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과 아미타불/염불 감응록 (신설)

[스크랩] 염불로 병을 치유한 사례들

慧蓮혜련 2016. 11. 2. 20:46

 

출처 / 순정시대 純淨時代  http://cafe.daum.net/sunsujeongto


 

염불로 암을 치유하다


(1)

체일諦一법사는 섬서성 서안 향적사 스님으로, 올해 70여세이다. 1999년 봄에 식도암을 앓고서 병원으로부터 위독하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절에 돌아온 후부터 침대에 누워 일어나기가 힘들었고, 온몸이 붓고 호흡이 곤란하였으며, 온종일 신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또한 혈관경화로 인해 진통제 주사조차 맞을 수 없었으니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체일스님은 자신에게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보시금을 전부 사중에 반납하였다. 죽은 뒤에 자신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어 원친채주들을 천도시키고, 아울러 자신이 아귀도에 들어가지 않도록 건져달라는 것이었다.


평소에 참선만 하던 스님은 말수가 적은데다가 온종일 좌선만 할 뿐, 정토종에 대해 전혀 믿음이 없었다.


이때 죽음이 바로 코앞인데도 염불하여 왕생을 구할 줄 모르고 빨리 죽기만을 원했다.


상정常正스님이 그에게 염불하라고 권하자 그는 도리어 이렇게 말했다. “에이! 평소에 공부를 똑바로 못해서 주인노릇을 못하는 것을 탓해야지 지금 입으로 염불 몇 마디 한다고 되겠소? 그만해……”


상정스님의 노파심에서 거듭된 충고 끝에 체일스님은 그제서야 하는 둥 마는 둥 염불하기 시작했다.


상정스님은 또 체일스님의 요사채로 옮겨와서 밤낮으로 그를 보살펴주었다. 밥과 물을 먹여주고 몸과 발도 씻겨주고 똥오줌도 받아내면서 살뜰히 돌보아주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정스님은 늘 그와 함께 염불하면서 그에게 자신을 완전히 아미타부처님께 맡기라고 격려하였다.


체일스님은 항상 신음소리에 부처님 명호가 섞여 있었다. “아이구! 아미타불, 내가 정말이지 생고생하네! 내가 스님만 아니었으면 자살했을 거야. 아미타불, 빨리 좀 오세요! 더 이상 고생하지 않게 해주세요! 아이구! 아이구! 아미타불, 제발 죽게 해주세요……”


이렇게 3개월이 지나서 체일스님은 오히려 천천히 낫기 시작했다. 식도암도 낫고 온몸의 부종도 사라진 것이다!


이후부터 체일스님은 참선을 버리고 정토로 돌아와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만 부르면서 사람들에게 전수염불하며 왕생발원하라고 타일렀다.


우리는 늘 그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 “참선도 하지 않고, 교를 배우지도 않으며, 한 구절 아미타불을 진심으로 불러야 한다……”(석정홍釋淨弘 기술)


(2)

내 이름은 개보성蓋寶成이고, 올해 45세이며, 천진시 사람이다. 1989년에 갑상선암에 걸려 좌측 갑상선을 제거하는 바람에 한동안 말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1995년 왼쪽 가슴에 큰 종양이 생겨 개흉수술을 하고 나서부터 온몸 전체에 변형이 왔다. 얼굴은 초췌하고 몸무게는 겨우 몇 십 근밖에 안 나갈 정도로 말라있었다. 1999년 양쪽 폐의 마디마디에 암세포가 잔뜩 자라나 이미 확산 전이되어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소식은 마치 청천벽력과 같아서 나는 온 하늘이 무너져 내려는 것을 느꼈다.


바로 이때, 부친께서 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 모든 게 나에 대한 타격이 너무 커서 나는 죽음을 생각하였다.


1999년 11월의 하루, 나는 아내와 아직 미성년자인 딸을 속이고 깔끔하게 옷을 차려 있고 7층 옥상에 올라가 남은 생을 끝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웃집 할아버지가 나를 발견하고 나를 끌어내리는 바람에 비극을 부르진 않았다.


나의 외삼촌 마상의거사가 이 일을 알고 나서 나에게 삼세인과와 아미타부처님의 자비에 대해 말해주면서 염불하라고 타일렀다. “오직 염불만이 병도 치유할 수 있고 왕생도 할 수 있다”


외삼촌 집에서 보배 손을 아래로 드리우신 아미타부처님의 성상聖像을 보게 되었는데, 마치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으려는 것과 같아서 너무나 감동받았으며,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나중에 다섯 째 이모와 이모부가 나에게 법문을 해주고 또 많은 테이프와 불서들을 주었는데, 『삼경일론대의』와 『선도대사요의』등이었다. 나는 반복해서 듣고 보고 나서 지난 생에 업을 지었기 때문에 금생에 이런 병고를 받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염불을 잘 해서 나중에 꼭 극락세계로 가서 대자대비하신 아버지 아미타부처님을 찾아뵙기를 발원하였다.


2000년 9월 17일 나는 불문에 귀의하고 오계도 받았다. 그 후부터 병든 몸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통증은 없었다. 병원에서 재진을 하는데 의사들이 모두 의아해하며 나에게 어디서 치료한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매우 자랑스럽게 그들에게 일러주었다. “저는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합니다. 그 어르신께서 저를 구해주셨지요”


예전에 수시로 사망할 수 있었던 나날들을 회상하며 나는 ‘한바탕 병고의 시달림 없이 어찌 아미타부처님의 크신 서원의 깊이를 알 수 있겠는가?’를 알았다.


예전의 나는 진통제를 의지하여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혈색도 좋아지고 목소리도 우렁차고 통증도 기본적으로 다 사라졌다. 지금은 염불만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나무아미타불! (천진시 개보성蓋寶成 기술 2001년 7월)


생각건대:마음속에 불법의 자비가 없다면 인생은 시련과 징벌이나 다름없다. 비록 바깥에 햇빛이 찬란해도 마음속은 여전히 온통 칠흑 같고 앞날은 절망적이다. 아미타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병고는 법희로 바뀌고 어둠은 광명으로 변하였다. 비록 죽지 않는 육신은 없으나 영원한 생명은 있다.


아미타부처님은 나의 생명이요, 나의 길이요, 나의 의지처요, 나의 귀착점이다.

 

(『염불감응록 2』 정종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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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로 신장병을 치유하다


유소평, 여, 60세, 남경시 대창구 사람이다. 1995년 좌측 신장이 괴사하였고, 1998년 우측 신장도 껍데기 한 장만 남을 정도로 위축되어 엑스레이 투시를 해봐도 현상이 되질 않았다. 의사는 그녀에게 신장이식수술을 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돈이 없어서 집에 돌아와 염불하며 왕생을 구하였다.


처음엔 온몸이 아파서 침대를 내려오질 못했고, 더욱이 죽을 날이 곧 다가왔기 때문에 왕생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매우 걱정하였다.


이때 어느 연우가 그녀에게 일러주었다. “아미타부처님의 서원이 헛되지 않아 중생이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한다!”


그녀는 너무나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후부터 믿음과 발원이 견고하여 한결같이 염불만 하였다. 생사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오직 극락세계만 생각하였다.


현재 이미 삼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몸은 갈수록 건강해져 어디든 갈 수 있었으며, 걸음걸이만 약간 느릴 뿐이다.


내가 직접 손으로 그녀의 종아리를 눌러보았더니 근육의 탄력이 정상인과 같았고 전혀 붓기가 없었다.

유소평의 사적을 보고 들은 사람마다 입을 모아 그 기묘함을 칭찬하였다.

 

(석정과 기술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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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로 간염을 치유하다


나의 모친인 이숙진은 신앙심이 돈독하여 정토왕생을 발원하였다. 나는 항상 모친에게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만 부르라고 권하였으나, 모친은 늘 다른 경전과 진언을 내려놓지 않으려 하였다. 나중에 내가 홍원사에서 출판한 『염불감응록』 한질을 모친께 보내드렸다. 이 책에서는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수승한 이익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모친은 몹시 기뻐하며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자주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모든 걸 다 부처님께 맡겼고, 책도 다 이해했다”고 말했다.


2003년 집안사업의 파산으로 손해를 보고 장자가 또 소송에 휘말리고 고부간의 관계도 좋지 않는 등의 압력과 타격으로 인해 모친의 마음은 장기간 답답하고 울적해하였으며, 오랜 시간 지속되다보니 을형간염까지 앓게 되어 음식을 가족들과 따로 드셔야 했다. 또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두 달 동안만 약을 드시고 더 이상 치료를 계속하지 않았다. 모친은 늘 나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고, 나는 전화 속에서 모친을 위로해드리며 모든 걸 내려놓고 전심으로 염불하라고 말씀드렸다.


모친은 견뎌냈다. 또한 모든 걸 내려놓고 전심으로 염불하였으며, 틈만 나면 『염불감응록』을 읽었다. 이때의 모친은 정성을 다해 염불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번은 모친이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 세 명이 모친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을 보았다. 모친은 팔을 뻗고 있었는데, 약간의 액체가 팔을 타고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의사 세 명 가운데 어떤 의사는 의료기계를 깨끗이 씻고 있었고, 꿈속의 광경은 너무나 뚜렷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모친은 몹시 기뻐했다. 틀림없이 불보살님들이 자신의 병을 치료해주셨다는 것을 안 것이다. 정말로, 나중에 병원에 가서 두 번이나 검사를 하였는데, 간병이 완치된 것이었다.


그 뒤로 모친은 늘 자신이 불법을 믿고 염불하여 깨달은 바와 감응으로써 일체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불교를 믿고 불법을 배우고 염불하여 다 같이 광명의 큰 보배바다로 들어갈 것을 권장하였다. (동림사 친종親宗 기록 2005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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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로 반신불수를 치유하다


나의 큰 언니 양숙금의 병고는 특별히 심했었다. 1997년에 뇌혈전으로 발신불수와 실어증을 앓게 되었고, 작년 4월에는 큰 형부가 또 돌아가시고, 그 뒤로 또 중병으로 두 차례 구급치료를 받아야 했다.


내가 여러 번 큰 언니에게 불법을 배우라고 타일렀으나 모두 듣지 않았다.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나는 부처님 전에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 큰 언니 양숙금은 지금 중병에 시달려 목숨이 숨 쉬는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피를 주시어 언니가 하루빨리 깨닫고 염불하며 부처님의 구제를 받아들이길 빕니다.”


그 후에 내가 다시 큰 언니에게 염불을 권했더니 큰 언니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얼마 후, 큰 언니의 흰 머리카락 뿌리부분에 한 치 정도의 검은 머리카락이 자라났고, 본래 밥을 먹을 때 항상 식도를 긁던 귀에서 목까지 자란 경부의 큰 종물腫物도 현재 거의 다 사라졌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내가 다시 큰 언니에게 염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큰 언니가 마음속으로부터 웃는데, 나 역시도 기분이 좋았다.


큰 언니가 말했다. “난 이제 아무 것도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염불만 하여 아미타부처님께서 나를 위해 깔아주신 극락세계로 통하는 ‘나무아미타불’명호의 길만 걷겠다!” 이 말을 들은 나는 기쁠 뿐만 아니라 마음도 놓였다.


“스님, 아미타부처님께서 큰 언니를 구해주신 게 맞지요?” (북경 묘홍 기술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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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로 중상을 치유하다


원강시 신항향의 곽등과郭登科는 시내에서 4번 버스를 운전하는 26살 기사였다.


2003년 6월 13일, 그가 운전하던 차량이 다른 차량과 충돌하여 20여명이 다쳤는데, 그중 10명이 중상을 입었고, 본인은 가장 크게 다쳐 그 자리에서 바로 정신을 잃었다. 병원으로 보내 응급조치를 받고 삼일이 지나서야 깨어났는데, 5만원을 쓰고도 고칠 수 없었다. 돈이 없어 입원을 할 수 없는 관계로 집에 돌아와 치료하였다. 9월이 되어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을 뿐더러 도리어 더욱 심해져 하는 수없이 다시 병원으로 보내야만 했다.


의사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그의 부모에게 말했다. “당신의 아들은 머리부위를 가장 크게 다쳤습니다. 치료를 하더라도 식물인간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의 발도 잘라야 하는데 지난번보다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합니다”


극심한 통증으로 그가 온종일 크게 소리를 지르는데 가족들도 모두 애가 타서 눈물을 흘렸다.


하루는 그의 모친 진설진陳雪珍이 우리 염불당으로 와서 울먹이며 물었다. “제가 어떡하면 아들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이지 그녀에게 오직 아들 하나밖에 없는데 만에 하나 무슨 변고라도 있으면 노인은 어떻게 살겠는가?


그래서 내가 말했다. “병원에서 이미 진실한 상황을 당신에게 말해준 이상, 지금은 아미타부처님을 의지하여 아들을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아들도 염불하도록 한다면, 아미타부처님께서 틀림없이 건강을 회복하도록 해주실 겁니다. 내일부터 우리 염불당에서 삼일 간 염불하겠습니다”


연우들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늦을세라 앞 다투어 돈을 기부했다.


이튿날 그들 모자가 왔다. 나는 먼저 곽등과에서 아미타부처님께 공양 올렸던 감로수를 마시게 한 다음 대중들과 함께 염불하였다. 그날 밤, 그는 서방삼성이 그의 병을 치료해주는 꿈을 꾸었는데, 깨어나서부터 예전처럼 아프지 않았다. 의사가 그에게 철심을 박는데도 전혀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모자 둘은 갈수록 정성을 다해 염불하고 절을 했으며, 우리 염불당과 아주 가까운 곳에 방을 찾아서 세를 들어 살았다.


십여 일이 지나서 그는 천천히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병원의 원장과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두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종교를 믿는데 이처럼 영험한가? 정말로 기적이네!”


봐라! 육자명호가 얼마나 불가사의한지! (호남 원강 왕이진 기록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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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로 정신병을 치유하다


(1)

잠강시 노신구 변하촌의 범인영凡仁榮은 올해 35세이다.


15살 때 어느 날, 그는 방과 후 드렁허리鱔魚를 파러 갔다. 갑자기 채색 드렁허리 한 마리가 그의 앞에서 뛰쳐나오는 바람에 깜짝 놀랐으며, 문득 온몸이 불편하게 느껴져 집에 돌아와서 모친에게 목욕을 하겠다며 물을 끓여달라고 하였고, 스스로 온몸 위아래가 전부 말거머리들이라고 말하면서 씻고 또 씻었다. 그 후부터 그는 실성을 하여 때로는 정신을 차리고 때로는 멍청하였다.


25살이 되던 해, 그는 다시 병이 재발하여 가출을 하였다가 무한시 장강대교에서 차량에 부딪쳐 두 다리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행인들에 의해 병원으로 보내져 구급치료를 받고 다리에 철심을 박았는데 지금까지 꺼내지 않았다.


그 뒤로 자주 발병하여, 걸을 수는 있지만 힘이 없어서 일을 할 수 없었다.


20년 동안 그의 모친은 도처에서 의약을 구하고, 신불께 기도하며 천도재를 지냈지만 모두 효과를 볼 수 없었고, 모자의 생활은 극도로 어려웠다.


작년 여름에 범인영은 또 발병하였다. 그의 누나 범연예凡蓮藝는 나에게 무슨 방범이 없냐고 물었다. 내가 말했다. “그더러 염불하라고 하세요. 만일 글자를 안다면 불서도 보시고요” 그래서 그녀에게 강승개가 번역한 『무량수경』 한권을 주면서 친정에 가져가서 동생에게 보라하라고 일러주었다.


불서를 받은 범인영은 책장을 펼치자마자 나무아미타불상을 보고는 몹시 기뻐했다. 다 보고 나서 그는 책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입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 계속 염불하고 있는데 책속의 아미타부처님께서 표연히 나오시더니 그의 가슴을 향해 돌진해오는 게 보였다. 그 충격으로 몸이 잠깐 흔들렸고, 이 흔들림으로 즉각 머리부터 발끝까지 텅 빈 것 같이 몹시 상쾌하였으며, 머리도 한층 맑고 깨끗해지고 정신도 또렷해졌다.


그 뒤로 범인영은 힘이 생겨서 짐도 짊어지고 농사일도 하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었다.


작년 12월 1일, 내가 농장으로 범인영 모자를 만나러 가면서 불서를 가져다주었다. 범인영이 나에게 말하기를, 그가 염불을 하면서 세 번을 기이한 향기를 맡은 적이 있는데, 그런 향기는 우리 이 세상에 없는 것이며, 시간은 20분에서 30분가량 지속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매번 향을 사를 때마다 서방삼성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범인영은 또 예전에 매번 발병할 때마다 먼저 눈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는데, 머리까지 올라가면 머리에 마비가 오고, 머리에 마비가 오면 사람은 통제력을 잃게 되었다고 말했다. 불법을 배우고 나서도 한 번 발생한 적이 있는데, 눈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을 때 바로 앉아서 염불을 하였더니 금방 좋아졌다고 했다. 그 뒤로 다시는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정요거사 기술 2001년 2월)


(2)

장수란張樹蘭, 여, 69세, 북경시 숭문구 사람이다. 1985년 남편이 갑자기 별세하는 바람에 정신에 이상이 생겨 늘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집으로 돌아갈 줄 몰랐다.


어느 연우가 그녀에게 염불을 가르치자 그녀도 따라서 부르기는 하지만 정신이 마비되어 침울하고 초조해하였다. 때로는 법당을 뛰쳐나가 심하게 욕을 퍼붓기도 하였다. 한 번은 대중들이 염불을 하는데 잠이 들어서 법당에다 오줌을 싸기도 하였다.


1992년 가을, 그녀는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자녀들에게 발각되어 병원에 가서 구급치료까지 받았다.


1994년 여름, 장수란은 대중들과 함께 염불하다가 갑자기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보세요, 부처님께서 방광하십니다! 보세요, 부처님께서 방광하십니다!” 대중들도 서로 고개를 들어 보았고, 일시에 염불소리로 떠들썩하였다.


그 뒤로 장수란은 무서운 그늘에서 벗어났으며, 진실로 아미타부처님의 대자대비를 느꼈다. 1994년 음력 12월 초파일에 그녀는 불문佛門에 귀의하였다.


나중에 그녀는 섬서성으로 와서 우리 도량에 상주해 있었으며, 더욱이 아미타부처님께서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는다는 대비원력을 듣고서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한다는 것을 안 뒤로부터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 적극적으로 삼보의 사업을 호지護持할뿐더러 아껴 먹고 아껴 쓰며 절을 집으로 삼았다. 환희심으로 염불하는 그녀의 염불소리를 수시로 들을 수 있었으며, 아울러 몸소 불법을 수호하느라 자신이 구제를 얻은 과정을 인연 있는 연우들에게 일러주며 대중들의 신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오직 나무아미타불, 다만 나무아미타불, 반드시 나무아미타불, 역시 나무아미타불……” (정홍법사 기술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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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기를 듣고 실면증을 치유하다


1995년 말에 나는 병원에 어느 친척의 병문안을 갔었다. 병실에 들어설 때 뒤에서 40대 여성 한분이 따라 들어왔다. 옆 병실의 환자였는데, 병이 심해서 오육십 대처럼 보였다. 두 눈에 생기가 없고 눈 주위가 온통 시커멓고 얼굴은 초췌하였다. 길을 걸을 때도 매우 느릿느릿하였으며, 말을 할 때도 기운이 없어서 다 죽어가는 사람 같았다. 그녀는 이미 꼬박 일주일동안 잠을 못자서 몹시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일러주었다. “이것은 업장입니다. 염불만 하면 업장을 소멸하고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온몸에 전혀 힘이 없는데 어떻게 염불할 수 있겠습니까?”

“좀 있다가 제가 염불기 한 대를 가져다 드릴 테니, 누워서 조용히 염불기에서 나오는 염불소리만 들으면 잠을 잘 수 있을 겁니다”


친척의 병문안을 마친 나는 곧바로 병원을 나가 염불기 한 대를 사서 이 여성에게 가져다주었다. 아울러 그녀에게 조용히 부처님 명호를 들으면서 마음속으로든 입으로든 따라서 염불할 수 있으면 따라서 부르고,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조용히 듣기만 해도 빨리 잠들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이튿날 오후, 내가 다시 병원에 친척을 보러 갔더니, 옆 병실의 그 여성분도 계셨는데 어제와는 전혀 딴사람 같았다. 기운도 있고 웃음도 있었으며, 어제처럼 그렇게 늙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면서 “제가 이어폰을 귀에다 끼고 조용히 염불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긴 시간을 푹 자고 일어났더니 정신도 맑고 병도 많이 나은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그 뒤로부터 그녀는 입원해있는 동안 매일 밤 반드시 이어폰을 끼고 조용히 염불소리를 듣고 있었고, 낮에 병상위에 누워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수면은 이미 완전히 정상이었다.


며칠 뒤, 그녀의 병세가 빠르게 호전된 것을 발견한 의사는 그녀에게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퇴원하던 날, 그녀는 나를 집으로 초청하여 법당을 설치하였다. (혜정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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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하며 염불하다


(1)

내가 아직 산부인과에서 실습생으로 있을 때 어느 여사 한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태아가 뱃속에서 죽어 수술을 해야 했다. 그녀는 태아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수술을 받아야하는 두려움에 직면하여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그녀를 보러 갔을 때, 나는 그녀에게 ‘아미타불’을 부르라고 권하면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는 차마 일체 중생이 고통 받는 것을 볼 수 없어서 틀림없이 당신을 보우해주실 겁니다”고 말했다.


마취를 하기 전 그녀는 쉬지 않고 줄곧 ‘아미타불’을 불렀다. 수술을 마친 뒤 정신을 차린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염불은 정말로 기묘하고 정말로 좋습니다!” 그녀는 조금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수술 도중에 또 꿈을 꾸었는데, 영화에서 본 선녀보다 더 예쁜 보살이 그녀를 데리고 영화 속에서 본 선경仙境보다 더 아름다운 곳으로 놀러 갔으며, 그곳에서 수많은 큰 연꽃들을 보았다고 했다. 나중에 어떤 목소리가 “시간이 다 됐으니, 돌아가도 좋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천천히 깨어났다고 했다. (곽혜진郭惠珍의사 서술)


(2)

내과에서 레지던트로 지내던 첫해의 어느 날 밤, 내가 중환자실에서 당직을 맡고 있을 때 응급실에 심근경색 환자 한 분이 실려 왔다. 호흡을 멈추고 혼수상태에 빠져 얼굴과 혀는 이미 검은 자줏빛으로 변했으며, 심전도와 혈액검사 보고서에는 심장에 이미 매우 심한 손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임의사의 경험에 의하면 이분보다 더 경미한 심근경색도 살릴 수 없었기에 환자의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나는 관례대로 염불을 하는 한편, 호스를 꽂아 응급치료를 하였다. 링거와 약물을 이미 사용하였지만 혈압은 전혀 재지지 않았고, 환자는 여전히 혼수상태여서 스스로 숨을 쉴 수 없었다. 환자의 아내가 비통해 하며 말했다. “하느님은 성실한 사람을 아낀다고 하시던데, 어찌 하느님은 저를 아끼지 않으신지요? 의사선생님, 최대한 살려만 주십시오. 설사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저는 그이를 보살펴주기를 원합니다!”


나는 그녀에게서 일종의 질박한 간절함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녀에게 “사람은 큰 재난 속에서 대원을 세우고 염불해야만 돌파할 수 있습니다”고 일러주었다.

“대원을 어떻게 세워야 합니까?”

“본인의 정성에 따라 스스로 세워야 합니다”

그녀는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 부부는 평생 채식하며 염불하겠습니다. 그이는 선생님이어서 나으면 불법을 홍양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녀와 자녀 몇 분에게 염주를 하나씩 나눠주면서 말했다. “오늘 밤 중환자실 밖에서 당신들이 아무리 조급해해도 소용없으니, 차라리 초조한 마음을 내려놓고 일인당 만 번씩 아미타불을 부르며 부처님의 가피를 구하는 게 나을 겁니다. 불력은 불가사의합니다. 우리도 힘을 다해 구해보겠으니, 그를 위해 염불을 해주십시오. 만일 그의 수명이 다했으면 극락왕생도 할 수 있습니다”


그날 밤, 우리 의사 세 명은 저녁 7,8시부터 새벽 3시경까지 심전도 모니터를 바라보며 약물을 조절하였다. 그중 의사 한분이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 셋이서 밤새 지켜봤지만 혈압조차 재지지 않는 사람만 지켰구나!”


그러나 네다섯 시 쯤 되어 그의 혈압은 기적처럼 다시 올라왔고, 사람도 차츰차츰 의식을 회복하였다. 나는 급히 중환자실 방문을 열고 가족들에게 알리려 하였다. 문을 열자 온가족이 일렬로 앉아서 염불을 하는데, 간절하고 정성스러운 얼굴들은 나를 감동시켜 눈물을 머금게 하였다. 그의 자녀 한명은 종이위에다 “아버님! 저는 아버님께서 자상하신 두 눈을 다시 뜨시길 얼마나 바라는지 모릅니다”


어느 청년 한 분이 병문안을 와서 어찌나 울던지 나는 그가 그분의 가족인줄 알았는데, 뜻밖에 이 청년이 “그분의 저의 선생님이십니다. 그 당시 선생님께서는 남 집 담장밖에 지은 누추한 집에서 사시면서 당신의 봉급을 전부 꺼내어 우리 학생들을 길러주셨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없으셨다면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의사선생님, 선생님을 꼭 좀 살려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오열하였는데, 그제서야 나는 이 환자분이 예전에 ‘십대애심선생十大愛心老師’으로 당선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의식을 회복한 뒤에도 여전히 삼일을 꼬박 호흡기에 의지해야만 호흡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염불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심근경색을 제외하고도 가볍지 않은 폐결핵도 앓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생생하게 살아서 병원을 걸어 나갔을 뿐만 아니라 다시 나를 찾아와서 함께 경전을 인쇄하기도 했다.


심전도와 혈액검사 보고서를 보고, 다시 그의 회복을 지켜 본 의사들마다 모두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였다. (곽혜진의사 서술)

 

출처 / 순정시대 純淨時代 http://cafe.daum.net/sunsujeongto

 

출처 :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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