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6월 1일, 불일회보(조계총림 송광사 발행) 특별초대석에 ‘수행승 중의 수행승,
월인月印 스님’ (법랍 54세, 세속 나이 90세, 1999년 입적)회견기가 실렸다.
진솔한 수행담이 소개되었다.
스님께서는 정토삼부경을 접하면서 그때부터 ‘정토발원’을 하시며 불자들에게도
이를 권하셨다는 것이다. 화두 참선을 하던 분이 아미타불을
염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화두를 타파했는데도
구경究竟이 안 보이더라는 것이다.
평생 동안 수행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건만, 아직 생사 해결을 못해 바쁘시다는 월인 스님은
평생을 어느 절 주지 한 번 하지 않고 오직 선방과 토굴에서 홀로 본분사에 충실해 온
대덕이시다. 당시 강원도 삼척 신흥사 암자인 청련암에 머물고 계셨는데
회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토삼부경을 보고 ‘야 이거 이렇게 가기 쉬운 데가 있구나. 내가 왜 진즉 거기에 참가를
못하고 인제사 알게 되었나’ 오히려 후회한 생각으로 남도 권하고 나도 극락 가자고
발원하고 있어. 지금 나한테는 다른 소리, 아무 소리도 안 들려.
무슨 참선한다는 사람에게도 ‘참선해야 소용없는 짓 하지 마라. 너 차라리 공부하려면
아미타불 부르고 극락 발원해서 극락에 가자꾸나.’ 나는 그런 소리밖에는 안 하고 있어.
그래 ‘아미타불을 신信하고 자꾸 염불하면 극락에 가는구만.
누구라도 어떤 사람이라도 만인이 닦으면 만인이 한 사람도 안 빠지고 다 간다’ 그랬어.
이렇게 쉬운 법이라 이것이. 근데 난 입때껏 참선한다고 꺼떡거리고 남들 가르친다고
꺼떡거리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막심해.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러면 욕도 할 텐데, 선방에서도 내가 그렇게 하니 큰 욕은 않고
모두 더러 긍정을 하대. 일생을 참선하던 사람이 뜬금없이 정토발원을 막 하라고 하고,
나도 하고 그러니까 욕할 텐데 뭐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인제 다른 사람들도 다 지쳐서 아마 그런 것 같애. 예까지 왔으니 보물 한 권(정토삼부경)
줘야지. 가서 한 번 읽어봐. 열심히 읽어 실천하면 극락에 가서 또 만나누만,
틀림없이 내가 결정코 갈 거라 극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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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회보'에 실렸던(1994년 6월 1일자 제 162호) 월인(月印) 노스님의 기사를 생각한다.
그는 법랍이 54세, 세속 나이 90세에(1999년) 입적 '수행승 중의 수행승' 이라고
일컬어지는 분이다.
평생 수행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사신 분인데 갈 날이 앞에 딱 닥쳤는데 아직 생사해결을
못했으니 지금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여비 벌고 있는 거라면서 일평생을 참선수행하신
분이 말년에는 정토발원(淨土發願)을 하셨으며 불자들에게도 간곡히 염불을 권하셨다.
그 이유는 우리가 견성(見性)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은 아니며 과거의 업장까지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며 스님은 백팔예불대참회를 새벽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으셨다고 한다.
화두를 타파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더라고, 그래 이 세계에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아시고 극락에 가서 기력을 보강해 다시 내려오시겠다는 새로운 발원으로
스님은 "극락 갈 여비(염불) 마련하느라 몹시 바쁘다."고 말씀하셨다.
수행자의 생명은 그 정직성에 있다고 본다. 사람마다 자기 특성과 경계를 분명히 깨닫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간 존재의 허약성을 알고 나서 오랫동안 길들여 온 수행 방법에
수정을 가할 수 있는 분의 용기에 대해서 찬탄심을 금할 수 없다.
월인 큰스님이 정토발원을 하는 것은 극락세계가 살기 좋고 훌륭한 곳이기 때문에 거기서
호강하러 가려는 것이 아니 고, 여기 지금 사바세계는 자기 기능을 양성할 수 없으니까,
세세생생에 보살도를 행하겠다 는 서원을 이루려면 거기 가서 능력을 양성해서
다시 이 세계에 나와야겠다는 원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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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선사月印禪師의 고백
나무아미타불!
화두를 타파해도 구경각이 보이지 않으니 나는 이제 정토로 회향하노라.
아마 94년도이었을 것입니다. 송광사에서 발행하는 <불일회보>에 월명암月明庵에서 주석하고 계셨던 월인선사께서 충격적인 고백을 하신 내용이 바로 "화두를 타파해도 구경각이 보이지 않으니 나는 이제 정토로 회향하노라"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내용으로 인해 그 당시 전국 제방선원에서 수행하던 화두선 수행자들은 불끈 달아올랐고 선원 수좌들 뿐만 아니라 강당과 포교당에서도 계속해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일대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월인선사께서 구참납자들이 많이 수행하고 있는 김천의 수도암修道庵이라는 선원에 가셔서 해명아닌 해명을 하시고 돌아오셨다는 풍문이 있었습니다.
월인선사께서는 제방에서 선사로써 널리 명망이 있는 화두선을 수행하시는 선사이셨는데 이 같은 발언에 화두선을 수행하는 수좌들은 아마 청천벽력 같은 충격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월인선사의 고백을 자세히 음미해보면 화두라는 공안을 타파해서 견성을 못했다는 말씀이 아니라 구경각究竟覺, 즉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셨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정말 진솔한 고백이었다고 제 개인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화두선에 국집局執하여 법집法執을 하는 화두선 추앙자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아마 저를 죽이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과연 화두선으로 완전한 구경각,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 계실까요? 조사어록을 읽어보면 정말 석가모니 부처님의 경지보다 훨씬 수승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온갖 도리를 다 설해 놓았지만
만약 역대의 조사스님들 중에 정말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은 완전한 구경각을 증득하신 조사께서 출현 하신적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바로 조사라는 명칭이 아닌 부처님이라는 명호를 사용했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요? 참으로 사상이란 무서운 법입니다. 사상의 차이 때문에 민족과 민족이 총뿌리를 겨누었던 아픔의 역사가 있었고, 십자군 전쟁이나 많은 종교 전쟁들이 모두 사상의 차이에서 발단이 되었습니다.
한 집안에서 태어난 부모형제도 사상이 다르면 마침내 등을 지고 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물과 우유처럼 화합하며 살아가야 올바른 불제자들마저도 사상의 차이 때문에 진실을 고백하지 못하고 숨을 죽이고 살아가야 한다면 더 이상 불교와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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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불관 노인의 생사해탈
( 현장스님)
중국 청나라에 백불관(百不關)이라 불리는 노인이 있었다.
백불관이란 일체 남의 일에 관여하지 말고
오직 염불에만 마음을 기울이라는 뜻이다.
60세가 넘은 노인이 한평생 살아온
자취를 더듬어 보니 서글픈 마음 뿐이었다.
주변의 친구들도 하나 둘 저 세상으로 떠나가고 자신의 삶 또한
임종이 멀지 않았음을 절감하니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다.
살아 생전 공덕과 선행은 닦지 못하고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만 심어준 일이 생각나 그를 더욱 괴롭게 하였다.
또한 과거에 저지른 죄업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이대로 죽게되면 필히 지옥이나 축생의 과보를
받게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져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마침 도원이란 스님이 효자암이란 암자를 짓고
평생 염불만 하고 계신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노인은 공손히 예배드리고 물었다.
“저는 일생동안 세상일에 얽매여서 성인의 말씀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죄만 짓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임종이 가까워짐을 느끼니 앞일이 캄캄하고 두렵습니다.
극락가기는 원치 않으니 부디 악도(惡道)를
면할 수 있는 법이 있으면 저에게 일러 주십시오.”
노인의 간곡한 말을 들은 스님이 고개를 들어 천천히 말하였다.
“그러한 법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노인께서 이 법문을 그대로 믿고 행할 수 있을지 그것이 문제입니다.”
“제가 어찌 큰스님의 말씀을 믿지 않겠습니까.
꼭 죄업을 소멸시키고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법문을 일러주십시요.”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다 해도
그것을 진실하게 뉘우치고 오직 염불에만 마음을 기울이십시요.
부처님의 공덕을 의지하여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
생사의 고통을 영원히 벗어나게 됩니다.”
하고는 아미타불의 무한한 자비와 서원으로 성취된
극락정토와 그곳에 태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오직
“나무아미타불”에 전념할 것을 간곡히 일러 주었다.
그리고 다시 말하기를
“염불하는 사람은 많으나 염불공덕을 성취하는 이는 드물며,
염불하는 사람은 많으나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사람 또한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염불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오래 오래 지속하기가 어렵고,
오래 오래 지속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일념(一念)을 이루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염불에 일념이 되어야 염불공덕을 성취하고
임종후에는 극락정토에 태어나게 됩니다.”
노인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집에 돌아와 염불정진에 온 마음을 기울였다.
일년 이상을 열심히 염불을 했지만 일념의 염불은 되지 않았다.
노인은 다시 효자암을 찾았다.
“이제 염불의 공덕으로 몸도 마음도 가뿐합니다.
죄많은 이 몸을 구원해 주기 위해 정토법문을 베풀어 주신
부처님과 큰스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일심으로 염불은 하지만 지나간 기억 때문에
일념염불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일념을 이룰 수 있을까요.”
노인의 말을 들은 스님이 빙그레 웃으시더니
“노인께서는 톱으로 나무를 켜 본 적이 있습니까?”
“네, 많이 잘라봤습니다.”
“그러면 톱으로 톱밥도 잘라봤습니까?”
“톱밥은 자를 수가 없습니다.”
“노인께서는 지금 마음의 톱으로 극락을 건설하고 계십니다.
지나간 과거는 톱밥과 같은 것입니다.
소용없는 것에 마음을 도둑맞지 말고 향기나는 나무를
다듬어 보배궁전을 만들어야 합니다.”하고는 붓을 들어
‘백불관(百不關)이라 써서 노인에게 주면서 다시 한 마디 하였다.
“염불하다가 지나간 일이 생각나면 곧 바로 백불관!하고 부르십시오.
톱밥을 만지던 손을 다시 일념으로 염불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아미타불 아미타불 일성(一聲)에 죄업이 소멸되고
몸이 정화되어 부처님의 가피가 느껴져 올 것입니다.”
진실로 감사한 마음의 삼배를 올린 노인은 염불의 정진 속에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밝은 기운이 뻗쳐나왔다.
그리고 길을 갈 적이나 가족들과 함께 할 적에
염불심이 흐트러질 적이면 백불관!하고 소리치며
아미타불 일념을 다시 챙기곤 하였다.
이웃사람들은 그런 연유로 염불노인을
‘백불관 노인"이라 부르며 공경하였다.
염불할 때 잡념을 쫓는 데는‘백불관’이 아주 좋은 약이 되었다.
이같이 하여 백불관 노인은 일념의 염불이 길어져서
삼매를 얻고 그 속에서 부처님 세계를 훤히 보게 되었다.
너무나 환희로운 마음으로 효자암을 찾아갔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해주신 법은 하나도 헛된 것이 없었습니다.
스님의 은혜로 악도에 떨어질 제가
생사의 업을 벗어나 부처님 세계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왕생하게 될 것이므로
마지막으로 인사 드릴려고 찾아왔습니다.”
하고는 공손히 예배드리고 집에 돌아와 깨끗이 목욕하고
새옷을 갈아 입은 다음 식구들을 모이게 하였다.
“내가 이제 염불의 공덕으로 업장을 소멸하고 극락정토에 가게 되었다.
모두 슬픔의 눈물일랑 보이지 말고 기쁨의 염불로
나의 장례를 장엄하도록 하라.”는 당부를 하였다.
그리고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아 합장하고서
“나무아미타불”을 잠깐 염불하더니 그대로 임종하였다.
그때 서쪽으로부터 한 줄기 빛이 집 안을 비추이고
기이한 향기가 집 안에 가득 차서 사람들이 크게 놀라워하였다.
위의 이야기는 왕생록에 실린 백불관 노인의 왕생이야기에
필자가 약간의 가필을 한 것이다.
각성된 의식으로 자성을 관조하고 대상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수행의 이치가‘백불관’이라고 하는 한 마디에
오묘하게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죄업이 소멸되고 몸과 마음이 정화되면
부처님의 세계를 자기 눈으로 보게 되고
부처님의 가피로 생사의 업에서 해탈하게 됨을 볼 수 있다.
아, 염불공덕의 부사의함이여.
죄업중생의 한 줄기 빛이로다.
아침이슬 우리인생 슬픔 없어지리라.
인간의 삶 의미없다 말하지 말라.
비우고 맑히는 일에 인간의 행복이 있네.
나무아미타불.
자기에게 맞는 수행법을
수행자에게 있어서 수행의 방법이란
가장 소중하고도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수행이란 비유하자면 음식과 같은 것이다.
저마다 식성과 입맛이 다르듯이 업장이 다른 중생들이
닦아가는 수행의 방편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다.
화두선 일변도의 우리 수행환경을 보면 애써
공부하는 사람은 많아도 성취한 사람은 보기 어렵다.
또한 많은 대중들은 수행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소화시키지 못할 음식을 억지로 먹게 되면 병이 들게 마련이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밥맛을 잃게 된다.
자기 체질에 맞고 소화에 자신있는 음식을 고르듯이
자기 적성에 맞는 수행의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원래 염불이란‘나무아미타불’을 지칭하는 말이다.
관음정근’이나‘지장정근’은 염불이 아닌 ‘
관음기도,‘지장기도’이렇게 호칭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해탈 성불하여 중생제도를 발원하는 수행자라면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해야 한다.
아미타불의 서원과 공덕에 의지하여 염불하면 생사업을 소멸하게 되고
탐·진·치 삼독이 자비심으로 비뀌어 성불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외곬수 화두 일념으로 고행 정진해 오신 월인 큰스님
(평생동한 선수행에만 전념,화두타파하신 큰스님 세수 90세. 법납 54로
2000년 입적)께서 말년에 정토삼부경을 보고 깊은 믿음을 일으켜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염불정진으로 돌아오신 일은
초심자들에게 무언의 설법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6월 불일회보 인터뷰에 실린 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화두만 타파하면 구경(究竟)이 보일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노스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자.
“내가 정토발원을 하는 것은 극락세계는 살기가 좋고
훌륭하기 때문에 거기에 호강하러 하고 잘 살러 가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는 내 기능을 양성할 수 없으니 내가 거기 가서
기력을 양성해서 다시 여기에 나와 내 뜻을 발하리라.
이런 원을 가지고 살고 있어.”
업장을 소멸하고 부처님세계에 태어나는 방법을 설법한
‘관무량수경’에서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신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사람은 인간 가운데서 가장 순결한 연꽃이니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그의 친구가 되어 주며
그는 항상 진리를 떠나지 않고 필경에 부처를 성취하게 되느니라.
아난아! 그대는 이와 같은 말을 잘 지녀야 되느니라. 이와같은 말이란
‘나무아미타불’의 명호를 간직하는 일이니라.”
-관무량수경 유통분-
과거전생 부처님을 뵈온 사람은
의심없이 정토법문 믿을 것이니
공경하고 겸손하게 믿고 행하여
환희심에 염불하며 기뻐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극락과 아미타불 > 염불에 관한 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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