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소개하는 이야기는 수년 전에 방영되었던 모방송사의 프로그램 "ㅇㅇㅇ 속으로"에
나온 내용이다.
오래 전에 시골 어느 작은 마을에서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부부가 살고있었다.
마침 부인은 임신중이었다. 시골생활이 한 여름엔 파리, 모기가 많기 마련인데 두꺼비가
파리,모기를 잘 잡아먹는다는 소리를 들은 남편이 두꺼비를 잡아와 집안에 들여놓으니 아닌게
아니라 파리, 모기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남편은 신이 나서 두꺼비를 자꾸 잡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백 살은 족히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두꺼비를 잡아와서는 아내의 약이 되겠다며 두 다리를 꽁꽁 묶어 방문 앞에 매달아놓았다.
부인은 두꺼비가 너무 오래되었기도하고, 집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파리, 모기가 없어지니까
그만 놓아주라고 사정했지만 남편은 부인의 말을 무시하고 두꺼비를 매달아놓은 채 두꺼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리하여 두꺼비는 산 채로 매달려 말라 죽었다.
산달이 되어 부인은 이쁜 딸을 낳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갓 태어난 아이의 발목에 잘록하게 묶인 자국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자국은 커가면서 없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발목이 잘록한 것이 부끄러워 항상 발목을 가리고 다녔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딸아이가 열한살이 되었을 때였다. 그렇게 이쁘기만 하던 딸 아이의 얼굴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였다.
피부가 두꺼비처럼 울퉁불퉁하게 변하더니 점차 피부색깔도 두꺼비처럼 거무튀튀하게 변해버렸다.
딸아이의 엄마는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딸아이는 점점 더 두꺼비와 닮아가더니 몸형태도 두꺼비처럼 변해갔다.
아무 죄도 없는 딸의 운명은 아버지의 잘못으로 그렇게 두꺼비 형상으로 바뀐 채 부끄러워
밖에 나다니지도 못하고 항상 어둠속에 숨어사는 것이다.
지금은 깊은 산속 동굴 같은 어두운 곳에 숨어서 어느 봉사단체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고한다.
이제 사십대 중반이 된 이 여자는 아직도 밝은 곳에는 아예 나오지를 못한다고한다.
출처: 동티 (김진영저, 영혼의 눈개정판, 도서출판 답게)
3. 피할 수 없는 과보- 염소를 괴롭혀서 죽인 과보
1975년 내가 태백산 도솔암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종교를 믿지 않는 어떤 집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생김이 아주 흉한 째보였습니다.
볼 두쪽이 쌍으로 째어진 째보여서 아이가 울때 마다
째어진 뺨이 팔딱거렸으며,뾰족한 턱의 모양이 무슨
짐승처럼 보이는 데다가 우는 소리는 꼭 염소울음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어찌나 불량스러웠던지, 돌이 막 지나
두 살된 아이 인데도 걷잡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수하기 위해 잠깐 벗어놓은 시계를 구정물에
집어 던지는가 하면 화장대의 화장품은 잡히는 대로
집어던졌으며, 병이고 항아리고 모두 다 깨뜨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두고 집안 식구들까지 기이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몇해 전, 식구들이 모두 영양실조에 걸려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때 이웃사람들이 염소고기를 먹으면 좋다고 하기에
염소 한 마리를 구해서 잡아먹었습니다.
그런데 염소를 그냥 잡으면 노린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으므로 죽이기 직전에 방법을 쓴다는 것입니다.
염소 목에다 줄을 걸고 무거운 짐을 끌게 하여 모진
고통을 주면 노린내가 없어진다는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집안 식구들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염소를 논밭으로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끌고 다녔습니다.
탈진한 염소는 마침내 쓰러져 죽었고, 가족들은 그 염소를
삶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 직후 곧 태기가 있어 이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그 집안 사람이나 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의 생김새와
울음소리,나쁜 짓만 골라하는 아이의 짓거리를 보고
"저것이 집안을 망치고 원수를 갚으러 태어난 것이
틀림 없다."며 하나 같이 걱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과의 법칙을 벗어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드시 어떤 원인에 의해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며,
원인 없이 결과란 있을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우주와 인생의 모든 것을 인과와 연기의
전개로 보며, 인과 의 도리를 벗어난 우연론이나
창조론은 전부 이단으로 봅니다.
어떻게 하다 우연히 생겨난 세계라거나 또 전지전능한
신이 이 우주의 생명체를 창조했다면, 설사 잠깐의
실수로 잘못 창조하고 잘못 관리했다면 즉시 다시 개조
하고 재창조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역사의 현실은 그렇지
가 않습니다.
우주와 인생의 신비는 오직 불교의 육도윤회를 통한
무시 이래의 인과법으로 풀지 않고서는 해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불교의 인과론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운명론
과 같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운명론은 모든 것을 태어날 때의 사주팔자와 함께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율적인
의지와 창조적인 노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삶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불교의 인과론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있습니다.
나의 행위가 원인이 되어 현재와 같은 삶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받고 있는 이 결과는 어제의 행위가 원인이
된 것이고, 오늘 내가 짓는 행위는 내일의 결과를 낳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의 인과론은 내일을 창조하고 오늘의
과오와 고뇌를 근원적으로 개조하기 위한 인과론 입니다.
숙명적인 운명론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절대로 가벼이 흘려서는 안됩니다.
인과의 법칙이 확연하고 과보의 응징이 엄격한 것은,
마치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출처: 일타큰스님저- 윤회와 인과응보 이야기 (도서출판 효림)
4. 개구리 살생의 과보
출처: cafe.daum.net/choirheen 필명 인간문화재님 글
저의 지난 개구리 살생과 그 후유증에 대해서 잠시 적겠습니다.
이것을 적는 이유는 우정에 의한 살생이든, 효심에 의한 살생이든 살생에 대한 대가는 살생한 자 본인의 몫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저는 평소에 머리를 잘 다쳤습니다. 야구공에 맞고, 빨래줄에 목이 감기고, 벽에 부딪치고....
27살 때는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그 전의 1년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인생을 살아오면서 머리를
집중적으로 다쳐서 지금도 항상 머리를 조심하고 다닙니다.
31살 때에 어떻게 알게 된 분이 있는데 영적으로 좀 밝은지 당신 머리를 잘 다치지 않느냐,
당신 머리에 뒷 다리 두 개가 없는 개구리가 안떨어지려고 앞발을 당신 머리에 박고
필사적으로 매달려있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서 뭐가 어째하면서 당신 숨통을 끊어주겠다고 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선배 한 명, 후배 한 명, 저 이렇게 세 명이서 개구리를 잡으러 갔었습니다.
그 날따라 개구리가 아주 많이 잡혔습니다.
마대자루로 세 자루나 잡았습니다. 각각 한 자루씩 메고 오는데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고 모두 지쳤습니다.
그 때 6학년이었던 선배 형이 지금은 가을이기때문에 개구리가 동면에 들지 않았고 개구리 뱃속이 지저분하고
독도 있을 것 같으니 상체는 못먹는다, 그러니 개구리 상체는 버리고 가져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루에서 개구리를 꺼내 바위에 머리를 쳐서 죽인 후에 칼처럼 생긴 돌로 허리를 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는 그 형이 너무 힘이드는지 죽이지도 않고 산 채로 개구리 허리를 돌로 찧어서 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형의 너무 지친 모습에 저도 모르게 그 자루에서 개구리를 꺼내어서 개구리가 살아있는데도 산 채로 개구리를
돌로 찧어서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개구리 상체는 살아서 도망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 후배는 옆에서 지켜만 봤습니다.
그 때 아침 8시에 집을 나섰는데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간 기억이 납니다.
5. 소의 혀를 자른 과보가 세 명의 자식에게 가다.
5~50 출처: 연지대사의 방생행복 살생불행(연지대사저, 만법 김상근역, 삼보제자刊)
당나라 때 한 농부가 있었는데 그는 악독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점심 때 밭을 둘러보러 나갔더니, 이웃집 소 한마리가 자기 밭에 들어와
곡식을 짓밟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고약한 성질에 노기가 충천하여 소리를 질렀다.
"애써 지어놓은 곡식을 네가 마음대로 짓밟고 뜯어먹고 있으니 네가 살고싶지않은
모양이구나."
욕을 하며 코웃음을 치며 다시 말하였다.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않을거야. 네가 내 곡식을 먹었으니 내가 네 혀를 잘라버릴거야.
그래도 곡식을 뜯어먹을 수 있나 두고보자."
소는 잘못한 것을 알고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소리도 못 내었다.
그러나, 농부는 용서하려 하지않고 소고삐를 바짝 조여서 소머리를 치켜들고
비수를 빼어 소 혀를 잘라버렸다.
소는 아픔을 참고 비명을 질렀다.
후에 농부가 결혼해서 세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아이들마다 말을
시작한 후에 한 반년 후면 벙어리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농부는 몹시 애통해하였으나 아이들이 벙어리가 된 까닭을 알지못하였다. 그리고, 사방으로
의사를 찾아다녔으나 속수무책이었다.
그 때 돌연히 십 수년 전에 소의 혀를 자른 일이 생각이 났고 그 업보가 나타난 것임을
알게되었다.
짐승의 일이라 대단치않게 생각했었는데 인과가 그의 세 자식의 몸에 떨어질 줄은 생각을
못했던 것이었다.
6. 개구리의 응징
중국 안휘성 무위현에 이발업을 하고 있는 양기수라고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생김새가 노루머리에 쥐눈상을 가져 몹시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마음이 좁아 사소한 일에도 양보가 없으며 품행이 좋지도 않았다.
또 개구리 요리를 제일 좋아하였다. 그래서, 식사 때마다 개구리 요리를 빼놓지않았다.
그의 개구리 요리솜씨가 일품이어서 그와 같이 몰려다니는 한 패거리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의 개구리 요리솜씨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칭찬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칭찬소리가 높아질수록, 그는 신이 나서 개구리가 마치 자기원수가 되는
듯이 한 마리라도 놓칠새라 모조리 보는대로 잡았다.
이런 식으로 40여세가 되도록 그는 개구리를 계속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그가 신나게
자고 있는데 홀연히 온 몸이 근질근질하며 흐리멍덩한 사이에 이불이며, 베개며, 옷소매 속이
며 사방에 개구리가 들어있었다.
그는 "참 이상하다."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개구리를 모두 붙잡아 솥에다 넣고 끓였다. 그리곤 침대에 올라가니 침대위에도
개구리가 가득 있었다. 이리하여 개구리와 싸우느라 그날 밤에 한 숨도 자지 못하였다.
그 이튿날 이웃사람을 불러놓고 어젯밤 당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돌연히 등을 긁으면서,
"개구리가 또 왔네."하고 중얼거렸다.
조금 있다가 또,
"개구리가 내 눈 속에도 있네."
"개구리가 내 머리 속에도 있네."하면서 그는 자기가 쓰는 면도칼로 머리와 눈썹을 전부
깎아버렸다.
그러나 같이 있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개구리를 본 사람이 없었다.
이웃사람들은 "틀림없이 미쳤나봐."하며 수군거렸다.
이로부터 만 6년동안 그는 하루도 편안하게 지내지못하고 고통속에 지내다가 마침내
광기가 심하여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7. 새끼의 죽음에 오장이 찢긴 어미 사슴
숲속의 새벽은 문자그대로 적막 그것이었다.
아침 햇살이 대지를 비추기 시작하여 숲속에 비쳐오니 모든 산들을 신선하고 아름다운
밝은 빛으로 물들였고, 잔잔히 흐르는 작은 시냇물은 고기비늘처럼 찰랑거려 그 경치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었다.
그 때 홀연히 한 사람의 그림자가 작은 시내위로 휙 지나가더니 고요한 풀밭에 발을 멈추고
무엇을 찾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바로 커다란 귀에 칼날 같은 눈썹에 호랑이 눈을 하고 머리엔 수건을 동여맸으며
왼팔엔 활을 들고 오른쪽 옆구리엔 화살 통이 매달려있으며, 그 모습이 기개당당한
허진군이었다.
그는 자연경치를 좋아하며 더욱이 사냥하기를 좋아하였다.
그 때 한 마리의 작은 사슴이 숲속에서 뛰어나왔다. 허진군은 반가워 기뻐하며 활에
화살을 재고, 슝하는 소리와 동시에 작은 사슴은 땅에 쓰러지고 그가 쓰러진 사슴을
잡으러 뛰어가려하자, 바로 그 때 한 마리의 어미 사슴이 번개처럼 뛰어나왔다.
어미 사슴은 부상당한 새끼사슴 곁에서 비명을 지르며 울면서, 혀로 연신 화살의
상처를 핥아주었다. 그러나 밥 한끼를 먹을 시간쯤 지났는데 새끼사슴은 죽고
말았다. 그러자, 어미 사슴도 비통을 못 이겨 그 자리에서 같이 쓰러져 죽고 말았다.
허진군은 그것을 보고, 너무나 괴이한 일이라 허리춤에서 비수를 꺼내, 어미 사슴의
배를 가르고보니, 그 어미의 간장이 토막토막 잘려있어, 그 새끼가 죽은 것으로 말미암아
너무나 비통하고 상심한 나머지 간은 부서지고 창자는 잘라진 것이었다.
허진군은 크게 감동하여 자기 스스로 못할 짓을 한 것을 깨닫고, 죄를 뉘우치고 그 즉시
활을 부러뜨려 땅에 버리고 화살은 모두 개울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집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 스승을 찾아 십수년의 수행끝에, 드디어 도를 이루었다.
8. 석달동안 비명지르는 과보
희미한 등불이 가물가물한 보신탕집에는 손님이 가득 앉아 빈 자리가 없었다.
개고기를 즐겨먹는 손님들은 삼삼오오 둘러않아 몹시 벅적거렸다.
가게 뒤에는 주인 조승원이 또 한 마리의 개를 죽여 항아리 속에 집어넣었다.
그는 개를 잡는 것을 업으로 하면서, 또 보신탕집을 내어 장사가 퍽 잘되었다.
그는 조수를 한 사람 썼는데 그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였다.
"아저씨, 이 개는 참 살이 쪘지요?"
조승원은 득의연(得意然)하게 웃으며,
"너 참 제법이구나. 이 개는 이번에 우리에게 은전을 15전이나 벌어주었지."
주인과 조수는 항아리곁에 쭈그리고 앉아 한편으로는 물을 끓이고 한편으로는
칼을 갈아 죽은 개를 요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돌연히 그 때에 그들이 분명히 죽인 개가 항아리속에서 높이 뛰어나와 나는 듯이
조승원의 몸을 향해 덮쳤다.
동시에 조승원의 목덜미를 물고 놓지를 않았다.
조승원은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개고기를 먹고있던 손님들도
모두 뛰어나와 죽은 개가 조승원을 물고있는 것을 보았다.
조승원의 목에선 선혈(鮮血)이 쏟아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조승원은 죽은 개한테 물린 상처에 의사를 청하여 치료하고 약을 썼으나 별 효험이
없고 상처는 점점 악화되어 매일 밤낮으로 고통을 참지못해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삼개월을 끌다가 마침내 저승길로 가고 말았다.
보신탕없이 못살겠다던 사람들도 이 일이 있은 후론 개고기를 먹으려하지 않았다.
9. 뱀을 죽인 업보가 아들에게 가다.
강산(江山) 성남 지방에 성질이 나빠 살생을 좋아하는 농부가 있었다.
나이가 40여세에 슬하에 아들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청나라 동치 6년 5월 농부가
어느 날 괭이를 메고 들에 나가다가 홀연히 커다란 뱀 한마리를 발견하였다.
그 큰 뱀은 농부를 보자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낼름거리는 것이 마치 두려움에 질려
죽이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요건 꼭 죽여야 해. 놓쳐서는 안되지."
농부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추호의 인정도 없이 재빠른 솜씨로 괭이를 내리쳐
달아나려는 그 뱀을 두 동강이를 내고 말았다.
뱀은 당장 꼼짝못하고 죽어버렸다.
농부는 즐거운 듯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해 그의 사랑하는 아들은 9살이었다.
바로 농부가 뱀을 죽인 그날 밤에 그 아이는 꿈속에서 커다란 뱀에게 물렸다.
이튿날 새벽에 놀라 깨어나니 오한이 일고 열이 났다.
그 아이는 잠꼬대처럼 계속해서,
"아이 아퍼, 아이 아퍼."하며 비명을 질렀다.
농부는 야심한 한밤중이라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가슴만 죄었다.
의원을 부르러 가려고 할 때, 그 아이가 갑자기 혀를 기다랗게 내미는데 그 모양이
꼭 자기 손에 맞아죽은 뱀과 같았다.
참 놀라운 일이었다.
농부는 "얘야, 얘야."하고 가슴졸이며 아들을 불렀다.
그러나, 오래지않아 가련한 아들은 목숨을 거두어 죽고 말았다.
10. 전쟁과 재앙의 원인
보양 한 곳에서 또 10명이나 납치를 당하였다.
그들은 손과 발이 모두 마적 떼들에게 잘려서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양양지방에는 또 해일이 일어 바닷물이 거꾸로 넘쳐 올라와 마을을 덮쳐 수백 호의
주민들이 하룻밤 사이에 모든 재산과 집을 잃고 들어갈 곳이 없게되었으며,
수십 명의 사람이 물에 떠내려가 죽기까지 하였다.
이런 소식이 한 입건너 두 입건너 전달이 되자, 뜻이 있는 이배덕이라고 하는 사람은
도교신자로서 마음이 매우 선량하고 인자하였다.
혼자 생각하기를,
'왜 최근에 이러한 재난이 겹칠까?"
'왜 백성으로 하여금 편안히 살지 못하게 할까?"
그는 돌연히 도력이 높은 임도장이 생각이 났다.
'그 분에게 가서 여쭤보면 이러한 재난의 원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일부러 이선관이라고하는 道觀도관(도교의 사찰)에 찾아가 임도장을
만났다.
임도장은 때마침 방석을 두툼하게 깔고 그 위에서 좌선하고 수도를 하고있었다.
이배덕을 보자,
"이진사, 안녕하시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소?"
"도장님, 도장님께 여쭈어보고 싶은 일이 있어 왔습니다. 최근에 각지에서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도적떼들이 봉기하여 사방에서 살인하고 방화를 하니 참으로 두렵습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 도장께서도 들은 바가 있으시지요?"
이배덕이 이렇게 묻자, 그는 대답하였다.
"빈도는 산문 밖을 잘 나가지않기 때문에 소식을 잘 모릅니다."
"죄없는 생령들이 무슨 까닭으로 이런 재난을 당해야합니까?"하고 이 배덕은 다시
여쭈어 보았다.
"세상 사람들이 잔인한 습성이 풍조를 이루고 있으니, 예를 들어 살생을 하고 육식을 하고
이러한 악습이 길러지고, 이런 악습이 시일이 거듭되니 살생의 중업이 깊어 하늘에 맞닿으니
하늘에서 물과 불과 기근및 살생을 내려 사람의 생명을 앗아다가 그 동안 인간에 의하여
살해된 다른 생령들에게 저질러진 악업에 대해 報(보) 갚음을 받는 것이오.
사실 이러한 천도의 보응(報應)도 그렇게 시원스러운 일은 못되지요."
하고 임도장은 대답하는 것이었다.
11. 음식을 탐하는 자의 업보
청나라 도광년간의 심태수란 사람이 인색하지 않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는 돈을 정당한데 쓰느냐 아니냐 하는 것도 따져보지않고 생각나는 대로 썼으며,
친구들과 먹고 마시고 하기를 좋아하며 많은 친구들이 그에게 한턱 얻어먹은 사람이
적지않았다.
그의 사치로 말하자면 사는 집도 특별한 장식을 하였고 자는 침실은 황궁과 같았고,
입는 옷도 화려하고 일용품도 모두 기묘한 것이어서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심태수는 먹는 것을 제일 탐하였다.
하루 세 끼를 오리의 뇌 아니면, 곰 발바닥, 상어 지느러미, 노루포 등 끼니마다 가장 정교하고
귀중한 음식만 골라먹었다.
이렇게 매일을 생활하다보니, 알게모르게 무수한 생명을 살해하게 된 것이다.
퇴직을 한 후에는 호화로운 건물을 구입하여 거기에 기화요초를 심고 집안 뜰에는
인공 석산과 분수며 개울을 만들어 집안에 들어온 사람이 천궁(天宮)에 들어온 듯 느끼게
하였다.
또 음식을 해먹는데 있어서도 좋다는 것만 골라서 먹곤하였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소? 살아있는 동안 잘먹고 잘지내지 않으면 살아도 헛사는게
아니겠소?"
그러나 뜻이 있는 사람들은 그가 하는 행위를 별로 탐탁치않게 생각하였다.
"보시오. 어느 날엔가 그 업보를 받게 될 것이오."하고 말하였다.
과연 10여년이 경과되자 가세가 점점 기울기 시작하더니 그는 정신이 이상해 미친
사람이 되고말았다.
병이 발작하면 그는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상관하지않고 무엇이나 음식인줄 알고
보는대로 집어다가 게걸스럽게 입안에 집어넣었다.
마치 이야기에 나오는 아귀와 같았다. 심지어는 잿더미며 물컵까지도 깨부수어서
마구 집어먹었다.
집안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그는 이런 일로
인해 심하게 내상을 입어 죽고 말았으니, 사실은 너무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은 결과일
것이다.
12. 포악한 살생의 말로
옹주의 육효정이라고 하는 사람은 당나라 정관 연간에 살았던 조그마한 관리였다.
보통 살림살이였으나 그가 살고있는 집 뜰안은 매우 넓었다.
육효정은 인색할 뿐 아니라 남을 용서할 줄 모르고 퍽 잔악한 성격이었다.
집에서 부리는 아랫사람에 대해서도 조그마한 잘못만 있어도 야단을 치고
심하면 구타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동물에 대해선 더더욱 애호하는 마음이
없었다.
한 번은 우연히 그 집 남쪽에 한 그루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 위에 꿀벌둥지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곧 일꾼들에게 그 꿀벌둥지를 빨리 옮겨 버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꿀벌들은 여전히 그 나무에 모여서 살면서 떠나지를 아니하였다.
육효정은 화를 버럭 내고 일꾼더러 곧 부엌에 가서 끓는 물을 가져오게하여 그 물을
벌둥지에 부어버리니 어미나 새끼 벌 할 것없이 모두 비명(非命)에 죽고 말았다.
이듬해 오월 날씨가 몹시 더운 때였다.
육효정은 대청마루에 기대 잠깐 잠이 들었다.
돌연히 '아야야!'하고 깨어지는 듯 비명을 질렀다.
그는 소리를 치면서 반사적으로 입술을 만졌다.
그 아픔이 폐부에까지 찌르는 것 같았다. 어디서 날아왔는디 커다란 벌 한마리가
그가 자고 있는 틈에 그의 입술을 쏜 것이었다.
그의 입술은 삽시간에 뻘겋게 되며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일꾼을 불러 의사를 청하고, 입술에다 소염약을
바른다고 야단법석이었으나 그 벌의 독침이 얼마나 지독하였던지 입술이 부어 온
입안을 가득 채워 약을 마실 수도 없이 되었다.
의사는 고개를 내저으며 아마도 벌의 독기가 심장을 찌른 것 같다고 말했다.
며칠이 지나자 그의 초췌한 모습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 때에 그는 홀연히 지나간
일이 회상되었다. 무수한 죄없는 꿀벌을 잔인하게 죽였던 일이 생각난 것이다.
그 때 그 일이 오늘의 고통스런 과보를 초래하지 않았나하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의
회개도 너무 늦었다.
그는 눈을 서서히 감더니 다시는 뜨지않았다.
13. 살생의 업보로 패가망신하다.
서씨는 고씨 집안에서 여러 해동안 충실히 일해 온 일꾼이었다.
나이는 이미 50여세가 되었으며 일을 하면 아주 깨끗이 처리하고 조금도 꾸물거리는
일이 없어 주인 고유성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어느 날 해가 중천에 떠 있어도 일어나 일을 하지않고 아직 자고 있어서, 평소에 일찍
일어나 일하던 그라 주인 고유성은 매우 이상히 여겨 그의 방에 가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는 문을 두드린 후 한참 있어서야 문을 열고 나오는데, 절뚝절뚝 걸음을
바로 걷지못하고 몹시 아픈 듯이 괴로워하였다.
그래서, 고유성은 이상하여 물었다.
"자네 다리가 왜 그런가?"
"무릎에 빨간 종기가 하나 났는데, 단독 종기인 것 같습니다."하고
서서 말했다.
또 이어서 말하길,
"어젯밤 꿈에 수많은 드렁허리(논장어)가 나타나 그 중 가장 큰 두마리가 눈을
부릅뜨고 저를 향하여 덤벼들어 제 양 무릎을 물어뜯어 너무너무 아파서 깨어났는데
움직일 수가 없어 빨리 나와서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고유성은 또 물었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일세. 어쩌면 그런 꿈을 다 꿀까?"
"실은 20살 때 저는 동관시장에서 국수집을 열고, 주로 드렁허리 국수를 팔아서 유명해졌습니다.
매일 드렁허리 수십 근씩을 소비하였는데 그것을 삼십년이나 하였지요. 그래서 돈을 3,000금이나
저축했습니다. 그 돈으로 동백기름을 사서 저축해 놓았는데 이유없이 불이 나서 전부 타 버렸습니
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자기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지만 꿈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말하며 고유성은 집에 있는 만금유를 꺼내서 발라 주었더니, 곧 다 나을 수가 있었다.
하루는 문을 닫고 잠을 자는데 밖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할 수 없이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놀라서 일어난 서서방은,
"커다란 두 마리의 드렁허리가 꿈속에 나타나 지난 번의 상처를 또 물었는데, 저 깊은 마음속까지
너무나 아파 못살 것 같습니다."
서서방은 눈물을 흘리며 기운없이 대답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종기가 곪아터져 뼈속까지 드러나더니, 결국은 죽고 말았다.
14. 진씨집안의 네째 아들이 죽임을 당하다.
군량미 수송관 이춘담이 계사년 삼월에 군량을 실은 배를 수송하던 수송선이, 회령현
대장구 지방의 강위에 도착했다.
그의 부하 공개란 사람이 홀연히 꿈을 꾸었는데, 머리가 희고 긴 흰 수염을 기른 한 노인이
나타나 울면서 말하였다.
"나는 내일 큰 난을 당하게 됩니다. 바라건대 나를 꼭 좀 구해주시오. 훗날 반드시 보답하겠
습니다."
꿈을 깬 공개는 참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튿날 옆을 지나가던 배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무슨 일이 생겼나?'
공개는 혼자서 생각했다. 강위에 큰 수달피 한 마리가 물위에 떠올랐다 가라앉았다하는
것을 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구경하며 소리를 지르며 그물을 던져 잡고있었다.
수달피는 잡혀 배위에 올라왔다.
공개는 어젯밤 꿈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동하여 주저하지않고 오백냥을 꺼내 그 이웃배의
선원들로부터 수달피를 사가지고 방생하려고했다.
모두들 그 수달피를 팔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고약하게 생긴 진씨집안의
네째아들은 고집을 부리고 반대했다.
수달피 파는 것을 반대할 뿐 아니라 곧바로 쇠창을 꺼내서 무슨 앙갚음이나 하는 듯이
수달피의 머리에다 대고 찔렀다. 그러자 삽시간에 머리에서 선혈이 흘러나와 바다를
빨갛게 물들이고 수달피는 죽고 말았다.
"하하하! 수달피 고기가 가장 영양이 있고 맛이 있지."
진사는 혼자서 너털웃음을 웃었다. 사람은 모두 잔인한 습성이 있어서 무지한 사람들은
모두 진사의 말을 곧이듣고, 모두 같이 어울려 수달피 고기를 나누어먹었다.
수달피 고기를 먹고 난 후 얼마 안있다가 고기먹은 사람은 모두 복통이 일어났다.
그 중 陳四진사의 고통은 더욱 심하였다. 그는 실신한 상태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수년간 수양을 하고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일시의 액운을 만나, 모두 다 나를
팔겠다고 대답했는데 너 혼자 반대하고 나를 찔러 죽였으니, 이제 내 목숨을 다시
돌려달라."하는 소리는 몹시 처량하고 비참하게 들렸다.
뱃사람들은 잘못을 뉘우치고 기도를 드렸으나 진사는 며칠 동안 앓다가 비참한 신음소리를
내고 죽고 말았다.
15. 돼지 도살의 업보
안휘성 합비현 배두진에 돼지만 20여년 잡아파는 것을 업으로 하는 宣四(선사, 선씨집 넷째)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동안 모아진 재산이 적지않아, 집이 세 채, 하나는 자기가 살고 두 채는 세를 주고 있어 형편으로
따지자면 그런 생활을 하지않아도 될 처지였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고 더욱이 그는 살생에 이골이나서, 여전히 매일 칼을 번쩍번쩍
갈아서 무수한 돼지를 잡았다.
하루는 새벽녘에 한편으론 물을 끓이고, 한편으론 돼지를 잡고 있을 때 그의 처가 측간에를
가니, 그 곁에 있는 돼지우리에 어떤 부인 둘이 누워있었다.
자세히 보았지만 틀림없이 사람이 누워있는 것이었다.
그는 급히 뛰어가 자기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당신 이제 돼지 잡는 것 그만두시지요."라고 하자,
남편은 큰 소리로 웃으며,
"당신이 눈이 어른거려 잘못 보았겠지. 그럴 리가 있겠소?"
선사의 처는 돼지잡는 칼을 변소에 던져버렸다.
그 날은 남편이 돼지를 죽이지는 않았으나
전혀 뉘우치는 빛은 없었다.
이튿날 그의 처가 친정식구들을 불러와 선사와 담판을 지었다.
"만약 당신이 계속 이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나는 당신과 헤어지겠소."라고 말했다.
선사는 고집을 부리고, 여러 해동안 살아온 부부간의 정도 고려않은 채,
"헤어지면 헤어졌지, 뭐 그리 두려울게 있어."하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결국은 토지와 재산을 등분하여 가지고 처는 생김생김이 단정한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서 살았다.
선사는 여전히 돼지잡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었다.
마지막엔 집안의 돼지를 다 죽이고 자식이 돌연히 까닭없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고
따로 사는 처가 통곡을 했는데도 선사는 조금도 깨닫는 기미가 없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번의 자극으로 돼지잡는 일은 그쳤으나, 이젠 또 도박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었다.
그러더니 점점 더 도박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운이 나빠서인지 혹은 귀신이 장난을 부리는지 宣四(선사)가 도박을 하기만하면 잃었다.
있는 돈 모두 날려보내고, 마지막엔 나누어가진 전답까지 노름빚으로 다 몰아넣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돼지잡는 일을 시작했으나 한달이 못되어 괴질병을 얻어 입과 코에서
때없이 짙은 피가 흘러나오며, 몹시 고통스러웠다.
조석으로 침대에서는 돼지가 신음하는 듯한 소리를 내곤했다.
이렇게 한 일년동안 시달리며 고생하다가 결국은 그 병으로 참혹하게 죽고말았다.
16. 벼락맞은 소백정
사향필기(四鄕筆記)라고 하는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청나라 도광원년 4월 초여름 정오 하늘에는 먹구름이 빽빽이 차있고 햇볕은 없었다.
돌연히 비바람이 몰아치며 뇌성벽력이 치니 심히 무서웠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급히 피했는데 이 때에 한 골목길에 어떤 사람이 꿇어앉은 듯한
모습으로 비참한 소리로 부르짖었다.
이 사람은 벼락에 정통으로 맞아 온 몸에 불이 붙어 얼굴은 까맣게 타고 근육은 피말려
아픔을 참지못하여 입술을 깨물어 피가 흐르고 양 눈에선 눈물이 쏟아져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세상에 형벌이 많다고는 하나, 어찌 벼락을 맞아 영혼까지 갈기갈기 찢기는 이런 고통이
또 있을까.
화상을 입어 몸뚱이는 차마 볼 수 없는 형태로 흐느적거려서 금방 벌레라도 온 몸에서
꿈틀거릴 것 같았다. 그 사람은 타서 헝클어진 자신의 살덩이를 한 조각 한 조각씩 뜯어서
자신의 입에다 쑤셔넣는데 차마 옆에서 그 흉측한 광경을 볼 수 없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구역질이 나게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뜯어먹으며 한편으로는,
"야, 쇠고기 맛있다. "하며 소리쳤다.
옆에서 보는 사람은 머리끝이 쭈뼛쭈뼛하였다.
그는 이런 형태로 몇 달을 버티다가 죽고말았다.
죽은 후의 그의 몸뚱이는 뼈만 남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하였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죽었어?"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이 도계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도살쟁이 범등산이다.
그는 일생동안 얼마나 많은 소를 죽였는지 모르는데, 한편으론 팔고 한편으론 자기가
먹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뽐내면서 사람들에게,
'나는 절대로 가난으로 고생은 안해. 세상엔 소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소가 있는한
나의 재산은 줄어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는 원래 성질이 포악하여 남과 다투기를 잘하고, 다투기만하면 사나운 맹수와
같아서 모두들 그를 무서워했다.
그런데, 이렇게 죽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어머니가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17. 소를 잡는 백정의 몰락
복건성 정화현 동향마을에 조부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도살에 종사하는
백정이었다.
매일 적어도 소 세마리 이상을 죽여 수입이 괜찮았다.
점점 그의 재산은 불어나 얼마 안가서 면내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조부가 늙자, 그 아들 광화가 또 아버지의 도살업을 계승하였다.
그 집 대문앞에는 둥그런 커다란 나무도마가 있는데 전문적으로 소대가리를
빠개는데 쓰는 것이었는데, 웬일인지 이미 여러 해동안 쓰지않고 있었다.
괴상한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둥근 나무도마가
갑자기 소대가리로 변해서 거리를 누비며 굴러다녔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또 어떤 사람은 밤에 조씨 집에서 많은
소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사흘 째 되는 날 조씨 아들 광화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쇠고기를 파는데, 한 병사가
와서 흥정을 하였다.
서로 손해를 안보려고 우기다가 결국은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광화가 홧김에
내리친 칼에 그 병사가 머리가 깨지고 유혈이 낭자하여 병사는 죽고 말았다.
조부구는 늙어서 기운은 없고, 아들이 살인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아 일어서다가 정신을 잃고 쓰려져 결국 죽고말았다.
아버지는 멀쩡히 산 채로 놀라죽고 아들은 살인을 하여 형을 받아야하고 조씨 집안은
이렇게하여 몰락하였다.
가련한 고아들과 부녀자들은 아침저녁 끼니도 어렵게 되었다.
"참 알 수 없는 노릇인데, 그 집안이 이렇게 가난해질 줄이야."하고 어떤 사람은
한탄했다.
"이것은 살생의 업이 너무 지나쳐 필연적으로 닥쳐야할 재앙이오."
어떤 불교신자는 말하였다.
"그러게 사람이란 가능한한 살생을 피하고 화기애애한 얼굴을 해야하며 모두들 육식을
적게해야 서로 화나는 일도 적어 이웃간에 안녕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오."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동향마을에 도살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모두 조씨 집안의 패가참상을 교훈을 삼아 다투어 직업을 바꾸었다.
그 후 그 지역은 아주 태평한 마을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청나라 가경 말년에 있었던 실화로서 쇠고기를 즐겨먹는 것은 실로 백해무익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18. 아들을 쏜 사슴 사냥꾼
산도지방은 풍경이 아름다워 어디를 둘러보나 푸릇푸릇한 청산이었다.
그러나, 오당이란 사람은 여기에 아름다운 산수풍경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들과 같이 이 산에 자주 오는 손님이었다. 그는 사냥하러 온 것이다.
오당은 화살과 화살통을 등에 메고 나서면, 사냥의 명수 그 말이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활을 쏘되 헛발을 쏘는 일이 없었으며 마음가는데 손이 가고,
손이 가는데 마음이 몰아져서 백발백중이었다. 어떠한 맹수라도 그 눈에 한 번
띄면 난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사자를 만난 것처럼 난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이 때에 멀리 한 마리의 뿔달린 새끼동물이 어른거렸다. 새끼사슴이었다.
이 귀여운 새끼사슴도 오당의 동정을 받지는 못했다.
그는 재빨리 화살을 꺼내 활에 재어 '슝'하고 정면으로 조준하여 쏘았다.
새끼사슴은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왼쪽 곁엔 다른 한 마리의 큰 사슴이 그 광경을 보고 상심하여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어미인 듯 새끼의 죽음을 비통해 하는 것 같았다.
사슴은 한 번 슬픈 소리로 울어대더니, 인기척을 느끼곤 곧 숨어버렸다.
오당은 아들과 같이 풀이 우거진 숲에 숨었다. 그 사슴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린 것이었다.
그 사슴이 다시 나타나 새끼 사슴의 상처를 핥고 있었다. 이 때를 놓칠 새라
오당은 또 화살을 쏘아 새끼를 핥아주고 있는 이 어미 사슴까지 쓰러뜨리고
말았다.
두 마리의 사슴을 잡은 오당이지만 아직도 만족을 못 느끼고 이리저리 둘러보아
또 사슴이 나타나지 않나 살펴보았다.
과연 저쪽 멀리 사슴 한 마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활을 당겨쏘았다.
그 사슴도 땅에 쓰러졌다. 그런데, 화살을 맞은 사슴의 비명소리는 사슴소리
같지않고 사람의 비명소리 같았다.
급히 뛰어가 살펴보니 화살에 맞아 죽은 것은 사슴이 아닌 자기 아들이었다.
오당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시체에 엎드려 애통해하였다.
그 때 공중에서 낭랑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당아, 너의 자식이 죽으니 너도 슬픈가? 사슴이 새끼를 사랑하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느냐? 네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사슴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외치는 소리는 온 산에 메아리쳤다.
그가 이상히 생각해 머리를 들고 공중을 바라보고 있을 때 덤불 속에서 맹호
한 마리가 나타나 활을 쏘는 그 손을 덥석 물어자르니, 그는 그대로 쓰러져
피에 묻혀 죽고 말았다.
19. 개처럼 죽은 보신탕 애호가
풍습읍이란 조그마한 소박한 마을이 있었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농사가 업이었고 모두 다 근검절약하고 자기본분을 지켜 생활이
안락하였다.
그런데, 유독 심이라고 하는 주민은 소자본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 경영에 능하여
적지않은 돈을 모으게 되었다.
그는 평소에 술마시기를 좋아하였고, 더욱이 개고기조림을 안주로 술마시는 것을 즐겼다.
향기 그윽하고 뜨끈뜨끈하고 얼큰한 개고기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는 것은 정말 인생의
최고의 쾌락이라고 그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평소에 늘 친한 친구를 불러 개고기로 주연을 베풀기를 좋아했다. 그리하여, 평생동안
그로 인해 죽은 개는 부지기수였다.
건륭 병자년에 그는 점점 몸이 쇠약해지더니 끝내는 병으로 눕게되었다. 그의 병은
의사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안되어 병세는 더욱 심해지고 사람이 자주 혼미 속에 빠져서 인사불성이 되곤했다.
혼미 중에 그는 이렇게 말을 했다.
"또 검은 개 한 마리..아이고 무서워! 또 얼룩개가 나한테 덤벼드네. 또 개 한 마리 두 마리..
저렇게 많은 개가 나에게 덤벼드네. 아이고 무서워!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그러나 처자식의 눈엔 개가 보이지않았고, 그가 공중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발을 구르는 것이
마치 장님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손을 휘젓는 것과 같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아마도 미친 것 같군."하고 말했다.
그가 죽을 때는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양 손을 땅에 딛어 개모양을 하고, 개 짖는 소리를 몇 번
지르더니 그냥 죽어버렸다.
20. 소잡는 칼에 혀가 잘려죽다.
어느 허술한 점포에서 돌연히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텅하고 무엇이 떨어지는가싶더니, 한 사람이 땅에 쓰러져있었고, 입에선
선혈의 붉은 피가 마치 샘물이 솟아나듯 펑펑 쏟아져 쓰러진 그 사람의
주위사방으로 흘러퍼졌다.
이 때 여러 사람이 점포에 들어가 살펴보니 땅에 떨어져 죽어있는 사람은
바로 소잡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백정이었다.
성이 수씨인 백정은 참으로 참혹하게 죽어있었다.
예리한 칼이 그 사람의 혀를 잘라 죽게한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온 마을에는 수씨 백정이 처참하게 죽은 원인에 대해서
쑥떡 공론이 돌기 시작했다.
사건의 경과는 이러하였다.
수씨는 원래 소를 잡는 백정으로서, 매번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소의 혀를
잘라내어 술안주로 삼았다. 평생동안 수도없이 많은 소를 잡는데 쓰던 칼을
문 위 선반위에 돌려놓았다.
그런데, 그 날 돌연히 두 마리의 쥐가 그 선반위에서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백정 수씨는 호기심에 차서 입을 떡 벌리고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생각했으랴? 그 쥐들이 싸우면서 칼을 건드려 떨어뜨렸다.
그 칼은 입을 벌리고 바라보고있는 수씨의 입에 명중되었다.
조금도 벗어남이 없이 수씨의 혀를 두동강 내고 말았다. 그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이웃사람들이 백정 수씨가 죽은 진상을 알고 모두 탄식하였다.
"그 사람이 평생 살생도 살생이지만, 소 혓바닥을 잘라가지고 술안주로 배를 채우더니
결국은 쥐 두 마리가 휘두른 칼에 목숨을 빼앗기고 말았구나.
보아하니 인과응보라. 이런 것을 보면 인과응보가 헛소리가 아닌 것이야."
21. 자라가 빼앗긴 목숨을 복수하러오다.
오령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부자로서 매우 호화롭게 생활하고
있었다.
오령은 평소에 특별한 음식을 좋아하였다.
한 번은 오가에 큰 잔치가 열려서 요리사는 시장에 나가서 커다란 자라를 한 마리
사왔다.
요리사는,
"이렇게 큰 자라의 고기맛은 특별히 좋을거야. 우리 집 도령이 좋아하실거야."하며
칼을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그 때 자라목을 치려는 순간 자라는 눈물을 떨구며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요리사는 그 모습을 주인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이런 것을 어떻게 죽이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오령은
"바보같은 자식, 칼 이리 내놔. 내가 죽이겠다."하며 호통을 쳤다.
그리고는 살기등등하여 번쩍이는 칼을 들고 흉악한 모습으로 눈을 부릅뜨고
부엌에 들어와 땅에서 눈물을 떨구고 있는 큰 자라를 향하여 우렁차게도 칼을
내리치니 그 자리에서 자라의 목이 떨어졌다.
떨어진 자라목은 팔딱 몇 번 뛰다가 부엌천장에 올라가 붙었다.
"아, 맛있다, 맛있다."
오령은 한편으론 먹으면서 한편으론 찬탄하였다. 그러나 고기 몇 조각을 먹었을 때
돌연히 눈이 흐려지며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아이유, 이렇게 많은 자라가..."하며 그는 공포에 질려 소리를 쳤다.
"여기도 있네."하고 오령이 두려워하자 그 아들은 오령을 부축해 침실로 들어갔다.
"여기도 모두 자라야."하고 무서워 떨면서 침대가리개를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그 다음엔 "아이고야, 아이고야."하면서 아프다고 소리치며 신음하였다.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수백 마리의 자라가 발을 물어뜯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눈엔 한 마리의 자라도 보이지아니했다.
3일동안 오령은 이렇게 고함을 지르며 고통을 이기다가 결국은 발작하며 죽고말았다.
22. 살생의 업보로 악창이 나 죽다.
청나라 때 소흥지방에 위새라고 하는 무위도식하는 건달이 있었다.
그는 총 쏘는 재주가 좋아 사냥을 잘하였다. 특히 날짐승을 잘 잡았는데 새를 잡으면
팔기도하고 요리도하여 술안주로 하였다. 그의 손에 죽은 새는 부지기수였다.
그는 또 강에 나가 장어도 잘 잡고 개구리도 잘 잡고 거북이와 자라도 잘 잡았으며
심지어는 독약을 놓아 새를 잡기도 했다.
또 약을 뿌려 많은 고기를 잡고, 새 둥지를 허는 등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골라가면서
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살생을 하지말고 농사를 짓고 농업에 종사하라고 권하였다.
그는 들은 체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남의 일에 간섭한다고 그 사람들을
미워했다. 그런 생활이 길어지자 그 죄업이 갈수록 깊어져 결국은 악창의
병을 얻었다.
온 몸에 난 두드러기는 산비둘기 알만큼씩 크고, 그 두드러기 속은 쇠구슬같은
것이 들어있는 듯이 단단하고, 건드리면 아프기가 그지없었다. 몸에 열이나 타는
듯하였고, 드디어는 온 몸이 헤겨지기 시작하였다.
그 자리에 누워 아픔을 견디지못하여 비명을 질렀다.
며칠이 지나자 그는 고통 속에서 죽었다. 그가 죽자 많은 개구리, 자라, 거북이, 양 등과
각종 새떼들이 날아들어 그의 살을 모두 뜯어먹어 버렸다.
그의 처는 원한의 보복이라고 생각하고 그 새들을 어찌하지 못하였다.
삽시간에 뼈만 남고 그의 후손이 끊기고 말았다.
23. 현세에 나타나는 업보
이 이야기는 아주 잔인한 이야기이다.
옛날 어느 현장이 평소에 가위 발바닥과 살아있는 양 심장을 즐겨먹었다.
그가 거위 발바닥을 먹을 땐 거위를 가마솥위에 매달아놓고 밑에서 불을
세게 때서 솥이 점점 뜨거워지면, 거위의 발바닥이 점점 부어오르고 온
몸의 피가 그 발바닥에 집중되는데, 마지막엔 거위가 죽게되는 것이다.
거위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비명을 지르곤하였다.
그 현장은 고통받는 거위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으며 그는
또 하인들에게 명하여 양을 산 채로 기둥에다 묶어놓고 산 채로 양의 가죽을
벗기고 겨드랑이밑 늑골을 칼로 잘라 손을 넣어 양의 심장과 간을 꺼내어
요리를 하여 술안주로 하였다.
현장은 이렇게하여 얼마나 많은 거위와 양을 죽였는지 모른다.
모두 이런 방식으로 잡아먹었다.
어느 날 선비차림의 사람이 들렀다. 그에게 살생을 하지말라고 권하였다.
현장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기는 커녕 오히려 그 사람을 야단쳤다.
"당신은 장래에 지독한 등창에 걸려 죽을 것이오." 라는 말을 남기고 선비는
가버렸다.
과연 얼마 안되어 현장은 악창에 걸렸다. 의사는 다 찾았으나 그의 악창을
고쳐주는 의사는 없었다.
그는 결국 악창으로 죽게되었는데, 숨이 떨어지기도 전에 온 몸이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였다.
24. 개에 물려죽은 개백정
가정 남상읍에 채륙이라고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개를 잡아 그 고기를
파는 것을 업으로하는 사람이었다.
때는 마침 섣달 그믐깨라 개고기가 가장 잘 팔리는 때라서 한 밑천 잡을 생각
을 하니 기뻤다.
여러 해 개를 잡는 것이 습관이 된지라 개 잡는 방법도 아주 가볍고 편하게하고
있었다.
이 날도 채륙은 해질 무렵에 개를 잡기위하여 개를 항아리 속에 집어넣고 뜨거운
물로 개가죽을 불려 개의 털을 뽑는 방법으로 개를 잡았다.
그는 개를 잡다가 돌연히 눈꺼풀이 팔딱거리고 귀가 윙윙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이 불안하며 보통 때와는 다른 느낌을 느꼈다.
개를 다루는데 조금 소홀한 바람에 자는 듯이 숨이 끊어진 것 같았던 개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서 항아리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개가 뛰쳐나오는 바람에 크게
놀랐다.
번개처럼 빠른 솜씨로 그는 개를 다시 넘어뜨렸다. 그 개도 몸을 구부려 펄떡 뛰어올라
덥석 그 사람의 팔뚝을 물었다. 개가 얼마나 세게 물었던지 그는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의 가련한 비명소리를 듣고 이웃사람중에 한 사람이 나무 몽둥이를 들고 나와 개의
아가리를 벌려 떼었으나 이빨이 마치 쇠갈고리처럼 채륙의 어깨에 박혀 무슨 수를 써도
빠져 나오지를 않았다.
아무도 이 다 죽어가는 개가 이렇게 강력한 힘을 내리라곤 생각지 못하였다.
개의 이빨엔 독이 있었던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독은 점점 몸에 스며들어가 심장까지
독이 뻗치게되었다.
채륙은 땅에서 이리구르고, 저리 구르고 아픔을 견디지못하여 두 눈에선 눈물이 줄줄
흐르고 똥오줌을 다 싸게 되었으나 온 몸의 힘이 다해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이어서 얼굴색은 변하여 파랗게 질리고 두 눈은 툭 튀어나와 보기에도 흉측하였다.
마침내 껄덕껄덕 두어 번 숨을 들이키는 것 같더니,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니 눈 깜짝할
사이에 개에게 물려죽고 말았다. 그가 죽자 개는 그제야 물었던 입을 놓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채륙이 개에 물려죽은 이야기가 소문으로 온 읍에 퍼져나가자 읍내 사람들은 모두
무서워 감히 개고기를 먹으려 하지않았다.
25. 새를 쏘아죽인 업보로 새에게 쪼여죽다.
넓은 이마, 성긴 머리카락, 흰 창을 내놓고 늘 흘겨보는 눈, 매부리코, 처진 입술,
엉성히 드러내 보인 이빨, 그러나 작달만한 키에 뚝심이 센 이 사람이 바로 사람마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보산 이북재란 사람이다.
이북재는 정당하지 못한 일에 머리가 잘 돌아가 하려고하는 일이 욕심이많고, 성격이
남달리 잔인하였다.
그 집은 매우 부유하였고, 집은 지세가 바다에 면하여 집 사방에 대나무를 잔뜩 심어
습기를 방지하였고, 많은 새들이 그 집 숲속에 집을 짓고 살았다.
이북재는 어렸을 때부터 총을 쏘아 새를 잘 잡았다.
"아, 또 한마리 잡았다!"
새집이 둥지 채 떨어지자 그는 박수를 치며 좋아하였다. 후에 성인이 되어서도
그는 더욱 수렵을 좋아하여 사냥하는 것을 일상의 소일로 삼았다.
세월은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니 이북재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다.
어느 날 새벽에 집사람들이 보니 그가 창가에 서서 두 손으로 무엇을 쫓는 듯하였다.
그러더니 손으로 이마를 만지면서,
"그것들이 쪼는 것이 되게 아프네."하고 말했다.
그러더니 뒤이어 또 손으로 이마를 가리었다. 그 다음엔 어깨를 또 가렸다.
다음엔 또 팔뚝을, 등을, 허벅지를, 복사뼈를, 계속해서 손을 이리저리 옮겨
가면서,
"아야! 아야!"하면서 외치는 것이었다.
그는 새, 새, 새 하면서 공포에 떠는 모양이 마치 고양이를 본 쥐와 같은 형상이었다.
그러나, 집식구들에겐 새 한마리는 커녕 반마리도 보이지않았다.
"나 안되겠는데...."
돌연히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두 손과 발에 경련이 일어나 발을 뻗칠 수가 없었고,
머리는 앞으로 쭉 내밀어 몸을 엎드리는 형상을 하였다.
그 모습은 마치 공중에 나는 큰 새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집안 사람들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탄식하였으나, 구출할 방법이 없었다.
과연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이 새의 살생자는 죽고 말았다.
26. 닭고기를 즐겨먹던 딸이 요절하여 돼지로 환생하다.
기효란 선생의 저술 속엔 이런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하남성
신진현 모 왕씨의 이모의 이야기이다.
한 호화로운 관선이 부두에 닿았을 때 한 고관 집 중년부인이 창가에 기대고 서서
엉엉 울고 있었다. 그때 나도 유모와 같이 그 배에 있었다.
부두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경삼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그 부인을 알아보고,
"아이유, 현감부인이 아니세요?"
그렇다. 그는 현감부인이었다. 그런데, 무슨 슬픈 일이나 원한이 있어서 그렇게
울고 있는 것일까? 마침내 유모는 현감부인의 하소연을 듣게되었다.
실은 현감부인이 한 괴상한 꿈을 꾼 것이다.
꿈 속에 어려서 죽은 딸이 사람들에게 결박을 당한 채 함부로 찔리고하여 비참한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현감부인은 계속 비참한 딸의 비명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것이었다.
유모가 답답해서 배의 창문을 활짝 열어 제치더니, '아!'하고 깜짝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옆에 있는 배에서 도살쟁이가 태어난지 얼마안된 새끼돼지를
죽이고 있었다.
돼지에게서는 선혈이 쏟아지고 돼지는 비명을 지르니 그 모습이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특히 돼지가 발을 묶은 빨간 끈이 현감부인이 꿈속에서 본 딸의 손을 결박했던
빨간 끈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곧 부인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였다.
부인은 그 말을 듣고 기절할 듯이 슬퍼하였다.
부인은 곧 많은 돈을 내어 그 돼지를 모두 샀다. 비록 회생시킬 수는 없지만 몸뚱이
라도 온전하게 보전시키기 위해서였다.
후에 현령 집에서 심부름하는 종복들이 그 소식을 알게되었다. 입빠른 무리들은
그 사건을 이리말하고 저리말하고 돌아다녔다.
그들의 딸은 한 끼도 닭고기없이는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위해서 잡은 닭만도 7백마리도
더 되었다. 그 때문인지 그 아이는 열여섯에 요절을 하였으니, 어찌 닭고기를 너무
좋아한 업보가 아니겠는가!
27. 소를 도축한 과보
구리빛의 튼튼한 피부, 얼굴엔 뻐청수염, 불이 번득이는 듯한 흉악한 빛을 내는 소망울같은
두 눈, 이것이 바로 고연룡의 모습이었다.
그는 이 지방에서 소잡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중에 손꼽히는 사람으로 독종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으로 모두들 호랑이같이 무서워하였다.
고연룡의 집은 시장부근에 있는 아주 넓은 목조건물이었다. 거기에는 고연룡과 그의 처와 두
아들이 함께 살고있었다.
그 두아들들도 모두 힘이 장사고 행동이 거칠어 그의 아버지와 같았으며
소를 잡는데 매우 익숙하였다. 그의 처도 칼질솜씨가 아주 제법이어서 남편에 뒤지지않았다.
방안에는 널찍한 구리로 만든 침대가 있었는데 고연룡부부가 쓰는 것이었다. 두 아들은 땅바닥에
깔 것을 깔고 그냥 잤다. 집안에 설비는 별 것 없었지만 굉장히 큰 나무도마가 있는데 그것은 소를
잡는데 쓰는 것이었다. 문에는 여러가지 갈고리가 걸려있는데 소다리, 소머리, 소어깨, 소꼬리 등을
걸어놓고 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이렇게 전식구가 소를 잡아 파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으니 그 들에게 살해된 소가 얼마나될지 부지
기수였다. 후에 고연룡이 돌연히 눈병이 생겼는데 고치지를 못하고 끝내 실명하고 말았다. 참으로
업친데 덮친다더니, 고연룡의 처도 나이가 많아서인지 알 수 없는 괴질에 걸려서 몸 전신이 헤겨지고
벌려져 옷자락이 스치기만하여도 칼로 찌르는듯이 아팠다.
고연룡의 처는 침대위에서 혼자말로,
"저승의 현관은 마치 소를 잡는 방법으로 나를 이렇게 칼로 찔러서 아리게하겠지? 아이고
아파라."
그 여자의 목소리는 처참하기 그지없이 차마 들을 수 없었다.
그를 보살피는 아주머니는 이것을 낱낱이 목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살생을 업으로
하는 업보가 무섭다는 것을 알았고, 그 중에서도 소를 잡는 업보는 더욱 크다는 것을 알았다.
소는 사람들에게 공이많은데 왜 하필이면 소를 잡아먹을까하고 탄식하였다.
28. 개미를 몰살시킨 업보
넓고 푸릇푸릇한 묘포(꽃밭)에는 구사륙이 열심히 정리한 덕분에
매우 정결하여 보는 사람마다 아름답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묘포 안에는 사람 눈을 즐겁게 해주는 꽃나무가 있었다.
구사륙은 공부를 많이 아니했으나 원예에 대해서 경험이 풍부하고 재능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보고 원예의 명수라고 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를 무지하다고
하기보다 오히려 잔인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원예하는 사람들에겐 벌레를 잡아죽이는 일이 당연하다 하겠지만 그는 평소에 기어다니는
벌레도 잔인하게 죽이곤했다.
한 번은 그가 꽃나무를 심다가 상당히 깊은 개미굴을 발견하였다.
그 안에는 무수한 개미들이 왔다갔다했다. 사륙은 급히 부엌으로 뛰어갔다.
펄펄끓는 물을 한 냄비 들고 나와서는 주저함이 없이 개미구멍에다 부어댔다.
물론 개미들은 말할 것도 없이 뜨거운 물에 몰살당한 것이었다.
사륙은 좋다고 깔깔대며 웃어댔다.
무더운 여름이 되었다. 더위는 사람을 견딜 수 없게하였다.
사륙은 웃통을 벗고 평소와 다름없이 화원에 가서 일을 하였다.
콧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제법 득의연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상당한 저축이 되어있었고 나이 삼십이 넘었으니 결혼도 할 때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혼자서 상상하였다.
장씨집 둘째 딸이 미모가 일색인데 몸매도 날씬하며
그 부드럽고 하얀 손은 아주 고왔던 것이다.
'만약 그녀를 처로 맞이한다면 그는 참 복있는 사람이겠지.
그러나 못할게 뭐가 있어!'하며 혼자서 이런 일을 상상하곤
하였다.
'돈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던데!'하면서 입이 저절로 찢어지도록
웃곤 하였다.
그 때에 그는 홀연히 자신의 가슴팍 근처에 빨간 점이 여러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몇 개나 되나 숫자를 헤어보려니까 삽시간에 전신으로 번지더니 물집이 잡혔다.
그리고, 빨간 물집을 만지니 그 속에서 개미가 튀어나오면서 자지러지도록
아팠다.
그는 그러한 고통을 며칠을 못참고 견디다가 그는 마침내 죽고 말았다.
29. 업으로 생긴 병을 참회하다.
항주의 황수원은 사람들이 다 아는 상처를 잘 치료하는 명의로서 이름이 원근에
널리 알려져있었다.
하루는 얼굴이 흉악하게 생긴 장년의 젊은이가 한 사람 그의 앞에 나타났다.
집안에 들어서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연이어 아프다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윗옷을
벗고 등을 내밀며, 황수원 명의에게 좀 봐달라고 하였다.
황수원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등에는 커다란 뾰루지가 하나 나 있었다.
말이 뾰루지이지 그 크기가 큰 대야만하였고, 그 주위엔 조그마한 뾰루지가 가득 나
있었으며 그곳에서 나는 냄새가 아주 고약하였다.
"이대로 두다가는 전부 썩겠는데..."
황수원이 이렇게 말하자,
"뭐요?" 하며 그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근심스러운 표정이었다.
황의원은 다시 말했다.
" 이 증상은 백조조왕(百鳥朝王:수많은 새가 왕을 향해 경의를 표함)이라고하는 고칠 수
없는 악성종기입니다."
황수원은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콧등에 흘러내린 돋보기 안경을 끌어돌리며 그 손님에게
물었다.
"당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겠소?"
황수원이 물었다.
"나는 평소에 새를 잡는 수렵꾼이오. 낮에는 총으로 새를 잡고 밤에는 새둥지를 헐어서
새를 잡는 일을 하며 10여년을 살아왔소."하고 대답했다.
"그러면 그렇지. 평소에 당신의 살생업보가 중하여 이런 병을 얻은 것이오. 살생한 것에
따르는 인과응보입니다."
황수원은 단호히 말하였다.
"그러면 어찌해야 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 사람은 황수원에게 물었다.
황수원은 대답하였다.
"대장부가 잘못을 알았으면 고쳐야지. 지금부터라도 살생을 하지않으면 내가 한 번 병을
고쳐보겠소."
의사는 그에게 부처님앞에서 뉘우치고 채식을 하겠다고 맹세하라고 하였다.
그 사람은 의사의 지시대로 한 결과, 반달이 안지나서 병세가 아주 좋아졌다.
그 사람은 직업을 바꾸어 채소장사를 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니 생명을 건지게된 것이었다.
30. 여우를 죽인 업보
회남지방에 왕화남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부자로 그 지방에서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었다.
장사가 잘되어 가게를 확장하려고 이웃 빈집을 정리하는데 집안 사람들이 그 빈집에서
세 마리의 영루를 발견하고 온 식구들이 소리치며 쫓았다.
왕화남은 여우를 몹시 싫어하였다. 그래서, 그 여우를 잡아 없애야 시원할 것 같아
그는 소리쳤다.
"후환이 없도록 여우식구들을 모두 없애야한다. 한 마리도 놓아줘서는 안된다."
그러나 결국 한 마리는 놓치고 말았다. 한 마리를 놓쳐 화가 난 김에 잡은 두 마리를
잔인하게 때려 죽어버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부터 그 전당포 창고에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모두들
여우가 행패를 부린다고 말하였다.
청나라 가경 을해년 가을이었다. 창고에 까닭없는 불이 나서 창고가 나서 타고있었다.
천만다행히 일찍 발견하여 많은 손해는 없었다. 그러나 또 몇달 후 똑같은 일이 발생하였다.
창고에서 여우가 장난을 치는 것으로 보였따.
이리하여 왕화남은 창고에 있는 물건과 창고를 통째로 사마녀금을 받고 진부자에게 넘겨버리려고
했다.
쌍방이 매매계약을 하기로 된 하루 전날 진씨 부잣집 식구들이 공중에서 조용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나와 왕가네 집안과는 원한이 있다. 너희는 절대로 그것을 사서는 아니된다."
진씨의 처가 그 소리를 아주 역력하게 들었다.
그래서 자기 남편에게 그것을 사지말라고 강력히
저지하였다.
매매계약이 성립되지않아, 왕화남은 울며 겨자먹기로 자기가 그 창고를 다시 쓸 수
밖에 없었다.
"아유, 내 창고에 그 많은 금은보화는 어떻게 해?"
왕화남은 미친 듯이 방에서 뛰쳐나왔다. 바지와 버선도 신지않은 채 두루마기만 걸치고
뛰쳐나왔다.
그 일이 있은 후 신축년 3월 어느 날 밤이었다.
창고에 불이 난 것이다. 그 불은 순식간에 온 집안으로 번져갔다.
그 불은 마침내 왕가네 온 재산을 다 태워 잿더미로 만든 것이다.
31. 양의 혀를 뽑아 말을 못하는 과보를 받다.
당나라때 번과라고 하는 사람이 장안에 살고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 무예를 익혔으나 사람됨이 악하지 아니하여 현청에 하층관리로
취직하여 생활하면서 늘 다른 많은 소년들과 내왕을 하였다.
어느 날 버려진 무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양 한 마리를 보았다.
양은 홀로 풀과 나무열매를 따먹고 있었다.
반과는 다른 사람과 힘을 합하여 양을 붙잡아 집으로 끌고갔다.
도중에 양이 "메에~ 메에~" 울어서 반과는 그 양 주인이 우는 소리를 듣고 올까봐
두려워 양의 혓바닥을 뽑아버렸다.
그리고난 후 자신이 영리하여 일처리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양을 잡아가지고 동무들과 마시고 즐겼다. 그런데, 뜻밖에도 일 년이
지난 후부터 반과는 돌연 혀가 점점 속으로 오므라 들어가서 조그맣게되어, 말을
잘 할 수가 없었다.
반과는 병을 빙자하여 관가에 사직서를 냈다.
현감 정 여경은 그가 거짓으로 빙자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불러 검사를 해보니 과연
혀가 거의 없고 혀뿌리가 콩알만하게 적어져 있었다.
현령이 그 원인을 묻자 반과는 붓을 들고 글을 써서 대답하였다.
현령은 부하에게 명령하여 죽은 양의 명복을 빌어주라고 하면서 반과로 하여금
법화경을 쓰게 하였다.
반과는 마침내 발심하여 독실한 신앙심을 내어 계를 지키고 채식을하며 양의 명복을
빌었다.
일년 후에 반과의 혀는 점점 커지면서 예전과 같이 되었다.
반과는 너무 너무 기뻐서 급히 현령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니 현령도 매우 기뻐하였다.
뿐만 아니라 현령은 반과를 이정으로 승격시키니, 현령 정여경은 매우 청렴결백하여
원근이 모두 칭송하였다.
후에 현령 정여경은 감찰어사가 되었을 때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였다
32. 소와 함께 솥에서 삶아진 도살쟁이
"가기 싫어도 할 수 없어! 가야해!"
흉악한 얼굴에 건장한 체격을 갖춘 도살쟁이가 안 끌려가려는 소를
힘껏 잡아채며하는 소리였다.
그 늙은 소는 자기를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것을 알고 죽어라고 버티고 안가는
것이었다.
"제기랄! 안 갈테냐!" 하며 도살쟁이는 채찍으로 갈겼다.
어느 가게 앞에 이르자 그 늙은 소는 갑자기 두 무릎을 꿇고 주저앉더니 방울만한
눈망울을 서서히 아래로 떨어뜨렸다.
가게주인은 그 모습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말을 하였다.
"여보, 얼마면 이 소 팔겠소?"
"이 소의 몸값은 팔천 냥짜리지만 팔지는 않겠소."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내가 만 냥을 낼테니 어떻소?"
마음씨 착한 가게주인은 그 소를 죽음에서 구하고 싶었다.
뜻밖에도 그 도살쟁이는 저주스러운 웃음으로 웃으며,
"이 놈의 소는 정말 고약한 소요. 내가 반드시 죽여서 꼭 살을 도려내야만 속이
시원하겠소. 얼마를 줘도 안팔겠소."하고 말했다.
늙은 소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이 벌떡 일어나더니 도살쟁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도살쟁이는 이 소가 계속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받자 그는 생각을 바꾸어서 도살장에 끌고가서
팔지않고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아예 자기 손으로 소를 잡아 토막을 내어 커다란
가마솥에 집어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날은 이미 어두웠고 쇠고기는 푹 고아야 맛이 있기때문에 우선 한잠 자고 일어나려고 방에
들어가 부인고 함께 잠이 들었다.
새벽녘이 되자 도살쟁이는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 부엌에 들어가 소를 끓이고 있는 솥을
열었다.
그런데, 부엌으로 간 지가 한참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이상해서 부인도 일어나
가마솥 가까이 가보았다.
솥뚜껑은 열려있고 부글부글 끓는 소리만 들렸다. 그런데, 수증기 속에서 괴이한 냄새가
풍겨왔다.
정신을 가다듬어 자세히 보니 이게 웬일인가?
깜짝 놀란 부인은 나무토막같이 뻣뻣해졌다.
가련한 그의 남편이 가마솥에 거꾸로 빠져서 쇠고기와 같이 부글부글 끓여져서 완전히
익혀진 것이었다.
33. 채찍을 맞아 전신의 뼈가 부서지다.
옛날에 광동지방에 문무를 겸비한 총병관이 있었다.
성은 장씨요, 이름은 성도였다. 그는 건장하고 튼튼하여 만부가 당할 수 없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뼈대가 있는 선비 집안의 후손이라 붓을 들면 훌륭한 휘호를 써내려
남에게 뒤지지않았고, 간혹 명인들이 내방하여 작시하고 시를 읊을 때도 그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명성은 사방에 전해지게 되었다. 다만 한가지 그는 개고기를 먹는
버릇이 있었다. 부엌에선 개고기를 끓이지 않는 날이 없어, 보통 사람이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같이 개고기를 매일 먹었다.
그래서, 그가 어디든 가기만하면 그 지방의 개들이 모두 그를 향해 짖어댔다. 마치
개들은 그 사람이 자기들의 원수나 되는 것처럼 놓아두질 않았다.
장성도는 관운이 형통하여 건영지방의 지방관이 되었는데 하루는 순시차 무의산을
올랐다. 날이 어두워 더 갈 수가 없어 구곡주라는 곳에 머물러 하루 투숙하게 되었다.
부하들은 그가 개고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개를 잡아 그의 식욕을 충족시켜 주었다.
이튿날이었다. 산위에 올라가면 천유관이란 도교사원이 있었는데 그 곳이 명승지란
소리를 듣고 구경하러 올러갔다.
장성도가 정각문에 들어서자 알 수 없는 한 줄기 금광이 눈을 찌르더니 앞이 몽롱해지면서
아찔하여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였다.
부하들이 달려와 그를 부축해 세웠으나 그는 말을 못할 뿐만 아니라 온 몸이 마비가 되어
실오라기만한 힘도 없었다.
마치 뼈가 없는 연체동물과 같은 느낌이 들어 모두들 정신을 차려 자세히 살펴보니 두 눈은
딱감고 있었고 이마가 서늘해져서 이미 숨이 끊어져있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그 절안의 도사인 최원영이
여러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다.
"그 분이 쓰러진 것은 대전(大殿)의 좌상이신 왕령관이 현신하여 그 위력을 보이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개고기를 먹은 사람은 이 사원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습니다. 신성함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도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분은 관위가 높은 나리이기 때문에 차마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어, 진입을 저지하지
못했더니, 결국 그의 명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군요."
그 때에 한 사람이 나서서 물었다.
"그런데 왜 온 몸이 뼈마디가 없는 것 같이 되었습니까? 참 이상하지 않아요?"
최도사는 대답했다.
"그 이유는 그 사람 전신의 뼈가 부서졌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문에 들어섬과 동시에
왕령관의 채찍에 얻어맞은 대문이지요."
설명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었다.
34. 제사에 살생을 꺼리다.
" 참 어려운 일이지요. 일생동안 그렇게 계를 지키고 경건한 생활을 했으니..."
이사희가 말했다.
"누가 아니래요? 그야말로 모범 불자이시지요."
나대광도 맞장구를 치며 대답했다.
그들이 서로 주고받고하는 말은 바로 김석연을 두고하는 말이었다.
김석연은 실로 정성스럽고 착한 사람이었다. 원근의 불교계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애석하게도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병으로 죽으니 나이 겨우 사십 세였다.
"선업을 닦은 날짜가 길지못하여 서방정토에 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저승에서의
생활이 오히려 안락하다. 그리고, 이승과의 왕래도 매우 자유스럽다."
이것은 김석연이 어떤 집안 식구의 한 어린아이에게 꿈에 나타나 한 말이었다.
또 하루는 그의 부인의 꿈에 나타나 매우 화난 얼굴로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당신은 왜 그리 어리석소? 어쩌면 그렇게도 우매한 짓을 하는거요?"
그 부인이 그 뜻을 몰라 물어보았다.
"당신, 무슨 말씀 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당신이 내 무덤 앞에 닭을 잡아다 제사를 지내지 않았소? 지금 저승의 관리가 나를 따라다니며
나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소."
"그럼 대단히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늘아이가 곧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태아가 남아
인지 여아인지 사실대로 말씀해주세요."
김석연은 탄식하면서 대답했다.
"남자아이요. 별 일은 없을 것이오. 그러나 그 이후에 또 남자아이를 낳을 것인데 그 때는 좀
어렵겠소."
"무엇이 어렵다는 것입니까?"
"모자의 생명이 모두 어렵겠소."
과연 후에 김석연의 말대로 되었다.
35.
명 만력 계축년에 진강의 전참장군이 부하 병졸을 이끌고 배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배가 강위에 떠서 서서히 앞으로 나아갈 때 진참 장군은 배선실안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끼룩끼룩 공중에서 기러기의 비명소리가 그치지않고 들려왔는데 참으로
처량하게 들렸다.
배가 백리 조금 갔을 때도 여전히 그 기러기는 배위를 선회하면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알고보니 다른 기러기 한 마리가 전장군의 부하에게 잡혀 우리 속에 갇혀있는 것이었다.
배끝에 매달아 놓은 새장속에는 한 마리의 기러기가 끼룩끼룩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배가 부두에 거의 닿을 무렵에 장 속에 있는 기러기가 돌연히 고개를 쳐들고 공중을 쳐다보며
크게 울어댔다.
이어서 화살처럼 한 기러기의 그림자가 떨어져 내려왔다. 그것은 공중의 기러기가 배에 매달아
놓은 새장을 향하여 내려온 것이었다.
새장 안에 있는 기러기는 목을 밖으로 내밀고, 두 기러기는 서로 목을 비벼댔다. 마치 다정한
부부가 서로 헤어지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모습과 같았다.
이러한 광경은 병사들의 동정을 얻지못했을 뿐만 아니라 성질이 포악한 두 병사는 심지어 칼을
들고 기러기의 목을 내려치니 순식간에 가련한 기러기들의 목에선 피가 흐르며 죽고말았다.
기러기 울음소리가 돌연히 멈추자 전장군은 선실 밖으로 나와서 그 모습을 보았다.
병사들의 잔인한 행동을 본 장군은 분노하여 말하였다.
"너희 두 놈은 왜 그렇게 잔인한가? 아무 죄도 없는 생명을 그렇게 처참하게 죽이다니!
한 사람에게 곤장 30대씩의 벌을 내리겠다."
이 두 병사는 각각 곤장 30대의 벌을 받고 또 후에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괴질병을 얻어
한 달 가까이 앓다가 모두 죽고 말았다.
36.
귀주성 어느 지방에 육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생선을 좋아해서 매끼마다 드렁허리(논장어) 요리가 없으면 밥을 먹지를
않았다.
"드렁허리가 맛이 좋단 말이야."
친구들과 식사를 할 때면 늘 이와같이 말을 하였다.
세월이 흘러가면 늙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육씨도 나이가 육십에 이르렀다.
어느 날 시장에 가서 살이 통통한 드렁허리 몇 마리를 샀다.
"생선 사시려고요? 이것 모두 신선합니다. 얼마나 살이 쪘는데요."하고 생선장사는
큰 소리로 외쳤다.
육씨는 생선가게에 다가가 팔을 걷어 올리고 생선이 헤엄쳐다니는 통 안에 손을 깊숙이
넣어 크고 살찐 드렁허리를 잡으려고 하였다.
그는 늘 이렇게 잡은 경험이 많아서 드렁허리를 만져보면 그 드렁허리가 상품인지 하품인지
그 질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육씨가 물 속에 손을 넣고 더듬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얼굴색이 남색으로
변하였다.
생선가게 아저씨가 다가와서 보니 언제 그랬는지 통 속에 집어놓은 육씨의 팔뚝에 드렁허리가
달려들어, 팔뚝을 물고 있었다.
그 비명소리에 시장 안의 생선장사들과 여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 마음씨 고운 사람이 육씨 집에 알려서 아버지를 데려가라고 하였다. 그런데,
팔뚝을 물고있는 드렁허리들은 한 마리도 물고있는 그의 팔뚝을 놓지않았다.
심지어 몸뚱이가 잘리어 나가도 드렁허리 머리는 여전히 팔뚝 문 것을 놓지않았다.
그래서, 드렁허리를 뜯어내는 데는 팔뚝을 도려내느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팔뚝의 살은 다 잘리어 나가고 뼈만 남게 되었다.
육씨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비명을 지르다가 결국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37.
은안인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집안 사람들에게 물었다.
"거참 이상한 일이다. 누가 내 나귀를 죽였느냐? 나귀를 죽여서 가죽을 벗겨 집 뜰안에
던져 놓았으니 참으로 악질이구나."
은안인의 집안의 나귀가 욕심많은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암살을 당하여 고기만 가져가고
가죽만 뜰 안에 던져진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한 두 해가 지난 어느 날, 길에서 홀연히 어떤 사람이 은안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죽을 날이 다 되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내일 와서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후 그 사람은 보이지않았고 은안인은 몹시 두려웠다.
그는 평소에 자문사의 스님과 친했으며 자주 내왕하였다. 그래서, 그는 곧장 자문사로
달려가 대웅전 부처님 앞에 앉아 밤이 길어도 법당을 나가지를 아니하였다.
이튿날, 과연 몽롱한 중에 말을 탄 사람과 몇 십명의 귀졸들이 칼과 장대를 들고 절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절로 들어오더니 멀지감치 떨어진 곳에서,
"빨리 나오너라."하며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그러나 은안인은 꼼짝도 하지않고 열심히 소리높여 염불만 하였다.
그 때 한 귀졸이 말하였다.
"어제 만났을 때 당장 잡아가야 하는 것인데, 놓아주었으니 오늘 그가 경을 읽고 염불하여
복을 닦으니 어떻게 잡아가겠소?"
마지막으로 파수꾼 하나만 남겨놓고 나머지 귀졸들은 모두 흩어져 돌아갔다.
망을 보고있던 귀졸이 그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할 일이 없어서 공연히 와서 당신을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오. 당신이 이전에
죽인 그 나귀가 당신을 염라대왕께 고발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을 데려가지않으면
사건의 결말이 나지않기 때문이오."
은안인이 그제야 내막을 얼른 알아차리고 즉시 대답하였다.
"사실은 그 때 나귀는 어떤 모르는 사람에게 암살당하고 가죽만 우리 집에 던져졌을 뿐이오.
실은 내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 미안하지만 당신이 대신 가서 나귀한테 말해주시오. 나귀를
위해서 불공을 드리고 천도재를 올려 저승에서 잘 살 수 있게 해줄 터이니 고소장을 풀어달라고
청을 좀 해주오."
"좋소. 그렇게 하겠소. 만일 나귀가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내일 다시 올 것이오. 나귀가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면 내일 다시 아니올 것이오."
귀졸은 이렇게 다짐해놓고 떠나갔다.
그런데, 이튿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은안인은 나귀를 위해서 천도재를 해주고 그 때부터 전가족이 채식을 하고 영원히 육식을
하지 않았다.
38. 살생하여 번 돈으로 먹은 과보
조용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닷게를 팔아서 사는 것으로 업을 삼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매우 효성이 지극한 사람으로 매일 게를 잡아다 팔아서 쌀과 기름을
사서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하며 살고있었다.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어떻게 선도해야할지 몰랐다. 그리고, 아들이 게를 팔아 돈을
가져오면 실컷 먹고 즐겼다.
하루는 해가 저물어 방안이 어두워지자 방에 켜는 불은 콩만해서 어두컴컴해지며
갑자기 노모가 쓰러져 신음소리를 내었다. 조용이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가서 이
광경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원래 그 노모는 무슨 정신이상의 발작을 일으킨 것이었다. 조용이 평소에 게를
시장에 가지고 갈 때에 게를 묶어둔 새끼줄을 계속 입에다 집어넣고 그것을
모두 삼키고 있었다. 그는 그 광경을 보고 못하게 말렸지만 그 어머니는 손을
뿌리치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더니 홀연히 다시 입에 넣었던 새끼줄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이런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때에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웃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그 모습을 구경하였다.
그 때 돌연히 사람들은 '아이유'하며 비명같은 소리를 질렀다.
왜냐하면 새끼줄이 입에 들어갔다 나왔다하는 동안, 장이며 폐에서 피가 그 새끼줄에
묻혀나와가지고 사방으로 피비린내를 풍겨 그 냄새가 지독하여 모두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내 아들이 번 돈으로 내가 뿌렸으니 이것은 내가 마땅히 받아야할 응보다. 이렇게 고통을
받지않는다면 장래에 더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하고 소리치며 눈물을 흘렸다.
조용은 말로 할 수 없는 비통을 느끼며 어머니 옆에 앉아서 같이 울었다.
이런 비참한 장면도 며칠이 못가서 그 어머니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39. 흉악하고 잔혹함이 업보를 나타내다.
맹병암 선생이 광애록이라고 하는 책을 지었는데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소주 어느 곳에 생선 전문요리점이 있었다. 주인 대대빈은 잔인하고 살생을 함부로 하고
몹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경영하는 이 식당이 남들보다 특별히 장사가 잘되는 것은 남모르는 원인이 있었다.
그가 개발한 특수한 요리법이 있는데 그 요리법은 대시루 속에 많은 쇠못을 박아놓고
살아있는 생선을 그 안에다 던져 넣고 고기가 이러저리 움직이는 동안 피가 흘러 그곳에
놓아둔 밀가루 국수에 피가 배기게한 후, 그 피가 스며든 국수로 요리를 하는데 특별한
맛이 있었던 것이다.
"하하, 수입이 대단히 짭잘한데..." 하면서 대대반은 주판을 놓으며 좋아했다.
그 때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직업을 바꿉시다. 이 장사는 너무나 잔인해요."
그러자,
"바보같은 녀석! 장사가 잘되는데 무엇이 어떻단 말이냐? 직업을 바꾸면 무엇으로 바꿔?
다른 장사가 이만한 수입을 얻게해줄 것 같아?"하면서 아들에게 말도 못붙이게 했다.
몇 년이 지나갔다.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가 출타하여 돌아오지않아 강기슭을 따라 아버지를
찾아나섰다.
그 때 '아, 아버지!'하며 아들은 통곡을 하였다.
강 위에 떠있는 그 아버지 대대반의 시체위에 수많은 고기들이 그의 허리를 감고있었다.
강뚝에는 점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비난이 분분하였다.
40. 개구리를 잡은 업보
청나라 도광 16년에 강음군 관청에서 농민들에게 개구리를 잡으면 엄벌에 처한다고
공고를 내붙였다.
왜냐하면 개구리는 농사에 해가되는 벌레들을 잡기때문에 오곡에 유익하고 해가 없는
동물이라는 이유때문이었다. 글 읽는 사람들은 그 공고내용을 글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러주었다.
그 때 장아희라고 하는 농민이 있었는데 그는,
"그걸 내가 알게 뭐야!"하고 무례한 소리를 하였다.
좋은 이야기로 한 두 번이나 그에게 충고하는 사람도 당연히 없어졌다.
원래 장아희는 개구리를 잘 잡으며, 글을 모르는 사람일 분만 아니라 성질이 거칠고
조심성이 엇으며 마음이 악독한 사람이었다.
해마다 그가 잡아다 파는 개구리가 부지기수였다.
"개구리 잡는 게 뭐가 나빠? 봐라, 내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데...개구리 덕분에 잘
살지않아?"
혼자서 빈정거리며 그는 개구리를 판 돈으로 술을 받아서 마시고 취하면 득의연하여
사람들에게 말하곤 하였다.
"음, 안되지. 관청에서 금하는 것에 위반된다고? 그게 무어 그리 대단해? 근년에 관청에서
금하는 것에 위반되는 것이 그 것뿐인가? 또 나뿐인가?"하면서 변명하곤했다.
어느 폭풍이 몰아치는 밤에 장아희가 실종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아침에 바람이 자고 비가 그쳤을 때 동네 사람들은 모두 강가에 나갔다.
강가에 나갔던 사람들 모두 탄식을 하면서 바라보았다.
"이 것이 개구리를 잡은 업보인 것이야."
장아희는 물에 빠져 죽은 채 시체로 떠 있었다. 더구나 수도없이 많은 개구리들이 그의 몸에
달라붙어 고기를 뜯어먹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소름이 끼쳤고 업보의 무서움을
알게되었다.
41.
상주성 밖 횡림고을에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의 별명은 독종이었다.
횡림 마을에는 숲이 좋고, 큰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 안에 갈대가 우거져서 많은 새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왕씨는 교묘한 방법으로 아주 촘촘하게 그물을 짜가지고 갈대숲에 그물을 쳐놓고
아주 사나운 매를 기르고 있었다. 그래서, 매를 날리면 새들이 갈대숲 안으로 쫓겨오는데,
그곳에 왕씨가 쳐놓은 그물에 몽땅 걸리곤하였다.
그물째로 거두어서 새를 압사시킨 다음 다음 시장에 내다가 파는데, 이것이 그가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이런 식으로 생활한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왜 사람들이 그를 독종이라고 말하느냐하면 그는 평소에 성질이 흉폭하고 도리에 어긋난
일을 많이 했을 뿐만 아니라 만약 누가 조금이라도 그가 쳐놓은 새 망을 건드리면 그는
아주 심한 욕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욕이란 욕은 다 되씹으며 종일 욕을 그치지 않았다. 이웃 마을에서도 그를 잘 아는지라
절대로 그와 상종을 안하려고 하였다.
후에 그 왕씨는 이상한 괴질병을 얻게되었다. 전신이 쑤시고 아파 견딜 수 없어 자리에
누워 뒤집어도 엎으려도 아프기때문에 종일토록 신음하였다.
용하다는 의사는 모두 청해보았으나 속수무책이었다.
평소에 독종으로 불려오던 왕씨의 횡포도 위풍도 모두 없어졌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 집 앞을 지나가면,
" 나 좀 불쌍히 봐주시고 나 좀 살려주세요."하고 애원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신음하고 애원하면 그 소리가 꼭 참새들이 짹짹거리는 것 같이
들렸다.
며칠이 지난 후 어느 지나가는 사람이 발견했는데 그는 자기 스스로 혀를 난도질하듯이
깨물고 일곱가지 구멍에서 피를 흘리면서 죽었는데 그 모양이 처참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42. 잠깐 사이동안 만번 죽다.
옛날에 한 현장이 있었는데 그는 오랫동안 살생을 금하고 있었다.
그 부인은 천성이 포악하고 먹기를 좋아하여 음식탐을 몹시 냈으며, 매일 생명을 죽여
고급음식을 해먹는 것을 즐겨하였다.
한 해에는 마침 그의 생일이었다.
그 부인은 요리상게 시켜 잔치준비를 시키니 부엌에서는 돼지, 양, 닭, 오리의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현장은 그 모습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그 부인에게 말했다.
"내일이 당신 생일인데, 잘 살고 있는 생명들이 죽임을 당하니 불쌍하지도 않소?
좀 복덕을 쌓으시오."
그 말을 듣고 부인은 화를 내며 말을 하였다.
"그런 법대로 불교를 믿고 살생을 금하면 며칠 후에 온 세상이 모두 짐승 세상이 되겠소.'
하며 들은 체도 않고 톡 쏘아붙였다.
이튿날 돼지를 죽이니 부인의 혼이 돼지의 몸에 실려 부인이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양을 죽이니 또 능지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개, 닭, 짐승을 죽일 때마다 짐승이 받는 고통과 똑같은 고통을 받게되었다.
부엌에 요리사들이 짐승을 죽일 때마다 그 여자의 혼이 짐승에 붙어 칼을 칠 때마다
심한 고통을 느꼈다.
부인은 마침내 살생이 나쁘다는 것을 크게 깨닫고, 스스로 살생을 금하였다.
먹기위해서 짐승을 죽이는 것을 금하였다.
늦게나마 진심으로 깨달아 무병장수하게 되었다.
43. 방생하여 속죄하다.
감소성 진강현 단도안항의 연안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은 곧잘 자라를 잡아왔다.
그것을 잡으면 진귀한 것이기 때문에 늘 부잣집 영감님인 조군에게 바쳤다. 그러면 조군은
높은 값을 쳐서 주었다.
거북이를 잡으면 이익이 많이 생기기때문에 이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거북이를
잡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일 년여가 지났을 때 조군 영감은 꿈에 동악대제사당에 이르러, 어떤 사람의 고소로 그 사람과
재판을 벌이게 되었다.
그 사람은 신체가 커다랗고 몸집이 크고 머리는 삼각셩으로서 강중노원(강가운데에 있는 자라)
이라고 불렀다.
그는 동악황제에게 말하기를,
"조군 이 사람은 우리 족속들을 너무 많이 죽였습니다. 마땅히 중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자, 동악황제가 말하기를,
"조군, 너는 변명할 말이 있느냐?"하고 물었다.
조군은 말하였다.
"없습니다. 저는 사실로 평소에 자라고기를 좋아하였습니다."
"무식한 이라도 죄없는 생명들을 마구 상해하는 것은 마땅치않은 일인데, 하물며
너는 상당히 학식이 있는 사람으로서 어찌 무식한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느냐?
살생을 많이하고나면 금부에서는 도저히 용서가 되지않는다."
이어서 동악황제는 위엄있게 호령하였다.
"네가 이제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살생을 금하고 방생을 많이하면, 또 개나 소나 모든 동물을
일체 죽여서는 안되고, 먹지도 말 것이며 계를 잘 지킨다면 과거의 너의 많은 죄를 속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옥중의 옥졸들을 시켜 곤장 몇 대를 쳐서 자라의 분을 좀 풀어주었다.
동악황제는 다시 분부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착한 생각을 하면 귀신은 곧 그 머리에 복을 내리느니라. 네가 만약 뜻을 세워 착한
일을 하면 훗날 반드시 착한 보답을 받을 것이니라.
그러나 만약 여전히 이전과 같이 그렇게 방자하고 육식을 즐겨하면 더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말을 마치고 귀졸들을 시켜 그를 삼엄한 동악제황의 대전(大殿)밖으로 끌어냈다.
깨어나고보니, 다시 이 세상이었다. 그러나, 양쪽 볼기짝이 파랗게 멍이 들어있었고,
아직도 멍하니 감각이 없었으며 며칠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조군은 항상 저승에 들려서 재판을 받던 이야기를 조금도 빼지않고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으며,
집안 식구들과 합심하여 자라고기는 물론, 소, 돼지, 말고기 등 모든 육식을 절대 먹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 지방의 대선사로 이름이 나게되었다.
44.
"선생님, 우리 남편 병이 좀 나았지요?"
사씨 부인이 초조해하면서 물었다.
의사선생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대답을 하지않았다.
원래 사씨의 등에는 커다란 등창이 하나 났는데 그 주위에는 또 작은 뾰루지가
무수하게 있었으며 무슨 약을 바르고 먹어도 효험이 없었다.
"이것은 많은 새들이 임금새를 향하는 형상으로서 괴질 중의 죄질이오."하고
유명한 의사가 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같이 온 다른 의사도 그의 말에 이어서 말하기를,
"이것은 참으로 돈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오."하고 말하였다.
목재상으로 부자가 된 사씨는 평소에 부지런하고 재산관리에 밝아서 맨손으로
부자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특별한 것은 음식을 가려먹는 식도락에 특별한 취미가 있었다.
그래서, 손님을 모시고 연회를 베풀거나, 혼자 먹더라도 아주 호화로운 식생활을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백조조왕(百鳥鳥王)이라고 하는 음식이었다.
이 요리는 많은 참새를 잡아서 큰 거위 뱃속에 넣고 끓여서 먹을 때 젓가락으로
거위 배를 찌르면 많은 참새들이 쏟아져나와 그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평소에 그는 그 요리를 좋아해서 얼마나 많은 새를 죽였는지 모른다.
이제 그가 그 몸에 난 병증상이 바로 그 요리이름과 마찬가지로 백조조왕이었다.
큰 등창은 왕과 같고 작은 뾰루지는 참새와 같은 것이었다. 그 뾰루지들이 곪아터지면
그는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는 동안 그 등창은 곪아터져서서 그 냄새를
차마 맡을 수 없었으니, 돈 많은 사씨이지만 별도리가 없이 이렇게 고통과 신음속에
죽어갔다.
45. 벼락이 탐욕스럽고 잔인한 사람을 치다.
법원주림(法苑珠林)이라고 하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 때 발해 장사사람으로 봉원칙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요리에 능숙하였다. 특히, 짐승을 잡고 요리를 하는데 아주 능하였다.
한 번은 관륵사의 대관이 그를 요리사로 초청하게 되었다. 그 때에 서역지방의
귀빈 우전왕이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러 왔다.
관륵사 관리는 잔치를 열어 그를 초대하였다. 먹고 남은 양이 백여 마리나 되어
우전왕은 그들을 절에 보내어 방생을 하라고 하였다.
봉은칙은 남의 부탁을 받고 충실히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도 욕심이 발동하여,
'살이 통통하게 찐 양이 내 손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그것을 그냥 놓아 줄 수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고 비밀리에 그 100여 마리의 양을 도살꾼에게 팔아 넘겨서 의외의 횡재를
하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못내 흐뭇해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 몇 년이 지나서 봉은칙은 그 일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여전히 고관대작들의
집에서 요리를 하며 수입도 짭짤하여 생활이 넉넉하고 풍요로왔다.
용삭 원년 여름 6월 달에 봉은칙이 선인문 밖을 거닐고 있을 때 홀연히 폭풍이 일더니
비가 쏟아졌다. 하늘이 먹구름이 덮여 새까많고 뇌성벽력이 치며 비가 담아 붓는 듯이
쏟아졌다.
벼락치는 소리가 어찌가 컸던지 성문 안팎이 한 덩어리가 되는 것 같았다.
벼락을 만난 봉은칙은 갑자기 당한 일이라 피할 수가 없어 그대로 땅에 엎드렸는데 두 눈은
튀어나오고, 머리는 흐트러져 어깨에 내리고 머리는 마치 떨어진 것 같이 땅에 뒹굴고 있었다.
과연 자세히보니 목이 끊어져 머리가 마치 칼로 친 것처럼 동강이가 나서 그 주위에 선혈이
낭자하였다.
"이거 그 유명한 봉은칙 아닙니까?"
그를 알아본 사람이 그의 참혹하게 죽은 모습을 보고 몹시 안타까워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그 놀라운 광경에 어안이 벙벙하여 할 말을 잃었다.
그 때 누군가 곁에서 탄식을 하며 말을 가로채는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그 욕심때문에 많은 방생양을 몰래 팔아버려 불의의
이익을 취했던 사람이니, 어찌 이러한 결과를 피할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46. 양을 도축하고 양으로 변하는 과보를 받다.
전매계가 쓴 '얼보담기'에 다음과 같은 인과응보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설경관은 전문적으로 양을 잡아 파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양고기와 양 내장을
전문으로 파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있었다.
그가 끓인 양 내장탕이 청아하고 고소하다하여 맛이 좋다고 원근에 알려져서 이 집앞은
항상 장바닥과 같이 문전성시를 이루어 사람이 몰려들었으며 어떤 사람은 먼 데서부터
그 양내장탕을 맛보려고 일부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장사는 날로 번창하고 수입은 날로 증가하여 몇 년이 안되어 큰 부자가 되었다.
그 친구들중에는 불교신자도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항상 그에게 권하였다.
"자네 이미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는데 더 욕심부릴 것 뭐 있나? 살생업보란 무서운
것이어서 그 과보를 받지않을까 참 두렵네. 내 생각같아선 빨리 손을 씻고 다른 장사를
해보든지, 또 한편으로는 선행을 좀 베풀어 그 동안 쌓인 앞의 업에 대해서 보충을
함으로써 자손들에게 해가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린다더니, 그는 친구의 말을 조금도 귀담아 듣지아니하였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코웃음을 치면서,
"어디 기다려보지 뭐. 나는 그 따위 업보니 인과니 하는 것을 믿지않아."
설경관이 40세가 되던 해에 그는 돌연히 병이 났다.
까닭없이 입이 툭 튀어나오고 아래턱이 길게 늘어지고 입 언저리의 수염이 마치
산양의 털처럼 뻣뻣해지며 두 눈에 정기가 없어지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설경관의 얼굴은 양으로 변했어."
수군수군하는 사람들의 말은 발도 없이 멀리 뻗어나갔다.
구경 좋아하는 짓궂은 사람들은 사실여부를 확인하려고 일부러 오는 사람도 많았다.
"쯧...쯧..."
혀를 차며 이상하다고 하면서 그를 동정하였다.
그는 비록 만금을 가진 부자였지만 병을 고쳐줄 의사를 만날 수가 없었고 아무
아무도 양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그 얼굴을 사람얼굴로 바꿔줄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체념하고 세월가는대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 피치못할 일이 있어서 설경관은 안휘에 갔다가 잘못하여 강물에 빠졌다.
그것을 목격한 즉시 관에 보고하여 관가 사람들이 나와 그를 건지려 하였으나
시체조차 건질 수가 없었다.
47. 혼백이 소의 고통을 받다.
구화산 지장보살 육신탑은 천수 백년간 전해내려오면서 선남선녀들이
계속 참배한 불교성지였다.
청나라 도광 20년에 어떤 신도들이 순례단을 조직하여 구화산에 이르렀다.
그 중 한 사람이 도찬이란 사람이었는데 그는 경건한 마음이 없었을 뿐 아니라
평상시에 육식을 좋아하고 살생을 즐겼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쇠고기를 좋아
하였다.
이 때에 대전(大殿)에 걸려있는 농사를 짓는 소를 죽이지말라는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 그림을 보고 도찬은 냉소를 하며,
"흥, 그런다고 내가 쇠고기를 안먹을 줄 알아?"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의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돌연히 그가 곤두박질 치더니 마치 파가 땅에 꽂혀있는
것처럼 머리를 땅에 대고 거꾸로 서서 입에서는 계속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그 때 사람들은,
"흥, 지장보살님앞에서 함부로 말을 하다니, 신성한 성전을 모독한 것이야."하며
같이 온 사람들은 말하였다.
그래서 같이 온 일행은 지장왕보살 앞에 노여움을 풀어주시라고 모두 간절히 빌었다.
한참 후에 도찬은 깨어나서 바로 서기는 섰으나 양쪽 눈이 움직이지않아 자기 스스로를
의식하지 못하고 정신이 혼미한 것 같았다.
지장보살 대전(大殿)을 떠나서 모두들 들 것에다 도찬을 싣고 산을 내려와 천보마을에
이르러 마을 사람들의 서당 방을 빌려 그 곳에서 쉬게하였다.
서당주인이 돌아와 도찬을 한 책상위에 올려놓고 흑야수의 수성이 발동할까 무서워서
그의 손발을 꽁꽁 묶어놓았다.
이튿날 깨어보니 도찬을 묶은 끈은 모두 풀어지고 서실에 있는 책이며 차도구이며
책상위에 있는 이불이며 옷가지들이 모두 흩어지고 찢겨지고 낭자하게 흩어져있었다.
도찬은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다니면서 소의 소리를 내면서 신음하였다.
도찬을 자기 집에 데려가니 식구들이 그 정황을 보고 급히 재를 올리고 맹세하기를
이제부터는 온 식구가 다시는 쇠고기를 먹지않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매년 7월 30일 지장보살 성탄일이면 구화산에 올라가 정성껏 기도하겠다고
애원하였다.
이렇게 10일이 지나자 도찬은 마침내 정신이 돌아오고, 피가 돌더니 아주 무서운 듯이
말하기를,
"아이, 힘들어! 나는 10일 동안이나 밭을 갈았어요."하고 말했다.
48. 열한 번째 소로 환생하다.
음산한 큰 건물 안에는 소머리를 하고 말 얼굴을 한 문지기가 있고, 또 양쪽에는 커다란
무장귀가 있었다.
이렇게 여러가지 춥지않아도 저절로 떨리는 형들들이 놓여있었다.
건물 중앙에도 까만 얼굴에 구리 방울같은 둥그런 눈을 가진 염라대왕이 버티고 앉아
있었다.
"아, 알았다. 내가 갑자기 죽더니 여기가 바로 저승이로구나."
윤지는 스스로 혼자서 생각하며 무서워 벌벌 떨었다.
그 때에 소머리에 말 얼굴을 한 귀졸이 큰소리로,
"굻어 앉아!"하고 소리쳤다.
그 때 그 옆에 또 한 사람이 꿇어앉았는데 자세히 보니 생전에 한 마을에 살았던
백정 이필이었다.
이필은 그의 얼굴을 가리키며 염라대왕에게 아뢰었다.
"모두 이 사람 때문이오. 만약 이 사람이 소를 먹지않았으면 나도 소를 죽이지 않았을거요."
하고 금방 변명을 하였다.
그러자 이렇게 서로 말다툼을 하자 염라대왕은 화가 치밀어 책상을 탁치며 말하였다.
"한 놈은 먹고 한 놈은 죽이고 죄는 똑같아. 소는 온 힘을 다하여 밭을 갈고 너희들의 생활을
도와주었는데 너희들이 어쩌면 죽이고 먹고 할 수가 있느냐? 양심은 도대체 어디가 있는
것인가? 먹으니까 많이 죽이게 되는 것이고, 만약 적게먹으면 적게 죽이게되고 안먹으면
안죽이게 되는 도리도 모른단 말이냐?
윤지 듣거라. 백정 이필은 지옥에 보내서 고통을 겪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너는 인간세상에서
쇠고기를 좋아학 매번 잔치를 할 때면 쇠고기가 아니면 젓가락을 대지않았으니 도대체 네가
먹은 소가 몇 마리나 되는지 알기나 하느냐?
윤지야, 너는 또 약처방을 잘못하여 열 한 사람이나 죽였다. 나는 너를 벌하여, 윤회전생을
시켜서 소가 되도록 하겠다. 그래서 세상을 살되 11번에 걸쳐 소의 목숨으로 태어나게
하겠다. 네가 쇠고기를 먹은 죄를 열한 번에 걸쳐 갚도록 하겠다. 물러가거라." 하고
염라대왕은 말을 마쳤다.
이 야기는 청나라 가경 말년에 임삭이라는 한 효자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그 사람이
염라대왕 앞에 불려가 실제로 목격한 일이라 하여 인과실록에 기록한 이야기에서 나온 것
이다.
49. 소의 몸을 받은 백정의 업보
엽아삼은 오도향에 있는 유명한 백정이었다.
그는 칼질을 잘하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얼마 안있어서 부자가 되었다.
그는 때때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보세요. 소 잡고 쇠고기 장사하는게 무어 그리 나쁠 게 있소? 보시오. 나는 지금
없는게 없지않소?"
어떤 착한 사람들은 그에게 말했다.
"그래도 살기(殺氣)가 너무 중하면 결코 좋은 일이 없어. 원한에는 앙갚음이 있고,
빚쟁이에게는 주인이 있는 것이오. 그래도 직업을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오."
"직업을 바꾸라고요? 그럴 수는 없지. 다만 내가 계속 일을 하다가 늙어죽을 뿐만
아니라 내 자손에게도 대대로 업을 계승하도록 하겠소. 하하...돈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 세상에 돈에 비길 것이 또 뭐가 있겠소? 나는 인과응보같은 쓸데없는 소리는
믿지않소."하고 엽아삼은 가슴을 뽐내며 말하엿다.
어느 날 엽아삼이 돌연히 알지 못할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러더니 이튿날 하루지나 다시 살아났다. 그런데, 그의 엉덩이가 퉁퉁 부었으며
온 몸에 멍이 들어있었다.
아무리 처와 자식들이 말려도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며 흐느적 흐느적 집밖으로 걸어나갔다.
웬 일인가 했더니 엽아삼은 마을장터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 누구에게나 이렇게 말을
하였다.
"염라대왕께서 나더러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셨소. 절대로 나쁜 짓은 하지말고
더더구나 짐승을 죽이지말라고... 나같이 저승에 가서 혹독한 형벌을 받은 고통을 어찌 이승의
생활에다 비교하겠소?"
그는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훌쩍거려서, 그 모습이 비참하여 듣는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죽고 말았다.
마침 대문에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처와 자식은 시간이 가도 그가 돌아오지 않으므로
마음이 몹시 초조하였다.
그 때 앞을 바라보던 아들이 어머니께 말했다.
"엄마, 저기 좀 보세요. 아빠가 돌아와요."
그러나 돌아오는 아버지는 사람 몸에 소머리를 하고 있었다.
50.
연지대사의
방생행복 살생불행
서문
만법 김상근(卍法 金相根)
이 책은 살생하여 불행의 업보를 받고 방생하여 행복을 누린 이야기들을 모은 방생 살생 과보의 사례집이다. 내용 중에는 불경에 전하는 옛날 인도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그 나머지 전체 이야기는 모두 중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주로 청나라 때까지 수천 년 동안 중국에 전해 내려온 방생하여 이고득락 복덕을 누리고 살생하여 죄를 받고 화를 당해 불행해진 이야기들이다.
아마 명나라 때 연지대사께서 이야기를 모아 삽화까지 넣어 처음 간행하였던 모양이다. 그 후로 뜻있는 분들이 새로 발견된 이야기들을 보태어 거듭 출판하여 법보시로 유통시켰다.
20세기 중화민국 정부가 건국한 후 여부지(呂富枝)거사가 90여 편을 모으고 다시 매 편을 백화문체로 풀이하여 출판 보급하였다. 그것을 근래에 대만 대중시의 대중시불교연사(臺中市佛敎蓮社)에서 92편의 사례 이야기를 발간하였다.
이번에는 서두에 연지대사의 계살문과 방생문을 서문 대신 게재하여『연지대사계살방생문도설』이라 표제하여 청련(靑蓮)출판사에서 출판하여 법보시로 보급하였다. 뒤이어 어느 법우가 내용을 좀 고치고 윤색하여 초등학생 교양서로 출판하였다. 이 어린이 교양서는 다시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서도 많이 읽히고 있다.
대만에서는 어느 사찰이나 들어가면 법당 앞에 무료로 법보시하는 책들이 쌓여있다. 그 중에는 이 책의 일부를 뽑아 펴낸 팸플릿식 책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책은 20여 년 전 역자가 대만 어느 절에서 무심코 들고 나와서 읽다가 재미있어 읽는 김에 바로 번역했던 것이다.
이번에 병원에 누워계시는 열전(悅田) 이복순 불자님의 자비와 법보시로 이 책이 법우님 손에도 1권 돌아가게 되었다. 다 읽고 나면 이웃과도 돌려 보아 모두들 불행을 피하고 행복한 세상 살게 되기를 바란다.
살생은 불교에서 5계의 첫째다. 생명 해치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계율이다. 사람을 해치는 일은 나라의 법으로 처벌한다. 그러나 자연환경 속에서 나는 새 달리는 짐승 물속의 고기 등을 죽이는 것은 나라의 법으로는 심한 처벌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명을 죽이거나 해치면 불교의 교리로는 죄가 된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 벌을 받게 된다.
이 책 사례로 보듯이 여러 가지로 죄 값을 치르고 있다. 예를 들면 잔인하게 소의 혀를 잘라버린 죄 값으로 그의 자식들 3명이 모두 벙어리로 태어난 과보, 개고기를 즐겨먹는 사람이 개를 잡다가 개에게 물려 사망한 과보, 평생 사냥꾼으로 살던 사람이 새가 쪼는 듯 두통을 일으켜 사망한 과보, 양 도살을 생업으로 살던 자가 말년에 양으로 변해 강물에 빠져 익사한 과보, 사냥을 즐기다 결국 자기 아들을 사슴인줄 알고 쏘아죽인 업보 등이 그 실례이다.
경우에 따라 그 업보를 금생에 자기가 직접 받는 경우, 혹은 금생에 자기 자식이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멀리는 후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장애자로 태어나고, 가난하여 어렵게 살고, 태어나 요절하는 등 참으로 두려운 일들이다. 우리가 살생을 금하고 자연환경을 잘 보호하여 살기 좋고 행복한 인간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자신들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우리가 소극적으로 살생을 금하고 육식을 삼가 하는 등안 하는생활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구해주는 일, 위기에 처한 생명을 구제하는 일처럼 적극적으로하는것이 바로 방생이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면 나라에서는 포상하고 사회에서는 의인이라고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새, 뛰는 짐승, 기는 곤충, 물속의 고기의 생명을 구해주면 나라의 포상은 없으나 알게 모르게 내가 혹은 나의 자손들이 행복을 누리는 과보를 받게 된다.
이 책에서 소개한 사례에서 보듯이 짧은 명을 타고난 사람도 방생을 하여 장수하게 되었고, 가난했던 사람이 방생하여 부자가 되었고, 천한 사람이 방생하여 귀하게 되었다. 또 방생하면 행운이 따라 과거에 급제하고 높은 벼슬을 하였다. 그러한 좋은 과보는 본인이 아니면 그 자손이라도 받게 되었다.
이상으로 미루어보아 방생을 하면 첫째 건강의 과보를 얻는다. 둘째 잘 생긴 사람으로 태어난다. 셋째 건강하게 장수한다. 넷째 총명해 지거나 총명하게 태어난다. 다섯째 좋은 직업을 가지게 된다. 등등 그 갖 가지 이익 된 과보는 다 열거할 수 없이 많다.
어떻든 살생은 불행을 초래하고 방생은 행복을 가져온다. 살생을 금하고 방생을 장려하는 것은 요새 유행하는 자연보호 환경보호 운동의 근간이다. 아무쪼록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돌려보고 깨달은바가 있어 적극적으로 살생을 금하고 방생에 참여하여 우리 세상을 극락정토로 만드는 일에 동참하기 바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http://cafe.daum.net/sambojeja (법보시전문카페 삼보제자)
5~50
출처: 연지대사의 방생행복 살생불행 (연지대사저, 만법 김상근역, 삼보제자간)
51 사냥개가 건드린 총에 맞아죽은 사냥꾼
서기 2007년 10월 17일
<SBS 저녁 8시뉴스>
<앵커>
멧돼지 사냥에 나섰던 남성이 총기 오발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데리고 갔던 사냥개가 총기를 넘어뜨리면서 실탄이 발사된 겁니다.
박성훈 기자입니다.
<기자>
경남 남해군 남면 마을 뒷산.
45살 강 모 씨는 개 12마리와 함께 멧돼지 사냥에 나섰습니다.
8부 능선에서 달아나는 멧돼지를 잡은 강 씨가 비탈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총알 한 발이 발사됐습니다.
사냥개가 강 씨의 총을 건드린 겁니다.
[김 모 씨/최초 발견자 : 복부에 피를 많이 흘렸더라고요. '왜 그럽니까' 하니까 개가 총을 건드려서 총에 맞았다. 빨리 병원 가자.]
총은 나뭇가지에 살짝 걸쳐둔 상태.
멧돼지를 잡은 직후여서 안전장치 역시 풀려 있었습니다.
엽사들은 멧돼지를 잡아 흥분한 사냥개들이 총을 밀쳐 쓰러뜨린 다음 그 사냥개의 뒷발이 방아쇠에 걸리면서 총알이 발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모 씨/엽사협회 회원 : (개가) 이렇게 온다 그러면 (총에) 팍 부딪히잖아요. 달릴 때 발바닥 전체가 아니고 앞발 가지고 달린다고. 그러니까 발가락이 우연히 (방아쇠에) 기어들어가서 격발이 되는 거라...]
강 씨는 하복부에서 겨드랑이를 관통하는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부산방송) 박성훈기자
52
어느 노승(老僧)이야기
어느 가을 날 명산대천을 찾아 만행을 하다가 해가 질 무렵에 어느 작은 암자에 도착했다. 내일이면 또 다른 명산대천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는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이 암자에서 하룻밤 묵고 갈 생각으로 마당으로 들어섰는데, 작은 법당에서 지장보살을 정근 하는 염불소리와 함께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암자에는 법당에서 기도하는 스님 말고는 아무도 없는지 인기척이 없었다. 황전이는 그 스님의 기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기도가 끝날 때 까지 마루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기도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밤 10시쯤 되었을 때야 비로소 그 스님이 기도를 마치고 법당 문을 나서다가 황전이와 마주쳤다. 그 스님은 70이 넘어 보였으며 얼굴에는 온통 주름과 칼자국뿐이었다. 젊어서 조폭을 하다가 늙어서 중이 되어 젊은 날의 죄를 참회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노승과 황전이는 밤늦도록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황전이가 노승에게 '얼굴에 칼자국이 많은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노승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황전이에게는 그 미소가 슬픈 미소로 보였다.
“이 암자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나의 얼굴을 보고 모두 놀라서 도망치듯 돌아가지요. 내가 무슨 범죄자 얼굴을 하고 있나 보지요. 허기야 내가 나를 보아도 범죄자의 얼굴입니다. 하하하...
그런데 젊은 수좌는 나를 보고도 놀라지도 않고 하룻밤 묵게 해달하고 하니, 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거든요.......”
노승은 가슴속 깊이 새겨 있는 앙금을 하나씩 털어내기 시작했다. 수행자에게 있어서 가슴속 깊이 새겨진 앙금을 끄집어내는 그 과정도 또 다른 수행이지만, 그 앙금 속에 감춰진 아픔을 말없이 들어주는 것 또한 수행인 것이다. 무엇이든 드러나게 해서 바람에 날려 보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값진 수행이 어디 있겠는가? 노승과 황전이는 그 날밤 그런 수행을 하는 것이 인연이라 밤새도록 그 앙금을 바람에 날리는 수행을 했다.
그 노승은 젊어서 영업용 택시 운전을 무사고로 한 덕분에 개인택시 면허를 얻을 수 있었다. 개인택시를 하면서 두 아들도 생겼고 아이들에게 착한 아빠가 되었다. 개인택시를 하다 보니 생활도 그런대로 여유가 좀 생겼다. 가정생활이 순탄하다보니 그는 좀 자극적인 오락거리를 찾아 택시가 쉬는 날은 사냥총을 들고 이산 저산을 찾아다니면서 사냥을 즐겼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엽총으로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쾌감에 만족하지 않고 그러한 새나 동물들이 땅에 쓰러져 파닥거리거나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잭크 칼로 새나 동물들의 얼굴과 몸 등을 찔러서 동물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그 상황을 즐겼던 것이다.
그는 동물들은 잔인하게 죽이는 중독에 빠지면서 점점 난폭한 남편과 아버지로 변해갔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것보다 가족들이 자신의 폭력 앞에 굴복하는 모습이, 죽음 일보직전의 동물들을 칼로 찌르는 것보다 더 한층 쾌감을 주었다.
이 말법시대에는 사람마다 죄가 극에 달했는지 그도 더 이상 그러한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는지, 온 몸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병원에 입원을 해야만 했다.
그는 여러번 병원에 입원을 하면서 얼굴에서부터 온 몸을 수 없이 많은 수술을 받았다. 자신이 동물을 잡아서 잭크 칼로 동물들을 찔렀던 그 자국, 그 자리를 수도 없이 수술이란 미명아래 칼로 얼굴과 온 몸을 난도질을 당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칼자국의 고통을 받은 후에 자신이 동물들을 잔인하게 죽인 벌을 지금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냥을 더 이상은 하지 않았지만 그 고통이 오래 오래 남아 있으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는 아무런 종교도 갖고 있지 않았으니 누구에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보다는 자신의 죄를 남에게 보이기가 싫었다. 그러나 그는 동물들을 죽이지 않는 대신에 가족에 대한 폭력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그는 자신이 가족에게 폭력을 쓰는 것이 동물들의 원혼들에 빙의되어 그러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영업을 하고 있는데 마침 노스님 한 분이 택시에 타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노스님에게 자신이 그동안 사냥을 통해서 동물을 잔인하게 죽인 사실과 그 벌로 지금 자신의 몸이 수술 칼로 난도질을 당했다는 고백을 하면서 절에 가서 그 동물들을 천도를 해 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스님은 차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동물을 잡아 죽인 것도 큰 죄인데,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는 동물들을 잔인하게 칼로 쿡쿡 찔러 죽이면서 쾌감을 느꼈다니 참으로 무서운 죄로다!
이 무서운 죄가 어찌, 천도를 하고 참회를 한다고 해결 되겠소? 아무도 기사님 같은 사람을 천도해 줄 사람은 없소. 기사님이 직접 중이 되어 그 동물들을 천도를 하시오!”
“아니, 저보고 중이 되어 직접 동물들을 천도를 하란 그 말씀입니까?”
“그렇소, 가족들에게 먹고 살만한 재산을 남겨두고, 깊은 산속에 홀로 암자를 하나 지으시오. 그래서 무릎에서 피가 나도록 절을 하면서 참회를 하고 지장염불을 하루 종일, 3년 동안 한 후에 득력이 생기거든 그때 스스로 그 동물들을 천도를 하시오!”
그 후 택시기사는 참회하는 마음이 생겨 그 즉시 머리를 깎고, 이곳에 있는 작은 암자를 하나 사서 하루 종일 염불참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노승은 지금 전생에 자신의 인과응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전생에 지어놓은 악업들이 시절인연이 되자 그 노승에게 드러나 더욱 나쁜 악업을 짓게 하는 것이다. 좋은 업을 지어도 모자라는 판에 악업에 악업을 더하니 어느 생에게 악업으로부터 자유롭겠는가? 참으로 악업의 생사가 끝이 없는 것이다.
누군가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말을 남겼지만, 본래 부처가 어떻게 이러한 악업을 끝도 없이 지을 수 있단 말인가? 설사 본래 부처였다 할지라도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본래 부처였다는 위선을 떨기 이전에 좋은 업이라도 많이 지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자유] **
인간은 본래 선하다고 한다.
본래 선한 이것을 부처라고
착각을 한 것 같다.
선이란 악이 있음으로 해서
존재할 뿐이다.
그러기에 착각은 자유다.
말법시대에는 생사해탈을
통해서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착각을 통해서 자유로워지려고
하고 있다.
진정한 자유란 원력과 공덕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출처: 황전스님의 오도선방(cafe.daum.net/5351650)
53. 나무아미타불 아훔님 글
저의 친한 형님도 고라니를 잡아먹고 한 달에 교통사고가 2번이나 났습니다.
고라니를 잡았다고 했을 때, 놓아주라고 그렇게 경책을 했건만.....그의 운명인지 말 안들으시더니....
결국 6개월 이상 병원신세를 지더군요
54.
어릴 적 뱀을 많이 죽인 과보
저는 예전에 어린시절(6-7살) 뱀을 많이 죽였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곳에 저수지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뱀들이 있었습니다..
개구리가 많기 때문이죠
저는 또래들과 함께 그곳에서 뱀을 잡아 죽이는 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백마리는 족히 되었을겁니다.
죽이는 방법도 잔인했죠
긴 대나무 꼬챙이로 내리쳐서 잡았으니까요
그 댓가로 저는 밤마다 뱀들에게 시달려야 했습니다.
꿈속에 뱀들은 참으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싸늘한 냉기속에 어두움..그속에서 기어다니는 수많은 뱀들...
저에게 위협을 가한다거나 공격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 뱀들은 거의 30년간 꿈속에 나타나 저를 괴롭히더니
능엄주를 하고 난 뒤부터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벌써 2년 정도 되었네요
불교 공부를 하고나니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얼머나 무서운 짓을 했는지..
뱀들을 죽인 댓가로 또다른 과보도 받았더군요
뱀들을 매타작해서 죽였듯이 저도 현실에서 엄청 매타작을 당했습니다..
맞다가 맞다가 지쳐 실성한 일도 있었으니까요
거의 3년간 맞으면서 살았습니다..
한번은 연탄구덩이속에서 각목으로 맞았는데
실컷 맞고 옷을 벗어보니 온몸에 멍투성이었습니다.
희한하게도 저를 3년간 매타작한 그 분의 띠가 뱀띠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과보는 초등학교때부터 많이 아팠죠
그 건강하던 아이가 독감..열..두통을 달고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학년별 개근상이 없을 정도로 말이죠
아무튼 능엄주로 인해서 뱀꿈은 꾸지 않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그 뱀들에게 진정으로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나무아미타불...()()()..
출처: 달마가 영어를 만났을 때 파스텔님글
55.
살생의 응보
열 가지의 불선업(不善業) 가운데 살생과 사견(邪見)의 죄가 가장 크다. 경에서 이르기를, “살생보다 더 큰 죄는 없으며, 열 가지 불선업 가운데 사견의 죄가 가장 중하다.”라고 하였으며, ‘계살방생문(戒殺放生文)’에서 이르기를, “세간에서 지중한 것은 생명이며, 천하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살상이다.”라고 하였다. 화지(華智) 린포체는 불경에 근거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약 하나의 유정을 죽이면, 오백생을 갚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큰 중생을 죽이든지 작은 중생을 죽이든지간에 반드시 오백 번의 생명으로 갚아야 한다.
살생의 업이 중한 사람이라면, 내생에 얼마나 많은 고귀한 자신의 생명으로 상환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라. 당신은 그래도 함부로 살생을 할 수 있겠는가?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한 유정(有情)을 살해하면 일 중겁(中劫) 동안 지옥에 떨어져 있게 된다.” 이와 같다면 일 중겁은 얼마나 긴 기간이며, 이 사람은 어느 때 바야흐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연지(蓮池)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하늘 가득한 악업을 지으면, 만세에 깊은 원수를 맺게 된다. 일단 죽음에 이르면 즉시 지옥에 떨어져 끊는 물, 뜨거운 불, 검수(劍樹), 도산(刀山)에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죄를 마친 후에는 여전히 축생이 되어 원한을 서로 보복하기를 목숨으로 갚으며, 축생에서 벗어나 사람이 되면 병이 많고 단명하게 된다. 뱀에 물리고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며, 칼이나 병기에 죽음을 맞는다. 혹은 형벌을 받아 죽으며, 독약을 마셔 죽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살생의 업이 불러오는 것이다.”
우리들이 어떤 한 중생을 죽이면, 자신이 죽은 후에 이러한 중생으로 변하여 같은 액난을 받게 될 것이다. 『능엄경(楞嚴經)』에서 이르기를, “사람이 양을 잡아먹으면, 사람은 죽어 양이 되고 양은 죽어 사람이 되어 이를 반복한다. 이와 같이 열 가지 종류의 중생은 세세생생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악업이 갖춰지는데, 미래세가 다하도록 끝이 없다.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 겁을 지내도 항상 생사 속에 있게 된다.”라고 하였다.
『보적경(寶積經)』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이전에 한 사람의 부자가 있었다. 그는 양고기를 먹고 싶었으나 아들이 반대할까 두려워 거짓을 꾸몄다. 그의 집 풍수가 좋은 것은 밭가에 있는 큰 나무의 수신(樹神)이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반드시 양을 잡아 신에게 공양을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아들은 그 말이 진짜인 줄 알고, 나무 옆에 작은 사당을 지어 양을 잡아 수신에게 공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자는 죽었으며, 거짓말을 하고 살생을 한 과보 때문에 축생에 떨어져 양이 되었다. 그 다음해 그의 아들은 또 양을 잡아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마침 그의 부친이 변한 양이 선택되었다. 그 양은 울부짖으며 한사코 묶이려고 하지 않았다. 양이 땅에 엎드려 있을 때 문 밖에 한 분의 나한(羅漢)이 와서, 전세의 인연을 설명하고 그의 아들로 하여금 그의 부친이 양으로 변한 경과를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때 아들은 매우 괴로워하고 후회하면서, 당장 사당을 허물고 그때부터 악을 끊고 선을 행하였다. 그리고 영원히 살생하지 않고 방생을 하였으며, 아울러 삼보에 귀의하고 인과를 깊이 믿게 되었다.
그리고 불경 가운데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목건련과 덕생 비구가 일찍이 해변가에 이르렀을 때, 온몸이 화염에 타면서 크게 우는 사람을 보았다. 주위에는 무수한 아귀들이 그에게 불화살을 쏘고 있었다. 목건련이 신통으로 인연을 관찰해보았다. 이 사람은 전생에 사냥꾼으로 살면서 살생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살아생전에도 여러 해를 고통 받았으며, 죽은 후에는 지옥에 떨어져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 밖에도 다른 이야기가 있다.
옛날 사위국 비로택가 왕이 군대를 이끌고 석가족이 사는 곳을 침략하여, 팔만 명의 석가족을 살해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그 인연을 관찰해보니, 이전에 석가족이 어부로 살면서 많은 물고기를 죽인 과보였다. 비로택가왕과 그 대신은 당시 두 마리의 큰 물고기가 전세하여 사람이 된 것이었다. 따라서 비록 우리들의 육안으로는 전생과 후생의 인연을 볼 수 없지만, 자기가 살생한 악업은 항상 따라다닌다. 일단 인연이 성숙할 때 그 과보가 현전한다. 만약 천안통을 얻으면 인과를 알 수 있다.
『백업경(百業經)』에서 이르기를,
“유정의 모든 업은 백겁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인연이 모일 때 그 과보가 성숙된다.”라고 하였다.
여러 경과 율에서도 모두 말씀하시기를,
“모든 업은 백겁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비광(智悲光)의 『공덕장론(功德藏論)』에서 이르기를,
“하늘의 금시조가 높이 날 때 비록 그 몸을 볼 수 없을 지라도, 유정의 모든 업과 같이 인연이 모일 때 반드시 나타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말씀하신 뜻은 비유하면 금시조가 높이 날 때 우리들은 비록 그 몸을 볼 수 없을지라도 결코 금시조의 몸이 없는 것은 아니며, 단지 우리들이 줄곧 그 금시조를 따라가면 금시조가 내려앉을 때 그 몸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생한 악업이나 방생한 선업은 현재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없을지라도, 없어지지 않고 인연이 성숙될 때 그 과보가 현전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동물은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두려워한다.
『공덕장석(功德藏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아주 이전 석가세존이 국왕이었을 때, 그 권속은 날이 가물어 기우제를 지내면서 동물을 살생하여 신에게 공양하였다. 그때 국왕은 불쌍한 마음을 내어 그렇게 하지 말도록 권하면서 말하였다. ‘남염부제에 천지가 가물어 내가 공양할 여력이 없으니, 내 권속 중에서 천 명을 죽여 신에게 공양하여 비를 구하려고 한다.’
이때 모든 신하와 백성은 죽는 게 두려워, 신에게 바쳐지지 않기를 원하였다. 그때 왕이 ‘그대들과 나는 본래 자신의 목숨을 아낀다.’라고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도살을 기다리는 가축들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동정의 연민을 가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크게 분노하면서 꼭 죽이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은 죽으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 모든 작은 동물도 마찬가지로 생명을 가지고 있다. 고와 낙의 느낌을 갖고 생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니, 함부로 상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전에 중국 강소성 양주성(揚洲城) 밖에 ‘사육(四六)’이라고 부르는 농민이 있었는데, 그는 논밭을 개간하고 꽃과 나무 심기를 좋아하였다. 어느 날 땅을 팔 때 무수한 개미들이 살고 있는 개미굴을 발견하였다. 그는 흉악하고 죽이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집에서 한 통의 끓는 물을 가져와서 직접 개미굴에 부어넣어 무수한 개미들을 전부 죽게 하였다.
그해 8월의 어느 날, 그는 꿈속에서 갑자기 무수한 개미들이 그의 몸에 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깨어나서 보니 온몸의 살에 무수한 붉은 반점이 생긴 것을 발견하였다. 다음날 조그만 반점은 붉은 물집으로 변하여, 그 속에서 개미들이 살을 물어뜯으니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는 고통으로 울부짖으면서 며칠 후 사망하였다.
이것은 인간으로 살아있을 때의 과보이며, 죽은 후에는 삼악도의 한량없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마땅히 살생의 불가사의하며 두려운 업보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본래 세상의 모든 중생은 자기의 생명에 집착한다. 지옥의 중생 외에는 모두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지옥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빨리 죽기를 바란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총살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를 여러 가지 방편으로 구출해 준다면 진정한 생명의 은인이 될 것이다. 구출된 사람은 온갖 상념이 끓어오르면서, 은혜가 산같이 중하고 바다같이 깊은 것을 느끼면서 감격해 마지않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만약 유정이 살해되는 것을 보고, 비록 한 마리의 작은 물고기일지라도 방생하면 이러한 덕이 있게 될 것이다.
『구사론(俱舍論)』에 따르면, 만약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살생하든지 혹은 다른 사람이 살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 이 업은 ‘축적되나 아직 저지르지 않은 업’이라 칭하며, 이 사람은 직접 도살한 사람과 동등한 죄가 있다고 한다.
만약 꿈속에서 죽이든지 혹은 벌레나 개미 등을 모르고 밟아 죽였다면, 이것은 살해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지었지만 축적되지 않는 업’이라 칭하며, 큰 죄는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살생하여 얻은 재물로 스님께 공양한다든지 혹은 사원과 불상을 짓거나 하면, 공덕이 없을 뿐 아니라 큰 과실이 있게 된다.
그리고 불경과 『구사론』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릇 칼, 창, 그물 등 살생의 도구를 사거나 팔거나 하면 매매 쌍방은 모두 지옥에 떨어지며, 아울러 그러한 공구가 없어지기 전에는 나날이 무량한 죄업이 증가하게 된다고 하였다.
가르침에 의하면, 만약 가족 중 한 사람이 도살자, 사냥꾼 등 살생의 업을 꾸려나가면, 그 집안 사람은 모두 각자 지옥에 한 번은 떨어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만약 산골짜기에 살생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모든 산골짜기는 길상함을 얻을 수 없다. 아울러 한 찰나도 그런 사람과 접근하거나 교제하면 안 된다. 그들이 다른 집에 가면 많은 불길한 일을 가져올 수 있으며, 그들의 물품을 몸에 지니면 자기 몸의 삼보(三寶)의 가피력이 소멸될 수 있다.
따라서 마땅히 불살생계를 지켜야 하며, 그러면 큰 공덕이 있다. 설령 영원히 살생을 끊을 수 없을 지라도 일 년, 혹은 일 개월, 심지어 하루라도 살생 끊기를 발원해야 한다.
이상에서 서술한 살생의 과실을 명백히 이해한 후, 우리들은 마땅히 삼보전에서 견고한 서원을 발하여 어떠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중생을 살해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할 것이다.
출처: 오대산 노스님의 그 다음 이야기(중국 과경거사지음, 한국 각산 정원규거사 옮김, 불광출판부간)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운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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