)을 다 버리고 오직 식만 홀로 가는 것이다 이 식이 형체는 없으나 자기는 몸이 분명 있는 것을 보나니 이 식이 경계를 받아드리는 것으로서 화합하여 음욕(淫慾)에 연애(戀愛)로써 서로 얽힌 것이며 생각으로써 서로 집착한 것이며 착(善)한 인연으로써 반연하여 화합하기도 하여 악(惡)한 인연으로써 반연하여 화합하기도 하며 지혜훈습(智慧薰習)한 것으로써 업연(業緣)을 따라 수생하나니 아버지 될 사람의 식과 어머니 될 사람의 식과 육체를 서로 교접할 때에 자식 될 자의 신식이 만 리 밖에 있더라도 일순간(一瞬間)에 당도하여 인연이 화합된 뒤에서 잉태가 되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명경을 가져 사람의 얼굴에 다가 대함에 얼굴이 없더라도 나타나지 못할 것이며 명경이 없더라도 나타내지 못할 것이니 명경과 얼굴과 두 가지 인연이 화합한 뒤에서 얼굴이 나타나되 호발도 틀림없는 것과 같으니라. 우리의 신식이 이 몸을 버리고 저 몸을 받음에 혹 복도 받으며 죄도 받으되 마치 꿀벌이 맛에 취하여 꽃위에 앉아서 맛을 탐착하다가 그 꽃을 버리고 다름 꽃으로 옮겨가되 혹 나쁜 꽃을 버리고 좋은 꽃으로 옮겨가기도 하며 혹 좋은 꽃을 버리고 나쁜 꽃으로 옮겨 가기도 하니 이와 같아서 천당지옥이 다 자기의 신식으로 지은 것이요 누가 명영적(命令的)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제19, 苦樂惟心
객이 문왈 대각(大覺)의 진리가 선을 지어 천당에 가자는 목적인가
용성왈 그렇지 않다 일체유정동물(一切有情動物)의 아는 것이다 업력에 부치어 경계(境界)를 따라서 천당(天堂) 지옥(地獄)에 정처 없이 윤회하거니와 대각의 진리를 깨인 자는 망령되이 아는 식정(識情)이 목록이 보이고 참밝은 성품이 청정하여 탕탕무위(蕩蕩無爲)하거니 어찌 천당 가기를 즐겨 하리오. 천당 락이 좋다하여도 필경에는 타락하나니라 객이 문왈 아는 것이 천당에 가는 모양이 어떠하는가 용성 답왈 흐림 물이 가라 않으면 맑은 것은 위로 올라 뜨는 것과 같이 혼탁한 정욕이 까라 앉으면 맑은 생각이 위로 뜨서 천당에 갈 때에 자기의 아는 것이 산사람과 같이 신육수족(身肉手足)이 완전함을 보는 것이 마치 꿈 가운데 사람과 같으니라. 아는 것의 보는 것이 천궁(天宮)에 한량없이 좋은 장엄을 보고 천당에 수생하니 이 아는 것은 자기의 법계(法界)를 의탁하여 미묘하게 보는 것이요 육안(肉眼)을 의탁하여 보는 것이 아니다 이 아는 것의 미묘(微妙)하게 보는 것이 천궁에 즐거움을 보고 순식간에 저 곳에 왕생(往生)하나니라 객이 문왈 아는 것이 형상이 없거니와 어찌 삼계제취(三界諸趣)에 큰 몸과 적은 몸을 받는가? 용성왈 바람이 형체가 없으되 혹 산악(山岳)을 동하며 대해에 파도를 일으키니 아는 것이 형상이 없으되 그 힘이 맹렬한 것도 이와 같으니 문명(蚊螟)의 몸을 받으면 제가 받는 것만큼 작용하여 쓰고 큰 사자의 몸을 받으면 그 만큼 작용하여 꺼나니 참 미묘하다 이 아는 것이 크자면 한이 없이 크고 적다면 미진(微塵)속에도 차지 아니하는 도다 비유하면 밝은 등불이 저 집이 적고 큰 것을 따라 광명이 가득하는 것과 같이 아는 것도 모든 업력을 따라 형형색색이 같지 아니하여 크고 작은 몸을 운전하여 가지는 것이 이와 같으니 우리의 아는 것이다 짓고 받는 것이요 상재(上宰)나 모든 귀신이 주고받는 것이 아니리라 비유하면 넓은 벌판에서 목마른 사람이 단물을 맘나는 것도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물을 만나지 못하는 것도 누가 막는 것이 아니니 각각업력(各各業力)을 다라 고와 락을 받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만물의 모든 종자가 땅을 인하여 움이 발하되 물로서 윤택하며 태양의 더운 기운을 말미암아 점점 익으매 그 빛이 점점 달라지는 것과 같이 우리의 몸이 복업(福業)지움을 말미암아 자연히 재산이 풍부하고 금은백옥이 고장에 가득하여 모든 복락을 받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그대가 세상 사람을 보라 날이 밝도록 밤이 새도록 천하민중(民衆)들이 부귀를 꿈꾸어 전재를 구하되 마음대로 되지 아니하나니 그 원인이 상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지혜가 있고 똑똑하여 잘 난사람도 전재에 당하여서는 마음대로 되지 아니한다. 도 그대가 보아라. 세상에 어떤 사람은 한번 살아 보기를 결심하고 남에게 고용을 살아 겨우살게됨에 곧 죽어버리는 자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험악한 음식을 먹다가 좋은 음식이 생기면 복통이 나서 그 음식을 먹지 못하니 상담에 무복 자는 계란도 유골이라 하는 말이 헛되지 아니하다 객이문왈 그러면 복만 있으면 놀고먹어도 무방한가? 용성왈 그대가 어찌 그다지 미련한 말을 하는고. 금년농사를 지어놓고 파먹기 만하고 다시 농사를 짓지 아니하면 내년부터는 한 낱의 곡식도 먹을 것이 없을 것은 정한이치가 아닌가. 객이 문왈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복이 되는 것이요? 룡성왈 복을 짓지 못할 것이 어디에 있으리오. 부모에게 효순하며 사장에게 경순하며 형제와 우애하여 가족을 화하며 거처를 청결히 하여 힘의 대소를 따라 항상 공익을 행하고 사욕을 멀리하며 대각의 진리를 천하대중에게 선전하여 미신을 타파하고 정도로 행하게 하며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거든 내가 잘되는 것과 같이 즐거워하며 대각성전에 성공(聖供 )을 드리거든 천하대중과 일체유정동물이 다 삼계고해를 해탈하고 낱낱이 대각성인이 되기를 원 할 것이니라. 객이왈 선을 싸은 집은 반듯이 자손에게 경사사가 오고 악을 싸은 집은 반듯이 자손에게 재앙이 오는 것이니 이 말로 볼 진대 사람의 집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선령(先瑩)의 음덕이 자손에게 앙화가 있을 것이거늘 어찌 순임금 같은 성자(聖子)를 나왔으며 요임금은 성인이라 반듯이 자손에게 경사가 있을 것이거늘 어찌 불초자 단주를 나왔으며 공자는 성인이라 항상 경사만 있을 것이거늘 어찌 진나라 청나라 사이에서 천일 난을 만나 배 주린 고통을 당하였나요. 일을 전하고 지금에 미루워보면 동적강모래 수효와 같아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객이 문왈 선근을 딱은 자가 잘 된다는 말도 믿을 수 없고 악지은 자가 잘 못된다는 말도 믿을 수 없다 어찌함이고 과거는 물론하고 현재에 내가보는 바에 악한 사람은 당연히 망할 것인데 점점흥왕하고 착한 사람은 잘 될 것인데 점점 망하여가니 그 연고가 어디에 있는가? 룡성왈 그대가 인과라는 말을 살피지 못하는 도다 인이라는 말은 시초를 말한 것이요 과라는 것은 마침을 말한 것이니 인이라것은 봄에 농사를 짓는 것과 같고 과라는 것은 가은에 곡식을 거두는 것과 같으니 이 이치를 알지 못하고 횡설수설(橫說竪說)하는 것이 마치 봄에 추수하는 것과 같다 봄부터 칠팔 계월을 위해 노력하여야 추수수하는 것과 같이 전생에 지은 인(因 )으로 금생에 결과를 얻는 것이다 혹 금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보를 받는 자도 있으며 혹 삼생 후에 받는 자도 있으며 인을 지을 때에 곧 과(果)받는 자도 있으니 업짓고 복 받는 차별이 천차만별이라 어찌 한가지로 결정하여 말 하리요 혹 초분에 선심을 닦다가 중분에 악을 짓는 자도 있으며 혹 중분에 선을 닦다가 말분에 악을 짓는 자도 있으며 혹 선이 승(勝)하고 악이 열(劣)한 자도 있으며 혹 악이 승하고 선이 열한 자도 있으며 혹 선과 악을 상반(相半)하게 짓는 자도 있으니 이와 같이 인지음이 다른 고로 그 과보 받는 것도 일정치 못 할 것이니 요순의 아들이 어질지 못한 것과 공자가 진나라와 청나라 사이에 곤란을 받는 것과 안연이 요사한 것과 자건이 악모를 만나는 것이 다 전생에 지은 업연(業緣)으로 된 것이니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요 선령에서 지은 음덕을 자손에게 전통적(傳統的)으로 받는 것이 아니니라. 객이문왈 그대의 말이 옮은듯하나 고시대(古時代)에 어떤 사람이 역률(逆律)에 범하면 삼족이 멸하고 어떤 사람이 국가에 대공을 이루면 자손에게 경사가 미치니 이것이 어찌 젓선 지가에 필유의 경이요 적악지가에 필유의 앙이 아닌가? 룡성왈 동업(同業)과 별업(別業)의 차별을 그대가 어찌 알지 못하는가? 국가인민이 업은 같은 고로 한 국토에 나고 부모와 자녀가 업이 같은 고로 한집에 동거하나니 내지 금수 어별 곤충지물(乃至禽獸漁鱉昆蟲之物)이라도 각각 저들의 부속(部屬)이 있어 구별이 달으니 그러함으로 국가에 난(難)이 있으면 인민이 도탄에 들고 국가를 잘 다스리면 인민이 편안하며 부모가 경사가 있으면 자손이 환희하고 부모가 병이 있으면 자손이 근심하나니 이것은 다 숙세(宿世)에 업연과 동업(同業)으로 된 것이니라 또 별업(別業)이라 하는 것은 혹 한나라가 소요한데 일방(一方)은 편안하며 혹 한끝에서 몹쓸 재앙을 당하였는데 다른곳은 무사하며 혹 열사람이 사지에 들어갔는데 한 두 사람이 살아오기도 하니 이것이 다 동업에 별업이니라. 도 한 가족 중에도 형은 부귀하고 동생은 빈천하며 또 노비권속과 우마륙축이 한집에서 거주함에 귀천이 각각 다르니 이것이 다 동업 중에 별업이어 늘 세상 사람은 이것을 몰으는고로 부귀를 받으면 아만심이 높아 일체사람을 경멸이 여기나니 그러나 지은 복이 다하면 다시 빈천 보를 받을 것을 어찌 알리요 객이문왈 이것이 다 우리의 아는 것으로 지은 것이라 하니 그 형용을 잘 그려 내여 보이라 룡성왈 비유하면 과실종자를 땅에 던져두면 과실이 나무 끝에서 맺으나 그 과실나무 속으로 쫓아 가지로 나오고 가지 속으로 쫓아가지 끝으로 나와서 달린 것이 아니고 나무를 분석하여 보아도 그 종자를 보지 못하나니 이것은 사람이 그 종자를 가져다가 나무 끝에 둔 것도 아니며 나무뿌리가 왕성하여 견고하나 구 뿌리에서 종자를 찾아 보와도 얻을 수 없나니 그와 같아서 몸은 선악업이 다 몸을 의지하여 있으나 저 몸을 해부하여 찾아보아도 업은 선악이 갖추어 있으나 저 업이 흔적이 없으며 또 한점 익어 가는 상이 없느니라. 또 비유하면 사람의 그림자가 질애(質礙)가 없어 가히 부잡지 못하며 얽어맬 수 없으나 사람의 동작을 따라 운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자가 몸을 쫓아 나오는 것을 볼 수 없으니 업도 그러하다 몸과 업이 있으되 저 업을 보지 못하며 얼거 맬 수 없으나 몸을 여위지 못하나니라 또 비유하면 좋은 선악이 사람의 몸을 도와 일체병고를 제하고 기력이 강건하며 몸이 윤택하며 낯빛이 광윤(光潤)하나 그 약력은 형상이 없어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업도 그러하여 형상이 없으나 사람의 몸을 도와주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선업이 도와주는 것은 의복음식과 모든 재산이 풍족하며 수족(手足)이 단정하고 용모가 수승(殊勝)하며 궁전루각이 화려하고 금은칠보가 가득하여 안령쾌락을 받는 것이요 악업이 응하는 것은 지옥과 아귀와 축생에 수생하며 비록 인간에 사람이 될지라도 빈궁 하천하며 제근(諸根)이 구족치 못하여 모든 고통 받는 형상을 말로 형용 할 수 없다 또 비유하면 밝은 거울이 사람의 얼굴이 곱고 추함을 비추어 주나 거울 가운데 나타나는 얼굴의 바탕이 없어 부잡을 수 없으니 아는 식정(識情)도 그러하여 선악에 훈습(熏習)함을 받아 선도 악도 나타나니 그 업식(業識)을 부잡을 수 없나니라 객이 문왈 한점 밝게 아는 것이 큰 몸과 적은 몸을 가져 운전하나니 그 이치가 어떠함인고? 룡성왈 아는 것은 대소를 정 할 수 없는 것이니 큰몸을가지면 크게 작용(作用)하고 적은몸을 가지면 적게 작용하는 것이다 곤충의 아는 것이 적은듯하나 적은몸을 버리고 태산과 같은 몸을 받으면 그 작용이 광대하나니라 비유하면 산 영하는 사람이 활살에 독약을 발라 큰 고기를 쏘음에 그 화살에 독기가 혈관(血貫)을 따라 전신에 유주(流注)하여 코끼리를 살해하니 코끼리와 활살의 독약을 서로 비교하면 대소가 천양지간(天壤之間)이라 그러나 그 코끼리가 죽은 뒤에는 독기가 옮아가는 것과 같아야 우리의 아는 것이 몸을 버리고 다시 큰 몸을 받으며 금생에 보고 듣는 모든 경계를 버리고 업력을 따라 옮아가는 것도 이와 같으니 또다시 비유하면 난타용왕과 오파난타용왕이 있는데 그룡의 몸 기리가 수미산(須彌山)을 삼잡으로 두루한 것만치 기나니 그 용이 한번 크게 숨을 쉬면 수미산이 진동하고 대해물이 변하여 독기를 일우나니 이 용왕이 몸이 장대(長大)하고 기력이 웅장(雄莊)하나 그 아는 것은 조그마한 모기 갈닦이의 아는 것으로 추호도 다름이 없나니라 그 용왕이 그 와같이 굉장하나 독한 미균(微囷)이 용왕의 입으로 들어가면 용이 곧 죽는 것이니 이 적은 미균의 독기가 저 용왕을 능히 죽이나니 우리의 아는 것이 비록 적은듯하나 가령 지구(地球)성만 한 몸을 받으면 그 몸을 임의로 운전하여 굉장히 작용하녀 모기만한 몸을 받으면 그만큼 운전하나니라 도 비유하면 소나무 종자가 비록 적으나 연포지목이 그 씨앗으로 쫓아 나오니 그 종자를 나무에 비교하면 대소가 현수하나 그러나 그 종자 가운데 소나무를 찾아보아도 없는 것이며 도 종자를 여이면 소나무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아야 한밤 밝은 식(識)이 능히 큰 몸을 내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객이 문왈 아는 식이 견고하여 파괴 할 수 없거니 어찌 속히 썩어지는 몸 안에 머물러 있나요 룡성답왈 비유하면 빈궁한 사람이 여의주(如意珠)를 어들 때 보배의 힘으로 금은전보를 얻어 궁전이 화려하고 화과가 무성하여 온갖 복락을 받다가 그 사람이 여의주(如意珠)를 유실(遺失)함에 부귀가 다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돌아가니 우리의 아는 식도 다 이와 같하여 파괴 할 수 없이 견고하되 그 아는 것에서 생기여 나온 몸은 속히 없어지나니라 객이 문왈 지극히 부드럽고 묘한 아는 식이 어찌 탁하고 굳은 색신(色身) 가운데 뚜렷이 들어가는고? 용성왈 물(水)의 본체(本體)가 극히 부드러우나 급히 흐르는 물이 토석(土石)을 뚫어 내려가나니 우리의 아는 것도 이와 같아 지극히 유하고 묘하여 견강한 사대(四大)를 뚫고 들어 업보(業報)를 받다가 문득 버리고 가나니라 객이 문왈 중생이 명을 맞이할 때 천당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 좋은가? 대각성인의 나라에 나는 것이 좋은가요? 룡성답왈 천당이 아무리 좋다하여도 삼계를 면치 못하는 것이니 복이 다하면 필경에 타락하니 대각성인의 법을 닦는 자는 상근은 바로 도를 깨이고 올 것이 없으니 원각이 넓이 비추며 적멸이 둘이 없어 저 가운데에 천당만아니라 일체 모든 대각성인의 국토가 허공에 꽃이 어지러이 일어나고 어지러이 멸하는 것과 같하여 서로 즉(卽)한 것도 아니니 여히는 것도 아니니 일체유정동물이 다 볼래. 깨인 것이 아니라 어찌함인고? 원각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세계와 허공을 삼키며 불생불멸(不生不滅)하여 무거무래(無去無來)하여 삼계고해(三界苦海)를 여의여 해탈하나니라 혹 하근중생이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이나 무량수각(無量壽覺)을 일심으로 생각하여 항상 지송하면 명을 맺을 때에 마음이 전도치 않고 곳 대각성인의 화신국토에 왕생하나니 동적강모래 수 와 같은 천당 락을 받을지라도 대각성인의 국토에 하품(下品)만 못 할 뿐 아니라 천당 락은 복이 다하면 곧 타락하여 다시 고바다로 들어가나니라 객이문왈 지옥에 가는 모양은 어떠하나요? 룡성왈 지옥에 가는 중생은 업력이 중함으로 명을 마칠 때에 생각하되 내가 이제 죽는 것이라 부모 친척과 사랑하는 벗을 영원히 이별하니 내의 근심을 어찌 하리요 하니 그 업력을 나타내는 것이 다른 것을 한가지로 말 할 수 없다 대범지옥에 들어가는 자는 발은 아래로 향하고 머리는 아래로 꺼꾸러지는 것이니 그 아는 것이 한 곳을 보니 순전히 피(血) 바다가 있는지라 아는 것이 업력으로써 피를 마시고저하여 급히 쫓아가서 피에 맛드리여 애착할 새 곳 지옥에 나는 것이니 부패한 썩은 물에 더러운 인력(因力)으로써 아는 것이 그 가운데에 의탁(依托)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무슨 물건이든지 썩어서 더럽고 내암 새가 나는 곳에 벌이 지나는 것과 같하여 아는 것이 더러운 피바다를 인하여 지옥에 들어가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객이 문왈 지옥중생은 그 모양과 빛이 어떠하더냐? 룡성왈 피를 애착하여 지옥에 낳은 중생은 몸이 핏빛과 같으고 화탕지옥에 나는 중생은 몸이 검은 구름 빛과 같으고 유탕해 지옥에 나는 중생은 몸이 잡색으로 아롱아롱한 빚을 지었으며 그 몸이 극히 부드러워 극귀(極貴)한 어린 아이의 몸과 같으며ㅜ 그 몸이 장대하기는 팔세 동자에 지내며 수염과 털이 땅에 끌리며 수족과 면목이 온전치 못하니라 객이문왈 음식은 무엇을 먹나뇨? 룡성왈 지옥 중생의 먹음 것은 조금도 즐거울 것이 없나니 구리쇠집이 뱃속에 들어감에 골절이 다 불타지며 업력으로 하여금 하루하루 낮에 만번 죽고 만번 사라나는 그 무서운 고통을 어찌 입으로 말 하리요 대각께서 다 자세히 말씀하셨으니 내가 말 할 것이 없다 대저 모든 것이 우리의 아는 것으로 지은 것이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니라. 쉬지아니 하면 능히 사랑의 결과로 없든 물이 생겨나나니 그러함으로 그대가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입 가운데에서 침이 나오고 정든 사람을 이별하든지 혹 죽던지 하면 사랑이 극하여 슬어서 통곡하여 눈 가운데에서 물이 나오나니 이것은 아는 식이 안에서 동하여 음기를 싸은고로 능히 물을 내는 것이니라. 사람이 재물을 탐착하면 마음에서 사랑이 나는 고로 온 몸이 광윤(光潤)하고 마음이 음욕을 생각하여 연애가 극(極)하면 남녀의 생식기로 자연히 진액이 나오나니 이것이 다 우리의 아는 것에서 경계를 반연하여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니 애욕망정(愛欲妄情)이 나는 원인이라 물의 성질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니 그 애욕의 자체가 자연히 업으로 부터 나는 것이 생사에 윤회케하며 마음이 번뇌하거나 진심이 나거나 하면 이것이 불이 일어나는 것이니 곧 아는 것이 풍도지옥과 화탕지옥에 끌리어 들어가는 것이니라. 사람이 모든 애욕과 번뇌를 놓아버리고 순일해 생각이 청정하면 비유하면 맑은 기운은 위로 뜨는 것과 같하여 이는 것이 위로 올라 천상에 나는 것이요 만일이 가운데에서 복과 지혜를 닦으며 청정한 원력을 세우면 자연히 마음이 열리여 대각성인을 친견하고 안락국토(安樂國土)에 왕생하나니라 만일 탁한 정이 적고 맑은 생각이 많으면 곧 나라단이 신선과 대력귀왕(大力鬼王)과 날아다니는 야차(夜叉)와 땅에 다니는 나찰이 되어 사천왕천(四天王天)에 도라다니게되 걸림이 없나니라 그 가운데에 도착한 원력과 착한 마음이 있어 대각의 정법(正法)을 두호하며 금계(禁戒)를 가지는 사람과 마음 닦는 사람을 두호하는 자는 친히 대각의 좌하에 머물러나니라 탁한 뜻과 맑은 생각이 균평(均平)하면 위로 갈수 없고 아래로 떨어 질 수도 없어 인간에 수생하나니 생각이 맑은 자는 총명하고 그중에도 정이 중(重)한 자는 털김생이되고 정(情)이 가벼운 자는 날아다니는 짐승이 되나 니라 탁한 정신은 십 분에 일곱이나 되고 맑은 생각은 십 분의 셋이나 되면 아는 것이 아래로 끌리어 이 세계 아래물바퀴(水輪)와 불 바퀴(火輪) 우사이에 떠러저 모진 불기운을 받어 아귀가 되어 항상 불에 탐을 입으며 물이 불로 변하여 도리어 해롭게 하는 고로 그 주리고 배꼽은 정상(情狀)은 말 할 수 없어 백천겁(百千劫)을 지나가되 쉬일 새가 없나니라 또 탁한 뜻이 십분에 아홉이 되고 맑은 생각이 십 분에 한분이 되면 아는 것이 그치어 바람 바퀴(風輪)와 불 바퀴(火輪) 두사이에 떨어지되 죄(罪)가 거치어 유간(有間) 지옥(地獄)에 떨어지고 죄가 무거우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떠어지나니라 또 십분이 온전히 탁하면 아비대지옥(阿鼻大地獄)에 떨어지나니 만일 겸하여 대승을 비방하며 금계(禁戒)을 헐며 사도법을 설하여 세상을 의혹케 하며 오역십중(五逆十重)을 짓는 자는 천지대삼재(天地大三災)가 나서 이 세계가 무너질 때에 다른 세계아비지옥으로 옮기어 가나리라 대각께서 말씀하신 지옥행상(行相)이 자세하고 분명함이 많이 있으나 조금만 빼어 간약히 말하노라
제20, 사랑이 종자가 되고 생각을 根本에 들이여 태되는 것 愛爲種納想爲胎
객이문왈 태로 나는 중생의 이유를 듣고자 하노라 용성왈 대각께서 말씀하시되 세상 중생이 연애로부터 정욕(情欲)이 발하여져서 정(情)으로써 교합(交合)함에 정은 반듯이 반듯함이 있는지라 치우치는 대는 가로 누워서 가는 어지러운 생각이 있고 반듯한 대는 바로서서 가는 어지러운 생각이 있나니라 서서가는 생각은 사람과 신선이 되여 머리는 하늘로 향하고 발은 땅을 밟아 다니나니 그 물이가 세계에 가득하다 어찌하여 그러 한고 나는 연고니라 가로 가는 생각은 모든 축생의 무리가 되는 것이니 머리와 몸이 누워서 다니는 것이니라. 어찌하여 그러 한고 가로 가는 생각을 하며 나는 연고니라 객이문왈 중생이 태에 드는 것은 무선 이유가 있나뇨? 룡성왈 이 세상에 태를 받아 나오는 이치(理致)를 알면 반듯이 명을 마치고 다른 곳에 가서 수생하는 이치를 알 것이다 대저 사람이 태를 받음에 비록 부정모혈(父情母血)이 엉키어 서로 합 할 지라도 그 자식 될 자의 아는 것이 아비와 어미의 아는 것으로 인연이 화합되지 아니하면 잉태(孕胎)하지 못하나니라 본사경(本師經)에 대각께서 말씀하시되 무명(無明)을 끊지 못하며 탐애(貪愛)를 버리지 못하며 업지음을 쉬지 못하는 고로 이 세 가지 연을 말미암아 태장의 몸을 받나니 업은 빛이 되고 아는 식은 종자가 되고 연애(戀愛)는 빗물이 되어 이 몸을 성취한 것이라 하시며 유가론(瑜伽論)에 말하되 부모가 연애의 정이 가장 극함에 최후에 각각 농후(濃厚)한 정혈을 내려 삼연(三緣)이 화합함으로 어미 배가운대에 잉태(孕胎)되나니 마치 젓을 달임에 엉긴 것과 같아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의지하여 태를 받는 것이다 대저 부모의 정혈은 수토(水土)의 기분(氣分)과 같으니 아무리 부모의 정혈이 화합 할 지라도 불과 바람이 아니면 성숙(成熟)하지 못하며 비잉 돌지 못하며 모든 구무를 통창(通彰)하게 못하나니라 내가 네 가지 비유로 말하리라 풀은 풀을 의지하여 벌래가 나는 것이니 벌레는 풀은 풀이 아니나 풀을 여히 고는 벌래가 없는 것이다 저 풀과 인연이 화합하여 나는 고로 벌레의 빛이 룰이나니 부정모혈로 이 몸을 성취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소똥을 의지하여 벌래가 나는 것이니 소똥은 벌래가 아니고 또 벌레는 소똥을 여의고 없는 것이니 소똥과 인연이 화합하여 벌래가 나는 고로 벌래 빛이 누르나니 부모와 인연이 화합하여 몸이 나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또 대초를 의지하려 벌래가 나는 것이니 대초는 벌래가 아니요 벌레는 대초를 여의고 나는 것이 어니니 대초와 인연이 화합하여야 나는 고로 벌래 빛이 대초에 인상을 받아 붉나니 부모와 인연이 화합하여 몸이 나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또 소락(蘇酪)을 의지하여 벌래가 나는 것이니 소락은 벌래가 아니요 벌레는 소락을 여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락과 인연이 화합하여 벌래가 나는 고로 벌래 빛이 희나니 부모와 인연이 화합하여 나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그러나 지수화풍이 구족(具足)지 못하면 이 몸을 성취하지 못하나니 땅은 굳고 물은 젓고 불은 뜨겁고 바람은 동하는 것이다 땅만 있고 물이 없으면 마른 가루를 뭉치려고 하여도 화합이 아니 되는 것과 같으고 만일 물만 있고 땅이 없으면 물은 걸릴 것이 없이 흩허저서 흩어지는 것과 같으고 땅과 물만 있고 불이 없으면 오월 유월에 음굴(陰堀)에 둔 고기가 일광을 쬐이지 못하면 곧 썩어지는 것과 같으고 오직 땅과 물만 있고 바람이 없으면 유리병을 제조함에 바람기운을 불어 넣지 아니하면 그 안(內)을 비게 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지수화풍 사대(四大)가 서로 의지하지 아니하면 몸이 성립되지 못하니라 객이 문왈 아는 것이 태에 들 때에 부모 될 자의 인연을 얻음에 수만리라도 눈감작 사의에 당도하나니 만일 남자의 중음신이면 여자를 사랑하고 남자를 미워하여 이와 같은 생각을 지우되 만일 저 남자가 다른 곳으로 가면 내가 저 여인과 상관하리라 이와 같이 생각함에 음욕심이 불끈 같이 치성하여 그 욕심에 가리어서 더 남자 있는 것을 보지 아니하고 다만 여자만 있는 것을 보고 환희하여 저 여인과 자기와 교합(交合)함을 보며 부모 될 남녀가 서로 교합하여 정수가 나온 것을 문득 자기의 정혈로 알아 극히 좋은 생각을 내는 고로 중음신(中陰身)이 추탁하고 무거워져서 어미될 여인의 태장가운데 들어가 오른 옆구리에서 어미를 안고 꾸러 앉았으며 만일 여인의 중음신이면 남자를 사랑하고 여자를 미워하여 이 생각을 지우되 저 여자가 멀리가면 저 장부와 인연을 교합하라 하는 것이 위에 남자의 중음신과 같으니라. 어미의 옆구리에 있어 어미를 등지고 꿇어 않으니라 태로 나는 것은 아는 것이 다 음욕으로 화합하여 되는 것이니 그런고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사랑을 마음에서 흘러내려 종자가 되고 생각을 근문(根門)에 들이여 태가 된다하시니라 객이 문왈 부모와 자식이 음욕으로 된다는 것은 너무나 망말이 되는 것이 아닌가? 답왈 그대가 명을 마칠 때에 미 육체를 버리고 영혼만 떠나 갈 것이니 그 영혼의 자체에 앉아보면 아무도 나의 부모 될 것이 없다 이 신령하게 아는 것이 다 생에 습기를 이기지 못하여 부모 될 자와 자식 될 자가 인연이 화합하여 부모가 되려니와 몸이 낫기 전에는 망말이라 할 것이 없도다. 그대의 몸이 낳은 뒤에는 부모가 되려니와 몸이 낫기 전에는 망말이라 할 것이 없다 혹 성인(聖人)과 신선(神仙)이 태장에 드는 것은 범부와 달라 자기의 신력으로 미리 태장에 몸을 너어두어 혹 륙년만에 혹 팔십년 만에 나는 것도 있으니 한 가지로 말 할 것이 아니다
25, 허망한 상에 잠결하여 빛이 없고 생각만 있는 것(罔相 潛結無色有想)
객이문왈 무엇을 유색중생이라고 하는가? 룡성왈 세간에 범부들이 마음이 정(正)답지 못하여 참마음을 잃고 무슨 귀신의 행상을 그리든지 조성하여 놓고 항상 삿된 마음으로 생전에 복과 수명을 빌며 사후에 영혼이 천당 가기를 원하여 마음을 고요히 잠심하여 헛된 우상에 전도하여 일생에 정신이 그곳에 염념(念念) 불매하는 고로 죽은 뒤에 아는 것이 형상 잇는 몸을 받지 않으고 무슨 신당이던지 우상 있는 곳에 의지하나니 참 애석하도다. 객이문왈 그러면야 소교가 참 종교가 아닌가?
룡성이답왈 우상(偶像)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형상(形像)있는 우상이요 하나는 형상이 없는 우상이니 형상 있는 우상은 오히려 적은 우상이니 와 형상 없는 우상은 참 큰 우상이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고? 남녀신도가 길을 가다가도 꿀어엎어져 빌고 자다가도 빌고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어디든지 꿀어엎어저 하나님 생전에 안락하고 사후에 천당 가게 하여 지이다하니 그 우상은 형상이 없으나 세계와 허공에 가득하여 우상 없는 곳이 없다 형상 있는 우상은 산신당(山神堂)이나 성황당(城隍堂)이나 화상과 등상이 있는 곳에 만 빌고 우상이 없는 곳에 빌 생각이 없나니 그 우상은 참 적은 것이다 주야를 물론하고 어디든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를 멸하고 복을 얻기 위하여 형상이 없는 천신을 마음에 하나 만들어 놓고 복보를 희망하여 빌기를 마지아니하니 세상 사람보기에는 우상이 없는듯하나 참 바라기 어려운 지독한 우상이 따라 다니는 것이다 객이 문왈 그러면 현재대각교에서 어찌 우상에 예배하는가? 룡성이 답왈 고인이 성상을 세운 것이나 그 근본을 알고 보면 천지현격(天地懸隔)하니라 대각께서 말씀하시되 선악화복길흉(善惡禍福吉凶)이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오죽 마음으로 지은 것이라 하시며 또 형상 있는 것은 허망한 것이니 일체우상에 집착하지 말라 하시니 우상문제는 삼천년 전에 대각께서 가장먼저 설파 한 것이니라. 오늘날에 새로운 문제 될 것이 아니다 금강경에 말씀하시되 만일 빛과 형상 있는 것으로 대각을 보고자 하거나 소리로 나의 명호를 불러서 대각을 구하거나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것이다 종내 대각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 이것은 사람마다 자기의 본성이 곧 도라는 말이다 그런고로 대각의 제자는 천추에 저 바라지 아니하는 뜻을 표시하여 성상(聖像)을 조성하여 엄숙히 위하나 일체천당지옥(一切天堂地獄)과 길흉화복(吉凶禍福)이다 나의 마음에서 난 것이며 또 나의 본연한 성품이 곧 도가 되는 줄로 아는 고로 성상(聖像)에 집착하는 법이 없나니라 객이 문왈 우상에는 다 귀신이 의탁하여 있다하니 모든 대각의 성상에도 다 귀신이 의탁하여 있을 것이 아닌가? 룡성왈 세상 사람이 우상을 조성하는 것과 같지아니하니 성상을 조성 할 때에 가지신주(加持神呪)를 독송하여 사귀(邪鬼)를 축출하며 진언(眞言)을 복장 안에 안치(安置)하고 큰 거울을 태양(太陽)에 전 주어 그 광선을 이용하여 성상의 두 눈에다가 바로 비추고 점안(點眼) 법을 행하는 고로 일체마왕외도(一切魔王外道)와 모든 귀신이 멀리다라나 일체사귀가 없나니라 그러나 그 성상을 모시는 것은 단지 모범적으로 기렴하기 위한 것이며 다 못 공경 할 뿐이다 일체집착상을 두지 아니하니라. 원래 이치는 성상을 모셔도 무방하고 아니 모셔도 무방한 것이니 어찌 집착상이 있으리오. 다 뭇 사람마다 자기의 본성이 곧 도(道)인 줄 알면 항상 자기의 본성(本性)을 닦고 모든 것에 의뢰심이 없어 천상천하에 오직 내가 홀로 높은 것이다 누구를 의뢰하여 복(福)을 빌며 수(壽)를 빌이요 다 복과 명이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다 일체중생의 본성 본심이 나와 같이 평등함을 알아 항상 자비심으로 구호하며 일체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행하며 자심이 청정하여 삿된 마음이 없으며 고요히 동치 아니하여 산란 심이 없으며 지혜가 밝아 우치심이 없으면 만덕을 성취하여 복을 구하지 아니하여도 복이오며 수명이 장원하기를 구하지 아니하여도 장원(長遠)하여 만사가 안락하니 우리의 본성은 볼래. 청정하며 공적(空寂)하며 광대하여 삼세(三世)에 간단(間斷)이 없으며 시방에 공결이 없어 천지와 세계를 다 머금었으되 형적이 없으며 가는 뜻글 속에 들어가되 보이지 아니하며 밝은 것은 뜻글수와 같은 일월에 지나며 그의 신변과 조화가 무궁무진하여 남에게 빌 것이 없으니 어찌 모든 천신에게 기도하여 천당기기를 희망하리요 우리 대각의 진리를 깨쳐 도덕을 삼는 고로 설사 성상을 모셔 예배 공경하여도 우치한 미신이 아니며 허공에다가 예배하여도 우치한 미신이 아니며 만 천 년을 예배하지 아니하여도 아만(我慢)이 아니니라. 다만 정도만 목적함이요 이치는 말하지 아니하노라 객이문왈 현금에 성공(聖供)을 들이고 예배하는 것은 폐하는 것이 옮치아니 한가? 룡성왈 그렇지 아니하다 그대가 인연법을 알지 못하도다. 예배하는 것은 그 실정(實情)은 나의 진성(眞性)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 받는 것이나 과거에 모든 대각의 개인인연을 매진 것이니 자연히 성인을 만나 볼 기회가 있으리라 삼계만법(三界萬法)이 다 인연으로 성립된 것이니 성인에게 인연이 없으면 누가 너를 제도하리요 우리는 대각의 교를 믿는 제자라 우리가 성인을 위하지 않고 누가위하리요 우리는 반듯이 효순 으로써 으뜸을 삼는 것이니 마치 효자가 부모를 섬길 때에 항상 출입에고하며 조석으로 문신하며 의복 음식으로 승사(承事)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대각성인이 아니면 삼계고해에 어찌해탈하리요 그러함으로 조석에 항상 예배공경하며 오시(午時)에 항상 성공(聖供) 할지니 이것이 선생제자간에 천고에 내려오는 규율이라 미신이 아니니라. 설사 성인 전에 축원기도(祝願祈禱)를 하드라도 다 내가 걸립한 나의 원력이요 다른 교에서 다만 천신과 신명에게 의뢰하여 복보를 희망하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삼계만법이 다 나의 마음으로 지은 것이니 나의 마음이 정직하고 지성하면 소원이 스스로 성취되나니라 그러나 성상에게 예경하는 것은 규율 적으로 한다. 반례식 할 뿐이다 혹 말도 염착이 없는 것이니 저 세간에 외도들이 형상 있는 우상이든지 형상 없는 우상에게 단지 정성을 드리며 기도하는 것과는 다른 나니라 우리는 성전에 예경 할 때에 단지 나의 자성을 반조(返照)하여 일체경계에 반연치 않고 오직 마음과 경계가 텅 비여 한물건도 없고 령지가 밝아 역역 분명하여 무정(無情)과 같지아니하되 하나도 의뢰심이 없으면 그림자가 서로 쫓는 것과 같하여 감응이 헛되지 아니하리니라. 그러나 미(迷)한 사람은 그러하지 아니하여 자기의 마음속에 형상 있는 우상이나 형상 없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허망한 데만 정신을 의탁하여 무상에 전도하는 고로 팔만사천 난산(亂想)을 잠결(潛結)하여 허망 되여 자기의 본성을 읽고 우상에 집착 되여 색음(色陰)을 의지치 않고 사상(邪想)을 쫓아나는 것이니 허망한 우상 가운데에 형상 없는 알음(知)을 맺어 밝지못하여 귀신(鬼神)이 되고 정기(情氣)가 온전치 못하여 흐터저 정령이 되나니 그 귀신정령(鬼神情靈)은 실다운 몸은 없고 다만 생각만이 있나니라
30, 원수를 갚자고 의탁하여 났으니 그 생각이 없는 것이 아 날것(報慇托生非無其想)
객이문왈 비무상중생은 무슨 이유로 나는가? 세간에 인축을 물론하고 부모 자식이 다 속세에 원수가 있어서 보복하기를 위하여 인간에 와서 나는 고로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니라. 세산 사람은 자식을 배임에 낙태도하며 혹 낳을 때에 모자가 죽기도하며 혹 낳은 뒤에 죽기도하며 혹 부모의 재산을 탕진하여 복장(腹臟)을 태우기도 하며 혹 오역을 행하여 부모가 참혹한 일을 당하게 하나니 이것이 다 전세(前世) 원수 갚기를 위하여 온 것이니라. 대개의 축생의 종류를 들어 말 할 진대 올뱀이는 흙덩이 안에서 자식을 낳음에 자식이 저의 어미를 잡아먹으며 파경수는 독한 과실 안에서 자식이 됨에 제부모를 다 잡아 먹나니 그 종류가 세간에 가득하니라 이 열두 가지 종류로 나는 중생이 다 자기의 습관성을 의지하여 망상에 전도함으로 삼계안에 윤회하여 고해(苦海)가 무량하되 벗어날 기약이 없나니 대각성존(大覺聖尊)의 도는 다 이것이 아니니라.
36.각을 생각하되 관법을 행하면 마음이 화하여 낙원이 되 는 것 (念覺觀法心化樂園)
객이 문왈 세상 사람이 무량수각을 생각하여 정토에 왕생 코져 하니 다만 무량수각만 생각하면 가는 것인가 별 따로 닦는 법이 있는 것인가? 룡성왈 다만 무량수각을 입으로 만 부르는 것은 장래 무량수각을 친견 할 인연은 있으나 대단히 지원(遲遠)한 일이다 무량수각을 생각 할 때에 관법을 행하는 것이 조은이 내가 간략히 말하리라 하나는 무량 수각이나 관음대성이나 그 성상이 서서 계시되 금색광명이 빛나며 거룩한 성상이 왼손은 가슴에 당하고 오른 손은 바로 드리움을 관할지니 이것을 반주(般舟) 삼매라 하니라 대체 사람이 무량수각을 생각을 생각한다고 하여도 종일토록 알음은 온갖 경계로 다 쫓아나가는 것이니 무량수각을 외우든지 불우든지 할 지라도 알음으로 일체 분별하는 것을 다 쉬고 고요히 하여 일심으로 관법을 행하면 자연히 란심이 없어지고 마음이 동치 아니하며 청정하여 지나니 이 정력(定力)으로써 무량수 국토에 왕생하느니라. 혹 떨어지는 날이 뚜렷하여 비취되 광명이 없는 날의 본체만 관하기도 하며 혹 성상에 백호광명만 관하기도 하나니 그 관법이 많은 곳이나 모든 분별을 쉬고 고요히 마음으로 관하는 법은 다 같은 것이니라. 산란 심으로 다 못 부르고 마음은 각처에 나가 있으면 왕생하기 어려운 것이니라.
37. 신주를 지송코저 함에 반듯이 사법을 알 것 (要訟神呪必 知四法)
객이 문왈 세상 사람이 주문을 지송하니 무슨 공부 수련하는 법이 있나요 룡성왈 주문을 지송하자면 음욕 주색을 엄금하며 항상 청정히 목욕하고 옷을 자주 갈아입고 향을 피우고 일심정성으로 주문을 지송하되 네 가지 법을 행 할 지니 하나는 주문을 고성으로 외우되 그 외우는 놈을 도리 키여 볼 것이며 하나는 입과 혜를 동치 말고 다만 생각으로 주문을 생각하되 이생각하는 놈을 도리 키여 볼 것이며 하나는 주문을 외일 때에 범서에 옴자를 관하되 그 옴자가 달과 같이 뚜렷하고 밝은 것을 관할 것이나 다만 일체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관법을 행하면 자연히 마음이 청정하여 모든 번뇌가 없어지고 먹음이 없는 마음체 가령 지불매하여 자연히 본마음을 깨나니 이것이 주문하는 법이니라 자력과 타력을 합하여 무진무궁한 진리를 깨치면 그 가운데 불가사의 도력이 있나니라.
으로 영남에 성인이 출세함을 얻어 만나는고 무수히 즐거워 하더라
넷째는 공덕과 복덕이 다름을 설명함
타일(他日)에 자사위거가 관요와 사서(官僚士庶)로 더부러 공경히 예배하고 였자오되 제자 등이 의심이 있사오니 자비로 가르치여 주옵소서. 성사왈 의심이 있거든 곧 물으라 위공왈 성사의 말씀이 달마조사의 종지가 아니온 있가 성사왈 그러하니라. 위공왈 양무대가 달마에게 물으되 짐이 일생에 가남과 탑묘를 많이 조성하며 성공과 보시를 많이 하였으니 무슨 공덕이 있나있가 달마답왈 털끝만치도 공덕은 없나니라 하시니 이것이 의심이로소이다 성사왈 양무제가 마음이 삿되어 정법을 알지 못하고 일생에 복만 짓기를 힘쓰니 복은 래생에 받을 지라도 무루공덕은 호말도 없나니라 공덕과 복덕이 다른 것을 자세히 들어보아라. 공덕은 법신 자성을 깨인 데에 있고 복짓는데 있지 아니하니라. 나의 본성을 보는 것이 공이 되고 평등심을 행하는 것이 덕이 됨이니 생각 생각이 걸림 없어 항상 본성의 진싱묘용을 보는 것이 공덕이 되는 것이니라. 내심으로는 겸양하고 하심 하는 것이 공이 되고 밖으로 예를 행하는 것이 덕이 되고 자성이 만법을 건립하는 것이 공이 되고 심체(心體)가 걸림 없는 것이 덕이 되고 자성을 여의지 아니하는 것이 공이 되고 쓰는데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 덕이 되는 것이니 만일 공덕법신을 찾고자 할 진댄 이와 같이 닦으면 참 공덕이 되나 니라 참공덕을 닦는 사람은 경만심이 없어 널리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래 사람을 생각하나니 만일 경만심이 있어 아상을 끝지아니하면 공이 없는 것이요 자성이 진실치 못하면 덕이 없는 것이니 내라하는 아상이 있어 항상 일체사람을 경멸이 여기는 연고니라 염염히 자성을 매지 아니하여 간단이 없는 것이 공이 되고 평등이 곧은 것을 행하는 것이 덛이되고 스스로 성품을 닦는 것이 공이 되고 스스로 수신(修身)하는 것이 덕이 됨이니 공덕은 자성을 보고 수련하는데 있는 것이요 보시공양으로 구 할 바가 아니니라. 공덕과 복덕이 다르거든 양무제가 참 이치를 알지 못하고 묻는 것이니 달마의 허물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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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아뢰야식의 '아뢰야'란 말은 범어의 '아라야'에서 온 말인데, 보통 저장하다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뢰야식을 때론 장식(藏識)이라고도 부릅니다.
무엇을 저장하냐면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 수천수만년동안
윤회하며 쌓은 즉 몸으로(身), 입으로(口), 마음으로(意) 짓는 모든 업(業, 행위 또는 종자)이 자동으로 아뢰야식에 저장됩니다.
8식은 이처럼 전오식과 후삼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이루어지며, 각각의 식은 육신의 각 기관에 근(根)을 두고 있습니다. 전오식은 눈, 귀, 코, 혀, 몸에 근을 두고 있으며, 말나식은 신체의 모든 곳이 근입니다. 그래서 이 몸을 '나'라고 집착하게 되죠.
하지만 아뢰야식은 특별히 신체의 어느 부위에 근(根)을 두고있지 않습니다.
보통 종자(업, 행위)가 아뢰야식에 훈습된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향냄새가 몸에 스며들듯이 몸이나 몸 주위에 향냄새가 스미는 것처럼 아뢰야식도 이와같이 육신과 그 주변에 훈습된다고 하는 것이죠. 따라서 육신이 죽어 사라지면 8식 중에 육신에 근을 두고 있는 전오식과 의식, 말나식은 사라져 버리지만 아뢰야식만은 없어지지 않고 육신이 살아있을 때 행한 종자들(업,행위,정보)만 고스란히 더한 채로 또 다른 인연이 화합해서 다른 몸을 받을 때까지 대기상태에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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