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심에 관해서
“왕생요, 제가 자격이 될까요?” 많은 연우님들이 늘 이렇게 스스로 자신에게 묻습니다. 깊은 자기성찰이 필요 없이 자신은 왕생에 대해 전혀 확신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일시적으로 희망을 느껴보지만 역경이 한 번 들이닥치면 신심은 단번에 사라지고 말지요.
자신에게서 왕생할 수 있는 원인을 찾아보려 하지만 그 결과는 확실히 낙관적이지 못합니다. ‘나에게는 망념이 너무 많고, 나의 죄업은 너무 무겁고, 나의 수행은 너무 부족하고……’ 우리는 주의력을 늘 이런데다가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앞길이 막막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정토종이 “구제의 법문”이라 말한 이상, 중생들의 능력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구제에 순종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기에, 이것이 바로 정토종에서 특별히 믿음과 발원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우익대사께서 말씀하시길, “왕생을 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믿음과 발원의 유무에 달려있다”고 하셨지요. 정말로 믿음과 발원이 있다면 왕생에 대해 응당 절대적인 확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믿음과 발원의 부분에 확실히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종조사開宗祖師이신 선도대사께서는 정토종행자들의 신심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은 현재 죄악생사범부로서,
광겁 이래 항상 침몰하고 항상 유전하며
(생사로부터) 벗어날 기연이 없음을 결정코 깊이 믿는다.
둘째, 저 아미타불께서 48원으로 중생을 섭수하시니,
의심과 걱정 없이 저 부처님의 원력에 힘입어
반드시 왕생함을 결정코 깊이 믿는다.
一者決定深信:
自身現是罪惡生死凡夫,
曠劫以來,常沒常流轉,
無有出離之緣。
二者決定深信:
彼阿彌陀佛四十八願,
攝受眾生,無疑無慮,
乘彼願力,定得往生。
즉, 생사해탈이라는 이 일에 대해 자신에게 전혀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믿고, 또 부처님의 힘에 의지하면 반드시 왕생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정토법문에 말하는 ‘타력’의 함의입니다.
“첫째, 결정코 깊이 믿음”이란 자신의 근기에 대한 성찰인데, 선도대사께서 자신은 ‘죄악생사범부’라는 말씀을 갑자기 들으니 쉽게 받아들이질 못합니다. 우리는 “중생무변서원도”라는 보살의 서원에 익숙하다 보니 심지어 보살의 신분을 자임하며 일심으로 법을 펴서 중생을 구제하려고만 하지(정신은 칭찬할 만합니다), 일개 평범하고 조용히 염불하는 범부가 되어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를 받는 것은 그다지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자신의 근기를 살펴보면 확실히 대사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이미 ‘염불’이라고 말한 이상 염하는 것은 부처님이시거늘, 항상 자신에게 힘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눈빛을 아미타부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대자대비하신 아미타부처님께서는 어떠한 중생도 버리고 구제하지 않은 경우가 없으시고, 아미타부처님의 대원대력으로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저지른 중생 역시 제도될 수 있구나! 이것이 바로 우리가 늘 말하는 “사십팔원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니, 구품으로 모두 피안에 오르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선도대사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부처님의 원력으로
오력과 십악의 죄를 소멸하고 왕생하며,
정법을 비방한 일천제도 마음만 돌리면 모두 왕생하네.
以佛願力,
五逆十惡,罪滅得生;
謗法闡提,回心皆往。
아미타부처님께 위대한 원력이 있으시고, 육자명호에는 왕생의 공덕이 있어서, 누구든지 칭념만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구나!
알고 보니 나도 왕생할 수 있구나!
그렇다면 한 번 한 번 소래 내어 부르는 염불마다 모두 왕생을 결정짓는 염불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명호를 중생들에게 내려 주시어 중생들이 설사 임종에 이르러서 듣게 되더라도 즉각 칭념하면 즉각 왕생할 수 있습니다. 결코 중생들이 명호를 칭념하여 어느 수준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부처님께서 구제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것들은 대부분 요 몇 년 사이에 발생한 감응사례들로서 당사자들도 대부분 평소에 번뇌가 많던 평범한 사람들이고, 심지어 우인(어리석은 사람)·악인·망자, 그리고 동물들도 있으니, 그 목적은 이처럼 열등한 근기들을 빌어 아미타부처님의 구제의 광명을 두드러지게 드러내어 모든 독자들로 하여금 왕생에 대해 모두 결정적인 믿음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처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남다른 수행도 없었는데, 그들은 무엇을 의지하여 왕생하셨을까요?” 답은 이렇습니다. “그들은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여 왕생한 것이고, 명호를 칭념하는 것을 의지하여 왕생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량수경』의 제18원에서 다음과 같이 보증을 하셨기 때문이지요.
만일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의 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내지 십념을 했음에도
왕생할 수 없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
設我得佛, 十方衆生,
至心信樂,欲生我國,乃至十念,
若不生者,不取正覺!
즉 “나의 구제를 믿고 따르고, 나의 명호를 칭념하며, 나의 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왕생할 수 없다면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말법시대에 이르러 정토법문은 갈수록 ‘대비심으로 범부를 위함’, ‘마음은 특히 항상 침몰하는 중생을 가엾이 여김’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전수염불을 하기로 결정하고 왕생을 구하고자 발원할 때, 우리의 왕생은 이미 결정된 것입니다. 이 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중대한 살생업을 지어 몇 년 뒤에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이런 악보惡報는 그가 살생할 마음을 일으킬 때부터 이미 결정된 것이지요.
아마 그래도 어떤 연우님들은 임종 시에 만일 정념을 유지할 수 없으면 공든 탑이 무너질까봐 걱정들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것은 아미타부처님의 서원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제19원에서 보증을 하시기를, “나의 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한 사람은 임종할 때 내가 반드시 그를 영접하러 오겠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고, 『아미타경』에서도 평소에 한결같이 오로지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사람은 임종할 때 반드시 성중들이 영접을 오시는 과보를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임종 시 사대가 흩어질 때가 바로 중생들이 가장 위로가 필요한 시기인데, 대자대비하신 아미타부처님께서 어찌 보시고도 그냥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한결같이 오로지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사람은 자연히 아미타부처님과 서로 마음이 통할 것이고, 평소에 “한결같이 염불하면 부처님께서 반드시 영접하러 와주신다”고 굳게 믿는다면 임종의 상황이 어떻든지 막론하고 모두 반드시 왕생할 수 있습니다. 철오선사께서 말씀하시길, “마음이 무겁고 업이 강하여 오직 서방만을 지향한다면 다른 날 목숨을 마칠 때 틀림없이 서방에 왕생하지 다른 곳에 태어나지 않는다. 마치 큰 나무나 큰 담벼락이 평소에 서쪽을 향해 기울어져 있으면 다른 날에 쓰러지게 되면 절대 다른 곳을 향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셨지요.
정토삼경과 이 책의 감응사례들로부터 우리는 설사 평소에 염불을 한 적이 없어도 임종할 때 염불하면 여전히 왕생할 수 있고, 설사 임종할 때 염불한 적이 없더라도 중음신 상태에서 염불해도 역시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자비는 층층이 끝이 없고,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는 수시로 존재하며, 중생의 왕생은 수시로 얻을 수 있어서, 결코 임종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조념을 통해서만 비로소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평소에 염불하지 않다가 오로지 임종 시에 타인의 조념에 의지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진정으로 왕생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듣자마자 실천하여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며, 평소에 부처님의 원력을 우러러 의지하며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왕생은 이미 결정되어 임종의 조념을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염불을 왕생의 “정정업”으로 삼는 것으로, 선도대사께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일심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되,
행주좌와에 시절의 오래고 가까움을 묻지 않고,
염념마다 (염불을) 잊지 않는 것을 ‘정정의 업’이라 부르나니,
저 부처님의 원력을 따르는 까닭이다.
一心專念彌陀名號,
行住坐臥,不問時節久近,念念不舍者,
是名正定之業,順彼佛願故。
따라서 정토법문은 승속을 따지지 않고, 지우智愚를 따지지 않으며, 죄와 복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수행의 오래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으며, 공부의 깊고 얕음을 따지지 않고, 평생과 임종을 따지지 않으며, 어떻게 죽느냐를 따지지 않고, 내지 중음신이든 삼악도든…… 중생의 근기를 일체 따지지 않으며, 단지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듣고서 한 생각 귀명하여 온 마음을 다해 염불하며 왕생을 원하는 자라면 누구든지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극락과 아미타불 > 염불 감응록 (신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4. 실천에 관해서 (0) | 2016.10.11 |
---|---|
[스크랩] 3. 염불의 목적에 관해서 (0) | 2016.10.11 |
[스크랩] 머리말 - 1. 전승에 관해서 (0) | 2016.10.11 |
[스크랩] 10. 검은 색 가위 눌림을 염불로 풀다 (0) | 2016.10.11 |
[스크랩] 9. 염라대왕도 아미타부처님을 두려워한다 (0) | 2016.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