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의 본원 (本願章)
「아미타여래가 다른 행을 왕생의 본원으로 삼지 않으시고, 오직 염불만을 왕생의 본원으로 삼으신 것」을 설한 글
『무량수경無量壽經』의 상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만약 내가 부처가 되었을 적에, 시방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왕생하고자 내지 열 번만이라도 나의 이름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할 수 없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
선도대사의『관념법문觀念法門』에서도 이 문장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중생이 나의 나라에 왕생하고자 나의 이름을 적게는 열 번을 부르며 나의 원력의 배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하지 못한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
선도대사의『왕생예찬往生禮讚』에서도 똑같이 이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나의 명호를 적게는 열 번만이라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왕생을 하지 못한다면 정각을 취하지 않겠다. 저 부처님은 지금 현재 극락세계에서 부처가 되셨으니, 마땅히 본래 서원이 헛되지 않아 중생들이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음을 알라!”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대, 모든 부처님에게는 각각 공통된 서원인 총원總願과 독자적인 서원인 별원別願이 있으시다. 총원總願이란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말하고, 별원別願이란 예컨대 석가세존釋尊의 오백 가지 서원과 약사여래의 십이대원 등을 말한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사십팔원四十八願은 아미타불의 별원이시다.
물음: 아미타여래께서 언제, 어떤 부처님 앞에서 이러한 서원을 세웠는가?
대답: 『무량수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찍이 헤아릴 수 없는 과거 아득히 먼 옛날에 정광여래錠光如來께서 출현하시어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여 모두 도를 얻게 하시고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부처님들이 출현하셨는데, 그 이름은 광원여래光遠如來 (중략) … 처세여래處世如來 등 (53불) 여러 부처님들이 지나 가셨다. 그 다음에 한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이름이 세자제왕世自在王여래이셨다.
그 때 국왕이 있었는데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기쁜 마음으로 바르고 참된 무상보리심을 발하여 나라를 버리고 왕위를 내어놓고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는데 그 이름이 법장法藏이라 하였다. 그의 재주와 용맹과 철학은 세상에서 뛰어났으며, 어느 날 세자재왕여래의 처소에 참예하였다. (중략) 그리하여 세자재왕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이백십억 제불국토의 천인의 선악과 국토의 거칠고 미묘함에 대하여 자세히 설하시고, 소원대로 낱낱이 보여주셨다.
이 때에 법장비구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를 듣고 장엄하고 청정한 국토를 모두 둘러보고 나서 위없이 수승하고 가장 뛰어난 원을 세우셨다. 그 때 그의 마음은 맑고 고요할 뿐만 아니라 뜻은 집착하는 바가 없었으니 일체 세간의 어느 누구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런 후 5겁 동안 어떻게 불국토를 장엄할 것인지, 저 불국토에 왕생하기 위해 어떤 청정한 행이 필요한지에 대해 사유하고 선택을 하셨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 불국토의 수명은 얼마나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부처님의 수명은 42겁이니라”
이 때에 법장비구는 이백십억에 달하는 제불의 미묘한 국토와 청정한 행을 섭취攝取하셨다.
또한, 『대아미타경』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부처님께서 곧 이백십억의 불국토 가운데 모든 천인들과 사람들의 선악과 국토의 호추好醜를 가려서 법장의 마음속에 원하는 바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세자재왕불께서 경을 설해 마치시니 법장비구가 마음을 하나로 모으자 곧 천안통을 얻어 이백십억의 불국토 가운데 천인과 사람들의 선악과 국토의 호추好醜에 대해 스스로 남김없이 살펴볼 수 있었는데, 곧 마음속에 원하는 바를 선택하여 이 24원경(『평등각경』도 이와 같음)을 결집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 『선택選擇』이란 말은 곧 『취사取捨』의 뜻이다. 이를테면 이백십억의 제불정토 가운데 인천人天의 나쁜 점을 버리고 장점만 취했으며, 국토의 추한 부분을 버리고 수승한 부분만 취했다는 것이다.
『대아미타경』에서 선택의 뜻이 이와 같으며, 『무량수경』의 의취意趣에도 역시 선택의 뜻이 있다. 이를테면 “이백십억에 달하는 제불의 미묘한 국토와 청정한 행을 섭취攝取하셨다.”는 것이다. 선택과 섭취는 그 말은 달라도 뜻은 동일하다. 그렇다면 청정하지 못한 행을 버리고 청정한 행을 취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말한 천인의 선악과 국토의 거칠고 미묘함에 대한 취사의 뜻도 이와 같으니, 이를 기준으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럼 사십팔원四十八願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각각‘선택選擇’과 ‘섭취攝取’의 의미를 논해보기로 하자.
첫 번째 『무삼악취원無三惡趣願』이란, 법장비구가 이백십억의 불국토 가운데 삼악취가 있는 국토가 있고, 삼악취가 없는 국토도 있음을 보시고 곧 삼악취가 있는 조잡하고 나쁜 국토를 선택하여 버리시고, 삼악취가 없는 수승하고 미묘한 국토를 선택하여 취했기 때문에 ‘선택’이라 말한 것이다.
두 번째 『불갱악취원不更惡趣願』이란, 저 제불의 국토 가운데 비록 그 나라에는 삼악도가 없지만 그 나라의 인간과 천인들의 수명이 다하고 나면 그 나라로부터 다시 삼악도가 있는 국토로 가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다시 악도가 있는 국토로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곧 다시 악도로 가야하는 조잡하고 나쁜 국토를 선택하여 버리고 다시 악도로 가지 않는 수승하고 미묘한 국토를 선택하여 취한 것이기 때문에 ‘선택’이라 말하는 것이다.
세 번째 『실개금색원悉皆金色願』이란, 저 제불의 국토 가운데 한 국토 중에 황색·백색 두 종류의 인간과 천인이 있는 국토가 있는가하면 순전히 황금색만 있는 국토도 있다. 그래서 곧 황색·백색 두 종류가 있는 조잡하고 나쁜 국토를 선택하여 버리고 황금색만 있는 수승하고 미묘한 국토를 선택하여 취했기 때문에 ‘선택’이라 말하는 것이다.
네 번째 『무유호추원無有好醜願』이란, 저 제불의 국토 가운데 인천의 형색形色이 잘나고 못난 차별이 있는 국토가 있는가하면 형색이 한결같아 잘나고 못난 차별이 없는 국토도 있다. 그래서 곧 잘나고 못난 추한 차별이 있는 조잡하고 나쁜 국토를 선택하여 버리고, 잘나고 못나고가 없는 수승하고 미묘한 국토를 선택하여 취했기 때문에 ‘선택’이라 말하는 것이다.
내지 열여덟 번째 『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이란, 저 제불의 국토 가운데
보시布施를 왕생의 행으로 삼는 국토가 있고,
지계持戒를 왕생의 행으로 삼는 국토가 있으며,
인욕忍辱을 왕생의 행으로 삼는 국토가 있고,
정진精進을 왕생의 행으로 삼는 국토가 있으며,
선정禪定을 왕생의 행으로 삼는 국토가 있고,
반야般若를 왕생의 행으로 삼는 국토가 있다.
또 보리심菩提心을 왕생의 행으로 삼는 국토가 있고,
육념六念을 왕생의 행으로 삼는 국토가 있으며,
독경讀經을 왕생의 행으로 삼는 국토가 있고,
송주誦咒를 왕생의 행으로 삼는 국토가 있다.
혹은 탑을 세우고 불상을 조성하고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 그리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을 받들어 모시는 등 갖가지 행을 각각 왕생의 행으로 삼는 국토 등이 있고, 오로지 그 나라의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을 왕생의 행으로 삼는 국토도 있다. 이처럼 하나의 행을 한 부처님의 국토에다 배대시키는 것은 대략적인 뜻이다.
다시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뜻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즉 하나의 불국토 가운데 여러 가지 행을 왕생의 행으로 삼는 국토가 있고, 여러 불국토 가운데 하나의 행으로써 모두 왕생할 수 있는 국토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왕생의 행이 여러 가지로 똑같지가 않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말할 수가 없다.
지금은 앞에서 말한 보시·지계 내지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등의 여러 행들을 선택하여 버리고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를 선택하여 취했기 때문에 ‘선택’이라 말하는 것이다.
우선 다섯 가지 발원의 입장에서 간략히 논한 선택의 뜻이 이와 같으니, 나머지 발원들은 이를 기준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물음: 모든 서원을 두루 집약集約하여 조잡하고 나쁜 것은 선택하여 버리고, 수승하고 미묘한 것만 선택하여 취한 이치는 그렇다 치더라도 무슨 이유로 제18원에서 모든 행을 선택하여 버리고 오로지 염불 일행만을 왕생의 본원으로 선택하여 취했는가?
대답: 성인의 의취意趣를 헤아리기 어려우니 함부로 해석할 수는 없다. 비록 그러하나 지금은 두 가지 뜻으로써 해석하고자 하니, 첫째는 『수승함과 열등함勝劣』의 뜻이요, 둘째는 『어려움과 쉬움難易』의 뜻이다.
첫째 『수승함과 열등함』이란, 염불은 수승하고 기타의 행은 열등하다는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명호라는 것은 모든 공덕이 귀속되는 대상이다. 그렇다면 아미타 한 부처님의 모든 사지四智·삼신三身·십력十力·사무외四無畏등의 일체 내증內證의 공덕과 상호相好·광명光明·설법說法·이생(중생을 이익케 함)利生 등의 일체 외용의 공덕이 모두 다 아미타불의 명호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명호의 공덕이 가장 수승하다는 것이다. 기타의 행은 그렇지가 않아 각각 전체 공덕의 한 부분만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열등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세간에서 말하는 방사房舍라는 이름 속에는 대들보·서까래·기둥 등을 비롯한 모든 가구들이 전부 포함되어 있지만 대들보 등의 하나하나 이름 속에는 전체를 포함시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 비유로 마땅히 알라!
그렇다면 부처님 명호의 공덕은 기타의 모든 공덕보다 수승하기 때문에 『열등한 것을 버리고 수승한 것을 취하여』본원으로 삼은 것이 아니겠는가!
다음 『어려움과 쉬움』의 뜻이란, 염불수행은 쉽고 기타 수행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왕생예찬往生禮讚』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물음: 관법을 닦게 하지 않고 곧바로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도록 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대답: 이는 중생들의 업장이 두텁고, 경계는 미세한데 마음은 거칠며, 의식이 드날려서 관법을 성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성께서 대비심으로 불쌍히 여기시어 곧장 오로지 명호를 부르도록 권장하신 것이니, 바로 칭명하기가 쉬운 까닭에 (염불이) 끊이지만 않으면 왕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왕생요집』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물음: 모든 선업에는 각각의 이익이 있어 각자 선업을 닦아 왕생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오로지 염불법문만을 권장하는가?
대답: 지금 염불을 권장하는 것은 염불 이외의 갖가지 미묘한 수행들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염불은 남·여·귀·천이 행·주·좌·와를 가리지 않고, 또 때와 장소 등 온갖 조건에도 관계없이 수행이 어렵지 않을 뿐더러, 더욱이 임종을 맞이하여 왕생하기를 원한다면 이 염불만큼 편리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염불은 쉽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지만 다른 수행은 어렵기 때문에 모든 근기에게 통용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일체 중생이 평등하게 왕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려운 것을 버리고 쉬운 것을 취한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불상을 조성하고 탑을 쌓는 것’을 본원으로 삼는다면 가난하여 생활이 어려운 부류들은 틀림없이 왕생할 가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유하고 귀한 자들은 드물고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은 매우 많다.
만약 ‘지혜롭고 재능이 많음’을 본원으로 삼는다면, 우둔하여 지혜가 없는 자들은 틀림없이 왕생할 가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드물고 어리석은 자는 매우 많다.
만약 ‘많이 듣고 많이 봄’을 본원으로 삼는다면 보고 들은 것이 적은 무리들은 틀림없이 왕생할 가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이 들은 자는 드물고 적게 들은 자는 매우 많다.
만약 ‘계율을 지킴’을 본원으로 삼는다면 파계를 했거나 계를 받지 않는 자들은 틀림없이 왕생할 가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계율을 지키는 자는 드물고 파계를 한 이는 매우 많다.
그 밖의 모든 행들은 이를 기준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온갖 행諸行들을 본원으로 삼는다면 왕생할 수 있는 자가 드물고 왕생할 수 없는 이가 매우 많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아미타여래께서 법장비구로 계실 적에, 평등한 자비심의 재촉으로 일체 중생을 남김없이 구제하기 위해 불상을 조성하거나 탑을 쌓는 등의 온갖 행을 왕생의 본원으로 삼지 않으시고 오직 칭명염불 일행만을 본원으로 삼으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법조선사法照禪師의 『오회법사찬五會法事讚』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 부처님 인중에서 세우신 크신 서원
이름 듣고 나를 부르면 모두 마중 나온다네.
빈부귀천을 가리지 아니하고
어리석음과 지혜를 가리지 않으며,
많이 듣고 청정한 계율 지키는 자 가리지 아니하고
파계하여 죄 깊은 이 가리지 않으시니
다만 마음 돌려 염불 많이 하면
깨어진 기와 조각도 금덩이로 변한다네.
물음: 모든 보살들이 비록 각자의 서원을 세우셨지만, 그 서원을 이미 성취하신 분도 계시고 아직 성취하지 못하신 분들도 계신다. 그렇다면 법장보살의 사십팔원은 이미 성취되었는가? 아니면 아직 성취하지 못했는가?
대답: 법장보살의 서원은 일일이 모두 성취되었다. 왜냐하면 극락세계에 이미 지옥·아귀·축생도의 삼악취三惡趣가 없기 때문에,‘무삼악취원無三惡趣願’이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로 원성취문願成就文에서 말씀하신 ‘또한 지옥·아귀·축생 등 여러 고난이 가득한 악취惡趣가 없느니라’는 경문이 그것이다.
그리고 저 나라의 인간과 천인들의 수명이 다 하고 나면 다시 삼악취로 들어가는 일이 없으므로 ‘불갱악취원不更惡趣願’이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로‘원성취문願成就文’에서 말씀하신“저 나라의 보살은 부처가 될 때까지 다시 악취惡趣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경문이 그것이다.
또한, 극락세계의 인간과 천인들은 단 한 사람도 32상相을 갖추지 못한 이가 없으므로,‘구삼십이상원具三十二相願’을 성취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로 원성취문에서 말씀하신 ‘저 나라에 왕생한자는 모두 32상을 구족한다’는 경문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첫 번째‘무삼악취원無三惡趣願’에서부터 마지막의 ‘득삼법인원得三法忍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원이 낱낱이 성취되었다. 그런데 어찌 유독 열여덟 번째‘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만이 성취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염불하는 사람들은 모두 왕생하게 된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로 염불왕생의 원성취문에서 말씀하신
‘모든 중생들은 그 이름을 듣고 신심을 내어 기뻐하거나 혹은 한 생각만이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하여 극락국에 태어나기를 발원한다면 바로 왕생하여 불퇴전에 머물게 될 것이다’는 경문이 그것이다.
무릇 사십팔원으로 정토를 장엄하였기에 연못과 보배누각은 부처님의 원력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유독 그 가운데 염불왕생원만을 의심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하나하나의 발원 끝에 “만약 그렇지 않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설하고 있다. 그런데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신지 이미 십겁의 세월이 흘렀으니 성불의 서원이 성취된 것으로서, 하나하나의 서원이 헛되이 시설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선도대사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저 부처님은 지금 현재 극락세계에서 부처가 되셨으니, 마땅히 본래 서원이 헛되지 않아 중생들이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음을 알라!”
물음: 『무량수경』에는‘십념十念’이라 하셨고, 『주석註釋』에는 ‘십성十聲’이라고 하셨는데 ‘념念과 성聲’의 뜻은 어떤 것인가?
대답: ‘념念과 성聲’은 동일하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관경』의 하품하생에서 ‘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하여 열 번 나무아미타불을 갖추어 부르게 되면,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공덕으로 80억겁의 생사의 죄가 소멸된다.’라고 설하고 있는데, 지금 이 문장에 의하면 ‘성聲’이 곧‘념念’이고 ‘념念’이 곧‘성聲’라는 의미가 분명하다.
게다가『대집경大集經』의 「월장분月藏分」에서 ‘대념大念은 대불大佛을 보고 소념小念은 소불小佛을 본다’라고 설하신 것을 회감법사懷感法師는‘대념大念이란 큰 소리로 염불하는 것이고, 소념小念이란 작은 소리로 염불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해석하였다. 이것으로써 ‘념念’이란 즉 ‘소리를 내어 부르는 것稱’임을 알 수 있다.
물음: 『무량수경』에는 ‘내지乃至’라고 되어 있고, 주석에는 ‘하지下至’라고 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대답: 내지乃至와 하지下至의 의미는 동일하다. 『무량수경』의 내지乃至라는 말은 ‘많은 것에서 적은 것으로 향해 나아간다’는 뜻으로, ‘많다’는 것은 위로(길게는)는 평생을 다한다는 것이요, ‘적다’는 것은 아래(짧게는)로 십성十聲·일성一聲에 이르기까지라는 말이다.
주석에 ‘하지下至’의 의미는, 하下는 상上을 상대로 한 말로서 하下라는 것은 아래로 십성十聲·일성一聲 등에 이르기까지라는 것이요, 상上이란 위로 평생을 다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上·하下가 상대적인 말은 그 예는 굉장히 많다.
‘숙명통원宿命通願’에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이 숙명통을 얻지 못하여 백천억나유타겁百千億那由他劫의 옛 일을 알지 못한다면, 나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
이와 같이‘오신통五神通’및 ‘광명무량光明無量’·‘수명무량壽命無量’등의 서원 가운데 일일이 ‘ 하지下至’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바로 ‘많은 것에서 적은 것에 이르기까지’·‘하下로써 상上과 배대함’이라는 의미이다.
이상 여덟 가지 서원에 대한 예로써 지금 이 제18원의 ‘내지乃至’가 바로‘ 하지下至’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지금 선도대사가 인용하여 주석하신 ‘하지下至’라는 말도 그 의미는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선도대사의 견해는 다른 스님들諸師과 다르다. 다른 스님들의 해석에서는 따로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비해, 선도대사는 홀로 총괄해서 ‘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른 스님들이 따로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뜻이 원만하다고 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위로는 일생의 염불을 버리고 아래로는 한 번의 염불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도대사가 총괄해서 ‘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이라고 부른 것은 그 뜻이 원만하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위로는 일생의 염불을 취하고, 아래로는 한 번의 염불도 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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