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효에 관하여

[스크랩] 불교는 효를 가르친다

慧蓮혜련 2015. 12. 18. 15:01


불교는 효행의 불교이다.

부모은중경에 이르시길 우리가 부모에게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부모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참으로 물건으로 측량할 수 없다하시고 그 은혜는 왼편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가죽이 닳아서 뼈에 붙고 뼈가 갈아져 골수에 이르도록 수미산을 백천만번 돌더라도 오히려 부모님의 은혜는 갚을길이 없다고 하셨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사회생활을 시작함에 마치 스스로 세상에 떨어져 혼자 자란것처럼 생각하기 일수이나 부처님은 부모에 대한 은혜를 지극하고 명확하게 밝혀 보이시니 참으로 위대한 가르침중에 가르침이다. 은중경에 이르기를 뱃속에서 잉태했을때에 열달동안 베푸신 은혜와 낳으시여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서 키워주신 은혜이며

끝없이 베푸시는 부모님의 은혜는 참으로 헤아리고 측량할 수 없는 크신 은혜다. 그러나 우리들은 안타깝게도 이렇게 크신 부모님의 은혜를 저버린채 늙으신 부모님께 효도는커녕 불효를 저지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부처님께서는 부모님에 대한 은혜의 보답을 행함으로써 불확실한 미래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으니 이는 참으로 부처님 가르침중에 가장 중하고 중한 가르치심인 것이다.

또한 지장경에 이르기를 지장보살의 전신인 바라문녀가 어머니의 죽음후 생전에 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신 것을 걱정하여 부처님께 어머니의 가신 곳을 찾을수 있었다. 어머니는 화탕지옥에 빠져 아귀들과 함께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다짐하기를 나는 저 지옥바다 중생들을 모두 건져 제도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고 지옥 중생들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그 지옥에 빠져 고통을 받는 망자들은 사십구일이 지나도록 아무도 그들을 위하여 고난에서 건져주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살아있을때도 착한일을 한적이 없어 지은 업연에 따라 지옥고를 치르는 것이었다. 이것을 부처님은 업의 바다라 하셨다. 이렇게 살아서 선업을 쌓지못하고 사견에 빠져 죄업을 쌓은 사람이지만 아무도 그들을 건져주지 못하며 이들을 안타깝게 생각한 지장보살님은 서원하기를

"이들이 미래겁에 다하기를 죄고에서 허덕이는 그들에게 널리 방편을 써서 이들이 모두 한사람도 남지 않을때까지 이들이 모두 한사람도 남지 않을때까지 그들을 위해 바른법을 설하여 구제하시리라" 하셨던 것이다. 이토록 지장보살님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내여 어머님을 지옥계에서 구원하심은 물론 어머니와 함께 업해의 바다에 빠져 고통받는 모든중생들에까지도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우리불교는 이렇듯 자신이 입은 은혜의 주체를 찾아 그 은혜를 갚음으로 하여금 자신의 도리를 다하도록 인도하여 주신다.

또한 목련경에서 가르치는 목련존자의 효성이나 보덕각시를 통하여 보여주는 효성은 우리가 이세상을 살아감에 잠시라도 자신의 삶에 대한 은혜를 잊고서 배은망덕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이끌어주고 계시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가르침은 현실로 나타나 불자면 누구나 가족들의 사후에 사십구제를 행함으로써 갖가지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이미 사십구제를 치르지 못한 사람이 있어 두려움에 있을때 이들을 위해 천도재라는 방편으로

불효에서 오는 두려움을 덜어주고 이러한 의식을 통해 효심을 일깨워주는 효행불교를 가르치고 계시는 것이다. 만약 누가 있어 부모를 학대하고 가벼이 보며 이웃을 깔보고 악한일을 행하는이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지옥고를 치르게 되는 것이며 이렇게 저지른 죄업은 고통의 바다에 빠져 혹은 화탕지옥이나 혹은 칼산지옥이나 혹은 아귀지옥에 빠져 허덕이고 고통받을 일은 뻔한 사실인 것이다.

부처님이 부모은중경에 이르기를 길을 가다가 백골이 된 뼈한 무더기를 보고 절을 하는 것을 제자들이 보고 부처님께 여쭙기를 부처님은 삼세에서 가장 크옵신 스승인데 어찌하여 한무더기의 보잘것 없는 백골에 머리숙여 절을 하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 뼈골은 먼훗날 나의 조상일수 있으므로 내가 이 백골에 절을 한다고 하시며 조상님들에 대한 은혜를 가르쳐 주셨다. 제자들은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고개를 들지못하고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며 불효를 절실히 뉘우치도록 하셨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감에 자신에 대한 집착은 태산보다 크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입은 갖은 은혜는 잃기가 쉽다. 부모에 대한 은혜, 스승에 대한 은혜, 가족에 대한 은혜, 친지에 대한 은혜, 국가에 대한 은혜, 동료에 대한 은혜등 온갖 은혜를 입었음에도 마치 혼자 세상에 저절로 떨어진 것처럼 생각하며 살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니다. 부처님이 이르시길 세상의 모든 이치는 스스로 지은 업연에 의해 인이 되고, 그 결과로 나타난다 하셨다. 모든 부처님이 착한 일로 업을 쌓고 악한 일을 멀리하여 살라고 하심은 업은 곧 씨앗이며 이 씨앗은 반드시 싹을 틔우기 위한 것이므로 싹이 트면 또한 열매를 맺을수 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이는 누구도 부정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필연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착한일을 하면 현세에서나 미래에 있어서 부꾸러움이나 두려움을 갖지않게 됨으로 스스로 행복하고 모든 사람이 경계를 하지않아 참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유지할수 있는 것이다.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그 행위가 드러날까 이웃이 두렵고 스스로 불안하여 생활에 매진할 수 없으므로 원만한 생활은 물론 돌아온 미래에까지도 두려워 언제나 불안한 생활을 할수밖에 없는 것이다. 죄업은 세상에 드러나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그댓가를 치렀다하여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지은 업은 자신이 진실로 뉘우치고 참회하며 저지른 죄업을 덥기위해 저지른 죄업의 열배백배 선업을 쌓아야만이 비로소 그업을 갚았다 할 것이다. 마치 잠자리에 들은 사람이 자기몸을 감추기 위해 커다란 이불을 덮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일들을 물질의 가치에 기준을 두고 사는 예를 얼마든지 볼수 있다. 그러나 그 물질 중에서 자신을 가꾸는 일은 어느가치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있게한 원인에 대한 은혜를 갚는 일이다. 그중 효행은 누구나 절실하게 해야할 우리의 의무이며 도리인 것이다.



출처 :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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