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왕생만을 추구하는 것과 현세의 이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극소수 구도심이 특별히 용맹하고 견고하여 세간의 이익에 대해 추구하는 바가 없는 사람을 제외하면,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비록 왕생을 원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현세의 이익을 희구하고 있다. 그래서 모순되고 곤혹스런 마음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이것은 우리가 경건하고 정성스럽지 못하다는 것일까? 그러면 이것은 내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려는 마음이 전일하지 않고 간절하지 않다는 것일까?
또 어떤 사람들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어떻게 전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관념의 영향 하에 그는 세간의 이익에 대해 범부의 신분에 맞지 않게 절단을 하게 된다: 자녀들도 돌보지 않고 마누라도 돌보지 않고…… 그러나 그의 심력과 지혜는 또 이런 경계와 완전히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갈등하게 되는데, 이는 인격적으로 완전하지가 않다.
범부는 범부의 신분으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현세의 이익을 비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는 이런 인식은 정확하지 않다. 이렇게 불법을 배우다 보면, 배울수록 마음속에 따뜻함이 사라지고, 배울수록 응고되고 단단해지고 경직되므로, 이는 정도正道를 걷는 게 아니다.
불보살님들이 우리들에 대한 자애로움은 완전한 것이어서, 염불에는 정토왕생의 근본적인 큰 이익이 있으면서도 현세복보의 이익도 있다. 오로지 왕생만을 바라는 염불인들의 입장에서는, 염불의 현세이익과 미래의 왕생이라는 숭고한 이상은 결코 모순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땔레야 땔 수 없는 한몸(一體不離)의 관계이다. 왜냐하면 염불에는 본래부터 ‘현세와 미래의 두 가지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선도대사의 『관념법문』 및 『왕생예찬』의 후서後序에서 모두 염불의 현세공덕과 이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염불로 왕생성불한다는 큰 이익·큰 전제·큰 근본·큰 원칙하에, 자연히 염불의 현세이익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따로 구하지 않아도 모두 얻을 수 있다. 선도대사의 『관념법문』 중에서 다섯 가지 증상연을 설하고 있고, 또 『왕생예찬』의 후서에서도 모두 염불의 현세공덕과 이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왕생예찬』의 후서 중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묻기를: 아미타불을 (입으로) 부르고 (몸으로) 예배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며 관찰한다면, 현세에는 어떤 공덕과 이익이 있는가?
답하기를: 만약 아미타불을 한 번 부르면 능히 80억겁의 생사중죄를 소멸시킬 수 있다. 예禮·염念 이하 역시 이와 같다.
미주眉注 가운데 ‘죄업을 소멸하는 이익滅罪益’이 바로 멸죄증상연滅罪增上緣이고, ‘호념의 이익護念益’이 바로 호념증상연護念增上緣이며, ‘중생을 섭수하는 이익攝生益’이 바로 섭생증상연攝生增上緣이다.
『십왕생경』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중생이 아미타불을 부르며 왕생을 원한다면, 저 부처님께서는 곧 25분의 보살들을 파견하여 수행자를 옹호해주시므로, 걷든 앉든 머물든 눕든, 낮이든 밤이든 언제 어디서나 악귀와 악신이 그 틈을 노리지 못하게 하느니라.”
또 예컨대 『관경』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만약 아미타불을 (입으로) 부르고 (몸으로) 예배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며 저 나라에 왕생하기를 원한다면, 저 부처님은 곧 무수한 화불化佛과 무수한 화관음化觀音·세지勢至를 파견하여 수행자를 호념해주시며, 다시 25분의 보살들과 더불어 백 겹 천 겹으로 수행자를 둘러싸고 행주좌와를 따지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낮이든 밤이든 늘 수행자 곁을 떠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모두 현세의 이익이다. 근대의 인광대사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진정으로 염불한다면 세간의 복보를 따로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세간의 복보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무병장수한다든지, 집안이 평안하다든지, 자손들이 출세를 한다든지, 모든 인연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든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처리된다는 것 등이다. 만약 세간의 복보만 구하고 회향하여 왕생을 구하지 않는다면, 얻게 될 세간의 복보가 도리어 열등해질뿐더러 마음이 전일하지 않아 왕생이 결정되기가 어렵다.”
인과대사님의 이 말씀은 매우 훌륭하다. 특히 염불인들로 하여금 미래왕생의 이익과 현재세간의 이익 사이의 적정선을 파악하는데 경계를 정할 수 있도록 한다.
“진정으로 염불한다면 세간의 복보를 따로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세간의 복보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무병장수한다든지, 집안이 평안하다든지, 자손들이 출세를 한다든지, 모든 인연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든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처리된다는 것 등이다.” 이는 염불의 현세이익을 인정한 것으로,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게 되고 자연스럽게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세간의 복보만 구하고 회향하여 왕생을 구하지 않는다면, 얻게 될 세간의 복보가 도리어 열등해질뿐더러 마음이 전일하지 않아 왕생이 결정되기가 어렵다.”, 우리가 만약 세간의 복보만 추구하고 회향하여 왕생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비록 이익은 있겠지만 잃은 것은 도리어 더 많을 것이다.
첫째, 왕생을 구하지 않기에 왕생의 이익은 없다.
둘째, 세간의 복보만 구하고 회향하여 왕생하지 않으면, 부처님의 대비심과 완전히 통하지 못하여 가피의 작용은 매우 적을 것이다.
이는 마치 태양이 매우 크지만 당신이 창문을 조금만 열어놓는다면 아주 적은 빛만이 비쳐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마땅히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고 부처님께서 “나의 나라에 왕생하고자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저 나라에 왕생하기를 발원한다”고 회답해야 한다. 그래서 햇빛이 창문으로부터 들어올 때 온 집안의 구석구석마다 모두 환하게 비쳐질 것이다.
염불인들은 마땅히 오로지 왕생을 구하는 것을 근본목표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현세의 이익도 추구할 수 있다. 예컨대 자녀들이 잘되고 몸이 건강하고 업장이 소멸되고 인사가 화합하기를 바라는 것도 모두 염불을 통해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두 가지를 다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염불왕생을 구해야 한다.
예컨대 사람이 곧 죽게 생겼음에도 여전히 몸의 건강을 구하고 있다면, 이것은 염불로 세간의 이익을 구하는 게 아니라 죽음이 두려워서 왕생을 원치 않는 것이기에,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만약 큰 병에 걸려서 나을 수 없다면, 이때는 즉시 결단하여 오직 왕생만을 추구해야지 병이 낫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그러면 왕왕 불가사의한 전기轉機가 보이게 되는데, 심신을 내려놓고 병이 낫기를 바라지 않으며 오로지 왕생만을 바란다면, 수명이 다하지 않았으면 도리어 병이 더 빨리 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마음에 걸림이 없이 일심으로 아미타불께 구한다면 불력의 가피와 작용은 특히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마음에 미련이 남아서 반드시 나으려고 한다면 도리어 장애가 되고 만다.
대만에 어떤 노스님이 계셨는데 평생을 그다지 수행해본 적 없이 대충 세월만 보냈었다. 나중에 중병에 걸려 의사가 그에게 판결서를 내리면서 그의 수명이 칠일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며 일주일 이내에 틀림없이 죽을 것이니 돌아가서 뒷일을 잘 준비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그래도 선근이 있어서 집에 돌아와 생각하였다. ‘이번 생에 수행을 제대로 못했는데 지금은 곧 죽게 생겼다. 남은 칠일 동안 열심히 염불하여 일념으로 왕생을 구해야겠다.’ (그는 스님이었기에 염불왕생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매우 불가사의한 것은 칠일이 지나 죽지 않았을 뿐더러 병도 완전히 나았다. 칠일 동안 그는 확실히 심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염불에 전념하였기 때문에 몸이 도리어 좋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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