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과 아미타불/염불에 관한 장

백낙천의 염불 발원문

慧蓮혜련 2015. 7. 9. 16:52

 

 

내 나이 일흔 하나,

다시는 풍월을 읊지 않겠노라.

경전을 보는데 눈이 피곤하고,

복을 지으려니 빠른 세월이 두렵다.

 

 

어떻게 심안(心眼)을 제도할까.

아미타불을 한 번 부르는 일이네.

걸어 다닐 때에도 아미타불,

앉아있을 때에도 아미타불,

 

 

화살처럼 바쁠지라도 아미타불,

아미타불을 그치지 아니하네.

날은 저무는데 길은 멀고,

나의 인생이 이미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아침저녁 청정한 마음으로

오직 아미타불만 부른다.

달인이 나를 보고 웃든 말든

폐일언(蔽一言)하고 오직 아미타불만 부른다.

 

 

세상사에 통달한들 무엇 하겠으며

통달하지 아니한들 또한 어찌하겠는가.

널리 법계중생들에게 권하니,

다 함께 아미타불 염불하세.

 

 

 

余年七十一 不復事吟哦 看經費眼力 作福畏奔波

 

何以度心眼 一聲阿彌陀 行也阿彌陀 坐也阿彌陀

 

縱饒忙似箭 不廢阿彌陀 日暮而途遠 吾生已蹉跎

 

旦夕清淨心 但念阿彌陀 達人應笑我 多却阿彌陀

 

達又作麼生 不達又如何 普勸法界衆 同念阿彌陀

 

 

* 백거이(白居易) : 중국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이자 재가 수행자, 정치가(772-846).

 자(字)는 낙천(樂天)이다.

 

당나라의 대표적 문사(文士)인 이백(李白), 두보(杜甫),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불릴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태어나자마자 글자를 알았다고 한다.

 

작품으로 ‘장한가(長恨歌)’와 ‘비파행(琵琶行)’ 등이 있다.

고승 조과(鳥窠禪師) 혹은 도림(道林禪師.741-824)간의 일화가 유명하다.

백낙천이 항주자사(杭州刺史)로 부임, 고승 조과선사를 찾아갔다.

조과선사는 높은 나무에 새집(鳥窠)처럼 지은 둥지에 앉아 정좌참선 중이었다.


백낙천이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위태롭습니다. 위태해.”

 

그러자 조과선사의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위태롭습니다. 위태해.”

 

백낙천이 다시 소리쳤다.

 

“위태로운 것은 선사님이십니다. 왜 제가 위태합니까?”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세상 인심에 매달려

 티끌 같은 지식으로 名利를 추구하는 것이 더 위태롭다는 말이오.”

 

 

위태하다는 법문에 크게 깨달은 백낙천은 정중히 예를 올리며 가르침을 청했다.

 

“불법의 대의는 무엇입니까?”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며 스스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 –

이것이 불법의 가르침이오.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謂佛法)”

 

대단한 법문을 기대했던 백낙천은 실망하여 말했다.


“그거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 아닙니까.”

 

“삼척동자도 알지만 팔순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것이오.

 

이 말을 들은 백낙천은 비로소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 후 당대의 문장가 백낙천은 도림선사에게 귀의하여 불법 수행을 두터이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