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복을 쌓아라
(우룡스님)
정녕 우리는 사랑하는 아들 딸과 후손을 생각해서라도
덕을 베풀고 복을 쌓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복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을 쌓으며 살아야 합니다.
어느 해에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다가,
현재 미국에서 포교를 하고 있는 한 스님을 만났습니다,
그 스님은 나와 여러 절에서 함께 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지냈는데,
너무 뜻밖의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인과 이야기를 많이 하시던데, 정말 인과가 있습니까?”
“있지요.”
“저는 인과를 안 믿습니다,”
“다른 것은 제쳐 두고라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십시오.
역사적으로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당하기만 하였습니다.
한 번 당하면 한 번 되갚는 것이 인과의 법칙인데,
왜 우리는 계속 당해야만 합니까?“
“스님은 일본을 가 보았습니까?”
“예.”
“그들의 집에 있는 가미다나(조상을 모신 단)를 보았습니까?”
“예.”
“그들이 그 앞에서 어떻게 합디까?”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시골의 여러 마을에도 가 보셨겠지요?”
“예.”
“그곳에서 향연기에 끄을러
꾀죄죄하게 된 조그마한 신사(神祠)들을 보았습니까?”
“예.”
“누군가가 아침마다 향과 꽃을 올리며 신사를 청소하고,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그 앞에 이르러 예배를 드리는 모습도 보았습니까?“
“예.”
“그럼 알 것이 아닙니까?
왜 우리가 당하고만 있는지를….”
“예?”
“일본에서는 도시계획을 할 때
아무리 조그마한 신사라하여도 철거를 하지 않습니다.
신사를 피해 길을 뚫거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 신사를 다른 곳으로 온전히 옮겨 보존합니다.
그런데 우리는어떻습니까?“
아무리 오래 된 당집이라고 하여도
도시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확 밀어버립니다.”
“그것이 침략자인 일본놈에게 계속 당하는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일본사람들은 아침 저녁으로 부처님과 조상의 신단 앞에서 기도를 하고,
어떠한 경우라도 예부터 내려오는 신사들을 보호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을 닦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조상의 제사도 지내지 않는 이가 부지기수요,
전통적인 당집을 불도저로 확 밀어버립니다
이것이 복을 떨어버리고 복을 발로 차버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을 쌓는 일본사람과 복을 차버리는 우리!
어떻게 우리나라의 복력(福力)이 일본에 미치겠으며,
복력이 모자라는 데 어찌 당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인과의 법칙에 따르면 복 많은 이에게는
박복한 이가 당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
우리가 계속 당하기만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복,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복을 즐겨 쌓으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을 쌓으려 하지 않습니다.
‘나’의 편안함과 현실적인 이익에 급급하여 깊은 복은 쌓으려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일본 훗카이도에 갔을 때
기독교를 믿는 여교사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오래된 가미다나가 있었습니다.
더욱이 가미다나의 가장 위쪽에는 부처님을 모셔 놓았고,
가운데에는 조상들의 위패,
밑쪽으로는 조그마한 향로와 촛대와 다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 가미다나가 있다니?
집안 대대로 내려온 것이라 놓아둔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집안을 연상하며 혼자 추측을 하고 있었는데,
여교사가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고
차를 다려 올린 다음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상식 밖의 일이라 그녀에게 물엇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분이 왜 그렇게 합니까?”
“이것은 조상대대로 해온 일입니다,
제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여 그 전통을 버려서야 되겠습니까?”
“선생께서만 그렇게 합니까?”
“저 뿐만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합니다.”
이 얼마나 떳떳하고 반듯한 마음가짐입니까?
이를 통하여,
그녀를 비롯한 많은 일본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을 잘 닦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불자들 가운데에는
집안 제사를 모시는 것이 싫다며
다른 종교로 개종을 하는 이들을 가끔씩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당장은 편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눈 앞의 편안함 때문에 조상을 버리고
종교를 바꾸는 박복한 짓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복을 깍아내고 복을 걷어차는 일을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내가 잘되고 후손이 잘되고 이 나라가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보이지 않는 깊은 복을닦아야 합니다.
불교인이든 기독교인이든 무종교이든,
전통과 뿌리를 소중히 여기며 복을 닦아야 합니다.
‘나’와 다르다고 하여 서로 욕을 할 것도 아니요.
등을 돌릴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마냥 복을 닦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 누구도 복을 닦는 사람을 못이깁니다.
그러므로 몸으로 복을 닦으며
복된 말을 하고
복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 불자의 살림살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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