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환생에 관하여

[스크랩] 영혼.윤회.인과에 관하여 (성철스님)

慧蓮혜련 2018. 1. 10. 00:44

1 장 영혼은 있다  (성철스님)   


1. 불교의 제8식


인간이 살아 있을 때는 정신이라 하고 죽어서는 영혼이라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논란과 시비를 거듭해 왔지만, 아직도 확실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읍니다. 어떤 과학자나 철학자나 종교가는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학자들은 영혼 따위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싸움이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 내려온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대승이나 소승이나 어느 경론이나 할 것 없이, 팔만대장경에서 부처님께서는 한결같이 생사윤회를 말씀하셨읍니다. 곧 사람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살아서 지은 업에 따라 몸을 바꾸어 가며 윤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윤회는 불교의 핵심이 되는 원리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윤회를 하는 실체를 말할 때 그것을 영혼이라고 이름하지 않고 제8아뢰야식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나눌 때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이것을 제6식이라 하고, 그 안의 잠재의식은 제7말라식이라 하고, 무의식 상태의 마음은 제8아뢰야식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호흡이 끊어지고 혈맥이 끊어지고 목숨이 끊어져버리면 의식은 완전히 없어지고 오로지 제8아뢰야식만이 남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몰식(無沒識) 곧 죽지 않는 식, 없어지지 않는 식이라고 합니다.

또 장식(藏識)이라고도 爛求? 과거, 현재, 할 것 없이 모든 기억을 마치 곳간에 물건을 간수해 놓듯 전부 기억해 두고 있다가, 어떤 기회만 되면, 녹음기에서 녹음이 재생되듯이 기억이 전부 되살아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말할 때에는 무몰식이라 하고,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뜻에서 말할 때에는 장식이라 합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미래겁이 다하도록 윤회를 하는 동시에 무엇이든 한번 스쳐간 것은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근래의 불교학자들은 제8아뢰야식의 존재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알아봅시다. 대승불교에 대해 이론을 가장 많이 발달시킨 일본에서도 가장 권위있는 사람이 우정백수인데, 그는 아뢰야식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으므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읍니다. 그리하여 영혼 자체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윤회를 설명할 수 있겠읍니까?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읍니다.

"윤회는 부처님께서 교화를 위해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지 실제로 윤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윤회가 있고 인과가 있다고 하면 사람은 두려워서라도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착하게 하려고 힘쓸 것이므로, 교육적인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상당히 그렇듯해 보이는 논리이지만, 그런 주장도 과학의 발달 앞에서는 꺽일 수밖에 없읍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과학이 물질적인 데에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분야에서도 크게 발전을 이룸에 따라 영혼이 있다는 것이, 윤회가 있다는 것이, 또한 인과가 확실하다는 것이 점차로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렇다면 해탈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하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확실한 판단이 서야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데에서, 또 신앙 생활을 하는 데에서나 불교를 포교하는 데에서, 또는 수행하여 성불하는 데에서 꼭 갖추어야 할 흔들림 없는 근본적인 토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알고 믿어야만 바른 행동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2. 근사(近死)경험

이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세계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그 궁금증과 신비가 차차 벗겨지고 있읍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에 대해 지금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읍니다.

미국에 레이몬드 무디라는 철학자가 있읍니다. 그가 대학에서 철학을 배울 때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교수는 무디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읍니다.

"나는 수년 전에 두 번이나 죽었다가 깨어난 경험이 있다. 내가 죽은 뒤에 의사가 와서 사망을 확인하고 장사를 치를 준비를 하는 도중에 깨어난 것인데, 깨어나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죽어 있는 동안이 깜깜한 것이 아니었다. 내 영혼이 죽어 있는 육체를 빠져나와 그것을 바라보고, 또 여러가지 활동을 한 것을 기억한다."

그 정신과 교수는 죽었다가 깨어나는 순간까지의 자기가 경험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는데, 듣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너무나 허황딘 꿈 이야기나 거짓말 같아서 믿을 수가 없었읍니다.

무디는 그때에 그 이야기를 들어며 그저 웃고 말았지만, 뒤에 자신이 철학교수가 되어 강의를 하고 있을 때 한 학생이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여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서부터 생각이 바뀌게 되었읍니다. 그 학생은 무디 교수에게,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삶과 죽음의 문제이므로 영생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며칠전에 그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가 깨어났다고 하면서 그 때 할머니가 경험한 것을 들은 대로 이야기해 주었읍니다. 그 이야기는 무디 교수가 학생 시절에 앞의 정신과 교수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똑같았읍니다. 무디 교수는 이러한 경험담이 단순히 웃어넘기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해 보기로 결심했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새롭게 의학을 공부하여 환자들을 상대로 이런 경험을 수집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로부터 몇해 뒤에 무디 교수는 150명의 사례를 수집하여 그것을 1975년에 책으로 출판할 수 있었읍니다. 그리고 그 사례를 보면 사람들은 거의 모두 다음과 같은 공통되는 경험을 겪었음을 알 수 있읍니다.

"처음 죽었을 때는 캄캄한 어떤 터널 같은 곳을 빠져나간다. 그곳을 빠져 나오면 자신의 신체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이상하다. 내가 왜 이렇게 누워 있을까? 내가 죽었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아주 밝은 광명이 나타난다. 그 광명 속에서 자기가 지나간 한평생에 걸쳐 겪은 모든 일들이 잠깐 동안에 나타난다. 그 悶?자기가 아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서로 위로도 하고 소식도 묻고 이야기도 나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혼은 이 방, 저 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의사들이 자기를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이라든지 가족들이 장사 지낼 의논을 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다른 방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눈 앞에 보이는 그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을 할 수가 없다."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좀처럼 믿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록 이미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만났다는 사실은 증명할 수가 없지만, 죽은 뒤에 그의 가족들이 한 이야기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다 들었으니 유력한 증거가 됩니다.

이미 의사에 의해 죽었다고 판정되면 그 육신은 한갖 물체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고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읍니다. 더구나 시신은 머리 끝까지 흰 천으로 덮어 놓았으니, 설령 거짓으로 죽었다고 하여도, 볼 수는 없읍니다.

그런데 죽었다 되살아난 사람은 자기가 죽어 있는 동안에 가족들이 한 이야기와 그들이 어디에 있었으며, 무슨 행동을 했는지 상세하게 이야기하는데 실지와 조금도 다름이 없읍니다. 누구든지 그 이야기를 들으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사실로 미루어볼 때 사람이 죽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는 죽었어도 무엇인가 활동하는 활동체가 있어서 보고 듣는다는 것이 확인되었읍니다. 그러나 죽었다가 깨어났다고 해서 누구나 이런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캄캄하여 아무 기억이 없다고도 합니다.

무디 교수는 이런 사례를 가진 사람들의 사례를 수집하여 책으로 엮었읍니다. 그 책이 처음 출판되자 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랐읍니다. 그래서 각 나라 말로 번역 출판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잠깐 보고 온 사후의 세계] 또는 [죽음의 세계] 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읍니다.

레이몬드 무디 교수의 연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자 그동안 영혼이나 죽음의 세계에 대해 연구를 해 오면서도 인정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결과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여 여러 사람들이 새롭게 조사에 착수하였읍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근사경험이라고 하고, 또 영어로는 약자를 써서 NDA(Near Death Experience)라고 하며, 이에 대한 연구를 근사연구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연구 결과 근사경험에 관한 사례는 수천 건이 수집되었는데, 그런 학자들 중에 가장 이름난 사람이 미국의 시카고대학에 있는 퀴불러 로스 교수입니다. 이 여자 교수는 무디 교수의 발표 이전에 이미 많은 자료를 수집해 놓고 있었읍니다. 무디 교수가 자신이 출판하려는 원고를 가지고 와서 그 여자에게 출판을 상의한 적도 있었읍니다.

퀴블러 로스 여사는 그 원고가 자신이 수집한 자료와 같고 또 결론도 동일하여 무디 교수의 책에 서문만 써 주고 자신의 책은 출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무디 교수는 1977넌 두번째 책인 [사후생에 대한 회고]를 출판하여 좀더 자세하게 근사경험에 대해 발표했읍니다. 여기에서 그는 죽음 뒤에도 삶이 있음을 확신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읍니다.

이런 연구에 대해서 영혼이나 정신을 유물론적으로 보는 소련의 학자들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사람의 신체 중에서 뇌세포는 맨 나중에 소멸하므로 아직 죽지 않은 뇌세포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환상일 뿐이지 죽은 뒤에 실제로 어떤 활동체가 있어서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고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학자들에게 공감을 주기는 했지만 여기에는 시간의 문제가 있읍니다. 소생기억이 일, 이 분 동안의 사망에 불과한 것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한두 시간이나, 길면 이틀이나 사흘씩 죽었다가 깨어나는 경우에는 그런 주장이 성립될 수 없읍니다.

왜냐하면 육체가 죽은 뒤에도 뇌세포만이 몇시간 동안 또는 며칠 동안 살아 있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이 근사경험이라고 하는 소생기억에 대한 반대 의견들은 현재까지로서는 이렇다 할 만한 뚜렷한 자료나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사후에 영혼이 있다는 주장에 관한 오래되고 유명한 기록이 플라톤의 [공화국]에 있읍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군인이 전사하였읍니다. 여러 날이 지난 뒤에 그 시체를 고향으로 옮겨서 장사를 치르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시체를 화장하려고 장작더미에 올려놓는 바로 그 순간에 그 군인이 되살아 났읍니다. 그는 깨어난 뒤에 자신이 죽어 있는 동안에 활동한 여러가지를 이야기하였읍니다.

이런 오랜 이야기는 무디 교수의 조사 사례와 일맥살통하는 점이 많음을 간과할 수는 없읍니다.


3. 영혼사진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들에 의해 영혼이 있다는 것은 확인되었는데 영혼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원혼(怨魂)이라고 하여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옵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단순히 전설로만 이해하려 들지만, 사실, 우주과학 시대라는 요즘에도 그런 일은 더러 일어나고 있읍니다.

다음의 사건은 1848년 3월 31일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미국의 뉴욕 주에 하인즈 빌이라는 촌락이 있었읍니다. 하루는 이 마을에 독일계 사람으로 폭스라는 이가 이사를 와서 살게 되었읍니다.

폭스가 이사온 지 며칠이 지난 어느날,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읍니다. 그 때 폭스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가족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문 두드리는 소리에 그냥 들어오라고 소리쳤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읍니다. 그래서 다시 가만히 있노라니 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가보면 아무도 없고 해서 나중에는 큰 소리를 쳤읍니다.

그러자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읍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기는 사람이 아니고 영혼이라고 말하면서, 이름은 로스이고 이 집에서 죽었는데 자기의 시신이 지하실에 묻혀 있으니 그것을 파내서 장례를 치루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었읍니다. 폭스의 가족들은 놀라서 경찰을 불러 지하실을 파 보니 과연 시신이 나왔읍니다.

그런데 경찰이 생각해 보니 폭스가 이사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하실에 시신이 묻혀 있응 곳을 정확히 아는 것을 수상히 여겨 폭스를 연행하였읍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또 여혼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나를 장례까지 치러 주었는데 이렇게 고생을 시켜서 미안하다고 하며 자기를 죽인 사람은 옆집에 살던 죠지 백이라고 일러 주는 것이었읍니다. 경찰이 다시 그 죠지라는 사람을 잡아 조사를 해 본 결과 그가 살인범이라는 것이 밝혀졌읍니다.

이 이야기가 전국에 퍼져나가자 사람들은 영혼이 과연 존재하고 인간이 영혼과 접촉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읍니다. 그리하여 1851년에는 영국의 캠브리지대학에서 심령학회가 조직되었으며, 그로부터 1세기도 더 지난 1972년 12월에는 미국 로체스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하인즈 빌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울 것을 결이하여 뉴욕시 73번가에 8미터 높이로 기념비를 세운 한편, 영혼의 존재에 대하여 활발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었읍니다.

그 밖에도 영혼이 나타났다는 일화는 많이 전해지고 있읍니다. 다음 이야기는 신문에도 몇번 보도가 된 것입니다.

미국의 트루민 대통령 재임 시에 네덜란드의 유리아나 여왕이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읍니다. 여왕은 백악관에서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자기의 시녀인 줄 알고 문을 열어 주었읍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문 앞에는 링컨 대통령이 서 있는 것이었읍니다.

링컨 대통령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터라 한눈에 그 얼굴을 알아볼 수가 있었읍니다. 여왕은 그렇지 않아도 백악관에 영혼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실지로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자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정신을 잃고 말았읍니다.

옆방의 시녀들이 비명소리를 듣고 뛰어나와서 여왕을 간호했는데 그 때까지 링컨 대통령의 영혼은 그 자리에 서 있었읍니다. 그래서 시녀들도 영혼을 보게 되었읍니다. 만일에 여왕이 혼자서 보았다면 롼상이나 착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시녀까지 함께 보았으니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수밖에 없읍니다.

다음 날 아침 트루먼 대통령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역시 링컨 대통령의 영혼을 여러번 보았다고 하는 것이었읍니다.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에는 그 부인이 링컨 대통령의 영혼을 보았다고 증언한 적이 있읍니다.

이 사건은 거짓이라고 하여 무시하기에는 너무도 증거가 뚜렸합니다. 그래서 자주 이런 일이 일어나니까 영혼사진을 찍어보자고 해서 사진을 찍어 신문에 보도한 적도 있읍니다. 그 사진은 나도 본 적이 있는데 링컨 대통령이 살아 있던 때의 모습과 완전히 똑같았읍니다.

이렇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이 갈수록 뚜렷하게 증명되고 있읍니다. 영혼을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 특징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간추릴 수 있읍니다.

첫째로, 영혼은 모양을 드러냅니다. 그것을 여러 사람이 봅니다.

둘째로, 영혼은 말을 합니다. 이 말하는 것도 여러 사람이 듣습니다.

세째로, 영혼은 사람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눈에도 보입니다. 한 예로 여러 사람이 함께 사냥을 나갔을 때에 영혼이 나타나면 말이나 개들도 겁이 나서 숨는다고 합니다.

네째로, 영혼이 물체를 이동시킵니다. 잠가 놓은 문을 연다든지 방안의 물건을 이리저리 옮겨 놓기도 합니다.

다섯째로, 영혼사진을 찍는 것이 가능합니다. 영혼을 보았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있지만 그래도 그것을 믿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사진으로 담는 데에 성공했다면 믿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영혼사진이 최초로 성공한 것은 지금부터 일백여 년 전인 1861년 미국 뉴욕시에 살던 멈리 씨에 의해서입니다. 멈리 씨가 하루는 교외에 가서 풍경사진을 찍었읍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현상을 해 보니 나무 밑에 어떤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었읍니다. 그가 사진을 찍을 때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이상하게 생각했읍니다.

그 뒤에 멈러 씨는 다시 그곳에 가서 사진을 찍어면서 주위를 두루 살피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였읍니다. 그러나 현상을 해 보면 역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 차례 반복을 해 보았으나 늘 결과는 마찬가지였읍니다.

멈러 씨는 너무 이상해서 그 사진을 들고 인근 주민에게 물어 보았읍니다. 그랬더니 사진에 나타난 사람은 5년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었읍니다. 멈러 씨는 그래서 이번에는 주민들과 함께 다시 그 자리에 가서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었읍니다.

결국 이로 말미암아 멈러 씨의 사진은 영혼사진이라고 소문이 났읍니다. 그때부터 그는 영혼사진사로 유명해지기 시작했읍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사진을 찍기도 하였읍니다.

하루는 친달 부인이라는 여자가 그에게 와서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읍니다. 촬영을 마치고 현상을 해 보니 부인의 어깨에 양손을 얹고 있는 링컨 대통령의 모습이 나타났읍니다. 그래서 그 부인에게 물어 보았더니 자신의 링컨 대통령의 미망인이라는 것입니다.

사진을 찍기 전에 미리 링컨 대통령의 미망인이라고 하면 링컨 대통령의 사진을 구해다가 거짓된 영혼사진을 찍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해서 그 부인은 신분을 숨기고 얼굴까지 가리고 사진을 찍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 멈러 씨는 더욱 유명해지고 큰 돈도 벌게 되었다고 합니다.

멈러 씨가 이렇게 유명해지자 정부 당국에서는 조사를 하기 시작했읍니다. 자기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에까지 올라가게 되어 마침내는 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언론인까지 동원시켜 조사하게 되었읍니다.

조사단은 멈러 씨와 함께 그가 처음으로 영혼사진을 찍었던 곳으로 가서 다시 사진을 찍게 한 뒤에, 모두가 엄중하게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현상을 해 보았읍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여혼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었읍니다.

그래서 대법원도 그의 사기혐의에 관해 결국 무죄판결을 내렸읍니다. 이것이 멈러 씨의 영혼사진 사건인데 1869년 4월 22일자 뉴욕타임즈에 상세히 보도된 적이 있읍니다.

이 사진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영혼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읍니다. 그 중에서는 직접 사진을 찍는데에 성공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가 영국의 허드슨 입니다.

그 당시에 윌레스라는 유명한 박물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다아윈과 같이 진화론을 주장한 사람입니다. 윌레스는 허드슨이 영혼사진 이야기를 듣고 허드슨에게서 자기도 사진을 찍어 보았읍니다. 그랬더니 자신의 사진에 죽은 어머니의 모습이 함께 찍혀 나오는 것이었읍니다.

윌레스는 그 사진을 보고 영혼사진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정식으로 학계에 그 사진을 첨부해서 보고서까지 제출했다고 합니다. 윌레스와 같은 대과학자가 영혼사진에 대해서 거짓으로 증언할 리가 없으므로, 이것은 믿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대체로 영혼사진을 찍어면 거기에 나오는 영혼이 어느 때, 어느 곳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영국의 호우프라는 사람은 신분이 확인된 영혼사진을 무려 삼천 장이나 촬영하는 데 성공했읍니다. 이쯤 되면 그 누구도 영혼사진을 무시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영국이 유명한 철학자이며 과학자인 크룩스도 호우프에게 가서 사진을 찍어 보았읍니다. 그랬더니 사진에 자신의 죽은 부인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었읍니다. 이때부터 크룩스 씨도 영혼사진이 결코 거짓이 아닌 사실임을 증언하게 되었읍니다.

이렇듯이 영혼사진은 많은 사람이 직접 찍고 또 이름난 과학자나 저명인사들이 그것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 스스로 증언까지 하게 됨으로써,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이 되었읍니다. 그래도 믿을 수 없다 하여 모두 거짓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일이 이 정도가 되면 영혼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영혼사진을 찍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와 관련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곧, 영혼이란 정신체인데, 죽은 사람의 정신체인 영혼이 카메라에 비친다고 하면 산 사람의 정신 작용도 카메라에 나타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미국의 세리우스라는 사람이 이에 관하여 열두 해에 걸쳐 연구하여 마침내 성공하였읍니다. 카메라으 준비해 두고 그 앞에서 자동차를 생각하고 있으면 자동차가 사진에 나타나고, 빌딩을 생각하면 빌딩이 찍힙니다. 머리 속에서 생각하는 대로 모두 사진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생각사진이라는 것으로, 세리우스는 이런 사진을 여든 장쯤 찍었읍니다. 그때에 아이젠버드라는 교수가 이 사람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3년 동안 연구하였읍니다. 속임수가 있는가 하여, 이리 연구하고 저리 연구하고 또 이렇게 실험해 보고 저렇게 실험해 보았으나, 결국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읍니다. 과연 생각하는 대로 사진이 나타나는 것이었읍니다. 그리하여 아이젠버드 교수는 [세리우스의 세계]라느 책을 출판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읍니다.

이제, 생각사진까지 입증되고 보니,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을 사진으로 찍을 수가 있느냐는 의문은 더 이상 나올 수가 없게 되었읍니다. 따라서 영혼이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영혼의 물질화

우리나라에도 옛날 이야기에 보면 영혼이 있음을 시사하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옵니다. 이를테면 어떤 선비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게 되어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읍니다. 이렇게 함께 살던 어느 날, 그 아가씨가 친정에 간다고 해서 따라가 보면 집에 들어가서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리다 못해 들어가서 물어보면 그 아가씨는 이미 죽은 사람인데 그 날이 바로 그 여자의 제삿 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산 사람이 영혼과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와 같은 사례가 옛날 이야기로만 전해오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와서도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읍니다. 영혼을 기숙적인 방법으로 산 사람처럼 나타나게 해서 같이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영혼의 물질화'라고 하는데, 앞에서 영혼사진을 입증했던 크룩스라는 학자가 바로 이 작업에 성공했읍니다.

그는 케디 킹이라는 여자의 영혼을 물질화시켜 여섯 달 동안 함께 생활하였읍니다.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 따위가 보통 사람과 똑같았읍니다. 아이들에게 글도 가르쳐 주고, 이야기도 하고, 손님이 오면 접대도 하는 등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었읍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먹지 않는다는 것과, 몸무게를 달아보아도 무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 여자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싸가지고 자기 집에 가서 펴 보았더니 머리카락이 온데 간데 없다고 합니다. 또 바로 바로 옆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과학자인 크룩스가 영혼을 물질화시켜서 여섯 달 동안이나 함께 지냈다고 하자 그 소문이 영국 나라안에 모두 퍼졌읍니다. 그리하여 그때의 유명한 사람들 가운데 꽤 많은 사람이 그 케디 킹이라는 영혼과 함께 사진을 찍었읍니다. 그때 찍은 사진이 수천 장이나 되는데 내게도 여러 장이 있읍니다.

지금까지 근사경험이니 영혼사진이니 하는 것들에 대하여 소개했읍니다. 그것은 단순한 흥미거리로서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일체만물이 불생불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한 이야기들입니다. 물질적인 현상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불생불멸한다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된 것입니다.

그런데 영혼이 불생불멸이라면 역사 이래로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이 거듭되어 왔는데 그 많은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우주에 가득 차 있는지, 아니면 따로 영혼만이 사는 나라가 있는지가 궁금한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근본적으로 윤회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한때는 학자들이 윤회설은 인간들에게 권선징악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고 주장한 적도 있읍니다. 그런데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불생불멸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자 이러한 주장은 사라지게 되었읍니다. 실지로 전생과 윤회가 있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조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과학적인 통계까지 나와 있읍니다.

불교에서는 육도윤회를 이야기합니다. 6도란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이 여섯 세계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지은 업에 의해 6도를 윤회합니다. 인간이 되기도 하고 개나 소 같은 축생이 되기도 하니, 이 윤회는 바로 자신이 행한 바에 따라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앞날의 일이 전생에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결정론이나 숙명론과는 다릅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에게 나쁜 일이 닥치면 자기의 업이나 팔자 탓으로 돌려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자기는 아무리 잘해도 업이 두텁고 팔자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비록 현재에 받는 과보는 지난날의 업에 의해 그렇게 되었을지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선업을 닦는 것은 지금의 자기 자신의 의지입니다. 물 속에 있는 무거운 돌을 입으로만 떠오르라고 외친다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돌을 떠오르게 하려면 스스로 힘을 쓰든지 기계의 힘을 빌든지 하는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업을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최선의 일입니다.

이러한 윤회사상은 부처님께서 최초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부처님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것이 진리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믿는 것입니다. 결국 이 윤회사상에 의하면 영혼은 따로 거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생을 거듭하면서 몸을 바꾸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5. 사자(死者)의 서(書)

티벳 지바의 경전 중에 바르도 토예돌 곧 [사자의 서]라는 책이 있읍니다. 이것은 죽는 사람과 죽음에 대한 안내서로서, 죽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영혼은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읍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첫째 부분(치카이 바르도)은 죽음의 순간을 묘사하고 있고, 둘째 부분(초이니드 바르도)은 죽음 직후에 잇달아 일어나는 꿈과 같은 상태를 설명하며, 세째 부분(시드파 바르도)은 출생 충동과 출생 이전의 과저에 관해 설명하고 있읍니다.

이 책에 따르면 죽음에서 출생에 이르기까지는 보통 49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에 사자(死者)의 영혼이 나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부처님의 말씀인 대승경전을 읽어 주거나, 또는 [사자의 서]에 나오는 글을 읽어 주면 좋은 곳으로 왕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49제를 지내는 것은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자의 서]에 나오는 죽음의 순강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근래의 연구인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의 증언, 곧, 근사경험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사자의 서]에 보면 숨이 끊어질 때에 밝은 광며을 경험할 것이라 하면서 그것은 마음의 본래상태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사자의 영혼은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이 그들을 부르는 소리는 사람들이 듣지 못하므로 마침내 사자는 실망하고서 사라져간다고 합니다.

이 [사자의 서]는 티벳의 승려들 사이에서 비전(秘傳)으로 내려오다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00년대의 일입니다. 어느 누가 이 책을 미리 보고 마치 죽음의 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꾸며서 말했다고는 볼 수 없읍니다. 그렇다면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죽음의 세계에 대한 경험은 똑같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입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영혼을 중음신(中陰神) 곧 바르도라고 합니다. 이 중음신은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두려워하는 수가 많다고 합니다. 이 때 선업이 강하면 곧 안정을 되찾고 바로 다음 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거나 가족 친지의 울음소리가 너무 강하게 들리면, 그만 세사에 집착하는 마음이 생겨 올바른 길을 찾아가지 못하고 허공을 헤매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좋은 곳으로 왕생하라고 염불이나 경을 독송해 주는 것입니다.

이 중음신들은 자기의 업력에 따라 다음 생을 받아 다시 태어난는데 7일 만에 태어나는 경우도 있고, 49일을 채우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영혼이 있다는 것과 그 영혼이 다음 생을 받아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이것이 종교적인 상상의 세계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품어 왔읍니다. 윤회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자기의 전생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그에 대하여 살펴보겠읍니다. 


 2장 윤회는 있다  (성철스님)   


1. 전생기억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는 대개 두서너살 되는 아이들에게 나타나는데, 이들은 말을 배우게 되면서 전생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곧 "나는 전새에 어느 곳에 살던 누누인데 이러이러한 생활을 했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을 따라서 조사 해 보면 모두 사실과 맞곤 합니다. 이것이 전생기억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읍니다.

지금부터 25년 전 터어키 남부의 아나다라는 마을에 이스마일이라는 어린 아이가 있었읍니다. 그 집은 정육점을 하는데 이스마일이 태어난 지 일년 반쯤 된던 어느 날 저녁에 아버지와 침대에 누워 있다가 문득 이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집에 갈 테야. 이 집에는 그만 살겠어요"
"이스마일아,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가 네 집이지 또 다른 집이 어디 있어?"
"아니야,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야! 우리 집은 저 건너 동네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어. 내 이름도 이스마일이 아니고 아비스스루무스야. 아비스스루무스라고 부르세요. 그러지 않으면 이제부터는 대답도 안 할 테야."

이러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면서 또 말했읍니다.

"난는 저 건너 동네 과수원집 주인인데 쉰살에 죽었어. 처음에 결혼한 여자는 아이를 못 나아서 이혼하고 새로 장가를 갔어. 그러고는 아이 넷을 낳고 잘 살았지. 그러다가 과수원에서 일하는 인부들과 싸음을 벌여서 머리를 맞아 죽었어. 마구간에서 그랬지. 그때 비명소리를 듣고 부인하고 애들 둘이 뛰어나오다가 그들도 맞아 죽었어. 한꺼번에 네 사람이 죽었지. 그 뒤에 내가 이 집에 와서 태어난 거야. 아이들 둘이 지금도 그 집에 있을 텐데 그 애들이 보고 싶어서 안 되겠어."

그리고는 자꾸 전생의 자기 집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소리를 못하게 하면 울고, 그러다가 또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크고 좋은 수박을 사왔는데, 이 어린 아이가 가더니 가장 큰 조각을 쥐고는 아무도 못 먹게 하는 것입니다.

"내 딸 구루사리에게 갖다줄 테야! 그 애는 수박을 좋아하거든."

그가 말하는 전새에 살던 집은 별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그 지방 사람이 더러 이 동네에 오는 경우가 있었읍니다. 한번은 왜 아이스크림 장수를 보더니 그 어린 아이는 뛰어나 나가서 말했읍니다.

"내가 누군지 알겠어?"
알 턱이 있겠읍니까.

"나를 몰라? 내가 아비스스루무스야. 네가 전에는 우리 과수원의 과일도 갖다 팔고 채소도 갖다 팔았는데 언제부터 아이스크림 장사를 했지? 내가 또 네 할례도 해주지 않았더냐?"

놀랍게도 그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과 일치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이 소문이 자꾸 자꾸 퍼져나가게 되었읍니다. 터어키는 회교국이기 때문에 회교 교리에 따라 윤회를 부인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환생을 주장하면 결국 그 고장에서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비스스루스가 전생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자꾸 아이의 입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막을 도리가 없었읍니다.

아이가 세살이 되던 해였읍니다. 확인도 해볼 겸 아이를 그가 말하는 과수원으로 데리고 갔읍니다. 가는 도중에 사람이 다른 길로 가려면 아이는 "아니야, 이쪽 길로 가야 해" 하면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앞장서서 과수원으로 조금도 서슴치 않고 찾아 들어가는 것이었읍니다.

과수원에는 마침 이혼을한 전생의 마누라가 앉아 있다가 왠 어린 아이와 그 뒤를 따라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눈이 동그랗게 되어 쳐다보았읍니다. 어린 아이는 전생 마누라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가더니 다리를 안으며 말했읍니다.

"너 고생한다."

어린 아이가 중년 부인을 보고 "너 고생한다"고 하니, 부인은 더욱 당황했읍니다.
"놀라지 말아라. 나는 너의 전 남편인 아비스스루무스이다. 저 건너 동네에서 다시 태어나 지금 이렇게 찾아왔어."

또 아이들을 보더니, "사귀, 구루사리, 참 보고 싶었다"하면서 마치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하는 것이었읍니다. 또 사람들을 자기가 맞아 죽은 마굿간으로 데리고 갔읍니다. 전에는 좋은 갈색 말이 한 필 있었는데 그 말이 안 보이니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서, 팔았다고 하니 무척 아까와했읍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하던 여러 인부들을 보지도 않고서 누구, 누구 하며 한 사람씩 이름을 대면서 나이는 몇 살이고 어느 동네에 산다고 말하는데 그 말들이 모두 맞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니 어떻게 전생의 과수원 주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읍니까?

이것이 결국 세계적인 화제거리가 되어 이스마일이 여섯 살이 되던 1962년에 학자들이 전문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조사단을 조직하였읍니다. 이 때 일본에서도 다수의 학자들이 참여하였읍니다.

그 조사 보고서에 보면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전생기억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읍니다. 그 과수원 주인이 생전에 돈을 빌려준 것이 있었는데 돈을 빌려간 사람은 아비스스루무스가 죽어버리자 그 돈을 갚지 않았읍니다. 이스마일은 그 돈을 빌려간 사람을 불렀읍니다.

"네가 어느 날 얼마를 빌려가지 않았느냐. 내가 죽었어도 내 가족들에게 갚아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런데 왜 돈을 떼어먹고 여태 갚지 않았어?"

돈 빌려간 날자도 틀림없고 액수도 틀림없었읍니다. 안 갚을 수 있겠읍니까! 이리하여 전생 빚을 받아내었읍니다. 이 사실은 죽은 아비스스루무스와 돈 빌려 쓴 사람,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읍니다. 그런 것을 어린 아이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 것이며 또 누가 말하여 주었겠읍니까? 그리하여 조사단은 이스마일이 바로 아비스스루무스의 환생이라는 사실에 대해 확정을 짓는 보고서를 내었읍니다.

전생을 기억하는 사례 중에서 또 유명한 것으로 인도의 산티 데비의 이야기가 있읍니다.
산티 데비는 1926년 인도의 델리에서 태어났는데 세살 때부터 자꾸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읍니다. 자기는 전생에 무트라 지방에 사는 케다르라는 사람의 아내였는데 자기를 그곳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읍니다.

산티 데비는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러가지 전생 이야기를 하였읍니다. 산티 데비의 부모는 처음에는 아이가 정신이 좀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읍니다. 그러나 전생 이야기를 너무나 생생하게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무슨 곡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이가 말하는 무트라 지바에 가서 케다르라는 사람을 찾아 보았더니 과연 그런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아이가 말한 대로의 생활을 하고 있었읍니다. 산티 데비의 부모는 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였읍니다. 자기 집에 일곱살 되는 계집아이가 있는데 자꾸 전생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의 아내였다고 하니 그것이 정말인지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읍니다. 그러면서 어느 날 몇시에 자기 집으로 와서 확인해 보자고 했읍니다.

산티 데비의 부모는 이렇게 비밀리에 약속을 하고 돌아왔읍니다. 약속을 한 그날에 케다르 씨는 산티 데비의 집을 방문하였읍니다. 그가 문에 들어서자 이를 본 산티데비는 깜짝 놀라며 반색을 하고 뛰어나가 그를 맞이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면서 "당신을 항상 생각하며 당신에게 가려고 해도 이 집에서 보내주지 않아서 못 갔다"고 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리고는 전생의 남편인 케다르를 따라가겠다고 하는 것이었읍니다.

산티데비는 옆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계속하던 중에 자기가 죽으면 재혼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왜 장가를 갔는냐고 다그치기도 했읍니다. 또 자기 어머니에게 케다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면서 그것을 준비해 달라고도 했읍니다. 이렇게까지 자신에 대해 상세히 말을 하자 케다르 씨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읍니다.

비록 어린아이지만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 등을 볼 때 전생의 자기 아내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읍니다.

산티데비의 전생 이야기가 알려지게 되자 인도 정부에서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단을 조직하였읍니다. 조사단은 산티데비를 데리고 무트라 마을에 가서 조사를 시작했읍니다. 우선 집을 찾도록 했읍니다. 산티 데비는 너무나 오랫동안 산 곳이라 눈을 감고도 척척 찾는 것이었읍니다.

얼마쯤 가면 느티나무가 있는데 거기서부터 길이 좁아지니 거기에 차를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읍니다. 이윽고 산티 데비는 앞장서서 옛날에 자기가 살던 집으로 들어가서 머리가 허연 노인에게 "아버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읍니다. 그 노인은 전새의 시아버님이었읍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불러서한 사람씩 이름을 말하는데 모두 사실과 다름이 없었읍니다.

산티 데비는 살림을 돌아보고 나서 살림이 궁색해졌다고 하며 지하실에 묻어 둔 금을 파서 살림에 보태 쓰라고 말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데리고 지하실로 가서 가리킨 곳을 파 보았으나 빈 퀘짝만 나오고 금은 나오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물어보니 남편이 그 금을 파 내어 썼다는 것이었읍니다.

결국 그 이야기로 전생에 산티데비가 지하실에 금을 묻어둔 것은 사실임이 판명되었읍니다. 그래도 조사단은 계속해서 의심을 품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이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읍니다.

델리와 무트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말이 서로 달랐읍니다. 산티 데비는 델리에서만 살았고, 아직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무트라 지바의 말을 알 리가 없었읍니다. 그런데 무트라 지바의 말을 하는 것이었읍니다.

평범한 어린아이라면 무트라 지방이 있다는 것도 모를 텐데 억양도 말씨도 틀림없는 그 지방의 말을 사용하는 것이었읍니다. 이 점에서 조사단은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게 되었읍니다. 이러한 사실 외에도 여러가지를 검증해 본 결과 조사단은 산티 데비가 전생의 케다르 씨의 아내가 환생한 것임이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읍니다. 그래서 인도 정부에 다음과 같은 공식 성명서를 냈읍니다.

"산타 데비의 환생 문제는, 더러 반대하는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으나, 전국적으로 권위있는 사람들이 직접 상세히 조사해 본 결과 이것이 조금도 거짓말이 아닌 틀림없는 사실임을 확인하였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전 세계에 알려져 전생기억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읍니다. 그 후 산타 데비는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에서 공무원으로 살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나이가 많아 생존 여부는 확실하지 않읍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이스마일이나 산타 데비의 예와 같은 전생기억의 사례는 학계에 보고된 것만 해도 무수히 많습니다. 그 중에 한두 가지만 더 이야기 하겠읍니다.

몇 해 전 스리랑카에서의 일입니다. 태어난 지 3년 7개월 된 쌍둥이가 있는데 자꾸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사단이 그 아이를 전생에 살았다는 곳으로 데리고 갔읍니다. 그리고는 근처의 주민들을 수 백명 모으고 그 가운데에 그 아이가 말하는 전생의 무모 형제를 섞어 두었읍니다.

그리고는 그 아이더러 전생의 부모와 형제를 찾아보라고 했읍니다. 그러자 아이는 "이 사람은 아버지, 이 사람은 어머니, 이 사람은 누나, 이 사람은 형님..." 하면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찾아내는 것이었읍니다. 그런데도 이 아이의 전생 기억을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읍니까?

또 세살 된 어느 아이도 전생 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다이빙 선수였다고 자랑했읍니다. 그래서 물었읍니다.
"지금도 다이빙을 할 수 있겠니?"
"그럼요. 할 수 있고 말고요. 전에 많이 했는데요."

이리하여 세살 된 어린 아이를 높은 다이빙대 위에 올려놓게 되었읍니다. 그러자 어린 아이는 다이빙을 하는 것이었읍니다.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조금도 서툴지 않게 서슴없이 다이빙을 했읍니다.

전생기억이란 이런 식입니다. 또 흔히 천재니, 신동이니, 생이지지(牲而知之)니 하는 아이들이 있읍니다. 태어난 뒤로 한번도 글을 배운 적이 없는데 글자를 다 아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책을 보아도 모두 읽을 줄 아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이지지라고 합니다. 곧 나면서부터 다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생이지지는 바로 전생기억에 의한 것입니다. 전생에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금생에로 그대로 가지고 넘어온 것입니다. 또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친근감이 가는 경우는 전생의 기억이 희미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생기억에 대해 누구보다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미국의 버지니아대학의 이안 스티븐슨 교수입니다. 그는 세계 각국에 연락기구를 조직하여 전생기억을 가진 아이나 어른이 있으면 학자들을 보내어 사실을 조사하여 확인했읍니다.

이리하여 그는 수년 동안에 600여 명의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그 중 대표적인 사례를 뽑아서 책으로 출판하였읍니다. 바로[윤회를 나타내는 스무 가지 사례]라는 책으로, 뒤의 부록 1에서 소개됩니다. 전생기억에 대한 보고서로서는 가장 확신이 있고 어떤 사람이든 반대의 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유명한 책입니다.

그리고 1973년까지 약 2,000건의 전생기억을 가진 사례를 조사하여 보고하였읍니다. 자료가 이만큼이나 되는 것을 비추어 볼 때 사람이 죽어면 그만이 아니고 윤회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읍니다.

이안 스티븐슨은 정신과 교수로서 전통적인 의학에 대한 연구 경력이 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고 있읍니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전통적인 이론은 인간의 성격을 유전과 환경적인 영향이라고 하지만, 이들 복합적인 요인만으로는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는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규명해 보고자 앴다."

그는 윤회를 한다고 정식적으로 공포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보았읍니다. 왜냐하면 지식이나 경험에 의해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는 어른들보다 자신의 기억을 해석하려고 들지 않는 어린이의 사례 조사에서 90퍼센트 이상의 정확성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안 스티븐슨교수는 전생기억에 나타난 사례들에서 몇가지 특징을 말하고 있읍니다.

첫째는 전생기억과 연령과의 관계입니다. 대개는 태어난 지 두서너살이 되면 전생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좀더 나이가 들어서나 아니면 말을 시작하자마자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읍니다. 대체로 말을 잘 할 수 없는 시기의 전생기억이 좀더 정확한 수가 많습니다.

어린 아이가 전새에 대해 말하는 첫 말은 대개 자신이 알았던 사람의 이름이나 지명입니다. 그러다가 다섯살에서 여덟살 사이쯤 되면 어린이들은 전생기억을 잊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이 때가 되면 가정의 제한된 테두리를 벗어나 이웃과 학교에서 여러가지를 경험하고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점점 사라지는 전생기억 위에 새로운 경험이 축적되면서 전생기억은 아주 사라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이거나 위엄과 지혜를 갖는 등 일반적인 아이와는 그 행동이 다릅니다. 이러한 행동은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이지만, 본인에게는 당연한 행동이며 그것은 전생의 자기 모습과 일치합니다.

세째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자기 육체의 생소함을 말하고 합니다. 그들은 대개 자신이 작은 육체에 갇혀서 답답하다고 불평을 늘어놓곤 합니다.

네째로, 전생을 기어하는 아이들이 가장 생생하고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전생에서 죽음과 관련된 것이며, 바로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리고 특히 죽음에 대한 전생기억 중에서 교통사고나 살인, 전쟁과 같이 격렬하게 죽은 기억이 더욱 생생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런 죽음을 당한 사람만이 환생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그런 경우일수록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격렬한 죽음의 경우, 전생기억을 하는 아이는 대개 죽음을 가져다 준 물건이나 환경에 대해 강한 공포시음 나타냅니다. 한 보기로서 어떤 어린이는 전생에 다리 위에서 버스를 지나가게 하느라고 비켜 서다가 물에 빠져 익사하였다고 기억했읍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다리, 버스, 물에 대해서 상당한 두려움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읍니다. 그 아이를 목욕시키려면 네 명의 어른이 강제로 붙잡아야 할 정도로 물에 대한 공포에 떤다고 합니다.

다섯째로, 사람과 환경의 변화를 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처음 가는 집이라면 그 집이 어떻게 변하였고, 거기 사는 사람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보통의 사람은 알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에는, 처음 전생 집을 찾아갈 때, 구조가 어떻게 변경되었다는 둥 가족 주에 누가 안 보인다는 둥 그 집의 변화를 말한다고 합니다.

여섯째로, 환생을 예견한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에 어느 가정에 태어나기 위해 온다는 것을 꿈에 예고하는 경우가 있읍니다. 이런한 꿈이 동.서양에서 종종 화제가 되곤 합니다.

일곱째로, 임신 중의 비정상적인 식성을 들 수 있읍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기에는 임신을 하게 되면 평소에 잘 안 먹던 음식이나 제 철이 아닌 음식에 대해 그 사람은 비상한 식욕을 느낍니다. 그것을 임산부의 변덕이라고 하여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읍니다.

그런데 전생기억을 하는 어린 아이의 경우, 전생에 좋아했던 음식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그 음식이 바로 어머니가 임신 중에 먹고 싶어 했던 음식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여덟째로, 배우지 않은 기술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읍니다. 전생기억을 하는 어린이 중에는 배우지도 않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읍니다. 이것은 전생에 가졌던 기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보기를 하나 들자면 벨기에에 로버트라는 소년이 있었는데, 이 소년은 어느 날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5년에 죽은 자기 삼촌의 초상화를 보더니 그것이 자기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세살이 조금 지나서 로버트는 부모와 함께 처음으로 수영장에 갔는데 멋진 동작으로 다이빙을 하여 물속으로 뛰어들었읍니다.

알고 보니 그의 삼촌인 알버트는 훌륭한 수영선수였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수영은 세살 정도의 어린아이도 할 수 있지만 다이빙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영장에 처음 온 아이가 다이빙을 멋지게 해내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 아이갸 전생의 알버트였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배우지도 않은 기술이 나타나는 가장 놀라운 사례는 외국어를 말하는 경우입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생리학자이며 심리학자인 동시에 노벨수상자이기도 한 샤를르 리히는 그러한 현상을 지노글로시Xchoglossy라고 이름을 붙였읍니다.

이안 스티븐슨은 이 지노글로시에는 두 가지 형태가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독백과 같은 것인데, 당사자는 이상한 언어의 조각들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자꾸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잠재된 기억 속에서 언어가 무의식적으로 도출되는 경우인데 본인은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반응적인 경우인데, 이것은 직접 상대방과 그 외국어로써 대화를 할 수 있읍니다. 스티븐슨은 두번째 경우인 반응적인 지노글로시의 사례는 죽음 이후의 인간의 윤회에 대해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 말합니다. 곧 전새에 그 언어를 배웠거나 사용한 사람이 아니면 그처럼 유창하게 외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이 언어를 배우지도 못한 어린아이에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 가운데 최초의 지노글로시는 19세기에 있었던 일인데 최면에 의해서 입니다. 1862년 독일의 왕자 갈리첸은 어떤 여인을 대상으로 최면 실험을 하였읍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인은 18세기의 휼률한 프랑스어로 브리타니에 살았던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읍니다.

갈리첸 왕자는 그녀가 프랑스어를 배웠는지 조사해 보았지만 그녀는 일반 교육도 전혀 받은 적이 없는 무학(無學)이었고, 다만 자기 지방의 독일어 방언 밖에는 말할 줄 모른다는 것이 판명이 되었읍니다. 따라서 이 여자는 전새에 프랑스에서 살다가 다시 독일에 태어난, 윤회의 시증임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아홉째로, 출생 자국을 들 수 있읍니다. 아이가 출생할 때부터 흉터가 있거나 불구가 되는 수가 있읍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선천적 기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원인은 대부분 유전이나 임신 중의 약물 복용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고 있지만, 이것이 전생의 업보에 의해 생길 수도 있읍니다.

윤회를 입증하는 전생기억에 관한 사례는 현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읍니다. [삼국지]라는 책을 보면, 삼국시대에는 아무도 중국을 통일하지 못했읍니다. 조조도 못하고 유비도 못하고 손권도 못하였읍니다. 정작 중국이 통일된 것은 세월이 흐른 뒤 진나라 때입니다. 그 때 진나라의 재상이며 군인이고 또 덕인(德人)이었던 양호라는 사람이 있었읍니다.

그가 서너살이 되어서, 한번은 유모를 보고 가지고 놀던 금고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었읍니다. 유모는 아기에게 금고리가 없다고 했읍니다. 그러니까 양호는 유모를 데리고 이웃집으로 갔읍니다. 그리고 그 집 마당의 큰 고목나무 밑으로 가서 썩은 나무 밑둥치의 구멍 속으로 손을 쑥 넣더니 금고리를 끄집어내는 것이었읍니다.

그런데 금고리를 본 그 집 주인이 깜짝 놀라는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그 집의 죽은 아이가 가지고 놀던 것이데 그 아이가 죽은 후에는 아무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웃 아이가 와서 그것을 찾아냈으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두들 그 이웃집의 아이가 죽어서 양호가 되어 환생한 것이라고 말하게 되었읍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증거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금고리입니다.

1986년에 죽은 양계초의 선생님인 강유위라는 대학자는 바로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전생이 있다고 주장했읍니다. 그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지입니다. 유교에서는 윤회를 부정합니다. 그런데도 유교학자인 강유위느 윤회를 절대적으로 주장하였읍니다. 그 증거가 바로 양호의 금고리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자가 양호의 금고리 사실 하나만으로 전생이 있고, 윤회가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없이 주자하고 있읍니다. 여기에 비하면 이안 스티븐슨 교수가 수집한 2,000여 건의 사례는 큰 의미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여기서 잠깐 신라 통일시대의 김 대성의 이야기를 알아보기로 하겠읍니다.

김 대성이 처음 태어난 집은 아주 가난했읍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품을 팔아 근근히 먹고 살았읍니다. 그러다가 주인집에서 밭을 조금 떼어 주어서 그것으로 생활을 이어 나갔읍니다. 그런데 하루는 옆집에서 시주를 하자 스님께서 '시일득만배(施一得萬倍)'라고 축원하는 것을 김 대성이 듣게 되었읍니다.

김 대성은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간청하여 자기네의 조그만 밭을 스님에게 시주 하였읍니다. 스님께서는 역시 '시일득만배'라고 축원하였읍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김 대성은 죽었읍니다. 그날 밤, 대신인 김 문량의 꿈에 '모량리의 대성이가 너의 집에 태어난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읍니다. 그래서 모량리에 가서 알아보니 과연 김 대성이 죽었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읍니다. 김 문량의 부인은 그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읍니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날 때 손을 꽉 쥐고 있다가 이레 만에 손을 폈는데 손바닥을 보니 '대성'이라는 이르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 문량의 집에서는 이 아이가 모량리의 김 대성이 다시 환생한 것이 분명하다고 하여 이름을 그대로 대성이라고 하였읍니다. 그리고 전생의 어머니를 모셔다가 함께 있게 하였읍니다.

김 대성은 성장하면서 사냥을 좋아하였읍니다. 하루는 토함산에 가서 곰 한 마리를 사냥해 오다가 산 아래 마을에서 잠을 자게 되었읍니다. 그의 꿈에 곰의 혼이 나타나 자기를 죽였으니 그냥 두지 않겠다고 하며 달려드는 것이었읍니다. 김 대성이 너무 무서워 잘못했다고 빌었더니 곰의 혼은 자기를 위해 절을 지어달라고 하는 것이었읍니다.

그 뒤로 김 대성은 사냥을 끊었으며, 꿈에서 약속한 대로, 그 곰을 잡은 땅에다 장수사라는 절을 지어 주었읍니다. 그리고 다시 원(願)을 세워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짓고, 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지금의 석국암을 창건했다고 합니다.


2. 차시환생(借屍還生)

또 전생기억 외에 차시환생이란 것이 있읍니다. 사람이 죽어서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태어난는 것이 아니고 제 몸뚱이는 아주 죽어버리고 남의 송장을 의지해서, 곧, 몸을 바꾸어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입니다. 다음은 1916년 2월 26일자 중국 신주일보에 보도된 사실입니다.

중국 산동성에 최천선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는 무식한 석공이었읍니다. 이 사람이 서른두살이 되던 해에 그만 병이 들어 죽었읍니다. 장사 지낼 준비를 다 마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읍니다. 관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고 사람 기척이 났읍니다. 부랴부랴 관을 깨고 풀어보니 관 속의 사람이 눈을 멀뚱멀뚱 뜨고 쳐다보는 것이었읍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우리 아버지가 살았다."

그 부모의 처자식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읍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는 식구들을 하나도 못 알아보는 것이었읍니다. 무엇이라고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읍니다. 죽었다가 때어나더니 정신착란이 되어서 집안 식구들도 못 알아보고 말도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는가보다고 식구들은 생각했읍니다.

그렇게 또 여러 날이 지났읍니다. 그동안 기운을 차리고 건강도 많이 회복되었읍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식구들을 못 알아보고 또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읍니다. 본인도 퍽 답답한 것 같았읍니다.

마침 주위에 붓과 벼루가 있는 것을 보더니 종이 위에 글을 쓰기 시작했읍니다. 그런데 본래는 일자무식이던 사람이 글을 아주 잘 쓰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써놓은 글의 내용을 보니 이 사람은 중국 사람이 아니고 인도지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인도지나 지방에서도 말은 다르지만 글은 한자를 씁니다.

"나는 인도지나 어느 곳에 사는 유건중이라는 사람인데, 병이 들어서 치료하느라고 어머니가 두터운 이불을 덮어 씌워줘 땀을 내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여기 이렇게 외 있다."

그 내용은 대략 위와 같았읍니다. 곧 그 몸은 죽어버리고 그 대신에 인도지나 사람의 혼이 산동으로 온 것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전생입니다. 전생이란 것이 반드시 몸뚱이가 죽고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다시 난는 것만이 아니고 죽은 육신이 그대로 다시 살아나는데 영혼만이 바뀌는 경우가 있읍니다. 이것을 '차시환생'이라고 합니다. 곧 남의 육체를 빌려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가 기력을 완전히 회복한 뒤에 중국말을 조금씩 가르쳐 주었읍니다. 여러 날이 지나자 중국말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자꾸 전생에 살던 곳으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널리 소문으로 퍼졌읍니다. 나중에는 북경대학에서 데리고 가서 여러가지로 정신감정을 해보고 치료도 해보았읍니다만, 정신은 조금도 이상이 없었읍니다.

또 그가 말하는 인도지나에도 사람을 보내어 조회를 해보았읍니다. 과연 유건종이란 사람이 살다가 죽었다는 것이 확실하고 또 그가 말한 전생의 일이 모두 다 사실이었읍니다. 결국 최천선이라는 사람이 죽었다가 깨어났으나 인도지나의 유건중의 혼이 초천선의 몸을 빌어 환생하였다는 것이 증명되었읍니다.

이런 일은 참 희귀한 일이라고 하여 정부에서는 이 사람에게 내내 연금을 주었읍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되었읍니다.


3. 연령역행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모두 당사자가 전생기억을 갖고 있어서 이야기하는 경우들이었읍니다. 그런데 또 심리학에서도 전생을 조사하는 방법이 있읍니다. 심리학에서는 최면술을 이용하여 그 사람의 전생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연구된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연령역행이라고 합니다. 실헝대상자에게 최면을 걸어놓고 그 상태에서 사람의 연령을 자꾸자꾸 거꾸로 역행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무살 되는 사람을 최면을 걸어서 열살로 만듭니다. 그러면 열살 먹은 사람이 되어 그때의 행동이나 말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또 네살이 되도록 만듭니다. 그러면 네살 때의 노래를 하고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한살로 만들어 놓으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합니다. 연령역행은 심리학에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의학에서도 이것을 인정하고 있읍니다. 어떤 사람이 병이 났는데 아무래도 그 원인을 알 수 없읍니다. 그래서 연령역행을 시켜 그 원인을 조사해 보니 10년이나 20년쯤 전에 그 병의 원인이 되는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읍니다. 또 간첩이 잡혔을 때에도 이용합니다. 본인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그럴 때에 최면술을 이용하여 연령역행을 시킵니다. 그러면 간첩이 되기 위해 교욕받았던 것을 처음부터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녹음해 두었다가 다시 물어보면 꼼짝없이 자백할 수밖에 없읍니다. 



영혼과 윤회 3 (성철스님)   


.. 그러면 이것이 전생 문제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최면 상태에서 연령역행을 하여 한살로 만들어 둡니다. 그러면 사십대, 오십대의 어른도 손발을 바둥거리고 빽빽 울면서 어린 아이의 몸짓만 할 뿐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나서 묻습니다.

"네가 태어나기 일년 전, 이년 전에는 어디 있었는냐?"

그러면 주소 성명이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보기를 들어 여기 해인사 꼴짜기에 사는 사람을 연령역행을 시켜서 한살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러고서는 다시 태어나기 3년 전을 묻습니다. 그러면 주소 성명이 바뀌어 전라도 어느 곳의 누구라든지, 일본의 어느 곳 사람이라든지 하며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는 전생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신과학에서 전생회기라고 합니다. 전생으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전생으로 돌라가서 한 생뿌만이 아니고 이생, 삼생...여러 수십생까지 올라가는 방법입니다.

1)[브라이드 머피를 찾아서]

최면 상태에서 연령역행을 시켜 전생을 알아보는 전생회기에 대해 연구를 한 사람 중에 미국에 모리 번스타인이라는 사람이 있읍니다. 그는 루스 시몽 부인이라는 스물 아홉살의 여자를 연령역행시켜 그 여자의 전생을 거슬러올라갔읍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19세기에 아일랜드의 코우크 시에 살았던 브라이드 머피라는 사람이었읍니다.

이 여자는 최면 상태에서 자기가 코우크 시에 살았던 시절의 여러가지 생활 모습이나 신앙체험에 대해 자세히 말했읍니다. 모리 번스타인은 이것을 녹음하고 정리하여 그 여자가 말한 곳에 가서 실제로 조사를 해 보았더니 과연 녹음한 내용이 사실과 맞는 것이었읍니다. 이 일을 미국의 98개 신문에서 일제히 계재하여 대대적으로 보도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온 세계가 깜짝 놀랐읍니다.

모리 번스타인이 이 실험을 한 것은 1952년 11월 29일이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브라이드 머피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1954년에 출간되었읍니다. 그 후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사자(死者)와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읍니다.

또 휴즈 박사라는 사람은 열두살 된 자기 딸을 연령역핸시켜 보았읍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읍니다. 나주에 알아보니 그것은 이집트의 고어였읍니다. 그 말은 현대의 이집트인들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 전문학자에게 부탁하여 통역을 하게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역사기록을 통해 알아보니 딸이 한 말이 역시 사실과 맞는 것이었읍니다.

그 밖에도 프로이노이라는 제네바대학의 심리학 교수는 열여섯살 되는 소녀를 대상으로 같은 실헝을 해 보았읍니다. 그 소녀도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는데 나중에 그 기록을 가지고 언어학자에게 의뢰한 결과 500년 전의 인도말인 것이 판명되었읍니다.

열여섯살 먹은 소녀가 오늘 날의 인도말도 아닌 500년 전의 인도말인 범어를 안다는 것은 결국 최면 상태에서 완전히 500년 전의 인도 사람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전생회기의 사례들이 속속 사실로 밝혀지자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영혼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듯이 자꾸 윤회를 한다는 것이 증명되기 시작했읍니다. 학자들은 이것이야말로 학계를 움직인 근본적인 대사건이라고 했읍니다.

이러한 사례가 증명되기 시작하자 가장 곤란해진 것은 서양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영혼이 있어서 기독교를 믿어면 죽어서 천당도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으로 갈 뿐이지 환생이나 윤회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한 브라이드 머피의 이야기가 알려지게 되자 그러한 주장이 거짓말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브라이드 머피라는 사람은 아주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읍니다. 그런데 천당에 가지 못하고 시몽 부인으로 미국에서 다시 태어났으니 문제는 아주 심각해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측에서는 브라이드 머피의 이야기는 거짓말이라고 라디오, tv, 신문 등을 통해서 발표했읍니다. 그런데 이 전생회기의 사례는 브라이드 머피뿐만이 아니라 그 뒤로도 진실을 밝혀보려는 학자들에 의해 속속 수집되기 시작했읍니다.


2)[한번 이상 사는가?]

전생회기의 사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영국의 브록샴 테이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국의 유명한 최면 요법사인 아이널 브록샴이라는 사람이 최면을 통한 연령역행으로 20여 년 동안 약 400명의 전생을 조사하여 테이프에 녹음을 한 것입니다. 그 테이프는 아직도 보존이 된고 있는데 거기에는 가지가지의 전생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러한 갖가지 사례가 알려지자 브록샤 씨의 전생회귀는 큰 화제거리가 되었읍니다. 이렇게 소문이 퍼지자 세게에서 가장 권위가 있고 신뢰도가 높다는 영국의 국영방송인 BBC의 과학부 기자 두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조사를 해보기로 하였읍니다.

그들이 막상 조사를 시작해보니 그것은 참으로 굉장한 것이었읍니다. 조사를 해나감에 따라서 그것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게 되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조사에 열중하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약1년 동안 테이프에서 전생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 말한 지명을 찾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가 보았읍니다. 또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역사학자, 고고학자, 심리학자들을 만나 일일이 확인도 하였읍니다. 그리고 나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읍니다.

"우리는 이것이 거짓임을 입증하기 위해 1년 동안이나 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브록샴 테이프의 전생 조사는 조금도 틀림이 없는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이 조사 작업은 BBC TV에서 특집으로 방송되었고, 1976년에는 [한번 이상 사는가?]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판되기도 했읍니다. 이 책의 내용도 뒤의 부록 2에 간단하게 소개됩니다. 브록샴의 테이프에 나오는 사례 중에서 자기의 다른 전생을 여섯 가지나 이야기한 가정 주부의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에 관해서 한번 들어 보겠읍니다.

그 부인의 이름은 제인 에반스라고 합니다. 맨 처음에 로마 제국이 통치하던 영국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가정 교사의 아내로 살았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1190년 영국 요크 시에서 유태인 여성으로 살았고, 세번째는 1451년 불란스 부르스 시에서 꿰르라는 사람의 하녀로 살았고, 네번째는 앤 여왕의 재위 시절에 런던에서 바느질로 품팔이 하는 소녀로 살았고, 그리고 가장 가까운 전생인 여섯번째는 미국의 메릴랜드 주에서 수녀로 살다가 1920년에 죽었다고 말했읍니다.

제인 에반스라는 여인의 전생은 서로 겹치지 않았으며,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나는 간격이 가장 짧은 것이 20년 안팎이었읍니다.

전생 조사에 대한 실제의 보기가 이렇게 속속 출현하자 이제 이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게 되었읍니다. 졀국 기독교계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전생을 부인하고만 있을 수 없게 되자, 이 사실을 하나의 자연현상으로 보고 교리와는 상관없이 연구해보고자 하여 관심을 갖는 신부나 목사도 더러 나오게 되었읍니다.


3)전생요법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정신상태를 세 가지 단계로 나눕니다. 우리가 모여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의식상태입니다. 의식상태 안에 잠재의식이 있고 잠재의식 속에 무의식상태가 있읍니다. 무의식상태는 의식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입니다.

프로이드가 잠재의식은 왠만큼 연구하여 발표하였지만, 무의식에 대해서는 뚜렷한 연구 결과를 내지 못했읍니다. 이 무의식 상태에 대해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앞에서 말한 바 있는 영국의 캐논 박사입니다. 그의 가장 큰 공적은 전생조사에 있읍니다.

그도 처음에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영혼도 있을 수 없고, 윤회도 없다고 철두철미 부정하였읍니다. 그러나 최면술을 이용한 무의식 상태에서 전생회귀를 시켜보니 사람들에게서 전생이 나타나는 경우를 자주 대하게 되어 생각이 바뀌었읍니다. 곧 연령역행을 통하여 열살, 한살, 출생이전으로 역행시키면 때로는 저 로마시대까지 역행되어 전생이 나타나는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그때에 실험 대상자들이 한 말을 역사의 기록과 대조하여 조사해 보면 모무 맞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1,382명에 대한 전생자료를 수집하여 1952년에 [잠재력]이라는 책으로 출판하였읍니다.

이것을 '캐논 보고서'라고도 하는데, 이 캐논 보고서에 의하면, 병이 들어서 아무리 치료를 해도 낫지 않는 겨우에 전생회기를 통하여 조사를 해보면 그런 병들은 전생에서 넘어온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전생에서의 원인에 의지해서 치료함으로써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전생요법'입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사례가 있읍니다.

어떤 사람이 물만 보면 겁을 냅니다. 바다를 구경한 적도 없고 강 옆에 살지도 않았읍니다. 그런데도 물만 보면 겁을 내는데 아무리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었읍니다. 그래서 전생회귀를 시켜보니 그는 전생에 지중해를 내왕하는 큰 상인의 노예였읍니다. 그런데 죄를 지어서 쇠사슬에 묶인 채 바닷물 속으로 던져져서 빠져 죽었던 것입니다.

그때 얼마나 고생을 했겠읍니까? 그러니 금생에서도 물만 보면 겁을 내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밝힌 뒤에 이 원인을 의거해서 치료를 하니 그의 병이 다 낳았읍니다.

또 한 사람은 높은 계단을 무서위하며 오르지 못하는 것이었읍니다. 그 사람의 전생을 보니 그는 젼생에 중국의 장군이었는데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높은 곳만 보면 겁을 내는 것이었읍니다.

캐논 보고서의 이런 사례들에 의거해서 학자들이 전생요법을 개발하여 요즈음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고 있읍니다. 1977년 10월 3일자 타임 지에 보면 이에 관해 자세히 소개되어 있읍니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잡지에서 자신있게 보도할 때에는 부인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처럼 전생이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병을 치료하는 한 방법으로서 전생요법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는데도 전생과 윤회에 대해 의심을 갖는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믿을 수 있겠읍니까?

그러면 전생이 있고 윤회를 한다고 할 때 어떤 법칙에서 윤회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납니다. 과연 내가 원하기만 하면 마음대로 김 씨가 되고 남자가 되고 할 수 있는가? 캐논 보고서에서 살펴보면 그것은 순전히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법칙에 의한다는 것이 판명되었읍니다.

인과법칙이란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입니다. 착한 원인에는 좋은 결과가 생기고, 나쁜 원인에는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이제 전새을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어떤 사람이 전새에 착한 사람이었는지, 악한 사람이었는지를 알아서 그 사람의 금생의 생활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를 비교해 봅니다. 전새에 악한 사람이면 반드시 금생에 불행한 사람이고 전생에 착한 사람이면 반드시 금생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전생 일을 알고자 하는냐?
금생에 받는 그것이다.

내생 일을 알고자 하는냐?
금생에 하는 그것이다.

전생에 내가 착한 사람이었나 악한 사람이었나를 알고 싶으면 금생에 내가 받는 것, 곧, 지금 내가 행복한 사람이냐 불행한 사람이냐를 살펴볼 것이며 내생에 내가 행복하게 살 것인가 불행하게 살 것이가를 알고 싶으면 지금 자신의 하는 일을 보면 알 것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의 정신과학에서는 이 인과를 인도말인 카르마라고 합니다. 본디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이라는 뜻이 담긴 이 말은 이제 세계적인 학술용어가 되었읍니다.


4.전생투시

인과 문제에 대해서 가장 큰 업적을 쌓은 사람은 미국의 에드가 케이시입니다. 그에 관해서는 전기(傳記)도 많이 나와 있는데 사람들은 그를 기적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기적인'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행하는 기적은 이런 것입니다. 남의 병을 치료하는데 환자의 주소와 이름만 가르쳐 주면 수천리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사람의 병을 모두 진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찰하여 처방을 내고 병을 치료해 주면 다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치료한 사람은 무려 3만명이 넘습니다. 그는 미국 뉴욕에 앉아서 영국 런던에 있는 귀족들을 진찰할 수 있으며 이탈리아이 로마에 있는 사람들도 진찰할 수 있읍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친구가 영국 런던에 갔는데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캐이시에게 물어봅니다. 그의 답을 듣고서 바로 런던에 전화를 해 보았더니 캐이시의 말이 모두 맞았읍니다.

이런 신기한 투시력을 가진 캐이시가 병을 진찰하다 보니 병이 전생에서 넘어오는 것이 많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에게는 전생을 꿰뚫어보는 힘이 있어 환자의 전생에서 병의 원인을 찾는 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교도였읍니다. 예수교에는 전생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기의 종교와 반대되는 것이라고 하여 병을 치료하는 것을 그만두려고 했읍니다. 그러나 주위의 학자들이 종교와 학문과는 다르다고 그를 설득하여 이것을 학문적으로 끝까지 조사해 보자고 의논이 되었읍니다.

그래서 병을 치료하는 것을 그만두고, 전생 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2,500명의 전생을 조사하였읍니다. 그의 죽음(1974년) 뒤에도 버어지니아 비치에서는 원거리 진찰과 전생투시에 대한 수많은 기록을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초능력의 비밀]과 [윤회의 비밀], 이 두 권은 공산국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번역되었읍니다.

에드가 케이시의 전생투시에 의해 전생과 금생의 인과를 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을 낳고 사는 부부인데도 그 사이가 무척 나빠서 그 전생을 알아보니 서로가 원한이 맺힌 사이였읍니다. 거꾸로 내외간에 잘 지내는 사람을 알아보니 전생에 아버지와 딸 관계이거나 혹은 어머니와 아들관계였읍니다. "그럴 수가 있을까?"하겠지만 우리들이 몰라서 그렇지 본래 인과란 그렇게 맺어지는 것입니다.

숙명통(宿命通; 전생의 일을 환히 아는 능력)을 하여 전생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다만 우리들이 업장은 두텁고 눈이 어두워 이해가 가지 않으니 곤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때에 현대의 과학자들이 연구한 전생과 윤회 및 인과에 대한 좋은 자료를 소개하면 부처님 말씀을 믿고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키가 작은 난장이입니다. 그 사람의 전생을 알아보니 부처님 말씀 그대로였읍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이 아만이 많아서 남을 무시하고 깔보면 내생에는 키가 작은 과보를 받는다"고 하셨읍니다. 그래서 언제나 남을 올려다보아야 하고 남은 자기를 내려다 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왔듯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윤회와 인과는 현대의 과학적 자료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대소승의 천경만론(千經萬論) 가운데서 윤회를 말씀하셨으니 이것을 믿으면 그만이지, 캐논이든 스티븐슨이든 그런 과학자가 무엇이라고 그들이 수집한 자료를 인용하여 새로이 윤회를 설명하려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읍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읍니다.

운허스님은 올해 연세가 여든아홉입니다. '운허스님'하면 전국적으로 다 아는 큰스님 아닙니까? 한글 대장경 역경사업을 주관하신 데에다, 학식으로나 덕행으로나 두루 존경받는 어른입니다. 그 스님께서 몇 년 전에 백련암에 오셨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가 물었읍니다.

"스님께서는 경전에 대해 박식하시고 역경 사업에서도 큰 일을 하시는데, 그러면 전생을 믿어십니까?"

"허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안 믿을 수 있읍니까?"

"안 믿을 수 있는가라고 말씀하실 것이 아니라, 실제로 확실히 믿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글쎄요, 부처님 말씀에 분명히 전생이 있다고 하셨으니 믿기는 믿지만, 명확하게 이해는 되지 않습니다."

경전에 대해 그렇게 뛰어난 학식을 지니고 있고 수행도 잘 하시는 분이 '믿기는 믿지만 명확하게 이해는 안 된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은 양심입니다. 그래서 스님께 [사자와의 대화]라는 책을 드리며 읽어보시라고 했읍니다.

그 뒤에 대학생 수련대회 때 대학생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봉은사의 운허 큰스님께서 법문 때에 하시는 말씀이 해인사에 가서 [사자와의 대화]라는 책을 얻어와서 읽어보니 얼마나 좋은지 여러 번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윤회를 더 잘 이해하려면 그 책을 많이 읽어라고 학생들에게 여러 차례 권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다운 학자의 양심입니다. 운허스님은 나보다 스무살이나 더 많은 분입니다. 그런 점쟎은 스님이 아니라면 내가 대중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읍니까? 부처님께서 분명히 윤회와 전생을 말씀하셔서 믿기는 믿지만 이해는 가지 않았는데, 브라이드 머피 사건의 전생 기록을 보니 이해가 되더라고 학생들을 모아놓고 공공연하게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 뒤에 스님을 다시 만났을 때 직접 물어보았더니 과연 '그렇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사람들이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시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법입니다. 그런 보기로 근대 천체물리학에서 가장 중대하고도 큰 발견인 지동설이 처음 주창되었을 때를 들 수 있읍니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지동설이 나오기 전까지는, 지구는 고정되어 가만히 있고 해가 지구의 주위를 돈다고 하는 천동설이 기독교 교리로 확립되어 있었읍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자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비웃었읍니다.

"땅이 움직이다니, 그러면 물이 모두 엎질러질 것이 아닌가?"
"사람이 거꾸로 허공 속으로 떨어버릴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이런저런 의심을 품고 쿠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반박하였읍니다. 무엇보다도 지동설은 그때까지의 기독교 교리에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읍니다. 그리하여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읍니다. 가장 먼저 희생당한 사람은 후스라는 종교개혁가였읍니다.

그 무렵에 천주교에서 가장 큰 신학자이면서 또한 과학자요 철학자였던 브루노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도 지동설을 주장하였읍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처음에 지동설을 주장하다, 사형에 한다는 바람에, 입을 다물고 자기의 주장을 꺾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용기있는 다른 학자들은 그래도 그것을 주장하였으며, 브루노도 또한 지동설을 끝까지 주장하였읍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교황청으로서도 큰일이었읍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직자가 지동설을 주장하고 나서니 큰일이 아닐 수가 있겠읍니까? 그래서 브루노를 불러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지동설을 버리라고 타일렀읍니다. 그랬으나 브루노는 변함없이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렇다면 너는 분형(焚刑)이다!"
"아무리 분형에 처해진다 하더라도 지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결국 그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나무십자가에 매달려 불에 태워 죽이는 분형을 선고받았읍니다. 그러나 그러고 나서도 그의 사람됨이 휼륭하여 사람들은 그를 죽이기가 아까왔읍니다. 그래서 또 다시 지동설만 취소하면 살려주겠노라고 몇번이나 권유하였지만, 그는 끝끝내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읍니다.

마침내 분형에 처하는 날, 나무 십자가에 붙들어매어 놓고 불을 붙였읍니다. 발 믿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을 때 브루노에게 십자가를 들이대며 말했읍니다.

"회개하라! 지동설을 취소하면 살려줄 터이다."
이에 브루노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말했읍니다.
"그래도 지구는 도는데..."

브루노는 결국 불에 타 죽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지동설은 타 죽지 않고 뒤에 과학적으로 증명됨으로써 영구히 살게 되었읍니다. 이렇듯이 새로운 주장이나 이론은, 아무리 옳은 것이어도, 당대에 널리 이해받지 못하여 박해도 받고 죽기도 하고 바보 취급을 당하기도 하는 등 온갖 수모를 받기 마련인 것입니다.

불교의 윤회설도 도를 닦아 숙명통을 얻기 전에는 전생이 있음을 우리 중생들이 어떻게 알겠읍니까? 다행히도 요즈음에 정신과학이나 초심리학 같은 분야에서 연구가 진일보함에 따라 여러 방면에서 증명되고 있으니, 보기를 들면, 첫째가 전생기억으로 스티븐슨 씨가 무려 2,000건 이상의 사례를 발표하였고, 둘째는 전생회귀로 브록샴테이프나 캐논보고서가 그것이며, 셋째는 전생투시로 에드가 케이시에게서 볼 수 있는데, 이들을 통하여 우리는 윤회에 대해 확실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전생이 판명됨으로써, 그것을 금생과 맞추어 보면, 인과가 있는지 없는지가 명확히 나타나지 않겠읍니까? 전생에 지은 그대로 금생에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에드가 케이시도 2,500명의 사례를 조사해 보았더니 전생과 금생이 인과로 연결되는 것이었읍니다. 이러니 어떻게 인과를 부정하겠읍니까?

이리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전생이 있다, 윤회가 있다, 인과가 있다 하는 것이 정신과학의 발달로 객관적인 사실로서 증명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이 우주의 진리를 다 깨달은 부처님께서 윤회를 말씀하셨으니 그것을 믿으면 그만입니다. 캐논이나 케이시 같은 과학자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의 연구 결과를 보기로 이야기한 것은, 부처님께서 이미 삼천년 전에 모두 말씀하신 것인데, 현대과학이 이제야 그것에 가까이 오고 있음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이제 문제는 영혼이 있고, 인과에 의해 윤회를 한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대로 받고 말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전생에서 잘못했으니 금생에 받아야 할까? 그것이야 당연하지요. 그러면 내생에는 어떻게 될까? 그것이야 뻔하지, 내생에는 불행하게 되지. 아무리 착하게 하려 해도 자꾸 남을 해치게 되고 또 그것을 받아야 할 테니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인과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도둑질하고, 살인도 하도, 거짓을 일삼고 등등으로 온갖 짓을 다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예사입니다. 그러나 인과가 있음을 확실히 알면 죄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작자수(自作自受)!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것을 어떻게 하겠읍니까!

불교의 근본 목표는 바로 이 점에 있읍니다. 인간의 생명은 영원토록 영원토록 계속해서 윤회를 하여 영원토록 상주불멸인데, 불교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윤회를 하던 아무 상관이 없읍니다. 그러나 중생이란 악업은 많이 지어도 선업은 많이 쌓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되어 업을 짓고, 윤회를 하고, 업을 짓고, 고(苦)를 받고 하지만, 그러나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따라서 수도를 하면 결국에는 자성(自性)을 깨쳐서 생사해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윤회도, 인과도 모두 벗어나 대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스님, 불교에서는 윤회가 있다고 하는데, 윤회가 없으면 좋겠읍니다."
"왜?"
"죽고 나면 끝이라고 하면 무엇이든 해서 우선 편하게 살겠는데, 내생이 있고 인과가 있다고 하니, 겁이 나서 어떻게 해볼 수가 있어야지요?"

글쎄, 나도 인과가 없고 내생이 없었으면 좋겠어. 아무리 잘한다고 애써도 잘못하는 것이 더 많을 터이니, 그리하여 내생에 고를 더 받을 터이니, 인과가 없으면 좋겠어. 그런데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내생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한다고 없어질까?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해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게 할 수가 있을까? 그럴 수가 없지."

지금까지 영혼이 있다, 윤회가 있다, 인과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慧蓮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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