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
<일타스님의 글>
나의 가족은 친가와 외가를 모두 합하여 모두 41명이
승려가 되었습니다. 이 41명의 출가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일족의 출가 이후 가장 많은 숫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41명의 출가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인가?
아닙니다. 나의 외증조할머니인 이평등월(李平等月)
보살의 기도와 입적(入寂), 그리고 방광의 이적(異蹟)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안성이씨(安城李氏) 평등월 보살은 일찍이 우리 나라
제일의 양반으로 치던 광산 김씨(光山金氏) 집안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녀는 남편 김영인(金永仁)의 아낌없는 사랑 속에서
삼형제를 낳아 기르며, 학식있는 양반집 안방마님으로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60이 조금 지났을 때 갑자기 불행
닥쳐왔습니다. 남편이 남의 빚보증을 섰다가 대부분의
재산을 날려 버렸고, 연이어 시름시름 앓던 남편은
끝내 저 세상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평등월 보살이 실의(失意)에 잠겨 해어나지 못하고
있자. 이미 장성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던 만수(萬洙)
* 완수(完洙) * 은수(恩洙) 세 아들은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습니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우리가 양반이라고 마냥
이렇게 살 것이 아니다. 노력하여 돈을 벌어야 한다."
이렇게 결의한 세 아들은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염려 마십시오. 이제부터
저희들이 집안을 꾸려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목화를 솜으로
만드는 솜틀기계 한 대를 일본에서 구입하였습니다.
기계를 발로 밟으면서 목화를 집어 넣으면 껍질은
껍질대로, 씨는 씨대로 나오고 솜은 잘 타져서 이불짝
처럼 빠져 나오는 당시로서는 최신식 기계였습니다.
이렇게 공주 시내 한복판의 시장에다 솜틀공장을 차린
삼형제는 작업복을 입고 하루 여덟시간씩 3교대로 직접
솜틀기계를 돌렸습니다.
기계는 24시간 멈출 때가 없었습니다.
공주 사람들은 그 솜틀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공주도 이제 개명을 하는구나." 하면서
'공주개명(公州開明)! 공주개명!'을 외쳤습니다.
마침내 공주 주변에서 생산되는 목화는 모두 이
공장으로 들어왔고, 산더미같이 쌓인 목화가 솜이 되어
나오는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집안에는 돈이
쌓여 갔습니다.
월말이 되면 삼형제는 한 달 번 돈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세 몫이 아니라 네 몫으로 나누었습니다.
남는 한 몫은 누구의 것이겠습니까?
바로 어머니 평등월 보살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을 어머니께 직접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한 달 동안 '삼형제 중 누구 집에 며칠을
계셨느냐'에 따라 그 집에 직접 분배를 하는것입니다.
막내아들 집에 열흘을 계셨으면 3분의 1을 막내아들
집에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며느리들은 서로
시어머니를 잘 모시기 위해 갖은 정성을 다 우렸습니다.
집집마다 어머니 방을 따로 마련하여 항상 깨끗하게
꾸며 놓았고,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으로 최고의
호강을 시켜드렸습니다. 때때로 절에 가신다고 하면
서로 시주할 돈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이 집안은 공주 제일의 효자 집안으로 소문이
났고, 벌어 들인 돈으 로는 논 백 마지기를 다시
사들이기까지 하였습니다.
평등월 보살은 신이 났습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매일을 평안함과 기쁨속에서 지내던 할머니가
막내아들 집에 가 있던 어느 날, 한 비구니스님이
탁발을 하러 왔습니다.
그 스님을 보자 할머니는 눈앞이 밝아지는 듯했습니다.
"아! 어쩌면 저렇게도 잘생겼을까? 마치 관세음보살님
같구나." 크게 반한 할머니는 집안에서 가장 큰
바구니에다 쌀을 가득 퍼서 스님의 걸망에 부어
드렸습니다. 그때까지 비구니 스님은 할머니를 조용히
보고만 있다가 불쑥 말을 했었습니다.
"할머니! 요즘 세상사는 재미가 아주 좋은 신가 보지요?"
"아, 좋다마다요. 우리 아들 삼형제가 모두 효자라서
얼마나 잘해 주는지....... 스님. 제 말 좀 들어 보실래요?"
할머니는 신이 나서 아들 자랑을 시작했고, 며느리
자랑, 손자 자랑까지 일사천리로 늘어놓았습니다.
마침내 할머니의 자랑은 끝내 이르렀고, 장시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스님은 힘주어 말했습니다.
"할머니, 그렇게 세상일에 애착을 많이 가지면
죽어서 업(業)이 됩니다."
"업?"
충청도 사람들은 '죽어서 업이 된다'고 하면 구렁이가
된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죽어서 큰 구렁이가 되어 고방(庫房) 안의 쌀독을 칭칭
감고 있는 업! 할머니는 그 '업'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는 것 같았 습니다.
"아이구 스님! 어떻게 하면 업이 되지 않겠습니까?"
"벌써 업이 다 되어 가는데 뭐.......... 지금 와서
나에게 물은들 뭐하겠소?"
스님은 벼랑을 짊어지고 돌아서서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업만은 면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5리, 10리 길을
쫓아가면서 스님께 사정을 했습니다.
"스님, 제발 하룻밤만 저희 집에 머무르시면서 업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시오." 간청에 못이겨 다시 집으로 온
스님은 할머니가 이끄는 대로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윗목에서 벽을 향해 앉아 말 한마디 없이
밤을 새웠고, 할머니 역시 스님의 등뒤에 앉아 속으로만
기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발 업이 되지 않는 방법을 일러주십시오. 제발....."
마침내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스님은 할머니 쪽으로
돌아앉았습니다.
"정말 업이 되기 싫소?"
"아이구. 제가 업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스님. 절대로 안됩니다. 인도환생(人道還生)하든지
극락세계에 가도록 해주십시오."
"정말 업이 되기 싫고 극락에 가기를 원하면 오늘부터
행실을 바꾸어야 하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부터 발은 절대로 이 집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고,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만 부르고,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친견하여 극락에 가기만을 기원하시오."
스님의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말씀은 몸단속을
하라는 것이고, 나무아 미타불을 불러라'는 것은 입을
단속. '일심으로 극락왕생할 것을 기원하라'는 것은
생각 단속입니다.
곧 몸[身]과 입[口]과 생각[意]의 삼업(三業)이 하나가
되게 염불할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스님. 다시 한번 자세히 일러주십시오."
"보살님 나이가 70이 다 되었는데,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소? 돌아가실 날까지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면 업 같은 것은 십만 팔천 리 밖으로 도망가
버리고, 극락세계에 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첫째나 둘째 아들집에도 가지 말고,
이웃집에도 놀러가지 마십시오. 찾아오는 사람에게
집안 자랑하지도 말고. 오직 이 집에서 이 방을
차지하고앉아 죽을 주면 죽을 먹고 밥을 주면 밥을
먹으면서 '나무아미타불'만 외우십시오. 그리고
생각으로는 극락 가기를 발원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까?"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머니는 다짐을 하면서 큰절을 올렸고, 스님은 옆에
놓아두었던 삿갓을 들고 일어서서 벽에다 건 다음
슬며시 방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걸망도 그대로 둔 채.....
'변소에 가시나 보다.'
그러나 한번 나간 스님은 영영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사람을 풀어 온 동네를 찾아보게 하였으나 '보았다'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아! 그분은 문수보살님이 틀림없다. 문수보살님께서
나를 발심시키기 위해 오신 것이 분명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욱 발심(發心)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방의 가장 좋은 위치에 스님의 삿갓과 걸망을
걸어 놓고, 아침에 눈만 뜨면 몇 차례 절을 올린 다음
'나무아미타불'만 불렀습니다.
어느덧 할머니는 앞일을 내다보는 신통력(神通力)이
생겼습니다. "어멈아! 오늘 손님이 다섯 온다. 밥 다섯
그릇 더 준비해라." 과연 끼니때가 되자 손님 다섯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루는 막내아들을 불러 각별히 당부하였습니다.
"얘야. 너희들 공장에 화기(火氣)가 미치고 있다.
오늘은 기계를 돌리지 말고 물을 많이 준비해 놓아라.
위험하다." 그 말씀대로 세 아들은 아침부터 솜틀기계를
멈추고 물통준비와 인화물질 제거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바로 옆집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옆집 불을 껐습니다.
만약 목화 솜에 불이 옮겨 붙었다면 솜틀공장은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하였을 것입니다.
다행히 할머니의 예언으로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웃 집의 피해까지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도 외증조할머니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손녀인 어머니가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외증조할머니는 큰아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30리 가량 가면 구름내[雲川]라는
마을이 있다.
김창석 씨네 둘째 아들과 네 딸 상남(上男)이와는
인연이 있으니, 찾아가서 혼사(婚事)를 이야기해
보아라." 이렇게 외증조할머니는 가 보지도 않고
신통력으로 나의 부모님을 결혼시켰습니다.
마침내 주위에서는 외증조할머니를 일컬어 '생불(生佛)
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 날부터인가 외증조할머니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지 않고 '문수보살'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런 변화를 걱정한 아들 삼형제는 인근 마곡사의
태허(太虛: 鏡虛대선사의 사형) 스님을 찾아가
상의했습니다. "문수보살을 부르는 것도 좋지만,
10년 동안이나 아미타불을 불렀으면 끝까지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앞일을 자꾸 예언하다 보면 자칫 마섭(魔攝)이
될 수도 있다.내가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라는
글을 써 줄 테니 벽에 붙여 놓고 '나무아미타불'을
항상 부르도록 말씀드려라."
常放大光明! 언제나 대광명을 뿜어낸다는 이 글을
보면서 할머니는 다시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불렀습니다.그리고 앞일에 대한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염불기도를 하다가 할머니는 88세의
나이로 입적(入寂)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야말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7일장(七日葬)을 지내는 동안 매일같이 방광(放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낮에는 햇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밤만 되면
그 빛을 본 사람들이 '불이 났다'며 물통을 들고
달려오기를 매일같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상객으로 붐비는 집안 역시 불을 켜지 않아도
대낮같이 밝았습니다.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
그야말로 외증조할머니는 염불기도를 통하여
상방대광명을 이루었고, 그 기적을 직접 체험한 가족들은 그 뒤
차례로 출가하여, 우리 집안 친가*외가 41인
모두는 승려가 되었습니다.
몸과 말과 뜻을 하나로 모아 염불하고 기도하는 공덕.
그 공덕을 어찌 작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부처님의 불가사의가 어찌 없다고 하겠습니까?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기도는 우리 집안을 불심(佛心)으로
가득 채웠고,
41명 모두를 '중노릇 충실히 하는 승려'로 바꾸어 놓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 신문기사 내용 -
일타스님,염불 영험담수록 「기도」펴내
조계종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 日陀스님이 자신과 주위
사람및 옛 선사(禪師 )들의 기도 성취 영험담을 모은 책
「기도(祈禱)」를 펴냈다.
전계대화상은 조계종 소속으로 출가하는 모든 승려에게
계(戒)를 주는 원로스님으로 청정계율을 지킨 승려만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영예로운 직책이다.
1929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한 스님은 13세때 출가,
일평생 참선정진과 중생교화에 만 몰두한 수행승으로
유명하다.
친가와 외가를 합쳐 모두 41명이 출가한 얘기며 20 대에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매일 3천배씩 7일동안 기도를
드린뒤 오른 손 네손가락 열두마디를 모두 불태워 버린
일화는 지금도 불가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일타스님은 자신의 저서에서 『외증조할머니인
李平等月 보살이 10년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기도를 한 끝에 「생불(生佛)」로
불리다가 세상을 뜨자 7일간 불을 밝히지 않아도
집안을 대낮같이 밝히는 방광(放光)
현상이 나타났었다』고 회고하면서 『이를 직접 체험한
가족들이 차례로 출가, 결국 석가모니 이후 한 집에서
가장 많은 출가자를 내게됐다』고 말했다.
손가락 연비(燃臂)에 대해서도 스님은 『손가락이
없으면 세속적인 모든 생각이 저절로 뚝 끊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세 명예 행복등 세속적 미련을
손가락과 함께 태워버렸다』면서
『연비후 홀로 태백산 도솔 암으로 들어가 6년동안
조그마한 갈등도 없이 참선 정진했던 시절은
일평생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스님은 옛 선사들의 기도에 얽힌 얘기와 1백만배(拜)로
원력(願力)을 이룬 제자 慧印스님, 7일간 3천배로
운동권 아들의 마음을 돌려 법조인으로 만든 보살등
평범 한 이들의 기도 성취담도 아울러 소개하고 있다.
도서출판 효림 간행.〈吳明哲〉
[동아일보] 1995-11-12 (문화) 뉴스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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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와 같이보았네|
(능행스님 글)
지난 오월 ...
새들이 노래하고 토끼가 딩구는 이곳에 지족행 보살님이 오셨다.
위암 말기
복수가 차서 걸을 수 가 없었다.
풍경이 처마끝에서 땡그렁 ~~땡그렁
시님 참 좋소 ~ 우메 내가 무슨 복일까여?
참말로 좋군마~~ 내는 마 부처님 도량에서 죽는게 팽생 소원이여지라.
칠십노구에 깊은 병이 든 보살님
스님들의 간호를 받고 무지무지 해복해 하신다.
오메 네가 안아퍼면 우리시님들 옷하나씩 만들어 드릴터인디~~우짠디야
말씀이 많으시다.
막내아들과 딸 손잡고 오신 당신을 기억 합니다.
송광사에서 구산스님께 지족행이란 불명을 받고 30년을 꼬박 절집에서 삼보를 받들고 살아오셨다고 말씀 하셨다.
뼈만 남은 사지에 불러온 복수가 고통스러워보여 복수뽑고 미음을 드리고 목욕시키고 기도해드리고...
시님 나 여거서 죽어도 되지라 ~ 그럼요
아들들이 못가게 하는 대두 네가 와버러지라 스님이 계신다고 했어
여기온께 서너달 더 살고픈디... 어쩐디야 진짝에 서둘러 와야 하는 건디...
휠채어타시고 법당에 갔어 맨바닥에 절을 하신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저는 요 극락으로 갈텐께 부처님 그리 알아쁘리소
날 꼭 데리고 가야허요 부처님 !나무아미타불
아이구 못일어나신네 간호사들 난리났다.
시님 나 울매나 살거소 나부처님 한께로 갈텐께 아무걱정없어라~~~
매느리들 한께 쪼개 미안허요 팽생 절에다닌다므 우째 이런 몹쓸병이 들어을까?하고 부처님 영험이 떨어질까 말이여
다 내 업인디 ~ 그러지라 시님?
오신지 한달 ...
가족들이 수시로 오고 전화도받고 ....
점점 육신이 무너저 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중환자 실로 옮겨 모셨다.
내가 드려주는 아미타 노래에 푹 잠기시는 지족행 보살님...
오는 지~ 가는 지~ 있는 지~ 흔적없이, 소리 없이, 허드래 일 다하시며 염불수행하신 지족행보살님...
나는 사십구제 필요없어라~ 바로 갈텐께 그리허두 자식들이 흔다믄 혀야제
몇칠 못가실것 같아 딸에게 부탁드려렸다
가실려고할때 갈라입힐 고운 바자마 한벌 사오라고...
사오셨다 멋진것으로
시님 나 갈려고 할때 이옷 입소 ~예~ 병원복 입고 가믄 쓰것소 고운것 입어야제
맞소~맞어 성품 좋으신 보살님! 함께 조금더 살고싶은데 떠나려고 준비를 하시는 것 같다.
임종이 닥아오면 지 수 화 풍 이 차례대로 무너진다.
임종의 예후를 보이기 시작하신다.
임종은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 지어온 업력에 따라서 그리고 마지막 종착역에서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향해 다가서는가에 따라서 죽음의 질이 천차 만가지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 (어떤삶이 잘 사는 삶 일까?)
유월 바람이 풍경을 스치며 지나가던 날 새벽..
사력을 다해 염불을 하신다 임종이 닥아오는 것같다.
자식들에게 연락을 했다
몇시간후에 임종하실것 같다고.
3남 1녀를 두셨는 데 큰아들 내외만 늦었고 다른자식들은 3시간 이내 도착 했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아미타 삼존불 모시고 향피우고 향 물로 몸 닦고 이제 떠날 준비가 다되었다.
혈압 맥박 신체적인 증상 모두 임종의 임박함을 말해주었다.
혀가 말려 들어가고 동공이 풀렸다
작은아들이 어머니!!! 형 저그오고있는 디 조금만 기다렸다가 보고가소
녜! 보고가세요 불효자식 만들지말구요
보살님 ! 지족행 보살님 ! 부처님 어디에 계세요 ?
간신히 손가락을 움직여 저~기 구름타고...
아미타부처님이세요 ?
관세음 보살님이세요?
아미타불 ....
혼자오셨어요?
고개를 좌 후로 흔들어주신다.
팔을 벌려 갑짝이 무엇을 잡으려 하다가 푹 팔을 떨어떨인다.
모두 깜짝 놀랬다.
그러더니 풀린 동공이 다시모이고 혈압 맥박 다시정상 으로 돌아오고
눈을 뜨신다.
아이 ~이놈아 !
부처님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니가 너그 형보고 가라고 하니
부처님이 구름위에서서 잠시있다가 오겠다고 하시고 갔어뿌렸다.
우리는 잠시후라는 말씀듣고 임종을 기다렸다.
큰아들 며느리가 도착했다.
부처님이 니 만나고 오라고 했다께.
아들얼굴도 만져보시고 며느리 손도 잡아주시고...
한시간이 넘게 흘러갔다 .그런데 보살님은 더욱 선명한 모습으로 깨어나셨다.
한참후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고 크게 한바탕 웃었다.
오늘은 우리어머니 예비소집일이였다.작은아들 유머
둘째가 남고 모두돌아갔다.
보살님 웃으시면서 거실에 나와 나 옷 벗을래
우리는 또 웃었다
이옷 벗겨주고 병원복입혀줘 이거 나중에 입고 가야제
우리는 많은이야기를 들었다 .
구름을 타고 오신 부처님이 당신손을 잡으려 하다가 아들의 애원을 들어시고 잠시 시간을 허락 하셨단다.
그리고 48시간이 지난 다음 다음 새벽날 이였다.
갑짝이 맥박이 떨어지고 혈압도 뚝~뚝떨어진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는 실제 사항이라고...
막내가 먼저 도착했다 .어머니 !
나 부러지말거래
예~알겠습니다. 잘들 살거래
혀가 말려 들어가고 숨을 몰아쉰다 .
그러더니 지금 달려오고있는 큰아들을 찾는 다
지금 오고있어요
나~~빠쁜게 (손을 귀에다 덴다) 전화~~~ 내가 알아들었다.
큰아들께 전화 통화를 하고싶어하셨다. 핸드폰을 귀에다 데 주었다.
야야 너는 성질이 급한께 천천히 오거레 그리고 형제지간에 우애있게살고 ...애미는 ? 애미야 고맙다 ! 맏이로 고생많았다. 잘 살아라 내가 니 사랑하는 거 알제 니만 믿고 간데 부처님 공부 잘허구) 나는 민망스러워다 다른 자식은 와 있어도 찾지도 안고 큰아들 며느리만 찾으니...
천천히 오거레 ~~천천히~~~
전화를 놓으신다 아들이 수화기를 통해 어머니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불러다 보살님 ! 부처님은...? 고개를 끄떡이신다.
그리고 웃으신다 . 그러더니
눈~딱 감으시고 입속으로 염불히시더니 힘없는 손을 모아 합장하고
부처님 우리나라 잘되게 해주고 우리자식들 부처님 공부 잘 하게 해주시고 우리 시님 병원 빨리 지을수 있게 도와 주시오 나무아]미타불
좋고 좋군아 ~ 좋고 좋군아~ 나무아미타부~~불울 들어간 숨이 나오지 않았다 . 동공이 풀렀다. 아침 8시 경
아무도 울수없는 기쁨이 충망한 열반이여!
합장 한 체 로 당신께옵서는 무량수 부처님 품으로 돌아 갔습니다.
아! 아! 거룩한 보살이여!
아~~아~~거룩한 열반이여!
니르바나에 들었다. 합장한체....
복수도 다빠지고 메마른 얼굴레 홍조가 띈다.
어디에선가 향기가 진동을 했다 .
나무이미타불
필시 정토의 향기여라.
우리는 수시로 들어가 그 그윽한 향기를 맡았다. 8시간정도...
너무나 아름다운 고인의 모습이 거룩하여 얼굴을 덮을 수 가 없었다.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이시여 고이안고 가시옵소서
당신께옵서 이곳에 오신줄 압니다 .
거룩하신부처님 ! 이몸을 던저 찬탄 예경 올리옵니다.
오거룩한 님이시여!
나무아미타불
지족행이여 ! 연꽃으로 다시 이땅에 피어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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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모자
(능행스님 글)
늦은봄 바람이 몹시 부는 날
주황색 모자와 옷으로 빠짝마른 몸을 덮고 오시었지요.
가을바람에 떨고있는 낙엽처럼 당신의 두 손은 병마에 지처 싸늘히 떨고 있었지
요.
목에 걸린 백팔염주와 그 손에 들려진 단주
배꼽이 펴 질만큼 부풀어 오른 복부
퍼런 정맥이 지도의 길처럼 튀어나와 그려져 있었다.
숨이 차서 호흡을 몰아 쉬 시면서도 보살님은 나무관세음보살 하시며
염주를 굴러다.
말기 암 환자 가 소리 내어 염불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살이타 는 덧 한 고통 중에도 집에서 보살님께서는 한결같이 염불하시었다고 했다
어지고 어진 성품을 지닌 보살님이셨다.
지나다가 보살님 ~! 많이 힘드시지요 하며 살짝 웃으시며 합장 하실 뿐..
늘 말없이 웃음으로 답해주시며 말씀이 없어 던 당신께서는
어느 날
시님하고 지나는 나를 불러다
우리는 그날마주 앉아서 한참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배가고파 여기에 와습니다.
배가 (쓸쓸히 웃으시면서 _) 병드니까 음식이 아무그나 넘어가질 ...
며느리가 이것저것 해놓고 출근을 하는데 어디 넘어가야 말이지요
여기오니 모든 것이 입에 맞아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아들 둘에 딸 여섯을 두었지만 모두가 지들 살기 바빠서...
자식을 참 많이 두셨네요.
스님 그것도 제 복이지요
막내하고 여섯째가 아들입니다
막내는 장가를 보내더니 별거를 한다네요.
손자가 하나있는데...
그 늠은 참 어렵게 키운 자식이에요.
남편이 삼십대 초부터 밖을 돌더니 작은 사람을 얻어서
한집에 같이 살았지요. 고생말도다 못합니다.
막내는 에미없는 자식이라서 내가 키워지요.
다른 아이들 하고 똑같이 키운다고 키워는데도 성격이 좀 달라요
나에게는 잘하는데 ...먼 허공을 바라보시며 괴로운 표정을 지어셨다.
큰아들이 여섯째인데 손자가 둘이에요
제가 다 키어지요.
며느리가 유치원을 해요 그래서 ...
아들도 며느리도 모두 참 잘해요 아들은 일하다가말고 병원응급실에 몇 번씩가고
애들이 사는 게 말이 아니에요
나 때문에 ...
며느리는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데
그때까지 저 혼자서 있을라니 너무 힘들고 사람도 없구
밥도 혼자 먹을 려니 안넘어가고 ...
그래서 딸이 여기로 대리고 왔지요
스님 너무 좋아요
내가 무슨 복으로 이렇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되는지...
밥이랑 반찬이 너무 맛있어요.
물맛도 참 좋구요.
오신채를 하지 않으시는 보살님이셨다.
말간 국에 촉촉한 밥 그리고 나물이며 행복해 하시고 간호사들 손길이 올 때마다
복많 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투병 중에도 늘 축복을 보내주시는 사랑이 정말 많으신 분 이었다
뼈만 앙상한 몸땡이에 불러오는 복수를 사흘이 멀다 하고 뽑아야했다
그-고통 중에도 인상한번을 찡그리지 않으시고 염주만 돌리고 계셨다
보살님 ~!
작은 사람과 그래 어떻게 한집에 같이 살았습니까?
내 전생 업 이러니 하고 살았지요.
긴 세월 저는 부처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며
고개를 흔들어 보이신다.
불교 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릅니다.
오직 관세음보살님뿐...
그날이야기는 큰딸이 와어 그만 하기로 했다
큰 딸
어머니의 아픈 삶을 너무 많이 보고 자란 탓 일까?
얼굴이 그늘져 보이고 매사 만족스럽지 못한 감정상태에 있었다.
큰딸은 후원에서 여러 식구들이랑 며느리이야기에 분주하다
오며 가며 들어보니 참 ~암
애들 키운다고 당신어머니가 너무 고생 했어 병들었는데
며느리는 돈버느라고 아침첫새벽에 나가면 저녁에 들어온단다.
맨날 식은 밥으로 병든 노모가 끼니를 떼우고
하루 종일 홀로 있으니 이게 말 이 되는 것이냐고 투덜그린다
지나는 말로 나는 딸도 자식이에요 좀 모시지 그래었요.
했더니 저는 시부님을 모시고 살아서 ...
지금아들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 투병문제로 이혼 위기에 몰려 있다고 했다
누이들이 동생에게 책임을 묻고 서로에게 원망스러운 감정을 주체 하지 못 하곤
하였다.
이혼위기 ...
]부모님의 병 때문에 이혼을 해야 하는 사람들 이 많이 사는 요즘세상 ...
일요일 큰아들이 혼자 괴로운 표정으로 혼자 어머니 보러 와단다
담에 오실 때 에는 꼭 아내를 대리 고 오라며 부탁해 보냈다
보살님에게도 시켜다 에미랑 손자가 보고 싶다고 꼭 데리고 오라고
며칠 후 에 아들며느리 손자들 다 함께 문병을 왔다
보살님께서는 며느리 손을 꼭 잡고 우시며 위로해주시었다
고생한다고 아무것도 없는 집에 시집왔어 너무 고생한다고 ..
며느리는 시어머니 부른 배에 엎어져서 한염 없이 울었다.
어머니 ~!
정말 잘해드리고 싶어 습니다.
어머니를 여기에 보내고 얼마나 죄스럽고 마음이 아파는 지 모릅니다.
모두가 다 저 때문이에요
어머니를 붙잡고 우시고 아들은 마당을 서성거리며 서 있다.
이제 갓 삼십을 넘긴 며느리
손자들이 할머니를 보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우리 보살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자식이 무엇인지...
아들가족이 오는 날에는 딸들은 한명도 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들가족은 그 이후부터 학원차를 몰고 매주 마다
어머니드릴 음식을 준비 했어 아침 일찍 서울에서 내려왔다
아이들과 시달리다 지친 몸으로 내려오지만
하루 종일 어머니시중을 덜었다
딸보다 훨씬 편안해 하셨다
이혼 위기에 있는 젊은 부부가 올 때마다 차를 나누고 하였다
어느 날 보살님께 물었다
혹시 자식들에게 섭섭하거나 원망스러운 마음 은 ...
스님 ~!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며느리 너무 착해요 헌데 딸들이 많다보니 시누들 시집살이가 고되지요
자식 많이 둔 내 탓이지요
묵고 사느라고 그래요
아무것도 물러준 것도 없고 맨몸으로 저렇게 살아보겠다고 고생을 하는데
저까지 이렇게 애들에게 짐이 되니 ...
자식만 많이 두고 돌아가신 거사님에게는 미움이나 원망 없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스님 ~!
새끼 키우느라고 힘겨워 지만 없는 살림에도 애들이 모두 착해서 ...
막내가 걱정이에요 걱정 ...
막내아들 걱정에 한숨이 깊었다.
스님~!우리며느리 착하지요 ?
녜-참 나이답지 않게 착하고 예쁘네요.
부첨님께서 이무지한중생을 많이 도와 주셨지요.
보살님 ~!이 몸 버리시고 떠나시면 어디로 갈랍니까 ?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시더니 눈을 뜨시고 날 바라보며 웃으신다.
스님 ~!
보문품에 보니까
관세음보살님 이름만 부르면 지옥에 떨어져도 구해 주신 다던데
맞지요 ?
여기는 사바세계이니 아무래도 지옥보다는 구제하기가 낫겠지요.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법당에 모시고 갔어 아미타경을 배경으로 그려놓은 불화를 자세히 설명해드리며 이
렇게 말했다
임종시에 시님 염불소리에 잘 귀를 기울이시고 일념으로 따라서 염불하세요.
시님 ~!
아미타불 하지말시고 관세음보살로 하면 안 될까요 스님 ?
나는 웃으면서 보살님을 바라보았다
시님은 난 한평생 관세음보살만 불러 는데 ...
그래요 그렇게 하지요 나무관세음보살 ...
임종이 닥아 오면 스님이 알려 드릴께요.
오직 관세음보살님만 일념으로 염송 하세요.
스님 만약에 제가 업이 많아서 관세음보살님께서 안오시면 그때는 어떡게 해요 ?
보문품을 다시 자세히 읽어드리면서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신앙적 지지를 해드
렸다
아무런 생각 다 내려놓고 오직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입니다
보살님은 흐뭇하게 웃어주신다.
늦은 봄에 주황색 모자를 쓰시고 오시었는데
어느 덧 구녀산 에는 낙엽 이 떨어지고 숲이 텅텅 비어가고
마른가지위에 까마귀가 사흘째 운다.
스님~!
제가 이제는 떠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님이 있어 너무 행복 했습니데 하시며 마른손으로 고이 합장하신다.
내가고 없더라도 우리 큰 아들 좀 잘되게 이끌어 주시소
부탁입니다
야윈 모습이 꼭 부처님 고행 상을 닮았다
처지는 배를 받쳐 들고 목에는 백팔염주 손에는 단주를 돌리시면
마지막 기운을 모우고 계셨다.
삼일부터 는 꼬박 눈을 감고 염주를 돌리시며 입을 움직이신다.
미음을 드실 때만 눈을 뜨시고 자식들이 찾아와도 고요히 염불에 들어있었다
온 전신으로 암세포가 옆구리 사타구니 등에서
암 덩어리가 울퉁불퉁 틔어 나오고 타들어가는 입속은 쌀뜬물 한 모금씩으로 넣어
드리지만
암 환자들은 임종 말기 시에는 혀 바닥이 마른논바닥처럼 갈라져 안으로 말려 들어
가는 통증과 갈증으로 무척 고통스러워하신다.
건강 할 때는 술술 잘 넘어가던 맹물도 말기 암 환자들에게는
넘어가질 않는다.
거칠고 깔깔하며 목구멍이 쪼여들어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입안에서 스며들 수 있는 물을 만들어 드려야 한다.
간혹 아침햇살이란음료를 물과 희석해서 드려도 타들어가는 입안갈증이 조절이 된
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소리 내어 여전히 염불을 하시었다
내가 곁에 있는 기척을 아시고
나직막한 목소리로 시님 ~!
나 죽을 때 도 곁에 계실꺼지요 ?
하고 물어신다
죽는다는 것이 무섭고 두려 습니까 ~?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관세음보살님 여기로 날 데불로 오시면 우리 스님을 좀 보고 가시게요
아이고 관세음보살님이 늘-보고 계시는데요. (웃으면서)
병원불사 좀 도와달라고 부탁해 볼려구요.
스님혼자 너무 힘들잖아요. 부처님께서 도와주셔야지요.
저는 이렇게 편하게 잘 있다가 가는데 ...
혼자서 우짤고 (내손을 꼭 잡고 흔든다 )
보살님도 (웃으며)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분이 이리도 걱정이 많아서 우째 갈라요
아임니더 제가 여기 왔어 받은 은혜가 얼만데요
내 한평생 가장행복하고 편안했습니데
이리라도 해야지 ...
그러니까 꼭 내 곁에 딱 붙어 앉아계세요 스님~!
제가 부탁 해볼께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죽음 앞에서 어쩜 이리도 여유로울 수 있을까
녜 그렇게 하지요 우리는 손가락을 걸었다 그렇게 하기로 ...
내 모습이 왜 이리 힘들어 보였을까
환자들 앞에서 정말 표정관리 잘해야지 ...
임종삼일 전에 아들내외가 왔다
아들에게 미안하다며 고생했다 불교 잘 믿고 아이들 잘 키우고
며느리 사랑해주라고 부탁가지도 아끼지 않으셨다.
며느리에게도 고생시켜 너무 미안하다고 아이들 잘 키우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살라시며
나는 화장 했어 부처님 도량근처에 부려라 꼭 그렇게 해라 하셨다
보살님은 자식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가르치시고 가시려나보다
가족들 마중 나갔다가 들어오니 부는 바람 바람이 차다
떡갈나무 잎들이 잔디밭에 서 바람을 따라 흩어진다.
보살님은 오늘도
하루 종일 잘 드시고 편안히 누워서 염불하시고 계셨다
저녁 미음한 그릇 다 드시고 다시 누어셨다.
잠시 후
후원에 가족이 물을 들고 들어갔더니 일어나 식판을 붙잡고 앉아계시었다
후원보살님께서 빨대로 물을 드시게 하였더니 쭉 욱 빨아 드시고
바라보시고는 그동안 고생 많아 습니데 고맙구 보살님 ~
우리보살이 뭘요 보살님은 ...
하면서 자리에 눕혀드리니
눈을 감으시고 손을 가슴에 얻고는 염주를 돌리시고 계신다고 하였다.
왠지 느낌이 좀 이상하여 병실로 들어갔더니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보살님은 이승을 떠나시고 계셨다
동공이 열린 상태였다.
임종시간 약 5분정도
숨 한번 몰아쉬지도 않고 ...
보살님 말씀대로 옆에 딱 붙어 앉아서 기도를 해드리고 같이 염불했다.
간호사들은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우리가족들이 모두 마지막을 지켜드렸다
갑짝이 일어난 일이라서 친 가족들이 아무도 종신을 못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문득 얼굴을 바라보니 홍조를 띄기 시작하였다
얼굴에 혈색이 돌고 몸은 한참이 지나도록 굳거나 식지 않았다
향물 로 닦고 깨끗한 잠옷을 갈아입히려고 이불을 걷어 더니
태산만큼 불러 던 배가 쏙 꺼지고 다리에 부종도 싹내리고
고통스러워 던 모습이 흔적도 없었다.
어딘 선가 불어오는 향기 ...
늦은 가을이라 꽃도 없는데 어디에서 불어오는 향기로운 바람인가
환희로 와습니다.
부처님 경전에 보면 제불보살님께서 내려오시면 향기가 진동한다고 했지만
싱그러운 향기가 간호사실까지 진동했다
보살님 거룩하신 모습을 차마 흰천 으로 덮을 수가 없어서 가슴까지만 덮었다
자식들이 모여 오기 시작했다
아무도 울지 못했다 너무도 분위기가 거룩하고 어머니 모습이 깊이 잠든 모습 같아
서
울 수가 없었다.
8시간이 지나도록 향기는 불어오고 몸에는 따습은 온기가
남아있었으며 몸이 굳지 않았다.
모든 대중이 가슴 벅차는 환희로움에 환호했다
깨긋한 몸으로 사대는 바람으로 물로 흙으로 따습은 기운으로 흩어지고
영혼은 불생불멸하는 생명의 빛으로 자비로운 어머니의 품으로 고이 돌아갔으리라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피안의세계로 가시옵소서.
재가불자이지만 염불수행으로 임종시에 손에 든 염주 알이
숨이 사라질 때가지 돌아갔다
미묘한 향기는 필시 관세음보살님 옷자락에서 불어왔으리라
관음세지보살님 손잡고 부디 아미타 회상에 왕생하옵소서.
며느리는 49제동안 지극정성으로 기도하여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열 살짜리 손자가 우리할머니 라고 영정사진을 가슴에 안고 차 앞좌석에 모신다.
요즘 두 아들과 남편 그리고 형제지간에 우애 있게 잘살고 계신다
가끔은 그리운 어머니를 찾아서 아이들을 대리고 정토에 왔어 머물다가 간다.
말기 난소암으로 전신에 전의가 되어 복수까지 차오르는 힘든 투병
69세 노 보살님 손에 염주는 투병 중 에도 밤낮으로 돌아갔다
한평생 부처님의 가르침을따라 염불하시며 만고풍상 모진 바람속에서 도
곱디 고운 모습으로 한송이 연꽃바람되어 가시었다
이렇게 고이가시는 님 몇이나 될까 ?
벗님네들요
일심으로 염불하시소
죽음이 참으로 아름답더이다
아--하
염불왕생은 승속이 따로 없어는--法
십념이면 왕생이어라
염불공덕으로 왕생의 기쁨을 나누어 주고가신
보살님 영전에 삼가 향 사르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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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거라 내 새끼야
(능행스님 글)
지난해 유월 파아란 잔디가 예쁘게 깔리고 새끼 강아지네마리가 이제 겨우 첫 걸음발을 할때쯤...
26세 미대를 졸업하고 디자이너 를 하면서 결혼을 몆달 앞둔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영이가 정토마을에 왔다.
애인과 손잡고 아버지랑 함께 이곳에 오게되었다.
몇칠전 친구랑 회 먹고 급체를 했어 병원에 갔더니 ...
급성 위암 말기 추정 생존 기간 2개월.
맑은 하늘에서 날벼락이 내려쳐 아이가 맞아지만 아이는 아무런 느낌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가 없으니 공기좋은 곳에 갔어 휴양이나 하라 했어 인터넷에 정토마을 을 보고 아버지가 현 지답사를 오고 그 이후 에 아이랑 함께 왔다.
애인이랑 강아지를 데리고 노는 저 아이가 2개월 밖에 살 수가 없다는 현실이 나도 그리고 가족 들도 믿을 수 가 없었다.
아무것 도 할 일이 없어다.아이를 위하여...
아이는 진단 후 부터~ 임종 때까지 물 한모금도 넘길 수 없었다.
계속 토하고 입속 에 침 까지도 넘어 가지 않았다 .
주치의 가 아산병원에 있었다.
오직 영양제밖에는 무슨도리가 없어 너무나 가슴이 아파다.
영이 어머니가 몇칠 후 검정색 가방에다가 현금을 가득 넣어 가지고 오셨어 가방에 돈을 내 앞에다 패데기를 치면서 ...
왜!!!
돈이면 다 되는 이 세상에 돈을 준다해도 왜 저 아이를 못살리는 게에요 말도 안되요 이럴 수는 없어요 살려야해요.
스님 !살려주세요
두 다리를 뻗고 통곡을 했다.
나는 돈만 많이 있으면 무엇이든 다 되는 세상인 줄 알았습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숨이 막혀 버릴것 같은 고통과 절망을 느껴야 했다.
이제 26살 가을 에 시집도 가야 한단 말이에요
어머니의 절규가 구녀산 허공에 사무친더이다.
하루 이틀 아이는 점점 말라가고 물 한모금도 삼킬수 없는 고통을 밤낮으로 겪으면 서 도 죽음이 무엇이며 어떻게 죽는 것인지...
한번도 들어 본적도 없고 죽음을 생각 해 볼일이 없었다.
그 아이에게는 ...
부모는 아이를 살려볼려고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어갔고
더욱 아버지는 입에서 곡기를 끓어버렸다.
온 땅을 다 뒤지며 약과 의사를 찾아 헤메다가 어디에서 불로초를 다 구해가지고 왔다.
한모금의 물도 안넘어 가는 자식에게 한모그만 삼켜 보라고 빌고또빌더이다.
어느날 밤
별들이 초롱 초롱한 밤에 아버지와 나는 함께 아이가 자라오면서 당신들의 삶에 얼마나 기쁨이고 희망이였는 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지만 무슨말이 그들을 위로 할 수 있었을까?
스님!
나는 일산 병원앞을 하루두번씩 매일같이 출퇴근을 했지만 저 병원에 누가 있으며 어떤 사람이 입원해 있는 지 한번 도관심을 가저 본적 이 없습니다.
시장 바닥에서 돈 버는 일에만 미처 저 병원을 밤에 가끔 지나칠때며
병실마다 불이 왜 저렇게 밤새 켜저있는 지 ....몰라습니다.
뭐하느라고 저렇게 불을 켜놓았나~? 했을뿐 ...
세상에 암환자가 저렇게 큰 병원에 서 저리 많이 죽어 가고 있는 줄은 정말 몰라 습니다.
내 새끼가 이렇게 죽을 것이라고 는 ...
정원에 서있는 작은 나무를 붙들고 주저 앉아
아이가 들을 까봐 소리죽여 몸부림치며 통곡 을 한다.
별도 울고 달도 울고 구녀산 바람도 울어 풍경을 스치고 가더이다. 살려야 해요 살릴 것입니다.
엄마는 곁에 앉아 휴지를 잘라 주는 것 밖에는 ...
엄마가 몆번 쓰러졌다.
영이가 옴마 ! 아프지마 나는 어떡게해...
선생님 우리 엄마 주사 좀 놔 주세요.
그래도 늘 웃는 다.~~~늘...물 한모금 먹지못하면서도
아빠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전국을 뛰어 다니며 약을 찾아 허덕이고
엄마는 점점 죽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며 피를 말리고...
두달이 지나자 아이는 복수가 차기 시작 했다.
아산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갔어 입원을 시켰다.
그리고 여러가지 증상들을 조절 받았지만 영이는 얼마 남지 않아보였다.
삼일만에 정토로 다시 돌아 왔다 죽음이 무엇인지 도 모르는 아이에게 죽음을 준비시키는 일은 참으로 곤혹 스럽고 고통스러워다.
어느날 조용한 오후 나는 아이에게 의도적으로 닥아갔다.
머리도 만저주고 얼굴도 만지며
영아 ! 사랑하는 저 사람은 어쩔래?
눈을 크게 굴리며
스님! 나 못살아 ?
최선을 다 해 보지만 ...
너는 요쯤 너의 증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니?
녜 저 조금알것 같아요 어렵다는 것 ...
그렇게 생각했어?
녜
영아! 어떻게 하면 좋을 까 ?
아빠 그리고 엄마 동생 또 니가 사랑하는 저 사람들 말이야 ...
모르겠어요(고개를 흔던다)
그런데 스님 !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에요 ?
너는 어떻게 생각 하니?
엄마는 절에 가시지만 저는 종교 잘 몰라요
하지만 난 요쯤 내가 정말 살수 없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되나요?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데 ?
녜~ 여자로 태어나 6살 먹으면 스님 에게 왔어 스님 제자 될래요 활짝 웃는 다.
정토마을 와도 되죠 ?
그럼
스님 제가 어떻게 해야 태어날수 있죠?
아이는 너무 지처있었고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긴 설명을 할 수가 없어다.
영아! 니가 건강한 몸 받아 다시태어나 스님 될수 있는 길을 스님 이 알려 줄까?
무척 기뻐하며
어떻게요?
응 자 보아라 (아미타불 삼존 불을 보여주며)
이분이(부처님을 가르치며) 극락이라는 세계 너 들어봐지? 녜
그 세계의 부처님이시지
우리같은 중생들을 고통이 없고 태어나고 죽음이 없는 극락 세계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시지
그곳에는 아미타불부처님이 계시고 관세음 보살님 도 계시지...
아름다운 연꽃속에서 태어난단다.
지금부터 니가 부처님께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스님들께 귀의하고
극락에 태어난다는 지극한 믿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계속 부런다면
고통없이 부처님의 자비로운 품에 안기워 극락에 태어났다가 니가 원하면 다시 이땅에 태어날수 있지...
영아 ! 우리 한번 해 볼래 ?
고개를 끄덕이였다.
먼저 삼귀오계를 주고 염주도 하나 선물로 손에 쥐어 주었다.
시간만 나면 나는 아이를 위하여 아미타불과 극락 세계를 상상으로 그릴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얼마후 아빠가 무슨 치료를 해야 한다고 집으로 데리고 갔다/
몆칠후 보살님께 전화가 왔다.
아이가 날 찾는다고...
급히 올라갔더니 아버지가 어느 중국 한의 사가 낳게 해준다고 약속 했다며 애 몸 온 전신에 뜸을 뜨서 만신창이가되고 한뻠 되는 침을 놓고
방에 온도가 35도를 넘고 애가 생 지옥의 고통을 받고 있었다.
살려 보고싶은 애비의 마지막 몸부림 ...
처절하였다.
아이가 날 보자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
나 극락으로 가야 하는데 스님이 곁에 없어 너무 걱정이 되어었요
스님 이 아미타불 노래 불러줘야 제 가 따라부러지요
그래~~~그래 아이를 무릅에 누이고 아미타불노래를 들려 주었다.
애를 죽인다며 엄마가 펄펄 뛰고 온 식구가 초죽음이다.
지옥이 어찌 죽어서 있으리...
119를 불러 아빠가 없는 틈을 타서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여 입원 시키고
온 가족 들이 아이를 지켜야했다.
아빠는 살릴 수 있다고 하는 중국 한의를 철석 같이 믿고 싶은 심정이였을래라...
입원 나흘 나는 병원에서 아미타불을 노래하며 아이는 나와 함께 삶의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 .
예쁜 발찌도 베고 ...
옷이랑~ 그림~ 그리고 종이학 천마리 ~ 등등등
영이는 예쁜백금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귀걸이는...?
스님 귀걸이는 베지마세요
왜..?
다음에 제가 찾아오면 스님 날 어떻게 알아봐요
귀걸이를 하고 와야 전 줄 알지요
그래 ~~그래 그게 좋겠군아 꼭 찾아와야해 ~응
그리고 영아! 아미타 부처님을 만나거던 꼭 내~ 말~좀 전해줄래
날 처다본다.
내가 웃었다.
스님 병원 빨리 짓게 해달라고...
엄마랑 우리는 모두 웃었다,
그래 ~ 이놈아!
고개를 끄덕인다. 웃으며...
아미타 부처님 만나거던
잘 갔다고 꼭 말해줘야해 알았지
웃는 다.
오후 부터 숨을 몰아 쉬기시작 하였다.
아버지는 밖에서 들어 오지도 못하고 풀밭에 주저앉아 넋을 놓고 계시고 동생과 엄마는 복도에서 주저앉고...
나는 아이를 무릅에누이고 함께 나~무 ~아~미~타 불
초롱 총롱 맑은 의식으로 말려 들어 가는 혀를 움직여 작은 소리 내어 따라부른다.
너무나 안타까워 내가 영아! 마음 속을 하거라 했더니 고개를 흔던다
극락세계에 그렇게 가고싶니?
고개를 끄덕인다
빨~~~리
힘들~~어
부처님 ! 어서 이곳으로 강림하소서 !
당신의 나라에 태어나기를 이토록 서원하는 영이를 당신의 감미로운 능라로 감싸 안아 주시옵고 당신의 품에 편히 안기어 정토에 태어날 수 있도록 대 자비를 베푸소서~!!!
이 맑은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아미타여래시여 !!!
당신을 부르는 이 소리를 이제 그만 거두어 주시옵소서 !
거룩한 님이시여 !
사십팔원 원력 바다로 돌아가 의지하오며 당신여 자비를 구하오며
이몸 던저 비옵니다.나무아미타불
아이가 입가에 미소를 띤다
영아! 부처님 오셨니?
웃는 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
두손을 벌려 내 목을 끌어 안는 다.
아직도 나무아미타염불을 하고있다.
조금후 소리가 멈 추었다.
오후 8시 30분
심장이 닫히는 소리 ~~딸각~~ 잘~~~가거라
한참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가족이 뛰어 들어 오고 ...
의사와 간호사가 달려와 보고 목석 처럼 가만히 서 있더이다.
나는 아이를 가만히 눕혀다.
살아있는 것 처럼 어여쁜모습이여 !
임종시에 일념 염불 공덕으로 부처님의 영접을 받았으리라.
영이는 극락 세계와 부처님의 약속을 그대로 의심없이 믿었다.
죽음앞에서 종교는 절대적이며
믿음은 아름다운 다음 생을 잉태하고
삶의 마지막 종소리는 천상의 음악소리로 넘처 나 더이다.
임종후 6시간이후에 영안실로 내려갔다.
다음 다음날 울다 지처 스러져 있는 엄마 꿈에 영이가 나타났다.
엄마! 나 부처님이 안고 갔다.
엄마는 나 병원올때 걸려서 왔는 데
부처님은 날 안고 극락으로 가셨다.
엄마 이것봐 (하면 뜸뜬 자리를 보여주었다)
부처님이 다 없어지게 해주어서
나 이제 하나도 안아프고 흉터도 없어
아빠 용서 해주고 잘 살아 내 걱정말고 ...
나는 너무너무 좋아 !
스님께도 말해줘 나 극락세계갔다고
그리고 부처님이 날 안고 갔다고...
엄마 가계 장부 저기 있는 데 불쌍한 사람들것은 받지마~응
내 차로 운전배우고...
엄마 나 이제간다 ...
미친 시람 처럼 허둥대던 엄마가 꿈을 꾸고난 뒤 정신을 차렸다.
화장터에서 울부짓는 애미의 절규....
내 새끼야 ~~~잘 가그라
아빠는 영이가 떠나는 순간
한국을 떠나버렸다가 7개월후에 돌아오셨다.
지금도 애미는 그자식이 보고퍼믄 정토로 달려와 사진을 끌어 안고
야이년아 그리좋은 극라으로 나도 데려가라 하며 울다간다.
백중에도 왔어 울다울다 갔다.
스님! 그년간 극락 나도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염불을 열심히해야 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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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태로 제일 큰 것은 바다요,
무형태로 제일 큰 것은 허공이며,
공덕중에 제일 큰 공덕은 아미타경을 수지독송함이라.
나무아미타불을 일생동안 염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큰 공덕은 없을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기타 염불가피와 극락왕생사례 보기 http://cafe339.daum.net/_c21_/bbs_list?grpid=2LVx&fldid=ZEF |
출처 :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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