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과 아미타불/주요 염불문답

저승에서 한번만 명호를 불러도 아미타불께서 몸을 나투신다고 하는데, 이승에서 아미타불은 왜 허공중에 나투시지 않습니까?

慧蓮혜련 2015. 12. 23. 10:53

질문: 저승에서 한번만 명호를 불러도 아미타불께서 몸을 나투신다고 하는데, 이승에서 아미타불은 왜 허공중에 나투시지 않습니까?

 

 

: 이 질문은 엄밀하지가 못합니다. 아미타불께서는 이승에서도 몸을 나투십니다. 누가 언제 염불을 하던 간에 아미타불께서는 항상 허공중에 몸을 나투시지만 당신이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볼 수 없다고 해서 나투시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나투시더라도 당신이 반드시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허공중에 나투시는 아미타불의 모습을 뵐 수 없을까?”

 

 

그럼 왜 이승에서 뵐 수 없지만 저승의 중생들은 뵐 수 있을까요? 하나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겠습니다.

 

예컨대 대야 속에 담겨 있는 물이 끊임없이 출렁일 때 주변의 경물景物들은 그 속에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대야의 물이 크게 출렁이지 않고 차츰차츰 고요해지려 할 때 주변의 경물들은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하면서 차츰차츰 나타나게 됩니다. 로 그런 이치입니다. 상대적으로 고요할 때 나타나고, 출렁일 때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죠.

 

상대적으로 말한다면, 저승은 업을 짓는 곳이 아니라 업을 녹이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승의 중생들의 마음은 모두 비교적 맹렬하여 업을 짓는 것도 아주 용맹스럽고 의식의 힘도 아주 강합니다. 마치 대야 속의 물처럼 이승에서 중생들의 마음의 물결은 모두 출렁이고 있고 전체 업의 기운도 특별이 강성하여 방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물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승의 중생들의 마음은 업을 짓는 게 아니라 업을 녹이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방해가 비교적 적습니다. 그래서 쉽게 나타나는 거죠.

 

 

또 마치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낮에 어떤 곳에서는 맑게 들리지 않거나 아예 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의 소리가 너무 시끄럽게 때문이죠. 그러나 밤이 되면 주변이 모두 조용해졌기 때문에 이 때에는 아주 맑게 들립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승의 사람들은 생각과 의식이 번잡하고 출렁이고 있는데,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 공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쉽게 불보살님들의 현신을 뵐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모두가 집중하여 일치된 목소리로 함께 염불을 한다면, 예컨대 임종조념 또는 큰 법회를 하는 경우에 왕왕 서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건 거짓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때 대중들의 마음이 모두 비교적 정성스럽기 때문인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전혀 출렁이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여전히 비교적 많겠지만,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예를 들어 기차역에 수천 수만명이 이런저런 온갖 생각하는 것과는 당연히 다르겠지요.

 

 

비록 법회를 하는 도중에도 출렁이는 생각들이 있겠지만, 필경 대중들의 마음이 부처님쪽에 모여 있고 큰 방향이 모두 일치하기 때문에 이 곳의 에너지와 기운은 비교적 고요하게 됩니다. 이때에 만약 대중들이 모두 염불을 한다면 어떤 서상들은 쉽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어떤 사람이 불보살님을 뵙고 연꽃을 보았다하더라도 이런 서상들은 극락세계와 같은 걸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일부만 나타난 것입니다. 마치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대야의 물이 그다지 출렁이지 않을 때 바깥 경물들의 그림자가 그 속에 있지만 길어졌다 짧아졌다하므로 본래의 경물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완전히 같게 하려면 반드시 완전히 정지되어 거울처럼 고요해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본 불상은 크고, 어떤 사람이 본 불상은 작으며, 어떤 사람이 본 불광佛光은 크고, 어떤 사람이 본 불광은 작습니다. 이는 개개인마다 마음이 고요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차별이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염불만 하면 우리가 보던 못 보던 상관없이 아미타불은 사실상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번뇌에 눈이 가려져 뵐 수는 없지만 대자비는 피곤함이 없이 항상 나를 비추신다.” 비록 우리들의 눈이 번뇌로부터 가려져 뵐 수는 없지만, 아미타불의 대자비는 피곤함이 없이 항상 우리들을 비추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