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과 아미타불/극락에 관한 장

[스크랩] 나를 정토로 이끈 책 - 정공법사의 ,『佛說大乘無量壽莊嚴淸淨平等覺經親聞記』

慧蓮혜련 2012. 5. 2. 07:51

 
나를 정토로 이끈 책 - 간추린 내용

 

淨空 스님,『佛說大乘無量壽莊嚴淸淨平等覺經親聞記』, 삼보제자, 1996

 

 

원문 : 하련거(夏蓮居) 거사 집대성, 5종의 『무량수경』

강의 : 1992년 미국에서 정공 법사

옮겨 적기 : 劉承符

한국말 번역 : 정옥순

 

* 이 경은 하련거 노거사의 회집본이다. 이는 5종의 원역본을 집대성한 것이며, 모두 48장으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 6장의 48원이 이 경전의 중심이며, 48원 가운데 18원이 가장 중요하다. 18원이 바로 심념왕생(十念往生)1)이다.

최후에 이르면 부처님의 교화는 바로 이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이다. 일심으로 명호를 붙잡으면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일체 경론법문을 모두 이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 안에 포괄할 수 있다.

 

* 최근 10여 년 동안 정공법사는 오로지 정토법문만을 널리 전하셨다. 그는 경장(經藏)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17년 동안 화엄을 강의한 후에 등각보살과 상상(上上)의 최정상 인물들이 마지막에는 모두 염불하여 정토에서 태어나기를 발원한 사실을 깨닫고, 다른 경교(經敎)를 모두 내려놓았다.

 

“불(佛)은 아미타불이고, 법(法)은 『무량수경』이며, 승(僧)은 관음․대세지․문수․보현이다.”

 

“불법의 크고 작은 열 가지 종(宗)을 만약 1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모두 배우는 것은, 1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오로지 하나의 경을 공부하는 것만 못하다. 하나의 경에 통달하면 모든 경에 통달하게 된다.” 

“하나의 문에 깊이 들어가 성취한 사람은 많지만, 널리 배우고 많이 들은 사람 가운데 성취한 사람은 적다.”

 

“나는 평소에 사람들에게 이 경(무량수경)을 3000번 읽을 것을 권하고 있다.”

 

* 5계와 10선을 함께 수행하면 사람이나 하늘의 몸을 얻을 수 있다. 선을 닦고 가르침을 배우고, 지관을 배워서는 삼계를 벗어나기 매우 어렵다. 담허(倓虛) 노법사는 일생동안 선정을 얻은 사람은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참선해서 깨달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하였다.

선정을 얻은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며 사선천에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장래 천복을 다 누리게 되면 여전히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오로지 정토염불법문만이 업을 가지고 왕생할 수 있고, 불퇴하여 성불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상상근기며, 대보살이 닦는 것이다.

 

* 연지대사의 『미타소초』

“믿는 초심에 4종류의 근기가 있으니, 예참(禮懺, 부처 보살께 예배하고 참회함)하여 죄를 없애는 것은 첫 근기에 해당되고, 지(止)와 관(觀)을 닦는 것은 중근기에 해당되며, 정(정토)에 나기를 구하는 것은 상근기에 해당된다. 첫 번은 업장이 많은 중생을 말하고, 중간은 범부와 이승(二乘)을 말하니, 정토를 수행하는 이는 대승보살이 닦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 제자들이 대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였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제대로 전하지 못하였다. 초기의 법을 전하는 대덕들은 대부분 3과(三果)를 증득하였다. 수․당(隋唐) 이후는 과를 증득한 사람이 적었다. 당대에는 육조 문하에서 선정을 얻어 깨달은 자가 43명이 있었다.

 

이에 반하여 혜원사와 여산에서 함께 참선을 한 도반 가운데 염불하여 득도한 사람이 123명이 있었다. 원․명(元明) 이후로는 교리를 연구하여 발명한 사람은 있지만, 진정으로 수행하여 성취를 이룬 사람은 매우 적다. 민국 초기에는 선정을 얻은 사람 가운데 한번 앉았다 하면 며칠 동안 일어나지 않은 사람은 있었지만,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 있다는 말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 예(禮)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 경(敬)은 내심적인 것이다. 안에 공경하는 마음이 있으면, 겉으로 들어나 자연스럽게 예절에 부합하게 된다. 공경은 진실한 마음이 겉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 옛날에 한 대자보살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이 만일 단 두 사람만 정토법문을 닦을 것을 권하여 그들이 왕생하였다면, 당신이 임종할 때 이 두 사람이 반드시 와서 당신을 맞이할 것이니, 그 과보는 정말로 불가사의하다.”

이 때문에 남을 돕는 것이 바로 자신을 돕는 것이다. 만약 100명 내지 1000명을 염불하여 왕생할 것을 권한다면, 당신이 바로 보살이다.

 

* 무외보시(無畏布施)는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방생과 채식이다. 불교에서는 채식을 할 것을 권하였는데, 양나라 무제2)가 제창한 것이다.

 

* 남의 공덕을 따라서 기뻐하게 되면, 그가 얻은 공덕과 같아서 둘이 아니다. 만약 자신의 재력과 인력이 모두 부족하다면 마땅히 온 마을과 온 힘으로 남을 도와서 일을 이루게 하고 환희심을 일으켜 남을 찬탄해야 한다. 남의 선행과 선한 일을 성취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자신의 선행이며 선한 일이다.

 

* (중국에서) 근대의 상황은 표면적으로는 불교가 대단히 흥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성취도 없다. 그 원인은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법을 널리 전하는 법사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 한 도량에서 한 스승이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지도를 받아야만 교학 효과를 볼 수 있다. 오늘날은 진실로 불법에 대하여 조예가 깊은 사람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으니, 어디를 가야 선지식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 아래 불보살과 조사대덕들에게, 우리들에게, ‘성실하게 염불하는’ 이 법문을 가르쳐달라고 청하는 것이 진실한 자비이다. 오로지 이 법문만이 스스로 수학하기가 비교적 쉬우며, 선지식이 항상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 단시 성실하게 염불만 하면 반드시 성공하게 되니, 이 시대에 있어서 최고의 계기(契機)이다. 

 

* 회향은 집착을 없애고, 닦은 복의 모든 과보와 공덕을 대중에게 나누어 주어 함께 누리는 것이다.

 

* 이 경에 의한 수행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보리심을 일으켜 끊임없이 일심으로 염불하면 성불하여 피안에 이른다. 그야말로 이 이치를 분명하게 안다면, 일체 경론을 내려놓을 수 있다.

 

* 신통에 감응하기를 좋아하면, 마귀가 즉시 그 기회를 얻는다.

 

* “사람이 세상에 올 때 모태에 들어가는 것은 반드시 그 부모와 인연이 있기 때문인데, 4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은혜를 갚기 위해, 원수를 갚기 위해, 부채를 받기 위해, 부채를 돌려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은혜를 갚으려고 태어난 사람은 착한 아이로, 효자나 현손이다. 원수를 갚으려고 태어난 사람은 집안을 망치고 사람을 잃게 할 수도 있다. 빚 받으러 태어나 사람은 왕왕 부모의 환심을 사서 성인으로 키우게 한 다음 부모의 곁을 떠난다. 빚을 갚으러 태어난 경우, 빚진 것이 많을 경우, 부모의 생활에 대해 세심하게 보살피며, 빚진 것이 적을 경우에는 부모의 생활에 대해 대단히 각박하게 굴어 부모에게 배부르게 드시고 따뜻하게 옷을 입게 해주면 그만이다.

 

* 부처님께서는 조금도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없으며, 오로지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기를 바랄 뿐이다. 이 경 속에 나온 모든 부처님 가운데 아미타불의 대원이 최고이다. 만약 아미타불 대원을 자신의 대원으로 바꾼다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

 

* 부처님께서 경전 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서방세계는 참으로 좋다. 서방세계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그곳은 유일하게 다른 세계를 초월한 수 있으니, 첫째 업을 가지고 왕생하는 것이며, 둘째 왕생하여 물러나지 않는 것이며, 셋째 왕생한 이후 일생에 부처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서방세계의 가장 우수한 점이다.”

 

* 비록 업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서방세계를 간 뒤에는 나쁜 인연이 전혀 없기 때문에, 업이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 

 

* 진정한 부처님 명호는 오로지 이 ‘아미타불’ 4글자이며, ‘나무’는 ‘귀의한다’는 뜻이다. 연지대사3)가 살아계셨을 때 어떤 사람이 그에게 “어르신께서 사람들에게 염불을 가르치고 계시는데 어떻게 법을 가르치십니까?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은 사람들에게 ‘나무아미타불’만 염송하라고 가르칠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다시 “그렇다면 당신 자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라고 묻자, 그는 “나는 ‘아미타불’을 염송합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자신의 참 믿음, 참 바람을 가지고서 이 일생에 반드시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면, ‘아미타불’ 이름(名號)을 꽉 잡으면 된다. 일반 사람들은 사실상 지심으로 왕생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나무’라는 공손한 말을 덧붙여 아미타불과 좋은 연을 맺어놓으면 장래에 그가 왕생하고자 할 때 이 종자가 성숙될 수 있다.

 

* 지금 사람들은 누구나 텔레비전ㆍ영화ㆍ가무ㆍ신문ㆍ잡지ㆍ그림(만화) 같은 것을 보기 좋아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6도를 윤회하는 것으로, 우리들과는 사실상 상관없으며 전혀 필요치 않다. 가족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 하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이것은 그가 경계에 의해 끌려 다니는 것이니, 당신은 보고서 변함없이(如如)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 번뇌가 끊어지지 않으면, 오로지 하나의 문만을 닦아야 한다. 번뇌가 끊어진 다음에는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도 된다.

 

*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는 겸손하다가도 자신의 명성이 알려진 뒤에는 오히려 잘난 척하고 오만하여 모든 것을 업신여긴다. 그 이유는 그는 박학다문하기 때문이다. 배운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번뇌는 더욱 무거우며, 나중에 가서는 오히려 성취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는 도리어 왕생에 장애가 된다. 오직 정진해야만 선정을 얻을 수 있다. 선정은 중추이며, 지혜는 목적이며, 최후는 반야지혜이다. 

 

* 평소에 열심히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염송하여 주야로 끊어지지 않기를 하루에서 7일 동안 해야 한다. 7일 동안 부처님을 부르는데, 7일 낮 7일 밤 동안 중단해서는 안 되며, 어떤 사람을 보아도 아는 체 해서는 안 된다. 불칠도량(佛七道場)에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규칙은 미리 평상시에 설명해 주어야 한다. 불칠도량은 강론을 해서도 안 되며, 아무런 이유 없이 염불을 중단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지금은 7일 동안 부처님을 염송하는 것이 법회로 바뀌어 이미 원래의 취지를 잃어버렸다.

 

* 평소에 세상을 살 때, 남을 위해 많이 생각하고, 사회를 위해 많이 생각하고, 자신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매일 경전을 독송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들의 사상과 견해, 생활 행위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불법을 배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닦아 가진다면 명이 다해도 결코 삼악도에 떨어질 수 없다.

 

*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대선지식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그분은 바로 아미타불이시다. 『무량수경』에 근거하여 수학하게 되면, 이 경의 이론은 모두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의 교훈은 생활 속에서 실현시킬 수 있으니, 당신은 바로 아미타불의 첫 번째 제자가 되는 셈이다.

 

* 세상 사람들 중에는 복의 과보가 많아 지위가 높은 제왕과 재상이나 부귀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사람은 부귀하면 할수록 지은 업은 더욱 무겁기 마련이다. 장래 어디에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업력에 이끌려가는 것이고 자신이 주관할 수 없다.

 

* 만약 업력을 바꾸고자 한다면, 그 유일한 방법은 원력으로 업력을 항복시키는 일이다. 오늘 다행히 불문에서 하나의 살길을 찾았다. 선지식은 우리들을 이끌어줄 뿐만 아니라, 모든 불보살들이 이구동성으로 염불법문을 호념하고 계신다. 특히 말법시대에는 이 방법 이외에는 우리가 걸어갈 다른 길은 없다. 비록 법문이 무량하다고 하지만, 이는 이(理)로 말하는 것이지, 사(事)상에서는 그렇지 않다.

 

* 불제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만일 사회의 어느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언제나 그 단체에 종사하고 있는 동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불제자이다.

 

* 인욕하고 용맹정진하면 할수록 좌절은 더욱 큰데, 이는 한없이 먼 과거 이래로 지은 죄업 때문이다. 인내는 업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지혜로 사실을 직면하며, 자세하고 완곡하게 말하며, 물러나지 않고 정진하여 인내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진보가 있다. 정진해야만 선정에 도달할 수 있다.

‘선정’은 업을 없앨 수 있고, ‘인욕’은 업을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업장이 끊어져 없어지면서 지혜가 앞에 자연히 나타난다.

 

* 재산과 지위는 과거생의 선업이 감응한 것으로, 전부가 업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불보살은 원력에 의해 이루어지며, 우리가 주관하지 못하는 이유는 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력이 원력보다 크면, 원이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6도는 업을 살찌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보리심을 일으켜 염불하는’ 것은 업장을 소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일제 발원은 자연히 앞에 나타난다.

 

* 이번 생에서 부귀하게 태어난 것은 그가 전생에 공덕을 쌓고 닦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이번 생에서 복을 다 누린 후에 다시 선을 닦지 않는다면, 내생에는 이 공덕은 자연히 없어지게 마련이다.

 

* 황념조 노거사는 “선(禪)과 밀(密)은 성취하기가 매우 어렵다. 대륙에서 40년 동안 밀교를 배운 사람은 많았지만, 진정으로 성취한 사람은 겨우 여섯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하였다. 염불하여 성취한 사람은 관률(寬律)법사가 지은 『근대왕생수문록(近代往生隨聞錄)』에 몇 백 명이 수록되어 있지만, 그 외에도 그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는 대단히 바른 길이다.  

 

* 한 생각을 아미타불로 바꾸고, 다른 모든 생각들을 완전히 내려놓고서 오직 일심으로 염불하면 마음이 청정해지고 잡념이 없고 망상이 없기 때문에 경계가 높아진다. 비유하자면, 만약 많은 냇물이 큰 바다로 들어가면 큰 바다 속에서는 어느 것이 바닷물이고, 어느 것이 강물이며, 또한 어느 것이 먼저이고 나중인지 그 순서를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성불한 뒤에는 분별과 집착은 전부 사라지게 되니, 이 생각에 대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염불은 정업(淨業)을 닦는 일인데, 이를 닦는 사람은 더욱 적다. 염불은 중생의 업을 소멸시킬 수 있는데, 이때는 재난이 많으며, 중업(衆業)이 감응하게 된다. 이러한 곳에 염불하는 사람이 많고, 대승을 독송하는 사람이 많으면 이곳의 재난은 당연히 줄어들 수 있다. 만약 10분의 1의 사람이 염불한다고 한다면 공업(共業)을 와해시킬 수 있다.

 

* 과학자들은 사람은 3차원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말들을 한다. 만약 4차원, 5차원, 그리고 무수한 차원의 공간에 있다면, 그들의 세계를 인류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 오늘날 어떤 법사는 자신의 분별과 집착에 따라 설법을 하기 때문에 사특함과 올바름을 분별하기가 어렵다. 석가모니불은 후세 이러한 상황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열반이 다가왔을 때 사의법(四依法)을 설하셨다.

첫째,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으며, 경전에 의지하고 설법에 의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만약 어떤 설법이 경전을 인용한 것이라면, 어떤 경인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정토종에서는 만약 정토의 5경1론이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경전은 결코 우리의 근기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 사바와 극락을 비교하면, 이 세계에서 머물러 살면서 떠나기 싫어할 만한 가치가 전혀 없다. 이 세계는 업을 만들지 않고자 하여도 불가능하다. 심신이 청정하지 않으면 과보는 그야말로 너무나 끔직하다.

 

* 사실상 지식인들은 오히려 글자를 모르는 할머니만 못하다. 할머니들은 진실하고 겸허해 절대로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오만함이 없다. 이병남 선생님은 항상 나에게 어리석음을 배워야 하며, 총명을 배우지 말라고 가르쳤다. 총명은 도리어 총명에 의해 해를 당한다.

 

* 선종에서는 명심견성(明心見性)을 말하고, 정토종은 일심불란(一心不亂)을 말하고 있다. 일심불란은 바로 명심견성이다. 우리들은 오직 일심불란을 구할 뿐이다.

 

* 오늘 불법을 배워 무엇을 얻었는가? 만일 경을 듣는 것이 단지 불교란 무엇이고 내용은 어떠한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이는 상식이며 어떠한 이익도 없다. 청정심을 가지고 경을 들어야 한다.

 

* 어떤 법문을 배우든지 한결같은 마음이 바로 도심이다. 만약 선(禪)과 정(淨)을 함께 닦고자 하면 도심을 파괴시킨다. 자신은 자신의 법문을 닦으면서 다른 사람이 닦는 다른 법문에 대해서는 반드시 존중하고 찬탄해야 한다.

 

* 취사, 분별이 없다는 것은 일제를 놓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대자재와 대원만을 얻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작은 것을 버리면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을 버리면 큰 것을 얻으며, 전부 버리면 공계와 법계를 전부 얻게 되기 때문에, 그들은 최상의 청정한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만약 서방에 가기를 바란다면 마땅히 버리는 것을 비우고 놓는 것을 배워야 한다. 버릴 수 있으면 마음이 청정하다.

    

* 성불하는 법은 한결같지 않지만, 아미타불의 “보리심을 일으켜 일심으로 염불한다.”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미묘하며 행하기가 가장 쉽지만, 이치는 가장 심오하여 오로지 부처와 부처만이 구경(究竟)할 수 있다. 서방에 태어나 아미타불을 보게 되면 스스로 명료하게 알 수 있다.

 

* 만일 출가자가 오로지 불교의 이해를 위해 공부를 한다면, 몸은 출가하였으나 마음은 출가하지 않은 것이다. 불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하게 여길 것은 실천에 있으며, 반드시 하나의 문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

염불삼매는 바로 일심불란(一心不亂)이다. 그러므로 정토 법문은 실천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집을 버려라’고 한신 말씀은 집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출가하라고 권하신 것도 아니다. 출가를 하게 되면 오히려 장애가 더욱 많다. 집에는 몇 사람밖에 없다. 그러나 출가하면 사찰이 커질수록 신도는 더욱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하루 종일 그러한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데, 청정심을 닦고자 한다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쉽다고 말하겠는가?

 

* 정토법문의 정수 : ‘發菩提心, 一專念阿彌陀佛 (보리심을 내, 한마음으로 오로지 아미타불만을 염(念)하라.) - 무량수경 24장 삼배왕생(三輩往生)

 

* 서방에 태어나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되어 시방세계에 가서 널리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바로 회향발원이며, 또한 대자비심으로 자신이 성취한 뒤 다시 중생을 이익 되게 한다. 오직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다. 보리심 속에서 말하는 것이 참 믿음(信)이면 참 소망(願)으로, 끊임없이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바로 참 실천(行)이다.

 

* 만약 정토에 태어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전처럼 윤회할 것이다. 설사 일생동안 수행을 잘하고 원행(願行) 또한 훌륭하여 내생의 과보가 삼선도(三善道)에 있다고 하더라도, 모태에 들어가 다시 태어나면 전생의 일은 깨끗이 다 잊어버린다. 설사 불법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배워야 하며, 만에 하나 인연을 만나는 데 문제가 있으면 장애와 번거로움은 더욱 커진다.

 

일생에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 또한 전생(宿世)의 선근복덕이다. 훌륭한 스승이나 도반 역시 만날 수는 있으나 구할 수는 없다. 어떤 때는 좋은 스승이 가르치기를 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믿지 않기 때문에 그 역시 말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3가지 복을 닦아야 한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을 존경하고, 좋은 인연을 만들어야 한다.

 

* 예전에 출가자에게 공양을 하는 것으로는 오직 음식․의복․와구(臥具)․약 4가지에 국한하였다. 출가자는 개인 소유의 재물이 없으며, 하나라도 개인 소유의 재물을 갖게 되면, 아미타불은 일찌감치 그를 깨끗하게 잊어버리신다.

 

* 마명보살4)과 용수보살5)은 정토만 닦는 분은 결코 아니다. 또한 중국의 영명대사6)는 선에서 정토로 바꾸었다. 지자대사7)는 천태종의 창시자로, 3지(三止)와 3관(三觀)을 닦았으나, 임종할 때는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였다.

 

* 공양과 보시의 의식은 서로 같다. 윗사람에 대해 경건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을 공양이라고 말하며, 아래 사람에 대한 것을 보시라고 말한다. … 이것은 유가에서 말하는 예(禮)에 해당된다. “예란 스스로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다.”

 

* 어떤 사람은 “요즘 세상에 만약 진실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어찌 도처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손해를 보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당신은 아직 얼마나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기꺼이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앞으로 영원히 윤회 속에 있게 될 것이다.

* 아침저녁으로 무량수경을 읽을 것을 권장한다. 만약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아침에는 제6품 48원을 읽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다. 많이 부르면 부를수록 좋다. 저녁에는 32품에서 37품까지 읽는데, 이 다섯 품은 계율이다. 제6품을 읽어 아미타불의 48원이 자신의 원이 되도록 발원해야 한다. 33품에서 37품까지는 아미타불이 처세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다. 아미타불의 행위를 배우면, 우리들의 행위는 아미타불과 같아진다.

 

* 개인이 닦아 쌓는 공덕을 전부 중생에게 회향하고 세계에 회향하여 고통 받고 있는 일체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기를 희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중생의 고통을 대신하는 공양이다.

 

* 이처럼 밤낮으로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의 갖가지 공덕과 장엄을 생각하며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에게 귀의하고 예배하고 공양하면, 이 사람은 임종할 대 반드시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 놀라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으며 마음이 전도되지 않아 즉시 저 불국토에 왕생하게 되느니라. 如是晝夜思惟極樂世界阿彌陀佛 種種功德 種種莊嚴 志心歸依 頂禮供養. 是人臨終 不驚不怖 心不顚倒 卽得往生彼佛國土.

 

* 사람은 모두 생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는 자신이 주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평소에는 느끼지 못한다.

안광대사의 불당에는 커다랗게 ‘죽음’이란 글자가 걸려있다. 매일 죽음을 생각하면, 일단 부처님께서 오셔서 마중하기만 하면, 마음속으로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간다. 왕생을 구하는 마음이 진실하고 간절하여 임종할 때 만약 마음이 전도되지 않으면 반드시 왕생할 것이다.

 

* 하배왕생(下輩往生) - 25장 往生正因(480쪽)

만약 세속의 일이 많아 집을 떠날 수 없거나, 크게 재계(齋戒)를 닦아 일심으로 청정할 틈이 없으면, 시간이 있을 때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여 탐욕을 끊고, 근심을 제거하고, 자비의 마음으로 정진하고, 마땅히 마음에 성냄과 질투를 일으키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을 탐하거나 사람에게 인색하지 않으며, 중도에 후회하지 않으며, 의심하지 않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을 지성으로 받들고 다르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과 의리가 광대하고 심오하다는 것을 믿으며, 선업을 지으면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이러한 법을 받들어 수지하고 일생동한 수지함을 덜하거나 놓여버리지 않고 항상 진지하게 사고하고, 자세하고 계산하여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고자 해야 하며,

 

 밤낮으로 항상 생각하며 아미타불이 계신 청정한 불국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한다면, 열흘 밤과 낮, 내지는 하루 밤과 낮 동안 염불을 끊어지지 않게 한다면 수명이 다 할 때 모두 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느니라.   

 

* 평소에는 일이 많아서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1년 가운데 휴가기간이 길 때 밤낮으로 항상 아미타불을 생각하면서 열흘 밤낮, 내지는 하루 밤낮을 성실하게 정진하여 모든 것을 완전히 내려놓는다.

 

이렇게 하기를 한 달에 하루도 괜찮고, 3일 낮밤을 중단하지 않을 수 있으면 더욱 가치가 있다. 마음은 청정해야 하며, 감응을 구해서는 안 되며, 상호를 만나도 다른 사람에게 고해서는 안 된다. ‘모양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는 이치를 스스로 명백하게 이해하고 신심을 증장시키면 충분하다. 

 

* 여러 가지 공양 가운데 법수행이 최고이다.

 

* 아미타불은 48원을 일으켜 시방세계의 중생을 구제하기를 원하였다.

일반 대승경에서는 사홍서원(중생이 끝이 없지만 다 주제하기를 원합니다. 번뇌가 다함이 없지만 다 끊기를 서원합니다. 법문이 한량없지만 다 배우기를 서원합니다. 불도가 위없지만 다 이루기를 서원합니다.)이 대강이다. 시방의 모든 불보살이 일으킨  대원은 바로 이 4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48원 별원(別願)이다.

 

* 사람이 만약 부처를 이루면 모든 사람들이 부처로 보이며, 만약 보살을 이루면 모든 사람들이 보살로 보인다. 모든 경계는 오직 마음에 의해 변하는 겻이며, 범부는 부처와 보살이 범부로 보인다.

 

* 사바세계에서는 신통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만일 신통을 구하게 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 이처럼 신통을 얻은 이익은 매우 작고 그 부작용은 대단히 크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걸어가 마장을 초래하기가 쉽다. 심지어는 감응조차도 필요 없으며, 오직 청정심만을 구하여 서방의 극락세계 왕생을 바랄뿐이다.

 

서방에 간 뒤에는 저절로 신통을 얻게 되며, 부처님의 본원가피를 받게 되어 팔지보살의 경계에 도달할 수 있다. 그 능력은 아미타불과 같고, 우주 전체를 모두 볼 수 있다.

 

* 관음은 대자대비를 대표하며, 고난을 구제한다. 대세지는 지혜(理智)를 대표한다. 자비는 반드시 지혜라는 기초 위에 세워야 하며, 만일 감정 위에 세우게 되면 무너진다. 불문에서는 항상 ‘자비가 근본이며, 방편은 문이다.’라고 마란다.

 

* 시방세계의 무수한 불국토 가운데 아미타 부처님의 국토는 수명이 가장 길며, 국토는 광대하여 끝이 없느니라. 밝고 미묘하고, 즐거움이 모든 불국토 가운데 가장 유일하고 수승하니라. 八方上下 佛國無數 阿彌陀國 長久廣大 明好快樂 最爲獨勝 ( 516쪽, 29장 願力宏深)

 

* 선도대사는 『관무량수경소』에서 부처님의 지혜와 덕능은 모두 이미 원만하며, 우리들이 불법을 배울 때에 부처님을 도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므로 오직 경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매일 염불하면 부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니, 지성으로 경전을 독송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면, 경 속에 담겨 있는 의리에 대해  아마도 매일 새롭게 깨닫게 외어 법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받아 누리는 것이지, 거두어 취하지 않는다(於所受用 皆無攝取)”는 누리는 것은 괜찮으나 소유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집은 비록 나의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내 재산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사실상 인연에 따로 받아쓰지만(受用), 마음에서는 버려야 한다. 

 

* 인연에는 이미 성숙한 인연, 아직 성숙하지 않은 인연, 인연이 없는 것 등이 있다. 인연이 없으면 그와 인연을 맺어야 하며, 아직 성숙되지 않으면, 그의 인연이 성숙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인연이 성숙한 사람은 그를 마중하여 왕생하게 한다. 정토종에서 말하는 성숙이란 바로 염불법문을 진실로 믿고 발원하며, 또한 기꺼이 염불하는 것이다.

 

* 고집멸도(苦集滅道)는 세간과 출세간의 이중인과이다. ‘집(集)’은 세간의 인(因)이고, ‘고(苦)’는 세간의 과(果)이며, 멸(滅)은 출세간의 과(果)이고, ‘도(道)’는 출세간의 인(因)이다.

 

* 애착(愛着)은 3계 6도의 업의 원인이다. 따라서 애착을 버릴 수 없으면 삼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또한 윤회를 피할 수 없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집착하면 할수록 고난은 더욱 많아진다. 그러므로 일체법이 무상하여 모두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서 모든 탐애와 집착을 끊어야 영원히 3구(三垢)에서 벗어날 수 있다. 3구란 탐진치를 말한다.

 

* 아미타불과 『무량수경』을 만나 아미타불의 48원이 원마다 모두 중생을 구제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부처님께 귀의하여 아미타불을 믿고 본받으며, 그의 가르침에 따라 닦고 배우면 선근이 자연히 생긴다. 이 선근은 우리들을 혼란하게하고 장애를 주는 마군을 꺾어 조복 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오로지 아미타불만을 생각하며,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오로지 염불법문을 전해야 한다. 

 

* 선을 닦는 것(爲善)은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날 것을 닦는 것이다. 이는 모든 선법 가운데 첫 번째 선이다.

 

* 업을 가지고 왕생을 구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지 않으면 미치광이다.

 

* 오늘날 세간에는 부귀한 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그들은 모두 전생에 선을 닦음으로 인해 금생에 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불법을 만나도 결코 믿지 않는데, 이는 바로 격음지미(隔陰之迷)로 삼세의 원한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불법을 배울 것을 권하여 정토법문을 닦게 해야 한다. 비록 기꺼이 믿지 않더라도 정토의 씨앗은 심어진다.

 

* 업장이 두터운 사람은 한 생에 명심견성 할 수 없기 때문에 정토종은 그 사람에게 먼저 서방에 태어나기를 구할 것을 권한다. 서방에 태어난 후에는 그가 명심견성 하도록 도와주는 아미타불의 가피가 있다.

 

* 정토종에서는 공부를 면밀하게 해나가면 구하지 않아도 물이 모이면 도랑이 이루어지듯이 홀연히 깨닫게 되어 이일심불란(理一心不亂)의 경계에 도달하게 되며, 앞에서 말한 ‘정정안락(正定安樂)’이 바로 사일(事一心)의 경계이다.

 

* 사람마다 누구나 마땅히 노력하고 정진해야 하며, 반드시 스스로 안으로 향해 구해야 하며, 밖을 항해 구해서는 안 된다. 서방에 왕생하는 조건은 믿음, 원력, 실천행동으로, 청정평등각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왕생할 수 없다.

 

* 극락세계는 이렇게 좋고 왕생이 쉬운데, 가려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없구나.(極樂之勝道 易往而無人) … 무엇 때문에 세간의 일에 집착하는 것인가? 이는 무상하거늘 왜 계속해서 걱정 근심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何爲著世事 譊譊憂無常) - 32장 수명과 즐거움이 무량하다.(568쪽)

 

* 우리는 금생과 과거생에 많은 악업을 지었는데, 아마 많은 사람을 죽인 적도 있고, 빚진 적도 있을지 모른다. 악업은 반드시 관보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서방에 태어나면 일제 악한 과보는 즉시 소멸할 수 있으며, 소멸하는 법은 스스로가 지성으로 깨닫는 것이다. 깨달은 사람은 절대로 다시 악업을 짓지 않을 것이다.

 

* 복은 있으나 지혜가 없으면 재산은 좋은 것이 아니다. 이러한 재산은 자신을 해칠 뿐 아니라 자손까지 해치게 된다.

 

* ‘수행’이란 두 글자에 대한 정의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행(行)은 행위이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행위를 크게 3가지, 즉 몸, 입, 뜻으로 나누셨다. 몸의 동작과 행위, 입의 언어, 뜻의 생각과 견해이다. 몸과 입과 뜻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그것을 수정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한다.

 

자신의 결점과 과실을 자신이 분명하게 아는 것을 ‘깨닫다’라고 한다. 이 깨달음은 해오(解悟)이며, 결코 쓸모가 없다. 깨달으면 닦아야하며, 또한 잘못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해야 하는데, 이것을 ‘증오(證悟)’라고 한다.

 

* 세상 사람들은 망심에 휘둘러 급하지 않는 일에 서로 다투고, 급하지 않는 일에 집착하면서, 생사와 삼계를 벗어나는 큰일에 대해서는 오히려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반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이 극악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매우 바쁘다.

 

* 모두 살기 바쁘다고 하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생사를 마치고 윤회를 벗어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죽은 뒤에는 어디로 가는가?(각색한 것임)

 

* 총명한 사람은 사용권만 갖지 소유권은 갖지 않는다. 부동산이 많은 사람은 장래 서방에 왕생하는 일조차 걱정할 것이다. 재산 처리 문제로 주저하고, 자식이 다 써버릴까 봐 걱정할 것이다. 부동산이 없다면, 걱정거리가 전혀 없기 때문에, 가겠다고 하고 떠나가면 그 뿐이다. 달관한 사람은 스스로 손님이 되기를 바라지, 주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미혹되고 어리석어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자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세상의 고난의 근원이다.

 

* 유무상통(有無相通)이란 재력에 여유가 있으면, 다른 사람의 위급함을 구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보시이며, 보시가 허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말하였다. 보시는 결코 사람들이 보답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복의 과보를 자연히 얻을 수 있으므로 많이 하면 할수록 복의 과보가 더욱 있게 된다.

 

* 나는 걱정하지 않기 위해 도량을 세우지 않았다. 달라스의 정종학회 도량은 최근 1, 2년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 도량을 건립한 뒤 이사회가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다. 많은 것을 욕심내서는 안 되며, 베푸는 사람은 인색해서는 안 되느니라.  

 

* 인간은 사바세계의 애욕 속에서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는 것이며, 홀로 가고 홀로 오는 것이다. 고통과 즐거움은 스스로가 감당하며 대신할 자가 없느니라. 선악은 변화하여 아주 빨라, 태어나는 곳에 따라 다르며, 길이 달라 만나려고 해도 기약이 없느니라. 어찌 몸이 튼튼할 때 노력해서 선을 닦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려고 하는가? (人在愛欲之中 獨生獨死 獨去獨來 苦樂自當 無有代者. 善惡變化 追逐所生 道路不同 會見無期. 何不於强健時 努力修善 欲何待乎?)-33장 권유하고 독려하다. 582쪽

 

* 육도 속에서는 모두가 개개인이 혼자 가고 혼자 오며, 자신의 업력의 지배를 받는다. 업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원인은 생각이다. 생각이 있으면 업이 있다. 한 번 선을 생각하면 과보는 3선도(三善道)에 있으며, 한 번 악을 생각하면 과보는 삼악도에 있다.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업을 지을까? 더 나아가, 1년에는, 또 일생동안은 얼마나 많은 업을 지을까? 설사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도 두 사람의 생각은 각자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업력 역시 다르다. 그러므로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으며, 홀로 태어났다가 홀로 가며,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오로지 자신의 근성에 부합하여 생사를 끝내고 윤회에서 벗어나게 하고, 왕생하여 물러나지 않고 한 생에 원만하게 불도를 이루는 것이 완전한 교설 법문이다.

상근기 사람은 열심히 참선하여 활연히 크게 깨달아 부처를 이루고 조사가 된다. 이 경우, 선종은 그에게 완전한 교설이지만 나에게는 불완전한 교설이다. 나의 지혜가 둔하고 충분한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기 때문에 성실하게 염불할 도리밖에 없다.

 

* 자신이 정토를 닦는다고 해서 선종과 밀종을 비판하는데, 선종과 밀종 역시 모두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남을 비방한다면, 그것은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옛날부터 선종과 밀종을 수학하여 성취한 사람은 대단히 많다. 만약 남을 비방한다면, 이는 승려를 비방하는 것이다. 삼보를 비방하면 마음이 청정하지 않거늘, 어떻게 왕생할 수 있겠는가? 불제자가 수학하는 태도는 화엄경에서 선재동자가 53인의 대선지식을 찾아다닐 적에 자신을 낮추고 남을 찬탄한 태도를 배워야 한다.

 

* 몸이 쇠약해지기 전에 절호의 시기를 포착하여 수도에 전념해야 한다. 수명이 다하면 수도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 대승경전 속의 문수와 보현 같은 대보살들은 모두 상상근기의 사람이다. 그들조차 한결  같이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나기를 구했으니, 우리들은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수학하는 과정에 만약 인사나 환경의 장애를 만나면 신심이 조금씩 동요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 생에서 성취할 수 없다. 사람의 몸은 얻기 어려우며 불법은 듣기 어렵거늘, 어느 때 다시 불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며, 더구나 정토법문을 들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백 천세 이후라고 하더라도 단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사실 진상을 이해하여 결심하면 이 생에서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

 

* 세간에서 첫 번째 선은 부처님을 공경하는 일이다. 부처님은 스승이다. 스승을 공경하고 그의 가르침에 따르게 되면 반드시 이익을 얻게 된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신을 공경하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진실한 이익을 얻게 되므로 부처님에 대해 자연히 존경하는 것이다.  

 

* 3계는 모두 고통이다. 특히 욕계 속에는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가 모두 있다. 사선천(四禪天)에 태어나는 것을 색계라고 한다. 색계는 욕망을 항복받아 재물․여가․명예․음식․수면이 없어져서 고고는 없으나, 괴고와 행고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무색계에 태어나면 색신(色身)이 없고 신식(神識)만 있어, 괴고는 없으나 행고는 여전히 남아 있다. 수명은 한계가 있어 가장 높은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에 이르면 수명은 8만 대겁이지만, 여전히 행고가 있어서 영원히 그대로 유지하여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수명이 다하면 여전히 윤회 속으로 들어간다.

 

* 부처님께서 대승경전에서 보살에게 중생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을 권하셨다. 그러나 만일 습속에서 이를 먹지 않기가 어려우면 변통하여 3가지 깨끗한 고기를 먹을 수 있다. ① 죽이는 것을 보지 않은 것, ② 죽이는 소리를 듣지 않은 것, ③ 자신을 위해 죽이지 않은 것이다.

 

* 세상 사람들은 자주 약육강식을 말한다. 이 말을 들어보면 마치 진리인 것 같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는 서로 보복하고 서로 죽이는 것을 말할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능엄경에서 “양은 죽어서 사람이 되며, 사람은 죽어서 양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은, 빚을 독촉하거나, 빚을 갚거나, 은혜를 갚거나, 원수를 갚기 위한 4가지 인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볼 수 있어서 악연을 법연으로 변화시킨다면, 이는 가정의 큰 행복이다.

 

* 세간의 전쟁이란 재난은 상생에서 비롯되는데, 세상에 전쟁이 없게 하려면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유한 사람이 살생계를 범하기 가장 쉬운데, 입과 배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생명을 많이 해친다. 그 업보는 바로 금생에 나타나는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노인병을 앓고 있어서 침대를 전전하고 있는데, 간호보조원이 교대로 살핀다. 그들 병의 원인을 자세하게 살펴본 결과 보통 사람보다 생활을 지나치게 주린 것밖에는 없었다.

 

* 불법을 배운 뒤에는 악의 과보가 대단히 무겁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감히 악을 저지를 수가 없다.  

 

* 인과응보는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이것은 자연적인 감응이며, 절대로 하느님이나 불보살이 그 일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미혹되고 전도되어 많은 죄악을 짓은 결과 여전히 갚아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목숨이 끝난 뒤 자신이 지은 죄업에 따라 가야 할 곳에 다시 태어난다. 수명은 생전에 지은 죄의 경중에 따라 차이가 난다. 부처님께서는  그가 스스로 잘못을 참회하고 뉘우치도록 가르치시는 방법을 알고 계신다. 만약 가르침에 따라 받들어 행할 수 있다면, 설사 지옥에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죄를 받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 재물과 부는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팔자에 있으면 밀어낼 수 없으며, 팔자에 없으면 구할 수도 없다.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어 분수에 만족할 줄 몰라 욕심을 내면서 싫증내지 않으며, 이기적이다. … 일반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인색한 것이 버릇이 되어 일생 동안 오직 돈과 재물을 중시할 뿐, 보시하거나 복을 심지 않는다. … 그렇지만 임종할 때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며, 오직 업만이 몸을 따를 뿐이다.

 

*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이 마을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는 것, 말 한 마디 하나의 행동은 세세생생 모든 자료가 모두 아뢰야식 속에 갈무리된다고 하였다. 이는 마치 컴퓨터처럼 수시로 형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속일 수가 없다.

 

* 살생의 해는 서로 보복하는 일을 초래하며, 생이 거듭할수록 더욱 더 심해진다. 이 사실을 알 면 아무리 작은 곤충이라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모기나 개미조차도 죽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것들도 역시 생명이고, 삶을 탐하며,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정토법문에서는 업을 가지고 왕생한다고 한다.  원래 번뇌를 끊지 못했으나 조복(調伏)할 수만 있으면, 색계천에 태어날 수 있는데, 이러한 능력이 있으면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 만약 진정 서방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면, 반드시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조복해야 하며, 조복할 수 없다면 아무리 염불을 많이 하고 잘한다고 하더라고 아무런 소용이 없다.   

 

* 부모는 자신을 키워준 은혜가 있으니, 당연히 효도해야 하다. 세간법이나 출세간법이나 모두 효도 위에 세워져야 한다. 불법이 과거처럼 발전할 수 있을까? 매우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현재의 교육방침은 이미 부모에 대한 효도와 스승에 대한 존경을 버렸으며, 이를 제창하는 사람도 없다. 불법은 사도(師道)이다. 사도는 효도를 바탕으로 세워져야 한다. 사회에 효도가 없으면 불법은 뿌리를 내릴 방법이 없다.

 

* 인연과 과보는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항상 사람들에게 선을 닦고, 특히 지혜를 닦을 것을 권하셨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복은 있으나 지혜가 없게 되어 마음속에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3가지 독의 번뇌가 있게 되고, 겉으로는 5욕(재물, 색정, 음식, 명예, 수명)과 6진(색, 성, 향, 미, 촉, 법)의 유혹이 있게 되어 미혹되고 전도된 속에서 죄업을 짓고도 자각하지 못한다. 자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범부는 지혜가 많고 복이 적은 것이 가장 좋다.

 

* 악업을 지을 때 입으로 짓는 업을 범하기 가장 쉬운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어떤 말을 할까 생각하기도 전에 술술 말이 나오니, 대단히 무서운 일이다. 옛 사람은, “말 한 마디 적게 하고, 부처님 명호 한 번 더 불러라.”고 말하였다.

 

* 구법계 중생의 일체 인과는 모두 2가지 힘, 업력과 원력일 뿐이다. 육도 중생은 자신이 주관할 수 없기 때문에 업력의 지배를 받는다. 삼계의 성인 가운데 나한 이상은 화신으로 세상에 와서 중생을 구제하는데, 이는 원력에 의해 다시 온 것이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큰 원을 일으킬 것을 권하셨는데, 원력이 강하면 업력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삼악도는 불보살이나 하느님이나 염라대왕이 만든 것이 아니며, 바로 중생의 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에 의해 감화를 받아 생긴 것이다. 서방의 극락세계에는 모든 선인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도 악도 짓지 않고 선도 짓지 않는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기 때문에 삼선도조차 없다. 선과 악에 대한 생각이 모두 없으며, 그들이 지은 것은 오로지 맑은 업(淨業)뿐이다.

 

* 나는 평소 사람들에게 이 경전을 3000번 읽을 것을 권하고 있다. 숙독한 뒤에는 마음  속으로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그 중점은 여전히 수행에 있으며, 사회생활을 할 적에 이 경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또한 경에서 말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그대로 행하고, 마땅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절대 행하지 않는다.

 

* 이 경은 아미타불의 마음이고, 바람이고, 행동이다. 아미타불의 마음, 뜻, 바람(心意志願)은 자신이 간직하고 행할(行持)의 기준이며, 반드시 상상품의 왕생이다. 이 경이 있으면 충분하며, 다른 경전은 모두 내려놓아도 된다. 혹 너무 많이 욕심을 부리면, 제대로 해내지 못 할뿐 아니라, 공연히 장애를 일으켜 받아 닦는데(修持) 무익하다.

 

* 아직 불법을 배우지 않았을 때는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였다. 내가 남보다 훨씬 뛰어난데 도대체 왜 내가 얻은 것이 남보다 부족한가? 이는 그가 한번 마시고 한번 먹고 하는 일조차 모두 전생에 정해지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3세 인연의 도리를 분명하게 알 면 마음은 많이 편안해진다. 만약 불법을 배우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죄업을 지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를 ‘전전하면서 서로 태어난다.’고 한다.   

 

* 염불하는 사람도 5악을 짓는다. 그 마음과 입이 서로 감응하지 않으면 부처님의 명호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진심으로 염불하는 사람은 아미타불 본원공덕으로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곧 자신의 본원공덕으로 변한다. 마음과 입이 서로 감응하지 않은 것은 거짓으로 염불하는 것이다.

 

* 오늘날 중병이 몸에 딱 달라붙어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사람들은 분명 전생에 지은 업이 원인이다.

 

* 현대는 경쟁시대이다. 경쟁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지만, 최후까지 경쟁하면 단지 삼악도로 갈 뿐이다. 오늘날 사회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 세상에 대해 구하는 것 없이 그대로 따르면서 생활할 수도 있으며, 또한 즐겁게 지낼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처럼  경쟁을 해야만 하는가?

 

오늘날 민주국가의 국회의원과 지방장관은 모두 경선을 해야 한다. 듣기에 경선은 큰 비용을 써야 한다고 한다. 당선되면 좋으나, 당선되지 않으면 파산이니, 이는 큰 도박이거늘, 어찌 이 돈을 자선사업에 기부하지 않는 것일까?

 

*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부귀영화는 영원히 유지할 수 없으며, 부귀영화를 얻었을 때는 전전긍긍하며 이성을 가지고 방향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머리가 맑고 깨끗한 사람이 많지 않으니, 즉 경에서 말한 ‘인욕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여기서 말하는 ‘인욕’은 결코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타인의 모욕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참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귀한 환경에 대해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이며, 또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법이 허깨비 같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 절대로 교만과 사치와 방일한 악습을 범하여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 마음이 선하고 행동이 선하면 매일 밤 좋은 꿈을 꾸지만, 반대인 경우에는 악몽을 꾼다. 모든 육도윤회는 바로 이와 같이 오는 것이며, 자신이 바로 진실한 주제자이다.

 

* 염불하는 사람은 임종할 때 서방의 세 성인이 맞이하러 오는 것이 정상이다. 왜냐하면 서방의 세 분 성인은 본존이시기 때문이다. 사악한 귀신은 비록 변화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감히 본존을 사칭할 수는 없다.

“만약 아미타불이 오시지 않는다면 어떤 불보살이 오셔도 그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 최대의 관건은  마지막 한 생각에 달려 있다. 평상시의 염불은 마치 군사를 양성하는 일과 같으며, 최후의 염불은 전쟁을 하는 것과 같아 그 힘이 특히 강대하다. 승부는 이 한 번의 행동에 달려있다. 평상시 더욱 익숙하게 부르면 부를수록 임종할 때 더욱 가망성이 있으니, 행자가 특별히 유의하기 바란다.

 

* 불법을 수행하는 총강령은 선정을 닦는 것이다. 어떠한 법문을 막론하고 모두 선정을 닦는 것이며, 다만 방법과 수단이 다를 뿐이다. 염불은 일심불란을 구해야 하며, 일심불란이 바로 선정이다.

 

* 수행이 상당한 정도에 다다르면, 마음이 청정하여 6근을 호용(互用8))할 수 있다. 일체 만물의 법성은 진실하다. 상(相)에는 생멸이 있으나, 성(性)에는 생멸이 없다. 만일 자성(自性)을 사용할 수 있다면, 바로 원만한 교법(圓敎)의 초주보살이거나 분증불(分證佛)이라 부른다. 초주보살은 바로 팔상성도를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인욕하며 정신하며, 자비심을 전일하게 하며, 재계하고 청정하게 하여 하루 밤낮을 수행하면 무량수국(극락세계)에서 100년 동안 선을 닦는 것보다 더 수승하나니라. (忍辱精進 慈心專一 齋戒淸淨 一日一夜 勝在無量數國爲善百歲) - 37장 마치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는 것과 같다. 665쪽

 

* 염불법문은 비록 행하기 쉬운 도라고 하지만 절대로 가볍게 봐서는 안 되며, 반드시 공부가 한 조각을 이룰(工夫成片) 때까지 염불해야만 비로소 효과가 있다. 그러나 공부성편은 한 걸음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둘러 빨리 구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선(禪)과 밀(密)은 마구니가 달라붙기 가장 쉬우며, 염불하는 마음이 너무 급하면 마구니가 달라붙을 수 있다.

 

* 염불 법문 속에서 부처님이 우리에게 가르친 염불정진 방법에는 1일 밤낮, 2일 밤낮, 7일 밤낮(佛七, 일주일 동한 행하는 염불기도 법문)이 있다. 이 경에서는 10일 밤낮을 말하고 있는데, 또 다른 경에서는 3개월(90일) 동안 염불하는 방법이 있다.

이처럼 시간이 길고 짧은 것이 일정하지 않으며, 각각 장점을 가지고 있다. 짧은 경우에는 매우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정신을 집중할 수 있어 공부하여 효과를 얻기 쉽다. 시간이 길 경우 만일 일심불란에 머물 수 있다면, 이것 또한 매우 얻기 어려운 것이다. 어떠한 방법도 결국에는 연분에 달려 있다.

 

* 도량이 있고, 호칠(護七)이 있고, 선지식의 지도가 있고, 염불당의 안과 밖을 모두 호지(護持)해야 하며, 도량에서 함께 수행하는 이들의 음식과 기거를 보살피고, 외부 사람들이 와서 소란피우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외호(外護)이다.    

 

내호(內護)는 대부분이 출가자이며, 호칠자(護七者)는 염불에 참석하지 않고 규찰하는 일만 전담하여 염불하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황을 묵묵히 살핀다. 이때 만약 혼침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작은 깃발로 가볍게 건드려서 깨어나게 해야 한다.

현재 녹음테이프와 염불녹음기만 있으면 두 세 명의 도반과 집안에서 불칠(佛七)을 거행할 수 있으니 예전보다 훨씬 편리해졌다.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자신이 먼저 실행하여,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일으키거나, 언어동작을 경전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을 단속하고 점검해야 한다. 대중과 함께 있을 때는 화순(和順)해야 하는데, 화(和)는 6화(六和)를 실천하는 것이며, 순(順)은 항상 중생의 뜻에 따르는 것이다. 항상 따르는 속에서 상대방을 계발시키고, 상대방을 변화시켜, 그로 하여금 깨닫고 뉘우치도록 한다.

 

* 과거는 시작이 없으며, 미래는 끝남이 없다는 것이 바로 효(孝)자의 뜻이다. 외국인들은 중국인들이 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들은 일체 중생과 자신이 한 몸으로, 종적으로는 삼세를 다하고 횡적으로는 시방을 두루하며, 전 우주가 바로 하나의 자신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비에 무슨 분별이 있겠는가?

부처님께서 중생을 구제하시고자 함이 중생을 감격시키고자 하신 것이겠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부처와 중생은 근본적으로 일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먼 조상조차도 기억해야 하거늘, 눈앞의 부모에게 공경하지 않고 효도하지 않는 도리가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 말과 행동에서 잘못을 범하게 되면 반드시 깊이 스스로 잘못을 참회해야 하느니라. (所作如犯 則自悔過). 사람은 성현이 아니기 때문에 누가 잘못이 없을 수 있겠는가? 성현 가운데서도 대성(大聖)만이 과실을 면할 수 있다. 잘못을 알고 능히 고치니, 선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자신이 자신의 잘못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은 후에는 수행해야 한다.

 

수행하는 것은 잘못을 고치는 것이다. 잘못을 알고 잘못을 고치는 것이 바로 진실한 공부이다. 범부는 과실이 너무 많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성현이 글을 읽는 목적은 바로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여 깨달아 수행하도록 도와주며, 잘못을 발견하면 즉시 고치는데 있다.

 

* 경은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고, 계는 잘못을 고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경과 계를 받들어 수지하는 것은 마치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다. 과실을 고칠 줄 알면 장래 다시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

 

* 교육의 목표는 예와 지금이 다르다. 오늘날은 단지 생계를 도모하기 위해 학생들이 하나의 기술만을 능숙하도록 익히기를 바란다. 옛 사람들의 교육 목적은 기질을 변화시켜 현인이 되길 희망하였다. 불법의 교육은 한발 더 나아가 학생들이 범인의 영역을 벗어나 성인의 경계로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

 

* 과학자들은 “만약 오염방지를 강화하지 않으면 50년 후에 이 지구는 인류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환경오염은 마음의 오염이 감응하여 생긴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현재 인심의 오염 정도는 환경오염보다 몇 배나 더 심각하다.   

 

* 고대에 만약 큰 재난을 만나게 되면 황제는 언제나 목욕재계하고 소식(素食, 고기반찬이 없는 식사)을 하여 자신을 돌이켜 스스로를 책망하여 천심을 돌리기를 희망하였다. 이것은 절대로 미신이 아니다. 만약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고 마음을 닦고 행동을 바꾼다면, 자연히 천하는 화순하게 된다.

 

* 만약 삼세인연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각자 자신의 분수를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다.

 

* 만약 불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특히 이 염불법문을 만나지 못하면, 일생 동안 윤회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 견혹(見惑) - 잘못 보는 견해. 정견(正見)에 맞지 않는 것.

 

(1) 신견(身見 : 我見) - 몸을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몸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지 내가 아니다. 만약 몸이 나라고 한다면, 죽은 뒤 무엇을 가지고 육도로 윤회하겠는가? 진아(眞我)와 몸은 둘이다. 아견을 증장시키기 때문에 아집과 아견이 있느니, 어떻게 삼계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몸은 단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몸을 이용해 도를 닦고 거짓을 빌려 참을 닦아야 한다.

 

(2) 변견(邊見) -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견해를 말한다.

 

(3) 성견(成見) (1) = 수인(修因) : 인이 아닌데 인이라고 생각한다(戒禁取見).

어떤 사람이 소가 죽은 뒤 하늘에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우계(牛戒)를 수지하여 풀을 먹고, 밭을 갈고, 소와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죽은 뒤 하늘에 태어나기를 바랐다. 소를 배웠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죽은 뒤 반드시 소로 태어난다는 것을 몰랐다. 그는 소가 전생에 하늘에 태어날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선과가 익어 하늘에 태어났으며,

그가 금생에 소였기 때문에 하늘에 태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이것이 인지(因地)에 대한 잘못이다.  

 

 (4) 성견(2) = 증과(證果) : 과(果)가 아닌데 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見取見). 일반 종교인들은 하늘에 태어나는 것을 영생이라고 한다. 이는 잘못된 견해이다. 하늘은 마지막(究竟)이 아니며, 설사 비상비비상천에 태어나 8만 대겁의 수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명이 다하면 여전히 윤회에 들어간다.

 

* 사혹(思惑) : 탐욕(貪), 성냄(嗔), 어리석음(癡), 오만(傲慢), 의심(疑心)

 

* 인간은 견혹과 사혹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도를 윤회한다.

  견혹을 끊으면 수다원(소송의 초과)을 얻고, 사혹이 다 없어지면 아라한과를 얻는다.

 

  독각 : 부처 없이 출가하여 스스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

  연각 : 12인연을 관하여 도를 깨달은 과.

 

  이 두 가지는 소승에 속한다. 수행하기 매우 어려우며, 보통 사람은 한 생 동안에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염불법문은 견혹과 사혹을 끊을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한 마디 아미타불 명호를 의지하기만 하면 공부에 힘을 얻어 견혹(見惑)과 사혹(思惑)을 조복시켜, 작용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 마음속에 탐욕(貪), 성냄(嗔), 어리석음(癡), 오만(傲慢), 남과 나, 시비가 없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성취할 수 있다.

 

*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는 스스로 경전을 읽어 직접 불타의 교법을 계승하여, 먼저 자신의 문장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여 매일 무량수경을 두 번씩 읽어야 한다. 이렇게 진지하게 독송하면 1년 뒤에는 반드시 경을 읽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 불제자는 서로 권면해야 하며, 친구 사이에 서로 잘 아는 사람은 좋은 말로 권하여 악을 끊고 선을 닦게 해야 한다. 복덕을 갖춘 사람은 들으면 즉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인연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기회를 엿보아 말할 경우, 그는 듣기만 해도 자기도 모르게 이근(耳根)을 통해 8식(八識)의 밭 속에 씨앗을 뿌리게 된다. 이것은 영원히 도의 씨앗이 된다.

 

* 32품에서 37품까지는 선악시비와 인과응보를 말하고 있다. 정토를 닦는 사람은 적어도 매일 이 6품을 한 번씩 독송하여 자신을 각성시키고, 하루의 생각과 행위를 점검하여 잘못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져야 하고, 악을 끊고 선을 닦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지계염불(持戒念佛)이다.

 

32. 수명과 즐거움이 무량하다(壽樂無極)

33. 권유하고 독려하다(勸諭策進)

34. 마음이 열리고 뜻을 이해하다(心得開明)

35. 오탁악세(濁世惡苦)

36. 거듭 가르치고 권한다(重重誨勉)

37. 마치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는 것과 같다(如貧得寶)

38. 부처님을 예배하니 광명이 나타나다(禮佛現光)

 

* 경을 읽는 것은 진언을 외우는 것만 못하고, 진언을 외우는 것은 염불을 하는 것만 못하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명호는 단지 4글자에 지나지 않아 매우 짧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망상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 신원행(信願行)은 정토에 왕생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이를 3자량(三資糧)이라고 하며,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 몸은 움직여야 하고 마음은 고요해야 하는데, 지금 사람들은 이와 정반대이다.

 

* 대만의 종진덕(鍾進德)이란 거사는 여든 살까지 선종, 밀종, 교종에 대해 깊이 연구하였다. 그는 “지금 내가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배운 것은 하나도 쓸모가 없다. 현재는 염불에만 전념하고 있으며, 매일 30,000보를 걷고, 30,000번 소리 내 아미타불 명호를 부르고 있다.”고 했다.

 

* ‘의혹을 끊어 없애다(斷除疑惑)’ 라는 것은 자신의 선근을 믿는 것이다. 오늘 인연이 있어 이 경전을 만났고, 이 법문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며, 반드시 전생에 닦은 선근과 복덕이 있다는 것이다. 이 법문을 만난 뒤 믿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발원할 수 있다면, 이는 부처님께서 이미 당신에게 수기를 주신 것과 같으니, 이 기회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 여러분은 평소에 만약 마음 속에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단지 한 마디 아미타불만 있다면, 아미타불의 지혜와 덕능은 자신의 지혜와 덕능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미타불과 서방의 극락세계는 우리들의 자성에 의해 생긴 것이며, 또한 우리들의 자성은 본래 구족하고 있는 것이지 마음 밖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마음이 정토이고, 자성은 미타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자신의 성덕을 회복하면 아미타불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데, 불가능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 부처님의 지혜와 자신의 선근에 대해 믿는 마음(信心)을 갖는 것이 구품왕생의 기초이다.

 

* 설사 오역십악을 범한 중생이라 할지라도 염불하면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업이 너무 무겁기는 하지만, ‘한번 시험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으로 염불을 한다고 해도 왕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변지(邊地)에서 내어나게 된다. 마음에 의혹이 있으나 삼자량(三資糧)에 결함이 없으면 역시 왕생할 수 있지만 변지에서 태어나게 된다.

 

* 옛날부터 대덕들은 대부분 남을 칭찬하였다.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 4의법(四依法) : 부처님이 임종하실 때 하신 4가지 가르침.

 

(1)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마라.

    법은 경전이며, 경전은 부처님 말씀이다.

 

(2)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마라.

    문구에 얽매이지 말고 뜻이 맞으면 된다.

 

(3) 분명하게 설법한 궁극의 도리(了解)에 의지하고, 불요해(不了解)에 의지하지 마라.

    사람들이 생사를 마치고 삼계를 벗어나 불도를 이루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이 요해다.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면 내생에 인천의 복덕을 얻지만 삼계를 벗어날 수 없다면, 이것이 바로 불요해이다.

 

(4)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마라.

    일반적으로 장(藏)에 들어간 경전은 모두 출처가 있어 믿을 수 있으니 의심할 필요가 없다.

 

*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을 불러 “의혹은 모든 보살에게 커다란 손해가 되며, 큰 이익을 잃는다는 것을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간혹 어떤 사람이 불법을 배운 뒤 반신반의하여 여전히 점쟁이나 사주를 보는 사람을 찾아가 관상을 보고 풍수를 보기도 하고, 혹은 길흉화복을 알고자 하는데, 이는 불보살에 대해 신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잡된 생각이 섞여 있다면 언제 한 마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언제 선정을 얻을 수 있겠는가? 언제 지혜가 열릴 수 있겠는가?  진실로 부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상서롭지 않은 일이란 없다.

 

* 허망과 분별은 소지장(所知障)이다. 번뇌장을 깨트리기는 쉬우나 소지장을 깨트리기는 어렵다. 소지장은 오늘날 말하고 있는 지식욕이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이 구하는 지식은 전부 허망한 것이며, 진실한 지혜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진실한 지혜는 외부에 요구하여 얻은 것이 아니고, 자성 속에 본래부터 다 갖추어져(具足) 있는 것이며, 일체를 통달하고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부처님께서는 경을 이야기하실 적에 묻는 것에 따라 대답하셨으며, 사유하지 않고 고려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특히 경고하시길, 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을 일종의 지식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만약 지식으로 간주하게 되면 소지장을 깨트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소지장이 커지게 된다. 이것이 불법을 배울 적에 가장 두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을 독송할 때  마명보살의 『기신론』에 따라야 한다.

 

(1) 언설상(言說相)을 떠나야 한다. 그 말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2) 명자사(名字相)을 떠나야 한다. 불경에 있는 명사는 뜻만 알면 되고, 그것에 집착하면 안 된다.     

(3) 심연상(心緣相) 떠나야 한다. 들은 후에 그것을 생각하면 잘못되어 6식에 떨어진다. 설하셨으나 설한 것이 없고, 들었으나 들은 것이 없다.

 

경을 듣는 것은 선정과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만약 언어상, 명자상, 심연상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선정을 닦은 것이다.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경을 듣고서 오히려 번뇌장과 소지장이 커진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지혜가 있고, 말재주가 있고, 학문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사지(邪知)와 사견(邪見)을 키운다.

 

* 임종할 때 반드시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상을 취하여 분별하는 것은 왕생에 장애가 된다. 우리들이 임종할 때 순조롭게 갈 수 있다고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 공부는 평상시 해야 한다.

 

* 일심으로 염불할 때, 만약 경계에 접촉할 경우, 첫 번째 생각이 일어나고, 두 번째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즉시 한 마디 “아미타불”로 그것을 끊어야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력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시방 제불여래의 본원 위신력과 가피력이다.

 

* 3불퇴전(不退轉) 

 

(1) 위불퇴(位不退) : 대승의 초신위 보살, 소승의 초과 수다원을 얻으면 절대로 물러나 범인이 되지 않는다.

(2) 행불퇴(行不退) : 대승에서 보살행을 닦아 원교의 팔신(八信)과 구신위에 오르면 다시는 소승에 떨어지지 않는다.

(3) 염불퇴(念佛退) : 생각마다 무상보리를 향하여 다른 생각이 없으면, 원교의 초주와 별교의 초지보살은 염불퇴를 증득하게 되는데, 법신대왕이라 부른다. 만약 염불퇴를 증득하면, 행불퇴와 위불퇴를 동시에 증득하게 된다.

 

* 덕의 근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지런히 육도를 닦는 것으로, 보살의 덕의 근본은 바로 육바라밀이다. 다른 하나는 일심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 오로지 아미타불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살들은 육도와 염불 두 가지를 함께 닦는다.

 

* 7일 염불법회란 하루에서 7일까지 정진하여 염불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7일 동안 정진하고 염불하면 법신대사가 백 천 억겁 동안 닦은 것과 같은 공덕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염불당에 들어간 뒤 한 마디 부처님 명호 이외에는 잡념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

이치(理)는 비록 이와 같지만, 사(事)상으로는 매우 힘들다.

 

* 인광대사는 오로지 정토종만을 닦지 않을 때는 많은 경론을 섭렵하였으나, 진정으로 명료하게 알게 된 후에 일체를 내려놓았다. 그의 불당에는 단지 한 분의 아미타불, 하나의 향로, 한 잔의 맑은 물만이 놓여 있고, 오직 『아미타경』만 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은 바로 ‘일념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 귀의, 이 두 글자의 뜻은 매우 심오하다. 세속에서 어떤 어떤 법사에게 귀의한다고 한는 말은 대단히 잘못된 표현이다.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아미타불이며, 법에 귀의한다는 것은 무량수경이며, 승가에 귀의한다는 것은 서방세계의 연지해회(蓮池海會)의 모든 상선인이다.

 

* 불상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선정한 이후에는 일생 동안 바꾸지 않아야 한다. 임종할 때 당신을 마중하러 오는 것은 바로 그 불상이다.

 

* 아미타경은 좋기는 하지만 경문이 너무 짧다. 서방의 극락세계의 여러 가지 사리(事理)인과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좋아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기가 매우 어려웠다.

 

* 지금은 잠시 다른 법문을 배우지 않고 서방에 가서 다시 배워도 늦지 않다.

 

* 불법을 너무 많이 아는 것도 또한 장애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불법조차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 선종에서는 일체를 버려야 하며, 정종 역시 일체를 버려야 하지만, 오로지 한 마디 부처님 명호만 남는다. 따라서 정종은 선종보다 훨씬 편리하다. 일념으로 일체 망념을 그치게 한다. 그러나 망념을 소멸하지 못하면 경을 읽도록 시킨다. 상상근기에 해당되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일체를 모두 내려놓고 오로지 3년 동안 아미타불 명호를 부른다면 반드시 성취한다.

 

* 무량수경을 수지하는 방법

(1) 베낀다(書寫) : 옛날 경전 유통은 베끼기가 있어야 가능하였다. 현재는 복사기, 녹음기, 비디오테이프 같은 것이 있어 베낄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발췌하여 기록하였다가 그것을 소책자로 인쇄하여 널리 유통시킬 수 있다. 

(2) 공양한다(供養) : 경서를 나누어주는 것을 법공양이라고 하며,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최고이다.

(3) 받아 머리에 새긴다(受持) : 수( 受 (수) )는 받는다는 뜻이며, 지(持)는 보존하여 잃어버리지 않는 것으로 예를 들면 법수행이다.

(4) 읽는다(讀誦) : 일반 사람들은 번뇌와 습성이 너무 무거워 3일 동안 불경을 읽지 않으면 번뇌와 습성을 억제할 수 없는데, 이는 스스로 체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선근과 복덕이 대단히 크고 깊고 두터운 사람이 한 마디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은 대단히 효과적이다.

번뇌가 너무 무거울 경우 염불은 독경만 못하다. 독경을 하면 경의 뜻을 체득할 수 있다. 만약 경의 뜻을 깨달을 수 있으면 자성으로 돌아가 얻은 이익이 더욱 많다. 동시에 소리 내어 읽는 것 역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귀신류의 중생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

 

* 날마다 정진하면 끝내 물러나지 않는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중단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인지(因地)상의 불퇴전이며, 장래에 서방에 태어나 원만하게 3불퇴를 얻는 것이 바로 과지(果地)상의 불퇴전이다.  

 

* 이 법문은 완전히 여래 과지상의 경계이다. 모든 법문은 인(因)을 닦아 과(果)를 이루는 것이다. 오직 이 법문마이 과(果)를 가지고 인(因)을 삼는 것이다.

 

* 수행을 아무리 잘 한다고 하더라도, 단지 인천(人天)의 복의 관보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지, 삼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행히 염불 법문이 있다. 이 염불법문의 장점은 무명을 깨트리고 번뇌를 깨트릴 필요가 없이 긴 밤을 벗어날 수 있으며, 게다가 매우 효과적으로 육도윤회를 초월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단지 경전의 교훈에 따라 실행하고, 방법이 정확하며, 인과에 편차가 없으면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 평상시에 이 경에 대해 깊이 연구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고 말씀에 맞게 수행해야 한다. 성취 여부는 90%가 수학하는 태도에 달려 있으며, 방법은 기껏해야 단지 10%를 차지할 뿐이다. 양호한 수학태도가 있으면 방법을 알지 못하여도 성취할 수 있다. 

 

* 마땅히 부처님을 공경해야 한다.(當孝於佛) : 항상 마음을 부처와 같이 하고, 바람을 부처와 같이 하고, 이해를 부처와 같이 하고, 행위를 부처와 같이 하도록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 효도하는 것이다. 

 

* 항상 스승의 은혜를 생각한다(當念思恩) : 첫 번째 스승은 ‘본사’라고 이름하며, 즉 석가모니불이다.

 

* 『관무량수경』의 3가지 복

(1)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양하며,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섬기고, 자비심으로 살생하지 않으며, 열 가지 선업을 닦는다.

(2) 삼귀를 수지하고, 중계(衆戒)를 완전히 갖추고 위의를 범하지 않는다.

  중계 = 5계, 10선. 행하여 청정을 얻으면 해탈하게 된다.

(3) 보리심을 일으켜 인과를 깊이 믿고, 대승을 독송하고 행자에게 정진할 것을 권한다.

 

* 이화동균(利和同均) : 이익은 절대로 균등할 수 없다. 부귀와 빈천은 숙세 행위의 과보이다. 이 이치를 분명하게 안 뒤, 부귀한 사람은 즐겨 보시를 할 수 있고, 빈천한 사람은 자신의 분수에 만족하여 부유한 사람에 대해 존경할 수 있다면 빈부 생활이 평등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는 바로 교육에 의지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교육이 실패한다면 반드시 천하가 크게 어지럽게 된다.

 

현재의 교육은 과학기술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론에 치중하여, 군신 부자 부부 형제 친구 사이의 관계, 장유유서를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에 각자 응당 다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유교와 불교의 교육은 대단히 비슷하다. 그 다음은 3학으로 계․정․혜이다.

 

* 문이수지(聞已受持)는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것이며, ‘서사, 독송, 강연, 공양’은 자신과 남을 모두 이롭게 하는 것으로, 진실하게 세상을 구하는 다함이 없는 마음을 나타낸다. 

 

* 독(讀)은 경본을 보면서 읽는 것이며, ‘송(誦)’은 보지 않고 외우는 것이다. 매일 언제 어디서나 외울 수 있다. 경 전체는 외우기 쉽지 않으니, 본경에서 가장 중요한 6품 48원을 선택할 수 있다. 이는 정토정이 근본적으로 의거하는 경문이다. 그 다음은 32품에서 37품까지인데, 모두 계율이다. 이병남 선생이 “대중연사(臺中蓮社)의 회원명부에 등록된 25만 명 가운데, 해마다 떠나는 사람 가운데 왕생한 사람은 10000분의 3, 5에 불과하다”고 했다.

 

비례가 이렇게 적은 것은 32품에서 37품까지의 병폐를 범했기 때문이다. 경문을 반드시 먼저 숙달할 때까지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한 뒤 외우는데,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읽으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 과실이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이를 설명하여 다른 사람들도 이끌어주어야 한다.

 

연(演)이란 연기이며, 경건에서 말하는 것을 생활과 행위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연(演)은 몸으로 가르치는 것이고, 찬(讚)이란 말로 가르치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는 행동은 마음으로 가르치는 것에 속한다. 스스로 행하여 다른 사람을 교화시키는 것으로, 몸과 말과 뜻의 세 가지 업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전부 상응한다.

 

*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부처님 만나 뵙기 어려우며(人身難得 佛難値)

  정토법문 듣고 믿고 즐거워하고 수지하기란 더욱 어렵다. (信慧聞法 難中難)

      - 47장 복과 지혜를 갖추어 처음으로 듣는다. (福慧始聞) 820쪽

 

* 이날 이후 세상의 인연을 내려놓아야 한다. 마음에서 내려놓고, 사상(事上)에서는 여전히 세간법에 따라 행하지만, 마음은 절대로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 불법은 세간에 있지만 세간법을 파괴하지 않는다.

 

* 부처는 자성각이며, 법은 정지(正知)와 정견이며, 승은 청정이다.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이 3가지를 수학하는 근거로 삼는 것이다. 이론으로는 그렇고 실제로는 부처는 아미타불이고, 법은 무량수경이며, 승은 관음, 대세지, 문수, 보현이다.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雲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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