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 공덕 태산보다 높아… 불효자 없어야 사회 건강
(철웅스님)
인간의 삶이란 변화의 연속선상에서 곡예사와 같이 연극을 하며 사는 것이라 봅니다. 그러한 연극 속에서 만나면 반드시 헤어져야 하고,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또한 너나 없이 때가 되면 가야만 합니다.
강건너 갈메봉에 높고 낮은 저 무덤아, 영웅호걸 몇몇이며 절세가인 그 누구냐. 영웅호걸 부귀문장 모두가 쓸 데 없네. 황천행을 면할쏜가. 모였던 사람 제각기 돌아가고 나니 적막한 빈 산에 외로운 무덤 뿐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우리는 무상한 세월 속에 살고 있습니다. 태어났는가 하면 어느덧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었는가 하였더니 얼굴에는 벌써 주름살이 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무상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상하니까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쓰다가 갈 곳으로 가면 되는 것인가. 참다운 사람이라면 여기서 인생에 대해 심사숙고해 보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비롯 세상은 변화무쌍하고 그래서 공허함과 더불어 염세적 무상감에 사로 잡히게 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무상하므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무상하므로 희망이 있고 예술과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또한 일체의 부처님과 보살님들께서 간곡하게 무상법을 설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저는 여러분들께 부처님의 법문을 전해 드리면서 저의 사견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아난에게 길가에 흘어져 있는 종이를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그 종이를 주워 냄새를 맡아 보아라.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향내가 나는 것으로 보아 향을 쌓던 것 같습니다. 그러하냐, 사람도 그와 같나니라. 또한 길을 가시다가 길 위에 있는 새끼줄을 보고는 주워 냄새를 맡아보라 했습니다.
냄새를 맡아본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비린내가 납니다. 너무 비린내가 나서 냄새를 맡기가 역겹습니다. 아마도 냄새로 보아 생선을 묶었던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냐, 그럼 버리거라. 종이나 새끼줄은 본래 냄새가 없는 것인 데 무엇을 가까이 했는가에 따라 냄새가 나기도 안나기도 한다. 그와같이 사람도 그러하니라. 이처럼 너희들은 안개 속을 지나가는 사람과 같나니, 안개가 비록 비는 아닐지라도 두어 시간 그 속을 걸어가면 옷이 축축하게 젖어버린다는 사실을 있지 말도록 하라”
부처님의 말씀처럼 우리들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이야기를 듣고, 설법을 듣기 좋아하고, 늘 기도하며 훌륭한 스승을 찾아서 가르침을 받으며, 잘못을 고치고 작은 마음을 넓히려 하는 바로 이것이 참답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것입니다. 때마다 향이나 촛불을 밝히고 ‘복주시오, 복주시오’한다고 해서 복을 주겠습니까. 복은 비비는 손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복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과 복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복될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은 여러가지 있읍니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대보부모은중경>에 입각하여 삶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제가 중요한 곳을 봉독할터이니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부모의 열가지 은혜를 입지 아니한 자 없건마는 처자식은 귀한줄 알면서도 부모가 병들어 외로운 방에 누워 있으면 귀챦게 생각하는 불효막심한 자식도 있나니라. 자식이 밖에서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부모는 애간장을 태우면서 걱정근심도 잊건마는 자식은 부모가 열번 백번을 잘하다가 한가지라도 섭섭하게 하면 두고 두고 감정을 품고 이해할 줄 모르는구나.
부모가 병이 들어 외로이 방에 누워 있으면 자식들에게 폐가 될까 걱정하건만 저렇게 살려면 빨리 죽는 것이 낳으련만 하는 자식도 있나니라. 만일 이와같이 부모에게 불효한 자는 아무리 공을 들여도 공덕을 받을 수 없으며, 이 다음에는 자기 자식에게 불효를 받게 되느니라. 나무아미타불
부처님께서 이와같은 설법을 하시자 모든 제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가르침에 감격하였습니다. 어디 부처님의 제자들 뿐이겠습니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를 막론하고 해당되는 말씀이지요. 심지관경에선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큰 부자인가. 양친이 살아계심이 가장 큰 부귀니라.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궁핍한 가난인가. 부모님께서 돌아가심이 더없는 가난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이란 없다가도 땀흘려 노력하면 생길 수 있고, 벼슬이란 떨어졌다가도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떠나버린 부모님은 두번 다시 얼굴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부모님 살아 생전에 어깨 한번 주물러 드리고, 죽 한 그릇 제대로 올리지 못한 것을 후회할 따름입니다.
효도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이 드신 분들은 집에 가서 <부모은중경>도 안 읽어보았느냐고 자식들에게 호통을 칩니다. 반면에 젊은 사람들은 변명하길 효도를 하고 싶어도 우리 부모님은 맞출 수가 없다고 합니다. 결국 효도는 서로 맞아야 하는 데 맞질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까지도 한갓 변명에 불과합니다. 자식이 부모님의 뜻에 따르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부처님 말씀에 ‘맞추려고 애쓰는 사람에겐 조각난 그릇도 맞추다 보면 국보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미묘한 진리 입니다. 그러나 맞추려 하지 않고, 조금 깨어진 그릇이라 해서 집어 던져버리면 산산조각이 나서 영원이 쓸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서로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행복의 꽃이 피고, 행복의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되도록 서로 맞추려 애쓰고, 이해하고 칭찬하는 말,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삶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마음이란 것이 눈으로 보이지도 않으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데로 따라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자성불과 약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의 흉을 보는 것, 짜증 내는 것을 뿌리 뽑겠습니다." 그것만 뿌리 뽑아버리면 누이 좋고 매부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남을 미워한다면 미움을 받는 사람만 나쁜 것이 아니라 미워하는 사람도 나쁜 겁니다. 가능하면 칭찬하고 자애심을 지니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참선을 하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참선을 통해 화두를 깨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묵묵히 앉아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지금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밉고, 곱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모두 마음 탓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질을 바꾸고 마음을 고치며 입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는 위대한 발심(發心)이 필요합니다. 시시 때때로 참선을 통해 발심의 불꽃이 스러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잘 써서 효도할 수 있는 방법을 3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젊은이나 어린이 혹은 잔혹한 심보를 지닌 시부모나 자식이 있더라도 원망하는 마음 없이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전생에 잘못 닦은 자신의 업보로 생각하는 것이 훌륭한 마음 자세입니다. 불교는 상대를 원망하기 보다는 모든 허물이 자신에게 있다고 가르칩니다. 모두가 내탓이라는 말이지요. 이와같은 마음을 부모나 자식들이 지니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화목한 가정을 만들 것입니다. 불효자가 없는 사회는 건강하고, 활기넘치며, 인간미가 숨쉬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두번째는 자식은 부모를 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부모는 자식을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는 <부모은중경>의 말씀이 틀림없다는 점입니다. 요즘 자기의 부모를 버리고, 때리고 하는 일이 방송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버림을 받고도 혹여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하여 자신의 신분과 출신지를 감추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을 한탄하기에 앞서 사바의 업장이 얼마나 두터운지 실감했습니다. 모두가 무상한 삶의 한계를 느끼지 못한 탓이라 보지요.
세번째는 어떻게 하면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모시고 세계 방방곳곳을 관광시켜드려 발바닥이 닳아서 피가 나고, 살이 닳아서 뼈가 드러나며, 뼈가 드러나서 골수가 터져 나올 때까지 공양한다 할지라도, 또 부모를 공경하고 그 뜻에 순종한다 할지라도 부모가 자식을 위해 더럽고 더러운 것을 씻어주고 닦아주며, 금이야 옥이야 길러주신 그 사랑스런 은혜 의 만분의 일도 보답할 수 없느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일 어떤 사람이 흉년에 부모가 굶고 앉아 계실 적에 피를 뽑아 국을 끓이고, 뼈를 갈아 죽을 쑤며, 살을 베어 불고기를 만들어 10년 내지 20년을 한결 같은 마음으로 봉양한다 할지라도 부모님 은혜에 만분의 일도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님은 우릴 기르실 적에 사경을 헤메는 자식을 살리고자 수 많은 날을 뜬눈으로 지새웠으며, 더위와 추위도 있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시고, 자식을 위해 먹을 것 안먹고 입을 것 안입고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혹여 여러분 중에 나는 부모에게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명심해서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 공덕 중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 보다 큰 것이 없고, 이 세상 죄악 중에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 보다 큰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철웅스님)
인간의 삶이란 변화의 연속선상에서 곡예사와 같이 연극을 하며 사는 것이라 봅니다. 그러한 연극 속에서 만나면 반드시 헤어져야 하고,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또한 너나 없이 때가 되면 가야만 합니다.
강건너 갈메봉에 높고 낮은 저 무덤아, 영웅호걸 몇몇이며 절세가인 그 누구냐. 영웅호걸 부귀문장 모두가 쓸 데 없네. 황천행을 면할쏜가. 모였던 사람 제각기 돌아가고 나니 적막한 빈 산에 외로운 무덤 뿐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우리는 무상한 세월 속에 살고 있습니다. 태어났는가 하면 어느덧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었는가 하였더니 얼굴에는 벌써 주름살이 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무상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상하니까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쓰다가 갈 곳으로 가면 되는 것인가. 참다운 사람이라면 여기서 인생에 대해 심사숙고해 보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비롯 세상은 변화무쌍하고 그래서 공허함과 더불어 염세적 무상감에 사로 잡히게 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무상하므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무상하므로 희망이 있고 예술과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또한 일체의 부처님과 보살님들께서 간곡하게 무상법을 설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저는 여러분들께 부처님의 법문을 전해 드리면서 저의 사견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아난에게 길가에 흘어져 있는 종이를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그 종이를 주워 냄새를 맡아 보아라.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향내가 나는 것으로 보아 향을 쌓던 것 같습니다. 그러하냐, 사람도 그와 같나니라. 또한 길을 가시다가 길 위에 있는 새끼줄을 보고는 주워 냄새를 맡아보라 했습니다.
냄새를 맡아본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비린내가 납니다. 너무 비린내가 나서 냄새를 맡기가 역겹습니다. 아마도 냄새로 보아 생선을 묶었던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냐, 그럼 버리거라. 종이나 새끼줄은 본래 냄새가 없는 것인 데 무엇을 가까이 했는가에 따라 냄새가 나기도 안나기도 한다. 그와같이 사람도 그러하니라. 이처럼 너희들은 안개 속을 지나가는 사람과 같나니, 안개가 비록 비는 아닐지라도 두어 시간 그 속을 걸어가면 옷이 축축하게 젖어버린다는 사실을 있지 말도록 하라”
부처님의 말씀처럼 우리들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이야기를 듣고, 설법을 듣기 좋아하고, 늘 기도하며 훌륭한 스승을 찾아서 가르침을 받으며, 잘못을 고치고 작은 마음을 넓히려 하는 바로 이것이 참답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것입니다. 때마다 향이나 촛불을 밝히고 ‘복주시오, 복주시오’한다고 해서 복을 주겠습니까. 복은 비비는 손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복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과 복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복될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은 여러가지 있읍니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대보부모은중경>에 입각하여 삶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제가 중요한 곳을 봉독할터이니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부모의 열가지 은혜를 입지 아니한 자 없건마는 처자식은 귀한줄 알면서도 부모가 병들어 외로운 방에 누워 있으면 귀챦게 생각하는 불효막심한 자식도 있나니라. 자식이 밖에서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부모는 애간장을 태우면서 걱정근심도 잊건마는 자식은 부모가 열번 백번을 잘하다가 한가지라도 섭섭하게 하면 두고 두고 감정을 품고 이해할 줄 모르는구나.
부모가 병이 들어 외로이 방에 누워 있으면 자식들에게 폐가 될까 걱정하건만 저렇게 살려면 빨리 죽는 것이 낳으련만 하는 자식도 있나니라. 만일 이와같이 부모에게 불효한 자는 아무리 공을 들여도 공덕을 받을 수 없으며, 이 다음에는 자기 자식에게 불효를 받게 되느니라. 나무아미타불
부처님께서 이와같은 설법을 하시자 모든 제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가르침에 감격하였습니다. 어디 부처님의 제자들 뿐이겠습니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를 막론하고 해당되는 말씀이지요. 심지관경에선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큰 부자인가. 양친이 살아계심이 가장 큰 부귀니라.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궁핍한 가난인가. 부모님께서 돌아가심이 더없는 가난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이란 없다가도 땀흘려 노력하면 생길 수 있고, 벼슬이란 떨어졌다가도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떠나버린 부모님은 두번 다시 얼굴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부모님 살아 생전에 어깨 한번 주물러 드리고, 죽 한 그릇 제대로 올리지 못한 것을 후회할 따름입니다.
효도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이 드신 분들은 집에 가서 <부모은중경>도 안 읽어보았느냐고 자식들에게 호통을 칩니다. 반면에 젊은 사람들은 변명하길 효도를 하고 싶어도 우리 부모님은 맞출 수가 없다고 합니다. 결국 효도는 서로 맞아야 하는 데 맞질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까지도 한갓 변명에 불과합니다. 자식이 부모님의 뜻에 따르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부처님 말씀에 ‘맞추려고 애쓰는 사람에겐 조각난 그릇도 맞추다 보면 국보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미묘한 진리 입니다. 그러나 맞추려 하지 않고, 조금 깨어진 그릇이라 해서 집어 던져버리면 산산조각이 나서 영원이 쓸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서로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행복의 꽃이 피고, 행복의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되도록 서로 맞추려 애쓰고, 이해하고 칭찬하는 말,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삶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마음이란 것이 눈으로 보이지도 않으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데로 따라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자성불과 약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의 흉을 보는 것, 짜증 내는 것을 뿌리 뽑겠습니다." 그것만 뿌리 뽑아버리면 누이 좋고 매부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남을 미워한다면 미움을 받는 사람만 나쁜 것이 아니라 미워하는 사람도 나쁜 겁니다. 가능하면 칭찬하고 자애심을 지니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참선을 하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참선을 통해 화두를 깨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묵묵히 앉아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지금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밉고, 곱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모두 마음 탓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질을 바꾸고 마음을 고치며 입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는 위대한 발심(發心)이 필요합니다. 시시 때때로 참선을 통해 발심의 불꽃이 스러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잘 써서 효도할 수 있는 방법을 3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젊은이나 어린이 혹은 잔혹한 심보를 지닌 시부모나 자식이 있더라도 원망하는 마음 없이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전생에 잘못 닦은 자신의 업보로 생각하는 것이 훌륭한 마음 자세입니다. 불교는 상대를 원망하기 보다는 모든 허물이 자신에게 있다고 가르칩니다. 모두가 내탓이라는 말이지요. 이와같은 마음을 부모나 자식들이 지니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화목한 가정을 만들 것입니다. 불효자가 없는 사회는 건강하고, 활기넘치며, 인간미가 숨쉬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두번째는 자식은 부모를 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부모는 자식을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는 <부모은중경>의 말씀이 틀림없다는 점입니다. 요즘 자기의 부모를 버리고, 때리고 하는 일이 방송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버림을 받고도 혹여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하여 자신의 신분과 출신지를 감추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을 한탄하기에 앞서 사바의 업장이 얼마나 두터운지 실감했습니다. 모두가 무상한 삶의 한계를 느끼지 못한 탓이라 보지요.
세번째는 어떻게 하면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모시고 세계 방방곳곳을 관광시켜드려 발바닥이 닳아서 피가 나고, 살이 닳아서 뼈가 드러나며, 뼈가 드러나서 골수가 터져 나올 때까지 공양한다 할지라도, 또 부모를 공경하고 그 뜻에 순종한다 할지라도 부모가 자식을 위해 더럽고 더러운 것을 씻어주고 닦아주며, 금이야 옥이야 길러주신 그 사랑스런 은혜 의 만분의 일도 보답할 수 없느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일 어떤 사람이 흉년에 부모가 굶고 앉아 계실 적에 피를 뽑아 국을 끓이고, 뼈를 갈아 죽을 쑤며, 살을 베어 불고기를 만들어 10년 내지 20년을 한결 같은 마음으로 봉양한다 할지라도 부모님 은혜에 만분의 일도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님은 우릴 기르실 적에 사경을 헤메는 자식을 살리고자 수 많은 날을 뜬눈으로 지새웠으며, 더위와 추위도 있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시고, 자식을 위해 먹을 것 안먹고 입을 것 안입고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혹여 여러분 중에 나는 부모에게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명심해서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 공덕 중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 보다 큰 것이 없고, 이 세상 죄악 중에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 보다 큰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출처 :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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