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신남신녀 여러분! 이번 호의 법문은 ‘윤회의 실상을 깨달아 영원을 살아가자’라는 내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윤회(輪廻),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쓰는 말 중에 가장 중요하고 심도있는 말중의 하나가 바로 윤회라 할 수 있습니다.
윤회란 돈다는 뜻입니다. 흔히 비유하기를 다람쥐 쳇바퀴를 굴리듯 계속해서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생사윤회란 말을 많이 쓰는데, 어떤 생명체가 태어나고 죽는 것을 되풀이하면서 살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윤회는 현실이고 엄연한 사실인데 현대인들은 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윤회 사상을 알지 못하고 윤회와 실상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니 답답하지않을수없습니다.
옛날에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만년에 어렵게 아들을 얻자 하객들이 줄지어 찾아와 득남을 축하하였는데 스님 한 분이 찾아와서는 축하는 커녕 오히려 큰 소리로 통곡을 했습니다. 부자가 몹시 의아해서 물었습니 다.
“선사님, 무슨괴로운일이있으십니까? 무엇때문에슬퍼하십니까?”
그러자비통한얼굴로선사가대답했습니다.
“내가 슬퍼하는 것은 당신 집에 죽을 사람이 한 명 더 늘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죽음처럼 확실하게 오는 것은 없습니다. 생명있는 물체는 누구든지, 반드시, 언젠가는 맞이해야 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을 피할 곳은 이 세상에 아무 데도 없습니다. 죽음에는 남녀노소(男女老少)도 없고, 빈부귀천(貧富貴賤)도 없습니다. 천하장사(天下壯士)나 영웅호걸(英雄豪傑)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대신할수없습니다.
아들이 아무리 효자라도“너 나 대신 죽을래?”하면 펄쩍 뛸 것이며,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라도 죽음을 부탁하면 화를 벌컥 낼 것입니다. 그것은가장비참하고괴로운것이며, 마지막이라고생각하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몸은 한 줌의 흙이나재로 변하지만 영혼은 아주 없어지지 않고 인연 따라 또 다른 몸을 받아태어나기를끊임없이거듭한다는것입니다.
『불설보요경(佛說普耀經)』에이런말씀이있습니다.
“무릇 죽음이란 형상이 무너지되 정신만은 없어지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성인은 몸을 환난(患難)으로 여기는데 어리석은 자들은 보배로 여겨 죽음에 이르기까지 싫어함이 없구나.”
인생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는 죽음이 있지만, 생명의 본질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육체는 생사가 있지만 정신은 태어남도 죽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오직 육체적으로만 존재할 뿐, 영혼이다, 정신이다 하는 생명의 근원인 불성(佛性) 자체는 죽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실로 우리가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은 죽음이 있는 육체가 아니라 생사가 없는 영원한 생명인 정신을 중요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불자들이 자주 독송하는『반야심경』에는‘무노사(無老死)’라 는 경구가 있고, 또‘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무노사’란‘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다’는 뜻이요, ‘불생불멸’이란‘태어남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는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엄연히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현실이 존재하는데, 태어남이 없다거나 불생불멸이라는 말은 이해하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신도 여러분께서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육신은 분명히 나고 죽음이 있지만 영혼만은 생사가 없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고 철저히 믿으시기를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생사문제를‘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까’하는 대 명제를 가지고 출가하셨다가 생사 없는 도리를 발견하여 인류에 위대한 공헌을하셨습니다.
49재를 지낼 때 영가(靈駕)에게 들려드리는 천도재의 의식문 가운데 이런말씀이있습니다.
태어남이란 어느곳에서 오며,
죽음이란 어디로 가는것인가?
태어난다는것은 한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것과 같고,
죽음이란 한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것과 같도다.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없고,
태어나고 죽고 오고 가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한물건이 항상 홀로 드러나 있어서
맑고 맑아 태어나고 죽음을 따르지 않느니라.
영가법문을 할 때는 꼭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영가가 이생을 하직하고 저 세상으로 갈 때는 반드시 듣고 가야 할 법문입니다. 산 사람들도 선망 부모(先亡父母)나 친지, 도반 등을 마지막으로 저 세상으로 보내면서 꼭 한 번 보아야 할 소중한 내용입니다.
인생의 오고 가는 것이 저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한 조각 구름과 같습니다. 저 창공에 떠가는 구름은 무수한 습기가 모여서 한 조각의 구름을 이루었듯이, 태어나는 것도 지(地), 수(水), 화(火), 풍(風), 즉 흙과 물과 불기운과 바람기운이 일시적으로 인연되어 계합된 것이 이 몸뚱이 입니다.
구름이 떠가다가 바람이 분다든가 태양이 솟으면 사라지듯이, 지수 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인연을 다하여 흩어지는 것을 죽음이라 합니다.
참으로 무상하고 허망한 것이 육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뜬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것, 생사의 오고감도 이와 같습니다.
저 허공중에 떠가는 구름은 실체가 없습니다. 어떤 모양이나 형상이 없는 것이 구름입니다. 그 구름이 흩어지고 사라지면 아무 흔적이 없듯이, 태어나고 죽고하는인생의 오고 감도 또한 그러하여 아무 흔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살가죽, 힘줄, 뇌, 골수 등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큰 흙덩어리가 되었다가 점점 작아져서 결국은 먼지로 변하고 그것마저 바람에 날려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침, 고름, 피, 눈물, 변등은물의성분으로돌아가서그물도증발되어사라지고맙니다.
그러나 오직 한 물건만은 항상 홀로 뚜렷하여 생사를 따르지 않고 맑고 고요합니다. 이 한 물건, 항상 맑고 고요하고 홀로 뚜렷한 그것은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으며,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며,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므로 절대 태어남도 없고 절대 죽음도 없으므로 생사를 따르지 않는다고하였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면 그것은 육신을 떠납니다. 육체를 벗어난 그것을 영가라 합니다. 영가는 세세생생(世世生生) 윤회하면서 인연 있던 곳을 떠돌아다닙니다. 죽음에서 새 인연을 맺어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중간적인 존재를 중음신(中陰身)이라고합니다.
그러면 중생은 어떤 세상을 윤회할까요? 불교에서는 중생이 윤회하면 서 살아가는 세계를 크게 나누어 3계(三界), 이를 세분하여 6도(六道)가 있다고 합니다. 이 우주에는 삼천대천세계(三天大天世界)라고 하는 광대 무변한 세계가 펼쳐져있는데 이를 구분하면 3계6도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삼계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3계’는 욕계(慾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를 말합니다. 삼계는 탐욕의 정도에 따라 이 우주를 구분한것입니다.
‘욕계’는 욕(慾)이라는 한자 뜻 그대로 욕망의 세계, 곧 욕심이 많은 중생사는 세계를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욕망이 앞서는 세계입니다. 구체적인 욕망으로는 다섯 가지 욕망을 들 수 있습니다. 물질욕, 식욕, 음욕, 수면욕, 명예욕 등이 극심한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욕계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가 욕계입니다.
‘색계’는 물질 위주의 세계를 말합니다. 한자로 색(色)은 물질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 세계의 물질은 아주 아름답고 깨끗하기 때문에 욕계의 오염된 물질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욕계의 중생보다 복력이 월등하게 많은 중생들이 태어나 복락을 누리는 세계입니다.
‘무색계’는 앞의 두 세계와는 달리 비물질적인 세계,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입니다. 무색(無色)은 물질이 아닌 진리의 체성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의 중생들은 아직은 정신적으로 아주 작은 번뇌가 남아 있으므로 완전한 이상 낙원은 아니고 사바세계의 중생에 속합니다. 하지만 욕계와 색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평화와 복락이 많은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삼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며 이곳에서 더욱 정진하면 마침내 중생으로서 탈을 벗고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곳입니다. 중생은 이세계를 윤회하면서 나고 죽고를 되풀이하는데 이를 삼계윤회라 하고, 비록 무색계는 살기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복락이 다하면 다시 윤회하기 때문에 이를 마치 불난 집과 같다고 하여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불교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나는 것이 니라 이 삼계윤회를 뛰어넘어 부처님이 되는데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대부분 살기 좋은 하늘나라에 태어나기를 바라는데 비하여 불교의 이상은 단지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생사윤회를 단절하는 성불에 있다는 점이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다음은 육도(六道)가 있습니다. 도(道)는 길도(途)와 같은 말이고, 또 취(趣)라는 말과도 같은 뜻입니다. 취(趣)는‘ 간다’라는뜻의 한자말입니다.
어떤 절대자나 주재자가 있어서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 스스로가 자신이 지은 업력에 의해 끌려가서 태어나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가서 난다’는 뜻으로 왕생(往生)이라 하고, ‘길’이라든지‘취’라는표현을쓴것입니다.
‘육도’는 천상(天上), 인간(人間), 아수라(阿修羅), 아귀(餓鬼), 축생(畜 生), 지옥(地獄)의 여섯 갈래 길을 말합니다. 앞의 셋은 선도(善導) 또는 선취(善趣)라 하고, 뒤의 셋은 삼악도(三惡道), 악취(惡趣)라고 합니다. 앞의 세 길은 비교적 선한 업을 지은 중생이 태어나는 길이고, 후자는 상대적으로 악업이 강한 중생이 태어나는 길이기때문입니다.
지옥도(地獄道)는 가장 악한 죄업을 지은 중생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지옥은 지하의 감옥이라는 뜻으로 경전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인간계에서 지하로 2만 유순 가량 내려가면 있다고 합니다. 지옥 중에서도 가장 래층에는 무간지옥이 있는데 이 지옥의 위치는 4만 유순의 지하에 습니다. 여기서부터 위로 차례차례로 8대 지옥이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8대 지옥은 같은 지옥이지만 그 업력이 차이가 있어 최초의 지옥은 죄업이 가벼운 중생이 태어나고 최후의 지옥인 무간지옥은 가장 극악한 죄인이 태어나는 곳으로 가장 고통이 심한 지옥입니다. 무간지옥은 아비지옥이라고도 하는데 ‘아비’는 곧 ‘무간’과 같은 뜻으로 ‘고통이 쉴새없다’ 는뜻으로 무간(無間)이라고 하는것입니다.
아귀도(餓鬼道)는 우리가 보통 귀신이라고 하는 존재와 같습니다. 귀신은 수천 종류가 있는데 이는 모두 아귀도에 속하는 중생입니다. 전생에 악업을 짓고 탐욕을 많이 부린 자가 아귀로 태어나는데, 항상 배고픔과 목마름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아귀들의 생활은 각양각색으로 스스로 죄보를 받는 아귀도 있고, 우리 간계에 내려와 인간에게 많은 피해를 주는 아귀도 있다고 합니다. 이 아귀의 세계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인간계에 인간과 함께 주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별도로 아귀들만이 사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부류입니다.
축생도(畜生道)는 짐승, 물고기, 곤충 등을 말합니다. 축생은 고통이 많고 즐거움은 적으며, 식욕과 음욕만 강하여 부자 형제간에도 의리가 없고, 싸우고 서로 잡아먹기 때문에 항상 공포 속에서 살게 되는 괴로운 중생입니다.
‘아수라도(阿修羅途)’는 육도세계에서 매우 부유한 세계입니다. 그러나 아수라는 성을 잘 내며 싸움을 잘하는 중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운 광경을 아수라장이라고 하는 경우도 이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아수라는 앞의 삼악도와는 달리 삼선도에 들기도 하지만 악업을 지어서 태어나기 때문에 악도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선도와 악도의 중간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도’는 바로 우리 인간들을 말합니다. 인도(人道)는 천상 다음으로 선한 복업을 지은 중생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비록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괴롭다고 할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천상보다 바람직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상은 그 복락이 너무 많아서 다음 생의 괴로움을 생각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복이 다하면 다시 더 낮은 세계에 윤회하게 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마음과 행실을 잘 닦으면 영원히 윤회를 벗어날 수있기때문입니다.
‘천도(天道)’는 하늘나라, 천상(天上), 천유(天有), 천계(天界)라고도 하는데, 범어 데바(deva)를 번역한 말입니다. 천도는 육도 가운데 가장 높고 복력이 뛰어난 중생이 사는 세계 또는 그 중생을 말합니다. 천도에 사는 중생을 가리키는 경우에는 천인(天人), 또는 천중(天衆)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신(神)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천도는 욕계와 색계, 무색계의 천도가 각기 다르다고 합니다. 위치로 보면 욕계천이 가장 아래에 위치하고 무색계의 천도가 가장 위에 존재하는데 천도에도 복력의 차이에 의해 태어나는 세계가 각양각색인 것입니다.
욕계천에는 사왕천을 비롯한 6욕천이 있고, 색계에는 크게는 초선천, 제2선천, 제3선천, 제4선천 등 사선천(四禪天)이 있지만 이를 세분하면 범중천등 17천이 됩니다. 무색계에 속하는 하늘에는 공무변천, 식무변 천, 무소유처천, 비상비비상처천등사무색계 천이 존재합니다.
이곳 천도는 각기 특색이 있는데 욕계천은 전생의 복력, 색계천과 무색계천은 전생에 담은 정진력, 즉 정신적인 수준의 차이에 의해서 태어나는 하늘이 정해진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 하늘 나라의 장엄함이라든지 중생들의 복된 생활에 대해서는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으므로 생략 하겠습니다.
존경하는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고통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윤회의 원인부터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윤회의 원인이고 주범일까요?
『미륵보살소문경(彌勒菩薩所聞經)』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십악(十惡)을 행하는 인연 때문에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에 떨어 지고, 십선(十善)을 행하는 인연 때문에 천계(天界)와 인계(人界)에 태어난다.”고하셨습니다.
범부 중생들이 악도와 선도에 태어나는 것은 선악을 행하는 인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인연은 업이 되어 그 업력의 끄달림에 따라 선도에 태어나기도 하고 악도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 선악의 무게에 따라 과보가 다르게 나타나는 줄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윤회의 원인이 되는 중요한 몇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업력의 무게에 따라 생을 받습니다.
사람의 행위에 따라 좋은 업인(業因)을 뿌리면 좋은 열매가 맺고, 나쁜업인에는 악의 과보가 따릅니다. 사람이 어질고 착한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복을 받게되고, 나쁜짓을 하면 상당한 죄과를 받게됩니다.
이것을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라, 즉 좋은 씨앗을 뿌리면 잘 태어나고, 나쁜일을 하면 악도에 태어나게됩니다.
둘째, 습(習)을 따라 생을 받습니다.
평소에 아미타불을 많이 염송하여 습관이 된 사람은 의외의 사고를 당하여 죽게 되더라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아미타불’을 염송하게 되면 이때 ‘아미타불’을 한번 부른 것이 몇 십년 동안 염송한 것보다도 더 큰 효과가 되어 그 공덕으로 윤회가 없는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에 왕생하게 됩니다.
셋째, 뜻을 따라 생을 받습니다.
죽은 후 어떤 생을 받는가는 평소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큰 관계가 있습니다. 평소에 온 마음으로 간절히 성불하기를 바랐다면 사후에도 이러한 뜻을 쫓아 정토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일심으로 천상에 나기를 바랐다면 죽은 후에 이러한 염원을 따라 천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평소 수행할 때에 어떻게든 생각이 끊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업력으로 생을 받든지 대부분 사람들은 사후에 길고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게 된다고 합니다. 터널을 지나면 누군가가 앞으로 와서 그를 맞이하는데 어떤 사람은 한척의 배에 의해 인도되어 생사의 바다를 건너 피안에 이르고, 또 어떤 사람은 소의 머리와 말의 얼굴을 한 귀졸(鬼卒)에게 이끌려 지옥으로 가고 통을 받는다고 합니다.
염불을 한 사람은 아미타불과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신과 보살님 등 성인의 무리들이 와서 그를 맞이하여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케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불자들은 평소에 마음을 거두어 정념을 지키고 선을 행하여 악을 제거함으로써 심판을 두려워 하지않고 죽음을 겁내지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 중에는 윤회설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불자들 중에는 윤회설을 방편설(方便說 )이라고 주장하여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윤회설을 부정하는 것은 생각하는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삶과 죽음에 대한 지식이 가볍고 얕기 때문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무지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인과경』에이런말씀이있습니다.
“만일 전생의 일을 묻는다면 금생에서 받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요,
만일 내생의 일을 묻는다면 현세에 짓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습니다.
죽어서 어디로 갈 것인가? 이는 오직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자작자수(自作自受)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내가 스스로 지어서 받고, 자기의 업은 스스로 받는다’는 말은 단지 금생만의 문제가 아니고 생사윤회의 한없는 고통의 바다에서도 엄격하게 적용 되는 철칙입니다.
윤회를 부정하면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을 백년 미만의 한 생으로 국한시키게 됩니다. 현재 살고 있는 이 일생만을 자기의 전 생애로 생각하게 되므로 스스로 생명을 단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게되니얼마나 불행한 일 입니까.
만약 미래가 없다면 목숨 또한 한 순간에 불과할진대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불안하고 외롭겠습니까? 윤회를 믿을 때 인생의 방향을 바꿀 여지가 있고, 이루지 못한 꿈이 이루어질 날이 있으며, 다음 생을 기다릴 여유가 생길것입니다.
윤회는 결코 신앙의 체계나 이론이 아니며, 더욱이 인생의 냉혹함을 피하기 위한 무정(無情)의 최후의 재판, 즉 죽음에 대한 심리적인 위안도 결코 아닙니다. 윤회는 전생과 내생을 해석하는 정밀하고 정확한 과학입니다. 불자 여러분께서는 윤회를 분명하게 아셔서 불교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신남신녀여러분!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이 세상에 죽음처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 죽음에 대한 준비는 하지 않는 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죽음이란 누구나 예상하는 가장 확실한 사건입니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대신할 수도 없는 사건입니다. 죽음은 어느 날 문득 예고 없이 엄습하듯이 찾아옵니다. 아무리 젊고 건강하다고 할지라도 숨 한번 들이켰다가 내쉬지 못하면 내생입니다. 죽음을 이겨낼 자, 이 세상에 누구도 없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처절하고 비참하고 괴로운 것이 죽음입니다. 그런 죽음인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어떤 갑부가 평생 노랭이처럼 돈을 모았다가 갑자기 죽을 때가 되어 의사를 붙들고 애걸복걸하기를“내 재산 반을 줄 터이니 제발 3개 월만더살게해주십시오.”하며 몸부림치더랍니다. 이 부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임박하면 갑자기 당하는 일처럼 속수무책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썩은 나무토막처럼 허망하게 한 생을 마감합니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해 과도한 공포에 떨 필요는 없습니다. 죽음도 단지 삶의 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생명은 결코 한 생으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시고, 미래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오랫동안 살던 집이 무너져 더 튼튼하고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과 같고, 옷이 헤어지면 고운 새옷으로 갈아입는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죽음을 극복하는 길, 생사를 뛰어넘어 영원히 살 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한 길,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덮고 있는 탐진치(貪嗔痴) 삼독(三毒)의 무명장막을 걷어내는 길 뿐입니다. 이 길은 달리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부단히 실천을 통해 이루어질 뿐입니다.
구두선(口頭禪)이나 공염불(空念佛)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원한 피안(彼岸)의 세계요, 오직 수행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安息處)입니다.
유명한 달마(達磨) 대사는 말씀하시기를“만일 성품을 보지 못했다면 선지식이라 할 수 없나니, 비록 12부 경전을 다 외운다 할지라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삼계에 윤회하면서 고통을 벗어 날 기회가 없느니라.” 고하셨습니다.
‘성품을 본다’는 말은 곧 견성을 말합니다. 성품이란 불성이요, 불성은 곧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성품을 본다는 말은‘마음을 깨친다’는말 입니다.
불교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의 ‘성품을 보고 그 마음을 깨쳐’성불하는 것입니다. 그 성불의 경지가 생사를 초월하고, 생사를 자재하는 자리이고 윤회까지도 벗어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말로나 생각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곳입니다. 오직 실천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성스러운 경지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참다
운 불자가 되어 다 함께 생사윤회의 고해를 건너 영원한 삶을 누리는 열반의 땅에 닻을 내립시다.
끝없는 옛적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생명의 유전(流轉) 속에서 불자모두가 하루 속히 자신의 장엄한 전당을 짓고 화려한 법의(法衣)를 입고 윤회를 벗어나 보리혜명(菩提慧明)을 성취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도 오는 곳 없고, 한 조각 사라져도 자취 또한 없구나.
아무리 보고 또 보고 보아도 구만리 장천(九萬里長天)에는 파란 하늘 뿐이로구나.
-축서사 계간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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