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지장기도1 - 김현준(불교신행연구원장)
대원본존 지장보살
성불마저 포기한 대원(大願)의 본존
불교의 모든 보살 중, 지장보살은 지은 죄의 과보로 죽은 다음 나쁜 세상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을 구원하고 천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능력을 지닌 분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래서 많은 불자들은 영가천도와 관련시켜 지장보살을 신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장보살의 구원능력은 영가천도의 범위를 넘어서서 부처가 되지 못한 모든 중생에게 미친다. 그 구원의 손길은 한도 끝도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중생을 부처로 바꾸어 놓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분을 '대원본존'이라고 칭하셨다.
대원본존 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
지장보살은 처음 발심한 이래 오로지 중생제도를 위한 힘을 길렀고, 중생을 해탈시키기 위해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 뛰어드는 일조차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분은 고난 속에 빠진 중생을 구하고 중생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성불(成佛)마저 포기한 대원의 본존이시다.
지금까지 그분이 구한 중생은 가히 헤아릴 수가 없다.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불가칭(不可稱) 불가설(不可說)의 수효라고 한다. 그분은 이미 아득한 세월 전에 부처님과 같은 삼매(三昧)를 증득하고
무생법인(無生法印:不生不滅의 진리와 하나가 됨)을 얻어 부처님의 경지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분은 '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이 사바세계에 남아 오늘도 중생들을 제도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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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옛날, 서로 이웃한 나라의 두 임금은 정법(正法)의 벗이 되어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나 그들 나라 백성들은 여러 가지 악한 일에 깊이 물들어 있었다. 이를 측은히 여긴 두 임금은 여러 가지 방편을 베풀어 백성들로 하여금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였고, 항상 열 가지 선[十善]을 행하여 모범을 보였다.
어느 날 두 임금은 각각의 원(願)을 발하였다.
"빨리 불도를 이루어 널리 이들 무리를 남김없이 제도하리라."
"죄고(罪苦)에 빠진 이들을 먼저 제도하되, 그들 중 안락을 얻지 못하거나 보리(菩提:깨달음)를 이루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나는 결코 성불하기를 원치 않노라."
이 가운데 성불하여 중생을 구하겠다고 한 임금은 오랜 수행 끝에 일체지성취여래(一切智成就如來)가 되었고, 성불을 원하지 않은 임금은 지장보살이 되었다.
≪지장보살본원경≫에 수록된 이 전생담(前生談)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지장보살은 부처가 되어도 이미 오래 전에 되었어야 할 분이다.
모든 사람들은 '성불하고 나서'를 강조한다.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리!'
그러나 지장보살은 자신의 성불을 앞세우지 않는다. 자신의 성불보다는 중생의 성불을 앞세우고 있다.
"성불하지 못하는 중생이 있으면 나도 성불하지 않겠다."
이것이 지장보살의 근본 마음이다.
모든 보살들이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추구하지만, 지장보살만은 상구보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누구보다 빼어난 자비의 힘과 지혜를 갖추었지만, 결코 부처가 되는 데 연연해 하지 않는다. 지장보살의 관심은 중생의 해탈에만 있을 뿐이다.
≪지장보살본원경≫에 있는 또 한편의 전생담을 음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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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날 사자분신구족만행여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한 장자의 아들은 그 부처님을 우러러보면서 생각하였다.
'아! 저 거룩한 모습 속에 천만가지 복이 모두 갖추어져 있구나.'
깊은 감동을 느낀 장자의 아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행원(行願)을 이루셨기에 지금과 같은 훌륭한 모습을 이루게 되었나이까?"
"이와 같은 몸을 이루고자 하거든, 마땅히 오랜 세월 동안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해 주어야 하느니라."
그 말씀을 듣고 장자의 아들은 맹세하였다.
"지금부터 미래의 세상이 다할 때까지 아무리 오랜 겁이 될지라도, 죄업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육도의 중생에게 널리 방편을 베풀어 그들을 모두 해탈하게 한 다음에 저 자신이 불도를 이루겠나이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지장보살의 근본 마음은 중생의 해탈에만 집중되어 있다. '한시바삐 성불하여 부처님과 같은 거룩한 모습을 갖추겠다'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상이 다할 때까지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고 그들을 남김없이 해탈케 한 다음 부처가 되겠다'는 원을 발하고 있다.
이처럼 중생의 해탈에만 초점을 맞추는 지장보살의 근본 서원(誓願)에는 그 어떤 보살의 서원도 미치지 못한다. 그 어떤 부처의 서원도 이를 능가하지 못한다. 서원 중의 서원, 가장 근본이 되는 원, 모든 보살과 부처가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본원(本願)'으로 가득 차 있는 분이 지장보살이다.
대승의 보살이 소승의 수행자와 다른 점은 상구보리(上求菩提:수행을 통하여 더 높은 경지로 향상함)를 추구함과 동시에 하화중생(下化衆生:중생을 돌아보며 중생을 교화함)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나'만의 해탈이 아니라 '나'보다 못한 중생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대승보살의 의무이다.
하지만 대승의 보살이라 할지라도 하화중생에만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는 이는 드물다. 대부분이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의 길을 동시에 걷고자 한다.
그런데 지장보살은 상구보리를 통한 성불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오로지 하화중생의 길만을 걷는다.
중생의 해탈과 성불! 그것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다. 그야말로 자신의 성불을 위한 상구보리의 길을 포기 한 분이 지장보살인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성불을 포기하고 하화중생, 중생의 고난해소와 성불에만 마음을 쏟는 지장보살을 향하여, 그 어느 누군들 '대원의 근본 스승[大願本尊]'이라 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장이 된 한 소녀의 선행과 발원
대원본존 지장보살! 하지만 모든 중생의 고난을 없애주고 성불의 길로 인도하는 이 위대한 지장보살도 아득한 그 옛날에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존재에 불과했다. 미혹하고 고통받는 한 중생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엄청난 신력(神力)과 자비(慈悲)와 지혜(智慧)와 변재(辯才)를 갖춘 대원의 본존으로 탈바꿈한 것일까?
그 시작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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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옛날의 일이다. 각화정자재왕여래(覺華定自在王如來)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한 바라문 집안에 18세의 꽃다운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숙세(宿世)에 깊고 두터운 복을 심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경과 사랑을 함께 받았다.
소녀의 아버지인 시라선견(尸羅善見) 또한 불교에 대한 믿음이 두터워, 삼보(三寶)를 철저히 공경하고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삼학(三學)을 부지런히 닦다가, 수명이 다하여 하늘나라[天上]에 태어난 지가 오래 되었다.
그러나 소녀의 어머니 열제리(悅帝利) 부인은 달랐다. 삿되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 인과(因果)의 이치를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불교에 대한 비방도 서슴지 않았다.
어느 날 열제리 부인은 술에 취해 쓰러져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혈관이 터지고 전신의 골절이 꼬여드는 고통에 빠져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어머니마저 잃은 슬픔과 외로움이 뼛속 깊이 사무쳐 흐느껴 울던 소녀의 머리 속으로, 불현듯 한 생각이 꿰뚫고 지나갔다.
"우리 어머니의 혼령(魂靈)은 어느 곳으로 태어났을까?"
평소 바른 삶과 바른 신앙과는 거리가 먼 분이셨으니 결코 좋은 세상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리라는 생각이 들자 소녀는 견딜 수가 없었다.
소녀는 부모님이 남긴 모든 재산을 팔아 어머니를 위한 재(齋)를 올리기로 하였다. 꽃과 향, 여러 가지의 의복과 음식과 탕약을 마련하여 각화정자재왕여래가 계신 절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날 따라 길거리에는 수많은 걸인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아픔의 신음소리를 토해내는 자도 있었다. 소녀의 맑은 마음에는 그들의 고통이 그대로 비춰지고 있었다.
'중생공양(衆生供養)이 제불공양(諸佛供養)이라 하셨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이 아름다운 소녀는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을 주고,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는 옷을, 병고에 시달리는 자에게는 약을 주며 위로하였다.
그러나 길은 멀고 사람은 많았다. 전재산을 처분하여 마련한 음식과 옷과 약이었지만 어느덧 바닥이 보이고 말았다. 소녀는 마침내 입고 있던 옷까지도 모두 벗어주어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소녀는 어느 구덩이 속에 들어가 벗은 몸을 가리고, 유일하게 남은 향을 사르고 꽃을 흩으며 기도하였다.
"각화정자재왕여래시여, 이제 소녀는 더 이상은 감히 부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중생을 어여삐 여기시고 구제할 자를 구제하여, 저의 이 조그마한 정업(淨業)을 헛되지 않게 하옵소서. 어머니의 혼령을 위해 자비를 베푸시고, 그 태어난 곳을 알게 하여 소녀의 괴로움을 그치게 하여 주옵소서."
"착하다. 성녀여. 18세 처녀의 몸으로 옷을 벗어 걸인에게 주고, 벗은 몸을 흙 속에 갈무리하였으니 누가 너를 보살(菩薩)이라 하지 않겠느냐! 내 너의 공양을 달게 받고 너의 소망을 성취시켜 주리라."
이 때부터 성녀는 지장보살(地藏菩薩:땅 속에 몸을 갈무리한 보살)이라고 불려졌다. 그 뒤 소녀는 각화정자재왕여래의 인도로 지옥이 있다는 대철위산 서쪽의 '중해(重海)'라는 바닷가에 이르게되고, 그곳에서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는 중생의 모습과 지옥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아울러 소녀의 공덕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각화정자재왕여래가 3일 전에 이미 무간지옥(無間地獄)에 오셔서, 어머니뿐만 아니라 함께 고통받던 죄인들을 모두 구제하여 하늘 나라에 태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옥에서 나온 소녀는 다시 각화정자재왕여래에게 나아가 원을 세웠다.
"맹세하오니 저는 미래의 시간이 다할 때까지 죄고(罪苦)에 빠진 중생이 있으면 마땅히 널리 방편을 베풀어서 해탈케 하오리다. 맹세하오니 죄고를 받는 육도중생(六道衆生) 모두를 해탈케 한 다음, 저는 성불(成佛)할 것이옵니다."
이분이 대원(大願)의 본존(本尊)인 지장보살이시다.
지장의 원과 함께 하는 불자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되어버린 18세의 꽃다운 소녀는 모든 유산을 처분하여 어머니의 천도재(薦度齋)를 준비하였다. 꽃과 향, 음식, 의복, 탕약 등을 마련하여 부처님께로 나아가던 소녀는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자 자비심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소녀는 무조건 베풀었다. 배고픈 이에게는 음식을, 추위에 떠는 이에게는 옷을, 병든 이에게는 약을 주었다. 전재산을 처분하여 마련한 재물(齋物)은 곧 바닥이 나고 말았다.
마침내 입고 있던 옷까지 다 벗어주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되자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벗은 몸을 숨긴 소녀! 이 소녀의 맑고 깊은 마음과 기도는 그대로 부처님께 전해져 부처님께서 그 앞에 모습을 나타내셨고, 소녀의 소원을 모두 성취시켜주셨다.
소녀의 착한 마음 씀씀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세상을 바꾸고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 맑은 마음, 순수한 마음이 세상을 바꾸고 '나'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
흔히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왜 많이 벌려고 하느냐?"고 물으면,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남을 돕기 위해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것, 참으로 좋은 뜻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와 같은 뜻을 세우고 피땀 흘려 부자가 된 다음에는 오히려 베푸는 데 인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돈을 모으기 위해 돈에 너무 집착하고 사로잡혀 살았기 때문이다. 누구든 마찬가지이다. 돈벌이에 집착하여 돈 모으는 재미에 빠져버리면 돈에 사로잡혀 마음이 탁해지고, 마음이 탁해져버리면 잘 베풀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돕고자 한다면 넉넉하지 못할 때의 맑은 돈[淨財] 한푼 한푼을 정성으로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부자가 된 후에도 잘 베풀 수가 있다. 오히려 부족한 듯 할 때 맑은 돈을 보시할 수 있고, 어려울 때 마음을 넉넉하게 써야 선행의 공덕이 더욱 크게 쌓이는 것이다.
돈뿐만이 아니다. 병이 든 사람은 '병이 낫고 나면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고, 고난에 처한 사람은 그 난관이 극복되고 나면 좋은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병이 낫고 고난을 극복한 다음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예상 밖으로 드물다.
정녕 좋은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으면 병든 그 몸으로, 고난에 처한 그 환경에서 능력 닿는 대로 좋은 일을 시작하여야 한다.
어려움 속에서 좋은 일을 하고자 원을 발하고 실천에 옮기는 그 마음가짐과 자세야말로 현재의 어려움을 녹이는 원동력이 된다.
바로 그 원력과 실천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고, 한량없는 공덕을 '나'에게 안겨준다는 것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다시 소녀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는 걸인들을 보자 측은함을 억제할 수 없어 음식과 옷과 약을 나누어주었던 그 착한 소녀. 어찌 그 소녀가 어머니의 천도재를 망각하였겠는가?
하지만 소녀는 그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맑은 마음으로 마냥 베풀었다. 조건 없이 집착 없이, 오로지 순수한 사랑으로 샘솟는 자비심으로 베풀었기 때문에 소녀는 지장보살로 탈바꿈하였고,
마침내는 써도 써도 다 쓸 수 없고 베풀어도 베풀어도 모자람이 없는 복덕(福德)을 모두 갖춘 대보살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지장보살은 자신의 성불(成佛)을 모든 중생의 성불 이후로 미루어버렸다.
"맹세하오니, 죄고(罪苦)를 받는 육도 중생 모두를 해탈케 한 다음 저는 성불할 것이옵니다."
원(願)! 이 세상의 소원 중에서 이보다 큰 원은 없다. 불교의 최고 목표인 성불도 마다하고 중생을 해탈시키겠다는 지장보살의 근본 원력!
여기서 잠깐 불자들이 일상으로 외우는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살펴보자.
가없는 중생을 맹세코 건지리다[衆生無邊誓願度].
끝없는 번뇌를 맹세코 끊으리다[煩惱無盡誓願斷].
한없는 법문을 맹세코 배우리다[法門無量誓願學].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이루리다[佛道無上誓願成].
가없고[無邊] 끝없고[無盡] 한없고[無量] 위없는[無上] '그 무엇'을 맹세코 하겠다는 불제자들의 서원. 가없기에 도저히 다 건질 수 없는 중생, 끝이 없기에 끊어도 끊어도 일어나는 번뇌…. 그런데도 불자들은 '맹세코 하겠다'고 말한다.
이런 모순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이것이 모순이요, 이율배반이요, 거짓말일지라도 우리 불자들은 마땅히 하여야 한다. 가능하기 때문에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참된 보살의 길이요,
마땅히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마냥 나아가는 것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그 길…. 비록 불가능할지라도, 지장보살은 시작도 끝도 없는 중생제도의 길 위로 한결같이 나아간다. 이것이 지장보살의 소원이요, 생활이다.
우리는 그 어떤 성취에 앞서 한결같이 나아가는 지장보살의 대원과 마음씀을 먼저 배워야 한다. 지장보살처럼 중생 모두에게 힘을 기울이지는 못할지라도, 스스로가 깊은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에게만이라도 살리는 원을 세우며 살아야 한다.
가정과 환경이 '나'를 위해 존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주위를 살리는 '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기도를 올리면서 원을 발하여 보라."가족이나 이웃의 고통과 재앙은 저에게 주시고, 제가 받을 복은 가족과 이웃에게 돌려주십시오."
이렇게 좋은 복은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돌리고 고통은 내가 짊어지겠다는 원을 세우며 살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부처님의 제자요, 법왕자인 보살이다. 물론 이러한 원을 세우라고 하면 먼저 두려움부터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원을 세우고 기도하면 나만 불행해지고 힘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지장보살을 보라. '나'를 잊고 남을 위하는 마음만을 가졌기에 써도 써도 다함이 없는 복전(福田)을 일구었다. 그 복은 단순한 인과의 복이 아니다. 대우주의 복, 대우주에 가득 충만되어 있는 복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이기심이나 눈앞의 이익을 다르지 않고 대원을 마음에 품고 살면, 가족은 물론이요 '나'에게도 흠뻑 복이 찾아들게 된다. 왜냐하면 대원이 강하면 강할수록 불행의 원인인 이기심이 그만큼 빨리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나'의 이기심이 잣아들고 '나'의 벽이 무너져 내리면 대우주의 무한 행복은 저절로 '나'에게 깃들게 되는 법! 이 원리를 깊이 명심하여 맑고 밝고 깊이 있는 불자가 되도록 노력해 보라.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능력껏 남을 위해 베풀 수 있는 사람, 마음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우울해지거나 역정을 내기보다는 명랑함과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입었을 때 인과법을 생각하며 능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조급하게 나아가기보다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보라.
이렇게 마음을 넉넉하게 쓰는 사람에게는 만복(萬福)이 저절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마음을 잘 써서 손해볼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난다고 하여도 기껏 지난 세상의 빚을 갚는 것일 뿐이다.
인생살이란 결코 손해보는 장사도 남는 장사도 아니다. 본전 놓고 본전을 먹는 장사일 뿐이다. 부디 지장보살의 본원을 마음에 품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자. '나'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남을 살리는 원을 키우며 살아가자.
원(願)은 마음가짐이다.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꾸준히 나아가면 힘[願力]이 생기고, 힘이 생기면 능히 자유자재로 베풀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대원을 한번 발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아니된다. 거듭거듭 발하고 또 발하여, 대원에 걸맞는 힘이 생겨날 때까지 발하여야 한다.
한 방울의 물은 힘이 되지 못하지만, 방울방울의 물이 모이고 또 모이면 큰 강과 바다가 되며, 강이 되고 바다가 되면 능히 만물을 포용하고 살릴 수 있으니…. 한 방울의 물과 같은 우리의 원도 거듭 거듭 발하면 마침내는 지장보살과 같은 대원의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밭에 원의 씨를 심어야 한다.
지금 사랑 속에 있으면 서로를 살리는 사랑을 더욱 키워가고, 행복 속에 있으면 행복을 나누어주고, 슬픔과 불행 속에 있으면 슬픔과 불행을 넘어서는 대비원(大悲願)을 일으키며 살아가야 한다.
부디 명심하라. '나'의 이기심과 '나'의 벽을 무너뜨려 '나'를 맑히고, 가정과 이웃을 살리고, 뭇 생명 있는 이들을 살리는 원(願) 속에서 살 때, 대우주에 가득 차 있는 행복과 해탈의 기운이 '나'의 것으로 된다는 것을….
또한 이것이 소녀 지장보살의 최초 발심 이야기가 가르치는 바요, 행복과 해탈을 찾는 우리 불자들이 살아가야 할 모습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과의 법칙 속에서 보면 누가 어떻게 살든 인생은 어차피 본전 놓고 본전 먹기! 마음밭에 씨 심은 대로 결실을 거둘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
나무대원본존지장보살
생활속의 지장기도 2 - 김현준(불교신행연구원장)
지장보살과 영가천도
음력 7월15일은 백중날이요 우란분재일(盂蘭盆齋日)이다. 여름 세 달 동안 열심히 정진하신 스님들의 도력에 의지하여, 쉽사리 구원할 수 없는 영가들까지 좋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거국적인 영가천도의 날인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수많은 불보살님 가운데, 영가천도에 있어 결코 빠뜨려서는 안될 '오직 한 분'이 있으니 그 분이 지장보살님이시다.
광목녀의 서원
으뜸가는 천도의 권능자이신 지장보살! 그러나 지장보살이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에 태어나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는 대보살이 된 것은 특별한 일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나가 경험할 수 있는 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효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마음을 쏟게 되는 어머니의 죽음이 계기가 된 것이다.
아득한 옛날, 청정연화목여래(淸淨蓮華目如來)께서 사바세계에 계시다가 열반에 든 다음, 한 분의 나한(羅漢)이 행복을 얻는 방법을 일러주며 중생을 교화하셨다.
나한은 중생의 자질과 인연에 맞추어 차례로 교화하던 중, 눈이 유난히도 아름답게 반짝이는 '광목(光目)'이라는 이름의 여인을 만나 음식을 공양받았다. 광목의 반짝이는 눈 속에 슬픔이 깃들어 있음을 간파한 나한은 물었다.
"무엇이 그대를 수심 속에 빠뜨리고 있는가?"
"저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기일(忌日)에 복을 지어 어머니를 천도해 드리는 것이 원이옵니다. 하오나 어머니께서 어느 곳에 나셨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를 가엾게 여긴 나한은 선정(禪定)에 들어 광목의 어머니가 태어난 곳을 관찰하였다. 광목의 어머니는 아주 나쁜 세상에 떨어져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대의 어머니는 지금 지옥에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살아 생전에 어떠한 업을 지었는가?"
"어머니는 평소에 물고기나 자라 따위를 먹기를 좋아하였습니다. 특히 조그마하고 어린 새끼들을 지지고 볶아 한껏 먹었으니, 그 생명의 수가 천만의 배는 될 것이옵니다. 존자시여, 부디 불쌍히 여기시어 저의 어머니를 구하여 주옵소서,"
나한은 자비심을 발하여 어머니를 구제할 수 있는 방편을 광목에게 일러주었다."지극한 마음으로 청정연화목여래를 생각하라. 그리고 정성을 다해 청정연화목여래의 존상을 조성하거나 그려서 모시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가 좋은 과보를 얻으리라."
가르침을 받은 광목은 그 즉시 부처님의 형상을 그려 모시고, 가장 아끼던 물건을 처분하여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다음, 공손한 마음으로 우러르며 슬피 울며 예배를 드리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광목은 부처님의 꿈을 꾸었다. 부처님께서는 금빛 찬란한 광명을 놓으시며 광목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어머니는 오래지 않아 네 집에 태어나게 되리라. 그리고 배고픔과 추운 것을 알 때쯤이면 곧 말을 하게 되리라."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광목의 집에 있는 한 종이 자식을 낳았는데, 사흘도 채 되지 않아 말을 시작하였다. 아기는 머리를 숙여 슬피 울면서 광목에게 말하였다.
"아! 생사의 업연(業緣)으로 무서운 과보를 받아 어둠 속에 빠져 있었도다. 광목아, 내가 바로 네 엄마다. 너와 헤어진 후 여러 차례 큰 지옥을 옮겨다니며 숫한 고초를 겪었거늘, 너의 복력(福力) 덕분에 다시 사람의 몸을 받게 되었구나.
그러나 수명이 짧아 나이 열세 살이 되면 또 악도에 떨어지게 되어 있단다. 아, 두렵구나. 네가 어떻게 하든지 나를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다오.
"이 말을 들은 광목은 종의 자식이 어머니의 후신임을 확신하고 목메어 슬피 울면서 물었다.
"우리 어머니가 틀림없다면 본래 지은 죄업이 무엇인지를 알 것입니다. 어떤 죄업을 지었기에 악도(惡道)에 떨어졌습니까?"
"살생을 많이 하고 불법(佛法)을 헐뜯고 비방한 죄업으로 악도의 과보를 받았단다. 네가 복을 지어 나를 구제해 주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이 업보로부터 벗어 날 수 없었을 것이다."
"생전의 죄업으로 인해 지옥에서 받은 고통은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그 고통은 백천년을 두고 말할지라도 다 할 수가 없다."
그 말을 들은 광목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다가 허공을 향해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어머니를 지옥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인간세상에서 열세 살의 수명을 마친 다음에도, 다시는 무거운 죄로 인하여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이시여, 자비로써 저를 어여삐 여겨, 제가 어머니를 위하여 발하는 넓고 큰 서원을 들어주옵소서."
광목은 무릎을 꿇고 서원을 발하였다.
"만약 저의 어머니가 영겁토록 삼악도와 인간세상에서의 천한 과보를 받지 않게 된다면, 저는 백천만억겁 동안 모든 세계에 있는 지옥과 삼악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맹세코 제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지옥, 아귀, 축생의 몸을 벗어나게 하겠나이다.
그리고 죄업의 과보를 받는 중생들이 모두 성불한 연후에 저는 정각(正覺)을 이룰 것입니다."
이렇게 광목이 서원을 발하자, 허공으로부터 청정연화목여래의 음성이 들려왔다."장하다, 광목아! 큰 자비심으로 어머니를 위하여 참으로 훌륭한 서원을 발하였구나. 그 공덕으로 너의 어머니는 열세 살로 이 세상의 과보를 마친 다음 바라문으로 태어나 백 세의 수명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생에는 근심걱정이 없는 무우국토(無優國土)에 태어나 헤아릴 수 없는 수명을 누리다가, 불과(佛果)를 이루어 항하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인간과 천상의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리라."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석가모니불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매듭을 지으셨다."그때 나한의 몸으로 광목을 제도한 이는 지금의 무진의 보살이요, 광목의 어머니는 해탈보살이며, 광목은 지금의 지장보살이니라.
지장보살은 과거 아득하고 먼 옛 겁부터 이와 같이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서원을 세웠으며, 널리 중생을 제도하여 왔느니라. 미래 세상 중에 손가락 한 번 튕길 동안만이라도 지장보살에게 귀의한다면, 그 모든 중생은 삼악도의 죄보(罪報)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니라."
≪지장경≫ <염부중생업감품(閻浮衆生業感品)>에 수록된 이 광목녀의 이야기를 자세히 음미해 보라.
효녀 광목은 살아 생전에 살생을 좋아하였던 어머니를 천도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태어난 곳을 알 수 없어 주저하다가, 나한님의 도움으로 구제할 수 있는 방편을 얻게 된다.
이에 광목은 부처님의 탱화를 그려 모시고 공손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어머니를 천도해 줄 것을 아뢰었다. 그러나 광목은 복받치는 슬픔을 억제할 수가 없어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고 말았다.
그때 부처님께서 나타나, 어머니가 광목의 집안에 태어날 것임을 일러주셨다. 어머니를 위해 복을 닦는 효녀 광목의 간절한 정성이, 어머니를 대지옥에서 구제하여 인간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죄업에 대한 무서운 과보는 부처님의 자비와 딸 광목의 선행만으로는 다 녹일 수가 없었다. 열세 살로 세상 인연이 다하면 다시 지옥의 무서운 과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어머니를 위해 광목은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께 서원을 한다.
무릎꿇고 눈물을 흘리며 맹세를 한 것이다. 그 맹세로 인해, 다시 지옥에 떨어졌어야 할 어머니는 백 세의 수명을 누리는 바라문의 몸을 받았다가 근심걱정이 전혀 없는 무우국토에 태어나고, 더 후에는 부처가 되어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게 된다는 청정연화목여래의 수기(授記)를 받기까지 하였다.
이것이 바로 지장보살 천도의 시작이다. 그 뒤 지장보살의 삼악도 중생구제, 곧 영가천도의 능력을 기르기 위한 노력이 끝없이 끝없이 이어졌고, 마침내는 영가천도의 대신력(大神力)과 대자재력(大自在力)을 성취하게 되었다. 손가락 한 번 튕길 동안만이라도 지장보살께 귀의하면 어느 누구도 삼악도의 죄보를 벗어나게 할 수 있을 만큼….
천도를 위한 지장보살의 가르침
그럼, 으뜸가는 천도의 지장보살께서 가르치신 천도법은 어떠한 것일까? 그 해답은 ≪지장경≫ 속의 여러 곳에 수록되어 있다. 특히 ≪지장경≫ 총 13품 중, 제6 <여래찬탄품(如來讚嘆品)>과 제7 <이익존망품(利益存亡品)>, 제12 <견문이익품(見聞利益品)>에서는 천도를 위해 임종시에 해야 할 일과 49재 기간 동안의 행법, 그 뒤의 천도법에 대해 자세히 설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하여 지장보살의 천도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편안한 임종과 천도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업보중생인 이 세상 사람들의 죽음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집 밖에서 죽는 객사(客死)의 경우만 불행한 죽음이 아니다. 집에서도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갑자기 죽는 이들이 있고, 삶도 죽음도 아닌 상태로 오랫동안 병상에서 지내는 사람도 있다.
또 죽음에 임박하여 나쁜 귀신이나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척, 도깨비 등에게 시달려, 소리치고 신음하고 괴로워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는 선행을 많이 닦은 사람까지도 임종의 시간에 나타난 귀신이나 선망조상들에게 이끌려 악한 세상으로 흘러가게 된다고 한다.
임종을 앞둔 사람은 정신이 아득하여, 선과 악을 분별하기 어렵고 눈과 귀로 똑똑히 보고 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릇된 힘에 이끌려 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종의 순간은 매우 중요하다. 그 중요한 순간에, 가족들은 임종을 앞둔 이에게 지장보살의 명호를 들려주어야 한다.
《지장경》<견문이익품>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약 현재와 미래의 모든 세계 육도 중생이 목숨을 마치려 할 때 지장보살의 명호를 들려주어서 한 소리라도 귓가에 스치게 하면, 이 모든 중생은 영원히 삼악도의 타는 듯한 괴로움을 겪지 않게 되느니라. 하물며 부모나 가족들이 지장보살의 형상을 조성하거나 탱화를 그려 임종자의 눈으로 보게 한다면 더 말 할 것이 없느니라.
…… 그 동안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져야 할 사람일지라도 이러한 공덕 덕분에 모든 죄와 업장이 소멸되어 천상에 태어나고 뛰어난 즐거움을 누리게 되느니라."
이토록 임종의 순간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임종자를 눈앞에 둔 가족들은 이별의 슬픔에만 사무쳐서는 안 된다. 슬프다고 소리쳐 울어서도, 애석하다고 망령되이 행동해서도 안 된다. '나'의 감정은 모두 접어 두고, 오로지 임종자가 지장보살께 잘 귀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 방법을 간단히 정리하여 보자.
임종자의 방에 지장보살의 그림이나 사진을 모시고 그 앞에 좋은 향을 피운다. 그림이나 사진을 구할 수 없으면 '대원본존지장보살'이라는 글씨를 써서 모셔도 좋다.
만약 임종자의 의식이 또렷하다면 먼저 ≪지장경≫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 경전을 읽어주면 믿음이 생겨나고, 믿음이 있으면 스스로 지장보살님께 귀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이러한 경우에는 한문이 아닌 한글본 ≪지장경≫을 읽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임종자가 지장보살을 염하며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따라서 가족이나 친척 등은 임종자가 염불을 놓치지 않게끔, 함께 '지장보살'을 부르거나 염불 테이프를 들려주어야 한다.
특히 주의할 점은 임종자의 숨이 끊어졌음을 확인하고 나서, 곧바로 통곡을 하거나 손발을 거두거나 자리를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다. 적어도 한두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 가량을 그대로 모셔두고 '지장보살'을 염송해 주어야 한다. 이는 신식(神識)이 몸을 완전히 빠져나가 몸이 완전히 차가워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각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렇게 가족 등이 정성껏 염불을 하면서 임종자의 명복을 빌게 되면, 임종자는 악귀의 유혹에 시달림이 없이 지장보살의 인도를 받아 좋은 세상으로 직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사후에 거창한 재를 지내면서 영가를 천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임종의 순간에 잘하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슬픔에 빠지거나 당황해 하지 말고 잘 염불해 줄 것을 당부드린다.
나아가 ≪지장경≫에서는, 임종자를 위해 ≪지장경≫의 독송과 지장보살의 염송만을 고집하지 않고 있다. 평소에 아미타불을 염하였으면 '아미타불'을 관세음보살을 염하였으면 '관세음보살'을 염송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살아 생전에 심은 인연 따라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할 것을 권하는 것이다.
이 넉넉한 가르침의 뜻을 잘 새겨, 떠나는 이를 좋은 세상으로 천도하기 위해 유가족들은 최선을 다해야 하리라.
(2) 49재 기간 동안의 행법
불교에서는 죽은 이가 49일 동안 죽음(中蔭)의 세계를 떠돈다고 한다. 이 '중음'은 새 생명을 받기 전의 어둠의 세계라는 뜻이다. 영가는 이 49일 동안 어둠 속에서 어리석은 귀머거리처럼 떠돌다가, 살아 생전의 업력(業力)에 이끌려 새로운 몸을 받는다고 한다.
이를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는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염라대왕 앞에서 생전의 업에 대한 심판을 받고 태어날 세상을 정하게 된다'고 표현한다.
대부분의 영가들은 중음의 세계를 떠도는 그 49일 동안, 가족이나 친척들이 복을 지어 자신을 구제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한다. 그 기간 안에 가족이나 친척이 영가를 위해 복을 지어주면, 그 복이 영가의 것이 되어 해탈을 얻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여야 영가를 위해 복을 지어줄 수 있을까? ≪지장경≫에서는 그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하루, 이틀, 사흘, 나흘에서 칠일에 이르도록 불보살ㄴ님께 공양을 올리고 영가를 위해 ≪지장경≫을 읽으면서, 좋은 세상에 태어날 것을 축원해 주는 것이다.
지장보살의 상이나 그림 앞에서 하루에서 칠일에 이르도록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예배 공양을 하게 되면, 영가가 해탈을 얻어 인간과 천상에 태어난다고 한다.
이를 오늘날의 49재에 적용시켜 보자.
영가를 잘 천도시키기 위해서는 남아있는 유족들이 49재 기간 동안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그 정성의 시작은 무엇인가? 아침저녁으로 영가의 혼백 앞에 상식(上食)을 올리는 일이다.
요즈음은 절에서만 재를 지내고 집에서 상식을 올리지 않는 불자들이 많지만, 이는 잘못된 풍습이다. 이 상식은 꼭 올려야 한다. 돌아가신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을 배고픈 영가로 만들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상식을 올릴 때는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집안에 먹는 음식 그대로를 상에 차리면 되므로 꼭 상식을 올리기 바란다.이렇게 아침저녁으로 상식을 올리고 나서, 또 아침에는 ≪지장경≫ 한 편을 정성껏 읽어드리고 저녁에는 30분이나 한 시간 가량 '지장보살'을 염송하면서, '영가가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지이다.'하는 축원을 해주면 된다.
나아가 절에서 7일마다 한번씩 일곱 번의 재를 올리며 영가를 위해 공덕을 쌓아주면, 어찌 그 영가가 좋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겠는가. 실로 효성을 다하고 은혜를 은혜답게 갚을 수 있는 이 49재 기간 동안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꼭 당부드린다.
(3)선망 조상 등의 천도
오래 전에 하직한 조상이나 임종 후 재를 지내주지 못한 부모님 등이 있을 때는 어떻게 천도를 해 주어야 하는가?
≪지장경≫에서는 21일 동안 지장보살이나 그림 앞에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총 1만 번의 절을 할 것을 권하고 있다.
곧 하루 5백 번 정도의 절을 하면서 선망조상이나 먼저 떠난 가족들을 천도해 주라는 것이다. 이렇게 천도를 하면 지장보살이 꿈에 나타나 영가가 새롭게 태어날 곳을 일러주거나, 영가 스스로가 나타나 새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 한편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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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 전, 서울에 사는 법연거사는 40대 중반에 이르러 조상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조사의 영가천도와 누이동생의 임신을 기원하며 백일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누이동생이 결혼을 한 지 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하여 불화가 잦았고, 자주 친가로 쫓겨오기도 하였기 때문이다.법연거사는 매일 진관사의 지장보살님께로 나아가 ≪지장경≫ 총 13품 중 1품 또는 2품을 읽은 다음, <지장예찬문>을 읽으며 158배를 드렸다. 그리고 30분 정도 일심으로 '지장보살'의 명호를 외웠다.
이렇게 매일같이 지장기도를 한 지 80일 가량 되었을 때 아기를 갖지 못했던 누이동생이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리고 백일기도를 끝마치는 날, 새벽녘에 참으로 묘한 꿈을 꾸었다. 꿈에 보통보다 약간 작은 키에 남루한 한복 차림의 노인이 나타나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장호원 할아버지다. 너의 덕을 입어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다."하지만 법연거사는 일찍이 그 노인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집안 어른들로부터도 장호원에 조상이 살았다는 말도 들어보지를 못하였으므로, 의아해 하며 물었다.
"누구신지요? 저는 감사의 인사를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서울 장위동에 살았던 법연거사의 아저씨를 데리고 와서 말하였다."이 사람이 내 손자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포졸 두 사람이 나타나 노인을 모시고 나갔다가 돌아왔다.
노인은 이미 남루한 한복 대신 찬란한 장군복으로 바꾸어 입고 있었다. 노인은 거듭 법연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고, 포졸들도 합장하고 정중히 인사를 한 다음 노인을 모시고 사라졌다.
너무나 실감나는 꿈을 꾼 법연거사는 집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당숙모에게 전화를 하여 '장호원 할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그와 같은 할아버지가 계셨다는 말은 들었으나 나도 뵈온 적은 없다. 네가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느냐?"
이렇게 법연거사는 지장기도를 통하여 집안의 근심이었던 누이동생의 잉태를 도왔고, 가족들에게 완전히 잊혀져 있었던 선대 조상을 천도하였던 것이다.지장보살의 가피 속에서 천도를 이룬 예는 이밖에도 수없이 많다. 그런데도 여기에서 구태여 법연거사의 예를 든 것은, 선대 조상의 천도를 위한 법연거사의 기도방법이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한을 1백일로 정하여 매일같이,
≪지장경≫을 1∼2품씩 독송함.
<지장예찬문>을 읽으며 예찬문 속의 불보살님과 지장보살께 158배를 올림. '지장보살'을 30분 동안 염불함.
이렇게 하면 독경과 절과 염불을 골고루 함께 잘할 수가 있다.
≪지장경≫의 가르침대로 21일 동안 지장보살을 부르며 하루 5백번 정도씩 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법연거사가 행한 지장기도법도 예부터 전해져 오는 지장기도의 한 유형이므로 특별히 권하는 바이다.
실로 지장기도를 통한 영가천도의 공덕은 죽은 이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영가보다는 오히려 천도를 지내주는 이가 더 큰 공덕을 얻게 되고 더 큰 행복을 누리게 된다.
≪지장경≫에서는 그 전체 공덕의 7분의 1은 죽은 사람이 얻고, 7분의 6은 산 사람이 얻는다고 하였다.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인가?
그 원리는 간단하다. 천도가 지극한 효심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참된 효심이 법계에 가득한 행복의 기운을 끌어당겨 그 행복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불자들이여! 지금이라도 천도해 드려야 할 영가가 있다면 마음을 다잡고 지장보살께 귀의하여 정성껏 천도를 하여 보라. 끝없는 용서와 사랑의 지장보살은 우리의 원을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니….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생활속의 지장기도 3 - 김현준(불교신행연구원장)
무한자비와 파지옥의 지장보살
끝없는 용서와 사랑의 보살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지장경≫ <촉루인천품(囑累人天品)>을 통하여 지장보살을 다음과 같이 찬탄하셨다.
"지장, 지장이여.
그대의 신력(神力)이 불가사의하도다.
그대의 자비(慈悲)는 불가사의하도다.
그대의 지혜(智慧)는 불가사의하도다.
그대의 변재(辯才)는 불가사의하도다.
시방(十方)의 모든 부처님이 천만겁 동안 찬탄할지라도 그대의 불가사의한 공덕은 다 말할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의 지혜와 자비뿐만이 아니라, 신통력과 방편의 능력인 변재까지도 불가사의하다고 하셨다. 불가사의(不可思議)! 우리의 생각으로는 가히 측량을 하거나 헤아려 볼 수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공덕을 갖추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장보살께서는 갖고 계신 그 불가사의한 공덕을 조금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모두를 중생의 안락(安樂)을 위해서만 사용하신다. 바꾸어 말하면, 지장보살의 무한한 신통력과 자비와 지혜와 변재의 공덕은 오직 사바세계의 중생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들 중생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우리들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 남을 위하기보다는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자유와 행복의 삶을 얻기보다는 '나'의 굴레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세계에 갇혀 꼼짝하지 못하는 중생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그야말로 악한 씨를 심으면 고(苦)의 과보를 받고, 선한 씨를 심으면 낙(樂)의 열매를 거둘 뿐, 그 이상의 삶을 이루지 못한다.
한량없는 과거의 생애를 살아오면서 몸과 말과 뜻으로 지어 온 바를 따라 순간순간 현재와 같은 모습을 나타내고 있을 뿐인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업보중생(業報衆生)'이라고 하셨다. 지은 바 업에 따라 윤회를 하고, 지은 바 업에 의해 행복과 불행을 맞이하게 되는 중생이라는 뜻이다.
결코 인과응보의 현실, 정해진 업을 면하기 어렵다는 '정업난면(定業難免)'의 영역을 뛰어넘지 못하는 '업덩이' 같은 존재가 업보중생인 것이다.
그러나 지장보살의 이름 아래에서는 '정업난면의 업보중생설'이 적용되지 않는다. 가벼운 잘못은 물론이요, 중생의 가장 무거운 죄업이 만들어낸 지옥조차도 지장보살의 자비와 신력 앞에서는 없어져 버린다.
곧, 업보중생이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을 향하면 지장보살과 하나가 되고, 지장보살과 하나가 되면 모든 업이 지장보살의 크나큰 본원력(本願力)에 의해 녹아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왜? 지장보살의 근본 서원이 끝없는 용서요 사랑이기 때문이다.
지장보살의 끝없는 용서와 끝없는 사랑! 이를 증명하는 옛 이야기를 한 편을 함께 음미해 보자.
중국 당나라의 옹주(擁州) 운현(雲懸) 지방에 이씨(李氏) 부인이 살고 있었다. 신심이 매우 두터웠던 그녀는 불교를 받듦에 있어 정성을 다하였고, 집에서도 꾸준히 수행을 하였다.
어느 날 이씨 부인은 집안에 불상을 모시면 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약 50cm 크기의 목조 지장보살상을 모시게 되었고, 그 뒤부터 집안에는 좋은 일이 날로 더하였다.
하지만 이씨 부인에게는 소견이 삿되고 불교를 믿지 않을뿐더러, 주인이 지장보살을 모시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50세 가량의 여종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여종은 이씨 부인이 외출한 틈을 타서 지장보살상을 들고 나가 앞산 기슭의 풀숲에다 던져버렸다.외출을 하였다가 집으로 돌아온 이씨 부인은 지장보살상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온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찾을 수 없자 슬픔을 가눌 길 없어 해가 저무는 것도 잊은 채 눈물을 짓고 있었다. 그때 문 밖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씨 부인이 밖으로 나가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앞산 기슭의 풀숲에서 기이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
직감으로 느낀 이씨 부인은 풀숲으로 달려갔고, 그곳에는 생명처럼 모시던 지장보살상이 모로 누운 채 빙긋이 웃고 계셨다. 이씨 부인은 지장보살을 정성껏 다시 봉안하고 눈물과 웃음이 섞인 감동으로 예배하고 염불하였다.
그러나 이씨 부인은 그것이 여종의 소행이라는 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밤중이 되자 여종이 갑자기 쓰러져 인사불성의 상태에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이씨 부인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구완하자, 여종은 얼마 뒤 부시시 깨어났다.
그리고는 통곡을 하며 말하였다.
"마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용서하여 주십시오.""용서라니? 도대체 왜 그러느냐? 자세히 말하여 보아라."
"저는 조금 전에 말을 탄 누군가에게 잡혀 정신없이 끌려가다가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그곳은 명부(冥府)였으며, 관리 하나가 서첩을 펼쳐 읽기 시작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이 죄인은 성상(聖象)을 내다버리는 대죄를 범하였습니다. 마땅히 지옥의 큰 고통을 받게 해야 합니다.'
염라대왕은 곧 심판을 내리려 하고, 저는 큰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떨고 있을 때. 한 스님께서 그곳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러자 상석에 앉아 있던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내려와 공손히 맞이하고는 저의 죄과를 자세히 아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이 여인은 나의 단월(檀越:신도) 집에서 일하는
종입니다.비록 나의 형상이 보기 싫다고 하여 내다버리기는 하였으나, 나는 저 여인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저 여인을 불쌍히 여겨 다시 살려주십시오.'
'저 죄인은 지옥에 떨어져 혹독한 고초를 받아야 마땅하나. 보살님의 말씀이니 따르겠습니다.'염라대왕은 곧 저를 방면하였으며, 저는 잘못을 깊이 뉘우쳤습니다. 제가 불교를 좋아하지 아니했고 지장보살님을 내다버린 것을 뼈아프게 참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꿇어앉아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무지장보살'
그러자 명부 안의 죄인들에게 채워져 있던 고랑쇠가 모두 벗겨져 버렸습니다. 그때 스님께서 저의 손을 이끌어 염라청을 벗어나게 하는 순간, 저는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마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야기를 마친 여종은 이씨 부인 앞에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이씨 부인은 그녀를 달래어 지장보살상께 예배를 드리며 참회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고을 사람들은 크게 신심을 일으켜
불교를 받들고 지장보살을 깊이 신봉하게 되었다.≪지장보살영험기≫에 수록되어 있는 이 이야기는 불자인 우리를 너무나 따스하고 편안하게 해주고 있다.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종교의 절대신이었다면,
자신의 상을 혐오하고 내다버리기까지 한 그 여종을 어떻게 하였을까? 세상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더한 징벌을 가했을지도 모른다. 자비를 베풀지라도 '죄없는 자는 돌을 던져라'고 하는 정도로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장보살은 어떻게 하였는가? 염라대왕에게 부탁하여 그녀의 죄를 용서토록 하였을 뿐 아니라, 그녀를 깨우쳐 새 삶의 길로 인도하여 주었다. 나아가 '나무지장보살'이라는 그 한마디 소리에 명부 중생의 고랑쇠를 모두 벗겨버렸다.
정녕 지장보살은 죄의 무겁고 가볍고를 따지지 않는다. 믿고 따르는 이는 물론이요, 돌아서고 욕하고 해하는 자들까지 인연있는 중생이면 누구나 다 수용하신다. 오직 중생애민(衆生愛愍)의 비심(悲心)으로 끝없이 사랑하고 끝없이 용서할 뿐이다.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또 불쌍히 여기는 지장보살! 중생을 용서하고 또 용서하며, 모든 죄업의 감옥을 부수어 버리는 지장보살! 지장보살의 존재 목적은 중생 구제와 성불의 길을 열어주고자 하는 것뿐이다.
그 어떤 중생이라도 지장보살을 염할 때 고통의 현실은 사라지고 고난의 감옥은 부서진다. 우리가 살아 있건 죽어 있건 지장보살의 사랑은 끝이 없다. 열 번 백 번도 용서할 수 있는 지극한 사랑으로,
중생의 업(業)이 만들어 낸 갖가지 장애와 부자유의 감옥들을 부수고, 행복의 세계로 성불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실로 우리가 지장보살의 끝없는 용서와 사랑을 배워 우리들 마음속에 간직한
응어리들을 풀고 탐착을 떠난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도 또한 지장보살과 같은 신통력과 방편력과 자비와 지혜를 이룰 수 있게 될 것이어늘….
명부세계와 지장보살
이제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 있는 명부전(冥府殿)의 내부를 조명해 보면서, 죽은 이가 심판을 받는다는 명부세계와 지장보살의 관계에 대해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명부전은 저승의 유명계(幽冥界), 곧 명부세계를 사찰 속으로 옮겨 놓은 전각이다. 이 전각 안에는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고,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옛 사찰들의 사적기(事蹟記)들을 조사해 본 결과, 적어도 조선 초기 이전까지는 '명부전'이라는 전각이 사찰 안에는 없었고,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신 전각이 각각 '지장전'과 '시왕전'이라는 이름으로 분리 독립되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지장보살과 시왕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명부전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특유의 사찰 전각이라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만 지장보살과 시왕을 함께 모신 명부전이 생겨나게 된 까닭은 무엇이며, 언제부터 명부전이 사찰 속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일까? 그 해답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불교의 신앙 형태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 땅의 특수한 상황에서 찾아야 한다.
불교 자체를 말살시키려 했던 조선 왕조의 억불정책 속에서도 불교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그나마의 명목은 조선 왕조가 숭상했던 효(孝)에 관한 불교 의식이었다. 비록 조선 왕조가 불교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부모에게 효도하고 죽은 부모를 좋은 세상으로 보내게 하기 위한 불교 신앙과 의식만은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그 어떤 의식보다 망인천도(亡人薦度)의 재의식(齋儀式)이 발달하였고, 지장보살 또한 모든 중생을 성불시킨다는 맹세보다, 명부시왕의 무서운 심판에서 망인을 구하여 주는 유명계의 교주 역할만이 크게 강조되었다.
그 결과, 망인의 형벌 및 새로 태어날 세계를 결정하는 심판관 시왕과 망인을 자비로써 인도하는 지장보살과의 결합은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고, 마침내 독립되어 있었던 지장전과 시왕전을 명부전이라는 이름으로 결합, 탄생시켰던 것이다. 그 최초의 시기는 고려 말 조선 초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시대 불교는 철저한 억압으로 인한 재정적 빈곤 때문에 새로운 전각인 명부전의 건립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다행히 임진왜란 때의 승병 활동으로 나라에서 다소나마 억압의 고삐를 늦추게 되었고, 불교계에서는 이 시기를 맞아 유교의 이념에도 맞는 명부전을 많이 건립하였던 것이며,
오늘날 오래 된 대부분의 사찰에 명부전이 있는 까닭도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현존하는 여러 명부전의 구조를 살펴보면 중앙에 위치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도명존자(道明尊者)를, 오른쪽에는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봉안하여 삼존불을 이루게 한다.
그리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며, 시왕상 앞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상 10구를 안치한다.이밖에도 대왕을 대신하여 심판을 하는 판관(判官) 2인, 기록과 문서를 담당하는 녹사(錄事) 2인,
문 입구를 지키는 장군(將軍) 2인 등을 마주보게 배치하여 모두 29체(體)의 존상을 갖추게 된다.또한 지장보살의 뒤쪽 벽에는 지장탱화(地藏탱畵)를 봉안하고, 시왕의 뒤편으로는 명부시왕탱화를 봉안하게 된다.
이들 가운데, 중생이 죽은 뒤 명부의 대왕들 앞에서 생전에 지은 죄를 심판받는 모습을 묘사한 시왕탱화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보통 시왕탱화를 명부전에 봉안할 때는 1대왕씩 10폭으로 묘사하거나
5대왕씩 2폭으로 묘사하여 봉안하며, 중앙 지장보살의 왼쪽에는 1, 3, 5, 7, 9의 홀수 대왕 그림이, 오른쪽에는 2, 4, 6, 8, 10의 짝수 대왕 그림이 배치된다.
또한 각 그림의 내용은 크게 상단과 하단부로 대별된다. 상단부에는 10대왕을 중심으로 시녀(侍女), 판관(判官), 외호신장(外護神將)들이 둘러 서 있고, 그림의 상 하단을 구름으로 구분한 다음,
그 아래 하단부에는 형벌을 받은 죽은 사람과 형벌을 가하는 사자(使者)와 귀졸(鬼卒), 죄인의 앞에서 지은 죄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읽어주는 판관 등이 그려져 있다.
상단부의 10대왕 가운데 마지막 전륜대왕(轉輪大王)만이 투구와 갑옷을 입은 장군의 모습일 뿐, 나머지 아홉 대왕은 관을 쓰고 붓과 홀(笏)을 잡고 있는 왕의 모습이다. 모든 대왕의 앞에는 책상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필기 도구들이 마련되어 있다.
이제 하단부의 그림을 살펴보자.
제1 진광대왕도(秦廣大王圖)에는 죽은 자를 관에서 끌어내는 장면, 이미 끌려온 자들이 목에 칼을 차고 판관의 질책을 듣는 장면, 관 속에 든 죄인의 배를 징으로 내리쳐 가르는 모습 등이 묘사된다.
제2 초강대왕도(初江大王圖)에는 관에서 나온 이가 나무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칼을 차고 고통을 받는 모습, 배꼽에 호스를 연결하여 살아 생전에 축적한 탐욕의 기름을 뽑아내는 장면 등이 묘사된다.
제3 송제대왕도(宋帝大王圖)에는 형틀에 맨 죄인의 혀를 길게 뽑아내고, 소가 쟁기로 밭을 갈 듯이 죄인의 뽑혀진 혀를 쟁기로 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제4 오관대왕도(五官大王圖)에는 죄인을 가마솥의 끓는 기름 속에 넣어 고통을 가하는 모습이,
제5 염라대왕도(閻羅大王圖)에는 업경대(業鏡臺)로 죽은 이의 지은 죄를 비춰보는 장면과 죄인을 방아에 넣어서 찧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제6 변성대왕도(變成大王圖)에는 무수한 칼이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솟아있는 도산(刀山) 속에서 죄인이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고,
제7 태산대왕도(泰山大王圖)에는 죄인을 형틀에 넣어 톱으로 써는 모습, 제8 평등대왕도(平等大王圖)에는 죄인을 바윗돌로 눌러서 압사시키는 모습, 제9 도시대왕도(都市大王圖)에는 죽은 이의 지은 죄를 적은 두루말이를 저울로 달아 무게를 다는 모습과 죄인들이 얼음 속에서
발가벗은 채 떨고 있는 모습, 대왕 이하 모든 권속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지장보살을 우러러보며 합장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제10 오도전륜대왕도(五道轉輪大王圖)에는 모든 재판과 명부의 형벌을 끝낸 중생들이 다시 아귀, 축생, 인간 등으로 태어나기 위해 길 떠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명부는 고통이 매우 심한 곳이고, 10대왕은 고통받는 명부의 죄인을 관장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왕의 위덕을 비는 10재(齋)를 베풀도록 하고 있다.
이는 ≪예수시왕생칠경≫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시왕이 각각 망인을 심판하는 초 7일, 2·7일, 3·7일, 4·7일, 5·7일, 6·7일, 7·7일과 100일째 되는 날, 1주기, 2주기 때 재를 베풀어 죄업을 사하도록 한 것이다. 앞의 일곱 번을 우리는 49재, 그리고 뒤의 셋을 백재(百齋), 소상재(小祥齋), 대상재(大祥齋)라 지칭하고 있다.
시왕의 심판 및 시왕탱화에 나타난 망인의 고통과 관련된 이와 같은 재는 후손들이 망인을 위해 대신 공덕을 쌓아, 망인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좋은 세상에 태어나도록 하기 위한 효심의 발로라는 사실을 다같이 기억해야 한다.
지장보살이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하였듯이, 참된 효심이야말로 조상을 죄업의 고통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왕탱화에서, 우리가 특별히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각 탱화 속에 반드시 묘사되어 있는 지장보살의 모습이다.
지장보살은 시봉하는 제자를 데리고 명부의 고통받는 중생들 옆에 서 있다. 때로는 판관에게 죄인을 용서해 줄 것을, 때로는 죄인에게 죄업을 면하는 방법을 일러주신다. 슬픈 표정으로 두 손을 모으고 죄인들과 함께 하는 지장보살로 인해 시왕의 신앙까지 참다운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명부전! 그곳을 들어서면 우리는 섬뜩하다. 그곳은 명부에 간 조상을 깨우치는 곳만이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승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이 생을 끝내고 명부에 이르렀을 때, 10대왕으로부터 받게 될 심판을 생각해 보는 곳이기도 하다.
옛날 한 부자가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어 시신을 장지(葬地)로 옮길 때, 나의 두 손은 반드시 상여 밖으로 나오도록 하라."
유언에 따라 가족들은 상여를 메고 갈 때 두 손을 상여 밖으로 내어놓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들아 보아라. 나는 돈도 많고 집도 크고 권속들도 많지만, 오늘 이때를 당하여 나 홀로 간다. 부귀영화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더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 평생 모은 재산도 가져갈 수 없으며, 오직 지은 바 업(業)만이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이처럼 죽음과 저승을 느끼며 현세에 내가 해야 할 바를 생각해 보는 곳이 명부전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볼 때, 명부전은 두려움의 장소가 아니라 진정한 자비를 느끼는 곳이다."한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않는 이가 있으면 나 또한 성불하지 않으리라."고 하신 지장보살의 본원을 되새겨 보는 크나큰 자비의 도량이다.
우리는 명부전을 지성의 참회 도량으로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명복을 비는 장소가 아니라, 참되게 사는 길과 스스로의 진실을 체험하는 본원(本願)의 도량으로 가꾸어야 하리라.
파지옥(破地獄)
마지막으로 사랑과 용서의 극치를 여실히 나타내어 주는 '지장보살의 파지옥'을 이야기하면서 이번 호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불교에서는 지장보살을 '파지옥의 대보살'이라 칭한다. 결코 죽은 이로 하여금 명부시왕의 심판을 잘 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것으로 끝내는 분이 아니라, 지옥을 완전히 없애고자 하는 분이 지장보살이기 때문이다.
파지옥…. 원래 지옥이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다. 중생의 악한 마음, 지극한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가 지옥이다. 자유로운 하늘의 세계와는 달리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무거운 업보가 땅속 감옥인 지옥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옥은 한없이 고통의 세계이다. 그 고통은 평범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아니,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불생의 양상을 모아놓은 곳이 지옥일 수도 있다. 잠시 ≪지장경≫ <지옥명호품>에 묘사되어 있는 지옥중생의 처참한 모습을 살펴보자.
어떤 지옥은 죄인의 혀를 뽑아내어 소로 하여금 갈게 하고,
어떤 지옥은 죄인의 심장을 빼내어 야차(夜叉)가 먹으며,
어떤 지옥은 죄인의 몸을 끓는 가마솥 물에 삶으며,
어떤 지옥은 죄인으로 하여금 벌겋게 달군 구리쇠기둥을 안게 하며,
어떤 지옥은 맹렬한 불덩이가 죄인을 쫓아다니며 태우고,
어떤 지옥은 온통 차가운 얼음뿐이며,
어떤 지옥은 끝없는 똥오줌이며,
어떤 지옥은 빈틈없이 화살이 날며,
어떤 지옥은 죄인을 많은 불창으로 찌르며,
어떤 지옥은 쇠몽둥이로 죄인의 가슴과 등을 치며,
어떤 지옥은 죄인의 손과 발만을 태우며,
어떤 지옥은 무쇠로 된 뱀이 죄인의 온몸을 감으며,
어떤 지옥은 무쇠 개가 죄인을 쫓으며,
어떤 지옥은 무쇠 나귀가 뒤에 매단 채 끌고 다닌다.
한마디로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지옥, 그 지옥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 고통받는 지옥중생을 남김없이 구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 그 분이 바로 지장보살이시다.
지장보살은 지옥문을 지키고 있으면서 그곳으로 들어가는 중생을 못 들어가도록 막는다. 때로는 여말대왕의 몸으로, 때로는 지옥졸(地獄卒)의 모습을 나타내어 고통받는 지옥 중생에게 설법을 한다.때로는 지옥 그 자체를 부수어서 모든 지옥 가족을 천상이나 극락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중생과 함께 하는 한, 지옥은 계속 생겨난다. 그리고 지옥이 있는 이상 지장보살은 지옥을 떠나지 않는다. 지장보살은 수많은 분신들을 지옥의 요소 요소에 배치하여 고통받는 중생의 해탈은 물론 그릇된 마음의 중생을 교화하고 영원히 지옥을 없애고자 잠시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지장보살의 자비와 원력은 '파지옥'에만 이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장보살은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안락을 함께 보장하며, 나아가 뭇 생명있는 자들을 성불토록 하여 이 윤회하는 세계 자체를 없애고자 하는 '파사바(婆娑婆)의 보살'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마음에 그분의 원력과 자비를 담을 수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윤회를 벗어나 적멸위락(寂滅爲樂)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장신앙의 참뜻이며, 지장보살이 존재하는 진정한 까닭임을 기억해야 하리라.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생활속의 지장기도 4 - 김현준(불교신행연구원장)
현세의 행복과 지장보살
왜 내원궁에 지장보살이?
동백꽃으로도 유명한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에는 도솔암이라는 암자가 있고, 이 도솔암에서 365계단을 올라가면 '도솔천 내원궁'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 조그마한 법당이 나타난다.
도솔천 내원궁! 불교의 세계관에서 볼 때 도솔천은 욕계(欲界)의 6천(天) 중 네 번째 하늘에 해당하며, 그 도솔천의 중심부에 내원궁(內院宮)이 자리잡고 있다.
이 내원궁은 극락세계와 함께 불교의 대표적인 정토(淨土)로 손꼽히고 있으며, 현재 내원궁에는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보살이 머물러 계시면서 법을 설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런데 도솔암의 '도솔천 내원궁'의 문을 열어보면, 미륵보살은 보이지 않고 보물 제208호로 지정된 지장보살 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참배객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게 만드는 아름답고 당당한 지장보살님의 모습이….
비례감이 매우 뛰어나면서도 몸의 어느 한 곳에 인위적인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단정한 자세를 우러러보고 있노라면,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한 다음 성불하겠다."고 맹세한 지장보살의 의지가 풍겨져 나옴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타원형의 갸름한 얼굴, 초승달 같은 눈썹, 긴 눈매, 오뚝한 코, 단아한 입술 등 단정하면서도 다소 여성적인 얼굴 모습에는 지장보살의 깊은 사랑이 배어 있는 듯하다. 아울러 이 지장보살님께 예배를 드리면, 도솔암이 한국의 대표적인 지장성지가 된 까닭을 저절로 느낄 수가 있다.
이제 이 지장보살상에 대해 우리가 그냥 지나치기 쉬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도솔천 내원궁에 당연히 있어야 할 미륵보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왜 지장보살이 좌정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원래 미륵보살을 모셨던 이 법당이 폐허가 되자 다시 전각을 지어 지장보살을 모셨지만 이름만은 옛날 그대로 '도솔천 내원궁'으로 하였을 것'이라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큰 억측이다
사찰의 전각 이름 중, 석가모니불이 아닌 다른 부처님을 모셔 놓고 그 전각 이름을 '대웅전'이라고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일이다. 어떠한 부처님도 영웅 중의 영웅이신 '대웅(大雄)'이시고, 그러한 대영웅을 모신 '큰법당'이 대웅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락전'이라 하여 놓고 아미타불 대신 약사여래를 모시거나, '관음전'이라 하여 놓고 문수보살을 주존으로 모실 수는 없는 일이다. 그야말로 이름과 내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장보살만을 모신 전각을 '도솔천 내원궁'이라 할 때는 특별한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만 용납된다. 명분과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던 우리네 옛 스님들이, 불교 교리에도 맞지 않는 엉뚱한 편액을 달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오랫동안 그 까닭을 찾은 결과,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사바세계의 중생을 교화해 줄 것을 위촉받은 지장보살의 역할, 이 땅에 뿌리 깊게 전승되어 온 참회불교의 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항에 대해 심도 있게 살펴보면서, 지장신앙의 참된 면모를 함께 규명해 보고자 한다.
석가모니불의 부촉과 지장보살의 맹세
≪지장경≫을 보면, 지장보살이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말세중생(末世衆生)의 제도를 부촉(咐囑)받는 장면이 두 차례 묘사되어 있다. 석가모니께서 열반에든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수많은 분신(分身)을 이 사바세계에 나타내어 일체 중생을 교화해 줄 것을 당부 받은 것이다.
"나는 이 사바세계에서 억세고 거친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의 마음을 바로잡아 삿된 것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그 중 열에 한두 명은 아직도 나쁜 버릇에 빠져 있느니라.
그대는 스스로가 지은 억세고 거친 죄업의 과보로 나쁜 세상에 떨어져 큰 고초를 받는 중생을 보거든 내가 이 도리천궁에서 간절히 부촉한 것을 생각하여, 사바세계에 미륵불이 오실 때까지 중생들이 모든 고통을 영원히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장차 미륵불을 만나 뵙고 수기를 받을 수 있게 할지니라."
그때 모든 세계에서 모인 지장보살의 분신들은 다시 한 몸이 되어 애절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저의 분신으로 하여금 모든 세계에 가득차게 하고 그 한 몸마다 백천만억 사람을 제도하여 삼보에 귀의하게 하며, 길이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 열반락(涅槃樂)에 이르도록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염려를 마옵소서.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염려를 마옵소서.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염려를마옵소서 ."
<분신집회분(分身集會品)>
"현재와 미래의 모든 중생을 내 이제 그대에게 부촉 하노니 그대는 큰 신통과 큰 방편으로 중생들을 두루 널리 제도하여 나쁜 세상에 떨어지지 않게 하라"
이때 지장보살이 무릎을 꿇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대 염려를 놓으소서. 미래세 중에 혹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불법(佛法)에 대해 한생각의 공경심만 있어도, 저는 백천 가지 방편으로 그 사람을 제도하여 생사(生死) 중에서 속히 해탈을 얻게 할 것이옵니다."
<촉루인천품(囑累人天品)>
도리천궁에서 열반 직전에 ≪지장경≫을 설하셨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의 '부처님 공백기' 동안에 중생을 제도할 이로서 지장보살을 지정하셨다. '내가 못 다한 일을 지장보살이 계속해 줄 것'을 당부하신 것이다.
이에 지장보살은 '불법에 대해 한 생각의 공경심만 있는 이라면 갖가지 방편을 구사하여 반드시 그 사람을 제도하고 고통을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다짐하였다.특히 <분신집회품>에서는 후세 중생을 '책임지겠다'고 세 번이나 맹세하였다. 세 번의 맹세는 불경 속에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왜 세 번씩이나 맹세를 하였는가? 그만큼 틀림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이제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의 후세 중생에 대한 교화를 지장보살에게 부촉하셨다.
그 부촉은 어떠한 보살이나 제자들에게 했던 것보다 간곡하였고, 지장보살의 맹세 또한 지극하였다.그렇기 때문에 선운사 도솔암의 '내원궁'에다 미륵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모신 것이다.
곧, 현재 도솔천 내원궁에 계신 미래불 미륵보살을 대신하여 이 사바세계에서 활동하면서, 중생들에게 현실적인 행복을 안겨주고 마침내는 미륵의 정토로 인도하는 분이 지장보살이기 때문에 '내원궁'에다 지장보살을 모실 수 있었던 것이다.
지장신앙의 현실적 이익
그럼 지장보살을 신봉하는 이가 얻게 되는 현실적인 이익은 어떠한 것인가? 이 또한 후세 중생의 행복에 대한 부처님의 부촉과 지장보살의 맹세가 지극한 때문인지, 그 이익이 ≪지장경≫에 여러 차례 설하여져 있다.
7종 이익, 10종 이익, 28종 이익이 그것이다. 서로가 다소 중복되는 부분이 있지만, 우리의 신심을 북돋우는 의미에서 이를 모두 열거하여 보자.
<7종 이익>
1. 속히 성현의 땅에 오른다.(速超聖地)
2. 악업이 소멸된다.(惡業消滅)
3. 모든 부처님이 지켜준다.(諸佛護臨)
4. 보리심이 후퇴하지 않는다.(菩提不退)
5. 본원력이 더욱 더 커진다.(增長本力)
6. 숙명을 통달한다.(宿命皆通)
7. 마침내는 부처를 이룬다.(畢竟成佛)
이 7종 이익은 특히 수행하는 이들과 관련이 깊다. 불교공부에 뜻을 둔 이가 지장보살을 신봉하게 되면 악업이 소멸되어 빨리 성현의 땅에 이르게 되며, 부처님의 가피 아래 보리심(菩提心)을 기르고 수행력을 증장시켜 신통력을 얻게 되고 마침내는 부처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 전에 지장참회기도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지장보살께 의지하여 업장을 참회한 다음 수행을 시작하게 되면, 공부가 잘 될 뿐 아니라 성취 또한 남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장신앙'의 마지막회 원고에서 예화와 함께 그 방법을 밝히고자 한다.
<10종 이익>
1. 농사짓는 땅에 풍년이 든다.(土地豊穰)
2. 집안이 안전하고 편안하다.(家宅永安)
3. 조상들이 천상에 태어난다.(先亡生天)
4. 현세의 가족들이 장수한다.(現存益壽)
5. 구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진다.(所求遂意)
6. 수재나 화재를 만나지 않는다.(無水火災)
7. 재물의 헛된 손실이 없다.(虛耗避除)
8. 나쁜 꿈을 꾸지 않게 된다.(杜絶惡夢)
9. 출입할 때 신장들이 보호한다.(出入神護)
10. 성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多遇聖人)
7종 이익이 수행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10종 이익은 현실적인 삶 속에서의 행복을 논한 것이다.이 10종 이익과 다른 불보살을 믿는 이익을 비교해 볼 때 매우 특징적인 것은 제1 '농사짓는 땅에 풍년이 든다'는 것과 제3 '조상들이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제1이익은 땅을 갈무리한다는 '地藏'의 의미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며, 제3 이익은 지장보살의 영가천도 능력과 결부된 것이다.풍년에다 조상의 생천(生天)만 하여도 기쁜 일인데,
집안이 편안하고 가족이 오래 살며, 구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지고 재물에 손실이 없고 재앙이 없으며, 잠자리까지 편안하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아가 신장이 보호해주고 성현도 많이 만날 수 있으니….
하지만 이 10종 이익에서는 특별한 부귀나 거대한 권력 등은 논하지 않고 있다. 그와 같은 큰 욕심이 오히려 불행을 초래하기 때문이리라. 그야말로 지장보살님은 불행이 깃들지 않은 소박한 행복, 평범하면서도 만족스럽고 기쁨이 있는 생활인의 행복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28종 이익>
1. 천인과 용이 항상 지켜준다.(天龍護念)
2. 선한 과보가 나날이 더해진다.(善果日增)
3. 성인들과 좋은 인연을 맺는다.(集聖上因)
4. 보리심이 후퇴하지 않는다.(菩提不退)
5.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진다.(衣食豊足)
6. 질병이 침범하지 않는다.(疾疫不臨)
7. 수재나 화재를 만나지 않는다.(離水火災)
8. 도둑으로 인한 재앙이 없다.(無盜賊厄)
9.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人見欽敬)
10. 귀신들이 돕고 지켜준다.(鬼神助持)
11. 여자는 다음 생에 남자가 된다.(女轉男身)
12. 여자라면 좋은 가문에 태어난다.(爲王臣女)
13. 용모가 단정하고 빼어나다.(端正相好)
14. 여러 생 동안 천상에 태어난다.(多生天上)
15. 때로는 제왕이 되기도 한다.(或爲帝王)
16. 육신통 중 숙면통을 성취한다.(宿智命通)
17. 구하는 바를 다 이루게 된다.(有求皆從)
18. 가족 친척들이 모두 화목하다.(眷屬歡樂)
19. 뜻밖의 재앙이 모두 소멸된다.(諸橫消滅)
20. 나쁜 업의 길이 영원히 없어진다.(業道永除)
21. 가는 곳마다 모두 통한다.(去處盡通)
22. 밤에는 꿈이 안락하다.(夜夢安樂)
23. 조상들이 괴로움을 벗어난다.(先亡離苦)
24. 다시 태어날 때 복을 타고난다.(宿福受生)
25. 모든 성현들이 찬탄한다.(諸聖讚嘆)
26. 총명하고 근기가 빼어나게 된다.(聰明利根)
27 자비심이 더욱 풍부해진다.(饒慈愍心)
28. 마침내는 부처를 이룬다.(畢竟成佛)
28종 이익은 7종 이익과 10종 이익에서 설한 내용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표출시킨 것이다. 조금 특이하다면 '여자'에 대한 것으로, 다음 생에는 남자가 된다고 한 것이나(제11 이익), 여자라면 좋은 가문에 태어난다는 것(제12 이익) 등이다.
정녕 지장보살을 신봉하면 질병, 수재, 화재, 도둑 등의 모든 재앙은 사라지고 현실적으로 풍요롭게 살 뿐 아니라 좋고 또 좋은 일들이 함께 한다. 특히 내생은 복인(福人)으로 태어나는 등 행복만이 가득해진다.
이상과 같이 중생에게 행복과 이익만을 안겨주는 지장보살! 그렇지만 지장보살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누구든 ≪지장경≫을 읽거나 지장보살께 공양하고 찬탄하고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앞에서 밝힌 이익들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지장보살님은 이러한 중생들을 위해 매일 아침 선정(禪定)에 들어 중생들의 요구를 살피고 구원의 손길을 뻗친다고 한다. 나아가 지장보살님은 자신을 우러러 칭명하고 참회하는 이들의 죄업을 소멸시켜 해탈의 세계로 이끌어 가겠다는 확신의 맹세까지 하고 계신다.
"미래세(未來世) 중에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이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고 합장하거나 찬탄하거나 예경을 드리거나 간절히 생각하며 참회한다면, 이 사람은 30겁(劫) 동안 지은 죄를 초월하게 되리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지장보살의 형상을 만들어서 한번 쳐다보거나 한번 절한다면, 이 사람은 1백번 33천(天)에 태어나고 길이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지장경 여래찬탄품>
지장보살을 향한 참회
참회, 참회는 죄업중생을 위해 있는 것이다. 참회만이 죄업을 녹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장보살을 향한 참회! 여기서 잠시 지장보살을 향한 참회를 통하여 이 땅에 참회불교의 전통을 뿌리내리게 한 큰스님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자. 그 큰스님은 바로 진표율사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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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표율사(眞表律師)는 신라 말 경덕왕 때 우리나라 법상종(法相宗)을 개산(開山)한 분이다. 그러나 이 스님은 법상종의 시조라는 사실보다 율사로 더 유명하고, 계를 얻기 위해 미륵보살님과 지장보살님께 지극 정성으로 참회하고 발원하여 특별한 상서를 얻고 계를 얻은 자서수계(自誓授戒)의 큰스님으로 특히 유명하다.
스님의 출가 동기는 매우 특이하였다.
활쏘기를 잘했던 어린 시절, 하루는 논두렁에서 개구리 30여 마리를 잡아서 버들가지에 꿰어 물에 담그어 두었다. 그리고는 산에서 사냥을 하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개구리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이듬해 봄, 다시 사냥길에 나선 소년은 논두렁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문득 지난해의 일을 떠올렸다. 그런데 바로 그 물 속에서 개구리들이 버들가지에 꿰인 채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무심코 저지른 일로 인해 이 많은 개구리들이 해를 넘기도록 고통을 받다니…."
잘못을 크게 뉘우친 소년은 12세의 나이로 출가하여 모악산 숭제법사(崇濟法師)의 제자가 되었다. 진표가 숭제법사를 지성으로 모시고 지낸 지 10년이 되었을 때, 숭제법사는 진표를 불렀다.
"나는 일찍이 당나라로 들어가서 선도삼장(善導三藏)의 밑에서 수업하였고, 그 다음에는 오대산의 문수보살상 앞에서 지성으로 기도하여 문수보살로부터 직접 5계를 받았느니라."
"스님, 얼마나 부지런히 하면 불보살님께 직접 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정성이 지극하면 1년이면 되느니라."
이 말씀과 함께 숭제법사는 ≪사미계법전교공양차제법(沙彌戒法傳敎供養次第法)≫ 1권과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 2권을 주면서 간곡히 당부하였다.
"너는 이 계법(戒法)을 지니고 미륵보살과 지장보살전에 참회하여 직접 계를 받도록 하라. 그리고 그 계법을 세상에 널리 전하도록 하라."
진표스님은 쌀 20말을 쪄서 말린 다음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으로 들어가 쌀 다섯 홉을 하루 동안의 양식으로 삼되,
그중 한 홉을 덜어내어 쥐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스님은 미륵상 앞에 예배를 드리며 부지런히 계법을 구하였으나, 3년이 되어도 수기(授記)를 받지 못하였다.이에 발분한 스님은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는데, 갑자기 나타난 청의동자(靑衣童子)가 스님을 손으로 받들어 바위에 올려놓았다. 스님은 다시 결심하였다.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보살의 수기를 받으리라."
스님은 3 7일(21일)을 기약하여 몸을 잊고 참회하는 '망신참(亡身懺)'을 시작하였다. 온몸으로 바위를 두들기듯 엎드려 절하면서 부지런히 참회한 것이다.
3일째가 되자 스님의 손과 팔은 부러져 떨어졌다. 그러나 스님은 참회를 멈추지 않았다. 7일째 되던 날 밤에는 지장보살이 금장(金杖)을 흔들며 와서 스님을 돌보아 손과 팔을 전과 같이 고쳐주고, 가사와 바루를 주었다. 스님은 지장보살의 신령스러운 감응에 감동하여 더욱 참회하였다.
마침내 3 7일이 되던 날, 천안(天眼)을 얻은 스님은 미륵보살이 도솔천(兜率天)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오는 모습을 보았다. 이때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은 스님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대장부여, 이렇듯 계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참회하였구나."그리고 지장보살은 계본(戒本)을 주고, 미륵보살은 '제9간자(第九簡子)'라고 씌어진 두 개의 나무로 만든 간자(簡子)를 주면서 당부하였다.
"이 두 간자는 나의 손가락 뼈로서 시각(始覺:닦아서 이루게 되는 覺)과 본각(本覺: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覺)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제9간자는 법이(法爾:진리 그 자체)이고, 제8간자는 신훈성불종자(新熏成佛種子:부처를 이루 수 있는 씨앗을 새롭게 키우는 것)를 뜻하는 것이니,
이것을 통하여 너의 과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이 몸을 버리면 대국왕의 몸을 받았다가 그 뒤에 도솔천에 태어나게 되리라."
말을 마치자 두 보살은 모습을 감추었다. 그 뒤 진표율사는 금산사, 법주사, 발연사 등지에 머물면서 해마다 계단(戒檀)을 열어 중생들을 크게 교화하였으며, 이 땅에 참회불교를 정착시켰다.
참회를 통하여 미륵보살로부터 직접 계를 받기를 원하였던 진표율사는 쉽사리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몸을 잊고 참회하는 '망신참'을 택하였다. 그 결과 3 7일 만에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큰 가피를 입은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미륵보살로부터 계를 받고자 하여 미륵보살께 예배를 하였는데, 지장보살이 나타나서 가피를 내리고 보호를 하였으며 또, 계본(戒本)도 주었다는 점이다. 이 속에 간직되어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까닭이 바로 선운사의 '도솔천 내원궁'에 미륵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모신 두 번째 이유이다.곧 진표율사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특별한 부촉에 따라 후세 중생을 '책임지겠다'고 세 번이나 맹세한 지장보살을 의지하고, 그 지장보살 앞에서 참회하는 것이 미래에 미륵불의 세계에 태어나고 현세의 행복을 이루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특이한 신앙형태를 근거로 삼아, 진표율사와 그 맥을 이은 스님들은 도솔천 내원궁에 앉아 내세에 제도해야 할 중생을 관찰하고 계신 미륵보살 대신, 선운사 도솔암의 '내원궁'에서처럼 지장보살을 모셔, 중생들로 하여금 미륵불의 용화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인연이 맺어지고 현세의 행복이 보장되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세와 내생의 행복을 찾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참회이다. 참회! 진표율사처럼 온몸이 부서지도록 참회를 하는 망신참(亡身懺)이 아니라도 좋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이 뉘우치며 행하는 지심참회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지심참회(至心懺悔)! 그것은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생(多生)에 지은 죄업을 무조건 참회하는 것이다. 보통의 기도는 자신이나 가족의 행복 등 그 어떤 목적을 염원하며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심참회는 무조건 참회하는 것이다. 그 어떤 자비에 연연하지 않고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참다운 참회이다.
'잘못했습니다'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은 녹는다. 모든 업장(業障), 모든 이기심, 그 어떤 모순도 녹아내린다. 비록 죄업이 가득 찬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장보살의 원력과 자비를 생각하며 지심참회하면 그 사람은 곧 지장보살의 분신 중 하나가 되며, 그들이 바라는 모든 소원 또한 지장보살의 원력 속에서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녕 업장소멸과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지장보살을 향하여 지심참회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니….
생활속의 지장기도 5 - 김현준(불교신행연구원장)
생활 속의 지장기도
지장신앙에 있어 불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지장기도를 통하여 어떻게 가피를 입어 소원을 성취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느냐에 있을 것이다.
실로 지장보살님께 정성껏 기도를 하는 공덕은 뜻밖으로 크다. 현실 속에 찾아든 고난을 단순히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태어나는 일에서부터 죽음 후의 내생에 이르기까지,
지장보살은 우리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장경≫은 다른 경전과는 달리, 태어나고 살아가고 일하고 수행하고 병들고 죽는, 인생의 여러 과정과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기도 방법을 일일이 밝히고 있다.
≪지장경≫의 가르침에 준하여 삶 속에서 어떻게 지장기도를 할 것인가를 실제의 체험담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태어남과 지장기도
1920년 경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장씨(張氏) 집안으로 시집을 간 양벽원(梁璧垣) 거사의 딸은 광산 일을 하는 남편을 따라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하남(河南) 지방으로 가서 임신을 하였다. 차츰 해산할 날이 다가왔으나 외진 곳이라 해산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부부가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종이에 '나무지장왕보살(南無地藏王菩薩;중국에서는 지장보살을 지장왕보살이라 많이 칭함)'이라 써서 딸에게 보내며 당부하였다.
"매일 아침, 향을 피우고 지장보살께 삼배를 올린 다음 기도하여라. 반드시 순산하게 될 것이다."
딸은 아버지가 보내준 글씨를 벽에 붙이고 매일 아침마다 열심히 기도하였으며, 그 결과 조금도 고통을 느끼지 않고 아들을 순산하였다. 2년 후 그녀는 또 임신하였으며, 전과 같이 기도하여 아무런 고통없이 딸을 낳았다. 두 아이의 상호는 매우 단정하였으며 총명하고 또한 착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어려서 죽은 아이의 영가천도나 태중에서 죽은 태아의 천도를 위해 지장기도를 드리는 경우가 보편화되어 있다. 이는 지장보살과 태어나는 아기, 또 어린아이와의 관계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관세음보살이 훌륭한 자식을 점지하는 가피력을 많이 나타내고 있는 데 비해, 지장보살은 자식을 고통없이 편안하게 낳을 수 있게 해 주는 보살님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지장경≫의 <여래찬탄품>에는 태어난 아기를 위한 기도법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7일 이내에 이 불가사의한 ≪지장경≫을 읽어주고 지장보살의 명호를 1만 번 불러주면, 비록 과거 생의 허물로 인해 죄보(罪報)를 받을지라도 곧 해탈을 얻게 되며, 안락(安樂)하게 잘 자라고 수명이 연장되느니라. 만약 그 아기가 복을 받아 태어난 자라면 안락과 수명이 더 하게 될 것이니라."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자식농사에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좋은 날 좋은 시에 태어나게 해야겠다며 멀쩡한 산모가 제왕절개 수술까지 한다. 그러나 내 자식에 대한 지나친 욕심보다는 생명의 흐름을 따를 줄 알아야 한다. 오히려 태어남의 때를 순리에 맡기고 지장보살님께 기도하면서 태교를 잘 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그리고 새 생명이 태어난 참으로 좋은 그때, 성현의 경전을 읽고 성현의 명호를 외우면서 축원을 해주면, 성현의 가피 아래 아기를 위해서나 그 가정을 위해 새로운 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위의 말씀은 부처님께서 하신 것이니, 어찌 한 치의 거짓이 있으리.
한 편의 ≪지장경≫ 독송과 1만 번의 '나무지장보살' 염불이 결코 힘든 일이 아니니, 산모나 가족 중 한 분이 꼭 행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우리 불자들로부터 평소에 느낀 것을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이 귀하고 훌륭하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자나깨나 근심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내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로서는 그 걱정을 쉽게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사항만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걱정하는 마음으로는 자식이 잘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걱정보다는 축원을 해 주어야 한다. 걱정은 아이 주위를 편안하지 못한 기운으로 감싸게 만들고, 축원은 그 아이 주위에 좋은 기운이 충만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어찌 사랑하는 자식을 나쁜 기운 속에 있게끔 할 것인가?
부디 자식에 대해 걱정되는 일이 있을 때, 걱정보다는 기도하고 축원을 해주는 불자가 되기 바란다. 지장보살 또는 관세음보살을 외우면서 기도하고 축원을 하여, 그 분의 자비광명이 우리의 자식에게 임하도록 하여보자. 그 자비광명이 우리의 자식에게 미치고 있는데 굳이 걱정할 것이 무엇이리! 꼭 걱정하는 마음을 축원으로 바꾸기를 당부드린다.
평온한 삶을 위한 지장기도
≪지장경≫의 여러 곳에는 모든 문제를 미리 예방하여 평온한 삶을 이루는 지장기도법이 제시되어 있다. 평온한 삶이란 무엇인가? 특별한 사고나 난치불치의 병이 없고, 의식(衣食)이 풍족하고 집안이 편안하면 그야말로 평온하고 족한 삶이리라.
그럼 어떻게 하여야 평온하고 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가? ≪지장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도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날마다 지장보살을 생각하면서 그 명호를 천 번씩 불러 천 일에 이르게 되면, 지장보살은 그 사람이 있는 곳의 토지신을 시켜 그의 목숨이 마칠 때까지 보호를 하느니라.
그렇게 되면 현세에 먹고 입을 것이 풍족해 지고 여러 질병이나 고통이 없어지며 횡액(橫厄)이 그의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되거늘, 하물며 그의 몸에 미치겠느냐. 또 이 사람은 마침내 지장보살로부터 마정수기를 얻게 되느니라." <견문이익품>
"미래세의 중생들이 매달 1일, 8일, 14일, 15일, 18일, 23일, 24일, 28일, 29일, 30일의 십재일(十齋日)에 부처님과 보살님과 모든 성현의 존상 앞에서 이≪지장경≫을 한 번씩 읽으면, 동서남북 백유순 내에서는 모든 재앙과 고난이 없어지며, 그가 사는 집안의 어른이나 아이가 현재 또는 미래의 백천세 동안 악도(惡道)에서 벗어나게 되느니라.
그리고 매달 십재일에 이 지장경을 한 번씩 읽으면, 현재의 집안에 모든 횡액과 질병이 사라지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하게 되느니라." <여래찬탄품>
이 기도법 중 앞의 것은 지장염불 기도법이요, 뒤의 것은 지장경 독송기도법이다. 이 둘 중 하나를 택하여 꾸준히 행하게 되면,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횡액이나 질병을 예방하고 풍족한 의식 속에서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명훈가피(冥熏加彼)'이다. 불자들이 흔히들 '가피를 입었다'고 하면, 역경에 처했을 때 그 일을 해결하는 것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더욱 좋은 가피는 불보살이 함께 하여 은근히 보호하는 명훈가피이다. 언제나 좋은 일이 함께 하고 나쁜 일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명훈가피 속에서 살 때 우리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가 있다.
부디 다급한 일이 일어나야만 기도를 하고 매달리는 불자가 되지 말고, 저축하는 마음으로 평소에 꾸준히 기도를 하기 바란다. 한 손에 1080알의 천주(天珠)를 쥐고 명호를 천 번 부르는 시간은 빠르면 10분, 천천히 불러도 20분이면 족하다.
이 짧은 시간을 투자하여 업장을 참회하고 지장보살의 무한자비를 '나' 속에 담는다면, 어찌 우리의 삶이 복되고 평화롭게 바뀌지 않으리. 지금 특별히 행하는 염불이나 독경이 없다면, 이 두 가지 기도법 중 하나를 택하여 꼭 실천해 보기를 감히 청하여 본다.
소원성취와 고난극복을 위한 지장기도
기도(祈禱)는 절대적인 힘을 지닌 님에게 매달려 어려움을 극복하고 소원을 이루는 행법이다. 곧 타력(他力)으로 스스로가 지은 업의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정진할 것을 가르치신 부처님 자력(自力) 법문에 위배가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존재도 중생인 이상에는 그 힘이 대단할 수가 없다. 평소에는 당당하던 이들도 시련이 주어지고 고난이 닥쳐오면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바로 그때, 나의 힘이나 나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마냥 고난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야 하는가?
아니다. 그 어떤 힘을 불러일으키는 기도를 하여 고난을 넘어서야만 한다. 남이 해 주는 기도가 아니라, 당사자인 '나' 스스로가 직접 기도를 하여 난관을 극복하여야 한다. 어려운 현실만큼이나 간절한 기도를 하여 참회의 눈물이 흘러 넘치고, 잠깐이나마 자비의 님과 하나를 이루는 삼매에 젖어들면, 가피를 입어 능히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참회와 삼매! 이것이 고난을 넘어서는 비결이다. 지극한 참회로 녹이지 못할 것이 없고, 삼매를 이루면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움에 달하였을 때 기도를 하지 못하거나, 기도를 하고자 해도 왠지 모르게 기도가 되지 않는 이는 그 업을 그대로 받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곧 기도는 절대적인 힘에 의지하는 것이지만, 주체적인 극복의 의지가 결핍되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는 이는 꼭 명심하여야 한다. 기도는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의 조화라는 것을….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불보살의 근본 서원력'과 '고난을 극복하겠다는 나의 의지'가 합하여져서 결실을 맺는 것이 기도성취인 것이다. 이 원리를 잘 새겨두기 바란다.
이제 ≪지장경≫의 내용으로 돌아가,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현재와 미래의 세상에서 백천만억의 여러 가지 일들을 이루고자 하면, 지장보살의 형상 앞에서 귀의하고 예배하고 공양하고 찬탄할 지니라. 여러 가지 소원이나 구하는 바가 모두 성취되리라." <견문이익품>
소원성취의 조건은 참으로 간단명료하다. 귀의, 예배, 공양, 찬탄이 모두이기 때문이다. 귀의는 확실한 믿음으로 '나'의 몸으로 한 배 한 배 정성껏 절을 하는 것이다. 집에서 공양을 올릴 경우에는 향과 꽃으로 족하고, 절에 가서는 향, 꽃, 초, 돈, 쌀 등을 바치면 된다.
그리고 찬탄은 지장보살께 감사하면서 지장보살의 큰 서원을 닮아가고자 하면 되는 것이다.귀의, 예배, 공양, 찬탄! 이 네 가지가 지장기도의 기본 요구조건이다. 누가 이를 어렵다며 실천하지 못할 것인가?
또한 ≪지장경≫에서는 불치의 질병, 사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감옥에 갇혔을 때, 사랑하는 이와 헤어졌을 때, 정신적으로 극히 피곤할 때, 갑자기 위기를 만났을 때, 매일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을 생각하며
1만 번을 염불하거나 ≪지장경≫ 한 번씩을 독송하게 되면 그 모든 재앙으로부터 해탈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 기간은 최소한 7일에서 21일, 49일, 백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이와 관련된 영험담 두 편을 함께 음미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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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서울의 홍서주 보살이 약 20년 전에 체험한 일이다. 당시, 그녀의 아들은 합판상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대리점으로부터 거래대금 300만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돈을 달라고 하자 대리점 사장은 묘한 제안을 하였다.
"지금은 나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한 건만 해결하고 나면 아주 괜찮아집니다. 1,500만원만 융통해 주십시오. 300만원도 바로 드리고, 1,500만원은 약속어음을 발행하여 500만원씩 세 달 동안 갚겠습니다."
아들은 300만원을 받을 욕심으로 누나의 남편인 매형에게 1,500만원을 빌려 대리점 사장에게 주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서주보살은 은행에 대리점의 신용을 알아보았더니 언제 부도가 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1,500만원은 매우 큰 돈이었고, 잘못되면 딸의 가정에도 큰 회오리가 몰아칠 판이었다.특별한 방법이 없었던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10시에 <지장보살예찬문>을 독송하며 158배씩의 절을 올리고, 지장보살염불을 하였다. 자비하신 지장보살님께서 이 어려움을 막아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마침내 500만원 1장의 기한이 돌아왔고, 그 전날밤 보살은 꿈을 꾸었다. 많은 조상들이 배를 타고 떠나려고 하는데 배가 진흙벌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가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한복차림의 키가 훤칠한 남자가 나타나 배를 밀었고, 배는 물에 떠 순조롭게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오후 5시 10분전까지도 입금이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보살은 지난밤의 꿈을 생각하면서 꼭 도와주실 것을 믿고 속으로 소리쳤다.'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5시가 되자 은행원이 '현찰로 줄까, 수표로 줄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보살의 기쁨과 놀라움과 감사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뒤에도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계속하였고 두 번째 약속 날짜가 다가오자 또 꿈을 꾸었다.
아들이 큰 나뭇가지에 매여 있는 그네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 그넷줄이 끊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네를 멈추려 하였지만 어찌나 힘차게 흔들리는지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넷줄이 막 끊어지려는 순간, 지난 번 꿈에 배를 밀어주었던 분이 나타나 나무 위로 뛰어오르더니 말을 하였다.
"손에 쥐고 있는 밧줄을 던져라."
어느새 보살의 손에는 밧줄이 쥐어져 있었고, 그것을 던졌더니 곧바로 받아 끊어지려는 그넷줄을 고쳐 매는 것이었다. 보살은 꿈 속에서도 조이던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좋아하였고, 두 번째 약속어음 500만원도 마감시간이 다 되어 해결되었다.
세 번째도 서주보살에게는 현몽이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을 따라가자 법당과 비슷한 넓은 방이 나타났으므로 거기로 들어가 대중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잠시 뒤 모습이 매우 수려한 스님 한 분이 나타나 문밖에서 안을 살피더니 보살을 보고 손짓을 하며 부르셨다.
"길을 잃어 집으로 갈 수가 없지? 이 길을 따라가라."
보살과 아들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조금 걸어 내려오자 아래쪽에 사는 동네와 빈집이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세 번째 약속어음도 잘 해결되어 1,500만원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 대리점은 그 후 곧 부도가 나서 망하였다고 한다.
1996년 여름, 대구에 사는 40대 후반의 주부는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에만 몰두하다가 자신이 유방암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을 때에는 유방암이 이미 말기에 이르러 수술로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불자였던 그녀는 갑자기 찾아든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여 괴로워하다가 문득 결심을 하였다.그래, 어차피 인생은 한 번 죽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의 고통이 나의 죄업 때문이 아니더냐. 마지막으로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올리며, 업장을 소멸하고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자.'
가족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힌 그녀는 선운사 도솔암을 찾아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365개의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식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므로, 하루 한두 끼만 먹으며 도솔암의 내원궁에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힘닿는 데까지 절을 하였다.
"지장보살님, 이 중생의 죄업을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23일째 되는 날 밤, 땀과 눈물로 온 몸이 흠뻑 젖은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어디에선가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정신 차려라.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잠만 자고 있어서야 되겠느냐?"그리고는 불단 위의 지장보살님께서 내려와 가슴 뒤쪽의 등을 어루만지더니 대침(大鍼)으로 세 번을 찌르는 것이었다. 지장보살님께서 세 번째 침을 빼는 순간, 그녀는 움찔하며 잠에서 깨어났고, 갑자기 가슴주위가 시원해짐을 느꼈다.
같은 시각, 도량석을 하던 스님들은 내원궁으로부터 붉고 푸른색의 빛이 하늘로 뻗쳐오르는 것을 보고 환희의 예배를 올렸다.
그날 이후 그녀의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고, 예정했던 백일기도를 마치고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암에 걸렸던 자취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이들 이야기에서 우리가 꼭 새겨야 할 것은 참회와 감사이다. 지장신앙의 근본경전인 ≪지장경≫은 지장보살을 중심에 놓고, 중생의 죄업과 고통과 참회와 해탈의 상관관계를 설하여 놓은 경전이다.
곧 중생의 그릇되고 고통스런 현실은 과거의 죄업에서 비롯되고, 참회를 통하여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으면 죄업이 녹아내리면서 원래의 편안함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장기도를 하는 이의 초점은 참회에 맞추어져야 한다. 지장보살을 생각하고 염불을 하면서 참회를 다하다 보면, 그리고 한 배 한 배 절을 올리며 지장보살과의 인연에 감사를 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진한 눈물이 솟구치면서 업장의 밑바닥이 뚫어지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지장보살이 꿈속에 나타나 가피를 내린다.
그런데도 기도를 하는 많은 이들은 참회와 감사보다는 매달리기에 급급하다. 물론 간절히 매달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받고 있는 고난의 원인이 죄업인 만큼, 참회하고 반성하고 감사하면서,
스스로가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기적인 기도보다는 참회하고 감사하고 새로운 원을 담아야, 새로운 삶이 싹트는 것이다.
정녕 기도하는 이라면 '잘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쉽게 나와야 한다. 그 다음에 '∼하여 주소서' '∼살겠습니다'라는 기원과 맹세가 뒤따라야 한다.
이러한 기도 앞에는 어떠한 고난도 녹아 내리고, 어떠한 어려움도 자취 없이 사라진다. 정녕 '참회와 감사'가 기도성취의 비결이거늘, 지장기도를 하는 이들이 어찌 이를 마다할 것인가!
한 분을 원불로 삼아 한결같이
이제 이번 호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불자들이 갈등을 일으키기 쉬운 한 가지 사항에 대해 당부를 드리고자 한다.
우리 불자들은 흔히, 죽은 다음 극락에 태어나려면 아미타불을 믿는 것이 가장 좋고, 현실의 고통을 없애려면 관세음보살을 찾는 것이 좋으며, 병을 낫게 하려면 약사여래, 영가를 천도하려면 지장보살이 으뜸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는 관세음보살을 신봉하다가도 늙으막에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영가천도를 한다면서 지장보살을 찾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불보살의 세계는 하나로 통한다.
아미타불을 염한다고 하여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관세음보살을 의지한다고 하여 영가천도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지장보살을 신봉했다고 하여 극락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 당나라 때 화주(華州) 혜일사(慧日寺)의 법상(法尙) 스님은 원래 사냥을 즐겼으나,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사냥도구를 모두 버리고 37세의 나이로 출가하였다. 그리고 78세가 될 때까지 지장보살을 모시고 한결같이 수행하였다.
스님이 입적하기 하루 전인 2월 23일, 지장보살님께서는 모습을 나타내어 말씀하셨다.
"그대는 미륵불께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행하시는 3회의 설법 중 제2회에서 도를 깨치게 될 것이다. 이제 그대가 죽게 되면 미륵보살께서 계시는 도솔천에 태어나리라."
"지장보살이시여, 5욕락의 즐거움이 한량이 없다는 천상에 태어나 쾌락을 즐기다 보면, 도를 닦을 생각을 내기 어렵다고 하옵니다. 그렇게 되면 부처를 이룰 날이 아득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의 소원대로 하려무나, 그대는 어떠한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가?"
"저는 물러남이 없이 정진할 수 있는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옵니다."
"그렇다면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전심전력을 다하여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불러라. 원대로 이루어지리라."
법상스님은 지장보살과 나눈 대화를 대중스님들에게 말하고, 하루 밤낮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며 극락왕생을 발원하였다. 그리고 대중스님을 불러 작별을 고하였다.
"나는 지장보살님의 인도로 원을 이루어 극락정토로 떠납니다. 스님들께서도 잘 정진하십시오."그리고는 합장한 자세로 앉아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입적하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법상스님을 극락으로 인도하신 분이 아미타불이 아니라 지장보살이시다.
좋다는 불보살을 모두 믿고 따른다고 하여 더 큰 소득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한결같은 믿음과 원력과 노력일 뿐이다. 그렇게만 하면 그 어떤 불보살이든 '나'의 소원과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여러 불보살님 가운데 한 분을 '나'의 원불(願佛)로 삼아, 꾸준히 믿고 염불하고 마음을 닦아 삼매의 힘을 길러야 한다. 누가 어떤 불보살이 좋다는 말에 동요되어 '나'의 원불을 바꾸지 말고, 꾸준히 한분의 불보살을 신봉하기 바란다.
그렇게 한분만 열심히 믿으면 삶의 행복도 영가천도도 극락왕생도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다.물론 각 신앙을 연계시켜 염불하고 수행하는 방법도 없지는 않다. 처음 믿음을 세울 때는 지장보살을 염하고,
그 다음의 평소에는 관세음보살을, 마지막 회향 시기에는 아미타불을 염하는 것도 좋은 수행법이다. 그러나 잘 지도해 줄 수 있는 스승이 없는 경우라면, 한 분의 원불을 택하여 한결같은 믿음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를 잘 믿어 힘이 생길 때 모든 성취가 '나' 속에 깃드는 것이니, 부디 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지조있는 믿음을 갖기를 간절히 당부드린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생활속의 지장기도 6 (마지막회) - 김현준(불교신행연구원 원장)
생활속의 지장기도
어느 비구니 스님의 지장기도
지장보살님은 모든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매일 아침마다 깊은 선정에 들어 일체 중생의 소원을 관찰하신다. 그리고 선정에서 깨어나 백천만억 분신을 보내어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고 이롭게 하신다.
밝고 맑고 걸림없는 빛이 가득한 지장보살의 분신이 모습을 나타내면 중생의 미혹과 집착과 괴로움들은 홀연히 사라지고 풍요와 자재와 원만함이 가득하여진다.
이는 ≪지장십륜경≫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고해(苦海) 속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사는 우리 중생의 입장에서 볼 때 어찌 뿌듯하고 든든한 마음이 샘솟지 않으리!
지난 5회에 걸쳐 우리는 지장보살이 어떠한 분이며, 지장보살의 근본서원과 현세이익, 처해진 상황에 따를 여러 가지 지장기도법과 영가천도법 등을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처해진 여러 가지 상황에 모두 적용될 수 있는 종합적인 지장기도법에 대해 살펴 보고, ≪지장신앙≫의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이 종합적인 기도법을 실천하여 생각 이상의 가피를 입었던 한 비구니 스님의 체험담부터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필자가 잘 알고 있는 이 스님께서 "현재 공부중이라, 이름만은 밝히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여기에서는 '운호'라는 가명을 쓰고자 한다.
어려서부터 몸이 유난스레 약하였던 운호스님은 주위로부터 나이 삼십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자주자주 병원 신세를 지면서 근근히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 적령기에 '영원 생명'을 찾는 공부를 하고 싶어 출가하였다.
출가 후 스님은 대만으로 유학을 가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다시 강원공부를 마쳤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전한 '나'의 것이 되기보다는 겉을 맴돈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공부를 더하고 싶었던 운호스님은 다시 대만으로 갔다. 그러나 약하기 그지없었던 몸은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내가 정녕 출가사문일진대, 내 모습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가 환희심을 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렇게 병약하고 무능한 나를 보고 누가 신심을 낼 것인가? 나는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치는 존재가 아닌가?'
이렇게 슬픈 생각에 잠겨 있던 스님은 때마침 대만에서 유행하고 있던 점찰법(占察法:십악과 십선을 적은 윷 같은 모양의 木輪을 던져 전생의 업을 알아보는 법)을 행하였다. 스님은 ≪점찰선악업보경≫에서 설한대로 지장보살의 명호를 열심히 부른 다음, 목륜(木輪)을 던졌다. 그러자 '살생업'이 많다는 괘가 나왔다.
'아, 살생을 많이 한 자는 몸이 약한 과보를 받는다고 했거늘, 나의 몸이 약하고 자주 아픈 것이 전생의 업보라는 것을 왜 깨닫지를 못하였던고?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도 죄업을 참회하여 업장을 소멸시키는 일이다.'
출가한 후 10년 동안 제대로 기도 한 번 못하였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스님은 지장기도를 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지장경≫ 전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1번 독송을 하고, '나무지장보살'을 천 번 부른 다음, <지장예찬문>을 외우며 158배를 한다. 그리고 <지장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 천 번을 불렀으며, 기간을 21일로 정하였다.
스님의 기도 목적은 업장 참회에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기도를 시작하자 원래의 기도 목적과는 달리 집안의 조상들이 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스님은 7일 마다, 한 번씩 간단한 음식을 마련하여 불보살님과 조상님, 그리고 유주무주고혼(有主無主孤魂)들께 시식(施食)공양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러자 첫 7일째, 조상들이 흰 옷을 입고 공양을 받으러 오는 것이었다.
이에 두 번째 7일과 세 번째 7일에는 '변식진언(變食眞言)'을 외우며 영가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관상(觀想)하였다. 음식을 적게 마련하였을지라도 진언을 외우며 관상을 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그 음식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관상을 하여서인지 스님은 공양이 차츰 뷔페식으로 바뀌는 꿈을 꾸었다. 조상님들은 상을 차려 놓은 특별실에서 공양을 들고, 유주무주고혼들은 아주 큰 홀에서 뷔페식으로 공양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7일날에는 모두가 음식을 먹고 천도가 되는 꿈을 꾸었다. 이렇게 스님은 영가천도라는 부수적인 가피를 입은 것이다.
가피를 입어 환희심이 가득하였던 스님은 기도기간을 백일로 늘여 잡고 더욱 마음을 모아 기도하였다. 30일째 되는 날 스님은 또다시 꿈을 꾸었다.스님은 지장보살께서 머물러 계신다는 어느 절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자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긴 마구니, 요상하게 생긴 마구니,
심지어는 외국 비구니의 모습을 띤 마구니까지 입구에 일렬로 늘어서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장삼을 크게 휘둘렀고, 그 순간 모든 마구니들은 땅바닥에 엎드리며 항복을 하였다.
스님이 당당한 걸음으로 절문 안으로 들어서자, 허공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수각(水閣)에서 손을 씻어라."
말씀을 따라 수각에 들어가 손을 씻자, 오른손을 씻은 물은 새까맣게 변하였고 왼손을 씻은 물은 반쯤 까만 회색빛이 되었다.
'아! 몸으로 지은 신업(身業)이 소멸되었구나.'
살생 등의 나쁜 짓을 주로 저지른 것이 오른손이었기에 그 씻은 물이 새까만 색, 왼손은 오른손을 도와 나쁜 업을 짓는 보조역할을 하였기에 그 씻은 물이 회색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손을 씻고 신업의 소멸을 느끼고 나자 스님의 몸은 한없이 가벼워졌고, 꿈속에서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게 되었다.
또 며칠이 지나 35일째 되는 날, 운호스님은 한국의 여러 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고, 65일째 되는 날에는 비구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다.
이것이 자서수계(自誓授戒)이다.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는 스스로가 지극한 정성으로 참회하고 발원하여 꿈속에서 불보살님으로부터 직접 수계를 받는 자서수계법을 설하고 있는데, 운호스님은 이 법에 의해 수계를 받아 마친 것이다.
그리고 백일 기도를 회향하는 날, 스님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다.수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다며 노천온천이 있는 지하로 들어가고 있었다. 스님도 그곳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줄이 너무나 길어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며 서 있었다.
그때 마침 대만에서 함께 공부를 했던 비구니가 앞쪽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 비구니는 스님을 손짓하여 부르더니 자기 앞에 서도록 하였다.마침내 노천온천으로 들어 순서가 되었을 때 대만 비구니는 온천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운호스님은 왠지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는 물 속으로 들어가기가 싫어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스님은 주위를 살피다가 조금 떨어진 반석 위에 까만 옷을 입고 앉아 계시는 아는 처사님을 발견하였다. 처사님은 8년 동안 지장기도를 한 분이었다. 스님은 그분 앞으로 가서 아래의 옷을 모두 벗은 다음 쭈그리고 앉았다. 처사님은 스님의 입 바로 밑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말씀하셨다.
"여기에 악귀가 붙어 있노라."
그리고 여드름을 짜듯 두 손가락으로 입 밑을 누르자, 고름이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것이었다.
"이제 되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되느니라."
운호스님은 그 말씀 끝에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었음을 느꼈다. 또한 '삿된 생각만 조심하라'는 것은 의업(意業)을 조심하면 된다는 깨우침이었다.
환희로움이 온 몸을 감싸고 도는 것을 느끼면서 스님은 벗어 놓은 옷을 입은 다음, 허공을 날아 2층 건물의 옥상에 올라섰다. 그곳에는 스님보다 키가 두 배나 큰 분이 넷이나 있었다. 그때 건물 아래로부터 스님을 찾는 대만 비구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운호스님, 운호스님…."
"저 여기 있어요. 잘 가요."
서로가 인사를 하며 헤어지는 순간 운호스님은 꿈에서 깨어났고, 백일기도 또한 마쳤다.
그런데 참으로 신통한 변화가 일어났다. 기도 전까지는 경전을 보고 있으면 내용이 분명히 다가오지 않았으나, 기도 후부터는 내용이 너무나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기도 후 스님은 아미타불의 정토신앙을 믿기 시작하였는데, ≪아미타경≫ 등을 읽으면 삽화가 그려져 있는 동화책을 보듯이 극락 세계의 여러 모습들이 그대로 펼쳐져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경전의 내용이 저절로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총명득력(聰明得力)! 총명의 능력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잔병치레를 많이 하였던 몸도 그 누구보다 건강하여졌다. 이후 스님은 '인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 인도로 떠났고, 그곳에서 도력이 매우 높은 티벳의 고승들을 만나 그 분들의 지도 아래 현재 용맹정진을 하고 계신다.
스님의 원래 목적은 업장소멸에 있었고, 처음에는 21일 동안만 기도를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자 생각지도 않았던 조상들이 나타났고, 이에 스님은 영가천도를 해주고자 하였다.
영가들이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관상(觀想)하면서 시식을 행한 결과, 많은 영가들이 가피를 입어 삼칠일(21일)만에 모두 천도가 되었다.
신심이 크게 일어난 스님은 21일 기도를 백일기도로 연장하여 더욱 열심히 매진한 결과, 꿈에서 사미니계와 비구니계를 받는 자서수계를 성취하였으며, 몸으로 지은 죄업인 신업(身業)이 소멸되는 꿈과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는 가피를 입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된다'는 말씀과 함께…. 이렇게 신업과 구업이 소멸되자 스님에게는 건강과 총명이 가득하여 졌고,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길도 저절로 열렸던 것이다.
곧, 백일지장기도를 통하여 영가천도, 업장소멸, 자서수계, 총명득력, 건강 및 새로운 스승을 만나 향상의 경지로 나아가는 가피까지도 모두 얻은 것이다.
구체적인 기도방법
사람이면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하고 뜻하는 바를 이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은 우리의 바람처럼 되지 않는다. 타고난 업보와 뜻하지 않은 장애들이 수시로 찾아들어 앞길을 막는 것이다.
이 장애들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에는 뜻하는 바대로 살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행복도 향상의 삶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녕 우리가 뜻하는 바를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공부를 잘하여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앞의 비구니 스님이 행한 바와 같은 방법으로 한차례의 백일기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큰스님들께서는 종종 말씀하신다.
"이 세상의 장애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첫째는 업장이요, 둘째는 영가의 장애이다."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시련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 업장과 영가의 장애 때문이라는 가르침이시다. 그런데 앞의 예와 같은 지장기도를 행하여 영가천도와 업장소멸을 한꺼번에 이루게 되면, 뜻하는 바대로 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종합적인 지장기도법을 논함에 있어 운호스님의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늘어 놓았던 까닭도 다름이 아니었다. 스님의 기도법이 평소에 정형화시키고 싶었던 지장기도법과 너무나 꼭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큰 일을 이루고자 하는 이나 사업을 시작하는 이, 결혼, 공부, 자식의 일, 삶의 대전환을 가져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이 종합적인 지장기도법에 따라 백일기도부터 할 것을 간곡히 권하여 본다. 한 번 해보라. 틀림없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그 방법을 다시 한번 새겨보자.
1. ≪지장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1번 독송.
2. '나무지장보살'을 천 번 염함.
3. <지장보살예찬문>을 외우며 158배를 함.
4. <지장보살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을 천 번 염함.
그럼 어떻게 하여야 가장 효과적으로 기도를 할 수 있는가? 이들 각각에 대한 방법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 ≪지장경≫을 읽을 때
먼저 3배를 올리고 ≪지장경≫을 펼친 다음 축원부터 세 번 하여야 한다."이 경을 읽는 공덕을 선망조상과 유주무주 영가의 천도, 그리고 일체중생의 행복을 위해 바칩니다. 대원본존 지장보살이시여,
가피를 내리시어 이 죄업중생의 업장을 녹여주시옵고, …가 꼭 성취되게 하옵소서."(3번) 꼭 이렇게 축원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원(願)에 맞게 적당한 축원문을 만들어 발원을 하면 된다. 다만 그 공덕을 '나'와 내 주위에만 임하게 하기보다는 영가와 일체중생에게 먼저 돌린 다음, '나'와 내 주위에 가피를 내려주십사 하고 청하라는 것이다.
≪지장경≫을 읽을 때 한문 해독능력이 뛰어난 이라면 한자음으로 읽는 것이 좋지만, 한문 해독능력이 충분하지 못한 이는 뜻을 한글로 풀어놓은 번역본을 읽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읽는 내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글자만 읽게 되면, 감동이 없을 뿐 아니라 공덕 또한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영가는 우리의 말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읽는 존재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영가도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지장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나' 스스로에게, 또 영가에게 들려준다는 자세로 정성껏 읽어야 한다.
절대로 '그냥 한 편을 읽기만 하면 된다'는 자세로 뜻모르고 읽어서는 안된다. 스스로 뜻을 새기고 이해를 하며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지장경≫을 읽다가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거나,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한 번 읽으며 사색에 잠기는 것이 좋다. 독경을 한다고 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좔좔좔 시냇물 흘러가듯 읽어 내려가야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독경보다는 간경(看經)이 훨씬 더 수승한 공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간경! 간경은 경전을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는 것을 넘어서서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며 읽는 것이다. 경전의 내용이 '나'의 마음 속에 또렷이 살아있도록 하는 것, 경전의 내용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간경인 것이다.
이렇게 간경을 하면 ≪지장경≫의 내용이 그대로 '나'의 것이 되고, 감동 속에서 읽으면 '나'는 차츰 지장보살과 닮아가게 되며, 그 닮음 속에서 천도와 업장 참회는 물론이요 무량공덕이 생겨나게 된다. 거듭거듭 당부드리오니, 결코 ≪지장경≫을 형식적으로 읽지 말기 바란다.
≪지장경≫을 다 읽은 다음에도 그 공덕을 회향하는 축원을 세 번 하여야 한다. "이 경을 읽은 공덕을 ○○(본관) ○씨 집안 선망조상과 유주무주 영가의 천도, 그리고 법계 일체 중생의 행복에 회향하옵니다. 그리고 저희가 지은 업장이 소멸되고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어지이다."(3번)
꼭 ≪지장경≫을 읽은 공덕을 회향하여 마음밭에 새로운 씨를 심어야 한다.
2. '나무지장보살' 천 번 염송
두번째로 '나무지장보살'을 천 번 염송할 때는 그냥 '지장보살'이라고 염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귀의한다는 뜻의 '나무'를 붙여 '나무지장보살'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리고 108염주를 이용하기보다는, 1080알을 꿰어서 만든 천주(千珠)를 이용하여 한 알에 한 번씩 '나무지장보살'을 염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자세는 꼭 무릎 꿇고 앉지 않아도 되며, 반가부좌를 하는 것이 무난하다.
입으로 '나무지장보살'을 부르되 너무 급하거나 느리게 부르지 말고, 적당한 고속도로 또렷하게 마음에 새기며 부르는 것이 좋다. 단, 소리를 크게 내라는 것은 아니다. 환경에 따라 주위에 방해가 되지 않고 '나'의 마음을 잘 모을 수 있는 크기로 염하면 된다.
이때 머리로는 지장보살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좋다. 지장보살님께서 높은 곳으로부터 '나'와 나의 주위에 자비광명을 비추어 주는 것을 관상하면서 염불을 하라는 것이다.
만일 자식, 부모 등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경우라면 '나'가 아닌 그 당사자에게 지장보살의 자비광명이 임하는 듯이 관상하여야 한다. 지장보살의 가피가 그 당사자에게 직접 가면 바로 해결될 수 있는데, 가피가 '나'에게 왔다가 그 당사자에게로 옮겨가도록 하면 그만큼 늦어질 뿐 아니라, 자칫 가피가 미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염불을 할 때 마음 속으로는 오로지 업장 참회를 기원하여야 한다. "지장보살님, 잘못했습니다. 모든 잘못을 참회합니다…."
그런데 업장소멸을 바라며 기도하는 불자들 가운데에는 '업장을 소멸시켜 주십시오'하면서 기도하는 이들이 생각 외로 많다.
그러나 이렇게 '소멸시켜 달라'며 기도하기보다는 '잘못했다'고 하여야 한다.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주체적인 참회요, '소멸시켜 달라'고 하는 것은 매달리는 참회이다. 잘못은 내가 저질러 놓고 잘못을 소멸시켜 달라는 것은 모순일 뿐이다.
'잘못했다'고 참회하면 업장이 저절로 녹아내리지만, '시켜달라'고 요구하면 언제까지나 매달리는 존재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을 간절히 '잘못했습니다'하면서 참회할 때 내 마음 속의 그릇된 응어리가 녹아 내리고,
마음 속의 응어리가 녹아 내릴 때 그 잘못을 용서하지 않을 존재는 없다. '잘못했습니다' '무조건 참회합니다'고 할 때 모든 업장이 녹아 내리는 것이다.
이상과 다같이 입으로 '나무지장보살'을 부르고, 머리로 지장보살님의 자비광명이 임하는 것을 그리고, 마음 속으로 진심어린 참회를 하게 되면 모든 죄업들이 티끌로 화하고 행복이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1080번의 '나무지장보살' 염불이 끝나고 나서 다시 회향하고 축원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3. <지장보살예찬문>을 외우며 158배
<지장보살예찬문>은 간단한 찬탄의 글과 함께 불보살님의 명호와 권능에 따른 여러 지장보살님의 이름을 외우며 158배의 지심귀명례를 올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지장보살예찬문>은 크게 서론에 해당하는 서분(序分), 본론에 해당하는 정종분(正宗分), 공덕을 회향하는 회향발원(廻向發願)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종분은 다시 10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순서에 따라 내용과 예찬의 방법 등을 함께 살펴보자.
서분 : 향 하나를 피우며 부처님의 강림을 기원하는 간단한 게송으로 시작된다. 무릎을 끊고 앉아 이 게송을 외운 다음 '지심귀명례 시방법계 상주삼보(至心歸命禮 十方法界 常住三寶)'를 염하며 삼보에 귀의하는 첫 번째 절을 올린다.
다시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나무지장왕보살마하살'을 세 번 부른 다음, 지장보살의 공덕을 찬탄하는 다소 긴 게송을 외운다.
정종분 : 이 정종분은 '지심귀명례'와 불보살의 명호를 외우며 157배를 올리는 예찬문의 핵심부분으로, 그 구성을 크게 불·법·승 삼보의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고, 세분하면 10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에서는 10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지심귀명례 본사석가모니불 ∼ 지심귀명례 청정연화목불' (6번 예배)
이 첫 번째 단락에서는 여섯 번의 지심귀명례를 한다. 이 사바세계의 근본 스승이신 석가모니불을 비롯하여 아미타불, 그리고 지장보살의 전생담과 관련하여 ≪지장경≫에 등장하는 네 분 부처님 등, 모두 여섯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것이다.
이 때 '지심귀명례'를 외우며 몸을 일으키고, 불보살님의 명호를 외울 때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면 된다.
`지심귀명례 무변신불 ∼ 지심귀명례 진시방삼세일체제불' (21번 예배)
제2단락에서는 '지심귀명례를 올리며 21분 부처님 명호를 외운다. 이 가운데 19분은 ≪지장경≫ 제9 <칭불명호품>에 등장하는 부처님들의 명호로서, 중생에게 한량없는 공덕과 이익을 안겨준다고 한다.
그리고 19분 부처님 다음의 '지심귀명례 오십삼불'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의 현겁(賢劫)에서 참회를 관장하는 53분의 부처님을 한데 묶어 예배를 드리는 것이요, 마지막 '진시방삼세일체제불'은 시방삼세의 부처님 모두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지심귀명례 지장보살본원경 ∼ 지심귀명례 진시방삼세일체존법' (4번 예배)
이 세 번째 단락은 법보(法寶)에 대한 지심귀명례이다. 지장신앙의 근본경전인 ≪지장보살본원경≫, ≪지장십륜경≫, ≪점찰선악업보경≫의 세 경전과 시방 삼세에 가득한 모든 진리에 대해 예배를 올리는 것이다.
'지심귀명례 입능발지정 지장보살 ∼ 지심귀명례 입해전광정 지장보살' (20번 예배)
제4단락부터 제10단락까지는 지장보살에 대한 지심귀명례이다. 이 네 번째 단락은 지장보살님께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성숙시키기 위해 새벽마다 드는 20가지의 선정삼매 하나하나를 찬탄하여 예배를 올리는 것이다.
가령 '지심귀명례 입능발지정(入能發智定) 지장보살'은 '능히 지혜를 발하는 선정에 드신 지장보살님께 지심으로 귀명례하옵니다'라는 뜻이 된다.
'지심귀명례 이제정력제도병겁 지장보살 ∼ 지심귀명례 이제정력제기근겁 지장보살' (3번 예배)
제5단락은 중생에게 닥치는 큰 재앙인 도병(刀兵)과 질병(疾病)과 기근(饑饉), 곧 전쟁과 병과 굶주림에 대한 재앙을 남김없이 없애주시는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에 대한 지심귀명례이다.
'지심귀명례 현불타신 지장보살 ∼ 지심귀명례 현지옥제유정신 지장보살' (27번 예배)
지장보살님께서 부처님의 몸으로부터 각종 천신, 남녀, 심지어는 염라대왕과 지옥졸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내는 27가지 변화신(變化身)에 대해 한 배 한 배 절을 올리는 것이다.
'지심귀명례 증장사중수명 지장보살 ∼ 지심귀명례 증장사중육도피안묘행 지장보살' (22번 예배)
제7단락은 ≪지장십륜경≫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4부대중에게 갖가지 이익을 증장시켜주겠다고 맹세한 지장보살의 증장서원(增長誓願)을 외우며 22번의 예배를 드리도록 되어 있다. 이 서원은 수명, 무병, 자비, 지혜, 광명, 방편 등의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지심귀명례 영리우고희구만족 지장보살 ∼ 지심귀명례 영리우고만족다문 지장보살' (15번 예배)
이 부분은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의 공덕을 찬탄한 ≪지장십륜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예배토록 한 것이다. 곧 지장보살님께서 중생의 어떠한 문제와 고통을 해소시켜 주고 어떠한 소원을 충족시켜 주는가를 한배 한배의 절 속에다 담아 놓은 것이다.
지장보살님께 '지심귀명례'를 올리는 제4에서 제9단락 가운데 제8단락까지는 ≪지장십륜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예찬문을 만든 것임을 참고로 밝혀둔다.
'지심귀명례 우살생자설숙앙단명보 지장보살 ∼ 지심귀명례 백천방편교화중생 지장보살' (23번 예배)
이 단락은 ≪지장경≫ 제14 <염부중생업갑품>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살생, 절도, 사음 등의 지은 죄에 따라 받게 되는 단명, 빈궁, 투쟁 등의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지장보살님께 22번의 지심귀명례를 올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생을 교화 하기 위해 백천만 가지 방편을 나타내는 지장보살님께 예배를 올리는 것이다.
이상의 제4∼제9단락까지의 지장보살에 대한 지심귀명례는 총 110번이 되며, 이로써 지장보살에 대한 예배는 일단락된다.
⑩ '지심귀명례 문수사리보살 ∼ 지심귀명례 진시방삼세일체현선승' (16번 예배)
제10단락은 지장보살을 제외한 기타 승보에 대한 지심귀명례이다. 곧 문수, 보현, 관음을 비롯한 열세 분의 보살과 시방삼세의 모든 보살, 지장보살의 협시인 도명존자(道明尊者), 그리고 시방삼세의 모든 현성승(賢聖僧)께 지심귀명례를 올리는 것이다.
회향발원 : 이상으로 157배의 지심귀명례를 끝내고, 그공덕을 회향하는 게송을 읊는다.
예배하온 큰 공덕과 뛰어난 행의 가이 없고 수승한 복 회향합니다. 원하오니 고에 빠진 모든 유정들 어서 빨리 극락왕생 하여지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무대자대비 대원본존 지장보살'을 세 번 외우고 끝을 맺는다.
지장신앙의 뿌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지장보살의 서원과 권능 등을 남김없이 담은 이 예찬문을 읽으며, 어찌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리! 오로지 정성을 다해, 그야말로 '지심귀명례'를 올릴 것을 당부드린다.
4. '지장보살' 염불 1천 번
종합적인 지장기도법 중 마지막으로 하는 1천 번의 '지장보살'염불 때에는, 앞의 '나무지장보살'을 외울 때처럼 천천히 외우기보다는 마음을 집중하여 빨리 외우는 것이 좋다.
'나무'를 빼고 '지장보살' 네 글자만 외우되, 한 손에 천주를 쥐고, 들쉼과 날숨을 가릴 것 없이 끊임없이 외어야 한다. 그야말로 지장보살과 내가 하나 되도록 간절히 염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천 번의 빠른 '지장보살' 염불 후 순간적인 고요가 찾아들 때, 다시금 머리 조아리며 간절히 발원을 하고 회향을 하면 기도가 끝난다. 이 종합적인 지장기도법에 따라 한차례 백일기도를 하여 새로운 천년의 초석을 다지기를 염원해 본다.
이상으로 6회에 걸쳐 연재하였던 <지장신앙, 지장기도법>에 관한 글을 끝맺음하면서 절대로 잊지 말기를 바라는 한 가지 사항을 당부드리고자 한다.
그것은 지장보살님의 위신력과 자비광명이 이 법계에 가득 차 있으며, 우리가 함께 하고자 할 때 지장보살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더 분명히 이야기하면, 지장보살님은 우리 속에 이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지장보살을 염할 때 우리는 지장보살의 분신이 되고 지장보살과 같은 큰 힘을 지닐 수 있게 된다. 어찌 고통 극복이나 조그마한 소원성취로 그치랴!
정녕 '나' 속의 지장보살님은 자비와 지혜와 행복의 원천이니, 정성을 다해 ≪지장경≫을 읽고 지장보살을 염하며 '나' 속의 지장보살을 발현시켜 보라. 틀림없이 우리 속에 감추어져 있던 불성(佛性)이 개발되어 대해탈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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