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정신세계의 장

하늘을 울린 모정(母情)

慧蓮혜련 2015. 8. 11. 09:25

하늘을 울린 모정(母情)


도시가 그리 멀지 않은 산속에 사찰이 하나 있었다. 그 사찰 주변 마을에서 태어나 가정형편상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집안일을 도우며 살고 있는, 눈동자가 유난히도 맑은 긴 머리의 한 소녀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가 산에서 겨울 땔감을 해가지고 암자에 내려와 잠시 쉬며 샘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이 암자에서 잠시 머물고 있던 노승(老僧)이  그러한 소녀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노승은 소녀를 데리고 그의 부모님을 찾아가서 말했다.


“이 소녀는 중 팔자입니다. 이 소녀를 소승에게 보내서 불교공부를 시킨다면 앞으로 큰 스님이 될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고 세속에서 살게 된다면 그 삶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그 소녀의 부모님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여겼다.  자신들이야 절 밑에 사니까 절에 다닌다고 하지만 살림밑천인 딸을 중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세월은 흘러 소녀는 산골 처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매가 들어 왔다.  도시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 남자가 자신보다 키가 더 작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보다 그녀의 첫 사랑을 중매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찬성이었다.   부모님들은 그가 마음에 든 것은 사람 됨됨이가 아니라 그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고 도시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들은 자신들이 평생을 농사 지으면서 가난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녀를 절대로 시골에 시집을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시골에 가면 농사를 짓고 고생하기 때문이었다.


허나 어찌하겠는가! 중 팔자의 운명을 모르는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무지함 때문에 그녀를 그 남자와 부부인연을 강제로 맺게 하였으니 그 삶이 평탄하겠는가?


그녀는 부모님들의 작전에 말려서 그 남자와 반 강제로 결혼을 했는데 그 남자는 결혼을 하자마자 개인 사업을 정리하고 자신의 고향인 시골 본가로 들어가 신혼살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시골 본가에는 시부모님과 시동생이 3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면 서너 번 정도의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큰 제사가 있었다.  그녀는 신혼 초부터 농사일은 물론 한 달에 몇 번씩 있는 제사상을 차려내야만 했다.  그녀는 모든 일이 힘에 겨워 코피가 터질 정도로 피곤하고 하루하루가 지쳐 쓰러질 정도였지만 남편은 저녁마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이유도 없이 폭력을 쓰곤 하였다.  술에 취하지 않는 날은 그저 말없이 자신의 일에 충실하다가도 술만 입에 들어가면 갑자기 폭군으로 변하는 남편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부모님들이 자신을 고생을 하지 말라고 결혼을 시킨 것인데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부모님들에게 보일 수가 없었다. 마음이 답답하면 가까운 절에 가서 무릎이 닳도록 끝없이 절을 하면서 울고 또 울면서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이겨나가고 있었다.  그러한 세월 동안에 시부모님들은 5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다 돌아가셨고, 그녀의 슬하에는 아들 하나와 두 딸을 두었는데 막내가 2살 박이였다.


그래도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었던 것은 시아버님이었는데 그분들마저 계시지 않자, 그녀의 남편은 며칠이 멀다하고 친구들과 개, 염소, 닭 같은 동물을 잡아먹으면서 술판을 벌리고는 하였다.  그녀가 남편에게 술을 조금만 마시라고 하면 여자가 어디서 잔소리를 하냐고 하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통에 벙어리처럼 살면서 농사일에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등에 아이를 업고 밭일을 하는데 졸음이 어찌나 오는지 밭두렁에 잠시 쉬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는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짧은 잠 속에서 꿈을 꾸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오셔서 그녀를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지그시 바라보더니


“아가야, 이일을 어찌하면 좋겠느냐? 우리 집안은 대대로 단명하여 지금까지 50대 후반을 넘겨본 일이 없는 집안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네 남편을 데리려 왔는데 고생하는 너를 보니 차마 너의 남편을 데리고 갈 수가 없구나.  그렇다고 데리고 가지 않을 수도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아가야, 네 남편 대신 그 손녀를 데리고 가마.”


하면서 시아버님은 손녀를 품안에 안고 멀리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놀라서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눈을 떠 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그 보다 더 놀란 것은 젖을 먹였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딸아이를 찾아 낸 것은 가까운 곳에 있는 연못이었다.  그 어린 것이 언제 그곳까지 기어갔는지 딸아이가 물에 빠져 죽어있었던 것이다.


딸아이를 가슴에 묻은 그녀는 그 날부터 가까운 절로 달려가 식음을 전패하고 절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부처님께 딸아이를 돌려달라고 울고불고 애원하다가 쓰러지고, 애원하다가 쓰러지고 하는 시간이 백일정도 지나고 보니 그녀의 모습이 거지처럼 말이 아니었다. 백일동안 먹는 것도 씻는 것도 잊어버리고 부처님께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딸아이를 돌려주지 않으면 자신도 이 자리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부처님 앞에서 통곡한지 100째 되던 날 그녀는 그만 지쳐서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그녀는 꿈속에서 기운이 좋아 보이는 높은 산 정상에 올라가보니 작은 암자가 하나 있었다.  그녀가 암자에 도착하자 암자 문이 열리면서 5살짜리의 동녀가 머리를 깎은 승복차림으로 나와서 그녀의 품에 안기면서 하는 말이


“엄마, 왜 이제야 오는 거냐?”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반가움에 그 동녀를 꼭 켜 안고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그녀는 그러한 선몽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서 머지 않아 임신을 하였다.  그리고 예쁜 딸아이를 하나 낳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딸아이를 낳았어도 그동안 남편의 행동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집도 남편도 다 버리고 자식들만 데리고 도시에 작은 방 하나를 얻어 놓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아들을 대학교를 다니게 했고, 둘째 딸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막내딸은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 복은 없지만 자식복은 있었는지 모두들 아무 탈없이 잘 자라주었다.  그런데 막내딸이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이 간헐적으로 시작되는데 참기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진찰을 하고 한약방에서 약을 지어 먹어도 그 두통이 심하면 심했지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그녀는 고통 받는 딸아이를 데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적으로 잘 본다는 철학관을 찾아가서 딸아이의 사주를 풀어보았다.   철학관에서 딸아이의 사주를 보고 하는 말이


“천상에서 귀한 분이 내려오셨는데, 때가 되자 하늘에서 천기가 내려와 의식을 깨우는 과정에서 두통이 온 것입니다.  백약이 무효입니다.”


“아니, 그러면 이 어린 것이 이 고통을 다 이겨내야 한단 말입니까?  혹시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그 방법은 천상에서 이 아이의 스승님이 지금 이 땅에 내려와 있습니다.  그 스승님만이 그 아이의 두통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스승님을 어디가면 만날 수 있습니까?”


“그것까지는 내가 알지 못합니다. 다만 기(氣)치료를 하시는 스님 한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어느 암자에 계시니 전화를 먼저 하시고 찾아가 보십시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이러한 사연을 가진 그녀가 황전이가 거주하고 있는 백운산 주변에 있는 암자에 전화가 온 것은 어느 초가을 이른 아침이었다.  황전이는 그 당시 오랜 기공수련과 좌선을 통해서 얻는 기(氣)로 인연 있는 사람들만 치료를 하며 수행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다시 말하면 수행 중에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기(氣)가 형성되는 과정이 있는데 바로 그 때였다.

그녀가 전화가 왔을 때 황전이는 이 암자를 찾아오기 이전에 먼저 종합병원에 가서 뇌를 촬영해 보고 이상이 없다고 판단이 되면 그때 찾아오라고 했다.  그 후 일주일 후에 그녀가 딸아이를 데리고 암자를 찾아온 것은 늦은 오후였다.


황전이는 딸아이를 보자 그녀가 빙의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천기로 인해 머리가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전이는 우선 차를 한 잔 주면서 딸아이의 몸에 배어 있는 자동차의 기운이 가라앉도록 한 다음에 기(氣)치료를 하자 그 자리에서 두통이 사라졌다.  그 순간 놀란 것은 딸아이가 아니라 그녀였다. 


“스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약도 주지 않고 손만 지긋이 대었을 뿐인데 그 오랜 두통이 사라지다니요?”


“하하하...보살님께서는 이 아이를 가질 때 무슨 태몽을 꾸었습니까?”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풀기라도 하듯 눈물을 글썽이며 막내딸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야기를 다 털어 놓았다.  그 털어놓은 이야기가 앞에 미리 써 놓은 그 이야기이다.


“스님, 그런데 이 아이가 한 살이 조금 넘었을 것입니다.  그날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아기가 감고 있던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남자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천상에서 도를 닦고 있는 도중에 너의 기도가 하도 간절해서 잠시 내려왔다.  너와 한 세상 잠깐 있다 갈 것이니 그런 줄 알아라!’ 하더니 다시 눈을 감고는 신나게 젖을 빠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제가 천상에 있을 때 어머님의 기도가 간절하여 제가 잠시 어머님 태중으로 들어왔습니다.

제가 어머님 태중으로 들어간 것도 제 눈으로 보았으며 제가 간난 아기 때 젖을 빨다가 눈을 뜨고 어머님께  그런 말을 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지금까지 어머님 말고는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믿기나 하겠습니까?”


“하하하...그러면 그렇지, 자 그러면 두통도 해결 되었으니 이제 수행을 해보아야지. 만약에 내가 너에게 지금 기(氣)를 넣을 태니 너의 몸 안에서  기(氣)가 운행되는지 느껴 보아라. 만약에 너의 몸에 기가 운행되면 너는 천상에서 나의 제자였다.”


그리고는 그 아이의 앞에 앉아서 검지 손가락을 펴서 그 아이의 의식을 손가락 끝에 집중시킨 후에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의식도 움직이며 몸에 기가 운행되는지 보라고 했다.  황전이는 손가락에 기를 모으고 이마에 있는 제 3의 눈에 잠시정신을 집중시킨 다음 손가락을 서서히 밑으로 내리면서 손가락의 기(氣)가 임맥과 동맥을 타고 돌도록 하자 그 아이는 그 자리에서 바로 기의 운행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도리는 스승과 제자하고만 통하는 기(氣)의 주파수인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황전이는 그 아이에게 좌선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아이는 좌선이 처음이라고 하였지만 오래된 좌선 수행자처럼 이미 자세가 되어 있었다.


“좌선을 하되 자신이 하고 싶을 때까지만 해라, 보살님은 이 딸아이가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상관하지 말고 그냥 옆에서 편하게 주무시면 됩니다.”


다음 날 아침 공양 중에 그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스님, 저는 좌선 중에 이상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머리 가운데 부분이 시원해지면서 머리가 한없이 맑아지면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좌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좌선 중에 수많은 제 전생을 보았고,  이생에 와서 제가 해야 할 일을 다 알았습니다.”


“하하하....그럴 줄 알았지....”


그렇게 해서 두 모녀는 암자를 떠났다.  그리고 그 아이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자 어머님과 함께 황전이를 찾아와서 비구니가 되고자 했다.


“너는 스님이 되지 않아도 된다.  너는 이생에 보살행을 하러 왔지 머리를 깎고 수행하러 온 것이 아니다.  좋은 취직자리를 구하려고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지마라.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전문대학을 가거라!”


그 후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그녀의 어머님이 밝은 얼굴로 암자를 찾아와서 딸아이가 건강한 몸으로 전문대학교에서 미용기술과 옷을 만드는 기술을 배워서 시간이 나면 양노원이나 고아원에 가서 머리를 잘라주고 떨어진 옷을 기워주면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그 보살님도 어느 큰 절에서 불교 수행을 하며 공양주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중 팔자]**


중 팔자가 중이 되지 못하고

세속에서 살기를 원하면


하늘에서는 그에게 어디 한번

원 없이 세속에서 살아보라고


말로는 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삶을 맛보게 한다.


그리하여 세속의 삶이 얼마나

허망하고 남편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부질없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하여

다시는 세속적인 삶을 꿈꾸지 않게 한다.


이 또한 부처님의 자비인 것이다.

黃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