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험록 모음
절에서 근 10년간을 수행하며 살다보니, 불교적 지식만을 가지고 믿음이 깊은 양 아집에 찬 신자들을 많이 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불자들은 얼마 안 가서 신심이 식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바른 신행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뭐니 해도 부처님의 영험을 직접 체험해야만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진정한 믿음이 없어 방황하는 불자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이렇게 붓을 들었습니다.
1
저는 어머님과 함께 마포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살던 중, 어느 날 밤 꿈에 무덤 속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어린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 아이에게 말하기를 “내가 올 곳인데 네가 왜 왔니?” 하고 묻자, 그 아이가 말하기를, “어떤 분이 가보라고 해서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깨고 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후로 밤에 잠만 자면, 가위에 눌려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시커먼 옷을 입은 키 큰 남자가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 오려고 하면, 안에서 저는 못 들어오게 하려고 수경사문을 잡고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누가 와서 가슴을 누르기도 하며 소리를 질러도 말이 안나오는 등, 실로 고통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밤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여러 날 되풀이되자, 밤만 되면 그 집이 너무도 무서워져서 밖에 나가 어머님과 함께 늦가을 밤거리를 추위에 떨며, 서성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하는 수 없이 언니네 집과 이모네 집에 가서 자 보았으나, 문만 쳐다보면 누가 나를 잡으러 오는 것만 같은 공포심에 도저히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불안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의 법륜 스님을 알게 되어, 1986년 12월에 찾아 뵙고 그런 사연을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얼마 동안 잠잠히 뭔가를 살피는 듯한 인상을 하시다가 이윽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전생에 남자였는데,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밖으로 나다니며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처가 병에 들어 죽게 되자, 그에 딸린 어린 남자아기가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해 굶어 죽었답니다.
그래서 그 원혼들이 직접 또는 다른 영가들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한 것이며, 어린 아기가 애절하게 엄마 찾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은 바로 그 아기가 죽은 엄마를 부르는 소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꿈에 제가 무덤 속에 들어간 것은 전생 업장으로 제 명을 다 못 산다는 뜻이며, 그 무덤 속에 있던 아이가 어떤 분이 보내서 왔다고 말한 것은, 부처님과 인연을 맺으면 업장을 벗고 살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닌게아니라, 제 귀에는 스님 말씀대로 어린 아기가 애절한 음성으로 “엄마, 엄마!” 하며 우는소리가 들릴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스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금강경》 천 독(千讀)한 후 일심행(一心行)이란 불명을 받고, 저로 인해 전생에 억울하게 죽은 가족 영혼들을 위하여 참회하는 마음으로 천도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금강경》을 읽으며 도량 청소도 하는 등, 5년 동안 기도에 정진한 결과, 이제는 가위에 눌리는 일도 없이 잠도 잘 자며, 건강도 전에 비하면 놀라울 만큼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기도생활을 하던 중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겨울날 하루는 스님을 모시고 산책을 나갔는데, 스님께서 느닷없이 말씀하시길, “이 추운 날씨에 어린 여학생이 장갑도 끼지 않고 오고 있구나.” 하시자, 제가 스님께 아무도 안 보이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냐고 여쭈었더니,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얼마 안 가서 어린 여학생이 혼자 앞에서 걸어오기에 보았더니, 스님 말씀과 같이 장갑을 끼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참으로 놀랐습니다. 앞을 못 보시는 스님이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아시는 건지 너무나도 이상하기만 하여 스님께 눈을 보는 저도 몰랐는데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아셨냐고 여쭈었습니다. 스님 말씀이 그것은 내가 안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법신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역사하신 거라고 일러주셨습니다.
또한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식당 방에 스님과 함께 저와 일로행 보살님이 있었는데 스님께서 갑자기 예불 시간이 되었으니 법당에 올라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그 방에는 시계가 없었으므로 안채에 가 보았더니 정말로 시계가 7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도 신기하기만 하여 제가 스님께 시계도 안 보시고 어떻게 예불 시간을 아셨느냐고 여쭈었더니, 스님 말씀이 영가들이 저녁 예불 올리려고 법당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보고 알았노라고 하셨습니다.
신기한 일들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직접 보고 들은 영험담 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② 영험록 모음--전생인과의 과보
2
서울 성동구 성수 2가 1동에 사는 김순희 불자님의 남동생이 믿음이 없는 가운데 사귀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보살님이 수경사 법륜 스님께 궁합을 여쭈었더니, 궁합은 봐 주시지 않고 스님께서 잠시 무엇인가를 살피는 듯한 표정을 지으시다가 절대로 결혼을 하지 말고 헤어져야 된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여쭈었더니,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세 사람이 불행을 겪게 된다고 하더랍니다. 이유는 그 남동생과 애인이 전생에 서로 만나 사귀다가 여아를 낳게 되었는데, 그 사이 정이 멀어져 헤어지게 되자, 추운 겨울날 여아를 포대기에 싸서 절 도량에다 몰래 버렸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여아가 추위에 떨다 그만 목숨을 잃은 바,
그 원혼이 자식으로 태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김순희 보살님이 스님께 이미 정이 깊어 도저히 헤어질 수 없는 그런 처지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였더니, 스님 말씀이 지성으로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참회와 아울러 그 원혼을 위한 천도기도를 하고, 불쌍한 영아를 위한 보육원을 자비심으로 운영하면, 그 화를 면할 수 있으리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워낙 믿음이 없어 그도 어렵다고 말씀드렸더니, 다시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정 그렇다면 서른 살 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자식을 낳지 말고 그 이후에 자식을 두라고 하더랍니다. 하지만 불심이 전혀 없는 두 사람인지라, 아무리 일러주었으나 소용이 없이 결국 결혼하여 1987년 스물 아홉 살에 여아를 낳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해 겨울 가정불화로 몹시 다투다가, 부인이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간 뒤 섣달 그믐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그만 그 남동생이 연탄불을 피워 놓고 자살하고야 말았답니다. 그 후 이 사실이 알려지자, 부인 역시 새벽에 산에 올라가 어린 딸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니, 이런 불행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김순희 보살님은 이 비극을 통하여 인과의 법칙을 재삼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③ 영험록 모음--아픈 딸의 전생업
3
서울 송파구 오금동 8-10 삼익빌라에 거주하는 연심등 보살님은 딸이 몸이 아프고 밤에 가위에 눌려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음식마저도 잘 먹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던 차에 수경사 법륜 스님을 찾아 뵙고 말씀드렸더니 스님 말씀이 전생업과로 그렇다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답니다.
그분의 딸은 전생에 남자였는데 한 눈이 어둡고 다리를 저는 불구자의 아내를 유혹하여 도망친 결과 그 가정이 파탄에 빠지게 되자, 남편이 그 화로 병을 얻어 생죽음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그 원혼이 다니며 맺힌 한을 풀기 위해 그런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리고 그 원혼을 천도하기 위해서는 지성으로 참회기도를 해야 하며, 기도하는 동안 가족들이 각자 《금강경》 만 독(萬讀) 이상을 해야 하고, 특히 1986년 음력 6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는 어떠한 경우라도 막내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식구들은 집을 나가 있어야만 그 원귀로부터 죽음의 화를 면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러나 믿음이 깊지 않던 그 보살님의 가족들은 반신반의하여 주저하고 있던 중, 하루는 그 보살님이 잠깐 마루에 누워 있노라니 비몽사몽간에 그분의 죽은 아들(철욱)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어쩌자고 스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이러고들 있습니까?”라고 하며,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이더랍니다. 깨고 보니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역력하여 가족들과 상의를 하였으나, 시어머니는 끝내 집을 비울 수 없다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시어머니는 집에 계시게 한 후, 그 보살님의 남편은 그 동안 사무실에 나가 있기로 하고, 보살님은 딸과 같이 절에 내려가 참회와 아울러 원혼을 위한 천도 기도를 시작했답니다. 그러던 차, 6월 10일 그 보살님이 볼일이 있어 잠깐 집에 다녀오겠다고 스님께 말씀드리고, 딸은 절에 남긴 채 혼자 집에 갔었답니다. 그런데 그 보살님이 막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전화벨이 울려서 급히 안으로 들어갔더니, 시어머니께서 쓰러져 계시더랍니다.
그리하여 너무도 놀란 보살님은 정신없이 시어머니를 방안으로 모신 다음 전화를 받았더니 스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는데 할머니가 무사하시냐고 걱정스런 어조로 물으시더랍니다. 그래서 쓰러져 계시더라고 하였더니, 스님 말씀이 “이미 벌써 당하였군” 하고 전화를 끊더랍니다. 그 뒤 보살님이 시어머니께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할머니 말씀이 집안에 아무도 없이 마루에 혼자 서 있는데, 누군가가 다리를 잡아당기는 느낌을 받는 순간 넘어졌다고 하더랍니다.
그리도 건강하시고 부지런하시던 할머니였지만, 그로부터 고생하시다 온갖 정성을 다 하였으나 별 효험 없이 결국 돌아가시고야 말았답니다. 스님 말씀대로 보름 동안만 집을 나가 있었으면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고집으로 집에 계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 보살님은 지금도 더욱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보살님이 시어머니가 변을 당한 그 다음 날 절에 갔더니, 따님 말이 어제 엄마가 집에 다니러간 뒤 스님께서 몹시 불안스러운 표정을 하시다가 집으로 전화를 자꾸만 거시더랍니다.
그래서 그 따님이 스님께 아직 엄마가 집에 당도할 시간이 못되었는데 왜 계속 전화를 거시냐고 여쭈었더니, 스님 말씀이 할머니 일이 매우 급하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부터 그 보살님의 가족들은 법륜 스님이 보통 분이 아님을 깨닫고, 더욱 신심을 굳게 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금강경》을 독송하며 백팔(百八) 집을 세 차례나 시주하여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아침과 저녁으로 도량도 도는 등 기도에 더욱 정진하였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2월 보름 열반재일에 원혼을 위한 등과 그 보살님의 죽은 아들 등을 나란히 달라고 하시며, 그리하면 반드시 무슨 조짐이 있을 거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스님 말씀대로 하였더니, 두 연등이 신기하게도 하나같이 초가 코끼리 상으로 되었답니다.
그리하여 그 사실을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그게 바로 두 영가님이 의형제를 맺었다는 증표라고 하시며, 코끼리는 불법을 뜻하는 것인 바, 열심히 정진하면 머지않아 반드시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아닌게아니라 그 후 얼마 안 가서 그 보살님의 따님은 전과 같이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답니다.
스님 말씀이 원혼께서 이제야 비로소 한을 풀게 되어 그런 결과가 왔노라고 하시며, 그게 다 오로지 4년 동안 참회와 함께 천도기도를 하면서 가족 넷이 모두 한마음으로 《금강경》을 독송하여 그 합친 독수가 58,613독이나 되었을 뿐 아니라, 온 가족이 불명까지 받게 되어 그 같은 부처님의 은덕을 입게 된 것이라고 하시더랍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바른 생활이 곧 불공이자 기도요 수행이니 만큼, 더욱 열심히 바르게 살라고 당부까지 하시며, 바른 생활이란 양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생활이라고 일러주셨답니다. 이를 통해 그 보살님네 가족은 과연 전생?내생이 있다는 것과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업장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고 깨닫게 되었답니다.
법륜 스님 가르침대로 복은 비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베푸는 생활을 통하여 짓는 것이라는 것과 아울러 업장 소멸을 위한 참회기도가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깊이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보살님네 가족은 그 크신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뜻에서, 지금의 수경사를 창건하여 지법륜 스님께 희사하였으며, 그 따님은 스님의 광명을 위하여 한쪽 안구까지 기증하려고 하였으나, 스님께서 이를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④ 영험록 모음--전생죄를 벗는길
4
서울 성동구 성수 2가 에 사는 원심행 보살님은 86년도 정월에 일년 신수불공을 올리려고 절에 갔었는데, 불공이 끝난 다음 지법륜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7월과 8월에는 그 보살님의 남편이 밤길을 나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하시더랍니다. 그 이유는 그 보살님의 남편이 전생에 여자였는데, 먼 여행길에 지쳐서 병든 남자 나그네 한 사람이 하룻밤 재워달라고 사정하는 것을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한 바람에 그 나그네가 그 밤에 길을 가다가 그만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영혼이 역시나 남자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된지라, 보살님의 남편이 7월과 8월에 밤길에서 그 사람을 만나기 쉬우므로, 그리 되면 화를 당할 우려가 크니 만큼, 그 달엔 절대로 밤길을 나가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시더랍니다. 그래서 그 보살님이 어떻게 하면 그 화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여쭈었더니, 스님께서 이르시길, 《금강경》을 지성으로 독송하고 부처님께 기도하면 되리라고 하시며, 그리해도 여간 정성이 아니면 완전히 막기는 어려우리니, 나가지 않는 편이 제일 좋으리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금강경》을 독송하며 참회기도를 하던 중, 그해 8월 부득이한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그 보살님의 남편이 밤에 나가서 일을 마치고 새벽 한시 경에 귀가할 때였답니다. 난데없이 웬 청년 하나가 달려들더니 주먹으로 가슴을 치는 바람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는데, 이번에 구두 발로 사정없이 마구 밟고 차는 등 뼈 아픈 화를 당했답니다. 그로 인해 생긴 병을 치료하느라 병원까지 다니고 여러 날 약을 먹어야 했답니다.
그 뒤 스님을 찾아 뵙고 그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스님 말씀이 그래도 가족들이 《금강경》을 열심히 한 공덕으로 그만하며, 참으로 불행 중 다행이니 그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기도할 때마다 그의 앞날을 빌어줘야만 전생 죄를 벗는 길이 된다고 하셨답니다. 그리고 또한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91년도 여름에 그 보살님네 외아들을 위하여 절에 기도하러 갔었는데, 기도가 끝난 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목탁 하나를 소리 좋은 걸로 사오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왜 그러시냐고 여쭈었더니, 스님이 기도하는 중에 그 보살님의 아들이 말을 타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달려가고 있었으며, 그 맞은편에서는 행상인이 말에다 힘에 겹도록 짐을 싣고 오는가 하면, 노승 한 분이 죽은 새끼 말 앞에서 목탁을 치면서 기도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리하여 그 보살님이 다시 그게 무슨 뜻이냐고 여쭈었더니, 스님께서 이르시길 그 보살님네 외아들이 전생에 여자이었는데, 새끼 밴 말을 무리인줄 알면서도 돈 벌 욕심에 행상인에게 빌려주었답니다. 그런데 그 행상인이 말에다 너무나 많은 물건을 싣고 머나먼 장삿길을 나선지라, 그 말이 지나친 고통을 받은 나머지 그만 뱃속에 있는 새끼 말이 죽고야 말았답니다.
그래서 그 죄로 인하여 그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리하여 만물상에 가서 고르고 골라 목탁 하나를 사다가 드렸는데, 스님께서 쳐보시고 소리가 좋지 않다고 하시며, 목탁을 이리저리 만져보시더니 옹이가 박힌 것을 발견하시고 그 보살님에게 보여주시며, 아직 정성이 부족하니 다시 사오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네 차례나 서울을 오르내리며 목탁을 사왔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래도 썩 마음에 차진 않으나 여러 차례 사러 다닌 정성을 보아 그대로 쓰겠노라고 하시며, 보살님에게 이르시길 하루도 빠짐없이 참회하는 마음으로 《금강경》을 독송하고, 적어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지성으로 불공을 드리면, 그 화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으리라고 하셨답니다.
스님 말씀대로 그리하던 중, 아닌게아니라 보살님의 아들이 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여자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부딪쳐 차는 아주 못 쓸 정도로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살님의 아들은 무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일이 있은 뒤 보살님은 오로지 부처님과 스님의 은덕인 줄 알고 절에 가서 그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게 모두 《금강경》을 지성으로 독송하며 불공을 지성으로 올린 공덕이라고 하신 다음, 비록 상대편의 과실이긴 하나 그 여자를 미워하지 말고, 기도할 때마다 그의 앞날도 빌어주고 보상비도 되돌려주라고 하셨답니다.
그 이유는 그 여자가 다름 아닌 전생의 새끼 밴 말이었기 때문이라고 깨우쳐 주신 다음, 베풀며 사는 것이 참회와 아울러 전생 죄도 벗고 복도 짓는 길이 된다고 일러주셨답니다. 위의 사실들을 통하여 그 보살님은 전생?현생?내생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이치와 중생은 더불어 사는 존재임을 재삼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금강경》의 놀라운 영험도 아울러 절실히 느꼈다고 합니다.
⑤ 영험록 모음--그림자가 자기를 따르듯 업과는 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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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시 내동에 거주하는 정사행 보살님은 밤이나 낮이나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시커먼 손이 목을 누르기도 하고, 옆에서 남자가 글 읽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 등, 너무나도 불안하고 공포에 떨려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아랫마을에 사시는 정도행 보살님의 소개로 1990년 봄에 수경사 지법륜 스님을 찾아 뵙고 말씀드렸더니, 스님 말씀이 그 보살님은 전생에 처녀의 몸으로 임신하였으나, 이를 숨긴 채 어느 집 선비에게 시집을 가서 그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얼마 동안은 남편이 그 아이가 자신의 아들인 줄로만 알고 기뻐하였지만, 나중에 그 사실이 드러나자 가정의 불화는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하여 남편은 고민 끝에 결국 목을 매어 자살하였으므로, 그 원혼이 그 보살님을 따라다니며 한을 풀기 위해 그런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리하여 법륜 스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그 보살님 자신의 참회와 함께 그 원혼 천도기도에 들어가 하루에 《금강경》 20독 이상을 하여 4개월만에 2,400독이 넘게 되자 불명까지 받게 되었는데, 기도 중에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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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7월 보름 백중날 법당에 올릴 꽃을 사다가 양동이에 담아 방안에 두었는데, 바람 한 점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꽃이 막 흔들렸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비단 그 보살님만 본 것이 아니라 경법 저 자신을 비롯하여 도일행 보살님과 일로행 보살님도 함께 보았으며, 그 역시도 영가님이 정사행 보살님을 따라 다닌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런다고 법륜 스님께서 말씀하셨답니다.
그리고 그 보살님이 전남 승주군 별량면 용두리 44번지에 살고 있을 당시, 그 해 겨울 기도 날을 받아놓고 있었는데, 기도 날 하루 전에 전국적으로 폭설이 내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답니다. 그러나 부처님과의 굳은 약속인지라, 꼭 지켜야 되겠다는 일념에서 궂은 날씨를 무릅쓰고 절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날 기도 끝에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그 동안 정사행 보살님은 《금강경》을 지성으로 하루에 20독 이상 독송하여, 불과 4개월만에 2,400독이 넘고 불명까지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남 승주군 별량면 용두리에서 경기도 용인까지 머나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렇게 궂은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참회와 함께 천도기도에 정진한 결과, 영가님께서 비로소 오늘 날짜로 맺힌 한이 풀리게 되었다고 하셨답니다.
정사행 보살님은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정말 너무나 뜻밖인지라, 꿈만 같아 마냥 그저 기쁘기만 하여 어쩔 줄 모르고, 그날 기도에 동참한 많은 보살님들의 축복 속에 감격의 눈물만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 뒤부터 정사행 보살님은 가위에 눌리는 일도 전혀 없이 건강도 회복되고 하여 결혼해서 임신을 하였는데, 태중 아기를 위하여 기도하던 중, 하루는 태중 아이가 궁금하여 스님께 딸인지 아들인지 여쭈어 보았답니다.
그러자 스님 말씀이 기도 중에 선비가 말을 타고 과거 보러 가는 장면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틀림없는 아들이며, 그는 바로 다름 아닌 전생의 남편이라고 일러주었답니다. 정사행 보살님은 전생의 남편이 과거를 용서해주고 자신을 통하여 태어난다는 것에 너무도 감사해서 기도에 더욱 열성을 다 하여, 법륜 스님 말씀대로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님 말씀이 이 아이는 전생에 선비였으므로 닦은 근기가 있기 때문에, 잘만 키우면 훌륭한 인물이 되리라고 하시며, 어둠을 밝혀 광명을 찾는다는 뜻에서 ‘초롱’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답니다. 정사행 보살님은 기도를 통하여 그림자가 자신을 따르듯, 업과는 마치 그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리고 입은 은덕에 보답하는 길은 초롱이를 보다 훌륭하게 키우는 일이라 결심하고, 오늘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⑥ 영험록 모음--영혼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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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군 고삼면 월향리에 사는 만공행 보살님은 86년 정월에 절에 갔었는데, 스님 말씀이 금년에 가족 중 한 사람이 병든 말을 타고 길을 가는 상인지라 각별히 교통사고를 조심해야 되리니, 부처님께 기도를 지성으로 해 보라고 하시며, 보살님이 집에 갈 때는 스님께서 문 밖까지 따라 나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몇 차례나 당부하셨답니다.
그러나 믿음이 별로 깊지 않던 보살님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아, 그냥 그것으로 흘려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이겠습니까? 바로 그해 봄, 그리도 똑똑하고 착하고 예쁘다고 소문난 그 보살님의 막내딸이 경운기를 타고 놀러갔다 오다가 사고를 당하여, 17세 꽃다운 나이에 그만 죽고 말았답니다.
그제야 비로소 그 보살님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달았으며, 법륜 스님이 예사로운 분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을 뿐만 아니라, 그때처럼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후회하여 본 적이 일찍이 없었다고 합니다. 왜 스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지 않았던가!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이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죽고만 싶었다고 합니다. 그때의 심정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격으로, 그 보살님은 다시금 법륜 스님을 찾아 뵙고 그간에 있었던 사실을 염치 불구하고 말씀드렸답니다. 그러자 스님 말씀이 그것은 막내딸이 전생에 병든 말을 사정없이 타고 다닌 죄로 받은 과보이니, 짐승이라 하여 학대하지 말고 어디까지나 자비심으로 보살펴주어야 된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길, 이미 그것은 지나간 일이니 만큼 공부한 것으로 알고, 아직도 어려움이 더 남아 있으니,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되리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러자 이미 쓰라린 경험을 겪은 보살님인지라, 더욱 긴장하여 그게 뭐냐고 여쭈었더니, 보살님의 외아들이 전생에서도 역시나 남자였는데, 산길에서 만난 말 못하는 처녀를 겁탈한지라, 그 여자가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다가 그만 물에 빠져 자살하고야 말았는데, 그 원귀가 따라 다니므로 화를 당할까 걱정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보살님이 스님께 어떻게 하면 그 화를 모면할 수 있겠느냐고 여쭈었더니, 스님 말씀이 3년간 참회와 아울러 그 원혼을 위한 천도기도를 지성으로 해야 된다고 하시더랍니다. 그 방법은 매일같이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불공을 올리고, 그 공양미 중에서 일곱 숟가락을 덜어다가, 집에서 다른 쌀과 섞어서 그날 밤에 메(밥)를 지어 나물 반찬으로 상을 차려 바치면 되리라고 하셨답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빠른 시일 내에 《금강경》을 천 독한 다음, 불명도 받아야 더욱 더 좋다고 일러주셨답니다. 그리하여 스님 말씀대로 그리하던 중, 한번은 그 보살님의 실수로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왔는데, 그날 따라 집에 온 손님들이 밤늦도록 가지 않고 있는 바람에 메를 지어 바치지 못하였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수경사에서 기도 중에 계신 연심등 보살님이 그 보살님에게 전화로 말하기를, 스님 말씀이 재철이를 따라 다니는 영가가 빈 밥그릇을 들고 와서 보여 주는 것으로 보아, 분명 재철이 엄마가 메를 지어 바치지 않은 모양이라고 걱정하시기에, 전화를 거는 거라고 하더랍니다. 그 보살님은 이때 다시 한번 놀랐답니다. 멀리 용인 수경사에 계신 스님께서 안성에서 일어난 그 사실을 알고 계신 것을 보고, 정말 부처님의 계시와 아울러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그 보살님이 절에 갔더니, 스님께서 천염주와 《금강경》을 주시면서 말씀하시길, 소중히 간수하며 지성으로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 천염주를 돌리고, 《금강경》도 한 독 이상 하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보살님은 고맙게 받아 들고 집에 와서 그리 하던 중, 어느 날 집안이 하도 복잡하여 소쿠리에다 염주와 《금강경》을 담아서 다락에 두었는데, 쥐가 그만 경을 더럽히고 염주를 끊은 사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기도 중에 그 보살님네 축원문을 읽으시다가 느닷없이 중단하시고 말씀하시길, “아니 이럴 수가 있나? 그만큼 내가 소중히 간수하라고 일렀건만, 어찌하여 쥐가 《금강경》을 더럽히고 염주를 끊도록 놔두었단 말인가.” 하시며, 역정을 내시더랍니다.
그날 그 보살님은 몹시 급한 사정이 생겨서 절에 가지 못하고 불공 올릴 제물만 인편에 보냈는데, 그날 불공에 동참했던 신도가 보살님네 집에 와서 그 같은 사실을 말하더랍니다. 보살님은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너무나도 놀라, 한동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쥐가 《금강경》을 더럽히고 염주를 끊은 사실이 참으로 죄스럽고 부끄럽고 하여, 가족 중에서 아무도 그런 사실을 발설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절에 계신 스님께서 아시는 건지, 그저 고개 숙여 탄복할 따름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 보살님네 가족들은 그를 계기로 불심이 한결 더 깊어졌으며, 따라서 더욱 열심히 기도에 정진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보살님의 아들 재철이가 말하길, 전에는 혼자 어디 갈 때면 뒤에서 누군가 따라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또한 방안에 혼자 있을 때면 섬뜩한 기분이 들면서 뭔가 휙 하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마치 머리를 도끼로 막 패는 듯한 통증이 왔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들이 전혀 없다고 하더랍니다.
3년간 그렇게 하여 기도를 성공적으로 마친 다음 지금의 그 보살님네 외아들은 군복무를 무사히 잘 마쳤을 뿐만 아니라, 대학도 졸업하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결혼까지 하여 복된 가정을 누리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 보살님은 기도를 통하여 어리석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다고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금강경》을 천 독 이상 하여 불명까지 받고, 지금은 더욱 더 정진 중에 있다고 합니다.
⑦ 영험록 모음--새끼 참새를 돌본 공덕
7
서울 송파구 오금동 에 거주하는 수경심 보살님은 수경사에서 기도하고 있을 당시, 88년도 봄에 어린 참새 새끼 한 마리가 어미를 잃고 절 도량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도 불쌍하고 가엾은 마음에 일심행(一心行) 보살님과 같이 새장 안에 넣어 지성으로 길렀더니, 제법 팔팔하게 잘 크는지라 매우 기뻤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법당에 기도하러 올라가시던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참새에게도 《금강경》을 들려주자고 하시며, 새장을 법당으로 가져오라고 하시기에 그리했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생겼답니다. 《금강경》 한 편을 마치고 무심히 새장 안을 보았더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리도 팔팔하고 또랑또랑하던 참새가 갑자기 그것도 얌전한 모습으로 죽어 있더랍니다.
그때 스님께서 그날 동참한 여러 신도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길, 여러분 가운데 반짝이는 빛을 본 사람이 있으리라고 하여, 수경심 보살님이 두 번이나 본지라, 그 사실을 말씀드렸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시길, 신도 여러분이 한마음으로 참새를 위하여 《금강경》을 독송해 주신 덕택으로 참새가 인도환생하기 위해 죽은 것이며, 그 참새가 암컷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증명하려고 음수인 짝수를 나타내기 위하여, 빛을 두 번 보인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그러나 참새는 농부의 곡식을 해친 죄가 너무도 크므로, 곧바로 인도환생하기는 어려우며, 농사에 해를 끼치지 않는 맹매귀(제비)로 태어나 그 업장을 벗고 죽은 다음 비로소 인도환생이 가능하고, 그 기간은 《금강경》을 들은 공덕으로 매우 짧을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스님은 또 계속하여 말씀하시길, 특별한 이변만 없으면 오늘 이 자리에서 참새의 영혼 빛을 본 수경심 보살님에게 태어나 훌륭한 인재가 되리라고 하셨답니다.
그리고 앞으로 3년 안에 스님 방에서 가장 가까운 법당 앞에다 제일 먼저 집을 짓는 맹매귀가 바로 그 참새의 영혼이며, 법당 앞에다 짓는 것은 불법과 인연을 맺었다는 뜻이고, 거기서 태어난 새끼가 수경심 보살님의 방 창문 앞에다 집을 지으리니, 이는 그 보살님을 통하여 인도환생하리라는 증거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리하여 수경심 보살님은 반갑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에 어린 참새 시신을 《금강경》 책갈피에 싸서 이를 다시 상자에 넣어 묻은 다음, 그 무덤 앞에서 《금강경》을 한 편 읽어 주었답니다. 또한 참새가 죽은 그 다음 날 스님께서 새벽에 참선하실 때, 참새 영가가 나타나 말하길, 여러분께서 《금강경》을 읽어 주신 공덕으로 인도환생하게 되어 더 없이 고맙다고 하며, 그 중에서도 특히 자신을 길러주신 수경심 보살님과 일심행 보살님을 더욱 못 잊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그 은덕에 보답하는 뜻에서 모든 분들을 위하여 자신도 기도하겠노라고 하면서, 참새의 몸이었을 때는 암컷이었으나 이제는 수컷의 몸을 받아, 맹매귀로 태어나게 되었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인지 그 뒤 얼마 안 가서 두 보살님은 기도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닌게아니라, 스님의 예언대로 그 후, 참새가 죽은 지 3년째 되던 해인 91년도 봄에, 스님 방과 가장 가까운 법당 앞에다 맹매귀가 집을 지었으며, 거기서 태어난 새끼가 잘 자라더니 수경심 보살님의 방 창문 앞에다 역시나 집을 지었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경사 도량에는 맹매귀 집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수경심 보살님은 위의 사실을 통하여 부처님의 자비는 만중생 누구에게나 두루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뿐만 아니라 지법륜 스님의 말씀이 틀림없으신 것으로 보아 부처님의 법신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말로만 듣던 혜안도 어떤 것인가를 어렴풋이 나마 깨닫게 되었고, 지금도 《금강경》을 할 때마다 죽은 참새의 넋인 저 맹매귀의 앞날을 부처님께 빌고 있답니다.
그리하여 수경심 보살님은 그 생생한 부처님의 영험을 통해 깊어진 불심을 널리 펴야겠다는 원을 세우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3학년에 편입하였으며, 장학생으로 성적도 우수하였고 지금은 졸업반으로 대학원 시험 준비에 몰두하고 있답니다.
⑧ 영험록 모음--인과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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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광장동 에 사는 만월행 보살님은 1986년도 봄에 막내딸이 고등학교 2학년 반 편성을 마치고 집에 와서 밤에 잠을 자다 말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보살님을 깨우며 하는 말이, 창 밖에서 누가 자신을 부른다고 하며, 엄마도 일어나서 자세히 들어보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나 그 보살님은 아무리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살님이 딸을 유심히 지켜보았더니,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계속하여 누가 밖에서 자신을 나오라고 부른다고도 하고, 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을 무당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등, 점점 이상한 소리만 하는 것이 심상치 않더랍니다.
잠을 도무지 자지 않고 그러하길 사흘이 넘자, 너무도 걱정이 되고 불안하여 성당에 나가는 친척을 불렀더니, 외국인 남자를 포함하여 여섯 명이 십자가를 모시고 왔더랍니다. 그들은 의식에 따라 기도를 하고 냉수를 그 보살님의 딸에게 뿌리는 등, 열심히 나흘이나 노력해 보았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날짜만 경과하게 되었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하는 수 없이 동국대학교 후문에 있는 제일병원 정신과에 입원까지 시키고 치료해 보았지만, 그래도 아무 차도도 없이 점점 더 심해질 뿐이었답니다.
보통 사람은 한두 알만 먹어도 녹아 떨어지는 독한 약을 기준 이상으로 먹여도 도무지 잠을 자지 않고 계속 헛소리만 하여, 나중에는 간호원이 퇴근한 담당 의사를 밤중에 불러내어 마지막 수단으로 주사까지 놓았으나,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답니다. 담당 의사와 함께 꼬박 사흘 밤을 새우며 그런 식으로 치료해 보았으나, 조금도 차도의 기미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의사 말이 이런 주사는 워낙 강력하여 잘못하면 사람이 죽을 만큼 위험한 주사인데도 불구하고 잠에 들지 않는 것을 보니, 너무나도 이상하다고 하면서 더 큰 병원을 소개해 줄 테니, 그리로 가보라고 하여 옮긴 병원이 한남동에 있는 순천향병원이었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매한가지로 차도가 없이 점점 증세가 깊어만 갔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답니다. 밖에서 누가 자신을 부른다고 하며, 뛰쳐나가려고 하여 아무리 말렸으나, 소용없이 계속하여 나가야겠다고 설치더랍니다. 그러다가 놓치면 더 큰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하는 수 없이, 의사의 말씀대로 눈물을 삼키며 결국 철창 안에다 그리도 안 들어가려고 몸부림치는 딸을 강제로 가두고야 말았답니다. 철문에 자물쇠를 잠그던 그 순간, 그 보살님은 마치 사랑하는 자식을 저승으로 보낸 심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야 말았답니다.
바로 그때, 처음부터 계속하여 함께 있던 보살님의 딸의 외숙모인 만월심 보살님이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말하길, 이렇게 병원에 있어 봐야 아무 효과도 없이 병은 점점 더 악화만 되어가니, 이렇게 하지 말고 전생 업을 잘 보시는 스님이 계시다며 그 절에 가보자고 하더랍니다.
그리하여 만월심 보살님의 손에 이끌려서 천근 만근 무거운 발걸음으로 애절하게 엄마를 부르는 딸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하염없이 비오듯이 흐르는 눈물에 발등을 적시며 병원 문을 나왔답니다. 버스에 몸을 싣고 절에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가로수하며, 그 모든 것들이 엄마의 눈에는 마치 울부짖는 딸의 모습으로만 보이더랍니다. 그때마다 보살님은 속으로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며, 지금 가는 이 길이 딸을 구하는 길이 되게 해 달라고 손수건을 적시며, 일심으로 간절히 기도하였답니다.
그렇게 하여 지법륜 스님을 찾아 뵙고 말씀드렸더니, 스님 말씀이 그 보살님의 딸은 이대로 두면 20세 안에 정신 불구가 될 운명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 이유는 환자 본인의 전생 죄도 있으나, 그보다는 아버지의 전생 죄로 인한 것이 더 크다고 하시며, 보살님의 남편의 전생 업을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답니다.
그 보살님의 남편은 전생에 여자였는데, 과부로 자식도 없이 아주 부자로 머슴을 두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격이 모질고 인색하여 머슴의 사경도 제대로 주지 않고, 이른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일을 시킬 뿐만 아니라, 머슴의 아내가 무당이었는데, 몹시 괄시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어느 해 4월 초파일이 되어 머슴이 절에 갔다가 좀 늦게 와서 마당을 쓸고 있는 것을 보자, 그만 화가 치밀어 머슴 주제에 무슨 절이냐고 하며, 살기 어린 손으로 그 마당비를 빼앗아 뒤통수를 때린 것이 뇌진탕이 되어 그만 죽고야 말았답니다.
그래서 그 머슴을 비롯하여 그의 가족들이 모두 원귀가 되어 자신들이 받은 설움을 함께 복수할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인 바, 그 보살님의 남편은 긴 세월을 병석에 눕게 하여 재물을 모두 탕진시킨 다음 죽게 하려는 것이며, 그 보살님의 딸은 무당을 만들기 위하여 그렇게 괴롭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아닌게아니라, 그 보살님의 남편은 원인 모를 병을 얻어 1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여러 병원을 비롯하여 절에도 가보고 심지어는 굿도 해보았으나, 아무 효과도 없이 재산만 모두 탕진하였답니다. 그러던 와중에 그 보살님의 딸이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또한 병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보살님이 스님께 어떻게 하면 딸과 남편을 구할 수 있느냐고 여쭈었더니,
스님 말씀이 전생에 지은 죄로 그러니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살 것을 다짐하는 참회기도와 아울러, 그 원혼을 위한 천도기도를 해야 된다고 하시며, 검은콩과 붉은팥을 각각 5홉 한 되 그리고 공양미와 동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 오라고 하셨답니다.
그리하여 스님 말씀대로 빠짐없이 다 준비하여 밤 11시에 스님과 단 둘이 기도를 시작했는데, 스님 말씀이 기도 중에 뒤에서 당기는 등, 무슨 조짐이 있더라도 놀라거나 겁먹지 말고 열심히 《금강경》을 읽고 염불만 하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아닌게아니라 절을 막 하려고 하자 굳게 닫은 법당 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나더니, 무엇인가 뒤에서 옷자락을 당기기에 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으며, 그러길 세 번이나 거듭하는 바람에 그 보살님은 비로소 그게 바로 다름 아닌 영가가 시험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기도를 마친 뒤, 그 다음 날 외숙모와 같이 병원에 갔답니다. 그런데 담당 의사 말이 참으로 신기하다고 하면서, 그리도 잠도 안자고 헛소리를 하며 나대던 아이가 하루 사이에 몰라보리만큼 좋아졌다고 하며 가보라고 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간호원을 따라 갔답니다. 간호원이 열쇠로 철문을 열고 딸의 이름을 부르자, 대답하며 나오는 그 모습을 보았더니 너무도 멀쩡하여 마치 꿈만 같았다고 합니다.
그 순간 그 보살님은 “엄마!” 하며 달려드는 딸을 와락 부둥켜안고 딸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부처님에 대한 감사와 함께 기쁨의 눈물을 한없이 흘리자, 옆에 있던 사람들도 따라서 울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담당 의사 역시도 퇴원해도 좋다고 하여, 그 다음 날 퇴원한 후 절에 가서 기도를 계속하다가, 집안 형편상 딸아이만 절에 두고, 그 보살님은 집으로 올라갔었답니다.
그런데 딸이 하도 엄마를 그리워한다고 하여 절에 내려갔더니, 스님 말씀이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러니 집으로 데리고 올라가라고 하시며, 집에 가서 있더라도 절대로 기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므로 《금강경》을 지성으로 읽고, 또한 법채는 항상 몸에 지니는 편이 좋으니, 원혼들이 지나칠 정도로 괴롭힐 때는 그 법채를 사방으로 돌아가며 휘두르거나 바닥을 돌아가며 치면 된다고 간곡히 일러 주셨답니다.
그러나 막상 집에 와서는 바쁜 생활인데다가 딸아이도 전과 같이 멀쩡하고 하여 자연히 기도를 소홀히 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전과 같이 헛소리를 하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떠민다고 하며, 뒤로 넘어지기도 하는 등 병이 재발하고야 말았답니다.
그래서 다시 절에 가자고 하였으나, 딸 아이 말이 절에 가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을 죽인다는데 어떻게 갈 수 있느냐고 하면서, 안 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야단을 쳤답니다. 그랬더니, 그만 밖으로 뛰쳐나가 부엌에 있는 식칼을 들고 욕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열어 주지 않더랍니다.
그 당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은 그 입장이 돼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아무리 문을 두드리며 애원했으나 그래도 소용이 없자, 보살님은 하는 수 없이 욕실과 연결된 연탄 광으로 들어갔답니다. 어디서 생겼는지 놀라운 힘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높이 있는 작은 창문을 통하여 욕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식칼을 든 채 한 구석에 벌벌 떨고 있더랍니다.
그리하여 잽싸게 그것을 뺏은 다음, 잘못하다가는 놓칠 것만 같아서 강제로 택시를 대절하여 절에 갔답니다. 그러자 스님 말씀이 기도를 소홀히 하여 영가님이 노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하시며, 이제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마지막 기회로 알고 최선을 다하여 더욱 열심히 기도를 해야만 딸과 남편을 구할 수 있으리라고 하시더랍니다.
특히 남편은 전생에 머슴의 사경을 주지 않은 죄가 있으니 만큼, 절대로 물욕이나 노름 같은 데 뜻을 두지 말아야 하며, 만일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베푸는 생활을 해야만 되리라고 호된 꾸중과 함께 주의를 주셨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더욱 깊어진 믿음으로 그 보살님과 남편은 《금강경》을 천 독 이상 하고 불명을 받는 등, 가족들이 와신상담 지성으로 기도를 하자, 기도 기간인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보살님의 딸과 남편 두 사람 모두가 다시 전과 같이 건강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살님의 남편은 그 후 스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노름을 하는 등,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바람에 또 다시 영가님으로부터 노여움을 사서 결국 유명을 달리 하는 비극을 자초하고 말았답니다.
그에 반하여 보살님의 딸은 스님과의 약속대로 바른 생활을 통한 자신의 참회와 아울러 영가 천도기도에 최선을 다한 결과, 완전히 기도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그 후 공부하여 대학까지 졸업하고 지금은 건강한 사회인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미래를 꿈꾸며 보람된 나날을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이런 신기한 일들도 있었답니다. 그 보살님의 딸의 외숙모가 절에 갔었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기도하기 위하여 가지를 꺾어 온 복숭아나무가 죽지 않았느냐고 물으시더랍니다. 그래서 그 외숙모가 말씀드리길 고작 손가락 굵기 크기의 가지를 하나 꺾었는데 그 나무가 죽을 리가 있겠느냐고 하였더니, 스님 말씀이 그래도 분명 그 복숭아나무는 죽을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그 이유는 보살님의 생질녀와 그의 아버지를 따라 다니는 원혼들이 전생에서 머슴살이 할 때에 받은 수모에 대한 울분을 풀 방법이 없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러자 외숙모가 다시 그렇다면 사람을 그럴 것이지 왜 복숭아나무를 해치느냐고 여쭈었답니다. 그에 대하여 스님 말씀이 그야 물론 처음엔 그들에게 수모를 준 당사자에게 앙갚음하려고 작정하였으나, 그들이 부처님께 기도를 하는 바람에 신장들의 엄호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서 애매한 복숭아나무가 그 같이 화를 당했으며,
이런 경우는 우리네 사회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것으로, 마치 밖에서 뺨 맞고 집에 와서 화풀이한 격이 되었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리하여 궁금한 마음에 여러 신도들이 서울 성동구 성수 2가 1동 경수국민학교 후문에 있는 그 복숭아나무를 찾아가 보았답니다. 그런데 아닌게아니라, 한창 봄인데도 불구하고 그리도 싱싱하던 복숭아나무가 스님 말씀대로 마치 서리를 맞은 듯 잎이 시들고 있었답니다.
그 학교에서 살리기 위하여 애쓴 보람도 없이 10년 이상이나 된 그 복숭아나무는 그렇게 하여 결국 비운의 최후를 맞고야 말았답니다. 또 한번은 외숙모(만월심)가 기도하러 절에 갔었는데 스님 말씀이 만월행 보살님네 집에 소가 죽지 않았느냐고 물으시기에 외숙모가 시골도 아닌 집에 무슨 소가 있느냐고 하였더니 그래도 스님은 분명 소가 죽었을 것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외숙모가 절대로 소는 죽은 사실이 없고, 바로 어제까지 팔팔하고 또랑또랑 잘 크던 강아지가 그것도 갑자기 불과 5분만에 죽었노라고 말씀드렸답니다. 그러자 스님 말씀이 그게 바로 다름 아닌 생질녀의 아버지(만월행 보살님의 남편)가 전생에 기르던 소였는데, 그 당시 그 집에 살던 머슴이 하루는 꼴을 넉넉히 장만하지 못하였는데, 다음 날 종일토록 비가 오는 바람에 소에게 줄 꼴이 없어서 그 머슴이 주인한테 호되게 혼난 적이 있었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그 소는 그 집에 사는 동안 주인이 극진히 보살펴준 은덕에 감사하여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재물을 지켜주기 위해 개로 태어나 전생의 주인이었던 생질녀의 아버지를 찾아서 그 집에 간 것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위에서 이야기 한 원혼들이 만월행 보살님의 집에 갔다가 전생에 소였던 그 개를 보게 되자, 전생에 그로 인하여 주인에게 호되게 혼난 사실이 떠올라 그 개를 죽인 것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러나 그 역시도 결코 정당한 것은 못되고, 밖에서 뺨 맞고 집에 와서 화풀이 한 격이며, 소 즉 개의 입장에서는 남이 파 놓은 함정에 빠진 꼴이 되었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하시더랍니다. 만월행 보살님과 만월심 두 보살님은 위에 말씀드린 기도를 통하여 인과의 법칙을 절실히 깨달았으며, 자신을 따르는 그림자를 볼 때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누구도 만들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그야말로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법신으로 우리네 실생활 그 어디나 두루 하시면서 우리들 자신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도 아울러 알았을 뿐만 아니라, 복숭아나무와 강아지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서는 어떤 인연을 맺을 때, 보다 신중해야겠다는 교훈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옛날이야기로만 들어오던 영혼에 관한 사실을 직접 체험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삼생을 누구보다 확실히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법륜 스님에 관한 신비한 영험담을 수경사 신도 당사자들로부터 직접 여러 가지 들었을 뿐만 아니라, 저 자신의 체험도 있고 하여, 법륜 스님에 대한 존경심과 아울러 제 불심은 더욱 더 깊어만 갔습니다. 따라서 이 모두가 믿음을 가지라고 부처님께서 역사하시는 줄로 제 나름대로 깨닫게 되었답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분명히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불교적 많은 지식보다는 체험적 영험이 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마치 불교적 지식이 그림의 떡이라면 체험적 영험은 입안의 떡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자로서 바른 신행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부처님의 법신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가르침인 인과의 법칙을 의심 없이 진리로 신봉하면서 꾸준한 생활 속의 기도가 되어야 하리라고 보며, 그럴 때만이 부처님의 영험을 체험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처님의 법신을 어떻게 인정하느냐고 하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니, 이것이 바로 법신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습니까?
정말이지 저는 지난 날 가위에 눌리고 시달려 잠 못 자고, 밤만 되면 그 집이 너무도 무서워져서 밖에 나가 늦가을 밤거리를 어머님과 함께 추위에 떨며 서성이던 일을 생각하면, 마치 꿈만 같고 꼭 죽을 목숨인데 이렇게 두 생을 살고 있다고 느낄 때면 하염없이 흐르는 감사의 눈물을 감출 길이 없답니다.
이것은 모두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을 위시하여 제가 과거 생에 지은 죄에 대해서 너그럽게 관용을 베풀어주신 두 영가님의 은덕이자, 어리석은 저를 깨우쳐 주시고 기도해 주신 법륜 스님과 걱정하고 보살펴 주신 우리 수경사 신도님들의 덕택이라고 생각되어, 이 자리를 빌어 두루두루 더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이 모든 은덕에 보답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심하던 끝에, 그냥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보다는, 부족한 저이지만 계속 공부하면서 구도의 길을 가는 것만이 그 모든 은덕에 보답하는 바로 그 길이라고 깨닫고, 26년 이상이나 수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항상 “술을 마시면 지혜가 죽고, 담배를 피우면 건강이 죽고, 고기를 먹으면 자비심이 죽고, 노름을 하면 양심이 죽고, 거짓말을 하면 진실이 죽고, 게으르면 모두가 죽는다.” 그리고 “바른 생활이 곧 불공이자 기도요 수행이다.”라고 가르치시는 법륜 스님을 은사로 받들고 승려가 되었답니다.
그럼 끝으로 많은 분들의 기도와 성원을 부탁드리며, 말씀드린 영험담이 조금이나마 여러분의 신행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한없는 기쁨으로 알겠습니다. 모두 모두 부처님의 품안에서 안녕을 누리시고, 성불하시길 일심으로 삼보전에 빌겠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나무 불(歸依 佛)
나무 법(歸依 法)
나무 승(歸依 僧).
위의 글은 경법 스님의 구도의 길을 가게 된 동기를 동방불교대학을 졸업하면서 법문집에 실었던 것을, 아들(재호)의 뜻을 받들어 이 영험록을 내게 되었사오니, 믿는 마음으로 열심히 수행하셔서 부디 저처럼 어리석은 중생이 되지 마시고, 현명한 불자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열심히 정진하셔서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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