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과 아미타불/염불에 관한 장

[스크랩] 나무아미타불 염불 실용문답

慧蓮혜련 2018. 10. 2. 00:02

염불실용문답


 

 정종淨宗스님 법문 / 정전淨傳스님 번역

 

 

1. 현세의 이익에 관하여

 

1. 질문: 왕생을 구하려면 아미타불을 부르고, 평안함과 재난의 소멸이나 수명의 연장 등 현세의 이익을 구하려면 따로 관련된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르거나, 경전 또는 진언을 독송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관념들은 옳은 것인가?

 

: 옳지 않다. 일반적으로 처음 불교에 입문한 사람들의 신앙심이 비교적 얕기 때문에 때로는 이러한 관념들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신앙이 깊어짐에 따라 그 사람이 정토왕생을 발원한 사람이라면 왕생을 위해서나, 아니면 현세의 이익을 구하는 데 있어서나 모두 마땅히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야지 다른 것을 부를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경전에서 말씀하시길 “아미타불은 모든 부처님 중의 왕이시고, 아미타불의 명호 속에는 모든 부처님과 보살, 경전과 진언의 공덕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오로지 아미타불 한 부처님만 염念하면 모든 불보살님과 경전 그리고 진언을 전부 염한 공덕과도 같다”(경전의 뜻을 취함)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모든 불보살님과 경전, 진언을 염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아미타불을 염하여도 전부 얻을 수 있다. 반면에 아미타불을 불러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다른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르거나 다른 경전과 진언을 독송한다면 반드시 전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백관대신百官大臣들이 일반 백성들을 위하여 해줄 수 있는 일들은 국왕으로서 당연히 해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국왕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백관대신들이 반드시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둘째,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른다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갖가지 세간의 이익도 얻을 수 있으므로, 두 가지 방면에서 모두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잡다하게 여러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르거나 경전과 진언 등을 독송한다면 왕생이 결정되지 않을뿐더러, 얻을 수 있는 세간의 이익 역시 적다.

 

2. 질문: 아미타불을 부르면 다만 왕생을 할 수 있을 뿐이지, 현세의 여러 이익과는 상관없지 않은가?

 

: 그렇지 않다.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에는 현세의 이익과 내생의 이익이 전부 포함된다. 이것을 정토종에서는 “현세와 내생의 두 가지 이익(現當二益)”이라 부른다. ‘당當’은 당래(장래, 내생)로서 당래의 이익은 왕생하여 성불을 하는 것이고, ‘현現’은 현세로서 현세의 이익에는 예를 들어, 재난을 소멸하고 복과 지혜가 자라나며, 병을 물리치고 장수할 수 있으며, 평안하고 하는 일이 뜻대로 잘 되고, 위로는 조상을 천도하고 아래로는 자손들을 보우保佑하는 등의 모든 이익이 그 속에 포함된다.

 

3. 질문: 관세음보살님은 구원의 소리를 찾아서 고난에 처한 중생들을 구제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비록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만,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는 재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관세음보살님을 불러야 한다는데, 이는 옳은 것인가?

 

: 관세음보살님을 “대자대비 구고구난 광대영감”이라고 부르는데,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면, 보살님께서 즉시 구원을 요청하는 소리를 살피시고 구원을 해주신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 치의 그릇됨도 없다. 하지만 평소에 염불수행을 하던 사람들은 관세음보살님을 바꿔 부를 필요는 없다. 이치적으로 설명하자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아미타불께서 소리를 찾아서 고통을 구제해주시는 능력은 관세음보살님보다 훨씬 뛰어나다. 관세음보살님은 현재 서방극락세계에 계시는데 아미타불의 상수上首제자이시다. 이 보살님의 자비와 능력은 전부 스승이신 아미타부처님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아미타불께서는 성불을 하시기 전에 보살도를 닦으실 때 명호로써 중생구제를 하시겠다는 발원을 하시고 수행을 하셨다.

 

 다만 당신의 명호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입을 벌려 소리를 내어 부르든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부르든, 위급할 때에 부르든 아니면 평소에 부르든, 전문적으로 정신을 집중하여 부르든 아니면 비교적 산란한 마음으로 부르든, 심지어 염불을 하는 사람이 부처님을 믿든 믿지 않던 간에 아미타불께서는 즉각 감응하여 바로 광명을 놓아 비춰주시고, 동시에 몸을 나투시어 그 사람을 보호해주시겠다는 것이다.

 

감응의 속도는 전등의 스위치를 누르면 빛이 바로 환하게 비추는 것보다 더욱 빠르다. 염불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광명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므로 즉시에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되고, 재난이 소멸되어 상서롭게 된다. 또한 평소에 자주 염불을 하지 않고 어떤 일을 당하여 간혹 염불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감응은 역시 이와 같다.

 

만약 평소에도 늘 염불을 하던 사람이라면, 아미타불의 광명은 주야로 이 사람을 비춰주고 보호를 해주시며 그 사람의 곁을 떠나지 않으신다. 그리하여 이 사람은 일생 동안 줄곧 평안하게 지내다가, 임종할 때가 되면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된다. 이것은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관세음보살님이 소리를 찾아 고통을 구제해주시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전면적이며 철저하다. 따라서 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임시적으로 다른 불보살님들을 바꿔 부를 필요가 없다.

 

둘째, 아미타불을 부르면 관세음보살님은 따로 청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신다. 관세음보살님은 당신의 스승이신 아미타불을 매우 존경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항상 아미타불을 머리 위에 이고 계신다. 우리가 보고 있는 관세음보살님의 머리 위에 화불化佛 한 분이 서 계시는데, 이분이 바로 아미타불이시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은 아미타불을 수시로 따라다니시는데, 아미타불이 어디를 가시든지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으신다.

 

 따라서 평소에 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들은 아미타불께서 이미 광명을 놓고 몸을 나투시어 그 사람을 보호해주시는 이상,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 그리고 수많은 대보살님들도 당연히 함께 오셔서 보호를 해주신다.예컨대 󰡔관무량수경󰡕에서 말씀하셨듯이, 오로지 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은 관세음과 대세지 양대 보살님이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이 항상 그 사람의 뒤를 따라 다니면서

 

 이 염불하는 사람을 보호해주심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그 사람의 훌륭한 벗이 되어 주시고, 자비로써 모든 일에 도움을 주신다고 하셨다. 따라서 오로지 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이라면 설사 관세음보살님을 부르지 않더라도 관세음보살님은 당연히 오셔서 보호를 해주신다. 그 밖의 불보살님들도 역시 이와 같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불보살님들을 부를 필요가 없다.

 

셋째, 평소에 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들은 항상 부처님 광명의 보호 속에 있으므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재난들이 자연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위급한 때에 임시적으로 보살님께 도움을 청하게 될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숙세의 업을 피할 길이 없어 작은 재난과 장애가 있더라도 진정으로 신앙심이 깊고 염불수행에 바탕이 있는(습이 배인) 사람이라면 자연히 아미타불을 부르게 되지, 이 보살님 저 부처님을 부를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흔들이고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마음이 전일專一하지 않다는 증거다. 따라서 어떤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든지 효과적으로는 오로지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과 전혀 비교할 수가 없다.

 

4. 질문: 세간에는 자식을 낳게 해주는 송자관음送子觀音이 있다. 비록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만 자식을 구하려면 반드시 관세음보살님을 불러야 한다는데, 이는 옳은 것인가?

 

: 그럴 필요가 없다. 아미타불을 불러도 똑같이 자식을 구하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

 

5. 질문: 문수보살님은 지혜제일이시다. 비록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만 지혜가 증장하고 시험을 보는 데 순조롭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문수보살을 불러야 한다고 한다. 옳은 것인가?

 

: 그럴 필요가 없다. 문수보살님은 지혜를 상징하고 보살대중 가운데서 지혜제일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어쨌든 부처님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경전에서 말씀하셨듯이, 아미타불의 지혜와 광명은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들조차 따라갈 수 없다고 하셨으니, 하물며 보살제자들은 더더욱 동등한 입장에서 논할 수 없다. 따라서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면 역시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6. 질문: 지장보살님께는 정해진 업을 소멸시켜주는 멸정업진언滅定業眞言이 있으시다. 비록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만 업장소멸을 하려면 반드시 지장보살님을 불러야 한다는데, 옳은 것인가?

 

: 그렇지 않다! 아미타불을 불러도 똑같이 업장소멸을 할 수 있다. 불보살님들의 명호에는 전부 공덕이 들어 있고, 공덕이 있으므로 죄업을 소멸할 수 있다. 지장보살님의 공덕이 진실로 불가사의하나, 아미타불과 비교를 한다면 여전히 백천만억 배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석정토군의론(釋淨土群疑論, 군의론)󰡕에서 “일대겁 동안 지장보살을 부르는 것은 아미타불을 한번 부르는 것만 못하다”고 말씀하셨고, 󰡔무량수경󰡕에서는 “아미타불의 공덕은 위없고, 광명은 제일이어서 시방제불이 따라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아미타불을 불러 업장소멸을 하는 것은 마치 햇빛이 어둠을 없애주는 것과 같고, 지장보살 등의 기타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불러 업장소멸을 하는 것은 마치 달빛이 어둠을 소멸하는 것과 같다.

 

7. 질문: 지장보살님은 유명교주幽冥敎主로서, 오로지 유명계의 중생들을 구제하고 계신다. 비록 지금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만 망령亡靈을 천도하고 지옥중생을 구제하려면 반드시 지장보살님을 불러야 한다고 한다. 이는 옳은 것인가?

 

: 그렇지 않다. 지금 지장보살과 아미타불을 비교하여 간략하게 일곱 가지 점을 들어 비교될 수 없음을 밝히겠다.

 

⑴ 공덕의 부족함과 원만함이 비교되지 않는다. 지장보살님께서는 발원하시길 ‘지옥이 텅 비지 않는 한 성불하지 않겠다’고 하셨으므로, 수행공덕이 아직 원만하지 않고, 그 원력 역시 아직 실현되지 못하였다. 아미타불은 인지因地에서 발원하시길 ‘항상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들을 구제하고 아비지옥의 고통받는 중생들을 남김없이 제도하겠다’고 하셨는데, 수행 공덕이 이미 원만하였고, 그 원력 역시 이미 실현되어 성불을 하셨다. 그러므로 양자 간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⑵ 지위가 높고 낮음이 비교되지 않는다. 지장보살님은 유명교주이시고, 아미타불은 제불의 왕이시므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⑶ 임금과 신하의 관계이므로 비교되지 않는다. 󰡔군의론󰡕에서는 “부처님은 법왕이시고 보살은 법신法臣인데, 임금이 출타할 때 대신들은 반드시 따라나선다. 큰 것은 작은 것을 포괄할 수 있으니, 염불을 많이 하면 공덕이 제일 크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하면 지장보살님은 자연히 아미타불을 모시고 따라오셔서 지옥중생들을 구제해주신다.

⑷ 알려진 명성의 범위가 비교되지 않는다. 아미타불의 명호는 시방제불들이 다 경앙하고 찬탄하시는 바이므로 비교되지 않는다.

⑸ 광명의 크기가 비교되지 않는다.

⑹ 소멸된 죄업의 양이 비교되지 않는다.

⑺ 구제의 이익이 비교되지 않는다. 지장보살을 부르면 대부분 삼악도의 중생들을 건져 인간과 천상의 선도善道에 태어나게 할 수 있지만, 아미타불을 부르면 삼악도에서 곧장 정토로 초월하여 성불할 수 있다.

 

8. 질문: 사람이 임종할 때는 왕왕 업장이 나타나서 원친채주怨親債主들이 서로 와서 끌고 가려고 핍박을 한다고 한다. 이때 반드시 먼저 󰡔지장경󰡕을 독송하고 지장보살님의 명호를 불러서 업장소멸을 하고 난 다음, 다시 아미타불을 부르며 왕생을 구해야 한다고 한다. 옳은 것인가?

 

: 옳지 않다. 임종할 때는 사람이 위로 올라가느냐, 아래로 내려가느냐를 판가름할 가장 중요한 시기다. 이때는 어떠한 다른 불보살님과 경전, 주력도 전부 너무 늦어 급한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직 시급히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가장 큰 구제의 효과를 지니고 있으며, 업장소멸과 극락왕생을 동시에 완성시킬 수 있다.

 

󰡔관경󰡕에서는 대승의 12부 경전을 들어도(독송하여도) 단지 천겁의 죄업을 소멸할 수 있을 뿐 왕생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크게 부족한 반면, 아미타불을 한 번 부르는 즉시 50억겁의 죄업이 사라지고, 곧장 사바세계를 초월하여 정토로 왕생할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렇게 계산을 해보면, 한 번 아미타불을 부르는 공덕이야말로 수천만 부의 󰡔지장경󰡕과 󰡔금강경󰡕 등 대승경전을 독송하는 공덕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 질문: 위타보살(韋陀菩薩: 신중의 한 종류)은 호법을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비록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만 수행을 하는 데 도움을 얻고, 장애의 인연을 줄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타보살을 모셔야 한다. 이는 옳은 것인가?

 

: 그럴 필요 없다. 오로지 아미타불을 모시고 아미타불을 전념하며 정토왕생을 발원한 사람은 󰡔관경󰡕, 󰡔아미타경󰡕, 󰡔시왕생경󰡕에서 설하신 것처럼 아미타불께서 항상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머물고, 관음‧세지보살께서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이 보호를 해주시며, 갠지스 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제불들이 함께 오셔서 호념護念을 해주신다. 그리고 25분의 대보살들이 여러 대보살들을 거느리고 일체시처一切時處에서 옹호를 해주신다.

 

 또한 무수한 부처님과 관음‧세지 등 보살들이 화신으로 오셔서 백 겹 천 겹으로 둘러싸고 주야로 이 사람 곁을 떠나지 않으신다. 모든 천신天神과 지기(地祇, 토지 신)들도 모두 공경하고 보살펴주며, 모든 악귀와 악신들도 그 틈을 노릴 수 없고, 일체의 액난과 재해, 장애들은 저절로 사라진다. 위타보살 역시 분명히 여러 보살님들을 따라 청하지 않아도 당연히 오셔서 호념을 해주실 것이다.

 

10. 질문: 제불보살님들의 신주神呪에는 큰 위신력이 있으시다. 비록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만 삿된 것을 물리치고 마구니를 항복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주를 지송해야 한다. 이는 옳은 것인가?

 

: 그럴 필요 없다. 한마디 아미타불은 주력 중의 왕과도 같으므로, 일체의 신주를 통해 이룰 수 있는 효능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도 전부 얻을 수 있다.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은 아미타불과 제불, 관음과 세지, 여러 큰 보살님들의 직접적인 호념을 받으므로, 비록 주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모든 사마외도로부터 침범을 받지 않게 된다.

 

11. 질문: 약사부처님은 중생들의 모든 병고를 치료해주시겠다고 발원을 하셨다. 비록 아미타불의 정토법문을 닦고 있지만 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약사부처님을 불러야 한다는데, 옳은 것인가?

 

: 그럴 필요 없다. 아미타불을 전념해도 똑같이 병을 치유할 수 있다.

 

12. 질문: 약사불을 다른 이름으로 ‘소재연수약사불消災延壽藥師佛’이라고도 부른다. 비록 아미타불의 정토법문을 닦고 있지만 재난을 소멸하고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약사불을 불러야 한다는데, 이는 옳은 것인가?

 

: 그럴 필요 없다. 아미타불은 ‘무량수불’이라고도 불린다. 아미타불을 전념한다면 똑같이 재난을 소멸하고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 선도대사께서는 󰡔관념법문󰡕에서 “아미타불을 칭념하며 왕생을 발원한 자는 현생에서 장수를 누릴 수 있고, 아홉 가지 횡액을 피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2. 염불왕생에 관하여

 

13. 질문: 살생을 하고 죄업을 많이 지은 사람의 경우는 비록 염불을 하더라도 아마 왕생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 사람은 누구나 죄가 있다. 아미타불께서는 바로 우리와 같이 죄업을 짓고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우리들을 구제하시려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죄업을 지었지만 마음을 돌이켜 염불을 한다면 왕생을 못할 이가 없다. 󰡔관경󰡕의 하품왕생에는 일생 동안 십악과 파계, 오역이라는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들이 임종할 때에 겨우 염불을 하였음에도 모조리 다 왕생한다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14. 질문: 그렇다면 염불하는 사람들은 악을 끊고 선을 닦을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 그건 또 그렇지 않다. 불법 중에 사람들로 하여금 악을 끊고 선을 닦을 필요가 없다는 법문은 결코 없다. 염불하는 사람들은 더욱 마땅히 신분과 능력에 따라 악을 끊고 선을 닦아야 한다.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면서 염불을 한다면 자신과 타인에게 있어 공덕과 이익은 더욱 크다.

⑴ 죄를 지으면 많은 고통이 따르게 되고, 선을 닦으면 크게 안락하다.

⑵ 죄를 지으면 잘 죽기가 어렵고, 선을 닦으면 선종善終을 하기 쉽다.

⑶ 죄를 짓는 사람은 중생들이 싫어하여 설사 염불을 하더라도 사람들의 신임을 얻기 어렵고, 착한 사람이 염불을 하면 중생들이 환희심을 내어 믿고 따른다.

⑷ 죄를 지으면 사회가 혼란스럽고 불법이 쇠하게 되며, 선을 닦으면 도덕이 창명昌明하고 불교가 흥성하게 된다.

⑸ 죄를 지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 제불이 싫어하고,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면 제불의 가르침을 수순하므로 제불이 기뻐하신다.

따라서 마땅히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며 염불해야 한다.

 

15. 질문: 악을 끊기도 어렵고 선을 닦기도 어려운데, 어떡해야 하는가?

 

: 사람이 성현이 아닌 이상, 항상 악을 끊고 선을 닦을 생각을 염두에 두고 인연에 따라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면서, 항상 부끄러운 마음을 갖고 염불을 많이 하면 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비록 악업을 깨끗하게 끊기는 어렵겠지만 절대 큰 죄를 저지르기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고, 비록 선행을 원만하게 닦지는 못하더라도 아무튼 한 생각 착한 마음을 잃지 않은 것이니, 아미타불께서도 반드시 가피를 주실 것이다.

 

16. 질문: 채식을 하지 못했는데도 염불하면 왕생할 수 있는가?

 

: 왕생할 수 있다. 󰡔염불감응록󰡕(念佛感應錄: 정종법사 편집, 전체 3집)에는 많은 분들이 채식을 하지 않았지만 전부 염불왕생을 한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상황을 봐야겠지만, 채식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채식에는 이로운 점들이 많다. 부처님의 자비심에 수순하고, 중생들에게 두려움이 없는 무외無畏를 베풀며, 자신의 건강에도 이롭고, 에너지를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며, 임종할 때에 업장을 줄일 수 있다.

 

17. 질문: 삼보에 귀의를 하지 않았어도 염불하면 왕생할 수 있는가?

 

: 왕생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에 여건이 허락하다면 그래도 귀의를 하는 편이 좋다. 왜냐하면 귀의를 한다는 것은 신앙을 정하고 불법문중에 들어와서 불제자가 되는 첫걸음인데, 어떻게 염불을 하고 싶고 왕생을 하고 싶은 사람이 귀의를 원치 않을 수 있겠는가?

 

18. 질문: 보리심을 발하지 않고 염불을 해도 왕생할 수 있는가?

 

: 진정한 발보리심(중생무변서원도: 중생이 가없어도 다 건지기를 서원합니다)은 매우 어렵다. 만약에 반드시 보리심을 발해야만이 왕생할 수 있다면, 감히 이 세상에 왕생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아미타불께서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려고 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보리심을 발해야만이 왕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관경󰡕의 상삼품上三品의 왕생에는 비록 발보리심이 있지만, 중하육품中下六品의 왕생에는 전부 발보리심이 없다. 󰡔염불감응록󰡕에 수록된 왕생사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보리심이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니, 하물며 발보리심이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비록 보리심을 모르지만 염불을 하고 왕생을 원한다면 모조리 왕생할 수 있다.

 

 일단 왕생을 하고 나면 자연히 성불하고 중생구제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정토염불법문의 묘한 점이다. 정토법문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왕생을 하려는 마음(願生心)을 일으키는 것인데,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곧 정토법문에서의 보리심이며, 이 마음은 사람마다 다 일으킬 수 있는 마음이다.

 

19. 질문: 만약에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지 못하였다면, 그래도 염불을 하면 왕생할 수 있는가?

 

: 왕생할 수 있다. 󰡔관경󰡕에서 중품하생 이하는 전부 계를 받은 적이 없거나, 계를 파하고 죄를 지었지만 임종할 때에 염불하여 왕생을 한 사람들이다. 일반법문의 수행은 전부 ‘부지런히 계‧정‧혜를 닦아 탐‧진‧치를 소멸함’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계율은 가장 기초가 된다. 따라서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지 못하면 인간과 천상(人天)의 선과善果조차 얻을 수 없는데 해탈하여 성불을 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것은 필경 너무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계‧정‧혜를 닦아 탐‧진‧치를 소멸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고도 드물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많고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염불이라는 특별법문을 설하신 것이다. 이 염불법문은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념(생각하며 부름)하면서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지하기만 하면 되므로, 왕생은 단지 염불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지, 계정혜가 있고 없고와는 무관한 것이다. 예를 들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의지하는 것은 오직 배의 힘이므로, 승객이 수영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와는 전혀 상관없이 배를 타기만 하면 전부 강을 건널 수 있다.

 

염불 역시 마찬가지다. 염불을 하기만 하면 전부 아미타불의 원력의 배를 올라탄 것과 같아, 계정혜가 있든 없든 모두 왕생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대자대비’라고 하고, ‘특별법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20. 질문: 그렇다면 염불하는 사람은 계율을 지킬(持戒)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 계율이 비록 왕생과는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염불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각자 자신의 근기와 능력에 따라 지킬 수 있는 데까지 계율을 지켜야 한다.지계持戒에는 지계의 공덕과 이익이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몸이 불구인지 건강한지는 비록 왕생과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건강하기를 바라면서 불구의 고통을 받기를 원치 않고, 왕생과 무관하다고 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데 소홀히 하여 몸이 불구가 되거나 손상을 입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계에는 지계의 안락함이 있고, 파계에는 파계로 인한 괴로운 과보가 있다. 다만 계율을 잘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부끄러운 마음을 갖고 꾸준히 염불을 하라는 것이지, 결코 염불하는 사람들은 계율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관경󰡕의 구품 중에 상중육품上中六品은 전부 계를 지켰거나 선행을 닦은 사람들이 염불왕생을 한 것이고, 하삼품下三品은 파계를 했거나 악업을 지은 사람들이 염불왕생을 한 것이다.

 

21. 질문: 비록 염불을 하고는 있지만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고 잡념이 분분한데, 그래도 왕생할 수 있는가?

 

: 왕생할 수 있다. 󰡔염불감응록󰡕에 수록된 여러 왕생사례들은 전부 평범한 염불인들로서, 많든 적든 간에 잡념이 있었지만 모두 왕생하였다. 사실상 마음이 청정하고 못하고, 염불을 하는 데 잡념이 있고 없고는 왕생을 하고 못하고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전수염불專修念佛을 하면서 진심으로 왕생을 원한다면, 설사 온종일 잡념이 분분할지라도 조금도 아미타불의 구제를 막을 수 없고, 조금도 왕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이 몸이 이미 큰 배 위에 앉아 있는 이상, 설사 마음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하더라도 안심하고 배 위에 있으면서 배에서 내려오지만 않는다면 이 배는 여전히 우리들을 태우고 피안에 도착할 것이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아미타부처님께 귀명歸命하여 우리들의 해탈과 성불의 생명을 부처님께 바치고, 꾸준히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면서 안심하고 아미타불의 구제에 맡긴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미 아미타불의 대원大願의 배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며, 아미타불과 한 몸(一體)이 되는 것이다.

 

 설령 제6의식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전진영사前塵影事’와 ‘허망상상虛妄想像’일 뿐이어서, 그 자체는 생멸하고 무상하여 자성이 없는 것인데, 어찌 아미타불의 구제를 방해할 수 있겠으며, 아미타불의 대원력의 배를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 아미타불의 걸림 없는 광명(無碍光)은 아주 가뿐하고도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우리들을 서방극락세계로 구제하실 수 있다.

 

다만 한 사람에게 망상과 잡념이 많으면 마음의 안정을 찾기가 쉽지 않고, 마음속에 번뇌가 많다는 것이므로, 염불을 하는 사람은 그래도 잡념이 적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방법은 있다. 바로 최대한 세상사에 대하여 담담하게 바라보고 염불을 많이 하면서 오래오래 지속하다 보면 자연히 잡념들이 줄어들 것이다. 인광대사님의 ‘십념기수법十念記數法’은 마음을 집중하여 염불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22. 질문: 왜 나는 염불을 하지 않을 때는 마음이 청정하고 망념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염불만 하면 도리어 망념이 더 많은 것을 느끼는가?

 

: 염불을 하지 않으면 이 사람 전체가 번뇌와 습기를 따라가게 되고, 망념과 동일한 방향이 되므로 망념이 있다는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염불은 망념과 역방향이어서, 염불만 하면 망념이 엄청 많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차역에서 붐비는 인파를 따라 개찰구를 통과하여 안쪽으로 들어갈 때에,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크게 느낄 수 없는데 이것은 방향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에 반대의 입장이 되었을 때, 인파가 안쪽으로 밀려오는데 본인 혼자서 바깥으로 빠져 나오려고 한다면 즉각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야말로 인산인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은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사람의 수는 똑같이 많다. 염불하여 생사의 흐름에 역행해서 극락세계에 왕생한다는 것도 바로 이와 같다. 처음 염불을 하는 사람들이 망념이 많음을 발견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축하해야 할 일이다.

 

23. 질문: 염불을 할 때에 망념이 많다는 것은 염불이 효험이 없다는 게 아닌가?

 

: 망념이 이렇게 많고, 이렇게 치솟아 오르는데도 여전히 염불을 할 수 있고 망념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은, 이것이 바로 염불의 효험을 얻은 것이다. 마치 개찰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안쪽을 향해 몰려드는데, 본인 혼자서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런데 만약 큰 힘을 지닌 사람이거나 위세가 있는 사람, 예컨대 국왕이 역을 나온다면 만인이 전부 길을 양보하고 회피해야 하므로, 이때에 우리는 국왕의 뒤를 좇아 그 기세를 따라 밖으로 나올 수 있다.

 

한마디 아미타불은 마치 국왕과도 같다. 아미타불이 우리들을 구하러 오신다는 것은, 곧장 삼악도로 달려가는 우리들을 업력과 망념의 흐름으로부터 구제해주시는 바이므로 무시겁 이래의 망념의 방향과는 정반대이다. 우리는 단지 부처님 명호의 뒤를 따르기만 하면 순조롭고 편안하게 육도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음속에 부처님의 명호를 한 번 떠올리면 모든 망념이 자연히 피해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망념이 많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방향이 상반되기 때문인데, 사실상 이 망념은 더 많아진 것도 아니고, 아미타불의 구제를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24. 질문: 글을 쓸 줄도 모르고 독경을 할 줄도 모르며 지혜도 없는 사람인데, 염불을 하면 왕생할 수 있는가?

 

: 왕생할 수 있다. 󰡔염불감응록󰡕 속의 여러 불자님들은 글을 모르지만 전부 왕생하였다. 사실상 글을 알고 모르고, 독경을 하고 안하고, 지혜가 있고 없고는 왕생을 하느냐의 여부와는 서로 조금도 관계가 없다.

 

25. 질문: 매일 염불을 하고 있지만 그 숫자가 많지 않다. 왕생할 수 있겠는가?

 

: 염불의 숫자에는 정해진 기준이 없다. 각자 있는 능력껏 염불을 하면서 진심으로 왕생을 원한다면 비록 염불의 숫자가 적더라도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 󰡔염불감응록󰡕에 기록된 염불인들은 매일 많게는 수만 번, 적게는 수천 수백 번씩 염불하였지만 모조리 왕생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그 증명인 셈이다.

 

26. 질문: 그렇다면 정진하여 염불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단 말인가?

 

: 각자 능력에 따라 마땅히 정진해야 한다. 틈만 나면 염불을 해야 하는데, 특별히 마음을 쓰고 머리를 써야 할 상황이 아니면 전부 염불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염불을 습관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염불을 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망상잡념을 생각하게 되고, 망상잡념을 생각하면 바로 업장과 감응하여 업장만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염불을 해서 부처님과 감응하여 업장을 소멸하고 복을 증장시키는 것만 못하다.

 

27. 질문: 나는 이미 나이도 많은데다가 염불한 시간도 짧다. 그런데도 왕생할 수 있겠는가?

 

: 왕생할 수 있다. 󰡔관경󰡕의 하품왕생에는 임종 전에 단지 열 번 내지 한 번 정도 염불을 한 사람들도 다 왕생한다고 하셨으니, 이보다 염불의 시간이 더 짧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28. 질문: 그렇다면 평소에 염불을 안 하다가, 임종할 때가 돼서 염불을 해도 된다는 말인가?

 

: 아니다. 이런 생각들은 굉장히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고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몸에 폭발물이 설치되어 있어 수시로 폭발할 위험이 있는데, 다만 정확히 언제 폭발할지를 모르고 있을 뿐이라 하자. 그렇다면 일단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즉각 폭발물을 떼어내야지, 곧 폭발하기 직전까지 기다렸다가 떼어내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임종할 때를 기다렸다가 염불을 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누가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안단 말인가? 절대 정해진 임종의 시간이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임종이 정해지지 않은 이상, 현재의 일분일초가 전부 임종일 수가 있으므로, 임종염불이 곧 현재염불이요, 현재염불이 곧 임종염불이다. 더군다나 사람이란 전부 현재 이 순간을 살아가는 존재인데, 현재를 제외하고 임종이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부터 염불을 해야 한다.

 

또한 현재에 염불법문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염불을 하지 않는 사람이, 확정지을 수 없는 임종을 기다렸다가 염불을 하겠다는 것은, 염불의 이익을 모르고 있는 것이며 진심으로 염불할 생각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예컨대 진심으로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재물을 보는 순간 바로 그 재물을 얻고 싶을 것이요, 진심으로 병을 고치고 싶은 사람이라면 묘약이 있다는 사실을 안 즉시 그 약을 복용하고 싶을 것이다. 또한 죄를 지은 사람이 면사패免死牌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면사패를 즉각 손에 넣고 싶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사전에 미리 면사패를 몸에 지니면서 잘 보관해 두지 않는다면, 어느 날 야밤에 끌려 나가서 사형을 당할지 모르는데, 그 때가 되면 이미 늦기 때문이다.

 

임종할 때에 과연 염불을 할 수 있다면 당연이 똑같이 왕생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죽을 때에는 몸은 사대가 분리되고, 마음은 온갖 근심과 걱정으로 번뇌하며, 게다가 권속들이 아버지, 어머니 불러가며 큰 소리로 울부짖고, 원수가 와서 목숨을 앗아가려 하는데, 이때가 되면 좀처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평소에 부처님이 계심에도 부르지 않던 사람은 이때가 되면 부처 ‘불’자는 일찍이 어디에다 버렸는지도 알 수 없거늘, 어떻게 다시 염불을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죽음의 인연이란 일정치가 않아, 공난(항공사고), 해난海難, 교통사고, 광난(礦難, 광산 사고) 등 여러 가지 사고사가 있고, 몸에 칼을 맞고 총탄이 머리를 관통하며, 독약, 독가스 등으로 인한 죽음도 있으며, 중풍으로 언어능력을 잃고, 혼미하여 정신이 맑지 않으며, 목이 잠기고 혀가 오그라들면서 죽는 등 수많은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너무나 갑작스러워 미처 막아낼 방법이 없다. 이 중에서 어느 하나에만 걸려도 염불을 할 수 없다.

 

29. 질문: 보아하니, 지금부터 염불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그렇다! 일찍 염불하면 일찍 평안하고, 일찍 재난을 면하고, 일찍 업장이 소멸되며, 일찍 복이 자라나고, 일찍 왕생이 결정된다.

 

3. 임종조념에 관하여

 

30. 질문: 임종 때 입으로 염불을 할 수 없다면 마음속으로 염불해도 왕생할 수 있는가?

 

: 왕생할 수 있다.

 

31. 질문: 임종 때 마음속으로 한마디 한마디씩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조차 어려워, 오직 한 생각 왕생을 원하는 마음만 갖고 있어도 왕생할 수 있는가?

 

: 왕생할 수 있다. 󰡔관경󰡕의 하품중생下品中生이 바로 그런 경우다.

 

32. 질문: 임종 때 혼자 마음속으로 염불하기가 힘들어, 다른 사람을 따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칭념을 해도 왕생할 수 있는가?

 

: 왕생할 수 있다. 󰡔관경󰡕에서 하품하생한 사람들이 바로 그런 경우다. 본인의 마음이 무기력하여 의업意業으로 사유를 할 수 없으므로, 아무 생각 없이 선지식을 따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칭념을 하였지만 역시 수승하게 왕생하였다. 예컨대 본인이 글을 쓸 줄 몰라도 글을 아는 사람이 자신의 손을 잡고 글을 쓴다면 이 역시 똑같은 글이다. 임종하는 사람의 마음으로는 이미 염불을 할 수 없으므로 선지식을 따라서 한마디 한마디씩 염불하는 것 역시 똑같은 염불이고, 똑같이 왕생한다.

 

33. 질문: 평소에는 왕생을 발원하고 염불하지만, 임종 때에 혼미하여 염불을 못한다면 왕생할 수 있겠는가?

 

: 왕생할 수 있다.

 

34. 질문: 어찌하여 평소에 염불을 하다가, 임종 때에는 염불을 못해도 왕생할 수가 있는가?

 

: 왕생이란 결코 반드시 임종 때가 되어서 결정되는 게 아니다. 평소에 전수염불하며 진심으로 왕생을 발원하는 사람의 왕생은 평소에 이미 결정되었기 때문에, 임종할 때 비록 염불을 못했어도 반드시 왕생한다. 이것을 정토종에서는 “평생업성平生業成”이라고 부른다.

 

마치 큰 나무 한 그루가 자랄 때부터 서쪽을 향해 기울었다면, 톱으로 자를 때에는 비록 힘을 더 주지 않더라도 자연히 서쪽을 향해 넘어가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일찍이 배에 올라 편안하게 앉아 있는 사람은, 설사 배가 부두를 떠날 때에 잠이 들어서 모른다 할지라도 편안하게 피안에 도달하는 데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과 같다. 선도대사께서, 염불이야말로 왕생에 있어서 ‘정정업正定業’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다.

 

35. 질문: 염불이 정정업이라면 어떠한 사람도 염불을 하면 모조리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찌하여 임종조념臨終助念이라는 일설이 있는가?

 

: 인광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임종조념의 법은 당나라 때 선도대사님이 발명하신 것으로서, 이를테면 평소에 염불을 안 하던 사람들이 이 법에 의지하여 조념을 한다면 역시 왕생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임종조념은 주로 평소에 염불을 안 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평소에 염불을 안 하던 사람이 임종 때에도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바로 윤회를 하게 되므로, 이때는 이 사람을 데리고 함께 염불을 할 수 있도록 선지식의 지도와 도움이 필요한 시기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이때 선지식을 따라서 염불을 할 수 있다면 똑같이 왕생한다. 임종조념으로도 왕생할 수 있는데, 평소에 염불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염불이 왕생의 정정업이고, 만인이 닦아 만인이 왕생한다(萬修萬人去)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36. 질문: 지장보살을 염하고 󰡔지장경󰡕‧󰡔금강경󰡕을 읽거나 진언 등을 염하는 것도 조념에 속하는가?

 

: 전부 조념이 아니다! 오직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만이 조념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조념’이란 임종을 맞이한 사람에게 아미타불을 불러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다른 경전과 진언을 독송하고, 또 다른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르도록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임종할 때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어서, 평소에 어떤 법문을 배웠던 간에 이때에는 전부 내려놓고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야 한다. 더 이상 난잡하게 다른 것을 부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오히려 조념을 방해하고 왕생을 파괴하는 행위다. 어리석음과 무지로 인해 지은 죄업은 임종할 때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을 방해하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

 

37. 질문: 경을 읽거나 진언을 외우거나 모든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에도 전부 공덕이 있지 않는가? 어찌하여 조념을 파괴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 전부 공덕이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임종을 맞이한 사람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장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왕생을 한다고는 보장할 수 없다. 본래 임종조념이란 정토왕생을 통하여 성불을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인데, 결국 다른 경전과 진언을 독송하고 다른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름으로써 단지 인간과 천상의 좋은 과보만을 얻을 뿐이다. 그 다음 생에 다시 불법을 만나기 어렵고 삼악도에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이 어찌 성불이란 대사大事 인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38. 질문: 조념자가 가장 확실하게 알아야 할 근본은 무엇인가?

 

: 모든 장애요소들을 제거하고 오로지 한마디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다.

 

39. 질문: 조념을 할 때에 법문의 주요 내용은 어떤 것인가?

 

: 우선 윤회의 괴로움과 극락의 즐거움에 대하여 설명하고, 그 사람에게 마땅히 왕생발원을 할 것을 권장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에게 세간에 대한 모든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하는데, 목숨이 다할 때에 아무리 집착을 해도 소용이 없을뿐더러 왕생까지 방해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에게 조념자를 따라 함께 염불을 하면서 부처님이 영접하러 오시면 바로 부처님을 따라 가도록 권해야 한다.

 

40. 질문: 가장 간단한 임종법문은 어떤 것인가?

 

: ‘아무개여! 죽은 뒤에 윤회를 한다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 아미타불을 부르시고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극락세계로 왕생하십시오!’

 

41. 질문: 어째서 어떤 사람은 장시간의 조념법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는가?

 

: 그 사람의 목숨이 아직 다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마음속에 걱정거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면 조념하러 오신 사람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진행하셔서 임종을 맞이한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속에 걱정거리가 남아 있다면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되도록 빨리 해결할 수 있도록 그 사람을 도와드려야 한다.

 

만약 채무관계가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의 권속들에게‘모든 채무관계를 저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잘 해결할 테니 안심하시고 떠나십시오!’라고 임종자를 위해 말씀드리도록 해야 한다. 만약 자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저희들이 이 자녀들을 잘 부양하고 도와줄 테니 안심하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려야 한다.

 

만약에 원한으로 인하여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어렵다면 ‘아무개도 지금 굉장히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곧 정토에 왕생하여 성불을 할 사람이니, 그 사람을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려야 한다.이렇게 해서 만약에 그 사람의 걱정거리를 적중시켰다면 즉시 뚜렷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42. 질문: 조념과 법문 도중에 가장 주의하고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첫째는 잡다한 것을 피해야 한다. 한마디 아미타불을 제외하고 그 외의 것은 일절 피해야 한다.

둘째는 병자 또는 망자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더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예컨대 ‘아무개여! 당신은 평생을 염불수행 하셨는데, 구하는 게 바로 극락왕생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결정적인 순간이므로 반드시 정념正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셔야 합니다. 만약 이 순간에 정념을 잃어버린다면 평생의 수행이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말들은 모두 부정적인 메시지가 그 속에 들어 있어서 임종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부담을 주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이 순간이 되면 스스로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조념을 해주는 사람이 지혜롭게 위로를 하여 그 사람의 마음이 평안하고 온화하도록 해주는 게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땅히 ‘아무개님! 당신이 평생 염불수행을 하시고 왕생을 원하신다는 것을 아미타불께서는 일찍부터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니, 그 공부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아미타불께서는 반드시 당신을 구제해주실 것입니다.

 

 현재 비록 아미타불께서 몸을 나투시어 영접하러 오신 모습을 친견하지는 못했으나, 그건 당신의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아미타불의 사람입니다. 아미타불께서는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당신을 영접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시고 저희들을 따라서 염불을 할 수 있으면 저희들과 함께 염불을 하시고, 만약에 힘이 받쳐주지 않으시면 우리가 염불을 할 테니 듣고만 계셔도 됩니다. 당신은 안심하고 여기에 누워서 아미타불의 영접만을 기다리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43. 질문: 조념자는 마땅히 어떠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

 

: 첫째는 상대방의 입장, 즉 임종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바로 저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인데, 현재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모든 행위가 임종자의 마음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아미타불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되 조념을 하면서 정말 왕생할 수 있을까? 아미타불께서 진짜로 오실까? 등에 대하여 의심하고 걱정해서는 안 된다.

조념을 해주는 사람이 오로지 염불에만 집중한다면 아미타불께서 당연히 오셔서 임종자를 구제하실 것이니, 아미타불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따라서 지나친 걱정은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염불하는 분위기에 방해가 된다.

 

44. 질문: 임종조념을 할 때에 법문과 염불 중에 어느 것을 위주로 해야 하는가?

 

: 염불을 위주로 해야 한다. 법문은 염불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방편일 뿐이다.

 

45. 질문: 조념을 할 때에 법문을 해줄 사람이 없으면 염불만 해도 되는가?

 

: 평생 불법을 만나지 못하였거나 왕생을 원치 않던 사람이라면 간단한 법문을 통하여 왕생발원을 하도록 권장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정말로 법문을 해줄 사람이 없다면 대중들이 다함께 입을 모아 염불만 해도 자연히 온 집안이 광명으로 가득해지고 불가사의한 효과도 있을 것이다.

 

46. 질문: 조념을 할 때에 창념唱念과 칭념稱念, 육자六字와 사자四字 중에 어느 것이 가장 좋은가?

 

: 임종을 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칭념(음률 없이 하는 염불)은 창념(음률을 넣은 염불)보다 수월하고 기력소모가 적어서 힘이 덜 든다. 중병 또는 임종을 하는 사람은 기가 부족하고 정신력이 쇠약하여 창념을 따라 하기가 어려우므로 칭념을 하는 게 적합하다. 육자(나무아미타불)는 사자보다 완전하고, 사자(아미타불)는 육자보다 급박하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의 전후에는 사자로 칭념해도 된다. 급박한 상황으로 인하여 부처님 명호의 완전함을 따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외의 시간에는 상황이 급박하지 않으므로 육자로 부르는 게 비교적 원만하다.

 

47. 질문: 조념을 해주는 연우들이 많을수록 좋은가?

 

: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몇 조로 나누어 조념을 하되 한 조에 6, 7명 정도의 인원이면 충분하다. 사람이 적으면 항상 염불소리가 통일이 잘 되는데 사람이 많으면 번번이 난잡해지기 일쑤다. 조념을 하는 현장에서는 정신의 집중과 명호의 일치를 요구하므로 필요 없는 잡담을 삼가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움직여서도 안 되며, 선풍기 등의 기계가 작동하면서 나는 소리 등도 되도록 피해야 한다.

 

48. 질문: 염불기로 연우들의 조념을 대신할 수 있는가? 있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 대신할 수 있는가?

 

: 사람의 심력心力의 감응이 크므로, 염불기가 조연助緣은 될 수 있을지언정 완전히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특히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의 전후에는 더욱 대중들이 마음을 모아 함께 소리를 내어 칭념을 해야 하므로, 절대 사람이 염불하지 않으면서 염불기만 염불하게 해서는 안 된다.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경우는 잠시 염불기로 대신할 수 있다.

⑴ 조념을 할 사람이 없을 경우.

⑵ 조념자가 너무 피곤하여 지속하기 어렵거나, 병자의 상태가 아직은 평온하여 심각하게 위급하지 않을 경우.

⑶ 임종자 자신이 확신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조념이 필요 없을 경우.

⑷ 망자를 위해 최소한 8시간 이상의 조념을 했을 경우.

⑸ 망자의 왕생이 이미 확실해졌을 경우.

 

49. 질문: 수행력이 있는 사람이 조념을 한다면, 그 효과가 일반인보다 좋지 않겠는가?

 

: 정확히 말하자면,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과 정성을 다해 집중을 하는 사람일수록 조념의 효과는 더욱 좋다.

 

50. 질문: 가족이 직접 염불을 해준다면 그 이익은 일반 조념자보다 더 나은가?

 

: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족 사이의 연분이 가깝고 염불하는 마음이 정성스러워서 쉽게 감통感通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일지라도 성의 없이 대충대충 한다면 도리어 외부에서 조념을 하러 온 사람만큼 정성을 다해 집중을 하지 못하므로, 그 이익과 효과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연우들이 오셔서 조념을 해주고 가족 또한 참석하여 서로 감동을 주고받으면서 정성을 다해 염불에 집중한다면 효과가 가장 좋을 것이다.

 

51. 질문: 일생 동안 믿음과 발원을 가지고 전수염불을 한 사람도 임종 때 가족들이 울거나 옮기는 등의 인연을 만나면 왕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 과연 일생 동안 믿음과 발원을 가지고 전수염불을 한 사람이라면 일찍이 아미타불의 광명의 섭취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임종 때 어떠한 인연을 만나던 간에 전부 영향을 받지 않고 반드시 왕생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속마음을 다른 사람이 정확히 알기는 어렵고, 게다가 조념을 하러 온 이상 반드시 모든 가능한 장애의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을 안전하고 완전한 계책(萬全之策)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임종을 하는 사람의 믿음과 발원이 어떻든 간에 조념을 할 때는 가족들이 울거나 옮기는 등의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52. 질문: 가족들이 울거나 병자 또는 망자의 몸을 옮기는 등의 행위가 조념의 효과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가?

 

: 그럴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런 행위들은 병자 또는 망자에게 고통을 더해주기 때문에, 만약 평소에 믿음과 발원이 견고하고 염불에 숙달된 사람이 아니라면 탐착하고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삼악도에 떨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53. 질문: 만약 가족들이 조념을 반대한다면 마음속으로 묵묵히 그 사람을 위하여 법문과 조념을 해줘도 되는가? 그래도 효과는 동등한가?

 

: 그래도 좋다. 비록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묵념을 하더라도 온몸에 자연히 부처님의 광명이 있게 된다. 만약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집중해서 묵묵히 법문을 해준다면 불력佛力과 감응이 통하여 효과 역시 불가사의하다.

 

54. 질문: 아미타불께서 염불인을 영접하러 오실 때 혼자서 오시는가, 아니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도 함께 오시는가?

 

: 󰡔아미타경󰡕에 의하면 아미타불은 관음‧세지와 여러 성중들을 거느리고 함께 영접하러 오신다고 하셨다. 다만 개개인의 인연이 다르므로 보이는 바 또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똑같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부처님만 보이고 보살은 보이지 않거나, 어떤 사람에게는 보살만 보이고 부처님은 보이지 않거나, 또 어떤 사람은 소수의 성중들을 보고 어떤 사람은 다수의 성중들을 보며, 어떤 사람은 단지 연꽃과 광명만을 보게 된다.

 

55. 질문: 아미타불께서 영접을 하러 오신 것을 보면 ‘뛰어 올라가야 한다(衝上去)’는 말을 들었는데, 아미타불을 친견한 뒤에 어떻게 뛰어 올라가야 하는가?

 

: ‘뛰어 올라감’이란 말은 경전에서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어떤 사람이 상상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상 왕생을 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데, 마치 연인들이 만났을 때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서로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과 같다.

염불인이 영접을 하러 오신 부처님을 뵈면 아주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향해 다가갈 것이다. 마치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이 따뜻한 장소를 찾게 되고, 어둠 속에 있던 사람이 밝은 곳을 원하는 것과 같이 모두가 당연한 경향이다.

 

 더군다나 아미타불의 위신력으로 섭취해주심이 있기 때문에, 이때에 왕생을 원하는 사람은 마치 작은 풀잎 하나가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난 것과도 같이 자연히 부처님을 따라가게 된다. 예컨대 󰡔관경󰡕의 구품왕생은 전부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중들과 함께 광명을 놓고 손을 내밀어 영접을 하시는데, 염불인은 자연스럽게 연화대에 올라 앉아 부처님의 뒤를 따라 곧바로 극락세계의 연못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오로지 염불만 할 뿐, 어떻게 연화대에 올라가고 어떻게 서방의 연못으로 왕생하는지는 전부 아미타불의 소관이시므로 우리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56. 질문: 임종할 때에 마魔가 와서 아미타불의 모습으로 변화할 수도 있는가?

 

: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임종 때는 마가 붙을 때가 아닐뿐더러, 더욱이 염불인의 임종에는 아미타불과 관음‧세지‧제대보살들께서 광명신력으로 가호해주심이 있으므로 모든 삿된 마들이 가까이 범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정오의 태양 아래에는 검은 그림자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57. 질문: 임종 때 혼미 상태일 때, 그 사람을 위해 조념을 해준다면 왕생할 수 있는가?

 

: 왕생할 수 있다. 󰡔염불감응록󰡕 제3집에 보면, 황영부黃英夫는 식물인간처럼 혼미한 지 43일이 되었지만, 그를 위해 법문을 하고 염불을 해주자 여전히 수승하게 왕생하였으니, 그것이 곧 명백한 증거다.

 

58. 질문: 혼미 상태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여서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을 텐데, 어찌하여 그 사람을 위해 법문을 하고 염불을 해준다고 왕생할 수 있단 말인가?

 

: 겉모습은 비록 혼미한 상태이지만 정신은 혼미하지 않으므로, 그 사람을 위해 법문과 염불을 해준다면 여전히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 그 사람이 따라서 염불을 하고 정토왕생을 원한다면 틀림없이 왕생한다.

 

59. 질문: 만에 하나 임종 때 혼미하여 부처님이 영접하러 오신 것도 모른다면 어떻게 왕생할 것인가?

 

: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염불감응록󰡕에서 장묘신張妙信은 뇌혈관 파열로 하루 종일 혼미한 상태였으나, 깨어나자마자 갑자기 “부처님께서 나를 영접하러 오셨으니 나는 왕생한다”라고 말한 것이 곧 그 증거이다. 이 사례가 설명하듯이, 비록 육체는 혼미한 상태이지만 정신(神識)은 혼미하지가 않기에, 부처님께서 영접하러 오신 모습을 또렷하고 분명하게 뵙고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을 할 수 있다.

 

60. 질문: 임종자 또는 망자가 아미타불을 뵌 적이 없어서 부처님을 못 알아보면 어떡하는가?

 

: 부처님을 뵙는 순간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초목이 봄을 모르지만 봄이 오면 자연히 생기발랄해지는 것과 같다. 사람이 죽음의 고통 속에 있을 때 부처님이 영접하러 오시는 것은 마치 초목이 태양을 향하고, 추운 사람이 따뜻한 곳을 찾는 것과 같아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향해 기울게 된다. 중생들은 모두 불성이 있으므로 부처님을 알아보지 못할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나무에는 불의 기운이 있어서 맹렬한 불속에 넣으면 자연히 타게 되고, 얼음에는 물의 성질이 있어서 끊는 물에 넣으면 저절로 녹게 된다. 그런데 어찌 나무가 불을 모르고 얼음이 물을 모를까를 걱정하겠는가? 더군다나 부처님께서 위신력으로 가지(加持, 가피)하심이 있거늘, 어찌 범부로 하여금 부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시겠는가!

 

61. 질문: 살아생전에 염불을 한 적이 없던 사람이, 죽은 뒤에 조념을 해준다고 해서 왕생할 수 있겠는가?

 

: 왕생할 수 있다. 육체는 비록 못쓰게 되었지만 영혼(神識)은 죽기 않고 평소보다 더욱 예민해지므로, 단지 법문을 듣고 염불을 하며 왕생을 원하기만 한다면 왕생하지 못하는 이가 없다. 이에 대해서는 󰡔염불감응록󰡕 곳곳에 여러 증거가 있다.

 

62. 질문: 비명횡사를 한 사람도 조념을 해주면 왕생할 수 있는가?

 

: 왕생할 수 있다. 󰡔염불감응록󰡕 곳곳에는 추락‧교통사고‧타살‧급사로 죽은 사람들이 조념염불을 통하여 모조리 왕생한 사례들이 있으니, 그것이 명백한 증거이다.

 

63. 질문: 자살한 사람도 조념을 해주면 왕생할 수 있는가?

 

: 왕생할 수 있다.

 

64. 질문: 죽은 지 여러 날이 지난 사람도 조념을 해주면 역시 왕생할 수 있는가?

 

: 비록 죽은 지 여러 날이 지난 사람일지라도 영혼이 아직 환생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위해 조념을 해주면 역시 왕생할 수 있다.

 

65. 질문: 죽은 지 여러 날이 지났어도 조념을 통해 왕생할 수 있다면, 망자를 위해 조념하는 시간 배정을 어떻게 안배하는 것이 타당한가? 49일 동안 염불을 해주는 게 더욱 좋은 것인가?

 

: 조념과 천도는 망자가 죽은 시간과 가까울수록 좋으며, 그 시간을 차일피일 미룬다거나 따로 날짜를 잡는다던가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조념을 하는 시간의 길고 짧음은 마땅히 실제 사정에 따르되, 아무튼 길면 길수록 좋다.

 

66. 질문: 망자의 곁이 아닌 다른 곳에서 염불을 해줘도 왕생에 도움이 되는가?

 

: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공간을 초월하여 그 감응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다. 󰡔염불감응록󰡕 제3집에 보면, 관영冠英이라는 사람은 대만에 살고 있었고, 돌아가신 부친은 중국대륙에 있어서 서로 수천 리나 떨어져 있었지만, 그가 부친을 위해 염불을 해주니 극락왕생을 했다는 사례가 바로 그 증거다.

 

67. 질문: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조념만 해주면 전부 정토왕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조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왕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조리 왕생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이른바 조념이란 본인 스스로 염불을 하게끔 도와주는 것으로서, (임종을 맞이한) 본인이 염불을 해야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조념을 해주더라도 만약에 본인의 선근이 적고 업장이 많으며, 왕생을 원치 않고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역시 왕생할 수 없다. 다만, 왕생을 못하더라도 목숨이 끊어질 때 한마디 부처님의 명호가 귀를 스쳐지나가기만 하면 최소한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음을 보장할 수는 있다. 그런 까닭에 그 공덕과 이익 역시 불가사의한 것이다.

 

68. 질문: 어떤 사람에게 반드시 조념을 해주어야만 왕생할 수 있거나 왕생을 확신할 수 있는가?

 

: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⑴ 부처님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

⑵ 염불을 하지 않는 사람

⑶ 왕생을 원치 않는 사람

이 세 종류의 사람은 반드시 조념이 필요하다.

⑷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진실하지 않은 사람

⑸ 잡행을 하는 사람

⑹ 의심이 많은 사람

이 세 종류의 사람 역시 조념을 해주어야만 왕생을 확신할 수 있다.

 

69. 질문: 어떤 사람이라야 조념이 필요 없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는가?

 

: 평소에 진심으로 아미타불의 구제를 믿고 왕생을 원하며,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사람은 임종할 때 조념의 유무와 상관없이 반드시 왕생한다.

 

70. 질문: 어째서 어떤 사람은 평생토록 염불수행하고 진심으로 왕생발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역시 임종조념을 원하는가?

 

: 그것은 왕생이 결정되지 않아서 사람들의 조념이 필요한 게 아니라, 비록 왕생이 이미 결정되었지만 연우들을 모시고 임종할 때 배웅을 해줄 것을 부탁하는 것일 뿐이다.

 

71. 질문: 염불인에게 어떠한 징표가 있어야 확실하게 왕생하였다고 증명할 수 있는가?

 

: 다음과 같은 징표이다.

⑴ 왕생할 때 앉고 눕는 것이 자유롭다.

⑵ 사전에 정토왕생을 하는 시간을 정확히 안다.

⑶ 염불을 하면서 숨이 끊어진다.

⑷ 임종할 때 스스로 극락세계의 거룩한 경계가 나타나고, 불보살님과 연꽃이 나타나 영접하러 오셨다는 말을 한다.

⑸ 임종조념을 해주던 사람이 극락세계의 불보살님과 연꽃이 영접을 하러 오심을 본다.

⑹ 친한 사람의 꿈속과 선정 속, 또는 염불 도중에 직접 그 사람이 정토왕생을 하는 모습이 뚜렷하고 확실하게 본다.

⑺ 죽은 뒤 온몸이 싸늘하게 식었으나 정수리만큼은 따뜻하다.

이상 일곱 가지 중에 어느 하나만 갖췄어도 틀림없이 왕생했다고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 외에도 염불인의 목숨이 끊어진 뒤에 얼굴에 미소를 짓거나, 신체가 유연하거나, 천상의 음악이 울리거나, 미묘한 향기가 나거나 하는 등의 현상도 기본적으로 정토왕생의 징표라고 볼 수 있다.

 

72. 질문: 만약에 위와 같은 그러한 상서로운 징조가 없었다면 정토왕생을 못했다는 것인가?

 

: 그렇지는 않다. 평소에 염불을 하고 믿음과 발원을 갖춘 사람이라면 비록 특별한 징조가 없더라도 틀림없이 왕생한다. 다만 이것은 부처님과 왕생자 본인만 알 뿐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다.

근본부터 말하자면, 왕생이 결정되는 것은 부처님의 원력이 헛되지 않기 때문이지 상서로운 징조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일반 초심자들은 부처님의 말씀과 부처님의 원력에 대하여 믿음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잠시 눈앞에 보이는 상서로운 징조들을 통해 그 사람의 믿음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73. 질문: 어떤 사람들이 왕생할 때 자유로운가?

 

: 왕왕 신분이 낮고, 우둔하고 지혜가 없으며, 마음씨가 착하고 부드러우며, 성실하게 염불을 하며, 떠벌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일수록 좋게 갈 수 있다.

간략히 말하자면 여섯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⑴ 정진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사람

⑵ 어리숙하고 꾸밈이 없는 사람

⑶ 듬직하고 드러내기를 싫어하며 조용히 수행하는 사람

⑷ 자비롭고 착하고 유순한 사람

⑸ 염리심(厭離心: 생사를 싫어하여 벗어나려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

⑹ 숙세에 선근이 있는 사람

 

74. 질문: 어떤 사람이 왕생할 때 비교적 자유롭지 못한가?

 

: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⑴ 잡행을 하는 사람

⑵ 게으른 사람

⑶ 의심이 많은 사람

⑷ 교만한 생각으로 잘난 척하는 사람

⑸ 명예와 이익을 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⑹ 고집이 센 사람

⑺ 악업을 많이 지은 사람

이상 일곱 부류의 사람들은 숙세에 큰 선근이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서는 자유롭게 왕생하기란 어렵다.

 

75. 질문: 어떤 염불인이 미리 왕생할 시간을 알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미리 시간을 알 수 있는가?

 

: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⑴ 염불의 공력이 많이 쌓인 사람

⑵ 숙세의 선근이 깊고 두터운 사람

이런 사람들은 선정 속에서나 또는 염불을 하고 있는 도중에 불보살님의 계시를 받아서 알 수 있다. 혹은 다른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된다. 남들은 신기하게 느껴지겠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마치 눈앞에 놓인 사물을 보는 것과 같아 전혀 특별할 게 없다.

 

76. 질문: 평소에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만 왕생을 못할까 두려워서, 사전에 미리 연우들에게 연락하여 때가 되면 와서 조념을 해줄 것을 부탁해도 되는가?

 

: 사전에 연우들에게 조념을 부탁하는 것은 괜찮다. 그렇다고 평소에 염불수행을 하지만 왕생이 결정되지 않아 반드시 조념을 해야만 왕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조념의 유무와 상관없이 반드시 왕생한다”고 깊이 믿어야 한다. 다만 범부들은 세속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임종을 할 때 외롭고 쓸쓸함을 느끼기 쉽다.

 

또한 불교를 믿지 않고 염불을 하지 않는 가족들이 세속적인 방식으로 임종을 처리해서 염불인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염불인의 염원을 어긴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에 만약 연우들이 오셔서 함께 염불을 한다면 위안과 따뜻함을 배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동일한 신앙을 가지고서 현재 동일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 장래에 동일한 정토에 왕생하게 되는 것이니, 친한데다가 더 친해진 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임종 때 서로 배웅을 해주는 것은 피차간에 아주 즐겁고도 위안이 되는 일이다.

온정적이면서 장엄한 염불은 임종을 하는 사람에게 위안을 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가족들에게 이별의 슬픔을 덜어주고 그분들이 불법에 대한 선근과 신심을 증장시켜주며, 정토를 동경하고 염불왕생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바로 연우들이 오셔서 그분의 가족을 위해 염불을 해준 덕택에 불법의 이익을 얻고 감동을 한 나머지 불교를 믿고 염불을 하게 된 것이다.그리고 조념을 해주러 오신 연우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애심愛心으로 봉사하고, 무상無常함을 체험하며, 현장에서 아미타불의 자비로운 구제를 견학하고 부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77. 질문: 평상시 염불과 임종시 조념의 사이에 마땅히 어떤 마음으로 취사取捨를 해야 하는가?

 

: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염불인이다. 임종할 때 설사 그 자리에 아무도 없더라도 아미타불께서는 반드시 청정대해중보살清淨大海眾菩薩들을 거느리시고 영접하러 오실 것이다.’

다만 사바세계의 업보가 다할 때에, 연우들이 염불을 하며 배웅을 해준다면 세속적인 인연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서로가 기뻐하고 위안이 되니, 역시 매우 수승한 일이다.

 

만약에 자신을 위해서라면 마땅히 ‘오로지 염불수행을 하여 부처님 원력의 배를 타면 반드시 왕생한다’는 것에 힘써야지, 왕생을 임종조념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만약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임종할 때 되도록 가서 조념과 위로를 해줘야 한다.

 

4. 일상생활에서의 마음가짐에 관하여

 

78. 질문: 어째서 나는 염불을 안 하면 마음이 그나마 편안한데, 염불만 하면 도리어 마음이 답답해지고 염불하기가 싫어지는가?

 

: 이것이 바로 당신이 염불의 이익을 얻었고 염불이 당신에게 적합하다는 증거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마작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축구경기를 좋아하며 어떤 사람은 인터넷 게임을 좋아해서, 한 번 시작했다 하면 날이 새는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신이 쌩쌩해지는 것은 망념이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뒀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염불을 하면 여기가 불편하지 않으면 저기가 답답한 것은, 부처님의 명호로써 망념을 다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야생마에게 처음으로 고삐를 채울 때에 당연히 자유롭지 못해서 반항을 하려는 것과 같다.

 

우리 마음속의 망념 역시 야생마와도 같아서, 부처님의 명호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힘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다. 따라서 염불을 오래오래 하다 보면 망념이 자연히 길들여지는 것이, 마치 야생마가 좋은 말(良馬)로 되는 것과 같다. 만약에 염불은 하지 않고 망념이란 야생마를 좇아 치달린다면 이 야생마는 우리를 태우고 곧장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79. 질문: 어째서 나는 염불을 하지 않을 땐 활력이 넘치는데, 염불만 했다 하면 쉽게 졸리는가?

 

: 이것은 일반인들의 마음이 항상 망상에게 점령당하고 망념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덩달아 망념을 참마음으로 여기고 남을 자신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염불을 하지 않을 때는 망념이 활기를 띠면서 흥분 상태에 있기에 본인은 자신의 활기가 넘친다고 느끼지만, 염불을 하면 부처님 명호의 위력으로 인해 망념이 억제되어 더 이상 흥분 상태에 처해 있지 않게 되므로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졸리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마치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한 장소에 덕망이 높고 위엄이 있는 제왕이 나타나면 즉시에 늦가을의 매미처럼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염불을 하면 졸리는 것 역시 염불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서, 위에서 염불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서 불편한 경우보단 한층 더 나은 편이다. 다만 아직은 완전히 부처님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때에 망념을 간파하여 (망념을) 따라가지 않고 부처님을 가까이한다면, 염불을 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욱 밝고 깨끗해질 것이다.

 

80. 질문: 어째서 나는 운전을 하거나 길을 걸을 때에 염불을 하면 순조롭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데, 앉아서 조용히 염불하려고만 하면 순조롭지도 않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도 없는가?

 

: 성격이 지나치게 활발하거나 생각이 지나치게 활기찬 사람들이 이렇게 되기 쉽다. 하지만 개의치 않아도 된다. 자신의 습관화된 방식에 따라 염불하면 되니, 왕생에 있어서는 똑같기 때문이다.

 

81. 질문: 염불인들은 망상잡념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 망상잡념에 대하여 염불인들은

첫째, 조급해하지 말고

둘째, 두려워하지 말고

셋째, 마땅히 기뻐해야 하고

넷째, 생각을 바꿔야 한다.

⑴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망상잡념을 단박에 제거하려는 생각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다겁생 동안 우리들은 망상잡념에 너무나 습관화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제거한다는 것은 담배와 술을 끊고 마약을 끊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어려운지 모른다. 바로 이와 같기 때문에 우리는 염불을 하고 부처님의 원력에 기대어 왕생을 하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의지하여 망상잡념을 제거하고 마음을 정화하여 왕생하려 한다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⑵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망상잡념이 있는 것은 우리의 본래 모습이다. 모든 범부들은 전부 망상잡념이 분분한 존재들이고, 아미타불께서 구제하시려는 대상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다.

아미타불께서 이미 당신의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왕생을 할 수 있다는 보증을 해주신 이상, 설령 망상잡념이 있으면 어떠한가? 이렇게 망상잡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망상잡념 역시 큰 파도를 일으킬 수 없어서 온순해지고 잠잠해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망상잡념을 두려워한다면 도리어 말썽을 일으켜서 우리로 하여금 굉장히 무섭게 느껴지도록 한다.

 

⑶ 마땅히 기뻐해야 한다. 어째서 망상잡념이 있는데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망상잡념을 조복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자각했다면 곧 나는 계‧정‧혜 삼학을 원만하게 닦을 수 없고 염불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아미타불께서 구제하려는 중생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예컨대 의사가 치료할 대상은 환자이지 건강한 사람이 아니듯이, 망상잡념이 있는 내가 어떻게 아미타불께서 구제할 대상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만약에 망상잡념이 없는 성인聖人이라면 아미타불께서 굳이 그런 성인을 위하여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나야말로 아미타불의 구제대상에 딱 부합되므로, 내가 염불을 하면 틀림없이 왕생하게 되니 어떻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염불을 할 때에 자신에게 망상잡념이 많음을 안다는 것은 내가 이미 아미타불로부터 구제되었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왜 그런가? 본래 염불을 하지 않을 때는 아직 자신에게 잡념이 많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염불만 하면 즉각 잡념이 분분함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달이 없으면 나무의 그림자가 드러나지 않지만 달빛이 밝을수록 나무의 그림자 역시 짙어지는 것과 같다. 내가 염불을 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광명이 나의 마음속을 비춰주신 것이고, 그때서야 자신의 망상잡념을 보게 된 것이니 어찌 내가 이미 부처님으로부터 구제된 것이 아니겠는가?

 

⑷ 생각을 바꿔야 한다. 망상잡념인줄 알아차리면 즉시 내려놓고 상대하지 말며, 생각을 바꿔서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예컨대 달빛 아래의 나무 그림자를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볼수록 그 그림자는 더욱 어둡게 느껴지게 된다. 이럴 땐 두 눈을 돌려 허공 속에 떠 있는 맑고 밝게 비치는 달을 보고, 얼굴을 스치는 산들산들한 맑고 신선한 바람을 즐긴다면 마음은 단박에 탁 트이게 될 것이다.

 

경전에서 “일향전념一向專念”하라는 말씀이 바로 이 뜻이다. 망상잡념이 생기면 그냥 내버려두고 함께 뒤엉키지 말며, 오로지 아미타불을 향하여 염불만 하면 된다. 망념은 스스로 생겨났다가 다시 스스로 사라지게 되는 존재이므로, 억지로 망념이 사라지게 할 필요는 없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여전히 우리는 범부의 본분을 지키면서 착실하게 염불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범부로서 망상잡념이 있는 것은 마치 사람이라면 눈과 귀가 있듯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임을 안다면, 이 망상잡념을 내 몸 이외의 것(身外之物)이라 생각하여 반드시 제거를 해야 통쾌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며, 망상으로 인해 망상이 더 생겨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마침 옛말 중에 “세상에는 본래 아무 일도 없건만,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 시끄럽게 구는구나!”라는 구절과 잘 어울린다. 이 구절을 다시 달리 표현하면“염불만 하면 아무 일도 없건만, 어리석은 사람들이 스스로 시끄럽게 구는구나!”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염불을 하면 아미타불 편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시고 어떠한 제한적 조건도 없으시건만, 우리들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여 자기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을 뿐이다.

 

82. 질문: 정토법문을 만났지만 도심道心이 강하지 못해 염불을 하다가 말다가 하는데, 그래도 왕생할 수 있는가?

 

: 도심道心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왕생을 원하는 마음(願生心)이고

둘째는 정진하는 마음(精進心)이다.

만약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있는 듯 없는 듯하고 왕생을 해도 되고 못해도 되며, 염불을 하다가 말다가 한다면, 그렇다면 왕생을 보장할 수 없다.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은, 앞으로 나아가면 왕생하고 뒤로 물러서면 왕생을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근기 자체가 게으르고 나약하여 염불을 하는 데 용맹정진을 못하고 하다가 말다가 하지만, 왕생을 원하는 진실한 마음만은 바뀌지 않는다면 여전히 왕생할 수 있다. 또한 진심으로 왕생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염불은 저절로 점점 더 증진하게 될 것이다.

 

83. 질문: 나는 매일 염불을 하는 것 외에도 여전히 마작을 즐기는데, 그래도 왕생할 수 있는가?

 

: 그것은 본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 만약에 염불왕생을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습성 때문에 마작을 즐긴다면, 그래도 왕생을 할 수는 있다. 다만 마작을 끝내고 나면 본인도 이건 시간낭비이고 염불을 하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시일이 지나다 보면 저절로 적게 하게 되고 결국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염불은 겉치레에 불과하고 마작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주객과 경중이 전도된 것으로서 왕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84. 질문: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염불을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염불을 많이 할 것을 시시각각 상기시킬 필요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마작을 하면서 자신의 왕생에 대하여 조금도 걱정하지 않으며 소탈하고 자재할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아미타불의 구제를 믿고 받아들인 사람이다’라고 하는데, 옳은 것인가?

 

: 이런 인식은 매우 편파적인 것이다. 마땅히 자신의 왕생을 걱정하지 않는 동시에, 염불을 많이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각자 염불을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에 관해서는 사람에 따라서 틀리겠지만,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보통 재가자들이 텔레비전을 시청한다든가 마작을 한다든가 하는 것은 아마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진심으로 염불왕생을 원한다면 물론 무방하겠으나, 그래도 텔레비전을 적게 보고 마작을 적게 하며 염불을 많이 하는 것만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소탈함과 자재함을 말하자면, 역시 염불하는 것이 소탈하고 자재한 것이다.

 

범부의 마음이란 본래부터 제멋대로인 데에 익숙하므로, 이제 겨우 염불을 시작하면 이내 속박을 느끼게 된다. 애써 상기시켜도 염불을 늘 잊어버리는 판국에, 자유의지에다 맡긴다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는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아마도 자신은 틀림없이 아미타불을 의지한다고 생각하면서 염불을 하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마음조차 희미해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텔레비전과 마작 속에 빠져들고 만다. 부처님을 의지하고 염불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관념일 뿐이고, 자신을 위해 찾은 변명거리에 불과하며, 염불은 아주 적게 하거나 심지어 아예 염불을 안 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생각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85. 질문: 사후에 장기기증을 하는 것은 보살행이 틀림없으나, 범부의 신분으로서는 집착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이 왕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 그건 개인의 발심을 봐야 한다. 만약 삼매력이 부족하고 원력이 견고하지 않다면 반드시 영향을 받게 된다. 왕생한다는 것은 큰일(大事)이므로, 마땅히 큰일을 보전하여 결정된 왕생을 구함으로써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그 다음에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오면, 그때는 석가모니불처럼 제 몸을 던져 매와 호랑이를 먹이는 일도 어렵지 않게 되니, 하물며 다른 일들이겠는가!

 

86. 질문: 나는 상품상생을 원하는데, 그래도 되는가?

 

: 아미타불의 구제에 맡기기를 발원하는 것만 못하다. 역대 정토종 조사들 중에 이와 같이 발원하신 분은 듣지 못했다. 인광대사께서 “왕생만 할 수 있다면 하품하생일지라도 만족한다”고 말씀하신 것도,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오로지 아미타불을 따르겠다는 뜻이다.

 

87. 질문: 나는 ‘왕생할 때에 몸에 병으로 인한 고통이 없고, 단정히 앉아서 왕생하고, 선정에 든 듯하며, 기이한 향기가 온 방안에 가득하고, 하늘 음악이 허공에 울려 퍼지도록 함으로써 대중들의 신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는 발원을 하려는데, 괜찮은가?

 

: 참으로 이런 원력이 있다면 안 될 건 없다. 그렇다면 남들이 모르게 면밀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만약에 진정한 공행功行이 있다면 설사 이런 발원을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반드시 이러한 광경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진실한 행도 없으면서 이미 큰소리를 친 상태라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면, 진심으로 왕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보기 좋게 꾸미려는 가식적인 행위일 뿐이다.

 

 그렇다면 왕생할 때가 되면 도리어 장애가 되어 왕생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아무튼 염불왕생은 사람 됨됨이와 같아서, 진실하고 분수에 맞게 살며 자신의 무게가 얼마면 얼마만큼의 말만 해야 한다. 착실하게 염불하고 착실하게 왕생한다면, 비단 죽을 때만 사람들의 믿음을 일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살아 있을 때 더욱 더 사람들의 믿음을 일으킬 수 있다.

 

88. 질문: 나는 불치병이 낫고, 건강하고 장수하기를 발원하여 이것으로 표법表法을 하려는데, 괜찮은가?

 

: 모든 것이 다 무상한데 무슨 법을 표하겠단 말인가? 이는 마음속에 왕생할 생각이 없으면서 듣기 좋은 말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진심으로 왕생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120세까지 살아도 좋고 오늘 밤에 죽어도 좋으므로, 장수와 단명에 대하여 일절 신경 쓰지 않고 병이 깊을수록 더욱 왕생발원을 할 것이다.

 

89. 질문: 나는 왕생의 이익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건강과 장수, 부귀와 영화 등 생선과 곰발바닥을 다 얻고자 발원하는데, 괜찮은가?

 

: 오로지 왕생발원만 있으면 된다. 가난과 부유함, 장수와 단명은 앞서 지은 운명에다 맡기고 삶과 죽음, 빈곤과 영달은 전적으로 아미타불께 의지할 일이다. 금생에 받은 몸(報身)은 전생에서 지은 업의 결과이다. 이미 그 과보가 나타난 이상, 설사 염불을 통하여 바꿀 수 있다고는 하지만 한정된 범위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의 복력이 부족하여 큰 부귀를 감당할 수 없다면 비록 염불을 하더라도 반드시 큰 부귀를 누리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이미 다 지은 초가집을 개선하려면 다만 일정한 범위 내에서 보수와 리모델링을 하여 사람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할 수는 있겠지만, 헌집을 허물고 다시 짓지 않는 한 초라한 초가집을 호화로운 별장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아미타불께서는 우리들도 하여금 정토왕생을 하여 철저한 부귀와 영원한 수명을 얻을 수 있도록 발원하신 것이다.

 

90. 질문: 나는 왜 병이 위중하다는 말을 듣고 기뻐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가?

 

: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활달하고 얽매임이 없는 사람은 병이 위중하다는 말을 들으면 죽을 날이 멀지 않고 왕생할 날이 가까워졌음을 알기에, 이것이 바로 자신이 기대하던 것이므로 기뻐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세속적인 감정에 얽매여서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세간에 대한 미련이 많기 때문에, 병이 위중하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하고 슬퍼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바뀌지만 않는다면 여전히 왕생할 수 있다

 

. 이 ‘죽음’이라는 글자는 본래 가명에 불과하며, 생명은 여전히 존재한다. 단지 업에 따라 몸을 바꾸고 태어나는 처소를 달리하는 것을 죽음이라 부를 뿐, 사실상 진정한 죽음이란 없다. 더욱이 염불하는 사람은 임종 때에 부처님이 내영을 하시므로 목숨이 다하면 영혼은 곧바로 정토에 태어나게 되니, 사실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91. 질문: 만약에 근근이 왕생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왕생한 뒤에 빨리 성불할 것을 고려해 현세에서 보리심을 발하고 널리 대승경전을 독송하며 자신의 심성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려고 한다면, 이는 괜찮은가?

 

: 발보리심을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것이다. 발보리심을 했다면 현세에서 이미 보살인데, 이 세상에 보살 한 분이 더 있으면 어찌 좋지 않겠는가? 다만 문제는 사람들이 보리심을 발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만일 착실하게 전수염불을 하면서 여력이 남아 있으면 대승경전을 독송하고, 마음을 넓혀서 염불하기를 더욱 좋아하게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왕생한 뒤에 빨리 성불을 하기 위해 사전준비를 한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어두운 밤중에 열 개의 촛불 빛이 물론 하나의 촛불보단 밝겠지만, 촛불을 많이 준비해서 태양이 떠오를 때 더 밝게 빛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어찌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서 말하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의 차이는 기껏해야 어두운 밤에 촛불 빛의 밝고 어두운 차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극락세계는 불일佛日의 대광명大光明 경계이므로, 일단 왕생하면 부처님 경계 속으로 들어가 부처님과 똑같이 수용受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도대사께서는 “심성心性은 백천 개의 태양보다 밝게 빛나고 자비와 지혜를 동시에 운용함이 그대로 영원하리라”고 말씀하시고 “극락왕생하여 연꽃이 피고 미묘한 법문을 들으면 십지보살의 원행願行이 저절로 드러나리라”고 하셨다. 이처럼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따라 모두 신속하게 성불할 수 있거늘, 또 어떤 인위적인 힘이 있어서 아미타불의 서원을 가속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92. 질문: 자신의 왕생이 결정된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매일 경전과 다라니를 독송하여 천도 불사를 함으로써 발보리심 하여 자신을 장엄하는 실제 행동으로 삼고자 하는데, 괜찮은가?

 

: 그럴 필요는 없다. 염불하는 사람은 자리이타自利利他가 전부 한마디 아미타불이다. 어떤 사람이 공덕 불사를 부탁해도 역시 그분을 위해 염불을 해주어야 한다. 과연 자신의 왕생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면, 아미타불이 중생을 구제해주시는 이 법문을 열심히 널리 선양하는 데 노력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염불하여 성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발보리심이고 위없는 공덕 장엄이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경전과 진언을 독송하는 불사에만 열중하다 보면, 결국에 왕생은 그림 속의 떡이 되고 말 것이다.

 

93. 질문: 나는 염주를 들고 용맹스럽게 염불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자력에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옳은 것인가?

 

: 이런 견해는 옳지 않다. 결코 용맹스럽게 염불하는 것은 자력이고, 게을러서 염불을 안 하는 게 오히려 타력인 것은 아니다. 마음속으로 아미타불의 서원을 우러러 의지한다면 비록 하루에 수만 번씩 부처님의 명호를 부를지라도 역시 타력(불력)인 것이다. 남들이 용맹스럽게 염불하는 것을 보면 마땅히 본받으려고 해야 하며, 본받을 수 없으면 마땅히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94. 질문: 염불을 하려면 전수專修를 해야지 잡수雜修를 해서는 안 된다고 들었는데, 오욕락도 잡수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범부로서 오욕락이 전혀 없도록 한다는 것은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어쩔 수 없는 타락과 고의적인 타락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

 

: 오욕五欲은 인생의 현상이므로 잡수라고 말할 것까진 없다. 천상에는 수승하고 미묘한 오욕이 있고, 사람에게는 거친 오욕이 있으며, 더 나아가서 악도인 축생들에게도 약간의 오욕락은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합리적인 오욕락은 누릴 수 있지만, 법과 인륜을 어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본래부터 오욕중생이므로, 이런 신분을 가지고 꾸준히 염불하는 것이 곧 전수專修이다.

 

95. 질문: 비록 왕생을 원하지만 일시에 전수염불을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는데, 믿음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는가?

 

: 전수염불은 언뜻 보기엔 간단한 것 같아도 자세히 알고 보면 불법 중에서 가장 뛰어난 법문이다. ‘염불만 하면 누구나 왕생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선근이 부족한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믿기 어려운 것이다.

󰡔무량수경󰡕에서는 “부처님의 지혜를 분명히 믿음(明信佛智)”이라 하시고 “어려움 중의 어려움은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다(難中之難 無過此難)”고 말씀하셨으며, 󰡔관경󰡕에서는 굉장히 긴 지면을 할애하여 먼저 정선定善과 산선散善의 수행법을 설명하여 복선을 깔아놓고, 맨 마지막에서야 칭명염불법을 부촉하셨다.

 

󰡔아미타경󰡕에서는 직접적으로 “믿기 어려운 법(難信之法)”이라 부르셨는데, 이를 육방제불께서 넓고 긴 혀를 내밀어 증명해주셨다. 따라서 일시에 전수염불을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해(解)와 수행(行)이라는 두 측면을 통하여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볼 수 있다.

 

‘해解’는 이해이다. 전수염불에 대한 교리 관련 서적과 전수염불을 하여 왕생한 사례들을 기록한 왕생실록들, 그리고 인과응보에 관한 서적들을 많이 보면서, 그 속에서 아미타불의 자비와 원력의 위대함, 명호 속에는 모든 공덕이 들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하열함과 무능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행行’은 곧 행지(行持: 명호를 지니고 염불함)이다. 진실한 마음과 겸손하고 하심下心하는 마음으로 착실하게 염불수행을 해야 한다. 진정한 수행자는 수행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수행을 할 줄 모르는 사람임을 발견하게 된다. 예컨대 진정으로 청정한 계율을 엄격히 지킨다는 기준으로 따져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지킬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진정으로 자신이 효자가 되고자 했을 때에야 비로소 쉽지 않음을 알게 되며, 진정으로 보시를 하려 할 때에 비로소 자신의 마음속에 늘 미련이 남고 늘 나와 남의 분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선행이 누적됨에 따라서 한편으로는 선근이 더욱 더 두텁게 쌓이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더욱 더 자비롭고 부드러워질 것이다. 게다가 관련된 교리와 감응의 작용에 대하여 듣고 훈습을 하면서 이른바 ‘이해와 수행을 함께 닦아 나아간다(解行並進)’면 점차적으로 전수염불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볼 때는 선택을 해서 봐야 하고, 수행은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만약 성도문의 수행과 관련된 책들을 보게 되면 서로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적 상응하지 않는다. 비록 선행을 닦으면서 수행을 한다고는 하지만, 만약 허망한 명예와 이익을 바라는 마음이 섞여 있고 또 아주 교만하다면 자신은 수행을 굉장히 잘하고 있고 덕행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불법을 공부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아상我相은 더욱 커지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역시 상응하지 못한다.

󰡔무량수경󰡕에서 “겸손하고 공경한 마음으로 듣고 받들어 행하여 환희심에 뛰놀며 크게 기뻐하리라. 교만하고 삿되고 게으른 사람은 이 법을 믿기 어렵도다”라고 하신 말씀과 󰡔관경󰡕에서 반드시 “지성심至誠心‧심심深心‧회향발원심回向發願心을 갖추고 정업삼복淨業三福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 뜻이다.

 

96. 질문: 전수염불을 하기 전과 전수염불을 시작한 뒤에 똑같은 선행을 하고 있다면, 양자 간에 차별이 있는가?

 

: 당연히 큰 차이가 있다. 예컨대 국왕을 호위하는 의장병이 단독으로 외출할 때와 국왕을 따라나설 때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호위를 맡은 인원이 비록 장삼이사張三李四와 같이 다른 이름을 가졌어도, 국왕의 뒤를 따라나선다면 개인적인 신분은 사라지고 국왕의 지휘를 따르는 군인의 신분으로 통일되므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게 되고, 감히 그들을 범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한다. 비록 똑같은 사람이지만 개인의 신분으로 모여 있다면, 설령 개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백성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여 특별히 존귀한 것은 아니다.

 

염불은 국왕과 같고 그 외의 모든 선善은 백성과도 같다.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은 온갖 선행을 닦고 있어도, 본인은 온갖 선행을 닦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공로를 완전히 염불의 공덕으로 돌린다. 만약에 꼭 그분들의 선행을 따지려고 한다면 틀림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심지어 몸 둘 바를 몰라 할 것이다. 마치 국왕의 호위병이 완전히 국왕의 위덕을 받아쓰기 때문에 그 사람은 본인에게 어떠한 위덕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전수염불을 하지 않는 사람은 비록 선을 닦고 있어도, 마치 일반 백성이 국왕의 지도가 없으면 오합지졸에 불과한 것과 같다. 다만 개인의 능력이 크고 작음을 논할 수는 있겠지만,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난다 할지라도 국왕의 위덕과는 전혀 비교되지 않는다.

 

선도대사께서는 전수염불을 믿고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닦은 모든 선을 ‘인연을 따르는 잡다한 선(隨緣雜善)’이라고 말씀하시고는, 이러한 선의 힘에 의지해 아미타불의 보토에 왕생하려 한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미타불께 귀명하는 마음으로(󰡔관경󰡕에서 설하신 지성심 등의 세 가지 마음) 닦은 선은 설사 그 선이 아무리 작고 아무리 적을 지라도 하나하나의 선을 ‘진실한 업(眞實業)’이라고 부르시고, 이를 회향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선행을 닦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들이 닦은 선은 설사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최상의 선이 된다. 염불의 뒤에 붙어 따르는 까닭에 염불과 하나가 되고, 자신의 공덕에 집착하지 않고 본래 그러한 공성空性과 무아無我의 이치에 잘 계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잡다하게 온갖 선을 닦는다면 설령 그 선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진실한 업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수행자가 무아와 공성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예컨대 사자성어에 “점철성금點鐵成金”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쇠와 금은 비교할 수 없으나 이 쇠를 신령스런 손가락으로 한 번 대기만 하면 쇠가 금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범부들이 닦은 인천의 모든 선은 원인이든 결과든 전부 전도된 것이고 전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말할 가치도 없지만, 일단 전수염불에 들어오게 되면 명호라는 신령스런 손가락에 한 번 살짝 닿은 것처럼 본래의 잡다한 선이 진실한 업으로 바뀌게 되고, 범부는 현생에서 불퇴전의 지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 이야말로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들은 선을 닦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견해다.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들은 다만 모든 선을 닦으면서 결코 자신에게 선을 닦은 공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염불에다 그 공을 전부 돌릴 뿐이다.

 

97. 질문: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은 법당을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가?

 

: 법당을 설치하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속의 신앙을 바깥으로 표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신앙의 규범이 되어주고 우리들의 수행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준다. 법당을 설치할 때 기본적인 원칙은, 반드시 본인이 수행하고 있는 법문과 상응하도록 전일하되 잡다하지 않고, 간단하되 번잡스럽지 않으며, 청정하고 장엄해야 한다.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은 선도대사께서 말씀하신 오정행(五正行: 독송‧관찰‧예배‧칭명‧찬탄)에 따라 오로지 아미타불께만 예배하고, 오로지 아미타불께만 공양하고 찬탄해야 한다. 그래서 법당에는 오직 아미타불 한 분만 모시면 된다. 부처님 한 분, 등 하나, 향 하나, 깨끗한 물 한 잔, 그리고 전적으로 아미타불만 염송하는 염불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육근이 상대하는 경계가 단조로울수록 마음 또한 전일해지기 때문이다.

 

화학성분이 들어 있는 향료는 사용하지 말고 되도록 최고급의 전단향(또는 침향)을 사용해야 한다. 집안에 설치된 법당의 크기가 작으면 향을 한 대만 피우면 되므로 세 대를 피울 필요가 없다.

불단을 모시면 다음과 같은 좋은 점이 있다.

 

첫째는 염불수행에 도움이 되니, 경계와 인연을 만날 때마다 정념을 일으킬 수 있다.

 

둘째는 어린이들의 심신의 교육과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이롭다. 법당은 특별한 교실과 같고, 아미타불은 무언의 스승님과도 같아서 은연중에 감화하는 작용은 어떠한 사람과 어떠한 교육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법당이 설치되어 있는 가정에는 어린이들이 어려서부터 절을 하고 염불을 하며, 부처님의 명호를 들음으로써 선근을 심게 되고, 복과 지혜가 자라나게 되며, 인과를 깊이 믿게 된다. 나중에 커서는 자연히 규율을 잘 지켜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며, 어질고 착하고 정직하고 유용한 인재가 될 것이다.

 

셋째는 법당의 광명은 온가족이 평안하고 행복하도록(吉祥) 보호해줄 수 있다. 가족 중에 밖에서 일을 하거나 학교를 다니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걱정이 된다면, 집에 모신 부처님께서 아시고는 그들을 보호해주실 것이다.

만약 법당을 설치할 여건이 안 된다면 마음속에 모시면 된다.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빛나는 법당으로 만들고, 그 법당에다 오직 아미타불 한 분만 모시며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된다.

 

 늘 이 한마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항상 아미타불의 공덕 향을 사르는 것과 같아서, 아미타불께서는 한결같이 다 아신다. 아미타불께서 우리더러 당신을 모시고 예배하라고 요구하신 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부처님을 모시고 염불하여 자신이 이익을 얻는 것이다.

 

한 사람의 신앙의 깊음과 얕음, 수행의 전일함과 잡다함(專雜), 왕생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여부는 그 사람의 법당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대체로 법당의 배치가 난잡하면 그 사람의 신앙 수준은 아직 낮은 단계에 있고 단지 평범한 신앙일 뿐이며, 중심이 없고 마음속에 주인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설사 그 사람이 불교를 믿은 시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모두 단지 불법과 인연을 맺는 성질의 것이고 불교의 초심자일 뿐이니, 수행도 당연히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한 것이고 왕생 역시 결정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왕생을 위하여 법당에 오로지 아미타불 한 분만 모시고 본인도 오로지 아미타불만 부른다면 그 사람의 신앙이 매우 깊고 전일하고 순수함을 알 수 있으므로, 반드시 왕생할 수 있음을 단정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오정행五正行에 부합하고, 수행이 정정업正定業이기 때문이다.

 

98. 질문: 나는 본래 많은 불상을 모셨었지만 지금은 오로지 아미타불 한 분만 모시려 하는데, 원래 있던 불상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 본래 모시던 불보살상들을 깨끗이 닦고 살짝 향냄새가 배게 한 다음, 인연 있는 사람에게 보시하면 된다. 그 사람이 지장보살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아직 모시지 않았고, 마침 당신에게 있다면 그분에게 주면 된다. 그 불상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기념적 가치가 있든 간에 기꺼이 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부처님과의 인연은 세간의 재물로써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상을 그 사람에게 보내주면 지장보살의 분신으로 작용을 하지만, 본인이 갖고만 있으면 불보살님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자신이 모시던 불상을 인연 있는 사람들이 모시도록 주면 그 사람이 부처님을 모시고 부처님께 예배하며 지은 복은 자연히 본인에게도 한 몫이 돌아올 것이다.

 

 

5. 의심스럽고 판단하기 힘든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해답

 

 

99. 질문: 어째서 간단하고 쉬운 염불은 왕생의 정정업이 되어 반드시 왕생하며, 그 외의 어렵고 심오한 수행은 도리어 정정업이 아니어서 왕생이 결정되지 않는가?

 

: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시기 전에 발원을 하시길 ‘만약 어떤 사람이 나의 명호를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할 수 없다면 난 맹세코 성불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현재 아미타불께서 이미 성불하셨다는 것은 그분의 서원이 실현되었음을 의미하므로, 우리가 염불하면 당연히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염불왕생은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보증해주신 것이다.

 

 다른 수행은 비록 어렵고 수준이 있고 심오하기는 하나,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보증됨이 없이 오직 수행자 본인의 힘만을 의지하기 때문에 당연히 왕생이 결정되지 않는다. 예컨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려 한다면 배의 힘에 의지하기 때문에 간단하고 쉬우면서도 반드시 바다를 건널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개인적으로 헤엄쳐 바다를 건너려 한다면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어서, 설사 매우 뛰어난 수영 기술을 가졌다 하더라도 반드시 건널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100. 질문: 어떤 것이 믿음과 발원을 갖춘 염불이고, 어떤 것이 믿음과 발원을 갖추지 못한 염불인가?

 

: ‘아미타불의 서원이 헛되지 않아 내가 그분의 명호를 부르면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 이것 외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믿음을 갖춘 것이고, ‘이번 생에 꼭 왕생하고야 말겠다’고 생각한다면 곧 발원을 갖춘 것이다. 만약 이와 정반대라면 믿음과 발원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101. 질문: 나는 염불을 하고 있지만 나 자신이 믿음과 발원을 갖추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왕생할 수 있는가?

 

: 진심으로 왕생을 원한다면 반드시 왕생한다.

 

102. 질문: 어째서 염불을 하면 반드시 왕생하는 것 이외에도 재난을 소멸하고 복이 자라나며 수명을 연장하는 등 갖가지 현세의 이익들이 있는가?

 

: 아미타불의 명호가 범부들로 하여금 왕생하여 성불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명호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위없는 공덕을 원만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무량무변한 공덕을 갖추었기 때문에 업장을 소멸하고 복과 지혜가 자라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업장이 소멸되면 당연히 병이 낫고 수명이 연장되며 재난이 사라지고, 복과 지혜가 자라나면 자연히 여러 인연들이 잘 모여서 원하는 일들이 뜻대로 다 이루어지게 된다. 설사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구하지 않아도 자연히 이루어지고, 반드시 이루어진다.

 

103. 질문: 어째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잡다하게 여러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르는 것보다 얻게 되는 세간의 이익이 월등히 뛰어난가?

 

: 다음의 이유 때문이다.

⑴ 전념專念은 잡념雜念보다 뛰어나다.

⑵ 아미타불은 다른 모든 부처님보다 뛰어나다.

사람 마음의 힘에는 한계가 있기에, 원하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마음의 힘을 한곳으로 모아야만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옛말에 “익숙해지면 요령이 생기게 되고, 마음이 정성스러우면 영험하다”고 했듯이, 전념을 하면 정성도 있고 익숙하기도 하기 때문에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게 없지만, 잡념(잡다하게 부름)을 하면 정성도 없거니와 익숙해지지도 않으므로 구하는 것을 얻기 어렵다. 게다가 아미타불께서 특별히 명호로써 중생들을 이익케 하겠다는 발원을 하셨으며, 제불의 왕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에,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잡다하게 제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보다 뛰어난 것이다.

 

104. 질문: 어째서 사람들은 아미타불을 얘기하면 항상 왕생만을 떠올릴 뿐, 현세의 이익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가?

 

: 이 점이 바로 아미타불의 위대함을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세의 이익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불보살님들도 모두 소원을 이루게 해주실 수 있지만, 극락왕생하여 성불을 하는 가장 중대하고 가장 근본적인 이익은 반드시 전적으로 아미타불을 우러러 의지해야만 비로소 백 퍼센트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미타불을 얘기하면 왕생을 떠올리고, 왕생을 얘기하면 아미타불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미타불을 부르면 왕생만 할 뿐 현세의 이익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치적으로 말하자면, 아미타불을 부르면 왕생하여 성불을 하는 크나큰 이익조차 얻을 수 있거늘, 하물며 현세의 갖가지 적은 이익들이겠는가! 예컨대 대신에게는 죄수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해줄 수 있는 권한은 있어도, 죄수가 지은 죽을죄를 사면해줄 권한은 없다. 반면에 국왕은 죄수의 죽을죄도 사면해줄 수 있으므로, 죄수들의 환경을 개선해주는 것쯤은 당연히 해줄 수 있다.

 

105. 질문: 아미타불을 부르면 현세의 이로움과 안락함에서부터 왕생하여 성불에 이르기까지 전부 도맡아 처리해주신다는 수많은 장점들이 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염불법문 하나만 설하시면 될 텐데 또 무엇 때문에 다시 그렇게 많은 불보살님들의 명호와 경전, 다라니를 설하시어 사람들로 하여금 염송하도록 하셨는가?

 

: 이것은 중생들이 근기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비록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뛰어난 법문으로서 일체 법문을 원만히 거두어들이고 원만히 초월하고 있지만, 만약 겨우 이 한 가지 법문만 설하신다면 일부 중생들은 한 번에 계합해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여러 종류의 근기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이익을 전부 얻을 수 있도록 고려함과 동시에, 그들을 나중에 모두 아미타불을 부를 수 있도록 편리하게 인도하기 위해서 갖가지 법문을 강설하면서 다른 불보살님들을 소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누각이 너무 높아서 한 걸음으로 오르기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계단이 필요한 것과 같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서 여러 가지 법문을 닦다가 맨 마지막에 염불수행으로 돌아서지만 이미 크게 우회한 것이다. 만약 이미 염불을 시작했고 또 이러한 이치를 알았다면 오로지 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선도대사께서는 “오직 지름길로 가는 수행을 해야 하나니, 단지 아미타불만을 부를 뿐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06. 질문: 어째서 똑같이 염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얻은 현세 이익의 크기는 각자 다른가?

 

: 중생들의 근기가 다르고 과거전생에 지은 선업과 금생에서의 마음씀씀이 역시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동일한 태양이 비추고 있지만 나무들은 각각 높고 낮음이 있는 것과 같다.

 

107. 질문: 어째서 현세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단지 왕생만을 원했을 뿐인데, 얻은 현세의 이익이 도리어 더 수승한가?

 

: 세간은 무상하고, 무상하기에 괴롭다. 오직 왕생만을 구할 뿐 세간의 일체를 구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이 완전히 부처님께 의지하게 되므로, 부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부처님과의 감응 역시 가장 원활하며,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는 것도 가장 강력하고 업장소멸도 가장 빠르다. 업장이 소멸된 이상, 세간의 갖가지 이익을 구할 줄도 모르고 구하지도 않더라도 자연히 온갖 수승한 이익을 얻게 된다.

 

만약 현세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왕생을 구하지 않거나, 심지어 왕생을 두려워한다면 이 사람의 마음은 부처님과 서로 떨어져 있게 되어 업장소멸이 더디고 얻은 세간의 이익도 오히려 열등하다. 예컨대 어두운 방에 있는 사람이 바깥의 햇빛을 그리워하며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모든 창문들을 활짝 열어버린다면 설사 잠시 무슨 일이 있어서 집밖을 나서지 못하더라도 집안은 더욱 환해질 것이다. 그런데 만일 방안에만 있고 싶고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어서 창문을 반쯤 열고 반쯤 닫는다거나, 심지어 햇빛이 너무 강렬할까봐 두려워서 커튼을 쳐서 차단시킨다면 방안은 당연히 밝지 않을 것이다.

 

108. 질문: 어째서 똑같이 병이 생겨 염불을 했음에도 어떤 사람은 병이 나아 기사회생하고, 어떤 사람은 병이 낫지 않고 여전히 죽게 되는가? 염불하여 병을 치료한다는 게 도대체 영험이 있긴 한가?

 

: 중생들의 업감(業感: 업으로 인한 과보)이 각자 다르고 염불하는 마음도 한결같지 않은데, 어떻게 똑같은 결과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업감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만약 한 사람의 수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설사 의학계에서 필사의 병이라고 판명이 났어도, 염불을 하여 업장을 소멸한다면 역시 기사회생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한 사람의 수명이 이미 다 됐다면 비록 염불을 하더라도 그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용심(用心: 마음씀씀이)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만약 두 사람이 모두 죽을 운명이 아니라면 일심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왕생만을 구하는 사람은 늘 오래된 지병이 빨리 낫게 되지만, 마음속에 걱정이 많고 오로지 병이 낫기만을 바라며 죽음이 두려워서 왕생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그 효과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염불은 본래 오로지 이 몸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병을 치유하는 데 영험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있을 수 없다. 다만 염불을 하면 업을 소멸할 수 있고, 업이 소멸되면 어떤 병들은 저절로 낫게 되기 때문에, 때로는 병을 치유하는 효과도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자비하신 아미타불께서 우리들을 영접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광명과 수명이 무량한 자유로운 몸과 마음을 얻어 영원히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면할 수 있도록 발원하신 것이다. 염불을 한다고 금생에서 이 몸의 병을 반드시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량겁 동안의 생사윤회의 큰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우리의 현세의 이 몸은 자신이 지은 업의 과보이다. 어떤 사람은 염불을 겨우 몇 번밖에 안하고는 아미타불께 자신의 신체가 건강하고 지혜가 뛰어나며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길 보장해달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이 영험이 없다고 탓하는데,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예컨대 자신이 만든 차의 재료가 전부 고철덩어리라면 설사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정비소에서 수리를 했더라도 절대 길에서 고장이 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고장이 났다고 해서 정비소를 탓한다면 그것은 옳지가 않다.

 

그래서 아미타불께서는 ‘너의 몸을 내가 비록 유지하고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모든 책임을 다 질수는 없다. 만약 나의 명호를 부른다면 내가 너를 위하여 (극락에 왕생시켜) 금강처럼 단단하며 파괴되지 않는 몸으로 바꿔주겠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병들지 않고 늙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게 보장해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109. 질문: 병이 생겼을 때 자신의 명이 다했는지 다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아는가? 만약 명이 다한 줄 안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염불을 하면서 왕생만을 구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면 아미타불께서 나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도 되지 않겠는가?

 

: 비록 알 수는 없지만 당신이 염불을 하면 아미타불께서는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모두 틀림없이 죽을 거라는 생각으로 염불을 하면서 모든 것을 아미타부처님께 맡겨야 한다. 심지어 평소에 아무런 병이 없을 때에도 곧 임종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관’이다.

 

예컨대 차를 끌고 정비소에 들어갔을 때 전문가들은 척 보면 알 수 있다. 만약에 이 차가 아직 사용가치가 있으면 수리를 해주겠지만, 그럴 가치가 없다면 다른 새 차로 바꿀 것을 건의하면서 더 이상 수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염불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몸을 아미타부처님께 맡기기만 하면 부처님께서는 당연히 계속해서 보양하고 손볼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새 것으로 바꿔야 하는지를 알고 계신다.

 

110. 질문: 본래 병이 생겨 곧 죽을 것만 같은데, 어떤 사람이 염불을 가르쳐주면서 병이 낫기를 바라지 말고 오로지 왕생만을 구하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본래 나을 수 있는 병도 못 낫고 더 빨리 죽게 되는 게 아닌가?

 

: 그렇지 않다. 필사의 마음으로 염불을 하며 왕생만을 구하고, 병이 낫기를 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체념하고 오로지 염불에만 집중한다면 항상 불가사의한 기적을 이루게 된다. 이때 만약에 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업장이 신속히 녹아내리고 병고가 신속히 낫게 된다. 만약 명이 다했다면 비록 병이 있어도 큰 고통 없이 편안하고 순조롭게 불국토에 왕생할 수 있다. 병이 낫든 안 낫든 간에 모두 이익이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111. 질문: 세속적인 일이 많고 자녀에 대한 미련도 버릴 수 없기에, 염불하여 우선 병이 낫기를 구하고 왕생은 구하지 않아도 되는가?

 

: 아미타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다. ‘지금은 자녀들이 아직 어려서 저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해 주관자가 되어 저와 자녀들의 앞뒤와 인과를 살펴봐주세요! 만약에 남아서 그들을 보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저의 병이 하루 빨리 나을 수 있도록 해주시고, 만약에 필요가 없다면 저는 부처님을 따라 왕생하겠습니다. 자녀들은 부처님께 부탁드리오며, 저는 미련을 버리겠습니다,’

 

염불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간에 전부 아미타불의 안배에 맡기는 게 가장 온당하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오안五眼과 육신통이 있어서 과거와 미래를 아시고, 모든 사람의 업보의 인연을 잘 알고 있으시기에, 각 방면의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장 좋은 안배를 해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생각이 꼭 가장 좋다고 할 수는 없으며, 어쩌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부처님께 표현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어떻게 해달라고 할 필요는 없다. 만약 꼭 자신의 고정된 생각에 집착하려 한다면 도리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장애하게 될 것이다.

 

112. 질문: 만약 아미타불께서 먼저 병을 치유해주신 다음에, 다시 극락으로 영접하여 주신다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다소 유감을 느낄 것이다.

 

: 이것은 모두 범부들의 생각으로 부처님의 지혜를 헤아리는 것이다. 아무리 말해봤자 다 우리가 이 몸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진짜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말씀하시면서, 인생은 본래부터 유감스러운 것이라고 하셨다. 병이 나으면 유감이 없을까? 병이 나으면 다시 장수하고 싶어지고, 장수하면 부귀를 바라고, 부귀하면 또 다시 자손들이 모두 영달하기를 바라고…… 언제쯤 끝이 있겠는가?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만 유감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사바세계에서는 온통 모두가 유감일 뿐이다. 그래서 아미타불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왕생하여 성불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원만하고 유감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 언제 왕생하고 어떤 인연 속에서 왕생하는가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적합하고 적절한 안배가 있을 것이다.

 

113. 질문: 어째서 염불하는 사람 중에는 재물을 구하면 재물을 얻는 사람이 있고, 재물을 구해도 재물을 얻지 못할뿐더러 도리어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는가? 그 외에 구하는 바도 마찬가지로 소원을 들어주는 경우도 있고,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경우도 있는가?

 

: 재물을 구하여 재물을 얻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이 사람의 복이 두터워 마치 두꺼운 판자가 무거운 물건을 견딜 수 있듯이 재물도 있고 누릴 복도 있으며, 자신과 다른 이에게 모두 이익이 된다면 부처님께서는 지혜의 거울로써 비추어 아시고 그 소원을 들어주신다.

 

둘째, 이 사람의 심성이 연약하고, 과거의 선근을 볼 때에 뜻을 거스르지 않고 제도하는 게 적합한 경우이다. 만약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이 사람은) 바로 의기소침해지고 부처님과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게 되며 선근이 성숙되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그 소원을 들어준다면 신심이 자라나고 선근이 점점 성숙해져서 불법문중으로 이끌어 들이기가 편리해진다. 부처님께서 이러한 사실을 지혜의 거울로써 비추어 아시고 그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이다.

재물을 구해도 손해를 보는 데에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이 사람은 본래 마땅히 크게 손해를 보게 될 상황이었지만 염불을 했기 때문에 은연중에 작은 손해로 바뀐 것이다. 이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기에 염불을 하여도 여전히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이 사람이 박복하여 마치 얇은 판자가 무거운 물건을 감당할 수 없듯이 만약 재물이 있어도 누릴 복이 없으면 뜻밖의 재난과 소송, 납치, 사망을 당하는 등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이익이 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지혜의 거울로써 비추어 아시고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므로 재물을 구해도 재물을 얻지 못한다.

 

셋째, 이 사람의 심성은 고집이 세고 교만하며, 과거의 선근을 볼 때 뜻을 거스르며 제도하는 게 적합하다. 만약 소원을 들어주면 도리어 교만한 마음만 커지게 되고 세속에 더욱 더 빠져들고 미혹하여 돌아올 줄 모른다. 만약 그 교만한 기세를 꺾어 준다면 점차적으로 마음을 돌려서 불법을 믿게 된다. 부처님께서 지혜의 거울로써 비추어 아시고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기에, 재물을 구하지만 도리어 손해를 보게 된다. 그 밖에 구하고자 하는 것들도 이러한 예로써 알 수 있다.

 

아무튼 부처님의 지혜란 불가사의한 것이어서 각자 정성을 다하여 구한다면 각자의 분에 알맞게, 많지도 적지도 않게 얻을 수 있다. 마치 대지에 만물이 생장하는 데 있어 높고 낮음과 크고 작음이 각각 적절하여, 많지도 적지도 않은 것과 같다.

 

114. 질문: 󰡔염불감응록󰡕 속에 보면 병으로 고통받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기적처럼 회복할 수 있었는데, 어째서 나는 정성을 다해 염불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으로 인한 고통이 줄어들지 않는가?

 

: ⑴ 과거의 업력이 불가사의하여 본래 더욱 큰 병고가 있을 터인데, 염불을 하는 인연으로 은연중에 사라져서 더 이상 받지 않고 단지 지금의 병고만 있을 뿐이다.

⑵ 병이 낫기만을 바라고 왕생을 구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이 조급하고 허망하여 부처님과 감응을 이루기 어려워 염불의 효과가 떨어진다. 일심으로 염불하여 숙세의 업장이 소멸되면 각자 그 이익을 얻을 것이니, 의심하지 말지어다.

 

115. 질문: 많은 사람들이 승용차와 별장을 즐기면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사회발전으로 인한 기득 이익자(기득권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바세계에 대한 염리심을 내라고 권장한다는 것이 어찌 논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미타불께서는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치중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

 

: 논리에 맞다. 왜냐하면 인생이 무상하고 괴롭기 때문이다. 돼지가 음식의 즐거움을 탐하다가 드디어 살육을 당하게 되고, 사람은 오욕의 즐거움을 탐하다가 결국 윤회의 과보를 받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미혹하여 돌아올 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찌감치 벗어나기를 구한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른바 사회의 고층과 저층이 있지만, 아미타불의 입장에서는 모두 같은 부류로 고뇌하고 죄를 짓는 범부들일 뿐이다. 부처님의 마음은 평등하여 간택이 없으시며, 어떤 사람이라도 모두 ‘아미타불께서는 나를 가장 편애하신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부귀한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부귀를 탐하고 좋아하는데, 극락정토에는 순전히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다. 그러니 어찌 아미타불께서 나를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가난한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가난과 고생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가장 간절히 구제를 바라고 있다. 자비하신 아미타불께서 괴로움을 덜어주시고 즐거움을 채워주시니 어찌 극락세계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116. 질문: 어째서 평소에 염불을 안 하던 사람들도 임종 또는 죽은 뒤에 조념을 해주면 따라서 염불을 하고 왕생을 할 수 있는가?

 

: 평소에 염불을 못한 것에는 세 가지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그 사람에게 염불을 말해주는 좋은 친구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비록 염불을 말해주는 사람을 만났지만,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에 염불을 하지 않은 것이다.

셋째는 비록 염불을 믿기는 하지만 세속적인 일에 얽매여서 항상 차일피일 미루다가 염불을 못한 것이다.

 

⑴ 지금은 임종 또는 이미 죽은 상태에서 누군가 오셔서 염불법문을 해주시니, 곧 첫 번째 장애가 사라진 것이다.

⑵ 본인의 임종 때에 중음신의 경계가 나타나거나 죽은 뒤에도 영혼이 소멸되지 않음을 직접 체험하고 나니, 부처님의 말씀이 거짓이 아니고 인과응보가 실제로 존재함을 믿게 되니, 이로써 두 번째 장애가 사라진 것이다.

⑶ 평소에 큰 짐이 되었던 아내와 자식, 재산과 사업 등을 이때가 되면 내려놓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선지식의 법문을 들음으로 문득 깨닫게 되니, 곧 세 번째 장애가 사라진 것이다.

이로써 세 가지 장애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염불을 할 수 있고, 염불을 하면 바로 왕생하게 된다.

 

117. 질문: 어째서 평소에 염불하여 왕생을 구하던 사람들도 임종할 때에 갑자기 염불을 하지도 않고 왕생을 구하지도 않는 경우가 있는가?

 

: 이것이 바로 이른바 전도顚倒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갑자기는 아니다. 이 경우는, 그 사람이 평소에 염불하여 왕생을 구한다는 것이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단지 입으로만 말한 것이었음을 입증해준다. 이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진짜로 죽는 것도 두렵고, 아내와 자식 등에 대한 애착도 버릴 수가 없어서 오로지 더 살고 싶다는 생각에 왕생을 원치 않는 것이다. 진심으로 왕생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왕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절대 전도되어 왕생을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염불하여 왕생을 구하는 것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야지, 겉으로 말만 있어서는 안 된다.

 

118. 질문: 내가 수행을 많이 하신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은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암 제거 수술을 받은 뒤에 건강과 즐거움을 되찾았기 때문에 법희가 충만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불교를 믿을 것을 권장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항상 겸손하게 ‘저는 수행을 제대로 잘 하지 못해서 아직은 왕생할 수 있는 조건과의 거리가 굉장히 멉니다’라며 말씀하곤 하셨다. 그러던 그분이 임종할 때가 되자 도리어 육식을 하려 하고 조념을 해줘도 효과가 없었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

 

: 이것이 바로 업장이 나타나서 전도가 된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들에게 매우 큰 경각심과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염불왕생에는 본래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스스로 조건을 정해놓고 자신은 그 조건과의 거리가 멀다고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미타불의 서원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왕생의 조건을 상정한다면 임종 때에 당연히 업장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일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착실하게 염불하고, 부처님을 의지하며, 자력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면 절대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염불이 천번만번 온당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119. 질문: 어째서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한 번 영접하러 오시면 바로 따라가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두 번, 세 번 영접하러 오셔야 비로소 왕생하는가?

 

: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이라면 부처님의 모습을 보자마자 진심으로 기뻐하며 즉시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한다.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고 세속의 일에 미련이 많은 사람은 비록 부처님께서 오셨음을 보았지만 마음속에서는 망설이게 된다. 부처님을 따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지혜의 거울로써 비추어 아시고, 이 사람이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면 자비로운 마음으로 연화대를 들고 기다리신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왕생을 하기로 결정하면 부처님은 바로 이 사람을 연화대에 태워 극락으로 돌아가신다. 이 사람이 만약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부처님은 바로 모습을 감추신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다시 왕생을 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면 부처님께서 다시 오신다. 이러한 부처님의 자비는 비유할 방법이 없다.

 

120. 질문: 처음에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하지 않으면 부처님께서 반드시 다시 한 번 오시는가?

 

: 꼭 그렇지는 않다. 만약 이 사람이 다시 한 번 왕생을 하려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부처님께서는 틀림없이 몸을 다시 나투신다. 그러나 만약에 이 사람이 왕생을 하려는 마음이 사라지면 부처님 역시 다시 오지 않으신다.

 

121. 질문: 만약 임종인이 세간에 대한 미련이 많고, 부처님도 오셨다가 다시 가셨음을 발견했다면, 이때는 어떡해야 하는가?

 

: 임종 때에 부처님께서 오셨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약속을 어기지 않으시고 중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다는 증거이고, 중생 자신이 왕생을 원치 않는다는 것은 중생이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진실하지 않고 부처님의 기대를 저버렸음을 입증해준다. 다만 일이 이미 이렇게 된 이상, 구제를 하려면 반드시 첫째는 울거나 억지로 붙잡지 말아야 하고,

 

둘째는 지혜롭게 위로와 법문을 해주어 그 사람에게 세속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왕생을 발원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한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윤회에 떨어질 것이니, 다시 염불법문을 만나서 정토에 왕생하기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이로써 임종 때 선지식의 법문과 조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122. 질문: 어째서 임종조념을 할 때는 종종 쉽게 불보살과 연꽃 등 수승한 경계를 볼 수 있는가?

 

: 첫째는 아미타부처님께 임종내영의 원력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둘째는 조념하는 대중들이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집중하여 한 목소리로 염불을 하면 감응력이 크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있다.

무릇 염불을 하는 곳에는 반드시 불보살님과 광명이 있고, 그 외의 다른 장소에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염불에 전념한다면 마찬가지로 쉽게 볼 수 있다.

 

123. 질문: 같은 장소에서 함께 염불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어떤 사람은 부처님과 광명, 연꽃 등을 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볼 수 없는가? 그리고 어째서 보이는 경계에도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는가?

 

: 이는 개개인의 근기와 성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몇 종류의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다.

⑴ 선정의 공부가 깊은 사람

⑵ 좌선을 좋아하고 마음이 고요한 사람

⑶ 평소에 쉽게 통령通靈할 수 있는 사람

⑷ 음양 눈(陰陽眼)이 있는 사람

⑸ 숙세에 유사한 근기를 가진 사람

⑹ 어린이들

⑺ 조념을 받는 자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

 

124. 질문: 임종조념 때에 보이는 불보살님과 연꽃 등은 극락의 진실한 모습인가?

 

: 범부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감응현상으로, 극락세계 참모습의 투영일 뿐 완전히 진실한 모습은 아니다. 만약 삼매를 얻었다면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참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25. 질문: 갖가지 현상들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수행을 잘하고 공부가 깊다고 볼 수 있는가?

 

: 꼭 그렇지는 않다! 만약 선도대사처럼 깊은 삼매에 들어 항상 정신(영혼)이 정토를 노닐 수 있다면 당연히 두말할 것도 없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갖가지 경계를 볼 수 있는 것도 여러 가지 다른 인연이 있는 것이니,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123문問 참조) 따라서 경계를 볼 수 있냐 없느냐를 수행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대한 척도로 삼아서는 안 되며, 마땅히 착실하게 염불을 해야 한다. 보고 못보고는 각자의 근기와 인연에 달렸다. 경계를 보지 못했다고 해서 추구하지 말고, 경계를 보았다고 해서 기뻐하지도 말아야 한다. 평범하게 염불을 하는 것이 가장 온당하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수승한 것이다.

 

126. 질문: 아미타불께서 적극적이고 평등하게 모든 중생을 구제하신다고 하셨는데, 어째서 이승에 남아 있는 권속들이 망자를 위하여 염불을 하여 천도불사를 해줘야만 비로소 그들을 구제해주시는가?

 

: 아미타불께서는 사람들이 망자를 위하여 천도불사를 해줘야만 비로소 그들을 구제해주시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권속들이 그 사람을 위해 염불하여 회향을 해주는 인연을 통하여 그 사람을 구제하시는 것이다. 마치 태양의 빛이 비치지 못하는 어두운 구석에 거울이 있어서 태양의 빛을 반사시켜 준다면 똑같이 비쳐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살아 있는 권속들이 망자를 위해 염불하여 회향을 해준다면 그 작용은 바로 이 거울과 같다. 망자가 염불하여 회향한 공덕력에 힘입어 이고득락하여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아미타불의 자비 원력의 작용이다.

 

127. 질문: 살아생전에 염불을 하지 않다가, 오직 죽은 뒤에 사람들을 불러서 천도해주기를 바라도 되는가?

 

: 이런 생각은 매우 경솔한 것이다.

⑴ 자신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반드시 자신을 위하여 사람들을 불러 천도를 해줄 것이란 보장은 없다.

⑵ 설사 누군가 사람들을 부르려 해도 반드시 부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⑶ 설사 사람을 불렀다 하더라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⑷ 설사 방해하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천도를 해주는 사람이 충분히 정성스럽고 충분히 전념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⑸ 설사 천도를 해주는 사람이 충분히 정성스럽고 충분히 전념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당신이 죽은 뒤에 어느 도로 갈 것인지, 업장은 얼마나 두터운지, 부처님과 감응을 이룰 수 있는지의 여부를 장담할 수는 없다.

⑹ 설사 감응이 있다 하더라도 감응의 크기를 장담할 수 없다. 지옥에서 아귀로 태어난다거나 아귀에서 축생으로, 축생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천상으로 태어난다면 여전히 윤회를 할 뿐 정토에 왕생하지는 못한다.

⑺ 설사 (나중에는) 정토에 왕생한다 해도 무엇 하러 억울하게 삼악도를 다녀온단 말인가! 왜 지금부터 염불하여 살아서는 부처님의 보살핌을 받아 업장소멸을 하고, 죽어서는 정토왕생을 하여 다함께 불퇴전을 얻으려 하지 않는가? 더군다나 염불은 단지 일념의 마음속에 있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살아서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어찌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는가!

 

128. 질문: 망자를 천도하는 효과의 크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면이 망자를 천도하는 효과를 결정한다.

첫째: 망자의 선근의 깊이

둘째: 살아 있는 권속들이 천도를 하는 정성

셋째: 천도를 하는 방법

망자의 선근의 깊이는 이미 정해져 있고, 천도하는 방법은 전수염불이 가장 좋으며, 마음은 정성스러울수록 좋다.

 

129. 질문: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고 싶지만 길이 멀어서 직접 절에서 분향을 할 수 없으니, 어떡해야 하는가?

 

: 향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형체가 있는 향이다.

둘째, 형체가 없는 향이니 바로 우리의 경건하고 정성스런 마음이다.

셋째, 부처님 공덕의 향이니 곧 아미타불의 명호다.

절에서 분향을 하는 목적은 엄숙하고 장엄한 의식을 통하여 우리들이 경전하고 정성스런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데 있다. 그리고 대중스님들의 인도 하에 염불을 함으로써 망자에게 이익을 주려는 것이다.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는데, 비록 길이 멀어 직접 현장에 참석할 수 없지만 본인의 집에서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 망자에게 회향을 해준다면 최상의 부처님의 공덕 향을 피우는 것과 같아, 시간과 돈을 들이지도 않고 먼 길을 가는 수고로움도 덜며 실제로 망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 만약 단지 형식만을 바라면서 염불을 버리고 먼 길을 바쁘게 뛰어다닌다면, 설사 절에서 분향을 하더라도 집에서 염불하는 것보다 훨씬 못하다.

 

130. 질문: 이미 돌아가신 망자가 환생을 했는지의 여부를 알 수가 없는데, 천도를 해도 효과가 있는가?

 

: 환생을 했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다 효과가 있다. 만약에 아직 환생을 못했거나, 이미 지옥 또는 아귀도에 환생하였다면 염불회향을 해주면 곧바로 천도할 수 있다. 만약 천상‧인간‧축생으로 환생했다면 염불회향을 통하여 그분의 복덕을 추가해주고, 생활환경을 개선해주며, 또는 과보가 다했을 때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

 

131. 질문: 조념과 천도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까운 사람이 별세하셨을 때 조념을 선택해야 하는가 아니면 천도를 선택해야 하는가?

 

: 조념의 대상은 주로 임종 또는 갓 돌아가신 사람이고, 천도의 대상은 주로 죽은 지 오래 된 사람들이다. 만약 일반도량이라면 조념은 비록 여전히 염불로 하겠지만, 천도는 대부분 그 외의 경전과 진언을 독송한다. 예컨대 수륙법회水陸法會‧염구焰口‧참법懺法을 하는 등이다. 정토종에서 조념과 천도는 모두 한마디 나무아미타불이다. 전념을 하기 때문에 효과도 좋다. 가까운 사람이 별세하셨을 때는 우선 조념을 해야 하고, 조념의 기회를 놓쳤을 때는 다시 천도를 하여 구제를 해야 하는데, 그 시기는 사망일로부터 가까울수록 좋다.

 

정종淨宗법사님 법문 / 정전淨傳스님 번역


출처 / 다음카페 나무아미타불





출처 : 암과 싸우는 사람들
글쓴이 : 혜련(慧蓮)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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