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과 아미타불/염불에 관한 장

염불방법(念佛方法)

慧蓮혜련 2009. 4. 19. 14:13

염불방법(念佛方法)


一 염불(念佛)의 의의(意義)


연종(蓮宗)에서 염불하는 본뜻은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의 힘으로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기 위하여 아미타불을 염(念)하는 것인데,  이는 아미타불 이 세우신 四十八원(願)중에 [유정(有精)]이 내이름을 지성(至誠)으로 염하면 임종시(臨終時)에 내나라에 낳게 하신다]는 원(願)이 있는 까닭이 있다 .

 

(-)시방제불(十方諸佛)중에 아미타불이 가장 수승하시고 가장 존귀하시고 자비(慈悲)하시다

(=)시방제불(十方諸佛)중에 아미타불이 유정(有情)과 연(緣)을 맺으신 것이 가장 많으시다

(三)시방제불(十方諸佛)중에 아미타불이 원력(願力)으로 유정을 접인(接引)하시는 것이 가장      많으시다

(四)시방제불(十方諸佛)의 정토(淨土)중에 아미타불의 정토가 가장좋다

(五)시방제불(十方諸佛)의 정토중에서 아미타불의 정토가 가장 가깝다

(六)시방제불(十方諸佛)의 명호(名號)중에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하는 공덕이 가장 많다


그러므로 아미타불을 오로지 염하고 다른 부처님을 염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二  염불(念佛)의 종류(種類)

염불법(念佛法)에 실상염불(實相念佛)관상염불(觀像念佛)관상염불(觀想念佛)칭명염불(稱名念佛)의 네가지가 있다

 

(-)실상염불(實相念佛)은 부처님의 법신(法身)이 있는것도 아니고 공(空)한것도 아닌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이(理)임을 관념(觀念)하는 것인데 이것은 有情)의 업장(業障)이 두터워서 해오(解悟)하는 이가 드문 법이다

(=)관상염불(觀相念佛)은 단정히 앉아서 부처님의 만든상(像)또는 화상(畵像)등의 상신(像身)을 관념하는 것이니 상신이 없어지면 그 관념이 사이가 떨어져 끊어지는 염불법이다

(三)관상염불(觀相念佛)은 고요히 앉아서 부처님의 원만하신 상호(相好)만 상념(想念)하는 것인데 이것은 유정(有情)의 마음은 굵고 경(境)은 가늘어서 능히 묘관(妙觀)을 이루기 어려운 법이다

(四)칭명염불(稱名念佛)은 지명염불(持名念佛)이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염(念)또는 창(唱)하는 것인데 이것은 가장 간단하고 수행(修行)하기 쉬우며 왕생하기 쉬운 것이므로 네가지 염불법 중에 손쉬운 방법이다


三 염불수행(念佛修行)의 요건(要件)


염불법문(念佛法門)에는 신(信) 원(願) 행(行)의 세 조건을 구비하여야 극락에 왕생하기 쉽고 구비하지 못하면 왕생하기 어려운 것이다.

 신(信)은 믿는것이니 아미타불의 四十八원(願)과 석가모니불의 교어(敎語)와 시방제불(十方諸佛)의 찬탄(讚歎)을 굳게 믿는 것이다.

[유마경(維摩經)에는[서방정토(西方淨土)에 가고자 할진대 깊이 믿는것이 견고(堅固)하여야 하나니 정토의 항하사(恒河沙)제불(諸佛)은 모두 정토를 정신(正信)하던 사람들이라]하셨고 [연지대사(蓮池大師)]는 (정토에 왕생하려면 진심으로 믿어야 하나니 千사람이 믿으면 千사람이 왕생하고 만(萬)사람이 믿으면 萬사람이 왕생한다]하였고, [종경록(倧鏡錄)]에는[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천불(千佛)이라도 구(救)할수 없느니라]하였다.

원(願)은 어느때에나 항상 사바세계의 생사고(生死苦)를 싫어하고 극락정토의 보리의 낙(樂)을 사모(思慕)하여 선악(善惡)의 업(業)을 짓는대로선업(善業)은 회향(廻 向)하여 정토에 나기를 원(願)하고, 악업(惡業)은 참회(懺悔)하여 정토에 낳기를 원하되 자기 혼자서만 왕생할것을 원할것이 아니라 일체 중생이 함께 왕생하기를 원할것이다.

 

 [지도론(智度論)]에도 행(行)만 하는 공덕은 성취할수 없으므로 원이 있어야 하나니 비유(臂喩)하면 소가 수레를 끌수 있지만 모는 사람이 있어야 가려는 곳에 도달할 수 있는것과 같이 정토에 왕생하는 원도 이와 같으니 행하는 복덕(福德)은 소와같고 원은 모는 사람과 같다]하였고, [화엄경행원품(華嚴經行願品)]에는 [이사람이 임종(臨終)할때에 최후 찰라에 온갖 근(根)들이 모두 흩어져 망가지고 온갖 친속(親屬)들을 모두 여의어 버리고 온갖 위세(威勢)를 모두 잃어버리고 내지는 코끼리 말타고 다니는 수레 진보(珍寶)등이 하나도 따라오지 못하지마는 이 원력(願力)만은 떠나지 아니하고 어느때에나 항상 그 앞을 인도(引導)하여 한 찰나 중에 극락세계에 왕생하게된다]고 하였다.

 

행(行)에는 정행(正行)과 조행(助行)이 있으니 정행(正行)은 나무아미타불의 여섯자(字))혹은 아미타불의 넉자를 항상 염(念) 혹은 송(誦)하는 것이다.

 조행(助行)은 (1) 예배 공양하고 (2)주문(呪文)경문(經文)을 염송(念誦)하고 (3)업장(業障)을 참회(懺悔)하고 (4)애정을 끊고 (5)모든선사(善事)를 행하고 (6)닦은 공덕을 극락에 회향(廻向)하는 것이다.

 

 신, 원, 행,의 신,원은 눈과 같고 행은 발고 같으며 또 신,원은 소와 같고 행은 수레와 같으며 또 신,원은 바둑판의 줄과 같고 행은 바둑과 같으므로 이 신,원,행,의 셋중에서 하나만 없어도 성취하지 못한다.

 더욱 신,원이 주재(主宰)가 되어 인도하는 것이므로 신,원만 한결같이 되면 모든 선행(善行)이 모두 정토(淨土)의 자량(資糧)이 되며 설혹 불행히 잘못 악사(惡事)를 지었더라도 성심으로 참회(懺悔)하고 상속심(相續心)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족히 왕생의 묘행(妙行)이 되는 것이다

四 정행염불(正行念佛)


(-)정행염불의 가지가지


염불하는 사람은 행, 주, 좌, 와(行主左臥)에 항상 서쪽을 향하고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일심(一心)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할 것이다.


 염불에는 출성념(出聲念)무성념(無聲念)의 구별이 있고, 또 출성념에는 고성념(高聲念)과 저성념(底聲念)이 있으며, 무성념에는 미동순설념(微動脣舌念)무성밀념(無聲密念)이 있고, 또 기수념(記數念)불기수념(不記數念)이 있다.


 [고성념은 고성지(高聲持)라고도 하고 큰 소리로 불명(佛名)을 외우는 것이며 저성념은 저성지(底聲持)라고도  하여 작은 소리로 불명을 외우는 것이다.

 

  미동순설념은 금강념(金剛念)금강지(金剛持)반명반묵지(半明半黙持)라고도 하고 입술만 움직이어 곁에 있는 사람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무성밀념은 묵념(黙念)묵지(黙持)삼매념(三昧念)이라고도 하고 소리 없이 속으로 염하는 것이다.

 기수념은 기수지(記數持)라고도 하고 염불할 때에 염주(念珠)를 가지고 수를 세는 것이다.

 불기수념은 불기수지(不記數持)라고도 하고 염불할 때에 염주로 세지 아니하는 것이다.

 기수념 불기수념은 제각기 마음대로 할 것이나 처음 염불하는 사람은 염주를 가지고 세는 것이 좋다.


(二) 염송(念誦)할 때의 주의할 일


一 거사(居士)로써 염불할 때의 의복은 일부러 가사(袈娑)같은 법의(法衣)를 입을 것은 없고 평상복(平常服)도 좋으며, 또 목탁(木鐸)이나 광쇠같은 것을 치는 것도 주위의 환경에 따라서 치거나 치지 않는 것을 임의로 할 것이다.


二 염불할 때에는 항상 생각하기를 자기의 몸이 큰 연꽃 위에서 결가부좌 하고 합장(合掌)하거나 아미타불의 수인(手印)을 맺고 부처님이 광명을 놓아 내 몸을 비춰 주시는 형상(形狀)을 생각할 것이다.


三 염불할 때에는 마음의 지극한 정성이 간절하고 긴장하기가 마치 부모상(喪)을 만난 때의 애절(哀切)함과 같이 또는 자기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생각과 같이 주릴 때에 밥을 생각하는 것과 같이 목마를 때에 물을 구하는 생각과 같이 병났을 때에 약을 찾는 것과 같이 젖 잃은 아이가 어머니를 찾는 것과 같이 옥(獄)에 갇혔을 때에 나오기를 바라는 생각과 같이 원수가 따라올 때에 피하려는 것과 같이 수재(水災)화재(火災)를 구(救)할 때 의 생각과 같이 닭이 알을 품었을 때와 같이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에 생각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할 것이다.


四 염불은 출성념(出聲念)이거나 무성념(無聲念)이거나 형편이 좋은 것을 따라 자유로 하되 식사할 때나 대소변 할 때나 누웠을 때나 옷을 벗었을 때나 목욕할 때에는 무성념으로 할 것이다.


이것은 소리를 내는 것이 불경(不敬)한 까닭이요, 염불의 공덕은 출성념이나 무성념이 일반이다.

 

五 출성념은 고성념이 힘이 들거든 저성념을 할 것이고 저성념이 불편하거든 금강념이나 묵념을 할 것이고 금강념 묵념이 혼침(昏沈)할 경우에는 저성념이나 고성념을 할 것이다.

 

六 불명(佛名)을 염송(念誦)때에 자음(字音)과 구절(句節)을 분명히 할 것이며 염송 할 때에 만약 잡념(雜念)이 일어나거든 염송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도록 하면 잡념이 점점 감하여 질것이다.


七 염불하는 장소는 구태여 정적(靜寂)한 곳만 구하려 하지 말고  염불에만 오로지 마음을 써서 끊임없이 계속하면 좋다.

 염불이 완전히 익지 못한 이는 정적한 장소가 좋거니와 정적한 곳에서만 염불하던 사람이 혹시 번잡한 곳에 가게 되면 염불에 방해되는 일이 있을 것이므로 처음부터 환경의 여하에 불구하고 염불에만 오로지 마음을 쓰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八 염불을 권하는 사람들이 혹은 먼저 망상(妄想)을 버리라 하기도 하고 염불하는 사람도 망상이 생기는 것을 근심도 하거니와 망상은 성현(聖賢)들도 아주 끊어 버리기 어렵거늘 하물며 범부중생으로써 어떻게 망상을 모두 끊을 수 있으랴.

 

망상을 끊지 못한 범부로써도 평소에 왕생한 이가 많은 것은 평소에 신, 원이 견고(堅固)하고 항상 생각하고 흔들리지 않아 부처님의 본원(本願)에 부합하므로 섭수(攝受)를 입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설사 망상이 없다 하더라도 염불하지 않으면 왕생할 수 없나니 마치 어두운 밤에는 구름이 없더라도 달이 없으면 달빛을 받을 수 없는 것과 같고 염불하는 사람은 망상이 있더라도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니 마치 빛나는 태양의 빛이 대지(大地)에 퍼지어 사람들이 모두 수용(受用 )하여 작업(作業)할 수 있는 거와 같다 여기에 이러한 계가 있다.


[미타일구법중왕(彌陀一句法中王) 

잡념분분야불방(雜念紛 紛也不妨)

만리부운차혁일(萬里浮 雲遮赫日)

인간처처유여광(人間處 處有餘光)]


즉 [미타일구(彌陀一句)가법중의 왕이니 망상이 뒤얽혀 갈피를 잡을 수 없더라도 무방하다 비유하면 만리에 뜬구름이 해를 가리더라도 인간 곳곳에 나머지 광이 있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우익대사(藕益大師)는 말하기를[깊은 신심(信心)과 간절한 원(願)을 가지고 염불하면 망상이 많은 이는 곧 하품하생(下品下生)이라]하였으니 비록 하품(下品)에 낳더라도 모든 상선인(上善人)과 한곳에 모여 법락(法樂)을 함께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염불할 때에 망상을 떨어 버리려고 애쓰지 말고 염불에만 오로지 마음을 써서 끊어지지 아니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九 염불에 마음을 오로지 하여 어지러워지지 않는 것은 생각의 흩어짐으로부터 성취되는 것이니 먼저 생각의 흩어짐을 중하게 여기지 않고야 어떻게 일심(一心)을 성취할 수 있으랴 마치 글자를 배운 뒤에라야 글을 쓸 수 있는 것이거늘 글자도 배우지 아니하고 글부터 먼저 지으려는 것과 같으며, 또 모든 기술(技術)이 서투른 데서부터 익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심(信心)이 견고하고 원이 간절하면 염불하는 것이 끊어지지 아니하거나 쉬는 일이 적어지고 생각의 흩어짐도 점점 적어져서 일심에 이르는 것이다.

 또 설사 일심이 되지 못하더라도 이와 같이 수행하면 하품(下品)에는 반드시 왕생 할 수 있는 것이니 중요한 비결은 오직 [행주좌와염념불사(行主左臥念念不捨)]의 여덟 자에 있다.


十 참구염불(叅究念佛)이란 [염불자수(念佛者誰)즉 염불 할 때에 이것이 누군가]하여 염불에 참선(叅禪)을 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염불이 둘로 나뉘어져서 한결같지 못하고 부처님의 본원(本願)과도 서로 어울리지 못하므로 왕생하기 어려운 것이다.

 중국의 중봉선사(中峯禪師)는 (참선에는 염불을 겸할 것이나 염불에는 참선을 겸하는 것이 불가하다)하였다.

 

 선종(禪宗)은 원래 [시심마(是甚麽)즉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화두(話頭)법문(法門)이 있는데 중국의 학자(學者)가 참선으로 깊이 깨달아서 확고한 힘을 얻지 못하는 이가 많고 혹은 염불을 겸해서 닦는 이도 있으며 혹은 염불로 바꾸고 고치는 이도 있으므로, 선종종사(禪宗宗師)들이 부득이 한 가지 방편으로 참구염불을 권하였으나 이것은 정토종(淨土宗)의 근본 취지가 그러한 줄로 아는 이가 있다.


十一 세상 사람들 중에는 [현세(現世)를 발원(發願)하려면 관세음보살을 염하고 내세(來世)를 발원 하려면 아미타불을 염한다]는 오해를 가진 이들이 있다.

아미타불은 원래 대비원력(大悲願力)로 염불 중생을 접인(椄引)하셔서 극락세계에 왕생케 함은 물론이거니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도 극락세계에 계시면서 중생을 접인 왕생케 하시는 터인즉, 누구나 극락왕생을 발원하였으면 아미타불을 염하거나 관세음보살을 염하거나 대세지보살을 염하거나 모두 극락에 왕생하는 것인즉 관세음보살 이라고 현세에서만 중생을 호념(護念)하시는 것은 아니다.


十二 세상 사람들이 염불한다 하면 아미타불 을 염하거나 관세음보살 혹은 지장보살을 염하는 것을 통칭(通稱)하여 모두 염불한다고 한다.


 염불하는 사람 중에는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이가 많으니 이것은 관세음보살이 사람들의 괴로움을 건져 주시고 어려움을 도와주신다 하여 세상 사람들이 세복(世福)곧 자손 부귀 장수 등을 누리기를 발원하는 까닭이요.

 아미타불을 염하는 이가 적은 것은 내세(來世)의 일이라 하여 반신반의 하여 현세의 복락(福樂)과 같이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까닭이며 또 지장보살을 염하는 사람은 더러 있으나 대세지보살을 염하는 이는 없는 모양이다.


十三 부처님이나 보살을 염할 때에 두 분이나 세 분을 합하여 염하는 이도 있으나 이것은 한분을 염하는 것 보다 여러분을 염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으로 여러 분을 염하나, 염불은 원래 일심(一心)이 되어야 하는데 만약 여러 분을 염하면 염불이 한결같지 못하여 한 분만을 일심으로 염함만 같지 못하다.


 지장보살은 중생을 교화(敎化)하시고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많은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濟度)하여 우선 심한 고를 면하고 사람, 하늘 등 선도(善道)에 낳게 하시는 보살이시므로 망자(亡者)를 천도(薦度)할 때에는 항상 지장보살을 염하는 것이 통례인데 이것은 망자가 죄고(罪苦)를 벗고 선도에 낳기를 애원(哀願)하는 것이다.


十四 관세음보살도 지금 극락세계의 보처(補處)보살로 계셔서 중생을 접인(椄引)하여 극락에 왕생케 하시거니와 그러나 아미타불은 그 四十八원(願)중에 유정(有情)이 아미타불의 명호(名號)를 염하면 죽을 때에 극락에 왕생하게 하기를 발원하셨는데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원(願)이 없으시다.

 

 또 부처님은 법왕(法王)이시고 보살은 법신(法臣)이시므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공덕은 아미타불을 염하는 공덕만 못할 것이다.

 [능엄경(楞嚴經)에 사바세계에 현주(現住)하는 보살이 六十二億항하사수(恒河沙數]라 하였다.

(三). 염불의 사구(四句)의 구별(區別)


사바세계는 생멸(生滅)이 덧없이 헛된 탁악세계(濁惡世界)요, 극락세계는 생사(生死)가 없고, 영구불변 진실한 청정세계건마는 세상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당장에 극락세계를 보지 못하고 찬탄(讚嘆)한 장엄(莊嚴)의 뛰어나고 훌륭한 말을 듣고 옅은 지견(知見)으로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 많아서 도리어 사바세계를 진실한 세계로 인정하고 극락세계를 허망(虛妄)한 세계로 인정하여 확실히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세상 사람이 염불하는데 사구(四 句)의 구별이 생기게 되니


곧 무원염불(無願念佛) 속원염불(俗願念佛) 진원염불(眞願念佛) 양원염불(兩願念佛)이다.


(가).무원염불은 극락왕생도 현세탁복(現世濁福)곧 자손 부귀 장수 등도 발원하지 아니하고 다만 염불하면 좋다는 말만 듣고 염불하는 것이다.


 원래 염불법문(念佛法門)은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염불하여야 왕생하게 되는 것인데 왕생 하려는 발원이 없이 염불만 하여서는 왕생하기가 어렵다.


(나).속원염불(俗願念佛)은 현세(現世)의 속계(俗界)탁복(濁福)만을 발원하여 염불 하는 것이니, 이는 미망(迷妄)한 최하의 비열(卑劣)한 발원이다.


 부처님이 四十九년 동안을 설법하신 것은 육도(六道)를 중생들이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끝이 없이 전전(轉轉)하여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돌아가며 고를 받는 것을 제도(濟度)하시어 속히 성불(成佛)하는 길을 가르치신 것이거늘 육도를 벗어날 생각은 없고 현세에 눈이 어두워 이 탁악세계(濁惡世界)에서 고의 원인이 되는 탁복(濁福)만을 받으려 발원하니 실로 연민(憐憫)할 중생이다.


(다).진원염불(眞願念佛)은 극락왕생만을 발원하고 일심(一心)으로 염불하면 저절로 현세에서는 몸과 마음이 안온(安穩)하고 가내가 태평하며 하는 일이 여의(如意)할 뿐 아니라 죽을 때에 반드시 왕생하게 될 것이니, 이와 같이 현세와 미래에 있어서의 효과는 참으로 일거양득의 법이니 염불하는 사람은 명심하여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라).양원염불(兩願念佛)은 속원(俗願)과 진원(眞願)을 겸하여 염불하는 것이니 이것은 두 원(願)이 뒤섞이어 구별이 안 되어 발원이 한결같지 못하고 부처님의 본뜻과도 어긋나므로 왕생하기 어렵다.

 

(四) 염불삼매(念佛三昧)


삼매(三昧)는 옛말이오. 새말에는 삼마지 (三摩地)라 쓰고 정정(正定)등지(等持)라 번역한다.

정정(正定)은 올바르지 못하고 어지러움을 여의므로 정(正)이라 하고 마음이 한경(境)에 머무르게 하므로 지(持)라 한다.

염불삼매(念佛三昧)라 함은 염불하는 이가 마음으로써 부처님께 반연((攀緣)하며, 부처님으로써 마음에 얽매어 마음과 마음이 서로 상속(相續)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면, 이때에 안으로 마음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밖으로 경계(境界)가 침입(侵入)하지 아니하여, 여러 가지 수(受)를 받지 아니하고, 정주(正受)를 얻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염불삼매 라 한다.


 염불삼매를 구별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

일심(一心)으로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관념(觀 念 )하거나 혹은 일심으로 법신(法身)의 실상(實相)을 관념하거나 (이상 두 가지는 관상염불[觀相念佛]또는 일심으로 불명(佛名)을 칭념(稱念)하는 행법(行法)을 닦는 것을 염불삼매라 하니 이것은 인행(因行)의 염불삼매라 한다.

(=).

위의 세 가지 인행이 과(果)를 이루어 마음이 선정(禪定)에 들어서 혹은 불신(佛身)이 눈앞에 나타나거나 혹은 법신(法身)의 실상에 꼭 들어맞는 것을 염불삼매라 하니 이것은 과성(果成)의 염불삼매라 한다.


 인행(因行)의 염불삼매는 이것을 수(修)라 하고 과성(果成)의 염불삼매는 이것을 발득(發得곧 지혜가 생기므로 점점 얻게 되는)이라 한다.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에는

[염불삼매를 성취함에는 오연(五緣)이 있으니


(1).계행(戒行)을 지니고 범하지 아니 할 것.

(2).사견(邪見)을 일으키지 아니할 것.

(3).아첨(阿諂)하며 교만(僑慢)하지 아니 할 것.

(4).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을 성내고 원망하며 강새암하지 아니할 것.

(5).용건정진(勇健精進)]할 것 이라 하였다.

(五).선지식(善知識)에게 배워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한 번 보고 들은 것이 선악(善惡)간에 머릿속에 들어가 있으면 그것을 바꾸어 고치기가 대단히 어려운 모양인데 이것을 선입견(先入見)이라 한다.

 이 선입견이 있는 사람은 소견(所見)만 고집하며 또 옳은 법(法)을 가르쳐 주어도 시키는 대로 잘 쫒지 아니하고, 자기의 소견(所見)만 고집하며 또 옳은 법을 알지 못하므로, 이법 저 법을 섞어서 행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것은 모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지 못한 까닭이다.

 선지식 이라는 것은 자기도 옳은 도(道)를 닦으면서 다른 사람을 옳은 道로 가르쳐 이끄는 이를 말함이니 불보살도 선지식이요, 옳게 잘하는 이는 다 선지식 이다. (부정한 도를 가르치는 스승이나 벗은 악지식(惡知識)이다).


 경(經)에 말씀 하시기를

[도(道)를 얻는 데는 선지식이 전인연(全因緣)이라]하셨고, 성암법사(省庵法師)는 (세간(世間)의 사소한 기술(技術)도 선생이 있어야 하거늘 하물며 불법에 있어 서랴.] 하였으니 공부하는 데는 선지식을 만나야 하는 것이며, 임종 때에는 선지식이 더욱 긴요한 것이다.


 만일 선지식을 만났거든 그의 지도하는 대로 곧 실행 하여야 하나니 다른 일을 핑계하고 차일피일 하다가 필경 실행하여 보지도 못하고 명(命)을 마치어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되면 이 보다 더 큰 원통한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적실화상(寂室和尙)이 말하기를

[세상 사람이 정토를 닦으려 하거든 지금 몸이 건강할 때에 부지런히 닦을 것이다.

 만일에 지금은 바쁘니까 조금 한가하거든 닦겠다. 하거나 지금은 가난하니까 부자가 되거든 닦겠다. 하거나 아직 나이 젊으니까 늙어지거든 닦겠다. 하면서 닦지 아니 하다가 별안간에 죽게 되면 잘못 된 뒤에 아무리 후회 하여도 어찌 할 수가 없으리라]하였다.

(六) 일념(一念)이 다념(多念)과 같다는 설(設)


한번 불명(佛名)을 염(念)하는 것이 여러 번 염하는 것과 같으냐 다르냐 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1) [락방문류(樂邦文類)]에 [서가모니불이 계실 때에 어떤 속가(俗家)의 늙은 남녀 두 사람이 곡식 한말을 가지고 수를 세어 가면서 아미타불을 염하여 정토왕생을 원하는 것을 보시고 [나무서방정토극락세계 삼십육만억일십일만구천오백 동명동호 대자대비 아미타불(南無西方淨土極樂世界 三十六萬億一十九千五百同名同號 大慈大悲 阿彌陀佛)]을 한번 염하는 것이 많은 곡식 수와 같이 염하는 것과 공덕이 같다]고 말씀 하셨다 한다.


 그러나 이 불호는 모든 정토계에서 찾아볼 수 없고 당나라 비석선사(飛錫禪師)의 [보왕론(寶王論]에 비로소 이 불호로써 [일념다념문(一念多念門)]을 세웠고, 다음에 시랑(侍郞: 벼슬이름) 왕고(王古)가 [직지정토결의집(直指淨土決疑集)]에 이 일을 말하였다.


 그 후에 [삼문직지(三門直指)]에는 [나무서방정토극락세계불신장광상호무변 금색광명 변조법계 사십팔원 도탈중생 불가설 불가설 전불가설 항하사불찰 미진수 도마죽위 무한극수 삼백육십만억일십일만구천오백 동명동호 대자대비 아등도사 금색여래 아미타불

(南無西方淨土極樂世界 佛身長廣 相好無邊 金色光明 邊照法界 四十八願 度脫衆生 不可說 不可說 轉不可說 恒河沙佛刹 微塵數 稻麻竹葦 無限極數三百六十萬億一十一萬九千五百 同名同號 大慈大悲我等導師 金色如來 阿彌陀佛)]의


명호(名號)가 [금색아미타불경(金色阿彌陀佛經)]에서 나온 것인데, 한 번 염하고 한 번 절하면 十념 예념(禮念)한 공덕과 같다고 하셨다.


 위의 두 불호는 염불하는 사람이 이것을 참고로 한 번 볼 뿐이고 항상 [나무아미타불]혹은 [아미타불]만 오로지 염할 것이다


(2) 十념하여 왕생하는 것보다도 一념에 왕생하여 불퇴지(不退地)에 오르는 것이 정당하다.


그 이유는 오역(五逆)과 사중죄(四重罪)도 모두 一念에 악업(惡業)을 이루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는 것이 활 쏘는 것과 같고, 또 一念에 선업(善業)을 이루어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은 팔을 굽히는 것과 같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도 [일념염불(一念念佛)에 모다 왕생한다]하셨으나[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十念]이라 한 것은 임종 시에 극병(劇炳)이 있어서 기운이 없고, 마음이 줄어들므로 十念을 불러서 一念을 돕게 한 것이다.


 중국 당나라의 장선화(張 善和)는 백정(白丁)을 직업으로 하여 생전에 지은 업(業)이 순전히 흑업(黑業)이므로 이와 같은 사람은 설혹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염불을 가르쳐 주더라도 一念만으로는 부족하므로 十念으로써 그 부족한 것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염심(念心)이 왕생하고 심신(心神)이 어리석고 둔하지 아니하면 다만 一念으로도 족하니 마치 실과 머리카락 같은 묘목(苗木)을 심어서 百아름이나 되는 거목(巨木)이 되는 것과 같이 一念의 힘이 굉장히 큰 것이다.



(三)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모두 一念으로 결과하는 것인데 一念이 일체염(一切念)을 갖추어 있으므로 一念이 十念보다 열(劣)하지 아니하고 또 十念이 즉 一念이므로 十念이 一念보다 우(優)할 것 없으나 부처님이 혹 一念을 말하시고 十念을 말씀하신 것은 여래(如來)의 뛰어난 방편(方便)이시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실 때에 간이(簡易)한 곳에서는 간이하게 말씀하시고 번다(繁多)한 곳에서는 번다하게 하셨으니, 간이한 곳에서 一念을 가르치신 것은 그 온 정력을 다하는 마음이 치밀하고 한결같으므로 一念이 다념(多念)보다 승(勝)한 까닭이고 또 번다한 곳에서 十念을 가르치신 것은 숙습(宿習)이 짙으므로 다념이라야 제거(除去)할 수 있으니 적은 염으로 삼매(三昧)를 이루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 방편에 불과하고 실은 一이 곧 二요 二가 곧 一인 즉 一念 十念 분별 할 것이 없다.

 

(七) 십념 왕생(十念往生)의 의의(意義)


어떤 이가 묻기를[경에는 중생의 지은 업(業)이 저울과 같아서 무거운 데로 먼저 끌린다 하였는데 중생들이 오늘날까지 나쁜 짓을 짓지 아니한 적이 없거늘 어떻게 임종 시의 十念염불로 곧 왕생 할 수 있겠는가. 만일 十念으로 왕생한다면 무거운 데로 끌린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하였더니 그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은 나쁜 업(業)이 중하고 十念의 선(善)이 경(輕)하다 하거니와 十念으로 왕생되는 것은 곧 마음에 있고 연(緣 )에 있으며 결정(決定)에 있는 것이므로 시간의 오래고 짧음이나 일의 많고 적은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가)마음에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는 허망(虛妄)하고 전도(顚倒)된 마음으로 짓는 것이요 이 十念은 선지식(善知識)의 안위(安慰)에 의하여 실상법(實相法)을 듣고 염불하는 것이므로 하나는 허망하고 하나는 진실하거늘 어찌 대비할 수 있으랴 千념이나 묵은 어두운 방도 일찰나(一刹那)의 광명으로 밝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유일마니보경(遺一摩尼寶經)에는 [중생이 비록 수천거억만겁(數千巨億萬劫)을 애욕중(愛慾中)에서 죄에 덮여 있더라도 만일 불경을 듣고 一念이 선(善)하면 죄가 사라져 없어진다]하셨으니 이것이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나)연(緣)에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는 망상(妄想)에 의하고 또 번뇌(煩惱)과보(果報)중생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나 이 十念은 무상신심(無上信心)에 의하고 또 아미타불의 진실 청정한 한량없는 공덕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독(毒 )한 화살을 맞아 골육(骨肉)이 깨어져 상하였더라도 멸제약고성(滅除藥鼓聲)을 들으면 화살이 나오고 독이 제거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연(緣)에 있는 것이다. 릉엄경[楞嚴經)]에 [비유하면 한약이 있으니 이름이 멸제(滅除)라 만약 전쟁할 때에 이 약을 북에 바르면 그 북소리를 듣는 이는 화살이 빠지고 독이 제거되는 것이니 보살마하살(菩薩摩?薩)도 이와 같이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에 머무르면 그 이름을 듣는 이가 삼독(三毒)의 화살이 저절로 빠져 나온다]하였다.


(다)결정(決定)에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는 유후심(有後心) 유간심(有間心)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요 이 十念은 무후심(無後心) 무간심(無間心)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니 이것이 결정에 있는 것이다 [지도론(智度論)]에는 [일체 중생이 임종 시에 죽는 고(苦)가 매우 절박하여 대단히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므로 이때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대용맹(大勇猛)을 발하여 마음과 마음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면 이것이 증상선근(增上善根)이 되어 곧 왕생케 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적(敵)을 대하여 진(陣)을 쳐부술 때에 평생에 있는 힘을 다 쓰는 것 같이 이 十念의 선근(善根)도 그러한 것이고 또 임종 시에 一念의 사견증상악심(邪見增上惡心)이 생기면 능히 삼계(三界)의 복(福)을 기우려서 곧 악도(惡途)에 들어가게 된다]하였다. [安樂集]


임종 시의 염불하는 마음 밖에 후심(後心)이 없고 후심이 없으면 딴 생각이 섞이지 않으므로 임종 시에는 무후(無後)무간(無間)의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맹렬하고 날카로운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고 평상시의 악업(惡業)은 유후(有後)유간(有間)의 견고하지 못하고 흔들리며 맹렬하지 못하고 날카롭지 못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十念에 왕생하는 것은 마음에 있고 경계(境界)에 있고 정(淨)에 있는 것이다.


(가) 마음에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은 허망심(虛妄心 )이요, 염불하는 것은 진실심(眞實心)이니 진실로서 허망(虛妄)을 떨어버리는 것이 마치 千년이나 된 어두운 방에 아침해의 밝은 빛을 막지 못하는 것 같은 것이다.


(나) 경계(境界)에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은 전도경계(顚倒境界)에 연(緣)한 것이요 염불은 뛰어나게 기묘한 공덕에 연한 것이니 眞正)으로써 허위(虛僞)를 여의는 것이다.


(다) 정(淨)에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은 염의(染意)요, 염불하는 것은 정심(淨心)이니 정심이 염의를 이기는 것이 마치 동자(童子)의 칼이 능히 천장(千丈)의 노끈을 끊으며 작은 불이 능히 萬속(束)의 땔 나무를 태우는 것 같은 것이다.

[문]중생의 지은 죄업(罪業)이 산같이 쌓이었는데 어떻게 十念으로 그 죄업을 멸(滅)할 수 있겠는가. 비록 百萬念을 하더라도 그 많은 죄업을 다 없앨 수 없거늘 어떻게 죄업을 다 없애지 못하고 정토에 왕생하겠는가. 이에 대하여 다음의 세 가지 뜻이 있다.

(-) 그 악업을 멸하지 아니하더라도 정토에 왕생할 이는 임종 시에 정념(正念)이 앞에 나타나 능히 시초 없는 이래로 또는 일생 이래의 지은 선업을 이끌어 서로 도와서 왕생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명호(名號)는 통틀어 만덕(萬德)을 이룬 것이니 일념염불(一念念佛)하는 이는 즉 一念중에 통틀어 만덕을 염하는 것이다.

(三) 시초 없는 이래의 악업은 망상(妄想)으로 지은 것이니 어두움과 같고 염불공덕은 진심으로 생기는 것이니 태양과 같다.

태양이 나오면 온갖 어두운 것이 없어지듯이 진심이 잠깐 일어나면 망심(妄心) 이 제하여지는 것이므로 임종 시에 十念을 성취하면 반드시 왕생하게 되는 것이다.


[문] 평시에 약간 염불하던 사람이라도 임종 시에 十念으로 왕생한다고 반드시 때를 정해 약속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평시에 염불하지 않던 사람이 어떻게 임종 시의 十念으로 왕생할 수 있겠는가.


(답) 약간 염불이라는 것은 일심으로 계속 염불하지 아니하고 매일 몇 번씩 염불함을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하지 아니한 이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약간 염불한 사람이거나 염불하지 아니한 사람이거나 임종 때에는 짧은 시간의 심력(心力)이 맹렬한 까닭에 十念으로 왕생할 수 있으니 다음 세 가지 뜻이 있다.


(-) 짧은 시간의 심력이 능히 종신(終身)토록 악 지은 사람을 이기는 것이니 비록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그 힘이 맹렬하여 이 마음의 맹렬한 결심이 곧 대심(大心)이며 몸을 버리는 일이 급하기가 마치 전쟁터에 들어 간 사람이 신명(身命)을 아끼지 아니함과 같은 것이다.

(=) 혹 승(乘 )이 급하고 계(戒)가 더디더라도 임종 시에 염불을 권하면 곧 신심(信心)이 생기고 비록 현세(現世)수행(修行)하지 않았더라도 역시 숙세(宿世)의 선업(善業)이 강하므로 임종 시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十念에 성공하는 것이다.


(三)염불할 때에 반드시 깊은 후회가 있어서 자신의 온 정력을 다하는 마음과 부처님의 원력(願力)으로 얻은 이 十念이 능히 百千萬念 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經 )에 말씀하시기를[일체 중생이 아미타불의 원력에 지지(支持)되어 세세(世世)에 놓지 아니하시니 이 뜻이 있으므로 부처님의 대원해(大願海) 중에서 그 이름을 한 번 일컬으면 능히 八十億 겁 생사 중죄를 멸하고 곧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한다]하였다.

 

(八). 십념왕생(十念往生)과 주의 할 일


사람이 만약 과거의 선인(善因)이 있으면 임종 시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十念이 성취되어 왕생하기 쉬울 것이요, 또 과거의 인(因)이 없더라도 임종 시에 일심(一心)으로 十念을 계속하고 운명 전 후에 행사를 법에 맞추어 실행하면 왕생할 수 있다.


 그러나 十念이라는 것은 평소에 대단히 분망한 사람이 아침에나 저녁에 十念씩 하거나 또는 평시에는 염불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임종 시에 선지식 에게 염불하라는 권고를 받고 十念하는 것과 같이 오래도록 염불할 여가가 없을 경우에는 十念법을 응용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중에는 十念왕생이란 말을 듣고 임종 시에 十念만 하면 왕생 할 수 있다. 하여 평시에는 염불하지 아니하고 임종 시에만 十念하려는 이가 있으니, 평시에 염불하지 아니하고 임종의 十念만 믿다가 만일 과거의 인(因)도 없고, 평시에 염불한 공덕도 없는 이로서 불의의 사고나 기타 환경으로 인하여 임종 시에 염불을 못하게 되거나 행사를 법에 맞추어하게 하지 못하게 되면 왕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부지런히 염불하여 왕생할 자량(資糧)을 예비(豫備)하여야 임종 시에 왕생하기 쉬우려니와 생품(生品)도 반드시 높을 것이다.


[문] 일생에 악업(惡業)을 지었더라도 임종 시에  염불만 하면 업(業)을 벗고 왕생한다 하니 생시에 세사(世事)에 만 분망하다가 임종 시에 염불하여도 무방 하겠는가.


[답] 소위 역악범부(逆惡凡夫)로서 임종 시에 염불하는 이는 숙세(宿世)의 선근공덕(善根功德)이 있으므로 선지식을 만나서 염불하게 되는 것이거니와 이러한 요행은 만에 하나도 있기 어려운 것이다.


이 세상에 열 가지의 사람이 임종 시에 염불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있으니

(-)선우(善友)를 만나지 못하는 이

(=)업고(業苦)가 몸에 얽힌 이

(三)중풍으로 말을 못하게 되는 이

(四)미친 듯이 어지러움으로 실심(失心)한 이

(五)수화(水火)의 재(災)를 만난 이

(육)호랑(虎狼)이 에게 죽은 이

(七)임종(臨終)에 악우(惡友)를 만난 이

(八)혼미(昏迷)하여 죽은 이

(九)군진(軍陣)에서 전사하는 이

(十)급한 낭 떨어지나 높은 바위에서 낙사(落死)하는 이 등 이다

 

(九). 염불하는 기간(期間)의 장단(長短)의 의의(意義)


[문]. [관경(觀經)에는 [임종 시에 一念내지 十念으로 왕생한다]하였고, [아미타경(阿彌陀經)]에는 [一일 내지 七일 동안 일심불란(一心不亂)하면 왕생한다]하였으며,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몸과 목숨이 끝나도록 한결 같이 염불하여야 왕생한다]하였으니, 몸과 목숨이 끝나도록 염불하여야 왕생한다면 一念 十念 一일 七일에 왕생 한다는 말은 허언(虛言)일 것이고 一일 내지 七일이 참말이라면 몸과 목숨이 끝나도록 하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답]. 위의 세 가지 말이 모두 허언이 아니다.

 중생이 정토의 가르침을 듣는데 일음과 늦음이 있고 발심할 때에 더딤과 빠름이 있으며 수명에 장단이 있으므로, 제경(諸經)의 교설(敎說)이 동일하지 아니한 것이다.

 만약 임종 시에 처음으로 선우(善友)를 만나서 발심 염불하여도 왕생할 것이고, 또 一,二일 내지 여러 날 후에 명(命)이 다 할 사람에게는 그 명을 따라서 염불할 것을 가르쳐 주었을 것이고, 장수한 이에게는 그 목숨이 다하도록 염불하라고 가르쳤을 것이므로, 삼경(三經)의 교설(敎說)이 같지 아니한 것이다.


 즉[관경(觀經)]에는 [금방 임종하려는 이에게 대하여는 一念 十念에도 왕생한다] 하신 것이고, [아미타경(阿彌陀經)]에는 [몇 날을 지나서 운명할 이에게 대하여는 一 일 내지 七 일 동안 염불하면 왕생한다]하신 것이고,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장수할 이에게 대하여는 장시간 염불하면 역시 왕생한다]하신 것이다.


또 [아미타경(阿彌陀經)]의 一일 내지 七일의 기한은 이둔(利鈍)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이고, [무량수경(無量壽經)]과 [고음성왕경(鼓音聲王經)]의 十念, [대집경(大集經)]의 七七일과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의 九十일은 둔근(鈍根)을 위한 말씀을 하신 것이니, 十念 이나 一일 등은 기한이 너무 짧고 七七일 九十일은 너무 길거니와 그중 七일이 중도(中道)에 처(處)한 것이다.

 

(十). 일일 칠일 일심불란(一心不亂)의 의의(意義)


[문] [아미타경]에 一일 내지 七일이라는 것은 염불의 기간인가 혹은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기간인가.

[답] 一일 내지 七일은 일심불란 하여 정(定)에 있는 기간을 가르치신 것이고 염불의 一일 내지 七일에 곧 일심불란을 얻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일심불란의 기간이 길면 七일 짧으면 一일이고 길고 짧은 것은 다르나 일심(一心)은 같은 것이다.


[문] [아미타경]에 七일 일심불란이라 한 것은 어째서 七일이라 하였는가.


[답] 七일은 세간(世間)출세간(出世間)의 사물(事物)을 말할 때에 흔히 칠수(七數)를 말하나니 예컨대 예참(禮懺)의 七일 지주(持呪)의 七변 경(經)의 七중난순 七중라망 七중항수 종묘(宗廟)의 七대봉사 치성(致誠)의 七일 칠일재계(七日齋戒)등과 같은 것이다.


 또 一일 내지 七일은 이근(利根)둔근(鈍根)에 대한 것이다 이근(利根)은 一일 만에 성공하여 곧 一心을 얻어서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게 되고 둔근(鈍根)은 二, 三일 내지 七일 만에 마음이 순일(純一)하게 되는 것이며 또 이근은 칠일을 지내도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으며, 둔근한 이는 六, 五일내지 一일을 지내면 흩어져 어지럽게 되는 것이다.

[문] 一일 내지 七일에 일심불란 하던 것이 그 후에 능히 일심(一心)이 되지 못하여도 왕생할 것인가.


[답] 한 번 일심(一心)된 뒤에는 다음에 조금 흩어져 어지러워지더라도 크게 흩어져 어지러워지지 아니할 것이며 항상 스스로 낱낱이 검사하고 누누(屢屢)히 홍원(弘願)을 발하면 왕생하지 못할 자가 없을 것이다.

[문] 평시에 가령 七을을 일심불란한 뒤에 다시 혹(惑)을 일으켜 업(業)을 짓더라도 왕생할 수 있는가.

[답] 만약 일심불란된 사람이면 다시 혹은 일으켜서 업을 짓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정행염불 10.관상염불(觀想念佛)하는 법(法)


관상염불(觀想念佛)은 행자(行者)가 먼저 서향(西向)하여 결가부좌(結跏趺坐)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하고, 아미타불의 수인(手印)을 맺은 뒤에 부처님의 몸빛이 진금색(眞金色)으로 되신 일장육척(一丈六尺)의 불상(佛像)이 칠보(七寶)로 된 연못 위에 서 계시거나 앉아 계신 것을 관념(觀念)하며, 또 삼십이상(三十二相)을 한 상(相)씩 낱낱이 관념하거나 혹은 미간(眉間)백호상(白毫相)만 관념하는데, 이 백호상을 관념하는 것이 오래 되어서 숙습(宿習)하면 자연히 감응(感應)되어 32상을 관념하는 법은 32상 중의 발바닥이 편평하게 찬 족하평만상(足下平滿相)에서부터 관념을 비롯하여 거슬러 올라가며, 한 상(相)씩 관념하여 정계육골상(頂髻肉骨相)에  까지 이르고, 다시 정계육골상에서부터 순(順)으로 내려오면서, 한 상씩 관념하여 족하평만상까지 이르되 조금도 다른 관념이 없이 똑똑하게 관념하는 것이다.


 미간 백호상을 관념하는 법은 부처님의 눈썹 사이에 위로 향하여 흰 털 하나가 있는 것을 미간 백호상이라 하니 빛깔이 선명하고 희며 광채가 있고 맑기가 백설(白雪)보다 더 희며 부드럽기가 도라면 과 같고 여덟모가 졌으며 가운데가 비고 주위가 다섯 치 이며 잡아당기면 길이가 일장오척(一丈五尺)이요 놓으면 오른 편으로 다섯 번 비틀려서 유리통과 같이 된다고 한다.


 이 상(相)을 관념하는 법도 32상을 관념함과 같이 조금도 다른 잡념이 없이 명확하고 똑똑하게 관념하는 것이다.

 
 

五 조행염불(助行念佛)


행자(行者)가 조행을 닦으려면 먼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하나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함에는 신심원리(身心遠離)희족소욕(喜足小欲)사성종(四聖種)의 삼정인(三淨因)이 있다. 이것을 신기청정(身器淸淨)의 삼인(三因)이라고도 한다.


(-) 신심원리(身心遠離)는 몸에는 악우(惡友)등과 악연(惡緣)을 멀리 여의고 마음에는 악(惡)의 사상분별(思想分別)을 일으키지 말아야 할지니 이 신심원리를 성취하려면 희족소욕에 의하여야 한다.


(=) 희족소욕(喜足小欲)의 희족(喜足)이라 함은 이미 얻은 의복 음식 등에 만족함을 말함이고 소욕(小欲)은 아직 얻어지지 아니 하였을 때 크게 구하지 아니함이니 이것으로써 불희족대욕(不喜足大欲)을 고친다.

 불희족대욕은 욕계(欲界)의 탐번뇌(貪煩惱)요 희족소욕은 무탐(無貪)의 심소(心所)니 삼계(三界)및 무루(無漏)에 통하는 것으로 이 희족소욕에 의하여 사성종(四聖種)에 머물음을 얻는다.


(三)사성종(四聖種)은 의복희족성종(衣服喜足聖鐘), 음식희족성종(飮食喜足聖種), 와구희족성종(臥具喜足聖鐘), 악단수성종(樂斷修聖鐘)의 네 가지를 말함인데, 앞의 셋은 의복 음식 와구(곧 住處)에 대하여 희족(喜足)의 마음에 머무는 것을 말함이요. 뒤의 하나는 번뇌(煩惱)를 끊고 성도(聖道)를 닦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니 이것은 삼계(三界)의 탐(貪)을 버리는 것이므로 무탐(無貪)을 성(性)으로 한다 할 것이다. 이 사성종의 네 가지는 모두 성도(聖道)를 낳게(生起)하는 시초이므로 성종(聖種)이라 한다.


(=) 예배(禮拜)

행자(行者)는 매일 조석으로 사성례(四聖禮)를 행하여야 할지니 먼저 깨끗한 방에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삼성(三聖)의 상(像)이나 화상(畵像)을 모시되 아미타불을 동향(東向)하여 모시고 그 왼편에는 관세음보살, 오른편에는 대세지보살을 모실 것이다. 만일 삼성의 상이 없으면 아미타불상 만을 동향으로 모시고 그 앞에는 향로 하나를 놓고 다른 물건은 많이 두지 말 것이다 만약 불상이 없으면 불명(佛名)을 써서 족자(簇子)를 만들어 걸 것이며 그것도 없으면 서향(西向)하여 사성례(四聖禮)만을 행하되 먼저 분향하고 바로 서거나 꿇어앉거나 결가부좌 혹은 반가부좌하고 합장(合掌)또는 아미타불 수인(手印)을 맺고 사성예문(四聖禮文)을 외우며 예배한 후에 물러난다.

 

 조석으로 사성례 뿐 아니라 무시로 불상에 예배하여야 할지니, 불상에 대하여는 진불(眞佛)을 뵈옵는 것과 같이 공경하고 조금도 소홀한 생각을 가지지 아니하여야 한다.

 [염불경(念佛鏡)]에 석가모니불이 그 어머니 마야부인(摩耶夫人)을 위하여 도리천(忉利天)에 올라 가셔서 설법하시고 90일이나 계셨는데, 그 때에 인도의 우진왕(優瑱王)이 부처님을 생각하나 뵈올 수가 없으므로 장인(匠人)을 보내어 불상(佛像)을 만들었더니, 부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시므로 우진왕이 모든 신하(臣下)를 거느리고 맞을 때에 불상도 부처님을 맞아서 부처님이 불상과 같이 서시니 불상이 부처님과 흡사한지라 부처님이 손으로 불상의 이마를 만지시며 말씀하시기를 [나는 미구에 열반(涅槃)할 터이니 네가 오래 세간에 있어서 유정(有情)을 교화하라]하셨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도 불상을 공경하시거늘 하물며 유정이야 어찌 공경하지 아니하리오. 또 [지장십륜경(地藏十輪經]에는 [한 사냥꾼이 가사(袈裟)를 입었더니 코끼리가 일어나서 공경한 덕으로 코끼리는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서 91겁(劫)동안이나 낙(樂)을 받았다.  불상도 이와 같이 공경하면 존귀(尊貴)영화(榮華)를 누리고 정토에 난다]하셨다. 불상의 시초는 인도의 우진왕이 최초에 전단(栴檀)나무로 불상을 만들고 파사왕(波斯王)은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다. [업보차별경(業報差別經)]에는 예불(禮佛)일배(一拜)에 열 가지 공덕을 얻는다 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 묘색신(妙色身)을 얻는다.

(=)말을 내면 사람이 믿는다.

(三)중(衆)에서 처(處)하여 두려움이 없다.

(四)부처님이 항상 돌보아 주신다.

(五)큰 위의(威儀)를 갖춘다.

(六)많은 사람이 친히 붙는다.

(七)하늘이 애경(愛敬)한다.

(八)큰 복덕(福德)을 갗춘다.

(九)명종(命終)하면 왕생한다.

(十)속히 열반(涅槃)을 증(證)한다.


(三) 공양(供養)


공양(供養)은 공급(供給)자양(資養)하는 뜻이니 제불(諸佛)께 공양하기 위하여 향(香)화(華)음식 등을 공양하는 것이니 공양에 세 가지가 있다.

(-)이양 공양(利養供養)은 음식 의복 와구(臥具 곧 住處)등이고,

(=)공경 공양(恭敬供養)은 향(香)화(華)등명(燈明)증개(增蓋)당번(幢幡)등이며,

(三)행 공양(行公供養)은 보리심 을 발하여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行)을 닦는 것이다.

이양공양과 공경공양을 합하여 재공양이라 하고 행 공양을 법공양(法供養)이라 한다.


(四) 경문(經文)과 주문(呪文)


불경(佛經)이나 주문(呪文)도 불상(佛像)과 같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여야 하며 깨끗한 곳에 두되 경책위에 다른 외전(外典)이나 물건을 놓지 말 것이며, 또 경(經)을 볼 때에는 깨끗한 손으로 단정히 앉아서 보고 몸을 파탈(擺脫)하였을 때나 누웠을 때와 같이 술 취하였을 때에는 보지 말 것이며 경(經)책을 베개로 삼지 말고 아무리 헌 경책이라도 불을 때서는 안 된다.

 

 부처님의 경전(經典)과 세간(世間)의 서적이 문자는 비록 같으나 불경은 중생을 널리 이익케 하는 것이며, 천룡팔부(天龍八部)가 모두 옳은 줄로 믿고 받드는 것이므로 이것을 범연한 서적에 비할것이 아니다.

 세간의 폐서는 설사 다 태워 버리더라도 오직 불경만은 태워 버릴 수 없나니, 불경(佛經)의 복혜(福慧)가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 세간의 서적보다 월등한 까닭이다.

 불경이 헐어 못 쓰게 되어 읽을 수 없게 되었을 경우에 깨끗하게 태운 후에 그 재를 정한 헝겊에 사서 강물에나 바다에 띄워 보낼 것이다.

 

 부처님이 극락세계의 일만을 말씀하신 경문(經文)에[무량수경(無量壽經)][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아미타경(阿彌陀經)]이 있는데, [무량수경]과 [관무량수경]은 번다(繁多)하여 항상 읽기 어려워서 간혹 보는 것이 좋고, [아미타경]은 간단하여 외우기 편리하므로 이 경과 왕생주(往生呪)등을 매일 한번이나 여러 번 외워도 좋으며, 왕생에 관한 경문이나 주문 이외의 경문이나 주문은 읽거나 외우지 말 것이다.


(五) 참회(懺悔)


참(懺)은 앞서지은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고 회(悔)는 장차 지을 허물을 뉘우치고 고치는 것이다. 염불하는 사람은 앞서 지은 죄업(罪業)을 참회하고 다시 죄업을 짓지 아니하여야 한다. 참회하지 아니하면 무량겁(無量劫)이래의 죄업이 제거되지 못하는 것이니, 마치 때 묻은 옷은 빨아야 신선하고 먼지 앉은 거울은 닦아야 밝은 것과 같이 업장(業障)이 제거되어야 마음이 청정(淸淨)하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부처님 앞이나 자기의 마음속에서 진심성의(眞心誠意)로 불전(佛典)에 죄장(罪障)을 참회할 것이며, 또 어쩌다가 죄과(罪過)를 범하였거든 시각을 지체하지 말고 곧 참회 하여야 한다. 참회에는 작법참(作法懺 )취상참(取 相懺)무생참(無生懺 )의 세 가지가 있다.


(-)작법참(作法懺)은 불전(佛典)에 향하여 죄과를 낱낱이 펴 놓아서 언어 동작의 소작(小作)이 법도(法度)에 따르는 것이니 이것은 계율을 범한 죄를 멸하는 것이다.

(=)취상참(取相懺)은 매우 성실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부처님이 오시어서 손으로 이마를 어루만지시는 등의 상서로운 징조를 느끼는 것을 기한(期限)으로 하는 것이니 이것은 번뇌(煩惱)의 죄성(罪性)을 멸하는 것이다.

(三 )무생참(無生懺)은 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단정히 앉아서 무생(無生)의 이(理)를 관(觀)하는 것이니, 이것은 중도(中道)를 장(障)하는 무명(無明)을 멸하는 것이다. 일구(一句)아미타불을 염불하면 능히 80억겁(劫)의생사의 중죄(重罪)를 멸하며, 염불이 세 가지 참회에 통하는 것이니, 참회하며 염불하는 것이 간단하고 쉬운 참회법이 된다.


(六 ) 애련탐착(愛戀貪着)을 끊을 것


예전에 어떤 사람이 산에 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겁결에 [나무불(南無佛)]을 부른 공덕으로 선근(善根)이 익어져서 나중에 성불하였다는 것과 같이 불법을 알면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설혹 지옥에 떨어졌다가도 그 뒤에 사람이 되어 다시 불법을 닦아서 육도(六道)의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끝이 없이 전전(轉轉)하여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면할 수 있거니와 만약 전혀 불법을 알지 못하면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자주법사개시록(慈舟法師開示록錄)에 영긍기신타지옥(寧肯己身墮地獄)불이불법작인정(不以佛法作人情) 즉 차라리 내 몸이 지옥에 떨어질지언정 불법으로 인정(人情)을 짓지 말라 하였다. 이것은 나는 염불할 생각이 있으나 권속(眷屬)들이 반대하면 애정에 끌리어 염불을 단념하는 것을 인정을 짓는다고 한 말이다 처자 권속은 전세의 인연으로 모이게 되는 것이니 연(緣)이 있으면 모였다가 연이 다하면 서로 헤어지고, 헤어진 뒤에는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옛말에[부모는 은혜가 깊고 부부는 의(義)가 무거우나 필경에는 서로 이별하는 것이니 마치 새가 한 나무에 함께 앉았다가도 제 각기 여러 곳으로 날아가는 것과 같다]하였거니와 이것은 죽을 때가 오면 각기 헤어져 버린다는 뜻을 말한 것이다.

 처자 권속의 애정이 아무리 무겁고 길더라도 죽을 때에는 할 수 없이 이별하게 되는 것이고, 재산이 아무리 아깝더라도 죽 을 때에는 맨손으로 가는 것이니, 이것을 공수래(空手來)공수거(空手去)라고 한다. 옛말에[일일무상도(一日無常到) 방지몽리인(方知夢裏人) 만반장불거(萬般將不去) 유유업수신(唯有業隨身) 단염아미타(但念阿彌陀) 왕생안락국(往生安樂國)]하였다.

 

즉 [죽을 때가 오면 다른 것은 모두 가지고 가지 못하나 오직 업(業)만은 따라가는 것인데, 다만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극락국에 왕생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처자 권속이나 금, 은, 재산은 고스란히 놓고 가거니와 일생에 지은 선악의 업만이 끝까지 나를 따라가는 것이니 나쁜 업을 지었으면 악도로 가고 착한 업을 지었으면 선도로 가고 염불하는 업을 지었으면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하거나 혹은 이런 말을 듣더라도 믿지 아니하고 처자 권속과 토지 재산 등에만 애착하다가 임종시에 대사(大事)를 그르쳐서 왕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七) 염불하는 사람은 마땅히 자비심(慈悲心) 희사미(喜捨心) 지계심(持戒心) 정진심(精進心) 인욕심(忍辱心) 겸하심(謙下心) 평등심(平等心)등 일체 선심(善心)으로 염불하며 극락에 왕생하기를 구하면 임종시에 반드시 왕생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그 마음이 부처님의 뜻과 서로 맞아 부처님의 자비(慈悲)로 접인(接引)하시는 까닭이다.

 

 그러나 만일 간탐심(慳貪心) 진한심(瞋恨心) 치애심(癡愛心) 오만심(傲慢心) 질투심(嫉妬心) 기광심(欺誑心) 첨곡심(諂曲心) 모해심(謨害心)같은 일체 악심(惡心)으로 염불하며 극락에 왕생하기를 구하면 임종시에 왕생하기 어려울 것이니, 이것은 그 마음이 부처님의 뜻과 서로 어긋나서 부처님도 자비(慈悲)를 드리워서 접인(接引)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염불하는 사람은 청정심(淸淨心)을 발하여 탁악심(濁惡心)을 버리고 염불할 것이니 염불은 입으로만 염하는데 있지 않고, 심행(心行)이 정직하여야 비로소 효과를 얻는 것이므로 행자(行者)는 반드시 이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자비심(慈悲심)-중생에게 낙(樂)을 주는 것이 자(慈)요 고(苦)를 없애주는 것이 비(悲)니 즉 중생에게 낙을 주려는 마음과 고를 없애주려는 마음이다 또는 고를 없애주는 것을 자(慈),낙을 주려는 것을 비(悲)라 하기도 한다.


*희사심(喜捨心)-정사(淨捨), 정시(淨施)라고도 한다. 기쁜 마음으로 재물(財物)을 보시(布施)하는 마음이다.


*지계심(持戒心)-불법에 제정(制定)한 계행(戒行)을 받아 가지는 마음이다.


*정진심(精進心)-온갖 곤란을 물리치고 선법(善法)을 닦고, 악법(惡法)을 끊는 마음이다


*인욕심(忍辱心)-온갖 모욕(侮辱)과 번뇌를 참고 원한(怨恨)을 일으키지 아니하는 마음이다.


*겸하심(謙下心)-다른 사람에게 대하여 내 몸을 낮추어 공손(恭遜)하는 마음이다.


*평등심(平等심)-일체 중생에게 대하여 원친(怨親)등의 차별이 없이 한결같이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다.


*간탐심(慳貪心)-물건을 아끼고 남에게 주지 않으며 탐내어 구하면서 만족할줄 모르는 마음이다.


*진한심(嗔恨心)-눈을 부릅뜨고 한탄(恨歎)하는 마음이다.


*치애심(癡愛心)_ 아깝게 여기는 어리석은 마음이다.


*오만심(傲慢心)-잘난체 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다.


*질투심(嫉妬心)-미워하고 속을 태우는 마음이다.


*기광심(欺誑心)-남을 속이는 마음이다.


*첨곡심(諂曲心)-남에게 아양 거리며 교묘히 돌려서 귀염을 받으려는 마음이다.


*모해심(謀害心)_모략(謀略)을 써서 남을 해롭게 하려는 마음이다.


*심행(心行) 심의(心意-즉 마음과 정신)의 작용을 말함이다.

 자기가 얻은 신념(信念)에 따라 삼업(三業)으로 일어나는 행업(行業)을 말한다.


(八) 선사(善事)를 행할 것.


염불하는 사람은 반드시 오계(五戒)와 십계(十戒)를 가질 것이고, 오계 십계를 계속하여 가지기 어려울 경우에는 팔관재계(八關齎戒), 육재일(六齎日), 십재일(十齎日), 월재일(月齎日)을 가질 것이며 부모를 효도(孝道)로써 받들어 모시고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며 형제간에 우애(友愛)하고 부부간에 화순(和順)하며 친척과 화목하고 사찰(寺刹)을 지으며 불상(佛像)을 만들고 부처님께 공양하며 승려에게 보시(布施)하고 경문(經文)을 출판하며 선법(善法)을 널리 통용케 하고 주린 사람에게 밥을 주며 떠는 사람에게 옷을 주고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며 죽은 이에게 관(棺)을 주고 다리를 놓으며 길을 닦는 등 善事)공덕을 지어 정토에 회향(回向)하여 극락에 왕생하기를 발원하고 일심(一心)으로 염불할 것이다.


(九) 세간효(世間孝)와 출세간효(出世間孝)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의 조행(助行)으로 부모에게 세간(世間)의 孝와 출세간(出世間)의 孝를 행하여야 하나니, 세간의 효는 부모에게 승순(承順)하고 감지(甘旨)로 부모를 받들어 모시며 작록(爵祿)으로 부모를 영화(榮華)롭게 하는 등이요. 출세간의 효는 부모에게 염불법문(念佛法門)을 권하여 정토에 왕생케 하는 것이니, 세간의 효는 소효(小孝)요 출세간의 효는 대효(大孝)다.


 부모의 열가지 대은(大恩)이 있으니

(-)회탐수호은(懷眈守護恩)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三)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四)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五)회간취습은(回幹就濕恩)

(六)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七)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八)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九)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十)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이다.


[최승불정존승다라니 정제업장경]에는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쪽 어개에 어머니를 업고 수미산(須彌山)을 百千萬 번을 돌아서 피가 흘러 복사뼈까지 잠기더라도 그것으로 하루 동안 젖먹인 은혜도 갚을 수 없거늘 어찌 나쁜 마음으로 경하게 성을 내리오]하셨고,  [대승본생심지관경]에는 자부(慈父)비모(悲母)의 장양(長養)으로 인하여 모든 남녀가 모두 안락(安樂)하나니 자부의 은혜는 산과 같이 높고 비모의 은혜는 바다와 같이 깊다]하셨고, 또 [사람이 부모의 모든 은혜를 갚기 위하여 一劫동안을 지나도록 매일 삼시로 자신의 살을 베어 부모를 받들어 모시어도 一일의 은혜도 갚을 수 없다]하셨고, 또[부모의 은혜는 부(父)에 자은(慈恩)이 있으며, 모(母)에 비은(悲恩)이 있다.


 어머님의 비은(悲恩)은 내가 세간(世間)에 사는 一겁(劫)동안에 말하여도 다 말할 수 없나니, 가령 어떤 사람이 정행대바라문 백사람 오통제대신선 백사람 선우(善友) 백사람들을 칠보(七寶) 위묘당(妙堂)에 모시고 百千가지의 아주 썩 잘 만든 진기하고 맛 좋은 음식과 모든 영락과 많은 보배와 전단 침향의 향나무와 백보로 장식한 앉고 까는 침구와 모든 병을 치료하는 백가지 탕약으로써 百千겁이 차도록 일심(一心)으로 공양하더라도 일심(一心)의 효순심(孝順心)으로써 아주 적은 물건으로 비모를 받들어 모시며 곳을 따라 공경하여 모시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셨고, 또 [모든 세간에 무엇이 가장 부(富)하며 무엇이 가장빈(貧)하냐 비모가 집에 있는 것이 부(富)요, 비모가 있지 않는 것이 빈(貧)이며 비모가 있을 때가 한낮이요 비모가 죽었을 때가 해가 진 것이며, 비모가 있을 때가 달빛이 밝은 것이고 비모가 죽었을 때가 어두운 밤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부지런히 효행(孝行)을 닦아서 부모를 효도로써 받들어 모시면 공불(供佛)하는 것과 복이 같을 것이니 이와 같이 부모의 은혜를 갚으라]하셨다


(十) 이종회향(二種廻向)


자기가 닦은 선근공덕(善根公德)을 돌리어서 다른 중생에게나 자기의 보리열반(菩提涅槃)에 취향(趣向)하는 것을 회향(廻向)이라고 하고 또 망자(亡子)를 위하여 선근(善根)을 닦는 추선(追善)도 회향이라 하는데 이 회향에 왕생회향(往生廻向) 환상회향(還相廻向)의 두 가지가 있다.

 

(-)왕생회향(往生廻向)은 자기가 닦은 선근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회시(廻施)하여 다른 중생과 함께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염불할 때에 발원이 없이 염불하거나 세간의 탁복(濁福)을 발원하여 염불하거나 세간 탁복과 극락왕생을 혼동하여 발원 염불하면 극락에 왕생하기 어려우니 단지 왕생만 발원하여 염불하고 그 공덕을 극락에 회향하여야 왕생이 쉽고 품위(品位)도 높을 것이며, 설사 그릇 악행(惡行)을 지었더라도 성심(誠心)으로 참회하고 상속심(相續心)을 끊으면 참회하는 힘이 능히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니라.


(=)환상회향(還相廻向)은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일체 공덕을 성취하고 다시 사바세계에 돌아와서 중생을 제도하여 불도(佛道)에 향하게 하는 것이다.


(十日)염불인(念佛人)의 신광(身光)


[정토첩요(淨土捷要)에는 대아미타불경(大阿彌陀佛經)에 말씀 하시기를 [염불하는 사람은 四十리(里)광명(光明) 몸빛이 있어 마(魔)가 능히 범치 못한다]하셨고, [비장지남(秘藏指南)]에는 [중국 동성(桐城)의 두 사람이 함께 객지에 갔다가 한 사람이 객사하매 그 동행(同行)이 장사를 치룬 뒤에 그 유산을 갖고 망자의 집에 가서 그 처에게 부음(訃音)과 유산을 전하였더니, 그 미망인이 부음을 전한 동행에 대하여 자기 남편을 살해(殺害)한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하거늘 그 동행은 대단히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망자(亡者)의 영전에 가서 자기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니, 망자의 귀신이 이 말을 듣고 동행의 억울함을 변명하기 위하여 망자의 귀신이 동행과 함께 집으로 가는 도중에 동행이 우연히 아미타불을 한번 염불하였더니 귀신이 크게 소리 질러 말하기를 [어찌하여 광(光)을 놓아 나를 무섭게 하는가]하니 동행이 또 한 번 염불하니 귀신이 무서워하면서 [네가 한 번 염불하는데 네 가슴에서 별안간 십여장)十餘丈)이나 되는 오색광(五色光)이 나와서 내 마음과 눈을 어지럽히고 아찔하게 하니 다시는 너와 같이 갈수 없으므로 네가 혼자 내 집에 먼저 가서 내 처를 나에게 보내면 내가 너의 억울함을 잘 설명하겠노라]하였다.

 

 그 후 그 동행은 깨닫고 출가하여 고승(高僧)이 되었다]고 하였다

 
 

제 六장 연종(蓮宗)의 원섭(圓攝)과 염불공덕(念佛功德)


一. 연종일문(蓮宗一門)이 일체법문(一切法門)을 원섭(圓攝)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여섯 자(字)의 만덕홍명(萬德洪名)이 일체법문(一切法門)을 원섭(圓攝)한다. 그러므로 우익대사(藕益大師)는 [삼장(三藏)십이부경(十二部經)의 교리(敎理)와 선종(禪宗)의 천칠백공안(千七百公案)이 그 속에 있고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과 삼취정계(三聚淨戒)도 그 속에 있다]하였고, 연지대사(蓮池大師)는[일구(一句)아미타불 팔교(八敎)를 해라(該羅)하고 오종(五宗)을 원섭(圓攝)한다]하였다.


二 염불공덕(念佛功德)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여섯 자(字)의 공덕은 다음과 같다.


[나(南)는 항하사성공덕(恒河沙聖功德)이 구족(具足)하다.

[무(無)는 돌아간 七대(代)웃조상이 고(苦)를 여의고 낙(樂)을 얻는다.

[아(阿)는 삼십삼천태허(三十三天太虛)가 진동(震動)한다.

[미(彌)는 무량억겁생사(無量億劫生死)의 죄가 단번에 없어진다.

[타(陀)는 八萬四千마군(魔群)이 갑자기 없어진다.

[불(佛)은 八萬四千 무명업식(無明업業識)이 한꺼번에 없어진다.


염불하는 사람은 현세와 내세에 열 가지 공덕을 얻는 것이니 다음과 같다.


(-)모든 하늘의 큰 힘 있는 신장(神將)과 그 권속(眷屬)이 밤낮으로 형상(形狀)을 숨겨서 염불하는 사람을 지켜 보호한다.

(=)관세음보살 같은 스물다섯의 큰 보살과 일체 보살이 항상 염불하는 사람을 따라서 지켜 보호 하신다.

(三)모든 부처님이 밤낮으로 항상 염불하는 사람을 호념(護念)하시고 아미타불이 광명을 놓으셔서 섭수(攝受)하신다.

(四)야차(夜叉)나찰(羅刹)과 같은 일체악귀(一切惡鬼)가 해치지 못하고 일체독사(毒蛇)독룡(毒龍)독약(毒藥)이 침범하여 해를 끼치지 못한다.

(五)화재(火災)水災)원적(怨賊),칼 화살 옥(獄)에 갇힘과 형구(形具)와 수갑(手匣)을 채우는 것과 비명(非命)에 죽는 것 잘못 죽는 것 등을 모두 받지 아니한다.

(六)지은 죄가 사라져 없어지고 전에 생명을 살해하였더라도 다 벗어나 다시 마음에 생각이 얽매이지 않는다.

(七)꿈을 정직하게 꾸고 또 아미타불의 뛰어나게 기묘한 색신(色身)을 뵈옵는다.

(八)마음이 항상 기쁘고 얼굴빛이 윤택하며 기력이 충실하고 하는 일이 모두 길(吉)하고 이(利)하다.

(九)일체 세간 사람들이 부처님께 공경 예배하는 것과 같이 염불하는 사람에게 공경 예배한다.

(十)임종시에 마음에 두려운 생각이 없고 정념(正念)이 앞에 나타나서 아미타불과 여러 성자(聖者)의 보살이 금대(金臺)를 가지고 오시고 임종하는 사람이 극락에 왕생하여 미래세(未來世)가 다 하도록 뛰어나게 기묘한 낙(樂)을 받는다.


고성염불(高聲念佛)의 열 가지 공덕은 다음과 같다


(-)능히 잠을 밀어내어 없앤다.

(=)천마(天魔)가 놀라서 두려워 한다.

(三)소리가 시방(十方)에 두루 가득 찬다.

(四)삼도(三途)가 고(苦)를 쉰다.

(五)바같 소리가 들어오지 않는다.

(六)마음이 흩어 지지 아니한다.

(七)용맹(勇猛)하게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고 나아가게 한다.

(八)제불(諸佛)이 크게 기뻐하신다.

(九)삼매(三昧)가 앞에 나타난다.

(十)정토에 왕생한다.


염불공덕과 보살공덕의 비교(比較)


[지장십륜경(地藏十輪經)]에는 [一百겁(劫)관세음보살을 염불하는 것이 일식경(一食頃)지장보살을 염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였고,


 [석정토군의론(釋淨土群疑論)]에는 [다겁(多劫)중에 지장보살을 염불하는 것이 아미타불의 일성(一聲)을 염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였다.


 [귀원직지(歸元直指)에[사천하(四天下)의 칠보(七寶)로써 불, 보살, 연각 성문 등에 공양하는 것이 사람에게 염불일성(一聲)을 권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였다.


 [악방문류(樂邦類)]에 [만약 사람이 사사(四事)곧 음식 의복 와구(臥具곧 住處를 말함) 탕약(湯藥)등의 지극히 좋은 물건으로써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중에 있는 아라한(阿羅漢)벽지성인에게 공양하는 것이 합장(合掌)하고 염불일성(一聲)을 부르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였다.


 [열반경(涅槃經)]에 [한 달 동안을 의식(衣食)으로써 일체 중생에게 공양하는 것이 일념(一念)염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였다


염불 공덕과 독경(讀經) 문경(聞經) 강경(講經) 공덕의 비교(比較)


염불 공덕과 독경수도(讀經修道)공덕에 비교하면 염불 공덕이 가장 많은 것이다.

 염불 공덕을 문경(聞經)공덕에 비교하면 염불 공덕이 백천만(百千萬) 배가 많다.

 [관경(觀經)]에 [하품하생인(下品下生人)이 명종시(命終時)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십이부경제목(十二部經題目)을 설법하는 것을 들으면 천겁죄(千劫罪)를 없애 버린다 하고 지자(智者)가 아미타불 十구(口)를 가르쳐 염불하면 八十억億겁(劫) 생사(生死)의 죄를 없애 버린다]하였다.


 염불 공덕을 강경(講經) 공덕에 비교하면 염불 공덕이 百千萬 배가 많다 강경(講經)은 돈을 세는 것과 같고 염불은 돈을 쓰는 것과 같으니, 돈을 세는 것은 비록 많아도 빈고(貧苦)를 제하지 못하고 전에 지은 죄가 없어지지도 아니하며, 공덕도 되지 아니하나 돈을 쓰는 것은 비록 많지 아니하여도 능히 신명(身命)을 구제하고 공덕을 얻는 것이 무량한 것이다.

제 七장  제사(諸師)의 법어(法語)와 연종(蓮宗)과 선종(禪宗)


一. 제사(諸師)의 법어(法語)

 

제사(諸師)가 칭명염불법(稱名念佛法)에 대하여 불법을 설(說)한 중에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선도대사(善導大師)의 말


선도대사는 염불수행에 대하여 전수(專修) 무간수(無間修)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전수(專修)]

중생이 업장(業障)이 두텁고 경(境)은 가늘며 마음은 미하여 관법(觀法)을 성취하기가 어려우므로 대성(大聖)이 이를 불쌍히 여기사 명호(名號)만 오로지 생각함을 권하셨다.

 이것은 이름은 부르기 쉽고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함이 잘 되어서 곧 왕생하게 되는 것이니 능히 염념(念念)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여 명(命)이 마칠 때가지 반드시 됨을 기약하면 열이면 열이 왕생하고 백이면 백이 왕생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깥의 잡연(雜緣)이 없어서 정념(正念)을 얻게 되고 부처남의 본원(本願)에 서러 맞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순종(順從)하는 까닭이니 이것을 전수(專修)라 한다.

 

 그러나 만약 전수(專修)를 버리고 여러 가지 업(業)을 닦아서 왕생을 구하는 이는 백(百)에 하나나 둘이고 千에 三, 四인 밖에 왕생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잡연(雜緣)이 어지럽게 일어나서 정념(正念)을 잃고 부처님의 본원(本願)과 서로 맞지 못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고 부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계념(繫念)이 계속하지 못하고 염불을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여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마음이 없고 비록 업행(業行)은 있으나 항상 명리(名利)와 서로 맞고 잡연(雜緣)에 접근하기를 좋아하여 정토에 왕생함을 스스로 장애(障碍)하는 까닭이다.


 [무간수(無間修)]

 몸으로는 오로지 아미타불께만 예배하고 다른 예배는 섞지 아니하며 입으로는 오로지 아미타불만 부르고, 다른 명호(名號)는 부르지 아니하고 다른 경은 읽지 아니하며 뜻으로는 오로지 아미타불만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섞지 아니하며 만일 탐(貪) 진(瞋) 치(癡)를 범하였거든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곧 참회하여 항상 청정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무간수(無間修)니라.


(2). 영명대사(永明大師)의 말


행자(行者)가 일심(一心)으로 삼보(三寶)에 귀명(歸命)하고 보(報)가 끝나도록 정진(精進)하여 닦되, 앉고 누울 때에 얼굴을 항상 서쪽으로 향하고 행도(行道)예배할 때나 염불 발원할 때에 지성으로 간절하게 하고, 다른 생각은 없는 것이 마치 형장(刑場)에 나갈 때와 같이 옥중에 갇혔을 때와 원수에게 쫒길 때와 수화(水火)의 재난을 만났을 때와 같이, 일심(一心)으로 구원을 구하되 빨리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 무생(無生)을 증(證)하기를 원하며 함령(含靈)을 널리 제도하고 삼보(三寶)를 융숭(隆崇)하며 사은(四恩)갚기를 서원(誓願)할 것이다.

 

 이와 같이 지성을 다하면 허사가 되지 아니하려니와 만일 말과 행이 일치하지 아니하며 신(信)과 원(願)이 가볍고 적어서 염념(念念)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는 마음이 없고 자주 자주 끊어지면서 임종시에 극락에 왕생하기를 바라면 업장(業障)이 가려져서 선우(善友)를 만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이 괴롭게 굴어 정념(正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이 인(因)이요 임종이 과(果)가 되는 것이니 인이 실하면 과가 허하지 않는 것이 마치 소리가 화(和)하면 울리는 소리가 순하고 형상(形狀)이 곧으면 그림자가 단정한 것과 같은 것이다.


(3). 연지대사의 말


요점만 가려서 정확하게 말하면 마음을 단정히 하고 악을 멸하면서 염불하는 이를 선인(善人)이라 하고, 마음을 섭수(攝受)하고 산란(散亂)을 제하면서 염불하는 이는 현인(賢人)이라 하고, 마음에 깨닫고 혹(惑)을 끊으면서 염불하는 이를 성인(聖人)이라 한다.


 세상 사람은 누구를 물론하고 모두 염불할 수 있으니 염불 법문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물을 것 없이 일심으로 염불만 하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인즉 한 사람도 염불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


 가령 부귀한 사람은 의식이 넉넉하니 염불하기 좋고 가난한 사람은 집이 작고 성가심이 적으니 염불하기 좋고 자손이 있는 사람은 나의 힘을 덜어 주니 염불하기 좋고 자손이 없는 사람은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으니 염불하기 좋고 무병한 사람은 몸이 건강하니 염불하기 좋고 병 있는 사람은 죽을 때가 가까운 줄 아니까 염불하기 좋고

 

한가한 사람은 마음이 번거롭지 아니하니 염불하기 좋고 바쁜 사람은 바쁜 중에라도 틈을 탈 수 있으니 염불하기 좋고 출가한 사람은 세간을 뛰어 났으니 염불하기 좋고 집에 있는 사람은 이 세계가 화택(火宅)인 줄을 아니 염불하기 좋고 총명한 사람은 정토 일을 잘 아니 염불하기 좋고 어리석은 사람은 별로 능한 것이 없으니 염불하기 좋고 계행을 가지는 사람은 계행이 불법이니 염불하기 좋고 경을 읽는 사람은 경이 부처님의 말씀이니 염불하기 좋고 참선하는 사람은 선(禪 )이 부처님의 마음이니 염불하기 좋고 깨달은 사람은 불도를 증(證)하였으니 염불하기 좋은 것이다.


(4). 우익대사(藕益大師)의 말


염불공부는 다만 진실한 신심(信心)이 귀중한 것이니

첫째로 나는 앞으로 될 불(佛)이요, 아미타불은 이미 이루어진 불(佛)로서 그 체(體)가 둘이 아닌 것인 줄을 믿을 것이고, 둘째로 사바(娑婆)의 고(苦)와 극락(極樂)의 낙(樂)을 믿어서 고를 싫어하고 낙을 구할 것이고, 셋째로 지금의 일거일동이 모두 서방극락세계로 회향(廻向)할 수 있음을 믿을 것이다.  


 만일 회향하지 아니하면 비록 상품선(上品善)이라도 왕생하지 못하고 회향할 줄 알면 비록 악행(惡行)을 지었더라도 빨리 상속심(相續心)을 끊고 참회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참회하는 힘만으로도 능히 왕생할 수 있거늘, 하물며 계(戒)를 가지고 복을 닦는 등 여러 가지 승업(勝業)으로 어찌 정토에 왕생하지 못할 이(理)가 있으랴.

 

 염불 일문(一門)이 百千법문(法門)을 원섭(圓攝)하는데 염불이 정행(正行)이 되고 계(戒) 정(定) 혜(慧) 등이 조행(助行)이 되어 정(正) 조(助)를 합행(合行)하며 순풍을 만난 배와 같을 것이고, 다시 판삭(板索: 곧 널빤지와 밧줄)을 가하면 빨리 저 언덕에 이를 것이다.

 

 염불의 법이 비록 많으나 지명염불(持名念佛)이 가장 간편하고 지명염불법 중에도 기수념(記數念)이 더욱 좋으니라.

 

 자력(自力)으로 혹(惑)을 끊고 생사(生死)를 벗어나는 것을 수출삼계(竪出三界)라 칭하니 일이 어렵고 공(功)이 차차 이루어지는 것이고, 불력(佛力)으로 접인(接引)하여 서방에 왕생하는 것을 횡초삼계(橫超三界)라 칭하니 일이 쉽고 공(功)이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다.


혜원조사(慧遠祖師)는

“공(功)이 높고 낳기 쉽기로는 염불이 첫째라” 하였고 경(經)에는 “말세에는 億億 사람이 수행하여도 성도하는 사람이 드물거니와 오직 염불을 의지하면 도탈(度脫)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는 마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 같아서 공력(功力)이 들지 아니하는 것인데 능히 서방의 지름길을 열성 있고 진실하게 믿고 지성으로 발원하며 일심으로 염불하여 왕생을 구하는 이는 참으로 대장부(大丈夫)라 하려니와 만약 참되지 못하고 원(願)이 간절하지 못하며 행(行)에 진력하지 아니하면 이는 부처님의 대자비(大慈悲)로 주시는 배에 중생이 타기를 즐겨 하지 않는 것이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라 윤회(輪廻)하는 고를 빨리 벗으려면 지명염불(持名念佛)하여 극락에 왕생함을 구하는 것이 가장 좋고 극락에 왕생코자 하면 신(信)을 전도(前導)로 하고 원(願)을 후편(後鞭)으로 함이 가장 필요하니라.

 신(信)이 결정되고 원(願)이 간절하면 흩어진 마음으로 염불하여도 반드시 왕생할 수 있거니와 신이 진실치 못하고 원이 지극하지 못하면 일심으로 염불하더라도 왕생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信)이란 것은 (1).아미타불의 원력(願力)을 믿고 (2).석가모니불의 교어(敎語)를 믿고  (3).육방(六方)제불(諸佛)의 찬탄(讚歎)을 믿는 것이니 세간의 성인(聖人)군자(君子)도 헛된 말이 없거늘 하물며 아미타불 석가모니불고 육방 제불이 어찌 헛된 말이 있으랴 이것을 믿지 아니하면 참으로 구(救)할 수 없는 것이니라.


원(願)이란 것은 일체 시중(時中)에 사바(裟婆)에서 생사(生死)하는 고를 싫어하고 정토에서 보리(菩提)의 낙(樂)을 좋아하며 선악(善惡)의 지은 바를 따라서 선(善)은 회향(廻向)하여 왕생하며 악(惡)은 참회하여 왕생을 바라고 다시 두 뜻이 없을 것이니, 신과 원이 구비하면 염불은 정행(正行)이 되고 악을 뉘우치고 고치면 선을 닦는 것이 모두 조행(助行)이 되어 공행(功行)의 깊고 얕음을 따라서 구품(九品) 사토(四土)를 나누어 왕생하게 되는 것이다 .

 

 만약 깊은 신심과 간절한 원력(願力)으로 염불하면서도 염불할 때에 마음이 흩어져 어지러운 이는 하품하생(下品下生)에 날 것이고 염불할 때에 흩어져 어지러운 마음이 점점 적어진 이는 하품중생(下品中生)에 날 것이고 염불이  사일심불란에 이르러 먼저 견혹(見惑) 사혹(思惑)을 끊고 또 능히 무명(無明)을 복단(伏斷)하는 이는 상삼품생(上三品生)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信), 원(願) 으로 지명염불하는 이는 능히 구품(九品)에 왕생함이 틀림없고 또 신, 원으로 지명염불하여 업장(業障)을 없애고 혹(惑)을 띠고 왕생하는 이는 범성동거정토(凡聖同居淨土)에 날 것이고 신, 원으로 지명염불하여 견혹 사혹을 모두 끊고 왕생하는 이는 방편유여정토(方便有餘淨土)에 왕생하고 신, 원으로 지명염불하여 일분(一分) 무명(無明)을 깨뜨린 이는 실보장엄토(實報莊嚴土)에 왕생하고 신, 원으로 지명염불하여 구경(究竟)의 곳(處)에 들어가 무명을 단진(斷盡)한 이는 상적광정토(常寂光淨土)에 왕생할 것이니 그러므로 지명염불이 능히 사토(四土)를 정(淨)하는 것이 또한 틀림없는 것이다.


(5). 육조대사(六朝大師)


[선정쌍수집요(禪淨雙修集要)]에는 옛 적에 한 사람이 육조대사(六朝大師)에게 묻기를 “염불에 무슨 이익이 있나이까.” 하고 묻는 말에

 

육조대사는 “일구(一句)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것이 만세(萬世)의 괴로움을 뛰어나는 묘도(妙道)요, 불(佛)을 이루고 조(祖)가 되는 정인(正因)이요, 삼계(三界)인천(人天)의 안목(眼目)이요, 마음을 밝히고 성(性)을 보는 혜등(慧燈)이요, 지옥을 깨뜨리는 맹장(猛將)이요, 많은 올바르지 못한 것을 베는 보검(寶劍)이요, 五千대장(大臧)의 골수(骨髓)요, 팔만총지(總持)의 중요한 길이요, 흑암(黑暗)을 여의는 명등(明燈)이요, 생사(生死)를 벗어나는 양방(良方)이요, 고해(苦海)를 건너는 타고 가는 배요, 삼계(三界)에 뛰어나는 지름길이요, 최존(最尊) 최상(最上)의 묘문(妙門)이며, 무량무변(無量無邊)의 공덕이니라. 이 일구(一句)를 기억하여 염념(念念)이 항상 나타나고 시시로 마음에 떠나지 아니하여 일이 없어도 이와 같이 염불하고 일이 있어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안락할 때도 이와 같이 염불하고 병고(病苦)가 있을 때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살았을 때에도 이렇게 염불하고 죽어서도 이렇게 염불하여 이와 같이 일념(一念)이 분명하면 또 무엇을 다시 남에게 물어서 갈 길을 찾으랴. 이른 바 일구미타무별념, 불로탄지도서방(一句彌陀無別念,不勞彈指到西方)이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