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과 아미타불/염불 감응록 (신설)

[스크랩] 종교신앙이 없는 자가 조념을 통해 왕생하다

慧蓮혜련 2017. 9. 12. 20:53

  종교신앙이 없는 자가 조념을 통해 왕생하다


  나의 어머니는 옛날식 유교교육을 받아서 일생동안 ‘사후세계’를 부정하였기에 종교신앙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불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삼세인과와 육도윤회가 있으며,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세계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의 어머니도 불교를 믿고 염불하여 영원히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권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매번 내가 설득하려 할 때마다 즉각 손을 흔들며 “공자님께서는 괴력난신(怪力亂神:불가사의한 힘)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고 말하였다.


  연세가 거의 85세가 다 된 어머니는 벌써부터 반신불수가 되었고, 또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어서 생사대사가 눈앞에 임박했다고 할 수 있지만, 어머니가 일생동안 배운 지견 또한 이렇게 견고하였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이 임종하실 때, 제가 꼭 어머님 곁에 있어야 합니다. 어머님의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서 본인이 아래에 누워있는 것을 보셨을 때, 그때 어머님에게 불법을 말해주면 어머님도 믿을 겁니다”


  1996년 9월에 나는 외국으로 휴가를 떠나려고 이미 북경공항에서 검표를 마쳤는데, 세관을 통과할 때 여권에 약간의 문제가 생겨서 반드시 호구 소재지인 귀양으로 돌아가서 비자를 받아야만 했다. 이렇게 인연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져서 나는 다시 어머니 곁으로 돌아와서 내가 빈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귀양으로 돌아온 이튿날 저녁 무렵, 어머니는 갑자기 고혈압에다 심장병이 도져서 계속 헐떡거리고 경련을 일으켰다. 또한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고 입술이 툭 튀어나왔으며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눈알이 빠질 것만 같았다. 응급치료를 하던 의사와 우리 형제 몇 명은 어머니를 둘러싸고 이튿날 오전까지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머니 옆에 꿇어앉아서 계속 손으로 어머니의 맥박을 짚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맥박이 느껴지지 않았을 때 나는 어머니가 “어, 내가 어디 있지?”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님! 어머님은 어머님 본인이 침대위에 누워계신 것을 보셨는지요? 이젠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셔야죠. 지금의 단계를 중음신이라고 하는데, 중음신 단계를 잘 활용하는 것이 한 사람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최후의 기회입니다. 삼계에서 윤회하는 모든 사람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직면했을 때, 아무리 헤어지기 아쉬운 가족이라 하더라고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헤어짐은 ‘가는 길이 달라서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아득한 생사의 바다 속 홀로 남겨진 윤회의 길에서 고립무원의 상태로 벗어날 기약이 없습니다. 오직 서방극락세계만이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으로 건립되었고, 아미타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접인해서 그곳에 이르러 성불하여 윤회의 모든 고통을 영원히 면할 수 있도록 48대원을 세우셨기 때문에, 그곳이야말로 중생들의 진정 유일한 집입니다. 극락세계에 이르면 아미타부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지혜를 얻게 되어 매분 매초마다 우리를 볼 수 있고 아미타부처님과 함께 있게 되며 우리들을 남김없이 구제하여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이곳의 수십 년은 서방극락세계에서 한순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어머님은 안심하시고 아미타부처님을 따라가십시오” 그리고는 연우들에게 불상을 높이 들고 부처님 명호를 부르도록 하였다.


  우리가 염불을 하고 있는데 침대에 누워서 이미 호흡을 멈추었던 어머니가 차츰차츰 나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임종할 때 허우적거리며 변형이 되고 대단히 고통스럽게 보였던 얼굴이 매우 편안하게 변하여 마치 편안한 꿈속에서 깊이 잠든 것 같았다.


  내가 사는 집에 『중음신구제법』이라는 책 한 권이 있어서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가져오려 하였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8시간 내에 팔식이 아직 남아 있어서 어머니가 아파할 수 있다며 어머니의 시신을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내가 급히 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이미 민간풍습에 따라 어머니에게 옷을 입혀주려고 시신을 움직였으며, 8시간이 채 되기 전에 장례식장으로 옮겨 냉동관 속에 넣고서 해외에 있는 친척과 친구들이 조문을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이렇게 한바탕 소란을 피웠으나 관속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여전히 매우 편안하였다. 다만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있어서 앞전같이 그렇게 활짝 펴지지는 않았다. 이로써 사람의 숨이 끊어지더라도 팔식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5일 후에 관을 열어 화장을 하는데 어머니의 시신은 갓난아기처럼 유연하였다. 


  내가 아미타부처님께서 중생을 구제해주시는 진상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몇 년 동안 줄곧 어머니가 이미 왕생하였다고 판단하지 못하고 최소한 어머니가 천상에 태어났을 거라고만 굳게 믿고 있었다. 나중에 어떤 글에서 중음신이 몸을 벗어나는 그 순간에 먼저 옆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부처님께서 바로 광명을 놓아 중음신을 비추신다는 것을 보고서 부처님께서 중생을 구제하시는 데 얼마나 절박하고 자비로우신지를 알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미타부처님의 48원을 듣고 나서야 본래 우리의 왕생은 아미타부처님께서 10겁 이전에 이미 증득하신 불과로서 우리가 믿느냐 의심하느냐에 상관없이 이미 성취한 사실이며, 중생들이 인연만 성숙하면 구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일생동안 불교를 믿지 않았고 염불도 하지 않았으며, 목숨을 마치고 중음신 상태가 되서야 법문을 한 번 듣고 이와 같은 서상을 나타내며 정토에 왕생하였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어머니가 아미타부처님과 함께 계시고, 또 머지않은 장래에 나 자신이 왕생할 때 다시 어머니를 만나서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함께 널리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의 마음속에는 일종의 착실한 위로감이 들었다.


  나무아미타불! (귀양 용천사 왕통구 기록, 2000년 12월) 


  ‘시방중생’에는 기독교인도 포함된다


  나의 어머니 부보금富寶琴은 올해 7월 14일에 운명하였으며, 향년 88세였다. 어머니가 운명한 후에 따로 기독교와 불교의식에 따라서 두 번이나 장례식을 진행하였으며, 결국 극락세계에 왕생하였다.


  1999년 11월, 심폐쇠약과 폐기종을 앓게 된 어머니는 퇴원한 후에 둘째 오빠네 집에서 머물었는데, 우리는 매일 염불기를 틀어놓고 어머니에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라고 가르쳐주었으며 어머니도 따라서 불렀다. 


  올해 어머니가 큰 오빠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 환경이 전부 바뀌었다. 올케가 기독교신자여서 어머니도 기독교를 믿게 하였는데, 세례를 받고 기독교신자 되어 미사에도 참가하게 하였다. 이후부터 어머니의 병은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면서 자주 정신이 흐리멍덩해지면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연세도 많고 정신도 맑지 않은데다가 또 기독교를 신앙하는 환경 속에 처해 있다 보니 더 이상 염불을 하지 않는데, 이래서 왕생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매우 초조해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가 급히 큰 오빠 집으로 달려갔더니 어머니는 이미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흰색 천으로 덮여 있었고 십자가가 있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하였다. 그런데 올케가 가로막으며 “여기엔 내가 있으니까 넌 나가있어! 내가 맏이이니 내 말을 들어야 한다. 모든 것은 내가 다 처리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연우들을 불러서 어머니에게 조념을 해준다는 것은 올케가 더욱 동의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올케의 신앙을 존중하지만 어머니의 얼굴이 심하게 부어있고 안색이 새파랗고 표정이 고통스러운 것을 보면서 그 당시 나의 초조한 심정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조급한 마음에 어디서 그렇게 큰 용기가 났는지 나는 올케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딸로서 나는 내 어머니를 한 번 볼 권리도 없는가? 당신은 내 어머니가 천당에 갈 수 있다고 보증할 수 있는가? 나는 우리 어머니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증할 수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멍해졌다. 마침 둘째 오빠가 도착하여 나를 지지해주었다. 상의를 거쳐 최후에 합의를 이루었다. 바로 큰 오빠 집에서는 기독교의식대로 처리하고 장례식장에 도착하면 내가 불교의식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조념하러 나온 연우들이 수십 명이 있었고, 스님이 직접 법문을 하고 대중들을 거느리고 조념을 해주었다. 우리 모두 처음 조념을 하는 것이어서 경험이 부족하여 약간 당황하긴 하였으나 스님께 전화를 걸어 가르침을 청한 후에는 신심이 크게 증가하였다. 1박2일간의 법문과 조념 후에, 비록 어머니가 냉동관 속에 있었지만 얼굴의 붓기가 완전히 빠졌고 본래 새파랗던 안색도 불그스름하게 변하였다. 또한 용모가 장엄하고 표정이 편안하여 마치 잠이 든 것 같았으며, 몸이 유연하고 얼굴에 탄력이 있었다. 조념을 하던 연우들은 대단히 기뻐하였고 염불소리는 더욱 정성스럽고 우렁찼다. 


    사후에 오거사가 말하기를, 사방삼성이 어머니를 접인하러 오셨는데, 어머니가 연꽃위에 앉아서 허공을 향해 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화장을 마친 후에 오거사는 전화를 걸어 나의 몸 상태를 걱정하였다. 나와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에 오거사는 또 한 번 어머니가 연꽃위에 앉아서 빙그레 웃으면서 한 바퀴 돌고 가는 것을 보았다. 연우 몇 명은 조념 도중에 이제까지 맡아본 적이 없는 달콤한 향기를 맡았었고, 도 어떤 거사는 또 조념 도중에 사면팔방에서 전부 염불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유골은 화석 같은 흰색이었는데, 그중에 한 덩어리는 빨간색이었고 한 덩어리는 초록색으로서 색깔이 곱고 아름다웠다.


  『무량수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중생들이……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시방중생’에는 불교신자도 포함되고 기타 종교의 신자들도 포함되므로, 누구든지 한 생각 마음을 돌려 정토왕생을 발원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 어머니는 연세가 많아서 염불을 가르치면 염불을 하고 기독교에 들어가라고 가르치면 기독교에 들어갔지만 임종할 때 법문과 조념을 통해 수승하게 왕생하였으니, 이는 오직 아미타부처님의 자비만이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대련 일범거사 기술, 2001년 8월)


출처 : 순정시대 純淨時代
글쓴이 : 淨傳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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