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향기/生死·호스피스

사후의 세계와 영가의 실체

慧蓮혜련 2009. 4. 19. 08:59

사후의 세계와 영가의 실체 - 지원스님


오늘은 사후의 세계와 영가의 실체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즘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 사찰이 칠월백중을 맞아 영가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영가 천도를 봉행 함에 있어서 죽은 이후의 세계와 영가의 세계를 알면 더 뜻 있는 천도가 되리라 생각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인생 가운데 생과 죽음의 문제 만큼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낳고 죽음이라고 하는 생사를 둘로 보지 않는 것이 불교의 세계관입니다.

저도 처음에 스님이 되었을 때 어느 큰스님께서 생사가 둘이 아니다라는 설법을 듣고, 왜 생이 있고 죽음이 있는데 왜 생사가 둘이 아니라고 하는지 오년 동안 고민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설명은 되지만 내 마음에서 근본 문제로 해결이 안되었습니다. 그렇게 오 년 고민 끝에 생사가 둘이 아닌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달았습니다.

낳고 죽음이 둘이 아닌 '생사불이(生死不二)' 라고 하는 이것에 확신이 생겼을 때 참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생사가 둘이 아닌 경지를 느꼈을 때 참불자로서 확고부동한 불심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제 이야기를 통해서 여러분도 생사가 둘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치기 바랍니다.

불교는 마음의 종교라 합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철학이나 사상이나 많은 종교 가운데 불교만큼 마음에 대해 치밀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추구한 것은 그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삶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알고 해결하려는 종교가 불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이것은 죽음의 규명입니다.

그래서 생의 원인을 중심으로 해서 어떻게 영유해 가는가 하는 존재의 법칙, 이것을 불교에서는 연기법을 중심으로 설명해 왔고 죽음은 어떻게 맞이하고 규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윤회 법칙을 중심으로 설명됩니다.

이렇게 생명의 마음이 흘러가고 흘러옴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해서 설명합니다.개개인이 겪어가는 탄생의 문제, 삶의 문제는 '생유(生有)'라 합니다.한 생을 살아가면서 삶의 행동 그 자체는 '본유(本有)'라 합니다. 다음에 죽음의 문제, 이것은 '사유(死有)'라고 하고 죽은 이후의 단계를 '중유(中有)'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죽은 이후의 세계, 사유와 중유, 영가의 실체, 천도에 대해 중점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래 우리 생명체는 영원한 생명체로서 '아뢰아식' 이라고 합니다. 아뢰아식은 윤회의 주체이며 업력에 따라 인연이 만든 세계에 태어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그 세상을 따라갑니다. 아뢰아식은 몸의 출생과 죽음에 관계가 없이 아주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영원한 것인데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도 '불생불멸(不生不滅)' 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물과 같은 것입니다. 부처님 앞에 정화수를 떠놓는데 이것은 시청각적인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물은 윤회를 의미하면서 육도 윤회를 설명합니다.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으면서 육도윤회의 법칙을 깨달으라고 하는 뜻에서 감로수를 올립니다.

물의 근본 원소는 에치투오(H20)입니다. 물이라고 하면 안맞는 것입니다. 물이라고 하는 것은 에치투오가 인연에 의해서 하나의 물을 이루는 것이지 물이 근본은 아닙니다. 그 물이 인연이 바뀌어 영하로 내려가면 물이라 안 그러고 얼음이라고 합니다. 다시 온도가 높아 수증기로 증발하면 그때는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불교적인 세계관으로 볼 때 그것은 인연을 달리 했을 뿐이지 있습니다. 기체로 되면 구름이 되었다가 안개로 되었다 눈도 되고 우박도 되었다가 다시 물도 되는 인연에 의해 돌고 도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의 근본원소인 에치투오는 불변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영원한 것이에요. 모든 깨달은 스님들이 보니까 우리 생명체는 영원한 것이라고 이렇게 봤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뢰아식의 정체성, 즉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몸이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깨달은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質(부운자체본무질)

태어나는 것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같은 것이다. 구름이란 본래가 없으며 깨달은 것에서 보면 태어나는 것은 구름과 같은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도 한 조각 구름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본래 구름은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사도 깨달은 눈으로 보면 구름과 같이 인연에 의해 모였다가 인연에 의해 가는 것입니다.

생이라는 것은 인연에 의해 모인 것이므로 여러분의 몸이란 인연에 의해 모인 것입니다.인연에 의해 모인 것은 필연적으로 없어지게 되었으므로 누구나 죽게 되어있습니다. 불교에서 죽음이라는 것은 생명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죽음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과정은 생멸의 존속이라는 의미에서 생존을 생유라 하고 죽은 이후를 사유라고 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단지 육체적 활동의 정지일 뿐이지 영혼의 존재는 지속적으로 다른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윤회사상이라고 한다. 이렇게 육체는 상생과 죽음의 형태에서 여러 가지로 많게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죽은 이후의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유라는 말은 죽음을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존재의 과정, 생명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육체는 없어져도 생명 자체는 있다는 뜻에서 사유라 합니다.천장에 매달려 켜져 있던 전구가 수명을 다해 불이 나갔다고 해서 전기 에너지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것은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근본 생명체는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몸에서 벗어난 아뢰아식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에 태어나기까지 머무는 과정을 중유라 하며 인연처를 만나기 전까지 중간 생명체입니다. 이것을 영가라고 합니다. 중생들은 업력이 다양하기에 영가로 머물러 있는 기간도 다양합니다.

어떤 인간의 영혼은 선업의 업력이 강해 죽자마자 바로 천상계에 태어나기도 하고 살아생전에 악독한 업력이 강하면 영가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 밖에 영혼은 이 우주 공간에 머물러 있다가 다음 세계에 저승세계에 태어납니다. 저승 세계에 태어나는 과정을 중유라 하고 그 생명체를 영가, 영혼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 법 믿고 수행 잘하면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음 몸 받을 곳으로 가고, 그렇지 못하면 일주, 이주... 업이 더 두꺼우면 육주, 칠주. 그래서 칠일씩 칠주하면 사십구일 동안 머물러서 다음 생에 자신의 업력으로 해서 인간으로, 천상으로, 아귀, 지옥 등으로 태어나 몸을 바꿉니다.

그러면 이렇게 사십구일 만에 몸을 바꾸는데 여기에 따라서 윤회하지 못하는 중생이 있습니다. 무주고혼(無住孤魂)이라고 하는데 허공에 떠다니는 이것은 영가로 남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부처님 법을 만났는데 사후에 영가가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영가가 얼마나 해롭고 고독하겠습니까.

그러면 영가는 어디에 어떻게 머물고 있는가? 영가의 원인은 살아생전 지나친 탐욕, 집착, 애착, 분노, 질투, 섭섭한 마음의 이런 괘씸한 마음을 자주 일으키면 죽어서 영가가 됩니다. 이런 것들이 나의 집착이 되어서 우물안 개구리와 같이 자기 세계를 만들어 더 이상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가로 남는 경우는 마음을 잘 못 썼을 때, 애착, 집착, 한이 있을 때는 죽어서 윤회도 받지 못하고 영가로 남습니다또 어느 대상에 지나친 집착이나 교통사고와 같은 순간적인 불행에 의해 갑작스런 육체적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 너무나 억울한 일 때문에 눈을 감지 못하는 경우도 영가로 남습니다.

이와 같은 죽음을 맞아하는 자는 자신이 나아갈 바를 몰라 영가로 남으며 그래서 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조상 가운데 안정을 찾지 못한 영가가 있을 때 자손에게 영향이 올 때가 있습니다. 가까운 친척 가운데 안정 못하고 고통에 있는 영가가 있을 때도 그 가족의 관계를 떠나지 못해 애를 먹이고 고통을 주고, 하는 일에 장애를 주곤 합니다.

저도 시중에서 이십년 가까이 포교하면서 영가에 대한 상담을 받아보는데 영가의 시달림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불교는 깨달음이 근본이지만 복과 지혜가 부족한 불자에게 있어 영가천도는 중생구제의 길입니다. 영가는 구제하고 천도를 해주어야할 대상입니다. 천도하면서 명심해야 할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되는 영가이기에 쫓아내려 하지말고 구제해줘야겠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도(薦度)'라는 의미는 옮길 천, 제도할 도, 즉 고통 받는 곳에서 고통 받지 않은 곳으로 인도해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쫓을 대상이 아니라 구제해야할 대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영가에 대해서 또 자신에 대해 참회가 필요합니다.영가들도 살아 있을 때는 부모 형제들 간에 있었던 섭섭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이 있었는데 영가로 있을 때는 자제할 수 있는 힘이 상실됩니다.

그래서 영가에게는 섭섭, 괘씸한 마음만 남기에 살아있는 자에게 해로움을 주게됩니다. 여러분도 살아생전에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해 안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불자로서 그런 마음을 버려야합니다.영가는 식이 맑기 때문에 거울에 나타나듯이 살아생전의 맺혀진 한과 괘씸했던 일들이 되살아나게 되고 생전에는 자제할 수 있었지만 죽어서는 자제할 능력이 없기에 인연 있는 자들에게 장애를 줍니다.

영가의 장애를 받은 실례를 말씀드리죠.

십오년 전에 제가 있었던 법당에 몸이 바짝 마르고 얼굴이 누렇게 뜬 어느 보살이 오셔서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고달픈가' 하면서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그 보살의 남편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최고로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남이 보기는 아무 문제가 없는 남부럽지 않은 가정이었습니다. 단지 남편은 사별한 부인이 있었고 전처의 남매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집을 가서 첫날밤에 잠자리에 드는데 이상한 기운이 가운데 와서 눕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아름다운 신혼을 불안과 초조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년여 지나고 본인도 아들도 낳고 살게 되었는데 전처의 자식인 남매가 초등학교 삼학년인데 이유 없이 가출을 하는 것입니다. 남이 보기엔 역시 계모라서 어쩔 수 없구나라고 그랬지만 그러나 이 분은 내가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눈물로 애들에게 호소를 해서 어느 정도 낳아져 한 고비 넘겼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자기가 낳은 한 살짜리 아들이 밤 열두시만 넘으면 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살님이 신경쇠약에 걸리고 정신과 병원에 몇 번 치료를 받았는데 효과가 없어요. 그래서 마지막이다는 생각으로 절을 찾아와서는 '스님께서 가르침을 주십시오'. 하니, 제가 직접 봐도 영가의 장애로움이 틀림 없었습니다.

영가의 장애를 입는 사람들을 보면 얼굴이 누렇게 뜨고 식은땀이 나고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하며 가슴이 찢어지듯 아프고 답답해지고, 원인 모르게 불안과 초조가 엄습하고 한숨이 저절로 나고 뒷머리가 땡기며, 어깻죽지가 천근만근 무겁고 눈은 안개가 낀 듯 침침해지고 꿈이 많고 불면증이 생기고 성격은 아주 변덕스러워집니다.

또 얼굴에 항상 열기운이 있는 듯하고 꿈 속에 돌아가신 분이 자주 나타나고, 어린 아이를 업고 데리고 다닙니다. 이런 분들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가의 장애를 입은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기도를 시킵니다. 그 보살님에게도 지장경을 하루에 한 독씩 이십일일을 하게 했습니다. 먼저 영가의 이름을 부르며 대화를 나누듯이 고유문을 읽고 지장경 독경을 하고 사경을 하는 것입니다.

영가를 천도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참회기도예요. 음식만 차려 놓고 절만 한다고 천도가 되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영가에 대한 참회도 있어야 합니다.

그 보살님에게 축원문 적어 준 것을 여기 소개시켜드릴게요.

아무개 영가님. 나와 당신은 살아생전에 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원결을 맺은 일도 없습니다. 당신이 죽은 후 이삼년 후 시집와서 당신이 놓고 간 남매를 온 정성을 기울여 길러왔으며 지금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물론 영가도 남편과 결혼해서 재미있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둘째딸 놓고 젖 한번 물리지 못하고 산후처리가 되지 않아서 연년생 남매를 놓고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한이 맺혔겠습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나이 젊은 남자가 두 살 세 살 아이를 어떻게 키우면서 직장에 다닐 수 있겠습니까? 영가께서 돌아가신 이년 후 내가 이 집에 들어와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영계의 영혼이고 지상의 존재가 아니므로 지상에서의 생활은 집착하지 마시고 밝은 진리를 선택하십시오.

인간 세상의 가정사는 가사를 구려갈 여자가 필요하고 자식을 돌볼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부디 원망과 질투하지 마시고 이 가정 안에 재앙과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축복해 주십시오. 인간사에 있어서 그런 집착하고 있는 영가는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내가 이렇게 대승경전인 지장경을 읽을 테니 그 내용을 잘 듣고 인간의 본래는 육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서 본래 본성을 깨달으시고 이승을 떠나서 좋은 세상에 태어나십시오.

이렇게 먼저 경을 읽기 전에 암송을 하고 그 다음에 경전을 이십일일 동안 열심히 하셨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집에서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십일일째에는 스님에 의해 천도기도를 집전 해야 되요.

그렇게 천도기도를 하고 돌아가신 후 그날 저녁 꿈을 꾸었는데 그 영가께서 수려한 모습을 하고 '아무개 엄마 참 수고했다'. 하는 인사를 하면서 가더니 그 후로 한 번도 꿈에 나타난 적이 없더랍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도 선망부모의 영가에 대해 열심히 기도를 하면 영가의 장애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 여러분들도 사후에 잘못가면 영가가 되는데 영가로 남지 안으려면 살아생전에 가장 좋은 방법은 육바라밀을 열심히 닦고 참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음 생에는 영가로 남는 실체가 되지 말고 살아생전 잘 닦아서 인간세상이나 천상계나 극락정토에 태어나십시오.

오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정리: 장훈 (조계사 보도국 법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