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염불왕생
나는 태중시 감옥 ‘감호과’의 주임이자 삼보에 귀의한 재가불자이다. 2년 전, 본 감옥에서는 태중 불교연사佛教蓮社의 장선생을 초청하여 염불법문을 홍양하게 하였다. 그 후부터 염불하는 풍조가 저절로 일어나 염불의 법희가 감옥 곳곳에 가득 찼다.
감옥에 70세 죄수가 있었는데, 이름은 임이사林異思이고, 젊었을 때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살생·투도·사음 등 여러 가지 죄를 저질렀으니, 전과가 산더미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일생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마지막으로 감옥에 들어오게 된 것은 ‘풍기문란죄’를 범했기 때문에 유기 징역을 살게 된 것이다.
작년 12월, 그가 연세가 많고 몸이 약한데다가 심한 신장병을 앓고 있어서 교도소 소장이 보살의 마음으로 사람을 파견하여 태중병원까지 감호를 해주고 무료로 그를 위해 치료해주라고 하였다.
임이사는 비록 불교에 귀의하지 않았지만 연사 거사의 장기간 홍법을 통해 자주 보고 들어서 익숙하고 습관이 되었기에, 평소에 사람들이 만나도 서로 합장하며 “아미타불”하고 불렀었다. 이른바 ‘불법은 꿀과 같아서 중간과 끝이 다 달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점심에 나는 지시를 받고 태중 병원에 임이사를 간호하러 갔다. 간호사 아가씨는 나에게 병세가 위독해져서 생명에 위험이 있다면서 반드시 그의 가족들이 직접 와서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처자식이 없는 혈혈단신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다해 그를 도와 옷을 갈아입히고 음식을 먹여주고 탕약을 시중들며, 아울러 그를 대신하여 염불을 해주는 등 성의를 다해 보살폈다.
한 시간 이후에 임이사는 회광반조하여 정신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그에게 염불하여 서방정토에 왕생하라고 타이르면서, 당나라 때 백정 장선화가 염불왕생한 사례와 아미타부처님의 48원을 말해줌으로써 그의 신심을 증장시켰다.
처음에 임이사는 업장이 두터운데다가 그의 친척들이 한 명도 그를 보러 오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슬픔에 북받쳐 눈물이 글썽글썽하여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갑자기 그가 “귀신이야! 귀신이야! 난 안 가! 안 가! 날 잡지마!”라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광경을 목도한 나는 그의 업보가 나타나서 지옥의 문이 열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엄숙한 말투로 큰 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평소에 온갖 악행을 저질러서 이제 나쁜 과보가 눈앞에 닥친 것입니다. 지옥의 귀졸들이 나타나서 당신을 잡으려 하는데, 만일 서둘러 아미타불을 부르며 아미타부처님께서 자비롭게 서방정토로 접인해달라고 애원하지 않으면, 또 언제까지 기다릴 겁니까? 그래도 깨닫지 못한다면 귀신이 몸에 달라붙어서 이 곤경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자, 제가 당신을 위해 조념을 해주겠습니다!” 나는 몸에 소지하고 다니던 연사에서 결연 받은 작은 서방삼성상을 임이사 눈앞에다 안치해놓아, 부처님에 대한 그의 인상을 강화시켰다.
불법은 불가사의하다. 임이사는 숙세의 선근이 발현되어 이 중대한 고비에 뜻밖에도 권유에 따라 웅얼웅얼 소리 내어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도의상 더더욱 거절할 수 없어 그를 이끌고 조념을 해주었다. 갑자기 ‘아미타불’을 부르는 소리가 사방에 메아리치며 온통 상서로운 기운으로 가득하였다.
대략 향 한 대가 다 탈 시간이 지나서 내가 물었다. “지금 어떻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귀신이 사라졌어요…… 아미타부처님이 오셨어요, 아미타부처님이 오셨어요!” 마지막에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아무런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얼굴은 살아 있는 듯 생생하고 편안한 모습이었고, 게다가 신체가 자유자재로 유연한 등의 갖가지 서상에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보통 재소자들이 입원치료를 받을 때는 항상 족쇄를 채우는데, 임이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나와 감옥의 채주임이 그를 위해 족쇄를 풀어주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묵묵히 기도하였다. ‘임친구, 당신이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였다면 족쇄가 두 번 만에 열리는 것으로 증명을 해주세요’ 염불의 감응이 불가사의하여 평소에 반드시 매우 큰 힘을 들여야 하고, 게다가 죄수를 부축하여 반듯하게 앉히고 나서 쇠망치와 칼로 계속해서 힘껏 두드려야 풀 수 있는 족쇄를 지금은 뜻밖에도 전혀 힘들이지 않고 병상위에 죽은 사람의 발에다 가볍게 두 번을 두드려서 해결하였다. 그러기에 옆에 있던 채주임은 농담조로 “이 모두 아미타부처님의 공덕입니다”고 말하였다. 영안실에서 일하던 한 직원도 “여태껏 죽은 사람이 이렇게 좋은 모습은 보지 못했는데, 그것도 죄수라니! 정말로 아미타부처님이 보우해주신 것입니다”라고 칭찬하였다.
이상은 일생동안 갖은 악을 다 저질렀음에도 임종할 때 참회하고 염불하여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서 왕생한 사람의 진실한 이야기다.
우리는 마땅히 정토법문은 만 명이 닦아 만 명이 왕생한다는 것을 깊이 믿어, 다시는 마음속에 의심을 품는다거나, 혹은 ‘구박범부가 어찌 왕생을 논하겠는가?’는 말에 열등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나는 불자들에게 ‘세 가지 근기에 두루 가피를 주고’, ‘업을 지니고 왕생하는’ 수승한 정토법문에 대해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말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충고 드린다. (『명륜월간』 제156기 귀정 기술 198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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