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과 아미타불/염불에 관한 장

[스크랩] 염불요문(念佛要門) - 보조국사

慧蓮혜련 2010. 1. 4. 17:12

 

염불요문(念佛要門)

대개 말세 중생들은 근기와 성품이 어둡고 둔하여 탐욕과 습기가 두텁기 때문에, 오랫동안 생사에 빠져 온갖 고뇌를 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스승과 벗의 꾸지람을 받지 않으면, 고뇌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들의 과거의 잘못을 꾸짖어 오념(五念)을 쉬게 하고 오장(五障)을 틔운 뒤에, 오탁(五濁)을 뛰어넘고 구련(九蓮) 위에 오르게 하리니, 그대들은 뜻을 오로지 하여 내 말을 들으라.

蓋夫末世衆生 根性昏鈍 欲習濃厚 故 久滯沈淪 未免衆苦. 不憑師友之  難得脫苦之樂. 由是 我 汝等之前非 令獲五念之停息 通達五障, 然後 令超五濁 登九蓮上 汝須專志 聽我言.

오정심(五停心)이란, 첫째는 탐욕이 많은 중생에게는 부정관(不淨觀)이요, 둘째는 분노가 많은 중생에게는 자비관(慈悲觀)이며, 셋째는 산심(散心)이 많은 중생에게는 수식관(數息觀)이요, 넷째는 어리석은 중생에게는 인연관(因緣觀)이며, 다섯째는 업장(業障)이 많은 중생에게는 염불관(念佛觀)이다.

其五停心者 一 多貪衆生 不淨觀. 二 多嗔衆生 慈悲觀. 三 多散衆生 數息觀. 四 愚痴衆生 因緣觀. 五 多障衆生 念佛觀.

오념은 비록 쉬었으나 세상 인연들을 떠나지 못하므로 다시 오장(五障)에 걸린다. 오장이란, 첫째는 계속 이어지는 애욕이니 번뇌장(煩惱障)이라 하고 둘째는 법문을 알아 집착하는 것이니 소지장(所知障)이라 하며, 셋째는 몸을 사랑해 업을 짓는 것이니 보장(報障)이라 하고 넷째는 마음을 없애고 고요함만 지키는 것이니 이장(理障)이라 하며, 다섯째는 온갖 법을 두루 관찰하는 것이니 사장(事障)이라 한다.

此五念雖停 未離世緣 故 滯於五障也. 其五障者 一 相續愛欲 名煩惱障. 二 了執法門 名所知障. 三 愛身造業 名報障. 四 無心守靜 名理障. 五 通察萬法 名事障.

오장을 틔우지 못하기 때문에 오탁에 걸린다. 오탁이란, 첫째는 한 생각이 처음으로 움직여 공(空)과 색(色)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니 겁탁(劫濁)이라 하고 둘째는 견해와 지각이 어지러이 일어나 맑은 성품을 흔드는 것이니 견탁(見濁)이라 하며, 셋째는 삿된 생각을 번거로이 일으켜 현재의 티끌을 일으키는 것이니 번뇌탁(煩惱濁)이라 하고 넷째는 생멸(生滅)이 멈추지 않아 생각 생각이 옮겨 흐르는 것이니 중생탁(衆生濁)이라 하며, 다섯째는 각기 의식과 목숨을 받아 그 근본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니 명탁(命濁)이라 한다.

此五障不通 故 滯在五濁也. 其五濁者 一 一念初動 不分空色 名劫濁. 二 見覺紛起 泊擾湛性 名見濁. 三 煩起邪念 發知現塵 名煩惱濁. 四 生滅不停 念念遷流 名衆生濁. 五 各受識命 不顧其源 名命濁.

오념이 쉬지 않으면 오장이 어떻게 통하고, 오장이 통하지 않으면 오탁이 어떻게 맑아지겠는가? 그러므로 오념이 쉬지 않으면 장애와 흐림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열 가지 염불삼매(念佛三昧)의 힘으로 차츰 청정한 계율의 문에 들어가야 한다. 계율의 그릇이 순수히 맑고 한 생각이 도에 맞은 뒤에라야 마음을 쉬고 장애와 흐림에서 뛰어나, 바로 극락에 이르러 삼무루학(三無漏學)을 깨끗이 닦아, 미타(彌陀)의 위없는 큰 깨달음을 함께 증득할 수 있을 것이다.

不停五念 則五障何通 五障不通 則五濁奚淸. 是以 五念不停者 多障多濁 故 必以十種念佛三昧之力 漸入淸淨戒門. 戒器純淸 一念相應 然後 可得停心超於障濁 直到極樂 淨修三無漏學 同證彌陀無上大覺也.

그러므로 이 도를 증득하려면 모름지기 열 가지 염불을 닦아야 한다.
열 가지란, 첫째는 계신(戒身)염불이요, 둘째는 계구(戒口)염불이요, 셋째는 계의(戒意) 염불이며, 넷째는 동억(動憶)염불이요, 다섯째는 정억(靜憶)염불이며, 여섯째는 어지(語持) 염불이요, 일곱재는 묵지(默持)염불이며, 여덟째는 관상(觀想)염불이요, 아홉째는 무심(無心)염불이며, 열째는 진여(眞如)염불이다.

是以 欲證斯道 應修十種念佛 何等爲十. 一 戒身念佛. 二 戒口念佛. 三 戒意念佛 四 動憶念佛. 五 靜憶念佛. 六 語持念佛. 七 默持念佛. 八 觀想念佛. 九 無心念佛. 十 眞如念佛.

이런 열 가지 염불은 다 한 생각의 참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생각이 이루어지고 공이 지극해야 한다. 그러므로 생각함이란 잊지 않는 것이니, 참 성품을 보존하고 기르되 꼭 지키고 잊지 않는 것이요, 부처란 깨달음이니 참 마음을 살피고 비추어 보아 항상 깨달아 알고 뚜렷이 밝아 어둡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이 없는 한 생각이 깨달아 알고 뚜렷이 밝아, 밝고 뚜렷하여 생각이 끊어졌으면 그것이 진정한 염불이다.

如是十種念佛 皆一念眞覺之所發 而成念極功也. 故 念者守也 存養眞性 要守不忘也. 佛者覺也 省照眞心 常覺不昧也. 故 無念之一念 覺了圓明 圓明絶慮 是謂眞念佛也.

첫째의 계신염불(戒身念佛)이란,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을 버려, 몸의 그릇이 청정하고 계율의 거울이 뚜렷이 밝은 뒤에,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앉아 서쪽을 향해 합장하고 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공경히 생각하되, 부르는 수가 끝이 없고 생각이 간단 없어, 심지어 앉은 것도 잊고 한 생각이 앞에 나타날 때를 계신염불이라 한다.

第一 戒身念佛者 當除殺盜  身器淸淨 戒鑑圓明而後 端身正坐合掌 面西 一心欽念南無阿彌陀佛 數無窮盡 念無間斷 乃至 坐忘非坐一念現前時 名爲戒身念佛.

둘째의 계구염불(戒口念佛)이란, 거짓말 비단결같은 말 이간질 말 나쁜 말 등을 버리고 입을 지키고 뜻을 거두어 잡아, 몸이 깨끗하고 뜻이 깨끗한 뒤에 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공경히 생각하되, 부르는 수가 끝이 없고 생각이 간단 없어, 심지어는 입을 잊고 입이 아니어도 저절로 생각이 나는 때를 계구염불이라 한다.

第二 戒口念佛者 當除妄語綺語兩舌惡口 守口攝意 身淸口淨而後 一心敬念南無阿彌陀佛 數無窮盡 念無間斷 乃至口忘非口 自念現前時 名爲戒口念佛.

셋째의 계의염불(戒意念佛)이란, 탐욕 분노 우치 교만 등을 버리고 뜻을 끌어넣고 마음을 밝히어 마음의 거울이 생각이 없어진 뒤에, 한 생각으로 나무아미타불을 깊이 부르는 수가 끝이 없고 생각이 간단 없어, 심지어는 뜻을 잊고 뜻이 아니어도 저절로 생각이 나는 때를 계의염불이라 한다.

第三 戒意念佛者 當除貪嗔痴慢 攝意澄心 心鑑無思而後 一念深念南無阿彌陀佛 數無窮盡 念無間斷 乃至意忘非意 自念現前時 名爲戒意念佛.

넷째의 동억염불(動憶念佛)이란, 십악을 버리고 십선을 바로 가지면 동아다닐 때나 갑작스러울 때에도 일념으로 늘 나무아미타불을 생각하되, 부르는 수가 끝이 없고 생각이 간단 없어, 심지어는 움직임이 움직이지 않을 때에 이르러서도 저절로 생각이 나는 때를 동억염불이라 한다.

第四 動憶念佛者 當除十惡 正持十戒 於動用周旋 造次顚沛 一念常念南無阿彌陀佛 數無窮盡 念無間斷 乃至 動極 不動 自念現前時 名爲動憶念佛.

다섯째의 정억염불(靜憶念佛)이란, 십계가 깨끗하고 일념이 어지럽지 않아, 일이 없어 한가하거나 깊은 밤에 혼자 잇을 때에 한 생각으로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생각하되, 부르는 수가 끝이 없고 생각이 간단 없어, 심지어는 고요함이 움직임에 이르러서도 저절로 염불이 되는 때를 정억염불이라 한다.

第五 靜憶念佛者 十戒旣淨 一念不亂 於靜身閑事 幽夜獨處 一念專念南無阿彌陀佛 數無窮盡 念無間斷 乃至 靜極 卽動 自念擧時 名爲靜憶念佛.

여섯째의 어지염불(語持念佛)이란, 남과 이야기할 때나 아이를 부르고 사동을 나무랄 때에, 밖으로는 감정을 따르지마는 안으로는 생각이 움직이지 않아, 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고요히 생각하되, 부르는 수가 끝이 없고 생각이 간단 없어, 심지어는 말을 잊고 말이 없어도 저절로 생각이 나는 때를 어지염불이라 한다.

第六 語持念佛者 對人接話 呼童警僕 外感隨順 內念不動 一念靜念南無阿彌陀佛 數無窮盡 念無間斷 乃至 語忘無語 自念現前時 名爲語持念佛.

일곱째의 묵지염불(默持念佛)이란, 입으로 외는 생각이 지극해지고, 생각 없는 생각은 은밀히 계합하여, 자나 깨나 어둡지 않고 움직이거나 가만 있거나 항상 일념으로 나무아미타불을 가만히 생각하되, 부르는 수가 끝이 없고 생각이 간단 없어, 심지어는 침묵도 잊고 생각하지 않고도 저절로 생각이 나는 때를 묵지염불이라 한다.

第七 默持念佛者 口誦之念旣極 無思之念默契 夢覺不昧 動靜恒憶 一念默念南無阿彌陀佛 數無窮盡 念無間斷 乃至 默忘不念 自念擧時 名爲默持念佛.

여덟째의 관상염불(觀想念佛)이란, 그 부처의 몸이 법계에 충만하고, 묘한 금색 광명이 중생들 앞에 나타난다고 관하고, 부처의 광명이 내 몸과 마음을 비틴다고 생각하고, 아래를 내려다봄과 위를 쳐다봄과 보고 듣는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님을 알아, 뜻과 정성이 지극하여 일면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지극히 생각하되, 부르는 수가 끝이 없고 생각이 간단이 없어, 열두 시간과 사위의 가운데서 항상 공경하여 어둡지 않으면 그것을 관상염불이라 한다.

第八觀想念佛者 觀彼佛身 充滿於法界 妙光金色普現於群生前 想知佛光 照我身心 俯仰觀聽了非他物 至意至誠 一念極念南無阿彌陀佛 數無窮盡 念無間斷 於十二時中 四威儀內 常敬不昧 是名觀想念佛.

아홉째의 무심염불(無心念佛)이란, 염불하는 마음이 오래 되어 공을 이루어 차츰 무심삼매를 얻고, 생각 없는 생각이 일지 않아도 저절로 일고 생각없는 지혜가 원만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원만해지고 받들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받들어져, 함이 없이 이루어지면 그것을 무심염불이라 한다.

第九 無心念佛者 念佛之心 久化成功  得無心三昧 無念之念 不擧而自擧 無思之智 非圓而自圓 不受而受 無爲而成 是名無心念佛.

열째의 진여염불(眞如念佛)이란, 염불하는 마음이 지극해지고 앎이 없는 앎이 저절로 알아져, 삼심(三心)이 한꺼번에 비고 한 성품이 움직이지 않아,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환히 홀로 높아지면 그것을 진여염불이라 한다.

第十 眞如念佛者 念佛之心旣極 無了之了自了 三心頓空 一性不動 圓覺大智 朗然獨尊 是名眞如念佛.

만일 먼저 십악과 팔사(八邪)를 끊지 않으면 어떻게 십계의 청정함에 순응할 수 있으며, 또 몸의 그릇이 깨끗하고 계율의 거울이 뚜렷이 밝지 않으면 어떻게 열 가지 염불에 계합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몸의 그릇이 깨끗한 뒤에라야 법장(法藏)을 간직할 수 있고 계율의 거울이 뚜렷이 밝아진 뒤에라야 부처의 감응이 밝게 비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도, "아무리 맛난 제호를 얻었더라도 보배 그릇이 아니면 담아 두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지금 염불하는 사람으로서 몸의 그릇이 청정하고 계율의 거울이 뚜렷이 밝아지면 어찌 참 법의 맛을 간직할 수 없겠는가?

若非先斷十惡八邪者 奚順於十戒淸淨 又非身器淸淨 戒鑑圓明者 何契於十種念佛. 是以 身器淸淨 然後 可以貯凝法藏 戒鑑圓明 然後可以佛應照著.
故 經云 [雖得醍 眞上味 若非寶器貯凝難.]
今此念佛之人 身器淸淨 戒鑑圓明 豈佛能儲凝眞法味者乎.

요즈음 속인이나 사된 무리들은 십악과 팔사를 끊지 않고 오계와 십선을 닦지 않고서, 잘못된 이해와 사사로운 정으로 망령되이 염불하려 하되, 사된 소원을 떨어 놓고 방자하게 서방에 나려 하니, 그것은 모난 나무를 둥근 구명에 끼우려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은 제 뜻으로 염불을 가진다고 생각하지마는 부처의 뜻이 어찌 그 사된 생각에 맞아 주겠는가?


그러므로 파계하고 부처를 비방하면서 망령되이 진실과 청정을 구하는 죄로, 깊은 번뇌[幽結]를 거듭한 끝에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져 그 몸과 마음을 스스로 해치거늘 그것이 누구의 허물이겠는가? 너희는 계를 지니는 것으로 본받음을 보여 먼저 십악과 팔사를 끊고 다음에는 오계와 십선을 닦아 과거의 허물을 뉘우치며, 서원한 후 번뇌의 뜻으로 정해진 미래의 과보에 참(參)하고, 해마다 죽음과 삶에 삼장재월(三長霽月)을 지키고 절(節)은 여덟으로 한 달이 바뀔 때마다 있는 육재(六齋)를 힘쓰되,

 

 열 가지 염불로 업을 삼아 오래 공들이고 힘을 쌓아 진여에 고요히 합하면, 날마다 때마다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아미타불의 참 몸이 가만히 그 앞에 나타나 정수리를 어루만지면서 기별(記 )을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임종 때에 친히 극락세계의 구품연대(九品蓮臺)로 맞이하되 반드시 상품(上品)에서 마주해 앉으리니 진중(珍重)하여야 한다.

近來 白衣邪徒 不斷十惡八邪 不修五戒十善 以曲會私靜 妄求念佛 披露邪願 欲生西方 是乃如將方木逗圓孔也. 如此之人 自意雖持其念佛 佛意何契其邪念乎.
是以 破戒謗佛 妄求眞淨之罪 幽結極重 故 死墮地獄 自傷身心 是誰過歟.
汝等 戒侶觀鑑于玆 先斷十惡八邪 次持五戒十善 懺悔前非 願盟後果  結同心 志定死生 持年三長
守節八交 效月六齊 須以十種念佛爲業 久功積力泊合眞如念佛 則日日時時 行住坐臥 阿彌陀佛眞體 冥現其前 摩頂授記. 若於臨命終時 親迎極樂 於九品蓮臺 必以上品 相對而住 珍重. <念佛要門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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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요문(念佛要門)


-불일보조국사-

염불은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는 법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부처님을 염원하면서 하는 염불은 우리에게 마음의 안락과 평안을 주어 안정된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할 것이다. 이에 불일 보조국사(佛日 普照國師)가 지으신 염불요문(念佛要門)을 2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요즘 사람들은 그 마음이 흐리고 어두워서 욕망과 삶의 버릇이 짙고 두텁기만 합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어둠에 막히고 길이 애욕에 빠져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저들이 벗과 같은 스승이나 스승과 같은 벗의 깨우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끝내 괴로움을 벗어난 참 행복을 얻기란 참으로 어렵고 어려울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지난 날 저지른 잘못들을 잘 일깨워 주는 좋은 벗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다섯 가지 잘못된 마음의 흐름을 편히 쉬고 행복한 삶을 가로막고 있는 다섯 가지 거침새들을 밝게 안 뒤 다섯 가지 어둡고 흐린 삶을 훌쩍 뛰어넘어 아홉 층 연꽃 세상 위로 둥근 보름달처럼 밝게 떠오르게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부디 뜻을 모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다섯 갈래 잘못된 마음의 흐름을 편히 쉬게 하는 길인 오정심(五停心)이란 무엇입니까? 첫째는 탐심(貪心)이 많은 중생들로 하여금 사랑하는 나의 몸이 깨끗하지 않음을 보게 함이요, 두 번째는 화 잘 내는 중생들로 하여금 들이쉬고 내쉬는 숨길을 보게 함이요,

세 번째는 마음이 어지러운 중생들로 하여금 들이쉬고 내쉬는 숨길을 보게 함이요, 네 번째는 어리석은 중생들로 하여금 끝없는 인연의 바다를 보게 함이요, 다섯 번째는 살아가는데 거침새가 많은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이름과 모습이 끊임없이 피어나고 있음을 밝게 보게 함이 그것들입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 잘못된 마음의 흐름이 멈춘다 해도 세상의 인연을 여의지 못하는 이는 다시 다섯 가지 걸림새에 걸리고 맙니다. 다섯 가지 걸림새란 무엇입니까?


첫째는 애욕(愛慾)이 끊임없이 흐르는 번뇌의 걸림새요,
두 번째는 진리(眞理)라는 것에 덥석 집착하는 앎의 걸림새요,
세 번째는 몸뚱이를 아끼고 사랑해서 갖가지 업을 지어 만든 과보(果報)의 걸림새요,

네 번째는 아무 생각 없이 고요함만을 지키는 이치의 걸림새요,
다섯 번째는 이런 저런 사물들을 헤아려 따지는 사물의 걸림새가 그것들입니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걸림새들을 밝게 깨닫지 못하면 다섯 가지 어둡고 흐린 삶에 걸려들어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다섯 가지 어둡고 흐린 삶인 오탁(五濁)이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사람의 수명이 차차 감하여 30, 20, 10세로 됨에 따라 기근(饑饉)·질병(疾病)·전쟁(戰爭)이 일어나 시대가 흐려짐에 따라 입는 재액(災厄)인 겁탁(劫濁)입니다.

 

 두 번째는 한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공과 색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하게 되는, 시간의 어두움인 겁탁을 어지럽히는, 생각의 어두움인 견탁(見濁)입니다.

세 번째는 어지럽게 그릇된 생각을 일으켜, 앎을 내서 바깥 세계를 지어내는, 번뇌의 어두움인 번뇌탁(煩惱濁)입니다.

 

 네 번째는 일어나고 사라짐이 쉬지 않고 생각 생각에 흐르는, 중생의 어두움인 중생탁(衆生濁)입니다.

 

 다섯 번째는 저마다 의식의 시킴을 받으면서도 그 근원을 돌아보지 않는, 목숨의 어두움인 명탁(命濁)입니다.

이 다섯 가지 잘못된 마음의 흐름을 쉬지 않으면 어떻게 다섯 가지 걸림새를 밝게 알겠습니까. 또 다섯 가지 걸림새를 밝게 알지 못한다면 오탁(五濁)의 삶을 어찌 맑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이들은 반드시 열 가지 염불 삼매의 힘으로 점차로 청정한 계율의 문에 들어가야 티없이 깨끗한 삶을 생각 생각마다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된 뒤에야 잘못된 마음의 흐름을 편히 쉬어서 곧바로 극락세계에 이를 것이며, 삼무루학(三無漏學)을 맑게 닦아서 저 아미타 부처님의 위없는 큰 깨달음을 함께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아미타불의 큰 깨달음을 증득하려면 마땅히 열 가지 염불을 수행(修行)해야 합니다.

몸가짐의 염불인 계신염불(戒身念佛), 말가짐의 염불인 계구염불(戒口念佛), 마음가짐의 염불인 계의염불(戒意念佛), 움직이면서 하는 동억염불(動憶念佛), 움직이지 않고 하는 정억염불(靜憶念佛), 말하면서 하는 어지염불(語持念佛), 말하지 않고 하는 묵지염불(默持念佛), 부처님 모습을 그리면서 하는 관상염불(觀想念佛), 무심하게 하는 무심염불(無心念佛), 부처님이 부처님을 염(念)하는 진여염불(眞如念佛)이 그것들입니다.

이 열 가지 염불은 모두 한결같은 참 깨달음의 자리에서 피어나 부처님과 하나를 이루게 하는 더할 수 없이 지극한 수행 법입니다. 그러므로 염불에서 말하는 염(念)이란 참 성품을 늘 드러나게 하고 끝없이 기르려면 그것을 지키어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며, 그리고 염불에서 말하는 불(佛)이란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깨달음이란 참 마음을 밝게 비춰서, 늘 깨어 있어 어둡지 않음을 말합니다. 참 염불이란 한결같은 무념(無念)으로 밝고 뚜렷하게 깨닫고 이렇듯 밝고 뚜렷하게 깨달으면 온갖 생각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계속>


염불요문(念佛要門)(2)

불일 보조국사

첫 번째는 몸가짐의 염불인 계신염불(戒身念佛)입니다. 죽이고, 훔치고, 음행 하는 짓들을 말끔히 없애어 몸을 청정하게 해서 계율의 거울이 밝고 뚜렷해지게 합니다. 그런 뒤로 몸을 단정히 하고 바르게 앉아서 합장하고 서쪽을 향해 마음 다해 공경히 나무아미타불을 염(念)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두 번째는 말 가짐의 염불인 계구염불(戒口念佛)입니다. 실없는 말, 속이는 말, 두 말, 험한 말 짓들을 말끔히 없애고 입을 지켜 마음을 거둡니다. 몸을 맑게 하고 입을 깨끗이 한 뒤에 마음 다해 공경히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세 번째는 계의염불(戒意念佛)로 생각에 끊어짐 없어 마침내 입마저 없어져 입으로 부르지 않을 때에도 스스로 염하는 일이 밝고 분명합니다. 욕심 부리고, 화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말끔히 없애고 뜻을 거두고 마음을 맑게 합니다. 마음 거울에 번뇌의 때가 사라진 뒤에 마음 다해 깊게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네 번째는 움직이면서 하는 동억염불(動憶念佛)입니다. 열 가지 모질고 나쁜 짓거리를 말끔히 없애고 열 가지 계를 올바로 지닙니다. 움직이고 오고 감에 한 틈에도 염불하고 찰나에 염불하여 마음 다해 늘 아미타불을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다섯 번째는 움직임이 없이 하는 정억염불(停憶念佛)입니다. 저 열 가지 계율이 이미 깨끗해져서, 고요할 때나 일 없을 때나 깊은 밤 홀로 있을 때나 염불하는 마음이 한결같아 마음 다해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는 일이 밝고 분명합니다.

여섯 번째는 말하면서 하는 어지염불(語持念佛)입니다. 사람을 맞이해 말을 나누고, 아이를 부르며, 함께 일하고, 일을 시킴에 밖으로는 그런 일들을 따르되 안으로는 염불하는 마음이 흔들림이 없습니다.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고요히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일곱 번째는 말없이 하는 묵지염불(默持念佛)입니다. 입으로 부르면서 하는 염이 다해 생각의 때가 없이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여덟 번째는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을 그리면서 하는 관상염불(觀想念佛)입니다. 저 부처님의 몸이 법계에 가득하며 묘한 광명 눈부신 금빛이 모든 중생들 앞에 두루 나타남을 관합니다.

또 부처님의 맑고 밝은 자비의 광명이 나의 몸과 마음을 비추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이 모두 부처님의 빛임을 밝게 깨달아서,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끝까지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아홉 번째는 무심히 하는 무심염불(無心念佛)입니다. 염불하는 마음이 오래되어 공을 이루면 차차로 무심삼매(無心三昧)를 얻게 됩니다. 생각의 때가 없는 진실한 염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뚜렷해집니다. 받음이 없이 받아들이고 함이 없이 다 이룹니다.

열 번째는 부처님이 부처님을 염하는 진여염불(眞如念佛)입니다.
염불하는 마음이 이미 끝머리에 이르러 깨달음이 없이 깨닫습니다. 스스로 심(心), 의(意), 식(識)이 본디 텅 빈 것임을 알아서, 한가지 밝은 성품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모자람 없는 깨달음의 큰 지혜가 밝고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염불하는 이치가 이와 같으니,

만약 열 가지 악(十惡)과 팔정도(八正道)에 맞서는 여덟 가지 그릇됨을 끊어 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저 십계(十戒)의 맑고 깨끗함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또 몸이 맑고 깨끗하고 계율의 거울이 환히 밝지 않으면 어떻게 저 열 가지 염불법과 한 몸이 되겠습니까. 그러니 몸을 맑고 깨끗하게 한 뒤에야 진리의 온갖 보배들을 쌓고 모을 수 있으며, 계율의 거울을 환히 밝게 한 뒤에야 부처님께서 자비의 빛을 드리워 주실 것입니다.

요즈음 어리석은 사람들이 십악과 여덟 가지 그릇됨을 끊지 않고, 또 오계와 십선(十善)을 닦지 않고도 그릇된 앎과 혼자만의 생각으로 헛되이 염불수행법을 찾아 그릇된 바람들을 드러내 놓고 극락 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것은 마치 모난 나무로 둥근 구멍을 막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는 염불 수행을 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부처님의 뜻이야 어찌 그런 삿된 생각과 함께 하시겠습니까. 쉼없이 파계(破戒)하는 몸으로 순간순간 부처님을 비방하면서도 되려 실없이 참되고 깨끗한 세계를 구하는 죄는 참으로 풀어 줄 수 없고 무겁기 그지없는 죄인 것입니다. 죽어 지옥에 떨어져 스스로 몸과 마음을 해치는 것이 이 누구의 허물이겠습니까?

여러분은 계율로 벗을 삼고 이제까지 밝힌 이치를 거울삼아 비춰 보고, 먼저 십악과 여덟 가지 그릇됨을 끊고 이어서 오계와 십선의 착함을 굳게 지녀서 앞서 저지른 잘못들을 참회하고 깨달음의 열매 얻기를 굳게 다짐해야 합니다. 해마다 선악의 업이 드러난다니 정월, 오월, 구월에 하는 수행을 닦듯이 염불 수행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또 날씨가 엇바뀌는 여덟 절기마다 염불 수행을 새롭고 새롭게 힘써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달마다 여섯 재일(齋日)의 가르침을 본받아 저 열 가지 염불로 참 살림살이를 삼아야 합니다. 진여염불과 하나를 이루면 날마다 시간마다 가고 오고 앉고 누움에 아미타불의 참 모습이 그윽이 앞에 나타나셔서 그대 머리 위에 향기로운 손을 얹으시고 길이 길이 피어나는 큰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또 목숨을 마칠 때에 이르러서는 아미타 부처님께서 몸소 극락 세계의 아홉 층 연꽃 세계로 맞아들이시어 반드시 가장 뛰어난 저 아홉 번째 연꽃 세계에서 여러분을 맡으시고 길이길이 그 곳에 머물게 하실 것이니, 아, 부디 애쓰고 또 애쓰십시오. <끝>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雲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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