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몸 받기 어려움
황전이가 지리산 토굴에서 수행정진을 할 때에 뒷바라지를 해준 60대 보살님이 있었다. 이 보살님은 황전이 뿐 아니라 인연 따라 많은 수행자들에게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시간이 주어지면 어느 사찰이거나 어느 사회복지에서나 자원봉사를 하면서 보살행을 하고 있었다.
황전이가 오랜 세월 이 보살님을 관찰해보면 수행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인연 따라 자원봉사를 하는 것은 어떤 복을 짓는다기보다는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정화시키면서 참회하는 수행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많은 보살님들이 찾아왔다가 돌아갔는데 이 보살님만 남아서 마지막 설거지를 다 마친 후에 황전이에게 질문이 있다면서 찾아왔다.
“스님, 참으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제가 불법을 알게 된지가 벌써 한 40년은 됩니다. 그동안 전국에 있는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굿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 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주어지면 전국에 있는 기도처를 찾아다니면서 참회기도를 지금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변하는 것이 있다면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허리가 많이 아픕니다.
스님, 앞으로 어떤 수행을 해야 제게 주어진 업장을 녹일 수가 있겠습니까?”
“보살님, 보살님 자신이 스스로 무슨 업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보살님이 자신이 업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스스로 참회를 하고 고행을 해오지 않았습니까? 보살님이 알고 계신 자신만의 업장이야기를 해 보십시오.
자신의 업장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의 업장을 알아야 참회를 하던 고행을 하던 신심이 일어날 것이 아닙니까?”
“저는 스물이 조금 넘어서 중매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한 그 날 밤부터 제 남편은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살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살님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그 남편 되는 사람은 그러는 와중에서도 돈만 내 놓으라고 야단을 쳤고, 돈을 내 놓지 않으면 폭력을 쓰니까 무서워서도 있는 돈을 다 내 놓으면 술을 마시거나 놀음을 하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가정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자식들이 인연이 있었던지 3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자식들은 남편과는 달리 착하게 자라주었다. 보살님은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온갖 굳은 일을 다 하면서 시간만 주어지면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제 업장이 도대체 얼마나 많이 있기에 이러한 시련을 받아야 합니까? 하고 끝도 없이 절을 하고 참회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보살님 자신에게 무슨 업장이 그렇게 많아서 이러한 시련을 받는지 그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강원도에 있는 어느 사찰에 가서 일주일간 철야정진 기도를 하면 지금 고통 받고 있는, 전생에 지은 자신의 업장을 알 수 있다는 정보를 얻어서 한겨울에 강원도에 있는 어느 사찰 찾아서 일주일 철야 기도정진에 들어갔다. 기도정진은 <관세음보살>염불이었다.
기도 정진이 일주일 째 되어가는 날이었다. 법당 안이 얼마나 추운지 몸이 꽁꽁 얼 정도였는데 잠에는 이길 수가 없었던지 함께 기도를 한 십여 명의 보살들은 모두 쓰러져 잠이 들고 자신도 잠을 이기지 못해 옆으로 쓰러져 눈을 감는 순간 갑자기 바람처럼 이러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렇게 청정한 도량에 와서 잠만 자다니, 빨리 일어나 기도하지 않고 무엇을 하는 거야!**
보살님은 놀라서 얼른 일어나 잠에 취해 관세음보살 염불을 계속하는데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상황에 빠져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많은 사람들이 점심 공양을 하기 위하여 길게 줄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보살님도 공양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어떤 젊은 비구니 스님이 오더니 보살님을 데리고 어느 사무실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그 곳을 담당하는 신장님처럼 무섭게 생긴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보살님에게
“보살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절에서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까지 와 있습니다.”
“그래요, 보살님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받으셨습니다. 그래 무엇을 알고 싶어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신장님, 저는 제가 무슨 업장을 지어서 이렇게 남편으로부터 고통 받는 삶을 사는지 그 업장을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렇다면 남편되시는 분의 생년월일이 어떻게 됩니까?”
보살님이 남편의 생년월일을 말하자 신장님은 어디서 서류 한 장을 가지고 오더니,
“남편의 사주를 보니 보살님은 그 고통을 받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보살님의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살님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생은 어쩔 수없이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사셔야 되겠습니다.”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따라 오시죠.”
그렇게 해서 보살님이 신장님을 따라간 곳은 보살님의 전생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보살님이 전생에 자신을 모습을 보니 천상의 어느 한 세계의 공주였습니다.
공주는 어느 날 저녁 시녀들을 거느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멀리 한적한 바위에 앉아 좌선을 하고 있는 수행자를 발견하고는 호기심에 그 수행자를 유혹하려고 했으나 그 수행자가 말을 듣지 않자 공주의 신분을 이용해서 합방을 하는 것이었다.
“보살님은 전생에 저 공주님이었는데 저 수행자를 유혹한 벌로 그 수행자와 함께 인간 세상에 내려가 부부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저 수행자는 본래 00동물이었습니다. 인간이 되고자 저 자리에서 천년동안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정상적인 인간이 되었을 것인데 공주님의 유혹으로 정상적인 인간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 되는 분이 보살님을 그렇게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보살님이 아니었다면 정상적인 인간이 되었을 것인데, 정상적인 인간이 되지 못한 체 사바세계에 갔으니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행실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남편은 보살님과 부부인연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 정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수행을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한 번 유혹에 넘어 갔으니 그 세월 또한 기약하기가 어렵습니다. 남편 또한 그 한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보살님은 자신의 행실을 보고 참을 수 없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새벽을 깨우는 목탁소리에 눈을 떠 보니 잠깐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보살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불법수행을 하는 사람이 보살님처럼 자신의 업장을 알고 고통을 감내하고 참회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보살님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보살님이 자신의 업장을 본 후로 지금까지 그 고통을 감내하고 참회를 해왔는데 그러한 수행을 통해서 보살님이 지금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는, 다시는 이생이던, 다음 생이던, 수행자는 물론 그 어떤 사람도 유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생의 고통은 내가 지은 당연한 결과이니 달게 받아서 저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킬 것입니다.”
“보살님은 그동안 참으로 수행을 잘 하셨습니다. 이제는 참회도 할 만큼 했으니 참회는 그만하십시오. 보살님이 참회하고자 젊은 시절부터 집을 비운 사이에 외톨이가 된 남편은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그 외로움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저 남편이 괴롭힌다는 생각에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이 절 저 절을 찾아 해매인 것이 아닙니까? 본인의 참회도 중요하지만, 남편 되는 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보살님 집에 돌아가거든 남편을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정상적인 인간은 스스로 외로움을 극복하지만 정상적인 인간이 되지 못한 인간은 누군가가 항상 필요한 법입니다.”
“스님, 제가 지금까지 이 나이가 되도록 남편만 보면 미운 마음이 들어서 미처 그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보살님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삼배를 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눈물이 마를 때쯤 해서 아주 밝아 보이는 얼굴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보살님처럼 자신에게 어떠한 고통이 다가 오면 그 고통의 근원을 알고 참회를 해야 만이 그 참회가 진짜 참회이다. 고통의 근원을 알지 못하고 무조건 참회를 한다는 것은 그 참회 속에는 고통을 면해 보려는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이기심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불교 수행을 해 볼만 한 것은 자신이 수행을 한 만큼 그것이 무엇이든 아주 조금은 성취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이처럼 어려운데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람으로 태어나
지금 무엇하고 있는 것일까?
완전한 인간이 되려면
장대 끝에서 한 발자국 더
내 딛디 라는 조사님들의
말씀이 귓전을 울리나
그 도리를 알면서도
한 발자국 더 내 딛지 못하는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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