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실천에 관해서
세존께서 경전에서 아미타부처님의 명호공덕을 다음과 같이 극력 칭찬하셨습니다.
아미타불의 명호에는 무량무변하고 불가사의하고 매우 깊고 비밀스러우며, 수승하고 미묘하고 위없는 공덕을 구족하고 있느니라. 어째서 그러한가? ‘아미타’ 세 글자 속에는 시방삼세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성문·아라한 모든 경전·다라니신주·무량한 행법들이 다 들어있느니라. 그런 까닭에 저 부처님의 명호가 바로 위없는 진실하고 지극한 대승법이며, 바로 위없는 수승하고 청정한 요의의 묘행이며, 바로 위없는 가장 수승하고 미묘한 다라니이니라. 이제 게송을 설하겠다.
‘아’자는 시방삼세불이요,
‘미’자는 일체제보살이요,
‘타’자는 팔만 가지 거룩한 가르침이니,
세 글자 속에 다 갖춰졌느니라.
사리불이여! 어떤 중생이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공덕에 대해 듣고서 뛸 듯이 기뻐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칭념하고 깊이 믿어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몸으로 비할 바 없는 즐거움을 누리거나, 비천함을 바꾸어 부귀함을 얻게 하거나, 과보를 얻어 숙세의 업에 따른 병환의 고통을 면하거나, 단명함을 바꾸어 수명이 연장됨을 얻거나, 원수가 원한을 내려놓아 자손이 번영하고 심신이 안락하며 뜻대로 만족할 수 있게 되느니라. 이와 같은 공덕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나무아미타불의 명호에는 한량없는 뜻을 죄다 포함하고 있어 포함하지 않는 게 없습니다. 이 한 구절 명호가 바로 전부의 불법이어서 진허공·변법계의 모든 법을 전부 다 포함하고 있지요! 따라서 이 한 구절 명호만 부르면 모든 걸 다 부른 게 되는 것입니다.
자운관정慈雲灌頂법사께서 말씀하시길, “세상 사람들이 재난의 소멸을 위해 경전을 독송하고 진언을 외우며, 혹은 기타 여러 가지 참법을 닦는다면, 모두 효과는 있다. 그러나 만약에 극중한 죄업의 장애가 있어서 모든 참법과 경법들이 다 효력을 잃고 다 작용을 일으킬 수 없을 때가 되면, 이 한 구절 아미타불만이 능히 소멸시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재난과 죄업을 소멸하는 데는 이 한 구절 부처님의 명호가 최상의 공덕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모르고서 이것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찾고 있지요. 병이 나면 『약사경』을 독송하고, 재난이 있으면 『보문품』을 독송하고…… 이 한 구절 아미타불의 공덕이 이미 모든 경전과 진언의 공덕을 훨씬 초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관음경』에서 설하시길, “어떤 사람이 62억에 달하는 갠지스 강 모래 수만큼의 보살에게 공양을 하더라도 한 때 관세음보살님께 예배드리는 것만 못하느니라”고 하셨고, 『십륜경』에서 말씀하시길, “백겁 동안 관세음보살을 부르더라도 밥 한 끼 먹는 사이 지장보살을 부르는 것만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군의론群疑論』에서도 말씀하시길, “일대겁 동안 지장보살을 부르더라도 한 번 소리 내어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만 못하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법왕法王이시고 보살은 법신法臣이므로, 마치 왕이 출타할 때 신하가 반드시 모시고 따라가는 것처럼 큰 것은 작은 것을 거두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과위가 원만하여 모든 지위를 뛰어넘으셨기 때문에 명호를 칭념하는 자의 공덕이 가장 커, 지장보살보다 백천만 배를 뛰어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선도대사께서 말씀하시길,
“그 외의 여러 가지 수행들도 비록 선이라 부르기는 하나,
만일 염불과 비교한다면 전혀 비교되지 않는다.”고 하셨고,
연지대사께서도 말씀하시길,
“지명은 선 중의 선이고, 복 중의 복이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 염불만 하고, 선을 실천하고 복을 닦지 않는가?”라며 오해를 하는데, 이는 염불이 온 법계에서 가장 큰 선행임을 모르는 것이지요! 조사님께서는 노파심에서 거듭 우리에게 “이 하나의 행을 보배롭게 여겨라”, “착실하게 염불하며 제목을 바꾸지 말라”, “이 한 구절 부처님 명호를 가지고 본명원신本命元辰으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하셨습니다(물론, 전수염불을 한다고 해서 결코 다른 선행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을 왕생의 보조수단으로 삼지 않고,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마음에 새기는 자연스런 행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인광대사께서는 당신의 『문초』 중에서 선도대사의 ‘전수’이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극력 칭찬하셨습니다.
선도화상은 아미타불의 화신이시며, 대신통과 대지혜가 있으시다.
그분께서는 정토법문을 널리 펴심에 있어 현묘함을 중시하지 않으시고,
오직 분명하고 평범한 곳에서 사람들이 수행하도록 가르치셨다.
또한 그분께서 보여주신 전수專修와 잡수雜修의 두 가지 수행은 그 이익이 다함이 없다.
전수란, 이를테면 몸으로는 오로지 아미타불을 예배하고,
입으로는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마음으로는 오로지 아미타불을 생각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한다면 서방에 왕생함에 있어 만 명 가운데 한 명도 빠뜨리지 않는다.
잡수란, 이를테면 여러 가지 법문을 겸하여 닦아 그 공덕을 회향하여 왕생하는 것으로,
마음이 전일하지 않은 까닭에 이익을 얻기가 어렵다.
그래서 백 명 중에 한두 명, 천 명 중에 서너 명도 왕생하는 자가 드물다.
이는 부처님께서 친히 하신 진실한 말씀으로, 천고에 변치 않는 확실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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