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과 아미타불/극락에 관한 장

구품왕생(九品往生)과 변의 (辨疑)

慧蓮혜련 2009. 4. 19. 14:31

구품왕생(九品往生)과 변의 (辨疑)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삼배생(三輩生)이 있는 것을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에는 삼배생을 구품(九品)으로 나누었다 극락정토에 왕생하는데 그 행업(行業)의 우열(優劣)에 따라서 구품의 계급을 세운 것이다.

(-). 상품상생(上品上生)은 금강대(金剛臺)를 타고 저 나라에 가서 난다.

(=). 상품중생(上品中生)은 자금대(紫金臺)를 타고 가서 저 나라에 가서 나되 하룻밤을 지낸 뒤에 연꽃이 핀다.

(三). 상품하생(上品下生)은 금연화(金蓮華)를 타고 가서 나되 하루 낮 하루 밤을 지낸 뒤에 연꽃이 핀다.

(四). 중품상생(中品上生)은 연화대(蓮華臺)를 타고 가서 낳되 오래지 아니하여 연꽃이 핀다.

(五). 중품중생(中品中生)은 칠보연화(七寶蓮華)를 타고 가서 나되 七일을 지낸 뒤에 연꽃이 핀다.

(六). 중품하생(中品下生)은 연화대 말이 없고 곧 극락세계에 가서 낳는 다는 말뿐이다

(七). 하품상생(下品上生)은 보연화(寶蓮華)를 타고 가서 나되 七七일을 지낸 뒤에 연꽃이 핀      다

(八). 하품중생(下品中生)은 천화(天華)를 타고 가서 나되 六겁(劫)을 지낸 뒤에 연꽃이 핀다.

(九). 하품하생(下品下生)은 금연화를 타고 가서 나되 十二대겁(大劫)을 지낸 뒤에 연꽃이 핀다.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에 상품하생자 와 하품하생자가 타는 연화를 모두 금연화라 하였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문] 구품왕생은 수행에 우열(優劣)이 있고 성중(聖衆)이 맞는데 많음과 적음이 있고 연꽃이 피는데 이름과 늦음이 있고 진대(珍臺) 보화(寶華)에 모두 차별이 있는데 상품하생과 하품하생에 같이 금연화라 하여 차별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답] 이에 대하여 세 가지 해석이 있으니


(-). 하품하생의 금연화는 왕생하는 사람이 타는 것이 아니고 맞으러 오신 부처님이 타신 연화인가 한다.

 그 사람이 업장(業障)이 무거워서 부처님은 뵈옵지 못하고 오직 부처님의 좌대(座臺)만 뵈옵는데 그것도 분명치 못하며 일륜(日輪,일륜이라 한 것은 華를 일륜에 비유한 것이고 그 量이 큰 것을 형용한 것이다)과 같이 몽롱하게 보는 것이다.

(=). 하품하생의 사람이 업장이 무거워서 부처님이 맞으시는 것을 뵈옵지 못하고 오직 금연화만 얻어 정토에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경(觀經)에는 금연화가 그 사람 앞에 머문다 하였으니 만일 이것이 타는 연화라면 어찌하여 보화(寶華)에 앉는다고 말하지 아니 하였으랴.


(三). 하품하생의 금연화는 타는 연화니 상품하생의 금연화와 이름은 같으나 크고 작은 것과 승(勝)하고 열(劣)한 것과 추(僦)하고 묘한 것이 다른 것이다.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에 중품하생자에는 부처님이 와서 맞으신다는 말이 없는데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문]구품왕생은 모두 아미타불의 본원력(本願力)으로 인하여 행인(行人)을 맞아서 불국토에 낳게 하시는 것인데 오직 중품하생은 성중(聖衆)이 와서 맞는다는 말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답] 이에 대하여 해석이 두 가지가 있으니


(-). 부처님의 48원에 [행인(行人)의 임종 때에 만일 와서 맞지 아니한다 하면 정각(正覺)을 취하지 아니한다]하였고 또 하품하생(下品下生)에도 성중이 와서 맞는다는 말이 있는데 중품하생에 그 말이 없는 것은 혹은 번역한 사람이 빼였거나 혹은 생략하고 말하지 아니한 것일 게다.

(=). 아미타불의 四十八원 중에 [시방(十方)중생이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여 모든 공덕을 닦고 지심으로 발원하여 내 나라에 나려 하는데, 그 임종 때에 가령 대중(大衆)으로 더불어 그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아니한다면 정각(正覺)을 취하지 않는다]하셨으니, 이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은 무상(無上)대보리심(大菩提心)을 발하는 것인데 중품(中品)의 세 사람은 무상 대보리심을 발하지 못하고 오직 공덕만 닦아서 왕생하려는 것이므로 왕생할 때에 오셔서 맞으신다는 말이 없는 것이 경문에 빠진 것이 아니고 부처님이 와서 맞으시지 않더라도 그 본원(本願)에 어김이 없는 것이다.


 정법(正法)을 비방(誹謗)한 자는 제하고 오역(五逆) 십악(十惡)을 짓더라도 왕생할 수 있다는데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문]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왕생하기를 원하는 이는 모두 왕생할 수 있으나 오직 오역과 정법을 비방한 자는 제한다]하였고,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오역 십악을 짓고 모든 불선(不善)을 갖추었더라도 왕생할 수 있다]하였으니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답]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오역과 정법을 비방한 두가지 중죄(重罪)로 인하여 왕생하지 못한다]한 것이고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오역 십악 등 죄를 지었으나 정법을 비방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왕생하게 된다는 것이니 이것은 오역죄를 지었더라도 정법을 비방하지 아니하였으면 왕생할 수 있고 오역죄를 짓지 아니하였더라도 정법을 비방하면 왕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경에[오역죄인은 아비대지옥(阿鼻大地獄)에 떨어져서 一겁(劫) 중죄(重罪)를 받고 정법을 비방한 자는 아비지옥에 떨어졌다가 이 겁(劫)이 다하면 또 다시 다른 곳의 아비지옥으로 옮겨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百千 아비지옥을 지나는데 부처님도 그 나올 시절을 알지 못한다]하셨으니 정법을 비방한 죄가 극히 무거운 까닭이요, 또 정법은 곧 불법이니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이 정법을 비방하면서 어찌 정토에 나기를 원할 이가 있겠는가.

 가령 부처님 국토가 안락(安樂)한 것만 탐하여 왕생을 원하는 이가 있다 하면 이것은 물이 아닌 얼음을 구함이며 또 연기 없는 불을 구함과 같으니 어찌 그 얻을 이가 있으리오.


 정법 비방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문] 어떤 것이 정법을 비방하는 것인가


답] 만약 부처도 없고 불법도 없다면 보살도 없고 보살법도 없다는 소견(所見)을 제가 생각하였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그 마음이 결정된 것이 모두 비방이다.


문]  이런 것은 단지 자기에게 관한 것인데 중생에게 무슨 해독(害毒)이 있어서 오역 중죄보다 더 중하다 하는가.


답] 여러 부처님과 보살이 세간(世間) 출세간(出世間)의 선법(善法)을 설법하시지 아니하면 중생을 교화하는 이가 어떻게 선악(善惡)을 가려낼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세간의 온갖 선법이 모두 없어지고 출세간의 모든 현성(賢聖)이 모두 없을 것이 아닌가.

 그대는 오직 오역죄가 중한 줄만 알고 오역죄가 정법이 없는 데서부터 나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법을 비방하는 죄가 가장 무거운 것이다 오역죄가 혹은 왕생할 수 있다 하고 혹은 왕생하지 못한다 하므로 이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문] [관경(觀經)]에는 [오역죄 등을 범하고도 왕생할 수 있다]하고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오역죄 등을 범하면 왕생하지 못한다]하였으니 이것을 어떻게 해석 하는가.


답] 이에 다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 은 사람에 대하여 해석한 것인데

 첫째는 오래 전부터 대승심(大乘心)을 발한 사람이 악연(惡緣)을 만나서 역죄(逆罪)를 지은 것이 아사세왕과 같은 것인데 이것은 비록 역죄를 지었으나 반드시 깊이 후회하고 발심하여 깨달은 세계로 들어가기를 구하므로 능히 중죄를 없애 버리고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니, 이는 관경의 뜻이고

 둘째는 자고이래(自古以來)로 대승심(大乘心)을 발하지 못한 사람이 또 역죄를 짓고도 많이 후회 하지 못하면서 능히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지 못하므로 왕생하지 못 하는 것이니 이는 무량수경의 뜻이다.


(=). 는 행(行)에 대하여 해석한 것인데 행에 정(定)과 산(散)이 있다.


첫째 사람이 다시 역죄를 지었더라도 능히 十六정관 (正觀)의 선행(善行)을 닦고 깊이 불덕(佛德)을 관(觀)하면 중죄를 없애 버릴 것이므로 왕생하게 되는 것이니 이는 관경의 뜻이고,

둘째 사람이 역죄를 지은 뒤에 능히 관불삼매(觀 佛三昧)를 닦지 못하면 비록 여선(餘善) 즉 다른 선행(善行)을 지었더라도 능히 죄를 없애 버릴 수 없으므로 왕생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무량수경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