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대중을 따라 염불하던 수탉이 서서 죽다 제한諦閑노법사님(1858~1932)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노법사님께서 두타사에서 방장소임을 보고 계실 적에 상주常住의 일과에 대한 규칙은 벌써 세워진 상태였답니다. 매일 아침 공양과 저녁공양을 마친 뒤, 대중들은 다 같이 염불하면서 세 번 요불繞佛을 하고 나서 각자 요사채로 돌아가서 휴식을 했었답니다. 그때만 해도 절에 시계가 없었기에 수탉이 새벽을 알렸는데, 때가 되어 수탉이 한 번 울면 대중들은 모두 기상을 했다지요. 대중들이 법당에 들어가거나 공양시간에 공양을 하러 갈 때도 수탉은 어김없이 따라다녔답니다. 사람들이 바닥에 흘린 밥알은 그 수탉이 다 주어먹었답니다. 공양을 마치고 자리에서 염불을 하고나서 나갈 때가 되면 수탉은 대중들의 맨 뒤에 따라나섭니다. 사람들이 ‘나무아미타불’하고 계속 부르면 이 수탉도 뒤에서 꼬곡꼬곡하는 소리를 내는데 마치 사람들을 따라 염불하는 것 같았답니다. 희한하지 않나요? 이것은 제한노법사의 말씀입니다. 또 대중들을 따라서 요불을 하고, 사람들이 요불을 마치고 법당 밖으로 나가면 수탉도 따라서 나갔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요불을 마치고 다 나갔는데 이 수탉은 나가려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법당소임을 맡은 스님이 말했지요. “넌 왜 아직 안 나가는 거니? 염불을 마쳤으니 이제 문을 잠가야해!” 법당 문을 잠그는 것은 사람들이 와서 어지럽힐까봐 걱정돼서이지요. 수탉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더니 바로 불단 앞에 서서 머리를 치켜들고 꼬곡꼬곡하며 크게 세 번 소리를 지르고는 죽었습니다! 서서 죽었습니다. 보세요! 수탉이 뭘 불렀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을 정확히 발음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이 염불만 하면 수탉은 따라서 부르고 따라서 요불도 했습니다. 보세요, 얼마나 영성靈性이 있습니까? 이 사건은 제한노법사님이 온주의 두타사에서 방장을 하고 계실 때 일어난 실화입니다. 제가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축생의 염불왕생에 대해 증명을 하고 증거를 남기려는 것입니다. (담허노법사 불칠법문) -------------------------- 7. 구관조가 염불하여 입에서 연꽃이 피다 송나라 원우(元祐:1086-1093)년간, 장사군長沙郡에 사는 어느 한 분이 구관조 한 마리를 길렀다. 이 구관조는 우연히 한 스님이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을 듣고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바로 따라서 칭념하였는데, 온종일 염불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집에서는 이 구관조를 스님에게 드렸다. 시간이 지나 새가 죽자 스님은 관을 갖추어 묻어주었는데, 갑자기 입으로부터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어떤 이가 게송을 짓기를, 신령한 구관조 한 마리 스님따라 아미타불 부르고 죽어 묻은 평지 연꽃 피어오르니 사람인 우리도 그만 못하구나. 또, 천태 황암 정등사의 관스님이 구관조 한 마리를 길렀는데, 항상 사람들을 따라 아미타불을 불렀다. 하루는 아침에 새장에서 서서 죽었기에 땅을 파서 묻어주었더니, 혀끝에서 자줏빛 연꽃이 피어난 것이었다. 구관조를 위해 대지율사가 게송을 적었는데, ‘닫힌 새장에 서서 죽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나, 자줏빛 연꽃으로 변화하니 크게 기이하도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불조통기 佛祖統記) --------------------------- 8. 가릉조가 염불하여 연꽃이 피다 십여 년 전에 제가 도원桃園의 중력中儮에서 포교를 할 때, 내력內儮에서 동童거사라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집은 삼합원三合院 형태의 전통식 건축물이었는데, 작은 법당이 있어서 평소에 근 열 분에 달하는 사형사저들이 모여 함께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때 저도 아마 거기에 머물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동거사의 집에도 가릉조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조류 중에 앵무새와 가릉은 선근형에 속하여 당신이 그 새에게 간단한 말을 가르쳐 주면 따라서 말할 줄도 알고, 염불을 가르쳐주면 염불도 할 줄 압니다. 특히 가릉조의 머리는 굉장히 좋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동거사는 가릉조에게 “아미타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는 말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매번 사람을 볼 때마다 낮이건 밤이건 상관없이 “아미타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만약 우리의 염불도 가릉조처럼 올곧은 마음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분별하지 않고 “아미타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고 부른다면 왕생을 하는데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농담이지만 제 뜻은 이 새가 동거사의 오랜 기간 훈련을 받고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를 수 있는 것도 사실은 그 새의 선근과 복덕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루는 인연이 별로 좋지 않아서 가릉조가 죽었습니다. 처음엔 동거사가 발견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오늘 새장 앞을 여러 번 지나다녔는데, 가릉조가 왜 네게 말을 걸지 않았을까?”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니 안타깝게도 가릉조가 새장속의 나무 막대기 위에 서서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동거사는 매우 감동을 하였습니다. 가릉조는 본래 축생도에 속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아침저녁으로 동거사의 한 구절 부처님 명호의 공양에 의지하여 마침내 이처럼 두터운 선근이 있어서 서서 왕생한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이것 역시 핵심은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면 어느 날 제가 다시 내력으로 돌아가 동거사를 찾았는데, 문득 가릉조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동거사에게 “거사님의 새 보살은요? 방생하셨나요?”라고 묻자 그가 대답하였지요. “그런 거 아닙니다! 가릉조는 이미 보름 전에 왕생했습니다. 제가 그곳으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말을 하면서 바로 저를 데리고 집 뒤에 있는 화원으로 갔습니다. 순간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뜻밖에 남항 구거사 집의 가릉조와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가릉조를 묻어둔 곳에서 대략 농업시대에 유통되었던 오원짜리 동전크기의 꽃이 피어 있었는데, 그 생김새가 연꽃을 닮았을 뿐더러 오직 이 한 송이밖에 없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동거사는 이 꽃이 자라난 범위에 따라서 땅을 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 둘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이 꽃은 가릉조의 뾰족한 주둥이로부터 자라나온 것이었습니다. 보세요, 불가사의하지 않나요? 이때 가릉조의 몸으로부터 은은한 향기까지 났다니까요. 참으로 불가사의했습니다! 가릉조가 왕생한지 이미 보름이 지났는데도 몸에 나쁜 냄새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깃털조차도 아직 광택이 있었으니, 보고 나서 아깝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는 가릉조가 주인의 조연에 의해 이러한 복을 심게 되었고, 또 천 년의 긴 세월 동안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만약에 우리가 정진을 한다면 절대 가릉조에게 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서로 격려를 해주십시오! 이 ‘나무아미타불’ 명호의 공덕은 무량무변하여 우리가 수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성취가 있을 것입니다. 숙세의 업장을 소멸한다든지 아니면 복과 지혜를 늘린다든지 자손·권속들을 보살핀다든지 하는 소원들을 모두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지장경』의 「업연품」·「업감품」·「지옥품」에 의하면 저를 포함해서 누구도 도망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부정업不淨業·부정연不淨緣·부정물不淨物들이 우리 일상의 신구의 가운데 가득히 여러 겹으로 쌓여 있어서, 자신의 업을 정화시키려면 반드시 자력과 타력에 의지하여 함께 나란히 나아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지청법사地淸法師가 과보의 견증을 말하다』 제2집) --------------------------- 9. 아미타불의 성호로써 96마리 소의 혼령을 제도하다 96마리 소의 혼령은 사천성(四川省) 남부에 사는 유정밀(劉淨密)거사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섭씨 아주머니가 전생에 도살한 소들이다. 섭 씨는 사천 사람으로 시집을 간 뒤로부터 자주 귀신들에게 시달렸는데, 매년 반드시 몇 번 발작을 하였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민국21년(1932) 2월 유거사 집에서 가사를 돕던 도중 갑자기 심한 병이 생기더니 온몸에 붉은 색 흉이 지면서 통증과 가려움이 몹시 심하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밖으로 달려 나가 강을 찾아서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려 하였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저지를 당했는데, 마치 미친 사람처럼 소를 도살하는 참혹한 노래를 부르니 그 소리가 낭랑하여 곡조를 이루었고 소동을 그치지 않았다. 유정밀 거사가 가까이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섭 씨가 대답했다. “어르신은 도량이 넓고 크십니다. 저는 섭 씨가 아니라 그녀가 먼 과거 생 이전에 만현萬縣(지명)에서 백정노릇을 할 때 죽임을 당한 소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녀에게 원수를 갚으러 온 것인데, 96마리가 있습니다.” 이에 유정밀거사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사실은 너희들이 먼저 그녀를 죽였기 때문에 다음에 소가 되어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그녀가 어떻게 마침 너희 96목숨만을 빼앗았겠느냐? 지금 너희들은 먼저 그녀를 죽인 것은 잊고서 그녀가 너희들을 죽인 것만 기억하고 있으니 이렇게 원수를 찾아 돌고 도는 것을 고통스런 윤회라고 부른다. 영원히 서로 죽이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만약에 그러하다면 저희들이 정말로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목에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고 고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 이 고통 때문에 그 근원을 생각하여 보복하려는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소의 말을 들은 유정밀은 “그걸 없애는 건 어렵지 않다.”고 말하면서 찻잔에 차를 반쯤 따라오라고 하인에게 시키고는 감로주甘露呪를 세 번 외운 뒤 섭 씨에게 마시라고 하였다. 그런데 섭씨의 손이 굽혀지지 않는 것이었다. “소 발굽으로 어떻게 찻잔을 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인을 시켜 섭씨에게 먹여주었다. 차를 마시자마자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로 신묘한 물입니다.” 그러고는 섭씨의 목을 만지면서 “이미 다 나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손을 만지면서 “소 발굽도 이미 벗어버렸습니다.”고 말하고, 다시 머리를 만지면서 “뿔도 이미 없어졌습니다.”고 말했다. 너무나 경사스러운 나머지 허공을 향해서도 말했다.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하겠는데, 만약에 앞으로 다시 나를 우왕보살牛王菩薩이라고 부르면 그때는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유정밀은 이어서 그들을 위해 윤회할 때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또 극락세계의 안온하고 즐거우며 영원히 생사의 고통을 면할 수 있음에 대해 설명하고는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느냐?” “어르신의 말씀대로라면 어찌 원치 않겠습니까! 하지만 저희들은 죄업의 장애가 두터운데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너희들은 발원하여 염불하며 저 극락세계를 기뻐하며 흠모한다면, 내가 너희들을 위해 아미타 부처님을 청하여 너희들을 영접하게 하겠다. 그렇게 하겠느냐?” “좋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오랫동안 굶주리고 있었으니 먼저 음식을 조금 주시길 바랍니다.” 유정밀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는 깨끗한 그릇에 맑은 물과 밥을 담아 변식진언을 일곱 번 외우고 나서 대나무 밭에 뿌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의 혼령들이 “우리는 이제 많이 먹어서 배가 부릅니다.”라고 말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다. 유정밀은 곧 뒷 창문 쪽의 공터에서 향과 초를 사르며 아미타 부처님을 공손히 청하고는 왕생주, 반야심경, 대비주 및 불보살의 명호를 염송하였다. 이때 유거사의 처 왕지서汪志西가 방에서 말하였다. “너희들은 빨리 보아라. 아미타부처님께서 청하자마자 바로 오셔서 창밖에 장륙금신丈六金身으로 높이 서계신다. 모두 빨리 준비하여 부처님을 따라가거라!” 또 묻기를 “너희들은 극락정토가 보이느냐?”고 하자“보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그 모습이 어떠하냐?”고 묻자 극락정토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정토경전에 모두 부합하였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지성으로 감사드리며 말했다. “이번에 베풀어 주신 호의는 저희들로 하여금 여러 생의 원한이 하루 아침에 녹게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여러 해 동안 섭씨를 괴롭혀서 항상 고통에 시달리게 하였지만 이제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을 받아서 서방정토에 왕생하게 되었습니다. 섭씨 이 사람도 어르신께서 자비로 거두시어 염불하여 함께 서방에 왕생할 수 있도록 타일러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날에 어르신 부부가 서방정토에 왕생하실 때 저희들이 반드시 부처님을 따라 영접하러 올 것이며, 오늘 날 염불한 공덕을 다시 돌려드려서 어르신이 받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조용해졌다. 얼마 후 섭씨가 깨어났는데 그녀에게 묻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가 마치 꿈속에서 성에 들어간 것 같았는데, 서쪽 거리로 가다가 한 무리의 소떼가 흉악한 모습으로 저를 향해 오는 것을 봤습니다. 그 소들의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긴장되고 겁이나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주변 경치가 변하여 평평한 바닥과 우거진 나무숲이 깨끗하고 신선하고 아름다워서 놀기에 딱 좋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밥 향기가 평소보다 강하게 나더니, 소떼가 숲에서 밥을 먹으며 기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외에는 분명하게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그 후 다시는 소의 혼령이 섭씨를 괴롭히지 않았고, 섭 씨도 줄곧 채식을 하였다. 유정밀 거사는 민국23년(1934) 봄 서강(西康)에서 출가하여 법명은 혜정(慧定)이고, 위의 이야기는 출가하기 전에 겪은 일은 기록한 것이다. (『개대환희 皆大歡喜』제1집) ------------------------------- 10. 돼지가 영성이 있어서 배불하며 염불하다 2003년 8월, 나는 부모님을 뵈러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 보니 돼지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며칠 사이에 곧 잡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비록 이 돼지를 구해줄 힘이 없었지만 아미타불께서 돼지를 구제하여 윤회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돼지를 향해 나무아미타불명호를 불러주고 삼귀의를 해주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오늘 승보의 이름으로 부처님을 대신하여 법을 전하기 위해 너에게 법문을 해주겠다. 네가 과거 생에 어리석은 한 생각으로 인해 삼보를 공경하지 않고 인과를 믿지 않았으며 갖가지 악업을 지었기에 윤회가운데 떨어져 오랜 세월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금생에도 축생이 되어 피와 살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지은 빚을 갚느라고 사람들에게 도살을 당하는 것이니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만약에 내 말을 알아듣는다면 당장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나무아미타불을 믿고 아미타불의 구제에 의지하고 아미타불의 대원업력에 올라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다시는 윤회의 괴로운 과보를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미타불께서 우리를 위해 48대원을 세우시고 시방중생을 구제하여 모두 당신이 성취하신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하신다. 비록 네가 축생이지만 나무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기필코 왕생할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아미타불의 구제를 받아야 한다.” 축생도 감정이 통하는지라 내가 말을 마치자 이 돼지는 바로 먹이를 먹던 것을 중단하고 머리를 들고 나를 바라보면서 입으로 “흥·흥·흥”하는 소리를 내었는데 마치 염불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뒤로 도살되기 전까지 부친께서 매일 돼지에게 네 번씩 염불을 가르쳤는데, 그때마다 돼지는 앞발굽을 꿇고 앉아있었으니 마치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왕씨 도살업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야! 이상한 일! 내가 여러 해 동안 돼지를 잡았지만 당신 집의 돼지와 같은 경우는 보지 못했네. 글쎄 고기를 밤새 놔뒀는데도 이튿날에 여전히 따뜻하였으니 정말 보살이 영험을 나타낸 것이야. 앞으로 나도 염불을 해야겠어!” ----------------------- 11.돼지가 연화대를 타고 왕생하다
이는 삼사년 전에 발생한 일로, 내가 직접 겪은 진실한 감응이야기이다.
시어머니는 매년 설을 쇨 때마다 돼지를 잡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략 열흘정도만 지나면 설을 쇠야 하고 아이들도 전부 방학을 했기에 시어머니가 말했다. “식구들이 다 모였으니까 내일 아침에 돼지를 잡자” 그때는 아이가 아직 어렸고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날 밤 나의 마음은 엄청 괴로웠다. 돼지가 곧 죽게 되는데 나는 그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어쨌거나 돼지를 풀어줄 순 없지 않은가. 매일 돼지에게 먹이를 먹이면서 돼지가 커가는 것을 봐왔는데 너무나 안타까웠다. 날을 밝아오자 문득 돼지에게 염불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략 5시쯤에 일어나 돼지우리로 가서 그에게 말했다. “돼지야, 조금 있으면 너를 죽이러 사람이 올 거야. 무서워말고 영혼부터 빨리 이사를 가거라. 내가 너를 위해 염불을 해주면 아프지 않을 거야” 그러고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기 시작했다. 대략 10몇 분 정도 지나서 돼지가 웅얼웅얼 몇 번 소리를 지르고 귀를 앞뒤로 움직이는데 마치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방에 들어와 누었다. (겨울 날씨가 너무 춥고 겉옷을 안 입은데다가 시어머니가 기독교를 믿고 있어서 시어머니가 보게 되면 영험이 없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여섯 시쯤 돼서 돼지를 잡는 사람이 뾰족한 칼과 밧줄, 그리고 철대를 가지고 일찍이 왔으며, 젊고 건장한 청년 네다섯 명을 데리고 돼지를 잡으러 왔다. 밧줄을 동그랗게 땅위에 묶어놓고 돼지우리 문을 열었더니 돼지는 누가 쫓지 않아도 스스로 걸어 나왔다. 뒷다리가 마침 밧줄 가운데를 밟고 있어서 밧줄을 당기자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잡을 수 있었다. 철대위에 들어서 올려놓고 칼로 찌르자 돼지는 “꽥”하고 길게 울면서 숨이 끊어졌고 발악도 하지 않았다. 그다음 큰 대야에 돼지 피를 받고 고기를 얇게 저미기 시작했다. 나는 묵묵히 계속 염불을 해주었다.
그 당시 마침 엄동설한이어서 날씨가 몹시 추었다. 보통 돼지가 죽으면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완전히 싸늘해지는데 이 돼지는 정말로 이상했다. 돼지를 잡는 사람이 말했다.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고기가 아작 따뜻해서 열기가 올라오고 돼지의 피도 응고되지 않으니 참 이상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내가 십여 년 동안 돼지를 잡았지만 당신네 집 돼지는 참 이상해!”(그 당시 푸른 하늘에 흰색 구름, 서쪽은 온통 붉은 노을로 몹시 아름다웠다) 이때 물도 이미 다 끓었기에 나에게 말했다. “멍하니 서있지 말고, 어서 돼지 머리와 발을 손질하는 것을 도와야죠!” 나는 내심 내키지 않았으나 그래도 그들을 도와 손질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돼지의 발과 머리는 모두 부드러웠고, 귀도 부드러워서 살아있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주둥이도 잡자마자 열렸으며 혓바닥도 부드러웠다.
그 날 점심에 손님들은 고기를 먹으면서 모두 맛있다고 말했다. 나는 바닥에 서서 쌀밥에다 짠지만 먹었다. 형님과 시어머니는 내가 정말 바보라며 남들은 다 고기를 먹는데 혼자만 짠지를 먹는다고 하였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났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줄곧 그 돼지를 내려놓지 못했다. 삼일 째 되는 밤에 내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돼지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게 보였고, 또 한 송이 커다란 연꽃도 보였다. 돼지는 연꽃위에 서있기도 전에 옛날 남자서생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흰색 옷차림에 잘생기고 멋진 남자였는데 배우들보다 더 잘 생겼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빙긋이 웃었고, 손에는 또 부채 하나를 들고 있었으며, 연꽃위에 서서 가버렸다. 그다음 나도 잠에서 깨어났다. 그 뒤로 염불을 하는데 신심이 크게 증장되어 다시는 의심하지 않았고 귀의까지 하여 불육佛育이란 법명도 받았다.
오늘 이 이야기를 글로 써서 다 같이 나누고자 한다. 불법은 끝이 없고 불력은 불가사의하다. 내가 돼지를 위해 수백 번 정도 염불을 해준 것밖에 없음에도 돼지는 성불을 하였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 사람들이겠는가? 2016년 7월 18일 불육거사 ------------------------------- 12.앵무새
내몽골 포두시 청산구의 왕노거사 집에서 푸른 털에 빨간 주둥이를 가진 앵무새를 사육했었다. 이 앵무새는 염불을 한지가 벌써 10년이 되었고, 일전에 왕생하였다.
이 앵무새는 1987년에 누군가로부터 사천성 낙산에서 포두로 데려왔는데, 어눌한데다가 길들여지지 않아 자주 부리로 사람을 쪼는 바람에 ‘환영받지 못하는 자’가 되어 결국 왕노거사의 집에 오게 된 것이다.
왕노거사(필자의 장모)의 온 집안은 지극정성으로 불교를 믿었기에 각종 동물들을 각별히 아꼈다. 그래서 다쳤거나 유기된 고양이·개·양·비둘기 등 각종 동물들을 맡아서 집에서 기른 적이 있었다. 이 앵무새는 집에 온 후부터 매일매일 녹음기에서 나오는 ‘오회염불’·‘관음성호’ 등을 접하면서 성격도 나날이 온순해졌다. 몇 개월 후, 본래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던 둔한 새가 염불을 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나무아미타불’·‘아미타불’·‘불불불’·‘나무관세음보살’·‘관음불’ 등이 있는데 발음이 정확하고 듣기가 좋았다. 그중에 또 종종 “빨리빨리 염불하세요”·“가가염불”(‘가가’는 사람들이 그에 대한 애칭이다)·“염불하시죠”를 집어넣었는데, 자못 경책하는 의미가 들어있었다.
이 앵무새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주인을 따라 조석기도를 하는데, 법당에서 누군가 독경을 하거나 염불만 하면 반드시 따라서 염불하였다. 설사 주인이 법당에서 묵념을 하더라도 이 앵무새는 다 알고 있었으며, 주인이 염불하는 시간만큼 앵무새도 따라서 염불하였다.
이상한 것은 이 앵무새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주인의 집은 도반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매일 사람들의 목소리로 아주 시끄러웠으나, 앵무새는 사람들이 자주 가르쳐주는 “안녕하세요”·“앉으세요”와 같은 말을 배우지 않고 도리어 그들에게 “염불하시죠”·“나무아미타불”로 대답하였다.
1998년 5월의 어느 날, 이 앵무새는 크게 놀라서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고 이튿날까지 계속 배설만 하였다. 임종할 때 주인을 따라서 염불을 하였는데, 어렴풋이 목구멍에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왕노거사 전 가족은 앵무새를 위해 12시간 조념을 해주었다.
앵무새가 왕생한 후 화장을 하기 전까지 몸은 줄곧 아주 유연하였고 깃털은 청록색이 선명하여 살아있는 것 같았다. 화장을 할 때 오대산 능성노스님을 법주로 모셨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도반들도 백여 명이 있었으며 불사가 장엄하고 엄숙하고 경건하였다.
화장한 후에 온전한 혀와 새하얀데다가 약간 붉은색을 띤 사리화 20여 과와 사리 수십 과 및 굳어진 깃털(사진이 있음)을 거둘 수 있었으며, 보고 들은 이마다 찬탄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런 사례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명나라 연지대사께서 편집한 『왕생집』 권2 『축생왕생류』 중에도 당나라 때 앵무새가 염불하여 왕생한 기이한 사례를 싣고 있고, 이런 부류의 견문은 『허운화상년보』 중에도 기술이 되어 있는데, 항상 정업학인들로 하여금 감동해 마지않게 한다. 이로써 이런 사례들은 예나 지금이나 끊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염불법문이야말로 4생9유와 지혜로운 이나 어리석은 이나 모두 봉행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위없는 법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일체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고, 불성이 있는 자는 모두 성불하게 된다’는 대단히 좋은 방증이 되기에 충분하다!
(등걸鄧傑 수집정리) -------------------------------
13.새끼 고양이의 극락왕생기 나무아미타불, 저는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으로 법명은 정도淨道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제가 직접 겪은 몇 생을 윤회하던 새끼 고양이가 중음신으로 왕생한 사례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대략 두 달 전에 제가 형님 집에 이발을 하러 갔다가 갓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은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보게 되었는데, 이 녀석들은 씩씩하고 늠름하며 온 몸에 털이 뽀송뽀송한 게 너무나 귀여웠습니다. 그들은 마치 제가 염불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처럼 저를 에워싸고 여기저기 따라 다니면서 떠나려 하지 않았는데, 그 모습이 유난히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들이 틀림없이 불법과 인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속으로 묵묵히 그들을 위해 삼귀의를 해주었습니다. 6월 28일, 그 날 제가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형님의 집문 앞을 지나다가 맞아 죽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였습니다. 깜짝 놀라서 급히 뜰 안으로 들어가서 형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지요. 알고 보니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맞아 죽은 이 새끼 고양이는 제가 그에게 삼귀의를 해준 이후로 채식을 하기 시작했답니다. 형님이 천주교를 믿는 관계로 불교의 사정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계속해서 새끼 고양이에게 작은 생선과 새우들을 먹였지만, 아무리 먹여도 먹지 않았답니다. 아마도 너무 배가 고파서인지 몰래 주방에 들어가 먹다 남은 밥을 훔쳐 먹다가 형님에게 발각되어 맞아 죽었다는 겁니다. 형님의 설명을 듣고 난 저는 마음속으로 너무 화가 나고 슬펐습니다. 형님이 사리분별을 못하고 함부로 무고한 생명을 죽인 것에 화가 나고, 더욱이 불법과 인연이 있었으나 생명이 짧았던 이 고양이를 위해 더없이 슬펐던 것이지요. 저는 형님에게 고양이의 시신을 달라고 해서 조용한 곳을 찾아 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도와 매장을 해주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저는 그가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저와 함께 염불하기를 바랐으며, 일심으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하여 영원히 육도윤회를 벗어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날 밤, 저는 제가 평소에 참가하던 ‘QT언어선도사상염불당’에 들어가 연우님들에게 그날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드리고, 아울러 연우님들께서 새끼고양이를 위해 조념을 해주시어 그가 순조롭게 왕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랐습니다. 연우님들은 모두 특별히 마음을 내어 그날 밤부터 고양이를 회향명단에다 추가시켰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제 생각에는 만약 고양이도 이 사실을 안다면 틀림없이 감사하기 그지없을 겁니다. 7월 1일, 즉 저와 사형님들이 새끼고양이를 위해 조념을 한지 나흘 째 되던 날 점심에, 저는 평소대로 낮잠을 잤는데 뜻밖에도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회색 옷을 입고 있는 어떤 스님에 저 앞으로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바로 당신의 형님에게 맞아 죽은 그 새끼 고양이입니다. 염불인에게 감사드려요. 당신들이 염불하여 회향을 해주신 덕분에 저는 이미 극락세계에 왕생하였습니다” 말을 하고 있는 사이, 그가 입고 있던 회색 옷은 노란색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몇 생을 윤회하면서 모두 고양이 몸을 받았어요. 게다가 모두 천주교신도의 집안에 태어나 그들과 함께 천주교를 믿었으며, 이를 통해 천당으로 돌아가려고 했었지요. 이번 생에 저는 다행스럽게도 염불인을 만났습니다. 당신들이 저를 위해 조념을 해주신 덕분에 제가 비로소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말을 마친 그는 사라졌고 저도 따라서 깨어났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 꿈속의 광경을 생각하니 저의 마음속에는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이 새끼 고양이는 정말로 선근이 있네요. 저의 설득 끝에 그는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저희들과 함께 염불을 하였으며, 최후에는 중음신상태에서 극락세계에 왕생하였습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도 참으로 한번 약속한 말은 틀림없이 지키시는 대자대비하신 분이시니, 정말로 염불중생을 섭취하여 버리지 않으시네요! 하북 정도淨道 구술 길림 불길佛吉 녹음 료녕 불취佛取 정리 2015년 7월 6일 (석종도釋宗道 기록) ------------------------- ‘닭을 위해 염불하자 부처님께서 닭을 내영하다’에 대한 법문 정종淨宗스님 일반적으로 정토왕생을 하려면 설사 성인이 아니다하더라도 지혜가 뛰어나고 용맹정진하는 대수행자이어야 하고, 설사 대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선근이 많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전에서 설하기를 일생 동안 악업만 짓고 선이 없는 사람이 다음 생에 반드시 삼악도에 떨어져 고통을 받아야 하지만, 그 사람이 임종할 때에 떨어질락 말락 하기 전에 한번만 염불해도 왕생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이 왕생사례는 더욱 기이하고 또 기이하다: 첫째, 왕생자는 닭이지 사람이 아니다. 둘째, 닭자신이 염불한 게 아니라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닭을 위해 염불해 주었다. 셋째, 닭에게 염불해준 사람은 고승대덕이 아니고, 또 오래 수행하여 공부가 깊은 사람도 아니며, 단지 초심자, 심지어 불법을 모르는 어린이였다. 넷째, 염불자가 단지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면서 산란한 마음으로 칭념하였고, 심지어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였을 뿐이니, 정신을 집중시키고 청정한 마음으로 관상 등을 한 게 아니다. 다섯째, 염불하는 사람의 수가 한·두 사람밖에 되지 않았기에 많은 대중이 아니었다. 여섯째, 염불하는 시간이 짧아서 몇 번·수십 번, 몇 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일곱째, 염불을 할 때가 마침 닭이 막 도살을 당하여 몹시 두렵고 고통스러워 할 때여서 전혀 평소의 여유롭고 편안함이 없었다. 여덟째, 하루사이에 발생한 두 건의 닭을 잡은 사건에서 똑같이 염불을 만나 똑같이 부처님의 영접을 받았고 효과도 완전히 똑같았다. 따라서 우연이 아니라 반드시 필연적인 요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이한 왕생사례는 기록자 개인이 당일 날 직접 들은 것이고, 게다가 어린이들이 단순하고 질박하여 거짓말로 속일 이유가 없으므로 당연히 믿을 만하다. 현재의 사례로써 옛날의 사례를 검증해보면 옛날의 기록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옛날의 사례로써 현재의 사례를 검증해보면 현재 사건이 그릇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고금의 시간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다고 하나 아미타불의 구제에는 영원히 변함이 없고 불법의 진리는 시공을 초월한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줄 뿐만 아니라 경문과 조석祖釋에 유력한 사실적 증거가 된다. 첫째, 아미타불의 구제의 수승함과 용이함·불가사의함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어리석고 둔한 축생들이 불법에 대해 아무런 견문과 수행 없이 겨우 임종 시 도살을 당할 때 자신을 위해 염불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아미타불의 접인을 받아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였으니, 누구라도 염불만 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다. 둘째, 축생류의 중생들은 본래 업장이 두터워서 해탈하기 어렵다. 그러나 매일 수많은 축생들이 도살을 당하는 가운데 오직 이 한두 마리만 자신을 위해 염불을 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과거 생에 선근이 있어서 오늘의 인연이 성숙함이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왕생론』에서 “부처님의 본원력을 만나면 헛되이 지나치는 자가 없다.”고 설하신 바와 같다. 또한 축생류의 중생들은 사람들처럼 강한 분별심이 없기 때문에 도살을 당할 때 누군가 그들을 위해 염불을 해줌으로 인해 아미타불께서 바로 몸을 나투실 때에, 도리어 쉽게 저 부처님 명호의 원력과 광명의 섭취에 수순하여 곧바로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할 수 있다. 마치 경에서 “도의 자연스러움”이라 설하시고, 또 “자연히 이끌린다.”고 설한 바와 같다. 또 설하시길, “반드시 윤회를 고리를 끊고 안양국에 왕생하여 단숨에 오악취를 끊게 되리니, 악도는 저절로 폐쇄된다.”고 하셨다. 이는 당연히 축생들에게 어떤 수행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완전히 아미타불의 대원업력의 도에 수순하여 저절로 이끌린 결과이다. 『무량수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무량수불의 위신력과 광명은 가장 높고 뛰어나서 모든 부처님의 광명이 능히 미치지 못한다. 만약 삼악도의 괴로움에서 이 광명을 보게 된다면 모두 휴식을 얻으며, 다시는 괴로움을 겪지 않고 목숨이 다한 뒤에 모두 해탈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장엄경』 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삼악도 가운데 지옥·아귀·축생들이 모두 나의 나라에 태어나 나의 법화法化를 받고 머지않아 모두 성불하게 된다.” 셋째, 인도人道의 중생들이 사유력과 조작력으로 인해 만약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간다면 쉽게 승천할 수 있고, 만약 삿된 사유로 나아가 온갖 악업을 짓는다면 곧바로 타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가는 자는 적고 삿된 생각으로 악업을 짓는 자는 많기 때문에 경전에서 사람 몸을 받은 이는 손톱에 낀 먼지의 수와 같고 사람 몸을 잃은 이는 대지의 흙의 수와 같다고 설하신 것이다. 그리고 비록 불법을 닦더라도 만약 자신의 분별심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하지 못하고서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왕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처럼 가장 수승한 법문에 도리어 장애가 될 것이다. 지금 현재도 어떤 사람은 수많은 경론들을 읽었지만 아미타불의 구제법문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임종할 때 엉망진창으로 도리어 저 축생류의 중생들이 장엄하게 왕생하는 것만 못하니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경에서 설하시길, “교만하고 악하고 게으른 사람은 이 법문 만나도 믿기 어렵다.”고 하였고, 또 “가기 쉬운 극락에 가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셨으니, 바로 이런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얻기 힘든 사람 몸을 얻었으면 마땅히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가야 하고 특히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해야 한다. 넷째, 삼악도의 중생들이 평소에 아무런 수행 없이 극락왕생을 한 경우가 있고, 인도人道의 중생들이 부지런히 온갖 수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오직 부처님의 원력에 수순하고 수순하지 않고 에 달려 있다. 따라서 비록 왕생을 원하나 저 부처님의 서원을 믿지 못하고서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왕생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강한 분별심이야말로 왕생을 장애하는 원흉이다. 만약 이러한 생각만 없다면 모든 사람이 염불할 수 있고 염불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다. 다섯째, 아미타불의 명호와 아미타불의 본신이 일체인 까닭에 담란대사께서 ‘명호가 곧 법이다名卽法’고 설하고 ‘명호와 본체가 둘이 아니다名體不二’고 설하신 것이며, 칭명을 할 때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기 때문에 선도대사께서 ‘소리에 응하여 바로 오셔서 몸을 나투신다.’고 설한 것이다. 또한 명호와 광명이 일체인 까닭에 칭명하는 사람은 필히 부처님 광명의 섭취를 받기 때문에 선도대사께서 『아미타불』과 『관경』에 의거하여 해석하시길, “저 부처님의 광명이 무량하여 시방국토를 비추는데 장애가 없어서 오직 염불하는 중생을 살피시어 섭취하여 버리지 않기때문에 아미타라 부르는 것이다.”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라도 칭명염불만 하면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고 부처님의 광명으로 바로 섭취하신다. 예컨대 이 사례에서 닭이 비록 염불할 줄 모르지만 누군가 염불을 해준 덕택에 아미타불께서 즉각 몸을 나투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몸이 나툰 이상, 부처님의 광명이 바로 비치어 업장을 소멸시키고 안락함을 주게 되니, 비록 삼악도의 중생일지라도 이 광명을 보면 모든 고통이 전부 쉬게 되고 한 생각만 되돌리면 바로 안락국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미타불의 명호 속에 본래 갖춰진 자연스런 기능이다. 여섯째, 따라서 사람들을 위해 조념을 해주거나 서방에 왕생할 수 있도록 천도를 해주고자 한다면 모든 불사佛事 가운에 염불만한 게 없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경전과 진언을 외우거나 관상을 하려면, 만약 수행을 오래하여 심력이 집중되고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자가 아니면 그 효과는 크게 뒤떨어질 것이며 심지어 부작용도 생길 수 있지만 염불은 단지 입만 열면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고 부처님의 광명이 바로 비치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본 사례에서 닭을 위해 염불한 사람은 단지 불교를 갓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고, 또 불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어린애가 단지 입에서 나오는 데로 산란한 마음으로 칭념한 것에 불과하며, 게다가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께서 똑같이 영접하러 오신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큰 스님이거나 아니면 수행을 오래하여 공부가 아주 깊은 사람을 요구하지 않음이니, 아미타불의 ‘명호와 본체가 둘이 아니고’·‘광명과 명호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곱째, 이로써 왜 위험하고 위급한 곳·어둡고 두려운 곳에 있을 때 염불만 하면 바로 재난을 소멸하고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염불하면 바로 부처님께서 몸을 나투시어 보호해주시고, 부처님께서 바로 광명을 놓아 섭취를 해주시기 때문이다. 여덟째, 무릇 도살장·병원·화장터·묘지·사고다발지역 등의 음침하고 청정치 못한 장소에는 흔히 업장과 나쁜 기운들이 많아 사람들로 하여금 불길한 예감이 들고 두려운 느낌이 생기게 한다. 이때에 만약 염불할 수 있다면 비단 자신이 부처님께서 몸을 나투시어 부처님의 광명으로 머리를 감싸주시는 보호를 받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연 있는 중생들을 이익케 하여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제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장소에 있는 중생들은 왕왕 몹시 원망하고 몹시 괴로워하기 때문에,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런 환경 속에 들어가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마치 한 사람이 아무런 방호조치 없이 총탄이 빗발치는 거리를 걷다가 쉽게 총알에 맞게 되는 것처럼 나쁜 기운에 휩싸이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이 염불해야만 큰 재난을 피할 수 있고 큰 복을 쌓을 수 있으며 큰 공덕과 큰 이익이 생기게 된다. 아홉째, 식탁위에 육류가 올라온 경우를 만났을 때 혹 입으로 칭념을 하거나 아니면 마음속으로 묵묵히 아미타불을 불러서 그 공덕을 도살당하여 불에 구워지고 삶겨진 중생들에게 준다면, 그들의 고통과 분노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줄일 수 있고, 나아가 극락정토에 왕생하도록 천도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채식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나 어떤 상황에서 완전한 채식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반드시 참회하는 마음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도살당한 중생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줘야 한다. 만약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한편으로 진탕 먹고 마시면서 한편으로 맛이 좋니 안 좋니 하며 평점을 매긴다면, 그렇다면 도살되어 불에 구워지고 삶겨진 중생들이 틀림없이 몹시 고통스럽고 또 그들의 분노와 원망을 진정시키기 어려울 것이므로 육식을 한 모든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깊고 무거운 업보를 받아야 할 것이다. 열째, 아무튼 어떠한 경우라도 모두 염불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흔히 사람들이 염불을 꺼리는 장소가 바로 죄업을 짓고 불길하고 부정한 장소이며, 또한 부처님의 도움을 얻기 위해 가장 염불이 필요한 장소이기 때문에, 이때에 도리어 염불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염불은 평소부터 그 습관을 길어야 한다. 정토왕생을 발원하는 사람은 스스로 조건과 한계를 정하여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왕생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지 말고, 마땅히 아무런 조건 없이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