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과 아미타불/염불에 관한 장

[스크랩] 선도의 칭명염불

慧蓮혜련 2015. 3. 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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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도의 칭명염불
 

 
 

 
 
생애와 저술
도작을 이어받아 가재는 <정토론>을 저술하고 선도(善導)는 <관경소>를 저술하였다. 가재가 도작의 <안락집>을 개념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끝난 것에 비해, 선도는 도작의 사상을 재천명하여 정토교를 대성했다. <고승전>에는 광명사(光明寺) 선도와 오진사(悟眞寺) 선도 두 전기가 있는데, 일반적으로(특히 일본 정토종)는 동일인으로 간주하여 광명사 선도라 부른다.
선도(613~681)는 수나라 대업 9년(613)에 사주(四州, 江蘇省 宿遷縣)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상 생활에서 마음가짐이 엄중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어릴 때 출가하여 <법화경> <유마경>을 독송하였는데 생각하는 바가 있어 서고에 들어가 대장경을 열람하다가 <관무량수경>을 발견하였다. <관무량수경>에서 설하는 16관에 매료되어 이때부터 서방왕생을 원하였으며, 여산 혜원의 유적을 사모하여 여산에 올라 점점 그 신념을 강하게 굳혔다.
그 후 종남산(陝西省 長安縣)의 오진사(悟眞寺)에서 반주삼매를 수년간 수행하고, 정관 년간 (627~649)에 진양(晋陽, 山西省 太原縣)으로 가 도작을 알현했으며, <관무량수경>의 강의를 듣고 이 관문(觀門) 이야말로 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자 빠른 법임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장안으로 들어가 귀천을 가리지 않고 교화에 힘썼으며, 불과 3년만에 성내에 염불 소리가 가득 찼다고 전한다. 또한 <아미타경>을 10만 권 베끼고, 정토의 변상(變相)을 3백 포나 그렸으며, 횡폐한 가람이나 탑을 보는 즉시 수리복구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화에 힘썼다. 당나라 영륭 2년(681) 3월 14일에 69세로 입적했다.
저술로는 <관경소>(<관무량수경소>) 4권, <법사찬(法事讚)> 2권, <관념법문(觀念法門)> 1권, <왕생예찬게> 1권, <반주찬> 1권, 등 5부 9권이 있다. <관무량수경소>는 현의분(玄義分)·서분의(序分義)·정선의)定善義)·산선의(散善義) 네 장으로 되어 있어 이것을 '사첩소(四帖疏)'라고도 하며, 이것에 의해 담란과 도작의 정토교가 대성되었으므로 이 계통을 선도류라 부른다.

선도의 정토사상
선도의 교학은 <무량수경>을 근본으로 하면서도 <관무량수경>을 표면에 표방하고 있으며, <관무량수경>에 대한 정영사 혜원이 나 천태대사 지의, 가상사 길장의 잘못된 해석을 시정하였다. 그는 아미타불 본원의 힘을 정토에 태어나기 위해 작용하는 힘(增上緣)으로 해석하여, 이것을 믿고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면 틀림없이 어떠한 어리석은 사람도 아미타불의 진실정토(報土)에 태어날 수 있다 하고, 여기에 <관무량수경>의 진실한 뜻이 있음을 밝혀 '고금을 해정(楷定)'하는 독자적인 해석을 내렸다.
즉, 그는 자신의 체험을 통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여러 가지 탁월한 견해로 전개하여 정토사상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큰 비약을 가져왔는데, <관무량수경>의 16관을 정선(定善) 13관, 산선(散善) 3관으로 나누고 전체를 범부를 위해 설한 것으로 간주하여, 예를 들어 오역(五逆)이나 정법을 비방하는 악인이라도 정토왕생이 가능했다고 했다. 다음에 설명할 그의 '이종심신(二種深信)' 이나 '정조이업(正助二業)'사상은 그 단면을 말해 주는 것으로서, 그의 사상 속에는 대승불교의 한편에 위치하는 정토교의 관념을 뛰어넘어 정토교야말로 대승 중의 대승이라는 자각이 엿보인다.

정토왕생의 요인
불교사에서 선도가 이룩한 공적은 정토왕생 사상을 정토교로서 완전히 독립된 실천체계를 구축한 점이다. 도작의 성도(聖道)와 정토(淨土) 이문(二門)의 교상판석에 의해 정토교가 하나의 종파로서 성립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으므로, 선도는 정토왕생의 방법으로서 안심(安心)과 기행(起行)과 작업(作業)을 설하여, 정토문의 마음가짐과 수행법과 그 실천방법을 조직화하여 정토문의 이론과 실천방법을 체계화하였다.
지금까지 정토왕생자의 마음가짐과 수행방법은, 세친의 오념문을 대담하게 해석한 담란의 사상에 의지하였는데, 선도는 이 담란의 오념문 해석을 새로운 각도로 연구하였다. 즉 예배·찬탄·작원·관찰·회향 다섯 가지 가운데 담란은 작원과 회향을 삼불삼신(三不三信)의 신심(信心)과 왕상회향·환상회향의 보리심을 말하는 것이라 했는데, 선도는 이것을 정토왕생자의 마음가짐 즉 안심(安心)이라 하고, 나머지 예배·찬탄·관찰은 신·구·의의 실천에 관한 것이므로, 이것에 새롭게 '독송'과 '칭명' 둘을 더하여 수행방법의 문제 즉 기행(起行)이라 했으며, 마지막으로 안심과 기행을 실천하는 방법에 네 가지가 있다고 하여 사수(四修)를 들고 있다.
먼저 안심(安心)이란 정토에 왕생하는 자의 마음가짐인 심앙심을 말한다. 염불왕생의 원이라 불리는 <무량수경> 제18원의 "지심으로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내 이름을 내지 열 번 불러 내 나라에 태어날 수 없다면"이라는 '내지 십념'은 기행(起行)이라 불리는 수행방법에 해당하며, 나머지 '지심으로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내 나라에 태어난다'에 상당하는 것이 바로 안심(安心)이다. 선도는 안심을 지성심(至誠心)과 심심(深心)과 회향발원심(廻向發願心) 세 가지라 했다. 즉 제18원의 '지심으로'하는 마음가짐이 지성심이고, '신심과 환의심을 내어'라는 마음가짐이 심심이며, '내 나라에 태어난다'고 하는 마음가짐에 상당하는 것을 회향발원심이라 한 것이다.
선도는 이 세 가지 마음 가운데 지성심을 진실심(眞實心)이라 해석하여 '허가부실(虛假不實)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진실한 마음 속에 신·구·의 삼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의 저술 <관무량수경수> 제4의 지성심을 해석하는 곳에서는, 겉으로는 선으로 보여도 안으로는 탐·진·치 등의 사악함을 저지르는 것이 허가(虛假)의 행이고, 잡독(雜毒)의 선(善)이기 때문에, 안팎이 모두 변함없는 진실심으로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진실심이란,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밖으로 행하느 것이 일치한 행동, 즉 예배를 한다면 마음으로나 모습으로나 똑같이 예경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다음에 심심(深心)이란 세친의 요념문 중 '작원문'에 해당하는것으로서 담란의 삼불삼신(三不三信)에 상당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깊은 신심(信心)'을 말한다. 선도의 <관무량수경소>에 의하면, 심심에는 기(機)의 신(信)과 법(法)의 신(信)이 있다.
기의 신이란 자신은 죄악이 깊어서 생사에 유전할 수밖에 없는 자로서, 이 생사를 벗어나 성불할 방법이 없는 자라고 깊이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한 후, 자신의 무력함을 깊이 자각하는 것이다.
법의 신이란 불력(佛力)과 왕생의 행(行)을 믿는 것인데, 그중 불력을 믿는 것을 취인입신(就人立信)이라한다. '취인'의 '인'은 아미타불과 제불을 의미한다. 먼저 아미타불은 48원으로 중생을 정토에 왕생하게 하는 본사(本師)라고 깊이 믿고, 이어 석가모니불은 <무량수경>이나 <관무량수경>을 설해서 아미타불의 정토를 가르치고 찬탄한 사바세계의 교주라는 것을 믿으며, 또한 시방의 제불은 아미타불을 칭찬하는데, 이것은 아미타불의 중생을 정토에 왕생시키는 것이 틀림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시방의 제불을 증명사(證明師)라고 깊이 믿는 것이다.
법의 신 가운데 왕생의 행을 믿는다는 것은 취행입신(就行立信)이라한다. 이것은 왕생을 위한 행(起行)으로 간주되는 다섯 가지 정행(正行), 즉 독송·예배·찬탄·칭명·관찰을 정토에 왕생하기 위한 행(行)으로서 틀림없다고 깊이 믿는 것이다.
선도의 <왕생예찬게>를 보면, 지금 설명한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고 있다. 심심(深心)은 진실한 신심(信心)을 말하며, 그 신의 내용은 먼저 자기 자신은 번뇌의 구족으로 선근이 극히 적기 때문에 생사유전에서 자력으로 나오기 어렵다고 믿는 것(機를 信한다)과, 아미타불의 본원력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과, 아미타불의 명호를 십성(十聲)이든 일성(一聲)이든 외우면 왕생을 얻는다(就行立信)는 것을 깊이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을 심심이라 한다.
셋째로 회향발원심은 오념문의 제5 회향문에 해당하는데, 선도는 ①자신이 행한 신·구·의 삼업의 선근은 물론, ②타인의 신·구·의 삼업으로 선근을 행하면 그것을 즐거워하고, 타인의 선행을 즐거워해 준 선근까지도 모두 왕생을 위해 회향해서 왕생을 원하는 것이 회향발원심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선도는 왕생을 위해 일체 자타의 선근을 회향하는 마음을 회향발원심이라 하는데, 이 것은 담란의 왕상(往相)과 환상(還相) 두 회향 가운데 왕상회향에 상당하는 부분이다.
선도는 환상의 회향심도 설명하는데, <관무량수경소>에서는 "회향이란 저 나라에 태어난 후 다시 대비심을 일으켜 생사로 되돌아와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말한다." 하였고, <왕생예찬게>에서는 "저 나라에 태어난 후 육신통을 얻어 사바세계로 되돌아와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할 것이다."라 하였다. 두 문장 모두 왕생의 회향심으로 정토에 왕생을 원하는 것은 오직 왕생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토에 왕생했으면 정토에서 생사에 괴로워하는 자를 구제하는 능력을 획득하여 다시 현세로 되돌아와 중생을 구제한다고 하는 환상회향을 위한 것이다.
선도의 회향발원심에는 담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왕상과 환상 두 가지 회향이 들어 있는데, 담란의 경우는 무상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을 강조하여 그 보리심 위에 두 가지 회향심이 나타난다고 했지만, 선도의 경우는 보리심을 발하는 것은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회향발원심의 근거는 <무량수경> 제 19월의 '내 나라에 태어나고자 하는'에 상당하는 원생심(願生心)과 <관무량수경>의 구품(九品) 중의 상품상생자(上品上生者)의 회향발원심에 따른 것으로서, 보리심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선도의 경우 지성심과 심심과 함께 발하는 회향발원심도 보리심을 자각해서 발하는 성인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보리심도 없는 범부에게 발하게 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이것을 보리심을 전제로 한 회향심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리심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내용적으로는 보리심과 같으며, 또한 정토에 왕생하면 필연적으로 보리심의 보살행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보리심이란 말을 없지만 실제로는 보리심이라 해야 한다.

정업과 조업
세 가지 마음(三心)은 정토교에서 안심(安心)이라 부르는 것으로서, 정토를 원하는 자들의 마음가짐을 규정한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실천하는 정토왕생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는 행(行)을 기행(起行)이라 한다.
오념문 가운데 안심에 상당하는 것은 작원문과 회향문이기 때문에, 이 기행에 해당되는 것은 예배문과 찬탄문과 관찰문이다. 선도는 <왕생예찬계>의 오념문 해석에서 이들을 다음과 같이 설한다.

첫째로 신업(身業)의 예배문이란, 일심으로 오로지 공경 합장하고 향과 꽃으로써 공양하여 저 아미타불을 예배한다. 예배할 때는 오로지 저 부처님을 예하고 필명(畢命)을 다하며, 다른 것을 예(禮)함을 섞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배문이라 한다.
둘째로 구업(口業)의 찬탄문이란, 뜻(意)을 오로지 해서 저 부처님의 신상(身相) 광명과 일체 성중(聖衆)의 신상광명과 저 나라의 일일체 보배장엄의 광명 등을 찬탄한다. 그러므로 찬탄문이라 한다.
셋째로 의업(意業)의 억념 관찰문이란, 뜻을 오로지 해서 저 부처님과 일체 성중의 신상광명과 국토의 장엄 등을 염하여 관한다. <관무량수경>에 설한 것과 같다. 오직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이들을 항상 억(憶)하고 항상 염(念)하여, 항상 생각(想)하고 항상 관(觀)하기 때문에 관찰문이라 한다.

선도는 오념문의 예배와 찬탄과 관찰을 신, 구, 의로 행하는 수행방법으로서의 기행(起行)이라 보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다시 독송과 칭명을 더한 후, 찬탄문을 찬탄공양이라 확대, 해석해서, 다섯 가지의 정행(正行)을 제시하였다.
선도가 새롭게 확충해서 만든 기행의 다섯 가지 정해은 ①독송, ②관찰, ③예배, ④칭명, ⑤찬탄공양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제2 관찰과 제3 예배와 제5 찬탄에 대해서는 위에 인용한 <왕생예찬게>의 오념문 해석에서 말하는 그대로다.
이 다섯 가지 정행에서 선도가 새롭게 첨가한 독송과 칭명과 공양 세 가지는 담란에게는 없던 것이며, 또한 도작도 그 주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던 점을, 선도가 보충해서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 중대한 의의가 있다.
선도가 새롭게 첨가한 것 가운데 제5 찬탄공양 중의 '공양'을 첨가한 것은 <무량수경> 하권에, 정토에 왕생하는 삼배왕생자 가운데 중배자의 주된 왕생의 요인으로서, 비단 일산을 바치고 등불을 밝히며 꽃을 뿌리고 향을 사르는 등의 공양을 올리는 것에서, 이것도 정토왕생을 위한 일종의 요인이 된다고 생각하여 다섯 가지 정행에 넣은 듯하다. 또한 오념문의 예배문 해석에서도 공경 합장하고 향과 꽃으로써 공양한다고 하므로, 부처님을 찬탄하는 데는 당연히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향이나 꽃과 같은 공양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여 찬탄과 공양을 결합해서 찬탄공양이라 한 듯하다.
선도가 독송을 정행의 하나로 든 것은, <관무량수경>에 상품상생으로 왕생하는 사람 가운데 '대승경전을 독송' 한다고 되어 있는 것에 힌트를 얻어 이것도 중요한 왕생의 요인으로 간주 한 듯하다. 물론 선도가 독송으로 지정한 것은 <무량수경>과 <관무량수경>과 <아미타경> 세 경이다.
선도가 다섯 가지 정행에 새롭게 첨가한 것은 칭명인데, 이것은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는 소위 염불을 말하는 것으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선도는 다섯 가지 정생을 다시 정업과 조업 둘로 나누어, 칭명을 정업이라 하고 나머지 독송, 관찰, 예배, 찬탄 공양 네 가지는 조업이라 하였다. 즉 칭명이 올바른 왕생의 요인인 생이고 나머지는 칭명을 돕는 행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원래 다섯 가지 정행은 <무량수경>과 <관무량수경>에 있는 정토왕생의 행을 열거한 것이기 때문에, 본래의 의미는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행하는 것이다. 선도 이전에는 행(行)은 가능한 한 그 범위를 넓혀서 다섯 가지 전부로 간주하였다고 생각하지만, 선도는 제 18원의 염불왕생에 생각을 집약하여 칭명을 정업이라 하고 나머지를 조업이라 한 것이다. 물론 나머지 네 가지도 어디까지나 정행이기 때문에, 보조 의미로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칭명정행의 실천은 <무량수경> 상권의 제18원 '내지 십념'의 염불을 말한다. 이것은 <무량수경> 하권의 제18원 성취문에 있는 '내지 일념'이라 불리는 것과 동일한 염불로서, 소위 '십성일성(十聲一聲)'의 칭명염불을 말한다.
이것에 대해 선도는 "일심으로 오로지 미타의 명호를 염하고, 행주좌와로 시절의 구원(久遠)을 묻지 않는다. 염염(念念)히 버리지 않음을 정정(正定)의 업이라 하는데, 그것은 부처님의 원에 따르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이 문장의 의미는 일심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는 것, 즉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라고 하는 것으로서, 이 명칭은 행주좌와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마음과 입으로 염불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나 시절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처님이 정한 올바른 방법인데, 그 이유는 아미타불의 제18원에 따르는 방법이기 때문이라 한다. 제18원에 따르는 것이 칭명이라고 하는 생각은 다섯 가지 정행 가운데 칭명을 정업으로 하고 나머지 네 가지를 조업으로 한 근본 이유다.
선도가 '일심으로 오로지 미타를 염하고'라 한 것은 '나무아미타불'이라 외우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 또한 선도가 명확히 규정한 정도교의 중대한 사실이다.
<무량수경>의 '내지십념' 또는 '내지 일념'의 '염'자를 담란은 억념의 염이라 해석했으며, 도작은 반드시 칭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진은 않았다. 그러나 선도는 '염'은 '칭(稱)'으로서 '내지 일념'의 염은 입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이라고 분명히 주장하였다.
아미타불을 내지 일념 또는 내지 십념으로 염하는 것을 나무아미타불이라 외우는 것이라 해석한 것은, 용수의 이행도(易行道) 해석에도 나오지만, 선도의 해석은 <관무량수경>에 따른 것이다. 칭명염불을 <관무량수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도 목숨이 다하려 할 때 선지식을 만나 선지식이 그를 위해 여러 가지로 안위하여 주고 미묘한 법문을 들려 주어 지성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도록 가르쳐 주느니라. 그러나 그는 괴로움이 극심하여 부처님을 생각할 경황이 없느니라. 선지식은 다시 그에게 '그대가 만일 부처님을 생각할 수 없다면 다만 아미타불을 부르도록 하여라'고 타이르느니라. 그래서 이 사람이 지성으로 소리를 끊지 않고 아미타불을 열 번만 온전히 부르면(十念具足), 그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공덕으로 염불하는 동안에 80억 겁의 생사 죄를 없애느니라.

'그대가 만일 부처님을 생각할 수 없다면'이라 한 것은 죽음의 고통이 밀려와 부처님을 마음 속으로 억념할 수 없기 때문이므로, 그대는 '다만 아미타불을 부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에 의하면 염불과 칭명은 난이(難易)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칭명으로써 염불을 대신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그 다음에 '아미타불을 열번만 온전히 부르라'고 했을 때의 십념도 열 번 칭명함에 지나지 않는다. 선도는 이 십념구족의 십념의 의미에 의해서 '염'을 '칭'과 동일한 뜻으로 해석하였다.
이에 선도는 <관무량수경>을 통해 <무량수경>을 이해하고, 제18원의 염불왕생의 염불을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명호를 입으로 외우는 것이라 하였으며, 이것을 다섯 가지 정행의 칭명으로서 또한 정업(正業)이라 불렀다.

네 가지 실천방법
선도는 정토에 왕생하는 데 다섯 가지 정행이 있으며, 그중에서 정업은 칭명 한 가지라고 하였다. 그리고 칭명은 입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으로 구체화하였다. 이어 선도는 이 다섯 가지 정행의 실천방법으로서 사수(四修)를 설한다.
사수란 ①공경수(恭敬修), ②무여수(無餘修), ③무간수(無間修), ④장시수(長時修)를 말한다. 제1의 공경수란 부처님을 예배할 때 합장해서 태도를 공경·은중히 하는 것이고, 제2의 무여수는 아미타불을 염할 때 다른 것을 섞지 않는 것이다. 무여수는 앞의 다섯가지 정행에 준해서 말하면 사수 가운데 정업이라 할 수 있다. 제3의 무간수는 안심(安心 ; 三心)과 기행(起行 ; 다섯 가지 정행)을 끊임없이 계속해서 다른 것을 섞지 않는 것이고, 제4의 장시수는 위의 세 가지 수를 임종하할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사수 가운데 선도는 '무여수'를 가장 중시 여겼는데, 그는 만일 오로지 수행해서 무여수가 되면 천 명이 왕생을 원하면 천 명 모두 왕생할 수 있지만, 다른 수행을 섞으면 천 명·2천 명 왕생을 원해도 성공하는 사람은 세 명·다섯 명밖에 안 된다고 하였다. 선도의 생각을 정리해 보면, '무여수'라는 것은 다섯 가지 정행을 말하는 것인데, 다섯 가지 정행 가운데 정업을 칭명이기 때문에, 칭명정행을 주로 한 다섯 가지 정행을 오로지 수행하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상의 내용 등을 종합해서 간추려 보면, 선도 교학의 특색은 구체적으로 왕생자의 근기(機 ; 心的能力)와 왕생의 수행방법, 아미타불과 그 정토에 잘 나타나 있다.
먼저 그는 <관무량수경>은 범부의 왕생을 설한 경전으로서, 성인을 위해 설한 것이 아니라 하여 범부의 왕생을 주장하고 있다. 왕생의 수행방법에 대해서는, 정인(正因)으로서 특히 지성심과 심신(深信)과 회향발원심의 세 가지 마음을 중시하고, 이 중에서 심신에 대해서는 첫째로 자신이 죄악이 깊은 범부인 것을 깊이 자각하고, 둘째로는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 왕생할 수 있음을 굳게 믿을 것(소위 二種深信)을 설하였다.
또한 왕생의 행인(行因)으로는 정행(正行)과 잡행(雜行)의 두 종류가 있다 하고, 다시 그 정행을 ①독송(일심으로 정토삼부경을 독송하는 것), ②관찰(일심으로 정토와 아미타불의 장엄을 관찰·억념하는 것), ③예배(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예배하는 것), ④칭명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이라 외우는 것), ⑤찬탄공양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찬탄공양하는 것)의 다섯 가지로 나누었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가운데 ④의 칭명이야말로 정업이라 하고, 나머지 네 종류를 조업이라 하며, 그 밖의 선행은 모두 잡행이라 하였다. 선도가 치명을 왕생의 가장 중요한 수행방법으로 삼은 것은, 일본 법연(法然)의 회심(回心)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이로 인해 일본의 정토종은 선도의 흐름을 이어받았다.
아미타불과 그 정토에 대해서는, 정영사 혜원이나 천태대사 지의, 가상사 길장 등이 아미타불과 극락은 응신(應身)과 응토(應土), 혹은 화신과 화토라 해석한 것에 반대하고, 도작의 설에 따라 아미타불을 보신, 정토는 보토라 주장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고묘(高妙)한 정토에 죄악의 범부가 왕생할 수 있는 계기는 아미타불의 본원 때문이라 설하였다.
 
                                                         

출처 : 일심염불극락왕생
글쓴이 : 수마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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