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향기/가피와 영험록

관세음보살염불의 영험실화 모음

慧蓮혜련 2009. 4. 22. 09:16

80년대 초반으로 생각이 된다.

어머니께서는 자식인 본인(카페필명 사천왕)의 하는 일이 잘 되라고 멀리 수안보의 덕주사에 불공을 드리러 다니시곤 하였다.

어느날 어머니는 주지스님을 모시고 충주에 사는 사촌 여동생과 함께 덕주사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비가 많이 왔는데, 동문(東門)옆의 개울을 건너려고하자 물이 불어서 허벅지 이상 차고, 물살이 매우 거세었다.

스님과 어머니는 겨우 개울을 건넜는데, 이모는 개울에서 넘어져 그만 물에 쓸려 떠내려가게 되었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기막힌 일이라, 어머니는 울면서 스님과 함께 냇물을 따라 내려갔다.

오직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1km 이상 내려가서 입구 화장실이 있는 곳 부근에 다다랐을 때, 천만 다행으로 이모는 얼굴만 약간 긁혔을 뿐, 다치지않고 나무뿌리를 잡은 채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어머니와 스님은 이모를 구하여 무사히 절로 올라올 수 있었다.

이모는 빠른 물살에 발을 헛디뎌서 떠내려가게 된 것이다. 골짜기 물은 경사도 심하고 물살이 몹시 빠르며 바닥에 바윗덩어리가 수없이 돌출되어 있어서, 이같이 떠내려가게 되면 흔히 머리가 깨지고 온몸이 부서져서 살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모님이 물에 떠내려 갈 때 누군가 떠내려가는 이모님을 꽉 붙들어서 껴안더라는 것이다. 이 껴안은 분은 계속 껴안은 채 떠내려가다가 갑자기 이모님을 물의 갓 쪽으로 밀쳐 내었다. 갑자기 갓 쪽으로 밀쳐내자 이모는 개울가에 있는 나무뿌리를 웅켜 쥐고 살려달라고 소리치면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이 같은 이야기를 듣고 아마도 『관세음보살보문품(관음경)』에 큰 물에 떠내려가도 보살님을 염하면 보살님이 얕은 곳을 얻게 한다는 경전 말씀이 사실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출처: 산림불교(cafe.naver.com/buddhistforest)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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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주에서 대학을 다닐 때 형편이 어려워, 수동 용화사에 1년간 학생법회를 보아주면서 지낸 일이 있다.

당시 함께 계시던 대원스님이 자신이 겪은 영험담을 말해 주었다.

이 스님은 6.25 당시 청주 사직동에 있는 구 용화사에 계셨는데, 미군기가 이 구용화사를 폭격하여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고, 자신은 폭탄의 바람에 날려 뚝을 넘어 무심천 물위로 날아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물이 별로 많지 않은 곳에 떨어졌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은 기적적으로 다친 데가 없었다.

자기는 늘 관세음보살을 염하였는데, 그 영험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내 추측으로는 최소한 50-150m 정도는 날아갔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이는 관음경에 있는 대로 불에 들어가도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한 경우로 생각되었다.

『현장삼장전』에는 현장법사가 엄빈국이라는 곳에서 노승의 병환을 치료해 주고 노승으로부터 반야심경을 받았다고 하며 이후 많은 가피력을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양사람들 중에도 위급한 경우 Avalokitesvara(아발로키테스바라: 관세음보살)를 염하여 많은 사람들이 위급에서 벗어난 영험을 얻었다고 한다. 이차대전 당시 독일의 유태인 수용소에 갇혀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늘‘관세음보살(아발로키테스바라)를 외웠는데, 기적적으로 죽음에서 면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을 염하여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세음보살님의 도움을 받은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사실 필자가 이 회보를 지금까지 계속 발간할 수 있었던 것도 관세음보살님을 염불한 가피가 아닐까하고 늘 생각하고 있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고 나 자신에게도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 천태종의 교세가 급격이 확대되는 이유 중 하나는 관세음보살 신앙을 존중함에 있다고 보여진다.


출처: 산림불교(cafe.naver.com/buddhistforest) 제25호 사천왕님글 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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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님을 부른 영험

-글쓴이 : 모이-

나무대자대비 원력홍심 구고구난 관세음보살마하살

처음은 불교를 입문하기전 절을 다니고싶다는 마음만 가득할때 아마 그때는
부산에 살면서 범어사라든가 통도사에 절에가기만 했지 법당에 들어가 참배
하는법도 몰라 멀건히 법당 문앞에 서서 부처님만 쳐다보고 있으려니
지나가는 스님께서 들어가서 절을해도 된다는 말씀에 아무도 안볼때 얼른
들어가서 절을 한번하고 나오는데도 누가 날 볼까봐 후닥닥 뛰쳐 나왔던
기억이 나는데 그시절에 집을 이사하게되어서 이사하고 이틀째되는 날...

잠을 자다가 눈을 떴다 나 혼자 자는 방에 저만치 구석에 왠 여자의모습이
위에옷은 흰색부라우스에 검정치마를입고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잠결이지만 그럴리가 없으니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 재확인을하고
잠을 자야할것 같아서 마음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눈을 떴다 그런데...

종전 모습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었다
재차 확인했을때는 확~ 무서움이 덮쳐서 몸을 꼼짝달싹 할 수없었다 귀신을
본것이다 확실하게... 확인까지하면서 눈을 딱 감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려
하는데 말이 안나온다.

목이 막혀 얼굴에 온힘을 주는데도 "관"자도 말이 혀가 굳어서 안나오는데

각...가...관...세...음...보...살 있는 힘을다해 토해내듯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정신을 바짝차리고 일념으로 한참 부르고 나니
얼마나 불렀는지 한참만에 마음이 진정되고 편안해진 다음에 살그머니 눈을
떠 보았다

날 바라보던 귀신이 없어졌다 방 한가운데 누어있던 나는 일어나서 불을
키고 시계를 바라보니 한밤중 2시, 불을켠채 다시 잠들어 아침에 일어났다.

지금부터 25년전 기억이다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어떻게 알고 불렀는지
모른다 정식으로 절에 다니기 전이라서 관세음보살 염불을 해본적이 없는데.

그집은 일제시대 일본사람이 살던 적산가옥이라 집이 음기가 돌고 집터가
센 그런 집이어서 난 셋방으로 이사갔지만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그집 주인
은 이사와서 3일만에 부인이 말도 못하고 죽었다했다.

귀신한테 붙잡혀 죽을 뻔한건데, 관세음보살 명호를 부른공덕으로
아직 난 살아있어서 이글을 올림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마하살......

초발심전의 영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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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여름, 인천 앞바다에 큰 태풍이 불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경기도 화성 신흥사에 다니는 한 거사님이 그 현장에 있었다고 합니다. 거사님은 풍랑이 너무 심해 자기 배가 떠내려 갈 것 같아 밧줄을 잡아매는 도중에 밧줄을 파도에 놓쳐버렸다고 합니다. 밧줄을 놓쳐버리고 나자 거사님의 몸이 큰 파도에 휩쓸려 가는데, 그 위급한 순간에 관세음보살님을 정신없이 불렀다고 합니다.

그 거사님의 어머니께서 독실한 불자였기 때문에 늘 입으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염불을 했었는데, 그 거사님도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하시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배웠던 것입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극한 상황에서 거사님은 얼마나 간절하게 불렀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파도에 떠밀리면서 물에 휩쓸려 들어가기 직전 그 절 부처님이 그 거사님 곁을 휙 스쳐지나가더랍니다. 바로 그 순간 다시 밧줄이 파도에 떠밀려 자기 앞으로 오게 되었는데, 거사님은 순간적으로 그 밧줄을 다시 잡게 되었고 그 거사님은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그 거사님이 죽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이 사례와 비슷한 내용이 법화경 제25품인 관세음보살 보문품(관음경)에 있습니다.

"가령 폭풍이 일어 배가 나찰귀들의 나라에 들어갔을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나찰의 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위급한 상황을 나찰로 이해한 것입니다.


출처: 대흥사 홈페이지 http://www.daeheungsa.com 한북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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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통도사에서 나오는 사보로 '등불’이라는 잡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나오는지 어쩐지 모르겠습니다.

그 잡지에는 신도들의 영험록을 정기적으로 싣고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18살 된, 한 신도의 딸이 무단히 시름시름 아픈 것이었습니다. 딱히 어디가 아프다는 말도 할 수 없이 식욕을 잃고 삐쩍 마르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이 사람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으나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지 못했습니다. 용하다는 의사라면 양의·한의를 불문하고 다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병의 차도는 보이지 않고 점차 건강이 더 나빠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죽어가고 있던 중 기왕 죽을 거면 기도나 한 번 해보고 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100일 관음기도였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오직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자면서도 관세음보살, 깨어서도 관세음보살, 걸어가며 관세음보살, 절을 하며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모진 게 사람의 목숨이라,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삐쩍 말라 있었지만 용케 100일을 견뎌냈습니다.

100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던 처녀가 잠시 졸았던지 하얀 옷을 입은 귀부인이 한 분 나타났습니다. 그 부인은 옷을 아주 잘 차려입었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전설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천녀들이 입는 하늘거리는 의상이나 한복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양장이나 정장 정도로 기억합니다.

그 귀부인은 약병 하나를 손에 쥐어주며 이 약을 먹으면 나을 거라고 말을 하더랍니다. 그 병에는 영어로 뭔가가 써져 있었는데, 몸이 아픈 그 처녀는 약병에 붙어있는 그 이름을 읽어 기억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녀의 가족들은 백방으로 수소문하였으나 그 약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약을 구할 수 없어 깊이 낙담하고 있었습니다.

꿈꾼 지 일주일 쯤 지난 날, 몸이 아픈 처녀는 미국에 유학 가 있는 오빠의 소포를 받습니다. 그 소포를 열어보았더니 놀랍게도 처녀가 꿈속에서 받은 그 약이 들어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포에는 오빠의 편지가 들어있었는데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오빠도 일주일 쯤 전 어느 날 밤늦게 공부하다가 잠이 와서 책상에 앉아 잠시 졸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난 데 없이 하얀 옷을 입은 한 부인이 나타나 말을 하는데, 어느 병원에 가면 이러이러한 이름의 약이 있는데, 그 약을 빨리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보내주라는 내용이었답니다. 정신을 차렸으나 여느 꿈과 달리 마치 생시를 본 것처럼 선명하였답니다.

다음날 아침, 꿈에서 가르쳐준 병원으로 가서는 이러이러한 약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의사는 깜짝 놀라며 그 약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문하더랍니다. 처녀의 오빠는 꿈 이야기를 하고, 한국에 있는 여동생이 이러이러한 증상으로 시름시름 앓아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마지막으로 지금 100일 기도를 하는 중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인 의사가 말하기를, 이 약이 막 개발되어 아직 시중에는 유통이 되지 않고 있고, 이제 처음으로 이 약을 내놓는 것인데 이 약을 찾는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여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랍니다. 더구나 이 약은 여동생이 앓는 것과 같은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처녀의 오빠는 그 의사의 도움으로 약을 구해서 서둘러 사연을 적어 한국으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약을 먹은 처녀는 하루하루 병세가 호전되더니 마침내 병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20년 쯤 전에 본 내용이라 세세한 표현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강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워낙 충격적인 글이어서 오랜시간 제 기억의 바다에 그렇게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출처: 대흥사 홈페이지(www.daeheung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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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창시절 영주 관음사에서 한 철을 보낸 적이 있다.

그 때 창건주 노보살님 한 분이 당신의 관세음보살 영험담을 자주 들려주셨다.

한 때 당신의 외아들이 노름에 빠져 제 정신이 아닌 적이 있었다. 초저녁에 십만원을 가지고 가서 몽땅 잃고, 두 번째도 만회를 실패하고, 세 번째 찾아왔길래 노보살님이 아들한테

“ 이제는 나를 죽여도 더 이상 돈을 못 주니 알아서 해라”고 말하고, 워낙 분하고 원통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관음주력을 약 한 시간 반이나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잠에 빠져 들었다고 했다.

이때 꿈에서 고깔 쓴 할머니가 나타나더니 돼지새끼 세 마리를 “옛다!” 하면서 던지는데 한 마리는 치마폭에 싸이고, 한 마리는 무릎에 떨어졌다 방바닥으로 구르고, 마지막 한 마리는 방바닥에 바로 떨어졌다.

이 보살님이 약 두세 시간 잠을 자고 깨어보니 어느덧 새벽인데 조금 있으니까 아들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여기 있소”하면서 십만 원짜리 세 뭉치를 던지는데, 한 뭉치는 치마폭에 떨어지고, 또 한 뭉치는 무릎을 맞고 방바닥에 떨어지고, 마지막 한 뭉치는 바로 방바닥에 떨어지더란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날 이후 아들은 노름하는 버릇을 완전히 끊었다고 했다.

오늘도 살아계신 관세음보살님은 지척에서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신다.


출처: www.amita.net 영락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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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 옥천사(玉泉寺)에 담력도 크고 가끔씩 괴이한 행동을 하는 오관수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은 6.25사변말기에 포탄이 떨어지는 일선쪽으로 가서 군인들을 돕는 노무자들과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 속에서 동사섭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스님은 같은 노무자가 되어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모두 함께 장단을 맞추어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일합시다.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동안에는 틀림없이 무사할 수 있습니다. "

총알과 지뢰와 포탄 속에서 벌벌 떨고 있던 노무자들은 범상치않은 오관수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삽질을 하면서도 '관세음보살' 포탄을 나르면서도 '관세음보살'을 외쳤습니다.

이렇게 소리를 맞추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하다보니, 얼마 지나지않아 불안감이 사라졌고 두려움없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의 능률이 올랐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두가 포탄이나 지뢰의 피해를 한 차례도 입지않았다고 합니다.

6.25사변후 오관수 스님을 진주 의곡사에서 뵙게 되었을 때, 스님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체험을 했지. 그 많은 노무자들에게 어떠한 탈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말일세. 참으로 함께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공덕은 불가사의한 것이야."

출전: 우룡큰스님저 생활속의 관음경 (도서출판 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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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상 용 (부산 ㅇㅇ사 신도)

제가 배를 20년 이상 탔어도 풍파를 심하게 만난 적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동지나해를 비롯하여 동해, 서해, 남해의 여러 해역을 전전하며 어로작업을 하면서 몇번의 폭풍우와 풍랑을 당해보았으나 그때마다 100톤급의 배여서 다소는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990년 8월 14일 오후 3시경 동경 33°43′30″ 서경 126°45′50″ 해상에서 갑작스레 맞이한 돌풍은 마치 태풍과도 같아 우리 쌍용선단은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당시 선단 구성은 30톤 미만이 3척, 90톤이 2척이었습니다. 선단 중 한 척은 침수되어 한쪽으로 기울며 배가 넘어가기 시작하여 선원들은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제가 타고 있던 31쌍용호도 선상으로 바닷물이 얼마나 올라오는지 감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의 참 불제자가 되길 맹세합니다. 쌍용선단과 선원 44명 모두 무사하게 하여주십시요’ 하고 계속 관음정진을 하였습니다.

산더미같은 파도가 정말 삽시간에 성난 맹수처럼 우리들을 집어삼킬듯 요동쳤습니다. 기관실까지 물이 들어와 배는 바다 밑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기관실에서는 물퍼내는 기계(동키)를 계속 돌려 물을 퍼내면서 항해를 했습니다.

선장은 조타실에서 키를 잡고 있었고 나머지 선원들은 모두가 ‘풍파가 너무나 심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고 각자 침실에서 나와 선상 위 높은 곳이란 높은 곳은 다 찾아 저마다 올라갔습니다.

‘악마같은 저 폭풍우가 언제나 멎을까.’

금방이라도 삼킬듯이 날뛰는 성난 맹수같은 파도를 정신없이 바라보며 비를 홀딱 맞고 앉아 있는 것이 비오는 날 전신주에 제비가 비를 맞고 앉아 뭐라고 재잘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선원들도 비를 홀딱 맞으며 손으로 잡을 만한 곳은 모두 꼭 잡고 앉아 풍파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각자 자기들 나름대로 상념에 잠겨 있었습니다.

악마같은 파도, 배를 타보지 않고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 악마같은 풍파. 그 순간 모두가 ‘내가 어떻게 되면 우리 가정, 우리 식구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생각했겠지요. 이번에 무사히 육지에 도착하면 다시는 배를 탈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벼르며 ‘직업을 바꾸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천번, 만번 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인간이고 사람이기 때문에 그 순간만은 그런 생각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악마같은 파도, 말로써나 글로써는 그 고통받던 순간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조타실에서 그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계속 관음정진을 하며 ‘우리 쌍용선단이 무사히 육지에 도달하게 하여주십시요’ 하고 기원했습니다. 또 ‘부처님, 부처님의 참다운 불제자가 되겠습니다. 우리 선원들이 무사하게만 하여주십시요’ 하고 기도하며 입에 침이 마르고 목이 메이도록 계속 관음정진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수 시간, 우리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으로 풍랑 속에서 사경을 헤매다가 가까스로 육지에 다가갈 수 있었고 그러자 파도가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자대비하옵신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으로 가까스로 육지에 도달하는가’ 생각하니 관세음보살님의 고마움은 어머님의 따뜻한 마음에나 비할까 이루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정말 배를 타고 20년 이상 책임자로 다녔지만, 그렇게 험난한 풍파를 만났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였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습니다.

육지에 다달아 선원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짓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로장으로서도 아니고 책임자로서도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정말 얼마나 기쁜지 저는 저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주루루 흘렀습니다.

저는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심한 풍랑을 만났을 때 단 한 사람이라도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의 원력으로 풍랑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가슴 속에 되새겨보았습니다.

대자대비하옵신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으로 우리 모두는 육지 가까이 인도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관세음보살님의 고마움에 감동되었습니다. 우리들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이 없었더라면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고기밥이 되었을 것입니다. 선원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육지 가까이 와서 닻을 내리고 모두 환희의 기쁨으로 미소지을 수 있었습니다. 악몽같았던 그 순간을 잊어버린듯 선원들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파도에 휩쓸린 어구들을 손질하기 시작했습니다. 젖었던 손을 문지르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을 바라보니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이 그 얼마나 큰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잔잔한 바다는 관세음보살님이 미소짓고 있는 것같이 아름답게만 보였습니다.

저는 오늘도 대자대비하옵신 관세음보살님 가피의 고마움을 천번, 만번 되새기며 다시는 그런 악몽같은 풍랑을 만나지 않기를 관세음보살님께 계속 빌며 정진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님, 정말 감사합니다.’

출처: 인드라망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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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관음기도 도량이다.

이 곳을 구경하고 돌아오다가 거센 풍랑을 만났으나 관음기도 공덕으로 간신히 살아난 이야기가 있다.

일제시대 때의 일이다. 근대 우리나라 불교계의 석학 중에 유명한 권상로 박사가 있다.

이 분은 스님으로서 훗날 동국대학교 초대총장까지 지냈던 분인데 이 분의 친척으로 경북 선산군 해평에서 면장을 지낸 우용택이란 분이 있었다.

이 분이 어느 해 가을, 친구 몇 사람과 더불어 강화도 구경을 가게 되었다.

그들은 강화도의 명소인 마이산과 전등사 등을 구경한 뒤 마지막으로 관음기도 도량으로서 유명한 강화도 보문사를 구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삼산 나루터에서 목선을 타고 보문사에 도착하여 "굴법당 마애관음" 등을 구경한 뒤 다시 배를 타고 인천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인천으로 가던 중에 멀쩡하던 하늘에 갑자기 시커먼 먹구름이 뭉치더니 빗줄기가 쏟아지면서 돌풍이 일기 시작했다. 배는 거센 풍랑에 흔들리면서 기우뚱 기우뚱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배를 탄 사람들은 모두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게다가 산더미같은 파도가 계속 배를 때리자 배는 곧 부서질 듯 "우지직 우지직.." 하였으며 갑판 위로 바닷물이 쉴 새없이 넘쳐 들어왔다. 우용택의 일행을 비롯하여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정신을 잃었다. 그 중에는 살아보려고 배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 마냥 정신없이 엉엉우는 사람 등 갖가지였다.

그런데, 이처럼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데, 어디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간절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승객 중 한 사람이 거의 무아지경에 이른 상태로 오로지 '관세음보살'만을 칭념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 사람이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 풍랑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모두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십시오."

그리고는 또다시 목청을 높여서 외쳤다.

"이 곳 강화에는 낙가산 보문사가 있습니다. 이 곳에는 영험있는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니 우리가 정성을 다하여 모두 함께 관세음보살님을 부른다면 반드시 그 묘지력(妙智力)에 의하여 살아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이 끝나자 불교를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불교를 믿지않는 사람도 모두 동시에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이것 저것 가릴 사항이 아니었다.

배 안은 갑자기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염불소리로 가득하였다.

사실 우용택과 그 일행은 유생이었다.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관세음보살을 부르자니 선뜻 입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머뭇거리고 있는데 관세음보살을 부르라고 했던 그 사람이 우용택을 향하여 말하였다.

"노형,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부르십시오. 그러면, 필히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있을 것이니 어서 속히 부르십시오."

워낙 위기일발의 상황인지라 우용택 역시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풍랑은 심하게 몰아쳤다. 배는 곧 가라앉을 듯 더욱 더 기우뚱 기우뚱하였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도 정신이 들면 모두들 그 승객을 따라 더욱 더 소리높여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이 때 기적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높은 곳에 앉아서 '관세음보살'을 선창하고 있던 그 승객이 벌떡 일어나더니 우용택을 향하여 하늘을 가리켰다.

"저것 보시오."

우용택이 그의 손짓을 따라 하늘을 쳐다보니 오색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비치면서 그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현신한 것이었다.

배안의 모든 사람들은 '이젠 살았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순간에 또다시 산더미같은 파도가 배를 때려 돛대를 부러뜨렸다. 모두들 또 한번 '악'하고 절규의 소리를 질렀다.

'아, 이젠 정말 죽었구나. 관세음보살의 신통력도 별 수 없구나.'

우용택도 이렇게 생각하면서 너도 나도 살 궁리를 하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돛대가 부러진 뒤로는 그렇게 거세던 풍랑도 점점 약해지고 빗줄기도 가늘어지더니 언제 그랬냐는듯이 해가 나고 바다는 거의 평소처럼 정상이 되었다.

배는 폭풍을 만나 몇군데 부서진 곳이 있었으나 운행에는 큰 지장이 없었고 여러 사람들이 물을 퍼내고 힘을 합하여 무사히 인천항에 도착하였다. 그야말로 몇 시간 사이에 생사의 갈림길을 왕래하다가 간신히 죽음에서 살아난 것이었다.

그 후 관세음보살의 가피에 감탄한 우용택은 고향으로 돌아가 선산 도리사의 신도가 되었으며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모두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믿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당시 보문사에 와서 자주 관음기도를 하였으며, 우용택과 친척간이었던 권상로 박사가 김대은 스님께 이야기하여 김 대은 스님이 그의 저서 '관음신앙'에 수록하였던 것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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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성큰스님 (전 법주사 주지, 전 조계종 총무원장, 전 조계종 원로위원) 법문 중


삶이 힘들고 허망한 것이라 할 지라도 그 속에 무궁한 법이 있고 그 법을 알
면 최상의 열락이 있으니 열심히 참선하여 마음자리를 흐트리지 않도록 하십
시오. 그런 가운데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까 인연 얘기를 했지만 기도는 선한 인연을 만드는 불가해한 힘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자리에 좋은 인연의 씨가 싹트는 것입니다.


밥을 얻어 먹으며 안면도로 가다가 전쟁을 만나 다시 계룡산으로 돌아 왔는
데 나는 그 난리통에 기도의 인연으로 죽을 목숨이 살아나는 걸 체험했습니
다.

하나는 나의 얘긴데 인민군에게 잡혀 계룡면 면소재지의 좁은 방에 갇혔
습니다. 다른 곳에서 잡혀온 사람들 30여명이 그 좁은 방에 쪼그린채 닷새를
지냈는데 나는 관음주력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저 관음주력만 하며 닷새를 보내고 나니 해거름에 소장(지서장)이 나를 불러
절로 돌아가라더군요. 뒤 돌아볼 겨를 없이 절로 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어느
스님이 지서로 와서 사정사정한 덕에 내가 방면이 되었더군요.

나는 관음주력의 영험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 나머지 사람들은 공주로
끌고가 길에 죽 세워 놓고 따발총을 난사해 다 사살해 버렸다는 소식을 들으니 등에
식은땀이 흘러 내리더군요.

그런데 그 무자비한 사살에서 딱 한 사람이 살아났는데 그는 갑사 위에 사는
스님(대처승)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이 끌려간 후 아버지는 스님된 입장에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했겠습니까.

닷새밤을 지새운 아버지의 기도가 그 아들을 살렸는데 더 놀라운 것은 아들이
총알을 여섯군데나 맞았는데 모두 살갗을 스치기만 했더라는 것입니다.

전쟁통에는 그런 기적도 있는 것인데 나는 그 아버지의 기도가 아니었으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잡혀온 30여명 가운데 한사람은 잡혀 오자마자 어머니의 부음을 듣
고 풀려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대학생이었고 어머니는 신원사
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를 만나러 와 절에 있다가 인민군에게 잡
혔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이 잡혀가고 바로 타계를 했으니 어미의 목숨을 아들의
목숨과 바꾼 격이 아닙니까. 실로 눈물겨운 일이어서 잊혀지질 않습니다.

그 대학생의 형은 인민군에 잡혀 대전교도소에 있었는데 어느날 밤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내일 밖에 나갈일이 생기는데 나가는 즉시 뒤돌아 보지말고 도망가라”고
했답니다.

정말 아침이 되니 모두 마당으로 집합하라고 난리를 치는데 그 틈에 도망을 쳐서
살아났다는 얘기도 뒷날 들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지성으로 기도를 하고 몸을 버려
아들을 구했고 또 다른아들은 영혼이 되어서 구했던 셈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불가해한 인연의 힘인 것입니다.


칼로 자르듯 구분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내 마음자리를 편케 하는 것이 참선
이고 내 몸을 안위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둘다 중요한 불자들의 실천 사항입
니다. 누구에게나 성불의 가능성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루하루 마음자리를 잘 조절하여 편케하고 몸을 함부로 하지 아니하여 좋은 인연의
실체를 영위하는 지혜를 가꿔야 합니다.



출처: 현대불교신문(www.budhd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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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른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카페 靑松님 (2007.12.11) 글


한적한 시골길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친구가 애써 정비해준 나의 애마를 몰고 시운전을
나왔습니다.


왠지 모를 불안한 감정들을 뒤로하고 시속 90km가 넘은 찰나 갑자기 운전석이 주저앉더니
타이어가 빠져 나온 채, 차는 중앙선을 따라 방향을 잃은 채로 미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모르는 순간 관세음보살을 세 번 크게부르자, 제멋대로 미끄러지던 차는 멈춰섰습니다.

차의 방향이 도로 난간의 전주(전봇대)를 1m 앞에 두고말입니다.

전주 아래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낭떠러지였습니다.

1m만 더 나아갔으면 아무도 없던 한적한 도로에서 죽어갔을지 모를 일입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정말 믿을 수 없는 순간앞에서 또 한 번
관세음보살을 부릅니다.

워낙에 글솜씨가 없어서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간절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정말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함께하는 것 같습니다.

항상 마음속으로 버릇처럼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작은 습관들이 고통의 순간들에서
한없이 약한 나를 건져주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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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 양나라에 석혜간(釋慧簡)이라고 하는 스님이 있었다.
그 스님은 엄정하게 계율을 지키고 진실하게 공부를 하는 훌륭한 스님이었다.

어느 날, 형주 태수의 초청을 받고 그 지방의 관방에 갔는데, 청사 동쪽에는 외딴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귀신이 있어서 보통 사람이 감히 들어갈 수 없는 흉가였다.

그 말을 들은 혜간 대사는 자청해서 그 집에 들어가 보겠다고 하고 방 한켠을 치우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물러간 다음 혜간 대사는 방안에 향과 촛불을 켜고
조용히 관세음 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자정이 넘자 갑자기 눈이 없는 괴상한 사람 하나가 검은 옷을 입고
벽 가운데로부터 불쑥 나오더니 대사가 앉아 있는 문 앞에 와서 쪼그리고 앉았다.

이를 본 대사는 겁을 내거나 동요하지 않고
평상시와 똑같이 관세음 보살의 이름만 지성껏 생각하고 외웠다.
그랬더니 그 귀신은 다시 슬그머니 벽 가운데로 사라지고 말았다.

대사는 조용히 일어나서 양치질을 하고
더욱 열심히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부르면서 앉아 있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 그 귀신이 다시 나타나서 대사에게 말했다.

"나는 한나라 말엽부터 이곳에서 이미 수백년을 살아왔다.
내 성품이 괴악하여 누구든지 사람을 만나면 그냥 두지 않고 몹시 괴롭히거나 죽였는데,
대사는 관세음 보살을 일념으로 찾으며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이므로 어쩔 수 없이 그냥 둘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태수는 매우 기뻐하였고
그때부터 모든 관원들도 관세음 보살의 명호를 열심히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cafe.daum.net/smdrhf86 제석천의 금강저카페 행성님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