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어머니를 찾은 동래부사
지금 부산시 동래구 서문통 쪽인― 옛날 동래부(東來府)의 관아가 있는 대로(大路)변― 좁은 길목에 들어서면 둘째 집 뜰에 전 동래부사(東來府使)인 유심(柳深)이 세운 기이한 인연의 비(碑)가 서 있다. 예전에는 이 비가 대로변에 서 있어서 오가는 행인들이 자유스럽게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대도시가 들어서 어느 집의 뜰에 서 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 비석에 암각된 글을 읽어보면 비석의 주인공인 유심 자신이 전생의 어머니를 만난 기이한 인연의 실화를 적어 세상에 전하고 있으니 다음과 같다.
아득한 옛날, 동래부중에 일찍 남편을 잃은 아름다운 미모의 청상과부가 가난하여 노동으로 근근히 연명하면서 4살난 어린 외아들에게 마음을 의지하면서 쓸쓸하게 살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은 인물도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4살짜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총명하고 영특했다.
동래부에서 가장 구경할만한 행사가 있었는데, 그것은 동래부사가 바뀌어 새 부사가 부임하면서 열리는 행차 행렬이었다. 천지를 진동할 듯한 취주와 징, 북소리 등의 군악소리가 울리면서 대소 관원들이 모두 나와서 깃발을 들고 행차에 참가할 때의 모습은 장관이어서 볼만하였다.
새로 부임하는 부사가 팔선녀(八仙女)를 청하면, 동래부중의 명기(名妓)를 뽑아서 팔선녀의 행열을 하고, 대군복(大軍服)으로 차리라고 하면, 군관은 갑옷을 입고 창검을 들고 말 위에 오르고, 군졸은 군악소리에 맞추어 화려한 오색의 기치창검을 들고 보무도 당당히 열병식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사를 할 때면, 동래부중의 주민들은 물론 이웃 고을 사람들까지 몰려와서 동래부앞의 좌우 대로변에 늘어서서 환호하며 구경을 했다. 그 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우는 그 때, 가난하고 쓸쓸한 그 청상과부도 어린 아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어린 아들을 데리고 대로변에 송구스럽게 서서 구경을 했다. 청상과부의 어린 아들은 엄마의 손을 꼬옥 잡고서 새로이 부임하는 부사의 화려한 행사를 보면서 선망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엄마의 손을 잡고 구경을 하던 아들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올려다보면서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나도 커서 어른이 되면 저 부사님처럼 될 꺼야.”
아들의 천진스러운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아들의 말을 들은 엄마는 입을 굳게 다물고 대답은 하지 않고 슬픈 표정이 되었다. 아들은 엄마의 손을 잡아 흔들면서 재촉했다.
“엄마, 왜 말이 없어? 난 커서 어른이 되면 저 부사님처럼 되겠다는 말이야.”
엄마는 눈가에 이슬이 맺히면서 철없는 아들을 꼬옥 안으면서 아들의 귓가에 또렷히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애야, 너는 커서 어른이 되어도 저런 부사님 같은 분이 될 수는 없단다.”
“엄마, 왜 못되는 거야?”
“우리는 벼슬을 할 수 없는 천한 상놈 출신이란다. 너는 부모를 잘못 만나 태어났어. 양반 집에 태어났더라면 부사님처럼 될 수가 있지. 그러나, 상놈집안에 태어났기에 희망이 없단다.”
청천벽력과 같은 어머니의 답변을 들은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엄마에게 확인하듯 말했다.
“엄마, 상놈이라도 부지런히 공부하면 부사님이 될 수 있지?”
“상놈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부사가 될 수 없단다.”
“상놈과 양반은 누가 만들었어?
“권력 있는 인간들이 만들었지.”
“엄마, 나 구경하기 싫어. 집에 돌아가고 싶어.”
아이는 연신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돌아온 후 방안에 들어가 입을 굳게 닫고 식음을 전폐해 버렸다. 아들의 마음을 아는 엄마는 아들을 안고 달래며, 거짓말을 해서라도 아이에게 희망을 심어주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울었다. 식음을 전폐한 아이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병이 위중해졌다. 엄마는 아들을 가슴에 안고 울면서 말했다.
“애야, 밥을 왜 먹지 않니? 밥을 먹어야 기운을 차리게 돼. 제발, 어서 일어나 밥을 먹어라.”
아이는 엄마의 품안에 안겨 병색이 얼굴을 들어 엄마의 얼굴을 올려 보면서 간신히 입을 떼어 물었다.
“엄마,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끝나는 거야? 다시 태어날 수 없어?”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셨단다. 인간이 죽어 인연이 있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단다. 나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다.”
“엄마, 나 다음에 동래부사가 되어서 엄마를 찾아올 께요. 나 그래도 되지요? 꼭 엄마를 찾아오겠어요.”
아이는 이상한 말을 마치고 숨이 져 버렸다.
“아가야!―”
청상의 엄마는 가슴에 안은 아이가 숨이 진 것을 깨닫고 몸부림치며 아이를 부르면서 방성통곡을 했다. 엄마는 아이를 양지 바른 곳에 묻고 가까운 산사를 찾아 관세음보살님께 아이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달라고 울면서 기도했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서 밤이면 방안에서 눈물속에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천도의 기도를 드렸다. 청상의 가난한 엄마는 외아들 마저 잃어서 천지에 의지할 데가 없는 불쌍한 여자가 되어 버렸다.
슬픔과 눈물속에 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엄마의 꿈에 어느 날 밤, 죽은 아들이 나타나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고 난 후, 공손히 말했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저는 관세음보살님이 인도해주시어 한양에서 판서를 지내는 유판서의 집안에 다시 태어나서 잘 살고 있어요. 어머님, 이젠 상놈이라는 소리는 안 듣게 되었어요. 부지런히 공부하면 벼슬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어머님 기다려 주세요. 제가 꼭 찾아가겠어요.”
그 후,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서 30년이 훌쩍 넘어섰다. 그 날의 청상과부는 백발노파가 되어 버렸다. 아름다운 미모는 주름 투성이가 되었으며, 섬섬옥수의 고운 손은 닳아진 갈퀴처럼 변해 버렸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불쌍한 노파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죽은 자식을 위해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해마다 아들의 제삿날에는 제상을 차려놓고 울면서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음식을 권했다. “내 아가야, 많이 먹어라. 에미가 살아있는 동안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줄께.”
그 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우는 그 때, 신임 동래부사가 천지를 진동할 듯한 군악소리속에 화려한 행차를 보이면서 동래부의 관아로 들어오고 있었다. 신임부사인 유심은 처음 부임하는 동래부의 길과 풍경이 어쩐지 처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초행길인데 웬일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신이 꿈속에서 오가는 길 같았다. 그는 매년 정해진 날 밤에는 똑같은 꿈을 꾸었다. 언제나 밤에 어느 관청의 앞길을 지나 초라한 초가집을 찾았고, 그곳에서 자신을 아들이라고 부르는 어머니로부터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은 것을 기억했다.
유부사는 꿈속에서 본 길을 생각하면서, 밤이 되면 그 길을 찾아 나서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유부사는 길옆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구경하는 아이들을 눈여겨보면서 웬지 슬픈 마음이 들었다. 유부사는 선망의 눈으로 보는 아이들에게 빙긋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윽고 밤이 되자 유부사는 통인(通人)을 대동하고 꿈속의 집과 어머니라는 부인을 찾아 나섰다. 유부사는 홀린 듯 옛길을 걸어서 마침내 꿈속의 집을 찾아내었다.
유부사는 초라한 초가집의 싸립문 밖에 서서 꿈속의 집을 바라보았다. 초가집에서는 호롱불을 밝혀놓고 늙은 여인이 관음기도를 드리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사는 주인을 찾았다. 백발노파는 영혼이 방안에 쉽게 들어오게 하기 위해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방안에 제상을 차려놓고 영혼의 이름을 부르고 맛있게 먹으라고 권하면서 울고 있었다.
유부사는 등을 보이고 울고 있는 백발노파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물었다.
“노인은 어찌하여 젯상 앞에서 슬피 우시는 지요?”
백발노파가 돌아서 유부사를 바라보았다. 그 때 유부사는 깜짝 놀랐다. 꿈속에서 어머니라고 불렀던 그 여인이었다. 백발노파는 생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채 뼈만 남은 앙상한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이 몸은 전생의 업보로 일찍 남편을 사별하고, 아들 하나를 데리고 의지하며 살았는데, 그 어린것이 단명하여 4살 때 저승으로 갔답니다. 오늘이 바로 그 아이의 제삿날이랍니다. 불쌍한 어린 영혼을 불러서 좋아하는 음식을 권하니 설움이 복받쳤습니다.”
백발노파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어린것은 신임 동래부사의 행차를 보며 자신도 동래부사가 되고 싶다고 소원했는데, 상것은 동래부사가 될 수 없다고 알려주니 절망하여 괴로워 하다가 식음을 전폐하면서 죽었답니다. 아이가 죽고 난 뒤 꿈속에 나타나서 서울 유씨 가문에 태어났다고 하며 훗날 동래부사가 되어 어머니를 찾겠다고 했지만, 현실로 그 아들을 다시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겠어요?”
그 말을 들은 유부사는 감전되듯이 큰 충격을 받았다. 꿈속에서 만난 전생 모자의 인연을 확연히 깨달은 것이다. 꿈속에서 걸은 옛길, 옛집, 옛어머니를 만나서 좋아하는 음식을 매년 대접받았는데 그 집이 이 집이고, 이분이 그 어머니였구나. 유부사는 의심하지 않고 확신했다. 그는 순간 울음을 터뜨리며 늙은 어머니 앞에 큰절을 올리면서 말했다.
“어머니, 제가 왔습니다. 아들이 돌아왔어요!”
백발노파는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유부사를 보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천한 여인에게 고관께서 어머니라고 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무슨 뜻이 온지요…?”
유부사는 전생의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매년 똑같은 날이면, 꿈속에 이 집을 찾아왔고, 어머니의 따뜻한 대접을 받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동래부사로 온 것도 이제 알고 보니 전생의 어머님께서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으로 기도해주신 인연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어머님, 이제 제가 정성을 다해 봉양하겠습니다.”
백발의 노파는 유부사의 손을 잡고 목이 메어 말했다.
“유씨 집안에 태어났다는 전생의 내 아들이 그토록 소망하던 동래부사가 되어 다시 나를 찾아왔다는 말이오? 그 말씀이 사실이오? 찾아오겠다며 나에게 기다리라던 그 말이 현실로 나타났구려. 오, 관세음보살님!….”
전생의 모자는 손을 맞잡고 목을 놓아 울었다. 유부사는 그 날 이후, 전생의 어머니를 위해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정성을 다해 효도를 다했다. 유부사는 석공을 불러 하명했다. 전생의 모자가 다시 상봉한 인연의 이야기를 비석에 깊이 새기었다. 그 비석은 동래부의 관아 앞 대로변에 세워 후세에 전하게 했다.
아아, 다시 만나는 윤회의 이야기가 어찌 유부사의 이야기뿐이겠는가. 깨닫고 보면, 일체가 인연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오늘 이승과 저승으로 슬프게 헤어지는 사람들이여, 내생에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금생에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여, 모두 전생의 소중한 인연이라는 것을 확연히 깨닫고 따뜻한 정을 나누시라. 제행이 무상한 것이니...*
동래부사유심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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