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최파가 게송을 지으니, 혀가 연꽃을 닮다
송나라 동평東平 지방에 양씨의 유모인 최파는 치주淄州사람으로 선의랑宣義郎 원명元明의 유모였다. 평생 채식을 하였으며, 성품은 매우 어리석어 동배들과 시비를 타툴 수 없었다. 여주인인 조晁부인은 선학禪學에 뜻을 두었으나, 최파는 조석으로 조부인 곁에 있으면서 오직 아미타불만 정성껏 외우며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염주를 돌리면서 횟수를 세지 않았기에 몇 천만번을 외웠는지 알 수 없었다.
소흥18원(1148)년, 72세가 되던 해에 병이 나, 설사를 하며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었는데, 염불을 더욱 더 성실히 하였다. 문득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게송을 지어 노래하였다.
"서방으로 가는 길 수행하기 쉬운데, 위로는 재 하나 없고 아래로는 구덩이가 없으니,
가실 때 신과 양말을 신을 필요 없이 연꽃을 밟으며 걸음걸음 왕생한다네."
이렇게 매일 게송을 읊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누구의 말이냐고 묻자 답하기를 “내가 지었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언제 가시는가?”고 묻자 “신시申時에 간다”고 답하였다. 과연 그 시간에 죽었으니, 10월 15일이었다. 승가의 법도대로 다비를 하였는데, 다비가 끝나니 혀만 타지 않고 연꽃모양을 닮은 것이었다. 원명은 내 친구의 사위이다.
(『이견지』을 권9·정토성현록《夷堅志》乙卷九、淨土聖賢錄)
생각건대:
대집경에서 설하시길, “만약 어떤 사람이 오로지 아미타불만 부른다면,
이를 위없이 깊고 묘한 선이라 부른다네”라고 하였다.
고덕이 말하기를, “한 구절 아미타불 외에 다른 생각 없으면,
손가락 튕길 수고로움 없이 서방에 이르리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인연 따라 묘법을 열어 중생에게 진정眞情을 얻도록 가르치니,
성도문 수행은 많이 수고로우나, 서방으로 가는 길은 매우 평탄하도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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