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의 위력
운보 황전
지리산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암자에서 수행을 할 적에는 시간만 나면 지리산에 터를 잡고 있는 다인(茶人)의 집을 찾아가서 여러 수행자들과 법 거량도 하고, 다도(茶道)를 즐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야생차가 돋아나는 봄이 되면 그 다인(茶人)집에 모여서 야생차를 만들며 차 맛을 시음하곤 하였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오래전 일이다.
장맛비가 내리는 오후에 창밖을 바라보면서 홀로 지리산에서 가져온 녹차를 마시다보니 조금 특별한 능력을 가진 한 보살님이 생각이 난다.
어느 봄날이었다. 야생 찻잎이 나왔으니 차를 만들자고 하면서 그곳으로 오라는 다인의 전화를 받았다. 전국에서 많은 다인들이 온다는 것이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다인 집을 찾아가보니 벌써 많은 다인들이 차를 비비고 있었다.
나도 장갑을 끼고 멍석에다 차를 열심히 비벼서 차를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차를 만들고 있는데 멀리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후에 30대로 보이는 한 보살이 인사차 문을 활짝 열고 다인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보는 보살님이었다. 그런데 이 보살님은 다른 다인들과 인사를 마친 후에 나를 한동안 지긋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또한 그녀에게서 묘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어울려서 차도 만들고 새 차를 마시면서 웃고 떠들고 하다가 늦은 저녁에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보살님이 같이 온 두 보살님과 함께 나를 따라 암자에서 하룻밤을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지리산에서 가져온 차를 마시면서 그 보살님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보살님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불보살님을 비롯하여 천상의 일과 지상의 일, 그리고 사람들에게 붙어 있는 빙(憑)은 물론 여러 귀신들과도 대화도 하고 귀신을 부려먹기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지키는 신장님은 물론 여러 신장님들과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다카하시 신지>의 <마음의 발견>이란 책을 읽고 그러한 경계를 이해 한 상태여서 이 보살님이 하는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 보다는 보살님이 하는 그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수행하는 과정이나 비몽사몽간에 약간의 경계를 경험을 해 보았던 그러한 경계의 이야기였다.
그러다 보니 그 보살님의 이야기가 재미와 호기심에 밤새도록 하고 또한 그 많은 이야기들을 다 긍정을 해주고 나자 그 보살님이 암자를 떠나면서 하는 말이 이제야 가슴이 확 터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자신의 가족은 물론 특별한 몇 몇 사람 말고는 아무도 자신의 말을 인정해주지 않고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하였다.
그 후 1년쯤 지난 어느 날 그 보살님이 남편과 자식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다.
“스님, 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까? 제가 말입니다. 놀기가 답답해서 피자 가게를 열었습니다. 가게를 열기 전에 고사를 지내려고 하니 불교를 믿는 나로서는 돼지 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돼지머리는 놓지 않고 과일과 떡, 그리고 막걸리만 놓고 고사를 막 지내려고 하는데, 세상에...
노숙자 모습을 한 귀신들이 한 오십 명 정도 가게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귀신들은 들어오자마자 고사음식을 게걸스럽게 서로 싸워가면서 먹는데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귀신을 보지 못하니 고사 상 앞에 돈을 놓고 술을 붓고 절까지 하는데 그 절을 귀신들이 다 받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나의 보는 능력을 인정해주는 어떤 도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상황을 말씀드리고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이냐 물었더니, 글쎄 반야심경 한편을 읽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데 모셔올 만한 스님을 잘 알지 못한다고 하자, 도인은 웃으면서 나보고 직접 반야심경 한 편을 그냥 읽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도인의 말만 믿고 반야심경을 한번 읽으니 놀랍게도 그 귀신 모두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 그런데 말입니다. 더 놀라운 사건이 생겼습니다.
고사를 다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려고 가게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가게 문 앞에 오십 여명의 귀신들이 깔끔한 정장차림으로 와서 끝도 없이 절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두들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오도 가도 못하고 그 귀신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얼마쯤 절을 하고 나자 귀신들 모두 떠나갔는데 마지막으로 3명의 귀신만 남아서 끝도 없이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절을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보살님 덕분에 몸을 바꾸게 되었다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떠나갔습니다. 스님 반야심경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한 것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물론 반야심경도 대단한 위력이 있습니다만, 그 위력 있는 반야심경으로 귀신들을 제도할 만한 능력을 가져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도 장군이 명령을 내려야 부하들이 말을 듣지, 힘도 없는 부하가 부하에게 명령을 내린다고 말을 듣겠습니까? '이자식이 누구에게 명령이야' 하고 오히려 물어뜯어버릴 것입니다. 어째든 참으로 좋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간접적이지만 나도 물론 그렇고요.
그러고 보면 귀신들은 스스로 제도하지는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노숙자처럼 기약도 없이 떠돌다가 보살님 같은 능력자를 만나면 그때 비로소 나름대로의 해탈을 하는 가 봅니다.”
그 후 보살님은 가게를 처분하고 여러 큰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여러 가지 수행을 하였다. 만나는 스님들마다 귀신이 붙었다는 둥, 마장이 끼었다는 둥, 눈에 보이는 것은 환상이니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둥, 끝도 없는 질책과 스님들이 저마다 시키는 대로 절도 하고 염불도 하고 사경도 하고 위빠사나, 참선 등 몇 년 동안 인연이 되는 수행을 나름대로 하고 또 했지만 수행을 하면 할수록 얼굴은 더 맑아지면서 더 선명하고 더 명확하게 잘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보살님이 나를 찾아와서 지금 수행의 경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장에 대해서 말을 해주고 나서 가족들과 인도로 이민을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나는 스님들과 법사들이 귀신에 놀아나고 있으니 천도를 해야 된다. 천일기도를 해야 한다. 정법으로 가야지 외도에 빠지면 안 된다. 등등 어찌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지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인도로 가서 수행다운 수행을 할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 같다. 홀연히 생각이 나서 아는 사람을 통해서 그 보살님의 소식을 물으니 인도에서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화경에 보면 눈의 공덕을 성취하면 이 육안을 가지고도 천상천하를 다 본다고 했다. 나는 그 보살님이 법화경에 나오는 눈에 공덕을 성취하지 않았더라도 전생에 천안(天眼)을 얻은 부처님의 제자 <아나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들도 그 능력이 각각이었다. 사리불은 지혜제일이고, 목건련은 신통제일이다. 아나율은 천안제일이고, 수보리는 공의 제일이다. 이 말법시대에 부처님의 제자들이 인연 따라 다시 사람 몸으로 와서 그 능력으로 중생들을 위해 쓰고 있는지 누가 아는가?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도력(道力)이고, 다른 사람이 타고난 능력을 외도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는가. 인연 따라 주어진 것을, 인연 따라 좋은 일에 쓸 수만 있다면 그 또한 보살행인 것을...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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